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후보 ‘목소리 전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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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짧게 끊어 전달하는 ‘문변’… 목청 트인 ‘루이 안스트롱’

《 ‘목소리 전쟁’이 시작됐다.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가 선보인 사자후(獅子吼) 발성법이 이미지를 완전히 바꿔버리거나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중저음이 화제를 모은 것처럼, 그 자체로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각 후보의 목소리와 그 안에 숨은 전략을 전문가들과 함께 들여다봤다. 》


“안녕하세요, 안찰스입니다. 처음엔 나긋나긋했지만 이제 목소리도 (돌연 목소리를 굵게 내며) 바꿨습니다∼!”

최근 한 개그 프로그램 출연자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의 연설을 성대모사한 장면이다. 안 후보는 4일 후보 수락 연설에서 목을 굵게 긁는 듯한 중저음의 목소리를 선보여 “‘교수님 말씀’ 같았던 2012년 출마 선언 때와 크게 달라졌다”는 평과 함께 화제를 모으고 있다. 문재인(더불어민주당) 홍준표(자유한국당) 유승민(바른정당) 심상정 후보(정의당) 등 주요 대통령선거 주자들이 소리 높여 연설하는 영상들이 덩달아 온라인에서 수십만 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이 7일 대선 후보들의 목소리를 높낮이, 크기별로 구별해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보들의 억양, 높낮이, 리듬감이 유권자의 감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이 7일 대선 후보들의 목소리를 높낮이, 크기별로 구별해 분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후보들의 억양, 높낮이, 리듬감이 유권자의 감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고 입을 모은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대선이 ‘목청 싸움’이냐”는 건 뭘 모르는 얘기다. 연설에서 억양, 높낮이, 리듬감 등 목소리는 유권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할 수 있는 ‘벼려온 칼날’의 결정체다. 청각이 다른 감각에 비해 감성 기억을 더 많이 활성화시킨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음성 연구가와 이비인후과 전문의, 정치 컨설턴트와 함께 대선 후보들의 연설 목소리에 귀를 바짝 기울여봤다.

○ “安, 목소리로 ‘변화 이미지’ 주는 데 성공”

안 후보는 2012년 9월 19일 출마 선언 당시 “차분하고 조근조근하지만 단조롭고 전달력이 약한 목소리”라는 평가를 받았다. 안 후보의 서울대 의대 동문 사이에선 “정치인보다는 전형적인 의사 같다”는 얘기가 돌았다.

이달 4일 후보 수락 연설에선 우선 저음뿐 아니라 중음역이 넓어지며 ‘루이 안(安)스트롱’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실제로 음성의 높낮이를 나타내는 주파수가 평균 231Hz(헤르츠)로 5년 전(161Hz)보다 43.5%나 올랐다. 이는 청중의 긴장도와 집중도를 동시에 높이는 효과가 있다.

또, 입을 크게 벌리며 말을 길게 늘이는 스타일로 인해 한 문장의 지속 시간은 1.75배, 높낮이의 변화는 1.5배로 증가했다. “분열과 패권주의로는 나라(를) 바꿀 수 없습니↗다↘”라며 어미를 1.9배 길고 낮게 늘어뜨리는 말투도 특징이다. 배명진 숭실대 소리공학연구소장은 “일변되게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상대를 설득하고 포용하려 한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참여정부에서 대통령연설비서관을 지낸 강원국 전북대 초빙교수는 “자칫 낯설고 ‘포장이 과하다’는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현재까지는 ‘신선하다’는 반응이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다만 안 후보의 발성은 복식호흡에 따라 성문하압(성대 아래쪽에서 밀어 올리는 공기 압력)을 자연스럽게 높이는 방식이 아니라, 흉성(胸聲)을 통해 후두를 의도적으로 굴절시켜 탁한 소리를 내는 것이기 때문에 엄청나게 목을 써야 하는 거리 유세가 시작된 뒤에는 성대에 무리가 갈 수 있다는 관측이 많다.

○ “文, 울림 좋지만 발음은 부정확”

문 후보는 주요 후보 가운데 가장 중음과 고음의 크기가 고르고 배음(倍音)이 풍부한 것으로 평가된다. 남성의 음성엔 100∼8000Hz의 소리가 섞여 있는데, 이 중 잡음이 적고 맑은 소리의 비율이 높을수록 배음이 크고 울림이 좋다. 이는 강인함과 신뢰를 느끼게 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이달 3일 후보 수락 연설을 2012년 9월 16일 연설과 비교해도 극저음대의 소리가 다소 커졌을 뿐 전체적으로 큰 차이는 보이지 않았다.

발음은 좋지 않은 편이라는 분석이 많다. 문 후보는 참여정부 시절 치아를 많이 잃어 현재 임플란트를 한 의치가 10개다. 시옷 등 일부 자음은 치아를 활용해 발음해야 하기 때문에, 자연치가 아니면 발음이 샐 수 있다. “∼했습니까”가 “∼했습니꽈” 등으로 소리가 입 안으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 나는 것도 이 때문으로 추측된다.

전체적으로는 이 같은 목소리와 발음의 장단점이 법률가 출신 특유의 짧게 끊어 말하는 말투, 논리적인 어휘 구사와 어울려서 연설 내용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디어트레이닝 전문업체 ‘선을 만나다’의 태윤정 대표는 “문 후보는 전형적인 정치인의 말투는 아니지만 훈련을 통해 리듬감, 시선 처리 등이 자연스러워졌다”고 말했다.

○ “洪, 공격적인 ‘저잣거리 스타일’”

홍 후보는 높은 음에서 목소리가 흔들리고 ‘ㅓ’를 ‘ㅡ’로 발음하는 경상도 억양이 강해 “특즌사를 창슬하겠다”고 말하는 등 타 후보와 구별되는 개성을 지니고 있다. 내용에서는 공적인 말하기에서 흔히 쓰지 않는 공격적인 어휘나 과감한 생략법을 사용하기 때문에 ‘저잣거리의 말하기’라는 평가도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특징이 일각에서는 거리감을 느끼게 하지만 반면에 지지층에서는 강한 호감과 흡인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

유 후보는 다른 후보들보다 연설 시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남경필(경기도지사)이 ○○○을 이기겠죠?”라고 말하는 등 ‘해요체’를 사용하는 빈도가 다른 후보보다 높아 부드러운 느낌을 주기도 한다. 다만 아직 학자풍의 말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시각도 있다.

심상정 후보는 여성으로서는 목소리가 두꺼운 편이지만 조목조목 따지는 설득력 있는 말투를 사용하기 때문에 TV 토론회에서 높은 점수를 받을 것으로 기대된다는 평가가 많았다. 다만 연설 중간에 “아” “음” 등 감탄사를 넣는 점은 망설이는 듯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 약점으로 꼽혔다.

조건희 becom@donga.com·김호경 기자
#대선#발성법#연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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