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진월북 시도 보고 묵살 “拉北미수” 기자회견 지시

  • 입력 2001년 12월 19일 17시 06분


‘수지 김 살해 은폐조작 사건’ 은 87년 당시 장세동(張世東) 국가안전기획부장의 결정에 따라 안기부에 의해 납북미수 사건으로 조작됐으며 국가정보원과 경찰은 지난해 사건의 진상을 밝힐 수 있는 기회를 고의로 묵살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87년 당시 안기부가 대북(對北) 위기감을 조장해 불붙기 시작하던 민주화 운동에 찬물을 끼얹고 대북 공세에 활용하려는 목적으로 사건의 진상을 은폐했다고 보고 있다.

▽87년 사건 은폐 조작=검찰에 따르면 87년 1월 당시 장세동 안기부장은 수지 김의 남편 윤태식(尹泰植·43)씨가 자진 월북을 시도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보고를 받고도 부하 직원들에게 납북 미수 기자회견을 하도록 지시했다.

또 장 전 부장은 안기부 수사팀이 태국 방콕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귀국한 윤씨에게서 “수지 김을 살해했다” 는 자백을 받았으나 진상을 공개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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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태식씨 정치권로비 혐의

장 전 부장은 “남북관계가 부드러워지면 진상을 밝히려고 했으나 87년 5월 안기부장직을 그만두게 돼 그럴 기회가 없었다” 고 주장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윤씨는 87년 1월3일 수지 김을 살해한 뒤 5일 월북을 목적으로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을 찾아갔으나 현지 직원이 탐탁치 않게 생각하자 미국대사관으로 발길을 돌렸고 미국대사관측은 윤씨를 한국대사관에 인계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당시 싱가포르 주재 북한대사관은 “윤씨가 자진 월북을 하기 위해 대사관에 온 적이 있으며 납북 미수가 아니다” 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에 최광수(崔侊洙) 당시 외무부장관의 지시를 받은 싱가포르 주재 한국대사관은 북한의 납치 미수극 이라는 반박 성명을 내기도 했다.

윤씨는 안기부가 나에게 △살인 자백 △납북미수 △폭행치사 등 3가지 경우에 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주고 외우도록 시켰다 고 진술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안기부는 또 윤씨가 범행을 실토하는 등 변절할 가능성에 대비해 윤씨의 동태를 장기간 감시해왔으며 91년경부터 최근까지 윤씨에 대한 출국금지조치를 반복적으로 연장 의뢰해왔다고 검찰은 밝혔다.

▽지난해 경찰 수사 중단=김승일(金承一) 전 국정원 대공수사국장은 “지난해 2월 언론이 이 사건의 의혹을 제기하자 엄익준(嚴翼駿·작고) 당시 국정원 2차장에게 사건의 실체를 보고했고 엄 전 차장은 사실을 발표하지 말라” 고 지시했다고 검찰은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김 국장은 엄 차장의 지시로 이무영(李茂永) 경찰청장을 만나 사건이 단순 살인사건임을 설명했고 이 청장은 당시 진행중이던 경찰 수사를 중지시켰다.

당시 김 국장은 “사실이 드러날 경우 남북문제 등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테니 사건을 덮어두자” 고 말했고 이 청장은 “알았다” 고 대답했다고 검찰은 전했다.

검찰은 김 전 국장과 이 전 청장이 직권을 남용해 경찰의 권리 행사를 방해했고 범죄 수사에 관한 직무를 다하지 않았으며 범인 윤씨를 도피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고 밝혔다.

<이명건기자>gun4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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