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357>陳良은 楚産也니 悅周公仲尼之道하여 北學於中國이어늘 北方之學者가…
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등지고 許行을 따라 배우는 것을 책망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진상의 스승 진량이 남방의 초나라 태생이면서 북쪽 중원으로 가서 주공과 중니의 도를 공부하여 豪傑之士라 일컬을 만한 존재였음을 환기시켰다. 楚産은 楚國(초국)의 태
- 2012-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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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자는 陳相(진상)이 스승 陳良(진량)을 등지고 許行을 따라 배우는 것을 책망하기 시작하였다. 우선 진상의 스승 진량이 남방의 초나라 태생이면서 북쪽 중원으로 가서 주공과 중니의 도를 공부하여 豪傑之士라 일컬을 만한 존재였음을 환기시켰다. 楚産은 楚國(초국)의 태
맹자는 중국의 선진 문명이 이민족의 풍습을 바꾸어 왔지 중국 문화가 이민족에 의해 변화된 적은 없다고 하였다. 이 이하는 유학을 공부하던 陳相(진상)이 스승을 등지고 農家者類(농가자류)의 사상가인 許行(허행)을 따라 배우는 것을 책망하는 말이다. 그런데 맹자의 말은
맹자는 공자가 堯임금과 舜임금을 칭송한 말을 인용하여 요임금과 순임금이 성군으로서 그 덕이 높고 컸음을 말하고, 그렇지만 요임금과 순임금은 즉위한 이후 밭 가는 일 자체에는 마음을 쓰지 않았다고 말했다. 豈無所用其心哉는 ‘어찌 그 마음을 쓰신 바가 없겠는가’라
맹자는 옛 성인들이 백성들을 위해 輔佐(보좌)의 인물을 구하려고 근심하여 천하를 위해 인재를 얻는 仁의 덕목을 실천했다고 했다. 그리고 공자가 요임금과 순임금을 칭송한 말을 인용하여 자신의 주장을 굳혔다. ‘大哉라 堯之爲君이여’는 감탄문으로 술어를 도치한 것
맹자는 정치를 담당했던 성인은 백성들을 위해 輔佐(보좌)의 인물을 구하려고 근심했다고 환기하고, 군주로서 지녀야 할 덕목으로 惠와 忠과 仁이 있되 그 가운데서도 천하를 위해 인재를 얻는 仁의 덕목을 갖추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서 맹자는 천하를 남에게 주기는 쉬
맹자는 정치를 담당하는 사람은 산업을 담당하는 사람과 역할이 다르며, 성인이자 군주인 사람은 백성들을 위해 輔佐(보좌)의 인물을 구하려고 근심했다고 환기시켰다. 이어서 맹자는 군주로서 지녀야 할 덕목으로 惠와 忠과 仁을 제시하되, 세 덕목의 우열을 가리자면 仁이
맹자는 放勳(방훈), 즉 堯(요)의 말씀을 인용해서 요임금이 얼마나 曲盡(곡진)하게 백성을 위해 근심했는지 말했다. 그리고 성인은 백성을 걱정해서 정치와 교화를 행했으므로 직접 밭을 갈 겨를이 없었다고 주지시켰다. 그런데 옛날의 정치는 군주가 직접 백성들을 다스리
맹자는 聖君(성군)이 인류의 문명을 개척하고 다시 敎化(교화)를 하여 오륜이 정착되게 만드느라 盡力(진력)했다는 사실을 열거했다. 이어서 맹자는 放勳, 즉 堯(요)의 말씀을 인용해서 성인이 백성을 걱정함이 曲盡(곡진)했음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성인은 이처럼 백성을 걱
맹자는 聖君(성군)들이 인류 문명을 개척한 이후, 다시 인간의 도리를 밝히는 敎化(교화)가 시작됐다고 보았다.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 생활에 필요한 물질적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하지만 물질적 조건이 인간의 삶을 윤택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이 인간다운
맹자는 중국의 문명이 聖君(성군)들에 의해 개척된 과정을 개괄했다. 堯(요)는 舜(순)을 등용하여 인류 문명을 열고, 舜은 益(익)으로 하여금 불을 맡게 하여 禽獸(금수)를 중원에서 쫓아냈다. 또한 순은 禹(우)로 하여금 治水(치수)를 맡게 하고 后稷(후직)으로 하여금 농
맹자는 중국의 문명을 인류 문명의 중심으로 여겼으며, 중국의 문명은 聖君(성군)들이 개척했다고 믿었다. 맹자는 정치가의 표본으로 성군들을 제시했다. 우선 堯(요)는 舜(순)을 등용하여 인류 문명을 열게 했다. 舜은 益(익)으로 하여금 불을 맡게 했는데, 익은 산택에
맹자는 정치를 맡은 사람은 산업을 맡은 사람과는 직분이 다르다고 보았다. 그 증거로 맹자는 인류 문명이 시작할 때 聖君(성군)들이 정치하던 방식을 예로 들었다. 요 임금은 인류가 자연의 피해를 받지 않도록 하기 위해 舜(순)을 등용하여 정치를 펴게 했다. 그러자 순은
맹자는 요 임금의 초기에는 천하가 아직 제대로 다스려지지 않아서 인간이 자연의 피해를 보았는데, 요 임금이 그 점을 걱정하여 순을 등용하여 정치를 펴게 했다고 했다. 擧舜은 순을 신하들 가운데서 발탁했다는 말이다. 敷治는 정치를 널리 시행함이다. 烈은 불을 지른
맹자는 정치를 하는 大人(대인)과 농업이나 기술에 종사하는 小人(소인)은 직분이 다르며, 大人은 勞心(노심)하고 小人은 勞力(노력)해야 한다고 구분했다. 그리고 大人으로서 훌륭한 업적을 남긴 聖君(성군)들이 勞心을 행한 역사를 진술하기 시작했다. 먼저 요임금의 초기
이 단락에서 맹자는 정치사회 구성론의 핵심 주장을 밝혔다. 許行은 군주가 백성과 함께 밭을 갈고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맹자는 정치를 하는 大人과 농업이나 기술에 종사하는 小人은 직분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한 사람마다 자신
農家類(농가류)의 사상가 許行(허행)은, 어진 군주라면 백성들과 함께 밭을 갈고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허행은 머리에 쓰는 冠(관), 밥 짓는 데 사용하는 가마와 시루,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는 交易을 통해 구해야 했다. 陳相(진상)
맹자는 許行(허행)의 설을 전하는 陳相(진상)에게, 허행이 비록 농사는 스스로 짓는다고는 해도 그가 머리에 쓰는 冠(관), 밥 짓는 데 사용하는 가마와 시루, 농사에 필요한 농기구는 交易(교역)을 통해서 구한다는 사실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옹기장이 대장장이와 농민이 交
陳相(진상)은 맹자를 만나, 許行(허행)이 백성들과 함께 일하고 손수 밥을 지어 먹으며 정치할 것을 주장했다고 전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허행이 비록 농사는 스스로 짓는다고 해도 그가 머리에 쓰는 冠(관), 밥 짓는 데 사용하는 가마와 시루, 농사짓는 데 필요한 쇠붙이의
유학자였던 陳相은 農家類(농가류)의 사상가 許行을 만나본 이후, 허행의 가르침에 따라 어진 정치가는 백성들과 함께 밭 갈고 손수 밥 지어 먹으면서 정치를 해야 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하지만 맹자와 문답을 주고받으면서 진상은 허행이 직접 밭을 갈아 곡식을 구할 수는
陳相은 맹자를 만나 許行의 말을 전하며, 賢者(현자)는 백성들과 함께 밭을 갈며 손수 밥 지어 먹으면서 정치를 한다고 하였다. 그러자 맹자는 신분에 따라 職掌(직장·맡은 일)을 달리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진상 스스로 깨닫게 하기 위해 허행의 일상생활을 근거로 질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