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 시집「만인보」서 70년대 정치인 김대중씨등 묘사

  • 입력 1996년 11월 11일 20시 24분


「鄭恩玲기자」 시인 고은씨(63)가 金泳三대통령 金大中국민회의총재 朴正熙전대통령 陸英修여사 등 우리 현대사의 인물을 묘사한 시집을 펴냈다. 시집 제목은 「만인보」 10∼12권으로 내주에 창작과 비평사에서 출간된다. 「만인보(萬人譜)」는 고시인이 삶속에서 맞닥뜨렸던 여러 인물을 소재로 86년부터 써온 연작시. 이번 출간분에서는 주로 시인이 만났던 70년대의 인물들을 묘사했다. 시들은 일체의 호칭없이 이름 석자만을 제목으로 삼았다. 12권에 실린 「김영삼」에서는 「이상한 순풍이었다/행운의 연속/그가 탄 배는 뱃머리가 늘 힘찼다/몇번의 역려(逆旅)가 있었지만/그것은 다음날 더 좋은 순풍일 따름이었다」고 운을 뗀 뒤 「그에게는 편안함이 있었다/하지만 천부적인 전술이라면/그 수준은 누구의 수준인가를 알 수 없다」고 서술했다. 「고난이 필요한 시대 그는 고난의 화신이었다」로 시작되는 「김대중」은 「…친지와 의논할 때도/라디오 FM 틀어놓고/도청을 막아가면서/모든 준비를 마쳤다/하지만 오직 하나/그가 바라는 것 대통령이 되는 것만이/아직도 그의 것이 아니었다」고 적었다. 朴정권내내 유신반대인물로 핍박당했던 고시인이지만 朴전대통령일가에 대한 시선에는 연민이 담겨있다. 「육영수」에서는 육여사의 죽음에 대해 「그 정치적 산화이후/남편은 황량한 때를 말갈기로 달렸고/딸들과 아들은 하나하나 고아가 되기 시작했다/한국의 성난 성장에 바쳐진 슬픈 가족이었다」고 묘사했다. 고시인이 만났던 고문기술자나 기관원 교도관들과 옥살이친구인 소매치기 희대의 사형수들도 70년대 민주화인사들과 함께 시집에 등장해 시대의 우울한 그림자를 드러낸다. 시인에게 「너 여기를 단골집으로 알지/이제 10년짜리 감옥으로 보내줄 테니/단골 끝내/너 아무개하고 내통한 것 어서 말해」라고 닦달하던 「남산 중앙정보부 신과장」에 대해서는 「드문 미남이라 밖에서나 안에서나 지상에서나 달뜨고…」라며 인간됨됨이와 딴판이던 그의 잘생긴 얼굴을 떠올렸다. 문인들에 대한 묘사도 빠질 수 없어 청록파시인 「박목월」에 대해서는 「대통령 부인에게/한동안 매주 한번씩/시 이야기를 들려준 일로/시인들/시집 낼 돈을 얻어/여러 시인들 시집냈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국어학자 「이희승」은 「평생 욕도 못한 입/화내거나/떠벌리거나 해보지 못한 입에/밥 한숟갈 넣어/50번은 씹어 넘긴다/딸깍발이 선비라 하지」라고 회고했다. 창작과 비평사측은 『「만인보」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시인의 주관적 판단에 대해 「명예훼손」 등을 주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 몇차례의 수정을 거쳤다』며 『그래도 실명을 그대로 밝히지 못한 사람이 있다』고 털어놓았다. 고시인은 머리말에서 『이 전작시를 문학으로 읽으나 시대로 읽으나 개의치 않겠다』며 『다만 70년대의 사람을 70년대로 한정해서 그릴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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