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와 함께]지하철참사 中동포 허정숙씨 비극적사연

  • 입력 1997년 5월 12일 20시 17분


『귀국을 보름 남겨놓았던 아내가 자살했다는 얘기를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작정 아들과 함께 할아버지의 나라인 한국으로 달려왔지요』 중국 길림성 연길시의 동포3세 韓東國(한동국·47·연길TV방송국 근무)씨는 지난 3월11일 방송국에서 일하던중 부인 許正淑(허정숙·46)씨의 사망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남다른 애정으로 두 아들 교육에 정성을 쏟아온 아내의 「자살 소식」은 거짓일 수밖에 없었다. 부인 허씨가 아들 교육에 힘써 온 「애틋한 사연」은 연변 조선족 사회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기 때문. 한씨의 직장 동료인 연출가가 한씨가족을 모델로 삼아 TV드라마 「샘」(8부작)을 제작했고 연길TV방송사가 이를 지난 96년10월에 첫 방송한데 이어 올 1월에는 재방송도 했다. 연변의 교육열이 우리나라 못지않아 TV드라마 「샘」은 큰 인기를 얻었고 지난 3월엔 북경중앙TV가 「샘」을 방영하기도 했다. 허씨는 지난 95년 1월8일 인천항에 도착, 그동안 서울과 동두천 등지의 대여섯군데 식당에서 일해 번돈 1천5백만원을 가족들에게 송금했다. 대학에 다니는 큰 아들 哲(철·20·중국 과학기술경영관리대학 2년)과 대입 준비중인 작은 아들 俊(준·18·연변제1중등중학교 3년)의 학비를 벌기 위해 이를 악물고 일했다. 허씨는 한달 임금 80만원을 거의 한푼도 쓰지않은 채 모아 입국당시 브로커에게 사기당한 5백만원을 갚기도 했다. 남편 한씨는 큰아들과 함께 지난 3월25일 서울에 도착, 경기 성남시청 옆 「외국인 노동자의 집」으로 달려가 사망 소식을 알려준 金海性(김해성·36)목사를 찾았다. 마침 「黃長燁(황장엽)망명사건」이 터져 북경에서 비자발급이 늦어진 탓에 사망 소식을 들은 지 보름만에 서울에 온 것. 허씨의 사망은 지난 3월11일자 국내 몇몇 신문에 「자살」로 보도됐었다. 당시의 기사들은 허씨가 「3월10일 오전10시반경 서울 송파구 신천동 서울지하철2호선 성내역에서 승강장으로 들어오던 2177호 전동차에 뛰어들어 숨졌다」고 돼 있다. 경찰이 당시 목격자 강모씨(39)의 말에 따라 허씨가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가 갑자기 철길로 뛰어들어 자살한 것으로 결론내렸던 것이다.그러나 한씨부자는 끈질긴 노력 끝에 목격자가 진술했던 나무의자가 현장에 없었던 사실 등 목격자의 진술이 허위임을 밝혀냈고 지난 3일에는 서울송파경찰서로부터 허씨가 「과로로 발을 헛디뎌 사망했다」는 확인서를 받아냈다. 한씨부자는 나름대로 진상을 밝혀냈던 지난 4월14일 서울에서 허씨의 장례를 치렀다. 화장한 뼛가루는 연길로 가지고 가 두만강에 뿌릴 예정이다. 오는 20일 두달동안 머물렀던 성남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떠나 연길로 돌아갈 예정인 한씨부자는 요즘 깊은 고민에 빠져 있다. 북경대 법대에 진학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는 막내 준에게 어머니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남〓성동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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