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동포 유미리씨 연극「서울 무대」오른다

  • 입력 1997년 2월 24일 20시 22분


[김순덕 기자] 일본 최고 권위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상을 받았지만 일본 우익단체의 협박 때문에 독자 사인회도 취소해야 했던 재일동포 작가 유미리씨의 연극이 3.1절인 3월1일부터 27일간 서울 정동극장 무대에 오른다. 동아일보 주최. 유씨에게 92년 기시다(岸田)희곡상을 안겨준 「물고기의 축제」는 막내아들의 장례식을 계기로 붕괴됐던 가족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 죽음이라는 묵직한 소재를 다루고 있지만 사람사는 곳에서 빠지지 않는 웃음이 역설적인 형태로 끼어있어 한국적 「초월의 미학」을 느끼게 한다. 개막을 앞두고 혜화동 볼재연습실에서 리허설에 몰두하고있던 배우들도 한참 눈물을 머금다가 다음 장면에서는 금세 웃음을 터뜨릴 정도로 작품의 매력에 흠뻑 빠져있었다. 『언뜻 보면 비정상적 가족이죠. 아들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어머니가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빨간 옷을 입고 화장을 합니다. 장성한 자식이 있으면서도 여자임을 포기하지 않는 어머니라는 사실을 이렇게 잘 그려낸 희곡이 있을까요』 어머니역을 맡은 김혜옥씨가 보통 음색보다 한 옥타브 올라간듯한 불안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지문에 「몸속의 피가 거품을 일으키며 공황상태로 돌입한다」고 쓰여있는 등 배우를 굉장히 힘들게 하는 연극이라면서 『그렇기 때문에 음미할수록 맛이 난다』고 했다. 연극은 아들의 죽음이 12년간 뿔뿔이 흩어져있던 가족을 한자리에 모으기 위해 계획된 자살임이 밝혀지면서 절정으로 치닫는다. 형제들은 부모를 증오해 왔지만 그들 자신도 부모를 닮았음을 받아들이고 변화하게 된다. 그러나 이 연극이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하는 계몽극으로 끝나지 않는 것은 작품속에 물고기의 비늘처럼 박혀있는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덕분이다. 가장 두드러지는 상징은 커뮤니케이션의 부재. 자동응답기에서 흘러나오는 기계적 목소리, 받으면 침묵하는 전화벨 등은 가족간의 갈등뿐 아니라 인간소외라는 본질적 문제를 드러낸다. 수박으로 상징되는 가족공동체를 야구방망이로 부수고 수박씨를 멀리 뱉어내는 아버지의 행동은 가부장적 권위에 매달리는 허세를 표현하고 있다. 연출자 윤광진씨(용인대교수)는 『물위에 떠있는듯한 환상적 무대, 시적 분위기를 자아내는 조명이 이같은 이미지 전달을 도울것』이라고 말했다. 공연기간중 유미리씨가 내한, 관객을 위한 특별강연회를 가질 예정. 민중극단과 정동극장 공동제작으로 화 금요일을 제외한 평일 오후4시 7시반, 토 일 오후 3시 6시반 공연된다. 02―773―8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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