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 묵어야 제맛인가…『숙성연령 골동품적 가치뿐』

  • 입력 1996년 12월 20일 19시 33분


「金華盛·曺炳來기자」 로열살루트 21년. 밸런타인 30년. 롭로이 30년. 킹스프라이드 30년. 조니워커 블루 30년. 인버하우스 35년. 루이13세 50년…. 한국의 연말연시는 수입 고급양주의 황금대목. 선물용 회식용에서 「폭탄주 제조용」까지 소비가 눈에 띄게 증가한다. 현재 서울 가자주류백화점에서 고급위스키의 가격은 밸런타인의 경우 7백50㎖ 한병에 17년산 8만5천원, 30년산 52만원. 브랜디 코냑은 7백㎖ 한병에 고티에 XO 22만원. 고티에 콩코드 골드 69만원. 양주는 과연 오래 묵을수록 좋은가. 숙성연령이 수십년 된 위스키나 브랜디는 가격이 비싼 만큼 맛도 비례 하는가. 『위스키 숙성연령에 대한 한국사람들의 집착은 한마디로 코미디입니다. 위스키의 나이는 맛의 좋고 나쁨보다 단지 골동품적인 가치에 불과합니다. 도대체 맛도 모른 채 약 먹어가며 그 비싼 양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들이 세계 어느 나라에 있습니까』 프랑스 파리9대학에서 「세계주류시장의 국제마케팅전략」이라는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중앙대 정헌배교수(경영학)의 말이다. 전문가들도 위스키와 브랜디는 8년쯤이면 숙성도가 최고조에 도달한다고 하나같이 말한다. 그 이상 넘게되면 맛의 차이는 너무 미세해서 전문가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오히려 위스키 원액을 담는 오크통의 숨쉬는 성질 때문에 증발이 많아져 맛이 나쁜쪽으로 바뀔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 강남에서 20여년간 위스키전문 판매상을 하고 있는 김모씨는 『8년이 넘는 위스키의 맛을 구분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바커스(술의 신)밖에 없다는 말이 있다』고 말했다. 더군다나 인간은 나이가 들수록 맛의 감별력이 급격히 떨어진다. 한국외식산업연구소 부소장인 손일락교수(청주대·호텔경영학)는 『독일과학자 게오르규 마이스너와 루돌프 바그너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인간은 기본적으로 40대 중반 이후가 되면 미세한 맛 감별은 원초적으로불가능하다』고말했다. 그러면 왜 유독 한국에서만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 학자들은 「오래 묵은 술〓비싼 술」이라는 이미지를 마심으로써 자기의 신분을 과시하려는 허영심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회사원 이철민씨(47)는 『사실 제 돈 주고 비싼 양주를 물마시듯 마시는 사람 있는가. 문제는 비정상적인 접대문화에 있다』고 꼬집기도 했다. 한국은 94년 현재 세계 제6위의 위스키 소비국. 시장규모는 출고가기준으로 올해 9천억∼1조원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이중 15년이상의 고급위스키 소비량만 따진다면 세계2,3위는 될거라는 게 업계의 추정이다. ▼ 와인의 경우 수입와인도 숙성연령에 비례해서 맛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점에서 위스키의 경우와 비슷하다. 와인전문가 김준철씨는 『흔히 오래된 와인일수록 좋다는 속설이 있으나 이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화이트와인은 구입한 후 곧바로 마시는 편이 좋으며 레드와인도 너무 오래 보관해서는 안된다고 한다. 고급레드와인은 포도수확 후 대체로 5∼10년사이에 맛이 가장 좋으며 대중적인 와인은 출시 후 곧바로 마시는 편이 좋다. 최고급와인중 극히 일부는 숙성기간이 15∼50년 걸리는 것도 있으나 어느 와인이라도 50년을 넘기면 변질됐을 가능성이 커 골동품적인 가치는 있어도 와인으로서의 가치는 없다고 와인전문가들은 말한다. 포도를 수확한 연도에 따라 알맞은 숙성기간이 달라지며 이 기간을 넘긴 오래된 와인은 오히려 가격이 떨어지는 경우도 있다는 것. 신동와인의 박현철과장은 와인을 선물하려는 경우에도 값비싼 프랑스 와인보다는 상대적으로 싸며 가격에 비해 질이 좋은 이탈리아나 스페인산을 선택하는 것을 고려해보도록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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