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 이야기]<1259>曰 周公이 知其將畔而使之與잇가…](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10/14/41088864.2.jpg)
[한자 이야기]<1259>曰 周公이 知其將畔而使之與잇가…
당나라 때 韓愈(한유)는 ‘原道(원도)’에서 유학의 道統(도통)이 堯(요), 舜(순), 禹(우), 湯(탕), 文王(문왕), 武王(무왕), 周公(주공), 孔子, 孟子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공자 이상은 후대인들에게 聖人으로 존숭을 받았고, 맹자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성인으로 인…
- 2011-10-14
- 좋아요 개
- 코멘트 개
![[한자 이야기]<1259>曰 周公이 知其將畔而使之與잇가…](https://dimg.donga.com/a/296/167/95/2/wps/NEWS/IMAGE/2011/10/14/41088864.2.jpg)
당나라 때 韓愈(한유)는 ‘原道(원도)’에서 유학의 道統(도통)이 堯(요), 舜(순), 禹(우), 湯(탕), 文王(문왕), 武王(무왕), 周公(주공), 孔子, 孟子로 이어져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공자 이상은 후대인들에게 聖人으로 존숭을 받았고, 맹자 또한 일부 사람들에게는 성인으로 인…
齊(제)나라 대부 陳賈(진가)는 宣王(선왕)이 맹자의 충고를 듣지 않고 연나라를 정벌하고 병합하려다가 2년도 안 돼 연나라 사람들이 배반하자 부끄러워하는 것을 보고, 왕을 위해 변명하려고 했다. 진가는 맹자를 만나, 성인이라 일컬어지는 周公도 그 형제들이 반란할 것을
齊나라 宣王(선왕)은 연나라를 정벌한 후 2년도 안 돼 연나라 사람들이 배반하자, 맹자에게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보다 앞서 맹자가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기 때문이다. 그러자 (녕,영)人(영인·아첨꾼)인 陳賈(진가)가, 성인
齊나라 宣王(선왕)은 燕나라를 정벌하고 아예 병합하려고 하자 맹자는 ‘연나라를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하지 않는다면 연나라를 취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연나라 사람들은 2년 후 태자 平을 왕, 즉 昭王으로 삼고 제나라에 대항했다. 제나라 왕이 맹자에 대해 부끄러
齊나라 宣王(선왕)은 燕나라의 국정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서 연나라를 공격해서 이겼다. 그리고 그 승리를 하늘이 준 기회라고 여겨 연나라를 아예 병합하려고 생각했다. 이때 맹자는 ‘연나라를 완전히 취하여 연나라 백성이 기뻐한다면 연나라를 취하고 연나라를 취하여
‘문명과 평화 국제포럼’이 10, 11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다. 올해 주제는 ‘분쟁의 평화적 해결-한국, 동아시아 그리고 세계적 차원에서’. 이 포럼은 한국학중앙연구원(원장 정정길)이 세계 평화를 위해 한국의 격동적 체험을 공유하자는 취지로 2005년부터 매년 개
‘公孫丑(공손추)·하’의 제9장은 제8장의 일과 연결된다. 제8장에서 맹자는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齊나라가 燕(연)나라를 정벌하는 데 빌미를 제공했으나 뒤에 자신은 제나라에 정벌의 정당성이 있다고 말한 적이 없으며, 제나라가 연나라를 정벌하는 것은 以
맹자는 변론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송나라 유학자들은 맹자를 水精(水晶·수정)과 같다고 했다. 수정은 광채가 나지만 溫潤含蓄(온윤함축·따스하면서 내면의 깊이를 지님)의 맛이 없다. ‘公孫丑(공손추)·하’의 제8장에서, 맹자는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으면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던 맹자에게 제나라의 신하 沈同(심동)이 燕(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개인적으로 물었다. 연나라는 그 왕 子쾌(자쾌)가 천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 왕위를 사실상 남에게 물려주어 나라의 紀綱(기강)이 무너진 상태였다. 맹자는 연나라가 정벌당
체육인재육성재단(이사장 정동구)은 5일부터 이틀간 서울 올림픽파크텔에서 글로벌 스포츠 인재 포럼을 개최한다. 5일에는 ‘글로벌 스포츠 인재 양성의 당위성과 과제’를 주제로 이태영 대한언론인회 부회장이 발표하고, 김종일 미국 칼빈대 교수가 ‘미국의 스포츠 인재
맹자가 齊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齊나라가 燕나라를 정벌했다. 이를 두고 어떤 사람은 맹자가 제나라의 정벌을 부추겼다고 말했다. 이것은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물었을 때 可하다고 답한 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맹
문화체육관광부는 한글 반포 565돌을 맞아 3일부터 한글날인 9일까지를 ‘2011 한글주간’으로 정하고, 한글의 가치와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는 다양한 문화행사를 연다. 전체 주제는 ‘한글의 세계화 및 한글을 통한 나눔과 통합’. 임수택 경기 과천 한마당축제 예술감독
제나라 신하 沈同이 찾아와 燕나라를 정벌해도 좋은가 사적으로 묻자, 맹자는 燕나라는 정벌당할 만하다고 대답했다. 당시 연나라 왕 子쾌(자쾌)는 재상 子之를 신임해서 왕위를 그에게 넘겼으므로 나라의 紀綱(기강)이 무너지고 백성들은 塗炭(도탄)에 빠졌다. 맹자는 연나
맹자가 제나라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제나라 신하 沈同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연나라를 정벌해도 좋은지 물었다. 연나라 왕 子쾌(자쾌)는 재상 子之를 신임해서 나라를 그에게 맡기고 자신은 신하 노릇을 하고 있었다. 맹자는 연나라 왕이 천자의 명령을 받지 않고 사실상
‘公孫丑(공손추)·하’ 제8장은 맹자가 齊(제)나라와 燕(연)나라의 전쟁에 개입한 사실을 드러낸 것이 아니냐고 해서 후대에 그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았다. 당시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으면서 정치에 관한 諮問(자문)에 응하고 있었다. 이때 제나라 신하
맹자는 모친의 상에 훌륭한 棺材(관재)를 사용했다. 이 때문에 다른 학파의 학자들이 맹자를 비난했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도 맹자가 사용한 棺材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맹자는 망자의 살갗이 흙에 닿는다면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사람들은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어머니의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왔다. 장례를 도왔던 제자 充虞(충우)는 맹자가 사용한 棺材(관재)가 지나치게 아름다웠다고 지적했으나, 맹자는 망자를 위해 좋은 棺槨(관곽)을 사용하는 것은 사람의 마
“쑥대머리∼.” 20일 밤 천년 고도 경북 경주시 보문단지 내 한 호텔. 단상에 나온 한중일 문화교류포럼의 오구라 가즈오(小倉和夫) 일본 측 위원장이 판소리를 우리말로 토해내자 좌중은 놀라움에 휩싸였다. 일본국제교류기금 이사장을 맡고 있는 그는 정순임 명창과 함께
‘史記(사기)’ ‘淮陰候列傳(회음후열전)’에 따르면 소년 韓信(한신)은 하도 가난해서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장례를 치를 수 없었다. 한신은 가까운 구릉에 어머니의 시신을 묻고, 훗날 반드시 성공해서 그곳에 1만 가구의 인가가 들어차게 만들리라 맹세했다고 한다.
맹자는 제나라의 客卿(객경)으로 있을 때 어머니를 여의고 조상의 나라인 노나라에서 장례를 치른 뒤 되돌아오다가 제나라 남쪽의 영(영) 땅에 이르러, 제자 充虞(충우)와 장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충우는 맹자를 위해 관 만드는 일을 감독했었는데, 맹자가 사용한 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