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헛돈 날리는 국가연구개발사업

  • 입력 2001년 8월 6일 18시 35분


국가의 과학기술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국가연구개발사업이 투자효율성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채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나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과학기술부 산하 한국과학기술평가원은 최근 13개 부처, 5개 청이 지난해 2조5809억원을 들여 실시한 161개 국가연구개발사업을 조사한 후 29.8%인 48개 사업에 대해 중복투자 실적미흡 등의 평가를 내렸다. 이들 사업에 배당된 예산은 모두 5322억원이었다.

예를 들어 교육부의 ‘한국교육학술정보원사업’은 과학재단, 환경부의 ‘자동차저공해 기술개발사업’은 산업자원부의 사업과 각각 중복된 것으로 확인됐다. 보건복지부의 ‘국립의료원 지원연구사업’은 연구개발이 아닌 단순한 임금보전용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정보기술(IT)이나 생명공학기술(BT)의 경우 어느 분야보다 부처별 중복투자가 많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말 감사원 감사에서는 연구개발이 중간에 포기되거나 완전 중단됐는데도 수백억원에 이르는 연구비 회수가 제대로 안되는 등 모두 92건의 위법부당사항이 적발됐다.

이 같은 현상은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관리 감독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각 부처는 다른 부처와의 협조나 상의 없이 자체적인 판단에 따라 사업을 경쟁적으로 펼치고 있다. 과학기술 발전에 쓰여야 할 돈이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인 ‘눈먼 돈’이 되고 잘못이 발견돼도 그대로 방치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평가는 98, 99년에 이어 올해로 세 번째다. 그때마다 중복투자 등의 문제점이 지적됐지만 아직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중요한 점은 부처별로 유사한 사업을 신청한 경우 한쪽에 포기를 권유하거나 통합 연계방안을 찾는 등 처음부터 세밀한 ‘교통정리’가 있어야 한다는 점이다. 정부와 민간의 적절한 역할 분담 체계도 마련해야 한다. 최하위 등급을 받은 사업이나 기관에 대해서는 사업취소 등 불이익을 주어야 한다. 지나치게 덩치가 큰 대규모사업만 집중적으로 지원할 것이 아니라 소규모의 연구집단을 여럿 지원해 경쟁을 유도하는 것도 효율적일 수 있다.

다행히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한 과학기술부가 연말까지 마련하겠다고 한 ‘국가연구개발사업 공동관리규정’ 등 개선책을 지켜보겠다. 국가연구개발사업은 국가경쟁력의 초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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