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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시대의 초과이익은 구조적으로 소수에게 몰릴 수밖에 없다. AI가 만든 부를 누가 어떻게 나눌 것인지 정교하게 설계하는 나라가 세계의 AI 규범을 쓰는 나라가 될 것이다.”이른바 ‘삼전닉스(삼성전·SK하이닉스 등 반도체 대장주)’의 성과급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김정남 KAIST AI미래학과·문술미래전략대학원 석좌교수가 24일 서울 더플라자 호텔에서 SBS Biz 주최로 열린 ‘재편(SHIFT): 자본의 이동과 자산의 대응’ 포럼에서 “AI로 인한 부의 분배 논의는 피할 수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그는 분배 문제가 투자의 핵심 변수로 부상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지난 5월 12일 코스피 장중 급락 사례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블룸버그는 이 폭락의 배경으로 김용범 대통령정책실장이 SNS에 올린 글을 지목했다. AI 산업 호황으로 발생할 ‘역대급 초과 세수’를 ‘AI 국민배당금’ 형태로 국민에게 환원하자는 제안이 시장 불안을 촉발했다는 분석이다. 김 교수는 “시장과 분배는 충돌하는 두 힘이 아니라 잘 설계하면 함께 실현할 수 있는 가치”라고 전제하며 시장을 흔들지 않는 분배를 위한 두 가지 원칙을 제시했다. 우선 현금 직접 지급보다 의료·교육·금융 등 기초 서비스 시스템에 AI를 내재화해 모든 시민이 보편적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소득 보전은 최소 기준을 설정해 일하고 배우려는 의욕을 저해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우리가 지향해야 할 사회는 일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가 아니라 넘어져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사회”라며 한국이 ‘AI 기본사회’라는 이름으로 이 빈칸을 먼저 채운다면 세계 AI 규범을 선도하는 나라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포럼의 두번째 연사인 이진우 메리츠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AI 분야에 기업 투자가 집중되는 현상을 “25년 만에 찾아온 민간 투자 사이클”이라고 규정하며 “민간 영역에서 이처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진 사례가 드물다 보니 시장이 높은 변동성을 보이고 있다”고 진단했다.이어서 “순환 강세장 사이클은 1년, 하드웨어 사이클은 6년, 인프라 사이클은 평균 9년 지속되는 패턴이 있고 이번 사이클은 인프라 사이클에 해당한다”며 이번 사이클이 지난해 9월에 시작된 만큼 지금과 같은 투자 흐름이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그는 AI를 포함해 장기적 관점에서 피지컬 AI 관련 밸류체인인 현대차 등에 대해 긍정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이날 포럼은 AI 확산이 산업 구조와 투자 질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을 진단하고 격변하는 환경 속에서 기업과 투자자가 갖춰야 할 전략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됐다. 이재명 대통령의 서면 축사와 이언주 더불어민주당 AI강국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의 축사를 시작으로 연원호 현대자동차그룹 GPO(글로벌정책실) 박사, 이화영 LG AI연구원 AI사업개발부문장 등이 단상에 올라 산업자본의 흐름과 대응 방향을 짚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더불어민주당 정진욱 의원과 박상진 전 국회 수석전문위원, 시민단체 시민공론광장 등은 23일 오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합성니코틴 및 유사니코틴 업체들이 약 16조 원 규모의 담뱃세를 탈루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범정부 합동 조사단 구성을 촉구했다. 정 의원은 중국에서 수입된 액상 전자담배에는 과세 대상인 연초 니코틴이 사용되고 있지만 업체들이 담뱃세를 피하기 위해 ‘연초 니코틴이 아닌 합성 니코틴으로 만든 것’이라고 원료 서류를 조작해 왔다고 주장했다. 그는 관세청의 관리 부실로 지난 10년간 약 3억 병의 합성니코틴이 판매되면서 1병당 5만4000원씩, 약 16조 원 규모의 세금이 탈루됐다고 추정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담배사업법을 개정하면서 과세 대상을 ‘연초 및 니코틴’으로 확대해 니코틴 증기를 흡입하는 제품 역시 담배로 규정했다. 그러나 법 적용 시점을 올해 4월 24일로 하고 법 시행 이전 수입 물량에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기로 했다. 정 의원은 “법 적용에 공백이 발생하면서 법이 공포된 2025년 12월 23일부터 법 시행 직전인 2026년 4월 24일까지 약 1500t의 액상 전자담배가 집중 수입됐다”고 밝혔다. 그는 “수입된 물량은 현재 소비량 기준으로 100년 이상 사용할 수 있는 규모로, 사재기를 통한 세금 회피가 이뤄진 것”이라고 지적했다.이와 함께 현재 ‘유사니코틴’이라는 명칭으로 시중에 유통 중인 제품에 대한 유해성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담배사업법에 따르면 니코틴과 분자구조가 다른 유사니코틴 등 신종 화학물질이 담배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 기준은 불명확하다. 다만 합성니코틴이든 유사니코틴이든 모두 인체에 흡입되는 화학물질이기 때문에 안전성 검증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얘기다. 시민공론광장 이경훈 이사장은 “폐로 흡입하는 물질이라면 시중 유통 전 반드시 안전성을 검증해야 한다고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며 “가습기 살균제 참사를 통해 흡입 화학물질의 사전 검증이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음에도 관계 부처들은 책임 떠넘기기에 바빴다”고 비판했다. 이 이사장은 “안전성 검증이 완료되지 않은 신규 화학물질의 유통을 제한하고 인체 흡입을 목적으로 하는 신규 화학물질에 대해 90일 반복흡입독성시험을 의무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참석자들은 정부가 국세청을 중심으로 한 탈세조사단을 꾸리고 범정부 합동 실태조사를 즉각 실시하는 한편으로 국민 건강을 보호하기 위해 합성니코틴 및 유사니코틴 전자담배에 대한 유해성 검사 명령을 즉시 내릴 것을 촉구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미국 인공지능(AI) 회사 앤스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5(Fable5)’가 시장에 출시됐다가 3일 만에 사용 중지됐다. ‘페이블’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파불라(fabula·이야기)’에서 따온 것인데, “성능이 너무 뛰어나 위험하다”며 일부에게만 공개된 ‘미토스(Mythos)’의 대중 버전으로 큰 주목을 받으며 화려하게 등장했다가 떠들썩하게 퇴장해 그야말로 전 세계적 이야깃거리가 됐다. 페이블5가 갑작스레 중단된 것은 미국 정부의 서한 한 장 때문이었다. “외국 세력, 특히 중국과 연계된 단체가 페이블5로부터 민감한 정보를 탈취할 수 있다”며 외국인 접근 제한을 요구한 것이다. 자사의 외국 국적 직원까지 제외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앤스로픽은 결국 서비스 중지 결정을 내리게 됐다. 미국이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 사이에 최첨단 AI 접근을 끊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목격한 동맹국들은 이를 AI 주권(AI sovereignty) 문제로 받아들이고 있다. 에두아르 필리프 전 프랑스 총리는 “타인이 통제하는 기반 시설은 언제든 연결이 끊길 수 있다는 교훈을 줬다”고 논평했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유럽이 기술 주권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주는 사례”로 꼽았다. 각국 정상이 진단한 대로, AI 모델이 행정·국방·교육·금융·제조의 핵심 인프라가 되어가고 있는데 우리가 접속을 허가받는 방식으로만 그것을 쓸 수 있다면 심각한 문제다. 이 경우 누가 AI의 위험을 정의하는가, 누가 사용 제한을 거는가, 누가 접근권을 부여하는가가 곧 권력이 된다. ‘첨단 기술의 전략 자산화’를 여러 번 목도해 온 우리에게 사실 페이블5 사태는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2019년 미국이 화웨이를 수출 제한 기업 목록에 올렸을 때 TSMC 등이 일제히 화웨이와 거래를 끊었고 동맹국 기업도 예외 없이 미국 규정을 따라야 했다. 다만 화웨이 제재 때 우리는 제재에 ‘동참하도록 압박받는’ 입장이었다면 이번에는 우리 역시 접근이 차단되는 ‘직접적 제재 대상’이 됐다는 점이 다르다. 페이블5 사태가 우리에게 일깨워준 것은 크게 세 가지다. 우선 타국 AI를 클라우드 API 형태로 끌어다 쓰는 식의 의존을 최대한 낮춰야 한다는 점이다. 각종 AI 서비스의 근간으로 쓰는 모델의 사용이 갑자기 중지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방·공공·보안·산업 특화 영역에서 독자 모델과 독자 인프라를 구축하려는 노력을 멈춰서는 안 되는 이유다. 두 번째로 특정 국가나 기업의 모델에 대한 쏠림을 줄이고 여러 모델을 함께 쓰는 구조를 설계, 운영하는 역량이 중요하다는 점이다. 미국 국방부는 특정 AI 기업에 종속되지 않기 위해 여러 회사의 모델을 업무 유형에 따라 나눠 쓰는 멀티모델 전략을 쓴다고 한다. 한국은 기업 쏠림뿐 아니라 국가 쏠림까지 함께 해소해야 하는 만큼 더 정교한 분산 전략이 요구된다. 마지막으로 AI 생태계에서 주요국이 우리와의 관계를 쉽게 끊을 수 없도록 필수 파트너 자리를 확보해야 한다는 점이다. 페이블5 사태는 단순한 서비스 중단이 아니다. 누가 AI 접근권을 좌지우지하는가를 세계가 처음으로 목격한 사건이었다. AI 생태계에서 우리는 접근권을 부여하는 쪽에 설 것인가, 부여받는 쪽에 설 것인가? 다음 페이블 사태가 오기 전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김현지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nuk@donga.com}

광주광역시 시내에서 차를 타고 한 시간 남짓 구불구불 산길을 따라 들어가는 전남 함평 깊은 산골. 이른 아침부터 산골누에공장의 잠실(蠶室·누에 치는 방)이 요란하다. 이슬 맺힌 신선한 뽕잎을 누에가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르는 소리다. 오늘은 농장에서 기르는 누에 중 ‘5령 3일 누에(허물을 네 번 벗고 사흘 지난 누에)’ 약 22만 마리를 누에 베드(채반)에서 걷어 내 냉동건조하는 날이다. 자그마한 체구의 최영숙 씨(64) 손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5령 3일 누에를 수확하고 아직 덜 자란 누에에는 뽕잎을 먹이느라 새벽부터 밤 늦게까지 쉴 틈이 별로 없다. “농사일이 이렇게 힘든 줄 알았으면 시작을 안 했죠. 하하.” 웃으며 던지는 농담 속에 뼈가 있지만, 그는 누에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고 그 덕분에 지금도 누에를 치고 있다. 3년 전 세상을 떠난 남편의 빈자리를 채워 주는 아들과 함께 생활비 걱정 없이 살아갈 수 있게 해준 것도 결국 누에다.● 용기만으로 뛰어든 양잠최 씨는 평범한 전업주부였다.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결혼해 아들딸을 키웠다. 남편이 운영하던 전기 관련 사업이 점점 어려워지자 돌파구가 필요했다. “이것저것 해 봐도 답이 없으니까 시골에 한번 가 볼까 싶었어요. 그러던 중에 TV에서 누에 농장이 나오는 거예요.” 시골에서 누에를 키우는 일도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에 일면식 없는 누에 농장주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 사업성을 물었더니 “하기 나름”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 도전을 해 보기로 결심한 최 씨 부부는 누에 키우기에 적합한 청정 지역을 찾아다니다가 함평군 원산리에 작은 땅을 마련하고 집과 양잠시설을 갖춰 누에 치는 농부가 됐다. 최 씨 나이 쉰셋이었다. 부부가 누에농장을 시작한 2016년 무렵은 정부의 제2차 곤충산업 육성 5개년 계획이 출범하면서 식용곤충 분야의 성장 가능성에 관심이 커지던 때였다. 오랫동안 비단실 원료로만 쓰이던 누에가 건강기능식품 원료로 주목받기 시작하며 ‘기능성 양잠 산업’이 움트고 있었다. 실을 뽑는 기관(器官)이 발달하기 직전의 5령 3일 누에는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진 데옥시노지리마이신(DNJ) 성분이 풍부해 혈당 관리용 건강기능식품으로 인기를 끌었다. 2017년에는 홍잠(弘蠶)이라는 새로운 원료도 등장했다. 홍잠은 고치를 짓기 직전 몸속에 견사단백질이 가득 찬 누에(숙잠)를 쪄서 동결건조한 것으로 농촌진흥청이 개발한 기능성 식품 원료다. 단백질은 물론 아미노산, 오메가3 지방산, 비타민,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등을 고루 함유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농진청은 차의과학대학과 공동으로 홍잠이 간 건강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고 2017년 11월 관련 특허를 출원했다. 치밀한 계획보다는 용기 하나로 뛰어든 도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전통 양잠업이 건강식품 산업으로 탈바꿈하던 바로 그 시점에 발을 들인 셈이 됐다.● 2년의 실패… ‘투잡’ 뛰며 고비 넘겨최 씨의 양잠이 자리를 잡기까지는 순탄하지 않았다. 누에를 처음 치다 보니 시행착오가 잦았다. 누에는 워낙 예민한 생물이라 정성껏 돌봐도 하나의 외부 환경 변화에 허망하게 떼죽음당했다. 어느 해에는 농장 뒤편 땅을 새로 산 사람이 대추나무를 심으며 살충제를 뿌렸는데 그 농약 기운이 잠실까지 스며들었다. “잘 자라던 누에가 너무 오래 잠을 자길래 유심히 들여다봤더니 자는 게 아니라 죽은 것이었어요.”그때의 안타까움을 토로하는 최 씨 눈빛이 한순간 깊어졌다. 그해 봄에 누에 알을 세 차례 부화시켰지만 모두 실패했고 가을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이듬해 봄에는 뒤편 밭에서 살충제를 뿌리지 않았고, 잠실 창문도 꼭꼭 닫아 혹시 모를 외부로부터의 오염에 철저히 대비했지만 어렵사리 부화한 누에들은 애쓴 보람도 없이 서서히 스러져갔다. “약해(藥害)를 입으면 영향이 2년은 간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고심 끝에 부부는 누에 베드 전체를 폐기하고 모두 새것으로 교체했다. 그제야 누에가 예전처럼 기운차게 자라기 시작했다. 누에가 더 이상 폐사하지 않는 것은 다행이었지만 2년간 실패와 재투자로 입은 타격은 컸다. 땅을 사고 시설을 짓는 데 이미 1억5000만 원을 쏟아부은 직후라 더욱 뼈아팠다. 최 씨는 이 시기에 인근 장어구이 식당에서 종업원으로 일하며 고비를 묵묵히 버텨 냈다.● 매출 1억 원… 많진 않지만 부족함 없어이제 누에치기 11년 차, 농장은 안정 궤도에 올라섰다. 정성껏 키운 누에는 분말이나 환(丸)으로 가공해 판매한다. 5령 3일 누에 환은 500g에 10만 원, 홍잠 분말은 300g에 25만 원이다. 한번에 먹기 편하도록 스틱 형태로 소분 포장한 제품도 있다. 분말 및 환 가공과 스틱 포장은 함평 가공센터와 전북 순창에 있는 곤충 전문 가공 영농조합에서 한다. 연간 매출은 약 1억 원 수준이다. 시설을 풀가동하면 3억 원까지도 매출을 올릴 수 있지만 건강기능식품 특성상 경기 변동에 민감해 아쉬움이 남는 상황이다. 비료와 농약 값에 고장이 잦은 기계 수리비, 시설 재투자 비용 등을 빼고 나면 남는 돈은 많지 않다. 그래도 최 씨와 아들이 생활하기에는 넉넉하다. “시골에서 살다 보면 큰돈 쓸 일도 없고 집과 시설도 갖춰져 있으니 둘이 지내기엔 부족함이 없어요. 노후를 화려하게 보내지는 못하지만 돈 걱정에 잠 못 이루는 일 없고 늙을 때까지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까요.” 물론 고된 노동이 뒷받침돼야 한다. 하루 세 번 뽕잎을 따다 누에들에 먹이고 시설을 돌보는 일과로 최 씨 하루는 빈틈없이 채워진다. “도시에서는 출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시골에서는 일 끝나는 시간이 따로 없다”고 그는 말한다. 누에는 사나흘 뽕잎을 먹다가 허물을 벗기 전에 먹이를 끊고 잠에 드는데 개체마다 잠드는 시간이 달라 키우는 사람은 하루도 제대로 쉬기 어렵다.● 고된 노동 버티는 힘도 누에에서그럼에도 최 씨가 가장 뿌듯하게 꺼내는 이야기 역시 누에에 관한 것이다. 원래 그는 건강 체질과는 거리가 멀었다. 몸집도 작고 입맛도 없어 잘 먹지 않았고 움직이기 싫어 누워 책만 보던 사람이었다. 시골에서 일을 시작하자 몸이 곧바로 한계를 드러냈다. 무릎 관절이 망가져 6개월마다 주사를 맞았다. 염증 주사에 연골 재생 주사까지 맞으라는 권유를 받을 정도였다. 계단을 오를 때면 난간 없이는 한 걸음도 내딛기 어려웠다. 그런데 누에를 직접 챙겨 먹기 시작하면서 몸이 달라졌다. “지금은 젊은이처럼 계단을 성큼성큼 오르내리고 병원도 더 이상 다니지 않아요. 그동안 그렇게 아팠던 게 어느 순간부터 기억도 안 나요. 태어나서 뭘 제일 잘했나 생각해 봤는데 누에 키운 건 너무 힘들어서 잘했다고 못 하겠고, 누에 먹은 게 진짜 제일 잘한 일이에요.” 귀농을 꿈꾸는 이들에게도 최 씨는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지 않는다. “사람들이 ‘뭐 하다 안 되면 시골 가서 농사나 짓지’ 하는데,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에요. 시골에 오면 일이 도시보다 훨씬 많고 한 사람이 열 사람 몫을 해내야 농장이 돌아갑니다.” 가장 강조하는 것은 시장 조사다. “뭘 하면 잘 팔리는지 먼저 알아본 다음 판로를 미리 만들어 놓고 와야 해요. 좋은 걸 만들어도 알리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거든요.” 나이에 대한 조언도 현실적이다. 터를 잡고 일에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걸리는 만큼 귀농을 생각한다면 40대가 적기라고 덧붙였다. “고생할 각오가 필요합니다. 큰돈 벌기도 힘들어요. 그래도 맑은 공기 마시며 살고 싶다면 괜찮은 선택이에요. 건강을 얻을 수도 있다면 금상첨화지요.” 5령 3일 누에 수확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며 총총히 작업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그의 뒷모습에서 활기가 느껴졌다.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함평=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많은 중소·중견기업 경영진이 직원들의 챗봇 활용을 곧 기업 차원의 인공지능(AI) 활용과 동일시하곤 합니다. AI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런 기업들의 AI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김태권 정원엔시스 이사회 의장은 회사를 고객 맞춤형 AI 솔루션 중심의 ‘AI 인프라 프로바이더’로 전환하겠다는 전략을 밝히며 이같이 말했다. 1969년 창립 이래 서버·스토리지 등 기업용 IT 인프라를 전문으로 공급해온 코스닥 상장사 정원엔시스는 이번에 AI센터를 출범시키며 사업 영역을 확장했다. 김 의장은 “장비 선정부터 운영 최적화까지 기업 IT 인프라의 전 주기를 함께해 온 것이 정원엔시스의 핵심 역량”이라며 “신설한 AI센터는 이 역량을 AI 분야로 확장해 고객사가 실질적인 AI 전환을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AI센터는 특히 온프레미스 환경에서의 AI 전환(AX) 지원에 집중할 계획이다. 온프레미스란 외부 클라우드를 빌리지 않고 자사 시설 내에 서버를 직접 구축·운영하는 것으로, 데이터 외부 유출 위험을 차단할 수 있어 보안 민감도가 높은 산업에서 선호된다. 정원엔시스는 엔지니어가 고객사 시스템을 일대일로 원격 지원하며 최적화된 AI 시스템을 구현하게 할 방침이다. 또 음성 명령과 영상 인식을 기반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동작하는 지능형 로봇과 같은 하드웨어 솔루션도 제공한다. 김 의장은 “AI 기반의 지능형 로봇은 규칙 기반의 로봇과 달리 여러 업무에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어 업무 정확도와 자본 효율을 함께 높일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이라고 강조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엔비디아 젠슨 황 최고경영자(CEO)의 방한 동선을 실시간으로 지도에 표시한 웹페이지가 공개 나흘 만에 누적 페이지뷰 15만 회를 돌파했다. 8일 현재 기준 방문자 수만 12만 명, 실시간 최대 동시접속자는 900명에 달했다. ‘젠슨황의 발자취(junresearch.com/jensenHuangKRTracker)’라는 이름의 이 사이트는 황 CEO의 국내 방문지를 지도 위에 핀으로 표시하고 각 핀에 커서를 가져다 대면 해당 장소와 연관된 기업의 주가 현황과 관련 뉴스를 바로 보여준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네이버, 두산로보틱스 등 이른바 ‘젠슨 황 테마주’로 불리는 기업들의 시세가 인공지능(AI) 공급망 테마별로 정리돼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된다. 웹페이지를 만든 이는 성균관대 4학년에 재학 중이면서 블록체인 솔루션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유준혁 씨(26)다. 그는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인 젠슨 황의 움직임과 그 동선에 얽힌 기업들의 주가 변동을 한눈에 보여주고 싶었다”고 제작 배경을 설명했다. 방문자의 82%는 국내 이용자였고 중국(7%)을 비롯해 미국·홍콩·대만 등지에서도 소셜미디어를 통해 접속이 이어졌다.● 아이디어부터 공개까지 단 6시간이 사이트의 개발 시간은 단 6시간이다. 유 씨는 “방한 일주일 전 일요일에 문득 아이디어가 떠올라 그날 바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코딩 도구는 AI 기반 개발 도구인 ‘클로드 코드’였고 개발 방식은 요즘 유행하는 ‘바이브 코딩(개발자가 원하는 기능을 자연어로 설명하면 AI가 코드를 작성하는 방식)’이었다.핵심 기술 구조도 AI가 대부분을 맡았다. 국내 주요 언론사 14곳의 RSS 피드(언론사가 새 기사를 자동으로 내보내는 일종의 기사 구독 채널)를 통해 1분마다 기사를 수집하고 수집된 기사를 엔트로픽의 LLM(대형언어모델)인 ‘클로드 오퍼스 4.8’이 읽어 젠슨 황과 관련 있는 기사인지 판단한다. 관련 기사로 분류되면 같은 사건끼리 묶고 황 CEO가 방문했거나 언급한 기업을 특정해 지도 위에 표시한다. 주가 데이터는 네이버 주가 API로 연동했다.유 씨는 “사람이 일일이 기사를 읽고 분류할 일을 AI가 대신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큰 틀을 기획하는 일은 사람이 했지만 코딩·데이터 연동 등 실제 구현에 사람이 직접 손댄 부분은 거의 없다는 뜻이다. ● “기술 없어서 못 한다는 변명은 이제 안 통해”예상치 못한 폭발적 반응에는 웃지 못할 후일담도 따라왔다. “이렇게 방문자가 많을 줄 몰랐다”며 웃은 유 씨는 서버 비용으로만 300달러가 청구됐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황 CEO의 방한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실시간 트래킹 서비스는 종료하고 방한 기간 전체를 정리한 아카이브 형태로 사이트를 전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유 씨는 “클로드 코드를 비롯해 개발을 도와주는 도구들이 쏟아지면서 이제는 아이디어만 있으면 실행할 수 있는 세상이 됐다”며 “기술이 없어서 못 한다는 말은 더 이상 변명이 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AI 영상 시장에서 초상권 문제는 언젠가 반드시 정리될 것입니다. 그 표준을 우리가 먼저 만들고 싶었습니다.” 정의석 줄라이하우스 대표(사진)는 자사가 기획한 국내 최초 AI 광고 영상 공모전의 취지를 이렇게 밝혔다. 이번 공모전은 배우 황찬성과 노라조 밴드의 디지털 초상 자산을 활용해 실제 브랜드 광고 영상을 AI로 제작하는 행사로, 딥페이크 논란이 끊이지 않는 AI 영상 시장에서 합법적인 디지털 IP 활용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겠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영화 ‘추격자’, ‘범죄도시’ 등 흥행작의 제작 및 투자사를 이끌었던 정 대표가 AI 콘텐츠 시장에 뛰어든 이유는 초상권 침해 논란이 반복되는 현실에서 디지털 IP 활용 생태계를 먼저 구축하면 시장을 선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그는 “지금은 디지털 IP를 합법적으로 쓸 방법이 없으니 유명인의 얼굴을 딴 AI 영상을 만들어 배포하면 불법이고 초상권 침해 논란이 생기는 것”이라며 “어느 시점에는 디지털 IP가 굉장히 합법적인 룰로 셋업이 될 거고 그때 디지털 IP의 의미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100여 대 카메라로 표정·몸짓까지 데이터로 공모전의 핵심 소재인 디지털 IP는 100여 대의 카메라가 장착된 3D 스캐너로 인물의 외형과 표정, 목소리, 말투까지 정밀하게 스캔해 데이터베이스화한 디지털 초상 자산이다. 배우 황찬성과 노라조 밴드는 공모전에 앞서 이 스캐너를 통해 자신의 디지털 자산을 구축했으며 이번 공모전을 통해 해당 데이터를 일반에 공개한다. 공모전 참가자들은 줄라이하우스 관계사 아캐인의 공식 AI 영상 제작플랫폼 ‘VIVID AI’를 통해 고품질 영상을 자유롭게 생성·편집할 수 있으며 무료 크레딧도 전폭 지원받는다. 참여 브랜드는 ‘복순도가(주류)’, ‘트루스오브뷰티(화장품)’, ‘이뮤니카(커피)’, ‘한솔신약’ 등 4개다. 작품 접수는 오는 6월 8일부터 시작하며 총 상금은 1300만 원이다.디지털 IP의 관리는 줄라이하우스의 관계사 KDDC가 맡는다. KDDC는 현재 한국연예인매니지먼트협회와 협업해 소속 연예인들의 디지털 IP를 순차적으로 구축 중이며 배우 전노민 씨 등 5월 현재 50여 명의 데이터를 확보한 상태다. 정 대표는 “디지털 IP는 당사자의 동의 하에 공식 IP로 등록된 합법적 데이터”라며 “등록된 데이터에 한해서만 합법적 사용을 승인하는 인증 체계를 통해 AI 시대의 초상권 보호 표준을 정립해나가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광고 매칭 플랫폼·AI 영화까지…디지털 IP 생태계 전반 겨냥 정 대표의 구상은 디지털 IP 데이터베이스 구축 뿐 아니라 AI 영상 생성 툴 개발과 운영, 영상 제작 전문 인력 양성, 디지털 IP 거래 플랫폼 운영, AI 영상 직접 제작에 이르기까지 AI 지식재산권 엔터테인먼트 생태계 전반을 아우른다. 이번 공모전에서 선보이는 디지털 IP 데이터베이스와 AI 영상 생성 플랫폼 이외 디지털 IP와 광고주를 직접 연결하는 매칭 플랫폼 ‘클링크’ 역시 빠른 시일 내 공개한다는 계획이다. 광고주가 원하는 이미지, 성별, 연령대 등의 조건을 클링크에 입력하면 플랫폼이 등록된 아티스트 데이터에서 조건에 맞는 인물을 자동으로 찾아 제공하고 광고 의뢰부터 계약까지 전 과정을 플랫폼 안에서 일괄 처리한다.콘텐츠 제작 영역에서도 굵직한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영화 ‘그것 만이 내 세상(2018년 개봉)’의 최성현 감독과 AI의 협업으로 완성되는 AI 좀비 장편영화 ‘더 나이트’는 국내 및 미국 시장을 겨냥한 글로벌 작품으로 올해 연말 개봉을 목표로 하고 있다. 정 대표는 “기존 방식으로 따지면 100억~150억 원이 투입되는 ‘미들 버짓(middle-budget)’ 작품을 AI 기술만으로 만들고 있다”며 “향후 연간 20~30편의 숏폼 드라마와 3~5편의 장편영화 및 OTT용 애니메이션을 제작, 유통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중 조선시대를 배경으로 한 하이브리드 장편 애니메이션 ‘이카루스’는 25분 분량의 72부작으로 시즌 8까지 이어지는 대형 프로젝트다.정의석 대표는 “AI로 인해 영상 생태계가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시점이 4∼5년 내 도래할 것”이라며 “합법적인 디지털 IP 활용이 업계의 새로운 표준이 될 수 있도록 그 첫번째 이정표를 이번 공모전으로 찍고 싶다”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미국 중남부의 시골 테네시주에서 태어난 테디 크로스(Teddy Cross, 30)는 학교에 다닌 적이 없다. 전직 교사였던 어머니에게 홈스쿨링을 받으며 자랐고 소프트웨어 업계에 종사하는 아버지 덕에 컴퓨터와 인터넷 사용이 일상이었던 그는 세상 지식의 대부분을 웹과 책을 통해 흡수했다. 본인 말마따나 “시골에서 사는 데다 학교에도 가지 않으니 친구가 별로 없고 할 일이 없어서” 레고와 플래시 게임에 빠져 지냈다. 과학과 공학 수업을 좋아했다. 레고를 조립하는 일이 머릿속에 있는 것을 현실로 구현하는 훈련이었다면 코딩은 그 자연스러운 연장선이었다. ●14세 소년, 게임 제작 콘테스트에 도전하다 테디가 열네 살이 된 2010년 무렵, HTML5가 새로운 웹 기술로 주목받기 시작했다. HTML5는 플래시 같은 외부 플러그인 없이도 동영상 재생과 2D·3D 그래픽을 브라우저에서 곧바로 구현할 수 있는 기술이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이 기술의 가능성을 시험하기 위해 게임 제작 콘테스트를 열었다. 이미 웹 기술에 상당한 지식이 있었던 테디는 “나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바로 게임 제작에 착수했다. 그 당시 테디가 만든 건 레이저와 미사일 포탑으로 적을 격추하는 단순한 2D ‘타워 디펜스’ 게임이었다. 아쉽게도 우승은 놓쳤지만 단 10KB의 작은 용량 안에 구현돼 있으면서도 중독성 있고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입소문이 트위터에서 빠르게 퍼져나갔고 유명 벤처 투자사 와이컴비네이터(Y Combinator)가 운영하는 실리콘밸리 뉴스 사이트 ‘해커 뉴스(Hacker News)’에 소개되기에 이르렀다. 이 소식을 접한 한 게임 개발사가 인턴 제안을 해왔고 열다섯 살의 테디는 실리콘 밸리에서 대학생 형들과 방값을 나눠 내며 정식 개발자로 첫발을 내딛었다. 그는 “처음 부모님 곁을 떠나는 거라 솔직히 무서웠지만 부모님은 ‘좋은 기회’라며 등을 밀어줬고 이른 독립이 자신감의 가장 큰 뿌리가 됐다”고 회고했다.●플레이코, 유니콘이 된 인스턴트 게임 회사 여러 스타트업을 거치며 내공을 쌓은 그는 2018년 경 소셜 게임 업체 징가(Zynga) 창업자 저스틴 왈드론, HTML5 웹소켓을 발명한 마이클 카터, 모바일 소셜게임 프로듀서인 다케시 오츠카와 의기투합해 ‘플레이코(Playco)’를 창업했다. 플레이코는 앱을 내려받지 않아도 브라우저에서 곧바로 실행되는 인스턴트 게임 플랫폼이다. 테디는 “모바일 게임은 기술적 한계 탓에 혼자 즐기는 솔로 게임 위주로 발전해왔다”며 “우리는 가족과 친구들이 쉽고 편하게 함께 즐길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다”고 창업 배경을 설명했다.2020년 때마침 코로나19가 터지면서 비대면·소셜 게임 수요가 폭발했다. 줌(Zoom) 화면 안에서 돌아가는 ‘Heads Up!’과 페이스북 메신저에서 즐기는 ‘EverWing’ 같은 플레이코의 게임들이 전 세계적 흥행을 거뒀다. 화면 속 단어를 맞히는 추측 게임인 ‘Heads Up!’은 화상회의 전 어색한 분위기를 풀어주는 용도로 큰 사랑을 받았다. 이 시기에 플레이코는 조쉬 버클리, 세콰이어 캐피탈과 같은 실리콘밸리 유수의 투자사로부터 1억 달러 규모의 시리즈A 투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0억 달러의 유니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실리콘밸리는 학벌을 보지 않는다” 테디는 이처럼 큰 성공의 비결을 “타이밍이 좋았던 덕분”이라고 겸손하게 말한다. 아이디어가 아무리 훌륭해도 기술과 플랫폼, 시장 상황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힘들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타이밍을 읽는 것 자체가 실력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와 동료들은 탄탄한 기술력을 바탕으로 다양한 게임을 실험하며 모바일 소셜 게임의 가능성을 꾸준히 탐색해왔다. 웹소켓 기술로 실시간 멀티플레이가 가능해지고 모바일 브라우저가 고해상도 그래픽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하는 시점을 누구보다 정확히 짚어냈다. 그 ‘감(感)’은 촘촘히 축적된 경험에서 나온다. 그래서 테디는 요즘 실리콘밸리에서는 학벌이나 학위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고 단언한다. 그는 “2010년대 초반만 해도 학벌을 따지는 회사와 그렇지 않은 회사가 공존했고, 피터 틸의 틸 펠로우십(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2년간 10만 달러를 지원하는 프로그램)이 꽤 도전적인 선택처럼 보였지만 지금은 거의 학위를 묻지 않는 분위기가 됐다”고 말했다. 대신 그가 강조하는 건 실전 경험이다. 자신이 만든 것, 자신이 이룬 성과가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누가 MBA를 했다고 하면 ‘그 시간에 제품을 개발하거나 스타트업을 시작할 수 있었는데 왜 MBA를 택했는지 설명하라’는 분위기라고도 전했다. 인턴십 3~4회를 졸업 요건으로 못 박는 대학의 코업(co-op·산학 연계 현장 실습) 프로그램이 갈수록 인기를 끄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 소모임 대화, 커피숍의 우연한 만남에서 기회 찾아 인적 네트워크 역시 인사이트와 비즈니스 기회를 포착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그는 “커피숍에서의 우연한 만남이나 친구 집 부엌에서 함께 저녁을 지어 먹으며 나누는 소모임 대화에서 뜻밖의 인사이트를 많이 얻는다”고 말했다.이런 경험을 나누기 위해 테디는 다음달 11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디캠프(D-Camp)에서 열리는 ‘클로드 블룸’ 행사에 참석할 예정이다. 클로드 블룸은 AI 시대를 살아가는 개발자, 기획자, 비즈니스맨이 자유롭게 모여 인사이트를 나누고 네트워크를 쌓는 커뮤니티 행사다. 샘 올트먼, 안드레이 카파시, 피터 슈타인버거, 스티브 예그 같은 업계 리더들의 SNS와 팟캐스트를 챙겨보고 와이컴비네이터의 ‘해커뉴스’를 비롯한 다양한 매체를 통해 매일 업계 흐름을 읽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기술과 비즈니스 동향을 파악하는 것에 더해 그 기술로 직접 사이드 프로젝트를 만들어보며 가능성을 직접 맛보는 것이 AI 시대 급변하는 기술을 따라가는 핵심이라고 그는 강조했다.●“글쓰기만은 AI에게 맡기지 않는다”기술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그가 AI 시대에도 끝까지 손에서 놓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글쓰기다. 내부 문서나 고객용 포스팅에는 AI를 적극 활용하지만 자신의 생각과 감정을 담는 글만큼은 반드시 직접 쓴다는 원칙을 지키고 있다.이 원칙 뒤에는 단순한 취향이 아닌 철학이 있다. AI가 점점 더 많은 영역을 빠르게 대체하는 현실을 누구보다 가까이서 지켜보는 그는 사고력과 정체성마저 AI에 넘기는 일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 “AI에게 생각을 맡기면 처음엔 편하고 좋겠지만 결국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진 사람인지조차 알 수 없게 된다”고 그는 말했다. AI 없이 스스로 생각하는 훈련이 더 중요해지는 시대이며 글쓰기는 그 훈련의 핵심 수단이라는 것이다.이 시각은 아이들 교육관으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아이들이 AI를 활용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에 의존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스스로 결정하고 의문을 품게 하고 탐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 교육의 본질이라는 믿음이다. 테디의 부모님은 집에 TV를 두지 않았다. 영화는 볼 수 있었지만 컴퓨터 외의 화면은 없었다. 그 대신 테디에게 수영을 시켰고 레고를 쥐여줬다. 몸으로 해봤기에 좋아하게 됐고 만져봤기에 만드는 즐거움을 알게 됐다. 그는 “호기심을 품고 스스로 탐구하며 답을 찾아가는 사람, 그게 바로 실리콘밸리가 원하는 인재”라고 강조했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

글로벌 양자산업 전시-콘퍼런스 IQT(Inside Quantum Technology)가 아시아 최초로 국내에서 열린다. 한국양자정보학회(양자학회)는 2026 IQT KOREA를 11월 25일부터 27일까지 인천 송도컨벤시아에서 개최한다고 12일 밝혔다. 한상욱 KIST 양자활용연구사업단장 겸 IQT KOREA 조직위원장은 “양자 산업 태동기를 맞아 양자학회가 국내 양자산업 생태계 조성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산업 중심 콘퍼런스인 IQT를 유치하게 됐다”며 “양자 기술은 과학의 영역에서 산업 경쟁 단계로 빠르게 진입하고 있어 한국도 산업 전략을 더 정밀하게 만들어야 하는 시점”이라고 말했다. IQT는 북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양자 기술과 제품을 소개해 온 국제 행사다. 이번 행사에도 IBM, 구글 같은 양자 빅테크와 사이퀀텀(PsiQuantum), 파스칼(Pasqal), 퀀텀머신(Quantum Machines)을 비롯한 전문 스타트업이 참여해 양자 기술의 최신 정보와 산업 응용 인사이트를 전달할 예정이다. 콘퍼런스 기간에는 국내 연구자와 해외 투자자를 연결하는 투자 유치 설명회도 열린다. 스타트업, 대학 및 연구기관 기반 스핀오프 기업들이 연구 내용을 발표하고 글로벌 벤처캐피털(VC)과 한국투자파트너스를 비롯한 국내외 투자기관 10곳이 참석한다. 양자 클러스터 지정을 준비 중인 지방자치단체도 주요 참여 대상으로 꼽힌다.● 산업 현장 파고드는 양자 기술 여러 기술적 한계와 불확실성이 있음에도 많은 과학자와 기업이 양자 기술에 주목하는 이유는 상용화됐을 때의 막대한 경제적 파급력 때문이다. 양자 현상을 활용하는 양자컴퓨팅은 기존 컴퓨팅 체계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연산 속도와 복잡도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신소재, 신약 개발 분야에서 양자컴퓨팅 적용 가능성을 보여 주는 연구 결과들이 잇따라 발표되며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한 단장은 “신약 개발 단계에서는 물질 간 반응을 원자 단위로 계산해야 하는데 기존 컴퓨터로는 처리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 한계가 있다”며 “양자컴퓨터를 활용해 유효성 높은 후보 물질만 추려 실험하는 방식으로 효율을 높이려는 시도가 늘고 있다”고 소개했다. 신소재, 신약 외에도 금융 투자, 물류 최적화 같은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양자 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확산되고 있다. 고성능 인공지능(AI)이 해킹에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면서 양자 보안 기술의 개발과 도입도 속도를 내고 있다. 양자센서를 활용한 ‘무(無)GPS 항법’ 역시 완성 단계에 근접한 양자 기술로 꼽힌다. 양자센서는 물체의 관성, 회전, 자기장을 측정해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 없이도 위치를 파악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주기적으로 수면 위로 부상해 GPS 신호를 수신해야 하는 잠수함 등 군사 분야 활용 가능성이 거론된다.● 한국에는 ‘퍼스트 무버’ 기회 양자학회는 향후 2∼3년을 양자 기술 패권을 확보할 수 있는 골든타임으로 본다. 주요 빅테크가 ‘결함 허용 양자컴퓨터(FTQC)’ 개발 목표를 2030년으로 설정하고 있는 만큼 그 전에 핵심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판단에서다. 양자학회장인 이동헌 고려대 교수는 “양자 기술의 A부터 Z까지 모두 갖출 필요는 없다”면서 “반도체 산업 사례처럼 특정 영역 경쟁력만 확보하더라도 충분히 차세대 블루칩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양자컴퓨팅을 실용화하는 데 필요한 수많은 요소 중 글로벌 기업들이 ‘이 분야만큼은 한국과 협력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판단할 수 있는 기술의 역량을 키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 단장은 “소수 기업이나 국가가 양자 기술을 독점하기보다 전 세계 양자커뮤니티가 함께 상용화 시점을 앞당기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며 “이런 협력 모델에 주목해 국내외 연구기관과 대기업, 스타트업이 힘을 모아 양자 기술을 공동 개발할 수 있는 기반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인공지능(AI) 챗봇은 아첨 성향을 타고났다. 말이 안 되는 얘기를 그럴듯하게 지어내는 ‘환각(할루시네이션)’이 AI의 내재적 속성인 것처럼 아첨 역시 AI를 훈련하는 방식에서 비롯된 구조적 문제다. AI는 ‘인간 평가자가 좋아하는 답변’을 최대한 많이 생성하도록 학습되기 때문이다. AI의 아첨은 중립적이고 학술적인 언어로 포장돼 사용자가 아첨임을 알아차리기 어려운 경우도 많다. 한 사용자가 여자친구에게 “2년간 실직 상태였다”고 거짓말한 것이 잘못된 행동인지 묻자 챗봇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당신의 행동은 물질에 제한받지 않는, 관계의 진정한 역학을 이해하려는 진심 어린 욕구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거짓말을 두둔한 것도 모자라 명분까지 만들어 준 것이다. 미국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챗GPT, 제미나이 등 11개 주요 AI 모델을 분석한 연구에 소개된 사례다.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글쓴이가 잘못했다”는 여론이 압도적인 게시물 2000개에 대해서도 AI는 글쓴이의 입장을 49% 더 많이 두둔했다. 또 사용자들은 AI의 아첨이 아첨인지 아닌지 구별하지 못했다. 아첨하는 AI와 그렇지 않은 AI를 똑같이 ‘객관적’이라고 평가했으며 둘 중 어느 AI를 선호하는지 묻는 질문에 아첨하는 AI가 더 좋다고 답변했다. 문제는 AI와 대화할수록 사용자는 자신이 옳다는 확신이 강해지고 상대에게 사과하거나 화해하려는 의지는 줄어든다는 것이다. 권력자 주위의 예스맨들이 그의 판단을 흐리게 해 국정을 그르친 사례가 매우 흔하듯 비판 없는 동조는 개인의 판단력을 서서히 잠식한다. AI와 강한 애착을 형성한 사람일수록 실제 인간관계에서 멀어질 가능성도 높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항상 옳다고 해주는 목소리가 아니라 불편하더라도 진실을 말해줄 수 있는 관계다. 나를 편하게 해주는 존재와 나를 성장하게 해주는 존재는 다르다. 운동선수가 근육을 키우려면 저항이 필요하듯 인간의 판단력과 도덕적 감각도 마찰과 불편함 속에서 단련된다. 내가 틀렸음을 인정하는 순간의 불편함, 상대 입장에서 다시 생각해보는 수고로움, 사과하고 화해하는 과정의 어색함, 이 모든 것이 인간관계의 핵심 기능이다. 내 말에 항상 고개를 끄덕이는 존재가 아니라 때로는 고개를 젓고 다른 시각을 제시해줄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어야 한다. 우려스럽게도 챗봇을 친구처럼 여기고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미국의 한 조사에서 18∼28세 직장인의 34%가 “지인에게도 말하지 못한 고민을 AI에 털어놓은 적 있다”고 답했고 국내에서도 최근 초록우산이 청소년 330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94%가 생성형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고 그중 절반이 “AI가 나를 이해해 준다고 느꼈다”고 답했다. 탈출구는 AI가 아니라 AI를 쓰는 우리 안에 있다. 앞서 언급한 스탠퍼드대 연구에 따르면 AI 모델에 “답변할 때 ‘잠깐만요’라는 말로 시작하라”고 지시하는 것만으로도 더 비판적인 답변을 끌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도 챗봇의 답변을 곧이곧대로 듣기보다 “잠깐, 이게 정말 맞는 말인가”를 한 번 더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게 어떨까. 김현지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nuk@donga.com}

아버지는 깡촌 흙수저 출신의 성공한 은행원이었다. 그는 삼남매에게 늘 “공부만이 살 길”이라고 했다. 덕분에 윤창건 씨(53)는 누나와 함께 요즘 말로 ‘선행학습’을 하며 자랐다. 중학교 때 성적이 좋았고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이과를 택했다. 부모님은 의사가 되길 바랐다. 그러나 윤 씨의 꿈은 따로 있었다. 가수가 되는 것이었다. 어머니가 피아노 학원을 운영한 덕에 피아노 실력도 제법 됐다. 그는 부모님을 설득해 고등학교 2학년 때 이과에서 예체능 계열로 전과했다. 하지만 충분한 준비 없이 방향을 틀다 보니 첫 입시에서 보기 좋게 고배를 마셨다. 재도전을 다짐한 스무살의 그는 중앙대 작곡과 교수실 문을 무작정 두드렸다. 연락도 없이, 일면식도 없는 교수를 찾아가 레슨을 요청한 것이다. “사실 교수실 문을 두드리기 전에 많이 망설였어요. 저를 어떻게 볼지 두려워서 포기하고 돌아섰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돌아와 끝내 노크를 했죠. 어쩌면 그게 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의 시작이었는지도 모릅니다.” 그해 말 윤 씨는 중앙대학교 작곡과에 93학번으로 입학했다.● 극심한 통증 앞에 무너진 가수의 꿈 본격적으로 가수의 길에 들어선 건 군 제대 후였다. 제3회 예당가요제에서 대상을 거머쥐며 당시 유명 매니지먼트사 예당엔터테인먼트에 입성했다. 바로 윗기수에 김경호가, 아래 기수에는 싸이가 있었다. 발라드 가수였던 그에게 기회는 더디게 왔다. 댄스 음악이 대세로 떠오르면서 발라드 앨범 발매는 계속 미뤄졌다. 이 무렵 송승헌·송혜교 주연의 드라마 ‘가을동화’ OST를 불러줄 가수를 급히 찾는다는 연락이 왔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아는 형의 부탁으로 ‘얼마나 내가’를 녹음했다. 그런데 드라마가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OST 앨범만 150만 장이 팔렸고 일본에서도 열풍이 불었다. 후속작 ‘겨울연가’까지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면서 그는 약 8년 간 일본 무대를 오가며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기세를 몰아 입시 전문 실용음악학원 ‘VNC 보컬 트레이닝 센터’를 열었다. 레슨 때부터 녹음하고 즉시 들어보는 방식, 기획사의 가수 트레이닝과 동일한 커리큘럼을 적용했다. 효과가 검증되면서 학원은 빠르게 성장했다. 사업을 확장해 가던 어느 날, 갑자기 뒷목이 송곳으로 찌르는 듯 아팠고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이어 발작이 찾아왔다. 1년이 지나서야 병명이 밝혀졌다. ‘설인신경통’이었다. 혀와 인두의 감각을 담당하는 신경이 동맥과 엉켜 동맥이 뛸 때마다 극심한 통증이 오는 병이었다. 희귀 질환이라 집도의를 찾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뇌수술만이 유일한 해법이었고 2012년 극적으로 수술에 성공했다. 하지만 학원은 접어야 했고 노래도 부를 수 없게 됐다.● 배수진 치고 육체노동에 뛰어들다 취미삼아 하고 있던 한옥 목수일을 직업으로 삼아야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아버지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며 병원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당장 돈을 벌어야 했다. 남은 것이 몸 뿐이었던 그는 무작정 건설 현장을 찾아갔다. 도서관 신축 현장 인력사무소에서 일당 12만 원을 받으며 콘크리트 미장부터 시작했다. 하지만 그 돈으로는 병원비와 생활비, 아이들 교육비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아침 7시부터 오후 5시까지 현장에서 일하고 저녁을 먹고 나면 대리운전을 나갔다. 비나 눈이 와서 현장이 쉬는 날에는 배달을 했다. 현장에서 그의 별명은 ‘가방끈’이었다. 대학물 먹은 사람이 현장 막일을 한다는 게 드물었기 때문이다. “건설 현장을 보면 먼지 나지 말라고 쳐 놓은 천막이 있잖아요. 그 천막 안의 세계는 천막 밖의 세계와 전혀 달라요. 사용하는 언어도 다르고 사람들 생각의 결도 달라요. 무대 위에서 조명을 받으며 노래하던 사람이 지금은 건설 현장 일하고 야채 배달 하자니 괴리감이 컸었어요.”그러나 그런 와중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기회가 오면 놓치지 않고 자신을 성장시키는 계기로 삼았다. 트럭 대리운전을 하던 어느 날, 옆자리에 탄 손님이 술기운에 툭 던졌다. “자네는 대리운전만 할 것 같진 않은데, 낮엔 뭐 하나?” 그는 명함 한 장을 건네고 내렸다. 창틀·난간·철제문을 다루는 금속 시공 회사였다. 윤 씨는 다음날 그 명함을 들고 곧장 해당 회사를 찾아갔다. 술김에 건넨 명함을 들고 나타난 그를 상대방은 신기한 듯 바라봤다. 그곳에서 그는 용접부터 시작해 금속 시공을 처음부터 다시 배워나갔다. 실측부터 발주, 시공까지 혼자 해낼 수 있는 수준에 이른 2022년 건축 시공사 ‘오늘의현장’을 설립했다. 이어 반경 5km 내 철물점의 자재 가격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앱 ‘오늘의 현장’을 직접 개발했고 이 앱을 알리기 위해 유튜브 채널을 시작했다.● 돌고 돌아 콘텐츠로… “조명이 어색하지 않았어요” 첫 영상은 철에 구멍을 뚫는 전동드릴 사용법이었다. 위험한 공구인 만큼 현장 초보자에게 꼭 필요한 정보였다. 반응은 처음부터 뜨거웠다. 채널은 인스타그램으로도 확장했다. 구독자 층을 넓히기 위해 올린 페인트칠 영상은 100만 뷰를 넘어섰다. 집수리에 관심 있는 일반인 시청자가 생각보다 훨씬 많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삼화페인트가 처음으로 협업을 제안해 왔다. “하이샷시 레일 교체 직접 해보기! 이것도 하기 싫으면 돈이 많나봐?” , “for 문과생 남편. 1분 안에! 감전 없이 전등 가는 법!”과 같이 톡톡 튀면서도 깨알 같은 정보가 담긴 그의 영상을 유튜브, 인스타그램에서 총 21만 명이 구독한다. 올해는 카카오톡 숏폼에도 진출해 ‘건축의 가성비’, ‘싱크대 배수구 냄새 잡는 법’ 같은 생활 밀착형 콘텐츠로 대중과 접점을 넓히고 있다. 이 뿐 아니라 집수리 의뢰를 받아 검증된 기술자를 연결해 주는 ‘오늘의 집사’ 서비스를 출시하며 전문가 매칭 플랫폼으로도 사업 영역을 확장 중이다. 집수리 사업 아이디어는 ‘오늘의현장’ 채널 구독자 4명 중 1명이 여성이라는 데 착안했다. “여성분들이 집수리를 의뢰할 때 어떤 사람이 내 집에 방문할 지 알 수 없다는 두려움이 있는 것을 알게 됐어요. 세상에 나쁜 사람도 많으니까요. 우리가 교육하고 검증한 전문가를 보낸다면 안전함이나 집수리 품질을 어느 정도 담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건설업에서 출발했지만 SNS 채널과 플랫폼 서비스에서 나오는 매출 비중이 점점 커져 이제는 6대 4 수준이 됐다. 가수, 학원 운영자, 건설 현장 노동자, 크리에이터로 이어지는 그의 커리어는 언뜻 종잡을 수 없이 이리저리 튀는 공처럼 보인다. 하지만 서로 무관해 보이는 삶의 궤적들이 크리에이터라는 한 지점에서 맞닿아 폭발적인 시너지를 만들고 있다. “교육이 제게 맞았고 결국 미디어로 돌아온 것이지요. 카메라의 조명이 어색하지 않았으니까요.”● “누가 해봤답네” 말하는 것이 실패의 지름길그는 자신이 가진 자원들을 연결하는 힘이 독서를 통해 얻은 아이디어와 통찰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책을 읽는 만큼 상상하게 되고, 그 상상력이 새로운 길을 여는 힘이 된다는 것이다. 물론 상상만으로는 부족하다.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실행력이 뒤따라야 한다. “실패를 덜 하는 비결이요? 실패를 많이 해보는 것밖에 없어요.”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려내려면 먼저 부딪혀 보고 그 결과를 직시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그는 회사에서 금칙어를 정해뒀다. “누가 해봤답네(누가 해봤는데 안 됐대요)”라는 말이다. 남의 실패를 이유로 시도조차 포기하는 순간 성공의 가능성도 함께 사라진다는 뜻이다. 그는 오래 몸 담고 있던 회사를 떠나게 된다면 일찍 나오는 편이 행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 건강이 뒷받침되고 새로운 실패를 감당할 시간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저의 경우 새로운 문을 열고 들어가는 순간은 항상 앞이 깜깜했어요. 스위치가 어디 있는지 더듬더듬 찾아야 했죠. 더듬는 시간이 길어질 수도 있어요. 그렇지만 그렇게 찾다 보면 언젠가는 찾게 돼있어요. 그렇게 찾은 스위치는 정말 아름다운 스위치인 것이죠. 더듬어 찾는 사람만이 아름다운 스위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이라고 좌절하거나 주저앉기엔 삶이 아깝다고 그는 말한다. 언젠가 에세이를 쓴다면 제목은 ‘롤러코스터에서 뛰어내리기’로 할 생각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는 그 제목에 걸맞은 삶을 살기 위해 분투 중이다.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의사는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묻지만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다. 환자의 진료 기록, 복용 중인 약물, 검사 수치 등 짧은 진료 시간 안에 확인해야 할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가 말을 잇는 동안 의사의 손은 키보드 위를 바쁘게 오간다. 눈을 맞출 틈이 없다.고려대학교의료원(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 윤을식)이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 같은 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인공지능(AI)으로 넘어서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2035년 개원 예정인 고려대 동탄병원을 중심으로 안암·구로·안산병원을 연결하는 빅데이터 기반 초정밀 쿼드(Quad) 시스템을 구축해 의료진이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막힘없는 임상 워크플로를 구현한다는 구상이다.이 계획의 핵심은 ‘AI 비서가 함께하는 진료실’이다. AI가 환자의 복잡한 병력을 요약하고 최신 임상 가이드라인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 평가 결과를 참조해 함께 제시함으로써 오진 위험을 낮추고 진료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박홍석 고려대의료원 의학지능정보본부장은 “진료 기록, 임상 가이드라인, 건강보험 약제비 심사 결과까지 AI가 한꺼번에 검토해 처방을 보조할 수 있다면 의사의 실수도 줄일 수 있고 환자에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최신 의약품을 처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를 구현할 방법으로는 구글의 멀티모달 의료 AI 모델 ‘MedGemma’를 비롯한 의료 전문 오픈소스 모델에 고려대의료원이 보유한 의료 데이터를 추가 학습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여기에 최신 임상 가이드라인과 심평원의 심사 평가 결과를 RAG(검색 증강 생성)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결합한다. RAG는 AI가 답변을 생성할 때 외부 데이터베이스에서 관련 정보를 직접 검색해 반영하는 기술로, 최신 정보에 기반한 답변을 생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텍스트로 변환해 자동으로 의무기록에 반영하는 ‘보이스(Voice) EMR’도 도입한다. ‘음성→텍스트 변환(STT)’ 기술을 활용한 이 시스템은 의사가 진료 중 별도로 기록을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준다.병원 운영 전반도 AI로 최적화한다. ‘디지털 커맨드 센터’는 입원·퇴원 현황과 수술실 가용 여부를 초 단위로 분석해 최적의 병상을 배정하고 적합한 진료팀을 연결한다. 예약부터 진료, 결과 확인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환자 동선이 구현되고 행정 인력의 업무 부담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각 병실 벽면에는 인터랙티브 대시보드를 설치해 환자가 자신의 치료 일정과 경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식사가 언제 나오나”, “퇴원은 언제인가”와 같이 간호 인력에게 반복되는 질문은 음성 인식 챗봇이 대신 답변한다.고려대의료원은 이와 같은 스마트 의료 시스템을 동탄병원뿐 아니라 안암·구로·안산병원에도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또 이들 병원에서 사용하는 클라우드 기반 병원 정보 시스템인 PHIS(정밀의료 병원 정보 시스템)를 동탄병원에도 연동해 4개 병원이 진료 기록을 공유하고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통합 인프라를 갖춘다.윤을식 고려대 의무부총장 겸 의료원장은 “동탄병원을 비롯한 고려대의료원 전체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 정밀의료와 수준 높은 진료 경험이 실현될 수 있도록 가장 정교하고 안정적인 스마트 헬스케어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의사는 “어디가 불편하세요?”라고 묻지만 시선은 모니터를 향해 있다. 환자의 진료 기록, 복용 중인 약물, 검사 수치 등 짧은 진료 시간 안에 확인해야 할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환자가 말을 잇는 동안 의사의 손은 키보드 위를 바쁘게 오간다. 눈을 맞출 틈이 없다. 고려대학교 의료원이 대학병원 진료실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이 같은 현장의 구조적 한계를 인공지능(AI)으로 넘어서겠다는 청사진을 내놨다. 2035년 개원 예정인 고려대 동탄병원을 중심으로 안암·구로·안산병원을 연결하는 빅데이터 기반 초정밀 쿼드(Quad) 시스템을 구축해 의료진이 환자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최대한 확보하고 막힘없는 임상 워크플로를 구현한다는 구상이다. 이 계획의 핵심은 ‘AI 비서가 함께하는 진료실’이다. AI가 환자의 복잡한 병력을 요약하고 최신 임상 가이드라인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 평가 결과를 참조해 함께 제시함으로써 오진 위험을 낮추고 진료의 질을 끌어올리는 것이 목표다. 박홍석 고려대의료원 의학지능정보본부장은 “진료 기록, 임상 가이드라인, 건강보험 약제비 심사 결과까지 AI가 한꺼번에 검토해 처방을 보조할 수 있다면 의사의 실수도 줄일 수 있고 환자에게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최신 의약품을 처방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구현할 방법으로는 구글의 멀티모달 의료 AI 모델 ‘MedGemma’를 비롯한 의료 전문 오픈소스 모델에 고려대의료원이 보유한 의료 데이터를 추가 학습시키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여기에 최신 임상 가이드라인과 심평원의 심사 평가 결과를 RAG(검색 증강 생성)를 활용해 실시간으로 결합한다. RAG는 AI가 답변을 생성할 때 외부 데이터베이스에서 관련 정보를 직접 검색해 반영하는 기술로, 최신 정보에 기반한 답변을 생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의사와 환자의 대화를 실시간으로 텍스트로 변환해 자동으로 의무기록에 반영하는 ‘보이스(Voice) EMR’도 도입한다. ‘음성→텍스트 변환(STT)’ 기술을 활용한 이 시스템은 의사가 진료 중 별도로 기록을 입력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없애준다. 병원 운영 전반도 AI로 최적화한다. ‘디지털 커맨드 센터’는 입원·퇴원 현황과 수술실 가용 여부를 초 단위로 분석해 최적의 병상을 배정하고 적합한 진료팀을 연결한다. 예약부터 진료, 결과 확인까지 끊김 없이 이어지는 환자 동선이 구현되고 행정 인력의 업무 부담도 크게 줄어들게 된다. 각 병실 벽면에는 인터랙티브 대시보드를 설치해 환자가 자신의 치료 일정과 경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식사가 언제 나오나”, “퇴원은 언제인가”와 같이 간호 인력에게 반복되는 질문은 음성 인식 챗봇이 대신 답변한다. 고려대의료원은 이와 같은 스마트 의료 시스템을 동탄병원뿐 아니라 안암·구로·안산병원에도 단계적으로 적용할 계획이다. 또 이들 병원에서 사용하는 클라우드 기반 병원 정보 시스템인 PHIS(정밀의료 병원 정보 시스템)를 동탄병원에도 연동해 4개 병원이 진료 기록을 공유하고 함께 활용할 수 있는 통합 인프라를 갖춘다. 윤을식 고려대의료원 의무부총장은 “동탄병원을 비롯한 고려대의료원 전체에서 환자 한 명 한 명에게 맞춤형 정밀의료와 수준 높은 진료 경험이 실현될 수 있도록 가장 정교하고 안정적인 스마트 헬스케어 시스템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6월 3일 지방선거를 70여 일 앞둔 지난 3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AI 딥페이크 분석 모델’에 후보자 A 씨로 보이는 인물이 선거로고송을 부르는 영상이 접수됐다. 영상 속 인물은 생김새와 몸짓, 목소리까지 A 씨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유사했지만 분석 결과 AI로 조작된 ‘가짜(fake)’로 판정됐다.2023년 12월 공직선거법에 딥페이크 관련 규정이 신설되면서 선거일 90일 전부터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선거 영상이 전면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선거 관련 딥페이크가 계속 제작, 유포되고 있다. 2월에는 허위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한 지방선거 입후보 예정자 B 씨가 경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B 씨는 외국 유명 시사주간지가 지역 발전을 이끌 인물로 자신을 선정했다는 허위 내용의 영상을 제작한 후 AI 생성물 표시 없이 개인 SNS에 게시·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선거 국면에서 등장하는 딥페이크는 갈수록 정교해지는 추세다. 21일 박남인 국과수 디지털과 공업연구관은 “단순히 사진이나 영상을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실사 사진으로 생성한 영상에 AI 음성을 입히거나 실제 음악 위에 합성 목소리를 덧씌운 선거송 형태의 콘텐츠까지 등장하고 있다”며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이런 콘텐츠는 일반인이 눈과 귀만으로 진위를 가려내기 더욱 어려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유통 방식도 문제를 키운다. 이메일을 통해 원본 파일 형태로 유포될 때는 AI 조작 여부를 비교적 가려내기 쉽다. 하지만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이 다운로드된 뒤 메신저를 통해 재유포되는 과정이 반복되면 메타데이터가 삭제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원본 정보가 훼손되면 딥페이크 여부를 판별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진다.딥페이크가 실제 유권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수사기관도 엄정 대응 방침을 세우고 있다. 다만 처벌 중심의 사후 규제만으로는 빠른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박 연구관은 “시민 스스로 허위 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 역량도 함께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의심스러운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 검색에 올려 해당 이미지의 원본이 따로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1차 검증 방법이다. 눈을 깜박이지 않거나 말하는 입 모양과 음성의 싱크가 미세하게 어긋나는지도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다. 영상의 경우 특정 프레임을 캡처해 이전에도 존재했던 장면인지 살펴보는 등 역검색을 생활화하는 습관도 허위 정보 확산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박 연구관은 덧붙였다.원주=김현지 기자 nuk@donga.com}

6월 3일 지방선거를 60여 일 앞둔 3월,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의 ‘AI 딥페이크 분석 모델’에 후보자 A 씨로 보이는 인물이 선거로고송을 부르는 영상이 접수됐다. 영상 속 인물은 생김새와 몸짓, 목소리까지 A 씨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유사했지만 분석 결과 AI로 조작된 ‘가짜(fake)’로 판정됐다. 2023년 12월 공직선거법에 딥페이크 관련 규정이 신설되면서 선거일 90일 전부터 AI를 이용한 딥페이크 선거 영상이 전면 금지됐음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선거 관련 딥페이크가 계속 제작, 유포되고 있다. 2월에는 허위 딥페이크 영상을 제작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게시한 지방선거 입후보 예정자 B 씨가 경찰에 고발되기도 했다. B 씨는 외국 유명 시사주간지가 지역 발전을 이끌 인물로 자신을 선정했다는 허위 내용의 영상을 제작한 후 AI 생성물 표시 없이 개인 SNS에 게시·유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선거 국면에서 등장하는 딥페이크는 갈수록 정교해지는 추세다. 21일 박남인 국과수 디지털과 공업연구관은 “단순히 사진이나 영상을 조작하는 수준을 넘어 실사 사진으로 생성한 영상에 AI 음성을 입히거나 실제 음악 위에 합성 목소리를 덧씌운 선거송 형태의 콘텐츠까지 등장하고 있다”며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이런 콘텐츠는 일반인이 눈과 귀만으로 진위를 가려내기 더욱 어려워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통 방식도 문제를 키운다. 이메일을 통해 원본 파일 형태로 유포될 때는 AI 조작 여부를 비교적 가려내기 쉽다. 하지만 유튜브에 올라간 영상이 다운로드된 뒤 메신저를 통해 재유포되는 과정이 반복되면 메타데이터가 삭제되거나 왜곡될 수 있다. 원본 정보가 훼손되면 딥페이크 여부를 판별하기가 한층 까다로워진다. 딥페이크가 실제 유권자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정부와 수사기관도 엄정 대응 방침을 세우고 있다. 다만 처벌 중심의 사후 규제만으로는 빠른 기술 발전의 속도를 따라잡기 어렵다. 박 연구관은 “시민 스스로 허위 정보를 가려낼 수 있는 역량도 함께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의심스러운 이미지는 구글 이미지 검색에 올려 해당 이미지의 원본이 따로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가장 일반적인 1차 검증 방법이다. 눈을 깜박이지 않거나 말하는 입 모양과 음성의 싱크가 미세하게 어긋나는지도 주의 깊게 봐야 할 대목이다. 영상의 경우 특정 프레임을 캡처해 이전에도 존재했던 장면인지 살펴보는 등 역검색을 생활화하는 습관도 허위 정보 확산을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박 연구관은 덧붙였다.원주=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의 한숨이 깊다. “고용시장에서 신입 채용은 거의 끊길 것 같은데 경력 없는 사람들은 스타트업 창업해 바닥부터 경력을 쌓으면서 성장하는 게 제일 유망해 보이네요.” “정말 창업을 스펙이라고 생각해야 하는 시대인가 봐요.” 이런 와중에 스물몇 살의 젊은이가 인공지능(AI)을 이용해 소프트웨어를 만들고 수천억 원대의 가치를 인정받았다는 소식은 이들의 불안과 조바심에 불을 지른다. AI의 진화가 거듭될수록 청년들의 불안은 구조적 추세로 굳어지는 모습이다. 신입 사원이 실수를 거치며 배우던 ‘엔트리레벨(Entry-level)’ 업무를 AI가 더 빠르고 정확하게 수행하면 기업들이 신입을 대규모로 채용할 경제적 유인이 크게 줄기 때문이다. “회사가 나를 고용하지 않으면 내가 나를 고용하는 수밖에 없다”는 압박 속에 청년들은 소규모 창업과 1인 기업을 대안으로 거론하고 있다. 이런 추세를 단순한 청년 일자리 감소로 생각할 수 없는 이유는 이것이 경력 축적 구조의 단절과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청년 고용의 구조적 축소는 직무 전문성을 쌓을 사다리가 끊어지는 것을 의미한다. 일터는 단순히 월급을 받는 공간이 아니라 실수하고 배우며 직무 감각과 문제 해결 능력을 체득하는 훈련장이다. 처음 들어갈 자리가 줄어들면 청년이 경력을 쌓을 출발점을 잃게 된다. 이는 몇몇 청년의 취업 실패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미래의 중간 관리자, 숙련 실무자, 산업 인재를 길러낼 통로를 잃는다는 뜻이다. 회사 내부에 축적된 암묵지(暗默知)가 다음 세대로 흘러가는 경로도 막힌다. 지식의 단절은 곧 사회 전체의 역량 손실이기도 하다. 창업이 대안처럼 거론되지만 사업 감각은 현장 없이 체득될 수 없고 하루아침에 생기지도 않는다. 우리가 잘 아는 많은 사업가들이 직장 경력을 자산 삼아 창업해 성공을 일궜다. 다이슨을 창업한 제임스 다이슨은 엔지니어링 회사에서 근무하다 우연히 방문한 제재소에서 공기 회전을 이용해 공기와 톱밥을 분리하는 기술을 보고 흡입력 강한 진공청소기 명가를 구축했다. 이해진 네이버 창업자도 삼성SDS에 다니다 독립해 검색 회사를 창업해 크게 키웠다. 시장을 읽는 감각은 일터의 경험 위에서 비로소 자란다. 경험이라는 토양을 갖추지 못한 채 창업하라는 요구는 씨앗을 심을 밭도 없이 수확을 기대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런 문제를 시장의 자율 조정에만 맡겨둘 경우 청년 실업은 일시적 충격에 그치지 않고 장기적 고착 상태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최근 AI와 노동시장 재편을 주제로 열린 한 민간 포럼에서는 현재 공공 부문에 적용되는 청년고용할당제를 고용 여력이 있는 일부 민간기업으로까지 넓히는 방안을 검토하자는 제안까지 나왔다. 미래를 조망하는 전문가들이 그만큼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의미다. 우리 사회는 AI의 일자리 대체를 주요 의제로 거론하고 있지만 구체적 대처 방안을 논의하는 단계로 진입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청년이 일터에서 배우고 넘어지며 다시 설 수 있는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 AI가 바꾸는 것은 노동시장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미래 그 자체일 것이다. 김현지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nuk@donga.com}

충남 공주의 구도심 골목을 걷다 보면 오래되고 낡은 집과 상가들 사이에 드문드문 자리잡은 이색적 공간을 발견하게 된다. 팝아트처럼 톡톡 튀는 간판의 서점과 빵집, 단아하고 정갈한 한옥 스타일의 작은 카페. 과거와 현재의 건축물이 낯선 듯 자연스럽게 어우러져 있다. 한옥 게스트하우스 ‘반죽동 그곳’도 시간의 켜가 앉은 골목에 은근히 자리 잡은 신축 건물이다. 자갈이 깔린 앞마당과 마루는 적당히 비어 있고 편안하다. 연고도 없는 공주에 정착해 5년째 살고 있는 신철동(67)·전미경희(66) 부부가 이 도시에 이끌린 것도 바로 이 편안함 때문이었다. “공주에 와 보니 어렸을 때 살던 골목 모습이 딱 있는 거예요. 오랫동안 사람들이 살아온 동네라 생활에 필요한 것들이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다 갖춰져 있고 도시는 낡았지만 이야깃거리가 풍부해 매력적이라고 생각했어요.”● 1박 2일 여행이 인생을 바꾸다신철동·전미경희 부부는 평생 서울 혹은 서울 근교에서 살아왔다. 신 씨는 자동차 제조업에 종사하다 55세에 은퇴했고 전 씨는 영국 대사관에서 일하다 63세에 퇴직했다. 서울 밖에서 살아본 경험이라고는 전북 군산에서 2년 6개월, 영국에서 2년이 전부였다. 그런 두 사람이 충남 공주에 정착하게 된 건 1박 2일 여행 덕분이었다. 6년 전, 부부는 은퇴 후 지낼 조용한 곳을 찾아 2년째 수도권 일대를 물색하고 있었다. 경기 성남시 판교의 단독주택을 팔고 양평·수원·이천·여주 어딘가에 자리를 잡을 생각이었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곳이 없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공주의 한옥 게스트하우스 ‘봉황재’에서 하룻밤을 묵게 됐다. 이튿날 봉황재 운영자인 권오상 씨의 안내로 마을 투어에 나섰다. 권 씨는 공주에 대해 ‘오랜 역사와 풍부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영국의 바스(Bath)와 같은 도시’라고 소개했다. 공주는 백제의 수도였고 조선 시대엔 충남 지역 감영이 있던 곳이며 조선 말기엔 동학농민운동의 현장이었다. 서로 다른 시대 사람들의 흔적이 한 도시 안에 공존하는 흔치 않은 장소다. 권 씨는 한발 더 나아가 실질적인 정보도 귀띔해줬다. 공주에 도시재생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으며 공주는 국가유산청이 지정한 ‘고도지정지구’로, 이곳에서 한옥을 지으면 정부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자신도 수도권 생활을 접고 공주에 내려와 게스트하우스를 연 이주민이었다. 부부는 그로부터 한 달 뒤 반죽동 땅 100평 매매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매입한 땅 위에는 25평 규모의 한옥도 올렸다. 현대식 주방과 화장실을 갖춘 하이브리드 한옥이었다.● 판교 집 한 채가 공주에선 네 채로 처음에 부부는 한옥을 수익 모델로 생각하지 않았다. 3년 반 동안은 직접 그곳에서 살았다. 그러다 옆집 2층 양옥이 매물로 나오자 바로 매입하고 거처를 옮기면서 한옥을 게스트하우스로 전환했다. 첫 손님을 받을 때까지도 큰 기대는 없었다. 2024년 12월 숙박 예약 사이트에 ‘반죽동 그곳’이라는 상호를 올려놓고 제주도로 여행을 떠날 정도였다. 그러다 여행지에서 예약 문의 전화를 받고 부랴부랴 돌아와 첫 손님을 맞았다. 6개월 뒤에는 한옥 앞에 지어둔 한 칸짜리 건물에 카페를 하고 싶다며 월세 계약 요청이 들어왔고 자연스럽게 임대를 줬다. 이런 식으로 부부는 집 두 채에 카페와 소품숍까지, 건물 네 채의 주인이 됐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은 판교 주택 한 채를 판 돈20억 원으로 모두 충당할 수 있었다. 한옥을 지을 땅 100평에 2억 7500만 원, 한옥 건축에 3억 5000만 원으로 총 6억 2500만 원이 들었지만 공주시에서 1억 원의 지원금을 받아 실제 투자금은 5억 2500만 원이었다. 한옥 앞마당 땅은 5500만 원에 사들여 1억 원을 들여 손봤고 이 과정에서도 시 지원금 3000만 원이 나왔다. 여기서 나오는 수입도 부부가 살아가기에 충분하다. 게스트하우스를 통해 얻는 사업소득과 카페·소품숍 임대소득을 합치면 두 사람이 한 달을 나기에 모자람이 없고 연금까지 보태지니 노후 생활이 한층 여유로워졌다. 전 씨는 “서울에 살 때는 집 사느라 빌린 대출금을 갚아야 했고 월급은 통장을 스쳐 지나갈 뿐이어서 꼭 하우스 푸어처럼 살았는데 은퇴 후에 오히려 약간의 저축이 가능해졌다”며 “신기한 일”이라고 했다. 자금 여유가 생기면서 부부 모두 취미 생활을 즐기며 여유 있게 지내고 있다. 신 씨는 요즘 어반 스케치에 푹 빠져 있다. 직접 동아리를 꾸려 홍성·서산·아산·당진은 물론 일본까지 스케치 여행을 다닌다.● 공주의 도움을 받고, 공주에 힘을 보태다 원래 살던 곳을 떠나 연고 없는 낯선 곳에 뿌리를 내리는 일은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귀향했다가 원주민의 텃세에 치여 다시 도시로 돌아왔다는 이야기도 적지 않다. 신 씨는 “어딜 가나 먼저 살던 사람들의 텃세가 없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다행히 공주에 이주민 커뮤니티가 있어 큰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공주의 도시재생 흐름을 읽고 먼저 내려와 정착한 이주민들이 부동산 정보부터 한옥을 잘 짓는 장인 소개까지 발 벗고 나서줬다는 것이다. 부부 역시 이 도시에 보답하고 있다. 전 씨는 영국 대사관 근무 경험을 살려 공주와 영국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한다. 전직 영국 대사가 퇴임할 무렵 그를 게스트하우스로 초청해 공주의 멋을 알렸다. 현직 대사 부부도 이곳에 다녀갔다. 3주간 한국을 여행하던 영국 신혼부부가 마지막 여행지로 공주를 택해 반죽동그곳 게스트하우스를 다시 찾았다는 후기도 있다. 부부는 또 지난해 말 개업 1주년을 맞아 이주민 커뮤니티 구성원 30∼40명을 모아 축하 파티를 열고 가야금 연주자를 초청한 공연도 마련했다. 전 씨는 공주평생교육원에서 성인을 대상으로 영어 그림책 읽기·토론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부부를 공주로 이끈 장본인이자 이주민 커뮤니티의 일원인 권오상 씨는 “공주에서만 살아온 원주민들은 오히려 공주의 매력을 모르는 경우가 많다”며 “원주민과 이주민의 융합이 시너지를 내면서 공주 재생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부부는 친구들에게도 지방살이를 적극 권하지만 실천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다들 동의는 하지만 실행에 옮기기엔 걸림돌이 너무 많다는 식이다. 전 씨는 “나이 들어 사는 곳을 옮긴다는 게 두렵고 지방으로 내려가는 것은 왠지 뒤처지는 듯한 느낌도 주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추측한다. 하지만 조금 내려놓고 지방으로 오면 삶에 여유가 생긴다는 게 부부의 공통된 이야기다. 공주에서의 하루하루가 서울에서보다 훨씬 풍성하다고 확신하는 부부는 내려놓는 것이 잃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많은 것을 얻는 길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필요한 건 거창한 계획이 아니라 우물쭈물하지 않는 결기라고.QR코드를 스캔하면 채널A 유튜브 ‘건강IN으로’에 업로드된 인터뷰 동영상을 볼 수 있습니다.글 사진 공주=김현지 기자 nuk@donga.com}

“기업이 원하는 스펙을 쌓아 취업하던 기존의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 이제는 누군가 일을 주기를 기다리는 대신 스스로 문제를 찾아내고 정의해 일을 직접 만드는 방식으로 사고를 바꿔야 한다. AI 시대에는 연 1~2억 원 수준의 수익으로 지속 가능한 소규모 창업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다.”지난 2일 서울 종로구 혜화동 NC문화재단 스테이지블랙에서 열린 제4회 미래탐험포럼에서 류정혜 국가AI전략위원회 위원은 AI로 인해 취업의 문이 더욱 좁아진 청년 세대의 커리어 전략을 묻는 질문에 “투자 감각, 즉 사업 감각을 모두가 키워야 하는 시대가 도래했다”며 이렇게 답했다.이와 함께 기성세대의 노하우와 지식을 청년 세대에게 전수할 수 있는 구조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강정수 블루닷AI연구센터장은 “50대 기업에 청년고용할당제를 도입해 기업 내부에 쌓인 지식을 청년 세대에게 전달하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성원 (사)미래학회장은 청년 세대에게 작은 실험의 기회를 만들어줬더니 그들이 그 기회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키더라는 개인적 경험을 소개하며 “청년들에게 ‘알아서 하라’고 떠넘길 것이 아니라 작은 기회라도 만들어주는 노력이 먼저”라고 강조했다.미래탐험공동체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변화를 예측하고 기회를 능동적으로 포착하자는 취지로 결성된 전문가 집단이다. 2024년 포항공과대학과 공동으로 ‘불확실성의 시대, 지금 우리는 어떤 미래를 준비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첫 포럼을 열었다.이번 제4회 포럼의 주제는 ‘AI 가속화에 따른 노동시장 재편, 소득 구조의 해체, 새로운 소비 패러다임, 그리고 자본주의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이다. 포럼 진행을 맡은 뇌과학자 장동선 박사는 “2026년은 AI라는 롤러코스터가 정점을 지나 본격적으로 질주하기 시작하는 해”라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온 ‘일→소득→소비→성장’이라는 사회구조의 연결 고리가 어떻게 흔들리고 있는지, 그리고 그 이후의 자본주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를 함께 짚어보는 자리”라고 포럼의 취지를 설명했다.류정혜 위원이 2026년 AI 트렌드와 일의 미래를 조망하며 포문을 열었고, 강정수 센터장과 송길영 작가가 미래 사회의 새로운 밑그림을 제안했다. 박성원 미래학회장은 ‘생존경쟁사회에서 의미경쟁사회로의 전환’을 주제로 사회 패러다임의 변화 방향을 제시했다.류정혜 위원은 기업의 AI 전환이 ‘해고’가 아닌 ‘재설계’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AI를 전면 도입한 후에도 직원 3000명의 고용을 유지하고 있는 일본 IT 회사 DeNA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언급하며 “AI 도입을 경영 효율화에서 멈추지 말고 효율화를 통해 확보한 자원으로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써야 한다”고 말했다. 난바 도모코 DeNA 회장은 지난 3월 ‘DeNA x AI 2026’ 행사에서 “현재 인력의 절반으로 기존 사업을 발전시키고, 나머지 절반은 단일 사업이 아닌 복수의 신규 사업을 동시에 추진하는 방식으로 회사의 새로운 성장을 꾀하겠다”고 밝혔다.강정수 센터장은 “진짜 AI 혁명은 아직 오지 않았고 일자리 예측도 계속 빗나가고 있다. 중요한 건 두려움을 갖는 게 아니라 생존 전략을 끊임없이 갱신하는 태도”라며 “AI를 적극 활용하면서 스스로를 재포지셔닝하는 것만이 지금의 혼란을 헤쳐나가는 방법”이라고 강조했다.송길영 작가는 “AI 시대에는 클수록 도태된다. 대마불사(大馬不死)가 아니라 대마필사(大馬必死)”라는 말로 거대 조직 중심의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역설하며 암기와 기존 방식의 재현이 아닌, 창의성과 고유한 서사를 가진 개인만이 살아남는다고 말했다. 박성원 미래학회장은 지금 청년들이 느끼는 불안을 ‘낡은 사회 서사의 실패’로 진단했다. ‘명함’과 ‘집’으로 능력을 증명하던 생존경쟁의 프레임은 2000년 이전에 이미 유효기간이 끝났다는 것이다. 그가 대안으로 제시한 것은 ‘의미경쟁 사회’로의 전환이다. 생존경쟁이 ‘더 많은 소유와 상승’을 성공으로 정의했다면 의미경쟁은 ‘더 많은 기여’와 ‘자기 서사’를 중심에 놓는다. 불확실성과 가치 충돌 앞에서 흔들리지 않는 복잡성 대응 능력, 그리고 세대 갈등을 조율하는 얼라인먼트 역량이 앞으로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네 발표자의 시각은 달랐지만 결론은 하나로 모였다. 변화는 이미 시작됐고 어떤 미래를 만들어갈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정부가 인공지능(AI)을 잘 활용하는 국민을 발굴하고 AI 활용 아이디어가 실제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전 국민 AI 경진대회’와 ‘모두의 창업’ 프로그램을 연계해 지원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학생부터 어르신까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전 국민 AI 경진대회’를 진행 중이라고 1일 밝혔다. 일상 속 AI 활용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된 이번 대회는 총상금 30억 원을 걸고 200만 명 이상의 참여를 목표로 한다. 대회는 참가자의 역량과 목적에 따라 네 개 부문으로 나뉜다. 일반 국민은 AI 퀴즈대회·AI 오류찾기 등 AI 활용 경험 중심의 활동을 통해 대회에 참여할 수 있고 초중고 학생은 AI 창작대회와 로보틱스 챌린지에 도전할 수 있다. 대학생·연구자는 AI 기술과 서비스를 직접 개발하는 전문 대회에 나설 수 있으며, 어르신과 장애인은 정보검색 등 기초적인 AI 활용 능력을 측정하는 ‘국민 행복 AI 경진대회’에 참여할 수 있다. 경력보유여성이나 ‘쉬었음청년’이 AI 활용 교육을 받은 후 실제 결과물을 제작해 볼 수 있는 ‘리부트 AI 활용대회’도 함께 열린다. 과기부는 11월까지 트랙별 예선과 본선을 열고 12월에 결선과 시상식으로 대회를 마무리할 계획이다. 대회에서 두각을 나타낸 참가자에게는 취·창업의 문도 열린다. 배경훈 부총리는 “우수 아이디어가 실제 창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중소벤처기업부의 ‘모두의 창업’ 프로젝트와 연계해 밀착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모두의 창업’은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도전할 수 있는 중기부 창업 지원 프로그램으로, 대학·액셀러레이터 등 100여 곳의 전담 보육기관과 선배 창업자 멘토단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전 국민 AI 경진대회 참여를 위한 상세 정보는 대회 통합 홈페이지(aichallenge4all.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김현지 기자 nuk@donga.com}

“지금 실리콘밸리는 매우 우울하다. 유능한 시니어 개발자조차 ‘AI가 나를 곧 대체하겠다’고 말할 정도다. 개발직군 뿐 아니라 사무직도 앞으로 몇 주, 길어야 몇 달 안에 AI 네이티브(AI를 내재화해 자연스럽게 활용하는 태도)가 강제되는 시대가 올 것이다. (중략) 지금 에이전트 세 개 이상을 돌리지 않고 있다면 우리의 목숨이 닳고 있다고 생각해야 하는 시대. 오늘 하나라도 더 돌려야겠다는 생각이 절실하게 든다.”지난 18일 AI 커뮤니티를 강타한 한 마케터의 글 ‘Claude Blue - 실리콘밸리 전체가 우울하다’는 폭주하는 AI 앞에 선 사무직 종사자의 날카로운 위기의식을 담고 있다. 브런치 블로그에서 ‘클래미’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인 한원준(34) 씨는 심리학과 경영학을 전공한 뒤 AI 기반 공공조달 입찰 분석 플랫폼 스타트업 ‘클라이원트’에서 마케팅과 기업 성장 전략을 맡고 있다. 그는 실리콘밸리의 우울감이 머지않아 한국에도 상륙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같은 회사의 공동 창업자 금승도(33) 씨는 “AI가 일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따라가기 버겁다”며 “이제 인간이 병목이 된 세상”이라고 말했다. AI 비즈니스의 최전선에서 일하는 두 사람이 직접 경험하는 AI 협업의 현장은 어떤 모습일까.● 실리콘밸리 엔지니어의 실존적 위기한원준 씨는 미국에서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다녀 실리콘밸리에 재직 중인 선후배가 많다. 그는 이들과 꾸준히 교류하며 정보를 교환하는데, 그가 전해듣는 소식에 따르면 현지의 분위기는 불과 몇 달 사이에 극적으로 달라졌다.“올해 2월 초까지만 해도 새 AI 기능이 나올 때마다 ‘와 대박이다’ 하면서 즐기는 분위기였어요. 그런데 2~3월 사이 ‘클로드 오퍼스 4.6’과 ‘GPT 5.4’가 출시된 뒤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나 얼마 안 남았네?’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거죠. 역량을 인정받는 시니어 엔지니어도 예외가 없었어요.”현지에서는 AI 에이전트와 협업하는 근무 환경이 이미 일상이 됐다. 엑셀, 워드 등 생산성 도구가 에이전트와 연동돼 있어 에이전트만으로 업무를 처리해도 불편함이 없을 정도다. 관건은 이제 ‘에이전트를 얼마나 잘 지휘하느냐’로 옮겨 갔다.“사람이 담당하는 핵심은 업무의 처음과 끝이에요. 무엇을 만들 것인지 정하는 것, 그리고 AI가 내놓은 결과물을 보고 어떤 부분을 보완할지 판단하는 거죠. 어느 부분을 에이전트에 맡기고 어느 부분은 반드시 사람이 검토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설계하는 것 자체가 핵심 역량이 됐다고 해요. 에이전트를 돌리면 토큰 비용이 발생하니 사람과 에이전트의 리소스를 최적화하는 능력이 곧 경쟁력이라는 것이죠.”● “내가 병목이구나”금승도 씨는 웹 데이터 수집·분석을 통해 영업 인사이트를 발굴하는 과업을 혼자 진행하고 있다. 예전이라면 프런트엔드·백엔드·디자인 등 10명이 달라붙어야 할 규모다. 하지만 지금은 AI 에이전트에게 정확한 지시를 내리기만 하면 되니 업무를 잘 아는 프로젝트 매니저 1명으로도 충분하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런데 여기서 예상치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AI가 워낙 빠르게 작업물을 내놓다보니 작업물을 검토하는 일이 숨가빠진 것이다. “AI는 밤새 일 할 수 있으니까 퇴근할 때도 AI에게 일을 시켜놓고 가야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아침에 출근해 보면 AI가 만든 보고서가 쌓여 있죠. 밤새 나온 결과물을 아침에 검토하고 다시 다음 작업을 지시하는 패턴을 반복하는데 몸도 마음도 지치더군요.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면 논의하는 틈에 자연스럽게 숨 돌릴 시간이 생기잖아요. 그런데 AI는 한 번에 다 해오니까 쉴 틈이 없는 거예요. 그렇게 지친 몸과 마음이 일주일 휴가를 쓰고 난 후에야 회복이 되더군요. 그때 ‘내가 병목이구나’ 싶었죠.”AI의 실행 속도가 인간의 검토 속도를 추월하는 순간, 사람이 병목이 된다. 한 씨는 실리콘밸리에서는 AI가 생성하는 코드 양이 이미 사람이 리뷰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는 이야기를 자주 듣는다고 전했다. 코드 검토를 건너뛰고 그대로 배포하는 사례가 늘면서 시스템 안정성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AI로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하면서도 이 때문에 잦은 오류가 발생하는 현상 역시 AI 전환 과도기의 민낯이다.● “비개발자도 곧 똑같이 겪는다”한 씨는 이런 현상이 머지않아 사무직 전반으로 번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비개발직군이 아직 이를 실감하지 못하는 이유는 AI 역량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AI를 충분히 쓰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 AI 잘 쓰네’라고 여유롭게 생각하는 사람은 오히려 AI를 덜 쓰고 있는 거라고 봐요. 실리콘밸리의 탑티어 개발자들은 이미 AI를 너무 세게 밀어붙인 나머지 ‘내가 병목이다’는 감각에 도달했고 바로 그 불편함이 진짜 AI 시대를 살고 있다는 신호라는 거죠.”그의 일상도 달라졌다. 예전에는 고객을 만나 기획하고, 직접 글을 써서 SNS에 올렸다. 지금은 고객과의 대화를 녹음해 AI에 넘기고 “정리하고 기획서 만들고 포스팅용 자료 만들어서 올려”라고 지시할 뿐이다. 직접 하는 일은 고객을 대면하는 것 하나로 줄었다.“경쟁자가 AI에 더 많은 일을 시켜 더 많은 결과물을 쏟아낸다면, 저도 결국 AI가 내놓는 방대한 산출물을 미처 다 검토하지 못하는 상황에 맞닥뜨리게 되겠죠.”● “창업만이 답인가”대화는 자연스럽게 커리어의 미래로 이어졌다. 금 씨는 “기업 입장에서는 책임지고 의사결정할 수 있는 사람까지만 필요해질 것”이라며 “AI가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사람이 설 자리를 잃는 건 자명한 수순”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체 불가능한 사람의 조건이 무엇인지, 지금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덧붙였다.한 씨의 전망은 한층 구체적이다. 100명이 일하는 회사가 있다면 세 명이 에이전트를 활용해 같은 결과물을 더 낮은 비용으로 내놓는 회사가 나타날 것이다. 기존 회사는 버티기 힘들어진다. 그렇다고 그 세 명짜리 회사가 안전한 것도 아니다. 에이전트를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면 또 다른 위기에 봉착한다. 살아남는 곳은 결국 소수가 에이전트를 능숙하게 오케스트레이션하는 구조를 갖춘 조직뿐이라는 것이다.그렇다면 개인에게 남은 선택지는 무엇일까. 두 사람의 대답은 같았다. “AI에게 일을 시키고 아무도 나를 고용하지 않는 시대엔 내가 나 자신을 고용하는 것, 결국 창업이 궁극적인 답이 되지 않을까요?”실리콘밸리의 그 시니어 엔지니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고 한 씨는 전했다. 창업을 막연히 동경하기만 했던 그가 지금은 사이드 프로젝트를 순수한 흥미가 아닌 절박함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다. 김현지 기자 nu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