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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연명의 인생[이준석의 한시 한 수]〈44〉

    도연명의 인생[이준석의 한시 한 수]〈44〉

    인생은 뿌리도 꼭지도 없이 흩날리는 길 위의 먼지 같은 것./흩어져 바람 따라 나뒹굴다 보면 더 이상 본래의 모습은 아니라네./태어나는 순간 모두가 형제인 것을, 굳이 피붙이하고만 친해야 할까./즐거울 땐 한껏 즐기고 한 말 술로 이웃과 어울려 보세./왕성한 시절은 다시 오지 않고 하…

    • 2020-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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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과 매화[이준식의 한시 한 수]〈43〉

    눈과 매화[이준식의 한시 한 수]〈43〉

    매화와 눈, 봄빛을 겨루며 서로 지지 않으려 하매/ 시인이 붓을 놓고 우열을 따져본다. 흰 빛깔은 매화가 눈에 조금 뒤지고/ 향기라면 아무래도 눈이 매화를 못 이기지.(梅雪爭春未肯降, 騷人閣筆費平章. 梅須遜雪三分白, 雪却輸梅一段香.) ―‘눈과 매화(설매·雪梅)’(제1수)·노매파(盧梅…

    • 2020-0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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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혹[이준식의 한시 한 수]〈42〉

    유혹[이준식의 한시 한 수]〈42〉

    “저희 집은 횡당에 있는데요. 붉은 비단 휘장에 계수 향 가득하답니다.”/ 구름처럼 풍성하게 쪽 찐 머리, 밝은 달처럼 둥그런 귀고리./연꽃이 바람에 일렁일 때 강변에 넘실대는 봄기운./둑 위에 서서 북방 사내를 붙잡는다./“낭군은 잉어꼬리 드셔요. 전 오랑우탄 입술을 먹을래요.…

    • 2020-0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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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투계[이준식의 한시 한 수]〈41〉

    투계[이준식의 한시 한 수]〈41〉

    아들 낳아 글공부 시킬 필요 없으니 / 투계와 경마가 공부보다 낫다네. 가(賈) 씨네 어린 아들, 나이는 열셋, / 전에 없던 부귀영화 한껏 누리네. 솜씨 좋게 투계 부려 반드시 승리했고 / 수놓은 비단옷 입고 황제 수레 뒤따랐네. 그 아비가 장안 천리 밖에서 목숨을 잃자 / 호위들이…

    • 2020-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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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제는 어제일 뿐[이준식의 한시 한 수]〈40〉

    어제는 어제일 뿐[이준식의 한시 한 수]〈40〉

    어제 또 어제, 어제가 정말 좋았지./어제 이룬 공적, 오늘은 왜 못 이룰까? 오늘 만약 어제 일을 공상만 한다면 오늘은 허망하게 어제로 변할 것./ 오늘 일 없이 즐기느니 차라리 어제처럼 소소한 일이나 하지./소소한 일 많이 하는 게 하루 반짝 성공하는 것보다 나으리./어제를 오늘로…

    • 2020-0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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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연하장[이준식의 한시 한 수]〈39〉

    연하장[이준식의 한시 한 수]〈39〉

    만날 생각은 않고 연하장만 달랑 보내오니/아침부터 우리 집엔 화려한 연하장이 수북하다. 나 역시 남들처럼 여러 군데 보내긴 하지만/세상인심, 소략해진 예법은 나무라면서 허울뿐인 예법은 마다하지 않네.(不求見面惟通謁, 名紙朝來滿폐廬. 我亦隨人投數紙, 世情嫌簡不嫌虛.) ―‘새해 인사…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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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거이의 제야(除夜)[이준식의 한시 한 수]〈38〉

    백거이의 제야(除夜)[이준식의 한시 한 수]〈38〉

    연말이라 온갖 상념 몰려드는데 아득히 먼 고향은 돌아갈 수 없네. / 늘그막에 나이는 또 한 살 늘고, 병 때문에 가뭇없이 사라진 옛 모습. / 언제나 그리운 건 고향 땅, 더 이상 헛된 공명은 좇지 않을 터. / 내일이면 벌써 마흔아홉, 지난날의 잘못이나 반성해 보리.(歲暮紛多思, …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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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자보[이준식의 한시 한 수]〈37〉

    대자보[이준식의 한시 한 수]〈37〉

    아침 해 둥글게 떠올라/선비의 밥상을 비춘다./밥상에 무엇이 올랐나./목숙 나물만 가득하구나. 밥은 까칠하여 숟가락에 걸리지 않고/국은 희멀거니 젓가락이 놓치기 십상. 잠깐이야 이렇게 살 수 있지만/어떻게 추운 연말을 버텨 내리오. ―‘혼자 슬퍼하다’(자도·自悼)·설령지(薛令之·6…

    • 2019-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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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인의 절개[이준식의 한시 한 수]〈36〉

    여인의 절개[이준식의 한시 한 수]〈36〉

    제게 남편이 있다는 걸 아시면서도 / 그댄 고운 구슬 한 쌍을 선물하셨지요. 애틋한 그대의 사랑에 감동하여 / 그걸 붉은 비단 저고리에 달았지요. 높다란 저의 집엔 정원이 딸려 있고 / 남편은 대궐에서 황제를 모신답니다. / 그대 마음 일월처럼 순수한 줄 알지만 남편과 생사를 함께하자…

    • 2019-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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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청천의 유훈[이준식의 한시 한 수]〈35〉

    포청천의 유훈[이준식의 한시 한 수]〈35〉

    드라마 속 판관 포청천(包靑天)으로 더 유명한 포증은 송대 청백리(淸白吏)의 표상으로 각인되어 있다. 시는 자기 다짐이자 일장 훈시 같은 메시지를 담았으니 시적 운치에 앞서 근엄한 경고문처럼 읽힌다. 삶의 도리나 지혜를 유독 강조했던 송시 특유의 설교식 논조가 맨살 그대로 드러나 있다…

    • 2019-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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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연명의 자식 유감[이준식의 한시 한 수]〈34〉

    도연명의 자식 유감[이준식의 한시 한 수]〈34〉

    백발은 양쪽 귀밑머리를 덮었고 피부도 이젠 까칠해졌다. / 아들 다섯을 두었지만 하나같이 종이와 붓을 싫어한다. / 서(舒)는 벌써 열여섯, 게으르기 짝이 없고 선(宣)은 곧 열다섯, 도무지 글공부를 싫어하며 / 옹(雍)과 단(端)은 열셋이지만 여섯과 일곱조차 분간 못하고 통(通)은 …

    •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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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저녁의 운치[이준식의 한시 한 수]〈33〉

    가을 저녁의 운치[이준식의 한시 한 수]〈33〉

    빈산에 비 막 그치고, 저녁 되자 날씨는 가을 기운/밝은 달은 솔 사이로 비치고/맑은 물은 바위 위를 흐른다./대숲 시끌시끌 빨래하던 여인들 돌아가고/연잎 흔들흔들 고기잡이배들이 내려간다./제멋대로 봄꽃은 지고 없지만, 왕손처럼 느긋하게 이곳에 머무르리. (空山新雨後, 天氣晩來秋. 明…

    • 2019-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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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흔여섯의 과거 급제[이준식의 한시 한 수]〈32〉

    마흔여섯의 과거 급제[이준식의 한시 한 수]〈32〉

    지난날 아등바등 살았던 걸 자랑할 건 없고 이제야 자유분방한 심사, 거칠 게 하나 없네. 의기양양 봄바람 속을 말 타고 내달리며 하루 새에 장안의 꽃을 다 돌아본다네. (昔日齷齪不足誇, 今朝放蕩思無涯. 春風得意馬蹄疾, 一日看盡長安花.) ―‘급제 후(登科後·등과후)’(맹교·孟郊·751∼…

    • 2019-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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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동파의 아들 교육[이준식의 한시 한 수]〈31〉

    소동파의 아들 교육[이준식의 한시 한 수]〈31〉

    남들은 자식이 총명하길 바라지만 나 자신은 총명한 탓에 일생을 그르쳤나니.아이가 어리석고 아둔하다 해도 그저 탈 없고 걱정 없이 공경대부에 올랐으면. (人皆養子望聰明, 我被聰明誤一生. 惟願孩兒愚且魯, 無災無難到公卿.) ―‘아들 잔칫날에 장난삼아 짓다(洗兒戱作·세아희작)’(소식·蘇軾·1…

    • 2019-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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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을 부채[이준식의 한시 한 수]〈30〉

    가을 부채[이준식의 한시 한 수]〈30〉

    갓 잘라낸 제(齊) 지방의 흰 비단, 눈서리처럼 희고 고왔지요. 마름질로 합환 문양 부채를 만드니 둥그러니 명월과 같았지요. 그대 품속이나 소매를 들락이면서 살랑살랑 미풍을 일으켰지요. 가을 닥쳐와 찬바람이 무더위를 앗아갈까 마냥 불안했는데 상자 속으로 부채가 버려지면서 임의 사랑도 …

    • 2019-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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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부의 눈썹 색깔[이준식의 한시 한 수]〈29〉

    신부의 눈썹 색깔[이준식의 한시 한 수]〈29〉

    신방엔 어젯밤 촛불 붉게 타올랐고 새벽이면 안방으로 시부모께 인사갈 참. 화장 마치고 나직이 신랑에게 묻는 말, “제가 그린 눈썹 색깔이 유행에 맞을까요”. (洞房昨夜停紅燭, 待曉堂前拜舅姑, 粧罷低聲問夫壻, 畵眉深淺入時無.)―‘신부의 심정으로 장수부에게 드린다(閨意獻張水部·규의헌장수부…

    • 2019-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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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조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28〉

    조조의 노래[이준식의 한시 한 수]〈28〉

    신령한 거북이 장수한대도/언젠가는 죽을 날 있고 전설의 뱀이 안개 타고 올라도/결국엔 흙먼지 되리. 늙은 천리마가 마구간에 엎드려 있어도/마음만은 천리를 내달리듯 열사는 말년이 되어도/그 웅지가 사라지지 않는 법. 목숨이 길고 짧은 건/하늘에만 달린 게 아닐지니 심신의 평온을 기른다면…

    • 2019-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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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낙조의 황홀경[이준식의 한시 한 수]〈27〉

    낙조의 황홀경[이준식의 한시 한 수]〈27〉

    저녁 무렵 마음 울적하여 수레 몰아 옛 언덕에 오른다. 석양은 저리도 아름답건만 아쉽게도 황혼이 다가오누나.(向晩意不適, 驅車登古原. 夕陽無限好, 只是近黃昏.)―‘낙유원에 올라(登樂遊原·등낙유원)’(이상은·李商隱·812∼858) 만당(晩唐) 이상은의 시는 난해하고 생경한 어휘, 모호…

    • 2019-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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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낙천의 세월[이준식의 한시 한 수]〈26〉

    백낙천의 세월[이준식의 한시 한 수]〈26〉

    식사 마치고 낮잠 한숨, 깨어나선 차 두 사발. 고개 들어 해를 보니 어느새 서남쪽으로 기울었다.즐겁게 사는 이는 짧은 해가 아쉽고, 근심 많은 이는 더딘 세월이 싫겠지만 근심도 즐거움도 없는 나, 길든 짧든 삶에 맡겨버리지. (食罷一覺睡, 起來兩구茶. 擧頭看日影, 已復西南斜. 樂人惜…

    • 2019-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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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연명의 소요[이준식의 한시 한 수]〈25〉

    도연명의 소요[이준식의 한시 한 수]〈25〉

    사람 사는 마을에 수레나 말 따위의 소음이 없을 리 없다. 한데 세상 명리를 잊으니 시정(市井)의 거처조차 저절로 외진 세계가 된다. 몸이 멀어지면 마음조차 멀어진다지만 시인은 육신의 행방과 무관하게 마냥 한갓지기만 하다. 심리적 공간과 물리적 공간의 경계를 거리낌 없이 통섭하는 도가…

    • 2019-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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