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최명희씨 17년만에 「혼불」 완간

  • 입력 1996년 12월 8일 19시 56분


「鄭恩玲기자」 대하소설 「혼불」을 집필해온 작가 최명희씨(49)가 17여년만에 소설을 완성했다. 최씨는 80년 4월 이 소설을 쓰기 시작한 이래 지난 세월동안 단편소설 한편 발표하지 않고 오로지 「혼불」에만 매달려왔다. 이 소설은 10권짜리 5부작으로 최근 한길사에서 출간됐다. 『마치 거대한 자석에 끌려들어가듯 다른 것에는 눈을 돌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을 풀어달라는 무수한 넋들이 내게 달려들어 끝없이 「혼불」을 쓰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혼불」의 무대는 1930년대말 전북 남원의 양반촌인 매안마을. 매안의 그늘에는 이씨문중의 땅을 부치며 살아가는 상민마을 거멍굴이 공존한다. 매안과 거멍굴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이씨 문중의 종부(宗婦) 청암부인. 열아홉에 청상이 된 그는 쓰러져가는 집안을 5천섬지기로 일으켜세우지만 손자 이강모대에 이르러 가문의 영화는 내리막으로 치닫는다. 천성이 유약한 강모는 가문의 대를 잇는 일을 버거워하다 징병을 피해 만주로 떠나는 것. 때마침 거멍굴의 상민들도 종으로 짓눌려 왔던 지난 세월의 한을 되갚으려 한다. 억울한 일을 당한 상민이 종가마루를 쇠스랑으로 내리찍는가 하면 상민 춘복은 「금지옥엽」인 강실을 범하는 것. 청암부인의 별세 이후 가문을 지키는 일은 이제 3대종부인 강모의 아내 효원의 몫으로 남겨진다. 줄거리만으로는 가족사소설 혹은 일제하의 사회격변을 그려낸 사회사소설로 보이지만 「혼불」은 그 이상의 「교과서」적 의의를 갖고 있다. 민속학자들은 「혼불」에 그려진 호남지방의 혼례 상례의식과 정월대보름 등의 절기맞이풍습을 귀한 사료로 친다. 판소리연구가들은 『남원방언이 고스란히 살아있는 이 책을 소리내어 읽는 것 자체가 판소리』라고 말한다. 최씨가 방대한 자료수집을 바탕으로 「혼불」에서 전통언어와 풍속을 복원한 이유는 『한국정신의 원형질을 그려내고 싶다』는 것 때문이었다. 작품의 제목인 「혼(魂)불」은 한 사람 혹은 한 민족의 핵, 삶의 불꽃이 되는 정신을 의미하는 것이다. 고된 장정을 끝맺는 최씨는 여전히 「완간(完刊)」이라는 말을 거부한다. 앞으로 어떤 이야기를 쓰겠느냐는 질문에 최씨는 『「혼불」을 쓰게 했던 목소리들이 아직도 할 얘기가 많이 남았다고 나를 들썩인다』며 미소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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