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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은 다른 어떤 농사와도 다릅니다. 씨앗을 사지도, 비료를 주지도, 농약을 치지도 않지만 언제나 최고의 선물을 주지요.” 지난달 22일 캐나다 퀘벡주 몬트리올시에서 남동쪽으로 80km 떨어진 브로몽의 파인 마운틴 숲을 찾았다. 퀘벡 지역은 세계 메이플 시럽의 72%, 캐나다 메이플 시럽의 90%를 생산하는 전 세계 메이플 시럽의 핵심 생산지다. 이곳에서 만난 메이플 시럽 생산자 데이비드 홀 씨(65)는 하늘을 향해 쭉쭉 뻗은 울창한 단풍나무들을 쓰다듬으며 “숲에서 태어나고 숲에서 자란 우리에게 숲이 없는 삶은 상상할 수 없다”고 말했다.● 수액 흘러넘치는 봄의 단풍나무 숲홀 씨의 단풍나무 숲은 얼핏 보기엔 잎사귀 없는 나무들로 가득한 겨울 산의 모습이었다. 군데군데 여전히 녹지 않은 눈들이 덮여 있었다. 하지만 수액 채취를 위해 단풍나무마다 1, 2개씩 꽂아놓은 관을 가만히 살펴보니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수액이 흘러나와 튜브를 통해 산 아래쪽 수액 탱크로 내려가고 있었다. 홀 씨는 “지금처럼 낮과 밤의 일교차가 커 수액 흐름이 왕성한 3월이 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할 수 있는 유일한 시기”라며 “많게는 하루에 한 그루당 3갤런(11.4L)을 채취하는데, 이런 나무가 이 숲에 2만3000그루”라고 설명했다.메이플 생산자들은 봄이 오기 전 미리 나무에 드릴로 구멍 1, 2개를 뚫고 수액 채취 관을 연결한다. 20여 일 뒤 채취를 끝내고 관을 제거하면 1년 뒤 나무는 스스로 재생을 통해 그 구멍을 메운다. 나무에서 막 흘러나온 단풍나무 수액은 달콤한 생수 같은 맛이 난다. 이를 수액 탱크에 싣고 단풍나무 숲 근처 일종의 처리 시설인 ‘슈거섁(Sugar Shack·설탕 오두막)’으로 가져간다. 수액을 끓이자 마침내 갈색빛이 나는 메이플 시럽이 됐다. 홀 씨는 “1L의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데 평균 40L의 수액이 필요하다”며 “메이플 시럽의 브릭스와 농도는 생산 설비 내 컴퓨터 센서를 통해 균질하게 관리된다”고 설명했다.● 대 이어 청년 농가 만드는 ‘액체 황금’ 홀 씨의 집안은 1860년부터 6대째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의 아버지 이전에도 우리는 늘 이 숲에 있었다”며 “어린 시절 아버지를 도와 일하던 때와 달라진 점이라면 그때는 채취한 수액을 마차에 실어 산 아래로 가지고 내려왔다는 것뿐”이라며 웃었다. 홀 씨는 “오직 자연과 호흡하며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게 일터로서의 숲의 매력”이라며 “맥길대 졸업 후 스스로 이 숲으로 돌아왔다”고 말했다. 홀 씨의 아들 앤드루 씨(31)도 마찬가지다. 아버지처럼 맥길대에서 자연과학을 전공한 뒤 숲으로 돌아와 메이플 시럽을 함께 생산하고 있다. 실제 퀘벡 지역에는 귀농한 청년층 등 젊은 메이플 시럽 생산자가 꾸준히 유입되며 그 수가 늘고 있다. 캐나다 정부 통계와 퀘벡 메이플 시럽 생산자협회(QMSP)에 따르면 2016년 이후 생산 농가 수는 20% 가까이 늘어 현재 1만3500가구에 달한다. 이렇게 창출된 정규직 일자리도 1만2600개에 이른다. QMSP는 “메이플 시럽 산업은 퀘벡주 국내총생산(GDP)에 11억 캐나다달러(약 1조1300억 원) 이상을 기여한다”며 “벌목에 비해 GDP는 9배, 고용은 16배 더 높다”고 분석했다. 홀 씨 역시 “메이플 시럽 생산을 통해 매년 40만 캐나다달러(약 4억1170만 원)의 수익을 얻는다”고 말했다.● 숲푸드로 지역경제 활성화 세계 3대 산림국 중 하나인 캐나다는 숲에서 얻는 임산물이 이처럼 국가 경제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고 있다. 캐나다의 임산물은 목재와 펄프부터 시작해 블루베리, 크랜베리 등 숲 열매와 단풍나무 수액 등 비(非)목재 임산물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산림 전문가들은 “버섯, 산나물, 감, 대추, 밤 등 먹는 임산물, 일명 ‘숲푸드’는 자연산 무공해 식품인 데다 탄소 배출, 토양 오염 등도 줄여 가치가 높아지고 있다”며 “지역의 숲푸드를 잘 살리면 지역 경제도 좋아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캐나다의 숲을 지키고 지역을 살리려 노력하는 일부 청년들은 캐나다 숲의 오랜 주인이었던 원주민 부족들과 함께 직접 숲으로 나가 버섯과 허브, 약초 등을 채취하고 이를 판매하는 지역 기반 사업체를 세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들은 ‘야생 바구니(The Wild Basket)’라는 이니셔티브를 통해 지역과 땅을 연결하고 주민들과 인근 식당에 신선한 임산물을 공급해 주목받았다. 다만 최근 캐나다 숲 농가들은 기후변화 위기와 맞서야 하는 상황을 맞고 있다. 극한기후 속 산불 재해 위험성 등이 커졌기 때문이다. 홀 씨는 “모든 숲을 지금처럼 유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메이플 시럽 산업의 미래와 다음 세대를 위해 필요한 숲은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새로운 단풍나무를 심어 메이플 시럽을 생산하려면 최소 50년 이상이 걸린다”고 말했다. 최근 퀘벡 지역의 메이플 시럽 생산 농가들은 ‘숲이 없으면 시럽도 없다’ 캠페인을 시작했다. 메이플 시럽 패키지에 캠페인 문구가 새겨진 10만 개의 스티커를 붙여 국내외 메이플 시럽 소비자들에게도 숲의 중요성을 알리자는 취지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캐나다 퀘벡주(州) 일대의 메이플 시럽 생산 농가들은 시럽 생산에서 더 나아가 메이플 시럽을 지역의 요리 및 문화 유산과 결합시킨 체험형 사업을 통해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바로 퀘벡 지역의 독특한 전통 문화인 ‘슈거섁(설탕 오두막)’을 통해서다. 1850년대부터 등장한 것으로 알려진 설탕 오두막은 메이플 시럽 생산이 절정에 달하는 이른 봄, 온 가족이 눈 덮인 숲에서 종일 일하다가 저녁에 모여 함께 술과 음식을 나눠 먹으며 휴식을 취하던 문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도 퀘벡주의 단풍나무 숲 일대에는 100여 개의 설탕 오두막이 존재하는데, 대부분 단풍나무 수액 채취가 이뤄지는 3월에 집중적으로 운영된다. 이 시기에 설탕 오두막을 방문하면 갓 끓여낸 메이플 시럽을 눈 위에 붓고 나무 막대에 돌돌 말아 막대 사탕처럼 굳혀 먹는 ‘메이플 태피’를 경험할 수 있다. 메이플 시럽을 이용한 팬케이크나 크레이프 등 다양한 퀘벡 전통 요리도 제공된다. 설탕 오두막 옆 단풍나무 숲에서 방문객들은 직접 단풍나무 수액 채취 과정을 관찰하고 생산자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일부 설탕 오두막은 무쇠 솥에 단풍나무 수액을 붓고 장작을 피워 메이플 시럽을 만드는 전통 방식을 시연하는가 하면, 단풍나무 숲 산책이나 마차 체험 등 다양한 활동을 제공하다 보니 이 시기 슈거섁에는 가족 단위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퀘벡주는 2020년 메이플 시럽 생산 100주년을 기념한 데 이어 2021년 단풍나무 수액 채취 시즌을 문화유산법에 따라 퀘벡의 공식 무형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또 메이플 시럽의 역사와 생산을 초등학교 교육 과정에서 다뤄 지역의 숲 자원이 산업을 넘어 교육과 공유 유산으로 이어지도록 하고 있다. 지역의 기술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메이플 시럽 생산 자격증도 딸 수 있다. 퀘벡주는 지난해 단풍나무를 퀘벡 문화와 정체성의 상징으로 공식화하기 위해 10월 셋째 주 일요일을 ‘국립 단풍나무의 날’로 선포하는 법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이날은 단풍나무와 단풍 시럽 생산, 단풍나무 제품과 관련된 모든 것을 기념한다. 퀘벡의 문화, 사회, 요리, 역사에서 단풍나무 숲이 가지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카페폭포’는 비가 오는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1, 2층 모두 손님들로 가득했다. 홍제천 명소인 홍제폭포 바로 앞에 자리한 덕에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가까운 안산(鞍山)에서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도 눈에 띄었다. 2023년 4월 문을 연 이 카페는 서대문구가 직접 운영한다. 구는 카페 수익으로 올 상반기 95명에게 총 2억100만 원의 ‘행복장학금’을 지원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해에도 카페 수익으로 대학생에게 300만 원, 중고교생에게 100만 원씩 총 114명에게 2억 원을 지급했다. 올해는 대상과 규모를 확대했다.● “아이들 돕는 데 쓰인다니 음료 주문 더” “부모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공부가 손에 안 잡혔는데, 장학금을 받게 돼 한숨 돌렸어요. 일부는 부모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전공 공부에 필요한 교재를 사는 데 쓸 생각이에요.” 올해 행복장학금을 받은 하모 씨(22)는 이날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대문구에 살고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하 씨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갑작스럽게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장학금 제도를 알게 됐고, 학업 성적은 물론 탈북민 대상 도시락 봉사, 자매도시 청소년 멘토링 등 다양한 활동을 인정받아 지원 대상자가 됐다. 과거 장학금은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의 몫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기초지자체 안에서도 교육 격차가 커지면서 자치구 차원의 장학금도 늘고 있다. 서대문구는 올해 행복장학금으로만 총 4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카페폭포가 개장 후 누적 201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되면서 수익이 늘어난 덕에 지원금도 커졌다. 장학금은 서대문구 소재 학교 재학 중이거나 서대문구에 1년 이상 주민등록을 둔 중학교 이상 학생 또는 관내 출생했거나 관내 학교 출신으로서 문화·예술·체육 등 분야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인 학생에게 주어진다. 인근 주민이라는 김서영 씨(48)는 “원래 외부 음식 취식도 가능한데 우리 학생들 좋은 일에 쓰인다니 같이 온 일행들 한 잔씩 다 시키자고 했다”고 말했다. ● 자치구들, 장학금 신설하고 금액 늘려 자치구 자체 장학사업을 운영하는 곳은 서대문구뿐만이 아니다. 강남구는 최근 장학기금을 만들고 새롭게 성적 향상 장학금과 근로 대학생 격려금을 신설했다. 특히 성적 향상 장학금은 소득 기준을 없앴다. 강서구도 이달 11일 ‘강서구장학회’ 장학생 모집을 마감했다. ‘구민한마음’ 장학금 2명, 모범 장학생 50명, 특기 장학생 4명 등 총 66명을 선발한다. 올해부터는 자기계발 계획을 갖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꿈지원 장학금’을 신설했다. 강북구는 2월 ‘꿈나무키움 장학재단’ 장학증서 수여식을 열고 음악, 미술, 체육 등 6개 분야에서 총 44명을 선발했다. 올해부터 고등학생과 대학생 지원액을 기존 3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인상했다. 양천구도 전년보다 54% 늘어난 143명에게 지난해 총 1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내년까지 장학기금 조성 목표액을 기존 20억 원에서 40억 원까지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 이 밖에 많은 자치구가 자체 장학재단을 운영 중이다. 송파구 인재육성장학재단은 지난 30년간 2944명에게 총 28억여 원을 지원했고, 금천미래장학회는 지난해 3월 기준 1854명에게 26억여 원을 지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각 구 구청과 장학재단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1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카페폭포’는 비가 오는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1, 2층 모두 손님들로 가득했다. 홍제천 명소인 홍제폭포 바로 앞에 자리한 덕에 외국인 관광객도 많았다. 가까운 안산(鞍山)에서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도 눈에 띄었다.2023년 4월 문을 연 이 카페는 서대문구가 직접 운영한다. 구는 카페 수익으로 올 상반기 95명에게 총 2억 100만 원의 ‘행복장학금’을 지원했다고 이날 밝혔다. 지난해에도 카페 수익으로 대학생에게 300만 원, 중·고교생에게 100만 원씩 총 114명에게 2억 원을 지급했다. 올해는 대상과 규모를 확대했다.● “아이들 돕는 데 쓰인다니 음료 주문 더”“부모님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공부가 손에 안 잡혔는데, 장학금을 받게 돼 한숨 돌렸어요. 일부는 부모님께 드리고, 나머지는 전공 공부에 필요한 교재를 사는 데 쓸 생각이에요.”올해 행복장학금을 받은 하모 씨(22)는 이날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대문구에 살고 서울 소재 대학에 재학 중인 하 씨는 부친의 사업 실패로 갑작스럽게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던 중 장학금 제도를 알게 됐고, 학업 성적은 물론 탈북민 대상 도시락 봉사, 자매도시 청소년 멘토링 등 다양한 활동을 인정 받아 지원 대상자가 됐다.과거 장학금은 중앙정부나 광역지자체의 몫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최근 기초지자체 안에서도 교육격차가 커지면서 자치구 차원의 장학금도 늘고 있다. 서대문구는 올해 행복장학금으로만 총 4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다. 카페폭포가 개장 후 누적 201만 명이 찾는 명소가 되면서 수익이 늘어난 덕에 지원금도 커졌다. 장학금은 서대문구 소재 학교 재학중이거나 서대문구에 1년 이상 주민등록을 둔 중학교 이상 학생 또는 관내 출생했거나 관내 학교 출신으로서 문화·예술·체육 등 분야에서 특출한 능력을 보인 학생에게 주어진다. 인근 주민이라는 김서영 씨(48)는 “원래 외부 음식 취식도 가능한데 우리 학생들 좋은 일에 쓰인다니 같이 온 일행들 한 잔씩 다 시키자고 했다”고 말했다. ● 자치구들, 장학금 신설하고 금액 늘려자치구 자체 장학사업을 운영하는 곳은 서대문구뿐만이 아니다. 강남구는 최근 장학기금을 만들고 새롭게 성적 향상 장학금과 근로 대학생 격려금을 신설했다. 특히 성적 향상 장학금은 소득 기준을 없앴다. 강서구도 이달 11일 ‘강서구장학회’ 장학생 모집을 마감했다. ‘구민한마음’ 장학금 2명, 모범 장학생 50명, 특기 장학생 4명 등 총 66명을 선발한다. 올해부터는 자기계발 계획을 갖춘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꿈지원 장학금’을 신설했다.강북구는 2월 ‘꿈나무키움 장학재단’ 장학증서 수여식을 열고 음악, 미술, 체육 등 6개 분야에서 총 44명을 선발했다. 올해부터 고등학생과 대학생 지원액을 기존 3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인상했다. 양천구도 전년보다 54% 늘어난 143명에게 지난해 총 1억 원의 장학금을 지원했다. 내년까지 장학기금 조성 목표액을 기존 20억 원에서 40억 원까지 두 배로 늘릴 계획이다.이밖에 많은 자치구가 자체 장학재단을 운영 중이다. 송파구 인재육성장학재단은 지난 30년간 2944명에게 총 28억여 원을 지원했고, 금천미래장학회는 지난해 3월 기준 1854명에게 26억여 원을 지급했다. 자세한 내용은 각 구 구청과 장학재단 홈페이지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11일 한국의 ‘산림녹화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는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겪으며 민둥산이 된 산과 숲을 복구한 70여 년의 녹화 역사를 담은 9619건의 기록물이다. 국민 식수 운동 포스터와 우표, 화전 정리 사업 일지, 연료림 조성 내용 등 다양한 자료로 구성됐다. 유네스코는 이 기록물이 ‘국가 차원의 계획과 국민의 참여를 통해 황폐한 산림을 성공적으로 복원한 사례’로서 ‘세계적인 가치’를 지닌다고 평가했다. 전쟁 직후인 1953년 3600만 m³에 불과했던 임목 축적 총량은 2020년 10억3800만 m³로 29배 증가했다. 정부가 전국적으로 입산 통제와 나무 심기 운동을 전개하고, 국민들도 적극 동참한 결과다. 산림 면적은 현재 전 국토의 63%에 이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스웨덴, 핀란드, 일본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비율이다. 면적으로만 보면 대한민국은 산림 국가, ‘숲의 나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최근 영남권에서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은 한국 산림의 이면을 드러냈다. 수십 년간 솎아내기(간벌), 숲길(임도) 내기 등 관리 없이 ‘과잉보호’된 숲은 산불이 발생하자 연료로 가득 찬 거대한 화약고로 변신했다. 아홉 계곡이 굽이진 데서 이름을 따왔다는 경남 산청 구곡산은 이름 그대로 길이 험하고 굽이져 진화대가 접근하기 어려웠고, 지리산을 비롯해 국내 산 곳곳에 대책 없이 쌓인 1m 깊이 낙엽과 나무 잔재는 불쏘시개가 돼 화세를 키웠다. 이번 산불로 4만여 ha(헥타르), 서울 면적 3분의 2에 이르는 숲이 소실됐다. 최소한으로 복원하는 데만 30년, 생태계가 돌아오게 하는 데는 50년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숲은 심는 것이 아니라 가꾸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산림녹화기록의 세계유산 등재는 우리가 숲을 ‘심는 데’ 성공했다는 사실을 인정받은 것이다. 이제는 숲을 가꿀 때다. 전 국토의 63%가 숲인데 한국의 목재 자급률은 2023년 기준 18.6%에 불과하다. 벌채는 ‘훼손’으로, 임도는 ‘환경 파괴’로 인식돼 온 탓에 목재, 임산물 등 숲 산업이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 산불은 건강한 숲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적절한 간벌과 임도 조성이 필수적임을 보여주었다. 일본에서 오카야마현 산촌이었던 마니와시는 넓은 숲을 체계적으로 관리해 목재를 생산하고, 일본 최대 폐목재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만들어 지역 경제를 살렸다. 그 결과 숲도 커졌다. 시 전체 면적의 80%가 숲인데 이 중 절반 이상이 시민들이 조성한 숲이라고 한다. 산림녹화기록의 세계유산 등재는 우리 숲이 더 이상 보호받아야 할 객체가 아니라 함께 성장하고 상생해야 할 동반자임을 확인시켜 주었다고 할 수 있다. 산림 관리 기관의 예산을 늘리고, 장기적인 산림 발전 계획을 수립해 목재뿐 아니라 임산물, 탄소 저감, 관광 등 숲에서 창출될 수 있는 다양한 부가가치들을 지금부터 발굴해야 한다. 아프리카 속담에 ‘나무는 그 열매로 판단된다’는 말이 있다. 산림녹화의 진정한 성과는 그 숲의 쓰임으로 증명될 것이다. 70년 뒤 우리의 산림 활용 기록은 어떻게 남게 될까. 지금부터의 노력에 달렸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日 인구소멸지역 되살린 숲오카야마현 마니와시는 산림 면적이 80%에 달하는 일본의 대표적 산촌이다. 목재 생산으로 지역 경제를 이끌어 왔지만, 주택 경기 침체로 목재 수요가 줄며 젊은층이 떠나고 인구도 급감해 인구소멸 지역으로 전락했다. 반전의 계기를 만든 것은 다시 ‘숲’이었다. 버려지던 폐목재를 원료로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세워 전기를 생산하고 그 전기로 다시 목재를 가공하며 친환경 순환 경제를 이뤄냈다. 지속가능한 산촌 모델로 주목받자 도시 청년들까지 하나둘 정착했다. 숲을 잘 활용해 지역 경제를 살리고 결과적으로 숲도 사는 ‘그린시프트’를 이뤄낸 것이다.》“친환경 산림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산촌 생활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21일 일본 중부 오카야마현 마니와시(市)에서 만난 나카야마 나오키 씨(35)에게 산촌 생활을 묻자 이런 답이 돌아왔다. 나카야마 씨는 돗토리현 소재 대학의 전기전자공업과를 졸업한 뒤 2014년 마니와시 목재 및 발전 기업인 메이켄(銘建)공업에 입사해 이곳에 정착했다. 일본 또한 젊은 사람들은 대개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떠나가지만, 역으로 산촌으로 들어와 12년째 살고 있는 것이다. 그는 현재 회사의 바이오매스 발전소 관리 및 기계 운용 전반을 책임지고 있다. 나카야마 씨는 “바이오매스 발전의 성장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며 이곳을 택한 이유를 말했다.● 인구소멸지역에 日 최대 폐목재 발전소 나카야마 씨가 정착한 마니와시는 2005년 3월 인구가 줄어든 9개 마을을 합해 새로 탄생한 시다. 관할 내 산림 면적이 80%에 달해 임업과 목재 생산이 지역 경제 생산의 약 30%를 차지했다. 하지만 저출산 고령화가 지속되며 주택 경기가 침체됐고 목재 수요도 줄었다. 다른 산촌처럼 젊은이들이 지역을 떠났고 고령화가 심해졌다. ‘3K’(위험하고 고되고 불결한 일·3D의 일본식 표현)로 인식되는 임업과 목재 산업의 종사자는 갈수록 줄었다. 이런 지역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 목재 가공 과정에서 버려지는 가지, 톱밥 등 폐목재를 연료로 전기를 생산하는 바이오매스 발전소다. 폐기물 감량은 물론 나무가 흡수한 탄소를 발전 과정에서 다시 배출하는 것이라 탄소 중립 효과도 있다. 매연저감설비를 통해 대기오염물질 발생도 최소화했다. 메이켄공업은 1984년 발전능력 175kW짜리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지역에 처음 만들었다. 이어 1998년 1950kW짜리를 추가했다.2015년엔 마니와시와 메이켄공업을 비롯한 10개 지역 기업들이 함께 출자해 ‘마니와 바이오매스 발전소’를 건립했다. 마니와시 관계자는 “‘폐목재를 버리느니 한번 회사에서 필요한 전기를 직접 만들어 보자’란 생각이었는데 예상보다 더 많은 에너지가 생산됐다”며 “침체된 지역 경제의 활로를 찾으려던 다른 기업들까지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총자본금 2억5000만 엔(약 25억 원) 중 마니와시도 3000만 엔을 출자했다. 이곳은 일본 최대 목재 바이오매스 발전소가 됐다. 연간 8만7500MWh의 전력을 생산해 약 20억 엔의 매출을 올린다. 버리는 목재를 재활용하면서 연간 1억 엔이 들었던 폐기 처분 비용도 절감했다.● ‘산촌의 기적’ 보러 연 4만 명 관광폐목재로 만든 전기는 지역 기업, 관광서, 학교, 주택에 공급된다. 마니와시의 에너지 자급률은 72%에 달한다. 목재 재활용으로 목재도 살고, 지역도 사는 ‘친환경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 내에서도 ‘산촌 경제’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산촌의 기적’에 대한 관심이 커지자 마을 사람들은 2006년 투어 상품도 만들었다. 도쿄에서 신칸센을 타고 출발해도 반나절 넘게 걸리는 이곳 벽지를 다녀간 사람이 연 4만 명이 넘는다. 나카야마 씨도 이런 지역의 가능성을 믿고 정착했다. 6년 전 회사에서 차로 5분 거리인 곳에 새집을 짓고 세 아이를 낳았다. 그는 “더 공부하고 노력해 친환경 발전 전문가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마니와시에서 미래를 그리는 것은 나카야마 씨뿐만은 아니다. 메이켄공업에는 도시에서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찾아오고 있다. 1923년 창업한 메이켄공업은 기존 집성판보다 강도가 높은 CLT(합판을 직각 교차해 압축시켜 강도를 높인 집성판)를 생산한다. 목재로 지어진 2020년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뿐 아니라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 시설에도 마니와시에서 생산된 CLT가 사용됐다. 메이켄공업 인사과 관계자는 “우리는 100년 넘게 목재를 다룬 회사다. 바이오매스 발전뿐 아니라 목재를 가공하는 기술과 노하우가 축적돼 있어 이를 배우러 도쿄나 오사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하는 젊은이도 적지 않다”며 “도시에서 온 젊은이들이 15명 정도”라고 했다. 마니와시 본사와 공장에는 약 300명이 근무 중인데 20∼40대 직원이 전체 직원의 60%다. 평균 연령은 39.8세다. 일본의 제조업 근로자 평균 연령이 43.1세(2021년 기준) 내외인 것을 감안하면 비교적 젊은 회사인 것이다.● “산림 경제의 새로운 성공 모델” 사람들은 삶의 터전인 숲을 더 가꾸고 있다. 전체 산림 중 인공적으로 조성한 숲이 57%가 넘는다. 보존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가꾸고 활용하면서 숲도 되레 더 커졌다. 시의 도전은 계속되고 있다. 이곳 목재 기업은 벌목부터 목재 가공까지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정부 지원을 받아 지난해부터 연간 1500t의 음식물쓰레기와 배설물 등을 수거한 뒤 발효시키고, 이 과정에서 나온 바이오가스로 발전을 한다. 액체 비료도 생산된다. ‘환경과 조화를 이루는 지속 가능한 미래를 만든다’는 게 마니와시의 목표다. 2018년에는 일본 정부가 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의 시범 도시로 선정되기도 했다. 미야자키대 산림환경학과의 사쿠라이 린 부교수는 “마니와시의 시민, 기업가, 공무원들은 ‘숲을 통해 우리가 함께 지속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공통된 의식을 확실히 공유하고 있다. 그런 믿음이 산림 경제의 새로운 성공 모델을 만들어 가는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일본의 산림 면적은 약 2500ha로 국토의 68.4%를 차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 중 핀란드(73.7%), 스웨덴(68.7%) 다음으로 많다. 제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황폐화된 산림 복구 산업이 결실을 거둬 지난 50년 사이 산림 면적이 2.6배로 늘었다. 산림 자원이 풍족해진 만큼 단순히 목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산림이 갖고 있는 다양한 가치를 끌어올리기 위한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이를 위해 우리나라의 산림청 역할을 하는 일본 임야청은 2018년 ‘산림서비스산업 검토위원회’를 마련했다. 크게 건강, 교육, 관광,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등 4개 분야로 나눠 산림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토녹화추진기구’ ‘숲만들기전국추진회’ 등 민간 단체들과의 의견 교류도 활발하다. ‘관광 대국’ 일본은 특히 도쿄, 오사카, 교토 등 일부 대도시에 외국인 관광객이 몰리는 것을 분산시키고 지역 경제를 살리기 위해 최근 산림 관광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2017년 전국 국유림 83곳을 ‘일본 아름다운 숲, 추천 국유림’으로 선정하고 알리기에 나섰다. 지역의 표지판과 안내문 설치 등 외국어 정보 서비스를 늘리고 있으며, 노후한 숙박과 교통 시설 정비에도 나서고 있다. 산림욕, 온천욕 등과 결합시킨 ‘헬스 투어’도 인기다. 나가노현 이이야마(飯山)시 모리노이에(森の家)와 같은 산촌생태시설은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산림 치료를 중심으로 요가, 카누, 소바 만들기, 산나물 캐기 등 200여 가지 체험 코스를 만들어 사업 초기인 2007년에 최고 200만 명이 다녀갔다. 지금도 연간 수만 명이 찾는다. 기업들도 산림 활용에 적극적이다. 정보기술(IT) 기업 세일스포스닷컴은 직원 46명이 1년간 와카야마현 산림에서 재택업무와 지역 봉사를 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그 결과 이전보다 매출(계약 금액)이 24% 증가하는 등 생산성이 오르는 효과를 봤다. 일본 정부는 2019년 ‘산림환경양여세’, 2024년 ‘산림환경세’ 등을 신설해 마련한 예산을 산림 지역에 투입해 산촌 경제 활성화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은 대형 이벤트가 있을 때마다 산림 강국의 이미지도 강조하고 있다. 2020 도쿄 올림픽 주경기장 건물은 목재로 지어졌다. 이달 13일 개막하는 2025 오사카 간사이 엑스포의 상징물 또한 목재로 만들어진 ‘그랜드 링’이다. 폭 30m, 최대 높이 20m에 둘레가 무려 2km에 달하는 원형의 목조 건축물을 못을 쓰지 않고 목재들을 끼워 넣는 일본 전통 기법으로 만들었다. 지난달 4일 세계 최대 목조 건축물로 기네스 인증도 받았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산불 진화 지름길 ‘임도’지난달 25일 울산 울주군 화장산 산불은 20여 시간 만에 꺼진 반면 바로 옆 대운산 산불은 진화에 닷새가 걸렸다. 두 산의 운명을 가른 건 폭 3.5m의 산불진화 임도 유무였다. 영남권을 덮친 산불로 31명이 숨지고 4만여 ha(헥타르)의 산야가 불탄 가운데 산을 바꾸고 진화 역량을 높여 대형 산불에 대응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영남권 산불 현장을 찾아 진화 과정의 문제를 분석하고 개선책을 살펴봤다.》“불도깨비가 고마 코앞까지 가첩게(가깝게) 온다 아인교. 인제 마 끝이구나 싶었는데, 그때 기적같이 산불진화차가 숲길(임도)을 타고 올라오는 거라.” 지난달 30일 오전 11시경 울산 울주군 언양읍 화장산에서 만난 김모 씨(68)는 이번 산불에서 “죽다 살았다”며 연거푸 가슴을 쓸어내렸다. 지난달 22일 시작된 울주 산불은 25일 화장산에 이르렀다. 하지만 산불은 하루도 안 돼 진화됐다. 폭 3.5m 이상으로, 진화 차량 두 대가 동시에 오갈 수 있는 ‘산불진화 임도(林道)’ 덕이었다. 영남권에 발생한 역대 최악의 산불로 31명이 사망하고 4만여 ha(헥타르) 산야가 잿더미가 됐다. 기후변화로 산불이 더 커지고 잦아질 것으로 예측되는 가운데 산을 바꾸고 산불 진화 역량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동아일보는 3일 대형 산불이 발생한 숲을 찾아 진화 과정의 문제점을 분석하고 개선책을 짚어 봤다.● 폭 3.5m 이상 산불진화 임도 만들어야 지난달 31일 기자가 차를 타고 임도를 달려 화장산 정상까지 오르는 데 걸린 시간은 5분에 불과했다. 일반 산길로 걸으면 3시간은 올라야 하는 거리였다. 한국산림휴양학회에 따르면 산림 2km 거리를 차(시속 30km)로 오르면 4분, 도보(시속 2.51km)로 오르면 48분이 걸린다. 임도가 있으면 산불 진화 시간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임도는 턱없이 부족하다. 전체 산림에 설치된 임도의 총길이는 2만6785km(2024년 말 기준)로 1ha당 길이는 4.25m다. 독일 54m, 오스트리아 50.5m, 일본 24.1m와 비교하면 현저히 짧다. 임도가 있어야 진화장비와 인력이 숲 깊이 들어가 불을 끌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 분석 결과 임도로부터 1m씩 멀어질수록 산불 피해 면적이 1.55m²씩 늘어났다. 하지만 마냥 길을 낸다고 다 좋은 건 아니다. 화장산 바로 옆 대운산에도 임도가 있었지만, 대운산 산불은 진화에 닷새가 걸렸다. 화장산 진화 시간의 5배다. 기자가 대운산 임도를 살펴본 결과 폭이 좁아 차 한 대도 겨우 지나갈 너비였다. 산림자원의 조성 및 관리에 관한 법률(산림자원법)에 따르면 임도는 간선 임도, 지선 임도, 작업 임도, 산불예방진화 임도로 돼 있다. 이 중 산불진화 임도는 차량이 교행할 수 있도록 도로 폭을 3.5m 이상으로 닦아야 하고 취수장과 ‘불방패’ 역할을 하는 내화수림대를 갖춰야 한다. 전문가들은 규정에 맞는 산불진화 임도를 제대로 지어야 한다고 지적한다. 문현철 한국재난학회 부회장(호남대 교수)은 “역대 최악의 산불로 임도를 설치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커졌는데, 규격에 맞춰 제대로 설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산지 기상관측장비 보완해야 산불 방향을 특정하기 위해서는 기상 관측도 중요하다. 동아일보가 역대 최장 시간을 기록한 경남 산청 산불 지역(산청, 하동군)을 살펴본 결과 기상청 자동기상관측장비(AWS) 총 8개가 설치돼 있었다. 이 중 산지에 설치된 것은 1개(지리산 872지점)에 불과했다. 사실상 화재 지역의 정확한 풍향과 풍량을 확인하는 게 불가능했던 셈이다. 산림청 관계자는 “AWS 시설을 늘리거나 산불진화차량에 이동식 관측 장비를 달면 기상 관측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며 “산불을 키우는 바람의 속도, 방향 등을 정확히 예측해 산불 진화를 정교화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산불에서 헬기는 산불 진화 판도를 바꾸는 ‘게임 체인저’라 불릴 정도로 중요하다. 하지만 산림청 산림항공본부 소속 산불 진화용 헬기 50대 중 담수량 8000L 대형 헬기는 7대뿐이다. 그나마 2대는 부품 문제로 운항 중지 상태다. 나머지는 담수량 3000L 중형, 600∼800L 소형이다. 중형으로 따져도 대형 헬기가 한 번에 옮길 수 있는 물을 나르려면 최소 3번을 오가야 하는 셈이다. 채희문 강원대 산림과학부 교수는 “대형 산불은 강풍이 최대 변수인데 지금 헬기 체계로는 강풍에 운항할 수 있는 게 부족하다. 강풍에 견디는 대형 헬기가 필요하다”고 했다.● 진화예방대원 60대 이상 74% 산림청 소속 산불 전문 인력으로는 산불재난특수진화대와 공중진화대가 있다. 그리고 각 지역에 한시적으로 고용되는 산불예방진화대원들이 활동한다. 산림청에 따르면 현재 전체 공중진화대 103명 가운데 20대는 4명뿐이다. 산불재난특수진화대도 전체 410명 가운데 50대(110명) 및 60대 이상(19명)이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한다. 전체 산불진화대(9959명)의 94%(9446명)를 차지하는 산불예방진화대는 더욱 심각하다. 주로 주민으로 이뤄지는 탓에 60대 이상이 74%(7071명)다. 강원 강릉시는 2017년 산불예방진화대원 급여를 20만 원가량 올렸는데(250만→270만 원) 20∼40대 젊은 인력이 대거 지원했다. 김동선 강릉시 산불예방진화대장은 “젊은 인력 유입을 위해 진화대원들의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역대 최악의 산불로 31명이 숨진 가운데 산불과 산사태, 병해충 등 산림 3대 재난을 아우르는 ‘산림재난방지법’이 내년 2월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산림 인근 화재 위험 시설에 대해 시정 조치를 강제할 수 없는 점 등은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림재난방지법은 산불 등 재난에 대한 대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올해 1월 제정됐다. 핵심 내용은 산림 관리와 재난 대응의 최고 책임자인 산림청장을 중심으로 5년마다 산림재난 방지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산림재난정보시스템을 구축해 산불의 위험도를 사전 예보하거나 확산 경로를 예측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기후변화로 인해 대형 산불과 병해충, 산사태 발생 위험이 갈수록 커지는 상황에서 산림재난 전반을 포괄하는 법이 마련된 건 의미 있는 성과로 평가된다. 그동안 3가지 재난은 서로 다른 기관에서 조사·대응해 통합적인 정책 수립과 현장 조율이 어려웠다. 그러나 새 법이 시행돼도 아쉬운 점은 남아 있다. 산림재난방지법에 따라 산림청장은 전국을 대상으로 ‘산림재난 위험도 평가’를 실시해야 한다. 불에 잘 타는 침엽수나 소나무 분포 현황, 지역별 기후 특성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해 반영한다. 하지만 문제가 확인된 시설이나 토지에 위험 요소 제거나 시정 조치를 강제할 법적 권한은 없어 실효성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산림청에 따르면 건물 등 시설물에서 시작된 화재가 산불로 번진 사례는 2000년대 연평균 7.5건에서 2020년대에는 연평균 36건으로 크게 늘었다. 문현철 한국재난학회 부회장(호남대 교수)은 “단순히 위험도를 평가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가연성 물질을 다량 보유한 건축물 등 위험 요소에 대해 행정기관이 강제 조치를 취할 수 있도록 시행령 등을 통해 보완이 필요하다”고 했다. 실화자에 대한 형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림재난안전법에 명시된 형량은 현행과 동일하다. 고의로 불을 질러 큰 피해를 내도 1∼15년 징역형이 내려지는 게 전부다. 실수로 냈다면 3년 이하의 징역, 3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이 부과된다. 새 법에 산림재난방지 교육 이수 대상자가 정확히 명시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재난 현장을 총괄 지휘하는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교육 대상으로 명시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제언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
국내 기업들과 관계 당국은 산불 진화에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산불의 예방, 감시, 진화 등 전 영역에 걸쳐 인공지능(AI), 열화상 카메라, 드론 등을 접목해 대응하고 있는 것이다. 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SK텔레콤은 AI 산불 관리 솔루션인 ‘T 라이브 캐스터’ 서비스를 최근 서울 노원구와 구로구 등의 지자체에 추가 보급하기로 했다. 현재 130여 개 지자체에서 이를 활용하고 있다. T 라이브 캐스터 서비스는 산불 감시 드론에서 보내온 영상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AI가 이를 분석해 산불 발생을 감지하자마자 사전 지정된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기술이다. 올 2월 서울 구로구에서 발생한 산불을 초기에 탐지했고, 초기 진화가 마무리된 뒤 오후 11시쯤 다시 드론의 열화상 카메라를 통해 잔불을 발견하는 성과를 냈다. SK텔레콤은 또 산불로 인해 통신망이 소실된 산악지역에서 저궤도 위성통신을 활용해 통신할 수 있는 기술도 개발했다. 향후 국내에 저궤도 위성이 상용화되면 실제 활용이 가능하다. SK그룹의 계열사인 SK임업은 저전력 무선 산불감지 시스템을 친환경 정보기술(IT) 업체인 테크나인과 2023년 공동 개발했다. 현재는 일부 산불 위험 지역에 시범 설치하고 있다. 이는 연기 발생 여부를 센서를 통해 AI가 감지하는 기술이다. 해당 산불 감지 시스템에는 배터리를 두 개 장착해 한쪽이 태양광과 풍력으로 충전되는 동안 나머지 배터리의 에너지로 구동되도록 하고 있다. 배터리 교체 없이 오랜 기간 상시적으로 산불 상황을 감지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이를 통신으로 전파할 수 있다. AI 업체인 스피어AX는 산불 감시 시스템인 ‘파이어워처’를 2022년에 개발해 현재 16개 시군구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파이어워처는 폐쇄회로(CC)TV 영상에서 AI가 연기를 감지해 산불이 발생했는지 여부를 조기에 알리는 시스템이다. AI가 학습을 통해 화재로 인한 연기를 구름, 안개 등과 구별할 수 있다. 회사에 따르면 감지 정확도가 93.4%에 이른다. 올해 1월 25일 대구 동구 야산에서 산불이 발생했을 때 해당 시스템을 적용한 대구시가 빠르게 발화 위치를 파악해 조기 진압했다. 산불 확산 예측에도 첨단 기술이 접목되어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산불이 발생했을 경우 일몰 후 드론을 띄워 정찰 비행을 실시한다. 낮에는 진화가 우선이기 때문에 저녁 시간에 열화상 센서를 장착한 드론을 통해 산불이 어느 방향으로 확산할지 예측 정보를 취득하는 것이다. 수천 장의 사진을 커다란 사진으로 합친 뒤 이를 지도로 만들어서 재난 대응 유관 기관에 실시간으로 공유하기도 한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한재희 기자(산업1부)}
“로봇이 산불 발생 시 불쏘시개가 될 나무들의 부피를 측정하는 중이에요. 그냥 놔두면 대형 산불의 연료가 되거든요.”지난달 22일(현지 시간) 미국 오리건주 코밸리스시(市)에 위치한 맥도널드던 숲에서 오리건주립대 산림학과 소속 연구원 맷 슈만 씨가 연구실에서 개발한 산림 다목적 로봇을 가리키며 말했다. 약 1m 높이에 측정 장치와 컴퓨터, 트랙 바퀴가 달린 로봇이 움직이자 슈만 씨 손에 들린 스마트 패드에 주변 숲이 3차원으로 구현되기 시작했다. 슈만 씨는 “로봇이 숲을 돌아다니며 벌채 후 남아 있는 목재 등 산불 위험 요소를 찾고 임도 형태나 숲의 모양을 3차원으로 구현한다”며 “이 데이터로 산불을 조기 발견하고 나무의 쓰러짐 등으로 산사태 발생 여부도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숲이 주의 절반인 1173만5883ha를 차지하는 오리건주는 여름철 극도로 고온 건조해져 매년 대형 산불에 시달렸다. 이에 산불 예방에 많은 자원을 투입해 왔지만 산림 관련 업종이 궂은일에 속하는 탓에 인력 확보에 어려움을 겪었다. 오리건주립대 등 지역 학교와 연구기관들이 산림 로봇 등 기술 개발에 몰두하게 된 이유다.美도 깊은숲 관리 기피, 인력 못구해… 로봇 투입 ‘산불지도’ 만들어〈2〉 美, 산림기술 개발 집중이동형 ‘계획적 불놓기’ 로봇 개발… “마른 풀-나무 미리 태워 산불 예방”번개 떨어진 지점 추적해 조기 대응… 드론 활용해 묘목 자동식재 기술도州-美정부, 수백억원 예산 적극 지원“산불 예방 로봇을 활용하면 사람이 들어가기 어려운 숲 구석구석까지 확인할 수 있어요. 숲의 구조나 위험 요소도 사람보다 더 정확히 파악할 수 있죠.”슈먼 씨가 스마트패드로 로봇을 원격 조작하며 말했다. 슈먼 씨가 소속된 오리건주립대 포레스트리 연구실은 지난해 델루카 학장이 로봇 전문가인 우희성 교수를 영입하며 산림 관리 로봇들을 개발해오고 있다. 이 개발 중인 산림 기술은 이뿐만이 아니다. 드론을 이용해 원하는 목표 지점에 나무를 심는 기술도 개발하고 있다. 단일 수종으로 이뤄진 숲은 산불 발생 시 불이 빠르게 번진다. 혼합림을 조성하거나 불에 강한 나무들을 심어야 하지만, 넓은 산림에 사람이 직접 들어가 묘목을 일일이 심기란 쉽지 않다. 슈먼 씨는 “흙에서 썩는 상자에 묘목을 담아 드론으로 숲까지 운반한 뒤 목표 지점에 투하해 자동으로 나무를 심는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산불 커지는데 인력 감소… 기술 개발 불가피미국에서는 2012~2021년 10년간 연평균 6만1225건의 산불이 발생했다. 이 산불로 총 297만7776ha(헥타르) 산야가 잿더미가 됐다. 경기도의 약 3배에 이르는 면적이다.기후 변화로 산불은 더욱 커지고 잦아질 전망이지만, 미국에서도 산림 관련 업종은 힘든 일로 여겨져 인력 유입이 점차 줄고 있다. 21일 오리건주 임업회사 스타커에서 임도 개발 업무를 담당하는 제니퍼 비스는 “산림대학에서 꾸준히 젊은 산림 전문가들을 양성하고 있지만 숲에 자주 가거나 벌목을 하는 것이 어렵거나 위험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새 인력을 구하기 어려워졌다”며 “산불 관리, 나무 식재 업무의 경우 주로 멕시코 이민자들을 채용하고 있다”고 말했다.이에 미국은 대형 산불을 예방하고 부족한 인력을 대체하기 위해 산림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 등과 협력해 위성 이미지, 기상 자료를 활용한 ‘산불 연료 지도’를 구축했다. 산불이 발생했을 때 연료가 될 만한 수종, 목재 잔재, 마른풀 등이 어디에 많은지 확인해 산불 위험 정도를 표시한 지도다. 지금은 측정 기술과 데이터가 보강돼 산불 발생 시 확산 속도와 화염 정도를 추정할 수 있는 모델로 고도화됐다.● 산불 위험 마른나무 소각하는 로봇도학교와 연구기관뿐 아니라 민간 기업들도 다양한 산림 기술을 시도하고 있다. 숲을 통한 이윤을 창출하기 위해서는 산불 예방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오리건주와 함께 미 서부에서 가장 산불이 많이 나는 캘리포니아주에서 로봇을 개발 중인 스타트업 ‘번봇’은 계획적 불놓기를 위한 이동형 로봇을 2023년 개발했다. 계획적 불놓기란 산불을 일으키거나 산불 발생 시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나무 잔재, 마른풀을 미리 소각해 대형 산불을 예방하는 산림 관리법이다.트레일러가 달린 대형 트럭처럼 생긴 이 로봇은 숲을 돌다 산불의 연료가 될 만한 마른나무, 풀을 발견하면 트레일러 하단에서 불이 나와 이를 소각한다. 인력을 대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트레일러가 불의 확산을 막고 연기를 흡수하기 때문에 환경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다. 26일 번봇 직원인 로릴아이 노어비 씨는 “기존에 계획적 불놓기는 날씨, 장소 제약이 심했는데 이 기기를 활용하면 연중 불놓기로 산불 위험을 제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이 같은 기술은 단지 개별 기관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정부가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번봇의 계획적 불놓기 기기도 미국 산림청이 약 2970만 달러(약 436억8276만 원)를 지원한 덕에 빠르게 개발될 수 있었다. 2025~2026년 캘리포니아 주정부 예산안에 따르면 캘리포니아는 화재 감지 카메라와 위성 기술 매핑 등 산불 예방 첨단 기술 개발에만 1040만 달러(약 152억9000만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번개도 추적해 산불 선제 대응미국에서는 전체 산불의 약 46%가 번개 때문에 발생한다. 실제로 오리건주에서는 2022년 발생한 산불 889건 중 216건이 번개로 인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에 위성 및 고해상 카메라 등을 이용해 번개가 떨어진 지점을 추적하는 기술을 개발하는 곳도 많다. 리스 도브마이어 스타커 산불예방 담당자는 21일 “번개가 내리친 지점을 빠르게 확인하면 산불에 조기 대응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인공지능(AI)을 활용한 병충해 관리 기술도 개발되고 있다. 기존에는 연구진이 일일이 나무를 확인해 병충해 진행 정도를 파악했다면, AI 기술은 기존 데이터를 학습해 나뭇잎의 병충해 정도를 자동으로 분석한다. 이 기술을 드론에 탑재하면 광범위한 산림의 병충해 상황을 빠르게 진단할 수 있다. 토머스 델루카 오리건주립대 산림대학장은 “병충해 피해로 죽은 나무는 불에 더 잘 탄다”며 “기술을 이용하면 더 안전하고 정확하게 숲을 관리할 수 있다”고 말했다.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한재희 기자(산업1부)}
“오른쪽은 나무 위까지 탔는데, 왼쪽은 밑동만 그을렸죠. 나무 사이 빈 공간이 숲의 생사를 갈랐습니다.” 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미국 서북부 오리건주 유진시 벅(Buck)산의 숲에서 존 베일리 오리건주립대 산림학과 교수가 말했다. 지난해 7월 이 지역에 산불이 났지만 간벌(間伐·나무 솎아내기) 작업으로 숲 사이 공간을 만든 덕에 불길은 더 나아가지 못했다.영남권을 할퀸 대형 산불로 30명이 숨지고, 4만8239ha의 산림이 잿더미가 된 가운데 대형 산불을 막기 위해 우리 숲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토 대비 산림 비율이 63%나 되지만, 숲을 계획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산불에 취약하기 때문이다. 나무들이 지나치게 빽빽한 남부 산림은 강풍을 맞자 불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국내 산불 피해 면적은 최근 10년(2014~2023년) 연평균 4003.7ha로 2004~2013년(775.8ha)의 5배 이상으로 증가했다. 전문가들은 숲을 변화시켜 산불에 강한 숲을 만들고 경제적 가치를 높이는 ‘그린 시프트(green shift)’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본보 특별취재팀은 해법을 찾고자 지난달 21일부터 국내외 주요 숲을 심층 취재했다.집 500채 태운 벅산 산불, 나무 솎아낸 뒤엔 큰 피해없이 진화나무 솎아내기로 산속에 ‘완충지대’… “불길 확산 막고 건강한 숲에도 도움” 한국 면적 절반 태운 2020년 산불후 美, ‘간벌 효과’ 공감대 전역 확산 혼합식재로 불에 강한 숲 조성도“주황색 표시가 그려진 나무들 보이죠? 이곳은 이미 간벌 작업을 거쳤으니 ‘이 나무들은 자르지 않아도 된다’는 표시입니다.”지난달 24일(현지 시간) 미국 서북부 오리건주 유진시 벅(Buck)산 숲. 존 베일리 오리건주립대 산림학과 교수가 가리킨 나무 기둥에는 오리건주 산림부(Department for Forestry)가 간벌 작업 후 남겨놓은 주황색 일(一) 자 선이 그려져 있었다. 간벌은 숲의 나무를 솎아내 산불이 발생했을 때 빠르게 번지지 않도록 완충지대를 조성하는 것이다. 아무 나무나 자르는 것은 아니다. 산림당국이 위치와 나무 생육 상태 등을 조사해 간벌 장소와 정도를 정한다.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산불을 예방하기 위해서다. 베일리 교수는 “불이 나면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불이 옮겨붙는다”며 “나무를 잘라 공간을 만들면 재해를 막을 뿐 아니라 다른 나무들도 더 건강하게 생장한다. 숲을 지속 가능하게 만드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빽빽한 숲… 오리건주 산불로 12조 원 이상 피해이날 베일리 교수와 함께 방문한 벅산(고도 약 1466m)은 오리건주 서부에 위치한 주 최대 숲 윌라멧 국유림(약 6880㎢ 넓이)의 일부다. 오리건주와 캘리포니아주는 지중해성 기후로 여름철이 되면 극도로 고온건조해지고 강풍이 불어 산불 위험이 커진다.2020년 미 서부를 휩쓴 기록적 산불 당시 이곳도 피해를 당했다. 7월 시작된 산불은 수개월 지속되며 총 404만6856ha의 산야를 태웠다. 남한 국토 절반 크기다. 오리건주에서만 2020년 한 해 2027건 화재로 49만4252ha가 불타고 최소 11명 이상이 사망했다. 그해 9월 발생한 12건의 대형 화재만 따져도 피해액이 84억8800만 달러(약 12조4820억 원)에 이르렀다.벅산 숲도 인근에서도 큰 화재가 발생했다. 빽빽하게 붙어 있던 나무들이 불의 전달체가 되었다. 실제 기자가 방문한 지난달 24일 벅산 입구에서 당시 화재로 불에 탄 고사목들이 빽빽히 선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혼합식재로 불에 강한 숲 조성화재 후 오리건주는 직접 간벌하거나 사유림 소유자들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으로 숲에 완충지대를 만들었다. 그 결과 지난해 7월 16일 인근에서 ‘오레(Ore) 산불’이 발생했는데, 간벌을 시행한 벅산 숲은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 불은 완충지대 경계선에 선 나무 일부를 태웠지만 더는 나아가지 못했다. 베일리 교수는 “나무를 벤다는 것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지만 통상 산불은 나뭇잎에서 나뭇잎으로 불이 번지며 걷잡을 수 없게 커지는 것”이라며 “관리하지 않으면 더 큰 재앙이 닥친다”고 설명했다. 간벌의 효과가 널리 알려지면서 최근에는 주민이 직접 인근 숲을 간벌하기 위한 기금을 모금하는 경우도 생겼다.간벌만으로 산불을 막을 수는 없다. 오리건주 산림당국은 혼합식재를 통한 내화수림(불에 내성이 강한 숲) 구성에도 힘쓰고 있다. 한 종류의 나무로 숲을 구성할 경우 화재는 물론 병충해에도 취약하다. 산불과 병충해로 나무들이 고사하면 산사태가 일어나기 쉽다. 세 가지 산림 재난은 모두 연결돼 있다.이런 문제를 알기에 오리건주에서는 일반 기업들도 혼합림과 내화수림 조성에 힘쓰고 있었다. 21일 코밸리스시의 한 숲에서 만난 임업기업 스타커사 조림 담당자 스티븐 코스키 씨는 “일반적으로 한 구역에 최대 4개의 다른 종을 심는데 건조한 지역인지, 특정한 병해충 등이 발생하는 지역인지를 고려해 조림한다”고 말했다. 스타커사는 회사가 소유하고 있는 약 3만8400ha 숲에 85%는 더글라스 전나무, 나머지 15%는 내화성이 뛰어난 자이언트 세쿼이아 등 13개 종을 심고 있다.● 산 정상까지 숲길로… “환경영향 최소화해 건설”이런 숲 관리는 차로 이동 가능한 숲길(임도)가 잘 마련된 덕에 가능했다. 지난달 24일 기자가 방문한 벅산도 산 정상까지 숲길이 나 있었다. 숲길이 있으면 산불 발생 시 신속한 진화가 가능하다. 이날 차를 타고 지난해 산불 피해를 입은 고도 400m 지점까지 6.9km를 이동하는 데 차로 6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프레스턴 그린 밀러 팀버 부사장은 “숲길은 숲을 가꾸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건”이라며 “미국의 경우 산림 공학자들이 지향을 살피고 환경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도로를 설계해 임도 건설을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린 시프트(Green Shift) ::산불 등 재해에 강하고 임산물과 일자리를 창출해 지역에 기여하는 숲으로 전환함으로써 숲에 대한 인식과 관리 방식의 패러다임을 바꾸자는 의미.특별취재팀▽팀장 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황인찬 임우선 조은아 특파원(이상 국제부)김태영 이소정 임재혁 기자(이상 사회부)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도쿄=황인찬 특파원 hic@donga.com뉴욕=임우선 특파원 imsun@donga.com파리=조은아 특파원 achim@donga.com김태영 기자 live@donga.com유진=이소정 기자 sojee@donga.com임재혁 기자 heok@donga.com}
21일 경남 산청을 시작으로 영남권 곳곳을 휩쓴 대형 산불은 4만 ha 넘는 산야를 잿더미로 만들었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건 30명 가까운 인명이 희생됐다는 점이다. 1987년 산림청이 산불 피해를 공식 집계한 이래 최악의 피해다. 100세 할머니가 불붙은 집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유명을 달리했고, 80대 노인 3명은 대피 차량이 불티로 폭발하면서 함께 산화하고 말았다. “엄마 얼마나 뜨거웠을까” 오열하는 유족 인터뷰를 보며 가슴이 먹먹해 한동안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더욱 속상했던 건 이 참화(慘火)가 고작 라이터를 켠 성묘객, 예초기 불티를 방치한 작업자 등 기본 안전 수칙을 지키지 않은 사람들의 실수에서 비롯됐다는 점이다. 산불은 변하고 있다. 앞으로 더 자주, 더 크게 일어날 것이다. 기후변화로 한반도의 봄이 고온·건조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산불도 강한 바람, 건조한 공기, 높은 기온 등 3중 악조건 탓에 더 크게 번졌다. 가장 많은 사망자를 낸 경북 의성 산불의 경우 안동을 거쳐 영덕으로 확산하는 데 고작 한나절밖에 안 걸렸다. 빠르게 번지는 불은 당연히 끄기 어렵다. 앞으로 산불은 이전과 달리 많은 사상자를 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모습은 달라진 게 없다. 2024년 산불통계연보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산불의 원인은 입산자 실화(失火)가 31%, 논밭두렁이나 쓰레기 소각 24%, 담뱃불 실화 7%, 성묘객 실화 3%다. 10년간 최소 65%의 산불은 사람의 부주의로 난 셈이다. 여전히 몰지각한 불법행위도 쉽게 목격된다. 산 인근에서 농산부산물과 쓰레기를 소각하는 모습이 대표적이다. 엄연히 불법인데 농민들 사이에선 단속원들 퇴근 이후 소각하면 단속을 피할 수 있다는 팁까지 돈다고 한다. 담배꽁초를 아무렇게나 버리는 사람도 여전하다. 화기 사용이 금지된 산에서 야영하며 불 피운 영상을 자랑처럼 소셜미디어에 공유하는 유튜버도 있다. 어릴 때부터 어린이집과 학교에서 산불 예방 교육을 통해 잘못된 행동과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명확히 가르쳐야 한다. 어린이 불장난으로 인한 산불의 경우 꾸준한 계도 덕에 횟수가 1990년대 연평균 14건에서 2020년대 1건 미만으로 뚝 떨어졌다. 요행을 바라는 잘못된 인식을 없애기 위해 단속도 강화해야 한다. 인력이 부족하다면 폐쇄회로(CC)TV, 드론, 신고 포상제 등을 적극 고려해 볼 수 있다. 처벌 수위 역시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 현재 산림 및 그 인접 지역에서 불을 피우다 적발되면 1차 위반 시 30만 원, 2차 40만 원을 내고, 3차 이상 적발돼도 50만 원만 내면 된다. 산불을 내도 3년 이하 징역, 3000만 원 이하 벌금이 끝이다. 방화면 7년에서 15년 이하 징역형을 받지만 지난해 산불로 징역형을 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역대 세 번째 규모인 2022년 경북 울진·강원 삼척 산불은 차를 타고 가던 운전자가 버린 담배꽁초 때문에 발생한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범인을 잡지 못했지만 부디 당사자는 자신이 버린 작은 불씨가 수많은 삶의 터전을 잿더미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길 바란다. 산불을 초래하는 모든 행위는 범죄다. 그저 작은 불씨란 없다. 부디 이번 산불로 얻은 교훈이 변화의 불씨가 되길 기원한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서울사이버대학교는 이은주 총장(사진)이 세계대학총장협회(IAUP) 부회장에 선출됐다고 26일 밝혔다. 1964년 설립된 IAUP는 전 세계 대학 총장들이 모인 국제협회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고릴라가 사는 열대우림은 휴대전화에 들어가는 탄탈륨이란 광물질이 생산되는 곳과 겹쳐서 고릴라의 서식지가 자꾸 줄어들고 있어요. 그럼 고릴라를 지키는 법은 뭘까요?” 15일 경기 과천시 서울대공원 동물원 고릴라 사육사 앞에 선 김경옥 동물해설사가 옆에 선 가족 관광객 10명을 향해 물었다. 한 초등학생이 “휴대전화를 오래 쓰는 것”이라고 답하자 김 씨가 “정답이다”라고 호응했다. 이날 서울대공원 동물원 ‘동물해설사와 함께 동물원 실내관 속으로’ 프로그램에는 네 가족이 참여했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의 남미관, 동양관, 유인원관 중 한 곳을 선택해 해설사와 함께 관람하며 설명을 들을 수 있는 이 프로그램은 3월 한 달간 매주 토요일에 열리고 있다. ● 기린, 코끼리 등 인기 동물 공부할 기회봄을 맞아 ‘주말에 아이들과 어디 갈까’ 고민 중인 부모라면 서울대공원의 상설 교육 프로그램을 노려볼 만하다. 이달 매주 토요일 열리고 있는 실내관 교육 프로그램은 오전 1회, 오후 2회를 합쳐 하루 총 3회 열린다. 남미와 동남아시아에 주로 서식하는 동물들을 모은 남미관과 동양관, 그리고 유인원관에서 멸종위기 동물들의 생태와 보전 중요성을 배울 수 있다. 교육을 듣는 동안 해설사가 나눠준 교육 관련 유인물을 다 작성하면 마지막에 귀여운 동물 그림 열쇠고리를 선물로 준다. 참가비는 무료다. 서울시 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에서 신청할 수 있다. 참가 인원이 정해져 있고 선착순으로 마감된다. 이날 교육 참가자들은 유치원생부터 중학생 가족까지 다양했다. 아이들은 평소 들을 수 없는 동물에 대한 자세하고 흥미로운 설명에 해설사와 동물을 번갈아 보며 연방 “우와” “귀여워요”라며 감탄사를 내뿜었다. 경기 의왕시에서 온 최주혜 씨(32·여)는 “서울대공원이 가까워서 자주 오는데도 동물에 대해 이렇게 자세히 배울 일이 없었다. 교육을 들으니 정말 유익했다”며 “아이가 좀 더 크면 다시 찾을 예정”이라고 했다. 서울대공원은 동물원을 주로 찾는 가족 관광객을 대상으로 연중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1월에는 뱀띠 해를 맞아 ‘푸른 뱀 겨울 탐구생활’이라는 주제로 구렁이, 그물무늬왕뱀 등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4월과 5월에는 각각 지구의 날(4월 22일)과 생명 다양성의 날(5월 22일)을 맞아 현장 행사와 함께 흰손기번, 오랑우탄 등 유인원에 대한 교육과 각종 체험행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9∼11월에는 기린, 코끼리 등 어린이들의 관심이 많은 동물을 주제로 심층 교육을 한다. ● 산림 치유, 목공 체험 프로그램도 유아 교육기관과 초중고는 물론 특수학급과 특수학교 아이들을 위한 단체 생태교육도 있다. 4∼6월, 9∼10월 공공서비스예약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비대면 교육도 가능하다. 사육사, 수의사 등 동물 관련 직업에 관심이 있는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진로박람회를 열고 설명과 체험 교육도 제공한다. 접수 방법은 프로그램마다 다르다. 자세한 내용은 서울대공원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서울대공원은 공원 내 넓은 숲과 정원을 활용한 산림 치유, 숲 해설, 목공 체험 프로그램도 준비 중이다. 목공 프로그램의 경우 대공원의 폐목을 활용할 예정이다. 올해로 개장 40주년을 맞는 서울대공원 식물원에서는 식물과 나무를 주제로 한 다양한 행사와 심포지엄도 준비하고 있다. 박진순 서울대공원장은 “동물원 생태 프로그램과 숲, 식물을 활용한 프로그램을 통해 시민 참여 기회를 넓혀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내 나이에 이런 길 없었으면 산 못 올랐을 거예요.” 8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봉제산 무장애숲길 입구에서 만난 박계단 씨(94·여)가 말했다. ‘젊은 시절 산을 좋아했다’는 박 씨는 고령이 돼 산행에 엄두를 못 내다가 2022년 동네에 있는 봉제산에 무장애숲길이 생긴 뒤로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날씨가 안 좋을 때를 빼고는 거의 매일 산을 오른다는 그는 지팡이를 짚긴 했어도 허리가 곧고 다리에 큰 불편이 없어 보였다. 박 씨는 “(무장애숲길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했다. ● 경사 완만, 나무 덱과 난간 있어 안전 무장애숲길(자락길)은 장애인, 노약자 등 보행 약자들이 부담 없이 산을 즐길 수 있도록 경사 8.36%(각도 4도 전후) 이하로 만든 완만한 숲길이다. 나무 덱과 안전난간으로 이루어져 있어 유모차, 휠체어를 타고도 올라갈 수 있다. 2011년 양천구 신정산, 성북구 북한산을 시작으로 올해 3월까지 서울시 20개 자치구에 총 37개소, 69.32km의 무장애숲길이 만들어졌다. 무장애숲길은 보행 편의만 고려한 길은 아니다. 정비된 길을 만들면 사람들이 숲 안쪽으로 무분별하게 들어가지 않게 돼 훼손된 자연을 복원하고 추가 훼손을 방지할 수 있다. 실제 2024년 서울시립대가 제출한 용역 연구에 따르면 망우∼용마산 구간 훼손지가 무장애숲길 조성 후 일부 복원되었다. 무장애숲길 조성 후 보행 약자는 물론 가족, 연인 등 산행객 수가 늘어나면서 시와 각 자치구는 숲과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시설도 마련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봉제산 무장애숲길에도 책 쉼터, 유아숲체험원, 풋살장, 놀이터 등이 있었다. 날이 풀려서 친구들과 축구하러 나왔다는 유환희 군(12)은 “걸어올 수 있는 거리에 이런 시설이 있어서 정말 좋다”며 “가족들과 가볍게 산책하러도 자주 온다”고 했다. 어린이 동반 가족이 많이 찾는 것을 감안해 체험 교육을 운영하는 무장애숲길도 적지 않다. 이날 봉제산 책 쉼터 건물 앞에서도 4월부터 운영될 생태숲환경교실 맛보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환경 교사가 무장애숲길 입구 한 연못에서 개구리알을 꺼내 보여주자 유치원생과 초등학생들이 탄성을 내지르고 “올챙이는 언제 나와요? “개구리알은 왜 여러 개가 붙어있어요?”라며 질문을 쏟아냈다. 무장애숲길 환경교실은 서울시 공공서비스 예약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할 수 있다. ● 전망대 포함 남산하늘숲길 10월 개소 무장애숲길마다 매력이나 장점이 달라 ‘도장 깨기(어떤 일에 차례로 도전하는 것)’도 해볼 만하다. 노원구 불암산 무장애숲길은 철쭉동산이 유명하다. 수락산 무장애숲길에선 자연휴양림과 연계해 더 많은 자연을 만끽할 수 있고, 성북구 개운산 무장애숲길에서는 명품 도심 전망을 관람할 수 있다. 오금근린공원 무장애숲길은 폐쇄된 배수지를 이용한 휴식 공간과 인공폭포, 정자가 있는것이 특징이다. 서대문구 안산 무장애숲길은 산을 한 바퀴 두르는 긴 순환 코스를 갖고 있다. 서울시는 올해 무장애숲길 23개소를 추가로 개소할 예정이다. 10월에는 외국인이 많이 찾는 남산에 선셋 전망대, 계곡전망다리, 모험놀이 덱을 포함한 무장애숲길 ‘남산 하늘숲길’이 문을 연다. 시 관계자는 “아직 무장애숲길을 통합 안내하는 사이트가 없는데 통합 안내체계를 검토 중에 있다”며 “시민들이 일상 속에서 언제든지 자연과 함께하는 힐링과 여유를 누릴 수 있도록, 무장애숲길 조성에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말했다.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4세 제이미가 까까 세는 걸 본 엄마 이소담 씨는 “이건 영재적인 모먼트”라는 생각에 수학학원을 등록한다. 영어학원 원어민 강사로부터 제이미가 배변 훈련에 성공했단 전화를 받고, 소담 씨는 기쁜 마음으로 배변 훈련 과외를 취소한다. 이렇게 ‘과외 하나를 세이브’한 소담 씨는 제기차기 과외를 알아보러 나선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2’에 나온 제기차기가 언제 학교 수행평가가 될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난달 SNS에 공개돼 1, 2탄 합쳐 조회수 1000만 회를 넘긴 개그우먼 이수지의 일명 ‘(고슴)도치맘’ 영상 내용이다. 강남 엄마로 대표되는 부모들의 과한 조기교육을 풍자한 이 영상은 몇 주째 화제를 이끌며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부모들을 지나치게 희화화한 측면도 있지만 주변에서 접하는 사례들을 보면 영상 내용을 결코 과하다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 지인은 세종시 사는 공무원인데 아이만 서울인 친정집에서 키운다. 서울 유명 영어유치원(영유아 영어 사교육 기관)에 보내기 위해서다. 좋은 학원에 들어가려고 네댓 살 아이에게 ‘레테(레벨테스트)’ 준비를 시킨다는 지인도 여럿이다. 이른바 ‘4세 고시’다. 아이의 재능을 일찍 발견하고 키우기 위한 조기교육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문제는 현 한국의 조기교육이 아이의 재능과 무관하게 입시, 혹은 특정 직업군을 위한 ‘조기학습’에 치우쳤다는 데 있다. 아이를 영어 학자나 영어 소설가로 키우기 위해 영어유치원에 보내는 학부모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 일찍 배워둔 영어가 입시나 취업에 도움이 되길 기대한다. 지난해 의대 증원 소식에 학원가에 수많은 선행학습반이 생긴 것도 같은 이치다. 특정 대학, 직업군에 쏠린 조기학습은 정작 인재가 필요한 미래 동력 산업의 인재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입시용 암기, 주입식 교육에 단련된 아이들이 도전 정신, 창의성 등을 요하는 새로운 분야에 뛰어들길 기대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스티브 잡스, 일론 머스크, 젠슨 황 등 혁신을 이끈 세계적 기업가 중 조기교육으로 정해진 길을 걸어 성공한 사람은 없다. 최근 돌풍을 일으킨 중국 생성형 AI 딥시크의 젊은 직원들도 각자가 원하는 공부에 심취해 스스로 미지의 영역을 개척한 연구자들이었다. 그러나 부모들만 탓할 수 있을까. 내 아이가 마크 저커버그나 뤄푸리(딥시크 개발자)가 된다는 데 말릴 부모는 없을 것이다. 문제는 한국에서 저커버그나 뤄푸리가 나오기 어렵다는 데 있다. 학교 평가 시스템은 이런 학생들을 제대로 평가해 내지 못하고 대학입시는 개혁을 외친 지 십수 년째 제자리걸음이다. 창업 실패는 개인 파산으로 이어져 재기가 어렵기 일쑤고, ‘타다’ 실패에서 보듯이 사회와 정치가 혁신을 저해한 사례도 적지 않다. 이런 상황을 겪거나 눈으로 봐온 부모들은 안전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제2의 이소담 씨가 돼 아이를 안정적인 전문직, 명문대로 가는 기차에 일찍 태우는 것이다. 과한 조기교육을 두고 부모들 탓만 하기 어려운 이유다. 확실한 건 4세 고시 제이미들이 가득한 사회에 ‘영재적 모먼트’는 오지 않을 거라는 점이다. 패러디 영상을 보며 ‘강남 엄마들이 문제’라고 손가락질하기에 앞서 왜 그들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지 고민하는 정부 당국자들이 있길 빌 뿐이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저렴한 돌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2023년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을 두고 뜨거운 논쟁이 붙었을 때 한 전문가가 했던 말이다. 2024년 9월 고용노동부와 서울시가 함께 시행한 시범 사업이 종료일을 2주 남긴 가운데 역시나 예상했던 비용 상승이 예고되면서 사업 실효성에 대한 논란이 다시 불붙었다. 애초에 ‘높은 돌봄 비용이 저출산의 큰 원인’이라며 외국인 가사관리사 도입을 추진할 때부터 이 사업의 초점이 비용에 맞춰져선 안 된다고 봤다. 사실 돌봄 비용이 높다면 그건 근본적으로 부모들이 장시간 근로하면서 돌봄 인력에게 맡기는 시간이 길어졌기 때문이지 가사관리사의 절대적인 인건비가 높기 때문은 아니었다. 실상 국내 가사관리사들의 임금을 비롯한 처우는 열악하다. 돌봄 인력이 자꾸 줄어들고 고령화하는 이유다. ‘저렴한’ 외국인 가사관리사는 이런 국내 가사관리사들의 처우를 더 열악하게 만들 가능성이 있었다. 근본적인 해법은 맞벌이 가정의 근로시간을 줄이고 시차출퇴근제 등 유연 근로를 확대하는 데 있었지만 정부는 임기 초 자신했던 노동 개혁에는 손을 못 대고 먼저 외국에서 저렴한 돌봄을 들여오겠다고 나섰다.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준다는, 국제적 노동 상식을 뛰어넘는 계획까지 내세웠다. 결국 정부의 야심(?) 찬 초안이 실현되지 못하면서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시급은 최저임금에 주휴수당, 4대 보험을 더한 1만3700원(2월 현재 1만3940원)으로 책정됐다. 민간 가사관리사에 비해서는 저렴하지만, 다자녀 할인 등 각종 할인이 붙는 공공 아이돌보미에 비해서는 크게 저렴하다고 할 수 없는 애매한 금액이었다. 문제는 이제 이마저 어렵게 됐다는 점이다. 근로기준법상 입국일로부터 1년이 지나면 퇴직금을 받을 자격이 생겨 급여가 오를 수밖에 없다. 금액이 얼마나 오르냐에 따라 이용자가 줄어들 수 있는 상황이다. 더구나 고용부가 지난해 12월 실시한 수요 조사에 따르면 시범 사업 중인 서울시를 제외하고 가사관리사를 이용하겠다는 사람은 지자체별로 20명이 채 안 됐다. 서울시는 기존 가사관리사 지원 제도를 통해 지원에 나서는 등 긴급 수혈에 나섰다. 고용부는 시범 사업 연장을 검토하고 있다. 그러나 언제까지 사업이 시범 상태일 순 없다. 정부는 비용 인상을 보전할 재원을 찾아 나설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재원을 찾더라도 ‘언제까지, 얼마나 지원할 것인가’ 하는 숙제가 남는다. 여러 반대를 뚫고 정책을 전격 도입한 정부 입장에서 비용을 올리거나 본 사업을 포기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뱉지도, 삼키지도 못하는 계륵이 된 이 사업은 애초에 저렴한 돌봄을 들이겠다는 정부의 계획으로 시작됐다. 당장은 지원금으로 지금의 부담 수준을 이어갈 수 있을지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계속 지원금을 쏟아붓긴 어렵다. 정부 계획대로 전국 단위 본사업으로 확장할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정부는 당장의 땜질이 아니라 외국인 가사관리사의 다른 장점을 발굴하는 등 장기적인 대책을 고민해야 할 것이다. 저렴하기만 한 돌봄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이미지 사회부 차장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 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인구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육십 먹어도 잘하면 상 주는 거예요. 공로상이 아니에요.”배우 이순재 씨는 지난 11일 KBS 연기대상을 수상하며 무대에 올라 이렇게 말했다. 올해 90세인 그는 연기 인생 70년 만에 첫 연기대상을 받았다. 이 씨는 “미국의 캐서린 햅번 같은할머니는 30대 때 한 번 타고 60(세) 이후에 세 번 탔다”며 “우리 같으면 전부 공로상(을 줬을 텐데)”이라고 했다. 한국의 경우 나이 든 배우들이 대체로 주연에서 밀려나 조연을 맡고 연말 시상식에서도 의례적으로 공로상 대상만 되어온 점을 꼬집은 것이다. 망백(望百)의 배우는 최근 드라마에서 주인공을 맡아 분전했고 현역으로서 당당히 최고 연기상을 거머쥐었다. 그런 이 씨가 후배들의 진심 어린 축하 속에 품격 있는 일침을 날리는 모습은 여러 가지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 48년 뒤 노인 반, 非노인 반… 세계서 가장 늙은 국가2025년은 대한민국 초고령사회 원년이다. 초고령사회란 인구 20% 이상이 노인인 사회를 뜻한다. 65세 이상 인구가 1000만 명을 넘어선 것이다. 이게 끝이 아니다. 노인 비율은 더 늘어날 것이다. 2024년 9월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장래인구추계를 반영한 세계와 한국의 인구현황 및 전망’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2072년 고령 인구 비율이 47.7%까지 올라 세계에서 세 번째로 늙은 국가가 될 전망이다. 1, 2위를 차지했다는 홍콩과 푸에르토리코는 하나의 나라라기보다 지역에 가까운 점을 감안하면 실질적인 국가 순위로 한국이 1위라 볼 수 있다. 인구의 47.7%면 사실상 절반이다. 48년 뒤면 노인이 반, 노인 아닌 사람이 반인 사회가 된다는 뜻이다. 2000년대 중반, 아주 인상적인 공익광고가 있었는데 저출산이 계속되면 지하철의 노약자석이 사실상 일반석과 자리를 바꾸게 될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당시 그 이미지가 신선하기도 하고 내용이 충격적이기도 해서 기억에 남는데, 그 광고가 현실이 되는 날이 머지않은 셈이다. 이미 지하철을 타면 노약자석이 만석임은 물론이고 앉을 자리를 찾지 못한 어르신들이 일반 좌석까지 넘어가 앉아계신 모습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초초’고령사회도 먼일이 아니다. ● 아직도 노인빈곤률 부동의 1위 고령화로 인한 문제는 익히 알려져 있다. 상대적으로 생산가능인구가 줄고 부양해야 할 인구는 늘어날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2년 현재 15~64세 생산가능인구 비율은 71.1%지만 2052년 51.4%까지 줄어든다. 생산가능인구 중심으로 짜인 현 산업 구조는 타격이 불가피하다. 생산연령인구 100명당 부양인구(유소년인구+고령인구) 비율인 한국의 총부양비도 올해 42.5명에서 2072년에는 118.5명으로 거의 3배나 껑충 뛰어오를 것으로 예측됐다.노년층도 힘들어지긴 마찬가지다. 한국은 이미 노인들이 가난한 나라다. 한국이 OECD 안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는 낯부끄러운 지표가 몇 개 있는데 노인빈곤률도 그중 하나다. 2020년 기준 40.4%로 무려 1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우리보다 훨씬 앞서 고령화한 일본의 노인빈곤률도 2020년 기준 20.0%로 한국의 절반이 안 된다. 하지만 글로벌 컨설팅 회사 맥킨지가 2023년 공개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인이 노후에 받는 연금의 소득대체율은 지금도 47%에 불과해 OECD 권고치 대비 20%포인트 이상 낮다. OECD 국가 평균(58.0%)과 비교해도 11%포인트 적다. 지금과 같은 저출산고령화 속도라면 돈 낼 사람은 줄고 돈 받을 사람만 급격히 늘면서 기존 금액만큼 받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지금대로 노인 인구가 늘어난다면 어쩌면 한국은 그냥 노인이 많은 나라가 아니라 ‘가난한 노인이 가장 많은 나라’가 될지 모른다. ● “마땅한 일 없어 가방에 단추 붙이는 알바”대책은 노인들의 생산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미 일자리를 찾는 노인들이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2024년 2분기 65세 이상 노인 취업자 수가 월평균 394만 명으로 1989년 집계 시작 이래 15~29세 청년(380만7000명)을 처음으로 뛰어넘었다. 처음 집계를 시작한 1989년만 해도 청년 취업자가 노인보다 13배 많았다고 한다. 일하는 노인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런 노인들을 위한 일자리는 부족하고 상대적으로 열악하기까지 한 게 사실이다. 예전에 노인 일자리 관련 기사를 기획하며 어르신들을 여러분 만나 취재한 적이 있는데, 대학을 졸업하고 꽤 괜찮은 기업에서 오래 근무한 전력이 있음에도 정년퇴직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식당, 경비, 용역 등 열악한 일자리를 전전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소위 명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 임원까지 역임한 분인데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해 핸드백에 단추 붙이는 알바를 하고 있다”는 퇴직자도 있었다. 정년을 늘리고 재고용 기회를 확대해 기존 직장이나 동종업계에서 계속 일할 수 있도록 하거나 각자의 특기를 살려 재취업, 창업할 수 있게 지원을 강화해야 하지만, 노사정 간에 겨우 물꼬를 텄던 정년 연장 논의는 물론이고 재고용, 재취업 지원 역시 정치에 막혀 공전 상태다. 연금 개혁은 여러 이해관계자가 다투면서 수십 년째 변죽만 울리고 있다. ● 서울시민 “노인, 70세는 넘어야” 사람들 생각은 바뀌었는데…배우 이순재 씨의 연기대상 수상은 그의 말처럼 노인이 ‘기여가 다 끝난 공로자’가 아님을 몸소 보여주었다. 얼마 전 서울시의회는 서울시민 1000여 명에게 ‘노인의 연령 기준’을 물은 설문 결과를 발표했다. 70세 이상, 75세 이상 등 최소 70세는 돼야 한다고 답한 사람이 응답자 10명 중 7명이나 됐다. 사람들의 생각은 진작에 바뀌었는데 제도와 시스템 변화는 언제쯤 그를 따라갈 수 있을까. 하필 초고령사회 원년에 벌어진 정치적 사태에 더욱 답답하고 안타까울 뿐이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four)에버 육아’는 네 명의 자녀를 키우며 직장생활을 병행하고 있는 기자가 일상을 통해 접하는 한국의 보육 현실, 문제, 사회 이슈를 담습니다. 단순히 정보만 담는 것을 넘어 저출산 시대에 다자녀를 기르는 맞벌이 엄마로서 겪는 일화와 느끼는 생각도 공유하고자 합니다.얼마 전 버스에서 겪은 일이다. 앞좌석에 앉은 노인 한 분이 뭔가 불편하신 듯 계속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했다. 곧 내리셔야 하는데 출구까지 빨리 걷지 못해 내릴 곳을 놓칠까 봐 불안하신 모양이었다. 결국 정차하기 전 일어나 출구로 향하시던 노인은 때마침 속도를 줄인 버스에 휘청이다가 그만 갖고 있던 지팡이로 앞에 있던 중년 여성의 머리를 세게 치고 말았다. 노인이 곧장 사과했지만 여성은 정말 많이 아팠는지 “어떻게 그렇게 때리실 수 있어요? 일부러 그러신 거 아니에요?”하고 톡 쏘아붙였다. 멀리서 기사가 “어르신, 그러니까 그냥 앉아 계시라니까요. 제가 세워 드린다니까” 했다. 노인은 연방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더니 다음 정류장에서 버스를 내렸다. 창밖으로 힐끔 더욱 굽어진 듯한 노인의 등을 지켜보는데 괜히 먹먹해졌다. 우리 아빠보다 5살쯤 많으실까. 노인의 버스 이용은 버거웠고, 곧 우리 아빠의 이용도 그렇게 될 거라 생각하니 남일 같지 않았다.● 고령운전 사고 늘자 쉽게 “운전 제한” 주장요즘 심심찮게 나오는 뉴스가 고령 운전자의 사고 소식이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모두가 침통하던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목동깨비시장에서 한 운전자가 골목의 행인들을 치고 질주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속보를 보자마자 ‘혹시 운전자가 고령은 아닐까’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지난해 7월 9명을 죽음으로 내몬 서울 시청역 참사를 비롯해 최근 이런 차량 질주 사고의 운전자가 대체로 노인이었던 탓이다. 아니나 다를까, 깨비시장 사고 운전자도 70대 중반의 노인으로 드러났다. 정말 고령일수록 사고를 많이 낼까? 고령 운전자의 사고는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2019년 전체 교통사고의 14.5%였던 고령 운전자 사고 비율은 2023년 20.0%까지 올랐다. 그 수도 3만 3293건에서 3만 9641건으로 늘었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니 당연한 일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연령별 사고 증가율을 따져도 고령 운전자의 증가율이 높았다. 삼성화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65세 이상 운전자의 추돌사고 증가율은 4년간 연평균 14.4%로 4%대에 불과한 20~50대를 크게 상회했다.이쯤 되면 가장 쉽게 나오는 이야기가 고령 운전자의 운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현재 만 75세 이상 운전자는 3년에 한 번 운전면허 적성검사를 받고 면허를 갱신해야 하는데, 검사를 강화해서 통과하기 어렵게 하거나 자진해서 면허를 반납할 수 있게 독려하자는 것이다. 누군가의 운전이 남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수 있다면 제한해야 마땅하다. 하지만 앞서 본 노인을 떠올려 보면 그리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운전을 못하게 하는 대신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다른 대안은 충분할까?● 보행약자 배려 부족, ‘교통 사막’ 지역도 곳곳에네 번의 임신, 출산을 거치며 느낀 게 있다. 배가 부르고 몸이 무거워져 보니 대중교통 이용이 쉽지 않았다는 점이다. 부른 배에 가려 발밑이 잘 보이지 않는데 지하철역마다 계단과 턱은 많아 늘 거북이걸음이었다. 버스들은 잘 기다려주지 않았고 만석일 때가 잦았다. 아이 손을 잡고 걸을 때면 횡단보도 신호는 왜 그리 짧은지. 초록색 불이 깜빡이기 시작하면 벌써 차들이 정지선을 넘어 밀고 들어오기 시작했고, 마지막엔 아이 손을 잡고 달리기 일쑤였다. 노인들은 내가 겪은 것과 같은 불편함과 위협을 매일 느낄 것이다. 많이 개선됐지만 우리 대중교통과 도로엔 여전히 보행 약자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실제 편의를 고려하지 않고 요식행위로 만들어놓은 듯한 시설도 적지 않다. 몇 달 전 여러 노선이 교차하는 환승역에서 길 잃은 어르신을 도와드린 적이 있는데,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를 이용해야 하다 보니 그것만 따라 위로 올라오다 전혀 엉뚱한 곳으로 오게 됐다고 했다. 편의시설이 있긴 하지만 실제 보행 약자들이 이용하려면 한없이 걷거나 돌아야 했던 것이다. “역 안에서만 한 시간을 헤맸다”는 노인이 그뿐만은 아닐 것이다. 지방 소도시나 시골은 더욱 심각하다. 서울 등 대도시는 불편해도 탈 대중교통이라도 있다. 하지만 지방엔 ‘교통 사막’인 지역이 적지 않다. 11년 전 육아휴직 중 지방 근무한 남편을 따라 3개월간 이런 교통 사막 지역에서 살아본 경험이 있다. 버스는 30분~1시간 대기가 기본이었고 그나마 언제 올지 기약할 수도 없었다. 버스를 탄다고 원하는 목적지에 딱 떨어지는 것도 아니어서 슈퍼라도 가려면 한참 걸어야 했다. 휴직 때라 여유가 있었다지만 소금 하나 사러 왕복 3시간씩 시간을 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대부분 농사일 등 생업에 종사하는 노인들도 마찬가지일 터다. 이런 곳에선 별도 교통수단이 보완되지 않는 이상 차가 필요했다. ● 운전보조장치 등 노인 이동권 보장안 찾아야무작정 막고 제한할 일은 아니다. 노인들의 이동권은 건강과도 직결된다. 자주 활동하는 노인이 신체적으로는 물론 정신적으로도 건강할 수밖에 없다. 관련 연구는 무수히 많다. 2023년 보건사회연구원이 노인 9920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도 ‘사회활동에 적극 참여하는 노인’ 그룹의 건강이 가장 좋게 나타났다. 굳이 연구를 찾지 않더라도 활력에 차서 열심히 활동하는 노인들이 그렇지 않은 노인보다 훨씬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인구 5명 중 1명이 노인인 초고령사회로 들어서면서 노인들의 건강 관리는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국민 5명 중 1명이 불행하거나 아프고 분노하는 사회는 여러 문제를 잉태할 수밖에 없다.노인들의 권리를 지키면서 안전도 지키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노인의 운동, 인지기능을 보완하는 운전보조장치 도입이 한 방법이이다. 일본의 경우 비상자동제동장치, 페달조작오류·급발진 억제 장치, 차선이탈 경보 장치 등 보조장치를 단 ‘서포트카’를 구매할 때 보조금을 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도 특정 연령 이상이 이런 장치를 단다고 하면 비용을 보전하는 식으로 보조장치 장착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 대중교통도 보행 약자들을 위한 시설을 보강해야 한다. 노인들을 위한 이동 수단과 안내를 늘리고 편의시설, 좌석도 늘어나는 노인 수에 걸맞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고령 인구가 늘면 휠체어 등 보행보조기기를 이용하는 인구가 많아질 텐데 이들 이동방안도 감안해야 한다. 교통문화 개선 노력도 필요하다. 해외 대학에서 근무하는 한 교수님이 한국에서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던 경험을 공유한 적이 있다. 정차할 곳이 마땅찮아 잠시 도로변에 차를 붙이고 부모님을 내리는데, 뒤차들이 내내 클랙슨을 울리며 빨리 가라고 재촉했다고 한다. 것이다.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도로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버스는 빨리 떠나고, 조금만 느리거나 정차해도 사람들의 불만이 쏟아진다. 이런 문화에서 노인들이 설 자리는 없다. ● 누구나 노인이 된다누구나 노인이 된다. 나의 아빠도 곧 그 버스의 노인처럼 거동이 불편해지실 테고, 나 역시 20년 남짓 남았을 뿐이다. 지금부터 준비하지 않으면 내 부모님뿐 아니라 나의 하루도 발이 묶일 것이다. 건강수명이 길어지는 만큼 이동권의 수명도 길어져야 한다. 그 다음 운전 제한을 논해야 제한도 실효성을 찾을 수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전체 운전자 중 면허를 반납한 비율은 권고를 시작한 2019년 이래 내내 2% 초반대에 머물고 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