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연극 「여우와 사랑을」을 보고

  • 입력 1996년 11월 14일 20시 19분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오태석이 신작 「여우와 사랑을」을 내놓았다. 이 작품에서 그 특유의 기상천외한 착상과 자유분방한 시공간의 활용, 풍부한 이미지의 유희는 달인의 경지를 보여준다. 이 작품의 주인공을 굳이 찾아내자면 6명의 연변여성들과 그 대표 서경수(정진각 역)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은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기보다는 「낯선 시선」을 통해 오늘날 한국 사회의 현실을 풍자할 뿐이다. 한국에서 돈 벌어 용정에 번듯한 불고기집을 차리는 것이 소원인 이들은 「윤동주 사상 실천 선양회」를 사칭하며 「돈이 모든 것에 우선하는」 서울식 논리대로 행동한다. 이 귀여운 사기꾼들은 「한국의 산에 여우가 없어졌다」는 뉴스를 듣고 만주산 여우를 수입하여 떼돈을 벌기로 작정하는데 여우 수입상이 토막 살해되는 사건은 이들을 악랄한 사기꾼들로 변모시킨다. 마지막 부분에 이들은 만주로부터 도착한 여우들을 조국의 산하에 풀어놓으며 옛날 이야기속에 여우가 출몰하던 시절처럼 사랑과 인심, 정을 회복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용정으로부터 백두대간을 타고 남하한 처녀 남순이와 남한 염소 목장주의 결혼을 통해 「통일 조국」을 꿈꾼다. 뚜렷한 개연성 없이 벌어지는 사건들, 터무니없이 돌출되는 인물들, 돌연하고 비논리적인 결말마저도 철저한 연극적 유희 안에 용해되고 있지만 아직 깔끔하게 정돈되지 못한 채 다소 혼란스러운 양상을 보인다. 작품이 적극적인 해체와 이완을 의도하고 있는 데 비해 어린 배우들의 경직된 연기와 관록있는 배우들의 오버 액팅이 불화를 빚고 있는 것도 흠이다. 그러나 공연을 통해 비로소 완성되는 오태석의 연극 특성을 감안하면 「여우와의 사랑」은 나날이 무르익을 것이다. 30일까지 서울 예술의 전당 자유소극장. 김 미 도(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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