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반]「첼로 현대史」로스트로포비치 전집 재현

  • 입력 1997년 4월 25일 08시 22분


1974년, 그는 고국 러시아에서 추방됐다. 반체제 작가에게 숨을 곳을 마련해 주었다는 것이 이유였다. 70년 작가 솔제니친에 대해 공개지지를 표명한 뒤로 이미 그는 정부의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78년에는 고국에서 잊혀진 존재가 됐다. 구소련 정부가 공민권을 박탈하고 그에 관한 보도를 금지했다. 그러나 그는 서방에서 자신의 역사를 다시 만들어 갔다. 오늘날 그는 첼리스트의 세계에서 가장 우뚝한 거봉이 되었다. 「슬라바」. 첼리스트 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의 애칭이다. 그가 역사속에 묻혀있던 과거를 되찾았다. 모스크바 오스탄키노 방송국에 보관돼 있던 다량의 녹음테이프가 비로소 햇빛을 보게 됐다. EMI사는 13장의 CD에 「로스트로포비치 러시아 시대(1950∼1974)」라는 제목을 붙여 전집으로 내놓았다. 마지막 앨범을 제외한 12장이 모노녹음이지만 믿기 힘들만큼 생생한 음질로 재현돼 있다. 「러시아 시대」가 눈길을 끄는 이유는 단지 묻혀 있던 녹음을 재발견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전집에는 현대 첼로사의 가장 중요한 줄기가 담겨 있다. 세계초연곡만 해도 10곡. 프로코피예프 브리튼 등 당대 최고의 작곡가들이 그의 연주에 반해 첼로곡을 헌정했다. 로스트로포비치는 기꺼이 이 작품들을 연주 녹음했고 작곡가들은 현장을 지켜보았다. 쇼스타코비치 카발레프스키 등의 대작곡가도 피아노앞에 앉아 「슬라바」의 첼로와 협연하고 있다. 현대곡 위주의 앨범이지만 고전 및 낭만 레퍼토리도 풍성히 담겨 있다. 바이올린 거장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피아니스트 스비야토슬라프 리히터와 협연한 베토벤 「3중 협주곡」은 특히 눈을 번쩍 뜨게 하는 부분. 전집의 마지막편인 13번째 음반은 작년 녹음된 최신 연주들로 장식돼 있다. 20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그의 예술적 완성을 「러시아 시대」와 비교해 볼 수 있는 기획이다. 「슬라바」는 최근 파리에서 70회생일 기념축제를 가졌다. 고향에서의 억압과 망향의 세월을 모두 딛고 일어선 그는 비로소 생의 정점에 도달해 있다. 예술의 완숙과 바른 신념이 모두 입증된 지금, 「슬라바」의 영광은 더욱 돋보인다. 〈유윤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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