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회창 對 노무현 2]지적 편력

  • 입력 2002년 12월 3일 18시 53분


▼이회창 후보▼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대통령후보는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망설임 없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이라고 대답한다. 고대 로마황제였던 아우렐리우스가 지은 책으로, 주어진 환경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자연에 순응할 줄 아는 마음가짐을 강조한 내용이다.

그는 자서전 ‘아름다운 원칙’에서 아우렐리우스에 대해 “전쟁과 정쟁의 위태로운 암투 속에서도 맑은 샘물처럼 깨끗하게 자신을 지켜내고자 노력한 사람이었다”고 극찬했다. 이 후보가 공직자의 청렴한 자세를 유난히 강조하는 것도 금욕주의자 아우렐리우스의 영향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후보는 요즘도 마음이 심란하거나 울적하면 이 책을 읽으면서 안정을 얻는다고 한다.이 후보를 15년간 가까이서 지켜본 서정우(徐廷友) 변호사는 “80년대 어두운 시절과 그후의바쁜 공직생활 속에서 자기 중심을 굳건히 잡는 데 ‘명상록’이 큰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청년기의 이 후보를 사로잡은 책은 괴테의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방랑시대’였다. 고교시절 이 책을 예닐곱 번이나 읽었을 정도다. ‘청년기에는 세상의 다양한 모습을 배우되, 장년기에는 방황하지 말고 구체적 직능을 갖고 살아야 한다’는 이 책의 교훈은 그의 삶의 궤적과 맞닿는다.

그는 청주중학교 시절 수학시험을 망치고는 ‘천하의 불행한 사람’이라고 자책하면서 조치원으로 가출한 적도 있다. 고3 때에는 불량배들과 싸우다 코뼈가 부러지기도 했다. 방랑시대였던 셈이다.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부친의 영향력이다. 70년대 중반에는 돈을 벌기 위해 변호사 개업을 결심, 사무실까지 물색했으나 부친의 호통 한 마디에 뜻을 접을 만큼 부친은 그에게 절대적 존재였다. 이 후보는 “‘청렴한 법관이 되라’는 아버님의 당부는 나의 신조였다”고 말했다.

이 후보는 지적 정서적으로 민감한 사춘기에 음악감상도 즐겼다. 음악을 좋아한 형과 함께 베토벤과 차이코프스키의 교향곡, 아리아 컬렉션 등을 즐겨 듣다가 클래식과 친해진 것. 고교와 대학시절 그는 음악감상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잦았다. 그는 자서전에서 “청년시절 내게 큰 힘이 됐던 것은 음악과 책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요즘도 그는 클래식을 들으면 마음이 편해진다고 한다.

법관시절 그는 인권과 사법 적극주의를 강하게 주창했다. “돈 없고 빽 없는 사람도 똑같은 국민이다”는 말을 자주 했다고 한다. 서정우 변호사는 그의 이런 성향과 관련, “항상 자신이 몸담고 있는 곳에서 개혁을 부르짖은 사람이다”고 평가했다.

독서 스타일로 보면 이 후보는 다독(多讀)형이다. 법관시절 자신과 견해가 정반대인 사법 보수주의자의 책까지 탐독했는가 하면, 요즘에는 지인이 선물하는 논문이나 컴퓨터산업 관련 서적까지 두루 읽는다고 한다.

그는 97년 대선에서 패한 후에는 경제관련 지식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고 경제전문가들을 수시로 초빙해 체계적으로 공부를 해 왔다.

윤종구기자 jkmas@donga.com

▼노무현 후보▼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대통령후보는 며칠 전 백범(白凡) 김구(金九) 선생의 ‘백범일지’를 완독했다. 2주일 전쯤 한 지방 방송사의 TV 토론에서 “남북한이 모두 분열주의 세력”이란 자신의 과거 발언에 대한 질문을 받은 것이 계기였다. 그는 “김구 선생도 같은 논리로 단독정부 수립을 반대했는데 왜 노무현이 얘기하면 이상하다고 받아들이느냐”고 현장에서 답변한 뒤 백범일지를 다시 찾아 들었다.

그만큼 노 후보는 책을 손에 놓지 않는 스타일이다. 아들 건호(建昊)씨가 어렸을 때 속독법을 직접 가르쳐줄 정도다. 당내 경선과 대선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올해 들어서도 한 달에 두 권 정도는 꾸준히 읽었다는 게 참모들의 얘기다. 한국의 국가비전을 상세하게 다룬 한국개발연구원의 ‘비전 2020보고서’와 서울대 윤영관(尹永寬) 교수의 ‘21세기 한국 정치경제모델’이 관심있게 읽은 책이다.

서울 종로구 명륜동의 노 후보 자택 거실에도 1000여권의 책이 한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다. 그가 80년대 초 중반 시국 노동사건 변론을 하면서 ‘의식화’의 세례를 받았던 색바랜사회과학서적도 여전히 많다. 간간이 ‘게임이론’과 같은 경영학 서적도 눈에 띈다.

노 후보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사고를 지탱하는 세 가지 축으로 법률가로서의 논리적 사고, 인권변호사 시절 사회과학서적 탐독을 통한 ‘의식화’ 과정, 90년대 중반 이후의 원외정치인 시절 정보기술 분야에 빠져든 실용주의를 꼽는다.

특히 81년 부산지역 학생운동 조직사건인 부림(釜林)사건 변론을 맡아 이른바 ‘금서(禁書)’로 분류됐던 ‘전환시대의 논리’ 등의 책을 읽고, 운동권 청년들과 어울려 이념논쟁을 벌이면서 그는 재야변호사로 변신한다.

노 후보는 당시 읽었던 리영희 교수의 ‘베트남 전쟁’이나 에드거 스노의 ‘중국의 붉은 별’에 대해 “감동적인 책이었지만 사회주의에 찬동하지는 않았다”고 회고했다. 그는 “아마도 법률을 공부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실제로 87년 6월 항쟁 이후 그의 태도에는 실용주의적인 사고가 정착하는 경향이 뚜렷해진다. 부산대 총학생회장 출신인 정윤재(鄭允在)씨는 “노 후보는 87년 이후 우리들에게 앨빈 토플러의 ‘제3의 물결’이나 ‘미래예측’ 같은 책을 읽어볼 것을 권했다”고 전했다.

그가 90년대 중반 이후의 원외 정치인 시절 정보기술 분야에 몰두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93년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차린 직후 당시 대기업에서 보기 드물었던 근거리통신망(LAN)을 사무실에 설치했고, 회원 관리를 위한 전산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가 인명 종합데이터프로그램인 ‘노하우 2000’을 개발해 참모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는 2000년 4월 총선에서 낙선한 뒤에는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대통령을 연구하는 데 골몰한다. 나아가 미국 역사 전반에 대한 탐구에 빠져들었고, 이를 ‘노무현이 만난 링컨’이란 책으로 펴냈다. 이 책은 5만부가 넘게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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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기자 jngh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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