[일제 36년]日,근대화 美名 제국주의 정당화

  • 입력 1997년 12월 6일 08시 21분


식민지 근대화 논쟁과 관련, 주목할만한 일본의 학파가 있다. 이른바 「자유주의 사관」이다. 새로운 용어지만 「국수주의」에 뿌리를 둔 낡은 황국사관이란 일본 학계의 비판도 있다. 선봉에 선 학자는 도쿄대 후지오카 노부가쓰(藤岡信勝·53·교육학부)교수. 학내 동료는 물론 지성계 인사들은 『논리적인 일관성조차 없어 학자의 기본 소양조차 없는 사람』이라며 그의 주장을 논외로 하지만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오욕의 현대사」란 그의 저서는 베스트셀러가 될만큼 대중적 영향력이 크다. 그는 태평양전쟁에 대해 『침략이었지만 방어적 성격도 있었다. 서구가 일본을 봉쇄하니 스스로 경제권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 식민지 「신민(臣民)」을 상대로 저지른 「종군위안부」범죄에 대해서는 『조선의 부모들이 창녀로 팔아넘긴 일인데 보수적인 일본인들이 자학에 빠져 사실을 왜곡한다』면서 교과서에서 삭제하라고 요구한다. 그의 주장은 한일 국교정상화를 논의하던 53년 제3차 한일회담시 일을 떠올리게 한다. 일본측 수석대표 구보타 간이치로(久保田貫一郎)는 『일본의 한국통치는 철도와 항만을 건설하고 농지를 조성하는 등 플러스면도 있었다』고 발언, 4년반이나 끌어온 회담이 중단되고 말았다. 「근대화」라는 미명으로 「제국주의」적 침략을 가리려는 발언이었다. 후지오카는 미 군정이 강요한 전쟁범죄사관과 69년 하야시 후사오(林房雄)가 주장한 대동아전쟁 긍정론을 모두 부정한다고 주장하나 실상은 일본내 정통 우익사관에 가깝다. 또다른 「자유주의」학자는 하타 이쿠히코(秦郁彦). 그는 군위안부에 대해 『일본제국의 섹스산업에 종사했던 그들은 위험부담이 큰 대신 장군보다 높은, 일반 병사의 월급 1백배 수입을 올렸다』고 말한다. 이같은 주장의 저류에 대해 아사히신문 와카미야 요시부미(若宮啓文)정치부장은 「일본정치의 아시아관」이란 저서에서 『현재 일본에는 「탈아입구」(脫亞入歐)의 의식이 살아있으며 다른 한편으로 「대동아공영권」(大東亞公營圈)의 환영(幻影) 혹은 「대아시아」에의 동경이 사라지지 않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한다. 명성황후를 시해한 범인들을 「증거불충분」으로 석방하고 2차세계대전후 일본 거주 한국인을 「범죄자가 많고 경제부흥에 쓸모없는 짐만 된다」며 맥아더에게 강제송환하도록 건의한 나라 일본. 「자유주의 사관」의 발호는 아직도 일본이 「먼나라」임을 말해준다. 〈조헌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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