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246>且比化者하야 無使土親膚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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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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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왔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는 맹자가 사용한 棺材(관재)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으나, 맹자는 망자를 위해 좋은 棺槨(관곽)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 말려야 말 수 없기에 그런 것이었다고 일축했다. 특히 망자의 살갗이 흙에 닿는다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사람들은 일정한 두께의 관곽을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化者는 죽은 사람을 말한다. 그 앞의 比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주자(주희)는 ‘죽은 이를 爲(위)한다’로 풀이했다. 혹자는 比를 及(급)의 뜻으로 보아 이 구절을 ‘시체가 化삭(화삭·썩고 삭음)하는 시기에 미쳐’로 풀이한다. 使土親膚는 ‘흙으로 하여금 살갗에 닿게 한다’로, 親은 동사다. 교(교)는 유쾌하다는 뜻이다. 獨無교乎는 ‘유독 후련함이 없으랴?’로, 즉 반드시 후련하다는 뜻이다.

安葬(안장)과 관련하여 조선 중기 이후로는 품질 좋은 소나무인 黃腸木(황장목)을 관의 재료로 선호하고, 朱子의 灰隔(회격·회다짐) 방식을 모방해서 壙中(광중)을 석회로 다져 쌓은 뒤에 外槨(외곽)을 쓰지 않고 3寸의 속 널만 安置(안치)했다. 그러면서 풍수가의 설을 따라 壙中에 油灰(유회), 石灰(석회), 松脂(송지·송진) 같은 것들을 채우기도 했다. 李植(이식)은 安葬의 방식을 비교하면서 중요한 것은 맹자가 말했듯이 ‘흙이 시신의 살갗에 닿지 않게 하는 일’이라고 했다.

오늘날에는 葬送(장송)에서 토장의 방식만 취하지는 않는다. 여러 다른 방식으로 망자를 편안히 모시고 있다. 그런데 그 방법을 선택하는 기준은 나의 마음이다.

박지원은 芮歸周(예귀주)를 위한 墓道文字(묘도문자)인 ‘贈(증) 사헌부 지평 예군 묘갈명’에서, 올바른 도리가 행하던 시대에는 사람들이 모두 부모를 깊이 사랑하여 부드러운 기를 지녀 용모마저 온순했으며, 부모에 관한 일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부지런히 일하고 부모의 喪事에는 슬픔을 극진히 표현했으리라고 상상했다. 이러한 시대에는 모두가 효자이기 때문에 효자라는 칭호조차 없었을 것이다. 이런 시대가 존재한 적은 없다.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養生送死(양생송사)에서 마음이 후련해지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심경호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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