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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태어나는 기쁨으로 쓴 시들을 모았습니다.” 한국시인협회장, 대한민국예술원 회장 등을 역임한 원로 시인 이근배 시인(85·사진)이 2019년 ‘대 백두에 바친다’ 이후 6년 만에 새 시집 ‘아버지의 훈장’(시인생각)을 펴냈다. 1930년대 중반 충남 아산에서 독립운동을 펼친 공로로 2020년 뒤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이 수여된 부친 이선준 씨(1911∼1966)에 대한 그리움과 곡절 많던 가족사를 담은 시들이 주로 수록됐다. 12일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이 시인은 “전쟁으로 1년 남짓 같이 살다 헤어진 아버지가 뒤늦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은 건 놀라운 개벽 같은 일이었다”며 “아버지께 큰절을 올린다는 뜻으로 제목을 골랐다”고 말했다. 6·25전쟁 이후 부친의 남로당원 경력 등이 문제돼 온 가족이 오랫동안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이다. 그는 1962∼1964년 다섯 개 일간지 신춘문예에 총 일곱 번,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 신인예술상에 세 번 당선돼 ‘신춘문예 10관왕’으로도 유명하다. 이 시인은 “신춘문예에 당선된 작품들은 모두 분단에 대한 것이었다”며 “아버지 때문이라도 늘 조국 분단이 내 안에 박혀 있었다. (분단은) 민족이 공유한 화두지만 나는 그걸 시로 쓰는 데 꽂힌 셈”이라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사람이 ‘언제 늙는고’ 하니 ‘이젠 늙었다’ 생각할 때 늙어요.” 1920년 4월 23일생. 올해 105세인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가 12일 신간 ‘김형석, 백 년의 유산’(21세기북스·사진)을 펴냈다. 그는 이날 서울 중구의 한 식당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지금도 내 정신이 늙었단 생각은 하지 않는다”며 “사람들과 이렇게 ‘대화’하면 공감대가 생기지 않느냐”고 했다. 여전히 정정한 김 교수는 간담회 뒤엔 동아일보와 따로 만나 추가 인터뷰에도 응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5월 인문서 ‘김형석, 백 년의 지혜’(21세기북스)를 펴낸 뒤 같은 해 9월 기네스북에 ‘세계 최고령 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 신간은 자기 기록을 경신한 셈. 그는 “(앞으로) 나보다 나이 많은 저자가 나올 테니 큰 관심은 없다”면서도 “한두 권쯤 더 쓰면 그땐 (기록 깰 이가) 잘 없으려나”라며 여유롭게 웃었다. 이번 신간은 동아일보에 연재 중인 ‘김형석 칼럼’ 등을 포함해 그가 평생 품어온 사랑에 대한 성찰을 담았다. 김 교수는 “인생이란 사랑의 나무를 키우는 것”이라며 “내가 사랑하는 제자들, 가난한 이들,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뭔가 주고 싶어 했던 게 지금에 이르렀다. 이렇게 살았더니 후회는 좀 적다”고 했다. 1945년 광복 당시 스물다섯이던 김 교수는 사상의 자유를 찾아 38선을 넘어 내려왔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엔 자유가 결핍된 시대를 체험한 이의 주체적 인간관이 묻어났다. “내 인생의 4분의 1을 일제강점기에 살며 ‘내 나라에 살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는 걸 절실히 느꼈습니다. 그런데 공산 국가는 내 나라가 아닐뿐더러, 나라다운 나라도 아니었어요.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일제 강점기도 개인이 자기 사상을 갖고 살 수는 있었어요. 공산주의 세계에선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2년 뒤 38선을 넘어와 오늘이 된 겁니다.” 김 교수는 청년들에게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길 당부했다. 그는 “30대 전후까지 ‘60∼70대엔 어떤 인생을 살게 될까’ 자화상을 그려봐야 한다”며 “그게 없으면 평생 내 인생을 살지 못한다”고 했다. 최근 화두인 인공지능(AI)에 대한 견해를 밝혔다. 김 교수는 “인문학에선 하나의 물음에 하나의 답만 있는 게 아니다”며 “인문학도들도 AI 시대에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세 가지 원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첫째, 진실과 거짓을 구분해야 합니다. 둘째, 양심에 비춰 선과 악을 구분해야 합니다. 셋째, 인간이 주인이란 생각을 버리면 안 됩니다. 이 세 가지만 지키면 어떤 시대라도 괜찮을 거예요.” 김 교수는 오랫동안 인촌 김성수(仁村 金性洙) 선생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아왔다. 이날 역시 인촌에 대한 얘기를 먼저 꺼내며 그리움을 드러냈다. “인간은 인격만큼 존경을 받습니다. 인촌 선생은 제가 만나본 사람 가운데 인격적으로 가장 훌륭한 분이었어요. 그분을 보면서 인격이 무엇인가를 깨달았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저만큼 높은 봉우리엔 오를 순 없겠구나 싶었죠.” 인터뷰와 간담회 내내 김 교수는 또렷하게 달변을 이어갔다. 이리도 맑은 정신으로 장수하는 비결이 있을까. “정서적 건강이 중요해요. 백 살이 됐을 때 같이 백 살 된 친구를 세어보니 7명이었어요. 모두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첫째, 남 욕하지 않습니다. 둘째, 화내지 않습니다. 물론 가장 좋은 노하우는, 실력 있는 가정의학과 의사를 만나 시키는 대로 하는 겁니다, 하하.”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아버지는 한국의 유복한 가정을 떠나,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미국에 트렁크 하나 들고 건너왔습니다. 존재 전체를 바꿔야 했던 사람과 함께 성장한 건 제게 깊은 각인을 남겼습니다.” 장편소설 ‘플래시라이트(Flashlight)’로 세계적 권위의 문학상인 영국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한국계 미국인 작가 수전 최(56)가 9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주영한국문화원에서 개최한 북토크에 나섰다. 그는 이 자리에서 “통제 불가능한 외부 상황에 의해 인생이 형성되는 인물에 대해 쓰는 데 관심이 많다”며 “여기엔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다”고 했다. 미 인디애나주에서 한국인 아버지와 유대계 미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최 작가는 텍사스에서 자랐다. 1990년 예일대 문학사 학사, 1995년 코넬대 문예창작학과 석사를 취득했다. 현재 펜 아메리카(PEN America) 이사로 활동하며 존스홉킨스대에서 문예창작을 가르치고 있다. 올해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른 그의 여섯 번째 장편 ‘플래시라이트’는 전후 재일교포 사회와 미국 교외를 배경으로 20세기 역사적 격랑 속에 휘말린 한 가족의 서사를 그린 작품이다. 부커상 심사위원단은 “대륙과 세기를 능숙하게 가로지르는 이 야심 찬 작품에서 수전 최는 역사적 긴장과 친밀한 드라마를 놀라운 우아함으로 균형 있게 담아냈다”고 평했다. 올해 부커상 수상작은 10일 오후 9시 반(한국 시간 11일 오전 6시 반) 영국 런던에서 열리는 시상식에서 발표된다. 소설은 재일교포로서 보이지 않는 차별을 겪다가 미국으로 건너가 교수가 된 석, 그의 미국인 부인 앤, 딸 루이자의 수십 년에 걸친 삶을 따라간다. 작품 속 가족 구성은 작가의 실제 가족사와 닮았다. 최 작가는 1세대 영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인 최재서(1907∼1964)의 손녀다. 아버지 최창(1931∼2022)은 6·25전쟁 이후 도미해 인디애나주립대 수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최 작가는 주인공 석을 재일교포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 “책을 쓰기 한참 전에 자이니치(재일교포)에 대해 알게 됐다”며 “이들이 20세기 전반 한국과 일본의 대단히 힘들고 복잡한 관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또 다른 창이 된다는 점에 매료됐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책을 쓸 때마다 창작적 혼란을 경험한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하는 상태로 책을 시작하고, 절대로 개요를 짜지 않는다”며 “책에 담고 싶었던 몇 가지 요소에서 시작했지만, 책의 구조나 이야기의 흐름은 쓰면서 찾아낸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미시마? 소설은 잘 쓰지. 그런데 작가는 별로.”소설가 양선형이 ‘일본 작가 미시마 유키오(1925~1970)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지인들에게 물었을 때 받은 답변이라고 한다. 그는 8월 출간한 에세이 ‘미시마의 도쿄’(소전서림)에서 “미시마만큼 독자를 난처하게 만드는, 나아가 해괴한 충격에 빠뜨리는 이도 드물다”고 썼다.미시마의 탄생 100년을 맞은 올해, 국내 문학계에서 조용하지만 뚜렷한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출간 작품이 번역돼 나오는가 하면, 작가의 생애와 문학을 돌아보는 에세이도 잇따르고 있다. 1970년 천황제 부활을 촉구하며 할복으로 생을 마감하는 등 정치적 논란과 극단적 생애를 지닌 인물임에도 그의 문학이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올해 들어 그의 유작인 ‘풍요의 바다’ 4부작(민음사)과 단편 12편을 모은 첫 단편선집 ‘시를 쓰는 소년’(시와서)이 처음 번역돼 출간됐다. 국내 최다 단편(24편)을 수록한 단편선집 ‘미시마 유키오’(현대문학)도 이달 중순 출간을 앞두고 있다. 대중적인 장르 소설 ‘목숨을 팝니다’(알에이치코리아)도 새 번역본으로 출간됐다. 출판계에선 미시마가 그려낸 ‘인물’에 주목한다. 그의 작품에는 균열을 안고 흔들리는 인물이 등장한다. 정체성, 자존감, 고립감 같은 주제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작가였기에, 그만큼 현대적 재해석의 여지가 크다. 자전적 소설 ‘가면의 고백’(1949)의 주인공은 자신의 욕망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정상’을 연기하지만, 그 연기가 무너질까 두려워한다. 대표작 ‘금각사’(1956)의 미조구치 역시 결핍에서 출발해 파국으로 끝난다. 말더듬이라는 콤플렉스와 타자와의 단절 속에서 그는 ‘아름다움’만을 절대적 가치로 붙든다. 그 숭배는 집착으로 변해 결국 금각사를 불태우는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진다.강연옥 현대문학 단행본1팀장은 “부잣집 도련님 시절부터 자위대에 가고자 했지만 심신이 건강치 못해 거부당했던 경험, 동성애 경험, 할복까지, 드라마틱한 미시마의 삶이 각각의 작품 안에 스며들어 있다”며 “물론 작가와 작품을 분리해서 봐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삶의 연대기가 공교롭게 작품의 주요 소재로 들어가 자전적 소설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다”고 했다. “‘인간실격’의 다자이 오사무와는 또 다른 허무와 쓸쓸함의 정서가 있다”고 덧붙였다.문체와 재미 그 자체도 미시마 작품의 매력으로 꼽힌다. ‘풍요의 바다’를 편집한 박지아 민음사 해외문학팀 차장은 “오늘날 웹소설이라 해도 될 만큼 읽는 재미가 있다”며 “자기 친구를 환생된 상태로 계속 만나는데,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극한의 재미에 도달하면서도 동시에 ‘공(空)’과 같은 불교적 주제를 진하게 느끼게 만든다”고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2014년 1월 24일, 멕시코에서 가장 폭력적인 카르텔 조직 ‘세타스’가 21세 여대생을 납치했다. 가족은 딸을 구하기 위해 평생 모은 돈에 은행 대출까지 받았다. 모두 합쳐 1만 달러(약 1450만 원)가 좀 안 됐지만 있는 대로 끌어모았다. 가족은 이후에도 몸값을 두 차례나 냈지만, 돌아오는 건 또 다른 요구뿐이었다. 납치범들은 희망을 놓지 않으려는 가족의 절박함을 집요하게 악용했다. 그리고, 딸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마약 카르텔에 딸을 잃고 복수에 나선 어머니, 미리암 로드리게스의 일대기를 담은 르포르타주다. 미국 뉴욕타임스(NYT) 국제 탐사보도 특파원으로 2025년 퓰리처상 해설 보도 부문을 받은 저자가 사건 관계자의 인터뷰와 방대한 기록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복원했다. 책은 미리암의 고군분투뿐 아니라 폭력이 일상화된 멕시코 현대사를 교차해 가며 국가의 모순을 그려 낸다. 미리암은 납치 용의자를 직접 추적했다. 조직원이 소셜미디어에 올린 사진 속 아이스크림 체인점 로고 하나를 단서 삼아, 주(州) 전역의 매장 수십 곳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몇 시간씩 잠복했다. 머리를 짧게 자르고 밝은 빨간색으로 염색하며 외모를 바꿨고, 보건부 공무원으로 위장해 공무원증을 목에 건 채 일대 가가호호를 돌며 가짜 설문조사까지 했다. 그리고 마침내 용의자의 실명과 생년월일(1994년 12월 23일)을 확보했다. 실명을 알아야 고소도, 체포영장 청구 압박도 가능했다. 그는 경찰에게 자신이 수집한 정보를 전달했고, 수사 진행이 더디면 공식 요청서를 보내 수사관들을 재촉했다. 제도가 무너질 대로 무너진 가운데, 공권력을 그나마 움직이게 만들기 위해서는 인내와 끈질긴 인맥 쌓기가 필수였다.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범인 일부가 어머니가 제공한 단서를 바탕으로 한 소탕 작전에서 사살되거나 체포돼 수감됐다.저자는 이토록 극단적인 폭력이 어떻게 일상이 됐는지 역사적 배경을 짚는다. 폭력에 길들여진 지역사회, 조직범죄와 결탁한 공권력, 오랫동안 유지된 일당 독재가 그 원인으로 제시된다. 미리암이 살던 타마울리파스주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의 주요 관문으로, 마약 밀수를 둘러싼 카르텔 간 전쟁이 격렬했던 지역이다. 특히 멕시코 육군 특수부대 출신 탈영병들로 구성된 세타스는 참수, 산 채로 황산에 녹이는 고문, 무차별 학살 등을 저질렀다. 2011년 멕시코의 살인 사건은 2만8000건에 이르렀다. 정부가 통계를 내기 시작한 이후 최악의 기록이다. 지역 은행들은 납치 피해자 가족을 위한 ‘몸값 대출 상품’까지 내놓을 정도였다. 납치가 얼마나 일상화됐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세타스에 맞선 지 3년이 지난 2017년 5월 10일, 미리암은 괴한 두 명에게 총 8발을 맞고 목숨을 잃었다. 당시 그의 손은 늘 권총을 넣어 다니던 핸드백 안에 놓여 있었다고 한다. 최근 캄보디아 한국인 대학생 납치·살인 사건을 떠올려보면, 멕시코의 마약·폭력 문제가 이젠 그저 먼 나라의 비극만은 아니다. 딸의 실종을 파헤치다 숨진 미리암의 이야기에서 드러나는 건, 근본까지 망가진 제도 앞에서 ‘당위’와 ‘정의’란 게 얼마나 무력한지다. 불의에 맞섰고, 정부를 움직였으며, 시대의 패러다임을 바꾸기 위해 한 시민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준 미리암의 삶은 그래서 더욱 울림이 크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인근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서울시가 최근 규제를 완화한 것에 대해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최 장관은 7일 오후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함께 종묘 정전을 찾아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자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 곳”이라며 “이러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최 장관은 이어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며 “문화유산법, 세계유산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필요한 경우 새 법령 제정도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오세훈 서울시장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최 장관은 “그늘이 안 생기면 된다고요? 하늘을 가리는데 무슨 말씀입니까”라며 “1960, 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이라고 했다. 오 시장이 5일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높이 규제를 완화해도 종묘에) 그늘이 생기지 않는다”고 한 것을 비판한 것이다. 허 청장 역시 “초고층 건물들이 세계유산 종묘를 에워싼 채 발밑에 두고 내려다보는 구도를 상상해 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오 시장은 이날 오후 세운상가 옥상정원에서 브리핑을 열고 “서울시 사업이 종묘의 가치를 훼손한다는 주장은 과도한 우려”라며 “남산에서 종로까지 이어지는 녹지축을 조성해 종묘로 향하는 생태적 접근성을 높이고, 역사적·문화재적 가치를 높이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고시를 통해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세운4구역의 건축물 최고 높이를 기존 70m에서 145m(청계천 쪽 기준)로 상향한 바 있다. 이달 6일 대법원은 문체부가 제기한 소송에서 국가유산청과 협의 없이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이수명 시인(60)의 여섯 번째 시집 ‘마치’(2014년)가 6일(현지시간) 미국문학번역가협회가 주관하는 루시엔 스트릭 아시아 번역상을 받았다. 이 시집은 지난해 미국에서 ‘저스트 라이크(Just Like)’라는 제목으로 출간됐다. 한국 시집이 이 상을 받은 것은 이번이 다섯 번째다.심사위원단은 이 시집에 대해 “언어를 과감하게 해체하고 다시 조립해 새롭고도 낯선, 흥미로운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두려움 없는 야심작”이라고 평했다. 루시엔 스트릭 아시아 번역상은 미국 시인이자 번역가인 루시엔 스트릭(1924~2013)을 기리는 상으로, 매년 영어로 번역·출간된 아시아 시집 가운데 수상작을 선정해 작품과 번역가에 시상한다. ‘마치’의 번역자 콜린 리마셜에겐 상금 1만 달러(약 1460만 원)가 지급된다.앞서 김혜순 시인의 ‘당신의 첫’(최돈미 번역)과 ‘죽음의 자서전’(최돈미 번역), 김이듬 시인의 ‘히스테리아’(제이크 레빈·서소은·최혜지 공역), 이영주 시인의 ‘차가운 사탕들’(김재균 번역)이 이 상의 수상작으로 선정된 바 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앞에 고층 건물을 짓도록 서울시가 높이 규제를 완화한 것에 대해 정부가 우려를 표하며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7일 오후 허민 국가유산청장과 함께 종묘를 찾아 “취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해 우리 문화유산을 지키는 일에 앞장서겠다”며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세계유산의 보존·관리 및 활용에 관한 특별법’ 등 관련 법령을 개정하고, 필요한 경우 새 법령 제정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최 장관은 “그늘이 안 생기면 된다고요? 하늘을 가리는데 무슨 말씀입니까”라며 “이것이 바로 60, 70년대식 마구잡이 난개발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종묘는 조선 왕실의 위패가 모셔진 신성한 유산이자 우리나라 유네스코 세계유산 1호의 상징적 가치를 지닌 곳”이라며 “이러한 가치가 훼손될 수 있는 현 상황이 매우 우려스럽다”고 밝혔다.최 장관은 이어 “권한을 조금 가졌다고 해서, 하고 싶은대로 다 하겠다는 서울시의 발상과 입장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다”고 덧붙였다.허민 국가유산청장은 “모든 유네스코 관계기관과 국민과 함께 종묘를 세계인들에게 반드시 물려줄 것”이라며 “서울시는 미래세대에게 세계유산을 물려줄 것인지, 콘크리트를 물려줄 것인지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서울시는 10월 30일 고시를 통해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는 ‘세운4구역’의 건축물 최대 높이를 기존 70m에서 145m(청계천 쪽 기준)로 상향했다. 이달 6일 대법원 1부는 문체부가 제기한 ‘서울특별시문화재보호조례중 개정조례안 의결 무효확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역사문화환경 보존지역 밖에서의 개발 규제를 완화한 서울시 조례 개정이 유효하다고 판결한 것.이날 회견 장소엔 세운4구역 토지 소유주 10여 명이 ‘국가유산청은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라’는 손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20년 넘게 발목 잡은 손해배상을 하라”, “우리는 생사가 달렸다”고 외치며 허 청장에게 거세게 항의하기도 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미국 월가의 31년 차 애널리스트인 신순규 씨(58)가 대학에 입학할 때 일이다. 어머니는 독립하는 아들을 위해 옷걸이마다 점자를 붙여주셨다. ‘노란색’ ‘파란색’ 등 옷걸이마다 색깔을 표시했다. 시각장애인인 아들이 누구에게 의존하지 않고 옷을 입을 수 있도록. 아들은 40년 가까이 된 그 옷걸이들을 지금도 간직하고 있다. “근데 엄마랑 저도 생각을 못 했던 게, 옷을 벗으면 똑같은 옷걸이에 걸어야 한다는 거예요. 까먹고 딴 데 걸어놓으면 다 꽝이 되는 거죠, 하하.”1967년 서울에서 태어난 신 씨는 9세 때 시력을 잃었다. 어머니 권유로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고, 순회 공연차 방문했던 미국에서 자신을 맡아주겠다는 ‘미국인 부모’를 만나 15세에 유학을 떠났다. ‘점자 옷걸이’를 만들어주신 건 미국 어머니였다. 부모의 사랑은 좋은 결실을 맺었다. 신 씨는 하버드대에서 심리학을 전공한 뒤 월가 투자은행 JP모건에 입사했다. 시각장애인 최초로 공인재무분석사(CFA)도 취득했다. 현재 세계적인 투자사 ‘브라운 브러더스 해리먼’에서 이사(직함은 ‘vice-president’)로 재직하고 있다.최근 세 번째 에세이 ‘할 수 있다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봅시다’(판미동)를 낸 신 씨를 5일 서울 용산구의 한 호텔 라운지에서 만났다. 전작 에세이 ‘눈 감으면 보이는 것들’(2015년)과 ‘어둠 속에 빛나는 것들’(2021년)도 각각 국내에서 2만 부, 1만 부가 팔렸다. 무척 달변가인 그는 인터뷰 내내 정치와 경제는 물론이고 자녀 양육까지 다양한 주제를 넘나들었다. “한국 올 때마다 공항에 팬이 가득하다”며 천연스러운 농담도 곁들였다. 신 씨가 역경을 이겨낸 비결은 뭘까. 그의 성장 과정엔 ‘장애인이니까 기대를 낮춰야 한다’는 전제가 없었다. 스물네 살 딸과 스무 살 아들은 “아빠가 시력이 없어서 이 정도지, 아니면 수백만 명이 따르는 교주나 나라를 쥐락펴락하는 정치인이 됐을 것”이라고 한단다. “미국 어머니는 저에게 사람들과 얘기할 때 우물우물하지 말고 똑바로 말하라고 하셨어요. 영어를 할 때도 외국인이 아니라 현지인과 똑같이 말하는 걸 강조하셨죠. 대학 갈 즈음엔 사람들이 저를 원어민인 줄 알았어요.” 수재들이 모인다는 하버드대에서 움츠러들진 않았을까. 그는 “연애하는 것 빼고는 기죽어 본 적이 별로 없다”며 “항상 나 자신과 싸웠기 때문에 남과 비교해 의기소침해지진 않았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100인데 80밖에 못 할 때 속상했다”고 말했다. “처음엔 저도 시각장애인이니까 직업이나 전공도 ‘할 수 있는’ 걸 우선 찾았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게 그리 제한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았어요. 직업도 전공과 상관없는 걸 갖게 됐잖아요. 전 그냥 제게 재미있어 보이는 걸 선택했을 뿐이에요.”이제 신 씨는 자기처럼 다른 이들에게도 날개를 달아주려 노력하고 있다. 보육원 아이들을 돕는 비영리 단체 ‘야나 미니스트리(YANA Ministry)’를 설립했으며, 유학 프로그램으로 지금까지 10명의 학생을 미국 가정과 연결했다. “미국 부모님도 저를 입양한 것도 아닌데, 그냥 자식처럼 키워주신 거거든요. 저는 그 스토리를 되풀이하고 싶었어요. 저희 딸 예진이도 12세 때 한국에서 데리고 왔어요. 예진이도 대학 갈 즈음엔 외국에서 자란 티가 안 날 정도로 영어를 잘했죠.” 앞으로는 “글을 더 자주 쓰고, 책도 꾸준히 내고, 강의 활동도 하고 싶다”는 신 씨. 자신이 외치는 한마디가 누군가에게 분명 도움이 되리라는 확신 때문이다. “출판사에도 얘기했거든요. ‘1년에 한 권씩 낼까요?’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방법을 찾아봐야죠.”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 ‘동조자’를 집필할 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고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소설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한 베트남계 미국 작가인 비엣 타인 응우옌(54·사진)은 4일 국내 언론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동조자’는 미국으로 건너간 북베트남 스파이를 그린 소설. 미 HBO 드라마로 만들어져 지난해 현지에서 방영됐는데, 박 감독이 연출을 맡고 배우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와 샌드라 오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박 감독이 소설에 영감을 줬고, 또 그 소설은 박 감독에 의해 드라마가 된 것. 응우옌 작가는 “소설을 드라마로 각색할 때 프로듀서가 ‘어떤 감독이 떠오르느냐’고 묻기에 주저 없이 박 감독이라고 했다”며 “영화 ‘올드보이’의 시각적 스타일이나 메시지, 창의성, 기이한 폭력 등 모든 게 ‘동조자’를 쓰는 데 영향을 줬다”고 했다. 이날 화상 인터뷰는 응우옌 작가의 신간 ‘두 얼굴의 남자’가 지난달 31일 국내 출간된 걸 계기로 이뤄졌다. 집 안에선 베트남 이민자 부모의 삶을, 집 밖에선 미국 사회를 관찰하며 ‘이중간첩’처럼 살아온 경험을 담은 자전적 에세이다. 베트남에서 태어난 그는 1975년 사이공 함락 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 응우옌 작가의 가족은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 사례라 할 만하다. 형은 버락 오바마 전 미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의사이며, 작가도 서던캘리포니아대(USC) 문학 교수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자리할 수 있는지를 끝없이 묻는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신간에 따르면 부모님이 운영하는 식료품점엔 ‘베트남인들 탓에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낙서가 붙기 일쑤였다. 그가 청소년기 접한 영화나 드라마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백인이었다. 응우옌 작가는 “정치적 주제를 다룬 작품으로 (예술성도 갖춘) 문학을 만들기란 매우 어렵다”면서도 “제 목표 중 하나가 그걸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요즘 저는 열두 살 아들과 함께 조지 오웰의 소설 ‘1984’를 읽고 있습니다. 정치적이면서도 예술성이 높죠. (1993년 비백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받은) 토니 모리슨의 소설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작품들이 제게 영감을 줍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소설 ‘동조자’를 집필할 때 박찬욱 감독의 ‘올드보이’를 보며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베트남계 미국 작가 비엣 타인 응우옌(54)은 4일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미국으로 건너간 북베트남 스파이를 그린 소설 ‘동조자’로 2016년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이 소설은 박찬욱 감독 연출로 미국 HBO 드라마로 제작돼 지난해 방영됐다. 소설가와 감독, 두 거장이 서로의 작업에 영향을 주고받은 셈이다.응우옌은 “‘동조자’를 드라마로 각색할 때 프로듀서가 ‘어떤 감독을 생각하고 있느냐’고 묻기에 주저 없이 박찬욱 감독이라고 했다”며 “‘올드보이’의 시각적 스타일, 메시지, 창의성, 기이한 폭력, 모든 것이 ‘동조자’를 쓰는 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응우옌의 신간 에세이 ‘두 얼굴의 남자’(민음사)가 최근 국내 번역 출간됐다. 집 안에서는 베트남 이민자 부모의 삶을, 집 밖에서는 미국 사회를 관찰하며 ‘이중간첩’처럼 살아온 경험을 담은 책이다. 그는 베트남에서 태어나 1975년 사이공 함락 뒤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이주했다.형은 오바마 전 대통령의 주치의를 지낸 의사이고, 본인은 미국 문학 교수로 자리 잡는 등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지만, 그는 자신이 어디에 자리할 수 있는지를 끝없이 묻는 성장기를 보냈다고 한다. 부모의 가게에는 ‘베트남인들 때문에 또 다른 미국인이 일자리를 잃었다’는 낙서가 붙기 일쑤였으며, 청소년기에 접한 영화와 드라마의 주인공들은 모두 백인이었다. 그는 “정치적인 문학으로 좋은 문학을 만들기는 매우 어렵다”면서도 “제 목표 중 하나가 그것을 달성하는 것”이라고 했다.“요즘은 저의 12살 아들과 조지 오웰의 ‘1984’를 읽고 있습니다. 정치적인 주제에 예술성을 담았죠. 토니 모리슨(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흑인 여성)도 마찬가집니다. 이런 작품들이 제게는 영감을 줍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2001년 개봉한 허진호 감독의 영화 ‘봄날은 간다’의 각본집이 지난달 24일 출간됐다. 사운드 엔지니어 상우(유지태)와 라디오 PD 은수(이영애)의 만남과 이별을 그린 작품으로, 실제 영화에 사용된 최종본 각본이 공개된 건 24년 만에 처음이다. 최근 ‘봄날은 간다’처럼 옛날 영화와 드라마를 각본집 형태로 펴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단순히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작품의 언어와 감정을 책으로 간직하려는 수요가 커지며 출판으로도 이어지는 분위기다. 허 감독의 데뷔작인 ‘8월의 크리스마스’(1998년)도 같은 날 스튜디오오드리에서 각본집으로 나왔다. 지금껏 공개되지 않았던 촬영 현장 컷과 감독 인터뷰를 담았다. 앞서 4월에는 김지운 감독의 ‘달콤한 인생’(2005년)이 개봉 20주년을 맞아 마음산책에서 각본집으로 출간됐다. 인터넷서점 알라딘에서 사전 모금 당시 목표 금액의 200%를 가뿐히 넘기며 출간으로 이어졌다. 올해 초에는 ‘내 이름은 김삼순’(2005년)이 20년 만에 처음 무삭제 대본집으로 나왔다. 김선아와 현빈 배우의 인터뷰와 삭제 장면까지 포함한 완전판으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에서 모금 당시 목표치의 3719%를 달성하며 주목받았다. 마음산책 관계자는 “책을 ‘굿즈’로 생각하는 독자가 늘면서 추억의 영화와 드라마를 각본집으로 소장하려는 독자가 늘고 있다”며 “‘달콤한 인생’ 각본집을 낼 당시에는 영화 속 명대사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를 활용한 열쇠고리 굿즈를 함께 만들기도 했다”고 말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크기는 48절 수첩보다 가로로 살짝 긴 정도. 두께도 겨우 마흔 장 남짓. 지난달 22일 출간된 이미상 작가의 신작 단편소설 ‘셀붕이의 도’는 얼핏 소설책이란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이 정도 분량의 단편이라면 7, 8편은 모아야 소설집으로 나오지만 해당 소설은 단 한 편만 갖고 한 권의 책으로 만들었다. 출판사 위즈덤하우스가 2022년 11월부터 시작한 단편소설 시리즈 ‘위픽’이 약 3년 만인 지난달 22일 100번째 책인 ‘셀붕이의 도’를 펴냈다. 국내 출판계에서 이전에도 단편 시리즈 출간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지만, 위픽은 3년을 꾸준하게 이어 오며 단편 시리즈의 상업적 가치를 제고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특히 위픽은 특유의 격자무늬 표지에 소설의 대표적인 문장을 실어 MZ세대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위즈덤하우스의 김소연 스토리팀장은 “요즘 독자들은 책을 자기 표현의 수단으로 여긴다”며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췌해 문장 단위로 책을 소비하곤 한다. 대표 문장을 표지에 넣은 이유”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위픽을 구매하는 독자들은 20대 여성 비율이 약 40%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단편 시리즈는 독자들의 진입 장벽은 물론이고 작가의 진입 장벽도 함께 낮췄다. 소설가가 단편을 모아 소설집을 내기 위해선 평균적으로 2년 이상이 걸린다고 한다. 하지만 단편 하나로도 책을 내기에 부담이 덜하다. 그 때문에 논픽션 작가나 시인, 에세이스트 등도 소설 등단의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위픽을 통해 첫 소설을 발표한 이들이 10명 가까이 된다. 지난달 16일 세상을 떠난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의 백세희 작가도 앞서 6월 위픽을 통해 단편소설 ‘바르셀로나의 유서’를 발표했다. 비교적 가벼운 행보로 책을 낼 수 있다 보니 다양성과 시의성도 갖출 수 있다. 매주 한 권꼴로 출간하며 ‘지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는 것. 100권의 저자가 한 명도 겹치지 않을 정도로 참여 폭도 넓다. 김 팀장은 “여러 난관이 있었지만 끈질기게 오다 보니 독자들의 인정도 받은 것 같다”며 “독자의 외연이 넓어지면 문학에 대한 관심도 그만큼 커질 수 있다. 어떤 시도든 해보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짧아도 한 권으로 완성되는 출판 포맷은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다. 지난해 6월부터 시작한 교보문고 단편문학 시리즈 ‘달달북다’도 12권째를 맞았다. 다산북스 역시 9월에 소설 중·단편 시리즈인 ‘다소’를 런칭했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유튜브를 켠다. 뭘 검색하려고 했더라? 모르겠다. 그냥 떠 있는 영상이나 보자. 어느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엄마도 똑같은 자세다. 이어폰을 꽂고 각자 스마트폰 기기 속으로 빠져든 개별 소비형 가족. 문득 묻게 된다. 우리 집 거실, 이대로 괜찮을까. 15년간 초등교사로, 이후 10년간 전국의 학교를 다니며 교육 전문가로 활동해 온 저자가 ‘도파민 가족’의 문제를 가족 시스템의 차원에서 짚어낸다. 소셜미디어, 온라인 쇼핑, 업무 메신저 알림에 길든 부모가 “폰 내려놔!”라고 말하는 모습은 아이에게 이중 신호로 다가온다.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10세 미만 아동의 하루 평균 스마트폰 이용 시간은 1시간 15분, 10대는 2시간 41분이었다. 반면 30, 40대는 4시간을 웃돌았다. 부모가 걱정하는 아이의 도파민 중독은 사실 ‘가족의 거울’이다. 도파민 가족의 대화는 대개 비슷하다. 아이가 “엄마, 오늘 말이야” 하고 말을 꺼내면 “잠깐만, 지금 바빠”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아빠, 나 있잖아”라고 부르지만, 아빠는 여전히 화면을 보고 있다. 이런 장면이 반복될수록 아이는 말을 줄이고 질문을 포기하며, 대신 영상 속 캐릭터에 반응하는 혼잣말을 늘려 간다. 말을 했는데 아무도 듣지 않는 경험을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가장 먼저 배워 버린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도파민이 채운다. 화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끊임없이 반응해 주기 때문이다. 내가 누른 ‘좋아요’ 하나에 맞춰 추천 탭이 바뀌고, 다음 영상이 자동 재생된다. 거절당할 일이 없으니 안전하다. 그러나 그 반복이 뇌에 각인될수록 아이는 ‘말보다 스크롤이 안전하다’는 생각의 회로를 강화한다. 그 결과 생기는 게 ‘감정 문해력’의 저하다. 감정 문해력은 단순히 감정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 감정을 이해하고 언어로 바꾸는 힘이다. 아이가 감정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감정을 표현하고 조절한 경험이 적어서다. 스마트폰은 아이에게 너무 많은 감정을 대신 경험시킨다. 영상 속 인물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화내는 걸 지켜보며 아이는 마치 자신도 그 감정을 통과한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실험 결과, 며칠간 스크린을 완전히 차단하고 대면 상호작용만 한 아이들은 상대방의 표정을 읽고 감정을 해석하는 능력이 유의미하게 향상됐다. 감정도 언어처럼, 사용해야 자란다. 저자는 회복의 열쇠를 ‘옥시토신’에서 찾는다. 도파민이 즉각적인 쾌감의 호르몬이라면, 옥시토신은 느리고 지속적인 관계에서 분비되는 신뢰의 호르몬이다. 저자는 고등학생인 두 아이와 함께 실천한 몇 가지 회복 연습을 제안한다. 예를 들어 하루를 마치며 각자 1분 정도 감상을 녹음해 공유하는 ‘가족 음성 일기’가 있다. “오늘은 좀 우울했어”처럼 짧고 솔직하게 시작한다. 저녁 식탁에서는 ‘무반응 금지 게임’을 한다. 누군가 말하면 반드시 어떤 반응이든 해야 한다. ‘아빠 말에 무조건 반응하기’ 같은 미션을 정하면 오락성이 더해진다. 이렇게 간단한 실천만으로도 가족의 공기가 달라진다고 저자는 말한다. 경청의 신호가 오갈 때, 도파민 대신 옥시토신이 흐르기 시작한다. 결국 ‘도파민 가족’의 회복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복원에서 비롯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가정통신문엔 ‘주의 산만’이란 말이 따라다녔다. 선생님 흉내 내길 좋아하고, 기타 치며 노는 걸 즐기던 학생. 모범생 형과 비교돼 늘 “죄지은 마음”으로 지냈다. 하지만 아이는 연기에서 재능을 찾았고, 1980, 90년대 극장가를 휩쓴 최고의 스타가 됐다. 배우 박중훈(59)이다. 영화 인생 40년 만에 첫 에세이 ‘후회하지마’(사유와공감)를 펴낸 박 배우를 29일 만났다.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우묵배미의 사랑’ 등 셀 수 없이 많은 히트작을 낸 배우지만, 책 집필은 생애 처음이다.“1985년 11월 11일 배우가 됐으니 올해로 꼭 40년이 됐네요. 돌아보니 덜컥거린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잘 살았구나 싶어요. 글 쓰며 그때로 돌아간 기분이 들어 혼자 눈물도 흘렸습니다.”책엔 1986년 데뷔작 ‘깜보’의 캐스팅 비화부터, 1989년 ‘바이오맨’을 찍다가 마취 풀린 악어에게 물릴 뻔한 일화 등 여러 후일담이 담겨 있다. 보이는 대로 글 역시 더없이 유쾌하고 솔직하다.“영화를 40년 하며 느낀 게 있어요. 대중은 이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본다는 거예요. 책 쓰면서도 진심을 다했어요. 적당히 축소하거나 과장하면 백일하에 드러나거든요.” 그의 어릴 적 별명은 ‘박극성’. 더 솔직하자면 ‘박지랄’이었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 충무로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수제 명함을 돌렸다. 합동영화사엔 “배우로 안 써도 괜찮으니 영화사에 나오게만 해 달라”고 졸라 다음 날부터 출근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문을 돌리고, 책상을 닦고, 바닥을 쓸었다. 그렇게 사환처럼 4, 5개월 보내며 얻은 오디션 기회. 그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흉내낸다며 팬티만 입고 섀도복싱을 했다. 입으로 ‘츳츳’ 소리를 내며 1시간 넘게 원맨쇼. 막춤, 노래, 성대모사까지. 이황림 감독은 웃느라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다음 날 감독은 주인공 중 하나인 ‘제비’ 역할에 만장일치로 뽑혔다고 했다. 이후 박 배우는 누구보다 화려한 행보를 이어갔다. 24세에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흥행 보증수표’로, 어떤 해는 출연 제안만 100편이 넘었단다. 책엔 영화계를 빛낸 이들과의 인연도 빼곡하다. 1985년 합동영화사에서 연출부로 일하던 청년 강우석은 훗날 ‘투캅스’를 함께 만든 감독이 됐다. ‘깜보’로 같이 데뷔한 중학교 3학년 김혜수, 평생의 선배 안성기에 대한 애정도 묻어난다.“안 선배님을 뵌 시간이 우리 아버지 뵌 시간보다 더 길어요. 아버지는 제가 30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안 선배님은 40년을 가까이서 뵀잖아요. ‘라디오 스타’나 ‘투캅스’ 같은 작품을 하나 더 찍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내 깡패 같은 애인’을 연출한 김광식 감독은 추천사에서 “그를 빼놓고는 한국 영화사의 특정 시기를 설명할 수 없다”고 썼다. 한국 영화를 ‘방화’라 부르며 폄하하던 시절을 넘어, 검열과 제약에도 경찰 비리를 풍자한 ‘투캅스’로 새 시대의 문을 열었던 그. 2001년 국내 배우 최초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찰리의 진실’에도 출연했다. 40년 영화 인생은 이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내년, 오랜만에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앞으로 ‘틈틈이’가 아니라 ‘꾸준히’ 배우로 살 거예요. 최고의 작품은 항상 ‘차기작’이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가정통신문엔 늘 ‘주의가 산만하다’는 말이 따라다녔다. 선생님 흉내 내길 좋아하고, 기타 치며 노는 걸 즐기던 학생. 공부 잘하는 형과 비교돼 언제나 “죄지은 마음”으로 지냈다. 하지만 아이는 연기에서 재능을 찾았고, 1980~1990년대 극장가를 휩쓴 최고의 스타 배우가 됐다. 바로 박중훈(59)이다.영화 인생 40년 만에 첫 에세이 ‘후회하지마’(사유와공감)를 펴낸 박 배우를 29일 서울 강남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투캅스’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라디오 스타’ ‘황산벌’ ‘우묵배미의 사랑’ 등 한 손에 꼽을 수도 없을 만큼 수많은 히트작을 낸 배우지만, 책 집필은 살면서 처음이다.박 배우는 “1985년 11월 11일에 배우가 됐으니 올해로 꼭 40년”이라며 “돌아보니 덜컥거린 적도 많았지만 그래도 잘 살았구나 싶다. 글을 쓰며 그 순간으로 돌아가는 기분이 들어 혼자 눈물도 났다”고 했다. 책에는 1986년 데뷔작 ‘깜보’의 캐스팅 비화를 시작으로, 1989년 영화 ‘바이오맨’을 찍다가 마취 풀린 악어에게 물릴 뻔한 일화까지 여러 생생한 후일담이 담겨 있다. 보이는 모습대로 글 역시 더없이 유쾌하고 솔직하다.“영화를 40년 하면서 느낀 게 하나 있어요. 대중은 이 사람이 진심인지 아닌지를 금방 알아본다는 거예요. 이 책을 쓰면서도 진심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적당히 축소하거나 과장하면 오히려 백일하에 드러나거든요.” 그의 어릴 적 별명은 ‘박극성’. 더 솔직히 말하자면 ‘박지랄’이었다고 한다. 대학 1학년 때부터 충무로 영화사들을 찾아다니며 집 전화번호를 적은 수제 명함을 돌렸다. 합동영화사엔 “배우로 안 써도 괜찮으니 영화사에 나올 수만 있게 해달라”고 부탁해 다음 날부터 출근했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신문을 돌리고, 책상을 닦고, 바닥을 쓸었다.그렇게 사환처럼 4~5개월을 오가며 얻은 오디션 기회. 그는 실베스터 스탤론을 흉내 내겠다며 팬티 한 장만 입고 섀도복싱을 했다. 입으로 ‘츳츳’ 소리를 내며 1시간 넘게 이어간 원맨쇼. 막춤, 노래, 성대모사까지. 이황림 감독은 너무 웃느라 눈가에 눈물이 맺힐 정도였다. 다음 날 감독은 주인공 중 하나인 ‘제비’ 역할에 만장일치로 뽑혔다고 전했다.이후 그는 누구보다 화려한 성공 행보를 이어갔다. 24살에 백상예술대상 남우주연상을 받고 ‘흥행 보증수표’가 됐다. 어떤 해는 출연 제안만 100편 넘게 받았단다. 책엔 한국영화사를 빛낸 인물들과의 인연도 빼곡하다. 1985년 합동영화사에서 연출부로 일하던 청년 강우석은 훗날 ‘투캅스’를 함께 만든 감독이 됐다. ‘깜보’로 같이 데뷔한 중학교 3학년 김혜수, 평생의 선배 안성기에 대한 애정도 묻어난다.“안 선배님을 뵌 시간이 우리 아버지 뵌 시간보다 더 길어요. 아버지는 제가 30대 초반에 돌아가셨으니까요. 안 선배님은 40년을 가까이서 뵀잖아요. ‘라디오 스타’나 ‘투캅스’ 같은 작품을 하나 더 찍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어요.”‘내 깡패 같은 애인’을 연출한 김광식 감독은 추천사에서 “그를 빼놓고는 한국영화사의 특정 시기를 온전히 설명할 수 없다”고 썼다. 한국 영화를 ‘방화’라 부르며 폄하하던 시절을 넘어, 검열과 제약을 이겨내고 경찰 비리를 풍자한 ‘투캅스’로 새로운 시대의 문을 열었다. 2001년엔 국내 배우 최초로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 ‘찰리의 진실’에도 출연했다.“첫눈을 밟는다는 건 양면성이 있죠. 밟으면 절벽일지 모른다는 불안감과, 처음 밟는 설렘. 저는 늘 설렘 쪽에 방점을 찍었던 것 같아요. 계속 설레는 일을 찾아서 해온 인생이었죠.”40년 영화 인생은 이제 다음 페이지로 이어진다. 내년, 꽤 오랜만에 영화 촬영에 들어간다.“앞으로 ‘틈틈이 하겠다’가 아니라, 꾸준히 배우로 살아갈 거예요. 최고의 작품은 늘 ‘다음 작품’이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세계적인 재즈 뮤지션인 ‘키스 자렛 트리오’의 드러머 잭 디조넷이 26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주 킹스턴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83세.미 뉴욕타임스(NYT)는 유족 대표 조안 클랜시를 인용해 “고인이 병원에서 울혈성 심부전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27일 전했다.1942년 미 시카고에서 태어난 고인은 피아니스트로 음악을 시작했으나, 드럼으로 전향해 폭넓은 음악적 스펙트럼을 보여줬다. 1966년 색소폰 연주자 찰스 로이드가 이끄는 4중주단에서 피아니스트 키스 자렛과 함께 활동하며 재즈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부터 ‘뉴 디렉션스(New Directions)’ 등 실험적인 그룹을 이끌며 리더이자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냈다.디조넷은 1983년 자렛, 베이시스트 게리 피콕과 함께 ‘키스 자렛 트리오’를 결성해 수십 년간 활동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키스 자렛 트리오는 재즈계에서 가장 사랑받는 그룹 중 하나로, 어쿠스틱 재즈 트리오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고인은 최근 현지 인터뷰에서 트리오의 장수 비결에 대해 “우리는 언제나 곡을 처음 연주하는 것처럼 대한다”며 “예상치 못한 것을 준비하고, 그것을 따른다”고 말했다.2012년 재즈계 최고의 영예로 여겨지는 미 국립예술기금 선정 ‘재즈 마스터’에 이름을 올렸다. 2010년과 2013년 키스 자렛 트리오로 내한 공연을 펼치기도 했다. 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중국요리의 적응력은 실로 경이롭다. 서울은 물론이고 뉴욕과 바그다드, 스톡홀름, 나이로비, 퍼스, 리마까지. 세계 어디를 가든 중국요리를 마주치게 된다. 거의 모든 나라에는 ‘현지화된’ 중국요리가 있다. 그리고 그 음식 뒤엔 한국의 짜장면만큼 많은 뒷이야기가 숨어 있다. 서양인 최초로 중국 쓰촨고등요리학교에서 셰프 훈련을 받고, 30년간 중국과 중식을 탐구해온 영국인 저자가 쓴 중국미식인류학 책이다. 중국요리를 둘러싼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맥락을 담아 음식 이상의 이야기를 전한다. 서구에서 중식은 어떤 이미지일까. 저자에 따르면 “이토록 깊이 사랑받으면서 동시에 이토록 학대받는 요리는 아마 또 없을 것”이다. 세계적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만, 값싸고 품격 낮은 ‘정크푸드’란 인식 또한 널리 퍼져 있다. 중국인이 쥐, 뱀, 고양이, 도마뱀을 먹는다는 편견은 대중문화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주제다. 저자 역시 중국요리 전문가로서 “먹어본 것 중 가장 혐오스러운 음식은 무엇이었나” 같은 질문을 자주 받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러한 편견에 반기를 든다. 칼질, 요리법, 풍미, 식감 등 세세한 부분까지 정성을 들이는 중국요리의 절묘함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고 자부한다. 무엇보다 중국은 지리적·미식적 환경이 다양하며, 협소한 시선으로는 그 깊이를 알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특히 서양과 동양의 식문화 차이를 설명하는 부분이 흥미롭다. 대표적인 사례가 ‘콩’이다. 서양에서는 역사적으로 콩 발효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다. 우유를 발효시켜 치즈를 만드는 문화는 발전했지만, 콩을 발효해 풍미를 더하는 방법은 연구되지 않았다. 17세기까지는 대두 자체를 잘 알지 못했다. 반면 중국에서는 대두를 갈아 두유를 만들고, 이를 응고시켜 두부(더우푸)를 만드는 문화가 발달했다. 두부는 단백질의 훌륭한 공급원이자 채식 위주의 식단을 맛있게 만드는 핵심 재료였다. 두유에 황금빛 유탸오(중국식 꽈배기)를 찍어 먹는 중국식 아침 식사는 콘플레이크에 우유를 넣어 먹는 영국식 아침 식사에 상응한다. 지금도 중국에는 유럽의 치즈 노점상처럼 두부 노점상이 있으며, 다양한 두부 제품을 판매한다. 일반 흰 두부뿐 아니라 하룻밤 동안 얼린 ‘둥더우푸’, 갓 내린 눈처럼 하얀 곰팡이로 덮인 ‘마오더우푸’, 얇은 두부를 돌돌 말아 부패 직전까지 숙성시켜 블루치즈 스틸턴처럼 강렬하고 거친 맛을 내는 ‘저장 두부’, 50m 밖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는 ‘처우더우푸(취두부)’ 등 다양하다. 저자는 두부에 익숙하지 않은 서양인들에게는 마포더우푸(마파두부)를 권한다. 두부를 ‘채식주의자가 고기 대신 어쩔 수 없이 먹는 따분한 음식’ 정도로 여긴 사람일지라도 마파두부를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 거란다. 마파두부의 유래에 대한 설명도 빼먹지 않는다. 마파두부는 19세기 후반 ‘마맛자국이 있는 천 부인’, 줄여서 ‘천마파’라는 애칭을 가진 여성에게서 유래했다. 그는 청두 북쪽 완푸차오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 루비처럼 붉은 고추기름과 얼얼한 조피(제피)를 듬뿍 넣어 푸짐한 두부찜을 만들었다. 이 밖에도 중앙아시아로부터 맷돌을 들여와 국수와 면 요리를 탄생시킨 한나라, 몽골의 침략으로 수도를 남방으로 이전하며 남북 문화를 융합한 송나라 등의 이야기를 담았다. 서로 다른 문화가 접촉할 때 어떤 뜻밖의 멋진 결과를 만들어 내는지 보여주는 문화인류학서다.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일상에서, 나아가 누군가는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수 있다.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 김혜진 작가(42·사진)의 새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문학동네)은 ‘업(業)’이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전작 ‘딸에 대하여’에서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그렸던 김 작가는 이번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응시했다. 소설은 주인공 홍석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입사한 20대 시절부터, 주간(主幹)의 자리에 오르는 50대까지의 시간을 좇는다.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김 작가는 “홍석주라는 인물에게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되어 가는지를 따라가 보고 싶었다”며 “20대의 일과 30대의 일, 40대의 일, 50대의 일은 분명 다르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만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 달라지고 바뀌어 가는지를 보여주려면 긴 시간을 펼쳐놓은 형식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설에는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이 펼쳐지진 않는다. 그 대신 긴 세월 자신에게 주어진 글을 살피고 다듬는 이의 묵묵함과 성실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새내기 시절 홍석주가 관찰한 선배 편집자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된다.“하얀 와이셔츠 위에 황톳빛 가죽 토시를 낀 채 종일 뭔가를 읽고 또 읽는 사람.”“여러 권의 책을 껴안듯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엔 군데군데 펜 자국이 남아 있었고, 흑연과 잉크가 묻은 손날은 거무스름했다.” 작가는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섬세하게 포착해 냈다. 일에 충실한 사람에 대한 잔잔한 묘사에서 묘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일에 대한 묵묵함과 성실함. 현실에서도 그런 태도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좋다”며 “용기도 얻고 위로도 되고, 내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 소설의 주된 배경은 1980, 90년대다. 이 시절 편집 현장이 세밀하게 복원돼 있어,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세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자료를 손수 찾아야 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자료 요청 ‘쪽지’가 돌면, 편집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실로 향했다. 백과사전, 연감, 도감, 전집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연표와 조선시대 복식을 기록한 책을 찾았다. 원하는 자료가 없으면 인접 단어를 더듬으며 우회적으로 접근했다. 이 고된 과정은 소설 속 홍석주의 선배가 말하듯 “책에 실린 정보는 틀림이 없어야 하니까”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한 문장, 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며칠을 매달리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 속도와 효율이 앞서는 지금과 달리, 그때의 일터에는 느리지만 단단한 정확함이 있었다. 이 책을 누구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새내기가 읽으면 얼마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모두가 예외 없이 서툴고 어설프니까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생각이 많아진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일과 나 사이에 놓인 어떤 시간을 견뎌야 만나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테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

일상에서, 나아가 누군가는 일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일터.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해봤을 수 있다. ‘일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가.’김혜진 작가(42)의 새 장편소설 ‘오직 그녀의 것’(문학동네)은 ‘업(業)’이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파고들었다. 전작 ‘딸에 대하여’에서 무연고 노인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를 그렸던 김 작가는 이번엔 출판사 편집자의 삶을 응시했다.소설은 주인공 홍석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출판사에 입사한 20대 시절부터, 주간(主幹)의 자리에 오르는 50대까지의 시간을 좇는다. 동아일보 서면 인터뷰에 응한 김 작가는 “홍석주라는 인물에게 책을 만드는 일이 어떤 의미가 되어 가는지를 따라가보고 싶었다”며 “20대의 일과 30대의 일, 40대의 일, 50대의 일은 분명 다르다. 한 사람이 어떤 일을 만나고, 그 일을 하는 동안 어떻게 달라지고 바뀌어 가는지를 보여주려면 긴 시간을 펼쳐놓은 형식이 적합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소설에는 딱히 드라마틱한 사건이 펼쳐지진 않는다. 대신 긴 세월 자신에게 주어진 글을 살피고 다듬는 이의 묵묵함과 성실함에 초점이 맞춰진다. 새내기 시절 홍석주가 관찰한 선배 편집자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된다.“하얀 와이셔츠 위에 황톳빛 가죽 토시를 낀 채 종일 뭔가를 읽고 또 읽는 사람.”“여러 권의 책을 껴안듯 들고 있는 그의 오른손엔 군데군데 펜 자국이 남아 있었고, 흑연과 잉크가 묻은 손날은 거무스름했다.”작가는 이 과정에서 노동의 가치를 섬세하게 포착해냈다. 일에 충실한 사람에 대한 잔잔한 묘사에서 묘하게 일렁이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김 작가는 “자신의 일에 대한 묵묵함과 성실함. 현실에서도 그런 태도로 일하는 사람을 만나면 참 좋다”며 “용기도 얻고 위로도 되고, 내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돌아보게 된다”고 했다.소설의 주된 배경은 1980, 90년대다. 이 시절 편집 현장이 세밀하게 복원돼 있어, 그 시대 특유의 감성을 엿볼 수 있다. 인터넷 검색 한 번이면 세계의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지금과 달리, 당시엔 자료를 손수 찾아야 했다.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 자료 요청 ‘쪽지’가 돌면, 편집자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자료실로 향했다. 백과사전, 연감, 도감, 전집이 빽빽하게 꽂힌 서가에서 제2차 세계대전 연표와 조선시대 복식을 기록한 책을 찾았다. 원하는 자료가 없으면 인접 단어를 더듬으며 우회적으로 접근했다.이 고된 과정은 소설 속 홍석주의 선배가 말하듯 “책에 실린 정보는 틀림이 없어야 하니까”라는 믿음에서 비롯됐다. 한 문장, 한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며칠을 매달리는 일이 당연했던 시절. 속도와 효율이 앞서는 지금과 달리, 그때의 일터에는 느리지만 단단한 정확함이 있었다.이 책을 누구에게 가장 추천하고 싶은지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이제 막 일을 배우기 시작한 새내기가 읽으면 얼마간 용기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요. 처음 일을 시작할 땐 모두가 예외 없이 서툴고 어설프니까요. 지금 자신이 하는 일에 생각이 많아진 사람들이 읽어도 좋을 것 같아요. 일과 나 사이에 놓인 어떤 시간을 견뎌야 만나게 되는 순간도 있을 테니까요.”김소민 기자 so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