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선택
  • [한자 이야기]<1255>陳賈曰 王無患焉하소서…

    齊나라 宣王(선왕)은 燕나라의 국정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연나라를 공격해서 이겼다. 그리고 그 승리를 하늘이 준 기회라고 여겨 연나라를 아예 병합하려고 생각했다. 이때 맹자는 ‘연나라를 완전히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한다면 연나라를 취하고 연나라를 취하여

    • 2011-10-10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54>燕人이 畔이어늘…

    ‘公孫丑(공손추)·하’의 제9장은 제8장의 일과 연결된다. 제8장에서 맹자는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齊나라가 燕(연)나라를 정벌하는 데 빌미를 제공했으나 뒤에 자신은 제나라에 정벌의 정당성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以

    • 2011-10-07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53>今에 以燕伐燕이어니…

    맹자는 변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송나라 유학자들은 맹자를 水精(水晶·수정)과 같다고 했다. 수정은 광채가 나지만 溫潤含蓄(온윤함축·따스하면서 내면의 깊이를 지님)의 맛이 없다. ‘公孫丑(공손추)·하’의 제8장에서, 맹자는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으면

    • 2011-10-06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52>今에 有殺人者어든…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던 맹자에게 제나라의 신하 沈同(심동)이 燕(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개인적으로 물었다. 연나라는 그 왕 子쾌(자쾌)가 천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 왕위를 사실상 남에게 물려주어 나라의 紀綱(기강)이 무너진 상태였다. 맹자는 연나라가 정벌당

    • 2011-10-05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51>沈同이 問燕可伐與아 하거늘…

    맹자가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齊나라가 燕나라를 정벌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맹자가 제나라의 정벌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이것은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물었을 때 可하다고 답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맹

    • 2011-10-04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50>齊人이 伐燕이어늘…

    제나라 신하 沈同이 찾아와 燕나라를 정벌해도 좋은가 사적으로 묻자, 맹자는 燕나라는 정벌당할 만하다고 대답했다. 당시 연나라 왕 子쾌(자쾌)는 재상 子之를 신임해서 왕위를 그에게 넘겼으므로 나라의 紀綱(기강)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塗炭(도탄)에 빠졌다. 맹자는 연나

    • 2011-09-30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9>有仕於此어든…

    맹자가 제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물었다. 연나라 왕 子쾌(자쾌)는 재상 子之를 신임해서 나라를 그에게 맡기고 자신은 신하 노릇을 하고 있었다. 맹자는 연나라 왕이 천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 사실상

    • 2011-09-29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8>沈同이 以其私問曰…

    ‘公孫丑(공손추)·하’ 제8장은 맹자가 齊(제)나라와 燕(연)나라의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해서 후대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당시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정치에 관한 諮問(자문)에 응하고 있었다. 이때 제나라 신하

    • 2011-09-28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7>吾聞之也호니…

    맹자는 모친의 상에 훌륭한 棺材(관재)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다른 학파의 학자들이 맹자를 비난했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도 맹자가 사용한 棺材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맹자는 망자의 살갗이 흙에 닿는다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사람들은

    • 2011-09-27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6>且比化者하야 無使土親膚면…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왔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는 맹자가 사용한 棺材(관재)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으나, 맹자는 망자를 위해 좋은 棺槨(관곽)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의 마

    • 2011-09-26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5>不得이면 不可以爲悅이며…

    ‘史記(사기)’ ‘淮陰候列傳(회음후열전)’에 따르면 소년 韓信(한신)은 하도 가난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한신은 가까운 구릉에 어머니의 시신을 묻고, 훗날 반드시 성공해서 그곳에 1만 가구의 인가가 들어차게 만들리라 맹세했다고 한다.

    • 2011-09-23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4>曰 古者에 棺槨이…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오다가 제나라 남쪽의 영(영) 땅에 이르러, 제자 充虞(충우)와 장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충우는 맹자를 위해 관 만드는 일을 감독했었는데, 맹자가 사용한 棺

    • 2011-09-22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3>孟子가 自齊葬於魯하고…

    ‘公孫丑(공손추)·하’ 제7장은 맹자가 제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노나라로 돌아가 장례를 치른 뒤 다시 제나라로 돌아오면서 제자 充虞(충우)와 주고받은 대화를 기록해 두었다. 맹자는 鄒(추)에서 태어났으나 조상이 노나라의 公族(공족)인 孟孫

    • 2011-09-21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2>公孫丑曰 齊卿之位가…

    맹자는 제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등(등)나라에 弔問使(조문사)의 正使(정사)로 갔다. 이때 제나라 왕은 寵臣(총신)인 王驩(왕환)을 副使(부사)로 삼아 동행하게 했다. 그런데 왕환이 아침저녁으로 알현했지만 맹자는 한 번도 그와 사행의 일을 말하지 않았다. 맹자

    • 2011-09-20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1>孟子爲卿於齊하사…

    ‘公孫丑(공손추)·하’ 제6장은 맹자가 小人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려주는 일화이다. 맹자는 제나라에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등(등)나라에 弔問使(조문사)의 正使(정사)로 갔다. 이때 제나라 왕은 蓋(합) 땅의 대부로 있는 王驩(왕환)을 副使(부사)로 삼아 동행하게 했

    • 2011-09-19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40>公都子가 以告한대…

    성어 餘裕綽綽(여유작작)은 말이나 행동이 넉넉하고 침착함을 뜻하는데, 그 말이 바로 여기에서 나왔다. 맹자는 齊나라 대부 지<(지와)가 靈丘(영구)의 邑宰(읍재)를 그만두고 士師(사사)가 된 지 서너 달이 지났지만 좀처럼 왕에게 直諫(직간)하지 않자 ‘아직도 간언할

    • 2011-09-16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39>지와가 諫於王而不用…

    맹자는 齊나라 대부 지<(지와)가 靈丘(영구) 고을의 邑宰(읍재)를 그만두고 行刑(행형)을 맡아 보는 士師(사사) 벼슬을 청한 점에 대해서는 왕을 모시며 行刑과 관련해 諫言(간언)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도리에 맞는 일이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지와가 사사가 된 지

    • 2011-09-15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38>孟子謂지와曰 子之辭靈丘而請士師가…

    ‘公孫丑(공손추)·하’ 제5장은 공직자나 정치가의 進退(진퇴)와 관련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관직에 있는 사람으로서 직책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면 관직을 내놓고 떠나라는 유명한 지침이 여기에 나온다. 齊나라 대부 지<(지와)는 靈丘(영구) 고을의 수령직인

    • 2011-09-14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37>他日에 見於王曰…

    제나라 平陸(평륙)의 大夫 孔距心(공거심)은 흉년에 고을 백성들이 餓死(아사)하고 離散(이산)하는 것이, 처음에는 왕의 失政(실정) 때문이지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맹자가 남의 소와 양을 맡아 길러주는 사람의 예를 비유로 들어 대부가 왕의 백성을 맡아

    • 2011-09-09
    • 좋아요
    • 코멘트
  • [한자 이야기]<1236>曰 今有受人之牛羊而爲之牧之者면…

    맹자는 平陸(평륙)의 大夫 孔距心(공거심)과 대화하면서, 흉년에 고을 백성들이 餓死(아사)하고 離散(이산)하는 자가 많은 것은 대부가 직분을 수행하지 않는 탓이 아니냐고 물었다. 이때 공거심은 그것이 왕의 失政(실정) 때문이라고 변명했다. 그러자 맹자는 다시 남의 소

    • 2011-09-08
    • 좋아요
    • 코멘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