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의 사람들/베트남 커무族]연호택/모계사회 흔적

  • 입력 1997년 10월 16일 07시 43분


『우리가 당신들을 한 명 죽이는 대신, 당신들이 우리를 열명 죽인다해도 결국은 우리가 승리하고 당신들이 패배할 것이다』 베트남사람들의 자존심, 박호(BAC HO·「호 아저씨」라는 뜻으로 호치민을 가리킴)가 프랑스의 식민지배에 대항한 싸움에서 한 말이다. 1946년부터 시작된 「월―프 전쟁」은 1954년 5월7일 57일간의 포위 끝에 아사상태의 프랑스군 1만여명이 디엔비엔푸에서 월맹군에게 항복함으로써 막을 내린다. 러이처우(LAI CHAU)주 디엔 비엔현의 현청소재지 디엔비엔푸는 베트남에서도 오지에 속한다. 하노이에서 쏜라를 거쳐 디엔비엔푸에 이르는 4백㎞의 험한 노정 곳곳에는 흑 타이족, 백 타이족, 메오족, 므엉족 등 온갖 소수민족들이 저마다의 전통과 생활양식을 고수하며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다. 디엔비엔푸에서 러이처우현에 이르는 비포장산길 주변에도 화려한 민속의상을 입고 원시적 삶을 소박하게 살고 있는 여러 산악족들의 마을이 있다. 그 주종을 이루는 민족이 커무족. 라오스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는 북부 산간지역에 살고 있는 이들의 총 숫자는 4만3천여명 정도. 언어학적으로는 몽―크메르어군에 속한다. 커무족은 옥수수와 고구마 카사바라는 이름의 뿌리식물을 주식으로 하며 식량이 떨어지면 산속을 뒤져 나무 열매를 채취하거나 수렵을 해 살아간다. 생활은 몹시 초라하다. 몇 채 안되는 집들이 모여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커무족 마을. 겨우 기본 골격을 유지한 가옥은 대나무를 두들겨 납작하게 펴서 마루와 벽을 만들었다. 정겨운 초가지붕이 우리의 옛날 모습을 생각나게 한다. 커무족 사람들은 동물이나 새의 이름을 따서 가문의 성으로 삼는다. 당연히 자신의 성에 해당하는 동물을 조상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죽이거나 잡아먹는 것을 삼간다. 동성간의 결혼은 금하지만 사돈간의 결혼은 허용된다. 가령 고모의 아들과 외삼촌의 딸은 결혼할 수 있으며 여동생 또는 누나의 아들과 아내의 남자형제(처남)의 딸은 서로 결혼할 수 있다. 결혼하면 일단 남자는 처가에서 1년이상을 살아야 할 의무가 있다. 그때는 아내의 성을 따른다. 아이도 엄마의 성을 물려받는다. 때가 되어 남자가 자기집으로 돌아가면 그때는 또 남자의 성으로 바꿔 사용한다. 아내와 남편은 원칙적으로 평등하다. 집 안팎에 대소사가 있을 경우 외삼촌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는 결혼식이나 가사 문제에 적절한 조언자가 된다. 이는 고대 원시사회에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이며 보통 모계사회의 흔적으로 간주된다. 아무리 가난해도 커무족 여인이라면 은 따위로 만든 둥근 목걸이를 한두개쯤 목에 걸고 손에도 팔찌를 착용하고 있다. 상의 앞부분은 옛날부터 사용되던 동전이나 조개돈으로 장식을 한다. 검은 의상을 즐겨 입는 이들은 검은색 천으로 머리에 터번을 두른다. 무슬림, 시크교도, 티베트의 덴파족, 중국 리수족의 남자들이 머리에 터번을 두르는 것과 비교하면 재미있는 모습이다. 치마는 허리띠로 둘러 묶는다. 정령숭배의 습속이 있는 이들은 우리나라 사람들만큼이나 귀신을 즐겨 믿는다. 이들이 생각하기에 이 세상은 천둥귀신부터 땅귀신 수풀귀신 동네귀신 조왕신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귀신이 있다. 사람들과 관계가 있거나 접촉하는 모든 것에는 귀신이 없는 곳이 없다. 농사철에 즈음에서는 매년 마을의 안녕과 한해 농사의 풍작을 기원하는 제사를 지낸다. 그것뿐이다. 욕심이 전혀 없다. 사는 게 소박하기 짝이 없다. 결국 행복이란 돈이나 재물하고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는것을 새삼스레 깨닫게 된다. 연호택<관동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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