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신춘문예응모 도움말]『군살 없애고 결말 분명해야』

  • 입력 1996년 11월 25일 20시 16분


11월은 세상의 나뭇잎이 모두 떨어지는 달이며, 시베리아에서 남으로 남으로 철새들이 날아오는 달, 입학시험이 치러지는 달입니다. 그리고 신문마다 신춘문예공모가 공고되는 달이지요. 나뭇잎은 어쩌면 자신이 시작하고 싶은 그 자리에 떨어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11월의 잠속에 내재된 선명한 시작…. 올해도 나는 11월의 어느날 무심코 집어든 신문1면에서 내 허리께를 날카롭게 베고 지나가는 시퍼런 칼날을 봅니다. 그리고 유리창들이 덜컹대는 밀실에서 혹독하게 이 11월을 치러내고 있을 그대들을 봅니다. 나는 그대들에게 이 결정적인 시기에 도움이 될 어떤 말을 해달라는 부탁을 받고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보름정도를 남겨둔 마당에 실제로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실은 한달을 남겨두었거나 일년을 남겨두었다해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에게 어떤 전략도 기교도 체계적인 수학(修學)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감히 이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만약 그대들이 그때의 나처럼 손톱으로 벽을 후벼파는 듯한 고투를 하고 있다면, 혼자 너무나 먼 곳에 있는 것 같이 막막하고 아이낳을 곳을 못찾는 임부처럼 고통스러운 모색을 하고 있다면,그 모든 것이 또 다시 무산될까봐 두려워하고 있다면 그런 공감을 나눌 수는 있으리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지금 그대는 하나의 작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랫동안 망원렌즈 속의 새들을 응시하듯 바짝 몸을 붙이고 작품을 들여다 보아왔을 것입니다. 이제 망원렌즈에서 눈을 떼고 잠시 작품을 둘러싸고 있는 넓은 배경을 찬찬히 둘러보세요. 그리고 무언가를 말하려 하는 자기속을 다시 응시해보세요. 네 마리의 고니가 동시에 호수수면을 하얗게 차고 석양쪽으로 날아오르는 그런 순간이 올 때까지, 작품에 낀 비계살과 단 한마디 말로 설명할 수 있는 희고 긴 뼈가 만져질 때까지요. 마지막 단계인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그런 다이어트죠. 인상적인 작품이 되기 위해서는 간결한 스토리라인과 감정의 선명한 명암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결말을 보아주세요. 이미 내놓은 그 결말에서 단 한걸음이라도 더 나아갈 수는 없는지, 그래서 한뼘만 더 작품을 넓힐 수는 없는지…. 저는 첫문장 혹은 첫장의 매혹에 유념하라는 말따위는 하지 않겠습니다. 왜냐하면 어차피 첫문장이란 전체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전체와 별개인 매혹이란 불가능하니까요. 마지막 단계로 어떤 곳으로 자신의 작품을 보내야할지를 결정할 때 헛된 욕심이나 초조감에 사로잡혀 「중복투고」를 해서는 안된다는 점을 당부합니다. 중복투고는 글 쓰는 사람으로서의 양심을 저버리는 것이며 결국 어느 곳에서도 당선작으로 채택되지 않아 실리도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당선됐을 때 한 선생님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언제 되느냐가 중요한 건 아니란 말씀이셨어요. 좋은 작품은 어떻게 나와도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는 거죠. 좁은 문을 통과한다는 것이 결코 그대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 곳에 도달했다는 의미가 되지는 못합니다. 나의 경우는 맨손으로 벽을 뚫고 나오니 눈앞에 시퍼런 바다가 있더군요. 그 바다를 건너게 해준 건 다름아닌 나의 습작품들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면서도 당선보다는 습작기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되었다」라고 말하는 건 누구도 아니에요. 바로 자신이죠. 새들이 한겨울에도 발을 물에 담그듯 글쓰기가 그런 비밀스러운 운명이 된 뒤에야 비로소 진정한 시작인 것입니다. 전 경 린<95년 중편소설 당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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