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지원

서지원 기자

동아일보 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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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5-04-20~2025-05-20
사회일반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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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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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경 “현장 그렇게 몰라” 이재명 내조…지인들 “李 부드럽게 만들어”

    《대통령 배우자의 역할은 한국 정치에서 자주 논쟁을 불러왔다. 윤석열 행정부에선 이른바 ‘김건희 여사 리스크’가 정권의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꼽히기도 했다. 영부인은 선출되거나 임명된 공직자가 아니지만 최고 권력자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직접 의사결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물이다. 동아일보 취재팀은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배우자인 김혜경 씨의 주변인들을 통해 김 씨의 삶과 이 후보와의 관계를 조명해 본다. ‘대선 후보 배우자 리포트’ 2회는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의 부인 설난영 씨.》“없는 살림에 집안 풍비박산 낼 거 있냐. 선거 출마하려면 이혼 도장 찍고 나가라.” 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배우자 김혜경 씨는 2006년 이 후보의 성남시장 출마 시절부터 이처럼 남편의 정치권 진출을 만류했다고 한다. 한때 이 후보의 정계 진출을 반대했던 김 여사는 이 후보가 성남시장에 당선된 뒤론 종교계 등 사회 각층의 목소리를 이 후보에게 전달하는 정치적 동반자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후보도 2017년 한 유튜브 방송에서 “아내로부터 아이디어를 많이 받는다. 집사람은 살림도 하고 동네 사람들과 교류도 하니 현장 얘기 중에서 튀는 얘기들이 있다”며 “판단하는 데 많이 도움이 되고 혼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몰라’라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인터뷰에서도 “저희는 침대에 누워서 소셜미디어(SNS)를 함께 한다. 남편은 글을 올리고 저는 주로 댓글을 살핀다. 중요한 사항이나 전할 만한 내용은 남편에게 우회적으로 알려준다. 남편이 기분 상할 수도 있으니까”라고 했다. 동아일보가 만난 김 씨의 지인들은 김 씨에 대해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다소 거친 이 후보를 부드럽게 해주는 역할을 해 왔다”는 이야기부터 “남편의 출세에 대한 욕심이 있다”는 평가도 내놨다.● 李 정계 진출에 “이혼하자”김 씨는 1966년 서울에서 삼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서울 선화예고를 거쳐 숙명여대 피아노과에 입학했다. 대학 재학 중이던 1990년 8월 변호사 사무실을 막 개업한 이 후보와 처음 만났다. 당시 경기 성남시 분당구 소재의 한 교회를 함께 다니던 이 후보의 셋째 형수와 김 여사의 어머니가 인연을 이어주기로 약속했고, 실제 만남은 상대가 누군지 모르는 채 당사자끼리 직접 약속을 잡고 나가는 ‘007 미팅’으로 진행됐다. 김 씨에게 첫눈에 반한 이 후보는 매일 밤 김 여사를 보기 위해 쫓아다녔다고 한다. 네 번째 만남 만에 청혼했으나 김 씨는 어이없다는 듯 웃으며 답을 주지 않았고, 이후에도 확답을 주지 않자 이 후보는 자신의 일기장 6권을 건네주며 재차 청혼했고, 이내 승낙을 받았다. 김 씨의 지인 A 씨는 “김 여사가 워낙 거짓말을 싫어하는 성격”이라며 “이 후보가 검정고시 출신이라는 것부터 털어놓는 솔직한 모습에 김 여사가 마음을 열었다”고 했다.김 씨는 이 후보와 7개월간 교제를 이어간 끝에 1991년 결혼했다. 성남에 신혼집을 차렸지만, 당시 이 후보가 사회운동에 전념하며 매일같이 집을 나가 있었기에 살림은 오롯이 김 여사의 몫이었다. 예약금만 건 결혼반지의 잔금을 끝내 치르지 못해 반지도 끼지 못한 ‘새댁’으로 살며 연년생 두 아들을 키워 냈다. 김 씨는 2008년 제18대 총선 때 이 후보가 성남시 중원구에 공천을 신청하자 “팔자에도 없는 정치냐”며 거듭 출마를 반대했다고 한다. 하지만 끝내 이 후보는 출마를 강행했고, 김 씨는 마지못해 아침마다 이 후보의 와이셔츠를 다려 주고 보온병에 대추차 등을 담아 내조에 나섰다. 김 씨를 만난 적이 있는 이 후보의 한 지인은 “이 후보가 김 씨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았다”며 “피아노과 출신으로 문화적, 예술적 감성도 있고 정치라는 딱딱한 영역에서 이 후보에게 보탬이 될 수 있는 그런 조건을 갖춘 배우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李 대선 출마 이후 ‘정치적 동반자’로 김 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출마를 강행한 이 후보는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이 후보는 정치를 포기하지 않았고 민주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0년 성남시장 재출마를 결심했고 51.2% 득표율로 당선됐다. 김 씨는 이 후보의 성남시장 당선 후부터는 ‘시장 사모’로서 조용한 내조에 들어갔다. 김 씨는 2018년 출간한 책 ‘밥을 지어요’에서 “힘들기는 하지만 ‘이 사람처럼 정치하는 것도 가능하구나’ 싶었다. 내가 이혼한다고 협박하기보다 응원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김 씨는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물러나고 이 후보가 본격적으로 대권 주자로 발돋움하자 이 후보의 정치적 동반자로 자리매김하기 시작했다. 2017년 민주당 대선 경선 기간 동안 이 후보와 함께 지방 일정에 동행했고, 그해 7월부터는 TV 예능 프로그램에 이 후보와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김 씨를 가까이서 본 한 측근은 “한동네 학부모들로부터 이런저런 얘기를 듣고 모아놨다가 하나씩 (이 후보에게) 문자로 전달하는 것 같다”고 했다. 김 씨는 2018년 4월 민주당 경기도지사 경선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등에 대한 허위 사실을 유포한 트위터 계정이 김 씨 소유라는 이른바 ‘혜경궁 김씨’ 의혹이 불거지자 공개 행보를 멈췄다. 하지만 무혐의 처분을 받은 뒤 2021년 이 후보가 대선에 다시 출마하자 적극적인 선거운동에 나섰다. 친문(친문재인)계 적자로 꼽히는 김경수 당시 경남도지사가 장인상을 당하자 이 후보를 대신해 전남 목포를 찾아 조문하고 매주 호남에서 지역 봉사활동을 하는 등 공개 활동을 이어가기도 했다. 김 씨는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대선 후보 배우자도 검증 대상이라고 보냐’는 질문에 “대통령이 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답하기도 했다.● 물밑 행보 나선 김 씨, “부부가 동화된 듯” 김 씨는 이 후보가 대선 종료 후 민주당 대표를 연임하는 동안 다시 ‘로키(Low-Key)’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본인이 이 후보의 정치적 ‘리스크’인 것을 인식해 조용한 행보를 보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2022년 대선을 앞두고 적극적인 지원 유세에 나섰던 김 씨가 공개 행보를 최소화한 것은 ‘법인카드 유용 의혹’이 불거진 이후다.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로 재임하던 2018∼2019년 경기도 예산을 개인 용도로 유용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2심 재판부가 벌금 150만 원을 선고하자 김 씨 측은 16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했다. 이 후보와 젊은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B 씨는 “이 후보가 시장이 된 후부터 김 씨도 정치 욕심이 조금씩 생기기 시작한 것 같다”며 “처음엔 이 후보의 배우자도 만족한다 했는데, 이 후보가 시장, 도지사, 대권 후보로 성장하면서 김 씨도 조금씩 목표가 커지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당초 남편의 정계 진출을 반대했던 김 씨는 지난해 12월 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던 날 밤 직접 운전대를 잡고 이 후보를 차에 태운 채 자택에서 국회로 향했다. 김 씨는 주변 지인에게 “광주 5·18민주화운동 생각도 나고 해서 남편이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이 후보가 대선 ‘3수’를 결심하자 다시 물밑 선거운동에 나섰다. 이 후보의 경기도지사 시절부터 김 여사를 알게 됐다는 한 민주당 관계자는 “15년 가까이 정치 내공이 자연스럽게 쌓이다 보니 행보도 조금씩 이 후보와 닮아가며 이제는 부부가 같이 동화가 된 듯하다”고 말했다.이승우 기자 suwoong2@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 6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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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법원 “방시혁, 내달 20일 SM재판 출석하라” 소환장

    법원이 방시혁 하이브 의장에게 SM엔터테인먼트 시세 조종 의혹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하라며 소환장을 보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5부(부장판사 양환승)는 8일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카카오 전현직 경영진에 대한 재판에서 방 의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소환장을 발송했다. 재판은 다음 달 20일에 열린다. 검찰 등에 따르면 2023년 2월 카카오와 SM 간 경영권 인수 협상이 결렬된 이후 방 의장이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를 직접 만나 SM 경영권 인수에 참여하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김 창업자는 방 의장의 제안을 거부했다는 것이 검찰 판단이다. 검찰은 당시 두 사람 간에 오간 대화의 성격과 내용이 시세 조종 행위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를 확인하고자 방 의장을 증인으로 신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창업자는 2023년 2월 16, 17일과 27, 28일 총 나흘에 걸쳐 SM엔터 주식을 매수하며 경쟁사인 하이브의 공개매수를 방해한 혐의로 기소됐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5-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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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산불복구 소외, 두번 우는 ‘비지정 문화재’

    8일 오후 경북 안동시 일직면에 있는 상현정(象賢亭)은 부서진 기왓장 잔해와 불에 탄 재로 가득했다. 이 정자는 1500년대 조선 중기 학문을 연구하던 구담서당(龜潭書堂)이 허물어진 뒤 후손들이 일제강점기인 1934년 다시 세웠다. 그런데 3월 남부를 할퀸 대형 산불로 불에 타 무너졌다. 이날 취재팀이 살펴본 정자는 산불이 나기 전 울창한 숲에 둘러싸여 있던 예전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었다. 상현정을 관리하는 이근식 안동 이씨 종친회장는 “복구 비용만 수억 원이 드는데 막막할 따름”이라며 “후손으로서 참담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 수백 년 된 문화유산, 산불 복구 지원 제외남부 산불로 다수의 문화재가 불에 타 소실된 가운데 상현정 같은 ‘비지정 문화유산’은 두 달이 지난 지금까지도 정부의 복구 지원에서 밀려나 있다. 비지정 문화유산이란 문화유산법 또는 특별시·광역시·도 조례에 의해 지정되지 않은 문화유산 중 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의미한다. 12일 안동시 등에 따르면 이번 산불로 소실된 안동 비지정 문화유산은 총 6곳이다. 상현정을 비롯해 조선 후기에 지어진 고택인 괴와구려, 정조 17년에 재건축한 안동 김씨재사, 순천 김씨 고택 동리재사 등 4곳은 전소됐다. 조선 후기 영양 남씨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허영정, 고택 송하재사 등 2곳은 부분 피해를 입었다. 비록 지정 문화유산은 아니지만 수백 년의 역사를 지니는 등 학술적, 역사적 가치가 있음에도 복구 비용을 지원받지 못해 흉물로 방치되고 있다. 국가유산청은 산불 피해를 입은 문화재 중 국가지정유산과 시·도지정유산 등에 대해서만 복구 비용을 지원하고 있다. 비지정 문화유산의 경우 차선책으로 지방자치단체로부터 향토 문화유산으로 지정되는 방안이 있으나, 지원되는 보수 비용은 최대 5000만 원에 그친다. 통상 수억 원에서 수십억 원의 보수 비용이 들어가는 것을 감안하면 턱없이 모자란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산불 피해를 입은 비지정 문화유산이 수년째 방치된 경우도 있다. 1889년 고종 23년 16명의 유생이 만든 강원 강릉시 ‘상영정(觴詠亭)’은 2023년 강릉 산불로 전소된 뒤 지금도 복구되지 못한 채 터만 남아 있다. ● “향후 가치 밝혀지는 경우도… 정부가 관리해야” 전문가들은 지정 문화유산 승격 등 향후 가치를 고려해 비지정 문화재 역시 정부가 복구를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종택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비지정 문화유산은 추후 연구를 통해 가치가 밝혀지는 경우가 많다”며 “지정 유산이 아니더라도 정부, 지자체 차원에서 체계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영식 인제대 인문문화융합학부 교수는 “비지정 문화유산도 문화유산 전문 인력을 고용하는 등 산불 등으로부터 발생할 피해를 사전에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한편 경북경찰청은 경북 산불을 낸 혐의(산림보호법 위반)로 50대 남성과 60대 남성을 불구속 송치했다고 12일 밝혔다. 50대 남성은 야산에서 조부모 묘 성묘 도중 어린 나무를 태우려고 불을 붙였다가 산불을 일으킨 혐의를 받고 있다. 60대 남성은 과수원에서 영농 부산물을 태우다가 불을 낸 혐의를 받고 있다.안동=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안동=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안동=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안동=명민준 기자 mmj86@donga.com}

    • 2025-0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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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북 ‘괴물 산불’ 50일, 이재민은 여전히 악몽… “정상적인 생활 어려워”

    “한 달 넘게 밤마다 집이 활활 타는 악몽을 꾸니까 정신병 걸릴라 칸다. 베개가 흥건히 젖을 정도로 식은땀이 줄줄 난데이.”7일 오후 3시경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2리에서 만난 김미자 씨(82)는 억장이 무너진다는 듯 주먹으로 자신의 명치를 연신 때렸다. 경북 산불이 마을을 덮친 3월 25일 밤 김 씨는 약 봉투와 겉옷 하나만 챙겨 대피했다. 며칠 뒤 돌아와 보니 그의 기와집은 불에 타 무너졌다. 손녀에게 주려고 아껴둔 가락지, 가족 사진도 재만 남았다. 그의 집은 철거됐고 잔해도 수거됐다. 김 씨는 집이 있던 터를 보며 “그 뻘건 불꽃이 잊히질 않아. 앞으로 어떻게 살 수 있겠냐”며 눈시울을 붉혔다.3월 22일 경북 의성에서 시작된 역대 최악의 산불 사태가 이달 11일이면 발생 50일째다. 불은 진화됐고 주요 뉴스에서도 멀어졌지만,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은 여전히 극심한 정신적 고통(트라우마)에 시달리며 이전과 달라진 삶을 살고 있었다. 동아일보는 5∼8일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트라우마 평가 지침에 따른 설문을 활용해 이재민 20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그 결과 20명 중 12명(60%)은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 정신건강의학과 등 병원 치료가 필요할 정도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통합심리지원단을 통한 심리 상담을 진행 중이지만 대부분의 이재민은 이 사실을 모른다고 했다. 일상을 회복하기 위해선 물리적인 피해 복구뿐만 아니라 이재민들의 정신, 마음 회복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경북산불’ 이재민 “밤마다 집 활활 타는 꿈… 정신병 걸릴라 칸다”산불 50일… 트라우마 심층 인터뷰“도무지 잠 오지않아 수면제 의지”… “‘눈이다’를 ‘불이다’ 듣고 짐싸기도”20명중 12명 즉시 심리치료 필요… 어르신들 상담 꺼려 지원대책 시급3월 경북 북부를 대형 산불이 휩쓴 지 50일이 다가오지만 이재민들의 정신적 고통(트라우마)은 계속되고 있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매정리 주민 이영해 씨(66)는 4월부터 수면제를 먹기 시작했다. 눈을 감으면 새카맣게 타버린 집과 3000여 평의 밭, 살림살이들이 떠올라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7일 오후 찾아간 이 씨의 집은 그곳이 집이었는지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부부의 이름이 적힌 문패만이 남아 그곳이 한때 집이었단걸 알려주고 있었다. 이 씨는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 일어날 만큼 예민해졌다”고 말했다.● 이재민 20명 중 12명, 치료 필요한 수준동아일보는 5∼8일 경북 영덕, 영양, 안동 등 산불 피해 지역을 돌며 이재민 20명을 만나 트라우마 측정 설문과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설문은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트라우마 평가 지침’에 담긴 트라우마 측정 설문 20개를 사용했다. 1개 문항당 5점(전혀 아님 0점∼매우 많이 4점) 척도로, 37점 이상(최대 80점)이면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운 고위험군에 속한다. 조사 결과 취재팀이 만난 이재민 20명 중 12명은 고위험군으로 나타났다. 당장 트라우마 상담 등 심리치료가 필요한 상태였다. 7일 영덕군 영덕읍 화천리에서 만난 서순복 씨(84)는 “검은색만 봐도 다 타버린 집이 떠올라 눈물부터 난다”며 “한평생 살아온 집이 없어진 걸 볼 수가 없어 여태 딱 2번 갔다”고 했다. 그의 트라우마 점수는 53점으로 매우 높았다. 속곡리 주민 김정민 씨(68)는 산불 이후 낯선 차량과 사람을 경계하게 됐다. 김 씨는 “누가 또 산에 불을 지르는 건 아닐지 조마조마한 상태”라고 했다. 역시 고위험군인 대곡리 주민 김모 씨(87)는 “눈 감으면 5남매 주려고 농사지은 깨, 아끼던 놋그릇 등이 다 타버린 게 떠올라 두 달째 잠을 못 잔다”며 울었다. 영양군 석보면 화매리 주민 50대 여성 A 씨는 이번 산불로 이웃 주민 2명을 잃었다. 그는 친구가 “눈이다”라고 한 말을 “불이다”로 잘못 듣고 공포에 질려 황급히 가방을 싸 대피하려 한 적도 있었다. 일부 이재민은 정신적 고통이 신체 증상으로 나타났다. 영덕읍 화천리 주민 신명기 씨(85)는 20일 경북 포항의 한 대형병원에서 진료를 받을 예정이다. 산불 피해를 본 이후 이유 없이 숨이 가쁘고 머리가 아파서다. 신 씨는 “혼이 빠진 것 같고 몸도 아파 미쳐 버리겠다”고 말했다.● 대부분 고령층, 상담-심리치료 잘 몰라… 대책 필요두 달 가까이 지나도 이재민들이 트라우마를 호소하면서 범정부 차원의 지속적인 심리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문에 응한 이재민 대부분은 정부의 심리상담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번 산불로 피해를 본 이재민들은 주로 고령으로, 심리상담 자체가 낯설뿐더러 제도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했다. 현재 행정안전부와 보건복지부는 국가트라우마센터를 중심으로 통합심리지원단을 구성해 이재민 구호·봉사 활동 참여자 등을 대상으로 심리상담을 진행하고 있다. 행안부에 따르면 1일 기준 1만1548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또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전문인력들이 정기적으로 마을을 방문해 심리상담을 안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집이나 논밭 등 물리적인 피해를 복구하는 것만큼이나 이재민의 심리, 정신적 피해에 대한 대책도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특히 대부분이 고령인 이재민들은 관련 제도나 지원 정책이 있어도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윤상연 경상국립대 심리학과 교수는 “어르신들은 심리치료 등에 익숙하지 않아 회복이 더뎌질 수 있다”며 “이러한 특성을 고려해 상담 제도를 안내하고 지속해서 상태를 모니터링하며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찬승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사회공헌특임이사는 “재난 2, 3개월로 접어드는 시점에는 죄책감과 상실감에 더 쉽게 빠지기 때문에 범정부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재정적, 시스템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영덕=이수연 기자 lotus@donga.com안동=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영양=최효정 기자 hyoehyoe22@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 2025-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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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쿨존 사고 ‘5월’ 최다… 학교 앞에서 신호 위반에 음주 운전까지

    “여기부터 아이들은 어디로 가야 하죠? 도로로 나가 걸어갈 수밖에 없어 위험해 보입니다.” 지난달 23일 서울 양천구의 한 초등학교 인근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임재경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자에게 학교 바로 옆 골목을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보행자를 위한 보행로가 중간에 끊겨 있었다. 그 자리에는 보행로 대신에 ‘거주자 우선 주차 구역’이 보였다. 이날 동아일보는 임 연구원과 함께 서울 영등포구, 강남구, 송파구 등 2023년 스쿨존 사고 발생 지점 6곳을 돌아봤다. 그 결과 대부분의 장소에서 아이들 보호 시설이 부족하거나 불법 주정차, 속도위반 등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매년 500여 명의 아이가 스쿨존 안에서 교통사고로 부상을 입는다. 지난해는 556명으로 2023년(514명)보다 42명 늘었다. ‘위험한 등하교’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동아일보는 교통기획 ‘2000명을 살리는 로드 히어로’ 두 번째 주제로 스쿨존 안전 실태를 다뤘다. 매년 2000명이 넘게 교통사고로 숨지는 우리나라에서 스쿨존 사고를 막을 운전자, 시민의 준법정신,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한 인프라가 절실하다.● 스쿨존 사고, 연중 5월에 가장 많아 본보와 임 연구원이 살펴본 서울 양천구 초교 인근 스쿨존은 곳곳에 구분된 보행자 통로가 없어 차와 어린이들이 서로 엉켜 다녔다. 인근 한 지점에서는 2023년 7월 12세 아이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기도 했다. 초교 1, 2학년쯤 돼 보이는 어린이가 도로를 뛰어가다 차와 부딪힐 뻔한 아찔한 광경도 목격했다. 학교 앞 이면도로 곳곳의 불법 주차 차들도 어린이 안전을 위협했다. 불법 주정차 차들 사이로 아이들이 튀어나오면 차와 부딪히기 십상이다. 운전자의 시야를 가리기 때문이다. 2021년 10월부터 스쿨존 내 모든 형태의 주정차가 금지됐지만 여전히 지켜지지 않고 있었다. 주민들은 ‘스쿨존 과속’ 문제도 지적했다. 교통지도원 80대 송모 씨는 “언덕에서 내려오는 차들이 너무 빨리 달린다. 매일 아이들이 차에 치일까봐 마음 졸인다”고 말했다.스쿨존 어린이 사고는 연중 ‘가정의 달’인 5월에 가장 많이 일어난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2024년 최근 3개년 5월에 벌어진 스쿨존 어린이 보행자 사고는 총 183건이었다. 연중 사고의 12%가 이 시기에 몰려 있어 ‘사고가 가장 많은 달’이었다. 어린이 부상자도 3년간 5월에만 191명이 발생해 총 부상자의 12%를 차지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22∼2024년 3년간 매년 2명씩, 총 6명의 어린이가 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숨졌다. 상대적으로 날씨가 풀려 외부 활동이 늘어나는 4∼7월에 일어났다. 한국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날씨가 따뜻해져 어린이들의 야외 활동이 늘어나는 3월부터 사상자가 증가해 5월에 정점을 찍는 추세”라며 “어린이보호구역 등에서 운전에 특히 유의해야 할 시기”라고 전했다. ● 스쿨존 단속 결과 음주 운전, 속도위반… 안전 위협 서울경찰청에 따르면 서울 지역 31개 경찰서가 각 학교 개학 시즌인 올해 3월 4일부터 4월 25일까지 8차례 스쿨존 집중 단속을 실시한 결과 신호 위반, 보행자 보호 위반 등 교통 법규 위반이 총 428건 적발됐다. 이 중에는 음주 운전도 40건 있었다. 도로교통공단이 3월 서울과 대전 2곳의 스쿨존에서 실시한 현장 조사에서 신호등이 없는 스쿨존 횡단보도 앞에서 주변에 보행자가 없을 때 ‘일시 정지’ 원칙을 지킨 운전자는 한 명도 없었다. 2022년 개정된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스쿨존 횡단보도에서는 사람이 있든 없든 반드시 일시 정지해야 한다. 보행자가 있는 경우에도 운전자의 8.6%(105대 중 9대)만이 일시 정지했다. 체구가 작고, 도로에 뛰어들기 쉬운 어린이 보행자를 보호하기 위해 2022년 7월 스쿨존 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 앞 일시 정지 의무 조항이 시행됐지만, 3년이 지나도록 지켜지지 않고 있다.● “어린이 보행로 확보하고 바닥 요철 포장 늘려야” 스쿨존이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1995년으로, 30년이 지났다. 어린이 통행이 많은 초등학교, 유치원 등 인근에서 사고를 막기 위해 도입됐다. 2022년부터는 ‘어린이가 자주 왕래하는 곳 중 조례로 정하는 시설 및 장소’로 지정 범위를 넓혔다. 다만 안전 시설물 설치 등은 여전히 지방자치단체 자율이다. 그 때문에 일부 필수 안전 시설을 의무 설치하도록 법에 규정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문가들은 어린이를 위한 보행로 확보가 가장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임 연구원은 “보행로와 차도를 확실히 구분하는 게 중요하다”며 “좁은 이면도로라도 바닥 색상이나 포장 재질을 달리해 보행로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단속도 중요하지만 운전자가 자발적으로 교통 법규를 준수하도록 유도하는 시설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김진유 경기대 도시교통학과 교수는 “스쿨존에 바닥 요철 포장을 늘리면 운전자 입장에서 스쿨존을 피부로 체감을 할 수 있고 속도 제한 효과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 등 외국에는 스쿨존 근처에 주정차를 어렵게 만드는 시설을 설치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영국, 독일에서는 화분형 구조물 등의 장애물을 곳곳에 설치하거나 길을 직선이 아니라 곡선으로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스쿨존 불법 주정차를 사전에 차단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운전자가 어린이 등 교통 약자를 배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도로교통공단 관계자는 “어린이보호구역은 물론이고 학원, 상가 밀집 지역을 운행할 때 보행 중인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스웨덴은 ‘홈존’ 시행… 스쿨존보다 넓게 보호‘차는 사람보다 느리게’ 제한유럽 등 선진국은 학교 인근 스쿨존(어린이보호구역)에서 사고를 막기 위한 다양한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대부분 운전자의 편의보다 어린이의 안전에 초점을 맞춘 정책들이다.스웨덴은 스쿨존보다 더 넓은 구역을 아동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홈존(Home zone)’을 운영하고 있다.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활동하는 모든 생활 반경을 특수한 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것이다. 학교 주변뿐만 아니라 근처 주택가, 놀이터, 골목길 등 아이들이 자주 다니는 곳을 홈존으로 지정해 주행 속도 등을 통제한다. 홈존 안에서는 차가 보행자에게 반드시 통행을 양보해야 하고 차의 주행 속도는 보행자의 걸음걸이 속도(시속 약 7km)를 초과할 수 없다.네덜란드는 이와 비슷한 ‘보너르프(Woonerf)’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보너르프는 네덜란드어로 ‘사람이 살고 있는 거리(Living street)’란 뜻이다. 좁은 도심에서 보행자의 안전을 먼저 보호한다는 취지로, 1960년대 네덜란드에서 차가 크게 늘어 도심 보행자 사고가 늘자 도입한 제도다. 보너르프로 정해진 도로에서는 보행자가 도로 폭 전부를 사용해 걸어 다닐 수 있다. 반면 운전자는 주변 보행자들의 통행 속도보다 느리게 차를 몰아야 한다. 이 구역에는 바닥에 각종 요철과 장애물이 설치돼 있고, 길도 직선이 아니라 구불구불한 형태로 뚫려 있다. 차 속도를 자연스레 늦추고 불법 주정차가 어렵도록 유도한 것이다. 1967년 네덜란드 정부는 도로교통법을 개정하고 보너르프 제도를 법제화했다.영국도 최대 교통량이 시간당 100대 미만, 총길이 600m 미만인 도로는 노면 포장, 장애물 설치 등을 통해 ‘보행자 친화적’ 도로로 바꾸고 있다. 등하교 시간에 학교 앞 도로는 일시적으로 차량 출입을 막는 ‘스쿨 스트리트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호주는 차량 운행 속도를 시속 10km 이하로 제한하는 ‘공존공간(Shared Zone)’을 운영 중이다.우리나라도 선진국처럼 학교 주변 골목길 등까지 넓게 보호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2022년 서울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2011∼2020년 서울 지역 스쿨존에서 발생한 13세 미만 어린이 교통사고 총 1391건 중 75.8%(1055건)는 차로가 1, 2개인 좁은 도로에서 발생했다. 반면 5차로 이상 넓은 도로에서는 스쿨존 사망 사고가 한 건도 없었다. 이에 보고서는 “협소한 도로가 많은 지역에는 어린이 안전을 보호할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공동 기획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 payback@donga.com▽김보라(국제부) 김수연(경제부) 박종민(산업1부)서지원(사회부) 오승준(산업2부) 기자}

    • 2025-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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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배지 스스로 뗀 ‘재야 같은 의원’, 전광훈과 창당 ‘아스팔트 보수’로

    “‘재야 같은 국회의원’을 하기로 작심을 한 것이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의 15대 국회의원 동기인 이재오 민주화기념사업회 이사장은 1996년 12월 26일 신한국당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 이후 김 후보와 자신은 국회의원의 상징인 금배지를 달지 않았다는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신한국당은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연내에 처리하겠다는 당론 아래 야당 의원 없이 단독으로 새벽 본회의를 소집해 파견근로제와 파트타임제 등으로 노동유연성을 확대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항의하는 차원에서 ‘금배지’를 떼버렸다는 얘기다. 이 이사장은 “이 일이 김 후보에게 국회의원으로서 전환점이 됐을 것”이라며 “소속 당이 옳지 못한 것, 바르지 못한 일을 할 때에도 싸워야 한다는 생각을 그때 가진 것”이라고 했다. 비난의 화살은 노동운동계 출신이자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동참했던 김 후보를 향했다. 그는 석 달 뒤인 1997년 3월 28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의회 민주주의에 깊은 상처를 남기는 단독 처리에 동참한 이후 많은 눈물을 흘렸고 회한 속에서 우리 국민이 어제의 국민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노동법 날치기 통과에 대해 사죄했다. 하지만 소장파의 대표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2012년 대선 경선 이후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을 당시 강성 보수층을 대표하는 ‘아스팔트 우파’로 변모하면서 극과 극을 오간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받는다.● ‘김결식’ ‘뇌가 발에 달린 사람’ 별명 붙어이후 김 후보는 홍준표 이재오 안상수 등 초선 의원들과 함께 당내 소장파로 활동하며 “국민 입장에서 당을 운영하라”며 당에 쓴소리를 냈다. 약자의 편이 되고자 했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늘어난 결식아동 문제를 지나칠 수 없어 결식아동을 위한 예산 확보에 앞장서다 ‘김결식’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보스에게 정치자금을 받는 계파정치에서 벗어나 소신정치를 하기 위해선 부정부패에서 자유로워야 했고 대신 허리띠를 졸라매고 현장을 찾아 주민들과 만나며 지역구를 다졌다. 허숭 안산도시공사 사장은 김 후보에 대해 “‘뇌가 발에 달린 사람’이라는 별명이 있을 정도로 현장주의자”라며 “궤변적, 사변적이지 않고 현장과 사람을 중시하고 내 생각과 달라지더라도 현장을 보고 나를 적응시켜 가기 때문에 현실주의적이고 유연하다”고 평가했다. 재선 시절인 2003년 12월 최병렬 당시 대표로부터 공천심사위원장을 제안받았다. 검찰의 대선 자금 수사로 ‘차떼기당’이라는 오명을 쓴 상황에서 부정부패와 거리가 먼 소장파 김 후보에게 혁신 공천을 맡긴 것이었다. 김 후보는 최 대표를 포함해 중진 37명을 불출마시켰고 결국 노무현 당시 대통령 탄핵에 따른 역풍으로 총선은 패배했지만 공천 혁신 사례로 남았다.● ‘도지사인데’ 논란… “꼰대스러움에 벌어진 일”김 후보는 3선 의원 시절인 2006년 지방선거 때 경기도지사에 도전해 정보통신부 장관을 지낸 민주당 진대제 후보에게 승리했다. 그는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며 대중교통 환승할인제, GTX 정책 등 도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교통 정책을 펼쳐서 호평을 받았다. 주말엔 택시 운전을 직접 하면서 경기도 곳곳을 뛰었다. 재선 도지사 시절인 2011년 12월에는 남양주소방서 119 상황실에 전화를 걸어 “나는 도지사 김문수입니다”라고 관등성명을 요구했다가 장난전화로 오인한 직원이 되묻자 “도지사가 누구냐고 이름을 묻는데 답을 안 해?”라고 되묻는 녹취록이 공개되며 ‘갑질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김 후보의 한 측근은 “규율상 관등성명을 대도록 돼 있다”면서도 “김 후보의 꼰대스러움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말했다. 도지사 이후 김 후보의 정치 인생은 순탄치 않았다. 2012년엔 대선 경선에 출마했으나 박근혜 후보에게 크게 밀렸다. 2014년 3선 경기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한 뒤 당의 ‘험지 출마’ 요구에 2016년 대구 수성갑에 출마했으나 민주당 김부겸 후보에게 24.6%포인트 차로 졌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치러진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 후보로 나섰지만 패배했다. 김 후보가 점차 강성 보수로 변모한 것은 박 전 대통령 탄핵 국면부터다. 2017년부터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참석하며 ‘아스팔트 우파’로 활동했고 2020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함께 기독자유통일당을 창당했다. 인명진 목사는 “김 후보가 순진하게 전광훈한테 가서 빠졌다. 만날 전 목사를 따라다니고 볼품사납더라. 그때 ‘저 사람 저러면 안 되는데’ 생각했다”고 말했다. ● ‘막말’ 보수 유튜버에서 노동장관 거쳐 대선 주자로김 후보는 ‘김문수TV’를 개설해 유튜버로 활동하며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총살감”이라고 막말을 해 거센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2년엔 ‘불법 파업에 손배 폭탄이 특효약’이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려 “노동자들이 손배소를 가장 두려워한다”며 “민사소송을 오래 끌수록 굉장히 신경 쓰이고 가정이 파탄 나게 된다”고 말해 빈축을 샀다. 다만 김 후보의 국회의원 보좌관 출신인 차명진 전 의원은 “좌파들의 속성을 잘 알아서 타협에 능하다”고 말했다. 김 후보가 다시 제도권으로 들어온 건 윤석열 정부에서 2022년 경제사회노동위원장과 2024년 고용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되면서다. 그러던 김 후보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난해 12월 11일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 의원의 사과 요구에 혼자 자리를 지키는 모습으로 ‘반탄(탄핵 반대)’ 진영의 주목을 받았고 결국 3일 국민의힘 대선 후보로 선출됐다. 김 후보의 스승이자 뉴라이트 성향의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는 “김 후보는 전반부 25년은 사회주의 운동을, 후반부 25년은 자유주의 운동을 하며 한 50년간 사회운동을 한 셈”이라고 말했다.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

    • 2025-0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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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수, 서울대 출신 위장취업 1세대… “올곧은 게 장점이자 단점”

    “초지일관해야 한다.”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1970년대 한일산업(현 도루코)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한 도진곤 씨(78)는 김 후보가 당시 이 같은 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는 당시 이 회사 노조위원장을 맡아 회사와의 임금 및 처우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노동운동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도 씨는 “김 후보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변함이 없고 옆도 뒤도 안 돌아본다”며 “편하게 표현하면 약간 꼴통인 것 같다. 독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사적으로 만나면 아주 부드럽고 인간미가 철철 넘쳤다”고 회상했다. 동아일보가 만난 김 후보의 지인들은 김 후보에 대해 “정직하고 평생 기득권 편에 서지 않았다”는 평가부터 “지나치게 강성이고 고집이 너무 세다”는 주장까지 엇갈린 지적을 내놨다. ● 대학 시절 두 차례 제적 당해 김 후보는 1951년 경주 김씨 집성촌이 모여 살던 경북 영천군 황강동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김 후보는 비교적 부족함 없이 자랐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친척 보증을 잘못 서서 읍내에서 판잣집 생활을 하게 됐다. 김 후보는 “열등감에 빠지게 만드는 큰 요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후보는 그 와중에도 성적이 우수해 1964년 영천군에서 영남 지역 명문학교인 경북중학교에 진학한 세 명 안에 들었다. 김 후보는 중학교 시절부터 정의감을 보였다고 한다. 김 후보의 중·고·대학 동창인 이원덕 전 노무현 정부 대통령사회정책수석은 “김 후보는 덩치 큰 친구들이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힐 때 주저하지 않고 책상에서 딱 일어나서 ‘하지 마라’고 나섰다”고 했다. 김 후보는 경북고에 진학해서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나섰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구 명덕로터리에 있는 2·28 기념탑까지 뛰어가 ‘3선 개헌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읽은 것. 이 전 수석은 “김 후보가 직접 성명서를 쓰고 반마다 돌면서 ‘우리 가서 낭독하자’고 하나하나 다 모았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 일로 무기정학을 당했다가 2주일 뒤 복학했다.김 후보는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친구 아버지와 사촌형으로부터 경영학이 ‘신식 학문’이란 권유를 받아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권에 발을 들이는 계기를 맞았다. 학교 선배였던 심재권 전 의원으로부터 “대학에 출세나 하려고 왔느냐”란 얘기를 듣고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한 것. 김 후보는 연구회를 통해 용두동 청계천변 판자촌에 가서 살고, 고 김근태 전 의원의 권유로 대학생 신분을 숨기고 구로공단의 드레스 미싱 공장에 취업한 위장취업 1세대였다. 김 후보는 전국 학생 시위 관련으로 1차 제적을 당했다. 제적 시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났고 동대문시장 봉제공장 재단보조로 일했다. 1973년 제적이 풀려 학교에 돌아갔다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재차 제적을 당했다. ● 노동운동 이끌다 2년 6개월 옥살이 김 후보는 결국 노동운동 외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보일러 기술을 배워 1976년 한일산업에 입사했다. 한동안 착실하게 일하면서 동료들의 신뢰를 쌓은 뒤 1978년 노조 교육선전부장을 거쳐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도 씨는 “김 후보가 아주 조리 있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얘기하는데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저는 나무를 보고 얘기하면 이 친구는 숲을 보고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당시 임금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김 후보는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선 뒤 남영동 치안본부대공분실에 끌려갔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서울대 선후배들과 조사를 받다가 49일 만에 풀려났다. 이때 김 후보가 서울대 출신인 게 노동계에 처음 알려지면서 오히려 명성이 높아졌다. 이후 김 후보는 한국노총 금속노조 남서울지역지부에서 청년부장을 맡아 산하 노조 지원을 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가 1980년 5월 비상계엄 뒤 삼청교육대 정화 대상자로 지목됐고 결국 회사에서 해고됐다. 금속노조 남서울지부 활동 중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던 설난영 씨를 만났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란 설 씨와 말투, 문화가 달랐지만 마음이 끌렸다. 김 후보가 설 씨가 동생과 함께 살던 자취방에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 결국 1981년 결혼했다. 설 씨와의 슬하에 딸 동주 씨를 뒀다. 당초 아들이면 ‘동지’로 이름을 지으려 했다고 한다. 그는 1984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를 설립해 부위원장을 맡았고, 19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도 맡았다.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김 후보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 당시 함께 생활한 김준용 국민노조위원장은 “공장 일 후 야학을 하던 시절에 우리가 일 끝나고 자취방으로 모여서 밥 먹고 공부하고 곯아떨어지면 문수 형님이 방을 다 청소하고 동지들 양말 전부 빨아 개고 밥도 미리 해놨다”며 “우리를 진심으로 대한 형님”이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1985년 8월 군사독재반대투쟁을 내건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창립에 참여해 지도위원을 맡았다. 이후 공안당국의 감시가 심해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숨어 지냈다. 1986년에는 5·3 인천항쟁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열린 신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현판식에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등 민주화운동 세력이 총집결해 벌인 시위였다. 김 후보의 보좌관을 지낸 차명진 전 의원은 “그날 집회에서 김 후보를 처음 봤다”며 “머리에 긴 가발을 쓰고 여장을 한 채 집회를 지도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는 인천항쟁 사흘 만인 1986년 5월 6일 서울 잠실의 한 가정집에서 검거됐다. 김 후보는 보안사령부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했지만 서노련에서 함께 활동한 심상정 전 의원의 위치 등을 불지 않고 버텼다. 김 후보는 1심에서 징역 4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이 확정됐다. 이후 2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1988년 개천절 특사로 출소했다. ● 민중당 선거 참패 2년 뒤 민자당 입당 김 후보는 1990년 고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과 제도권 정치에 도전하기로 하고 민중당을 창당했다. 김 후보는 노동위원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대변인을 맡았다. 김 후보는 “나는 울산 현대자동차, 거제 대우조선 등 대규모 공장에 민중당의 지지자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많이 바쳤다”고 했다. 그러나 민중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후보를 낸 51개 지역구에서 전패했고 정당의 존립에 필요한 득표율 2%도 못 받아 해산됐다. 이 이사장은 “선거에서 참패한 뒤 계룡산 동학사 밑에서 마지막 총회를 열고 향후 진로에 대해 2박 3일 동안 밤샘 토론을 했다”며 “재창당이냐 해산이냐를 두고 결론은 ‘재창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각자 정치적 진로는 알아서 결정하자’였다”고 전했다.김 후보는 2년 뒤인 1994년 3월 “지금 여당이 개혁을 잘하고 있고 가장 개혁적인 정치인이 김영삼 대통령”이라며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전격 입당한다. 김 후보의 서울대 은사인 안병직 명예교수는 “우리가 운동할 때 가졌던 휴머니즘을 현실에 제대로 접목해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입당에 찬성했다고 한다. 운동권의 전설이었던 김 후보가 야당도 아닌 여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과거 동료들로부터 변절자, 배신자 등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이해찬 전 의원은 “말로는 개혁을 내세우지만 노선의 포기이자 일종의 변절”이라고 했다. 2011년 이소선 여사가 별세했을 때 장례식장을 찾은 김 후보에게 “변절자가 왜 왔느냐”고 쏘아붙이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제도권에 들어간 김 후보는 1996년 부천 소사에서 세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경기도지사 재선을 거치면서 강성 우파로 변신했다. 사회주의국가의 몰락과 북한 인권의 실상 등을 지켜보면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차 전 의원은 “김 후보는 동지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고통을 바깥으로 표현하진 않았다”며 “김 후보에겐 지적인 고집이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는 데 오래 걸렸다. 뼈를 깎는 전향의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김 후보를 한일산업 노조위원장 시절부터 지켜본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목사)은 “(김 후보는) 올곧은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좌우를 다 겪은 사람이다. 다 겪었기 때문에 중도”라며 웃었다.조권형 기자 buzz@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5-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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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수, 서울대 출신 위장취업 1세대 … “올곧은 게 장점이자 단점”

    “초지일관해야 한다.”국민의힘 김문수 대선 후보와 1970년대 한일산업(현 도루코)에서 함께 노동운동을 한 도진곤 씨(78)는 김 후보가 당시 이 같은 말을 강조했다고 전했다. 김 후보는 당시 이 회사 노조위원장을 맡아 회사와의 임금 및 처우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노동운동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도 씨는 “김 후보는 자기 생각이 옳다고 생각하면 변함이 없고 옆도 뒤도 안 돌아본다”며 “편하게 표현하면 약간 꼴통인 것 같다. 독하게 끝까지 밀어붙이면서도 사적으로 만나면 아주 부드럽고 인간미가 철철 넘쳤다”고 회상했다. 동아일보가 만난 김 후보의 지인들은 김 후보에 대해 “정직하고 평생 기득권 편에 서지 않았다”는 평가부터 “지나치게 강성이고 고집이 너무 세다”는 주장까지 엇갈린 지적을 내놨다. ● 대학 시절 두 차례 제적 당해김 후보는 1951년 경주 김씨 집성촌이 모여 살던 경북 영천군 황강동에서 7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김 후보는 비교적 부족함 없이 자랐으나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가 친척 보증을 잘못 서서 읍내에서 판잣집 생활을 하게 됐다. 김 후보는 “열등감에 빠지게 만드는 큰 요인이었다”고 회고했다. 김 후보는 그 와중에도 성적이 우수해 1964년 영천군에서 영남 지역 명문학교인 경북중학교에 진학한 세 명 안에 들었다.김 후보는 중학교 시절부터 정의감을 보였다고 한다. 김 후보의 중·고·대학 동창인 이원덕 전 노무현 정부 대통령사회정책수석은 “김 후보는 덩치 큰 친구들이 힘이 약한 친구를 괴롭힐 때 주저하지 않고 책상에서 딱 일어나서 ‘하지 마라’고 나섰다”고 했다.김 후보는 경북고에 진학해서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의 3선 개헌 반대 시위에 나섰다. 고등학교 친구들과 대구 명덕로터리에 있는 2·28 기념탑까지 뛰어가 ‘3선 개헌에 반대한다’는 성명서를 읽은 것. 이 전 수석은 “김 후보가 직접 성명서를 쓰고 반마다 돌면서 ‘우리 가서 낭독하자’고 하나하나 다 모았다”고 했다. 김 후보는 이 일로 무기정학을 당했다가 이주일 뒤 복학했다.김 후보는 1970년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했다. 친구 아버지와 사촌형으로부터 경영학이 ‘신식 학문’이란 권유를 받아서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운동권에 발을 들이는 계기를 맞았다. 학교 선배였던 심재권 전 의원으로부터 “대학에 출세나 하려고 왔느냐”란 얘기를 듣고 ‘후진국사회연구회’에 가입한 것. 김 후보는 연구회를 통해 용두동 청계천변 판자촌에 가서 살고, 고 김근태 전 의원의 권유로 대학생 신분을 숨기고 구로공단의 드레스 미싱 공장에 취업한 위장취업 1세대였다.김 후보는 전국 학생 시위 관련으로 1차 제적을 당했다. 제적 시기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여사를 만났고 동대문시장 봉제공장 재단보조로 일했다. 1973년 제적이 풀려 학교에 돌아갔다가 1974년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재차 제적을 당했다. ● 노동운동 이끌다 2년 6개월 징역형김 후보는 결국 노동운동 외길을 가기로 결심하고 보일러 기술을 배워 1976년 한일산업에 입사했다. 한동안 착실하게 일하면서 동료들의 신뢰를 쌓은 뒤 1978년 노조 교육선전부장을 거쳐 위원장 직무대리를 맡았다. 도 씨는 “김 후보가 아주 조리 있게 또박또박 정확하게 얘기하는데 보통 똑똑한 사람이 아니었다”며 “저는 나무를 보고 얘기하면 이 친구는 숲을 보고 얘기하더라”고 말했다. 김 후보는 당시 임금 투쟁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김 후보는 1980년 신군부가 들어선 뒤 남영동 치안본부대공분실에 끌려갔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남민전) 사건과 관련해 서울대 선후배들과 조사를 받다가 49일 만에 풀려났다. 이때 김 후보가 서울대 출신인 게 노동계에 처음 알려지면서 오히려 명성이 높아졌다. 이후 김 후보는 한국노총 금속노조 남서울지역지부에서 청년부장을 맡아 산하 노조 지원을 하는 등 활동 범위를 넓혔다. 그러다가 1980년 5월 비상계엄 뒤 삼청교육대 정화 대상자로 지목됐고 결국 회사에서 해고됐다.금속노조 남서울지부 활동 중 세진전자 노조위원장이었던 설난영 씨를 만났다.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순천에서 자란 설 씨와 말투, 문화가 달랐지만 마음이 끌렸다. 김 후보가 설 씨가 동생과 함께 살던 자취방에서 도피 생활을 하면서 결국 1981년 결혼했다. 설 씨와의 슬하에 딸 동주 씨를 뒀다. 당초 아들이면 ‘동지’로 이름을 지으려 했다고 한다. 그는 1984년 한국노동자복지협의회를 설립해 부위원장을 맡았고, 1985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사무국장도 맡았다. 이소선 여사는 생전에 김 후보를 “내 아들”이라고 불렀다고 전해진다.당시 함께 생활한 김준용 국민노조위원장은 “공장 일 후 야학을 하던 시절에 우리가 일 끝나고 자취방으로 모여서 밥 먹고 공부하고 곯아떨어지면 문수 형님이 방을 다 청소하고 동지들 양말 전부 빨아 개고 밥도 미리 해놨다”며 “우리를 진심으로 대한 형님”이라고 말했다.김 후보는 1985년 8월 군사독재반대투쟁을 내건 서울노동운동연합(서노련) 창립에 참여해 지도위원을 맡았다. 이후 공안당국의 감시가 심해져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숨어 지냈다. 1986년에는 5·3 인천항쟁에 참여했다. 인천에서 열린 신민당의 개헌추진위원회 현판식에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 등 민주화운동 세력이 총집결해 벌인 시위였다. 김 후보의 보좌관을 지낸 차명진 전 의원은 “그날 집회에서 김 후보를 처음 봤다”며 “머리에 긴 가발을 쓰고 여장을 한 채 집회를 지도했다”고 전했다.김 후보는 인천항쟁 사흘 만인 1986년 5월 6일 서울 잠실의 한 가정집에서 검거됐다. 김 후보는 보안사령부로부터 갖은 고문을 당했지만 서노련에서 함께 활동한 심상정 전 의원의 위치 등을 불지 않고 버텼다. 김 후보는 1심에서 징역 4년, 항소심에서 징역 3년을 받고 확정됐다. 이후 2년 6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다가 1988년 개천절 특사로 출소했다. ● 민중당 선거 참패 2년 뒤 민자당 입당김 후보는 1990년 고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장과 제도권 정치에 도전하기로 하고 민중당을 창당했다. 김 후보는 노동위원장, 이재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대변인을 맡았다. 김 후보는 “나는 울산 현대자동차, 거제 대우조선 등 대규모 공장에 민중당의 지지자를 만들기 위해 시간을 많이 바쳤다”고 했다. 그러나 민중당은 1992년 14대 총선에서 후보를 낸 51개 지역구에서 전패했고 정당의 존립에 필요한 득표율 2%도 못 받아 해산됐다. 이 이사장은 “선거에서 참패한 뒤 계룡산 동학사 밑에서 마지막 총회를 열고 향후 진로에 대해 2박 3일 동안 밤샘 토론을 했다”며 “재창당이냐 해산이냐를 두고 결론은 ‘재창당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각자 정치적 진로는 알아서 결정하자’였다”고 전했다.김 후보는 2년 뒤인 1994년 3월 “지금 여당이 개혁을 잘하고 있고 가장 개혁적인 정치인이 김영삼 대통령”이라며 당시 여당인 민주자유당에 전격 입당한다. 김 후보의 서울대 은사인 안병직 명예교수는 “우리가 운동할 때 가졌던 휴머니즘을 현실에 제대로 접목해 실현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며 입당에 찬성했다고 한다. 운동권의 전설이었던 김 후보가 야당도 아닌 여당에 입당한 것을 두고 과거 동료들로부터 변절자, 배신자 등 거센 비난이 쏟아졌다. 당시 이해찬 전 의원은 “말로는 개혁을 내세우지만 노선의 포기이자 일종의 변절”이라고 했다. 2011년 이소선 여사가 별세했을 때 장례식장을 찾은 김 후보에게 “변절자가 왜 왔느냐”고 쏘아붙이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제도권에 들어간 김 후보는 1996년 부천 소사에서 세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경기도지사 재선을 거치면서 강성 우파로 변신했다. 사회주의국가의 몰락과 북한 인권의 실상 등을 지켜보면서 변화가 생긴 것이다. 차 전 의원은 “김 후보는 동지들에게 손가락질 받는 고통을 바깥으로 표현하진 않았다”며 “김 후보에겐 지적인 고집이 있어서 자유민주주의자가 되는 데 오래 걸렸다. 뼈를 깎는 전향의 과정이었다”고 전했다. 김 후보를 한일산업 노조위원장 시절부터 지켜본 인명진 전 자유한국당 비대위원장(목사)은 “(김 후보는) 올곧은 게 장점이자 단점”이라며 “좌우를 다 겪은 사람이다. 다 겪었기 때문에 중도”라며 웃었다. 조권형 기자 buzz@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5-0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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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압수수색 영장에 목걸이-명품백 등 포함… 코바나 금고도 확인

    검찰이 30일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자택인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와 김건희 여사가 운영하던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김 여사가 건진법사 전성배 씨(65)로부터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명품 백 등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 전 씨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피의자로, 김 여사는 압수수색 대상자로 적시됐다. 김 여사가 피의자는 아니지만 ‘참고인’으로 조사를 받아야 한다는 의미다. 윤 전 대통령은 영장에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이날 확보한 김 여사의 휴대전화(아이폰), 메모장 등을 분석해 통일교 간부 선물 전달 의혹, 캄보디아 사업 이권 개입 의혹 등을 살펴볼 것으로 전망된다.● 尹 파면 26일 만에 압색… 금고까지 확인 30일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단장 박건욱 부장검사)은 이날 오전 8시경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에 도착한 뒤 대통령경호처 측에 영장을 보여준 뒤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이날 투입된 수사관들에게는 ‘정장을 착용하라’는 지시도 내려왔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보인다. 영장에 적시된 압수수색 대상에는 목걸이, 명품 백, 김 여사의 휴대전화, PC 등이 포함됐다. 윤 전 대통령 부부 측 변호인에 따르면 검찰은 아크로비스타가 김 여사의 실거주지인지 확인하기 위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기록도 요구했다고 한다. 검찰은 오후 3시 40분까지 아크로비스타 내 윤 전 대통령 사저, 아크로비스타 지하 상가의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 김 여사 수행비서의 자택과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다만 PC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 내부에 금고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금고는 잠겨 있었고, 비밀번호는 김 여사의 수행비서가 알고 있었다. 해당 비서의 자택 역시 이날 압수수색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 절차가 끝난 뒤 금고 개방이 이뤄졌다고 한다. 수행비서가 사무실로 도착한 후 검찰이 보는 앞에서 금고를 열었다. 검찰이 금고 내부를 확인했지만 내부엔 아무것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격 압색 왜… 목걸이-명품 백 전달 규명 현재 검찰은 통일교 전직 고위 간부 윤모 씨가 전 씨에게 ‘김 여사 선물 명목’으로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명품 백, 인삼 등을 전달한 정황을 수사 중이다.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목걸이, 명품 백 등이 실제 김 여사에게 전달됐는지 확인하려 한 것으로 알려졌다. 압수수색 영장에는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이날 압수수색에서 목걸이와 명품 백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통일교 안팎에선 윤 씨가 전 씨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캄보디아 공적개발원조(ODA) 사업을 수주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 여사에게 고가의 선물을 보내려 한 것 역시 사업 수주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윤 씨가 통일교 내부 강연에서 “윤 전 대통령을 독대했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주장하는 영상도 앞서 공개됐다. 전 씨 측은 목걸이와 명품 백의 행방에 대해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며 김 여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김 여사 측 역시 “목걸이와 명품 백 등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 ‘尹 사단’이던 지검장이 수사 지휘 건진법사 수사를 이끌고 있는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은 검찰 내 ‘특수통’으로 과거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그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수사한 여파로 문재인 정부 당시 한직을 떠돌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 2025-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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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檢, 김건희 휴대폰-메모장 확보 이어 금고도 확인…영장엔 ‘목걸이-명품백’ 적시

    검찰이 30일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의 자택인 아크로비스타와 김건희 여사가 운영하던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을 압수수색 한 것은 김 여사가 건진법사 전성배 씨(65)로부터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명품백 등을 건네받았다는 의혹을 확인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법원이 발부한 압수수색 영장에 전 씨는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 피의자, 김 여사는 참고인으로 적시됐다.검찰은 이날 확보한 김 여사의 휴대전화(아이폰), 메모장 등을 분석해 통일교 선물 전달 의혹, 캄보디아 사업 이권 개입 의혹 등을 살펴볼 것으로 전망된다.● 尹 파면 26일만에 압색… 금고까지 확인30일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동수사단(단장 박건욱 부장검사)은 이날 오전 8시경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에 도착한 뒤 대통령경호처 측에 영장을 보여준 뒤 압수수색을 시작했다. 이날 투입된 수사관들에게는 ‘정장을 착용하라’는 지시도 내려왔다고 한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로 보인다.영장에 적시된 압수수색 대상에는 목걸이, 명품백, 김 여사의 휴대전화, 개인 PC 등이 포함됐다. 윤 전 대통령 부부 측 변호인에 따르면 검찰은 아크로비스타가 김 여사의 실거주지인지 확인하기 위해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이용 기록도 요구했다고 한다.검찰은 오후 3시 40분까지 아크로비스타 내 윤 전 대통령 사저, 아크로비스타 지하상가의 옛 코바나컨텐츠 사무실, 김 여사 수행비서의 자택과 휴대전화 등을 압수수색했다. 다만 PC는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검찰은 압수수색 과정에서 옛 코바나콘텐츠 사무실 내부에 금고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 해당 금고는 잠겨 있었고, 비밀번호는 김 여사의 수행비서가 알고 있었다. 해당 비서의 자택 역시 이날 압수수색 대상이었기 때문에 그 절차가 끝난 뒤 금고 개방이 이뤄졌다고 한다. 수행비서가 사무실로 도착한 후 검찰이 보는 앞에서 금고를 열었다. 검찰이 금고 내부를 확인했지만 내부엔 아무 것도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격 압색 왜…목걸이-명품백 전달 규명현재 검찰은 통일교 전직 고위 간부 윤모 씨가 전 씨에게 ‘김 여사 선물 명목’으로 다이아몬드 목걸이와 명품백, 인삼 등을 전달한 정황을 수사 중이다.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목걸이, 명품백 등이 실제 김 여사에게 전달됐는지 확인하려 한 것으로 전해졌다.압수수색 영장에는 “공직자 직무와 관련해 공직자의 배우자에게 선물을 제공했다”고 적시된 것으로 알려졌다. 전 씨가 김 여사에게 ‘윤 전 대통령의 취임식에 통일교 전 간부를 초청해달라’는 취지의 청탁을 했다는 내용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날 압수수색에서 목걸이와 명품백은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통일교 안팎에선 윤 씨가 전 씨를 통해 윤석열 정부의 캄보디아 ODA 사업을 수주하려 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김 여사에게 고가의 선물을 보내려 한 것 역시 사업 수주를 위해서라는 것이다. 윤 씨가 통일교 내부 강연에서 “윤 전 대통령을 독대했다. 많은 얘기를 나눴다”고 주장하는 영상도 앞서 공개됐다.전 씨 측은 목걸이와 명품백의 행방에 대해 “잃어버렸다”고 주장하며, 김 여사에게 전달되지 않았다고 해명하고 있다. 김 여사 측 역시 “목걸이와 명품백 등을 받은 적 없다”는 입장이다.● 과거 ‘尹 사단’이던 지검장이 수사 지휘건진법사 수사를 이끌고 있는 신응석 서울남부지검장은 검찰 내 ‘특수통’으로 과거 ‘윤석열 사단’으로 분류됐던 인물이다. 그는 한명숙 전 국무총리 사건을 수사한 여파로 문재인 정부 당시 한직을 떠돌다 윤석열 정부 들어 검사장으로 승진했다.이날 경찰은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아크로비스타 정문 앞에 통제선을 설치하고, 경비원들은 취재진과 시위대의 단지 출입을 막았다. 윤 전 대통령 부부에 대한 압수수색이 시작됐다는 소식을 듣고 몰려든 20여 명의 지지자와 유튜버들은 아크로비스타 정문 앞에서 “압수수색 중단하라”, “검찰은 귀가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검찰을 비판했다.조승연 기자 cho@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

    •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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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리 이장하지”라던 이재명, 시장 되자 “성남 빚 지불유예” 주목

    “내가 무슨 시장이에요. 차라리 이장을 하고 말지.” 2004년 3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 바닥에 앉아 있던 40세의 이재명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노동조합 활동가 정해선 씨의 “이 변호사가 시장으로 나와 보라”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남의료원 설립 운동을 했던 이 후보는 당시 성남시의회에서 병원 설립 운영 조례안 심의가 일방적으로 보류되자 시의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잡아끈 혐의(특수공무집행 방해)로 고발돼 수배되자 은신하던 중이었다. 병원 설립 운동을 함께 했던 정 씨는 “이 후보는 당시 수배 중이라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 숨어 씻지도 못한 모습이었다”며 “울면서 ‘선거에 나와 달라’고 했는데 고민을 많이 했는지 이후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이 후보는 자서전에서 정 씨의 제안에 대해 “정치로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며 “내 자리는 늘 가장 치열한 전선이었다”고 밝혔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 제기 앞장서이 후보는 인권 변호사로서 수임한 노동 및 시국사건 외에도 해고무효 소송이나 뺑소니, 대여금 소송 등 민사 사건도 많이 수임했다. 그가 이름을 알린 건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으로서 2000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했을 때다. 이 후보와 함께 활동했던 인사는 “김대중 정부였고 유죄 판결을 받은 김병량 당시 시장도 원래 우리가 밀던 분”이라며 “그럼에도 부당한 일에 반대하는 이 후보를 보면서 패기 넘치는 변호사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그는 2002년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최철호 전 KBS PD와 김병량 당시 시장의 통화 내용을 폭로했고 이른바 ‘검사 사칭’으로 벌금 150만 원 형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후보가 최 전 PD에게 “추가 질문사항을 적어주거나, 답변을 듣다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사인을 보냈다”고 했다. 이 후보는 2005년 이후 폭력, 살인, 강간 사건도 변호했다. 이종조카의 절도 혐의와 친조카의 살인 혐의를 변호한 것도 이때였다. 이 후보는 2007년 8월엔 성남 조직폭력배였던 국제마피아파 김찬종 씨가 반대파를 습격한 사건을 변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와 함께 일했던 변호사는 “시민이 사무실에 와서 사건을 맡긴 것이고, 수임 당시 이 후보가 상담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이민석 변호사는 “파크뷰 사건은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를 드러낸 일을 한 것이지만 살해범인 조카나 동거녀 살해범 등을 변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 실용주의자 vs 포퓰리스트2010년 제19대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이 후보는 “전임 시장이 진 빚 5200억 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이목을 끌었다. 이 후보는 이후 3년 6개월간 예산 삭감, 긴축 재정 등을 통해 모든 빚을 갚아 모라토리엄을 졸업했고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을 옆에서 지켜봤던 당시 성남시 공무원 오모 씨는 “2010년 진보계 시장이 당선되자 성남시에선 복지 욕구가 분출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들어줄 돈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며 “행정가로서 똑똑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반면 함께 성남에서 활동했던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 정모 씨는 “당시 국토교통부가 성남시에 돈을 갚으라고도 안 했는데 불필요한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며 정치적 쇼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성남시 개고기 유통시설 철거와 무상복지 정책 등도 이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이룬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이 후보는 2016년 국내 최대 규모 개고기 거래 시장인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 보관·도살시설을 유혈사태 없이 철거시켰다. 당시 철거 사업에 반대했던 김용북 현 모란시장상인회장(69)은 “시장 철거 반대 시위를 하다가 한 날은 다쳐서 누워 있는데 이 후보가 직접 찾아왔다”며 “손을 잡으면서 ‘고생이 너무 많다. 타 업종 전환 지원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위로해 마음이 녹았다”고 회상했다. 성남시 공무원으로서 철거를 담당했던 임진 전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은 “이 후보의 센 이미지 때문에 마치 무지막지하게 시장을 밀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며 “그러나 이 후보는 2년 넘게 상인들을 설득해 자진 철거하게 만들었다.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후보의 3대 무상복지 사업(청년배당, 무상산후조리지원, 무상교복)에 대해선 ‘포퓰리즘성 사업’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성남시의원이었던 A 씨는 “이 후보가 이미 조례가 완성돼 있는 무상급식은 적극 확대하지 않으면서 무상교복 조례만 계속 성남시의회에 올렸다. 상대 정당 소속 시의원들이 이를 부결시킬수록 자신의 몸값이 올라간다는 걸 알았던 것”이라고 했다.● ‘변방의 장수’에서 대선 유력 주자로변방의 장수였던 이 후보가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건 2016년 지방자치단체 예산권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으로 11일간 단식 농성을 하면서다. 그해 10월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이 후보는 제도권 정치인 중 처음으로 박 대통령 하야를 공개 주장했다. 이후 이 후보는 2017년 대선 경선 출마와 2018년 경기도지사를 거쳐 유력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 후보는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설화도 잦았다. 지난해 3월 민주당 대표였던 이 후보는 충남 당진 전통시장을 찾아 “왜 중국을 집적거리냐. 그냥 셰셰(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며 “양안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냐”고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안규영 기자 kyu0@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 2025-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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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차라리 이장하지”라던 이재명, 시장 되자 “성남 빚 지불유예” 주목

    “내가 무슨 시장이에요. 차라리 이장을 하고 말지.”2004년 3월 경기 성남시 수정구 주민교회 지하 기도실. 바닥에 앉아 있던 40세의 이재명 변호사(현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노동조합 활동가 정해선 씨의 “이 변호사가 시장으로 나와 보라”는 말에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성남의료원 설립 운동을 했던 이 후보는 당시 성남시의회에서 병원 설립 운영 조례안 심의가 일방적으로 보류되자 시의원들에게 욕설을 하거나 잡아끈 혐의(특수공무집행 방해)로 고발돼 수배되자 은신하던 중이었다. 병원 설립 운동을 함께 했던 정 씨는 “이 후보는 당시 수배 중이라 어둡고 습한 지하실에 숨어 씻지도 못한 모습이었다”며 “울면서 ‘선거에 나와 달라’고 했는데 고민을 많이 했는지 이후 2006년 성남시장 선거에 출마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이 후보는 자서전에서 정 씨의 제안에 대해 “정치로의 길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며 “내 자리는 늘 가장 치열한 전선이었다”고 밝혔다.●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 제기 앞장서이 후보는 인권 변호사로서 수임한 노동 및 시국사건 외에도 해고무효 소송이나 뺑소니, 대여금 소송 등 민사 사건도 많이 수임했다. 그가 이름을 알린 건 성남시민모임 집행위원장으로서 2000년 분당 파크뷰 특혜 분양 의혹을 제기했을 때다. 이 후보와 함께 활동했던 인사는 “김대중 정부였고 유죄 판결을 받은 김병량 당시 시장도 원래 우리가 밀던 분”이라며 “그럼에도 부당한 일에 반대하는 이 후보를 보면서 패기 넘치는 변호사라고 생각했다”고 전했다.이 과정에서 그는 2002년 5월 기자회견을 열고 최철호 전 KBS PD와 김병량 당시 시장의 통화 내용을 폭로했고 이른바 ‘검사 사칭’으로 벌금 150만 원 형을 받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이 후보가 최 전 PD에게 “추가 질문사항을 적어주거나, 답변을 듣다가 손가락을 동그랗게 만들어 사인을 보냈다”고 했다.이 후보는 2005년 이후 폭력, 살인, 강간 사건도 변호했다. 이종조카의 절도 혐의와 친조카의 살인 혐의를 변호한 것도 이때였다. 이 후보는 2007년 8월엔 성남 조직폭력배였던 국제마피아파 김찬종 씨가 반대파를 습격한 사건을 변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이 후보와 함께 일했던 변호사는 “시민이 사무실에 와서 사건을 맡긴 것이고, 수임 당시 이 후보가 상담하지 않았다”고 했다. 반면 이민석 변호사는 “파크뷰 사건은 정권 실세들이 연루된 권력형 비리를 드러낸 일을 한 것이지만 살해범인 조카나 동거녀 살해범 등을 변호하기도 했다”고 주장했다.● 실용주의자 vs 포퓰리스트2010년 제19대 성남시장으로 당선된 이 후보는 “전임 시장이 진 빚 5200억 원을 단기간에 갚을 수 없다”며 모라토리엄(지불유예)을 선언해 이목을 끌었다. 이 후보는 이후 3년 6개월간 예산 삭감, 긴축 재정 등을 통해 모든 빚을 갚아 모라토리엄을 졸업했고 다른 지방자치단체의 벤치마킹 사례가 되기도 했다. 모라토리엄 선언을 옆에서 지켜봤던 당시 성남시 공무원 오모 씨는 “2010년 진보계 시장이 당선되자 성남시에선 복지 욕구가 분출했다. 하지만 이런 요구를 들어줄 돈이 없다는 것을 미리 알리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며 “행정가로서 똑똑한 선택이었다”고 했다. 반면 함께 성남에서 활동했던 국민의힘 소속 정치인 정모 씨는 “당시 국토교통부가 성남시에 돈을 갚으라고도 안 했는데 불필요한 모라토리엄 선언을 하며 정치적 쇼를 한 것”이라고 평가했다.성남시 개고기 유통시설 철거와 무상복지 정책 등도 이 후보가 성남시장 시절 이룬 대표적인 성과로 꼽힌다. 이 후보는 2016년 국내 최대 규모 개고기 거래 시장인 성남 모란시장에서 개 보관·도살시설을 유혈사태 없이 철거시켰다. 당시 철거 사업에 반대했던 김용북 현 모란시장상인회장(69)은 “시장 철거 반대 시위를 하다가 한 날은 다쳐서 누워 있는데 이 후보가 직접 찾아왔다”며 “손을 잡으면서 ‘고생이 너무 많다. 타 업종 전환 지원 약속을 반드시 지키겠다’고 위로해 마음이 녹았다”고 회상했다. 성남시 공무원으로서 철거를 담당했던 임진 전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장은 “이 후보의 센 이미지 때문에 마치 무지막지하게 시장을 밀어버렸을 거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며 “그러나 이 후보는 2년 넘게 상인들을 설득해 자진 철거하게 만들었다. 일이 되게 하는 사람”이라고 말했다.하지만 이 후보의 3대 무상복지 사업(청년배당, 무상산후조리지원, 무상교복)에 대해선 ‘포퓰리즘성 사업’이라는 지적도 있다. 당시 성남시의원이었던 A 씨는 “이 후보가 이미 조례가 완성돼 있는 무상급식은 적극 확대하지 않으면서 무상교복 조례만 계속 성남시의회에 올렸다. 상대 정당 소속 시의원들이 이를 부결시킬수록 자신의 몸값이 올라간다는 걸 알았던 것”이라고 했다.● ‘변방의 장수’에서 대선 유력 주자로변방의 장수였던 이 후보가 중앙 정치권의 주목을 받은 건 2016년 지방자치단체 예산권을 둘러싼 박근혜 정부와의 갈등으로 11일간 단식 농성을 하면서다. 그해 10월 국정농단 사건이 터지자 이 후보는 제도권 정치인 중 처음으로 박 대통령 하야를 공개 주장했다. 이후 이 후보는 2017년 대선 경선 출마와 2018년 경기도지사를 거쳐 유력 대선 주자로 자리매김했다.이 후보는 거침없는 ‘사이다 발언’으로 인기를 얻었지만 설화도 잦았다. 지난해 3월 민주당 대표였던 이 후보는 충남 당진 전통시장을 찾아 “왜 중국을 집적거리냐. 그냥 셰셰(고맙다), 대만에도 셰셰 이러면 된다”며 “양안 문제에 우리가 왜 개입하냐”고 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안규영 기자 kyu0@donga.com고도예 기자 yea@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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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사시보 시절 이재명 “벌 받을땐 벌 받아야” 청탁 거절

    “부정하게 살아오거나 남의 돈을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사람은 그 마음을 쉽게 못 고친다. 벌 받을 땐 벌 받아야 한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88년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하던 시절부터 알게 된 김창규 씨(77)는 당시 이 후보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화투 치다가 교도소 간 친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딱 잘라서 거절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때는 섭섭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의 면면을 전달하기 위해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를 기억하는 지인 20여 명을 찾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이 후보에 대해 “정의롭고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내는 사람”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 초교 졸업 후 6년간 소년공 생활 이 후보는 1963년(호적상 1964년) 화전민이 살던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 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화투 노름을 하다가 밭을 날리고 집을 나가 3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이 후보 뒷집에 살았던 삼계초 3년 후배 김홍락 씨(59)는 “동네가 다 초가집이었고, 내가 초교 2학년 때쯤에야 도로가 뚫려서 버스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왔다. 집에서 삼계초까지 4∼5km 되는 거리였고,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이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이 후보는) 유달리 씩씩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후보의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27대나 맞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정의로운 면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인지 좀 거칠었다”고 했다. 1976년 초교를 졸업한 직후 아버지가 정착한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꼭대기 월셋집으로 온 가족이 상경했다. 이후 이 후보는 6년간 목걸이 공장을 거쳐 고무부품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동네 쓰레기를 치웠고 어머니는 상대원시장 화장실 입구에서 소변 10원, 대변 20원의 이용료를 받고 청소를 했다. 아버지는 자식 공부보다 번듯한 집 한 채 마련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소년공 선배들은 아이스크림 ‘브라보콘’ 내기로 신참들에게 권투 경기를 시켰는데 지면 돈까지 잃었다. 이 후보는 “일당 600원을 받던 시절로 브라보콘이 100원가량 했는데 주로 많이 맞고 지고 (그래서 돈을) 뜯겼다”고 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나보다 한 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해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건방지게 놀던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쓰기도 했다. 소년공 출신 B 씨는 “키는 조그맣고 삐쩍 말라가지고 나이를 속여 공장에 들어와 네 살 많은 형들과 친구를 먹다가 들켜서 맞기도 했다”며 “독종이라 그렇게 맞아도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더 맞았다”고 전했다. ● 2차례 ‘자살 시도’ 이기고 장학생 된 李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을 다니던 중 공장에서 맞지 않고, 돈 뜯기지 않고,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공장 밖을 다닐 수 있는 고졸 출신 대리처럼 되고 싶었다.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3개월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에도 직원이 2000명 넘는 오리엔트로 공장을 옮겨 도금실과 래커실에서 소년공 생활을 하면서도 단과학원에 다녔다. 공장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공돌이 주제에 맞게 놀아!”라며 구박을 받았다. 오리엔트시계 관계자는 “1980년대 성남의 경제 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운 소년공들이 바글바글했다”고 말했다.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한밤중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그에게 “그깟 공부 따위 해서 뭐 해? 잠 좀 자자, 잠 좀!”이라고 고함을 치는 아버지였다. B 씨는 “그때는 검정고시 하고 나오면 직장에서 주임 정도를 해줬다”며 “그런 주임 같은 거 달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암기력이 좋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일찍 붙어서 중앙대 가고 사법시험 패스한 것”이라고 말했다. 작업 도중 왼쪽 손목이 프레스기에 눌렸지만 수술도 받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때 후유증으로 왼팔이 굽었고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가난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 팔을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절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 스무 알을 먹었지만 연탄불은 꺼져 있었고 멀쩡하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수면제를 찾는 소년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수면제 대신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1981년 사립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가 도입되자 마음을 다잡고 이를 목표로 대입을 준비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20만 원은 공장에서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대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20대일 때부터 알고 지낸 효림 스님은 “(이 후보는) 어머니 이야기할 때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고생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가난한 시절에 고생한 걸 숨기고 싶고 이야기 안 하고 싶은데도 (이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1986년 겨울 스물셋 나이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해 3월 위암 재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합격 사실을 전하자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공부를 지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됐다.● 연수원 시절 대법원장 임명 반대 성명 초안 써사법연수원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은근히 지연과 학연, 집안을 자랑하는 연수생들이 많았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연줄 없는 연수생을 무시했다. 그 대신 그는 운동권의 지하서클 조직인 비공개 기수 모임에서 활동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민주당 정성호 의원, 최원식 문병호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지명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연수원생 성명을 주도했다. 한 지인은 당시 성명의 초안은 이 후보가 작성했고 문형배 전 재판관이 성명서 사본을 복사해오는 역할을 맡았다고 회상했다. 이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마음속에 굳혔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C 씨는 “소년공 시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지만 당시에도 부자나 기득권 있는 사람에 대한 꽤 깊은 적개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한 게 아니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며 “(이 후보는) 딱 사람을 조지는 스타일이었다. 원래 검찰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기수 모임 활동한 게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2년 차 때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습을 했고 성남지원에서 판사 시보로, 고향인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성적이 중상위권이어서 판검사 임용이 가능했지만 성남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성남공단의 노동 사건과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 경원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는 물론이고 시국사건 양심수들의 사건도 무료로 맡았다. 일주일에 2번은 이천노동상담소로 가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1990년 8월 같은 교회에 다녔던 이 후보의 셋째 형수와 김혜경 씨의 어머니가 만남을 주선하면서 이 후보와 김 씨는 가정을 꾸렸다. 이 후보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김 씨에게 청혼했고 답이 없자 소년공 때부터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줬다. 두 사람은 1991년 3월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직장인인 장남 동호 씨(33)는 올 6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차남 윤호 씨(32)도 대학 졸업 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성남=최미송 기자 cms@donga.com}

    • 2025-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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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사시보 이재명 “마음 쉽게 못고쳐, 벌 받을땐 벌 받아야” 청탁 거절

    “부정하게 살아오거나 남의 돈을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사람은 그 마음을 쉽게 못 고친다. 벌 받을 땐 벌 받아야 한다.”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가 1988년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하던 시절부터 알게 된 김창규 씨(77)는 당시 이 후보가 이같이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화투 치다가 교도소 간 친구를 좀 도와달라고 부탁을 했었는데 딱 잘라서 거절하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곧 “그때는 섭섭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맞더라”고 했다. 동아일보는 대선을 앞두고 유권자들에게 이 후보의 면면을 전달하기 위해 성장 과정과 삶의 궤적을 따라 그를 기억하는 지인 20여 명을 찾아 직접 만나거나 전화로 인터뷰를 했다. 이들은 이 후보에 대해 “정의롭고 마음 먹은 것은 꼭 해내는 사람”부터 “위험한 사람”이라는 주장까지 엇갈린 평가를 내놨다. ● 초교 졸업 후 6년간 소년공 생활 이 후보는 1963년(호적상 1964년) 화전민이 살던 경북 안동시 예안면 도촌리 지통마을에서 7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크레파스나 도화지 같은 준비물을 학교에 챙겨 간 적이 없었다. 아버지는 마을 사람들과 화투 노름을 하다가 밭을 날리고 집을 나가 3년간 돌아오지 않았다. 이 후보 뒷집에 살았던 삼계초 3년 후배 김홍락 씨(59)는 “동네가 다 초가집이었고, 내가 초교 2학년 때쯤에야 도로가 뚫려서 버스가 다니고, 전기가 들어왔다. 집에서 삼계초까지 4~5km 되는 거리였고, 가방이 없어서 보자기를 둘러메고 다니던 시절”이라며 “어린 시절 기억이지만 (이 후보는) 유달리 씩씩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도자 기질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이 후보의 초등학교 성적표에는 ‘동무들과 사귐이 좋고 매사 의욕이 있으나 덤비는 성질이 있음’이라고 적혀 있다고 한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선생님에게 따귀를 27대나 맞고도 고개를 숙이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기 때문이다. 익명을 요구한 A 씨는 “정의로운 면이 있고 괜찮은 사람이었지만 집안이 어려워서인지 좀 거칠었다”고 했다.1976년 초교를 졸업한 직후 아버지가 정착한 경기 성남시 상대원동 꼭대기 월셋집으로 온 가족이 상경했다. 이후 이 후보는 6년간 목걸이 공장을 거쳐 고무부품 공장, 냉장고 공장 등을 전전했다. 아버지는 동네 쓰레기를 치웠고 어머니는 상대원시장 화장실 입구에서 소변 10원, 대변 20원의 이용료를 받고 청소를 했다. 아버지는 자식 공부보다 번듯한 집 한 채 마련이 우선인 사람이었다. 소년공 선배들은 아이스크림 ‘브라보콘’ 내기로 신참들에게 권투 경기를 시켰는데 지면 돈까지 잃었다. 이 후보는 “일당 600원을 받던 시절로 브라보콘이 100원가량 했는데 주로 많이 맞고 지고 (그래서 돈을) 뜯겼다”고 했다. 이 후보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나보다 한 살 어린 꼬맹이 여자애가 나이를 두 살이나 속여 나로 하여금 ‘누나’라고 부르게 해 머리끄덩이를 잡아 버르장머리를 가르쳐 주고, 점심시간에 식당에서 건방지게 놀던 힘 약해 보이는 동료에게 식판을 집어 던지는 만행을 저지름으로써 공장 내에서 어느 정도 위치를 차지하게 되었다”고 쓰기도 했다. 소년공 출신 B 씨는 “키는 조그맣고 삐쩍 말라가지고 나이를 속여 공장에 들어와 네 살 많은 형들과 친구를 먹다가 들켜서 맞기도 했다”며 “독종이라 그렇게 맞아도 잘못했다는 말을 안 해서 더 맞았다”고 전했다. ● 2차례 ‘자살 시도’ 이기고 장학생 된 李스키 장갑과 야구 글러브를 만드는 대양실업을 다니던 중 공장에서 맞지 않고, 돈 뜯기지 않고, 점심시간에 자유롭게 공장 밖을 다닐 수 있는 고졸 출신 대리처럼 되고 싶었다. 공부하기로 마음을 먹고 3개월 만에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당시에도 직원이 2000명 넘는 오리엔트로 공장을 옮겨 도금실과 래커실에서 소년공 생활을 하면서도 단과학원에 다녔다. 공장에서 책을 보고 있으면 “공돌이 주제에 맞게 놀아!”라며 구박을 받았다. 오리엔트시계 관계자는 “1980년대 성남의 경제상황이 매우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한 푼이 아쉬운 소년공들이 바글바글했다”고 말했다.대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아버지는 학원에 보내주지 않았다. 단칸방에서 한밤중에 불을 켜고 공부하는 그에게 “그깟 공부 따위 해서 뭐 해? 잠 좀 자자, 잠 좀!”이라고 고함을 치는 아버지였다. B 씨는 “그때는 검정고시 하고 나오면 직장에서 주임 정도를 해줬다”며 “그런 주임 같은 거 달려고 공부를 시작했는데 암기력이 좋으니까 다른 애들보다 일찍 붙어서 중앙대 가고 사법고시 패스한 것”이라고 말했다.프레스기에 눌린 손목 통증은 심해졌지만 수술도 받지 못했다. 이 후보는 이때 후유증으로 왼팔이 굽었고 장애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 가난은 끝이 보이지 않았고 한 팔을 못 쓰게 될 것이라는 절망에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었다. 다락에 연탄불을 피우고 수면제 스무 알을 먹었지만 연탄불은 꺼져 있었고 멀쩡하게 눈을 뜨고 일어났다. 수면제를 찾는 소년을 보고 상황을 짐작한 약사는 수면제 대신 소화제 같은 것을 잔뜩 줬던 것이다. 1981년 사립대학에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위한 특별장학생 제도가 도입되자 마음을 다잡고 이를 목표로 대입을 준비했다. 3학년까지 등록금 전액을 면제받고 매월 20만 원의 생활비를 받는 중앙대 법대에 합격했다. 20만 원은 공장에서 받던 월급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었다. 어머니는 “재맹아, 내는 인자 죽어도 한이 없대이”라고 했다. 이 후보가 20대일 때부터 알고 지낸 효림 스님은 “(이 후보는) 어머니 이야기할 때 보면 눈에 눈물이 글썽글썽했다. 일반적으로 옛날에 고생한 게 부끄럽기도 하고 가난한 시절에 고생한 걸 숨기고 싶고 이야기 안 하고 싶은데도 (이 후보는) 그렇지 않았다”고 했다. 이 후보는 1986년 겨울 스물셋 나이에 사법시험에 최종 합격했다. 아버지는 그해 3월 위암 재발로 겨우 목숨을 부지하고 있었고 합격 사실을 전하자 아버지 눈가에 눈물이 흘렀다. 며칠 뒤 아버지는 세상을 떴고 공부를 지원해주지 않았던 아버지와도 화해하게 됐다.● 연수원 시절 대법원장 임명 반대 성명 초안 써사법연수원 생활은 만족스럽지 않았다. 은근히 지연과 학연, 집안을 자랑하는 연수생들이 많았고 몇몇은 노골적으로 연줄 없는 연수생을 무시했다. 그 대신 그는 운동권의 지하서클 조직인 비공개 기수 모임에서 활동했다. 문무일 전 검찰총장과 문형배 전 헌법재판관, 민주당 정성호 의원, 최원식 문병호 전 의원 등이 참여하는 모임이었다. 이들은 1988년 노태우 정부에서 지명된 정기승 대법원장 임명에 반대하는 연수원생 성명을 주도했다. 한 지인은 당시 성명의 초안은 이 후보가 작성했고 문형배 전 재판관이 성명서 사본을 복사해오는 역할을 맡았다고 회상했다. 이 후보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천정배 전 법무부 장관에게 감명을 받아 인권변호사의 길을 마음속에 굳혔다. 사법연수원 18기 동기인 C 씨는 “소년공 시절 등에 대한 이야기는 잘 안 했지만 당시에도 부자나 기득권 있는 사람에 대한 꽤 깊은 적개심이 있었다”고 했다. 그는 “정상적으로 학교 생활을 한 게 아니다 보니 주변에 사람이 없었다”며 “(이 후보는) 딱 사람을 조지는 스타일이었다. 원래 검찰에 가고 싶어 했지만 아무래도 기수 모임 활동한 게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2년 차 때 인권변호사 조영래 변호사 사무실에서 변호사 실습을 했고 성남지원에서 판사 시보로, 고향인 안동지청에서 검사 시보를 했다. 이 후보는 연수원 성적이 중상위권이어서 판검사 임용이 가능했지만 성남시에서 변호사 사무실을 열었고 성남공단의 노동 사건과 외국인 노동자의 산업재해 사건, 경원대와 한국외국어대 등 구속된 학생들의 변호는 물론이고 시국사건 양심수들의 사건도 무료로 맡았다. 일주일에 2번은 이천노동상담소로 가 노동운동을 지원하고 노동법률 상담을 했다. 이 후보는 1990년 8월 같은 교회에 다녔던 이 후보의 형수와 김혜경 씨의 어머니가 만남을 주선하면서 두 사람은 가정을 꾸렸다. 이 후보는 만난 지 일주일 만에 김 씨에게 청혼했고 답이 없자 소년공 때부터 10년간 써온 일기장을 줬다. 두 사람은 1991년 3월 결혼해 슬하에 두 아들을 뒀다. 직장인인 장남 동호 씨(33)는 올 6월 결혼을 앞두고 있으며 차남 윤호 씨(32)도 대학 졸업 후 직장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황형준 기자 constant25@donga.com성남=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성남=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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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통사고 사망 주는데, 고령운전 사망 3년째 증가

    지난해 7월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에서 68세 남성이 몰던 차량이 시민을 치어 9명이 숨졌다. 같은 해 12월 서울 양천구 목동 깨비시장에선 경도인지장애(치매 전단계)를 진단받은 70대 운전자가 차를 몰고 시장에 돌진해 1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쳤다.한국은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가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사회에 진입했다. 전국의 고령 운전자는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된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가해자가 고령 운전자인 교통사고의 사망자는 761명으로, 2022년(735명), 2023년(745명)에 이어 3년 연속 증가했다.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는 매년 감소해 작년 2521명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는데, 고령 운전자 가해 사고 사망자는 ‘역주행’한 것이다. 선진국들은 고령 운전자가 있으면 가족이 운전 능력 검사를 요청할 수 있도록 하거나, 사고 예방 장치 부착을 의무화하는 등 다양한 제도를 도입하고 있다. 동아일보는 교통기획 ‘2000명을 살리는 로드 히어로’ 첫 회로 고령 운전자 문제를 조명했다. 운전자, 보행자, 지방자치단체 등 도로 위 주체들이 저마다 주의를 기울이고 법규를 잘 지키는 ‘영웅’이 될 때 2000명 넘는 사망자를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노인체험장비 입자 운전기능 95→8점… “조건부 면허 도입해야”〈1〉 고령자 운전자 500만의 그늘65세 이상, 전체 면허 소지자 14.9%… 고령자가 낸 사고 비중 9년새 2배로제3자 신고제 등 도입 필요성 커져… “일본처럼 안전장치 보급 확대해야”‘100점 만점에 8점.’11일 서울 마포구 서부운전면허시험장에서 기능시험을 치른 기자가 받아든 점수다. 동아일보는 고령 운전자가 운전을 할 때 어떤 상황에 처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26세 기자가 노인 체험 장치를 온몸에 장착하고 운전을 해봤다. 양 발목에 각각 1kg, 양 손목엔 각각 500g 무게의 추를 매달았다. 고령자의 손발 거동이 불편한 상황을 가정한 것이다. 무릎과 팔꿈치를 구부리기 어렵게 만드는 장치를 달았고, 얼굴에는 시야를 좁히는 고글을 썼다. 손에도 고무 재질로 된 밴드를 착용해 손가락 움직임을 어렵게 만들었다. 복부와 어깨에 걸쳐서는 움직임을 제한하는 장치를 장착해 고개의 움직임을 불편하게 만들었다.장비를 착용하기 전 기자가 받아든 기능 점수는 95점이었다. 합격선(80점)을 넉넉히 넘긴 만점에 가까운 점수였다. 하지만 장비를 착용하자 달라졌다. 실제 운전에 앞서 시뮬레이션(모의 주행) 장치로 수차례 모의 주행을 했지만, 막상 기능시험장에서는 도로를 이탈하는 실수까지 나왔다.● 운전자 고령일수록 인명 피해 더 커가장 큰 문제는 ‘좁아진 시야’였다. 평소 보던 것의 50%도 채 보이지 않았다. 운전석에서 좌우를 확인하려면 고개를 90도 돌려야 하는데 몸에 장착한 장비 탓에 고개를 돌리기가 어려웠다. 오른쪽 사이드미러 역시 제대로 볼 수 없어 거의 무용지물이었다. 주행, 주차 등 전 종목에서 허둥대면서 결국 기자는 제한 시간 2배를 넘겨 시간 초과로 불합격했다.27일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운전면허를 소지한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총 516만6386명이다. 2020년(368만2632명)보다 40.3% 증가했다. 전체 운전면허 소지자 중 고령 운전자 비중은 2015년 7.6%에서 지난해 14.9%로 늘었다. 같은 기간 전체 교통사고 중 고령 운전자가 낸 사고 비중은 9.9%에서 20.0%로 급증했다.고령 운전자는 청년, 장년보다 신체 기능이 낮아 돌발 상황 대응이 어렵고 운전 조작 실수도 잦다. 한국소비자원이 고령·비고령 운전자 각각 17명을 대상으로 도로주행 시뮬레이션 시험을 실시한 결과, 앞차가 급정거한 상황에서 고령자의 반응 속도는 3.56초였다. 반면 비고령자는 3.09초로 고령자보다 0.47초 빨랐다. 서울 시내 주요 도로의 제한속도는 시속 50km다. 0.5초면 차가 약 6.5m를 더 나간다. 횡단보도 앞에서 차가 서느냐, 보행자를 밀고 나아간 뒤 서느냐의 차이 정도다. 어린이가 갑자기 튀어나온 상황을 가정했을 때, 고령 운전자는 비고령 운전자보다 반응 속도가 1초 넘게 느렸다. 제동 거리가 13m 넘게 차이 난다는 뜻이다.실제 고령 운전자가 낸 교통사고일수록 인명 피해도 컸다. 2023년 기준 71세 이상 운전자가 낸 사고의 경우 평균 약 46건마다 사망자 1명이 발생했다. 반면 31∼40세 운전자의 경우 평균 106건마다 사망자 1명이 발생했다. 2023년 65세 이상 운전자에 의한 사고 건수는 총 3만9614건, 51∼60세 운전자에 의한 사고 건수는 4만4322건으로 후자가 많았다. 하지만 사망자는 전자가 745명, 후자가 585명으로 고령자 사고가 160명 더 많았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고령 운전면허 소지자는 2050년 983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운전자 10명 중 3명이 고령자가 되는 셈이다. 관련 사고도 늘어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조건부 면허-안전장치 확대 필요”고령 운전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면허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대안이 ‘조건부 운전면허’다. 이는 사람의 실제 운전 능력에 따라 고속도로 주행, 야간 운전 등 운전 범위를 제한하는 것이다. 미국, 호주 등이 도입해 운영 중이다.가족, 의사, 경찰 등이 운전자의 수시적성검사를 요청할 수 있는 ‘제3자 신고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현행법상 안전운전에 장애가 되는 후천적 신체장애나 정신질환이 발생할 경우 수시적성검사 대상자에 포함될 수 있다. 하지만 본인이 자진해서 신고하거나 정부, 공공기관이 통보했을 때만 대상자가 돼 사각지대가 발생하고 있다. 예를 들어 치매 환자는 6개월 이상 입원 치료를 받거나 장기요양등급을 받은 경우에만 수시적성검사 대상자로 분류된다. 단기 치료만 받거나 장기요양등급을 신청하지 않았다면 치매 진단 사실을 스스로 알리지 않는 이상 검사 대상에서 제외된다. 장효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제3자 신고제의 가장 효과적인 주체는 가족이고 환자의 신체적인 능력을 알고 있는 의료진의 보고도 중요하다”며 “해외에서는 교통 당국과 운전자, 의료진이 협의를 진행하는 조건부 면허제도가 원활하게 운영되고 있다”고 설명했다.사고 예방 장치 보급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먼저 고령화를 경험한 일본은 2028년 9월부터 신차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 탑재를 의무화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고령 운전자는 서울 시청역 참사의 경우처럼 페달 조작 실수로 사고를 낼 가능성이 높다.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장착할 경우 관련 사고를 63% 줄일 수 있고, 자동긴급제동장치(AEBS)와 함께 이용한다면 90% 이상 줄일 수 있다는 것이 일본 정부의 분석이다. 현재 일본에서는 제조사들이 신차의 90% 이상에 페달 오조작 방지 장치를 자진 장착해 판매 중이다.기존 차량을 위한 애프터마켓용 장치 보급도 활발하다. 일본은 AEBS 등 안전장치가 장착된 ‘서포트카’ 구매도 적극 유도하고 있다. 서포트카 구입에 최대 10만 엔(약 100만 원)을 지원하는가 하면, 2022년에는 75세 이상 운전자에 대해 서포트카에 한정된 조건부 면허제를 신설했다. 최재원 한국도로교통공단 교수는 “생계형 고령 운전자도 많기 때문에 일본의 서포트카를 적극적으로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며 “운전을 하되 자진해서 면허를 반납하거나 안전장치를 장착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공동 기획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 payback@donga.com▽김보라(국제부) 김수연(경제부) 박종민(산업1부)서지원(사회부) 오승준(산업2부) 기자}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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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령자 면허 반납 2%대… 이동 불편에 대책 절실

    정부가 고령 운전자 사고를 예방하기 위해 면허 반납을 유도하고 있지만 실제 반납률은 2%대에 그치고 있다. 특히 대중교통이 불편한 시골이나 지방의 경우 자기 차가 없으면 장 보러 가기도 쉽지 않기 때문에 반납률이 저조하다. 면허를 반납해도 이동에 불편함이 없도록 대체 교통수단을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해 발간된 한국교통연구원의 ‘고령 운전자 운전면허 자진반납 정책의 교통사고 감소 효과에 관한 연구’에 따르면 고령 운전자 1명이 면허를 반납할 경우 1년 동안 0.0118건의 교통사고가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령 운전자 약 85명이 면허를 반납하면 사고 1건이 줄어드는 것이다. 또 고령 운전자 1명의 면허 반납은 연간 42만 원의 사회적 비용을 줄였다. 정부는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하면 일정 금액의 교통카드 등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서울시는 지난달부터 면허를 자진 반납하는 70세 이상 고령층에 교통카드 20만 원을 지급한다. 기존에 10만 원이었던 것을 2배로 늘렸다. 울산 울주군은 올해 면허 반납 인센티브를 10만 원에서 50만 원으로 늘렸다. 그 결과 지난달에만 410명이 면허를 반납했다. 지난해 전체 실적을 웃돈다. 하지만 전국의 면허 반납률은 2%대에 그치고 있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 운전자 면허 반납률은 2.2%다. 면허 반납 시 받는 혜택이 장기적으로는 충분한 대가가 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체 교통수단도 부족한 탓이다. 특히 농어촌 지역은 대중교통 인프라가 부족해 면허를 반납한다면 이동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 면허 반납 정책이 고령자 이동권 지원과 병행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자 ‘수요응답형 교통수단(DRT)’을 도입하는 움직임도 확대되고 있다. DRT는 노선을 미리 정하지 않고 승객의 호출에 따라 탄력적으로 운행하는 교통수단을 말한다. 강원 원주시는 2023년 3월부터 대중교통 취약 지역에서 DRT ‘부름버스’를 정식 운행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이나 콜센터를 통해 출발 30분 전까지 출발지와 도착지를 예약하는 방식이다. 매달 600여 명이 부름버스를 이용하고 있고 대중교통 대기 시간도 1시간 이상에서 30분 정도로 단축됐다. 경기 파주시, 경남 창원시, 전남 신안군 등도 DRT를 운영하고 있다. 김경만 한국교통안전공단 교통안전처 차장은 “대중교통 취약 지역에서 고령자가 직접 운전하지 않아도 이동이 가능하도록 교통수단을 지원하는 정책이 확대된다면 고령 운전자 사고 예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공동 기획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소방청 서울시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한국도로공사 한국도로교통공단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교통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이상환 사회부 기자 payback@donga.com▽김보라(국제부) 김수연(경제부) 박종민(산업1부)서지원(사회부) 오승준(산업2부) 기자}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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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 중립’ 놓고 대학가에선 진통…대선특별위 꾸려 갈등 차단도

    탄핵과 조기 대선 국면 속에서 대학 총학생회들이 ‘정치적 중립’을 둘러싸고 진통을 겪고 있다.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 정치적 긴장이 대학가로 번지면서, 일부 총학생회는 ‘정치색 논란’이 있는 연합 단체를 탈퇴하거나 ‘대선 특별위원회’를 꾸리는 등 갈등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서울대 총학 ‘한동훈·김동연 참석 포럼’ 불참…한국외대 총학 ‘연합단체 탈퇴’지난달 중순, 서울대 총학생회는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와 김동연 경기도지사 등 정치인이 연사로 참여하는 포럼에 불참하기로 결정했다. 총학생회 내부에서 “행사 참석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기 때문이다. 서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교내에서 탄핵 찬반 맞불 집회 등 갈등이 표출된 상황에서 총학생회가 정치적 활동에 직접 나서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해당 포럼에는 현재 고려대, 서강대, 연세대, 이화여대, 한국외대, DGIST, GIST, KAIST, POSTECH 등 9개 대학 총학생회가 참여하고 있다.서울대 총학은 대신 ‘대선 특별위원회’를 설치해 학내 의견을 정치권에 전달하겠다는 방침이다. 외부 활동은 자제하고, 자체적으로 관련 의제를 발굴해 학생들의 목소리를 수렴하겠다는 것이다. 서울대 총학생회 관계자는 “6일 위원회를 구성했다”며 “학내 구성원들의 의견을 객관적이고 체계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연합단체에서 탈퇴하는 사례도 나왔다. 한국외국어대 총학생회는 10일, 전국 27개 단위 총학생회가 소속된 A 연합단체에서 탈퇴하기로 의결했다. 해당 단체가 주로 진보 성향 단체들과 협력해 온 점이 논란이 됐다. 학생총회에서는 “해당 단체의 행보를 고려했을 때 정치적 중립성을 온전히 지키기 어려울 것 같다”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는 단체에 가입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등 의견이 제시됐다. ●정치 갈등 과열에 학생회 간부 뭇매도…“청년 정치 참여 위축 지양해야”총학생회에 대한 ‘정치적 중립’ 요구가 과열되면서, 학생 개인이 과도한 비난을 받는 사례도 나타났다. 12일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과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이 중앙대 교내 패스트푸드점에서 진행한 청년 간담회에 참석한 B씨가 학생회 간부라는 이유로 논란의 대상이 된 것이다. 중앙대 커뮤니티에서는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을 반대한 정치인 행사에 학생회 간부가 참석한 것은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반면 “학생회 차원이 아닌 개인 자격의 참여이며,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는 반론도 나왔다.전문가들은 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성을 유지해야 한다는 원칙에는 공감하면서도, 청년 정치 참여 자체가 위축되는 상황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태형 숭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학생회는 학생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 대표 단체”라며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건 총학생회의 역할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은경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총학생회가 정치적 중립성을 지켜야 한다는 방침은 존중하나, 그렇다고 개개인의 의사 표현이나 정치 참여가 원천 차단되는 상황은 옳지 않다”며 “개인이 자의적으로 단체를 표방해선 안 되겠지만, 청년 정치 참여 활성화 또한 중요한 목표”라고 말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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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통령실 압수수색 시도… 경찰, 尹파면 후 첫 수사

    윤석열 전 대통령이 대통령경호처에 자신에 대한 체포 작전을 저지하도록 지시했다는 혐의와 관련해 경찰이 대통령실과 공관촌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다. 헌법재판소가 윤 전 대통령을 파면한 지 12일 만에 경찰이 ‘민간인 윤석열’에 대한 첫 강제 수사에 착수한 것이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백동흠 안보수사국장)은 16일 오전 10시 13분부터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내 대통령집무실과 경호처 사무실, 한남동 경호처장 공관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시도했다. 경찰은 올해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내란 우두머리 혐의로 체포를 시도했을 당시 윤 전 대통령이 김성훈 경호처 차장 등에게 막으라고 지시한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해 왔다. 압수수색 영장엔 윤 전 대통령과 김 차장이 특수공무집행방해 등 혐의 피의자로, 경호처 비화폰(보안 휴대전화) 서버와 체포 저지 관련 문건 등이 압수 대상으로 적시됐다. 경호처는 군사상·공무상 비밀이 필요한 장소라는 이유로 압수수색을 막았고, 특수단은 약 10시간의 대치 끝에 오후 8시 37분경 철수했다. 경호처는 비화폰 서버 등 일부 자료를 추후 임의제출 형식으로 제출하기로 했다. 법조계에선 이날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윤 전 대통령에 대한 대면 조사, 구속영장 재청구 등 수사기관의 압박이 본격화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경찰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자 신분 출석 조사 등을 검토 중이다. 검찰과 공수처는 윤 전 대통령 부부의 공천 개입 의혹 등 ‘명태균 게이트’와 해병대 채모 상병 순직 수사 외압 의혹 등을 수사 중이다.영장에 ‘尹 피의자’ 적시… “체포때 총기사용 검토 지시” 진술 확보[尹 ‘체포저지 의혹’ 수사]경찰, 대통령실 압수수색 시도… 비화폰 서버-경호처 문건 확보 나서경호처 “군사상-공무상 기밀” 막아… 일부 자료만 임의제출식 넘길 방침경찰 내부 “대통령기록관 이전前 관련 자료 확보 하기 위한 조치”경찰 내부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 파면 12일 만에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단장 백동흠 안보수사국)이 ‘체포 저지’ 의혹에 대한 강제 수사에 나선 것을 두고 “대통령기록관 이전 전에 자료 확보를 하기 위한 조치”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기록물관리법은 국가 안전 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는 경우 대통령 지정기록물로 지정해 최장 15년, 사생활 관련 문건은 최장 30년간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수단은 윤 전 대통령이 체포영장 집행을 저지했다는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선 통화 기록이 담긴 비화폰 서버를 압수수색으로 확보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경호처에 의해 압수수색이 번번이 불발되면서 자료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경찰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자 대면 조사와 압수수색 재시도 등을 검토 중이다. 대통령직 파면으로 불소추 특권이 사라진 만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등의 수사도 강도 높게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또 막아선 경호처에 압수수색 불발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특수단은 이날 윤 전 대통령과 김성훈 경호처 차장을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 등의 피의자로 적시하고 압수수색 영장 집행을 시도했다. 윤 전 대통령과 김 차장이 올 1월 3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1차 체포영장 집행을 방해했다는 게 경찰의 판단이다. 특수단은 윤 전 대통령이 김 차장을 비롯한 경호처 간부들을 불러 총기 사용 검토 등을 지시했다는 경호처 내부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윤 전 대통령이 계엄 이후 비화폰만을 사용한 정황을 확보했는데, 체포 저지 관련 지시도 비화폰을 통해 내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비화폰 통화 기록 등이 담긴 서버와 분출 대장 등을 확보하기 위해 앞서 5차례에 걸쳐 대통령실과 경호처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시도했지만, 경호처에 의해 모두 불발됐다. 이날 오전 10시 13분경 대통령실에 도착한 특수단은 경호처 측과 압수수색 방식 등을 논의하고 내부 진입을 시도했다. 그러나 경호처는 형사소송법 110·111조에 규정된 ‘군사상 기밀, 공무상 기밀’을 이유로 들며 경내 진입을 막아섰다. 이에 수사관들은 대통령실 민원실 등 외부에서 10시간 넘게 대기해야 했다. 결국 오후 8시 37분경 특수단은 자료를 확보하지 못한 채 빈 박스를 들고 철수했다. 특수단 관계자는 “영장 집행은 결국 불승낙됐다”며 “경호처와 협의를 진행하고 비화폰 서버 등 일부 자료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제공받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경호처 내부에서도 압수수색 대응 방식에 혼선이 빚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체포영장 집행을 막았던 김 차장은 연판장 사태가 벌어지자 전날 사의를 표하고 직무에 관여하지 않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 경찰 “‘尹 피의자 조사’ 등 다각도 검토” 현재 윤 전 대통령의 재임 중 기록물을 대통령기록관으로 이전하는 작업이 진행 중이다. 체포 저지와 관련된 자료까지 옮겨질 수 있는 상황에서 압수수색이 실패한 셈이다. 일반적인 압수수색 영장은 각 지방법원의 영장전담 판사가 발부하지만 대통령기록물의 경우 고등법원장의 판단이 필요하다. 특수단 내부에선 “국무위원 등 내란 관련 피의자 대부분이 재판 중인 만큼 법원이 직권으로 증거 조사를 해 비화폰 서버를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오는 것으로 전해졌다. 특수단은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피의자 출석 조사 등을 검토하고 있다. 특수단 관계자는 “윤 전 대통령은 현재 특수공무집행방해 혐의로 입건된 상태이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대면 조사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경찰 안팎에선 김 차장과 이광우 경호본부장에 대한 수사가 마무리된 후 윤 전 대통령에게 출석을 통보할 거란 전망이 나온다.이상환 기자 payback@donga.com송유근 기자 big@donga.com신나리 기자 journari@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최원영 기자 o0@donga.com}

    •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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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검찰, 건진 尹정부 인사 개입 정황 포착… 윤한홍에 “인사 살펴달라”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친분을 과시하며 각종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무속인 ‘건진법사’ 전성배 씨(65)가 2022년 대선 직후 국민의힘 윤한홍 의원에게 인사를 청탁하는 문자메시지를 검찰이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전 씨가 자신이 원하는 일부 인사가 이미 이뤄진 상태에서 추가적인 인사를 요구한 것이라 그의 영향력이 대선 이후에도 지속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이날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범죄합수단(단장 박건욱 부장검사)은 이러한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전 씨 수사 과정에서 확인했다. 전 씨는 윤 의원에게 2022년 3월 22일 “부탁드립니다. 인사를 살펴 주세요. 3명 부탁했고 지금 1명 들어갔고 2명은 아직도 확정을 못하고 있네요”라면서 “내가 이 정도도 안 되나 싶네요”라고 문자를 보냈다.이에 윤 의원은 “저도 가슴이 답답하다”면서 “밖에서는 제가 인사를 하는 줄 아는 사람이 많은데 아무런 도움이 못 되고 있으니 죄송할 따름”이라고 답했다. 전 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 대화의 의미에 대해 “자리를 해달라고 해도 안 줘서 한탄을 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의 대화가 오간 날은 윤 전 대통령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본격적으로 가동된 후 하루가 지난 때다. 검찰은 전 씨가 윤 전 대통령을 거론하며 윤 의원의 행보에 조언을 한 사실도 포착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김건희 여사의 경력은 허위’라며 공세를 퍼부은 2021년 12월 15일 윤 의원은 “A 의원과 제가 (윤 전 대통령 보좌에서) 완전히 빠지는 게 후보에게 도움이 될까요? 선거 승리를 위해서”라고 전 씨에게 물었다. 이에 전 씨는 “후보(윤 전 대통령)는 끝까지 같이하길 원한다”면서 “진정한 사람이 두 분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 빠진다면 (윤 전 대통령이) 기운 빠지고 힘들어하실 것”이라고 답했다. 검찰은 전 씨가 윤 전 대통령의 대선 캠프 조직이었던 ‘네트워크본부’에서 “윤석열 유튜브 구독자 100만을 향해 노력해 달라”는 등 업무에 관여한 사실도 파악했다. 전 씨는 2018년 제7회 전국 지방선거 과정에서 영천시장 당내 경선에 출마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예비후보에게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에게 공천을 부탁해 주겠다’며 1억 원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본보는 이날 윤 의원의 입장을 듣기 위해 수차례 연락했지만 윤 의원은 연락을 받지 않았다.윤 의원은 18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저는 전 씨의 공천 요구나 인사 청탁을 들어줄 위치에 있지 않았다. 따라서 언론에서 제기하는 여러 의혹과 관련해 대가 등 금전 거래를 했던 사실은 더더욱 없다는 점을 명확히 밝힌다”면서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말했다.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서지원 기자 wish@donga.com조승연 기자 cho@donga.com}

    •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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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양극화 한국과 미국 모두 겪는 문제… 청년세대 불만 비슷해”

    미국 하원의원 대표단이 서울대를 방문해 재학생 간담회를 열었다. 대표단은 ‘정치적 양극화’를 미국과 한국 공통의 문제점으로 짚으며, 대선 국면에서 미국과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15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 국제대학원은 방한 중인 미국 하원의원 대표단을 초청해 서울대 재학생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는 아미 베라 의원(민주·캘리포니아)과 제니퍼 키건스 의원(공화·버지니아)을 공동단장으로 하는 하원 한국연구모임(Congressional Study Group on Korea·CSGK) 소속 의원 7명이 참석했다. 대표단은 한국과 미국 모두 ‘정치 양극화’라는 문제를 겪고 있다는 점에서, 양국이 직면한 과제가 유사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주거 불안, 성별 갈등, 그리고 청년 세대의 불만이라는 공통적인 현상이 정치에 반영되며 양극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베라 의원은 “정치 양극화 현상은 결코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내 집 마련, 성별 갈등 등 미국 젊은이들이 고민하는 문제는 결코 한국의 젊은이들과 다르지 않다”고 진단했다. 또한 “미국에서는 대학원 이상의 교육을 받는 사람 중 65%가 여성이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남성들이 ‘우리는 점점 소외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며 “한국 정치에서도 비슷한 성별 간 역학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진단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이 지지를 받은 이유는 많은 이들이 ‘삶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느끼던 중, 타 후보보다 강력하게 메시지를 전달했기 때문”이라며 “한국도 앞으로 대선까지 두 달간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대표단은 다가오는 대선이 향후 한미 관계와 대북 정책에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특히 윤석열 전 대통령의 대외정책 기조가 선거 이후 어떻게 변화할지에 대해 미국 의회가 관심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베라 의원은 “한국 내 정치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며 “두 달 후에 대선이 예정되어 있고, 윤 전 대통령의 외교 정책이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대통령은 언제나 대화를 위한 문은 열려있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향후 대화가 재개되기 위해서는 한국의 선거 결과와 그 이후의 외교적 흐름을 지켜봐야 할 것”이라고 했다. 서지원 기자 wish@donga.com}

    •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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