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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1400년 전 백제 왕궁에서 연주된 것으로 추정되는 ‘가로피리(횡적·橫笛)’가 충남 부여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됐다. 고구려와 신라를 통틀어 ‘삼국시대 관악기’가 실물로 발견된 건 처음이다.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는 5일 언론공개회를 열고 “2024년부터 2년에 걸친 발굴조사에서 사비(부여)에 도읍을 둔 7세기 백제 왕궁터에서 가로로 부는 피리 1점이 나왔다”고 밝혔다. 이 피리는 지난해 3월 백제 왕과 신하가 국정을 논의하거나 국가적 행사를 열던 조당(朝堂) 건물터 인근 화장실로 추정되는 장소에서 발견됐다. 황색 대나무로 만들어졌고, 몸통 일부는 사라져 전체의 70%가량(22.4cm)이 남아 있다. 탄소연대측정 결과 568~642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분석됐다.연구소 측은 X선 조사를 바탕으로 이 출토품을 “취구(吹口·입김을 불어넣는 구멍) 끝이 막힌 가로피리 형태”로 보고 있다. 국악기 중엔 소금(小笒)과 크기 및 형태가 유사하다. 소금은 대금이나 중금에 비해 길이가 짧아 음역대가 높은 가로피리. 다만 소금보다는 취구가 작고, 내부 지름은 살짝 넓다. 등을 통해 나머지 몸통 30%를 되살린 가로피리 복원판도 선보였다. 현장에서 이 재현품을 시연해 본 김윤희 연주자(부여군충남국악단)는 “소금보다 한음 반 정도 높은 음역대를 갖고 있다”고 감상을 전했다. 고대 악기 전문가인 정환희 국립남도국악원 학예연구사는 “현재 조선시대 때 모습으로 남아 있는 소금에선 날카로운 음색이 강조되는 것과 달리, 백제 가로피리는 부드러운 소리를 낸다”며 “과거 궁중 음악에서 주선율을 담당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백제 피리는 그동안 옛 문서와 그림을 통해서만 존재가 짐작됐다. 백제 유민이 673년경 제작한 불교 석상인 국보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에는 한 악사가 연꽃 위에서 가로피리를 부는 모습이 새겨져 있다. ‘삼국사기’ 백제본기(238년)에 “5년 봄 정월 하늘과 땅에 제사 지낼 때 북과 피리를 사용했다(五年 春正月 祭天地 用鼓吹)”는 기록도 있다. 가로피리의 발굴은 한반도 고음악 연구에도 활력을 더할 것으로 전망된다. 1990년대에 대전 서구 월평동 유적에선 백제 현악기 파편이, 그보다 몇 년 앞서 광주 광산구 신창동 유적에선 백제 이전 연맹체인 마한(馬韓)의 타악기 및 현악기 파편이 나온 적이 있다. 하지만 두 사례 모두 원형이 대부분 소실돼 실제 소리나 주법 등을 파악하긴 어려웠다. 황인호 부여문화연구소장은 “이번 발견은 ‘백제의 소리’를 실증적으로 복원하는 데 결정적 단서가 될 수 있다”고 했다.연구소는 이날 관북리 유적에서 출토된 목간(木簡·글씨를 쓴 나뭇조각) 329점도 함께 공개했다. 백제가 웅진(현 공주)에서 사비로 천도한 538년 직후에 만들어진 목간들로, 국가재정과 관등·관직 등이 기록돼 있다. 한반도 유적에서 이 정도 수량의 목간이 한꺼번에 나온 건 처음이다. 일본에서 만든 한자로 알려졌던 ‘전(畑)’ 자가 적힌 목간도 확인됐다. 오현덕 학예연구실장은 “기존 인식과 달리 백제의 문자가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고, 일본의 고대 문자 문화 성립에도 깊게 연관됐을 가능성을 내다보고 있다”고 말했다.부여=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쇼를 연출했던 세계적인 공연 감독 해미시 해밀턴(사진)이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컴백 공연을 책임진다. 넷플릭스는 “다음 달 21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BTS 컴백 라이브: ARIRANG(아리랑)’ 연출을 ‘라이브 이벤트의 제왕’ 해밀턴 감독이 맡는다”고 4일 밝혔다. 영국 출신인 그는 2012년 런던 올림픽 개회식을 비롯해 미 오스카(아카데미)와 그래미, 에미 등 유명 시상식을 여러 차례 맡았던 스타 감독이다. 해밀턴 감독은 지난해 2월 미식프로축구리그(NFL) 슈퍼볼에서 힙합 가수 켄드릭 라마의 하프타임쇼를 연출해 큰 화제를 모았다. 1일(현지 시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수록곡 ‘골든(Golden)’이 K팝 최초로 그래미 상을 받았던 시상식도 감독으로 참여했다. BTS의 컴백 공연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190여 개국에 생중계된다. 이날 현장에는 수만 명이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서울시는 “재난안전상황실을 중심으로 인파 밀집도를 실시간 관리하고 행사장 일대 지하철역 무정차 통과, 불법 노점상 단속 등의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광장 무대 스크린과 전광판에 여러 언어로 안전 메시지를 송출하는 등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 BTS가 광화문 공연에 하루 앞서 발매하는 정규 5집 앨범 ‘아리랑’은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4일 아리랑은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300만 회 이상 ‘사전 저장(Pre-save)’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6일 컴백 소식을 알린 지 약 19일 만이다. 역대 최다 기록은 지난해 10월 발매 전 약 600만 회 사전 저장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12집 ‘The Life of a Showgirl’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천주교 서울대교구는 성기헌 신부(사진)를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으로 임명했다고 4일 밝혔다. 1999년 사제 서품을 받은 성 신부는 가톨릭대에서 신학을 전공했다. 2014년부터는 같은 대학에서 성의교정 교수로 재직 중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미국 슈퍼볼 하프타임쇼를 연출했던 세계적인 공연 감독 해미시 해밀턴이 방탄소년단(BTS)의 광화문 컴백 공연을 책임진다. 넷플릭스는 “다음 달 21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에서 열리는 ‘BTS 컴백 라이브: ARIRANG(아리랑)’ 연출을 ‘라이브 이벤트의 제왕’ 해밀턴 감독이 맡는다”고 4일 밝혔다. 영국 출신인 그는 2012년 런던올림픽 개막식을 비롯해 미 오스카(아카데미)와 그래미, 에미 등 유명 시상식을 여러 차례 맡았던 스타 감독이다. 해밀턴 감독은 지난해 2월 미식축구리그(NFL) 슈퍼볼에서 힙합 가수 켄드릭 라마의 하프타임쇼를 연출해 큰 화제를 모았다. 1일(현지 시간)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 수록곡 ‘골든(Golden)’이 K팝 최초로 그래미 상을 받았던 시상식도 감독으로 참여했다.BTS의 컴백 공연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190여 개국에 생중계된다. 이날 현장에는 수만 명 이상이 몰릴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서울시는 “재난안전상황실을 중심으로 인파 밀집도를 실시간 관리하고 행사장 일대 지하철역 무정차 통과, 불법 노점상 단속 등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서울광장 무대 스크린과 전광판에 여러 언어로 안전 메시지를 송출하는 등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대책도 검토하고 있다.BTS가 광화문 공연에 하루 앞서 발매하는 정규 5집 앨범 ‘아리랑(ARIRANG)’은 벌써부터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4일 아리랑은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300만 회 이상 ‘사전 저장(Pre-save)’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6일 컴백 소식을 알린 지 약 19일 만이다. 역대 최다 기록은 지난해 10월 발매 전 약 600만 회 사전 저장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12집 ‘The Life of a Showgirl’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송진호 기자jino@donga.com}

방탄소년단(BTS)의 컴백 앨범이 3월 20일 발매를 앞두고 글로벌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 스포티파이에서 300만 회 이상 ‘사전 저장(Pre-save)’ 됐다. 지난해 역대 최다 기록을 세웠던 테일러 스위프트(약 600만 건)를 넘어설 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4일 소속사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이날 BTS 정규 5집 ‘아리랑(ARIRANG)’이 스포티파이에서 사전 저장 횟수 300만 회를 돌파한 것으로 집계됐다. 지난달 16일 컴백 소식을 알린 지 약 19일 만으로, 사전 저장 횟수는 전 세계 관심도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다. 역대 최다 기록은 지난해 10월 발매 전까지 약 600만 회 사전 저장된 테일러 스위프트의 정규 12집 ‘The Life of a Showgirl’이다.신보를 향한 폭발적 관심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팬 플랫폼 위버스에 앨범 발매 및 월드투어 개최 소식이 전해진 뒤 멤버십 가입자 수가 약 3배 급증했다. 외신 보도도 이어지고 있다. 앞서 미국 포브스는 “‘아리랑’이라는 앨범명은 공백기 이후 이들이 다시 뿌리로 돌아왔음을 상징한다. 고향으로의 귀환이자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겠다는 사명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을 내놨다.신보 발표 이튿날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리는 컴백 공연을 위한 준비도 빠르게 이뤄지고 있다. 4일 서울시는 ‘방탄소년단 컴백 행사 관련 현안 점검 회의’를 열고 인파 관리와 바가지요금 근절을 포함한 종합 대책을 논의했다. 서울시 재난안전상황실을 중심으로 인파 밀집도를 실시간 관리하고, 행사장 일대 지하철역 무정차 통과 등 교통 대책과 불법 노점상 단속 등 방안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한편 이날 공연은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 190여 개국에 생중계된다.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광화문 광장에서 단독 공연을 여는 가수나 밴드는 BTS가 처음이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관람객 650만 시대를 맞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람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 개관 시간을 앞당기고 휴관일을 지정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3일 서울 용산구 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다음 달 16일부터 개관 시간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로 30분씩 앞당긴다”고 밝혔다. ‘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도 발표했다. 상반기 중 용산어린이공원 내 주차장을 활용해 주차공간을 확충하고, 8월에는 카페와 야외 계단 등 옥외 편의시설을 조성한다. 상설 전시 유료화에 대비하기 위한 시스템 구축도 진행한다. 온라인 예매와 관람객 정보 수집 등을 관리할 수 있는 고객정보통합관리(CRM) 체계를 12월까지 만들어 내년 상반기에 시범 운영한다. 유 관장은 “유료화 논의는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람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그림 속 인물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얼굴 하관과 손가락은 앳된 소년인데, 절제된 표정과 위엄 있는 자세는 노숙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시선은 정면도 측면도 아닌 대각선 위쪽을 향하고 있다. 이 묘한 초상화의 주인공은 누굴까.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 출품된 소포니스바 앙귀솔라의 ‘스페인 왕자의 초상’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미래의 국왕이 될 인판테(infante·왕실의 어린이를 부르는 말) 펠리페, 카를 5세의 아들.” 연구자들은 이 인물을 펠리페 2세로 추정했지만, 그 정체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됐다. 작품이 완성된 1573년경이면 펠리페 2세(1527∼1598)가 이미 중년이란 게 주된 논쟁거리였다. 이미 40대 후반인 남성과 어린 아이의 모습이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작품을 소장한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은 “당대엔 성인을 어린 시절 모습으로 그리는 관습이 드물지 않았다”며 “특히 왕실 자녀들의 초상을 한데 모아 보면 이런 ‘회상적 초상’ 관행이 더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초상화 주인공이 펠리페 2세라는 쪽에 힘을 싣는 의견이다. 초상화는 국왕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자주 쓰였다. 그림 속 펠리페 2세가 쥐고 있는 물건 역시 ‘왕국을 통솔할 준비가 된 군주’로서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에메랄드빛 사냥복을 입은 왕자의 손엔 최고 통수권자를 상징하는 단도와 지휘봉이 들려 있다. 허공을 향한 왕자의 시선은 관람객들이 자연스레 소년을 올려다보게 만든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 역시 상당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까지도 스페인 궁정의 공식 초상화가 알론소 산체스 코엘료(1531∼1588)가 그렸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16세기 가장 유명했던 여성 화가 앙귀솔라의 솜씨”라는 주장이 중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 출신인 앙귀솔라는 1559년 펠리페 2세의 초청을 받아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했다는 기록도 있다. 초상화를 그리면서 왕비 이사벨 드 발루아의 그림 교사로도 활동했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지난해 ‘관람객 650만’ 시대를 맞은 국립중앙박물관이 관람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 개관 시간을 앞당기고 휴관일을 지정한다. 유홍준 국립중앙박물관장은 3일 서울 용산구 박물관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다음 달 16일부터 개관 시간을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5시 30분까지로 30분씩 앞당긴다”고 밝혔다. 또 기존에는 매년 1월 1일과 설날·추석 당일에만 휴관했으나 3·6·9·12월 첫째 주 월요일에도 문을 닫고 박물관을 정비한다. 유 관장은 “오전에 몰리는 관람객을 분산시키기 위함”이라며 “지난달 67만 명이 방문한 추세대로라면 올해 700만 명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했다.‘머물고 싶은 공간’으로 거듭나겠다는 목표도 발표했다. 상반기 중 용산어린이공원 내 주차장을 활용해 주차공간을 확충하고, 8월에는 카페와야외 계단 등 옥외 편의시설을 조성한다. 가족 단위 관람객이 많은 어린이박물관은 2029년까지 현재의 약 2배 규모(약 4950㎡)로 확장 건립될 예정이다.최근 찬반 논의가 뜨거운 상설 전시 유료화 준비도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 온라인 예매와 관람객 정보 수집 등을 관리할 수 있는 고객정보통합관리(CRM) 체계를 12월까지 구축하고, 내년 상반기에 시범 운영한다는 계획이다. 다만 유 관장은 “유료화 논의는 혼잡도를 낮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관람 환경 개선을 목적으로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 문화유산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전시도 진행한다. 고 이건희 삼성 회장의 기증품을 모은 국외 순회전시는 미국 워싱턴DC에 이어 시카고(3~7월)와 영국 런던(10월~내년 1월)에서 이어진다. 그밖에 일본 도쿄국립박물관과 스위스 취리히미술관, 영국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V&A) 박물관 등과 협업하는 특별전도 추진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그림 속 인물을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얼굴 하관과 손가락은 앳된 소년인데, 절제된 표정과 위엄 있는 자세는 노숙하다는 인상을 풍긴다. 시선은 정면도 측면도 아닌 대각선 위쪽을 향하고 있다. 이 묘한 초상화의 주인공은 누굴까.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 출품된 소포니스바 앙귀솔라의 ‘스페인 왕자의 초상’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미래의 국왕이 될 인판테(infante·왕실의 어린이를 부르는 말) 펠리페, 카를 5세의 아들.”연구자들은 이 인물을 펠리페 2세로 추정했지만, 그 정체는 오랫동안 논쟁의 대상이 됐다. 작품이 완성된 1573년경이면 펠리페 2세(1527~1598)가 이미 중년이란 게 주된 논쟁거리였다. 이미 40대 후반인 남성과 어린 아이의 모습이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는 주장이다. 작품을 소장한 미국 샌디에이고미술관은 “당대엔 성인을 어린 시절 모습으로 그리는 관습이 드물지 않았다”며 “특히 왕실 자녀들의 초상을 한데 모아보면 이런 ‘회상적 초상’ 관행이 더 두드러진다”고 설명했다. 초상화 주인공이 펠리페 2세라는 쪽에 힘을 싣는 의견이다.초상화는 국왕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위한 도구로 자주 쓰였다. 그림 속 펠리페 2세가 쥐고 있는 물건 역시 ‘왕국을 통솔할 준비가 된 군주’로서의 상징성을 드러낸다. 에메랄드빛 사냥복을 입은 왕자의 손엔 최고 통수권자를 상징하는 단도와 지휘봉이 들려 있다. 허공을 향한 왕자의 시선은 관람객들이 자연스레 소년을 올려다보게 만든다.흥미로운 사실은 이 초상화를 그린 화가가 누구인지에 대한 논란 역시 상당했다는 점이다. 20세기 초까지도 스페인 궁정의 공식 초상화가 알론소 산체스 코엘료(1531~1588)가 그렸다고 보는 게 일반적이었다. 그러나 이후 “16세기 가장 유명했던 여성 화가 앙귀솔라의 솜씨”라는 주장이 중론으로 자리 잡았다. 이탈리아 출신인 앙귀솔라는 1559년 펠리페 2세의 초청을 받아 스페인 마드리드로 향했다는 기록도 있다. 초상화를 그리면서 왕비 이사벨 드 발루아의 그림 교사로도 활동했다고 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일제강점기인 1914년, 당시 경성의 광장시장(현 동대문 광장시장)에선 낯설지만 달콤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새로 문을 연 한 가게에서 ‘빵’이란 신문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밀가루와 설탕, 기름 등을 섞어 다양한 빵과 과자를 만든 건 바로 ‘함성환(咸聖煥) 제과공장’.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염경화 조사연구과장이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조선인이 차린 최초의 빵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 최근 한국인의 빵 사랑이 주목받고 있지만, 100여 년 전 경성 사람들의 빵 사랑도 각별했다. 1938년 기준 함성환 제과공장의 한 해 매출액은 18만5000원. 쌀 한 가마니가 18∼2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쌀가마니 9250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 창씨개명에도 이름 지킨 ‘함성환 제과공장’ 염 조사연구과장에 따르면 사장 함성환 씨의 이름을 딴 조선인 첫 빵집 개업 소식은 조선총독부 식산국이 편찬한 ‘조선공장명부’에도 실린다. 당시 ‘왜떡’이라고도 불렸던 빵과 과자, 캐러멜, 껌, 물엿 등을 판매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조선총독부의 창씨개명 압박이 거셌지만, 이 빵집은 광복 직전까지 ‘함성환 제과공장’ 또는 ‘함성환 상점’이란 명칭을 유지했다. 물론 한반도에 빵 문화가 유입된 건 이보다 한참 전인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박물관이 지난달 발간한 연구서 ‘한국의 제과제빵’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을 통해 경성과 부산, 평양, 대구 등 도시를 중심으로 차츰 퍼져 나갔다. 기록상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빵집은 1895년 일본인이 차린 ‘강천과자포(江川菓子鋪)’. 지금의 서울 지하철4호선 명동역 근처에서 1943년경까지 영업하며 조선총독부 관저에도 빵과 과자를 납품했다.일본인들은 주로 조선에서 서양식 빵과 과자를 일본식으로 변형한 ‘화양과자(和洋菓子)’를 만들어 팔았다. 서울 중구 남산동이나 필동, 명동 등에 해당하는 일본인 거류지 중심으로 화양과자점이 늘어났다. 부산에선 1896년 중구 대청동에서 슈크림 빵과 사쿠라모찌(桜餅·벚나무 잎을 감싼 화과자) 등을 파는 ‘야마토야 제과공장’이 문을 열었다. 조선인들은 이런 곳들을 ‘빵집’ 혹은 ‘팡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원장은 “오늘날 ‘한국식 빵’으로 불리는 꽈배기나 생도넛, 상투과자 등은 일본식 빵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며 “1920년대까지 빵은 외래 음식이자 군것질거리로 여겨져 서민에겐 부담되는 별식이었다”고 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아침식사”조선인이 빵 등을 즐기는 문화가 퍼진 건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1927년 동아일보엔 식빵 보존법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식민지 조선의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아침 식사로 식빵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인들은 일본 군납용 빵을 만들면서 제빵 기술을 익혔다”고 설명했다. 광복 뒤엔 일본인이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운영하던 빵집들을 한국인이 인수하기도 했다. 80년 역사의 빵집 노포로 잘 알려진 군산 이성당, 서울 태극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성당은 1910년대 ‘이즈모야 화과자점’을 1945년 고 이석우 씨가 인수했다. 태극당은 같은 해 고 신창근 씨가 제과점 ‘미도리야’를 넘겨받았다. 1940년대엔 제빵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함성환 제과공장에 대한 기록도 1943년 이후 사라졌다. 염경화 과장은 “전시 체제로 물자와 식량이 통제되며 빵집도 급격히 위축됐다”며 “1943년 전국 빵집은 1940년(230여 곳)의 4분의 1 수준인 57곳으로 줄었다”고 전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일제강점기인 1914년, 당시 경성의 광장시장(현 동대문 광장시장)에선 낯설지만 달콤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새로 문을 연 한 가게에서 ‘빵’이란 신문물을 만들기 시작한 것이다. 밀가루와 설탕, 기름 등을 섞어 다양한 빵과 과자를 만든 건 바로 ‘함성환(咸聖煥) 제과공장’. 최근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염경화 조사연구과장이 이곳이 우리나라에서 ‘조선인이 차린 최초의 빵집’이란 사실을 확인했다.최근 한국인의 빵 사랑이 주목받고 있지만, 100여 년 전에도 경성 사람들의 빵 사랑도 각별했다. 1938년 기준 함성환 제과공장의 한 해 매출액은 18만5000원. 쌀 한 가마니가 18~20원 하던 시절이었으니, 쌀가마니 9250개를 살 수 있는 돈이다. ● 창씨개명에도 이름지킨 ‘함성환 제과공장’염 조사연구과장에 따르면 사장 함성환 씨의 이름을 딴 조선인 첫 빵집 개업 소식은 조선총독부 식산국이 편찬한 ‘조선공장명부’에도 실린다. 당시 ‘왜떡’이라고도 불렸던 빵과 과자, 캐러멜, 껌, 물엿 등을 판매했다. 1937년 중일전쟁 발발 이후 조선총독부의 창씨개명 압박이 거셌지만, 이 빵집은 광복 직전까지 ‘함성환 제과공장’ 또는 ‘함성환 상점’이란 명칭을 유지했다.물론 한반도에 빵 문화가 유입된 건 이보다 한참 전인 19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역사박물관이 지난달 발간한 연구서 ‘한국의 제과제빵’에 따르면 당시 일본인을 통해 경성과 부산, 평양, 대구 등 도시를 중심으로 차츰 퍼져나갔다. 기록상 확인되는 가장 이른 시기의 빵집은 1895년 일본인이 차린 ‘강천과자포(江川菓子鋪)’. 지금의 서울 지하철4호선 명동역 근처에서 1943년경까지 영업하며 조선총독부 관저에도 빵과 과자를 납품했다.일본인들은 주로 조선에서 서양식 빵과 과자를 일본식으로 변형한 ‘화양과자(和洋菓子)’를 만들어 팔았다. 서울 중구 남산동이나 필동, 명동 등에 해당하는 일본인 거류지 중심으로 화양과자점이 늘어났다. 부산에선 1896년 중구 대청동에서 슈크림 빵과 사쿠라모찌(桜餅·벚나무 잎을 감싼 화과자) 등을 파는 ‘야마토야 제과공장’이 문을 열었다. 조선인들은 이런 곳들을 ‘빵집’ 혹은 ‘팡집’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함한희 무형문화연구원장은 “오늘날 ‘한국식 빵’으로 불리는 꽈배기나 생도너츠, 상투과자 등은 일본식 빵의 영향을 받았다고 본다”며 “1920년대까지 빵은 외래 음식이자 군것질거리로 여겨져, 서민에겐 부담되는 별식이었다”고 했다.● “모던걸과 모던보이의 아침식사”조선인이 빵 등을 즐기는 문화가 퍼진 건 192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다. 1927년 동아일보엔 식빵 보존법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주영하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교수는 “식민지 조선의 모던보이와 모던걸이 아침 식사로 식빵을 즐긴 것으로 보인다”며 “조선인들은 일본 군납용 빵을 만들면서 제빵 기술을 익혔다”고 설명했다. 광복 뒤엔 일본인이 적산가옥(敵産家屋)에서 운영하던 빵집들을 한국인이 인수하기도 했다. 80년 역사의 빵집 노포로 잘 알려진 군산 이성당, 서울 태극당 등이 대표적이다. 이성당은 1910년대 ‘이즈모야 화과자점’을 1945년 고 이석우 씨가 인수했다. 태극당은 같은 해 고 신창근 씨가 제과점 ‘미도리야’를 넘겨받았다. 1940년대엔 제빵산업이 크게 위축됐다. 함성환 제과공장에 대한 기록도 1943년 이후 사라졌다. 염경화 과장은 “전시 체제로 물자와 식량이 통제되며 빵집도 급격히 위축됐다”며 “1943년 전국 빵집은 1940년(230여 곳) 4분의1 수준인 57곳으로 줄었다”고 전했다.빵집이 본격적으로 대중화한 시기는 1960년대 이후라는 의견이 많다. 함한희 원장은 “정부가 분식 장려 정책을 펼치고 국민 생활 수준도 높아지며 소비가 늘어났다”며 “도시에서 누리는 현대적 문화 공간이자 만남의 장소로 여겨지며, 빵이 주식인 유럽·미국과 다른 ‘빵집 문화’가 생겨났다”고 설명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넷플릭스 애니메이션 ‘케이팝 데몬 헌터스’는 지난해 공개 직후 뜻밖의 요소로 찬사를 받았다. 국밥을 먹으러 간 주인공들이 식탁에 수저를 놓기 전 냅킨부터 깔았기 때문. 이는 한국 문화를 생생하게 고증한 대표적인 장면으로 꼽혔다. 주거 공간과 도시의 진화에 관해 연구해 온 영국 노섬브리아대 건축학과 교수는 이 ‘냅킨 깔기’가 한국 주거 특성에서 비롯했다고 분석한다. 온돌과 마루는 ‘높은 바닥=깨끗함’ ‘낮은 바닥=더러움’이란 인식을 자리 잡게 했다. 저자는 “사람은 집을 만들고, 집은 사람의 행동과 사고방식을 만든다”며 “바닥으로부터의 높이는 일종의 위계였고, 위계에서 만들어진 위생 관념은 집안에서 신발을 신지 않는 문화로도 이어졌다”고 말한다. 특정한 형태가 생겨난 원인을 사회과학적으로 짚고, 인간의 신체나 문화가 그 형태에 따라 어떻게 바뀌는지 살핀 책이다. 도로의 폭은 어떻게 정해졌는지, 동전은 왜 동그랗고 지폐는 왜 네모난지 등에 관해 묻고 답한다. 인간의 손으로 살펴본 세상은 특히 흥미롭다. 엄지는 다른 손가락에 비해 섬세함이 떨어져서 주로 다른 손가락을 보조하거나 받쳐주는 역할에 머물렀다. 그러나 최근 스마트폰이 발달하면서 엄지의 중요성이 급부상했다. 컴퓨터 키보드와 마우스를 조작할 땐 엑스트라에 그쳤던 엄지가 스마트폰에선 화면을 조작하는 주연이 됐다. 이에 저자는 “우리가 어떤 동작을 기계에 맡기고, 어떤 동작을 계속하느냐가 인류 신체의 미래를 다시 쓸지도 모른다”는 통찰을 내놓는다. 스마트폰으로 보는 세로형 숏폼 영상에 빠져드는 사람이 많은 이유는 뭘까. 세로 영상은 가로 영상과 비교해 더 몰입감이 크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는 인간의 가시 영역 중앙에 놓인 양안시(兩眼視) 영역과 관련 있다. 양쪽 눈이 동시에 선명하게 볼 수 있는 이 영역은 전체 가시 영역이 가로로 긴 것과 달리 세로로 길다. 맥락보다는 인물에게 초점을 맞추는 숏폼 영상이 세로로 구성되는 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 셈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최근 각종 소셜미디어 타임라인에 자주 등장하는 해시태그 중 하나는 ‘독서노트’ ‘필사’ 등이다. 에세이 등에 실린 한 구절을 옮겨 적은 노트 사진을 공유하며 “매일 필사를 하면 작은 성취감이 쌓여 간다” “필사의 장점은 내가 나를 만날 수 있는 시간을 준다는 것” 등 필사를 예찬하는 게시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디지털 피로감에 지친 청년 세대가 다시 종이와 책을 집어 들고 있다. 기존 열풍이 책을 읽는 ‘텍스트 힙(text hip)’이었다면, 최근엔 읽고 쓰는 ‘라이팅 힙(writing hip)’으로 퍼져가는 모양새다.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세대에게 쓰기는 신선하고 새로운 자극이 됨과 동시에, 빠르게 소비되는 숏폼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 손을 쓰는 행위 자체가 뇌를 쉬게 하는 휴식이 돼 준다고 한다. 자주 책의 일부 구절을 필사한다는 직장인 김모 씨(32)는 “하루 종일 화면을 보다 손으로 글자를 옮기면 머리가 비워지는 느낌”이라며 “지하철을 타고 다닐 때 노트를 보면서 예전에 적었던 문장을 상기하곤 한다”고 말했다. 필사, ‘라이팅 힙’ 열풍은 출판시장에서도 감지된다. 인터넷서점 예스24의 ‘2025년 도서시장 트렌드’에 따르면 지난해 필사 서적 판매량은 전년 대비 64.7% 증가했다. 2년 연속 판매 상승세다. 신간 종수 역시 크게 늘어 403종으로 전년(181종)의 두 배를 넘어섰다. 최근 5년간 판매된 글쓰기 도서 베스트셀러 1위는 위즈덤하우스에서 출간한 유선경 작가의 ‘하루 한 장 나의 어휘력을 위한 필사 노트’였다. 이런 아날로그적 취미에 맞춰 ‘맞춤 공간’도 늘어나고 있다. 디지털 기기 없이 사색과 글쓰기에 집중하는 ‘라이팅 카페’ ‘라이팅 룸’ 등이 급속도로 많아졌다. 이런 장소들은 대화 금지, 조도를 낮춘 조명, 개인 간 거리를 확보한 좌석 등이 특징이다. 서울 서대문구에 있는 라이팅 카페를 즐겨 찾는다는 홍모 씨(26)는 “소음에 민감한 편인데 독서를 하거나 생각을 정리하기 좋았다”며 “어딜 가도 빠짐없이 소리 지르고 깔깔대는 사람들을 피해 제대로 쉬는 기분이 들었다”고 말했다. 신한카드에 따르면 2025년(1∼10월) 수도권 주요 라이팅 카페 이용 금액은 전년에 비해 71%가 증가했다. 이용 건수와 이용자 수도 각각 37% 늘었다. 지난해 같은 기간에 문구숍의 이용 건수도 2023년 동기 대비 18% 증가했다. ‘라이팅 힙’ 덕에 아날로그적인 취미를 위해 필사용품인 노트나 펜 등을 찾는 이용객이 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신한카드 측은 “인공지능(AI)과 배속 시청, 숏폼 영상처럼 빠르게 소비하는 콘텐츠가 일상으로 자리 잡은 환경 속에서, 오히려 속도를 내려놓고 뇌가 제 기능을 되찾을 수 있는 경험을 찾는 이들이 다시 늘어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술관에 오귀스트 로댕의 청동 조각상과 마르크 샤갈의 석판화가 상설 전시된다.KAIST는 “익명의 소장가로부터 로댕과 샤갈의 작품을 기증받아 미술관 로비에 상설 전시한다”고 29일 밝혔다. 19세기 프랑스 조각 거장 로댕의 작품은 ‘기둥 곁의 아담을 위한 습작’(사진)으로 약 45cm 높이의 청동 조각상이다. 1912년경 로댕이 제작한 석고 원형을 토대로 로댕이 세상을 떠난 뒤 프랑스 로댕 미술관이 공식적으로 주조했다. 당시 주조된 청동상 12점 중 4번째에 해당한다.해당 작품은 로댕의 대표작인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인물인 ‘아담’을 구상하며 제작됐다. 고꾸라진 고개와 비틀린 자세, 울퉁불퉁한 표면 등이 인간 내면의 고뇌를 강렬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다른 전시품인 ‘노란 광대가 있는 서커스’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의 석판화다. 1967년 프랑스 무를로 판화 공방에서 제작됐다. 판화로 찍어낸 150점 가운데 104번째 그림에 해당한다. 평생 서커스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던 샤갈 특유의 환상적 분위기와 역동성이 돋보인다. KAIST 측은 “두 작품은 4월부터 기획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폭넓게 소개할 예정”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바로크 미술의 대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17세기 가장 장대한 예술품 의뢰”로 평가되는 연작을 의뢰받는다. 1622년경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딸 에우헤니아 공주가 가톨릭 수도원에 기증할 20점의 태피스트리 연작을 만들어 달라고 했다.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 출품된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은 이 연작을 위해 제작된 유화 초안 중 하나다. 비록 밑그림이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 높은 예술품으로 여겨진다. 루벤스 특유의 역동적 붓놀림과 풍부한 색채로 완성된 이 작품은 마치 천상의 권위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한 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작품이 만들어졌을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의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루벤스는 여러 우화와 종교적 도상을 활용해 가톨릭 교리의 정당성과 승리를 시각적으로 선포하고자 했다.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은 연작 가운데서도 ‘영속성’을 상징하는 핵심 장면이다.그림 중앙에는 베일을 쓴 여성이 등장한다. 종교화에서 ‘영원’을 상징하는 이 여성은 장미가 줄줄이 달린 긴 끈을 늘어뜨리고 있다. 그림을 소장한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최종 태피스트리에서는 장미가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연작으로 바뀌어 표현됐다”며 “교황권의 영원한 계승과 정당성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그림은 큰 호응을 얻었지만, 이후 ‘떠돌이’ 신세가 된다. 미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연구서 ‘러시아 미술과 미국 자본, 1900-1940’에 따르면 이 유화 초안은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 황제이자 예술 애호가였던 예카테리나 2세의 눈에 띄어 러시아로 넘어간다. 모스크바의 국립미술관(현 푸시킨 미술관)에서 국가적 보물로 관리받았다.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집권한 소비에트 정부는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핵심 소장품 매각’을 비밀리에 실시한다.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 역시 외화벌이 용도로 해외에 내다 팔렸다. 1930년대 유럽과 미국의 경매 시장을 떠돌아다니다가, 1947년 한 개인 소장가가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기증하며 안식처를 찾았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바로크 미술의 대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1577~1640)는 “17세기 가장 장대한 예술품 의뢰”로 평가되는 연작을 의뢰받는다. 1622년경 스페인 국왕 펠리페 2세의 딸 에우헤니아 공주가 가톨릭 수도원에 기증할 20점의 태피스트리 연작을 만들어달라고 했다.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세종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르네상스에서 인상주의까지’전에 출품된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은 이 연작을 위해 제작된 유화 초안 중 하나다. 비록 밑그림이지만, 그 자체로 완결성 높은 예술품으로 여겨진다. 루벤스 특유의 역동적 붓놀림과 풍부한 색채로 완성된 이 작품은 마치 천상의 권위가 지상으로 내려오는 듯한 극적인 분위기를 풍긴다.작품이 만들어졌을 당시 유럽은 종교개혁으로 인한 가톨릭과 프로테스탄의 첨예한 갈등이 벌어지고 있었다. 가톨릭 신자였던 루벤스는 여러 우화와 종교적 도상을 활용해 가톨릭 교리의 정당성과 승리를 시각적으로 선포하고자 했다.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은 연작 가운데서도 ‘영속성’을 상징하는 핵심 장면이다. 그림 중앙에는 베일을 쓴 여성이 등장한다. 종교화에서 ‘영원’을 상징하는 이 여성은 장미가 줄줄이 달린 긴 끈을 늘어뜨리고 있다. 그림을 소장한 미국 샌디에이고 미술관은 “최종 태피스트리에서는 장미가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 연작으로 바뀌어 표현됐다”며 “교황권의 영원한 계승과 정당성을 드러내는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그림은 큰 호응을 얻었지만, 이후 ‘떠돌이’ 신세가 된다. 미 하버드대에서 출간한 연구서 ‘러시아 미술과 미국 자본, 1900-1940’에 따르면 이 유화 초안은 18세기 후반 러시아 제국 황제이자 예술 애호가였던 예카테리나 2세의 눈에 띄어 러시아로 넘어간다. 모스크바의 국립미술관(현 푸시킨 미술관)에서 국가적 보물로 관리 받았다.하지만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집권한 소비에트 정부는 경제난을 타개하고자 ‘핵심 소장품 매각’을 비밀리에 실시한다. ‘영원의 우화, 교황의 계승’ 역시 외화벌이 용도로 해외에 내다 팔렸다. 1930년대 유럽과 미국의 경매 시장을 떠돌아 다니다가, 1947년 한 개인 소장가가 샌디에이고 미술관에 기증하며 안식처를 찾았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대전 유성구 한국과학기술원(KAIST) 미술관에 오귀스트 로댕의 청동 조각상과 마르크 샤갈의 석판화가 상설 전시된다.KAIST는 “익명의 소장가로부터 로댕과 샤갈의 작품을 기증받아 미술관 로비에 상설 전시한다”고 29일 밝혔다. 19세기 프랑스 조각 거장 로댕의 작품은 ‘기둥 곁의 아담을 위한 습작’으로 약 45cm 높이의 청동 조각상이다. 1912년경 로댕이 제작한 석고 원형을 토대로 로댕이 세상을 떠난 뒤 프랑스 로댕 미술관이 공식적으로 주조했다. 당시 주조된 청동상 12점 중 4번째에 해당한다.해당 작품은 로댕의 대표작인 ‘지옥의 문’에 등장하는 인물인 ‘아담’을 구상하며 제작됐다. 고꾸라진 고개와 비틀린 자세, 울퉁불퉁한 표면 등이 인간 내면의 고뇌를 강렬하게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 다른 전시품인 ‘노란 광대가 있는 서커스’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리는 샤갈의 석판화다. 1967년 프랑스 무를로 판화 공방에서 제작됐다. 판화로 찍어낸 150점 가운데 104번째 그림에 해당한다. 평생 서커스를 주제로 작품 활동을 했던 샤갈 특유의 환상적 분위기와 역동성이 돋보인다. KAIST 측은 “두 작품은 4월부터 기획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폭넓게 소개할 예정”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예술이란 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것을 시작하는 일입니다.”‘뜯어내고 메우기’라는 독창적인 화풍으로 한국 미술을 세계에 알린 ‘단색화의 거장’ 정상화 화백(사진)이 2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4세. 1932년 경북 영덕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뒤 인천사범학교 교사로 일하며 작가 생활을 시작했다. 1950년대 중후반부터 추상적 표현에 빠져들었고, 1970∼1980년대 일본과 프랑스에서 활동하면서 ‘격자형 추상회화’라는 독자적 스타일을 구축했다. 1992년 귀국해 경기 여주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갔다.고인의 작품은 뜯어내고 메우기를 반복한 결과물이다. 캔버스에 5mm 두께로 고령토를 발라 말린 뒤 접고, 고령토를 떼어내고 아크릴 물감을 바르는 과정을 되풀이했다. 여러 번 구워내 완성까지 1년 이상 걸리기도 했다. 한때는 ‘벽지 같다’는 조롱을 받았다. 고인은 2023년 개인전에서 “그렇게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게 참 바보스럽지만 그 자체가 내 작품”이라며 “격자를 구획한 선은 내 실핏줄이고, 작품은 곧 내 심장이 뛰고 철렁대는 모습”이라고 했다. 이우환 박서보 작가와 함께 ‘단색화 3인방’으로 불린 고인은 세계 미술계에서도 한국 단색화를 우리말 소리대로 ‘Dansaekhwa’로 표기할 정도로 입지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우환 화백도 “세계 어디서도 이런 장인 정신을 가진 작가는 보지 못했다”며 존경을 표했다. 고인의 작품은 미국 스미스소니언 허시혼미술관과 홍콩 M+, 아랍에미리트 구겐하임 아부다비 등에도 소장돼 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발인은 30일.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문화유산계에서 20년 넘게 뜨거운 감자였던 ‘광화문 현판’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국무회의에서 한글 현판 추가 설치 검토 방안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현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아래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자는 제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이 한자 현판만 보고 우리 역사를 오해한다”는 찬성 의견과 “문화유산의 원형을 바꿔선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조선의 정문 vs 대한민국 정문한글 현판 추가에 가장 반색하는 건 한글단체들이다. 한글학회 등 75개 단체로 구성된 ‘광화문 훈민정음체 현판 설치 국민 모임’은 “한국 문화의 발신지인 광화문 현판이 한자로 돼 있어 우리의 정체성이 온전히 표현되지 못했으나 오랜 염원이 풀리게 됐다”며 환영했다.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도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이 열리는 광화문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의 정면”이라며 “한글 현판은 한글을 공용 문자로 쓰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전 교수는 “전통 건축에 현판이 반드시 1개인 것도 아니다”고도 했다. 실제로 전통 건축물에 현판이 2개 이상 걸린 경우들이 없지 않다. 밀양 영남루와 창경궁 통명전, 덕수궁 석어당 등이다. 다만 이는 모두 한자 현판이다. 반면 광화문에 현판을 추가하면 문화유산의 원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거세다. 한 대학의 사학과 교수는 “한글 현판은 유네스코도 강조하는 ‘원형 보존’ ‘진정성 추구’ 원칙에 어긋난다”며 “통명전과 석어당은 현판이 건물 안팎에 하나씩 달려 있고, 정면에 같은 이름의 다른 현판이 2개 이상 달린 사례는 북한 평양의 대동문뿐”이라고 했다. 밀양 영남루 역시 현판 좌우로 이를 수식하는 ‘강좌웅부(江左雄府)’와 ‘교남명루(嶠南名樓)’를 건 것이라 한글 현판 추가와는 맥락이 다르다는 것. 최 장관이 언급한 ‘중국 자금성’도 직접 비교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금성의 일부 전각과 대문은 하나의 현판 안에 한자와 한족을 지배한 만주족의 만주문자가 나란히 적혀 있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우리에게 한자는 우리 문화의 일부”라며 “한글 현판은 지금부터 새로 짓는 건물에 달면 된다”고 했다.● “문화유산, 정치적 이용 말아야”문체부 추진 제안과는 별개로, 과거 광화문 현판 논쟁이 반복됐던 건 “문화유산을 권력 장식의 도구로 보는 의도”와 연관돼 있단 분석도 나온다. 1968년 6·25전쟁으로 전소됐던 문루를 복원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 자주성’을 내세워 자신이 쓴 한글 현판을 걸었다. 지금의 한자 현판 교체에 물꼬를 튼 건 2005년 1월 유홍준 문화재청장(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당시 ‘원형 복원’을 내세웠지만,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은 8·15 광복절에 맞춰 조선 정조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현판으로 교체하려다 비난 받았다. 졸속 추진이 부실 고증을 낳기도 했다. 2005년 문화재청은 실제와는 반대로 밝은 바탕에 어두운 글씨로 만든 현판 글씨체를 공개했다. 그 결과 2010년 색이 뒤집힌 한자 현판을 거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2023년 내건 새 현판은 2024년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한글로 바꾸자”는 주장을 냈지만,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이 반대했다. 하상복 목포대 정치언론학전공 교수는 “광화문과 그 앞 공간이 지니는 상징적 무게가 현판 문제를 반복적으로 끌어올리며 오래 묵은 정치 갈등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고 했다. 한 고고학자는 “한글이냐 한자냐는 순수히 문화적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문화유산을 정치 목적으로 이용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문화유산계에서 20년 넘게 뜨거운 감자였던 ‘광화문 현판’이 또다시 주목받고 있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0일 국무회의에서 한글 현판 추가 설치 검토 방안을 보고했기 때문이다. 현 한자 현판은 그대로 두고, 아래에 한글 현판을 추가하자는 제안이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외국인 관광객이 한자 현판만 보고 우리 역사를 오해한다”는 찬성 의견과 “문화유산의 원형을 훼손해선 안 된다”는 반대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조선의 정문 vs 대한민국 정문한글 현판 추가에 가장 반색하는 건 한글단체들이다. 한글학회 등 75개 단체로 구성된 ‘광화문 훈민정음체 현판 설치 국민 모임’은 “한국 문화의 발신지인 광화문 현판이 한자로 돼 있어 우리의 정체성이 온전히 표현되지 못했으나 오랜 염원이 풀리게 됐다”며 환영했다.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도 “방탄소년단(BTS) 컴백 공연이 열리는 광화문은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가장 상징적인 공간의 정면”이라며 “한글 현판은 한글을 공용 문자로 쓰는 오늘날 우리나라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고 했다. 전 교수는 “전통 건축에 현판이 반드시 1개인 것도 아니다”고도 했다. 실제로 전통 건축물에 현판이 2개 이상 걸린 경우들이 없지 않다. 밀양 영남루와 창경궁 통명전, 덕수궁 석어당 등이다. 다만 이는 모두 한자 현판이다.반면 광화문에 현판을 추가하면 문화유산의 원형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거세다. 한 대학의 사학과 교수는 “한글 현판은 유네스코도 강조하는 ‘원형 보존’ ‘진정성 추구’ 원칙에 어긋난다”며 “통명전과 석어당은 현판이 건물 안팎에 하나씩 달려 있고, 정면에 같은 이름의 다른 현판이 2개 이상 달린 사례는 북한 평양의 대동문뿐”이라고 했다. 밀양 영남루 역시 현판 좌우로 이를 수식하는 ‘강좌웅부(江左雄府)’와 ‘교남명루(嶠南名樓)’를 건 것이라 한글 현판 추가와는 맥락이 다르다.최 장관이 언급한 ‘중국 자금성’도 직접 비교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금성의 일부 전각과 대문은 하나의 현판 안에 한자와 한족을 지배한 만주족의 만주문자가 나란히 적혀 있다. 우동선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는 “우리에게 한자는 우리 문화의 일부”라며 “한글 현판은 지금부터 새로 짓는 건물에 달면 된다”고 했다.● “문화유산, 정치적 이용 말아야”문체부 추진 제안과는 별개로, 광화문 현판 논쟁이 반복되는 건 “문화유산을 권력 장식의 도구로 보는 의도”와 연관돼 있단 분석도 나온다. 1968년 6·25전쟁으로 전소됐던 문루를 복원할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민족 자주성’을 내세워 자신이 쓴 한글 현판을 걸었다. 지금의 한자 현판 교체에 물꼬를 튼 건 2005년 1월 유홍준 문화재청장(현 국립중앙박물관장)이다. 당시 ‘원형 복원’을 내세웠지만, 불과 몇 개월 남지 않은 8·15 광복절에 맞춰 조선 정조의 글씨를 집자(集字)한 현판으로 교체하려다 비난 받았다.졸속 추진이 부실 고증을 낳기도 했다. 2005년 문화재청은 실제와는 반대로 밝은 바탕에 어두운 글씨로 만든 현판 글씨체를 공개했다. 그 결과 2010년 색이 뒤집힌 한자 현판을 거는 패착으로 이어졌다. 2023년 내건 새 현판은 2024년 유인촌 문체부 장관이 “한글로 바꾸자”는 주장을 냈지만, 최응천 국가유산청장이 반대했다.하상복 목포대 정치언론학전공 교수는 “광화문과 그 앞 공간이 지니는 상징적 무게가 현판 문제를 반복적으로 끌어올리며 오래 묵은 정치 갈등을 다시 소환하고 있다”고 했다. 한 고고학자는 “한글이냐 한자냐는 순수히 문화적 차원에서 논의돼야 한다”며 “문화유산을 정치 목적으로 이용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