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민

김소민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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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김소민 기자입니다.

so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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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02~2025-05-02
문학/출판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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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 美 토니상 10개 부문 후보 올라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미국 연극·뮤지컬계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토니상 10개 부문 후보에 올랐다.2일 토니상 측에 따르면 이 뮤지컬은 올해 제78회 토니상에서 △뮤지컬 부문 작품상 △연출상 △각본상 △음악상(작곡 및 작사) △오케스트레이션(편곡상) △무대 디자인상 △의상 디자인상 △조명 디자인상 △음향 디자인상 △남우주연상 부문에서 후보에 올랐다.‘어쩌면 해피엔딩’은 21세기 후반 근미래를 배경으로 인간을 돕는 로봇인 ‘헬퍼봇’ 올리버와 클레어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국내에선 2016년 초연됐고, 미국 공연 제작사에 판권이 팔려 지난해 11월 뉴욕 맨해튼 벨라스코 극장에서 정식 개막했다.뮤지컬 ‘번지점프를 하다’, ‘일 테노레’를 만든 박천휴 작가와 윌 애런슨 작곡가가 함께 만든 작품이다. 박 작가가 각본상이나 음악상을 받을 경우 한국 국적으론 첫 수상이 된다. 박 작가는 뉴욕 개막 당시 소셜 미디어에 “한국인 작가가 쓰고, 한국에서 처음 시작한 공연이 브로드웨이에서 이 규모의 오픈런으로 공연하는 건 아마 처음”이라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미국 공연은 인기에 힘입어 내년 1월 17일까지 연장됐다. 올해 토니상 시상식은 다음 달 8일(현지시간) 뉴욕 라디오 시티 뮤직홀에서 열린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5시간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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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묘비엔 이름만, 마지막 길도 ‘빈자들의 성자’

    “파파(papa·교황) 프란치스코, 그라치에(grazie·고맙습니다)!”26일 오전(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 주변 시내엔 약 40만 명이 운집해 애도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20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장례미사 직후 이탈리아 로마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으로 운구되자, 세계에서 모여든 추모객들은 슬픔에도 감사를 표하며 가는 길을 축복했다.‘빈자(貧者)들의 성자’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미사가 이날 오전 10시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됐다. 교황의 유언대로 장식 없는 십자가 문양만 새겨진 목관이 모습을 드러내자 모두가 박수로 교황을 맞았다. 장례미사는 입당송(入堂頌) ‘주여, 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를 시작으로 기도와 성경 강독, 성찬 전례, 고별 예식 순으로 2시간가량 진행됐다.미사를 주례한 추기경단장인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교황은 당신의 허약함과 고통의 막바지에도, 지상의 삶 마지막 날까지 자기 봉헌의 길을 따르고자 하셨다”며 “이제 우리는 사랑하는 그의 영혼을 하느님께 맡겨 드린다”고 애도했다.이날 미사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와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등 170여 개국 지도자 및 대표단이 참석했다. 한국은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이끄는 민관합동 조문사절단과 염수정 추기경,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의장 이용훈 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등이 참석했다.교황청은 이날 공식 추모 기간인 ‘노벤디알리(Novendiali·9일간의 의식)’를 선포했다. 9일 동안 매일 추모 기도회가 이어지며, 교황의 묘는 27일부터 일반에 공개됐다.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비밀회의)는 이르면 다음 달 5일 시작될 예정이다.“그라치에 파파”… 40만명 배웅속 ‘포프모빌’ 타고 소박한 작별[프란치스코 교황 영면]“교황,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에 관심”… 삼중관 대신 아연 덧댄 목관 입관시민 배웅 위해 사람 걷는 속도 이동… 교황 요청에 난민-노숙인 등이 맞이“교황께서 그토록 사랑했던 어머니(성모 마리아) 품에 안기시는 마지막 여정은 그가 평생 사랑했던 가난한 이들의 배웅을 받는 아름다운 이별이었다.”(베노니 암바루스 이탈리아주교회 주교)26일(현지 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장례미사가 끝나자,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건 작고 아담한 흰색 무개차(無蓋車)였다. 21일 선종한 프란치스코 교황이 즐겨 탔던 ‘포프모빌(Popemobile)’이다. 40만 명이 모여든 마지막 가는 길도 교황은 평소와 다름없이 소탈한 행보였다. 로마 경찰의 호위 외엔 앞뒤로 각각 2대씩의 의전 차량만 따를 뿐이었다.관이 운구되는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 앞에서는 허름한 옷차림으로 흰 장미꽃을 든 40여 명이 교황을 맞이했다. 모두 난민이나 죄수 출신이거나 노숙자인 이들이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이 마지막 조의를 표하도록 해 달라”는 교황의 생전 요청에 따른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시길”이날 오전 10시부터 열린 장례미사에는 세계 각지에서 온 신자 등 25만여 명과 로마 시민 등 40만여 명이 참석했다. 추기경 220명과 주교 750명, 사제 4000여 명이 참석해 교황의 마지막 길을 함께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순례자와 난민부터 세계의 유력 지도자와 왕족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추모객들이 몰려들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이 모든 사람에게 열린 마음을 지닌, 모든 이들의 교황이었음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고 전했다.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은 강론에서 “교황님께서 지상에서 영원으로 건너가신 이후 지난 며칠 동안 우리가 목격한 넘쳐나는 사랑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얼마나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감동을 주었는지 말해 준다”고 했다. 그는 “교황은 양들을 위해 목숨을 내어놓기까지 당신 양들을 사랑하신 착한 목자이신 주님의 발자취를 따르셨다”며 “모든 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고자 열망하셨으며,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두드러진 관심을 기울이셨고, 특히 우리 가운데 가장 보잘것없는 이들, 소외된 이들에게 그렇게 하셨다”고 했다.50년 가까이 교황청에서 재직한 레 추기경은 다음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의 수장이기도 하다. 다만 91세의 고령으로 투표권은 없다. 차기 교황 선출권은 80세 미만의 추기경에게만 주어진다.●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마지막 길역대 교황의 경우, 장례미사를 마친 뒤엔 사이프러스와 아연, 참나무 등 세 겹으로 된 삼중관 입관 절차를 거쳤다. 하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11월 장례 예식을 개정해 삼중관 대신 아연으로 내부를 덧댄 목관 하나만 쓰도록 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의 목관 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모양의 띠), 재위 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두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제 원통에 봉인돼 넣어졌다.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으로 가는 운구 차량은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이 교황과 작별 인사를 할 수 있게 사람이 걷는 속도로 천천히 이동했다. 20여 분이 지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에 도착한 교황의 관은 구약성서 시편을 노래한 그레고리안 성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안으로 들어갔다. 교황의 묘는 유언대로 성모 성화 ‘로마인들의 구원’이 걸려 있는 파올리나 경당과 스포르차 경당 사이에 마련됐다. 비석엔 ‘프란치스쿠스(Franciscus)’라는 라틴어 이름과 십자가 모양만 새겨졌다.하관 의식은 비공개로 진행됐다. 이탈리아 매체들은 “다시 한번 성수가 뿌려지고, 매장이 이뤄졌다. 대성전 공증인이 매장 사실을 증명하는 공식 문서를 작성해 참석자들 앞에서 낭독하고, 추기경들과 전례 담당 고위 성직자들이 서명하면서 의식은 끝을 맺었다”고 전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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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예술·과학 아카데미 신규 회원중… 김혜순 시인, 외국 명예회원 올라

    김혜순 시인(70·사진)이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AAAS) 외국 명예회원으로 선출됐다. 27일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에 따르면 김 시인은 올해 신규 회원 248명 가운데 인문학·예술 문학 부문(8명)에 이름을 올렸다. 1780년 설립된 AAAS는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회원으로 있던 단체다. 전체 회원은 수학·물리학, 생물학, 사회학·행동학, 인문학·예술, 리더십·정책·커뮤니케이션 등 다섯 부문에 걸쳐 약 1만4500명에 이른다. 서울예대 명예교수인 김 시인은 2019년 ‘죽음의 자서전’으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받았으며, 2024년 ‘날개 환상통’으로 한국인 최초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시 부문)했다. 2022년 영국왕립문학협회가 해마다 뽑는 국제작가로도 선정됐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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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혜순 시인, 美 예술·과학 아카데미 외국 명예회원에 선출

    김혜순 시인(70·사진)이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AAAS) 외국 명예회원으로 선출됐다.27일 미국 예술·과학 아카데미에 따르면 김 시인은 올해 신규 회원 248명 가운데 인문학·예술 문학 부문(8명)에 이름을 올렸다. 1780년 설립된 AAAS는 조지 워싱턴과 벤저민 프랭클린,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이 회원으로 있던 단체다. 전체 회원은 수학·물리학, 생물학, 사회학·행동학, 인문학·예술, 리더십·정책·커뮤니케이션 등 다섯 부문에 걸쳐 약 1만4500명에 이른다.서울예대 명예교수인 김 시인은 2019년 ‘죽음의 자서전’으로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을 받았으며, 2024년 ‘날개 환상통’으로 한국인 최초로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시 부문)했다. 2022년 영국왕립문학협회가 해마다 뽑는 국제작가로도 선정됐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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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한강의 북향 정원 식물들은 ‘거울햇빛’을 쬐며 자란다

    소설가는 ‘나’로 말을 시작하는 일이 잘 없다. 소설 속 화자의 입을 빌려 말하기 때문이다. 소설가가 일상의 감흥과 생각을 솔직하게 드러낸 산문은 그래서 반갑다. 그 소설가가 지난해 한국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이라면 더.한강 작가의 신작 산문집 ‘빛과 실’이 24일 출간됐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 이후 펴낸 첫 책이다. 여섯 편의 산문과 여섯 편의 시를 묶었다. 이 중 북향 정원에서 식물을 키우며 쓴 산문 ‘북향 정원’, 네 평짜리 마당에 정원을 가꾸며 쓴 일기를 모은 ‘정원 일기’, 글쓰기에 대한 자세를 담은 ‘더 살아낸 뒤’가 미발표작이다. 전체 책 분량의 절반을 조금 넘는다. 모두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에 쓰였다.가장 눈길이 가는 꼭지는 산문 ‘북향 정원’이다. 일조량이 적은 북향의 정원에서 뿌리를 내리는 식물들과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겼다. 작가는 북쪽 벽에 붙인 화단에 빛을 쪼이기 위해 여덟 개의 탁상용 거울을 들인다. 15분에 한 번씩 거울의 각도를 옮겨주며 지구가 자전하는 속도를 감각하고, 사흘에 한 번씩 거울 위치를 바꿔주며 공전하는 속도를 감각한다.이처럼 ‘거울 햇빛’이 드는 정원을 가꾸면서 2021∼2023년 ‘정원 일기’를 썼다. 작가는 단풍나무보다 빨리 자라며 단풍잎을 가리는 불두화와 라일락을 보면서 “학급에서 가장 내성적인 아이를 지켜보는 담임선생님처럼” 단풍나무를 보호하고 싶어진다고 표현한다. 어떤 자연 앞에선 수식어도 불필요한지 “너무 아름다워서 가슴이 무지근할 때도 있다”고 단순한 감탄을 터뜨리기도 한다.그간 작가의 작품을 좇아온 독자라면 반가울 장면도 군데군데 보인다. ‘작별하지 않는다’ 출간을 앞두고 쓴 2021년 4월 26일의 일기에 그는 “칠 년 동안 써온 소설을 완성했다. USB 메모리를 청바지 호주머니에 넣고 저녁 내내 걸었다”고 적었다. 산문 중간중간 작가가 휴대전화로 직접 찍은 식물 사진도 실렸다.책의 맨 마지막 시 ‘더 살아낸 뒤’에는 글쓰기에 대한 소명 의식을 담았다.“더 살아낸 뒤/죽기 전의 순간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나는 인생을 꽉 껴안아보았어./(글쓰기로.)//사람들을 만났어./아주 깊게. 진하게./(글쓰기로.)//충분히 살아냈어./(글쓰기로.)//햇빛./햇빛을 오래 바라봤어.”소설가 한강이 1인칭 ‘나’의 시점에서 기록한 글쓰기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그는 지난해 10월 노벨 문학상 발표 직후 열린 포니정 시상식에서 작가들의 황금기가 60세까지라고 가정할 때 자신에겐 6년이 남았고, 앞으로 6년 동안은 지금 마음속에 굴리고 있는 책 세 권을 쓰는 일에 몰두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산문집에 함께 수록된 노벨 문학상 수상 기념 강연의 한 구절을 음미하게 한다.“나는 느린 속도로나마 계속 쓸 것입니다. … 삶이 허락하는 한 가장 멀리.”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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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학지 에디터’ 이어령의 다양한 발자취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1934∼2022)의 별명 중 하나는 ‘르네상스 맨’이다. 대학교수, 평론가, 장관, 문학잡지 에디터 등 보통 사람은 하나도 제대로 하기 힘든 다채로운 일을 평생에 걸쳐 했다. 이 전 장관의 부인이자 문학평론가인 강인숙 영인문학관장(92)은 이를 ‘우물 파기’에 비유했다. “물이 나오면 다음 우물을 파기 시작해야 하는 것이 우물 파는 사람의 운명”이란 설명이다.영인문학관이 이 전 장관 3주기를 맞아 18일부터 추모전 ‘에디터로서의 이어령’을 개최했다. 23일 서울 종로구에 있는 문학관에서 만난 강 관장은 “이어령의 우물을 하나씩 탐사해 수심과 수량, 수질을 실태 조사하는 작업”이며 “첫 전시로 에디터로 지낸 시간을 조명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장관은 1972년 10월 창간호부터 1985년 11월까지 ‘문학사상’을 편집했다.전시관에 들어서자 화가 구본웅이 그린 이상의 초상화가 실린 문학사상 창간호 표지(사진)가 관객을 맞았다. 이 전 장관이 창간호부터 도입한 ‘한국 현대문학의 재정리’ 코너는 당시 국문학계에 큰 자극을 줬다. 국문학자들이 대거 참여해 이광수 김동인 염상섭 현진건 한용운 등의 문학사적 의미를 정리했다. 창간호 때부터 자료조사 연구실이란 별도 조직을 운영해 윤동주의 미발표 유고 8편을 입수해 발표하기도 했다. 이상문학상도 제정해 운영했다. 1975년 12월 실린 박완서의 ‘도시의 흉년’, 1978년 1월에 실린 최인호 ‘지구인’ 등 문학사상에 연재된 작가들의 육필원고도 만날 수 있다. 매주 목요일 사전 전화 예약자는 영인문학관 2층에 있는 이 전 장관 서재에서 실제 집필에 사용했던 컴퓨터 7대, 장서 등도 관람할 수 있다. 다음 달 31일까지.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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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 받아들이면 삶이 더 소중해져… 건강할때 유언 남기세요”

    아직 중년에 건강한데도 해마다 유언을 새로 쓰는 이가 있다. 죽음을 일상에서 다루는 유성호 서울대 법의학교실 교수(53)다. 16일 출간한 인문서 ‘법의학자 유성호의 유언 노트’(21세기북스·사진)에서 유 교수는 다시 한 번 유언을 실었다. ‘일평생 행복하고 원 없이 살다 가는 것 같으니, 너무 크게 슬퍼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저 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즐겁게 살다 오세요.’ 21일 서울 종로구 서울의대 연구관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유 교수는 대뜸 “(저한테서) 냄새가 나지는 않지요”라고 물었다. 바로 직전에 부검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냉동보관실과 세포배양실을 거쳐 복도 끝에서 두 번째로 있는 연구실. 그의 공간은 늘 죽음과 마주하고 있었다. 유 교수는 매주 월요일과 금요일 부검을 한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촉탁 법의관으로서 서울에서 변사한 시신의 사인(死因)을 밝히는 일이다. 27년간 수행한 부검만 3000여 건. 수사기관 자문과 법정 증언, 유가족을 상대로 한 설명 등도 법의관의 주요 업무다. 유 교수는 “거의 일과 시간 내내 죽음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는 셈”이라고 했다. 이번 신간은 ‘나는 매주 시체를 보러 간다’(21세기북스) 이후 6년 만에 선보인 책이다. 특히 이번엔 죽음에 대한 대비를 화두로 삼았다. ‘식탁에서 죽음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연장자가 가장 먼저 죽음 이야기를 꺼내야 한다.’ 머리로는 이해되지만 쉽게 실천하기 어려운 일들이다. 유 교수는 “당연히 죽음은 꺼려지고 회피할 수밖에 없는 단어”라며 “하지만 죽음을 인생의 마무리로 받아들인다면 삶을 더 소중하고 충실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유 교수가 현재 맡고 있는 교양 강의 ‘죽음의 과학적 이해’는 서울대에서 인기가 많다. 이번 학기에만 620명이 수강하는 초대형 강좌다. 푸릇푸릇한 젊은 학생들에게 그는 ‘유언 에세이’를 과제로 낸다고 한다. 삶의 방향을 찾고자 한다면 거꾸로 마지막을 생각하는 게 도움이 된다는 지론이다. “노년에 관한 얘기들을 보면, 온통 재테크만 주제로 삼아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마지막을 어떻게 정리할까’를 꼭 생각해 보는 겁니다. 아픈 뒤에는 늦어요. 건강할 때 온전한 정신으로 유언을 설계해야 합니다.” 유 교수가 이런 믿음을 갖게 된 건 1년여 전 세상을 떠난 어머니가 여전히 가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머니께선 ‘이만하면 괜찮다. 후회 없는 삶이었다’라고 말씀하시고 가셨어요. ‘어머니가 아프시기 전에 기록을 남기셨으면 얼마나 더 좋았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유언 노트를 쓰는 겁니다. 제 아이는 제가 남긴 글을 보고 ‘아빠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구나’를 알 수 있겠죠. 힘이 될 수도 있고요. 이게 다 우리가 언젠간 겪을 일인데 아무도 안 가르쳐주더라고요.” 하지만 막상 유언을 떠올려 봐도 뭘 쓸지 막막한 이도 적지 않다. 유 교수는 “너무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라”는 조언을 건넸다. “자기 가치관에 따라 ‘형제들끼리 싸우지 마라’ 정도를 쓰는 분도 계실 것 같고, 조금 더 섬세한 분은 장례식장 음식도 결정하실 수 있겠죠. 저는 이문세의 노래 ‘소녀’를 정말 좋아하는데, 그런 것도 알려주고 싶어요.”유 교수는 최근 팬데믹 이후 죽음이 개인화되고 고립화된 현실을 염려하기도 했다. 중장년층 가운데 고독사한 이들이 부검대에 오르는 일이 특히 잦아졌다고 한다.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분도 늘어났어요. 사회가 죽음을 개인의 문제, 남의 문제로만 바라보기 시작하면 개인이 너무 외롭고 힘들어집니다. 가까운 사람과 가족, 자신의 죽음을 미리 준비할 수 있다면 다른 사람을 도울 여유도 생기지 않을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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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물리학도 교양… 아내가 이해할때까지 쉽게 썼죠”

    “물리학은 마술이 아니에요. 미스터리할 게 하나도 없죠.” 일반적으로 ‘물리학’ 하면 다소 난해하다는 이미지가 있다. 하지만 독일 막스플랑크 연구소에 재직 중인 물리학자 김기덕 박사(35)는 이러한 이미지는 사회적 통념이라고 반박한다. “지금까지 물리학의 트렌드는 너무 미스터리한 것들에 초점이 맞춰졌어요. 양자역학이나 상대성이론 등은 쉽게 다가서기 어렵죠. 물리학을 대중으로부터 너무 멀리 보낸 겁니다.” 최근 신간 ‘모든 계절의 물리학’(다산북스)을 출간하며 한국을 찾은 김 박사를 16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그는 막스플랑크 고체연구소 박막기술팀장이자 초전도체, 반도체를 연구하는 고체물리학자다. 신간에는 물리 중독자의 렌즈로 본 세상이 가득 담겼다. 야구 배트나 커피포트, 러닝화, 노이즈캔슬링 등 일상 어디에나 있는 물리학 원리를 소개하려 했다. 그는 “국어국문학과 출신인 아내를 타깃 독자라고 생각하고 썼다”며 “원고를 먼저 보여주고 ‘이해할 수 있다’고 할 때까지 계속 보완했다”고 했다. 책에 실린 삽화 54개도 태블릿PC로 직접 그렸다. 김 박사의 주된 연구 과제는 수 나노미터 두께의 양자 물질 ‘박막’을 만드는 것. 그런 바쁜 와중에도 대중 저술 활동을 병행하는 이유에 대해 “물리학은 하나의 교양이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답이 돌아왔다.“아무리 물리학에서 ‘이게 중요해요’라고 말해도,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다면 소리 없는 외침에 불과하죠. 가령 국내에서 ‘LK-99’ 초전도체 진위 논란이 있었을 때도 물리학의 기본적 지식만 있으면 오해를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사실 초전도체는 역사가 100년이 넘은 연구 분야예요. 비슷한 스캔들이 세계적으로 굉장히 많은 분야죠.” 그가 속한 막스플랑크 연구소 역시 대중 활동을 적극 장려한다고 한다. 지금까지 노벨상 수상자만 39명을 배출한 세계적 연구기관이다.“한국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물리학과 기초학문에 대한 관심이 낮아지고 있습니다. 물리학을 꿈꾸는 사람들, 또 저와 함께 물리학을 연구할 이들이 줄어가고 있는 셈이죠. 관심 갖는 사람이 많아져야, 그중 1%라도 물리학자가 나오지 않을까요?” 그는 이를 위해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더 늘어나길 소망했다. “과학이 하나의 취미가 돼야 한다”는 게 그의 믿음이다.“아마추어 천문학자들을 보면 굉장히 열정적이거든요. 몇 시에 어디를 봐야 무슨 별이 보이는지 줄줄 꿰고 있죠. 아마 별을 보는 즐거움, 어느 위치에 어떤 별이 뜨는지 아는 즐거움 때문일 텐데요. 물리학도 이렇게 즐길 수 있다는 걸 많은 분들이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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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보수-진보 뇌 따로 있다… 뇌과학이 찾은 ‘신념의 기원’

    극단주의에 취약한 뇌가 따로 있을까? ‘누군가의 뇌를 살피면 극단주의의 영향을 받을 잠재적 가능성이 높은지 알 수 있다’는 주장을 담은 책이다. 꽤 도전적인 견해다. 어떤 뇌가 극단주의에 특별히 취약하고, 어떤 뇌가 유연하고 탄력적일까. 저자는 2020년 포브스 ‘30세 이하 과학 분야 30인’에 선정된 신경과학자다. 정치를 신경과학과 연결해 이데올로기적 사고의 기원과 결과를 연구하는 ‘정치신경과학’ 분야를 개척하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 우리 몸속 세포 차원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견해가 흥미롭다. 극단주의에 빠진 사람은 자신의 신념을 열성적으로 믿은 나머지 목숨을 바치는 일도 불사한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상황에 따라 생각을 유연하게 바꾸는 데 주저함이 없다. 저자는 뇌 속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현대 과학기술을 이용하면 이데올로기가 인간의 두뇌 구조에 얼마나 깊숙이 침투하는지 묻는 게 가능하다는 것. 저자는 민족주의와 종교, 인종주의, 극우와 극좌 등 다양한 이데올로기에 대해 이 같은 탐구가 가능하다면서 경직된 사고를 하는 사람을 ‘이데올로기 주의자’로 명명한다. 한 연구에서 이데올로기 주의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은 뇌의 보상 회로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직된 사고를 하는 사람은 전전두엽 피질에서 도파민 수치가 낮고, 선조체에서 도파민 수치가 높은 경향이 있었다. 선조체는 대뇌 심부의 기저핵에 위치한 뇌 영역으로, 보상을 얻기 위한 의사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저자는 이러한 유전자 프로필을 가진 사람은 사고방식이 경직될 위험성이 높다고 했다. 여러 연구에서 보수적인 사람들은 진보주의자에 비해 오른쪽 편도체가 좀 더 큰 경향이 나타나기도 했다. 아몬드처럼 생긴 편도체는 두려움과 분노, 혐오, 위험, 위협 등 부정적으로 얼룩진 감정의 처리를 도맡는다. 보수적인 참가자들은 오른쪽 편도체가 컸다. 저자는 이를 편도체의 기능과 보수 이데올로기의 기능이 밀접하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둘 다 위협에 대한 경계심과 제압당하는 데 대한 두려움을 중심축으로 삼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타고난 뇌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저자가 내린 답은 “그렇진 않다”이다. 인간은 성격과 생물학적 속성이 특정한 조합으로 뒤섞인 칵테일과 같아서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는 뇌가 전부 동일하진 않다는 것. 경직된 교리를 잘 받아들이는 뇌라 해도 그런 특성이 실제론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읽으면 읽을수록 간단치 않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편도체가 큰 사람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 잘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보수 이데올로기에 끌리는 걸까, 아니면 보수 이데올로기에 몰입한 경험이 뇌 구조를 변화시킨 걸까. 만약 유연성을 촉진하는 유전자형을 가졌지만 행동과 상상력을 엄격히 규제하는 독단적이고 절대주의적인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있다면 그는 어떻게 행동할까. 저자 역시 화살이 양방향을 가리킬지도 모른다고 한걸음 물러선다. 우리의 뇌가 정치적 사고를 조각하기도 하고, 이데올로기에 세뇌된 결과 뇌가 변화되기도 한다는 것. 간단명료한 답을 원했던 독자라면 아쉬울 수 있다. 하지만 답이 간단할 거란 기대부터가 어불성설일 것이다. 극단주의와 인간의 생명 현상이 별개가 아니라는 의견이 흥미롭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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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곳에 꺼내는 게 나의 사명”

    “세상이 너무 궁금해요. 어떻게 변했을지. 그동안 못 본 세상이 너무 궁금해요.” 열다섯 살 때부터 시력을 잃기 시작해 지금은 낮과 밤만 겨우 감지할 수 있는 시각장애인 조승리 작가(39)의 말이다. 하지만 15일 서울 동작구 한 카페에서 이 말을 하는 그의 표정에서 낙담은 찾을 수 없었다. 그는 “신파는 질색”이란 말을 습관처럼 하는 사람이다. 조 작가가 지난해 낸 첫 에세이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달)는 ‘깜짝’ 14쇄를 찍으며 출판가에 화제를 몰고 왔다. 그가 기세 좋게 1년 만에 신작 에세이 ‘검은 불꽃과 빨간 폭스바겐’(세미콜론)을 최근 냈다. 175cm 훤칠한 키의 조 작가는 담당 편집자 어깨에 살포시 손을 얹은 채 걸어 들어왔다. 자리에 앉자 어색한 기색도 없이 ‘잇몸 웃음’을 발사했다. “제가 옷을 사러 가면요. 일단 더듬어 봐요. 손에 닿는 촉감으로 상상해요. 거기서부터 물어보기 시작해요. 이 레이스는 무슨 색이야? 전체적으로는 무슨 색이야? 빨강은 쨍한 빨강이야 아니면 어두운 빨강이야?” 그가 질문이 많은 건 그렇게 수집한 감각들의 교집합이 곧 자신의 관점이 되기 때문이다. “심지어 한 티셔츠를 두고도 어떤 사람은 보라색이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분홍색이라고 해요. 같은 미술품인데도 누구랑 보느냐에 따라서 관점이 다르고 다른 이야기를 해줘요. 그래서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면서 같은 걸 물어볼 때가 있어요. 그 안에서 나만의 상상으로 세상을 보는 것 같아요.” 책 속엔 독자의 감각을 일깨우는 사례가 가득하다. 작가의 일터는 마사지숍. 손님의 몸에 밴 파스 냄새와 해장국 누린내로 고된 삶을 짐작하고, 여행으로 간 백두산 천지에선 인파의 감탄으로 눈앞의 풍광을 감각한다. 나프탈렌 냄새가 밴 지폐 한 장으로 상대의 가난과 고독을 헤아리는 장면에선 탄식이 나온다. 그는 금·토·일요일 주 3일 마사지숍으로 출근하고 나머지 4일은 글을 쓴다. 점자 전자 단말기로 초고를 쓴다. 이 단말기로는 행갈이를 하거나 오타를 잡아내는 게 어려워 다시 PC로 옮겨서 작업하곤 한다. 퇴고할 땐 다시 점자 단말기를 손으로 만지거나 음성 프로그램으로 소리로 들으며 퇴고한다. 더딜 것 같지만 아니다. 다음 달에만 신간 두 권이 예정돼 있다. 문학동네 ‘월급사실주의’ 앤솔로지와 자전적인 연작소설이다. 그 뒤엔 일본 추리소설가 와카타케 나나미처럼 사회파 추리소설을 쓰고 싶단다. 조 작가는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곳에 꺼내 놓는 게 내 글쓰기의 사명”이라고 했다. 이번 신간에 소개한 한 에피소드에서 그는 자신을 코앞에 두고 ‘저런 사람들’이라고 지칭하는 식당 주인 앞에서 어깨를 곧게 펴고 국을 떠먹으며 다짐한다. “당신들이 말하는 ‘저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써야지.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을 널리 알릴 거야.” 첫 책이 복지관 산문 교실 은사인 박현경 동화작가에게 헌정하는 책이었다면, 이번 책은 7년 넘게 눈이 돼준 활동지원사 수미 씨에게 헌정하는 책이라고 했다. 그는 “조금 오버일 수도 있는데 어머니 같은 분”이라며 “저를 처음으로 자랑스러워한 분이었다”고 했다. 눈시울이 붉어질 즈음, 그는 “어머, 나 주책 떤다. 수미 씨 얘기 이제 그만해. 금지어”라며 까르르 웃었다. 다람쥐가 나무 위로 올라가듯 재바른 웃음이었다. “신파는 질색”이라는 사람다웠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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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한강, 노벨상 이후 첫 신간 내주 선보인다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한강의 산문 ‘북향 정원’에서) 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사진)이 수상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책을 24일 선보인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는 “한 작가의 산문집 ‘빛과 실’을 출간한다”고 16일 밝혔다. 172쪽 분량인 신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강연문을 포함해 미발표했던 시와 정원을 가꾸면서 쓴 일기 등 총 10여 편이 수록된다. 출판사 측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부터 산문집 시리즈 ‘문지 에크리’ 중 한 권으로 출간을 준비해 왔던 책”이라며 “한 작가가 과거에 써 뒀던 원고 등을 새롭게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책이 특히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한 작가가 기존에 공개하지 않았던 글들이 다수 수록됐다는 점이다. 이번 산문집에는 미발표 원고가 절반 정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산문뿐 아니라 시도 실렸으며 지난해 ‘문학과사회’ 가을호(147호)에 실린 시 ‘(고통에 대한 명상)’과 ‘북향 방’ 두 편도 수록됐다. 지난해 12월 스웨덴에서 발표한 노벨 문학상 강연문 ‘빛과 실’이 공식적으로 책에 수록되는 것도 처음이다. 산문집의 제목 역시 이 강연에서 따왔다. 출판사에 따르면 예약 판매는 따로 하지 않고, 24일부터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 해당 신간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소설가 한강의 유일한 산문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는 2007년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 2009년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을 냈으나 현재 모두 절판된 상태다. 한편 지난해 말부터 집필 마무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던 한 작가의 차기 소설은 올 상반기에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 전부터 ‘겨울 3부작’의 마지막 편을 경장편 분량으로 집필해 왔다. 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2018년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소설이다. 해당 작품이 공개되면 앞선 두 편의 단편과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가 완성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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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례때 부르면 안되는 명단을 건넨 아버지…“슬퍼할까봐”

    기차역 대합실 풍경을 떠올려보자. 까치발을 세워가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잘 가라고 손 흔들고도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마중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의 표정은 묘하게도 닮았다. 시인 박준(42)은 마음속 액자에 걸어둔 이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마중은 기다림을 먼저 끝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배웅은 기다림을 이르게 시작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마주하는 순간과 돌아서는 순간이 엇비슷해진다.’(산문 ‘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에서) 7년 만에 새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를 낸 박 시인을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났다. 마중과 배웅에서 시인은 누굴 떠올렸을까. 어쩌면 수록 시 ‘블랙리스트’가 힌트가 될 것 같다.‘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 실제로 아버지는 “생전 몇 명 이름을 얘기하며 ‘내 장례 때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청승맞은 소리 마시라고 앞에선 타박했지만, 멋지단 생각도 들었다”고 시인은 회고했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한 번쯤 생각하는 게 시인의 태도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내가 죽었을 때 무슨 생각으로 올까,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질까 이게 연결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말하자면 블랙리스트는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 나름의 마중이자 배웅이었던 셈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지난해 봄 세상을 떠났다. “미리 생각해서 마중 나가고 혹은 가는 거 알면서도 조금 더 앉아서 배웅하고. 이게 가장 인간다운 시간이고, 인간다운 시간에서 인간다운 정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평생 마중하고 배웅한 관계지만, 정작 영원한 이별 앞에선 마중도 배웅도 미진하다. 시집에는 그런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차마 얘기하지 못하는 더 많은 죽음들이 있어요. 욕심 같아선 한 권을 다 장례식으로 채우고 싶었어요.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전혀 마르지 않는. 근데 마지막에 이를 악물었어요. ‘이건 독자들에게 너무 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어떤 뜨거운 재료도 읽는 이들을 위해 호호 불어 내놓자는 게 박 시인의 태도다. “시인이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시는 샤우팅하지 않잖아요. 물론 나는 내적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지만 이 소리가 타인의 귀를 찌르지 않는다는 거죠. 내 목청을 뚫고 찌르고 나온 것이지만 타인을 훼손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요.” 그런 그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시의 화법을 닮아갔으면 싶다. “김치 먹을 때 ‘대 좋아해 이파리 좋아해?’ 이런 것은 정보의 대화가 아니라 정서의 대화죠. 상대가 대를 좋아한다고 미워하지 않죠. ‘난 이파리를 좋아하는데 저 별종은 왜 대를 지지할까’ 생각하지 않잖아요. 긍정적인 인간의 대화는 시에 가까워요. 만약 우리가 여전히 시를 읽어야 한다면 시의 화법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도인 같다’고 하자, 박 시인은 손사래를 치며 “나도 무슨 선비나 신선처럼 ‘허허’ 하는 정서의 대화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날 선 대화, 정보의 대화가 오가는데 이런 완충이 있어야 다시 또 돌직구를 날릴 수 있죠. 상처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해결해 준다고요? 시간이 지나면 피멍이 들죠. 그냥 그 위로 다른 말들이 쌓여야 하는 것 같아요. 연고처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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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한강, 노벨상 이후 첫 신간 내주 선보인다

    “이 일이 나의 형질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는 것을 지난 삼 년 동안 서서히 감각해왔다. 이 작은 장소의 온화함이 침묵하며 나를 안아주는 동안. 매일, 매 순간, 매 계절 변화하는 빛의 리듬으로.”(한강의 산문 ‘북향 정원’에서)지난해 노벨 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한강이 수상 이후 처음으로 새로운 책을 24일 선보인다. 출판사 문학과지성사는 “한 작가의 산문집 ‘빛과 실’을 출간한다”고 16일 밝혔다.172쪽 분량인 신간에는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강연문을 포함해 미발표했던 시와 정원을 가꾸면서 쓴 일기 등 총 10여편이 수록된다. 출판사 측은 “노벨 문학상 수상 이전부터 산문집 시리즈 ‘문지 에크리’ 중 한 권으로 출간을 준비해 왔던 책”이라며 “한 작가가 과거에 써 뒀던 원고 등을 새롭게 정리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책이 특히 관심을 모으는 부분은 한 작가가 기존에 공개하지 않았던 글들이 다수 수록됐다는 점이다. 이번 산문집에는 미발표 원고가 절반 정도 담긴 것으로 알려졌다. 산문뿐 아니라 시도 실렸으며 지난해 ‘문학과사회’ 가을호(147호)에 실린 시 ‘(고통에 대한 명상)’과 ‘북향 방’ 두 편도 수록됐다. 지난해 12월 스웨덴에서 발표한 노벨 문학상 강연문 ‘빛과 실’이 공식적으로 책에 수록되는 것도 처음이다. 산문집의 제목 역시 이 강연에서 따왔다. 출판사에 따르면 예약 판매는 따로 하지 않고, 24일부터 서점에서 구매할 수 있다.해당 신간은 현재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소설가 한강의 유일한 산문집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한 작가는 2007년 산문집 ‘가만가만 부르는 노래’(비채), 2009년 산문집 ‘사랑과, 사랑을 둘러싼 것들’(열림원)을 냈으나 현재 모두 절판된 상태다.한편 지난해 말부터 집필 마무리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던 한 작가의 차기 소설은 올 상반기에 나오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한 작가는 노벨 문학상 수상 전부터 ‘겨울 3부작’의 마지막 편을 경장편 분량으로 집필해 왔다. 2015년 황순원문학상 수상작인 ‘눈 한 송이가 녹는 동안’, 2018년 김유정문학상을 수상한 ‘작별’에서 이어지는 마지막 소설이다. 해당 작품이 공개되면 앞선 두 편의 단편과 이어지는 연작소설 형태가 완성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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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가장 인간다운 시간은 마중과 배웅할 때…인간다운 정서는 그곳에서 나와”

    기차역 대합실 풍경을 떠올려보자. 까치발을 세워가며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다. 잘 가라고 손 흔들고도 발길을 돌리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런데 마중하는 사람과 배웅하는 사람의 표정은 묘하게도 닮았다. 시인 박준(42)은 마음속 액자에 걸어둔 이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마중은 기다림을 먼저 끝내기 위해 하는 것이고 배웅은 기다림을 이르게 시작하기 위해 하는 것이다. 덕분에 우리가 마주하는 순간과 돌아서는 순간이 엇비슷해진다.’(산문 ‘생일과 기일이 너무 가깝다’에서)7년 만에 새 시집 ‘마중도 배웅도 없이’(창비)를 낸 박 시인을 14일 서울 마포구 창비 사옥에서 만났다. 마중과 배웅에서 시인은 누굴 떠올렸을까. 어쩌면 수록 시 ‘블랙리스트’가 힌트가 될 것 같다.‘몇해 전 아버지는 자신의 장례에 절대 부르지 말아야 할 지인의 목록을 미리 적어 나에게 건넨 일이 있었다. (…) 빈소 입구에서부터 울음을 터뜨리며 방명록을 쓰던 이들의 이름이 대부분 그 목록에 적혀 있었다’.실제로 아버지는 “생전 몇 명 이름을 얘기하며 ‘내 장례 때 부르지 말라’고 당부하신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사람들은 내가 죽었을 때 슬퍼할 것 같다’는 게 이유였다. “청승맞은 소리 마시라고 앞에선 타박했지만, 멋지단 생각도 들었다”고 시인은 회고했다. “타인의 감정을 먼저 한 번쯤 생각하는 게 시인의 태도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내가 죽었을 때 무슨 생각으로 올까, 내가 어떤 말을 했을 때 어떤 감정을 가질까 이게 연결되는 거 아니겠습니까.”말하자면 블랙리스트는 남겨질 사람들에 대한 아버지 나름의 마중이자 배웅이었던 셈이다. 시인의 아버지는 지난해 봄 세상을 떠났다. “미리 생각해서 마중 나가고 혹은 가는 거 알면서도 조금 더 앉아서 배웅하고. 이게 가장 인간다운 시간이고, 인간다운 시간에서 인간다운 정서가 나온다고 생각합니다.”평생 마중하고 배웅한 관계지만, 정작 영원한 이별 앞에선 마중도 배웅도 미진하다. 시집에는 그런 이별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차마 얘기하지 못하는 더 많은 죽음들이 있어요. 욕심 같아선 한 권을 다 장례식으로 채우고 싶었어요. 검은 물이 뚝뚝 떨어지는, 전혀 마르지 않는. 근데 마지막에 이를 악물었어요. ‘이건 독자들에게 너무 폐가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서요.”어떤 뜨거운 재료도 읽는 이들을 위해 호호 불어 내놓자는 게 박 시인의 태도다. “시인이 되길 참 잘했다고 생각하는 게, 시는 샤우팅하지 않잖아요. 물론 나는 내적으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는 것이지만 이 소리가 타인의 귀를 찌르지 않는다는 거죠. 내 목청을 뚫고 찌르고 나온 것이지만 타인을 훼손하거나 방해하지 않아요.” 그런 그에게 작은 바람이 있다면, 세상이 조금은 시의 화법을 닮아갔으면 싶다. “김치 먹을 때 ‘대 좋아해 이파리 좋아해?’ 이런 것은 정보의 대화가 아니라 정서의 대화죠. 상대가 대를 좋아한다고 미워하지 않죠. ‘난 이파리를 좋아하는데 저 별종은 왜 대를 지지할까’ 생각하지 않잖아요. 긍정적인 인간의 대화는 시에 가까워요. 만약 우리가 여전히 시를 읽어야 한다면 시의 화법이 필요하기 때문이에요.”‘도인 같다’고 하자, 박 시인은 손사래를 치며 “나도 무슨 선비나 신선처럼 ‘허허’하는 정서의 대화만 하고 사는 건 아니다”고 했다.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날 선 대화, 정보의 대화가 오가는데 이런 완충이 있어야 다시 또 돌직구를 날릴 수 있죠. 상처가 그냥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시간이 해결해준다고요? 시간이 지나면 피멍이 들죠. 그냥 그 위로 다른 말들이 쌓여야 하는 것 같아요. 연고처럼.”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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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글로 권력에 저항’ 노벨문학상 바르가스요사 별세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자 페루의 유일한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요사(사진)가 별세했다. 향년 89세. 고인의 아들인 알바로 바르가스요사는 13일(현지 시간) 소셜미디어에서 “아버지는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1936년 페루에서 태어난 고인은 초창기엔 AFP통신과 프랑스 국영 TV 등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1963년 육군사관학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 ‘도시와 개들’을 펴내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원주민 착취를 다룬 소설 ‘녹색의 집’, 소설의 전복성을 강조한 에세이집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등이 세계적인 화제를 모았다. 한국에도 출간된 ‘염소의 축제’ ‘판탈레온과 특별봉사대’ 등도 큰 사랑을 받았다. 바르가스요사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콜롬비아)와 카를로스 푸엔테스(파나마), 훌리오 코르타사르(아르헨티나)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 전성기를 이끈 4인방으로 꼽힌다. 1994년 영국 맨부커상과 비견되는 스페인 문학상 ‘세르반테스상’을 받았으며, 2010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노벨문학상위원회는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고 평했다. 고인은 수상 강연에서 “가난하고 불의가 만연한 나라에서 글을 쓰는 게 사치로 여겨질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이 내 소명의식을 꺾진 못했다”고 했다. 고인은 정치에도 활발히 참여했다. 1990년에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대통령에게 패했다. 2011년 스페인은 고인의 문학성을 인정하며 그를 후작으로 봉작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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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벨문학상’ 페루 출신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별세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거장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13일(현지시간)별세했다. 향년 89세.고인의 아들인 알바로 바르가스 요사는 이날 소셜미디어 엑스X에 “부친이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화롭게 세상을 떠났다”고 부고를 전했다. 요사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카를로스 푸엔테스, 훌리오 코르타사르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문학 붐을 이끈 작가 4인방으로 꼽힌다.1936년 페루에서 태어난 요사는 1959년부터 파리 , 런던 , 마드리드 , 바르셀로나 등지에서 살다가 1974년 페루로 귀국했다. 한때 AFP통신과 프랑스 국영 TV 등에서 기자로 활동하기도 했다. 육군사관학교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쓴 ‘도시와 개들’(1963)를 펴내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이후 원주민 착취를 다룬 소설 ‘녹색의 집’, 소설의 전복적인 성격을 강조한 에세이집 ‘젊은 소설가에게 보내는 편지’ 등을 발표하며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1994년 세르반테스상을 받았고, 2010년 “권력 구조의 지도를 그려내고 개인의 저항, 반역, 좌절을 통렬한 이미지로 포착해냈다”는 평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정치에도 활발히 참여해 1990년에는 페루 대통령 선거에도 출마했으나 패했다.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강연에서 그는 “독자가 적고 가난하고 문맹인 사람이 많고 불의가 만연하며 문화가 소수의 특권인 나라에서 글을 쓰는 것이 나만의 사치가 아닌지 의문이 들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이러한 의구심이 소명의식을 꺾지 못했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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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중년 되어 문득 돌아본 아버지의 마흔

    목욕탕은 작가 김영하에게도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장소인가 보다. 직업군인이던 그의 아버지는 서울 집으로 돌아올 때면 김영하 형제를 데리고 목욕탕부터 갔다고 한다. 어린 형제에게 아버지와의 목욕탕 나들이는 꽤 기다려지는 행사였다.그러나 추억은 마냥 낭만적으로 끝나지 않는다. 어느 날 신발장에 올려둔 아버지의 신발을 누가 훔쳐 갔다. 아버지는 노발대발했다. 김영하 형제는 집에도 못 간 채 아버지가 목욕탕 주인과 싸우는 걸 지켜봐야 했다. 국민학생이었던 김영하는 목욕탕의 벌거벗은 손님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주인과 대거리하는 아버지가 부끄럽고 싫었다.어느덧 57세가 된 김영하는 이렇게 회상한다. “그때 아버지 나이는 마흔이었고, 지금 내 나이보다 열다섯 살이나 어렸던 젊은 아버지의 행동을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고. 모든 부모가 언젠가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우리가 언젠가는 누군가를 실망시킨다는 것은 마치 우주의 모든 물체가 중력에 이끌리는 것만큼이나 자명하다고. “나이가 들어 좋은 점은 그 사람이 나에게 해준 좋은 것과 나쁜 것을 분리해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라는 고백이 담담하게 느껴진다.신간은 작가 김영하가 ‘여행의 이유’ 이후 6년 만에 내놓은 산문집이다. “이 세상으로 나를 초대하고 먼저 다른 세계로 떠난 두 분에게”라는 첫 장의 헌사가 암시하듯, 신간에는 어머니와 아버지가 자주 등장한다. 누구든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가’라는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선 그 뿌리로 거슬러 올라가야 할 터. 쉰이 넘은 작가는 부모가 자신에게 남긴 것들에 대해 찬찬히 돌이켜 본다. 2023년 봄, 어머니의 빈소에서 겪은 에피소드도 인상적이다. 그는 여든이 훌쩍 넘은 엄마의 친구들로부터 어머니가 생전 숨겨온 비밀을 듣게 된다.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던 엄마에 대해 별로 알고 있는 게 없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엄마는 그가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던 시절의 자신에 대해 입을 다문 채 이 세상을 떠났으며, 이제 더 이상 직접 물어볼 수도 없는 이가 됐다. 소설가인 아들은 엄마에 대해 이렇게 표현한다. “엄마는 제한된 정보만으로 독자가 적극적으로 상상해내야 하는, 소설 속 인물들과 다르지 않게 되었다”고.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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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초대형 산불, 통제에 급급… 폭발하는 화산에 뚜껑 덮는 꼴”

    “메가 파이어(Mega Fire)가 판을 뒤집고 있습니다. 이제 기존의 사고방식은 더 이상 들어맞지 않습니다.”지난달 경북 지역 등에 발생한 산불은 4만 ha 이상을 태우는 초대형 산불을 일컫는 ‘메가 파이어’가 더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깨닫게 했다. 진화 수단을 총동원해도 잡히지 않았던 불. 당연히 장비와 인원 보강 등 더 적극적인 산불 대비가 필요하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한 게 아닐까.‘메가 파이어’를 새로운 생태적 재앙으로 조명한 신간 ‘숲이 불탈 때’(필로소픽)를 쓴 조엘 자스크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 철학과 교수(사진)는 10일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강조했다.“때는 2017년 7월이었습니다.” 자스크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프랑스 남부 바르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로 친구의 집을 비롯한 일대가 황폐화됐다. 현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큰 불길은 잡힌 상태였지만 숨이 막힐 듯한 냄새로 가득했다고 한다. 철학자인 그가 직감한 건 이 화재가 ‘정상적’이 아니란 느낌이었다.“숯덩이처럼 타버린 숲을 바라보며 느꼈던 재앙의 감각이 이 책의 출발점이었습니다.”자스크 교수는 사람들이 산불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홍수나 지진에 비해 산불은 상대적으로 작은 영향을 미치며, 필요한 경우 통제할 수 있다는 착각이다.“불에 타지 않는 건축 자재를 사용한다거나, 거주지를 숲에서 멀리 떨어뜨린다거나, 교육을 통해 환경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등의 재정비는 뒷전입니다. 현상 자체를 통제하려는 이상만 고집하고 있죠. 하지만 메가 파이어는 우리의 뒤통수를 가격합니다. 메가 파이어를 제어하려는 시도는 마치 폭발하는 화산 위에 뚜껑을 덮으려는 것만큼 어려운 일입니다.”게다가 다른 재난과 달리 메가 파이어는 주로 인간에 의해 발생한다. 그는 “어떤 재난도 인간이 직접 일으킬 수 없지만, 산에 불을 내는 건 가능하다”며 “지중해 지역에서 번개 등 자연적으로 발생하는 산불은 전체의 2%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자스크 교수는 심지어 메가 파이어가 새로운 유형의 전쟁과 테러의 위협이 될 수도 있다고 봤다. 2018년 이스라엘에선 방화용 풍선과 연을 사용한 테러로 약 2000ha의 숲이 불에 휩싸였다. 그는 “숲에 불을 지르는 건 인류가 존재한 시간만큼 오래된 전술”이라며 “이상 기후를 테러리스트들이 악용할 수도 있다”고 했다.때문에 자스크 교수는 “위험에 대한 올바른 태도는 예방”이라며 “의학과 마찬가지로 예방에는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오래전부터 써온 ‘계획적 불놓기’를 현대적으로 적용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철저하게 통제된 상황 아래 불을 놓아 산불 발생 때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연료들을 미리 태워 없애는 방법이다. 그는 “2019년 호주를 황폐화시킨 대형 산불은 과도한 더위와 가뭄 때문이지만, 숲을 관리하는 법을 알던 원주민 문화가 파괴되며 ‘계획적 불놓기’가 사라진 것도 하나의 원인”이라고 짚었다.“미국과 호주, 스웨덴, 그리스, 스페인 등 세계 곳곳이 불타고 있습니다. 모든 기후 이상 시나리오 중에서도 우리의 터전이 불길에 잠식당하는 게 가장 위협적입니다. 이에 대처할 발상의 전환이 시급한 때입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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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난감 만들어주려 빌린 책, 연체 99년만에 반납

    미국의 한 도서관에서 99년간 연체됐던 책이 반납됐다. 9일 CNN에 따르면 미 뉴저지 오션카운티도서관에선 1926년 3월에 대출된 책 ‘소녀와 소년을 위한 집에서 만드는 장난감(Home-Made Toys for Girls and Boys)’이 최근 반납됐다. 책을 반납한 메리 쿠퍼(81)는 돌아가신 어머니 유품을 정리하던 도중 이 책을 발견했다고 한다. 1911년 출판된 이 책은 나무와 금속, 가정용품 등으로 아이 장난감을 만드는 방법에 대한 설명과 그림이 실려 있다. 책에는 당시 책을 대출하고 반납할 때 사용했던 카드가 골판지 커버에 쌓인 채 들어 있었다. 책을 빌린 사람은 쿠퍼의 외할아버지인 찰스 틴턴(1884∼1927). 그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해당 도서를 대여했다. 목수였던 틴턴은 딸인 쿠퍼의 어머니에게 장난감을 만들어주기 위해 책을 대출한 것을 보인다. 실제로 쿠퍼는 책에서 할아버지가 만들었던 장난감 배와 똑같은 모양의 배 그림을 발견하기도 했다. 오션카운티도서관 관계자는 “우리 도서관이 올해 개관 100주년을 맞이하는 해에 이 책이 돌아온 건 마치 신의 섭리 같다”며 기뻐했다. 도서관 측은 반납된 책을 도서관 전시장에 보관하고, 연체료는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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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사 놓기전 볼기 찰싹… 한국인들 생각 너무 재밌어요”

    “포장마차에 술 마시러 오는 분들, 길에서 물건 파는 분들…. 한국의 ‘보통 사람들’에게 바치는 마음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한국인에게서 놀라움을 넘어 경이를 느낀다는 프랑스인이 있다. 2003년 프랑스 엑스마르세유대에 한국학과를 개설한 데 이어, 한국문학 전문 출판사를 세운 장클로드 드크레센조 교수(73)다. 그는 한국인 부인과 한국인 며느리가 있고, 한국어 이름(장길도)도 따로 있는 ‘원조격’ 한류 전도사다. 지난달 31일 에세이 ‘경이로운 한국인’(마음의숲)을 펴낸 드크레센조 교수를 4일 화상 인터뷰로 만났다. 부인이자 엑스마르세유대 한국학과 교수인 김혜경 씨도 함께했다. 두 사람은 현재 프랑스 남부 엑상프로방스에 살고 있다. “한국에선 주사를 놓기 전에 볼기를 찰싹 때리죠. 도무지 적응이 안 되는 순간이에요. 환자가 주사 맞는 아픔을 잊게끔, 생각을 완전히 다른 곳으로 바꾸기 위해 때리는 건데 이게 아주 재밌습니다.” 에세이엔 이러한 사례가 100개 넘게 실렸다. 드크레센조 교수는 “이 책에서 말하고 싶었던 건 한국이 아니라 한국인”이라며 “한국에 대한 책은 꽤 있는데 한국 사람들에 대한 책은 많지 않다”고 했다. 그는 해마다 두세 차례 한국을 찾고, 그때마다 하루 두세 건씩 약속을 소화하는 ‘인싸’다. 이 책은 그가 여러 한국인과 교류하며 찾아낸 한국의 독특한 문화 관찰기를 모은 셈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 드크레센조 교수는 한국인 작가들이 하나같이 새끼손가락을 바닥에 괴고 글씨를 쓴다는 걸 발견했다. 그는 이 습관이 어디서 비롯됐는지 궁금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어린이들이 어떻게 글씨 쓰는 법을 배우는지 알아보고, 자음과 모음이 결합돼 네모꼴을 이루는 한글의 문자 모양과 필기법의 상관관계를 찾아 나섰다.드크레센조 교수는 2011년 자신의 이름을 내건 ‘드크레센조’ 출판사를 세운 뒤 한국 소설가 한강 은희경 정유정 김애란 등의 작품을 프랑스에 소개했다. 이승우 작가의 장편소설 ‘캉탕’을 김 교수와 공역해 2023년 한국문학번역상 대상도 받았다. 강동호 문학평론가에 따르면 2012∼2024년 프랑스에서 번역된 한국문학 단행본은 총 242종. 이 중 21.5%에 이르는 53종이 드크레센조 출판사에서 출간됐다. 단일 출판사로서는 엄청난 비중이다. 부인인 김 교수는 현재 엑스마르세유대 아시아학연구소장을 지내고 있다. 김 교수는 “요즘 입학 경쟁률이 가장 높은 게 한국학”이라며 “75명을 뽑는데 해마다 2000명 이상 지원자가 온다. 이 덕에 올해부터 정원이 100명으로 늘었다”고 했다. “지금 프랑스에선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예요. 많이 몰리지 않는 대학도 한국학과는 1000명씩 지원해요. 유럽에서도 프랑스가 가장 열기가 뜨겁다고 할 수 있어요.”(김 교수) 드크레센조 교수는 이 같은 한류 붐 형성에 한국 영화의 역할이 컸다고 평했다. 그다음 K팝과 드라마다. K문학이 다음 바통을 이어받을 수 있을까. “한국은 시집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나라예요. 시집의 판매량과 출간 부수를 보면 정말 놀랍습니다. 프랑스에선 상상할 수 없는 숫자죠. 현재 한국도 문학이 다른 나라처럼 어렵다지만, 그래도 한국인 정서에는 시를 좋아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 것 같아요. 한국은 다시 문학이 자기 자리를 되찾을 거라고 봅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 2025-0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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