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선택
  • 나라님에게[이준식의 한시 한 수]〈62〉

    나라님에게[이준식의 한시 한 수]〈62〉

    2월에 새 명주실을 팔고 5월에 햇곡식을 팔아버리니 눈앞의 종기는 치료될지언정 마음속 살점을 도려낸 꼴./바라노니 군주의 마음, 광명의 촛불이 되어/비단옷 화려한 연회장일랑 비추지 말고 도망 다니는 백성들 빈집이나 비춰주시길. (二月賣新絲, 五月조新穀. 醫得眼前瘡, 완각心頭肉. 我願…

    • 2020-06-12
    • 좋아요
    • 코멘트
  • 비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61〉

    비가[이준식의 한시 한 수]〈61〉

    지난날 사후 생각을 농담 삼아 말했는데 오늘 아침 모든 게 눈앞의 현실로 다가왔소.옷은 이미 남을 주어 거의 남지 않았지만 반짇고리는 그대로 둔 채 차마 열지 못하였소.옛정 생각에 시중들던 사람들은 각별히 챙겨주고 꿈속에선 그댈 만나 재물도 보냈다오.누군들 이 한이 없으리오만 가난한 …

    • 2020-06-05
    • 좋아요
    • 코멘트
  • 도연명의 갈등[이준식의 한시 한 수]<60>

    도연명의 갈등[이준식의 한시 한 수]<60>

    두 나그네 늘 함께 지내지만 취사선택하는 건 영 딴판이다. 한 사내는 언제나 저 홀로 취해 있고 한 사내는 평생토록 말짱 깨어 있다. 말짱하니 취했느니 서로 비웃으면서 얘길 해도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다./구차하게 얽매여 사니 우둔한지고! 꿋꿋이 제 뜻대로 하는 게 외려 더 현명…

    • 2020-05-29
    • 좋아요
    • 코멘트
  • 아내의 속앓이[이준식의 한시 한 수]<59>

    아내의 속앓이[이준식의 한시 한 수]<59>

    낭군께선 분명 남다른 재능 있으신데 어찌하여 해마다 그냥 돌아오시나요? 이젠 저도 그대 얼굴 뵙기 민망하니 오시려거든 날 어둑해지면 그때 돌아오셔요. (良人的的有奇才, 何事年年被放回. 如今妾面羞君面, 君若來時近夜來.) ―‘남편의 낙방(부하제·夫下第)’ 조씨(趙氏·당대 중엽)아내가…

    • 2020-05-22
    • 좋아요
    • 코멘트
  • 봄누에처럼 촛불처럼[이준식의 한시 한 수]〈58〉

    봄누에처럼 촛불처럼[이준식의 한시 한 수]〈58〉

    만날 때 어렵더니 헤어져서도 괴롭구나./봄바람 잦아들자 온갖 꽃이 다 시든다. 봄누에는 죽어서야 실뽑기를 멈추고/촛불은 재가 돼서야 눈물이 마르지. 아침엔 거울 앞에서 변해버린 귀밑머리 탄식,/밤엔 시 읊으며 달빛 싸늘타 여기시리. 봉래산 여기서 멀지 않으니/파랑새야 날 위해 정…

    • 2020-05-15
    • 좋아요
    • 코멘트
  • 사모곡[이준식의 한시 한 수]〈57〉

    사모곡[이준식의 한시 한 수]〈57〉

    서리에 스러진 갈대꽃을 보노라니 눈물이 옷깃을 적신다/사립문에 기대 선 백발 어머니를 더 이상 뵈올 수 없게 되다니/작년 오월 장맛비가 한창이던 때였지/가사(袈裟)를 전당 잡히고 쌀팔아 집에 돌아왔었는데. (霜殞蘆花淚濕衣, 白頭無復倚柴扉. 去年五月黃梅雨, 曾典袈裟糴米歸.) ―‘어머니…

    • 2020-05-08
    • 좋아요
    • 코멘트
  • 참새의 소망[이준식의 한시 한 수]〈56〉

    참새의 소망[이준식의 한시 한 수]〈56〉

    높은 나무엔 소슬한 바람 잦고 바닷물에는 파도가 드높기 마련./예리한 칼 손에 없으면서 굳이 많은 친구를 사귀어야 할까./울타리 속 참새가 매를 보고는 그물에 뛰어드는 걸 보지 못했나./그물 친 자는 참새 잡아 좋아라 해도 소년은 참새 보며 서글퍼하네./칼을 뽑아 그물을 베자 참새는 …

    • 2020-05-01
    • 좋아요
    • 코멘트
  • 봄날은 간다[이준식의 한시 한 수]〈55〉

    봄날은 간다[이준식의 한시 한 수]〈55〉

    어젯밤 듬성듬성 빗발 뿌리고 바람은 드세게 휘몰아쳤지./깊은 잠 이루고도 술기운은 사그라지지 않네./발 걷는 아이에게 넌짓 물었더니/해당화는 여전하다는 뜻밖의 대답./모르는 소리, 네가 알기는 해?/초록은 더 짙어졌을지라도 붉은 꽃은 져버린 게 분명하리니. (昨夜雨疏風驟, 濃睡不消殘酒…

    • 2020-04-24
    • 좋아요
    • 코멘트
  • 꽃 그리는 마음[이준식의 한시 한 수]〈54〉

    꽃 그리는 마음[이준식의 한시 한 수]〈54〉

    복사꽃 다 떨어져 흔적도 찾기 어려우니/사람들은 뒤늦게 온 걸 못내 아쉬워한다./그래도 난 늦게 온 게 더더욱 좋은 것이/꽃 그리던 마음이 꽃구경보다 더 절절했기 때문이지. (桃花吹落杳難尋, 人爲來遲惜不禁. 我道此來遲更好, 想花心比見花深.) ―‘호반의 상념(호상잡감·湖上雜感)’원매(袁…

    • 2020-04-17
    • 좋아요
    • 코멘트
  • 허황된 꿈[이준식의 한시 한 수]〈53〉

    허황된 꿈[이준식의 한시 한 수]〈53〉

    식사할 때 고기는 없을지언정 사는 곳에 대나무가 없을 순 없지./고기 없으면 사람이 야위긴 해도 대나무가 없으면 사람이 저속해지지./사람이 야위면 살찌울 수 있지만 선비가 저속해지면 고칠 수가 없지./옆 사람이 이 말을 비웃으며 하는 말, “고상한 건지 어리석은 건지?”/ 대나무도 마…

    • 2020-04-10
    • 좋아요
    • 코멘트
  • 모란의 지조[이준식의 한시 한 수]〈52〉

    모란의 지조[이준식의 한시 한 수]〈52〉

    내일 아침 정원으로 나들이 갈 참이니 서둘러 봄에게 알리도록 하라. 꽃들은 밤새워서라도 다 피어 있으라. 새벽바람 불기를 기다리지 말고. (明朝遊上苑, 火急報春知. 花須連夜發, 莫待曉風吹.) ―‘연말에 상원 행차를 명하다(납일선조행상원·臘日宣詔幸上苑)’·무측천(武則天·624∼705)화…

    • 2020-04-03
    • 좋아요
    • 코멘트
  • 거리 두기[이준식의 한시 한 수]〈51〉

    거리 두기[이준식의 한시 한 수]〈51〉

    문 밖을 안 나간 지 또 수십 일, 무엇으로 소일하며 누구와 벗하나. 새장 열어 학을 보니 군자를 만난 듯, 책 펼쳐 읽으니 옛 사람을 뵙는 듯. 제 마음 차분히 하면 수명이 늘고 물욕을 내지 않으면 정신도 고양되는 법. 이렇게 하는 게 진정한 수양, 번뇌를 없애려 애써 심신을 …

    • 2020-03-27
    • 좋아요
    • 코멘트
  • 황제의 노여움을 산 시[이준식의 한시 한 수]〈50〉

    황제의 노여움을 산 시[이준식의 한시 한 수]〈50〉

    《북쪽 궁궐로 상서는 이제 그만 올리고 남산의 낡은 오두막으로 돌아가련다./재주 없어 명군께서 날 버리셨고 병 잦으니 친구조차 소원해졌다./백발은 노년을 재촉하고 봄빛은 세모를 몰아낸다./오랜 근심으로 잠 못 이루는데 솔 아래 달빛만이 창가에 허허롭다.》 (北闕休上書, 南山歸弊廬. 不…

    • 2020-03-20
    • 좋아요
    • 코멘트
  • 두보의 情[이준식의 한시 한 수]〈49〉

    두보의 情[이준식의 한시 한 수]〈49〉

    《서쪽 이웃이 집 앞 대추 따 가도록 내버려둔 건, 양식도 자식도 없는 아낙이라서였네. 궁핍하지 않았다면 굳이 그랬을까. 맘 졸일 걸 생각한다면 더 살갑게 대해줘야지. 타지에서 온 그대를 경계하진 않겠지만 울타리까지 쳐둔 건 좀 심하지 않나. 세금 바치느라 빈털터리 되었다고 하소연했으…

    • 2020-03-13
    • 좋아요
    • 코멘트
  • 기다림[이준식의 한시 한 수]〈48〉

    기다림[이준식의 한시 한 수]〈48〉

    《옥병에 검푸른 실 동여매고 술 사러 가더니 어찌 이리 더딘지. 산꽃이 나를 향해 웃음 짓는, 지금은 술 마시기 딱 좋은 시절./저녁 무렵 술 따르는 동창 아래, 꾀꼬리 지저귀며 함께하누나./봄바람마저 취객과 어우러지니 오늘에야 제대로 쿵짝이 맞는구나.》 (玉壺繫靑絲, 沽酒來何遲. 山…

    • 2020-03-06
    • 좋아요
    • 코멘트
  • 이끼꽃[이준식의 한 시 한수]〈47〉

    이끼꽃[이준식의 한 시 한수]〈47〉

    《햇볕이 들지 않은 곳일지라도 푸르름은 때맞춰 저절로 오기 마련. 이끼꽃, 쌀알만큼 자그마해도 모란처럼 활짝 꽃 피우는 걸 배우네. (白日不到處, 靑春恰自來. 苔花如米小, 也學牡丹開.)》―‘이끼(태·苔)’·원매(袁枚·1716∼1797)이끼가 꽃을 피운다? 그저 축축하고 비릿하고 물컹물…

    • 2020-02-28
    • 좋아요
    • 코멘트
  • 거악에 맞선 칼[이준식의 한시 한 수]〈46〉

    거악에 맞선 칼[이준식의 한시 한 수]〈46〉

    부러진 칼끝을 주웠는데 부러진 연유는 알지 못하겠다./시퍼런 뱀 꼬리 같고 뾰족한 푸른 산봉우리 같기도 하다./고래를 베다 부러졌나, 교룡을 찌르다 부러졌나./부러진 채 진흙 속에 버려져 줍는 이 하나 없다./나 역시 성질이 유별나서 강직한 건 좋아해도 유순한 건 질색./강해서 부러진…

    • 2020-02-21
    • 좋아요
    • 코멘트
  • 소동파의 취중 단상(斷想)[이준석의 한시 한수]〈45〉

    소동파의 취중 단상(斷想)[이준석의 한시 한수]〈45〉

    동파에서 밤늦도록 술 마시며 깨고 또 취했다가./돌아오니 시간은 삼경쯤 된 듯 아이놈 코고는 소리가 우레처럼 요란하다. 아무리 문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지팡이에 기대어 강물 소리 듣는다.(1절)/이 몸조차 내 소유가 아님을 한탄하노니./언제면 아등바등한 이 삶을 잊고 살거나. 밤 깊…

    • 2020-02-14
    • 좋아요
    • 코멘트
  • 도연명의 인생[이준석의 한시 한 수]〈44〉

    도연명의 인생[이준석의 한시 한 수]〈44〉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이 흩날리는 길 위의 먼지 같은 것./흩어져 바람 따라 나뒹굴다 보면 더 이상 본래의 모습은 아니라네./태어나는 순간 모두가 형제인 것을, 굳이 피붙이하고만 친해야 할까./즐거울 땐 한껏 즐기고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보세./왕성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하…

    • 2020-02-07
    • 좋아요
    • 코멘트
  • 눈과 매화[이준식의 한시 한 수]〈43〉

    눈과 매화[이준식의 한시 한 수]〈43〉

    매화와 눈, 봄빛을 겨루며 서로 지지 않으려 하매/ 시인이 붓을 놓고 우열을 따져본다. 흰 빛깔은 매화가 눈에 조금 뒤지고/ 향기라면 아무래도 눈이 매화를 못 이기지.(梅雪爭春未肯降, 騷人閣筆費平章. 梅須遜雪三分白, 雪却輸梅一段香.) ―‘눈과 매화(설매·雪梅)’(제1수)·노매파(盧梅…

    • 2020-01-31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