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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최대 구석기 유적이 자리한 경기 연천군에서 지금까지 확인된 양면석기(兩面石器) 가운데 가장 큰 것으로 추정되는 ‘초대형 주먹찌르개’가 출토됐다. 학계에 따르면 최근 경기 연천군 전곡리유적 인근에서 길이 42cm, 너비 16cm의 주먹찌르개가 발굴됐다. 무게는 약 10kg에 이른다. 구석기 시대 양면석기는 돌 양쪽 면을 대칭적으로 떼어내 날을 세운 석기를 일컫는다. 주먹도끼와 주먹찌르개, 주먹칼 등이 포함된다. 발굴된 주먹찌르개는 한쪽 끝이 뾰족해 찌르는 용도에 특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 박성진 단국대 동양학연구원 연구교수가 지난달 발표한 논문 ‘전곡리 85-12번지 출토 초대형 양면석기의 기술―기능적 분석’에 따르면 이 석기는 지층 최하층에서 발견됐다. 17만 년에서 25만 년 전 지층으로 추정된다. 입자가 굵고 표면이 거친 화강편마암이 좌우 균형을 이루도록 제작됐다. 마감 단계에선 석기의 끝 날을 다듬는 잔손질이 이뤄진 것도 확인됐다. 출토된 주먹찌르개의 크기는 지금까지 국내외에서 확인된 비슷한 양면석기 가운데 최대다. 경기 여주 연양리 유적에서 출토된 주먹찌르개(길이 32cm)나 경기 파주 주월리·가월리 유적의 주먹찌르개(길이 31cm)보다 훨씬 크다. 구석기 유물이 풍부한 아프리카와 유럽에서 나온 것들과 비교해도 큰 편이다. 잠비아 칼람보 폴스 유적에서 길이 35cm, 탄자니아 올두바이고지 유적에서 길이 33cm 주먹도끼 등이 발견됐다. 무게도 평균 3, 4kg이어서 이번에 발굴된 주먹찌르개가 약 2.5배 무겁다. 양면석기는 사냥이나 가죽 벗기기, 식물 캐기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할 수 있어 학계에선 ‘구석기시대의 맥가이버 칼’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 교수는 “이 초대형 양면석기는 고기를 자르거나 가죽을 무두질하는 정교한 작업보다 일격을 가하는 등 순간적 힘과 파괴력이 필요한 일에 사용됐을 것으로 보인다”며 “윗부분의 매끈한 자갈 면은 그 반동으로 손이 다치는 것을 막아줬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번 발굴은 구석기 인류의 생활양식을 들여다볼 수 있는 새로운 근거가 된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 이한용 전곡선사박물관장은 “크기와 제작 기법 등을 보면 여러 사람이 협업해서 만들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공동작업을 하려면 필요한 ‘높은 수준의 의사소통’이 구석기 공동체에서 이뤄졌음을 유추해볼 수 있는 자료”라고 했다. 박 교수는 “과거 에스키모인들은 해가 짧고 추운 겨울철엔 서둘러 사냥을 끝낸 뒤, 사냥감이 얼기 전에 손질을 마치고자 여름철과 달리 빠르고 강하게 손질할 수 있는 도구를 사용했다”며 “이처럼 당시 사용된 도구를 통해 당시 환경적인 상황도 분석할 수 있다”고 했다. 초대형 주먹찌르개가 예술적, 상징적 용도로 쓰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일부 양면석기가 매장지에서 발견됐다는 측면에서 의례 용품으로 만들어졌거나 집단 내 지위를 드러내는 데 사용됐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강인욱 경희대 사학과 교수는 “연천에서 발견되는 양면석기의 전형적 모습을 띠고 있지만, 혼자서 편리하게 사용하기 어려운 크기와 무게란 점에서 예술적 작업의 결과물일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출토된 초대형 주먹찌르개는 국가로 귀속돼 현재 강원 춘천 국립춘천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다. 다음 달에 경기 전곡선사박물관으로 옮겨진 뒤 전시 등을 통해 일반에도 공개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그룹 방탄소년단(BTS) 멤버 진의 두 번째 미니앨범 ‘에코’(Echo)가 발매 직후 세계 63개국 음원차트에서 정상에 올랐다.17일 소속사 빅히트 뮤직에 따르면 ‘에코’는 전날 발매 시점부터 이날 오전 7시까지 63개국 아이튠즈 ‘톱 앨범’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다. 독일과 영국, 프랑스, 일본, 브라질 등이 주요 국들이 대거 포함됐다. 발매 당일 ‘월드와이드 아이튠즈 앨범’과 ‘유러피안 아이튠즈 앨범’ 차트에서도 1위에 올랐다.신보 타이틀곡인 ‘돈트 세이 유 러브 미’(Dont Say You Love Me)는 프랑스와 일본 등 61개국 아이튠즈 톱 송 차트에서도 정상에 올랐다. ‘월드와이드 아이튠즈 송’과 ‘유러피안 아이튠즈 송’ 차트에서도 1위를 기록했다.미니 2집 ‘에코’는 삶의 다양한 순간들이 각기 다른 모습의 울림처럼 퍼져나가는 모습을 그렸다. 진은 17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 앤더슨씨에서 ‘구름과 떠나는 여행’, ‘오늘의 나에게’ 등 수록곡을 포함한 신곡 무대를 처음으로 공개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깊은 흙과 바다에서 찾아낸, 혹은 이역만리에서 되찾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들. 이 보물들이 박물관 등에서 우리와 만나기까진 여러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귀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을 돌보고 가꾸는 ‘지킴이’들을 격주로 소개한다.》시뿌연 갯벌이 잔뜩 섞인 충남 태안의 바다. 수심 2m만 돼도 눈앞 손목시계조차 읽기 힘들었다. 20kg 납 벨트와 전등 2개, 탐침봉 등을 달고 하강 로프를 따라 신중하게 15m 깊이로 내려갔다. 12세기 고려, 개경으로 향하던 선박이 좌초된 곳. 더듬거리는 손에 둥그런 물체들이 줄줄이 만져졌다. 접시, 벼루, 주전자 등 고려청자 2만여 점은 그렇게 900년 잠에서 깨어났다.2007년 ‘태안선’ 발굴조사에 참여한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의 양순석 팀장(53)은 당시 상황을 “어렵게 물길을 헤집고서 선박에 빼곡히 보관된 유물을 마주했을 땐 ‘내 생에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고 회상했다. 9일 전남 목포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현역으로 뛰는 ‘수중 발굴 조사가’ 가운데 최장기 경력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통일신라 시대 ‘영흥도선’ 등 11척의 우리나라 고선박 발굴에 참여했다.양 팀장이 31년간 몸 담은 해양유산연구소는 국내에서 유일한 수중 문화유산 발굴조사기관이다. 1981년 ‘목포보존처리장’에서 출발한 연구소는 바다에 잠겨 있는 난파선이 주요 조사 대상. 그는 “바다에 침몰한 고선박에 실린 화물과 생활용품은 당시 문화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했다.2010년 발굴된 ‘마도 2호선’이 대표적이다. 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글이 적힌 나무 조각)은 이 배가 전북 고창에서 개경으로 가던 곡물운반선임을 알려줬다. 양 팀장은 “보물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과 함께 발견된 대나무 조각에는 이 매병이 참기름이나 꿀 등을 담던 용도란 기록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바닷속에서 다채로운 유물이 비교적 온전히 수백 년을 버틴 데는 갯벌의 역할이 크다. 양 팀장은 “펄에 묻히면 해양 생물이나 선박, 미생물 등에 덜 노출돼 안전한 편”이라면서도 “갯벌은 타입캡슐인 동시에 잠수사의 눈을 가려 목숨까지 위협하는 장애물”이라고 했다. “발굴하다 손가락에 그물이 걸리면 가슴이 철렁하죠. 까딱하면 ‘물고기’처럼 걸려 목숨을 잃는 거니까요. 특히 조류 특성 등이 파악되지 않은 해저를 탐사해야 할 땐, 평소 덤덤한 성격인데도 두렵습니다.” 양 팀장은 꽤 오랫동안 부모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전남 신안에서 나고 목포에서 자랐지만 수영도 잠수도 할 줄 모르는 그를 걱정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객선 선장이셨던 아버지가 ‘바닷일 꿈도 꾸지 말라’며 수영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며 “공대를 나와 보존 처리 담당자로 입사했건만, 어느날 ‘수중 투입’ 지시가 떨어지며 인생이 꼬였다”고 웃었다. 개헤엄도 못치던 그는 부랴부랴 잠수를 배워 해저 탐사와 발굴을 시작했다. 그렇게 그는 동료들과 ‘맨땅에 헤딩’ 수준이던 한국 수중고고학을 온몸으로 이끌어 왔다. 물속에선 육상 발굴 10명이 할 일도 20∼30명이 해야 한다. 땅에서 1년 걸릴 작업이 4, 5년씩 걸린다. 숙식 시설을 갖춘 수중 발굴 전용 선박 ‘누리안호’가 2013년 도입되기 전까지 서해안과 남해안 각지를 전전했다. 그는 “예산이 모자라 임시 컨테이너 집을 짓고 생활하기도 했다”고 돌이켰다. “이제는 한국이 동아시아 3국 중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아요. 일본이 수중고고학 역사가 더 오래됐지만, 2010년대부턴 오히려 우리한테 배우러 오고 있어요. 한국은 삼면이 바다고, 갯벌이 풍부하죠. 앞으로 더 많은 보물을 바다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깊은 흙과 바다에서 찾아낸, 혹은 이역만리에서 되찾은 소중한 우리 문화유산들. 이 보물들이 박물관 등에서 우리와 만나기까진 여러 과정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리고 여기엔 누군가의 보이지 않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귀하고 사랑스러운 우리 문화유산을 돌보고 가꾸는 ‘지킴이’들을 격주로 소개한다.》시뿌연 갯벌이 잔뜩 섞인 충남 태안의 바다. 수심 2m만 돼도 눈앞 손목시계조차 읽기 힘들었다. 20kg 납 벨트와 전등 2개, 탐침봉 등을 달고 하강 로프를 따라 신중하게 15m 깊이로 내려갔다. 12세기 고려, 개경으로 향하던 선박이 좌초된 곳. 더듬거리는 손에 둥그런 물체들이 줄줄이 만져졌다. 접시, 벼루, 주전자 등 고려청자 2만여 점은 그렇게 900년 잠에서 깨어났다.2007년 ‘태안선’ 발굴조사에 참여한 국립해양유산연구소의 양순석 팀장(53)은 당시 상황을 “어렵게 물길을 헤집고서 선박 빼곡히 보관된 유물을 마주했을 땐 ‘내 생에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었다”고 회상했다. 9일 전남 목포에 있는 연구소에서 만난 그는 현역으로 뛰는 ‘수중 발굴 조사가’ 가운데 최장기 경력으로 꼽힌다. 지금까지 통일신라 시대 ‘영흥도선’ 등 우리나라 고선박 11척 발굴에 참여했다.양 팀장이 31년간 몸 담은 해양유산연구소는 국내에서 유일한 수중 문화유산 발굴조사기관이다. 1981년 ‘목포보존처리장’에서 출발한 연구소는 바다에 잠겨 있는 난파선이 주요 조사 대상. 그는 “바다에 침몰한 고선박에 실린 화물과 생활용품은 당시 문화 양식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고 했다.2010년 발굴된 ‘마도 2호선’이 대표적이다. 배에서 발견된 목간(木簡·글이 적힌 나무 조각)은 이 배가 전북 고창에서 개경으로 가던 곡물운반선임을 알려줬다. 양 팀장은 “보물 ‘청자 음각연화절지문 매병’과 함께 발견된 대나무 조각에는 이 매병이 참기름이나 꿀 등을 담던 용도란 기록도 있었다”고 설명했다.바다 속에서 다채로운 유물이 비교적 온전히 수백 년을 버틴 데는 갯벌의 역할이 크다. 양 팀장은 “펄에 묻히면 해양 생물이나 선박, 미생물 등에 덜 노출돼 안전한 편”이라면서도 “갯벌은 타입캡슐인 동시에 잠수사 눈을 가려 목숨까지 위협하는 장애물”이라고 했다. “발굴하다 손가락에 그물이 걸리면 가슴이 철렁하죠. 까딱하면 ‘물고기’처럼 걸려 목숨을 잃는 거니까요. 특히 조류 특성 등이 파악되지 않은 해저를 탐사해야 할 땐, 평소 덤덤한 성격인데도 두렵습니다.”양 팀장은 꽤 오랫동안 부모에게 자신이 하는 일을 알리지 못했다고 한다. 전남 신안에서 나고 목포에서 자랐지만 수영도 잠수도 할 줄 모르는 그를 걱정하실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여객선 선장이셨던 아버지가 ‘바닷일 꿈도 꾸지 말라’며 수영을 가르쳐주지 않으셨다”며 “공대를 나와 보존 처리 담당자로 입사했건만, 어느날 ‘수중 투입’ 지시가 떨어지며 인생이 꼬였다”고 웃었다. 개헤엄도 못치던 그는 부랴부랴 잠수를 배워 해저 탐사와 발굴을 시작했다.그렇게 그는 동료들과 ‘맨땅에 헤딩’ 수준이던 한국 수중고고학을 온몸으로 이끌어 왔다. 물 속에선 육상 발굴 10명이 할 일도 20~30명이 해야 한다. 땅에서 1년 걸릴 작업이 4, 5년씩 걸린다. 숙식 시설을 갖춘 수중 발굴 전용 선박 ‘누리안호’가 2013년 도입되기 전까지 서해안과 남해안 각지를 전전했다. 그는 “예산이 모자라 임시 컨테이너 집을 짓고 생활하기도 했다”고 돌이켰다.“이제는 한국이 동아시아 3국 중 가장 앞선다고 평가받아요. 일본이 수중고고학 역사가 더 오래됐지만, 2010년대부턴 오히려 우리한테 배우러 오고 있어요. 한국은 삼면이 바다고, 갯벌이 풍부하죠. 앞으로 더 많은 보물을 바다에서 끌어낼 수 있을 겁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교회가) 이 세상의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길.” 8일(현지 시간) 제267대 교황으로 선출된 레오 14세가 전임인 프란치스코 교황의 개혁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교황은 9일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 대상으로 집전한 첫 미사와 다음 날 시노드홀에서 추기경들을 만난 자리에서 ‘교회의 충실한 관리자로서 평범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시노드홀에선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자”며 1960년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단행된 주요 교회 개혁의 의지를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 교회가 현대 사회의 문제와 고통에 응답해야 한다는 선언 등을 일컫는다. 교황은 자신을 “하느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겸손한 종일 뿐”이라고도 했다. 레오 14세를 교황명으로 택한 건 “레오 13세 교황을 계승한다는 뜻”이란 점도 분명히 했다. 레오 13세는 1891년 가톨릭교회 사상 최초로 ‘노동헌장’ 회칙을 반포해 현대 가톨릭 사회교리의 초석을 놓은 교황으로 평가받는다. 교황은 인공지능(AI)을 인류가 마주한 주요 숙제로도 지목했다. 그는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 즉 AI의 발전에 직면했다”며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말했다. 11일엔 교황 선출 이후 처음으로 바티칸 성베드로 대성전 발코니에서 주일 기도를 집전하고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 등 전 세계에서 전쟁을 멈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교황은 “제3차 세계대전이 조각조각 벌어지고 있다”면서 “더 이상의 전쟁은 안 된다”고 했다.한편 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인 유흥식 추기경(사진)은 9일 바티칸 집무실에서 콘클라베에 참여한 경험을 공개했다. 그는 “영화 ‘콘클라베’ 같은 야합은 없었다”며 “선출 과정이 정치적 투쟁처럼 묘사되나, 실제로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아름다웠다”고 전했다. 유 추기경은 “교황과 업무 회의로 월 2회 이상 꾸준히 만나 왔다”며 “과거 방한했던 경험이 ‘좋았다’고 했다”고도 말했다. 레오 14세는 2002∼2010년 네 차례 한국을 방문했으며,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참석을 위해 다시 한국을 찾는다. 유 추기경은 콘클라베에서 교황이 선출되자 “모두가 일어나 박수치고 야단이 났다”고 전했다. 레오 14세가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모습을 드러냈을 때 추기경들의 밝은 표정에 대해선 “(성 베드로 광장이) 휴대전화로 찍고 싶을 정도로 축제 분위기여서 (추기경들도) 신이 났다”고 설명했다.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천선란 작가(사진)의 베스트셀러 소설 ‘천 개의 파랑’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될 것으로 전망된다. 출판사 동아시아의 문학브랜드 허블은 11일 “천 작가의 공상과학(SF) 소설 ‘천 개의 파랑’이 미국 워너브러더스픽처스와 최근 영화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워너브러더스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와 ‘듄’ 시리즈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다. 허블에 따르면 워너브러더스는 소설 ‘천 개의 파랑’을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계 영화감독인 셀린 송을 비롯해 감독 그레타 거위그, 알폰소 쿠아론 등이 각본 개발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2020년 출간된 ‘천 개의 파랑’은 가까운 미래에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 ‘투데이’, 소녀 ‘연재’의 이야기를 다룬 SF 소설.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국립극단 74년 사상 처음으로 로봇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으로 제작됐다. 서울예술단에서는 창작 가무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훌륭하다 해탈의 옷이여(善哉解脫服), 더할 나위 없는 복전의 옷이로세(無上福田衣).” 불교에서 스님이 가사(袈裟)를 입기 전에 3번씩 읊는다는 진언(眞言)의 일부다. 가사는 중요한 불교 의식 때 장삼 위 왼쪽 어깨에서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로 걸쳐 입는 법의(法衣)이다. 삼국시대 서역을 거쳐 우리나라에 전래된 뒤 약 1500년간 이어지고 있다. ‘가사를 하사받은 수행자는 속세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의미가 담겨 깨달음과 해탈을 향한 옷으로 여겨진다. 서울 종로구 서울공예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불교 자수공예 특별전 ‘염원을 담아―실로 새겨 부처에 이르다’에서는 고려시대부터 근현대에 이르는 큰스님들의 가사를 만날 수 있다. 이 밖에도 국보나 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유산 23건을 포함한 초상화, 불교 자수 등 38건이 전시되고 있다. 우리나라 가사는 주로 붉은색 또는 금색 비단에 일월광첩(日月光貼·해와 달을 상징하는 까마귀와 토끼)을 자수로 수놓는다. 네 모서리에는 사천왕첩(四天王貼)을 덧댄 것도 특징이다. ‘천’이나 ‘왕’을 새겨 넣은 첩은 사방의 천왕이 보호해 준다는 의미도 담겼다.이번 전시에서는 역사책에서나 접했던 고승들이 실제로 착용했던 가사들이 특히 눈길을 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전국 승려를 이끌고 항전했던 사명대사(1544∼1610)에게 선조가 하사한 금란가사가 대표적이다. 접어 보관한 자국을 따라 으스러지고 탈락된 비단 조각은 420여 년 세월을 보여준다. 이효선 학예연구사는 “가사 고리와 장삼까지 확인된 국내 유일한 사례”라며 “우리나라 종교 복식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고 설명했다.가사 옆에는 고승의 초상화도 전시돼 실제 착용 모습을 상상해볼 수 있다. 불교 천태종을 창립한 대각국사 의천(1055∼1101)은 전남 순천 선암사에서 보관 중인 가사(18세기 다시 제작)와 초상화가 전시됐다. 채영 전시기획과장은 “고승의 초상화는 일반적으로 사찰 내 사당에서 성스럽게 모셔지기에 일반에 공개되는 경우가 드물다”며 “오랜 설득 끝에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게 됐다”고 말했다. 보물 ‘자수 가사’도 관람객을 만난다. 삼보(三寶·부처와 보살, 경전, 존자)가 오색실로 수놓인 가사로, 박물관이 2018년 기증받은 뒤 국립문화유산연구원과 협력해 복원했다. 이 연구사는 “원래 액자에 보관돼 있던 가사를 꺼내 약 4년 8개월에 걸쳐 오염을 제거하고 실을 다시 꿰매는 등 원형에 가깝게 되살리고자 했다”고 말했다. 7월 27일까지.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천선란 작가(사진)의 베스트셀러 소설 ‘천 개의 파랑’이 미국 할리우드에서 영화로 제작될 전망이다.출판사 동아시아의 문학브랜드 허블은 11일 “천 작가의 공상과학(SF) 소설 ‘천 개의 파랑’이 미 워너브라더스픽처스와 최근 영화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워너브라더스는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와 ‘듄’ 시리즈 등을 제작한 스튜디오다. 허블에 따르면 워너브라더스는 소설 ‘천 개의 파랑’을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한국계 영화감독인 셀린 송을 비롯해 감독 그레타 거윅, 알폰소 쿠아론 등이 각본 개발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2020년 출간된 ‘천 개의 파랑’은 가까운 미래에 휴머노이드 기수 ‘콜리’와 안락사를 앞둔 경주마 ‘투데이’, 소녀 ‘연재’의 이야기를 다룬 SF 소설. 제4회 한국과학문학상 장편 대상을 수상했다. 지난해 국립극단 74년 사상 처음으로 로봇 배우가 출연하는 연극으로 제작됐다. 서울예술단에서는 창작 가무극으로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교회가) 이 세상의 어두운 밤을 밝힐 수 있길 (바란다).”새 교황 레오 14세는 9일(현지시간)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서 추기경들을 대상으로 집전한 첫 미사에서 이같은 메시지를 전했다.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레오 14세는 ‘교회의 충실한 관리자로서 평범한 사람들 편에 서겠다’며 이 같이 말했다.이튿날 시노드홀에서 추기경들과 만난 새 교황은 자신을 “하느님과 형제들을 섬기는 겸손한 종일 뿐”이라고 표현하면서 교황이라는 직책이 권위가 아닌 봉사의 자리라고 강조했다. 전임 교황 프란치스코의 개혁을 계승하겠다는 의지도 드러냈다. 그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남긴 소중한 유산을 이어받자”며 추기경들에게 1960년대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단행된 주요 교회 개혁을 이어갈 것을 당부했다.‘레오 14세’라는 명칭을 선택한 이유에 관해서는 “레오 13세 교황을 계승한다는 뜻”이라고 밝혔다. 레오 13세는 1891년 가톨릭교회 역사상 최초로 ‘노동헌장’ 회칙을 반포해 현대 가톨릭 사회교리의 초석을 놓은 인물이다. 인공지능(AI)을 인류가 직면한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지목하기도 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오늘날 교회는 또 다른 산업혁명, 즉 AI의 발전에 직면했다”며 “인간의 존엄성과 정의, 노동을 보호하는 데 있어 새로운 도전을 야기하고 있다”고 했다.앞서 7, 8일(현지 시간) 이틀에 걸쳐 진행된 콘클라베에 참여한 유흥식 추기경(교황청 성직자부 장관)은 9일 바티칸 집무실에서 국내 언론과 만난 자리에서 “영화 ‘콘클라베’ 같은 야합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번 콘클라베에 참여한 한국인 추기경은 그가 유일하다. 그는 “영화에서는 교황 선출 과정이 대단한 정치적 투쟁처럼 묘사되나 실제로는 굉장히 형제적이고 아름다웠다”고 했다. 또 “아직 영화를 보지 못했는데 다른 추기경들이 보지 말라고 하더라”고 했다.유 추기경은 새 교황 레오 14세가 한국에 좋은 인상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유 추기경은 “레오 14세와 업무 회의로 월 2회 이상 꾸준히 만나 친한 사이인데, 과거 한국을 찾았던 경험이 ‘좋았다’고 언급했다”고 했다. 레오 14세는 2002, 2005, 2008, 2010년에 걸쳐 한국을 네 차례 방문했다. 2027년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청년대회(WYD) 참석을 위해 방한할 예정이다. 유 추기경은 지난 달 21일 프란치스코 교황 선종 이후 거의 매일 진행된 추기경단 회의에서 추기경 별로 5분의 발언 시간이 주어졌다고 했다. 그는 “5분 발언을 통해 저마다 마음 속에 어떤 사람이 (새 교황이) 됐으면 한다는 생각을 품게 됐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콘클라베 이틀째 레오 14세가 선출되자 “모두가 일어나 박수치고 야단이 났다”고 전했다.레오 14세가 성 베드로 대성전 ‘강복의 발코니’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추기경들의 밝은 표정도 화제가 됐다. 유 추기경은 “휴대전화가 있었으면 그 장면을 찍고 싶을 정도로 (성 베드로 광장이) 축제 분위기였다. 그 모습을 보니 모두 신이 났다”고 했다. 한편 레오 14세 교황의 즉위 미사는 오는 18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
기원전 약 4100년, 오늘날 우크라이나 지역의 비옥한 땅에 대형 공동체들이 밀집한 정착촌이 있었다. 이 ‘메가 유적’에선 농사와 목축, 토기 등 도구 제작을 비롯해 다양한 생산 활동이 이뤄졌다. 통설로 받아들여지는 ‘농업혁명’ 이론에 따르면 잉여물을 쟁취하고 타인들 위에 군림하고자 분쟁을 벌일 여지가 충분했다는 의미다. 그러나 800년이 넘도록 사람들이 살았던 이 유적에서는 거대 구조물이나 요새 등 계층과 전쟁을 암시하는 증거가 거의 발견되지 않았다. 인간이 소규모 그룹에선 오순도순 평등하게 살아갔지만 대규모 사회로 발전함에 따라 필연적으로 불평등과 권력이 발생한다는 통념이 사실과 다를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다.‘모든 것의 새벽’은 구석기·신석기 시대부터 제국주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의 진화에 대한 통념을 해체하는 책이다. 소규모 무리에서 도시 및 국가로, 수렵 채집에서 농경으로, 공유에서 사유로, 평등에서 불평등으로, 미개에서 문명으로 역사가 전개돼 왔다는 기존 역사학 이론이 신화에 불과하다고 강조한다.책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그렇게 단선적이고 고정된 경로를 따라 발전하지 않았다. 유럽인들이 침공하기 전의 북아메리카 대평원에 존재했던 사회들은 매우 유동적이었다. ‘무리(band)’에 불과한 듯한 특징을 보이다가도 이내 마치 ‘국가’인 것처럼 작동하기도 했다. 우리로 치면 고려시대 무렵엔 북미 대륙 동부에서 ‘카호키아’라 알려진 도시가 홀연히 출연해 절정기에 1만5000명이 살다가 갑작스럽게 와해되기도 했다. 멕시코의 고대도시 테오티우아칸은 군주제와 공화제를 느슨하게 오갔다.하지만 근대 유럽에 뿌리를 둔 사회과학의 한계 탓에 이러한 역사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고, 마치 비상식적인 것처럼 인식됐다. 이 책이 그 원인을 ‘적절한 언어의 결핍’에서 찾는 분석이 흥미롭다. 과거의 다양한 정치사회를 규정할 용어가 부족하다는 주장이다. 예컨대 남아시아 최초의 도시를 일군 인더스 문명의 도시와 같은 ‘하향식 통치구조가 없는 도시’를 부를 공식 용어는 정립되지 않았다. 저자들은 “과거 유럽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채택하도록 강요하기 위해 상대의 머리에 총을 겨눈 채 500여 년을 소모했다”며 “서구가 내세우는 ‘진보’의 허상은 문명이 그 자체로 전파되지 못한 데서 드러난다”고 지적했다.저자들은 사회구조의 역사를 연구해 온 학자들이다. 데이비드 그레이버는 미국 예일대, 영국 런던정경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던 인류학자로 2020년 별세했다. 이 책은 그의 유작이다.데이비드 웬그로는 영국 유니버시티칼리지런던(UCL)에서 비교고고학을 가르치는 교수다.책은 인류 사회에 어떤 ‘원형’이 존재했고, 나중에 불평등과 정치적 인식이 발생했다는 건 증명되지 않은 가정에 불과하다고 꼬집는다. 자유를 포기해야 비로소 문명과 ‘복잡성’을 얻어낼 수 있다는 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전과는 다른 형태의 사회적 현실을 창조할 수 있다는, ‘자유’의 또 다른 의미를 재발견할 때”라고 강조한다. 사회적, 경제적 불평등이 심화하는 오늘날 더욱 눈길이 가는 책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입상은 생각지 못했는데 상을 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놀랐어요. 무대를 즐긴 것만으로 만족했는데 이렇게 좋은 결과까지 얻어서 기뻐요.” 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열린 제55회 동아무용콩쿠르 본선에서 일반부 여자 한국무용 전통 부문 금상을 수상한 남기혜 씨(21·한국예술종합학교 4학년)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남 씨는 5년 전에도 동아무용콩쿠르에 참가해 고등부 같은 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한 적이 있다. 그는 “예전에는 공부하듯이 춤을 단순히 외워서 췄다”며 “5년간 춤에 풍성한 이야기를 더해 무대에 가져오는 연습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남 씨는 국가무형유산 ‘승무’ 예능보유자이자 동아무용콩쿠르 자문위원이었던 이애주 선생(1947∼2021)을 기려 올해 부상으로 신설된 이애주상을 받았다. 이애주상은 일반부 한국무용 전통 부문 남녀 금상 수상자에게 각 100만 원씩을 수여하는 상이다. 남 씨는 한국무용 전통 부문 남녀 금상 수상자 중 본선 고득점자에게 주는 강선영상도 함께 받았다. 심사위원 명단과 본선 채점표는 동아무용콩쿠르 사이트(www.donga.com/concours/dance)에서 다음 주중 확인할 수 있다. 다음은 수상자 명단. ◇일반부 ▽한국무용 전통(여) △금상 남기혜(21·한예종 4년) 김설현(20·단국대 3년) △동상 김현진(22·이화여대 4년) ▽한국무용 전통(남) △금상 최지원(23·한예종 4년) 정준(22·세종대 4년) △동상 박서현(20·한국체대 2년) ▽한국무용 창작(여) △금상 홍현서(20·이화여대 3년) △은상 문채원(20·한예종 3년) △동상 구세은(21·한양대 3년) ▽한국무용 창작(남) △금상 이재영(24·한양대 4년) △은상 박준섭(23·한예종 전문사과정) △동상 이현석(22·한양대 졸업) ▽현대무용(여) △금상 한민주(22·세종대 4년) △은상 권진원(21·한예종 4년) △동상 강다윤(22·세종대 4년) ▽현대무용(남) △금상 강동범(19·한양대 에리카 2년) △은상 방정운(21·경희대 3년) △동상 황기훈(21·한양대 에리카 4년) ▽발레(여) △금상 원희서(21·이화여대 4년) △은상 박소연(21·세종대 4년) △동상 김도현(20·한예종 3년) ▽발레(남) △금상 구성모(18·한예종 2년) △동상 김상현(20·세종대 2년) 오현석(20·성균관대 3년)◇고등부 ▽한국무용 전통 △금상 김수아(16·선화예고 2년) △은상 이다연(16·국립전통예고 2년) △동상 김윤서(17·충북예고 3년) ▽한국무용 창작 △금상 최수빈(18·국립국악고 3년) △은상 백지헌(18·전주예고 3년) 최라온(17·선화예고 3년) ▽현대무용 △금상 김희호(17·서울예고 2년) △은상 전유은(17·보라고 3년) △동상 이수빈(16·부산예고 1년) ▽발레 △금상 이원겸(17·선화예고 3년) △은상 박현우(17·서울예고 3년) 홍태이(17·서울예고 3년)◇중등부 ▽발레 △금상 박큰별빛(14·솔뫼중 3년) △은상 김민상(14·예원학교 3년) △동상 전성현(13·예원학교 2년) 정아라(14·선화예중 3년) △장려상 윤시연(14·선화예중 3년) 김연준(14·예원학교 3년) 김서윤(14·예원학교 2년) 주민호(14·선화예중 3년) 김서희(14·예원학교 2년) 정시율(14·예원학교 2년) 박시현(15·홈스쿨링) 신민아(15·예원학교 3년)◇초등부 ▽발레 △금상 한그루(11·청아초 6년) △은상 김민주(11·용소초 6년) △동상 박태린(12·김포가현초 6년) △장려상 강동엽(12·진주장재초 6년) 안유진(12·서울세종초 6년) 구하늘(12·광진초 6년) 주사랑(11·서울우암초 6년) 문채원(11·안말초 6년) 김소담(11·서울원촌초 6년) 박안나(11·우면초 6년) 장서원(11·경복초 6년)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오누이 탑’이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충남 공주 청량사 옛터의 두 탑이 올해 대대적인 보수 공사에 들어간다.7일 국가유산청에 따르면 지난달 문화유산위원회는 심의를 통해 고려시대 보물 ‘공주 청량사지 오층석탑’과 ‘공주 청량사지 칠층석탑’을 보수하기로 조건부 가결했다. 고려 중기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두 탑은 백제 석탑 양식을 따랐다는 점에서 독특하다. 현재의 탑은 일제강점기인 1944년 도굴되면서 전도된 것을 1961년 다시 세운 것이다.해당 탑들은 재건 과정에서 원형이 변형되고, 최근 구조적 결함이 심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심의에 참여한 전문가들은 “2021년부터 탑을 모니터링한 결과 두 탑이 중심축으로 약 1도 기울어졌고, 재건 당시 잡석 및 철편을 사용해 변색도 발생했다”며 “탑을 해체 보수해 구조적 결함을 해소하고 원형을 회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의견을 냈다. 2019년 보수정비기본계획에서는 진단 결과 보수가 필요한 ‘E 등급’을 받았다.국가유산청과 공주시는 1917년 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유리건판 자료를 토대로 구체적인 보수·정비 방안과 해체 범위를 정할 방침이다. 일본인 야쓰이 세이이치(谷井齊一)가 남긴 유리건판과 비교 분석한 결과, 칠층석탑은 기단부와 탑신 등 부재가 원형과 달라졌고 오층석탑은 지대석(址臺石)이 변화한 것으로 추정된다. 탑의 옛 모습을 복원하는 방법은 전문가 자문을 거쳐 진행되며, 공사는 8월경 발주될 예정이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4일 서울 종로구 종묘 정전에서 2019년 이후 6년 만에 종묘대제(宗廟大祭)가 봉행됐다.국가유산청은 이날 국가유산진흥원, 종묘대제봉행위원회와 함께 지난 달 수리를 마친 종묘 정전에서 종묘대제를 봉행했다. 종묘대제는 조선 시대에 국왕이 직접 거행하던 최대 규모의 제사로, 1969년 복원 뒤 2019년까지 해마다 5월 첫 번째 일요일에 유교 예법과 절차를 따라 거행돼 왔다. 2020년 종묘가 수리에 들어가며 중단됐다가 올해 다시 개최됐다.이날 종묘대제는 장중한 ‘정대업(靖大業)’ 선율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조선 왕조의 위패를 모신 신위 앞에서 제관이 절한 뒤 술잔을 들어 올리는 초헌례(初獻禮)로 시작됐다. 종묘대제의 첫 번째 의식으로, 그해 첫 번째 잔을 올리는 의식을 일컫는다. 이후 축문을 읽어 신에게 제사의 뜻을 고하는 독축례(讀祝禮)로 이어진 뒤 축문을 불에 태워 하늘에 뜻을 전하는 망료례(望燎禮)로 마무리됐다. 의복을 입은 무용수 60여 명은 줄지어 ‘일무(佾舞)’를 췄다. 종묘제례는 조선 시대인 1474년 국가의 기본예식을 다섯 가지로 규정하고 이를 편찬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길례(吉禮)에 속한다.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은 2001년 유네스코 인류구전 및 무형유산 걸작으로 선정됐으며,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 대표목록으로 등재됐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어린이날 연휴를 맞아 고궁과 박물관에서 가족 관람객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가 펼쳐진다.국가유산진흥원은 연휴 기간 ‘수문장 어린이날 특별행사’를 진행한다. 5일 오전 11시와 오후 1시, 서울 종로구 경복궁 광화문 월대에서는 인형탈을 쓴 수문장이 펼치는 수문장 교대 의식을 관람할 수 있다. 5, 6일 오전 11시10분과 오후 1시10분, 3시10분에는 경복궁 협생문 밖 훈련장에서 조선시대 군인이 되어보는 갑사 취재 체험을 할 수 있다. 과거 사대부, 무사들이 입던 한복인 ‘철릭’을 입고 창술, 봉술, 국궁 등을 체험할 수 있다. 회당 50명씩 무료로 현장 접수한다.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구)은 어린이날 당일 13개국 주한 해외 문화원·대사관과 함께 ‘세계의 놀이 축제’를 주제로 공연, 놀이 등 35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오전 11시와 오후 3시 반에는 박물관 앞마당에서 각각 체코 인형극, 콜롬비아 전통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박물관 내 놀이마당에서는 헝가리식 사방치기, 인도네시아식 동대문 놀이, 페루의 테이블 축구 등 세계 각국의 전통 놀이를 체험할 수 있다. 전부 무료로 현장에서 선착순 접수한다.국립고궁박물관(서울 종로구)은 5일 지하1층 교육실과 상설전시실에서 ‘천문하늘 여행’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천상열차분야지도각석에 새겨진 별자리를 알아보고 천문과학 관련 유물에 대해 공부할 수 있다. 오전 10시 10분과 오후 1시에 무료 운영되며, 박물관 웹사이트에서 접수한다. 박물관 1층에서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까지 종이 어차(조선시대 왕의 자동차) 만들기, 나비 장신구 꾸미기 등을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서울 용산구) 야외마당에선 5, 6일 뮤지컬 특별 공연과 버블쇼, 전통공연 등이 열린다. 가족뮤지컬 ‘넘버블록스’와 ‘할머니의 여름휴가’가 10분간 공연된다. 5m 높이의 대형 반가사유상 조형물을 배경으로 기념사진도 찍을 수 있다. 전부 무료. 현장에서 참여하면 된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건 ‘총’과 ‘쇠’ 덕도 있지만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진짜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과거 유럽의 병원균에 노출된 적 없던 원주민은 감기나 장염에도 치명적 증상을 보였다. 1518년 발생한 천연두 탓에 원주민 인구 최소 3분의 1이 사망했다. “정복자들의 무기는 충격 효과를 주긴 했으나 원주민의 무기보다 효율적이지도, 강력하지도 않았다. 답은 균, 균, 균이다.” 구석기시대부터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인류사 속에서 ‘균’이 벌인 일들을 폭넓게 짚은 책이다. 영국 런던퀸메리대에서 글로벌 공중 보건에 대해 가르치는 사회학자가 썼다. 저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드론 공격이 파키스탄의 소아마비 퇴치 노력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 등을 연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 호모사피엔스가 여러 인간종 중 홀로 살아남아 현 인류의 조상이 된 것이 ‘인지적 우월성’ 덕택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네안데르탈인은 동굴 벽화를 그린 최초의 인간종으로서 인지적으로 열등하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격차는 면역 체계에 있었다.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병원균에 대응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으나 네안데르탈인은 아니었다. 즉,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것은 호모사피엔스가 가져온 병원균이란 주장이다. 종교적 변혁마저 전염병이 좌지우지했다는 해석은 눈길을 끈다. 책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변두리 종파’에서 대중 종교로 갑자기 변모한 배경을 균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저자는 “2, 3세기 치명적인 전염병이 로마제국을 강타했을 때 기독교 신앙은 다신교보다 매력적이고 확실한 삶과 죽음의 지침을 제공했기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이 초토화됐을 땐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가톨릭 교회를 향한 불신과 반발이 크게 확산했다. 저자는 “가난한 이들을 위로할 시간이 없는 교구 사제들과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자처하는 교황을 겨냥한 움직임이 본격화했다”고 했다. 책은 오늘날 전염병과 불평등 간 연관성을 짚으면서 논의를 확장한다. 팬데믹으로 국가 간, 국가 내 불평등이 드러났다. 영국에서는 가장 가난한 지역의 성인이 부유한 지역보다 코로나19로 사망할 확률이 약 4배 높았다. 가난한 이들은 재택근무가 어려운 일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비만, 당뇨병, 천식 등 요인을 이미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컸다. 인류에게 끊임없이 도전한 병원균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해법으로 저자는 ‘협력’을 제시한다. 세계적으로 기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고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저자는 “19, 20세기 고소득 국가들의 건강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은 의학 발전이나 경제 성장 덕분이 아니었다. 식수, 위생 등에 대규모로 투자한 정치적 결정이 가져온 성과였다”고 강조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스페인이 아메리카 대륙을 정복할 수 있었던 건 ‘총’과 ‘쇠’ 덕도 있지만 그들이 가져온 전염병이 진짜 원인이라고 분석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책의 저자도 마찬가지다. 과거 유럽의 병원균에 노출된 적 없던 원주민은 감기나 장염에도 치명적 증상을 보였다. 1518년 발생한 천연두 탓에 원주민 인구 최소 3분의1이 사망했다. “정복자들의 무기는 충격 효과를 주긴 했으나 원주민의 무기보다 효율적이지도, 강력하지도 않았다. 답은 균, 균, 균이다.”구석기시대부터 중세, 근현대에 이르는 인류사 속에서 ‘균’이 벌인 일들을 폭넓게 짚은 책이다. 영국 런던퀸메리대에서 글로벌 공중 보건에 대해 가르치는 사회학자가 썼다. 저자는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드론 공격이 파키스탄의 소아마비 퇴치 노력에 끼친 부정적인 영향 등을 연구하면서 이름을 알렸다.호모사피엔스가 여러 인간종 중 홀로 살아남아 현 인류의 조상이 된 것이 ‘인지적 우월성’ 덕택이라는 유발 하라리의 주장을 정면 반박하는 대목이 흥미롭다. 네안데르탈인은 동굴 벽화를 그린 최초의 인간종으로서 인지적으로 열등하지 않았다. 저자에 따르면 격차는 면역 체계에 있었다. 호모사피엔스는 네안데르탈인의 병원균에 대응할 수 있는 유전자를 가졌으나 네안데르탈인은 아니었다. 즉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킨 것은 호모사피엔스가 가져온 병원균이란 주장이다.종교적 변혁마저 전염병이 좌지우지했다는 해석은 눈길을 끈다. 책은 기독교가 ‘유대교의 변두리 종파’에서 대중 종교로 갑자기 변모한 배경을 균의 관점에서 풀어낸다. 저자는 “2, 3세기 치명적인 전염병이 로마제국을 강타했을 때 기독교 신앙은 다신교보다 매력적이고 확실한 삶과 죽음의 지침을 제공했기에 급성장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반면 14세기 흑사병으로 유럽이 초토화됐을 땐 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가톨릭 교회를 향한 불신과 반발이 크게 확산했다. 저자는 “가난한 이들을 위로할 시간이 없는 교구 사제들과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라고 자처하는 교황을 겨냥한 움직임이 본격화했다”고 했다.책은 오늘날 전염병과 불평등 간 연관성을 짚으면서 논의를 확장한다. 팬데믹으로 국가 간, 국가 내 불평등이 드러났다. 영국에서는 가장 가난한 지역의 성인이 부유한 지역보다 코로나19로 사망할 확률이 약 4배로 높았다. 가난한 이들은 재택근무가 어려운 일을 하는 경향이 있으며, 대중교통으로 이동한다. 코로나19에 감염될 경우 심각한 질병을 유발할 수 있는 비만, 당뇨병, 천식 등 요인을 이미 가지고 있을 가능성도 컸다.인류에게 끊임없이 도전한 병원균의 위협에서 살아남을 해법으로 저자는 ‘협력’을 제시한다. 세계적으로 기본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을 개선하고 격차를 줄이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다. 저자는 “19, 20세기 고소득 국가들의 건강이 비약적으로 향상된 것은 의학 발전이나 경제 성장 덕분이 아니었다. 식수, 위생 등에 대규모로 투자한 정치적 결정이 가져온 성과였다”고 강조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제주 한라산 백록담 외곽에 있는 암석 지대가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됐다. 국가유산청은 1일 “‘한라산 모세왓 유문암질 각력암(流紋巖質 角礫巖) 지대’(사진)를 국가지정유산 천연기념물로 지정 예고한다”고 밝혔다. 유문암은 이산화규소(SiO₂) 함량이 높고 색이 밝은 화산암 중 하나다. 그동안 현무암질 암석만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진 제주에서 최초로 확인된 다른 종류의 암석이다. 이 지대는 백록담 외곽 약 2.3km 구간에 넓게 퍼져 있다. 약 2만8000년 전 소규모 화산암 언덕이 붕괴하며 만들어졌다. 제주 방언으로 모래밭을 뜻하는 ‘모세왓’은 유문암질 각력암이 널려 있는 광경이 모래밭처럼 보여 붙여진 지명이다. 유산청은 “유문암질 각력암은 화산재해 예측, 마그마 분화 과정 연구 등에 있어 연구 가치가 크다”고 설명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K컬처의 전성기가 계속될지는 우려스럽다. 하지만 기회는 있다. 이제 숨 고르기를 넘어 체질 개선이 필요한 시점이다.” 동아일보의 기획시리즈 ‘K컬처, 해외 석학에게 길을 묻다’와 관련해 한류를 대표하는 엔터테인먼트사의 고위 관계자가 보내온 메시지다. 갈수록 글로벌 콘텐츠의 경쟁이 치열해지며 수익 구조에 경고등이 켜지고 있는 상황이란 진단이다.한류는 여전히 뜨겁다. 방탄소년단(BTS)과 블랙핑크가 여전하고, ‘폭싹 속았수다’ 등 새로운 콘텐츠가 쏟아진다. 하지만 내부에서 바라보는 한류 핵심 종사자들의 시선은 다소 다르다. 한류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경쟁력을 확보할 교두보가 마련돼야 한다고 본다.이에 동아일보는 K컬처 기업 핵심 종사자 20인을 대상으로 한류의 현재와 미래를 점검하는 설문조사 및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하이브와 SM, JYP, YG, 카카오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사를 비롯해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대형 드라마 제작사, 영화 배급사 등 K콘텐츠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들의 대표 및 전략책임자, 고위급 실무자가 참여했다. ● “한류, 정체 위기 경고등 켜졌다” 인터뷰에 응한 이들 다수는 K컬처가 현재 성장 정체기에 도달했다는 데 동의했다. 20명 가운데 13명(65%)이 “한류가 정체 상태에 들어섰다”고 답했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성장 둔화 신호와 여러 형태의 구조적 문제가 이미 나타나고 있다”며 “최근 정치·경제적 불안정 상황도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또 한 제작사 관계자는 “K팝 시장은 하락세에 있지만 드라마 부문은 여전히 성장세여서 분야별로 정체 양상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류 성장 정체의 원인으로는 ‘글로벌 콘텐츠 경쟁 심화’(11명)를 가장 많이 지목됐다. 이어 ‘해외 플랫폼 전략 변화’(9명), ‘콘텐츠 포맷 반복과 차별화 부족’(9명)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꼽혔다. K팝 분야에선 유사한 외형과 전략을 반복하는 제작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이 컸다. 한 응답자는 “비슷한 비주얼과 전략을 가진 K팝 그룹들이 연달아 데뷔하면서 피로감이 커지고 있다”며 “기획사들도 차별화를 시도하고 있지만, 소비자 입장에선 그 차이가 쉽게 느껴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한류 산업의 가장 큰 위협 요소로는 ‘수익 모델의 지속 불가능성’(8명)이 꼽혔다. 특히 K드라마 분야는 넷플릭스 등 글로벌 플랫폼의 영향력이 지나치게 커졌다고 짚었다. K팝은 공연과 부가 사업의 수익이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해외 팬덤 이탈도 우려되는 상황”이라고 했다. 롯데컬처웍스의 한 관계자는 “영화 흥행 실패가 재투자 축소로 이어지며 제작 규모 자체가 줄어들고 있는 것이 가장 우려된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응답자는 “피프티피프티, 뉴진스 사태 등에서 보듯 K팝은 저작권과 아티스트 관계, 팬덤의 과도한 개입 같은 문제를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고 했다.● “익숙한 공식 버리고 현지화 전략 나서야”응답자들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전략으로 ‘해외 현지화 강화’(10명)를 최우선 과제로 꼽았다. 단순히 콘텐츠를 수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각국의 창작자들과 협업해 현지 문화를 반영한 콘텐츠를 함께 기획·제작해야 한다는 인식이다. “K팝 시스템 자체를 수출하고, 다국적 아티스트를 육성해 각국 시장에 맞춰 현지화해야 한다”는 응답도 있었다. 한 대형 기획사 관계자는 “장르물, 실험작 등 장르 및 포맷의 다변화가 필요하다”고 했으며, 또 다른 기획사 관계자는 “창작자 중심의 수익 배분과 제작 구조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류 산업의 전망을 묻는 질문에는 11명이 ‘중장기 반등’을 내다봤다. K팝의 성장 여지가 여전히 남아 있고, BTS가 군입대로 완전체 활동을 멈추는 등 일시적인 악재들이 해결되면 어느 정도 숨통이 트일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중소 기획사들의 빠른 성장과 글로벌 팬덤의 확장 등은 한류 성장의 긍정적 신호로 받아들여졌다. 손승애 쇼박스 드라마사업총괄 대표는 “성장률 둔화는 피할 수 없지만, 제작과 유통 방식을 전면적으로 ‘리셋’ 한다면 중장기 반등은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 시장 재개방 등 환경 변화에 따라 시장이 확대될 여지도 충분하다”는 응답도 있었다. 이를 위해서는 익숙해진 성공 공식을 반복하는 제작 관행이나 불균형한 수익 구조, 폐쇄적인 제작 환경 등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구조 개편이 필요한 시점이라는 제언도 많았다. 제작자와 창작자가 존중받는 환경과 유연한 협업 모델, 변화하는 팬덤 생태에 대응할 수 있는 수익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정하 콘텐츠판다 총괄이사는 “OTT의 득세로 인한 시장 구조 변화, 수익 악화가 현재 위기의 핵심”이라며 “글로벌 OTT에 종속되지 않고 자생력을 키워야 한다. 지속적으로 좋은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하는 것이 한류의 생존 조건”이라고 강조했다.사지원 기자 4g1@donga.com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바다를 삶의 터전으로 삼아온 오세아니아 문화권을 조망하는 전시가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다. 국립중앙박물관은 9월 14일까지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시실2에서 프랑스 케브랑리-자크시라크 박물관과 공동으로 특별전 ‘마나 모아나―신성한 바다의 예술, 오세아니아’를 개최한다. ‘마나(Mana)’는 폴리네시아어로 모든 존재에 깃든 신성한 힘을, ‘모아나(Moana)’는 경계 없는 거대한 바다를 뜻한다. 박물관 관계자는 “오세아니아 예술 전반을 관통하는 세계관인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한 경외와 ‘바다의 신성함’을 응축해 전달하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이번 특별전에는 대형 카누와 조각, 석상, 악기, 장신구, 직물 등 18∼20세기 유물과 현대 작가 작품 8점 등 179점이 전시된다. 카누 뱃머리 조각 ‘도가이(dogai)’, 카누 뒷부분을 장식한 조각 ‘타우라파(taurapa)’ 등은 바다를 길로 삼아 이동하고 정착한 오세아니아인들의 항해와 세계관을 잘 보여준다. 사람 얼굴과 메기 머리를 조각한 갈고리(사진), 신성한 힘을 담은 전사의 방패 등은 공동체 중심 세계관을 반영한다. 혈통과 생명력을 상징하는 연옥 목걸이 ‘헤이 티키(Hei Tiki)’ 등 다채로운 이국적 유물을 만나볼 수 있다.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6만6620장’.지난달 20일 약 5년 만에 우리 곁에 돌아온 종묘 정전(正殿)에 새로 올린 기와의 숫자다. 2020년 안전 문제로 보수에 들어갔던 정전은 기존 기와 중 상태 좋은 약 5000장만 남기고 나머지는 모두 갈아야 했다. 기와 한 장당 완성에 걸리는 기간은 평균 1개월. 4년 가까이 쉼 없이 빚고 굽고 말리고, 다시 부수고 빚는 과정을 반복해 정전 지붕은 본모습을 되찾았다. 여름 땡볕에도 900∼1000도를 오가는 가마 앞에 불을 때며 이를 이뤄낸 건 김창대 제와장(53)이다. 국가무형유산 제91호 보유자인 그는 1998년 일면식도 없던 한형준 제와장을 찾아가 무작정 매달렸다. 그렇게 사제의 연을 맺은 두 사람은 당시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던 전통 기와 제조법을 되살렸다. 그리고 2008년 화마로 잃어버린 숭례문 복원에 수제 기와을 얹으며 우리 문화의 소중한 가치를 드높였다. 정전에 이어 현재 사직단 기와까지 제작하며 종묘사직(宗廟社稷)에 생기를 불어넣고 있는 김 제와장을 지난달 30일 오후 종묘에서 만났다.》―오늘 오전에도 작업하셨다고요.“새벽 4시까지 전남 장흥 작업장에서 가마를 때다 왔지요. 불을 균일하게 유지해야 고른 기와가 나오거든요. 마침 오늘 사직단 현장에 올 일이 있어서…. 기와는 만든다고 끝이 아닙니다. 결국 건축물에 제대로 올라가야 매조지는 거니까요. 현장과 소통하는 게 무척 중요합니다. 겸사겸사 종묘도 들렸습니다.” ―올해 종묘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이 된 지 30년 됩니다. 뿌듯하겠습니다.“웬걸요. 올 때마다 걱정만 가득합니다. 행여 실수한 건 없는지, 종묘에 모신 왕들께서 노여워하시진 않길 바라며 고개를 숙입니다. 오늘도 ‘아, 그건 좀 더 신경 썼어야 했는데’ 하고 아쉬운 게 떠오르네요. 4년 동안 정전 기와 작업하며 신가한 경험을 했어요. 희한하게 가마 불 때는 날이면 기온도 바람도 딱 맞아떨어졌어요. 하늘이 보살펴 주시는구나 싶었지요. 그런데 제가 부족했을까 봐….” ―종묘가 지닌 무게감이 컸나 봅니다.“아무렴요. 다른 기와 작업 때도 제일 신경 쓰이는 건축물이 사당 같은 제례 공간이에요. 조상님을 모시는 곳이잖아요. 하물며 종묘 아닙니까. 물론 더 자긍심을 갖고 일하기도 했어요. 돈벌이로 여겼으면 맡지도 않았겠죠. 평생 닦아 온 재주로 우리 문화유산을 정비한다는 사명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니 책임감은 말로 못 합니다.” ―이런 큰 공사를 마치면 이문도 남는 거 아닙니까.“그런 거 바라면 이 일 못 합니다. 요즘에야 사정이 좀 나아져서 겨우 적자나 면하는 수준입니다. 국가유산청도 신경을 많이 써 주시니까요. 숭례문 때 생각하면 훨씬 나아졌죠. 그땐 정말 마이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죠.” ―숭례문 복원하고 손해를 보셨다는 건가요.“이런 얘기 조심스럽긴 한데, 처음부터 스승님하고 각오하고 했던 일이에요. 당시 전통 기와는 일제강점기 등을 거치며 실전되다시피 한 상태였어요. 그걸 스승님 혼자 되살리려 버티고 계셨던 건데, 숭례문은 적당히 해선 안 되잖아요. 안 그래도 비통하게 잃었는데, 제대로 살려내야 할 거 아닙니까. 옛 문헌 등을 다시 뒤지고 뒤져서 전통에 가장 가까운 방식을 찾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수없이 실험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했겠어요. 스승님이 2013년 숭례문 기공식 끝내고 한 달 뒤에 돌아가셨어요. 모든 걸 다 쏟아부으신 거죠.” ―돈도 안 되는 일을 왜 계속하신 겁니까.“이게 ‘제 일’이니까요.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습니다. 스승님이 걸으신 길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보여주고도 싶었어요. 저도 관두고 싶은 순간이 많았죠. 도자 전공이니 번듯한 작품 만들면 좀 근사하게 살 수도 있으련만. 내일은 관둬야지 하고 잠들었다가도, 다음 날이면 새벽같이 가마 앞에 나와 앉아 있어요. 하얗게 피어나는 불꽃을 보고 있으면, 또 마음을 빼앗기고 몰두하는 거죠. 그러다 30년 세월이 흘러버렸네요.” ―수제 전통 기와의 장점은 뭡니까.“비용 생각하면 기계로 찍는 기와가 효율적이죠. 시간도 인력도 몇 배는 줄어드니까. 공장 기와가 더 단단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문화유산엔 우리 전통 기와가 가장 잘 어울려요. 미학적인 측면만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정전을 대규모로 수리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건축물이 무거운 하중에 짓눌려 사고가 날 위험이 컸기 때문이에요. 1970, 80년대 하나둘 교체해 올린 공장 기와들 영향이 큽니다. 전통 기와보다 2배 가까이 무겁고 둔탁하죠. 선조들이 수제 기와를 올린 건 다 이유가 있었던 거지요.” ―원래 회화 전공이라고 들었습니다.“미술 배울 땐 수채화로 입문했어요. 근데 부산공예고교(현 한국조형예술고교)에 가며 도자에 관심을 가졌죠. 실력도 나쁘지 않아 모교에 9급 공무원으로 취직했어요. 근데 우연히 스승님 나오시는 다큐멘터리를 보고 홀딱 반해버렸어요. 부산에서 살던 놈이 장흥까지 물어물어 찾아갔죠. 근데 어찌나 박정하게 대하시는지. 3개월 꼬박 매달리니 겨우 받아주셨어요.” ―왜 매몰차게 대하셨을까요.“제 미래가 걱정되셨던 거죠. 당신이야 평생 해 온 일이라지만, 젊은 놈이 밥 벌어먹고 살지 못할 게 뻔했거든요. 공무원이니 편하게 살 수 있는데, 왜 힘든 길을 가려 하느냐고 하셨어요. 그땐 젊은 혈기에 큰소리 땅땅 쳤죠. 할 수 있다고, 걱정 말라고. 기와로 성공해 보이겠다고.” ―그렇게 뛰어드니 천직인 걸 알았군요.“아이고, 웬걸요. 여러 번 도망가려고 했습니다, 하하. 그저 하다 보니 오기가 생겨서…. 기와 한 장 굽는 데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아십니까. 그저 빚고 굽는 게 아닙니다. 크게는 16단계, 세밀하게는 39단계를 거칩니다. ‘쨀줄질’ ‘고마괘기’ 같은 전통 방식은 설명드려도 이해하기 어려울 테고 …. 쉽게 말해 5가지 흙을 용도에 맞게 배합하고, 가마에서 일곱 빛깔을 띠도록 구워 내고, 그걸 자연 바람에 제대로 말려내야 하죠. 형태에 따라 암키와 수키와 암막새 수막새 장식기와, 크기 따라 소·중·대·특대와 등등 맞춤해서 만들어야 합니다.” ―왜 도망가지 않았나요.“누군가는 해야 하잖아요. 1980년대만 해도 수제 기와하는 곳이 몇 있었지만, 이젠 저랑 제 동료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종묘 제안이 왔을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동료랑 소주 한잔하며 자신 없다고 속내를 털어놓았죠. 뭣보다 육체적으로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었습니다. 이 작업 하는 4년 동안 다른 청탁은 일절 받지도 못 해요. 6일마다 가마에 불을 때며 매달려야 하는데, 자칫 실수라도 할까 봐 그것도 두려웠고요.” ―결과가 나쁠까 봐 걱정됐던 건가요.“그런 점도 없진 않겠지만, 기와라는 게 올린다고 끝이 아니거든요. (정전을 가리키며) 오늘처럼 맑은 날에 찬찬히 보세요. 기와마다 색깔이 죄 다르지 않습니까. 수제로 구웠기 때문에 하나하나 독특한 색을 지닌 거예요. 이게 5년은 지나야 풍우를 받으며 전체적인 조화를 이뤄요. 그 사이에 금 가거나 깨지는 건 하나씩 교체하면서 세월을 겪어내야 진정한 기와가 완성되는 거죠. 근데 행여 그걸 잘못 만들었다고 보시는 분들도 있을까 걱정됐죠.” ―말씀대로 기와는 흙과 나무에 따라 다 다르다면서요.“기와 작업은 사람이 하는 일은 50%밖에 안 돼요. 불 때는 나무가 40%, 흙이 10%입니다. 셋이 조화를 이뤄야 제대로 된 기와가 나옵니다. 무슨 흙을 어떻게 섞느냐, 소나무를 때느냐 편백나무를 때느냐에 따라 굳기도 색도 달라집니다. 가마 온도를 전체적으로 균일하게 맞추는 건 수십 년 경험을 쌓아야 가능하죠. 이젠 제자들도 믿고 맡길 정도까지 된 게 다행입니다.” ―제와에 관심 있는 후학들에게 당부할 게 있을까요.“뭐든 욕심부리지 말라고 하고 싶네요. 문화유산을 보수하고 지키는 것도 결국 사람과 사람 간의 일입니다. 서로 대화하며 물 흐르듯 해야 해요. 독불장군처럼 굴면 아무것도 되지 않죠. 하나 더 보태자면, 기본을 지키는 겁니다. 좋은 흙을 찾고, 좋은 나무를 쓰고, 정성껏 가마를 때면 결과는 나옵니다. 괜히 이것저것 딴거 하려 들면 문제가 발생해요.” ―정전이나 숭례문을 찾는 관람객들에게 하고픈 말은 없나요.“딱히 그런 게 있겠습니까. 각자 마음대로 즐기시면 되죠. 그저 ‘좋네’ ‘괜찮네’ 하고…. (김 제와장은 잠시 울컥했다.) 혹시라도 고생한 사람들이 있겠구나 여겨주시면 고마운 거죠. 스승님 묘가 장흥 작업장에서 멀지 않습니다. 정전 기와 작업 끝나고 술 한 잔 따라 드리며 절 올렸어요. ‘그 힘겨운 세월 동안 스승님이 버텨주신 덕에, 저도 이어받아 세상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삽니다’ 하고요. 앞으로도 제 힘이 필요한 곳이면, 지금까지 배운 대로 지금까지 공부한 대로 보탬이 되면서 살겠습니다.”김창대 제와장(製瓦匠)△1972년 부산 출생△1990년 부산공예고 도예과 졸업△1997년 부산동의공업대 산업디자인과 졸업△2009년 한국전통문화대 졸업△2009년 국가무형유산 ‘제와장’ 전수교육조교△2019년 제와장 보유자 인정정양환 문화부장 ray@donga.com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