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지윤

이지윤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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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장바구니에 담은 세상을 들여다봅니다

leemail@donga.com

취재분야

2026-02-20~2026-03-22
미술25%
역사23%
문화 일반17%
인사일반17%
문학/출판6%
음악4%
요리/음식4%
언론2%
정치일반2%
  • 세상에서 가장 강한 ARMY

    2017년 5월 22일은 K팝 역사에서 거대한 전환점이 됐던 날이다.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빌보드 뮤직 어워즈’에서 방탄소년단(BTS)이 K팝 그룹 최초로 트로피를 거머쥐었다.BTS가 수상한 부문은 ‘톱 소셜 아티스트’. 세계적인 팝스타 저스틴 비버가 2016년까지 독차지했던 부문이다. 팬 투표와 소셜미디어 영향력이 평가 기준이라 글로벌 팬덤의 힘을 보여주는 지표로 꼽힌다. 시상식을 앞두고 BTS 팬덤 ‘아미(ARMY)’는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스트리밍 및 투표 참여 방식을 각국 언어로 번역해 알리고 눈길 끄는 콘텐츠들을 만들어 확산시켰다. 이날 이후 BTS는 해당 부문이 폐지되기 전인 2021년까지 5년간 1위 자리를 지켰다.BTS가 이달 완전체 활동을 재개하며 아미의 막강한 화력에 다시금 관심이 쏠리고 있다. 아미는 조직적인 활동을 통해 BTS를 월드 스타로 탄생시킨 주역이자 4년의 공백기에도 BTS의 글로벌 영향력을 유지한 원동력이다. 미 예일대의 그레이스 카오 교수는 지난해 동아일보와의 화상 인터뷰에서 아미의 저력을 이렇게 설명했다.“글로벌 K팝 팬은 둘로 나뉜다. BTS를 좋아하거나, 좋아했거나.”다양한 국적의 아미들은 소셜미디어를 중심으로 활동하며 ‘BTS 전도사’ 역할을 자처했다. 번역 역할을 담당한 팬들의 활약이 대표적 사례다. 한국어로 된 노래나 예능 콘텐츠가 공개될 때마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 등으로 함축적 의미까지 전달하면서 탄탄한 공감대를 쌓았다. 멤버들의 군 복무 기간에도 팬덤의 결속력은 탄탄했다. 정국의 ‘골든’ 등 솔로 음반이 발표되면 아미들은 신보뿐 아니라 기존 음반과 콘텐츠까지 꾸준히 소비했다.아미는 사회공헌 활동에도 적극 동참하면서 BTS를 알렸다. 그 덕분에 K팝의 이미지 제고에도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0년 6월 BTS가 미 인종차별 반대 운동 단체에 100만 달러를 기부하자 아미는 소셜미디어에서 ‘매치 기부’ 캠페인을 벌여 단 하루 만에 같은 금액을 모았다. 온라인에 참여 방법을 공유하고 ‘기부 인증’을 빠르게 유행시킨 덕분이다. 그 밖에도 환경보호, 재난 구호 등 여러 분야에서 자선 활동을 벌이며 ‘K팝의 선한 영향력’ 이미지를 구축했다.2024년 국제학술지 ‘컴퓨터 통신학과 정보학’에 게재된 논문 ‘트위터에서 결집하는 BTS 아미’에선 세계적인 BTS 열풍이 “초국가적 팬덤에 의해 유통되고 소비되는 사회적 네트워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분석했다. “강압적인 정책이나 통제 없이 자발적이고 조직적인 역할 분담을 통해 거대한 연대를 잇는 유례 없는 행보”가 BTS가 가진 진정한 힘이라고 봤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1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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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이 부른다, 가자

    ‘봄바람이 분다. 떠나야겠다.’ 남쪽 끝 제주 서귀포엔 유채꽃이 지천으로 피고, 북쪽 강원 고성에선 파도에 스미는 빛이 달라진다. 따스한 바람이 겨우내 움츠러들었던 몸을 간질이는 계절. 주머니가 가볍다고 발까지 묶일까.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가 ‘2026 여행 가는 봄’ 캠페인을 통해 4, 5월 교통과 숙박, 여행 등 상품에 다양한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아울러 전국 각지의 다채로운 문화관광 콘텐츠를 연계해 부담 없는 봄나들이를 지원하고 나섰다. 특히 올해 캠페인은 ‘여행을 다르게, 곳곳에 다다르게’라는 표어에 걸맞게 인구감소지역을 비롯한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여행할 때 혜택이 많다. 코레일의 ‘인구감소지역(42곳)행 자유여행상품’을 구매한 여행객은 지정된 관광지를 방문하고 인증하면, 열차 운임의 100%에 해당하는 철도 할인 쿠폰을 받을 수 있다. 서해금빛과 남도해양 등 5개 노선의 테마열차 50% 할인, ‘내일로 패스’ 2만 원 할인 혜택도 있다. 철도 할인 혜택은 4월 1일부터 5월 31일까지 총 9만 명에게 주어진다. 올해 봄맞이 ‘숙박할인페스타’는 연박 할인권이 신설돼 이틀을 묵으면 할인을 더 받는다. 오래 머물러도 한결 여유가 생기는 셈. 4월 8∼30일 비수도권의 숙박시설에서 쓸 수 있는 할인권 약 10만 장(1박 7만 원 이상 상품 3만 원, 7만 원 미만 상품 2만 원 할인)을 온라인여행사를 통해 배포한다. 2박 이상 시 할인권(14만 원 이상 상품 7만 원, 14만 원 미만 5만 원 할인) 1만1000장도 추가로 배포한다. 홈페이지 참조. 강원 평창군 등 인구감소지역 가운데 선정된 16개 지역을 여행하면 경비의 50%를 모바일 지역사랑 상품권으로 환급(개인당 최대 10만 원, 2인 이상 단체 최대 20만 원)하는 ‘지역사랑 휴가지원’ 사업도 4∼8월 진행된다. 환급액은 올해 말까지 써야 한다. 해당 지역 재방문을 유도하자는 취지다. 먼저 해당 지방자치단체에 여행 계획을 신청하고 확인을 받은 뒤 경비 증빙자료를 제출해야 한다. 맞춤형 혜택도 풍성하다. 이달 26일부터 지마켓, 롯데온 특별전 페이지에서 판매하는 국내 여행 상품(이용 기간 4월 1일∼5월 29일)에 대해 최대 40%(5만 원 한도)까지 할인을 받을 수 있다. 연안 지역 숙박과 해양 레저 및 관광 패키지 상품을 할인하는 ‘5월 바다 가는 달’ 캠페인도 추진된다. 또 근로자 휴가지원사업에 참여하는 근로자는 ‘휴가샵 온라인몰’에서 숙박, 입장권, 교통편 등을 최대 50%(3만 원 한도) 할인받을 수 있다. 콘텐츠 창작자와 함께 떠나는 여행상품 ‘5인 5색 취향여행’도 마련됐다. 강원 영월군 청령포 등 관광지 입장료를 최대 50% 할인하는 등 전국 지자체와 관련 기관이 캠페인에 동참한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국내 관광의 매력을 재발견하고 지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자세한 정보는 인터넷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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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어-불어에 없는 부드러운 멜로디, 한국어 그 자체로 아름다워”

    “가수는 가창력을 뽐내거나 가사를 전달하려고 무대에 서는 게 아닙니다. 목소리를 도구로 관객에게 감동과 이야기를 선사해야 하죠. 한국어에는 독일어나 프랑스어엔 없는 부드러운 멜로디가 있으니 그 자체로 아름다워요!” ‘LG와 함께하는 제21회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준결선을 하루 앞둔 19일 서울 강남구의 한 호텔에서 만난 심사위원 안드레아스 마조브와 페터 하일커는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20일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리사이틀홀에서 열리는 준결선에서 참가자들은 김순남 작곡가(1917∼1983)가 작곡한 우리 가곡을 부르게 된다. 한국어가 낯선 해외 심사위원을 상대로 김소월 시인의 ‘산유화’, 오장환 시인의 ‘상렬’ 등에 곡을 붙인 6곡 중 하나를 노래한다. 마조브 심사위원은 “가사를 모르는 관객도 가수가 무엇을 들려주려는지 알 수 있어야 한다”며 “그러려면 목소리에 자기만의 색깔을 부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마조브 심사위원은 최근 독일 최대 규모 극장인 ‘도이체 오퍼 베를린’의 차기 오페라 감독으로 발탁된 인물. 독일 출신 극작가인 하일커 심사위원은 오스트리아의 ‘무지크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부예술감독 겸 캐스팅 총괄 디렉터를 맡고 있다. 두 감독은 이번 콩쿠르에서도 “매우 매우 유망한(very very promising)” 샛별들이 눈에 띈다고 평가했다. 성악 부문으로 열리는 올해 대회엔 11개국 175명이 도전장을 냈으며, 15∼18일 두 차례의 예선을 거쳐 3개국에서 온 13명이 준결선에 올랐다. 하일커 심사위원은 “한국은 훌륭한 인적 자원을 가진 행운아다. 성악가뿐 아니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는 작곡가와 연출가, 지휘자가 많다”며 향후 한국이 스타 예술가 배출을 넘어 오페라 장르의 강국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K콘텐츠를 보면 지난 50년간 모두가 따라가려 했던 미국식 서사와는 완전히 다른 스토리텔링을 갖고 있어요. 그리고 거기에 세계가 열광하고 있죠. 이런 감각을 오페라에도 접목한다면 한국의 오페라는 국내외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게 될 거라고 봅니다.” 마조브 심사위원 역시 “지난 수십 년간 쌓아온 한국만의 독창성이 핵심 무기”라고 짚었다. “단순히 해외 프로덕션을 수입하는 단계에 그치지 않고, 여러분이 가진 세계 최고의 영화 산업처럼 창의력을 발휘한다면 무대에서도 같은 성공을 거둘 수 있습니다.” 콩쿠르의 경쟁 시스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마조브 심사위원은 “모든 예술가는 무대에 오르는 순간 경쟁한다”고 했다. “오랜 전통이 있고, 같은 노래를 부르는 동료들이 있기에 무대에선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어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만의 소리를 찾을 수도 있습니다.” 하일커 심사위원은 요즘엔 “자기 색깔을 가진 성악가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했다. 지난 20∼30년간 테크닉을 우선시하는 분위기가 확산하면서 개성이 약해졌는데, 다시 목소리가 다양해지고 있다고 한다. 그는 “60∼70년 전엔 기술적으론 지금보다 부족했지만, 성악가마다 뚜렷한 색깔로 각자 다른 감동을 줬다”며 “특히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영향으로 관객이 ‘스펙터클함’에 익숙해지면서 개성이 없는 목소리는 외면받기 십상”이라고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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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죽음과 욕망, 허스트가 왔다

    “이젠 상어조차 마치 하품하는 것처럼 보인다. 첫 작품이 최고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동시에 끝의 시작이기도 했다.”2012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의 회고전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형 선고에 가까운 평을 남겼다. “초기에 재능은 있었다. 그러나 이후 그 성공을 계속 되풀이했다”며 개념적 반복과 노골적인 자기 노출을 호되게 지적했다. 이처럼 ‘과거에 박제된 고인물’이라는 조롱과 ‘지치지 않는 현대미술계 악동’이란 찬사가 혼재하는 허스트의 대규모 개인전이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국현미)에서 개막한다.18일 언론에 먼저 공개된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전은 초기작부터 약 35년에 걸친 설치, 조각, 회화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아시아권 국가에서 열린 허스트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 포르말린 용액이 담긴 수조에 상어를 넣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년) 등 교과서에 실린 대표작도 줄줄이 출품됐다. 국현미의 예산과 인력이 아니라면 국내에선 만나보기 힘들었을 수준과 규모다.일단 현대미술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의 작품을 실물로 본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세계적인 작가 트레이시 에민, 마크 퀸 등과 함께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는 허스트는 영국 등 유럽 미술의 지형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수정 전시과장은 “우리 모두 허스트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지가 아닌 진본을 본 경험은 많지 않다”며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 세계를 마주하고 경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년)도 한국을 찾았다. 허스트가 가격을 올리려 “가짜 마케팅을 벌였다”는 논란이 불거졌던 그 작품이다. 두개골을 백금으로 만든 뒤 실제 사람 치아를 넣고, 다이아몬드 8601개로 장식했다. 이사빈 학예연구관은 “영원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의 조합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삶의 무상함을 대비시킨다”고 설명했다. 김성희 국현미 관장의 저서 ‘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에서 허스트는 “작품 원제(For the love of God)는 ‘빌어먹을! 하느님 맙소사’에 가깝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허스트가 시각적 충격을 앞세워 꾸준히 의문을 던져 온 주제들을 총체적으로 다뤘다. 삶과 죽음, 예술과 시장, 믿음과 욕망 등을 아우른다. 다만 허스트라는 거대 ‘브랜드’가 워낙 숱하게 다뤄진 탓인지, 기대만큼 신선함은 느끼기 어려웠다. 죽은 소와 파리 유충을 이용해 생명의 순환을 표현한 대표작 ‘천 년’(1990년) 등을 마주해도 그리 놀랍진 않다. 오히려 세간엔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들이 더 반갑다. 가죽이 벗겨진 성인(聖人)이 해부용 도구인 가위와 메스를 들고 서 있는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2007년), 하늘로 솟구친 칼날들 위로 비치볼이 아슬아슬하게 떠다니는 ‘사랑의 취약성’(2000년) 등은 “무거운 소재와 익살을 대비시키는 허스트 특유의 반의적이고 양가적인 표현”을 여실히 보여준다.마지막 전시 공간도 인상적이다. 허스트의 런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 와 보여준다. ‘앙리 마티스 모사작’ 등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다는 유화 페인팅 작품들도 있다. 다만 왜일까. 전시장을 걷다 보면, 20세기를 호령했던 옛 브릿팝 밴드가 뒤늦게 방한한 콘서트에 간 기분이 든다.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 허스트는 해골 무늬 상의를 입고서 짧은 소감을 남겼다. “이렇게 환영해 주다니 감사하다.” 6월 28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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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미술계 악동’ 데이미언 허스트 서울 상륙…대표작 50여점 한눈에

    “이젠 상어조차 마치 하품하는 것처럼 보인다. 첫 작품이 최고였을지 모르지만, 그것은 동시에 끝의 시작이기도 했다.”2012년 영국 런던 테이트모던에서 열린 데이미언 허스트의 회고전에 대해 영국 일간 가디언은 사형 선고에 가까운 평을 남겼다. “초기에 재능은 있었다. 그러나 이후 그 성공을 계속 되풀이했다”며 개념적 반복과 노골적인 자기 노출을 호되게 지적했다. 이처럼 ‘과거에 박제된 고인물’이라는 조롱과 ‘지치지 않는 현대미술계 악동’이란 찬사가 혼재하는 허스트의 대규모 개인전이 20일 서울 종로구 국립현대미술관(국현미)에서 개막한다.18일 언론에 먼저 공개된 ‘데이미언 허스트: 진실은 없어 그러나 모든 것은 가능하지’전은 초기작부터 약 35년에 걸친 설치, 조각, 회화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아시아권 국가에서 열린 허스트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 포르말린 용액이 담긴 수조에 상어를 넣은 ‘살아있는 자의 마음속 죽음의 물리적 불가능성’(1991년) 등 교과서에 실린 대표작도 줄줄이 출품됐다. 국현미의 예산과 인력이 아니라면 국내에선 만나보기 힘들었을 수준과 규모다.일단 현대미술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긴 작가의 작품을 실물로 본다는 건 큰 의미가 있다. 세계적인 작가 트레이시 에민, 마크 퀸 등과 함께 ‘YBA(Young British Artists)’로 불리는 허스트는 영국 등 유럽 미술의 지형을 바꿨다는 평가를 받는다. 송수정 전시과장은 “우리 모두 허스트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지가 아닌 진본을 본 경험은 많지 않다”며 “이번 전시는 그의 작품 세계를 마주하고 경험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획 의도를 밝혔다.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던 작품 ‘신의 사랑을 위하여’(2007년)도 한국을 찾았다. 허스트가 가격을 올리려 “가짜 마케팅을 벌였다”는 논란이 불거졌던 그 작품이다. 두개골을 백금으로 만든 뒤 실제 사람 치아를 넣고, 다이아몬드 8601개로 장식했다. 이사빈 학예연구관은 “영원함과 아름다움의 상징인 다이아몬드, 죽음을 의미하는 해골의 조합은 인간의 끝없는 욕망과 삶의 무상함을 대비시킨다”고 설명했다. 김성희 국현미 관장의 저서 ‘내가 만난 데미언 허스트’에서 허스트는 “작품 원제(For the love of God)는 ‘빌어먹을! 하느님 맙소사’에 가깝다”고 밝혔다. 이번 전시는 이처럼 허스트가 시각적 충격을 앞세워 꾸준히 의문을 던져온 주제들이 총체적으로 다뤘다. 삶과 죽음, 예술과 시장, 믿음과 욕망 등을 아우른다. 다만 허스트라는 거대 ‘브랜드’가 워낙 숱하게 다뤄진 탓인지, 기대만큼 신선함은 느끼기 어려웠다. 죽은 소와 파리 유충을 이용해 생명의 순환을 표현한 대표작 ‘천 년’(1990년) 등을 마주해도 그리 놀랍진 않다. 오히려 세간엔 비교적 덜 알려진 작품들이 더 반갑다. 가죽이 벗겨진 성인(聖人)이 해부용 도구인 가위와 메스를 들고 서 있는 ‘성 바르톨로메오, 극심한 고통’(2007년), 하늘로 솟구친 칼날들 위로 비치볼이 아슬아슬하게 떠다니는 ‘사랑의 취약성’(2000년) 등은 “무거운 소재와 익살을 대비시키는 허스트 특유의 반의적이고 양가적인 표현”을 여실히 보여준다.마지막 전시 공간도 인상적이다. 허스트의 런던 작업실을 그대로 옮겨와 보여준다. ‘앙리 마티스 모사작’ 등 그가 최근 몰두하고 있다는 유화 페인팅 작품들도 있다. 다만 왜일까. 전시장을 걷다보면, 20세기를 호령했던 옛 브릿팝 밴드가 뒤늦게 방한한 콘서트에 간 기분이 든다. 이날 언론 공개회에서 허스트는 해골 무늬 상의를 입고서 짧은 소감을 남겼다. “이렇게 환영해 주다니 감사하다.” 6월 28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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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트럼프 이민정책’ 비판한 美영화 오스카 6관왕

    “우리가 다음 세대에게 넘겨줄 이 세상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은 것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이 영화를 만들었습니다.”(폴 토머스 앤더슨 감독) 15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제98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6관왕을 차지한 영화 ‘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의 앤더슨 감독은 현재 혼란스러운 미국 상황을 염두에 둔 듯한 수상 소감을 밝혔다.‘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한때 혁명가로 활동한 밥 퍼거슨(리어나도 디캐프리오)이 백인 민족주의 권력으로 인해 위험에 빠진 딸을 구하는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 속 극우 성향 군 장교가 반이민 선동과 백인우월주의 조직과 결탁해 권력을 얻는 모습 등이 반(反)이민주의, 소수자 배제 정책을 펼치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정권에 대한 비판적 서사로 풀이된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오늘날 독성처럼 퍼지는 트럼프주의 열광을 우스꽝스럽고 희극적인 저항으로 승화했다”고 평했다. 앤더슨 감독은 수상 무대에서 “아이들이 우리에게 다시 상식과 품위를 가져다줄 세대가 되길 바라는 격려의 뜻을 담았다”며 “다른 후보작 및 동료 감독들과 멋진 여정의 일부를 함께할 수 있어 기쁘다”고도 했다.‘원 배틀 애프터 어나더’는 작품상은 물론이고 감독상, 남우조연상, 각색상, 편집상, 캐스팅상을 휩쓸며 올해 오스카의 주인공이 됐다. 다만 극 중 인종차별주의 군인을 연기한 배우 숀 펜은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나, 시상식엔 불참했다. 영화 ‘씨너스: 죄인들’도 4관왕에 올랐다. 해당 작품은 오스카 사상 역대 최다 부문(16개)에 후보로 오르는 기록을 세웠다. 193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인종차별 문제를 뱀파이어물과 액션, 호러 등의 장르를 결합해 다뤘다. 작품을 연출하고 대본을 쓴 라이언 쿠글러 감독에게 각본상이 돌아갔으며, 일란성 쌍둥이 형제를 연기한 배우 마이클 B 조던은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조던은 수상 소감에서 아프리카계 미국인 배우 시드니 포이티어와 핼리 베리 등을 거론하면서 “나보다 먼저 길을 만든 사람들 덕분에 이 자리에 서 있다”고 감사를 전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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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2cm ‘초대형 주먹찌르개’ 전곡선사박물관서 첫 공개

    지금으로부터 20만∼25만 년 전 한반도에는 ‘직립한 사람’을 뜻하는 호모에렉투스가 살았다. 이들은 오늘날의 한탄강 일대에서 본격적인 석기 문화를 꽃피웠다. 단단한 돌을 정교하게 깨고 다듬는 당대 ‘최신 기술’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 날카로운 석기를 제작하다 보면 다치기 쉬웠다. 미국 고고학회에 따르면 이는 먹고살기 위해 “치명적 상처와 감염을 무릅쓴” 행위였다. 그런데 이들은 어느 날 어떤 이유에선지 길이 42cm, 무게 10kg에 이르는 초대형 석기를 만들었다. 보통 석기가 성인 손바닥 안팎 크기라는 점에 비춰 보면 이례적이다. 한탄강 일대에서 구하기 쉬운 화강편마암으로 만들었는데, 윗부분이 좌우대칭을 이루도록 떼어낸 뒤 끝 날을 정제한 모양은 ‘주먹찌르개’에 가깝다. 경기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이 상설전시실 개편을 마치고 12일 재개관하면서 세계 최대 양면(兩面)석기를 일반에 처음 공개했다. 2021년 아파트 건설 공사를 앞둔 전곡리 85-12번지 부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곡리 유적 중 가장 오래된 20만여 년 전 지층에서 나왔다. 이 석기는 지금까지 국내외 학계에 보고된 양면석기 중 가장 크고 무거운 것으로 확인됐다. 양면석기에는 주먹도끼와 주먹찌르개, 주먹칼 등이 포함된다. 박물관 측은 이 주먹찌르개를 ‘고인류의 도구 제작 목적을 새롭게 해석할 단서’로 보고 있다. 통상 주먹찌르개는 가죽을 찢거나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 생존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 이한용 박물관장은 “초대형 석기는 실용성이 떨어진다”며 “‘내가 이 정도의 석기를 만들 수 있다’는 힘과 능력을 과시하거나 의례, 장식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 목적 등에 관한 연구 결과는 5월 개막하는 ‘땅속의 땅, 전곡’ 전에서 발표될 예정이다.연천=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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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운4구역 허가 없이 시추” 유산청, SH공사 경찰 고발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 인근 세운4구역에서 허가 없이 공사를 벌인 혐의가 드러나 경찰에 고발됐다. 국가유산청은 16일 “SH공사가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매장유산이 있는 지역에서 11곳을 시추(지층 구조 등을 조사하려 구멍을 깊이 팜)한 사실을 11일 확인하고 관련 행위를 중단시킨 뒤 고발했다”고 밝혔다. 매장유산법에 따르면 매장유산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은 발굴 조사를 모두 마쳤다는 행정적 조치가 없으면 공사를 추진해선 안 된다. 세운4구역 일대는 2022∼2024년 조사에서 조선시대 도로 체계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을 비롯해 여러 건물터와 배수로 등이 확인됐다. 유산청은 세운4구역의 고층 개발과 관련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부터 14일 전달받은 서한 내용도 공개했다. 유네스코 측은 “서울시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이달 안에 회신하지 않을 경우, 종묘를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보존 의제’로 상정하거나 공식 현장 실사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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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가유산청 “SH공사, 종묘 인근 11곳 무허가 시추” 고발

    서울주택도시개발공사(SH)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종묘(宗廟) 인근 세운4구역에서 허가 없이 공사를 벌인 혐의가 드러나 경찰에 고발됐다.국가유산청은 16일 “SH공사가 세운4구역 도시환경정비사업부지 내 매장유산이 있는 지역에서 11곳을 시추(지층 구조 등을 조사하려 구멍을 깊이 팜)한 사실을 11일 확인하고 관련 행위를 중단시킨 뒤 고발했다”고 밝혔다.매장유산법에 따르면 매장유산이 있는 것으로 인정되는 지역은 발굴 조사를 모두 마쳤다는 행정적 조치가 없으면 공사를 추진해선 안 된다. 세운4구역 일대는 2022∼2024년 조사에서 조선시대 도로 체계를 엿볼 수 있는 흔적을 비롯해 여러 건물터와 배수로 등이 확인됐다. 유산청 허가 없이 토목 공사 등을 진행할 경우 10년 이하의 징역이나 1억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유산청은 세운4구역의 고층개발과 관련해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로부터 14일 전달받은 서한 내용도 공개했다. 유네스코 측은 “서울시가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받겠다는 내용의 서한을 이달 안에 회신하지 않을 경우, 종묘를 7월 부산에서 열리는 제48차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보존 의제’로 상정하거나 공식 현장 실사를 할 수 있다”고 전했다. 현재 유산청과 서울시는 세계유산영향평가 이행 등을 두고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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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곡선사박물관, 20만년 전 ‘세계 최대 주먹찌르개’ 첫 공개

    지금으로부터 20만~25만 년 전 한반도에는 ‘직립한 사람’을 뜻하는 호모에렉투스가 있었다. 이들은 오늘날의 한탄강 일대에 살면서 본격적인 석기 문화를 꽃피웠다. 단단한 돌을 정교하게 깨고 다듬는 당대 ‘최신 기술’로 도구를 만들어 쓰기 시작한 것. 미국 고고학회에 따르면 석기 제작은 먹고살기 위해 “치명적 상처와 감염을 무릅쓴” 행위였다.그런데 하루는 어떤 이유에선지 길이 42cm, 무게 10kg에 달하는 초대형 석기를 만들었다. 일반적인 석기가 성인 손바닥 안팎 크기라는 점에 비춰보면 이례적이다. 한탄강 일대에서 구하기 쉬운 화강편마암으로 만들어졌는데, 윗부분이 좌우대칭을 이루도록 떼어낸 뒤 끝 날을 정제한 모양은 ‘주먹찌르개’에 가깝다. 경기 연천군 전곡선사박물관이 상설전시실 개편을 마치고 12일 재개관하면서 ‘역대 최대 크기’ 양면석기(兩面石器)를 처음 일반에 공개했다. 2021년 아파트 건설 공사를 앞둔 전곡리 85-12번지 부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전곡리 유적 중 가장 오래된 층위인 20만여 년 전 지층에서 발굴됐다.이는 지금까지 국내외 학계에 보고된 양면석기 중 가장 크고 무거운 것으로 확인된다. 양면석기에는 주먹도끼와 주먹찌르개, 주먹칼 등이 포함된다. 세계적인 구석기 유적인 탄자니아 올두바이 고지(길이 31cm)나 프랑스 아라고 유적(길이 33cm)에서 나온 석기와 비교해도 길이가 길고, 무게는 2~3배에 달한다. 박물관 측은 이 주먹찌르개를 ‘고인류의 도구 제작 목적을 새롭게 해석할 단서’로 보고 있다. 통상 주먹찌르개는 가죽을 찢거나 나뭇가지를 자르는 등 생존을 위한 도구로 쓰였다. 이한용 박물관장은 “초대형 석기는 실용적 기능이 떨어진다”며 “‘내가 이 정도의 석기를 만들 수 있다’는 힘과 능력을 과시하거나 의례, 장식 용도로 사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제작 목적 등에 관한 연구 결과는 올 5월 개막하는 ‘땅속의 땅, 전곡’ 전에서 발표될 예정이다.개편된 전시실에는 초대형 석기와 같은 지층에서 출토된 가로날도끼, 주먹도끼 등 여러 석기가 함께 공개됐다. 전곡리 유적을 최초로 발견한 미국 군인 그렉 보웬(1950~2009)이 해외 학계에 보냈던 보고서와 학자들의 서신 원본도 전시됐다. 김소영 학예연구사는 “보웬이 강변의 토층(土層·지각 맨 윗부분 흙으로 된 층)에서 석기를 발견한 것과 달리, 이번 전시된 석기들은 과거 지층에서 출토돼 연대가 비교적 분명하다”며 “전곡리 유적에서 가장 오래된 유물층을 규명하는 단서가 될 것”이라고 했다.연천=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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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책의 향기]서구 시각으로 본 ‘성경 vs 코란’ 전쟁

    7세기 말에서 8세기 초 동로마제국은 큰 혼란을 겪고 있었다. 주변국과 전쟁이 이어졌고, 종교적·사회적 분열은 심각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715년 이슬람교도들이 ‘백향목의 땅’이라고 불린 레바논의 온 숲을 베어내 전함 수만 척을 건조한다는 소문이 들려왔다. 12만 명의 지하드(성전·聖戰) 전사가 말과 낙타를 이끌고 ‘끝장내러 온다’는 소식도 전해졌다. 717년, 이슬람제국은 실제로 ‘콘스탄티노플 포위전’을 시작했다. 7세기 아라비아 사막의 작은 종교로 출발한 이슬람교가 세력을 넓히며 기독교와 충돌한 격돌의 역사를 담은 책이다. 미국 의회도서관 아프리카·중동 지역 전문연구원을 거쳐 현재 게이트스톤 연구소(Gatestone Institute) 소속 선임 펠로로 활동하는 역사가가 썼다. 책은 두 종교의 피비린내 나는 1400년 전쟁사 가운데 8개의 굵직한 전투를 꼽아 각각을 살핀다. 이슬람교가 기독교 세계를 강습한 636년 야르무크 전투부터 이슬람교가 서구에서 저문 기점이 되는 1683년 빈 포위전까지를 아우른다. 각 측의 희비가 교차하는 순간을 아랍어, 그리스어, 라틴어 등으로 쓰인 사료 및 논문으로 뒷받침했다. 영화를 보는 듯 묘사가 핍진하다. 저자는 이 같은 무력 충돌이 반복됐던 이유도 구조적으로 분석했다. 폭력은 신학적 논리로 합리화됐는데, 신앙심 이면엔 물질적 동기가 있었다. 책에 따르면 십자군 운동의 추동력은 ‘중세적이고 강건한 아가페적 사랑’이었고, 11세기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이교도들과 싸우라… 하느님의 군사가 되라”고 충돌을 부추겼다. 이슬람교 경전 ‘코란’은 “모든 전리품을 약속하며 추종자들을 전쟁으로 끌어들였다”고 말한다. 책은 표면적으로 중립적이지만, 서구 중심적 정서가 곳곳에서 드러난다. 저자는 “왜곡되고 악마화된 십자군의 이미지가 전파되고 오늘날까지도 따라다니고 있다. 반면 이슬람교도의 지속적 공격은 ‘보복’이라는 명목으로 정당화된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소속된 게이트스톤 연구소는 ‘서구 문명의 위기를 프레임 삼아 반(反)이슬람 정서를 강화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는 점을 참고로 하자.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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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예술 등 ‘뉴미디어 특화’ 공공미술관 오픈

    서울에서 첫 번째 ‘뉴미디어 특화’ 공공 미술관인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하 서서울미술관)이 12일 문을 열었다. 서울시립미술관은 “서남권 첫 공립 미술관이자 뉴미디어 예술에 특화된 8번째 신규 분관인 서서울미술관을 개관했다”고 이날 밝혔다. 서서울미술관은 금천·구로·영등포 등 서남권 지역 문화 인프라 확충을 목표로 2015년 건립 준비가 시작됐다. 금천구 독산동에 총 3개 층, 연면적 7186㎡ 규모로 지어졌다. 서서울미술관은 뉴미디어 특화라는 취지에 맞게 영상·음향예술과 퍼포먼스, 디지털 미디어 예술 등을 집중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이를 위해 가변형 전시실도 마련됐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합친 층고 높은 공간에 롤스크린을 내리면 화이트큐브 전시실로 바뀐다. 건물 1층 동쪽에는 뉴미디어 예술을 창작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인 ‘미디어랩’이 있다. 개관을 기념해 특별전과 연계 프로그램을 7월까지 잇달아 연다. 먼저 다음 달 12일까지 한 달간 퍼포먼스 ‘호흡’이 진행된다. 공기 속에 공존하는 여러 존재의 삶과 죽음, 인간의 행위와 궤적을 신체 퍼포먼스로 풀어낸다. 미술관 측은 “향후 국립극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과 협력해 퍼포먼스 기반 예술가들의 창작 및 제작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 특별전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3월 12일∼7월 12일)는 서서울미술관 건립 과정과 서남권 주민의 삶에 담긴 서사를 ‘기억의 기록’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뉴미디어 소장품전 ‘서서울의 투명한 |청소년| 기계’(5월 14일∼7월 26일)에선 미술관이 소장한 주요 대형 뉴미디어 작품 10여 점이 공개된다. 6월 7일까지 미술관 야외 잔디마당에서는 ‘세마프로젝트V_얄루’가 진행된다. 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예술의 새로운 매체와 언어로 인식하고 이를 실험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지역과 세대,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그동안 시각예술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겠다”고 다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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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 첫 뉴미디어 공공미술관 ‘서서울미술관’ 개관

    서울에서 첫 번째 ‘뉴미디어 특화’ 공공 미술관인 서울시립 서서울미술관(이하 서서울미술관)이 12일 문을 열었다.서울시립미술관은 “서남권 첫 공립 미술관이자 뉴미디어 예술에 특화된 8번째 신규 분관인 서서울미술관을 개관했다”고 이날 밝혔다. 서서울미술관은 금천·구로·영등포 등 서남권 지역 문화 인프라 확충을 목표로 2015년 건립 준비가 시작됐다. 금천구 독산동에 총 3개 층, 연면적 7186㎡규모로 지어졌다. 서서울미술관은 뉴미디어 특화라는 취지에 맞게 영상·음향예술과 퍼포먼스, 디지털 미디어 예술 등을 집중적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특히 이를 위해 가변형 전시실도 마련됐다. 지하 1층과 지상 1층을 합친 층고 높은 공간에 롤스크린을 내리면 화이트큐브 전시실로 바뀐다. 건물 1층 동쪽에는 뉴미디어 예술을 창작하고 실험할 수 있는 공간인 ‘미디어랩’이 있다. 개관을 기념해 특별전과 연계 프로그램을 7월까지 잇달아 연다. 먼저 다음 달 12일까지 한 달 간 퍼포먼스 ‘호흡’이 진행된다. 공기 속에 공존하는 여러 존재의 삶과 죽음, 인간의 행위와 궤적을 신체 퍼포먼스로 풀어낸다. 미술관 측은 “향후 국립극단,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등과 협력해 퍼포먼스 기반 예술가들의 창작 및 제작을 지원할 계획”이라고 했다.특별전 ‘우리의 시간은 여기서부터’(3월 12일~7월 12일)는 서서울미술관 건립 과정과 서남권 주민의 삶에 담긴 서사를 ‘기억의 기록’으로 조명하는 전시다. 뉴미디어 소장품전 ‘서서울의 투명한 |청소년| 기계’(5월 14일~7월 26일)에선 미술관이 소장한 주요 대형 뉴미디어 작품 10여 점이 공개된다. 6월 7일까지 미술관 야외 잔디마당에서는 ‘세마프로젝트V_얄루’가 진행된다.최은주 서울시립미술관장은 “기술을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예술의 새로운 매체와 언어로 인식하고 이를 실험하는 공간이 될 것”이라며 “지역과 세대, 기술과 예술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그동안 시각예술이 걸어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겠다”고 다짐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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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톱을 든 할머니 조각가’ 김윤신, 깎고 다듬고… 나무와 하나된 70여년

    기골이 옹근 나뭇조각에서 꿈틀대는 자연의 파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진한 고동색 통나무를 전기톱으로 깎고 다듬어 하나의 뼈대에 기하학적 덩어리들을 붙인 모양새다. 못 하나 쓰지 않았으나, 나무가 땅에 뿌리내린 듯 단단해 보였다. 표면에선 날카로운 끌과 둔탁한 망치의 흔적, 나무 본연의 얼굴인 옹이와 껍질이 숨김 없이 드러났다.‘전기톱을 든 할머니 조각가’ 김윤신 작가(91)가 70여 년 예술 인생에서 “가장 정든 작품”으로 꼽은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17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회고전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 공개되는 이 작품을 김 작가는 1987년 완성했다. 그가 오직 나무만 보고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지 4년이 지난 시점. 말도 거의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에서 어렵게 구한 통나무 앞, 그는 전기톱을 단단히 쥐고서 숨을 골랐다. 11일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이 작품을 만들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내가 나무가 되고, 나무가 내가 되는 순간을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정신이 깨끗해진 때 톱을 들고 자르기 시작했죠. 이국의 나무는 톱이 튕길 정도로 단단했기에 나무와 톱, 내가 하나 돼야 뜻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작품과 재료가 하나 됨으로써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가 탄생하는 과정’은 그의 작업 이념과 직결된다. 작품명이자 전시 부제인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 함축하고 있는 예술 세계의 근간인 셈. 김 작가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조각과 판화, 회화 등 그의 일생에 걸친 작품 약 1500점 중 175점을 엄선해 소개한다. 호암미술관이 개관한 1982년 이래 이곳에서 개인전을 여는 한국인 여성 작가는 그가 처음이다. 전시는 196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의 석판화부터, 조각에 회화를 적극적으로 결합한 최근작까지를 아우른다. 아르헨티나와 멕시코를 오가며 작업한 각양각색의 나뭇조각과 오닉스(onyx·천연광물 ‘마노’의 일종) 조각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이국적인 인상을 풍긴다.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수석 큐레이터는 “김 작가는 한국적 감성과 동양적 사유를 토대로 남미의 자연과 문화를 흡수하며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며 “톱질과 망치질로 가득한 그의 조각에서 ‘작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요즘의 미술에서 점점 귀해지는 경험”이라고 했다. 작가의 발이 묶였던 팬데믹 기간, 쓰다 남은 나뭇조각과 폐자재를 모아 만든 알록달록한 조각들은 하나로 줄지어 진열됐다. 전시의 대미는 장대하게 팔을 벌린 모양새와 푸르른 청록빛이 산세를 연상케 하는 최신작 ‘노래하는 나무’가 장식한다. 혼신을 담아 재료의 본연에 다가간 그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절로 겸허해진다. 작업을 해야만 숨통이 트인다는 김 작가는 벌써 구순(九旬)을 넘겼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가 주목받은 건 불과 3년 전 개인전을 열고 나서였다. “고국에 돌아와 지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하늘이 허락한 일입니다.” 6월 28일까지.용인=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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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RM 기부금으로 해외 韓회화 정리한 도록 펴내

    방탄소년단(BTS) 리더 RM(본명 김남준·사진)의 기부금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16∼20세기 한국 회화를 정리한 도록이 발간됐다.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해외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 소장된 한국 회화를 모아 정리한 도록 ‘ITS ____ HERE: 나라 밖 빛나는 한국 옛 그림’을 국내외 국공립도서관과 주요 연구기관에 배포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도록에는 미국 피보디에섹스박물관 소장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클리블랜드미술관 소장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 등의 고해상도 도판과 설명이 실렸다. 재단 측은 “도록은 2022년 RM이 낸 기부금으로 제작됐다”며 “RM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도록의 가치를 한층 더 높였다”고 설명했다. RM은 2021년과 이듬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 보존 및 복원에 써 달라”며 각각 1억 원을 기부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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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기톱 든 91세 조각가’ 김윤신…“나와 재료 하나돼야 작품이란 또 하나가 탄생”

    기골이 옹근 나무 조각에서 꿈틀대는 자연의 파동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진한 고동색 통나무를 전기톱으로 깎고 다듬어, 하나의 뼈대에 기하학적 덩어리들을 붙인 모양새다. 못 하나 쓰지 않았으나, 나무가 땅에 뿌리내린 듯 단단해 보였다. 표면에선 날카로운 끌과 둔탁한 망치의 흔적, 나무 본연의 얼굴인 옹이와 껍질이 숨김 없이 드러났다.‘전기톱을 든 할머니 조각가’ 김윤신 작가(91)가 70여 년 예술 인생에서 “가장 정든 작품”으로 꼽은 ‘합이합일 분이분일 1987-88’(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소장). 17일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서 개막하는 회고전을 통해 처음으로 국내 공개되는 이 작품을 김 작가는 1987년 완성했다. 그가 오직 나무만 보고 1983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지 4년이 지난 시점. 말도 거의 통하지 않는 이역만리서 어렵게 구한 통나무 앞, 그는 전기톱을 단단히 쥐고서 숨을 골랐다.11일 미술관에서 만난 작가는 이 작품을 만들 당시를 이렇게 회고했다.“내가 나무가 되고, 나무가 내가 되는 순간을 기다렸어요. 그러다가 정신이 깨끗해진 때 톱을 들고 자르기 시작했죠. 이국의 나무는 톱이 튕길 정도로 단단했기에 나무와 톱, 내가 하나 돼야 뜻하는 대로 표현할 수 있었습니다.”‘작품과 재료가 하나 됨으로써 작품이라는 또 다른 하나가 탄생하는 과정’은 그의 작업 이념과 직결된다. 작품명이자 전시 부제인 ‘합이합일 분이불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 함축하고 있는 예술 세계의 근간인 셈. 김 작가의 국내 첫 대규모 회고전인 이번 전시는 조각과 판화, 회화 등 그의 일생에 걸친 작품 약 1500점 중 175점을 엄선해 소개한다. 호암미술관이 개관한 1982년 이래 이곳에서 개인전을 여는 한국인 여성 작가는 그가 처음이다.전시는 1960년대 프랑스 유학 시절의 석판화부터, 조각에 회화를 적극적으로 결합한 최근작까지를 아우른다. 아르헨티나와 멕시코를 오가며 작업한 각양각색의 나무 조각과 오닉스(onyx·천연광물 ‘마노’의 일종) 조각은, 지극히 한국적이면서도 동시에 묘하게 이국적인 인상을 풍긴다. 전시를 기획한 태현선 수석 큐레이터는 “김 작가는 한국적 감성과 동양적 사유를 토대로 남미의 자연과 문화를 흡수하며 독자적 세계를 구축했다”며 “톱질과 망치질로 가득한 그의 조각에서 ‘작가’의 존재를 느낄 수 있는데, 이는 요즘의 미술에서 점점 귀해지는 경험”이라고 했다.작가의 발이 묶였던 팬데믹 기간, 쓰다 남은 나무 조각과 폐자재를 모아 만든 알록달록한 조각들은 하나로 줄지어 진열됐다. 전시의 대미는 장대하게 팔을 벌린 모양새와 푸르른 청록빛이 산세를 연상케 하는 최신작 ‘노래하는 나무’가 장식한다.혼신을 담아 재료의 본연에 다가간 그의 작품들을 보노라면 절로 겸허해진다. 작업을 해야만 숨통이 트인다는 김 작가는 벌써 구순(九旬)을 넘겼다. 사실 우리나라에서 그가 주목받은 건 불과 3년 전 개인전을 열고 나서였다. “고국에 돌아와 지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리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하늘이 허락한 일입니다.” 6월 28일까지.용인=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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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TS RM 기부금으로 ‘나라 밖 빛나는 한국 옛 그림’ 도록 발간

    방탄소년단(BTS) 리더 RM(본명 김남준)의 기부금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16~20세기 한국 회화를 정리한 도록이 발간됐다.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해외 주요 박물관과 미술관 등에 소장된 한국 회화를 모아 정리한 도록 ‘ITS ____ HERE : 나라 밖 빛나는 한국 옛 그림’을 국내외 국·공립 도서관과 주요 연구기관에 배포했다”고 11일 밝혔다. 이 도록에는 미국 피바디에섹스박물관 소장 ‘평안감사도과급제자환영도’, 클리브랜드미술관 소장 ‘한림제설도(寒林霽雪圖)’ 등의 고해상도 도판과 설명이 실렸다.재단 측은 “도록은 2022년 RM이 낸 기부금으로 제작됐다”며 “RM의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이 도록의 가치를 한층 더 높였다”고 설명했다. RM은 2021년과 이듬해 “해외에 있는 우리 문화유산 보존 및 복원에 써 달라”며 각각 1억 원씩 기부했다. 기부금은 미 로스앤젤레스카운티미술관(LACMA)이 소장한 왕실 의복인 ‘조선 활옷’ 보존 처리 등에도 쓰였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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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눈 뜬 사람들에겐 보이지 않는 세계, 손끝으로 더듬으며 편견을 만지다

    세상은 한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갈수록 빨라지는 변화는 두 눈을 부릅떠도 포착하기 쉽지 않다. 실은 모두가 이런 망망대해에서 ‘눈먼 자’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열리고 있는 엄정순 작가(사진)의 개인전 ‘보푸라기―촉각적 사건’은 “우리는 세상의 어느 일부분에 닿고 있는가”를 묻는다. 불교 경전 열반경 속 ‘맹인모상(盲人摸象·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에서 착안해 코끼리를 주제로 한 조각과 회화 등 39점을 선보인다. 관람객은 작품을 자유롭게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교감할 수 있다. 갤러리에서 만난 엄 작가는 “작가는 모든 감각을 다 써서 작품을 만들지만, 관람객이 이를 만지는 행위는 그동안 금기시됐다”며 “관람객 감상도 작품의 일부다. 눈으로만 판단해선 편견에 갇히기도 쉽다”고 했다. 전시는 ‘눈에만 의존해선 결코 세상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전시장에서 시각과 촉각은 거의 동등한 위치에 놓인다. 조각상 ‘코 없는 코끼리 4’를 받치고 있는 뒤집힌 사다리꼴 모양의 대좌는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관람객이 코끼리 상 가까이 다가설 때 신발 앞코가 부딪히는 부분을 없애 접근 장벽을 허물었다. 작품을 만진 뒤에 남은 ‘흔적’은 다시 작품이 된다. 회화 연작 ‘무늬 없는 리듬’은 2023년 광주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들이 양모와 천으로 이뤄진 코끼리 설치물을 만지면서 생겨난 보푸라기를 핵심 재료로 활용했다. 엄 작가는 “당시 일주일도 안 돼서 작품 전체에 보푸라기가 생겼다. 문득 보푸라기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닌, 사람의 체온이자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올 한 올 아껴 모은 보푸라기를 뭉치거나 엮어 재료로 썼다”고 설명했다. 점자책 1000여 권이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공간도 눈길을 끈다. 맹인모상 이야기를 작가가 각색해 점자로 쓰고, 바로 아래 같은 내용을 흑연을 사용해 손글씨로 썼다. 점자를 손으로 훑고 책장을 넘기는 동안 흑연은 뭉개지고 여백은 까매진다. 그러다 눈에 들어 오는 벼락같은 한 문장. “이제 책을 덮으시게나. 자네의 그 검게 얼룩진 손끝 속에 보이지 않는 코끼리가 서 있으니.”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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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 만지고 보기만 하면 어찌 알겠나”…코없는 코끼리의 질문

    세상은 한눈에 볼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해졌다. 갈수록 빨라지는 변화는 두 눈을 부릅떠도 포착하기 힘들다. 사실은 모두가 이런 망망대해에서 ‘눈먼 자’로 살고 있는 건 아닐까.서울 종로구 학고재 갤러리에서 지난달 25일부터 열리고 있는 엄정순 작가의 개인전 ‘보푸라기-촉각적 사건’은 “우리는 세상의 어느 일부분에 닿고 있는가”를 묻는다. 불교 경전 ‘열반경’ 속 ‘맹인모상(盲人摸象·장님 코끼리 만지기)’ 이야기에서 착안해 코끼리를 주제로 한 조각과 회화 등 39점을 선보인다.관람객은 작품을 자유롭게 손끝으로 더듬으면서 교감할 수 있다. 갤러리에서 만난 엄 작가는 “작가는 모든 감각을 다 써서 작품을 만들지만, 관람객이 이를 만지는 행위는 그동안 금기시됐다”며 “관람객의 감상도 작품의 일부다. 눈으로만 판단해선 편견에 갇히기도 쉽다”고 말했다. 전시는 ‘눈에만 의존해선 결코 세상 전체를 이해할 수 없다’는 메시지로 이어진다.전시장에서 시각과 촉각은 거의 동등한 위치에 놓인다. 조각상 ‘코없는 코끼리 4’를 받치고 있는 뒤집힌 사다리꼴 모양의 대좌는 작품의 중요한 요소를 이룬다. 관람객이 코끼리 상 가까이 다가설 때 신발 앞코가 부딪히는 부분을 없애 접근 장벽을 허물었다.작품을 만진 뒤에 남은 ‘흔적’은 다시 작품이 된다. 회화 연작 ‘무늬 없는 리듬’은 2023년 광주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들이 양모와 천으로 이뤄진 코끼리 설치물을 만지면서 생겨난 보푸라기를 핵심 재료로 활용했다. 엄 작가는 “당시 일주일도 안 돼서 작품 전체에 보푸라기가 생겼다. 문득 보푸라기가 버려야 할 대상이 아닌, 사람의 체온이자 감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한 올 한 올 아껴 모은 보푸라기를 뭉치거나 엮어 재료로 썼다”고 설명했다.점자책 1000여 권이 선풍기 바람에 흔들리는 공간도 눈길을 끈다. 맹인모상 이야기를 작가가 각색해 점자로 쓰고, 바로 아래 같은 내용을 흑연을 사용해 손글씨로 썼다. 점자를 손으로 훑고 책장을 넘기는 동안 흑연은 뭉개지고 여백은 까매진다. 그러다 눈에 들어 오는 벼락같은 한 문장. “이제 책을 덮으시게나. 자네의 그 검게 얼룩진 손끝 속에 보이지 않는 코끼리가 서 있으니.” 28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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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이스라엘-이란 등 공습… 그랜드 바자르-화이트시티 등 중동 문화유산 비상

    2일(현지 시간) 이란 테헤란에 있는 ‘그랜드 바자르’는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점포가 무너지는 등 여러 훼손을 당했다. 7세기부터 상업 활동이 이어져 온 이 대형 전통시장은 이란이 1977년 국가유산으로 지정한 곳이다. 문화유산 피해는 이란뿐만이 아니다. 이스라엘 텔아비브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이트 시티’도 이란 공습의 희생양이 됐다. 20세기 초 바우하우스 양식 건축물이 밀집한 이곳은 미사일 공격으로 1930년대 건물 2채가 파괴됐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이 길어지며 해당 지역의 문화유산들이 위기에 빠졌다. 이미 여러 유적이 피해를 입었으며, 박물관 등은 소장품을 안전지역으로 옮기고 있으나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유네스코는 “모든 문화유산은 1954년 헤이그 협약과 1972년 세계유산 및 자연유산 보호 협약에 따라 보호된다”며 긴급 성명을 발표했으나, 사실상 강제력은 없다.● 중동 세계유산 1·2위 보유국들 이란은 중동 국가 가운데 세계유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나라다. 고대 페르시아 아케메네스 왕조의 수도인 ‘페르세폴리스’와 이슬람 건축 예술의 정수로 꼽히는 ‘이맘 광장’ 등 29개나 된다. 그중 하나인 ‘골레스탄 궁전’은 폭격 여파로 곳곳이 부서졌다. ‘이란의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리는 이 궁전은 페르시아 전통과 서구 예술이 결합한 카자르 왕조 시대(1789∼1925년) 걸작. 페르시아식 스테인드글라스 ‘오르시(orsi)’가 산산조각 났으며, 정교한 거울 장식도 떨어져 나갔다.이스라엘도 2001년 등재된 고대 도시 ‘아크레 구시가지’ 등 세계유산만 9개다. 중동에서 두 번째로 많다. 피해를 입은 바우하우스 센터는 소셜미디어에서 “화이트 시티는 근대성과 희망, 재건의 상징”이라며 “그 소실을 애도한다”고 했다.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사해 사본’ 등이 소장된 이스라엘국립박물관과 이란국립박물관, 페르세폴리스박물관 등은 현재 문을 닫고 소장품들을 안전한 곳으로 옮겼다. 중동 전체가 화약고가 될 위험이 커지며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도 비상이 걸렸다. 카타르국립박물관, 도하 이슬람예술박물관 등이 잠정 폐관한 상태다.● “문화유산은 인류 공동 책임”그랜드 바자르 등이 타격을 입은 날, 유네스코는 성명을 발표해 문화유산 보호를 호소했다. 유네스코 측은 “잠재적 피해를 방지하고자 세계유산과 국가적인 유적의 지리 좌표를 모든 관계 당사자들에게 전달했다”고 했다. 앞서 무함마드 사드 알 루마이히 카타르 국립박물관 최고경영자(CEO)도 “문화유산 보호는 법적 준수를 넘어선 공동의 도덕적 책임”이라고 강조했다. 헤이그 협약은 “종교, 예술, 과학, 자선 목적의 건물과 기념물 등은 가능한 한 공격하지 않도록 모든 필요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제27조)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 세계유산 전문가는 “미국과 이란, 이스라엘 모두 헤이그 협약 당사국이지만 국제법 특성상 법적 구속력이 없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중동 지역에서 군사 작전 중 고의적으로 파괴되거나 부수적으로 훼손되는 문화유산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지난달 카타르 국립박물관에서 열린 ‘무력 충돌 중 문화유산 보호 세미나’에서 사이드 빈 압둘라 알 수와이디 국제인도법 국가위원회 위원장은 “문화유산이 상대편에 대한 복수나 선전, 불법적 이득을 위한 공격 대상이 되고 있다”고 했다. 중동 전문가인 이예지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 특임강의교수는 이러한 문화유산 공격에 대해 “공동체적 기억과 정체성을 약화하려는 상징적 메시지가 담긴 경우가 많다”며 “시리아 내전 당시 이슬람국가(IS)가 팔미라의 신전을 의도적으로 파괴한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했다. 이어 “분쟁이 장기화되면 국가 통제력이 약해지고 무장 세력의 자금이 부족해져 문화유산 약탈 및 불법 거래 문제로 확대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 2026-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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