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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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mail@donga.com

취재분야

2026-05-23~2026-06-22
문화 일반24%
인사일반20%
역사20%
미술20%
문학/출판8%
사회일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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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특권’에서 ‘인권’으로… 500만 년 도덕의 진화사

    오늘날 보편적 인권으로 여겨지는 여러 권리들은 100여 년 전만 해도 소수 계층에게 국한된 ‘특권’이었다. 특정 성별과 인종, 연령 등을 갖춰야만 선거권이나 인격권 같은 권리들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그러다가 20세기 후반, 도덕적 변혁이 벌어졌다. 책에 따르면 ‘원의 확대(the expanding circle)’가 시작됐다. 후기 근대 사회에선 사람마다 그 원의 크기가 다를 순 있지만, ‘내(內)집단’의 범위가 가족이나 친구를 넘어 낯선 사람과 동물로도 넓어졌다. 제도적 변화가 이런 포용을 뒷받침했다. 저자는 도덕적 변화의 원인에 대해 “친족 관계가 약화하면서 낯선 사람 간의 협력이 갖는 잠재력이 발견됐다”며 “다른 집단을 배제하거나 노예화하는 행위가 국제 무역이나 근대 국가의 작동에 장애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분석한다. ‘도덕의 인류사’라는 부제에 걸맞게 약 500만 년에 걸쳐 인간의 도덕적 이해가 어떻게 형성됐는지를 탐구한 책이다. 선사시대 공동체의 탄생, 불평등의 심화 등 여러 사회문화적 분기점마다 포착되는 도덕적 변화에 주목했다. 네덜란드 위트레흐트대에서 윤리학을 가르치는 1980년대생 젊은 학자가 썼다. 책은 “도덕의 역사 상당 부분은 점점 커지는 집단에서 생겨난 협력의 역사”라며 집단의 협력과 분열에 초점을 맞춰 방대한 역사를 흥미롭게 풀어냈다. 저자는 5000년 전 인구 증가와 농업혁명은 상호 협력의 중요성을 상기시킨 동시에, 잉여 생산물이 발생함에 따라 형성된 불평등에 대해 반감을 키웠다고 주장한다. 다만 “인간 이외 지적 생명체는 없으며, 인간에게는 단순한 생명체에 없는 도덕적 속성이 있다”는 책의 대전제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측면이 있다. 인간 중심적 사고에 의문을 제기하는 최근 인류학, 생태학적 연구 흐름에 뒤처지는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비행기 안에서 정숙과 배려를 지키려 하지만, 침팬지들은 울부짖으며 피 웅덩이를 만들 것’이라는 주장은 인간이 제대로 알지 못하는 동물의 사고 및 도덕 체계에 대한 분석의 빈틈을 보여주는 것 같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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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자 쇼크’ 안긴 두 점… 佛로 건너간 고려청자 한쌍에 세계가 깜짝

    17일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 여름의 맑은 기운을 풀어낸 듯한 고려청자 한 쌍이 비색(翡色)을 뽐낸다. 지름 18cm 안팎의 두 아담한 대접엔 각각 모란꽃과 앵무새가 은근하게 새겨져 있다. 이는 1888년 7월 조선의 고종이 프랑스 사디 카르노 제3공화국 대통령에게 선물로 보낸 ‘청자 모란 넝쿨무늬 꽃모양 대접’과 ‘청자 앵무새무늬 대접’. 최근 개막한 특별전 ‘선물과 기록, 한국-프랑스 우정의 140년’에서 일반에 공개되고 있다. 두 대접은 같은 해 5월 카르노 대통령이 조불수호통상조약 체결을 기념해 프랑스 대표 공예품인 세브르 도자기 3점을 조선에 보낸 데 대한 답례였다. 프랑스 도자에 감동한 고종은 고려청자 전성기 시절인 12∼13세기 대접 2점을 반화(盤花·꽃과 나무를 보석과 금속으로 장식한 공예품), 역사서와 함께 프랑스로 보냈다. 손명희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은 “두 대접은 서양에서 ‘말로만 듣던’ 고려청자의 실체를 공식화한 최초의 사례로 확인된다”며 “해외 박물관과 컬렉터들의 한국 미술품 수집의 출발점이 된 문화유산”이라고 했다. 이 청자 한 쌍을 시작으로 서구 사회의 ‘K미술 컬렉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셈이다. ● ‘아류’ 취급받던 고려청자, 서양에서 인정받다1888년 11월 최초의 주조선 프랑스 대리공사였던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1853∼1922)는 프랑스 세브르도자박물관 소장품 담당자인 샹플뢰리에게 편지를 보내 한국 컬렉션을 구축할 것을 권했다. 고종이 선물한 두 고려청자가 세브르도자박물관에서 전시되도록 대통령과 박물관 측을 설득하기 위해서였다. 성사된다면 고려청자가 처음으로 서구 대중을 만나는 자리가 될 것이었다.“조선의 국왕께서 보낸 2점의 대접은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훌륭한 유물입니다. (…) 또 제가 개인적으로 모은 물품 12점과 바라 씨가 수집한 민속품을 기증합니다. 박물관에 조선을 위한 특별한 진열장을 마련해주길 바랍니다.” 기증 이후 현지에선 두 고려청자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선물이 오고 간 이듬해인 1889년 3월 11일 프랑스 일간지 ‘르 프티 모니퇴르 위니베르셀(Le Petit Moniteur Universel)’은 카르노 대통령이 두 대접을 세브르도자박물관에 기증한 사실을 보도하면서 “오늘날 극동의 도자산업에서 찾아보기 힘든 표본”이라고 희소성을 강조했다. 9월에는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이 발간하는 잡지도 기증 소식을 보도하며 고려청자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플랑시는 그 이후에도 약 5년에 걸쳐 자신이 수집한 한국 도자들을 프랑스 주요 박물관에 보내 관람객과 만나도록 했다. 엄승희 이화여대 도예연구소 연구위원장은 ‘근대전환기 초대 프랑스 주조 공사 빅토르 콜랭 드 플랑시의 도자 외교’란 논문에서 “플랑시의 도자 기증품은 19세기 말 파리의 기메박물관과 세브르박물관에 한국관이 마련되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이는 영국과 독일 등 유럽 국가에서 박물관 내 한국 컬렉션을 구축하거나 한국 도자의 시장 가치를 높이는 흐름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고종의 선물은 서구 학계에서 고려청자의 존재를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계기로도 작용했다. 당시 서구 열강에서 고려청자는 실물로 보지 못한 채 중국 문헌에서나 접하던 존재였다. 서양인들이 접한 한국 도자는 기껏해야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생활 용기가 다수였다. 제대로 연구가 이뤄지지 않다 보니 ‘중국이나 일본 도자의 아류’로 취급받기 일쑤였다. 하지만 고종의 선물이 세간에 알려진 뒤 기류가 바뀌었다. 영국의 중국 도자 전문가 스티븐 부셸(1844∼1908)은 저서 ‘오리엔탈 세라믹 아트’(1896년)에서 “프랑스 대통령이 받은 두 점의 고려청자는 중국 자기와 동등한 수준의 품질을 가진 한국 도자가 실존한다는 걸 증명했다”고 기록했다. 이어 “중국 사서 ‘고려도경’에 등장하는 ‘비색’이란 단어는 고려청자의 색을 가리키는 것”이라며 “가난한 나라의 오래된 물건 중에 가장 가치 있는 물건”이라고 평했다. 김윤정 고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교수는 “고려청자의 실체를 확인하기 전까지 청나라 도자사 문헌 ‘고려요(高麗窯)’ 속 고려청자 기록은 서구 학자들에게 믿기 힘든 자료였다”며 “하지만 1910년대 고려청자 실물 컬렉션이 형성되자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중국 청자와 고려청자 간 비교사적 연구가 이뤄짐에 따라 고려청자만의 형태나 유색 등 조형적 특징을 파악할 수 있게 됐고, 이는 서양의 수집 의지를 자극했다”고 강조했다.● 20세기 들어 한국 도자 수집·연구 붐1910년대에 접어들면서 한국 도자는 서구권 컬렉터와 박물관의 수집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조선 왕실이 외국 정상과 외교관에게 보낸 도자 선물로 높아진 수집욕이 제국주의적 취향과 맞아떨어졌다. 시누아즈리(chinoiserie·중국적 양식)의 인기와 자포니즘(japonism·일본 미술 열풍)은 우리 도자 수집을 더 부추겼다. 당대 서구에서 원하던 한국 도자는 무엇보다 “오래된 도자, 즉 골동품으로서 가치가 있는 물건”이었다. 김 교수에 따르면 고려청자는 그중에서도 조형적 우수성과 역사성에 비해 가격이 합리적인 물건으로 주목받았다. 조선에 머문 미국인 외교관 겸 선교사 호러스 알렌(1858∼1932)이 1907년 약 80점 규모의 고려 도자 컬렉션을 한 미국인 수집가에게 매도한 가격은 3000달러에 불과했다. 20세기 초 유럽에서 아시아 여행 열풍이 불자,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들은 ‘필수 기념품’이자 재테크 수단으로 한국 미술품을 사 가기도 했다. 조선의 허술한 문화유산 관리 제도 탓에 주로 무덤 도굴품 또는 몰락 양반이 남긴 물품을 매입하는 방식이 다수였다. 영국인 오브리 르 블론드와 그의 부인은 한국에서 적극적으로 도자를 사 모은 외국인으로 꼽힌다. 논문 ‘아카이브를 통해서 본 근대기 영국의 한국 도자 수집’(최효진)에 따르면 이 부부는 고려청자 등 아직은 저렴한 가격이지만 향후 시장 가치가 오를 것으로 예상되는 옛 한국 도자들을 사들였다. 두 사람의 수집품이 외부에 공개된 건 1914년 런던 빅토리아앤드앨버트박물관(V&A)에 이를 기증하면서였다. 그해 열린 ‘르 블론드 한국 도자 소장품’전은 중국이나 일본 미술품의 일부로서가 아닌, 한국 도자만을 앞세운 영국 최초의 전시였다. 르 블론드 컬렉션은 유럽에서 한국 도자 연구의 발판이 됐다는 의의가 있다. V&A는 두 사람의 기증품을 토대로 1918년에 도록을 발간하는데, 유럽에서 한국 도자를 다룬 첫 전문 서적으로 평가받는다. 최효진 국가유산진흥원 헤리티지미디어팀 대리는 “과거 중국 도자의 일부로 오인되거나 미지의 민속품으로 취급되던 한국 도자를 영국 사회에 예술품으로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이후 한국 미술품을 쥔 고미술상들은 미국으로 향했다. 1910, 20년대 ‘아메리칸 아트 어소시에이션(AAS)’ 등 경매 시장에 도자기와 집기류를 비롯한 한국 미술품이 줄줄이 출품됐다. 장해림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원은 논문 ‘20세기 초 한국미술품의 미국 경매’에서 “당시 경매는 뉴욕이나 보스턴 등 대도시에서 한국의 시각문화를 알릴 기회이자 서양인이 ‘미지의 지역’ 한국을 체험할 수 있는 장이었다”며 “구미권 전역으로 팔려나 간 미술품은 오늘날까지도 해외 박물관, 미술관 내 한국 컬렉션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했다. 이때도 고려청자는 인기 품목으로 꼽혔다. 장 전 연구원은 “20세기 초 해외 컬렉터들은 미국의 일본미술 전문가인 어니스트 페놀로사(1853∼1908)가 정립한 동양미술 평론에 의존했다”며 “페놀로사는 한국 미술품 가운데 고려청자와 불화를 콕 집어 우수하다고 언급했고, 그 영향으로 매사추세츠주 보스턴미술관 등이 고려시대 미술품을 다수 수집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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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탄광시대 추억… 미로 같은 갱도가 6m 지도에

    미로나 다름없던 1980년대 태백 탄광의 내부 구조를 촘촘하게 기록한 길이 6m의 지도가 처음으로 공개된다.강원 태백석탄박물관은 “19일 개막하는 특별전 ‘태백, 찬란했던 석탄시대’를 통해 과거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였던 태백의 함태탄광 내 모든 갱도를 기록한 ‘태백갱내도’를 선보인다”고 18일 밝혔다. ‘태백갱내도’는 채탄과 채굴의 효율성을 높이고, 다른 광산의 갱도를 침범하지 않도록 광부에게 좌표를 제공했던 실측 도면이다.이번 전시는 당시 치열했던 광부들의 삶을 비중 있게 조명한다. 과거 탄광에서 광부들이 사용했던 ‘전기안전등 충전대’와 ‘사물함’ 등 작업 도구를 선보인다. 탄광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도 눈길을 끈다. 석탄을 짊어지고 운반 작업을 하는 광부, 석탄과 경석(채굴 뒤 남는 광산 부산물)을 선별하고 있는 선탄부의 모습 등이 담겼다. 1979년 연간 최대 생산량(약 227만5000t)을 달성하던 순간 등을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 개최한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한국 산업 성장의 동력이자 서민의 연료였던 석탄의 중심지였던 ‘태백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해 나갈지에 관한 전시”라고 소개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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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8년 전 남극기지 대장의 일기, 미지로의 첫발 과정 생생

    “에콰도르 해군해양연구소장을 만나보십시오. 가능하다면 그를 ‘소티토스 바’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비용은 나중에 저에게 청구하십시오. (…) 이곳에서 머물러야 하는 여러분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십시오.” 1988년 2월 5일, 한국의 송원오 남극세종과학기지(세종기지) 건설단장은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 전진을 준비하던 장순근 월동대장에게 이런 텔렉스(국제 문자 송수신 시스템)를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지 연구기지인 세종기지 준공을 앞두고, 송 단장은 대원들이 어느 선박을 기다렸다가 누구를 만나면 좋을지 등을 구체적으로 조언했다. “최신 정보를 수집하라”는 거듭된 당부의 최종 목표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 진입. 당사국은 남극에서의 연구와 생물자원 활용 등에 관한 조약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한창 나라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페달을 밟던 한국인들에게 이는 넘어야만 하는 관문이었다. 통신문이 오간 이듬해, 우리나라는 남극에 관한 연구 성과를 올리며 23번째 ATCP 당사국으로 선임됐다. 이러한 통신문을 포함한 ‘한국남극관측탐험대 및 남극세종과학기지 관련 자료’가 지난해 11월 국가유산청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강석훈 유산청 학예연구사는 “당대 우리나라의 남극 진출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며 “미지로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기 위한 물심양면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자료”라고 평가했다.선정된 예비문화유산엔 세종기지의 제1차 월동대장인 장순근 박사가 수기로 작성한 노트들도 포함됐다. 장 박사가 1988년 5월 30일에 쓴 일기에는 “밤이 길고, 추위 시작. 감정 평온 유지. 타인자극 g/G(금지로 추정)”라고 적혀 있어 극지 생활의 어려움을 짐작하게 한다. 6월 13일 일기엔 통화 기록이 “가족과 이별에 큰 고생. 국민의 기대가 큼, 국위 선양. 정부 차원에서 협조”라고 간결한 문체로 적혔다. 총 4권으로 이뤄진 ‘장순근 노트’엔 물품 수급 계획 등 공무와 관련된 내용은 물론이고 대원들의 건강 상태나 심리 변화, 식단까지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기지 주변의 동식물과 지질 환경, 외국 기지를 조사한 내용도 담겼다. 월동대원들이 입었던 낡고 두꺼운 방한복도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극한 환경 속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갔던 책임감과 사명감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예비문화유산은 만들어진 지 50년이 안 된 문화유산 중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대표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선정해 관리하는 제도로, 지난해 처음 10건이 일괄 선정됐다. 올해 말경 두 번째 목록이 발표될 것으로 전망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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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카이브를 끊임없이 재조직되는 구조로 조명…‘아크 아크 아크’ 개막

    아카이브(archive·기록 보관소)를 과거에 박제된 기억이 아닌, 끊임없이 재조직되는 구조로서 조명한 전시 ‘아크 아크 아크’가 17일 개막했다.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과 서울시립미술아카이브는 “오늘날 기록이 갖는 다층적 의미에 대해 탐구한 미디어아트 그룹전 아크아크아크를 이달 17~21일 선보인다”고 18일 밝혔다. 서울 종로구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에서 열리는 전시에는 박주원, 손샛별, 임민지 등 17명의 작가가 참여했다.‘아크 아크 아크’는 언어로 기록되기 이전의 소리(Ach), 즉 기록의 감각적 층위를 살피면서 시작된다. 이어 단일한 사실이나 결론으로 수렴하지 않고 조금씩 변형되는 곡선(Arc)이자, 계속해서 재구성되는 기억의 방주(Ark)로서의 아카이브를 다채로운 미디어아트로 표현했다.전시는 서울시립 미술아카이브 대학연계프로그램 ‘2026 폴리오 스튜디오’ 중 하나로 이뤄졌다. 현시원 연세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교수는 “미디어아트와 아카이브가 만날 때, 오히려 가장 오래된 매체 중 하나인 ‘종이’와 닮아있을 수 있다고 본다”며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관해 생각해보는 전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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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 황금’을 캐던 태백의 찬란했던 시절…6m ‘갱내도’ 첫 공개

    미로나 다름 없던 1980년대 태백 탄광의 내부 구조를 촘촘하게 기록한 길이 6m의 지도가 처음으로 공개된다.강원 태백석탄박물관은 “19일 개막하는 특별전 ‘태백, 찬란했던 석탄시대’를 통해 과거 국내 최대 석탄 생산지였던 태백의 함태탄광 내 모든 갱도를 기록한 ‘태백갱내도’를 선보인다”고 18일 밝혔다. ‘태백갱내도’는 채탄과 채굴의 효율성을 높이고, 다른 광산의 갱도를 침범하지 않도록 광부에게 좌표를 제공했던 실측 도면이다.이번 전시는 당시 치열했던 광부들의 삶을 비중 있게 조명한다. 과거 탄광에서 광부들이 사용했던 ‘전기안전등 충전대’와 ‘사물함’ 등 작업 도구를 선보인다. 탄광 현장을 생생하게 기록한 사진도 눈길을 끈다. 석탄을 짊어지고 운반 작업을 하는 광부, 석탄과 경석(채굴 뒤 남는 광산 부산물)을 구별하고 있는 선탄부의 모습 등이 담겼다. 1979년 연간 최대 생산량(약 227만5000t)을 달성하던 순간 등을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이번 특별전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공동 개최한다. 한수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한국 산업 성장의 동력이자 서민의 연료였던 석탄의 중심지였던 ‘태백 시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보존해 나갈지에 관한 전시”라고 소개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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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극 향한 간절함 담겨”…세종기지 준비기록, 예비문화유산 선정

    “에콰도르 해군해양연구소 소장을 만나보십시오. 가능하다면 그를 ‘소티토스 바’로 초대해 저녁 식사를 대접하고 비용은 나중에 저에게 청구하십시오…이곳에서 머물러야 하는 여러분 모두를 위한 일입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십시오.”1988년 2월 5일, 한국의 송원오 남극세종과학기지(이하 세종기지) 건설단장은 칠레 최남단 도시 푼타아레나스에서 남극 전진을 준비하던 장순근 월동대장에게 이런 텔렉스(국제 문자 송수신 시스템)를 보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극지 연구기지인 세종기지 준공을 앞두고, 송 단장은 대원들이 어느 선박을 기다렸다가 누구를 만나면 좋을지 등을 구체적으로 조언했다.“최신 정보를 수집하라”는 거듭된 당부의 최종 목표는 ‘남극조약협의당사국(ATCP)’ 진입. 당사국은 남극에서의 연구와 생물자원 활용 등에 관한 조약을 결정할 권한을 갖는다. 한창 나라의 영향력 확대를 위해 페달을 밟던 한국인들에게 이는 넘어야만 할 관문이었다. 통신문이 오고 간 이듬해, 우리나라는 남극에 관한 연구 성과를 올리며 23번째 ATCP 당사국으로 선임됐다.이러한 통신문을 포함한 ‘한국남극관측탐험대 및 남극세종과학기지 관련 자료’가 지난해 11월 국가유산청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강석훈 유산청 학예연구사는 “당대 우리나라의 남극 진출에 대한 간절한 마음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자료로서 의미가 크다”며 “미지로의 첫발을 성공적으로 내딛기 위한 물심양면의 과정이 생생하게 담긴 자료”라고 평가했다.선정된 예비문화유산에는 세종기지의 제1차 월동대장인 장순근 박사가 수기로 작성한 노트들도 포함됐다. 장 박사가 1988년 5월 30일에 쓴 일기에는 “밤이 길고, 추위 시작. 감정 평온 유지. 타인자극 g/G(금지로 추정)”라고 적혀 있어 극지 생활의 어려움을 짐작하게끔 한다. 6월 13일 일기에는 통화 기록이 “가족과 이별에 큰 고생. 국민의 기대가 큼, 국위선양. 정부 차원에서 협조”라고 간결한 문체로 적혔다.총 4권으로 이뤄진 ‘장순근 노트’에는 물품 수급 계획 등 공무와 관련된 내용은 물론, 대원들의 건강 상태나 심리 변화, 식단까지도 글과 그림으로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기지 주변의 동식물과 지질 환경, 외국 기지를 조사한 내용도 담겼다.월동대원들이 입었던 낡고 두꺼운 방한복도 예비문화유산으로 선정됐다. 극한 환경 속에서 연구 활동을 이어갔던 책임감과 사명감을 상징하는 물건이다. 예비문화유산은 만들어진 지 50년이 안 된 문화유산 중 근현대 역사와 문화를 대표할 가치가 있는 것을 선정해 관리하는 제도로, 지난해 처음 10건이 일괄 선정됐다. 올해 말경 두 번째 목록이 발표될 전망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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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해박해·신유박해 순교자 잠든 완주 남계리 묘역,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 예고

    조선시대 천주교 박해 순교자들이 잠든 전북 완주군의 묘역이 국가지정문화유산 사적이 된다.국가유산청은 “조선 후기 천주교 유입과 박해의 역사가 담긴 완주군 이서면 남계리의 순교자 묘역을 사적으로 지정 예고했다”고 17일 밝혔다. ‘완주 남계리 유적’은 조선 최초의 천주교 박해사건인 1791년 신해박해(辛亥迫害)와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로 순교한 이들의 유해와 관련 유물들이 확인된 묘역이다. 2021년 천주교 전주교구가 무연고 무덤을 이장하다가 발견됐다. 유산청은 “유해의 입지와 매장 방식, 부장 유물 등을 통해 18세기 말 조선의 전통적 장례문화와 천주교식 장례 문화가 혼재된 양상을 보여주는 희귀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사적 지정은 예고 기간 30일간 각계의 의견을 수렴 및 검토한 뒤 국가유산위원회의 심의를 거쳐 완료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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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 속 끊임없이 재구성한 우리… 아시아인은 누구인가

    한자 ‘双’은 쌍을 뜻한다. 여기에 ‘又’(또 우)를 하나씩 더하면 ‘叒’(따를 약), ‘叕’(연할 철)이 된다. 중국의 인터넷 신조어 ‘우쌍약철(又双叒叕)’은 무언가 자주 바뀌거나 어떤 일이 자주 일어나는 걸 뜻하는 말. 말레이시아 작가 탄 지 하오는 총 10개의 ‘又’로 이뤄진 설치 작품 ‘또 당신이군요’를 통해 끝없이 변화하고 회귀하는 ‘우쌍약철’, 즉 동양적이면서도 우주적(cosmic)인 가치를 표현했다.고정된 실체가 아닌,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돼 온 아시아인과 아시아적 가치를 조명한 기획전 ‘코스모 아시아 피플: 행성 시대 피플을 재발명하기’가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최근 개막했다. ‘땅설법’으로 잘 알려진 다여 스님과 싱가포르의 사실주의 화가 추아 미아 티 등 아시아 8개국 작가 31인이 참여해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등 102점을 선보이고 있다.작품들은 서구 중심적 사고에 저항하지만, 일률적인 ‘아시아적 미감’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전시 후반에는 출신지가 다른 작가 8명에게 ‘3가지 조건 아래 4가지 색깔만을 사용해 포스터를 만들 것’을 요청해 완성된 결과물들이 걸려 있다.자연의 존재와도 공존할 것을 제안하며 공동체의 정의를 넓힌 작품들도 있다. 갈대와 사탕수수를 사용해 사람의 시선보다 낮은 ‘땅’의 풍경을 표현한 작품 ‘블랙 메도우’도 그중 하나다. 전시장을 나설 땐 동양화의 현대화를 모색했던 화가 서세옥(1929∼2020)이 남긴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나는 특별히 자연과 인간을 나눠서 그린 건 아닙니다. 인간, 그것을 자연의 하나로 바라보는 것이 동양의 정신이고 지혜라고 생각해 봅니다.” 8월 23일까지.광주=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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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시아적 가치의 변주와 재구성…8개국 작가 31명 모였다

    중국어 단어 ‘双’은 쌍을 뜻한다. 여기에 ‘又’(또) 하나를 더한 ‘叒’은 연대를 일컫는다. 그런데 ‘叕’는 역설적으로 연하거나 부족한 상황을 가리킨다. 말레이시아 작가 탄 지 하오는 총 10개의 又로 이뤄진 설치 작품 ‘또 당신이군요’를 통해 끝없이 변화하고 회귀하는 ‘우쌍약철’(又双叒叕), 즉 동양적이면서도 우주적(cosmic)인 가치를 표현했다. 이처럼 고정된 실체가 아닌,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재구성돼 온 아시아인과 아시아적 가치를 조명한 기획전 ‘코스모 아시아 피플: 행성 시대 피플을 재발명하기’가 광주 동구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열리고 있다. ‘땅설법’으로 잘 알려진 다여 스님과 싱가포르의 사실주의 화가 추아 미아 티 등 한국과 태국, 몽골, 인도 등 아시아 8개국 작가 31인이 참여해 회화, 설치, 미디어아트 등 102점을 선보였다.작품들은 서구 중심적 사고에 저항하지만, 일률적인 ‘아시아적 미감’을 보여주지도 않기에 흥미롭다. 전시 후반에는 출신지가 다른 8명의 작가에게 ‘3가지 조건 아래 4가지 색깔만을 사용해 포스터를 만들 것’을 요청해 완성된 결과물들이 걸려 있다. 아시아에 역사·문화적 뿌리를 둔 관람객이라면 ‘아시아적 감각’을 쉽게 느낄 수 있지만, 시각적 공통점을 찾아보긴 어렵다.인간 이외 자연의 존재와도 공존할 것을 제안하며 공동체의 정의를 넓히기도 했다. 갈대와 사탕수수를 사용해 사람의 시선보다 낮은 ‘땅’의 풍경을 표현한 작품 ‘블랙 메도우’가 이를 잘 담아냈다. 전시장을 나설 땐 동양화의 현대화를 모색했던 화가 서세옥(1929~2020)이 남긴 말을 곱씹어 보게 된다. “나는 특별히 자연과 인간을 나눠서 그린 건 아닙니다. 인간, 그것을 자연의 하나로 바라보는 것이 동양의 정신이고 지혜라고 생각해 봅니다.” 전시는 8월 23일까지.광주=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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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JTBC, 법원에 ‘기업 회생’ 신청… 중앙일보는 “워크아웃 추진”

    유동성 위기에 처한 중앙그룹 계열사 JTBC가 15일 서울회생법원에 기업 회생절차 개시를 신청했다. JTBC가 12일 만기가 돌아온 206억 원 규모의 회사채 빚을 갚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가 발생한 지 사흘 만이다. 중앙그룹의 모체인 중앙일보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기업구조개선작업(워크아웃)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워크아웃은 위기에 처한 기업이 채권단과 사적으로 협의해 채무조정, 구조조정 등을 하는 절차다. JTBC는 “이사회 결정에 따라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및 재산보전처분, 포괄적 금지 명령 신청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중앙그룹 지주사 중앙홀딩스와 계열사 콘텐트리중앙, 메가박스중앙, 중앙피앤아이 등 중앙그룹 4개 사는 전날 서울회생법원에 회생절차 개시 등을 신청했다. 서울회생법원은 JTBC 등 중앙그룹 계열사가 신청한 회생절차 개시 신청을 회생2부(정준영 법원장)에 배당했다. NICE신용평가는 이날 JTBC의 기업 회생절차 개시 신청 후 JTBC의 무보증사채 신용등급을 기존 ‘CCC’에서 ‘D’로, 전자단기사채 및 기업어음(CP) 등급을 ‘C’에서 ‘D’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신용등급 ‘D’는 신용평가사가 부여하는 최하위 등급으로, 원금 또는 이자를 지급할 수 없는 부도 상태를 뜻한다. 한국신용평가는 중앙일보의 무보증사채 등급을 ‘BB’에서 ‘B’로 내리고 등급 감시 목록(하향 검토)에 포함했다. 홍정도 중앙그룹 부회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중앙일보빌딩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대외 경제 여건 악화와 신용등급 하락으로 인한 자금 경색 등 여러 이유로 오늘의 불가피한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며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고 밝혔다. 김종철 방송미디어통신위원장은 이날 간담회에서 JTBC 유동성 위기에 대해 예의 주시하고 있다며 “JTBC는 재승인 절차를 밟아야 하는 대상으로 과정의 중요 평가 사항에 재무·기술 분야 평가도 포함돼 있어 주목해서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지민구 기자 warum@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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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광복 후 순수 한국인 최초 발굴… 경주 호우총 아닌 개성 법당방”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유적 발굴은 거의 일본인들이 독점해 이뤄졌다. ‘광복 후 우리 손으로 이뤄진 첫 유적 발굴’로는 일반적으로 1946년 경북 경주 호우총 발굴이 꼽힌다. 그런데 호우총이 아니라 1947년 고려시대 벽화고분군인 법당방(法堂坊) 발굴을 시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열린 중부고고학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기획하고 수행한 최초의 발굴은 국립박물관 주도로 이뤄진 법당방”이라고 주장했다. 현재 북한 지역에 있는 법당방은 판문점에서 개성 방향으로 약 3km 떨어진 경기 장단군 진서면의 벽화고분군이다. 한국 고고학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김원룡 제2대 국립박물관장과 장욱진 화백 등이 참여해 십이지신상과 고려 귀족이 그려진 벽화를 조사했다. 강 교수가 ‘고려벽화고분발굴기’(1954년)와 ‘한국 박물관 100년사’(2009년) 등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법당방 발굴 조직도 및 일정에 따르면 발굴 작업은 1947년 5월 1일부터 21일간 일본인이나 미국인 없이 한국인으로만 진행됐다. 국립박물관 소속 이홍직이 총지휘를 했고, 직원이었던 김원룡이 기록을 맡았다. 동양화 전문가 임천과 장욱진은 벽화 모사를 담당했다. 반면 호우총은 일본인 학자가 발굴을 주도했다는 게 강 교수의 시각이다. 강 교수는 “호우총에선 조선총독부 출신 고고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당시 국립박물관장인 김재원의 스승으로서 사실상 발굴을 주도했기에 탈식민화된 한국 고고학의 시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법당방 발굴을 계기로 우리 고고학 인재 양성이 본격화했다는 의미도 부여했다. 강 교수의 발표문 ‘해방공간 북녘 중부지역의 고고학 연구와 개성학파’에 따르면 법당방 조사자 대부분이 발굴 이후 ‘개성학파’의 맥을 이으며 박물관과 대학에서 고고학 인력을 양성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이화여대 강단에 선 진홍섭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분단 이후 한반도 중부 지역이 금단의 영역이 되고, 신라 고고학이 주류를 차지하는 동안 개성학파의 이름이 학계의 기억에서 지워지면서 법당방 발굴의 의미가 반쪽이 됐다”고 봤다. 법당방 조사 성과는 공공적 행사로 이어졌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발굴 직후 국립박물관은 특별전을 열고 법당방 벽화 사진과 모사도를 일반에 공개했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반론도 적지 않다. 이기성 한국전통문화대 융합고고학과 교수는 이날 토론에서 “법당방 벽화고분 조사는 호우총의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과 비교해 미술사 연구에 가깝고, 호우총 발굴 조사 과정도 영화로 촬영 및 상영되며 공공적 요소를 갖췄다”며 “법당방 발굴도 중요하지만 호우총 발굴의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 배기동 한양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도 “호우총 발굴보고서와 김재원 회고록 등엔 당시 아리미쓰는 지도위원일 뿐, 전체 지휘와 기획은 김재원이 주체적으로 맡았다고 명시돼 있다”며 “최초의 발굴은 호우총이 합당하며, 법당방은 ‘첫 기술자립형 발굴’”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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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해방 후 순수 한국인 최초 유적 발굴은 개성 법당방”

    일제강점기 한반도의 유적 발굴은 거의 일본인들이 독점해 이뤄졌다. ‘해방 후 우리 손으로 이뤄진 첫 유적 발굴’로는 보통 1946년 경북 경주 호우총 발굴이 꼽혀 왔는데, 호우총이 아니라 1947년 고려시대 벽화고분군인 법당방(法堂坊) 발굴을 시초로 봐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5일 서울 동대문구 경희대에서 열린 중부고고학 정기학술대회에서 “한국인이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기획하고 수행한 최초의 발굴은 국립박물관 주도로 이뤄진 법당방”이라고 밝혔다. 현재 북한 지역에 있는 법당방은 판문점에서 개성 방향으로 약 3㎞ 떨어진 경기 장단군 진서면의 벽화고분군. 한국 고고학의 기틀을 다졌다고 평가받는 김원룡 제2대 국립박물관장과 장욱진 화백 등이 참여해 십이지신상과 고려 귀족이 그려진 벽화를 조사했다.강 교수가 ‘고려벽화고분발굴기’(1954년)와 ‘한국 박물관 100년사’(2009년) 등 자료를 토대로 재구성한 법당방 발굴 조직도 및 일정에 따르면 발굴 작업은 1947년 5월 1일부터 21일간 일본인이나 미국인 없이 한국인으로만 진행됐다. 국립박물관 소속 이홍직이 총지휘를 했고, 직원이었던 김원룡이 기록을 맡았다. 동양화 전문가 임천과 장욱진은 벽화 모사를 담당했다.반면 호우총은 일본인 학자가 발굴을 주도했다는 것이 강 교수의 시각이다. 강 교수는 “호우총에선 조선총독부 출신 고고학자 아리미쓰 교이치(有光敎一)가 당시 국립박물관장인 김재원의 스승으로서 사실상 발굴을 주도했기에 탈식민화된 한국 고고학의 시작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법당방 발굴을 계기로 우리 고고학 인재 양성이 본격화했다는 의미도 강조됐다. 강 교수의 발표문 ‘해방공간 북녘 중부지역의 고고학 연구와 개성학파’에 따르면 법당방 조사자 대부분이 발굴 이후 ‘개성학파’의 맥을 이으며 박물관과 대학에서 고고학 인력을 양성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을 지낸 최순우, 이화여대 강단에 선 진홍섭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분단 이후 한반도 중부 지역이 금단의 영역이 되고, 신라 고고학이 주류를 차지하는 동안 개성학파의 이름이 학계 기억에서 지워지면서 법당방 발굴의 의미가 반쪽이 됐다”는 것.법당방 조사 성과는 공공적 행사로 이어졌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발굴 직후 국립박물관은 특별전을 열고 법당방 벽화 사진과 모사도를 일반에 공개했다.하지만 강 교수의 이러한 주장엔 반론도 적지 않다. 이날 토론에서 이기성 한국전통문화대 융합고고학과 교수는 “법당방의 벽화고분 조사는 호우총의 적석목곽분(돌무지덧널무덤)과 비교해 미술사 연구에 가깝고, 호우총 발굴 조사 과정도 영화로 촬영 및 상영되며 공공적 요소를 갖췄다”며 “법당방 발굴도 중요하지만 호우총 발굴의 의미를 부정할 수는 없다”고 했다.배기동 한양대 명예교수(문화인류학)는 “호우총 발굴보고서와 김재원 회고록 등엔 당시 아리미쓰는 지도위원일 뿐, 전체 지휘와 기획은 김재원이 주체적으로 맡았다고 명시됐다”며 “최초의 발굴은 호우총이 합당하며, 법당방은 ‘첫 기술자립형 발굴’”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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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힘세진 K컬처… ‘우리 안의 오리엔탈리즘’도 커졌다

    소셜미디어에선 K팝 아이돌 그룹 내 외국인 멤버에게 유독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댓글이 자주 보인다. 주로 중국권이나 동남아시아 출신인 이들을 “한국에서 키워줬더니 배은망덕하다”고 공격하는 내용이다. 이런 유의 현상을 두고 “피부색과 출신지에 따른 차별이 계속되고 있다”는 비판도 적지 않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이 지배자적 시각을 내면화했다”고 분석한다. ‘원조 수혜국에서 공여국으로’ 발돋움한 우리나라가 세상을 보는 인식은 어딘지 모순적이다. K컬처로 고양된 자긍심이 비뚤어진 국수주의와 식민성으로 발현되는 것 같기도 하다. 영남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진정한 K컬처를 모색하려면 “제국주의적 혐오가 담긴 우리 문화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식민지화된 오리엔탈리즘적 요소들을 극복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탈식민주의 연구의 선구자인 에드워드 사이드(1935∼2003)의 대표 저서 ‘오리엔탈리즘’을 1991년 국내 처음 번역한 저자가 35년의 탐구 끝에 펴낸 책이다. ‘당신은 지금 누구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가’를 뾰족하게 묻고 답하는 과정이 20개 장에 나뉘어 담겼다. “오늘날 오리엔탈리즘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변주되고 있다”고 보는 저자가 현대인의 눈높이에 맞춰 오리엔탈리즘을 풀이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와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등 걸작으로 여겨지는 예술 작품들을 통해 오리엔탈리즘이 깊숙이 내재된 현실과 그 작동 원리를 살폈다. 14세기 집필된 이래 세계적 고전이자 인본주의의 정수로 꼽히는 단테의 ‘신곡’을 해체한 대목은 독자의 뒤통수를 때린다. ‘신곡’에서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는 사기꾼들이 벌 받는 ‘제9구렁’에서 몸이 갈라지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는 중세 서양에서 무함마드가 ‘기독교를 분열시킨 이단자’로 취급되던 맥락과 관련이 깊다. 저자는 “단지 중세적 편견의 흔적이 아니”라며 “정전화된 텍스트가 타자를 규정하고 위계화하는 방식이 얼마나 일찍부터 고전의 내부에 자리했는지 드러내는 증거”라고 꼬집는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뒤 ‘인류 최고’로 격상된 문화적 요소가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확대 재생산되는 구조인 셈이다. 오리엔탈리즘 문제는 과거에 형성된 문화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책은 최근 미국 정부가 이주민을 차별하고,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에 개입하는 정책 등을 ‘현대적 오리엔탈리즘’의 사례로 꼽는다. ‘21세기형 제국’은 점령이 아닌 개발로써 지배자와 피지배자 위계를 형성한다는 지적도 흥미롭다. 약소국의 재건과 성장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경제와 산업에 개입하는 건 팔레스타인과 우크라이나, 나아가 우리나라에서도 반복되는 실정이다. 지금을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 저자는 “무분별한 추앙을 멈추고 나의 권리만큼 타자의 권리가 소중함을 깨달”으며 변화를 일구자고 제언한다. “우리 내면의 콤플렉스를 걷어내고, 자유적이고 창조적인 주체로서 자신을 인식할 때 비로소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의 거대한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는 말이 뼈를 때린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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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00년 역사 황룡사 목탑 ‘부처님 사리함’ 첫 공개

    645년 신라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을 창건할 당시에 마련했던 사리공(사리함을 모시는 공간)이 복원돼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 국립경주박물관은 올해 황룡사지 발굴 조사 50주년을 맞아 12일부터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황룡봉불(皇龍奉佛)’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황룡사 목탑의 심초석(心礎石·탑 중앙에 있는 초석)과 그 주변에서 발견된 문화유산 117건을 소개한다. 특히 복원 이후 처음 공개된 사리공 안쪽에는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 8명이 그려져 있다. 박물관은 전시를 준비하며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인 ‘황룡사 찰주본기(刹柱本記)’에서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900여 자 명문으로 이뤄진 찰주본기는 탑의 중수(重修) 과정과 참여 인물, 사리 등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872년 신라 경문왕이 황룡사 9층 목탑을 손본 뒤 탑 중심부에 금동으로 만든 사리함을 봉안하며 함께 넣은 것이다. 박물관에 따르면 해당 사리함 뚜껑 안쪽 등에서 낯선 이름 4가지가 발견됐다. ‘김충(金忠), 연장(連長), 청선(淸宣), 연창(連昌)’ 등이다. 신명희 학예연구사는 “사리함 무늬를 조각한 장인들일 가능성이 있다”며 “목탑 중수가 왕실뿐 아니라 수많은 기술자와 장인이 참여한 국가적 사업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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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중박 등장한 ‘돌 호랑이’ 귀엽고 해학적인 ‘수호신’

    이달 초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 ‘돌 호랑이’(사진) 한 마리가 등장했다. 광화문 앞을 지키는 늠름하고 근엄한 해태상과 비교하면 어쩐지 귀엽고 해학적인 외모다. 산중호걸이라기엔 다소 허술해 보이지만, 박물관을 지키는 수호신 격이다. 과거 무덤과 마을을 수호하던 석호(石虎)는 삼국시대부터 이어진 석수(石獸·동물 형상을 새겨 만든 석물)의 한 종류다. 조선 중기의 예법서 ‘가례집람(家禮輯覽)’에 따르면 석수는 주로 왕릉 입구에 세워져 묘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인 호랑이와 양, 무덤 앞 문무인석(文武人石·문관과 무관 형상으로 만든 돌)이 타고 다닌다는 말 등 종류가 다양했다. 한길중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는 “특히 ‘맹수의 왕’ 호랑이는 침입을 막는 수호의 의미가 강했다”며 “석호 한두 쌍을 무덤 바깥쪽으로 향하게 세워 묘지를 지키도록 했고, 마을 입구에 세워 수호신처럼 여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석호는 특히 석양(石羊)과 쌍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는 양과 호랑이가 예부터 각각 음과 양을 상징한 것과 관련이 있다. 돌로 만든 사람, ‘석인(石人)’의 표정이 다채롭듯 석수의 얼굴도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 왕릉에 놓인 석호들이 통상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인 것과 달리, 18세기 이후 민묘(民墓)에 세워지기 시작한 호랑이들은 친근한 얼굴을 띠고 있다. 열린마당의 석호도 민묘를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책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4’에서 “민묘의 석호는 장식성이 뛰어나 일찍이 다 분실되고 남은 것이 거의 없다”며 “민화에서 볼 수 있는 귀여운 새끼 호랑이처럼 민예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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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룡사 9층 목탑 사리공 첫 공개…뚜껑에 새겨진 4명 이름 정체는?

    645년 신라에서 황룡사 9층 목탑을 창건할 당시에 마련했던 사리공(사리함을 모시는 공간)이 복원돼 일반에 처음으로 공개됐다.국립경주박물관은 올해 황룡사지 발굴조사 50주년을 맞아 12일부터 특별전 ‘황룡사, 부처의 사리를 모시다―황룡봉불(皇龍奉佛)’를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황룡사 목탑의 심초석(心礎石·탑 중앙에 있는 초석)과 그 주변에서 발견된 문화유산 117건을 소개한다. 특히 복원 이후 첫 공개된 사리공 안쪽에는 부처와 불법을 수호하는 신장(神將) 8명이 그려져 있다.박물관은 전시를 준비하며 국가지정문화유산 보물인 ‘황룡사 찰주본기(刹柱本記)’에서 새로운 사실도 밝혀냈다. 900여 자 명문으로 이뤄진 찰주본기는 탑의 중수(重修) 과정과 참여 인물, 사리 등에 관한 기록이 담겨 있다. 872년 신라 경문왕이 황룡사 9층목탑을 손본 뒤 탑 중심부에 금동으로 만든 사리함을 봉안하며 함께 넣은 것이다. 박물관에 따르면 해당 사리함 뚜껑 안쪽 등에서 낯선 이름 4가지가 발견됐다. ‘김충(金忠), 연장(連長), 청선(淸宣), 연창(連昌)’ 등이다. 신명희 학예연구사는 “사리함 무늬를 조각한 장인들일 가능성이 있다”며 “목탑 중수가 왕실뿐 아니라 수많은 기술자와 장인이 참여한 국가적 사업이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특별전은 과거 신라 사람들이 부처의 사리를 어떻게 모시고 꾸몄는지를 살폈다. 황룡사 이후 여러 사찰로 확산된 사리 신앙의 변천사도 볼 수 있다. 통일신라 시대를 대표하는 사리장엄구인 대구 동화사 비로암 출토(추정) 사리 항아리, 경남 합천 해인사에서 발견된 길상탑 탑지석(塔誌石·탑 건립에 관한 기록을 새긴 돌)과 소탑 등도 관람객을 만난다. 10월 11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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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누구니? 국중박에 나타난 귀여운 ‘돌 호랑이’ 정체는

    이달 초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열린마당에 돌 호랑이 한 마리가 등장했다. 광화문 앞을 지키는 늠름하고 근엄한 해태상과 비교하면 어쩐지 귀엽고 해학적인 외모다. 산중호걸이라기엔 다소 허술해 보이지만, 박물관을 지키는 수호신 격이다.과거 무덤과 마을을 수호하던 석호(石虎)는 삼국시대부터 연원을 두고 있는 석수(石獸·동물의 형상을 새겨 만든 석물)의 한 종류다. 조선 중기의 예법서 ‘가례집람(家禮輯覽)’에 따르면 석수는 주로 왕릉 입구에 세워져 묘를 지키는 역할을 했다. 사악한 기운을 물리치는 벽사의 상징인 호랑이와 양, 무덤 앞 문무인석(文武人石·문관과 무관의 형상으로 만든 돌)이 타고 다닌다는 말 등 종류가 다양했다.한길중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학예연구사는 “특히 ‘맹수의 왕’ 호랑이는 침입을 막는 수호의 의미가 강했다”며 “석호 한두 쌍을 무덤 바깥쪽으로 향하게 세워 묘지를 지키도록 했고, 마을 입구에 세워 수호신처럼 여기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석호는 특히 석양(石羊)과 쌍으로 등장하는 사례가 많다.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이는 양과 호랑이가 예부터 각각 음과 양을 상징한 것과 관련이 있다.돌로 만든 사람, 즉 ‘석인(石人)’의 표정이 다채롭듯 석수의 얼굴도 각자 개성이 뚜렷하다. 왕릉에 놓인 석호들이 통상 근엄하고 무서운 표정인 것과 달리, 18세기 이후 민묘(民墓)에 세워지기 시작한 호랑이들은 친근한 얼굴을 띠고 있다. 열린마당의 석호도 민묘를 지켰을 가능성이 있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책 ‘유홍준의 한국미술사 강의 4’에서 “민묘의 석호는 장식성이 뛰어나 일찍이 다 분실되고 남은 것이 거의 없다”며 “민화에서 볼 수 있는 귀여운 새끼 호랑이처럼 민예적인 아름다움이 느껴진다”고 평가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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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날 둘러싼 논쟁 알아… 잊히지 않을 작품 만들것”

    “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소머리는 ‘가짜’입니다. 한때는 24시간마다 새로운 소머리로 바꿔줘야 했죠. 이젠 예술이란 이름으로 동물을 죽이지 않습니다. 기술력이 발전해서 ‘진짜 같은 가짜’들이 있기 때문이에요.” 영국 현대미술가인 데이미언 허스트(61)가 1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국현미) 서울관에서 전시 중인 그의 대표작 ‘천 년’(1990년)에 대해 “논쟁은 언제나 좋다”며 이렇게 밝혔다. ‘천 년’은 죽은 소와 파리 유충을 이용해 생명의 순환을 표현한 설치물로, 일각에선 “생명 윤리에 어긋난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여러 논쟁을 익히 알고 있다”며 “한국 젊은 세대가 작품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사랑해 줘서 감사하다”고 소회를 전했다. 허스트는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을 이끈 ‘YBA(Young British Artists)’의 대표주자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최근엔 ‘영원한 악동’이란 칭호와 ‘한물간 거장’이란 오명이 동시에 따라다닌다.3월 20일부터 국현미가 선보인 ‘데이미언 허스트 개인전’도 찬사와 비판이 교차하고 있다. 28일 폐막을 앞둔 가운데 지금까지 약 44만 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 하지만 이 전시에 정부 예산 33억 원이 투입돼, 한 작가만 조명한 개인전이 ‘국현미 역대 최고가 전시’가 됐어야 하느냐는 의견도 나온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또 다른 대표작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년)도 논쟁적인 작품. 포르말린 용액에 상어를 넣어 생명 윤리와 높은 작품가, 상어를 교체할 경우 원본으로서의 가치 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허스트는 이에 대해 “무섭지만 피해갈 수 없고, 도저히 잊히지 않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꿈꾸는 이상적인 예술은 “관람객을 끌어당기는 동시에 튕겨 나가게끔 하는 것”이라고 한다. 허스트는 “내 상어가 과연 세월 앞에 졌는지는 미래 세대가 결정할 것”이라며 “동료 데이비드 호크니의 말을 빌리자면 ‘나보다는 장수하는 작품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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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건희 컬렉션, 10월부터 英박물관서 만난다

    “2000년 넘는 시간 동안 한국 예술은 끊임없는 교류와 적응, 재창조를 통해 발전해 왔습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의 풍부한 예술적 유산을 좀 더 넓은 역사적 관점에서 조명해, 오늘날의 문화적 성취가 오랜 역사적 연속성과 연결돼 있음을 보여줄 것입니다.” 10월 1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영국박물관에서 개막하는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 기증품의 국외순회전에 대해 니컬러스 컬리넌 영국박물관장이 8일 전시 포부를 밝혔다. 박물관에 따르면 한반도의 풍부한 창조적 역사를 탐구하는 전시 ‘코리아(Korea)’는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린다. 영국박물관에서 한국 미술을 이처럼 대규모로 조명하는 특별전은 1984년 ‘한국미술 5000년전’ 이후 40여 년 만이다. 컬리넌 관장은 “오늘날 한국은 이른바 ‘한류(Hallyu)’로 불리는, 전례 없는 세계적 영향력을 누리고 있다”며 “이번 전시는 그 긴 역사 속에서 탄생한 뛰어난 작품들을 한자리에 모아, 오늘날 한국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역사적 맥락을 제공할 것”이라고 강조했다.전시 ‘코리아’는 기원전 300년부터 현대에 이르는 국보와 보물 등 주요작 100건을 시대 순으로 선보이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고대 제례용 청동 기물과 13세기 고려청자, 19세기 조선의 일월오봉도 병풍 등을 아우른다. 조선백자는 “유교적 가치관이 반영된 절제된 아름다움”으로, 고려 불화는 “종교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담아낸 명작”으로 소개될 예정이다. 현대 미술로는 백남준(1932∼2006)의 비디오아트, 영국에서 활동 중인 설치미술가 서도호(64)의 ‘자화상(Self-portrait)’ 등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는 한국 미술이 ‘외부의 영향을 수용하면서도 독창적인 문화 정체성을 구축해 온 과정’에 방점을 둘 것으로 알려졌다. 박물관은 겸재 정선이 남긴 국보 ‘인왕제색도’에 대해 “이상화된 상상의 풍경을 주로 그렸던 동시대 화가들과 달리, 정선은 실존하는 산을 정서적으로 깊이 있게 묘사함으로써 한국 산수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명시했다. 영국박물관의 김상아 한국 컬렉션 큐레이터는 “유물이 만들어진 시대적 배경을 깊이 탐구함으로써 한국 역사를 비추는 동시에 시대와 문화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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