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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족이나 친구 대신 인공지능(AI)에게 속마음을 털어놓는 젊은 층이 늘고 있다고 한다. 경기연구원이 지난해 말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012명 대상 설문에서 응답자의 38%가 ‘AI와 정신건강 상담을 해봤다’고 답했다. 특히 15∼19세(55%), 20∼29세(46%), 월 소득 300만 원 미만(47%) 등 나이가 어리고 소득이 적을수록 AI 상담이 많았다. 낙인 우려와 비용 부담이 적다는 게 이들이 AI에게 공감과 조언을 구하는 이유다. AI 상담은 분명 순작용이 있다. 병원이나 상담 기관을 직접 방문하지 않아도 마음이 힘들 때면 언제 어디서나 조언을 구할 수 있다. 새벽 2시 갑자기 찾아온 우울과 불안을 달래 주는 친구가 돼 준다. 이때 자신이 처한 상황과 기분을 글로 정리하는 것만으로도 증상이 잠시 호전되기도 한다. 일종의 ‘감정 쓰레기통’ 효과다. 정신건강 전문가들도 AI를 잘 활용하면 위험군을 조기에 발굴하고 치료 진입 장벽을 낮추는 효과가 있다고 본다. 문제는 AI가 사람을 대체할 수 있다고 믿을 때 발생한다. 최근 고려대 안암병원과 KAIST 공동연구팀은 대한신경정신의학회 회원 408명의 임상 경험을 분석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 결론은 “생성형 AI가 사용 맥락과 환자의 취약성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위험할 수도 있다. 인간 치료자의 보조 수단으로는 유용하지만 대체재로 받아들이긴 어렵다”였다. 전문가들이 가장 우려하는 건 AI의 대화 메커니즘이다. AI는 사용자의 의견이나 감정에 지나치게 동조하는 ‘아첨 성향’이 있다는 지적을 받는다. 사용자의 기분을 맞춰 주는 데 최적화돼 있어 잘못된 판단이나 감정에 공감하거나 맞장구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공감과 지지는 당장은 위안이 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왜곡된 망상적 신념을 강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 미국 등에선 AI가 평소 정신건강에 문제가 없던 이용자의 망상과 우울증을 악화시켜 자살을 유발했다는 소송도 잇따르고 있다. AI의 ‘가짜 공감’에 익숙해진 사용자들은 고립에 빠지기 쉽다. 가족과 친구 등 일상의 관계가 단절되고 독서, 운동, 명상 등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는 활동도 멀리한다. 진료실에는 AI의 답변과 비교해 의사 처방을 거부하는 환자가 적지 않다고 한다. AI도 이런 윤리적 문제를 인지하고 있을까. 제미나이에게 ‘AI의 가짜 공감이 인간에게 어떤 위험을 초래하느냐’고 물었다. 답변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AI는 구조적으로 ‘가짜 공감’을 양산할 위험이 가장 큰 존재입니다. AI는 공감처럼 보이는 문장 구조를 계산하고 출력할 뿐입니다. 이에 익숙해지면 현실의 복잡한 인간관계를 기피하고 입맛에 맞는 AI 세계로 숨는 ‘정서적 고립’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AI 딸깍 상담’만으로는 마음속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다. AI의 위로는 지친 마음을 잠시 달래 주는 ‘진통제’일 뿐이다. 완치는 진짜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가족과 친구에게 마음을 터놓고, 상담실 문을 여는 순간이 그 시작이다. 누구에게라도 “힘들다” “도와 달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아산사회복지재단(이사장 정몽준)은 28일 서울 종로구 아산정책연구원에서 학계 전문가들을 초청해 ‘인공지능(AI) 시대의 사회복지 혁신’을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한다고 27일 밝혔다. 이번 심포지엄에서는 지난해 아산재단의 학술연구 지원사업에 선정된 연구자 10명 중 연구 결과가 우수한 연구자 3명이 발표자로 나선다. 황광선 가천대 행정학과 교수는 ‘AI 기반 사회복지의 윤리적 쟁점과 한계’를 주제로 AI의 윤리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인간의 책임과 전문적 통제 등 실효성 있는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에 대해 발표한다.김현정 동아대 국제전문대학원 교수는 ‘복지행정의 AI 도입과 정책 성과 : 에스토니아와 영국의 복지 데이터 통합 사례 비교’를 주제로 행정 부처 간 장벽 해소 방안과 한국형 AI 복지 시스템의 모델을 제시한다.오영삼 국립부경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AI는 사회복지를 어디까지 대체할 수 있을까’를 주제로 윤리적 판단과 정서적 교감이 필수적인 인간 고유 영역의 보존과 이를 효과적으로 실현하는 사회복지 실천 모델을 발표한다.발표 후에는 김형용 동국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김수영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진효진 경상국립대 컴퓨터공학부 교수, 오선정 전남대 행정학과 교수가 패널로 참석해 토론을 이어간다. 좌장은 박정수 이화여대 연구·대외부총장(행정학과 교수)이 맡는다.올해로 창립 49주년을 맞는 아산재단은 지난 1979년부터 매년 우리 사회의 중요 사회복지 현안에 관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하고 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국민 1만3774명이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아직 잠정치이지만 정부는 전년(1만4872명) 대비 7%가량 자살 사망자가 줄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보건복지부와 경찰청 등 관련 부처에 따르면 올 2월까지도 감소세가 이어지는 추세라고 한다. 자살이 줄어든 이유에 대한 해석은 다양하다. 우선 자살 사망자가 급증했던 2024년의 기저효과다. 유명인의 자살 후 자살률이 치솟는 ‘베르테르 효과’와 팬데믹 후 정서적 소진이 겹치면서 2024년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9.1명으로 2011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해 이런 위기 요인이 사라지자 다시 2023년(1만3978명) 수준으로 돌아갔을 뿐 안도할 수준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주식 시장 호황과 정부의 빚 부담 완화 정책이 자살률을 낮췄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해부터 정부가 장기 소액 연체자 채무 탕감과 불법 채권 추심을 막는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 40대 등 ‘허리 세대’가 잠시나마 숨 쉴 틈이 생겼다는 것이다. 다만 지난해 모든 자살 지표가 긍정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10대 이하(5.4%)와 80대 이상(0.9%)에선 오히려 자살 사망자가 늘었다. ‘4세·7세 고시’로 대표되는 입시 경쟁, ‘노노(老老)케어’가 흔해진 초고령사회의 그늘이 아동과 노인을 벼랑 끝으로 내몬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달 6일 국무회의에서 높은 자살률을 언급하며 “대한민국 위상을 보건대 이렇게 자살자가 많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 세계적으로 이런 망신도 없다”고 했다. 그러나 현장에선 한국은 자살자가 적다는 게 오히려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수치가 선진국과 현저한 차이를 보이는 자살 예방 예산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자살률 1위라는 오명을 20년 넘게 달고 있는 한국의 자살 예방 예산은 올해 708억 원에 불과하다. 지난해보다 20.6% 늘었지만 일본이 지난해 자살 고위험군 발굴을 위해 학교 상담 강화에 쓴 86억 엔(약 814억 원)보다도 적다. 현장에서 “정책은 있는데 작동이 안 된다”는 탄식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운영하는 자살 예방 상담 전화도 투자가 부족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대표적 사례다. 상담원들은 내담자가 삶의 희망을 놓지 않도록 길게는 몇 시간씩 설득하고, 처한 상황에 따라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안내한다. 그러나 높은 업무 강도와 낮은 급여 탓에 1년도 못 버티고 그만두는 상담원이 많다. 전문성을 높이는 건 엄두도 못 내고 인력이 부족해 전화를 놓치기 일쑤다. 그 전화는 막다른 골목에 몰린 자살 고위험군이 마지막으로 보낸 “살려 달라”는 신호였는지도 모른다. 이 대통령은 최근 ‘국민의 목숨을 살리는 정부’라는 새로운 국정 목표를 제시했다. 모든 정책의 출발점을 국민 생명과 안전에 두겠다는 의미다. 그러나 대통령의 의지만으로 획기적인 자살률 감소를 기대하긴 어렵다. 중앙정부부터 지역사회까지 촘촘한 사회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6·3 지방선거 후 당선자들이 임기 내 자살 사망자를 1만 명 이하로 줄이겠다는 공동 선언을 해주길 기대해 본다.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내년부터 요양병원에도 임종을 앞둔 환자의 신체적, 심리적 고통을 완화해 주는 호스피스가 본격 도입된다. 국민 4명 중 1명이 생을 마감하는 장소인 요양병원에서 ‘존엄하게 죽을 권리’가 보장되도록 호스피스 병상을 확대하려는 것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사진)은 8일 서울 중구 서울스퀘어 회의실에서 본보와 인터뷰를 갖고 “호스피스 인프라가 확충돼야 (생애 말기 환자들이) 마음 놓고 연명의료 중단을 결정할 수 있다”며 “내년부터 요양병원 호스피스 사업을 본격적으로 시행하겠다”고 밝혔다. 2016년 요양병원의 호스피스 시범사업이 도입됐지만 제도적 기반이 부족해 현재 호스피스를 제공하는 요양병원은 전국 5곳, 병상은 56개뿐이다. 이에 따라 복지부는 요양병원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는 ‘간병비 급여화’와 맞물려 내년에 ‘호스피스 수가’(건보가 병원에 주는 돈)를 신설하고, 호스피스 인력 확충을 지원할 방침이다.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현재 ‘임종기’에서 ‘말기’로 앞당기는 방안도 추진된다. 정 장관은 “대다수 국가는 말기 환자도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는데 한국은 임종기로 제한돼 있다”며 “다음 달부터 이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최근 잇따른 ‘산모 뺑뺑이’와 태아 사망 사고와 관련해 정 장관은 “전국에 권역 모자의료센터가 20곳 있지만 의료진을 확보하지 못해 의료 공백이 생긴다”며 “한정된 산과(産科) 및 소아의료 인력을 더 집중시켜 사각지대를 줄여 나가겠다”고 강조했다.“연명의료 중단 임종기→말기 공론화… 까다로운 자택임종 절차 간소화 추진” 정은경 복지부장관 본보 인터뷰“원하는 곳서 호스피스… 국가가 지원”요양병원 간병비 내년 건보 지원… 여기에 호스피스 기능도 추가 계획“많은 국가, 말기부터 연명의료 중단”내달 생명윤리심의委서 본격 논의… 윤리문제 우려 등 반영해 제도 개선“자택 임종을 원하는 환자는 집에서, 의료적 도움이 더 많이 필요한 환자는 요양병원에서 호스피스를 받는 구조가 정착돼야 합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8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존엄한 죽음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커졌지만 연명의료를 중단하기까지 걸림돌이 많다”며 이같이 말했다. 2018년 ‘연명의료 결정제도’ 시행 이후 불필요한 연명의료를 중단한 환자는 현재 50만8400명을 넘었지만, 임종기에 통증 완화와 심리 상담 등 호스피스를 받는 환자는 연간 2만여 명에 불과하다. 이에 따라 정부는 국민이 안심하고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재택의료와 요양병원을 통한 호스피스 지원을 강화할 방침이다. 정 장관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부터 임종기의 연명의료 중단 결정, 이후 호스피스 지원까지 전 단계에서 국가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복지부 업무보고와 올 2월 국무회의에서 연명의료 결정제도 활성화 방안을 주문한 바 있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 대통령이 언급한 ‘연명의료 인센티브’의 핵심은 무엇인가. “환자가 원하는 존엄한 죽음을 실현하기까지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생애 의료비의 상당 부분을 임종 직전에 쓰는데,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가족들의 불필요한 의료비 부담도 줄일 수 있다. 이를 위한 정부 지원을 강화한다는 뜻이다.” ―임종기 환자가 많은 요양병원에서는 정작 호스피스를 받을 수 없다. “전체 사망자 4명 중 1명이 요양병원에서 생을 마감하지만 임종기 서비스를 하는 요양병원은 거의 없다. 내년부터 요양병원 간병비를 건강보험으로 지원하는 사업이 시행되는데, 여기에 호스피스 기능도 추가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요양병원 호스피스를 제도화하려고 한다.” ―모든 요양병원에서 호스피스를 받을 수 있나. “요양병원 입원 환자 중 의료적 도움이 꼭 필요한 환자는 8만∼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 중에서 생애 말기 환자 규모를 추려 요양병원형 호스피스 모델을 만들 계획이다. 임종실과 심리 지원을 위한 상담실 등 호스피스 특화 시설을 갖추도록 하고, 적절한 수가(건강보험이 병원에 주는 돈)도 책정할 방침이다.” ―가정형 호스피스와 자택 임종을 원하는 국민이 많다. “방문진료 등 재택의료 서비스에 임종 지원 기능을 강화할 계획이다. 집에서 가족이 사망하면 사망진단서 발급 등 행정적 절차가 까다로워 자택 임종을 꺼리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부담을 낮추는 방안도 올 하반기(7∼12월)부터 관계 부처와 논의할 예정이다.” ―연명의료 중단 시기를 ‘임종기’에서 ‘말기’로 앞당기는 법안이 국회에 발의돼 있다. “많은 국가에서 연명의료 중단은 말기부터 가능하다. 한국은 임종기로 제한돼 있어 (완화의료를 받는) 시기가 늦다. 다음 달부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에서 연명의료 제도 개선 방향을 본격 논의하는데, 중단 시기를 앞당기는 방안도 공론화할 예정이다. 심의와 공론화 과정에서 윤리적 문제를 우려하는 목소리 등도 반영해 제도 개선을 추진하겠다.”―존엄한 죽음을 위해선 구체적인 사전돌봄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한 사람이 330만 명에 이르지만, 지난해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중단한 경우는 약 22%에 불과하다. 연명의료 중단 이행 단계에서 본인의 의사가 반영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사전의향서 서식을 개편해 연명의료 여부뿐만 아니라 생애 말기에 어떤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받을지까지 구체화해야 한다.” ―최근 잇따른 ‘산모 뺑뺑이’ 대책은…. “저출산과 필수의료 기피 현상으로 인해 필요한 수준의 산과(産科) 및 소아의료 인력을 당장 충원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전국에 있는 권역모자의료센터 20곳을 외상센터처럼 더 큰 권역으로 묶어 의료 자원을 집중시키고, 그 안에서 고위험 분만을 해결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기초연금 개편 등 연금개혁 후속 조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노후의 다층적 소득 보장을 위해 정부와 국회가 함께 고민 중이다. 현재 사학연금, 공무원연금 등 직역연금 수급자는 기초연금 대상에서 제외되는데, 이를 개선하는 방안을 포함해 (대통령이 언급한) 기초연금 ‘하후상박형’ 개편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자살률을 낮추기 위한 대책은…. “자살 고위험군을 조기에 발견해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 전 부처에 취약계층을 담당하는 16개 기관이 있다. 고용노동부(실업), 신용회복위원회(채무) 등 각 기관의 업무 과정에서 자살 위험이 감지되면 정신건강복지센터 등으로 연계되도록 안전망을 강화할 방침이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이호 기자 number2@donga.com}

일본에서 섬이 가장 많은 지역인 나가사키현은 1970년부터 ‘지역의사제’를 도입했다. 이 제도로 입학해 학비와 생활비 등 6년간 약 9000만 원을 지원받은 나가사키대 의대 학생들은 의사 면허 취득 후 9년간 지역 내 의료 취약지에서 근무해야 한다. 9년 중 절반은 의료 접근성이 더 떨어지는 낙도에 배치된다. 의사 부족에 시달렸던 나가사키현이 971개 섬의 의료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었던 이유다. 지역의사제의 성공은 의무 복무 후 얼마나 많은 의사가 지역에 남느냐에 달려 있다. 의무 복무만 마치고 지역을 떠나면 제도 도입 취지가 무색해지기 때문이다. 지역의료에 애착을 갖는 의사를 길러내기 위해 나가사키대 의대생은 전원이 5학년 때 일주일간 낙도 실습을 하고, 6학년은 한 달간 섬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한다. 지역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다양한 환자 경험을 쌓기 위해서다. 국토가 넓어 의료 취약지가 많은 호주도 촘촘한 지역의사 양성 체계를 갖췄다. 호주 의대는 지역의사를 키우기 위해 전체 정원의 25%를 농촌 출신 학생으로 선발한다. 각 소도시의 거점 병원을 중심으로 의대생이 1년 이상 농촌에서 임상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지역 임상 학교’가 핵심 역할을 한다. 특히 전체 임상 실습의 50% 이상을 시골에서 이수해야 한다. 수련 시스템도 의료 취약지 의사를 키우는 데 최적화돼 있다. 호주 지방·오지의학회는 일반적인 가정의학과 의사보다 진료 범위가 넓은, 시골에 특화된 전문의를 양성한다. 4년간 내·외과, 응급의학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 과목을 수련하고, 1년을 그중 한 분야에서 집중 수련하는 시스템이다. 의사 한 사람이 다양한 질환을 다룰 수 있는 ‘만능 주치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올해 입시에서 490명을 지역의사제로 선발하는 한국은 어떨까. 신입생 입학까지 열 달밖에 남지 않았지만 현장은 ‘무엇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지 모르겠다’는 걱정이 가득하다. 경북의 한 의대 교수는 “일반 전형 학생처럼 가르치려니 지역의사제 취지가 무색해지고, 별도 커리큘럼을 만들자니 인력과 인프라 여력이 없다”고 토로했다. 2년간의 의정 갈등을 거쳐 의대 증원에 성공한 정부도 지역의사제로 선발한 학생들을 어떻게 교육하고 수련할지에 관해선 구체적인 밑그림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주무 부처가 어디인지도 불확실하다. 일각에선 “보건복지부는 ‘의대 교육은 교육부 주무’라고 주장하고, 교육부는 지역의사제는 복지부 소관이라 관심이 없다”는 말까지 들린다. 이대로라면 지역의사제의 미래는 뻔하다. 의무 복무 뒤 일부는 지역에 남겠지만 대다수는 정주 여건이 좋은 수도권이나 대도시로 떠날 가능성이 높다. 대만의 ‘공비(公費) 의사’가 그런 사례다. 지역의사 양성을 위한 별도의 교육과 수련 과정이 없다 보니 공비 장학생이 의무 복무 후 취약지에 남는 비율은 16%에 불과하다. 당장 지역의사제로 뽑힌 학생을 위한 지역별 교육·수련 시스템부터 갖춰야 한다. 지역의사제 전담 교원을 확보하고, 학생들이 임상 실습을 하고 수련받을 의료기관도 촘촘히 연계해야 한다. 지역의사는 개인의 사명감만으론 결코 길러낼 수 없다.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한국중증질환연합회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환자기본법’과 관련해 “의료 시스템의 패러다임이 ‘공급자 중심’에서 ‘환자와 의료 이용자 중심’으로 전환되는 역사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환자기본법은 환자단체에 법적 지위를 부여하고, 5년 주기로 국가 차원의 환자 정책 기본계획을 수립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기본계획은 환자 관련 정책을 심의해 의결할 환자정책위원회를 거쳐야 한다. 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에서 “환자기본법은 생사의 기로에서 사투를 벌이는 중증 질환자들에게 국가가 환자의 삶을 보호하겠다는 강력한 약속과 같다”며 “환자 권리가 보호받고 의료진이 존중받는 안전한 의료 환경을 마련하는 초석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환자기본법은 환자가 자신의 질병 상태와 치료 과정에 대해 충분히 서명 듣고 의사 결정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를 법적으로 보장하고 있다”며 “환자는 더 이상 수동적인 치료 대상이 아니라 건강 회복을 위한 능동적인 파트너로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환자단체 등록 요건에 대한 보완과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연합회는 “법안에 명시된 ‘시설과 인력’, ‘상시 구성원 100인 이상’ 등의 환자단체 등록 요건은 자금과 인력이 부족한 희귀·난치질환 환자 단체들의 손발을 묶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이들이 제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적극 육성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독일은 건강보험기금이 환자 자조 집단 등을 위해 매년 일정 금액 이상을 재정 지원하도록 법으로 강조하고 있다”며 “법안 통과가 끝이 아니라 실효성 있는 시행령 마련과 예산 확보를 통해 환자들이 피부로 느낄 수 있는 변화가 나타나야 한다”고 밝혔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열흘 새 전북 임실과 군산, 울산 등 세 곳에서 일가족 사망 사건이 잇따랐다. 지난해 기준 정부 사회보장사업은 1323개나 되지만, 어느 것도 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지원 대상을 가려내는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 위기 가구로 발굴되지 않았거나, 위기 징후가 포착됐지만 지속해서 개입할 수 없는 제도적 한계 때문이었다. 복잡하고 성긴 복지 안전망이 초래한 비극이다. 2014년 ‘송파 세 모녀’ 사건 후 정부는 위기 가구를 선제적으로 찾아내는 데 주력해 왔다. 단전, 단수, 건강보험료 체납 등 47가지 위기 징후를 분석해 각 지방자치단체가 상담하고 도움받을 수 있는 복지 서비스를 안내한다. 그러나 모든 위기 가구를 발굴하기엔 역부족이다. 군산에서 숨진 모자는 공과금이 두 달째 밀렸는데 모니터링 기준인 3개월에 못 미쳐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했다. 설령 정부가 위기 가구로 발굴했더라도 대다수 복지 서비스는 본인이 신청해야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이 같은 ‘복지 신청주의’는 여러 곳에 사각지대를 만든다. 정보가 취약한 고령자나 고립 청년, 정신 장애인 등은 신청조차 못 하고 혜택에서 배제되기 쉽다. 서류 준비 등 복잡한 절차와 자신을 복지 대상으로 드러내야 하는 자괴감 등을 이유로 신청을 꺼리기도 한다. 신청주의의 한계를 메우기 위해 공무원이 사회보장급여를 ‘직권 신청’할 수 있도록 했지만 현장에서는 여전히 제약이 많다. 자녀 넷과 함께 목숨을 끊은 울산 사건의 아버지가 그런 사례다. 공무원이 기초생활수급 신청을 안내했지만 당사자는 응하지 않았다. 직권 신청을 하려 해도 당사자의 금융정보 제공 동의가 없으면 불가능하다. 지난해 생계급여를 새로 받은 17만1370가구 중 직권 신청이 0.1%(198건)에 그친 이유다. 정부는 당사자의 자활 의지 부족이나 제도적 한계 탓에 생계급여를 못 받는 ‘비수급 빈곤층’이 3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한다. 복지 신청주의 극복은 인식 전환에서 시작된다. 복지는 국가의 ‘시혜’가 아닌 국민의 ‘권리’라는 인식이다. 복지 제도를 일찍 정착시킨 국가들은 선제적 복지로 사회 안전망을 촘촘히 했다. 영국은 고용주로부터 근로소득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받아 통합 복지수당 급여액을 즉시 재산정한다. 벨기에는 연금, 건강보험 등을 담당하는 기관 간 데이터 교환의 장벽을 없애고 수급권을 자동으로 부여하는 ‘사회보장 교차은행’ 시스템을 갖췄다. 국민이 위기에 처하기 전에 국가가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8월 간담회에서 “복지 신청주의는 잔인한 제도”라며 자격이 있으면 자동으로 혜택을 받도록 제도를 개선하라고 지시했다. 이후 보건복지부는 인공지능(AI)을 활용한 위기 가구 발굴 등 지원을 강화하겠다고 밝혔지만, 사각지대를 얼마나 줄였는지는 의문이다. 복지 신청주의 개선이 곧 사회 안전망의 완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소득이나 부양의무자 기준, 근로 능력 평가 등 까다로운 조건 탓에 지원에서 배제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복지 대상을 넓히면 당장은 재정에 부담이 되겠지만, 문턱을 낮춘 ‘다가가는 복지’는 더 큰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지난해 일본을 방문해 치매 노인을 위한 소규모 공동주택인 ‘그룹홈’을 취재했다. 일반적인 대규모 요양시설과 달리 층마다 5∼9명씩 소규모로 맞춤형 돌봄을 하는 것이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이다. 3개 층에 총 27명이 거주 중인데, 이들을 돌보는 요양보호사는 25명이나 됐다. 야간에도 돌봄 인력 1명당 환자 수를 3명 이내로 유지하기 위해서다. 치매 환자라고 해서 늘 시설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침 식사를 마치면 두세 명씩 직원과 짝을 이뤄 산책을 나간다. 근처 유치원 아이들이 정기적으로 방문해 함께 그림도 그리고, 핼러윈이나 명절에는 같이 파티도 연다. 담당자에게 시설의 문턱을 어떻게 낮췄는지 묻자 “인지증(치매) 노인이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교류하며, 지역사회 일원으로 생의 마지막을 보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답이 돌아왔다. 상당수 치매 노인이 집이나 시설에 고립돼 쓸쓸히 여생을 마치는 한국의 현실이 떠올라 씁쓸했다. 일본도 처음부터 치매에 관대한 사회는 아니었다. 오랜 수발에 지친 자녀의 간병 살인이 잇따랐고, 학대당하거나 홀로 방치되는 치매 노인이 많았다. 급속한 고령화로 2040년 치매 환자가 노인 인구의 절반인 약 18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자 일본 정부는 1980년대 후반부터 치매 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2004년엔 ‘어리석다’는 의미의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꿨다. 이런 노력들이 일본을 ‘치매와의 공존’에 성공한 사회로 만들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일본 전역에 8000곳 이상 운영 중인 ‘치매 카페’다. 한 달에 한 번 치매 노인들이 점원으로 일하며 주문을 받고 손님과 어울리는 곳이다. 평소에도 치매 가족들이 교류하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지방정부와 지역 기업도 이를 적극 후원한다. 정부와 기업, 치매 가족의 노력이 모여 ‘치매 환자는 격리 대상이 아니라 공존하는 이웃’이라는 인식이 확산됐다. 치매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른 한국은 어떨까. 2017년 정부는 ‘치매 국가책임제’를 내세우며 치매 환자의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치매 전담 시설을 확충하겠다고 밝혔다. 일부 중증 치매 환자의 경제적 부담을 낮추는 효과는 있었지만, 거의 10년이 지나도록 치매 가족의 돌봄 부담이 크게 줄었거나 치매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뤘다고 느끼는 국민은 많지 않다. 최근 발표된 제5차 치매관리 종합계획(2026∼2031년)도 마찬가지다. 치매 환자의 자산을 정부가 관리해 주는 ‘치매머니 공공신탁’ 도입을 제외하면 눈에 띄는 정책이 보이지 않는다. 73개 세부 과제를 담았지만, 대부분은 치매 안심병원이나 주치의제 등 기존 사업을 확대하는 수준이다. 민간 복지 자원을 활용하는 고민도 부족하다. 가장 시급한 건 치매 환자의 절반 이상(52.6%)을 차지하는 홀몸노인과 돌봄 인프라가 취약한 농어촌 치매 환자에 대한 지원이다. ‘국가책임제’라는 거창한 구호보다는, 지역 사정을 잘 아는 지방정부에 ‘맞춤형 치매 및 노인 정책’을 설계할 권한을 주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부처 간 칸막이 탓에 분절적으로 쓰이는 재원만 잘 활용해도 일본과 유럽 부럽지 않은 치매 친화 마을을 여럿 만들 수 있다.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서울 면적의 1.35배인 경북 영양군엔 전문의가 단 한 명뿐이다. 20년째 영양병원 진료실을 지키고 있는 이상현 영양병원장이다. 영양군에는 의료기관(치과, 한의원 제외)이 이 병원을 포함해 의원 한 곳과 보건소 등 세 곳이 전부다. 의사 만나기가 어렵다 보니 20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영양병원 대기실은 늘 만원이다. 팔순을 앞둔 방사선사가 은퇴를 미룬 덕분에 그나마 엑스레이를 찍을 수 있고, 교대로 응급실 당직을 서는 공중보건의사(공보의) 2명이 있어 24시간 병원 불이 꺼지지 않는다. 최근 전북 장수군에서 만난 박승민내과 원장도 20년째 묵묵히 지역의료를 지켜 온 시골 의사다. 그는 집이 있는 전주에서 왕복 3시간을 달려 주 6일 출퇴근한다. 평일엔 평균 70∼80명가량 환자를 보는데, 최근 장수군 인구가 2만 명대 붕괴를 앞두고 있어 언제까지 병원을 운영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했다. 의사 상당수가 서울 등 수도권 근무를 희망하는데 두 사람은 왜 시골 의사가 되기로 결심한 걸까. 의사로서 거창한 직업윤리나 사명감을 기대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저도 그렇고 시골 의사 절반은 공보의 때 주민들과 쌓은 좋은 기억 때문에 남는 거죠.”(박 원장) “서울에서 수련 마치고 공보의로 이 병원에 왔다가 눌러앉았어요. 고향도 근처 포항이고요.”(이 병원장) 정부는 지방을 떠나는 의사를 붙잡으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르면 다음 달 초 결정하는 내년도 의대 증원 인원 전체를 ‘지방 10년 의무 복무’를 조건으로 한 지역의사제로 선발할 방침이다. 2030년 설립 목표인 의학전문대학원 형태의 공공의료사관학교(가칭)와 신설 지역의대도 지역·필수의료 분야 의사 확보가 목표다. 그러나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가 의료취약지 문제의 근본 해결책이 아니라는 건 의료계도, 정부도 아는 사실이다. 의사가 스스로 지방에 남게 할 유인이 부족하니 정부 지원을 조건으로 지역·필수 의사를 선발하는 고육책을 쓰는 셈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지난해 말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지역의사니 공공의사니 해서 의사를 보충해도 시간이 지나면 도로 사라질 것”이라며 “문제가 생긴 원인을 제거해야 한다”고 했을 정도다. 어쩌면 두 시골 의사가 지역에 남은 이유가 지역의료를 살리는 힌트가 될 수 있다. 의대 교육과 수련 과정에 지역의료 경험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본은 레지던트뿐 아니라 전임의(펠로), 의대 교수들도 지역 병의원 파견을 당연하게 여긴다. 현재 의대 교육과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수련은 철저히 3차 대형병원, 수도권, 지방 대도시 중심이다. 의료의 반쪽만 경험한 채 의사 면허를 따고, 전문의를 취득하는 셈이다. 진짜 의사가 아닌 ‘의료 기술자’를 길러내고 있다는 자조 섞인 목소리가 의료계 내에서도 나오는 이유다. 레지던트 수련 기간 4년(내·외과 등 일부 진료과는 3년) 중 6개월 만이라도 지방 의료취약지 경험을 쌓도록 수련체계를 바꾸는 건 어떨까. 현역 입대 증가로 인해 갈수로 줄어드는 공보의 자원을 대체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다. 한 해 3000여 명의 전공의가 반 년만이라도 풀뿌리 지역의료를 경험한다면 이 중 일부는 향후 지역과 공공의료에 헌신하는 의사로 성장할지도 모른다.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

박중신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교수(63·사진)가 제26대 대한의학회장으로 선출됐다. 대한의학회는 최근 열린 정기 평의원회에서 박 교수를 차기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26일 밝혔다. 대한의학회는 1966년 분과학회협의회로 출범한 뒤 현재 197개 학회를 회원으로 둔 국내 최대 규모의 의학 학술단체다. 박 차기 회장은 고위험 산과 및 여성의학 분야를 중심으로 진료와 연구를 수행해 온 산부인과 전문의다. 대한의학교육학회장,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 대한산부인과초음파학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아시아오세아니아 산부인과학회 부회장, 대한의학회 부회장을 맡고 있다. 박 차기 회장은 “각 전문 학회와 기초의학 학회가 축적해 온 학문적 성과를 하나로 모아 대한의학회의 학술적 위상과 공신력을 한 단계 높이겠다”며 “임상·연구·교육을 아우르는 학술 플랫폼으로서 대한의학회의 역할을 강화하고, 학회 간 소통과 연대를 통해 의학계 전체의 목소리를 균형 있게 담아내겠다”고 선출 소감을 밝혔다. 임기는 2027년 1월부터 2029년 12월까지 3년이다.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12월 전북 장수군의 장수보건의료원 앞. 거동이 힘든 남편을 부축한 조모 씨(79)가 서둘러 병원을 나서고 있었다. 남편은 최근 서울에서 허리 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건강이 급속히 악화됐다. 전날부터 심한 복통을 호소했는데, 의료원에서 입원이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고 전주의 종합병원으로 가는 길이었다. 조 씨는 “동네 사람들 다 병을 달고 사는데, 장수에서는 간단한 약 처방만 받고 한 시간 넘게 걸려 전주까지 간다”고 했다. 의사와 병원이 부족한 지방에서는 이처럼 ‘원정 진료’를 다니는 일이 다반사다. 12일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전국 군(郡) 지역 81곳 중 39곳(48.1%)은 인근 대도시나 수도권으로 원정 진료를 떠나는 비율이 50%가 넘는 것으로 집계됐다. 경북 영양군, 경남 산청군 등과 같이 지역 내에서 진료비를 20%도 쓰지 않는 곳이 14개나 됐다. 이는 2024년 시군구별 주민의 입원·외래 내원 일수와 진료비를 의료기관 소재지별로 분석한 결과다. ● 경북 영양 주민 진료비 15%만 지역에서 써장수군 인구는 지난해 말 2만922명으로 전국 229개 시군구 중 세 번째로 적다. 이 중 40.8%(8529명)가 65세 이상이다. 당뇨와 근골격계 질환 등 만성질환을 달고 사는 주민이 상당수지만 의사는 턱없이 부족하다. 당장 올해부터는 의료원 응급실도 문을 닫을 위기다. 현재 응급의학과를 전공하지 않은 공중보건의사 4명이 응급실에서 근무 중인데, 다음 달이면 2명이 전역해 야간 당직 근무가 어려워진다. 노승무 장수군보건의료원장은 “지난해 전공의(인턴, 레지던트)와 의대생들이 대거 현역으로 입대하면서 공보의 신규 충원이 어려워졌다”고 했다. 군청이 있는 장수읍을 벗어나면 주민들의 의료 이용은 더 막막하다. 취재팀이 각 면에 있는 보건지소 3곳을 둘러봤지만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은 한 곳도 없었다. 공보의가 요일을 정해 순회 진료를 하거나 방문 진료를 위해 자리를 비우기 때문이다. 계북면 주민 손정숙 씨는 “보건지소는 의사가 없는 날이 대부분”이라며 “가족들은 차로 30분 거리의 진안군의료원에 간다”고 말했다. 인구 소멸 지역의 상황은 대체로 비슷하다. 공보의를 제외하고 민간 의사가 2명뿐인 영양군에서는 주민들이 진료비의 46%를 안동 등 경북에서, 18%를 대구에서, 21%를 서울 등 다른 지역에서 썼다. 강원 양양, 고성군 등에서도 주민들이 진료비의 약 85%를 다른 지역에서 사용했다. 강원에서는 11개 군 중 8곳이 원정 진료를 떠나는 비율이 50%를 넘었고 전북은 8곳 중 5곳, 경북도 12곳 중 7곳이 의료 이용의 절반 이상을 다른 지역에 의존했다. ● “의대생-전공의 지역의료 경험 늘려야” 정부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의대 증원과 함께 지역의사제, 공공의대 도입 등을 추진하고 있다. 10∼15년가량 특정 지역에 의무 근무하는 의사를 양성해 지방의 의사 구인난을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지역의사제 등이 의사 부족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오주환 서울대 의대 의학과 교수는 “현재 설계 중인 지역의사제로는 취약지 근무를 강제할 수 없다”며 “몇 개 군 단위로 ‘의료 행정구역’을 만들어 해당 지역에 근무할 의사를 확보해야 한다”고 했다. 지역 의료 현장을 지키는 의사들은 “인구 2만∼3만 명인 인구 소멸 지역에선 상주 의사를 무리해서 늘리기보다는 권역 내 자원을 활용해 의료 공백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조백환 진안군의료원장은 “일본은 도쿄와 오사카 등 대도시 소재 대학병원 의사들이 수천 명씩 권역 내 의료 취약 지역으로 파견을 가거나 순회 진료를 한다”고 했다. 의대생과 전공의가 지역 의료에 관심을 갖도록 취약지 진료 경험을 늘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상현 영양병원장은 “만성질환 관리를 위해선 수련을 끝내지 않은 일반의만 있어도 된다. 대구의 큰 대학병원에서 전공의 일부만 경북 취약 지역으로 파견을 보내면 지역에선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장수=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이르면 이달 중 결정될 의대 증원 규모를 두고 최소 400∼500명부터 1000명 안팎까지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40년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 의사는 5704∼1만1136명으로 의사 근무 일수와 국민 의료 이용량 등의 변수에 따라 2배나 차이가 나서다. 추계 방식과 결과를 두고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어 실제 증원까지는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 31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는 이번 추계 결과를 토대로 늦어도 다음 달 설 연휴 전까지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할 방침이다. 증원된 인원을 의대별로 배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지난해는 4월 중순 의대별 모집 인원이 확정됐다. 의료계에선 지난 정부의 ‘2000명 증원’보다는 증원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부족 의사 규모를 결론 낸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회의에서도 “2040년 1만 명 이상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추계 모델에 동의한 위원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한 추계위원은 “보정심에서도 중간값을 기준으로 증원 규모를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정심에서 논의할 의사 부족 규모는 추계위의 발표보다 범위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의사 공급이 기존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는 일부 위원의 추계 모형을 추가 반영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부족한 의사 인력의 최저치는 1000명가량 더 낮아질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의사제 도입과 공공의대 설립도 의대 증원 규모를 정하는 데 변수로 꼽힌다. 의료계 일각에선 정부가 당장 정원을 급격히 늘리기보다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를 통해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공공의대 정원을 기존 정원과는 별도의 정원으로 둘 수 있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규모는 의료계 반발을 고려해 500명 안팎으로 낮추되, 공공의대 신설을 통해 실질적인 증원 효과를 낸다는 의미다. 정부는 2027년 지역의사제 도입, 2029년 공공의대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추계 결과를 두고 각계의 견해차가 커 의대 정원 확정까지는 진통이 예상된다. 보정심도 의료계 대표와 수요자 대표, 정부위원 등이 거의 동수로 참여하고 있어 입장차를 좁히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31일 성명에서 “의사 노동량과 생산성에 대한 정확한 조사 없이 시간에 쫓겨 추계 결과를 발표했다”며 “의대 교육 여건을 고려해 증원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2040년까지 1만 명 넘는 의사를 추가 확보하려면 향후 6, 7년간 연 1000명 이상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이르면 내년 1월 중 결정될 의대 증원 규모를 두고 최소 400~500명부터 1000명 안팎까지 다양한 관측이 나오고 있다. 2040년 부족할 것으로 추산된 의사는 5704~1만1136명으로 의사 근무 일수와 국민 의료 이용량 등 변수에 따라 2배나 차이가 나서다. 추계 방식과 결과를 두고 의료계가 반발하고 있어 실제 증원까지 적잖은 난관이 예상된다.31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은 이번 추계 결과를 토대로 늦어도 설 연휴 전까지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할 방침이다. 증원된 인원을 의대별로 배정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올해는 4월 중순 의대별 모집 인원이 확정됐다. 의료계에선 지난 정부의 ‘2000명 증원’보다는 증원 규모가 크게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전날 부족 의사 규모를 결론 낸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 회의에서도 “2040년 1만 명 이상 의사가 부족하다”는 추계 모델에 동의한 위원은 많지 않았다고 한다. 한 추계위원은 “보정심에서도 중간값을 기준으로 증원 규모를 논의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보정심에서 논의할 의사 부족 규모는 추계위의 발표보다 범위가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복지부는 의사 공급이 기존보다 더 늘어날 것이라는일부 위원의 추계 모형을 추가 반영하기로 했다. 이럴 경우 부족한 의사 인력의 최저치는 1000명가량 더 낮아질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의사제 도입과 공공의대 설립도 의대 증원 규모를 정하는 데 변수로 꼽힌다. 의료계 일각에선 정부가 당장 정원을 급격히 늘리기보다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를 통해 의사 수를 늘리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정은경 복지부 장관도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공공의대 정원을 기존 정원과 별도 정원으로 둘 수 있다”고 밝혔다. 의대 증원 규모는 의료계 반발을 고려해 500명 안팎으로 낮추되, 공공의대 신설을 통해 실질적인 증원 효과를 낸다는 의미다. 정부는 2027년 지역의사제 도입, 2029년 공공의대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추계 결과를 두고 각계의 견해차가 커 의대 정원 확정까지 진통이 예상된다. 보정심도 의료계 대표와 수요자 대표, 정부위원 등이 거의 동수로 참여하고 있어 입장차를 좁히기 쉽지 않다는 전망이 나온다. 대한의사협회는 31일 성명에서 “의사 노동량과 생산성에 대한 정확한 조사 없이 시간에 쫓겨 추계결과를 발표했다”며 “의대 교육 여건을 고려해 증원 규모를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형선 연세대 보건행정학부 교수는 “2040년까지 1만 명 넘는 의사를 추가 확보하려면 향후 6, 7년간 연 1000명 이상의 증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의대 정원 조정을 위해 미래에 필요한 의사 수를 논의해 온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2040년 최대 1만1000여 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는 이르면 새해 초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할 방침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였다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던 의대 증원이 다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기존 의대 정원의 10∼20% 규모의 증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2040년 의사 5704∼1만1136명 부족”추계위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기초 모형을 기준으로 추산한 결과 2040년 의사 인력 부족 규모가 5704∼1만1136명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2040년 활동 의사 수를 13만8137∼13만8984명으로, 국민의 의료 이용량을 반영한 필요 의사 수를 14만4688∼14만9273명으로 추산해서 도출한 결과다. 지난 정부에서 과학적 추계를 생략한 채 의대 증원을 밀어붙였다는 지적에 따라 8월 각계 추천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 심의기구로 출범한 추계위는 12차례 회의 끝에 이 같은 결과를 내놨다. 이날 추계위가 밝힌 의사 부족 규모는 지난 회의에서 제시된 최소 1만4435명∼최대 1만8739명보다 크게 줄어든 규모다. 인공지능(AI)과 의료기술 발달이 의사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추계위는 AI 도입과 근로시간 단축 등 미래 의료환경 변화를 반영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는 의료 정책이 효과를 낼 경우 필요한 최대 의사 수가 앞선 추계치보다 2000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의대 졸업 후 실제 진료 현장에 남는 임상의사 수도 기존 추계보다 많이 반영했다. ● 내년 초 의대 정원 결정… “급격한 증원 없을 것”의사 수 추계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2027학년도 의대 증원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추계 결과를 토대로 내년 1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어 2027학년도 정원을 확정할 계획이다. 장기간 3058명을 유지해온 의대 입학정원은 2025학년도에 한시적으로 4567명으로 늘었다가 현재 신입생을 모집 중인 2026학년도에 원래대로 다시 돌아갔다. 의정 갈등을 해소하고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의대생 복귀를 위해 정부가 물러난 결과다. 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을 몇 년에 걸쳐, 얼마나 늘릴지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 영역으로 지적된다. 다만 지난 정부처럼 연간 1000명 이상의 급격한 증원을 추진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복지부 관계자는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메우려면 많은 의사가 필요하지만 의료환경 변화나 정책을 통해 의료 이용을 적정 규모로 조절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의사 수 추계 결과 발표에 의료계는 “최악은 피했다”며 안도하는 분위기다. 다만 내년 초 의대 증원 결정 전까지는 증원 규모를 최소화하도록 대정부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의료계는 기존 정원의 10∼20% 수준인 500명 이하를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반면 환자단체들은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는 앞으로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 증원 규모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의대 정원 조정을 위해 미래에 필요한 의사 수를 논의해 온 ‘의사인력 수급추계위원회’(추계위)가 2040년 최대 1만1000여 명의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과를 바탕으로 정부는 이르면 새해 초 2027학년도 의대 정원을 확정할 방침이다. 윤석열 정부에서 주먹구구식으로 밀어붙였다가 사실상 원점으로 돌아갔던 의대 증원이 다시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최소한 기존 의대 정원(3058명)의 10~20% 규모의 증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 “2040년 의사 5704~1만1136명 부족”추계위는 3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열고 “기초 모형을 기준으로 추산한 결과 2040년 의사 인력 부족 규모가 5704~1만1136명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2040년 활동 의사 수를 13만8137~13만8984명으로, 국민의 의료 이용량을 반영한 필요 의사 수를 14만4688~14만9273명으로 추산해서 도출한 결과다. 지난 정부에서 과학적 추계를 생략한 채 의대 증원을 밀어붙였다는 지적에 따라 8월 각계 추천 인사들로 구성된 독립 심의기구로 출범한 추계위는 12차례 회의 끝에 이 같은 결과를 내놨다.이날 추계위가 밝힌 의사 부족 규모는 지난 회의에서 제시된 최소 1만4435명~최대 1만8739명보다 크게 줄어든 규모다. 인공지능(AI)과 의료기술 발달이 의사의 생산성을 높일 것이라는 의료계의 주장이 받아들여진 것으로 보인다.실제 추계위는 AI 도입과 근로시간 단축 등 미래 의료환경 변화를 반영하고 불필요한 의료 이용을 줄이는 의료 정책이 효과를 낼 경우 필요한 최대 의사 수가 앞선 추계치보다 2000명가량 줄어들 것으로 내다봤다. 의대 졸업 후 실제 진료 현장에 남는 임상의사 수도 기존 추계보다 많이 반영했다.● 내년 초 의대 정원 결정… “급격한 증원 없을 것”의사 수 추계 결과가 발표됨에 따라 2027학년도 의대 증원 논의에도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보건복지부는 추계 결과를 토대로 내년 1월 보건의료정책심의위원회(보정심)를 열어 2027학년도 정원을 확정할 계획이다.장기간 3058명을 유지해온 의대 입학정원은 2025학년도에 한시적으로 4567명으로 늘었다가 현재 신입생을 모집 중인 2026학년도에 원래대로 다시 돌아갔다. 의정 갈등을 해소하고 전공의(인턴, 레지던트), 의대생 복귀를 위해 정부가 물러난 결과다.추계 결과를 바탕으로 의대 정원을 몇 년에 걸쳐, 얼마나 늘릴지는 정부의 정책적 판단 영역이다. 다만 지난 정부처럼 연간 1000명 이상의 급격한 증원을 추진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복지부는 “지역·필수의료 공백을 메우려면 많은 의사가 필요하지만 의료환경 변화나 정책을 통해 의료 이용을 적정 규모로 조절하는 방안도 함께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의사 수 추계 결과 발표에 의료계는 “최악은 피했다”면서도 “2040년 최대 1만 명 이상 의사가 부족하다는 결과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반발했다. 대한의사협회는 의대 증원 결정 전까지 증원 규모를 최소화하도록 대정부 투쟁을 이어갈 계획이다. 의료계에선 기존 정원의 10~20% 수준인 500명 이하를 증원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환자단체는 “지역과 필수의료 분야는 앞으로 더 많은 의사가 필요하다. 증원 규모를 최대한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성주 한국중증질환연합회 대표는 “추계 결과에 의료계의 목소리가 과도하게 반영됐다. 논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비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올해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이 사상 처음으로 20%대를 기록할 것이 확실시된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내년부터는 국민연금 보험료(내는 돈)가 단계적으로 인상돼 1470조 원을 돌파한 기금 규모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연금 재정의 고갈을 막기 위해 국내외 주식을 중심으로 더 적극적인 기금 운용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국내 주식 수익률 78%… 정부 “투자 확대” 추진 보건복지부는 29일 올해 국민연금의 연간 투자 수익률이 20%대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종전 최고치였던 지난해 수익률 1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20%대 수익률을 올리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 올 들어 코스피가 4,200을 돌파하는 등 국내외 증시가 동반 급등한 영향이다. 자산별 수익률을 보면 국내 주식이 78%로 가장 높았고 해외 주식(25%), 대체투자(8%), 해외 채권(7%), 국내 채권(1%) 등의 순이었다. 자산별 현재 가치 등을 반영한 최종 수익률은 내년 2월 확정된다. 이 같은 수익률 덕분에 전체 기금 규모는 지난해 말 1213조 원에서 올 12월 잠정치 기준 1473조 원으로 늘었다. 1년 새 260조 원(21.4%) 급증한 것으로, 지난해 연금 급여로 지급한 44조 원의 5.9배에 달한다. 수익률이 높아진 만큼 연금 기금의 고갈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장기 수익률이 1%포인트만 올라도 연금 고갈 시점은 당초 2064년에서 2071년으로 7년 늦춰진다. 복지부는 “자산 배분 체계를 개선하고, 전문 운용 인력을 추가 확보해 수익률을 꾸준히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일 방침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14.9%인데, 주가 급등으로 실제 투자 비중은 9월 기준 15.6%에 이른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국민 노후 안정을 위해선 덩치가 커진 국민연금을 더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자산 배분 등을 정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적 의사 결정에 정치적 입김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 월 소득 509만 원 미만이면 연금 감액 없어 올 4월 국민연금법 개정에 따라 내년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5%로 올해보다 0.5%포인트 인상된다. 보험료율은 매년 0.5%씩 올라 2033년에는 13%까지 단계적으로 조정된다. 월평균 소득이 309만 원(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인 사업장 가입자는 내년 보험료가 월 7700원, 지역가입자는 1만5400원 오를 예정이다. 저소득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완화된다. 현재는 실업과 휴직 등으로 보험료를 못 내다가 납부를 재개한 지역 가입자에게만 보험료의 50%를 1년간 지원한다. 내년부터는 월 소득이 80만 원 미만인 지역 가입자는 보험료를 절반만 낸다. 복지부는 약 73만 명이 월 최대 3만7950원을 지원받을 것으로 전망했다. 노령연금 감액 제도도 개선된다. 현재는 수급자의 근로 및 사업소득이 월 309만 원을 초과하면 수급액의 5∼25%를 감액하는데, 내년 6월부터는 월 소득 509만 원 미만인 수급자는 연금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국내 사망자 10명 중 8명은 암이나 심장질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급속한 고령화로 만성질환 진료비는 연간 90조 원을 넘어섰고, 65세 이상 고령층의 1인당 진료비는 551만 원에 달했다. 질병관리청이 29일 발표한 ‘2025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28만2716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78.8%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보다 0.7%포인트(7533명) 증가한 수치다. 만성질환은 발병 후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非)감염성 질환으로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당뇨, 고혈압 등이 대표적이다. 전체 사망자 중 만성질환이 차지하는 비중은 암이 24.8%로 가장 많았고, 이어 심·뇌혈관 질환 16.3%, 만성호흡계 질환 4.4%, 당뇨병 3.1% 순이었다. 만성질환 진료비는 90조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80.3%를 차지했다. 2021년 75조 원에서 3년 만에 15조 원(20%)이 늘었다. 만성질환별로는 순환계통 질환 진료비가 14조 원으로 가장 많았고 암 10조7000억 원, 당뇨병 3조7000억 원 등의 순이었다. 단일 질환으로는 다른 원인이 없는 ‘원발성 고혈압’ 진료비가 4조500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2형 당뇨병’이 3조2000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 의료기술이 발달한 데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만성질환 진료비는 1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올해 기준 전체 인구의 20.3%인 1051만4000명으로, 초고령사회의 기준인 20%를 넘겼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진료비는 551만 원으로, 전체 인구 평균 진료비(226만 원)의 2.4배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만성질환 예방을 위해선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봉수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만은 당뇨부터 심·뇌혈관 질환, 암, 치매까지 모든 만성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식단 관리, 운동을 통한 체중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지난해 기준 83.7년으로 2000년 이후 약 7.7년 늘었다. 남성 기대수명은 80.8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8.5년)보다 2.3년 높았고, 여성은 86.6년으로 OECD 평균 대비 2.9년 높았다.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지난해 국내 사망자 10명 중 8명은 암이나 심장질환, 당뇨병 같은 만성질환으로 숨진 것으로 나타났다. 급속한 고령화로 만성질환 진료비는 연간 90조 원을 넘어섰고, 65세 이상 고령층의 1인당 진료비는 551만 원에 달했다.질병관리청이 29일 발표한 ‘2025 만성질환 현황과 이슈’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만성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는 28만2716명으로 전체 사망자의 78.8%를 차지했다. 이는 전년보다 0.7%포인트(7533명) 증가한 수치다. 만성질환은 발병 후 오랜 기간 지속되는 비(非)감염성 질환으로 암, 심장질환, 뇌혈관질환, 당뇨, 고혈압 등이 대표적이다. 전체 사망자 중 만성질환이 차지하는 비중은 암이 24.8%로 가장 많았고, 이어 심뇌혈관질환 16.3%, 만성호흡계 질환 4.4%, 당뇨병 3.1% 순이었다.만성질환 진료비는 90조 원으로 전체 진료비의 80.3%를 차지했다. 2021년 75조 원에서 3년 만에 15조 원(20%)이 늘었다. 만성질환별로는 순환계통 질환 진료비가 14조 원으로 가장 많았고 암 10조7000억 원, 당뇨병 3조7000억 원 등의 순이었다. 단일 질환으로는 다른 원인이 없는 ‘원발성 고혈압’ 진료비가 4조500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2형 당뇨병’이 3조2000억 원으로 뒤를 이었다.의료기술이 발달한 데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만성질환 진료비는 100조 원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올해 기준 전체 인구의 20.3%인 1051만4000명으로, 초고령사회의 기준인 20%를 넘겼다. 지난해 65세 이상 고령자의 1인당 진료비는 551만 원으로, 전체 인구 평균 진료비(226만 원)의 2.4배에 달했다.전문가들은 만성질환 예방을 위해선 건강한 생활 습관 유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차봉수 세브란스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비만은 당뇨부터 심뇌혈관질환, 암, 치매까지 모든 만성질환의 가장 큰 원인”이라며 “식단 관리, 운동을 통한 체중 관리가 중요하다”고 말했다.한국인의 기대수명은 지난해 기준 83.7세로 2000년 이후 약 7.7세 늘었다. 남성 기대수명은 80.8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78.5년)보다 2.3년 높았고, 여성은 86.6년으로 OECD 평균 대비 2.9년 높았다.최혜령 기자 herstory@donga.com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올해 국민연금의 기금 운용 수익률이 사상 처음으로 20%대를 기록할 것으로 확실시된다. 1988년 국민연금 도입 이후 가장 높은 수치다. 내년부터는 국민연금 보험료(내는 돈)가 단계적으로 인상돼 1470조 원을 돌파한 기금 규모는 더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연금 재정의 고갈을 막기 위해 국내외 주식을 중심으로 더 적극적인 기금 운용 전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국내 주식 수익률 78%…정부 “투자 확대” 추진보건복지부는 29일 올해 국민연금의 연간 투자 수익률이 약 20%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이는 종전 최고치였던 지난해 수익률 15%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세계 3위 규모의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20%대 수익률을 올리는 건 매우 이례적이다.올 들어 코스피가 4,200을 돌파하는 등 국내외 증시가 동반 급등한 영향이다. 자산별 수익률을 보면 국내 주식이 78%로 가장 높았고 해외 주식(25%), 대체투자(8%), 해외 채권(7%), 국내 채권(1%) 등의 순이었다. 자산별 현재 가치 등을 반영한 최종 수익률은 내년 2월 확정된다.이 같은 수익률 덕분에 전체 기금 규모는 지난해 말 1213조 원에서 올 12월 잠정치 기준 1473조 원으로 늘었다. 1년 새 260조 원(21.4%) 급증한 것으로, 지난해 연금 급여로 지급한 44조 원의 5.9배에 달한다.수익률이 높아진 만큼 연금 기금의 고갈 시기가 늦춰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복지부에 따르면 장기 수익률이 1%포인트만 올라도 연금 고갈 시점은 당초 2064년에서 2071년으로 7년 늦춰진다. 복지부는 “자산 배분 체계를 개선하고, 전문 운용 인력을 추가 확보해 수익률을 꾸준히 높여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를 위해 정부는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투자 비중을 높일 방침이다. 현재 국민연금의 국내 주식 비중은 14.9%인데, 주가 급등으로 실제 투자 비중은 9월 기준 15.6%에 이른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는 “국민 노후 안정을 위해선 덩치가 커진 국민연금을 더 적극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다만 자산 배분 등을 정하는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의 전문적 의사 결정에 정치적 입김이 개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월소득 509만 원 미만이면 연금 감액 없어올 4월 국민연금법 개정에 따라 내년 국민연금 보험료율은 9.5%로 올해보다 0.5%포인트 인상된다. 보험료율은 매년 0.5%씩 올라 2033년에는 13%까지 단계적으로 조정된다. 월평균 소득이 309만 원(전체 가입자 평균소득)인 사업장 가입자는 내년 보험료가 월 7700원, 지역가입자는 1만 5400원 오를 예정이다.저소득 지역 가입자의 보험료 부담은 완화된다. 현재는 실업과 휴직 등으로 보험료를 못 내다가 납부를 재개한 지역 가입자에게만 보험료의 50%를 1년간 지원한다. 내년부터는 월 소득이 80만 원 미만인 지역 가입자는 보험료를 절반만 낸다. 복지부는 약 73만 명이 월 최대 3만7950원을 지원받을 것으로 전망했다.노령연금 감액 제도도 개선된다. 현재는 수급자의 근로 및 사업소득이 월 309만 원을 초과하면 수급액의 5~25%를 감액하는데, 내년 6월부터는 월소득 509만 원 미만인 수급자는 연금을 그대로 받을 수 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올 초 30년 지기 초등학교 동창이 암 투병 중인 어머니의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힘든 결정을 내렸다. 가족들은 “콧줄 꽂고 누워만 있다가 눈감기 싫다”는 어머니 뜻을 존중했다. 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등 연명의료 수단 대신 당신이 생전에 꼭 하고 싶었던 버킷리스트를 지우며 임종까지 석 달을 보냈다. 거동이 가능할 때 가족 여행을 다녀오고, 친구들과 마지막 식사를 함께하며 ‘생전 장례식’을 치렀다. 마지막 3주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통증을 줄이고, 심적 안정을 찾는 데 집중했다. 장례는 가족장으로 조촐하게 치렀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임종은 흔치 않다. 2018년 연명의료 결정 제도 시행 후 사전연명의료 의향서 작성자가 300만 명을 넘었지만, 상당수는 연명의료를 한다. 2023년 사망자 중 연명의료를 미루거나 안 한 비율은 16.7%. 같은 해 정부 노인 실태 조사에서 84%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고 밝힌 것과 차이가 컸다. 연명의료 중단을 불효라고 여기는 자녀의 반대, 관련 인프라 부재 등이 겹친 결과다. 16일 이재명 대통령이 보건복지부 업무보고에서 ‘연명의료 제도 개선’을 언급한 건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보험료 경감 등 연명의료 중단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하라는 지시엔 동의하기 어렵다. 경제적 유인을 제공해 연명의료 중단을 유도하는 건 ‘존엄한 죽음’을 보장한다는 제도 취지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현장에선 “저소득층 환자와 보호자에겐 연명의료 인센티브 도입이 ‘현대판 고려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크다. 한국은행 등 정부 기관은 최근 연명의료 환자 의료비 부담과 사회적 비용을 강조하는 보고서를 잇달아 내놓고 있다. 연명의료를 중단하면 환자 가족의 부담을 덜고 불필요한 의료자원 낭비도 막을 수 있다는 논리다. 연명의료 결정 활성화를 위해선 알아야 할 정보이고, 필요한 논의다. 하지만 비용이 본질이 돼선 안 된다. 임종기 삶의 질을 높이는 논의가 우선 돼야 한다. 한국에서 대부분 생의 마지막은 존엄한 죽음과 거리가 멀다. 임종에 가까울수록 의료 역할이 줄어야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과도한 수액 공급으로 폐에 물이 차고 팔다리가 부은 채 임종을 맞는 경우가 흔하다. 노인 10명 중 7명은 자택 임종을 희망하지만, 실제론 73%가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다. 이 중 절반(36%)은 요양병원에서 임종을 맞는다. 호스피스나 재택 돌봄 기반이 턱없이 부족해서다. 죽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데 인색하다 보니 임종기 의료와 돌봄에 당사자 뜻을 반영하기도 어렵다. 죽음의 질이 높은 국가들은 다르다. 미국의 사전 의료 의향서인 ‘파이브 위시스(five wishes)’는 이런 것까지 고민하나 싶을 만큼 구체적이다. 12쪽 분량의 의향서엔 연명의료 여부, 임종 장소뿐 아니라 추도식에서 틀 음악도 적는다. 연명치료 대신 마사지, 목욕, 손톱 정리 등 자신이 원하는 돌봄을 요청할 수 있다. 단 하루라도 존엄한 삶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취지다. 한국의 ‘품위 있는 죽음’ 논의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연명의료 중단 인센티브보다 시급한 게 호스피스-재택의료 기반 확충과 구체적인 사전돌봄계획(ACP) 작성 제도화다. 생의 말기 돌봄과 죽음을 사회가 얼마나 책임지느냐가, 곧 국가의 품격이다.박성민 정책사회부 차장 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