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성의 세상읽기]산타 잔치

  • 입력 1996년 12월 23일 21시 00분


외국의 어느 실험학교에서 성탄절 잔치가 열렸다. 그냥 선물 나누어주고 흥청거리는 잔치가 아니라 성탄의 뜻도 새기고 하는 자리로 만들려고 고심하던 선생님들은 작은 상황극을 연출했다. 조촐한 잔칫상을 차려 그곳을 천국으로 꾸미고 입구에 천국문을 만들고는 교장 선생님이 이곳을 지키는 천사장이 되어 아이들마다 천국으로 들어갈 만한 이유를 말하도록 한 것이다. 엄마 심부름을 잘했다는 아이, 아빠 구두를 닦아드렸다는 아이, 물건을 주워 주인에게 돌려 주었다는 아이, 친구들과 사이좋게 놀았다는 아이, 동생을 잘 돌보았다는 아이…. 이렇게 모두들 제각기 그럴듯한 이유를 대고 떠들썩하게 천국문을 지나 천국의 잔치에 초대되었다. 교장 선생님은 흐뭇한 표정으로 마지막 아이를 기다렸다. 평소에 말수도 적고 얌전하던 아이였다. 그런데 이 녀석은 그냥 쑥하고 천국문을 지나 들어가버리는 것이 아닌가. 불러세워 이유를 말하라고 채근하니 이 녀석 말이 걸작이었다. 『음, 너 여기 새로 온 모양이구나. 내가 바로 이 집 주인이야』 이제 성탄절은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우리 모두의 축제가 된지 오래다. 특히 어린이들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래서 해마다 이맘때면 여기저기서 어린이들을 위한 산타잔치다, 성탄 특별 프로그램이다해서 법석이다. 우리 아이도 며칠 전 산타잔치를 치렀다. 유치원 마지막 잔치라고 무슨 선물을 원하는지 돌려 물어서 마련해 보내고, 예의 그 아이의 장점 단점을 적은 쪽지도 보내고 했다. 그렇지만 무언가 씁쓸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 동안 이런 유의 산타잔치를 여러 번 지켜보아 알지만 너무 천편일률적이고 구태의연하기 때문이다. 아이들마다 장점을 추켜주고 단점을 지적한 다음 선물을 주고 노래하고 놀고 하는 틀에 박힌 의식이 그렇다. 또 어느 집에서건 이 즈음이면 아이를 꾸짖을 때 『그러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주신다』고 협박하기 일쑤다. 이렇게 우린 아이들의 행동을 물건으로 제약하고 조정하려고 하는 것이다.이런상투적인 잔치나 선물공세로 굳어진 우리들의 관행은 사실 성탄절 같은 성스러운 축제에 어울리지 않는다. 불경기다 뭐다 올해의 뒤 끝은 썰렁하기 그지 없고, 무엇 하나 시원한 것 없이 한 해를 보내는 아쉬움이 크다. 게다가 입시를 앞두고 전전긍긍하는 수험생과 가족들은 얼마나 가슴 졸이는 나날인가. 이럴 때일수록 천국은 아이들의 것이라는, 이 밤을 도와 태어나신 분의 가르침을 새겨보면 어떨까. 그리고 정말 이들이 주인될 수 있도록 해주면 어떨까. (서강대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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