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8동아신춘문예/선배4인의 조언]마무리 이렇게 했다

  • 입력 1997년 11월 24일 07시 36분


《「동아신춘문예당선」이라는 바늘구멍을 통과해 한국문학계의 별이 된 사람들. 그러나 오랜 세월전 11월 어느 늦가을 밤에는 그들도 초조한 마음으로 응모작 마무리에 가슴 졸였던 작가지망생들이었다. 4인의 작가에게 「실전―나의 신춘문예 마무리」를 들어본다.》 ▼ 이문열/중편소설부문 79년 당선 ▼ 「새하곡(塞下曲)」으로 신설된 중편소설부문에 당선됐을 때 내 나이 이미 서른 하나. 응모 전 나는 「올해 또 실패한다면 이제 등단은 포기하고 자비출판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체념에 이르러 있었다. 그런 마음비우기가 작품정리에 도움을 준 것같다. 그래도 이제 와서 다시 「새하곡」을 읽어보면 곳곳에서 흠이 보인다. 특히 「당선작이 되려면 강렬한 느낌을 남겨야 한다」는 어떤 공식을 믿고 작품 안에서 「죽음」의 효과를 남발했다. 요즘 심사위원이 돼 작품을 읽다보면 과거의 나처럼 당선작에는 어떤 공식이 있다고 믿는 응모자들이 적지 않음을 발견하게 된다. 그러나 잔잔하고 깔끔한 이야기들도 개성이 뚜렷하면 당선되는 게 요즘 추세다. 「당선공식」에 대한 미신을 버리고 자기 색깔을 뚜렷이 보여줘야 한다. ▼ 안도현/시부문 84년 당선 ▼ 조숙한 문학소년이었던 나는 고등학교 1학년때부터 신춘문예에 도전했다. 대학입학 이후에는 매년 작품을 보낸 뒤 『올해는 당선될 것』이라며 외상술로 잔치를 벌이고 1년 내내 그 빚을 갚느라 허리가 휘었다. 당선작 「서울로 가는 전봉준」은 마감 초읽기에 들어간 11월말쯤 썼다. 시를 여러번 수정하며 쓰는 스타일이지만 「서울로 가는…」의 경우 봄부터 묵혀두었던 구상을 순식간에 써내려갔다. 그러나 쓰고 난 뒤에 다듬는데는 공을 들였다. 시는 한순간 떠오른 영감에 의존해 쉽게 쓰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오래 공들일수록 좋은 작품이 나온다. 어차피 내가 쓴 시가 만인의 보편적 공감을 얻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응모작을 보여주고 조언을 듣는 것도 권할 만한 일이다. ▼ 박라연/시부문 90년 당선 ▼ 동아신춘문예 마감이 보름 정도 남았다. 「이미 늦었다」고 생각하는 응모자가 있다면 『아직도 시간은 충분하다』고 말하고 싶다. 89년 11월 이맘때쯤 나는 신춘문예를 포기한 채 대학원시험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마감날짜가 임박하자 신춘문예 열병은 다시 고개를 들었고 나는 밀쳐두었던 습작노트를 뒤적이기 시작했다. 노트속에 기재된 수십편의 완성작들을 제쳐두고 유독 오래전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라고 제목과 시상만 간단히 메모해둔 작품에 마음이 닿았다. 머릿속에 이미 오래전 씨 뿌려졌던 생각은 그 순간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 술술 시로 빚어졌다. 시 한편을 다 쓰기까지 걸린 시간은 30분. 10여년에 걸친 「신춘문예당선」의 열망이 열매맺는데 마지막으로 꼭 그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다. ▼ 은희경/중편소설부문 95년 당선 ▼ 94년 12월을 생각하면 한 해 동안 써놓은 단편소설 다섯편, 중편소설 한편을 들고 종종걸음을 쳤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신문사마다 모두 투고했던 나는 원고를 접수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불안했다. 「한군데만 고치면 얘기가 될 것같은데…」. 조바심에 몸이 달아 신문사로 가는 택시 안에서까지 원고를 다시 보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당선 이후 차분한 마음으로 낙선한 응모작들을 다시 읽어보니 막바지에 이것저것 덧칠하고 수정한 대목들이 오히려 글의 통일성을 깨고 말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춘문예 심사위원들은 당선작에서 문학사에 길이 남을 완성도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가능성을 본다. 의욕이 앞서 이것저것 건드리기 보다는 핵심을 도드라지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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