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대행으로서 한일수교에 반대하는 6·3시위를 주도하다 6개월간 징역형을 산 이 당선자는 대학졸업 후 내란선동죄 전과 때문에 번번이 입사시험 면접에서 미끄러지자 박정희 대통령에게 항의편지를 보낼 만큼 저돌적인 젊은 시절을 보냈다.
65년 현대건설 면접시험 당시 “건설이 무엇이냐”고 묻는 정주영 회장의 질문에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거침없이 대답한 그는 종업원 90명에 불과했던 현대건설을 16만명이 일하는 글로벌 기업으로 탈바꿈시킨 주역 중의 한 명이었다.
이명박 스토리는 90년 초 인기를 끌었던 TV드라마 ‘야망의 세월’로도 방영됐다. 그는 ‘신화 창조’라는 평가에 대해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만 신화일 뿐이며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냉혹한 현실이다. 나는 위기와 도전을 우회하지 않고 정면에서 돌파했다. 이 돌파력을 사람들은 신화라고 부르는 것 같다”고 말했다.
기업인 이명박이 정치인 이명박으로 변신한 것은 92년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국민당 창당 때였다. 하지만 그는 국민당 참여 제의를 거절하고 집권당이던 민자당 전국구 의원으로 국회에 진출했다.
지역구에 첫 도전한 96년 총선에선 정치1번지 종로구에서 당선됐으나 선거법 위반 혐의로 의원직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내 인생 최대의 실수였다”고 했지만, 이때의 불법시비와 176억원에 달하는 재산문제는 두고두고 시비와 비난의 대상이 됐다.
이 당선자는 13일 당선 확정 직후 “기업에서 익힌 경영 기법을 행정에 접목시켜 서울시를 바꿔놓겠다. 예산의 투자효율성을 높이면 서울시 연간예산 11조원 가운데 1조원은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승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상대편의 네거티브 전략에 휘말려들지 않고 경제시장 최고경영자(CEO)시장 이미지를 부각시킨 게 주효했다고 생각한다.”
-청계천 복원사업 공약이 논란의 대상인데….
“청계천 복원사업은 환경을 살릴 뿐만 아니라 청계천 주변개발을 통해 강북도심을 살리는 사업이다. 97년 당시 청계고가도로 보수공사로 전면통제를 했을 때 내부순환도로나 다른 우회도로를 이용해 교통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서민 주택난 해결방법은….
“현재 서울시에서 추진 중인 임대주택 10만가구 공급을 임기 내 완료하고 추가로 임대주택 10만가구를 수도권에 부지를 확보해 10년 내에 건설하겠다.”
성동기기자 esprit@donga.com
▼화제의 당선자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