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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이지 않는 몰카(몰래 카메라) 범죄.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서울 서초구 몰카 보안관팀이 야심 차게 출정식을 가진 지난달 30일. 공교롭게도 서초구청의 한 직원이 노인 여성과 성매매를 한 뒤 노인의 신체를 찍은 사진 여러 장을 음란사이트에 올린 혐의로 경찰에 구속됐다는 보도가 났다. 보고를 받은 조은희 서초구청장은 노발대발했고 직위해제는 물론 서울시에 파면을 요청했지만 이미 인터넷에는 ‘일베 박카스남, 서초구청 직원…구청에선 몰카 보안관 출정식’이란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한 시민은 조 구청장의 페이스북에 ‘디지털 성범죄는 이렇게 대대적으로 하시는데 직원 단도리(단속)는 어떻게 된 건가요?’라는 글을 남기기도 했다. 미꾸라지 한 마리가 제대로 물을 흐린 셈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 범죄 혐의로 검거된 피의자는 2014년 2905명(남 2856명, 여 49명), 2015년 3961명(남 3866명, 여 95명), 2016년 4499명(남 4382명, 여 117명), 지난해 5437명(남 5271명, 여 166명)으로 급증하고 있다. 최근 4년간 무려 1만6802명이 몰카 등 불법촬영 범죄로 검거된 것이다. 이중 애인, 친구, 직장 동료, 이웃 등 이른바 면식범에 의한 범죄도 2014년 391명, 2015년 541명, 2016년 774명, 2017년 939명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21일 해군사관학교에서는 몰카 범죄를 저지른 A 생도(21)가 퇴교조치 됐다. A 생도는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여생도 숙소 화장실에 스마트폰을 몰래 숨겨 놓고 10여 차례에 걸쳐 촬영했다가 적발됐다. A 생도의 범죄는 이달 중순 화장실 청소 도중 한 생도가 종이에 감싼 스마트폰을 발견해 신고하면서 알려졌다. 변기 뒤쪽에 놓인 스마트폰은 흰색 A4용지로 감싸 있었고, 카메라 렌즈 쪽에는 작은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국가정보자원관리원 광주센터 탈의실에서 발견된 몰카도 이 기관에서 일하던 30대 남성이 설치한 것이었다. 이 남성은 스마트폰 보조배터리로 위장한 몰카로 무려 1년간 들키지 않고 촬영했다. 정부와 각 지자체가 대대적으로 몰카 범죄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근절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 이 때문에 각자가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조심할 필요가 있다. 화장실에서는 종이컵 등 불필요한 물건이 놓여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경기 여주의 한 주민센터에서 발견된 몰카는 일회용 종이컵 속에 숨겨져 있었다. 무려 석 달이나 놓여 있었지만 누구도 눈여겨보지 않았다가 큰 봉변을 당한 것이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갈 때는 45도 각도로 비스듬히 서는 게 가장 좋다. 버스정류장,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주변을 계속 맴도는 사람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수상하다고 느껴지면 개인적으로 대처하지 말고 즉시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달 30일 서울 서초구(구청장 조은희)에서는 ‘몰카(몰래 카메라) 보안관’ 출정식이 열렸다. 몰카 범죄가 날로 심각해지면서 전담 단속반까지 만들어 대응에 나선 것이다. 최근 배우 신세경과 걸그룹 에이핑크의 윤보미 숙소에서 몰카가 발견됐다는 뉴스가 뜨는 등 몰카 범죄가 사회 구석구석을 파고들고 있다. 어느 지방자치단체나 몰카 단속은 했지만 이번처럼 아예 ‘보안관팀’을 만들어 운용하는 것은 서초구가 처음이다. 19명으로 구성된 몰카 보안관들은 3일부터 2인 1조로 지역 내 건물 화장실을 돌며 몰카 탐지에 나섰다. 19, 20일 이틀간 몰카 보안관들의 현장 점검을 동행 취재했다. ○ 숭숭 뚫린 구멍들 “가관이죠. 화장실 칸막이 벽에 뚫린 구멍들을 보면…. 구멍을 막아 놓은 휴지들을 보면 어떻게든 필사적으로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는 여성들의 절박한 심정이 보이는 것도 같고….” 19일 오후 서울 지하철 2호선 강남역 인근의 노래방, 술집 등이 입주한 한 건물. 이곳은 남녀 화장실이 별도로 분리돼 있고, 각 화장실 안에는 2, 3개의 칸이 있었다. 분명 여성들만 들어오는 곳인데도 화장실 칸막이벽에 송곳 끝으로 판 듯한 구멍이 곳곳에 나 있었다. 적은 곳은 2, 3개였지만 많은 곳은 칸막이벽 하나에 8, 9개나 구멍이 뚫려있었고 대부분 구멍은 휴지로 메워져 있었다. ‘무슨 총격전이 벌어진 것도 아니고….’ 벽에 난 이 구멍들은 몰카 설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직접 옆 칸을 훔쳐보기 위해 뚫은 것이다. 몰래 들어가 숨어 있다가 여성이 들어오면 구멍으로 훔쳐보는 식이다. 강남역 일대에는 시민들을 위한 개방형 화장실이 많아 이런 식의 훔쳐보기에 노출된 화장실도 많을 수밖에 없다. “소극적으로 휴지로 막을 것이 아니라 아예 훔쳐보다가 큰코다치게 바늘로 구멍을 찔러야 한다”고 분개하는 여성이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몰카 보안관들의 점검은 이 건물 7층부터 내려오면서 탐지기로 화장실 내 곳곳을 훑는 식으로 진행됐다. 탐지기를 휴지통, 휴지걸이, 천장, 용변기, 벽면 등에 대고 몰카 신호가 나오는지 살펴보는 식이다. 몰카는 특정 주파수 대역의 전파를 사용하는데, 이 전파가 감지되면 ‘뚜뚜뚜’ 하는 소리를 내며 와이파이 모양처럼 생긴 감지등이 녹색에서 빨간색으로 넘어간다. 빨간색으로 넘어가면 해당 장소를 육안으로 정밀 점검해 몰카 설치 여부를 확인한다. ○ 쉽지 않은 몰카 탐지 현장 점검에서 몰카를 찾아내는 것은 쉽지 않다. 서초구 몰카 보안관팀은 발족 후 3일부터 19일까지 8개 팀을 투입해 건물 427곳의 화장실 2286개를 점검했지만 아직까지 몰카를 발견하지는 못하고 있다. 서울시와 경찰, 일부 지자체도 같은 점검을 하고 있지만 신고가 아닌 현장점검에서 발견된 적은 없다고 한다. 서울 서초경찰서 관계자는 “경기 여주 주민센터 사건처럼 신고를 받고 출동해서 발견한 적은 있지만 임의 점검에서 몰카가 발견된 적은 없다. 탐지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화장실 탈의실 등에 몰카를 설치하는 것은 에스컬레이터 등에서 휴대전화로 몰래 찍는 것과는 달리 쉽지 않기 때문. 현실적으로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는 탐지 방식도 몰카 발견이 힘든 이유 중 하나다. 서초서 측은 “완벽하게 몰카를 탐지하려면 건물 내 모든 전원을 차단한 뒤에 해야 하는데,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우는 가능하지만 일반 점검에서는 그럴 수가 없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몰카 탐지기를 제작하는 ‘공공칠월드’ 성준기 대표는 “몰카 탐지기는 몰카가 내는 전파를 탐지하지만, 전선이 지나거나 비데가 설치된 곳 등 전기가 강한 곳에도 반응을 한다”며 “1차로 탐지기로 반응을 본 뒤 2차로 육안으로 정밀 점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천장에서 반응이 있다면 천장을 뜯어보거나, 휴지걸이에서 반응이 있으면 확인하는 식이다. 19일 강남역 일대의 건물 화장실 점검에서도 탐지기는 종종 빨간색까지 신호가 올라갔다. 이럴 때마다 휴지통 정도는 뒤져볼 수 있지만 천장이나 휴지걸이에서 나온 반응은 모두 확인할 수 없었다. 천장을 임의로 뜯어보거나 사용 중인 화장실 안 휴지걸이를 모두 볼 수가 없기 때문이다. 한 번 점검했다고 끝나는 것도 아니다. 오늘 점검해도 내일 설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초구에 외식업소만 4400여 개가 넘어 수시로 점검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 예방 효과도 커 서초구는 모텔 등 숙박업과 찜질방 등 목욕업의 경우 관련 협회 서초지회에 탐지기를 대여해주고 자체 점검하도록 하고 있다. 학교는 아직 점검하지 못하고 있는데 앞으로 학교장의 허락을 받아 점검에 나설 계획이라고 한다. “시중에 퍼진 몰카 동영상 중에는 모텔이나 목욕탕 업소 관계자가 찍은 것도 많은데 자체 점검으로 실효가 있겠느냐”는 질문에 몰카 보안관팀을 관리하는 이보민 서초구 여성행복팀장은 “대상 업소가 너무 많은 것도 이유지만 숙박업, 목욕업 업주들 중에는 몰카 점검을 해주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구청에서 점검해주고 안심화장실 스티커처럼 ‘안심모텔’이라고 인증해주면 손님들이 더 좋아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묻자 “업소 주인들 중에는 점검받고 안심모텔이라고 인증을 받았는데 만의 하나 몰카가 나오면 손님이 소송을 걸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손님 입장에서 ‘안심모텔’이라는 인증을 믿고 투숙했는데 오히려 몰카에 당하면 피해 보상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몰카 탐지는 쉽지 않지만 이들이 곳곳을 다니며 점검하는 것만으로도 큰 예방 효과가 있다고 한다. 몰카 보안관들은 위험성이 있어 보이는 화장실에는 ‘몰카 금지, 이곳은 서초 몰카 보안관이 불법촬영기기 설치 여부를 점검 중인 장소입니다’라는 문구와 점검 날짜가 적힌 스티커를 붙여둔다. 김소연 몰카보안관 대장은 “몰카를 설치하려는 사람이 이 스티커를 본다면 뜨끔하지 않겠느냐”며 “탐지도 중요하지만 범죄를 예방하는 것도 우리가 하는 중요한 일 중의 하나”라고 말했다. ○ 인터넷에는 ‘몰카 찾는 법’도 돌아 경기 여주의 한 주민센터에서는 최근 30대 남자 직원이 여자 화장실에 몰카가 설치된 종이컵을 놔둔 뒤 용변 보는 모습을 촬영했다가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적발됐다. 이 종이컵 몰카는 무려 석 달이나 놓여 있었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촬영된 영상은 390여 개로 영화 100여 편에 해당하는 분량이라고 한다. 특히 강남역 일대는 2016년 5월 한 건물 내 노래방 화장실에서 20대 여성이 피살된, 일명 ‘강남역 살인사건’이 발생한 곳이다. 이 때문에 몰카 보안관들이 돌아다니거나, 이들이 붙인 스티커만 봐도 안심하는 여성이 많다고 보안관들은 말했다. 워낙 몰카 공포가 심하다 보니 인터넷에는 ‘몰카 찾는 법’도 돌고 있다. 빨간 셀로판지를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와 플래시에 붙인 뒤 플래시를 켜고 의심스러운 곳을 비췄을 때 ‘반짝’하는 것이 있다면 몰카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성 대표는 “렌즈는 빛을 비췄을 때 반사를 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가능한 방법”이라며 “단지 색이 있는 셀로판지가 없이 그냥 비추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팀장은 “내부 회의에서 휴지걸이 등 화장실에서 사용하는 비품들을 투명하게 속이 보이도록 만들면 몰카도 설치할 수 없을 거라는 아이디어도 나왔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불어나는 강물을 간신히 버티던 방죽이 마침내 무너진 걸까. 최근 서울 서초구 반포 아크로리버파크(ACRO RIVER PARK) 24평(전용면적 59m²)이 평당 1억 원이 넘는 24억5000만 원에 팔렸다는 보도가 나면서 온 나라가 부동산 패닉에 빠졌다(물론 현재까지는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정부가 9·13부동산대책을 서두른 데는 이 아파트가 준 심리적 충격이 너무 컸기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세간이 아파트를 바라보는 시각은 매우 극단적이다. 가진 자는 이곳이 더 올라 다른 집값도 올려주길 바라고, 없는 사람은 집 한 채 마련하기 힘든 현실에 가슴을 쳤다. 13일 그 현장 속으로 들어갔다. 》 “이러다가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또 올지도 모르겠네요.” 주민 한모 씨(41)는 “2016년 입주 때 아리팍(아크로리버파크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 비싼 게 엄청나게 화제가 되니까 중국인 관광객들이 버스를 전세 내 단체로 와서 구경하고 사진 찍고 갔다”며 “조만간 같은 장면을 또 보게 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과 달리 주민들과 공인중개사사무소들은 극도로 예민해 있었다. 지인이 자신만만하게 “소개해주겠다”고 한 단지 내 부동산중개사무소 대표는 취재 요청을 받자마자 손사래를 치며 난색을 표했다. 주민 양모 씨(43)는 “불똥이 이상하게 튀어 혹시나 자기 아파트 대금 출처까지 탈탈 털리는 것 아니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달 말 24억5000만 원에 팔렸다는 계약이 실제인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는 계약 후 60일 이내에만 신고하면 되기 때문이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구매자가 법인이라 굳이 값을 깎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말도 돌고 있다. 끝내 확인이 안 될 수도 있다. 계약금만 낸 상태에서 소문이 났고, 이후 계약이 깨졌다면 신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은 국토부가 관리하지만 운영은 한국감정원이 한다. 한국감정원 측은 “검증 과정에서 허위신고나 업·다운계약이 의심되면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만약 실제 거래가 있었다면 해당 아파트는 한강에 가장 가까워 최적의 조망권을 가진 104, 111동 중 어느 한 곳일 가능성이 높다. 24평은 이 두 동 외에도 101, 102, 107, 108, 113동에도 있지만 모두 단지 뒤쪽이라 전망이 그리 좋지 않다. 이 동네에서 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A 씨의 말.(취재에는 여자 지인이 동행했고 질문은 그가 했다) ―진짜 평당 1억 원인가요? 이 동네가…. “언론에서는 그렇게 말하는데 내가 아는 24평은 22억 원 정도예요. 34평은 27억∼28억 원에 나오다가 30억 원에 거래됐다는 말이 나오니까 집주인들이 거둬들였어요. 전망이 좋으면 더 나가고요. 지금은 매물이 다 들어갔어요. 대신 전세는 잘 나가요. 24평은 11억∼11억5000만 원, 34평은 14억∼15억5000만 원 정도예요.” ―집을 볼 수 있어요? “24평은 A∼E형, 34평은 A∼G형 등 5, 7가지가 있어요. 뭐가 나올 줄 알고 미리 봐요? 기다렸다가 나온 거 보고 사는 거죠. 24평 A형은 방 3개에 욕실 2개, 보조주방이 있고 드레스룸이 있어요. 천장도 주변 아파트보다 훨씬 높아 작은 평수도 넓어 보여요.” 인근 다른 아파트의 층 높이가 230cm인 반면 이곳은 260∼270cm다. ―비싸도 여기 사는 게 나아요, 아니면 인근 다른 아파트가 나아요. “지금 이주가 시작된 근처 반포 경남3차 아파트 33평이 26억∼27억 원이에요. 여기에 추가 분담금 내고, 이주비 들고 하면 여기 사는 게 낫죠. 하지만 좀 기다리세요. 지금은 물건이 너무 없으니까 주인이 부르는 값에 살 수밖에 없잖아요. 24억5000만 원에 팔린 게 사실이면 다른 집주인은 25억 원을 부를 텐데…. 사모님, 그 값에 사실 거예요? 사시는 입장에서는 아니잖아요.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전반적으로 손본다니까 그거 보고 사는 게 나아요.” (대책이 몇 번이나 나와도 계속 오르니까…) “계속 오를 것 같긴 한데 그래도 대책이 나온 순간에는 값이 잠시 주춤하는 게 있어요. 그때를 보는 게 나아요. 지금 사면 값 올리는 것밖에 없잖아요.” ―주민들은 완전 봉 잡은 거네요. “여기가 옛날 5층짜리 한신1차 아파트를 재건축한 곳인데 한신 32, 33평에서 아리팍 52평, 한신 28평에서 45평으로 가면 무상이었어요. 만약 30평대에서 34평으로 가면 10억 원 가까이 환급해줬고요.” (10억 원을 돌려줬다고요?) “그때는 그랬어요. 그렇다고 다 떼돈 번 건 아니에요.” (왜요?) “분양 때(2013년 1차) 평균 청약경쟁률은 19 대 1이나 됐지만 실제로는 60%가 계약을 포기했어요. 부동산 상황이 워낙 안 좋은 데다 평당 4000만 원이 넘는, 당시 국내 최고 분양가가 너무 부담이 됐던 거죠. 차례를 받은 대기자 중에도 더 오르기 힘들다고 생각해 안 산 사람이 많았으니까요. 나한테 온 사람 중에는 프리미엄을 300만 원만 주면 넘기겠다는 사람도 있었어요. 오죽하면 그때 정부가 부양책을 썼겠어요.” ―여기가 왜 그렇게 비싼 거예요. “새 아파트고…. 제가 보기에는 근처에 있는 반포·계성초등학교와 외국인학교 때문인 것 같아요. 그래서 여기 외국인 회사 간부나 외국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이 많아요.” (고등학교는요?) “아, 사모님, 촌스럽게 요즘 누가 고등학교 학군 보고 집 사요? 초·중학교 보지. 고등학교는 외고 과학고 가면 되고 일반고도 1, 2, 3지망이어서 돌려서 가는데요.” 계성초등학교는 손꼽히는 사립 명문초등학교. 아파트 단지 바로 앞에 있는 외국인학교(덜위치칼리지 서울영국학교)는 영국계 외국인 학교로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이 밖에 단지 안에는 구립 어린이집이 3개나 있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 아파트의 또 하나 ‘대박’은 2013년 12월 1차 분양으로 24, 34평을 받은 사람들이 5년 안에 집을 팔 경우 양도소득세를 전액 면제받는다는 점이다. 2013년 부동산 경기가 침체의 늪에 빠지자 정부는 2013년 4월 1일부터 그해 12월 31일까지 6억 원 이하 또는 주택의 연면적(공동주택 및 오피스텔은 전용면적)이 85m² 이하인 주택에 대해서는 취득 후 5년 내에 발생하는 양도소득세를 전액 감면해 주기로 했다. 아리팍 1차 분양은 2013년 12월, 2차 분양은 이듬해에 있었다. 아리팍은 2016년 입주했기 때문에 2021년까지만 팔면 혜택을 볼 수 있다. 물론 다른 지역 아파트에도 해당되지만 당시 부동산 경기가 워낙 안 좋아 실제 이 혜택을 보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 아파트 34평(공급면적 112.84m², 전용면적 84.97m²)에 사는 B 씨는 당시 1차 분양에 당첨돼 입주했다. 이 평형은 최근 30억 원에 팔렸다는 소문도 났다. 국토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서는 층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7월 21∼31일 사이에 팔린 27억8000만 원(14층)이 가장 비쌌다. ―분양받을 때는 얼마였나요. “이것저것 포함해서 13억 원 정도요. 모아 놓은 거와 대출 받을 수 있는 대로 최대한 받고….” (당시도 너무 비싸서 말이 안 된다고 했다던데요?) “네. 그래서 계약 포기한 사람도 많았어요. 왜 계약하느냐고.” (오를 줄 안 건가요?) “그런 건 아니고…. ‘못 먹어도 고(go)’ 하자는 생각에….” 국세청 양도소득세 모의 계산을 통해 이 집을 27억8000만 원에 팔았을 경우 양도소득세가 얼마가 나올지 추산해 봤다. 동네의 민감한 분위기를 우려한 그는 정확한 분양가와 당시 지불한 세금, 필요경비 등은 말하지 않았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과세표준 42%를 적용하니 양도세액이 약 3억8000만 원이 나왔다. 헐∼. ―관리비는 얼마나 나옵니까. 조경이나 공공시설이 좋아서 좀 나올 것 같은데…. “매달 30만 원 정도? 이번 여름에는 에어컨을 많이 틀어서 전기료가 5만 원 정도 나오던 것이 13만 원 나오더라고요.” (몇 대를 틀었는데요?) “5대 있는데 3대만 틀었지요. 에너지 효율이 좋아서 그런지 생각보다는 많이 안 나온 것 같던데….” (인상이 참 좋아 보이십니다) “하하하 뭘…. 고지서도 보여드릴까요?” 이 집 관리비(올 2월)를 인근 서초4동 삼풍아파트 34평(공급면적 114.3m²) 2월과 비교했다. 총액은 아리팍이 34만120원, 삼풍은 23만1280원으로 아리팍이 10만 원 정도 더 나왔다. 전기료는 아리팍 8만310원, 삼풍 3만6890원. 난방비는 거꾸로 삼풍이 15만5640원, 아리팍은 3만5020원이었는데 삼풍은 중앙난방식이고 1988년 입주한 30년 된 아파트라 열효율이 낮기 때문으로 보인다. 아리팍은 개별난방이다. 이 집 부부는 맞벌이라 퇴근 때까지 난방을 안 했다. 경비비도 삼풍 5만4250원, 아리팍 4만4750원인데 동마다 배치된 경비 인력이 없는 아리팍과 달리 삼풍은 동마다 경비 인력이 6∼8명씩 교대 근무를 한다. 이 밖에 아리팍은 커뮤니티 기본비 2만 원, 커뮤니티 운영비 9080원을 받고 있었다. 최근 평당 1억 원 이상에 팔렸다는 이 집 때문에 연쇄 폭등현상이 일어날지, 아니면 그것이 최적의 조건을 갖춘 해당 집만의 값으로 끝날지는 알 수 없다. 지금은 놀라서 아리팍의 모든 아파트가 마치 평당 1억 원이 될 것처럼 보이지만 지난달 초만 해도 34평은 20억 원, 45평은 31억8000만 원에 팔린 집도 있었다. 평당 5800만 원, 7000만 원 수준이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랄 수는 있지만 억대 솥뚜껑을 살 필요는 없지 않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제국의 부활을 꿈꾸나, 아니면 국제 질서를 주요 2개국(G2·미국과 중국)이 아니라 주요 3개국(G3·미국 러시아 중국)으로 재편하고자 하나. 푸틴 대통령이 이달 비슷한 시기에 갖는 대규모 군사훈련과 경제포럼을 보면 유럽에서 극동아시아로 이어지는 거대한 야망이 엿보인다. 중국과의 관계 강화를 통해 미국 일본의 결속에 대응하려는 의지도 내보였다는 분석이 나온다. ○ 러, 37년 만의 최대 군사훈련을 동방에서 러시아가 11∼15일 실시하는 ‘보스토크(동방)―2018’ 군사훈련은 1981년 ‘자파트(서방)―81’ 훈련 이후 37년 만의 최대 규모다. ‘보스토크―2018’은 우랄 산맥에서 태평양 해안에 이르는 방대한 지역에서 벌어진다. 러시아 전 병력의 3분의 1가량인 30만 명 이상이 동원되며 전투기 1000여 대, 북해함대와 태평양함대도 참여할 예정이다. 세르게이 쇼이구 러시아 국방장관은 최근 타스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항공모함과 3만6000대의 탱크와 장갑차 등 군사장비가 동시에 움직이는 것을 상상해보라”며 “가능한 한 전쟁에 가까운 조건 아래서 훈련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드미트리 페스코프 크렘린 대변인도 “우리에게 상당히 공격적이고 비우호적인 현재 국제 정세에서 우리의 군사적 능력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고 이번 훈련의 의미를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도 직접 훈련을 참관한다. 러시아 전체 군사 규모를 보면 이번 훈련이 얼마나 대규모인지 알 수 있다. 러시아 군사편제는 지상군, 해군, 공군, 전략미사일군, 우주군, 공수부대로 나뉘어 있다. 지상군은 36만여 명이며 전차 2만3000여 대, 장갑차 2만5000여 대, 포 3만여 문 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군은 14만여 명에 순양함 항공모함 잠수함 등 전투함 300척, 지원함 400여 척, 항공기 400여 대 등이다. 공군은 병력 16만여 명에 전투기 폭격기 등 3000여 대를 보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밖에 전략미사일군 8만여 명, 우주군 4만여 명, 공수부대 3만5000여 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번 훈련에는 중국과 몽골 군대도 참여한다. 중국 국방부는 지난달 “중국과 러시아 군대가 러시아 동시베리아 자바이칼 지역에서 연합 전투 훈련을 한다”고 발표했다. 중국 관영 언론은 ‘전략적 군사 협력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 참여하는 중국군은 병력 3200여 명과 전투기와 헬기 30여 대, 각종 장비 900여 대 등으로 알려졌다. 기동방어, 화력 타격, 역습 등 실전을 방불케 하는 훈련을 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훈련은 지난해 동유럽과 인접한 러시아 서부 지역에서 한 ‘자파트―2017’보다 더 큰 규모로 알려졌다. 서방 국가의 침략을 상정한 이 훈련은 지난해 9월 14∼20일 서부 러시아, 벨라루스, 발트해 등에서 열렸다. 러시아 국방부는 1만2700여 명의 병력이 참가했다고 발표했으나 실제로는 에스토니아 국경에서 실시된 훈련에만 1만2000명 이상이 참여하는 등 훨씬 많은 인원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러시아 측이 참가 병력 수를 축소 발표한 것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와 러시아 간의 협약에 따라 1만3000명 이상 병력이 동원되는 군사훈련에는 상대방의 감시와 참가 병사들에 대한 대화를 허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이 훈련 기간 동안 북부 플레세츠크 기지에서 1만2000km 떨어진 극동 캄차카반도를 향해 신형 핵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RS-24 야르스’도 발사 시험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나토는 이 훈련을 러시아가 전군을 동원해 기습적으로 서유럽을 침공하는 전면전의 축소판으로 판단했다. 일부에서는 이번 ‘보스토크―2018’ 훈련에서도 중-러가 핵공격 모의연습을 한다는 관측도 나왔다. ○ 유럽에서 극동에 이르는 경제대국의 꿈 담은 동방경제포럼 ‘보스토크―2018’이 군사대국 러시아를 지향하는 것이라면 11∼13일 블라디보스토크 극동연방대에서 열리는 제4회 동방경제포럼(EEF)은 유럽에서 아시아까지 영향력을 과시하는 경제대국 러시아를 지향한다. 2015년 9월부터 러시아 정부 주관으로 매년 열리고 있는 EEF는 극동러시아 지역 개발을 위한 투자 유치 및 주변국과의 경제 협력 활성화를 목적으로 한다. 러시아가 연방정부 차원에서 지원하는 포럼은 3개인데 그중 하나가 EEF다. 푸틴 대통령이 2015년부터 역점을 두고 있는 신동방정책을 추진하기 위해 이 포럼을 창설했다. 1회 포럼에서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극동 최대 도시 블라디보스토크(인구 60만 명)를 홍콩(인구 700만 명)과 같은 자유항으로 개방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가 이 포럼에 공을 들이는 이유는 러시아 극동과 아시아태평양의 경제 통합을 위해서다. 푸틴 대통령은 이런 청사진을 1회 포럼 개막연설에서 밝혔다. 러시아 근대화를 이끈 표트르 대제가 서쪽 끝 상트페테르부르크를 건설하고 키웠다면 푸틴은 극동인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점으로 아시아와 태평양으로 나아가겠다는 구상이다. EEF는 북한 핵개발 ‘암초’를 만나 동북아 정세가 복잡 미묘해지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 때문에 포럼이 끼치는 영향력도 경제에 국한하지 않고 외교·안보 분야까지 넓어지고 있다. 북한 핵개발 대응을 위한 6자회담이 2008년 12월 이후 10년간 중단된 상황에서 EEF는 사실상 동북아의 유일한 다자협의체로 존재감이 더 커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6년 열린 제2회 포럼은 북한의 잇단 도발과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쿠릴 4개 섬 영유권 분쟁 등으로 러시아, 중국, 일본, 남북한 간 긴장이 고조되던 시점에 열렸다. 당시 푸틴 대통령 초청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등 동북아 정상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제3회 포럼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신북방정책’을 제안하며 남-북-러 경제협력을 주창했다. 올해 제4회 포럼도 푸틴 대통령이 남북한 정상에게 동시에 초청장을 보내 경제보다 외교·안보 쪽의 초대형 이벤트가 되는 것 아니냐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불참하고 우리나라는 문 대통령 대신 이낙연 국무총리가 참석한다. 중국은 ‘보스토크―2018’ 훈련이 진행되는 시기에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참석해 푸틴 대통령과 우의와 협력을 과시할 것으로 전망된다. 아베 총리는 푸틴 대통령과 북방 4개 열도 및 극동에서의 경제 협력 등을 논의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석환 한국외국어대 초빙교수(러시아학)는 “푸틴 대통령이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EEF는 경제나 인구 면에서 낙후된 극동지역을 방치할 경우 장기적으로 경제가 중국에 종속되고 이는 결국 안보 문제까지 연결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시작된 것”이라며 “중국이 참여하는 보스토크 군사훈련을 하는 것은 미국의 동북아시아 영향력에 대해 양국이 손을 잡고 대응하려는 의도가 크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미 오래전부터 미-중-러는 때로는 안보 차원에서, 때로는 경제 차원에서 상황에 맞게 파트너를 바꿔가며 2인 3각 경주를 해오고 있다”며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정세를 단편적인 현상에 매몰되지 말고 미-중-러가 그리는 큰 그림을 잘 파악해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정승집 개 죽으면 가도 정승이 죽으면 안 가는 게 세상인심. 진심으로 망자(亡者)를 기리기 위해 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밥 한 끼라도 함께 먹고 떠나면 참 좋을 텐데…. 지난달 14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시립동부병원에서는 한 노인의 생전장례식이 열렸다. 자신의 부고장(訃告狀)을 보낸 이는 말기 전립샘암을 앓고 있는 김병국 씨(85). 살아 있는 사람의 장례식이란 익숙하지 않은 분위기 탓에 몇몇은 쭈뼛거렸고, 몇몇은 울먹였지만, 손을 잡은 노인은 웃으며 말했다. “와줘서 고마워…. 우리 그때 좋았지? 행복하게 살아.” 》 ―생전장례식이 외국에는 더러 있는데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한 것 같습니다. “저는 젊을 때부터 죽음이란 걸 별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사람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그래서 죽은 뒤에 누가 왔는지도 모르는 장례식보다는 살아 있을 때 사랑하는 사람들 얼굴 보고, 밥 한 끼 함께 먹고 가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해요. 죽음은 한 인생의 마무리잖아요. 경기가 끝난 뒤 선수들에게 박수를 쳐주듯이, 삶이란 경기를 끝내는 모든 사람은 결과와 관계없이 박수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걸 했을 뿐이지요.” ―그래도 자신이 죽는다는 걸 받아들이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요…. “어디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난 사람이 있나요? 가는 것도 마찬가지겠죠. 내가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안 죽는 것도 아니고…. 원래 3개월 남았다고 진단을 받았습니다. 1년 전에…. 그런데 연명치료도 안 받고, 항암주사도 안 맞는데 아직 견디고 있네요. 그래서인지 지금은 아주 마음이 편합니다.” (항암주사도 안 맞으신다고요?) “난 항암주사 맞으면 죽어요, 하하하. 오죽하면 암보다 항암치료가 더 아프다고 하잖아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내 마지막 모습이 고통으로 일그러진 얼굴로 기억되고 싶지도 않고…. 연명치료에 집착하면 대부분 치료 중에 죽으니까 마지막을 준비할 기회도 별로 없지요. 오래 사는 건 생각하지 않고 아프지 않고 죽으면 그 이상 좋을 게 없겠죠.” ―진단이 잘못됐을 거라는 생각은 안 하셨습니까. “하하하, 전 조직검사도 받지 않았어요. 1차 검진 때 무슨 수치가 나왔는데, 예를 들면 5정도가 나오면 암 가능성이 있는 거래요. 근데 전 100이 넘었다니까…. 뭐 더 확인할 필요도 없던 거죠.” (그래도 사람 마음이 안 그렇지 않습니까? 아니길 바라는 게 인지상정인데….) “주변에서 자꾸 권해서 ‘정 받으라면 받기는 할 텐데 별 의미는 없지 않느냐’고 했지요. 그랬더니 의사 선생님도 굳이 받을 필요는 없다고 하시더라고요. 이미 거의 확실한데 두 번 세 번 고통받는 것도 싫고요.” ―장례식을 앞당겼다고 들었습니다만…. “두세 달 전에 마지막으로 고마운 사람들 얼굴이나 보는 자리를 만드는 게 어떠냐고 주변과 상의했죠. 근데 알다시피 엄청나게 더웠잖아요? 죽겠더라고요, 하하하. 제가 이런 표현을 쓰는 게 적절한가요? 그래서 좀 선선해진 다음에, 9월 초쯤에 하자 그랬는데 의사 선생님이 지금이 제일 몸 상태가 좋으니 하려면 지금 하는 게 좋다고 하더군요. 1, 2주일 후에는 어떻게 될지 모른다고…. 그래서 앞당겨 잡은 게 8월 14일이었던 거죠. 날짜에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고요.” ―장례식에 검은 옷 대신 예쁜 옷을 입어 달라고 하셨더군요. “예, 초청장(부고장)에 그렇게 썼지요. 장례식 콘셉트를 ‘나의 판타스틱한 장례식’으로 정했거든요. ‘죽는 게 어둡고 외롭고 쓸쓸한 게 아니다. 이 세상 즐겁게 살다가 이제 당신들과 작별할 때가 왔다. 그동안 날 사랑해줘서 고맙다. 마지막으로 이 한마디 말을 남기고 싶다’ 이러면서 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을 축하하는 파티 식으로요. 그래서 축하하고, 노래 부르고, 춤추고 그렇게 즐겁게 보내고 싶었어요. 그런 자리에 검은 옷은 안 어울리잖아요? 우리 장례문화도 이젠 바뀌어야 해요. 조문객 대부분이 망자는 알지도 못하면서 사실 상주(喪主)와의 관계 때문에 가니까요. 고인에 대한 추모보다 얼마를 내야 할지를 더 고민하고…. 망자 입장에서는 자신을 추모하는 조사도 들을 수 없고, 정말 보고 싶은 사람이 와도 인사도 할 수 없지요. 그보다는 아직 살아 있을 때 서로 옛이야기 하고 남은 사람의 행복을 빌어주면서 가면 얼마나 좋아요.” 실제로 장례식은 그의 바람대로 조문객들이 그와의 추억을 회상하고, 노래하고 춤추는, 작은 축제 같은 행사로 진행됐다. 그는 평소 가장 좋아한다던 여성 듀엣 산이슬의 ‘이사 가던 날’을 불렀다. 참석자들에 따르면 노래가 끝난 뒤 잠시 동안 기력이 빠질 정도로 목청껏 불렀다고 한다. 그는 부고장은 초청장, 조문객은 초청객이라 불렀다. ―많이들 오셨나요. “한 30명 정도 올까 싶었는데 50명이 넘게 왔어요. 전혀 모르는 사람도 많아서 ‘누구지?’ 했는데 생전장례식이 어떤 건가 궁금해서 온 사람들이라고 하더라고요.” (초청한 분들은 다 왔습니까?) “네, 다들 왔죠. 요 근래에 사이가 소원해진… 제가 친동생 이상으로 좋아했던 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걔도 왔더라고요. 죄송하다고 하면서…. 살아서 장례식을 치르지 않았더라면 영영 못 보고 갔을 텐데 참 다행이죠.” ―생전장례식에 대한 다른 의견은 없었습니까. “주변에서 반대나 다른 말을 한 사람은 없는데… 병원으로는 생전장례식을 열지 말라는 전화가 왔었다고 하네요. 전화를 받은 우리 간호사가 수상해서 이름하고 전화번호를 대라고 했더니 뚝 끊었대요.” (왜요?) “이게 좀 더 깊게 생각하면 존엄사나 안락사하고 연결될 수 있어요. 스스로 생전장례식을 치른다는 것은 죽음을 인정하고 더 이상 연명치료를 안 받는다는 의미가 되잖아요. 생전장례식이 하나의 문화가 되면 죽음에 대한 생각이 바뀌는 것이고, 결과적으로 존엄사나 안락사까지도 이어질 수 있다고 보는 거죠. 종교계나 의료계에서는 그런 걸 반대하니까…. 아마도 그런 생각을 가진 누군가가 생전장례식이 알려지니까 항의 전화를 한 게 아닌가 싶어요. 하나 분명히 할 게 있는데 연명치료를 안 받는 것과 삶을 포기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전 삶을 포기한 적이 없어요. 제 삶을 온전한 모습으로 완성시키고 싶을 뿐이죠.” 그는 쾌활했지만 살아 있는 그의 죽음에 대해 물어야 하는 나는 마음이 편치 않았고, 어색한 분위기 속에 작은 침묵도 수차례 이어졌다. 어색함을 풀려고 말을 돌렸는데 그는 나를 배려한 듯 유머로 분위기를 바꿔줬다. ―답답해서 바람 쐬러 나오셨나 봐요?(인터뷰는 병원 앞 작은 벤치에서 했다. 도착했을 때 이곳에 있는 그를 봤고, 그 자리에서 인사를 나누고 바로 시작했기 때문이다.) “아, 담배 피우려고요.” (네? 담배요?) “하루에 5개비 정도 피우는데 의사 선생님이 더 이상은 피우지 말라고 하시더라고요.” (암이시라면서….) “지금 제가 걱정할 게 뭐가 있겠습니까. 또 걸릴 것도 아니고, 하하하.” ―이북 출신이라고 들었습니다. “평안북도 용천에서 태어났지요. 아버지가 지주였는데 1947년 열네 살이던 신의주동중 1학년 때 북한에서 숙청 바람이 불면서 외삼촌과 둘만 서울로 왔습니다. 위로 누나가 7명이고 제가 막내였죠. 학교를 졸업하고 처음에는 강원도 홍천군청에 들어갔는데 월급이 너무 적더라고요. 그래서 대한전선이란 곳에 취직했고, 월남전 때 파월 기술자 모집한다고 해서 베트남도 갔다 왔고, 이후 건설회사 몇 군데를 다니다가 은퇴한…, 그 뒤에는 노인 복지를 위해 노년유니온이란 곳에서 사회운동을 좀 했고… 뭐 평범한 인생이죠.” 그는 아내와는 사별했고, 자녀들과는 오래전에 절연했다고 한다. 노년유니온은 노인 권익과 복지 향상을 위해 활동하는 노동조합. 그는 지난해 초 이 단체 위원장에 선출됐으나 병으로 물러났다. ―기초생활수급자라고 들었는데 도움을 주는 게 아니라 받아야 하는 것 아닙니까. “하하하, 글쎄요. 생각하기 나름이겠죠. 고시원에서 혼자 살았으니 형편이 좋은 건 아닌데…. 나라에서 주는 돈하고, 일부는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해서 버는 돈으로 살았습니다. 노인들을 지원하기 위한 각종 제도들이 있는데 정작 노인들이 그런 게 있는지, 어떻게 하면 기초생활수급자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잘 몰라요. 그런 걸 알려주면서 시작했는데…. 우리나라가 노인 예산 자체는 부족하지 않아요. 제대로 효율적으로 쓰이지 않는 게 문제지요.” 노년유니온에서 활동하기 전부터 그는 서울 은평구에서 노인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했다. 이 때문에 그는 노령연금의 문제나 기초생활수급자들의 열악한 생활을 보도하는 기사나 인터뷰에 자주 등장하는 단골손님이다. ―살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있으신가요. “노인들을 위해서 기초연금을 개선하는 데 좀 일조했다는 거…. 그거 하다가 건강을 해쳐서 중간에 쓰러졌으니까요. 지금은 아무런 후회도 미련도 없어요.” ―마지막으로 주변에 남긴 말이 있으신지요. “유언요? 특별한 것은 없지요. 죽은 뒤에는 따로 장례식을 치르지 말고 바로 화장해서 뿌려 달라고 했을 뿐….” (유품이나 특별히 남기신 것은….) “재산 같은 걸 말하는 건가요? 네, 큰 게 있지요. 저를 지금까지 도와준 사람들… 돈으로는 따질 수 없는 재산이죠. 지금 여기 옆에 있는 사회복지사님은 18년 동안이나 저를 돌봐줬어요. 정말 고맙죠.”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파도를 가로질러/수십 마일 찾아간/바다 위/안타까운 목숨/지키지 못해/가슴 먹먹한/실종자 수색의 나날/조금만 더 버티지/당신 기다리는/아내, 자식들 버리고/가버린 바다엔/멍처럼 파란/하늘만 보였다(시 ‘출항 21’의 일부분) 시의 구절만 봐도 시인은 바다에서 실종자 수색을 가까이에서 지켜보고 미처 구조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안타까움을 가슴 저리게 느낀 사람일 것이란 생각이 들게 한다. 시인이자 65년 해양경찰 역사상 여성으로서는 처음으로 20일 일선 해양경찰서장에 취임한 박경순 울진해양경찰서장(56·총경·사진)의 작품이다. 그는 1991년 ‘시와 의식’이란 문학잡지에서 시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등단했다. 박 서장은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경찰관과 시인은 ‘어둡고 고단한 세상에 빛이 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다”며 “직원들의 애환을 달래주고 정의로운 법 집행으로 작지만 강한 경찰서를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첫 해양경찰서장이 된 뒤 축하 인사도 많이 받았지만 애로도 많다고 말했다. 아내이자 두 아이의 엄마이기도 한 그는 집이 있는 인천에 한 달에 한두 번밖에 못 간다고 했다. 박 서장은 “그동안 근무지가 강원 동해, 경기 평택, 충남 태안 등 전국을 옮겨 다니는 데다 한 번 출항하면 일주일 이상 바다에서 생활하는 경우도 있어 집에는 부정기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모든 생활을 이해해준 남편(박종환)의 외조가 없었다면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남편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박 서장에게는 늘 ‘처음’이란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해경 역사상 첫 여경 임용, 해경 첫 여성 총경 승진을 거쳐 이번에는 첫 여성 해양경찰서장이 됐다. 박 서장은 1986년 해경 역사상 처음으로 실시한 여경(순경) 공채에서 170 대 1의 경쟁률을 뚫고 합격했다. 해경학교 교수요원, 태안해양경찰서 1507함 부장(부함장), 평택해양경찰서 해양안전과장 등을 거쳐 지난해 8월 처음으로 여성 총경으로 승진했다. 그는 지금까지 ‘새는 앉아 또 하나의 시를 쓰고’(1997년) ‘이제 창문 내는 일만 남았다’(2002년)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2011년) 등 시집 3권을 출간했다. 2012년 제24회 인천문학상을 수상한 ‘바다에 남겨 놓은 것들’은 태안해양경찰서 1507함 부함장 시설 펴냈다. 불법 외국어선 단속 등 바다를 지키며 느낀 해양경찰의 애환과 고충, 감정 등을 담은 ‘출항’ ‘입항’ 등 연작시와 ‘양로원에서’ ‘경비실 풍경’ 등 소외된 이웃들에 대한 느낌을 담담한 시어로 담아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폭염으로 원전 가동률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월성 원자력발전소에서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를 임시로 보관하는 일부 저장시설이 약 95%까지 차는 등 포화 상태에 육박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르면 2020년 6월 월성 원자력발전 2, 3, 4호기의 가동 중단이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정부는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결정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8일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건식저장시설 포화도가 94.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핵연료를 물에 담가 방사능과 온도를 내리는 습식저장시설의 포화도 75.5%를 감안하면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포화도는 88.3%다.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 시설은 2020년 6월경 포화 상태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더 이상 쓸 수 없는 핵연료봉을 습식저장하다 옮겨 밀봉 보관하는 건식저장시설은 착공부터 건설까지 22개월이 걸린다. 지금 당장 착공해도 새 저장시설이 완공되기 전에 월성원전 저장시설이 포화된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인데도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건설 결정이 계속 지연되고 있다. 과거 박근혜 정부는 2016년 5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발표해 저장시설 확충을 결정한 바 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작년 9월 여론 수렴이 충분치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백지화하고 재검토를 하기로 결정했다. 이후 정부는 8개월이 지난 올해 5월에야 재검토위원회 구성을 위한 준비단을 발족했다. 정부는 준비단이 9월까지 4개월간의 활동을 끝내는 대로 재검토위원회를 구성한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준비단의 활동을 11월까지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주민 반발 등으로 관련 논의가 늦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 머지않아 ‘전력 재앙’이 닥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세종=이새샘 iamsam@donga.com / 이진구 기자}

정부가 사용후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 건설 재검토를 위한 준비단의 활동 기간을 예정보다 2개월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월성 원전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육박하는 등 발등에 불이 떨어졌지만 정부 논의 과정은 지지부진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당장 월성 원전 내 추가 저장시설 건설을 시작해도 월성 원전의 가동 중단을 막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전력대란 가능성을 제기하고 있다.○ 당장 건설 착수해도 월성 원전 가동 중단 불가피 사용후핵연료는 말 그대로 원자로에서 발전을 하고 남은 폐연료를 말한다. 원전 작업자들이 착용하는 장갑, 작업복 등 저준위 폐기물과는 달리 매우 강한 방사선이 나오는 데다 반감기(방사선이 감소하는 기간)도 수십 년 이상으로 훨씬 길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이를 영구 처리하는 시설이 없다. 그 대신 원전마다 폐기물을 임시로 보관하는 저장시설이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월성 원전 저장시설에는 올해 6월 기준으로 총 저장용량 49만9632다발 중 44만1320다발이 차 있는 상태다. 1호기는 가동이 중단됐고 2, 3, 4호기만 가동되고 있는 월성 원전에서는 매 분기(3개월) 2500다발가량의 폐기물이 나온다. 월성 2, 3, 4호기의 발전용량은 210만 kW(킬로와트)로 여름 최대 전력 공급량(1억73만 kW)의 2%가 넘는다. 만약 해당 발전기가 일시에 중단된다면 올여름 최대 전력 수요를 기록했던 지난달 24일을 기준으로 예비전력은 709만 kW에서 499만 kW로 떨어져 전력수급 비상단계에 들어가게 된다. 문제는 지금 당장 추가 저장시설 착공에 들어간다 하더라도 포화 시점 이전에 완공이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월성 원전의 건식저장시설은 부지 선정, 인허가, 주민 동의 등에 걸리는 시간을 제외한 순수 공사기간만 기초굴착 1개월, 구조물 공사 약 19개월, 안정성 확인 검사 2개월 등 22개월이 걸렸다. 폐기물을 다른 원전 저장시설로 옮기려고 해도 해당 지역 주민 동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사실상 불가능하다. 저장시설이 포화상태에 이르면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다만 정부는 월성 1호기가 가동 중단됐고, 2, 3, 4호기의 가동률도 낮아졌기 때문에 포화 시점이 다소 미뤄질 수 있다는 입장이다. 산업통상자원부 관계자는 “가동률을 80%대 이상 유지했던 과거와 달리 현재의 낮아진 가동률(50∼60%)이라면 포화 시점도 더 미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저장시설 건설 재검토 결정 후 계속 지연 정부는 지난해 9월 박근혜 정부의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 추가 설치 결정을 재검토하기로 결정했으며 이를 재검토위원회에 맡기기로 했다. 올 5월에는 위원회를 구성하기 전 기초 조사를 위해 준비단을 꾸렸다. 당초 정부는 준비단 활동 기간을 올해 9월로 정했는데 조사 과정이 길어지면서 이를 11월 이후로 늦춘다는 계획이다. 이 때문에 ‘탈원전’을 내세운 정부가 저장시설 확충에 별다른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추측까지 나오고 있다. 사용후핵연료 처리 문제는 1983년부터 9차례 논의됐지만 그때마다 지역 주민 반대 등으로 번번이 무산됐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5월에야 한수원은 월성 원전 가동에 차질이 없도록 월성 원전 부지 내에 건식저장시설을 추가로 설치키로 하고 원자력안전위원회에 승인을 요청했다. 이와 함께 당시 산업부는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행정 예고했다. 이 기본계획은 2013년 10월 출범한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위원장 홍두승)가 20개월 동안 각계 의견을 수렴해 2015년 6월 내놓은 권고안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2028년까지 영구처리 시설 부지를 확정한 뒤 24년간 건설해 2053년부터 가동을 시작하라는 구체적인 로드맵도 담았다. 또 그 전에 저장시설이 포화되는 원전의 경우 안정적인 저장시설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어수선한 탄핵 정국 속에서 원안위 승인이 늦어지면서 계획은 차일피일 미뤄졌고 문재인 정부는 결국 시민단체와 지역 주민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아 절차상 문제가 있다며 재검토를 결정한 것이다. 현재 준비단은 각 원전의 정확한 사용후핵연료 저장 상태를 조사하고, 관련 통계를 수집하고 있다. 지역 주민 의견 수렴도 함께 진행 중이다. 준비단 활동이 마무리되고 바로 재검토위원회가 구성되더라도 언제 구체적인 대안이 나올지 불투명하다. 윤종일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교수는 “2년 동안 월성 원전을 대체할 발전원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전력수급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이진구 sys1201@donga.com / 세종=이새샘 기자}

《 그도 황당해하고, 나도 황당했다. 인터뷰를 한 1일은 강원 홍천이 41도를 기록하며 1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운 날. 정말 자동차 보닛 위에서 계란프라이가 만들어지는지 실험해 보려고 울산 울산과학기술원(UNIST) 주차장에서 온도를 재는데 46도(오후 2시 반경)가 나왔다. 46도라니…. 전문가인 그조차 연신 조교들에게 “이 온도계 맞는 거니?”라고 묻다가 결국 다른 것으로 다시 재도록 했다. 인터뷰 중간에 조교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온도계는 이상 없는데요. 똑같아요.” 》 ―태어나서 46도는 처음 봤다. “나도…. 기상청 기온은 복사열 등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잔디밭 위 1.5∼2m 높이에 설치된 백엽상(百葉箱)에서 재기 때문에 기기가 직사광선을 직접 받지 않는다. 주변의 데워진 공기를 측정하는 방식이라…. 지금 이 온도계는 직사광선을 직접 받고 있어서 더 올라가는 것이고…. 사실은 기상청 기온보다 이 온도가 실제 우리가 체감하는 것에 가깝지만…나도 놀랐다. 46도라니…. 진짜 처음에는 고장 난 온도계를 가져온 줄 알았다.” (계란프라이는 안 만들어지던데….) “자동차 보닛 위에 계란을 깨 떨어뜨리자마자 프라이가 됐다는 말은 좀 과장된 것 같고…, 오래 놔두면 흰자는 좀 익지 않을까? 하하하.” ―국내 최초로 폭염연구센터를 만들었는데…. “기후예측을 전공했는데, 전에는 사람들이 50년 후, 100년 후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었다면 요즘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폭염이나 한파, 태풍 등 통계분포에서 가장 극단에 속하는 강력한 날씨 현상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많았던 자연재해가 폭염이다. 또 폭염만큼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재해가 없다. 그런데 전문가들도 어떤 상황이 폭염 상태라는 것은 알지만, 왜 갑자기 뜨거운 대기가 특정 지역에 정체하는지, 왜 일사량이 계속 늘고 또 언제쯤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갈지 등에 대해서는 우리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충분히 안 돼 있다. 그런 만큼 예측도 어렵다. 마침 기상청이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폭염연구센터를 공모했고, 우리 연구팀이 선정됐다.” ―가장 많은 사망자가 폭염 때문에 발생했다고…. “1994년 폭염 때 3384명이 일사병, 열탈진 등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사망하는 일상적인 숫자를 초과한 것으로, 폭염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사망 피해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환자도 2011년 433명에서 2016년 2125명, 올해는 지금까지 2500명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는 2004년 남아시아 지진해일(쓰나미)로 35만 명이 사망하는 등 더 큰 재해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재해 중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가장 많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명피해를 낸 자연재해는 1936년 태풍 3693호로 1104명이 사망했다. ―1932년 8월 1일 대구가 39.3도를 기록하는 등 과거에도 폭염은 있었지만 기후변화라고 하지는 않았다. 최근 폭염을 기후변화 탓이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가장 심했던 1994년 폭염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상당히 어렵다. 빈도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2003년 유럽 폭염(3만5000여 명 사망) 때도 이것이 기후변화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폭염의 강도와 빈도가 예전에 비해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도 2013년 남부지방에 강한 폭염이 왔다. 2016년도 그랬고 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 2010년대 이후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전 지구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고…. 인류가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쓰다 보니 대기 중 이산화탄소 양이 늘었고, 이로 인해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대멸종이 있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게 요즘 기후변화 연구의 화두가 되고 있다.” ―폭염을 막을 방법이 있나. “당장 폭염 자체를 막거나 날씨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방법은 없다. 단지 폭염이 예상되면 잘 대비하는 것이 방법이다. 장기적으로는 도시계획을 통해 폭염의 강도를 줄일 방법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2020년 도쿄 올림픽을 대비해 일본에서 그런 연구가 활발하다.” (어떤 연구가?) “에어컨 공조기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지 같은 것이다. 가정집 에어컨은 아니겠지만 대형 건물의 에어컨 공조기는 크기도 크고 열도 많이 뿜어낸다. 이것을 7, 8m 높이로 올려 설치하면 뜨거운 공기가 바로 위로 올라가 보행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차도와 인도 사이에 물 펜스를 설치해 보행자를 폭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물 펜스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종의 벽이다. 일본은 어떻게 도시계획을 해 빌딩 사이의 바람길을 만들지, 고층건물을 어떻게 배치할지 등도 연구한다.” (우리는?) “우리는 무더위 쉼터 정도? 구체적인 대응은 아직 없는 것 같다.” ―이번 폭염이 언제쯤 끝날 것 같나. “40도까지는 아니지만 13일경까지는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상공에 있는 상층고기압 때문인데, 우리 기상청이나 외국 예보 모두 이 고기압이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 남부 해상의 열대저기압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상층고기압이 ‘열돔’인가?) “그렇다. 열돔은 정식 학술용어는 아니고 미국 민간 날씨방송에서 쓴 ‘heat dome’이라는 용어를 가져온 것이다. 지상에서 데워진 뜨거운 공기 덩어리가 뚜껑처럼 막고 있는 상층고기압 때문에 주변으로 흩어지지 못하는 상태라 효과적인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라 학자들은 잘 쓰지 않는다.” ―전 세계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상층고기압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이 지역들이 폭염이 극심하다. 상층고기압은 중위도의 제트기류가 약해질 때 나타나는데, 열대와 극지방의 온도 차가 작을수록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이렇게 만드는 중요 원인이 지구온난화다.” (기후 현상을 설명할 때 애매하면 지구온난화로 돌리는 것 같다. 지구온난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던데….) “하하하,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다. 지구온난화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려고 중국이 만든 개념이라고…. 트위터에 ‘이렇게 추운데, 빌어먹을 지구온난화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It‘s freezing outside, where the hell is global warming)?’라고 쓰기도 했고….” (지구온난화가 없다는 주장의 신빙성이 확 떨어지는 것 같다. 그분은 날씨와 기후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하하하, 유엔 산하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1990년 1차 보고서를 시작으로 지금 6차 보고서를 준비 중인데 지난 수십 년간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미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고 나오고 있다.” ―트럼프 얘기를 했지만 사실 2011년 1월 96년 만에 해운대 앞바다가 얼었을 때도 “이렇게 추운데 지구온난화가 뭐냐?”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을 말하는 거라 특정 지역의 날씨와는 다르다. 우리가 강추위일 때 다른 나라는 고온일 수도 있고…. 우리는 지금 폭염이지만 베이징은 덥지 않다. 얼마 전에는 홍수도 발생했고….” ―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2004년)’ 같은 상황이 실제 발생할 수 있을까.※투모로우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해류 흐름이 바뀌고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인다는 내용의 재난영화다. “가능하다. 전 세계 해양은 거대한 해류의 흐름인 ‘해양 컨베이어벨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 있다. 바닷물이 하나로 섞여 흐를 것 같지만 실제는 차가운 깊은 물과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가벼운 얕은 물이 아래위로 따로 흐른다. 그러다가 표층의 따뜻한 물이 그린란드에 이르면 차가워지면서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가면서 해류 순환이 이뤄진다. 얼 때 소금을 뱉어내기 때문에 얼음은 다 민물이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지고 가벼워진다. 그린란드 부근에서 차가워져 밑으로 내려가야 할 해류가 가볍기 때문에 안 내려가거나 느리게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류 컨베이어벨트가 느려지거나 멈춰져서 더운 해류가 올라가지 못하면 갑자기 추워질 수 있다. 이런 가설에 기초해 만든 영화가 투모로우다.” ―폭염을 자연재해에 포함하는 법 개정이 추진 중이다. 하지만 무더위에 체력이 약해 쓰러졌는지, 지병 때문인지 구별이 쉽지 않을 듯한데…. “직접적인 피해 여부를 입증하기가 쉽지 않고, 또 보상의 기준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른 자연재해와 달리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풍수해보험도 처음에는 피해의 직접성을 판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보험사에서 날씨 보험을 안 하려고도 했었고…. 하지만 결국 실현시켰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의 구체성이나 직접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쪽방촌 같은 곳에서 폭염을 견뎌야 하는 고령자나 극빈자 등 취약층은 스스로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개인이 막을 수 있는 차원을 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재해에 포함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떻게 하느냐는 점은 우리의 노력에 달려 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그도 황당해하고, 나도 황당했다. 인터뷰를 한 1일은 강원 홍천이 41도를 기록하며 국내 기상관측 이래 111년 만에 최고 기록을 갈아 치운 가장 뜨거웠던 날. 정말 자동차 보닛 위에서 계란프라이가 만들어지는 지 실험해보려고 울산시 울산과학기술원(UNIST) 주차장에서 온도를 재는 데 46도(오후 2시반경)가 나왔다. 울산이 46도라니…. 전문가인 그조차 연신 주변 조교들에게 “이 온도계 맞는 거니?”를 묻다가 결국 다른 것으로 다시 재보도록 했다. 인터뷰 중간에 조교에게서 전화가 왔다. “교수님, 온도계는 이상 없는데요. 똑같아요.” ―태어나서 46도는 처음 봤다. “나도…. 기상청 기온은 복사열 등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잔디밭 위 1.5~2m 높이에 설치된 백엽상(百葉箱)에서 재기 때문에 기기가 직사광선을 직접 받지 않는다. 주변의 데워진 공기를 측정하는 방식이라…. 지금 이 온도계는 직사광선을 직접 받고 있어서 더 올라가는 것이고…. 사실은 기상청 기온보다 이 온도가 실제 우리가 체감하는 것에 가깝지만… 나도 놀랐다. 46도라니…. 진짜 처음에는 고장 난 온도계를 가져온 줄 알았다.” (계란프라이는 안 만들어지던데…) “자동차 보닛 위에 계란을 깨 떨어트리자마자 프라이가 됐다는 말은 좀 과장된 것 같고…, 오래 놔두면 흰자는 좀 익지 않았을까? 하하하.”―지난해 국내 최초로 폭염연구센터를 만들었는데. “기후예측을 전공했는데…, 전에는 사람들이 50년 후, 100년 후 기후변화에 관심이 있었다면, 요즘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는 기후변화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폭염이나 한파, 태풍 등도 통계분포에서 가장 극단에 속하는 강력한 날씨 현상들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으니까. 우리나라에서 가장 인명피해가 많았던 자연 재해가 폭염이다. 또 폭염만큼 두드러지게 증가하는 재해가 없다. 그런데 전문가들도 어떤 상황이 폭염 상태라는 것은 알지만, 왜 갑자기 뜨거운 대기가 특정 지역에 정체하는지, 왜 일사량이 계속 늘고 또 언제쯤 뜨거운 공기가 빠져나갈지 등에 대해서는 우리도 그렇고 전 세계적으로도 연구가 충분히 안 돼있다. 그런 만큼 예측도 어렵다. 마침 기상청이 이런 문제를 풀기 위해 폭염연구센터를 공모했고, 우리 연구팀이 선정됐다.”―가장 많은 사망자가 폭염 때문에 발생했다고? “1994년 폭염 때 3384명이 일사병, 열탈진 등 온열질환으로 사망했다. 더운 날씨 때문에 사망하는 일상적인 숫자를 초과한 것으로, 폭염으로 인한 직간접적인 사망 피해를 모두 포함한 것이다. 질병관리본부에 따르면 폭염으로 인한 온열환자도 2011년 433명에서 2016년 2125명, 올해는 지금까지 2500명 이상으로 급증하고 있다. 물론 전 세계적으로는 2004년 남아시아 쓰나미로 35만 명이 사망하는 등 더 큰 재해도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자연재해 중 폭염으로 인한 사망이 가장 많다.” ※폭염의 기준은 나라마다 차이가 있지만 우리는 33도 이상인 날이 이틀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측되면 폭염주의보를, 35도 이상이면 폭염경보를 내린다. ※국내에서 두 번째로 많은 인명피해를 낸 자연재해는 1936년 태풍 3693호로 1104명이 사망했다.―1932년 8월 1일 대구가 39.3도를 기록하는 등 과거에도 폭염은 있었지만 기후변화라고 하지는 않았다. 최근 폭염을 기후변화 탓이라고 보는 이유가 무엇인가. “1994년 폭염의 원인이 기후변화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는 상당히 어렵다. 빈도수가 많지 않기 때문에…. 2003년 유럽 폭염(3만5000여명 사망) 때도 이것이 기후변화인지 아닌지에 대해 논쟁이 많았다. 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폭염의 강도와 빈도가 예전에 비해 확실하게 차이가 난다. 우리나라도 2013년 남부지방에 강한 폭염이 왔다. 2016년도 그랬고 올해는 말할 것도 없고….” (주기가 짧아지고 있다는 건가?) “그렇다. 2010년대 이후 온도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전 지구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고…. 인류가 화석연료를 너무 많이 쓰다보니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량이 늘었고, 이로 인해 인위적인 기후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람이 만든 대멸종이 있을 수도 있다고 걱정하는 게 요즘 기후변화 연구의 화두가 되고 있다.”―폭염을 막을 방법이 있나. “당장 폭염 자체를 막거나 날씨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방법은 없다. 단지 폭염이 예상되면 잘 대비하는 것이 방법이다. 장기적으로는 도시계획을 통해 폭염의 강도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마련할 필요도 있다. 2020년 도쿄올림픽을 대비해 일본에서 그런 연구가 활발하다.” (어떤 연구가?) “에어컨 공조기를 어디에 어떻게 설치해야 열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지 같은 것이다. 가정집 에어컨은 아니겠지만 대형 건물의 에어컨 공조기는 크기도 크고 열도 많이 뿜어낸다. 이것을 7~8m 높이로 올려 설치하면 뜨거운 공기가 바로 위로 올라가 보행자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차도와 인도 사이에 물 펜스를 설치해 보행자를 폭염으로부터 보호하는 방법도 연구하고 있다. 물 펜스란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일종의 벽이다. 일본은 어떻게 도시계획을 해 빌딩 사이의 바람길 만들지, 고층건물을 어떻게 배치할지 등도 연구한다.” (우리는?) “우리는 무더위 쉼터 정도? 구체적인 대응은 아직 없는 것 같다.”―이번 폭염이 언제쯤 끝날 것 같나. “40도까지는 아니지만 13일경까지는 폭염과 열대야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상공에 있는 상층고기압 때문인데, 우리 기상청이나 외국 예보 모두 이 고기압이 계속 유지되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일본 남부 해상의 열대저기압도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예측된다.” (상층고기압이 ‘열돔’을 인가?) “그렇다. 열돔은 정식 학술용어는 아니고 미국 민간 날씨방송에서 쓴 heat dome이라는 용어를 가져온 것이다. 지상에서 데워진 뜨거운 공기 덩어리가 뚜껑처럼 막고 있는 상층고기압 때문에 주변으로 흩어지지 못하는 상태라 효과적인 표현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어도 아니고 한국말도 아니라 학자들은 잘 쓰지 않는다.” ―전 세계가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상층고기압들이 움직이지 않고 있는데, 이 지역들이 폭염이 극심하다. 상층고기압은 중위도의 제트기류가 약해질 때 나타나는데, 열대와 극지방의 온도 차이가 작을수록 제트기류가 약해진다. 이렇게 만드는 중요 원인이 지구온난화다.” (기후 현상을 설명할 때 애매하면 지구온난화 탓으로 돌리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지구온난화는 사실이 아니라는 주장도 있던데…) “하하하, 트럼프 미 대통령이 그렇게 말한다. 지구온난화는 미국 제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리려고 중국이 만든 개념이라고…. 트위터에 ‘이렇게 추운데, 빌어먹을 지구온난화가 어디에 있다는 거야?(It’s freezing outside, where the hell is global warming?)‘라고 쓰기도 했고….” (지구온난화가 없다는 주장의 신빙성이 확 떨어지는 것 같다. 그분은 날씨와 기후를 구별하지 못하는 걸까?) “하하하, 유엔 산하 IPCC(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가 1990년 1차 보고서를 시작으로 지금 6차 보고서를 준비 중인데 지난 수십년간 과학자들이 연구한 결과 이미 인간이 만들어낸 인위적인 기후변화를 겪고 있다고 나오고 있다.”―트럼프 얘기를 했지만 사실 2011년 1월 96년 만에 해운대 앞바다가 얼었을 때도 “이렇게 추운데 지구온난화가 뭐냐?”고 말한 사람이 많았다. “지구온난화는 지구 전체의 평균 기온을 말하는 거라 특정 지역의 날씨와는 다르다. 우리가 강추위일 때 다른 나라는 고온일 수도 있고…. 우리는 지금 폭염이지만 베이징은 덥지 않다. 얼마 전에는 홍수도 발생했고….”―영화 ’투모로우(The day after Tomorrow·2004)‘ 같은 상황이 실제 발생할 수 있을까?※투모로우는 급격한 지구온난화로 해류 흐름이 바뀌고 빙하가 녹으면서 지구 전체가 빙하로 뒤덮인다는 내용의 재난영화다. “가능하다. 전 세계 해양은 거대한 해류의 흐름인 ’해양 컨베이어벨트‘가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돼있다. 바닷물이 하나로 섞여 흐를 것 같지만 실제는 차가운 깊은 물과 상대적으로 따뜻하고 가벼운 얕은 물이 아래위로 따로 흐른다. 그러다가 표층의 따뜻한 물이 그린란드에 이르면 차가워지면서 무거워져 아래로 내려가면서 해류 순환이 이뤄진다. 얼 때 소금을 뱉어내기 때문에 얼음은 다 민물이다. 지구온난화로 극지방 얼음이 녹으면 바닷물의 염도가 낮아지고 가벼워진다. 그린란드 부근에서 차가워져 밑으로 내려가야 할 해류가 가볍기 때문에 안 내려가거나 느리게 내려가는 것이다. 이렇게 해류 컨베이어벨트가 느려지거나 멈춰져서 더운 해류가 올라가지 못하면 갑자기 추워질 수 있다. 이런 가설에 기초해 만든 영화가 투모로우다.” ―정부와 국회가 폭염도 자연재해에 포함하도록 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그런데 무더위에 체력이 약해 쓰러졌는지, 지병 때문인지 구별이 쉽지 않을 듯한데. “직접적인 피해여부를 입증하기도 쉽지 않고, 또 보상의 기준도 모호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다른 자연재해와 달리 포함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풍수해보험도 처음에는 피해의 직접성을 판단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그래서 원래 보험사에서 날씨 보험을 안 하려고도 했었고…. 하지만 결국 실현시켰다. 폭염으로 인한 피해의 구체성이나 직접성을 판단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쪽방촌 같은 곳에서 폭염을 견뎌야하는 고령자나 극빈자 등 취약 층은 스스로 피해를 막을 방법이 없다. 개인이 막을 수 있는 차원을 넘기 때문에 국가가 나서야한다는 점을 생각하면 자연재해에 포함하는 것이 맞는 것 같다. 어떻게 하느냐는 점은 우리의 노력에 달려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시원한 강바람, 코끝을 간질이는 치킨과 꼬치 냄새, 강 옆에 마련된 무대에서는 음악가들이 흥겨운 재즈를 연주하고 연인들의 속삭임은 달콤하다. 21일 저녁에 찾은 서울 반포한강공원은 파리의 센강변이나 어느 유럽 도시의 공원 못지않게 활기차고 낭만적이었다. 강아지를 데리고 산책 나온 시민, 스케이트보드, 조깅, 단체 요가를 즐기는 사람들까지…. 저마다 자유롭게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하고 싶은 모든 것을 하는 공간. 더위가 무색하게 부둥켜안고 떨어지지 않는 연인들, 준비해온 조명과 캠핑용품, 텐트를 쳐놓고 럭셔리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특히 이날 반포대교 남단 달빛광장에서는 꼬치, 스테이크 등을 창의적으로 즉석에서 조리해서 파는 푸드트럭 수십 대가 먹거리 향연을 펼쳤다. 목걸이 모자 등 젊은 아티스트들이 만든 개성 넘치는 물건을 파는 야시장도 열리고 있었다. 멀리 떠나는 휴가도 좋지만 항상 휴가를 내서 떠날 순 없다. 그럴 땐 한강으로 가자! 돈도 적게 들고 대부분 프로그램은 번거롭게 예약할 필요도 없다. 한강 전역 공원에서는 20일부터 다음 달 19일까지 ‘2018 한강 몽땅’ 축제가 열리고 있다. 음악, 영화, 수상레포츠, 낚시, 먹거리 등 온갖 종류의 축제가 80여 개 프로그램과 함께 열리고 있다.○ 시네마 퐁당과 다리 밑 영화제 다음 달 18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후 8∼10시 망원한강공원 서울함 공원, 여의도한강공원 원효대교 남단 아래, 뚝섬한강공원 청담대교 북단 아래, 광나루한강공원 천호대교 남단 아래에서는 ‘다리 밑 영화제’가 열린다. 야경을 벗 삼아 시원한 강바람을 맞으며 대형 스크린을 통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 예술 영화, 국내영화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신과 함께-죄와 벌’(광나루), ‘아이 캔 스피크’(뚝섬), ‘쥬라기 공원: 폴른 킹덤’(여의도), ‘국가대표 2’(망원) 등 20편이 상영된다. 모두 무료! 예약도 필요 없다. 보고 싶은 영화를 상영하는 날에 맞춰 그냥 가기만 하면 된다. ‘치맥’ 등 먹고 마실 것도 걱정 NO. 현장에 온갖 음식 전단이 즐비해 시키기만 하면 된다. 의자나 돗자리, 방석 등은 준비하는 것이 좋다. 밤이기 때문에 벌레나 모기 등을 쫓는 약이나 도구를 준비하면 좋다. 난지한강공원 어린이 물놀이장에서는 행사 기간에 매주 금요일 오후 8∼10시 물 위에서 튜브를 타고 영화를 감상하는 ‘시네마 퐁당’이 열린다. 사전에 홈페이지에서 예약해야 하며 500명만 입장할 수 있다. 참가비는 1만 원. ○ 추억의 동춘서커스와 현대 서커스의 향연 8월 3∼5일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앞에서는 전통에서 현대까지 아우르는 서커스의 향연을 볼 수 있다. 모두 무료. 3, 4일 오후 7시 반 수변무대에서는 93년 전통의 동춘서커스단 공연이 펼쳐진다. 1925년 동춘 박동수가 창단한 이 서커스단은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 이봉조 이주일 남철 남성남 등 걸출한 스타들이 이곳을 거쳤으며, 코미디언 서영춘도 동춘서커스에서 조명일로 시작했다고 한다. 현재는 3대 박세환 단장이 맡아 운영하고 있다. 이번 공연에서는 ‘두 남자의 힘’ ‘실팽이 묘기’ ‘공중수직 밧줄’ ‘서커스 발레’ 등 전통 서커스의 진수를 보여준다. 3, 4일 오후 7시∼7시 반 달빛언덕 무대에서 ‘봉앤줄’의 외봉인생 공연이, 같은 날 오후 8시 반∼9시 달빛광장에서는 ‘프로젝트 루미너리’의 에어리얼 아트 ‘공중퍼포먼스 타.오.름’이 무대에 오른다. 에어리얼 아트란 실크, 로프 등 다양한 소재의 줄을 이용해 공중에 매달려서 움직임을 선보이는 서커스의 한 장르. 프로젝트 루미너리는 에어리얼 아트를 전문으로 하는 공연 예술단체로, 2015년 창단해 주목을 받고 있다. ‘공중퍼포먼스 타.오.름’은 에어리얼 아트와 비올라 라이브 연주, 무용, 불꽃 퍼포먼스가 융합된 작품이다. 불타오른 뒤 떨어지는 불꽃을 우리의 꿈과 행복에 비유해 불꽃에서 꽃이 깨어나는 과정 속에 담긴 쾌락과 고독의 양면성을 섬세한 움직임으로 그려낼 예정이다.○ 명품 재즈와 그림자놀이 8월 14, 15일 오후 6시부터 10시까지 반포한강공원 세빛섬 앞 피크닉장에서는 ‘한여름 밤의 재즈’가 열린다. 세계적인 재즈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이 준비한 공연이라 연주자 수준도 정상급이다. 14일에는 심성보 퀄텟, 제희 트리오, 김오키 새턴발라드, 15일에는 조정희 밴드, 윤혜진과 브라더스, 프롬 올 투 휴먼이 공연을 한다. 폭우나 태풍, 침수만 아니면 비가 와도 열린다. 여름밤에 공짜로 수준급의 재즈를 듣는 재미가 쏠쏠하다. 8월 18일 오후 10시부터 여의도한강공원에서는 한강에서 쏘아 올리는 불꽃쇼도 감상할 수 있다. 8월 10, 11일 오후 8시부터 40분간 여의도 한강공원 이벤트 광장 나무 덱에서는 ‘아트&컬처 연구소’의 ‘섀도 아트-한강의 비밀을 찾아서’가 공연된다. 손으로 그림자를 만들어내는 핸드 섀도와 춤을 추면서 다양한 사물을 표현하는 보디 섀도가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 같은 정경을 선사한다. 모든 공연은 무료이고 예약도 필요 없다. ○ 물싸움 축제와 종이배 경주대회 여름에는 역시 물놀이. 8월 4, 5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난지한강공원 젊음의 광장에서는 각종 ‘물싸움 축제’가 열린다. ‘20만 개 물 폭탄 대전’은 참가자들이 두 편으로 나뉘어 20만 개의 물 폭탄을 서로에게 던지며 즐기는 것. 행사를 주관하는 한강사업본부 측은 “이 분야에 대한 기네스북 등재 기록이 없는 만큼 올해 행사를 추진한 뒤 내년에 기네스북 등재를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부산행 NO! 한강행’은 참가자들을 추격해 오는 좀비 분장을 한 스태프와 물총싸움을 하는 놀이. 스태프의 좀비 분장이 지워질 때까지 추격을 피하며 물총을 쏴야 한다. 장소와 장비에 제한이 있어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하며 입장권은 5000원. 방수백과 비치타월 등이 포함된 패키지 입장권은 1만1000원이다. 물총은 개인 장비를 가져와도 되고, 행사장에서 별도 판매도 한다. 한강에서 직접 만든 종이배를 타고 노를 젓는다면 기분이 어떨까. ‘종이배 경주대회’는 이런 로망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딱’인 기회다. 8월 10∼12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 반까지 잠실한강공원 잠실나들목 앞 둔치에서 열린다. 골판지로 종이배를 만든 뒤 직접 노를 저어 50m 반환점을 돌아오는 게임. 참가비는 5만 원이며 홈페이지를 통해 예약해야 한다. 참가자격에 제한은 없으나 초등학교 4학년 이하 어린이는 보호자가 동반 탑승해야 한다. ○ 피자, 치킨, 꼬치 먹고 탕수육! 축제에 음식이 빠질 수 없다. 여의도·반포한강공원에서는 8월 19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6∼11시, 토요일 오후 5∼11시 ‘밤도깨비 야시장’이 열린다. 향초, 목걸이 등 각종 공예품도 팔지만 뭐니 뭐니 해도 관심은 먹거리. 공원마다 40여 대의 푸드트럭이 저마다의 솜씨를 뽐낸다. 음식 종류도 닭발, 치킨, 스테이크, 추로스, 핸드메이드 아이스크림, 곱창, 전, 꼬치, 피자, 떡볶이, 탕수육, 순대, 프랑스 분식, 버거, 한식 등 다양하다. 흡사 음식박람회에 온 듯한 느낌. 푸드트럭 존에서 음식을 산 뒤 공원 내 잔디밭이든, 강 옆이든 원하는 곳에 가서 먹으면 된다. 21일 연인과 함께 반포한강공원 야시장을 찾은 장인석 씨(39)는 “처음 왔는데 마치 유럽 소도시의 축제 같은 느낌이어서 무척 좋았다”며 “특히 젊은 푸드트럭 사장들이 창의적으로 만든 음식은 맛뿐만 아니라 보는 재미까지 더해줬다”고 말했다. 음식마다 차이는 있지만 가격은 2만 원 안팎이면 거의 대부분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별도의 가격 가이드라인은 없지만 업체 선정 시 가성비(價性比)를 고려해 선정했기 때문에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수준이다. 단, 여성들에게는 문제가 없지만 남성들에게는 양이 좀 적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야시장을 주관하는 서울시 푸드트럭활성화팀 측은 “맛은 물론이고 요즘처럼 더운 날씨에는 음식이 변질될 수 있어 수시로 점검하는 등 관리에 신경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놓고 ‘난리’가 났다. 2020년까지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을 목표로 했던 정부가 지난해 16.4%(7530원), 올해 10.9%(8350원)를 올리자 영세 자영업자들을 중심으로 “차라리 나를 잡아가라”며 불복종 운동까지 나서기로 한 것. 후폭풍이 거세지자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이던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 원 달성’이 어려워졌음을 사과했고, 현 정부의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회의론까지 일고 있다. 그런데 이토록 뜨거운 사회적 이슈가 된 ‘최저임금 시급 1만 원’은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 신정웅 아르바이트노동조합(알바노조) 비상대책위원장(46)은 “시급 1만 원이란 용어가 처음 나온 것은 2012년 대선 때”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하고 있다. 》 ―‘최저임금 1만 원’이란 개념은 어떻게 시작된 것인가. “2008년 미국의 리먼브러더스가 파산하는 등 글로벌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세계적으로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느냐란 논의가 시작됐고, 그 방법 중 하나로 소득주도 성장이 제기됐다. 그리고 그 예로 맥도날드가 미국에서 대표적인 저임금 일자리인데, 당시 7∼8달러이던 시급을 두 배 정도인 15달러로 올려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런 주장이 점차 우리나라에도 알려졌는데 당시에는 아직 ‘1만 원’이란 용어는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다가 2012년 대선 때 무소속으로 출마한 청소노동자 출신 후보가 ‘시급 1만 원으로 최저임금 인상’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처음으로 등장했다.” ―청소노동자 출신 후보가 처음 제시했다고? “기호 7번 김순자 후보인데, 당시 울산과학대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하던 분이었다. 이 공약 때문에 당시 ‘알바들의 대통령’으로 불리기도 했다. 선거가 끝나고 이분이 선거를 도왔던 사람들과 알바연대를 만들었고, 알바연대를 모태로 지금의 알바노조가 만들어졌다. 이후 알바노조에서 최저임금 1만 원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는데, 지난해 대선에서 문재인 홍준표 등 모든 대선 후보가 시기의 차이만 있을 뿐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알바연대는 일종의 시민단체 성격으로 노조는 아니다. 알바노조는 알바연대를 모태로 조합원 자격이 되는 사람들이 모여 2013년 8월 노조 설립 신고필증을 받은 정식 노조다. ―알바노조의 상급단체는 어디인가. “우리는 한노총이나 민노총 등 어느 곳에도 속하지 않은 독립노조다. 알바노조가 만들어진 것이 양대 노총이 우리 같은 최저 시급 저임금 노동자를 대변해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이 시급 1만 원이 돼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2013년도 최저임금이 4860원이었다. 앞서 말한 대로 미국에서 시급이 두 배는 돼야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고, 이를 우리나라 상황에 맞추면 1만 원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또 1인 미혼 가구 생계비가 한 달에 200만 원을 조금 넘는데, 이 정도를 벌려면 시급이 1만 원은 돼야 한다. 이런 생각들이 모여 나온 것으로 안다. 물론 이것도 2012년, 2013년 때 이야기다.” ―너무 급격하게 올리다 보니 편의점 등 영세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큰데…. “그런 곳도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런데 최저임금은 편의점이나 소상공인 가게에만 적용되는 게 아니라 사회 전 직종에 해당되는 것 아닌가.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어떤 근거를 보여줘야 설득력이 있을지 고민하다 인터뷰 하러 오기 전에 알바몬과 알바천국 사이트에 들어가 봤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들 대부분이 이 두 곳에서 일자리를 구한다. 여기 구인 광고가 곧 우리의 일자리 수다. 오늘(19일) 서울이 약 4만5000건, 경기가 5만 건 정도였는데 이 중 맥도날드 일자리가 2700여 건이었다.” (많은 것인가?) “수도권 전체 아르바이트 일자리 중 맥도날드만 2.7%라면 엄청나게 많은 것 아닌가. 버거킹, 롯데리아도 있고….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직군 중에 햄버거, 커피 등 대기업 중심의 프랜차이즈에서 일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가 가장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이 회사들은 전혀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그리고 편의점이 마치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가장 대표적인 직군처럼 됐다.” ―가장 많은 아르바이트 일자리 중 하나가 패스트푸드점이라고 했다. 마침 당신이 맥도날드에서 일하는데, 최저임금으로 인한 인력 감축이나 근무 형태의 변화는 없나. “올 4월 서울 신촌점 등 주요 도시 중심가에 있는 일부 매장이 폐점됐다. 수익성 때문인데, 신촌점은 건물주가 올해 임대료를 두 배나 올려 달라고 했다더라. 장사가 잘되는 곳이었지만 임대료를 두 배나 올려줄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인건비도 영향을 줄 수 있었겠지만 임대료만큼 크진 않았던 것으로 안다.” ※맥도날드 측은 신촌점 폐점에 대해 “신촌점은 장사가 꽤 잘되는 곳이었다. 하지만 건물주가 두 배나 임대료 인상을 요구해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었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어떻게 하다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 건가. “원래 정보기술(IT) 분야에서 일했다. 잘 안돼서 나왔는데 지금도 이 분야에서 일하기 위해 알아보고 있다. 때때로 단기 프로젝트 같은 것도 하고 있고…. 아르바이트는 자리를 찾을 때까지 생활을 해야 하니까…. 그래서 많은 시간을 하기도 어렵다. 내 경우는 보통 휴식시간을 포함해 밤에 6시간 정도만 일한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보니 노후 걱정도 들고 해서 시간을 늘려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든다.”(6시간이면 그리 수입이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100만 원이 좀 넘는 정도? 지난해 최저임금이 인상되고는 한 달에 10만 원 정도를 더 받는 것 같다. 그래도 꽤 큰돈이다.” ―비대위원장인데 원래 노조 운동을 좀 했나. “아니다. 전임 지도부가 지방 출장을 갔다가 교통사고가 나서 활동을 못하게 됐다. 그래서 다음 지도부를 뽑을 때까지만 맡은 것이다. 지난달에 됐는데 그 사이에 회사와 어떤 협상을 한 것도 아니라 아직은 회사에서도 모를 것 같다.” (위원장 할 생각은 없나?) “하하하. 안 한다. 나도 일을 해야 살 수 있으니까. 대기업 노조처럼 노조 일만 해도 월급이 나오는 전임자도 아니고….” ―주변의 다른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은 어떤가. 알바노조 안에서도 사람마다 상황이 다를 텐데…. “다 알 수는 없지만 최저임금 인상으로 괜찮아졌다는 쪽이 많은 것 같다. 근로 성격상 아르바이트를 하며 자기 미래를 준비하는 사람이 많은데, 같은 시간을 일하면서 소득이 약간 높아진 것이니까.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이 전부 편의점에서만 일하는 것은 아니다.” (일하는 매장은?) “번화가는 휴가철이면 사람이 빠져야 하는데 강남역 지역은 오히려 많아지더라. 근처에 학원이 많아서 그런가 싶기도 하고…. 아무튼 우리는 밤 시간에 3명에서 5명으로 늘렸다.” ―최저임금 인상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들에게서 항의는 없나. “그런 건 없고 ‘왜 문 대통령을 비판하느냐’는 항의가 99%다.” (응? 무슨 소리인가?) “최근 문 대통령의 최저임금 1만 원 공약 포기를 비판하는 시위를 청와대 앞에서 했다. 이걸 놓고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공약을 포기한 적이 없는데, 왜 포기했다고 시위를 하느냐’고 하더라. 청와대 앞 시위는 비난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정책 방향을 재고하고 소상공인 등에 대한 제대로 된 대책을 세워 달라는 뜻이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우리라도 나서서 소상공인들을 살려 달라고 얘기하고 싶은 마음이다.” (알바노조가 왜?) “그들이 살아야 우리 일자리도 사는 것 아닌가. 이 문제를 해결할 곳은 정부밖에 없다.” ―경영계는 주휴수당을 포함하면 지금도 사실상 최저임금이 8350원이 아니라 1만30원이라고 하는데…. “항상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일하고 있다면 또 모르겠다. 하지만 최저임금을 적용받는 분야는 근무 변동이 심하다. 가게가 인테리어 공사를 하느라 1, 2주를 쉬면 그 아르바이트 노동자는 주휴수당을 받을 수 없다. 받지 않은 사람에게 계속 일해서 받는 것을 전제로 1만 원이 넘는다고 하면 얼마나 피부에 와 닿을까. 지금도 지방도시나 시골 편의점에서는 최저임금보다 더 낮은 시급으로 일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사람들에게 시간당 8350원을 받는 것을 전제로 주휴수당까지 계산하면 맞을까. 나도 개인 사정으로 근무시간이 짧아 주휴수당을 못 받은 적도 있는데….”※주휴수당은 근로기준법상 일주일 동안 소정의 근로일수를 개근하면 지급되는 유급휴일에 대한 수당. 단시간 아르바이트도 일주일에 15시간 이상 일하면 주휴수당을 받을 수 있다. ―최저임금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바뀌길 바라나. “우리 같은 아르바이트 노동자를 ‘비용’으로 본다면 당연히 가장 적게 올리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인간다운 삶을 살길 원하는 ‘인간’으로 본다면 지금의 최저임금도 많이 늦었다고 생각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람들은 학업이나 취업 준비, 추가 경제 활동 등 미래를 위한 노력을 병행하고 있다. 낮은 최저임금 때문에 생활이 힘들어 아르바이트 시간을 늘리면 미래를 준비할 여력이 줄어든다. 일정 시간만 투자해도 어느 정도의 생활이 된다면, 그 여력을 미래를 준비하는 데 사용할 테고 이것이 사회적으로도 더 나은 방법이 아닐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웃음을 띠고 우리를 대하고 있으나 절대 우리의 친구가 아니다. 적이다.”(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탐욕에 눈먼 거대한 용(龍)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지구의 종말이 시작된다.”(피터 나바로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 “중국산 제품에는 징벌적인 고율의 관세를 부과해야 한다.”(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USTR가 6일 340억 달러(약 38조 원) 규모의 818개 중국산 제품에 25%의 고율 관세를 부과하자 중국 언론이 콕 찍어 ‘무역전쟁 도발의 원흉’이라고 지목한 3명이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던 신념들이다. 부동산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가(트럼프), 경제학과 교수(나바로), 통상 전문 변호사(라이트하이저) 등 배경은 다르지만 그들은 각 분야에서 중국에 대해 강한 불만을 갖고 있었다. 이제 미 정부에서 핵심 지위를 차지한 이들은 자신들이 골수에 맺힐 만큼 강하고 오랫동안 품고 있었던 생각들을 현실에 옮기고 있다. 미국이 대중(對中) 무역전쟁을 벌이는 등 국제 자유무역 질서에 평지풍파를 일으키는 데는 ‘대중 강경 3인방’의 생각과 가치관이 바탕에 깔려 있다.○ ‘제2의 플라자 협정’ 꿈꾸는 라이트하이저 1985년 9월 22일 미국 뉴욕 플라자호텔. 후에 국무장관으로 발탁된 제임스 베이커와 일본 독일 프랑스 영국 등 5개국 재무장관이 모여 미국 달러의 일본 엔화와 독일 마르크에 대한 환율 인상(평가 절하)을 추진하는 ‘플라자 협정’에 서명했다. 협정 약발은 미국의 기대 이상으로 2년 만에 달러는 50% 이상 절하돼 제조업 경쟁력을 회복했다. 달러화 약세는 1987년 2월 22일 5개국이 다시 모여 ‘루브르 협약’으로 하락을 멈추게 하자고 약속할 때까지 계속됐다. 일본은 엔화 가치 상승으로 뉴욕의 고층 빌딩을 사들이는 등 호황을 누렸지만 독배를 마신 것이었다. 부동산 거품이 꺼지면서 경기가 침체되는 ‘잃어버린 10년(1991∼2000년)’에 빠져들었다. 무엇보다 미국은 위협적인 2위 경제국 일본을 ‘한 방’에 보냈다. 당시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로 플라자 협정의 주역 중 한 명이다. 33년 전 추격자 일본을 굴복시켰던 그에게 이제는 상대가 중국으로 바뀌었을 뿐 경제 2위국의 도전을 뿌리치는 역할을 맡기는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환율 한 가지 수단으로도 큰 성과를 달성했지만 사정이 달라졌다. 3월 미 재무부의 평가에서도 중국이 ‘환율 조작국’에 지정되지 않을 정도로 중국의 위안화 평가 절하 ‘혐의’가 뚜렷하지 않은 데다 대중 적자 누적의 요인도 복합적이기 때문이다. 6일 340억 달러 고율 관세와는 별개로 10일 추가로 2000억 달러 규모의 관세 폭탄을 던지면서 라이트하이저는 “관세 부과 대상은 중국의 산업 정책과 강제적인 기술 이전 관행으로부터 이익을 얻는 제품들”이라고 했다. 환율만으로 일본 독일을 공격하던 때와는 상황이 다른 고민이 담겨 있다. 라이트하이저는 USTR 부대표를 마친 후 대형 로펌 ‘스캐든’의 파트너 변호사로 미국 기업들을 위한 징벌관세 부과 업무를 맡아 30여 년간 일해 왔다. 주요 대상이 중국 철강으로 이번 대중국 관세 폭탄의 대표 품목이다. ○ ‘군복을 입고 벙커에서 무역전쟁 지휘’ 말까지 듣는 나바로 “중국 공산당식 변칙적인 국가자본주의는 세계의 자유 시장과 자유무역 원칙을 산산조각으로 파괴하고 있다. 정부의 후원을 받는 ‘국가 대표 기업’은 중상주의와 보호주의를 결합한 정책을 무기 삼아 휘두르면서 전 세계 산업계의 일자리를 야금야금 먹어치우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직후인 지난해 2월 백악관에 중국과의 무역전쟁을 벌일 국가무역위원회(NTC)를 신설하고 초대 위원장에 임명한 ‘초강경 반중 학자’ 나바로 어바인대 교수의 기본 생각이다. 그는 중국이 휘두르는 ‘일자리 파괴의 무기’로 △불법 수출 보조금 △지식재산권의 무분별한 위조 △느슨한 환경 법규 △업계에 만연한 노예 노동력 사용 △미국 기업에 대한 높은 중국 진입 장벽 등을 들고 “가장 뻔뻔한 것으로 환율 조작도 있다”고 했다(‘중국이 세상을 지배하는 그날’, 2011년. 원제 ‘Death by China’). “중국이 값싸고 숙련된 노동력으로 정정당당하게 미국의 일자리를 가져가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중국의 8가지 불공정 무역관행으로 창출되는 경쟁 우위가 50%가 넘는다”고 반박한다. 숫자를 동원한 논지 전개는 경제학자답지만 8가지 관행 표현에서는 뿌리 깊은 대중 반감과 ‘전사의 결기’가 느껴진다. △미국의 심장을 겨누는 교묘하고 불법적인 수출 보조금 △약삭빠른 환율 조작 △지식재산 위조, 침해, 절도 △원가 절감을 위한 기업의 환경 파괴 정부 묵인 △국제 표준에 훨씬 못 미치는 근로자 안전 보건 기준 △핵심 원자재 수출 제한으로 관련 산업에 대한 중국의 통제력 강화 △약탈적인 덤핑으로 경쟁국 밀어내기 △‘보호주의 만리장성’으로 중국 시장 진입 장벽 구축 등이다. 나바로는 “세계사에서 1500년 이후 중국 같은 신흥 세력이 미국 같은 기존 강대국과 대치한 것은 15차례이고 이 중 11차례에서 전쟁이 발생했다. 확률이 70%를 웃돈다”(‘웅크린 호랑이’)며 미중 양국이 ‘투키디데스 함정’(신흥 강대국과 기존 강대국이 전쟁 등 충돌하는 것)에 빠질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경제적 이해를 넘어 패권 도전국 중국에 대한 견제 의식이 짙게 배어 있다. 다만 그가 강조하는 포인트는 뒤에 있다. 그는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30년 전쟁 후유증으로 쇠잔의 길을 걸었다”며 양국이 함정에 빠지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을 권고한다. ○ “미국이 중국의 봉이라니 기가 찰 노릇” 외치는 트럼프 트럼프는 대중 무역전쟁에서 현장 지휘관이다. 트럼프의 말과 정책이 즉흥적으로 나오는 것이 적지 않다는 지적이 있지만 대중 피해의식과 보복 의지는 사업가로서 오랜 기간 쌓인 것이다. “중국은 환율 조작으로 우리 주머니에서 매년 1000억 달러나 되는 돈을 빼내가고 있다. 내가 중국을 우리의 적이라고 규정한 뒤 온갖 비난을 받았으나 왜 비판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트럼프, 강한 미국을 꿈꾸다’) 트럼프는 중국을 △작정하고 미국을 파탄 내려고 덤비는 사람들 △일자리를 앗아가는 사람들 △기술을 훔쳐 가는 사람들 △기축통화 달러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우리의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사람들인데 ‘적’ 말고 뭐라고 부르냐고 반문한다. 트럼프는 “우리는 중국 일본 멕시코 같은 나라로부터 일자리를 되찾아야 한다. 미국 소비자들이 만든 세계 최고의 시장을 그냥 내주고 있다”며 “미국의 노동력이 최고라는 사실은 모두가 안다. 단지 그들이 경쟁하도록 해주기만 하면 된다”(‘불구가 된 미국’)고 목소리를 높인다. 미국의 제조업 기반이 흔들리고 일자리를 잃은 것은 중국 등의 불공정 행위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이에 대응해 내놓은 것이 고율 관세 폭탄이다. ○ 안팎에서 부는 ‘보호주의 3인방’에 대한 역풍 이들의 노골적인 미국 우선 및 보호주의 논리는 중국과 서방 각국은 물론이고 미국 내에서도 미국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구축했던 자유무역 질서의 근간을 위협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래리 서머스 전 재무장관은 관세 폭탄에 대해 “지난 반세기 동안 대통령들이 도입한 가장 비합리적인 일”이라며 “멍청하고 미친 짓이다. 트럼프는 무솔리니처럼 독재자처럼 행동한다”고 비판했다. 트럼프가 제조업 일자리를 다시 국내로 가져오는 방법으로 ‘온 쇼어링(본국으로 제조 시설을 옮기는 것)’을 들면서 ‘징벌적 관세’를 부과했지만 전기자동차 업체 테슬라가 상하이(上海)에 연간 50만 대 규모의 생산 공장을 짓겠다고 발표하는 등 일부 기업의 탈미(脫美) 현상까지 나타나고 있다. 구자룡 bonhong@donga.com·이진구 기자}

《 최근 국내 최고 대학인 KAIST(한국과학기술원)에서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전공 지원자가 급격하게 감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 학교는 전공 구분 없이 신입생을 뽑은 뒤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는데, 1학기 5명에 이어 이번 2학기에는 아무도 지원하지 않은 것. 이를 두고 지난해 시작된 탈(脫)원전 정책으로 관련 분야 고사 현상이 가시화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이 학과 학과장인 최성민 교수(53)는 “학생 수 감소도 문제지만 더 중요한 것은 탈원전이 백년대계가 돼야 할 국가 에너지 정책에 부합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라며 “그런데 정부는 이런 원자력계의 우려를 졸업생 취업만 지원해 주면 되는 문제로 보는 것 같다”며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 ―올 1학기 지원자도 5명에 그쳤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나. “원래 대부분 1학기 때 전공을 정하기 때문에 2학기 때는 지원자가 적다. 영향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수 자체가 적기 때문에 큰 의미를 두지는 않는다. 내년 1학기 지원자를 보면 좀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을 것 같다.” 지난해 KAIST 신입생 중 올해 전공 선택자는 1학기 725명, 2학기 94명 등 모두 819명이다. ―과거에는 통상 몇 명 정도가 지원했나. “해마다 차이는 조금 있지만 통상 20여 명이 지원한다.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같은 외부 요인이 발생하면 좀 더 줄기는 한다. 학과별로 규모의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비교할 수는 없지만 대략 교수당 학생 비율로 볼 때 20명 정도면 평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2010년 22명, 2012년 9명, 2013년 25명, 2015년 25명 수준이었으나 지난해는 9명, 올해는 5명이 지원했다. ―1학기에 지원한 5명은 왜 지원했다고 하던가. 어떤 면에서 지원하지 않은 학생들보다 지원한 학생들이 더 특이해 보이는데…. “한 학생은 인류의 에너지 문제 해결과 상생 방안을 고민하고 싶어서 지원했다고 하더라. 전공을 원전 산업만이 아니라 인류의 에너지 문제 수준으로 놓고 결정한 것이다.” (허, 기특한 학생인데?) “인류의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될 것 같다. 하하하.” ―원자력학과 하면 원전이 떠오르는데 연구·진출 분야가 얼마나 다양한가. “크게 원자력 에너지 분야, 방사선 의료 분야, 반도체 우주 국방 등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 활용되는 플라스마 및 방사선 기술 응용 분야, 가속기와 하나로 중성자 연구시설 등 국가기술 및 산업기술 개발의 근간이 되는 대형 국가 연구 인프라 시설 분야 등을 교육·연구하고 있다. 원전만 하는 게 아니다. 국가정보원에도 간다.” (국정원에 왜?) “핵에 대해 뭘 알아야 북한이 핵실험을 했는지, 뭘 터뜨린 건지, 정보의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 판단할 것 아닌가. 외부 전문가 이야기도 이해할 능력이 있어야 들을 수 있고…. 그래서 실제로 원자력학과 출신들이 국정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물론이고 외교부, 청와대까지…. 원자력이란 게 산업적인 측면만 있는 게 아니라 국제정치 문제가 늘 있어 외교부에서도 필요하다.” ―달리 생각하면 지원자 감소 현상이 계속되면 비단 원전만이 아니라 국가 전체에 엄청난 피해가 온다는 뜻인 것 같은데…. “그런 일이 생겨서는 안 되지만…, 만약 우리나라에 원자력 전문가가 한 명도 없는 상황이 온다면 모든 전문가적 판단을 외국 인력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의료, 우주, 국방 등 관련 산업은 물론이고 국가 외교 안보 측면에서도 큰 위협 요인이 될 것이다.” ―탈원전 자체가 잘못이라는 건가. “국가의 에너지 정책은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정책 중 하나다. 매년 바꿀 수 있는 정책도 아니고…. 따라서 결정할 때는 냉철한 과학적 근거와 충분한 논의, 그리고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런데 그런 과정이 충분했나? 탈원전이 대선 공약이었고, 당선 후 일방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탈원전의 문제점으로 지적되던 전기료 인상, 온실가스 문제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일자리 창출도 저해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고….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결국 탈원전의 근본 이유는 원전의 위험성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 같다. 고리1호기, 월성1호기의 사례에서 보듯 수명이 끝난 원전을 부품만 교체해 재가동한다면 불안할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럴 거면 왜 ‘수명’이 존재하는 건가. “‘수명’이라는 잘못된 용어를 사용하다 보니 생긴 오해다. 마치 더 이상 쓸 수 없는 원전을 대충 땜질해 쓰는 것 같은 느낌을 주니…. 법적 용어는 ‘계속운전’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는 정기검사를 통해 문제가 없으면 계속 사용을 허가해 준다. 마찬가지다. 정해진 수명이 별도로 있는 것이 아니다. 백년 천년 쓸 수는 없겠지만 정확한 안전규정이 있으니까 그걸 통과하면 계속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폐쇄한 고리1호기와 같은 유형의 발전소를 미국은 40년 운영 후 20년을 추가 운영하고 있고, 20년 더 운영하려고 추진하고 있다. 월성1호기와 같은 원전을 사용하는 캐나다에서는 80년 가까운 운전을 추진하고 있다.” (그런데 왜 설계수명이라는 용어를 쓰나?) “미국에서 만들어진 ‘운영허가갱신’ 제도를 일반적으로는 ‘설계수명’, 법적으로는 ‘계속운전’으로 표현하는데 사실 이 제도는 원전의 기계적, 물리적 수명과는 관계없이 독점금지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다. 만약 80년, 100년을 허가하면 한번 시장에 들어간 원전 외에는 다른 원전이 들어올 수 없어 사실상 독점이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너무 짧으면 사업자의 위험이 너무 커 아무도 안 하려 할 테고…. 원전의 물리적 수명을 말하는 게 아니다.” ―무식한 질문이지만 그래도 묻고 싶다. 원자력발전소는 정말 위험한가. “지금까지 원전 사고를 피해 규모로 보면 우크라이나 체르노빌(1986년), 일본 후쿠시마(2011년), 미국 스리마일섬(1979년) 순이다. 사고 원인은 사람의 실수, 기계 고장, 천재지변 등 다양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똑같다. 노심(爐心·원자로의 중심부로 핵연료인 연료봉 다발)이 녹는 것이다. 체르노빌은 원자로를 덮는 격납용기가 없는 원전이다. 사고가 나면 방사선이 그대로 방출되는 것이다. 이런 원전은 이제 짓지 않는다. 후쿠시마도 원자로를 덮는 격납용기가 허술했다. 국제기구의 조사에 따르면 체르노빌 방사선의 10분의 1 정도가 외부로 누출됐다고 한다. 스리마일은 노심이 녹아내렸고 수소폭발도 있지만 격납용기가 아주 튼튼하게 지어져 외부로 방사선이 누출되지 않았다. 며칠 후 미국 대통령이 직접 방문했으니까…. 우리나라 원전도 스리마일처럼 격납용기가 튼튼한 모델이다. 흔히 원전 사고 하면 영화 ‘판도라’의 장면을 생각하는데 그건 정말 상상이다. 최악의 경우도 스리마일 정도가 될 것이다.” ―그렇다 해도 원전의 안전성과 방사선에 대한 불안감이 있는 것은 사실 아닌가. 납품비리나 부실공사도 발생하고 있고…. “공포심은 어떻게 보면 우리가 생존하는 데 필요한 도구다. 공포를 못 느끼면 위험이 다가오는 줄도 모르고 죽을 테니까…. 하지만 공포가 세상을 지배하면 안 된다. 방사선의 일반인에 대한 법적 선량한도(線量限度·인체에 해가 없다고 생각되는 방사선의 양적 한계)는 1mSv(밀리시버트)다. 어느 정도를 쐐야 방사선으로 인한 위험이 나타날 것 같은가?” (1mSv 이상이면 위험한 것 아닌가?) “100mSv 이하에서는 사례가 관찰되지 않고 있다. 1mSv는 더 안전하게 관리하기 위해 정한 수치다. 100mSv 이하에서도 위험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아직까지 증거를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단지 위험 사례는 없지만, 사례가 없다고 완전하게 위험이 없다고 단정 짓지 못할 뿐이다. 하지만 사실상 없는 것이다. 우리나라 기형아 출산율이 5.5%라는 보도가 있었다. 이유는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 수치가 원전 주변 지역을 조사해 나온 것이라면 모두 원전 때문이라고 여긴다. 개연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인과관계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원전의 위험성 문제는) 그런 식으로 수십 년간 누적돼 왔다.” ―우리나라는 지금 22조 원 규모의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건설 수주를 위해 범정부 차원에서 뛰고 있다. 우리는 위험하다고 안 짓는데 남에게는 팔아도 되는 걸까. “그러면 안 되는 것 아닌가. 해로워서 내 자식은 안 먹이면서, 돈을 벌기 위해 남에게는 파는 것과 뭐가 다른가. 또 탈원전 정책으로 국내 부품 공급망이 무너지면 수주를 해도 문제다. 미국이 우리보다 훨씬 비싼 이유가 미국은 그동안 원전을 안 지어서 자체 공급망이 무너졌다. 그래서 부품을 외부에 의존하다 보니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결국 비싸진다.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한국은 정해진 예산과 기간 안에 원전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국가다. 원전 수출 분야에서 사실상 황금 기회가 눈앞에 펼쳐진 것이고, 아랍에미리트 원전 수출은 그 신호탄이었다. 그 기회가 사라질 것 같아 안타깝다.” ―최근 산업부가 원자력 관련 학과 지원책을 발표했는데…. “전국 16개 대학 원자력 관련 학과의 취업을 지원하고 핵심 인력 유출 방지도 노력하겠다고 하더라. 한국수력원자력의 원자력 전공자 취업도 늘리겠다고…. 탈원전 정책 기조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은 백년대계가 돼야 할 국가 에너지 정책이 제대로 가고 있느냐다. 그걸 원자력학과의 고사나 졸업생의 취업 문제로만 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원자력계가 지금 전공자들의 취업 문제 때문에 탈원전 정책을 재고하라고 요구한다고 생각하는지. 정책적, 사회적, 재정적으로 제대로 된 처우를 못 받는다면 유능한 인재가 빠져나가는 걸 무슨 수로 막을 수 있겠나.”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이 나라가 거저 생긴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얼마나 많은 눈물과 아픔으로 일구어졌는지를 지금 세대들에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 26일 서울 용산구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서 열린 백범(白凡) 김구 선생 제69주기 추모식에서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라는 책 한 권이 영정에 헌정됐다. 저자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현 백범 김구 선생 기념사업협회장·사진). 김 전 의장은 27일 “백범을 모르는 사람도 없지만, 제대로 아는 사람도 드물다”며 “좀 더 친숙하고 쉬우면서도 깊이 있게 백범을 알리고 싶어 이 책을 썼다”고 말했다.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는 ‘백범일지(白凡逸志)’를 재구성한 책. 보통사람들이 백범에게 가진 의문과 지적을 왜 그때 그렇게 했는지 백범이 직접 답하고, 여기에 저자가 설명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제목의 ‘백범’은 백정과 범부, 즉 평범한 백성을 의미한다. 백범이 답하는 부분은 백범일지를 토대로 했다. 김 전 의장은 “처음 책을 의뢰받았을 때는 내가 이 일을 감당할 수 있는지, 해도 되는지 고민이 많았다”며 “위대한 보통사람의 삶을 짧은 글에 잘 담을 수 있을지 걱정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래서 먼저 공부를 시작했고, 출간된 백범일지가 300여 종이 넘어 다양하게 각색·편집된 관련 서적 수십 권을 놓고 씨름하느라 출간까지 3년여가 걸렸다고 한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공부하면서 치부조차 솔직하게 드러낸 백범의 인간됨에 감명받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백범이 일지에서 “감옥에서 굶주린 창자를 움켜쥐고 있을 때 음식 냄새가 코를 찌르면 젊은 아내가 몸이라도 팔아서 아침저녁으로 맛있는 음식이나 사식을 넣어주면 좋겠다는 더러운 생각까지 났다”는 고백까지 했었다는 것. 김 전 의장은 “백범을 냉정한 투사로만 생각하기 쉽지만 한편으로는 보통사람이면 밝히고 싶지 않은 부끄러운 사건과 생각까지도 숨김없이 고백하는 너무나 인간적인 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책에서 백범 가족과 동아일보의 인연도 소개했다. 백범은 일지에서 ‘1925년 상해에서 두 손자를 키우시던 어머니는 내 짐을 덜어주려고 네 살배기 막내 신을 데리고 본국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셨다. (…) 내가 노자를 조금밖에 못 챙겨드려 인천항에 내리자마자 여비가 떨어졌다. 어머니는 동아일보 인천지국을 찾아가 사정을 얘기하셨다. 그러자 지국에선 상해 소식과 어머니의 딱한 형편을 기사로 읽었다며 서울행 차표와 여비를 드렸고, 서울에서 다시 동아일보 본사를 찾아가니 역시 사리원까지 보내드렸다고 한다’고 적었다. 김 전 의장은 “1932년 1월 8일 이봉창 의사의 의거가 있었지만 일제의 보도통제로 국내 언론이 제대로 보도하지 못할 때 동아일보만 호외를 네 번이나 발행하고 이 의사 사진과 집을 소개했다”고 설명했다. 추모식에서는 ‘백범 묻다…’ 외에 기념사업협회 차원에서 출간한 ‘백범의 길, 조국의 산하를 걷다(국내편)’도 헌정됐다. 백범이 국내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시절 거쳤던 장소와 사건들을 일일이 답사해 정리한 것이다. 김 전 의장은 “내년은 백범 추모 70주기, 3·1운동 100주년을 맞는 뜻깊은 해”라며 “내년에는 상하이에서 충칭까지 백범이 중국에서 활동한 지역을 중심으로 2부를 낼 계획이며, 3부는 북한 지역의 노정을 담을 계획”이라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 지난해 9월 드러난 강원랜드의 2013년 부정 채용 실태는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합격자 518명 중 95%인 493명이 별도로 관리된 청탁 대상자였다. 점수를 조작한 것은 물론이고 당시 최흥집 사장은 부탁받은 사람이 필기시험에서 떨어지자 아예 이 시험을 점수에 반영하지 못하도록 했다. 검찰은 인사 청탁을 한 청탁자를 기소하지 않아 부실 수사 의혹을 받았고, 급기야 외압이 있었다는 현직 검사의 폭로도 나왔다. 지난해 12월 융단 폭격을 맞은 강원랜드에 구원투수로 등판한 문태곤 사장(61)은 “부정 합격자 225명의 채용을 취소하고 현재 당시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특별채용을 진행 중”이라며 “하지만 무슨 말로 그분들의 아픔을 달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감사원 출신인 문 사장은 노무현 정부 말기 대통령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으며, 2010년 감사원 제2사무차장을 끝으로 공직을 떠났다. 》 ―청탁 대상자 493명 중 225명만 채용을 취소한 이유가 뭔가. “493명은 당시 청탁이 들어온 사람 전부다. 이 중에 검찰 수사 결과 청탁과 서류 및 점수 조작 등 부정 채용의 인과관계가 인정된 사람이 225명이었다. 나머지는 청탁은 했지만 그것이 실제로 부정 합격으로 이어졌는지, 아니면 자기 실력으로 붙었는지 확인할 수 없었다.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까지 채용을 취소할 수는 없었다.” ―당시 임의로 채용 인원을 대폭 늘려 뽑았는데 안 들킬 줄 알았을까. “나도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일단 뽑아 놓고 나서 떼쓰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당시에 카지노가 증설돼 인력을 확충할 필요는 있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는 약 700명이 필요하다고 봤지만 최종적으로 500여 명을 뽑기로 했다. 문제는 이걸 기획재정부와 정원 협의를 한 뒤에 승인을 받고 뽑아야 했는데 안 하고 채용한 거다. 결국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려는 과정에서 문제가 벌어졌다.” (정규직 전환이라니?) “이들은 2년 뒤 정규직으로 전환되는 비정규직(교육생)이었다. 2015년 이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데 기재부에서 기본 정원에 추가로 45명만 증원을 허용했다. 200여 명이 집단 해고를 당할 판이 되자 지역은 물론이고 사회적으로도 난리가 났다.” 강원랜드 측은 “2014년까지는 기타공공기관으로 분류돼 정원을 초과해 채용해도 페널티가 없었다. 이 때문에 당시에는 기재부와 협의하지 않고도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처음에는 부정채용이 아니라 집단 해고가 문제였다는 말인가. “그렇다. 2014년 말 드라마 ‘미생’이 엄청나게 히트를 쳤는데 그게 큰 영향을 미쳤다. 한 명도 아니고 수백 명이 한꺼번에 ‘미생’이 되게 생겼으니까. 그래서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을 구제하자는 쪽으로 사회 분위기가 흘렀고, 결국 기재부가 200여 명을 추가 증원해줬다. 당시에는 굉장히 잘한 일로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어쩌다 부정 채용이 드러난 건가?) “기재부 입장에서는 화가 난 거지. 정원 협의도 안 하고 일단 뽑아놓고 정규직 전환시키라고 들이민 꼴이니까…. 그래서 우리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진상을 파악해 달라고 요구했고, 산업부가 다시 우리에게 내부감사를 시켰다. 최 전 사장 후임인 함승희 사장 때다. 그랬더니 채용비리가 드러났고, 관할인 춘천지검에 수사 의뢰를 한 거다.” ―우리나라는 감사받느라 일 못 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로 감사가 많다. 내부감사야 그렇다 쳐도 2013년부터 작년까지 5년 동안 상급기관에 감사원, 국정감사를 다 어떻게 피해간 건가. “그게…, 거참…. 내가 감사원 출신이지만, 처음부터 인사 쪽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그 정도까지 알기 어렵다. 감사도 어떤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시작하는 것이다. 채용 비리란 게 보통 극소수, 한두 명, 이렇게 생각하지 이렇게 대대적인 부정이 있을 거라 생각할 수 있겠나. 상식선에서 가설도 세울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거지…. 사장은 물론이고 감사위원장까지 한통속이 됐는데….” ―청탁과 추천의 차이가 뭔가. 그들은 추천했다고 주장할 것 같은데…. “내 생각에 우리는 혈연, 학연, 지연 등이 너무 강해서 제대로 된 추천 문화가 자리 잡기 어렵다. 추천이란 장단점을 다 객관적으로 써주는 것이다. 그런데 좋은 점과 함께 ‘하지만 성격이 불같이 급하다’라고 쓰면 누가 좋아하겠나. 서로 원수가 되지. 우리나라 추천서에는 전부 좋은 말만 있다. 그래서 말은 추천이라고 하지만 추천이 아니라 다 청탁이다. 전화로 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고….” ―어느 정도 알려지긴 했지만 당시 채용이 얼마나 엉망이었나. “외부기관에 5000만 원을 주고 필기시험(인성·적성검사)을 의뢰해 치렀다. 그런데 당시 최 사장이 자기가 부탁받은 사람들이 필기시험을 통과하지 못하자 이를 참고자료로만 쓰라고 지시했다. 당락에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한두 명 끼워 넣는 정도도 아니고 아예 전형 과정 자체를 바꾼 거지…. 자기소개서를 보면 아주 가관이다. 창피해서 말을 못한다.” (내용이 부실하던가?) “두 줄짜리 자소서 본 적 있나? ‘무슨 일이든 잘할 수 있다’는….” (그런 자소서도 있나?) “무슨 뜻이라고 생각하나?” (자기는 채용시험과 관계없이 이미 합격한다는 걸 알았다는 것 아닌가. 백지로는 낼 수 없으니 몇 줄 적은 거고.) “그렇지. 강원랜드가 아니라 다른 회사 이름을 적은 자소서도 있었다. 아무 생각 없이 복사해 붙인 것이겠지….” (당시 인사팀이 다 봤을 것 아닌가?) “봤지만 탈락시킬 수 없었거나 아예 처음부터 볼 필요도 없이 결정돼 있었거나…. 다 그랬다는 건 아니고 일부 그런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들은 도대체 무슨 논리로 채용 취소 소송을 내겠다고 하는 건가. “아직 소송을 냈다고 우리한테 연락 온 것은 없는데… 자신들은 몰랐다는 거다. 아버지가 ‘빽’을 쓸 사람도 아니라면서…. 3월에 채용을 취소하고 한 보름 정도 시끄러웠다. 회사 앞에 부모들이 몰려와서…. 초반에는 퇴근도 못 하고 사무실에서 거의 자정까지 갇혀 있었다.” (대부분 자식들이 서른이 넘었을 텐데 부모들이 항의하러 온 건가?) “자식 문제니까…, 안타까웠겠지….” ―솔직히 2013년에만 그런 일이 벌어졌을 것 같지는 않은데. 이전 이후의 채용 과정에 대해서는 왜 조사하지 않나. “증거가 없으니까…. 2013년 건은 청탁 리스트가 있었고…. 추정이지만 당시에는 청탁자가 워낙 많아서 인사담당자가 살기 위해 기록을 해 둔 것 같다. 기록을 해두지 않으면 기억도 안 나고 나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니까…. 들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 거겠지. 상식적으로 한두 명이었다면 리스트까지 만들지는 않았을 거다.” ―2013년 채용비리 피해자를 위한 구제 특별채용이 진행 중이다. 몇 명이나 뽑나. “최대 225명이다. 이번에 채용 취소된 그 인원만큼인데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더 적을 수도 있다.” (당시 지원자가 5268명인데 너무 적은 것 아닌가?) “5268명 중 부정행위 연루가 확인된 사람, 인성·적성 점수 미달자 등을 제외하고 3198명에게 응시 기회를 부여했다. 그런데 5년이나 지나다 보니 이미 취업한 사람도 있고 해서 응시한 사람이 285명에 그쳤다. 27일 또는 28일경 최종 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직접 면접을 보나?) “안 본다. 사장이 들어가면 면접장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고, 또 다른 면접위원들이 눈치를 볼 수도 있고…. 그 대신 간부들에게 분명히 말했다. 한 명이라도 청탁받거나 당신들이 아는 사람에게 뭘 해준 게 드러나면 내가 옷 벗는 것 당연한데 그 전에 당신들부터 먼저 꼭 벗기겠다고….” (그 난리를 쳤는데 또 청탁할 사람이 있을까?) “알 수 없지…, 알 수 없다. 그래서 과거와 달리 이번에는 이중 삼중으로 그물망을 쳤다. 전에는 면접위원을 내부 간부들이 했는데 이번에는 반은 외부 인사로 하고, 위촉도 외부 대행기관에 의뢰했다. 또 회사 감사팀이 면접에 입회하도록 했다. 그랬는데도 또 청탁이 벌어지고 문제가 생긴다? 그러면 집에 가야지.” (만약 그런 일이 벌어지면 집에 못 갈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날아올 것 같은데?) “그럴 것 같기도 하다. 하하하. 아무튼 아직까지는 청탁받은 게 없다.” ―이번 합격자들에게 경력 인정이나 호봉 인상 등 잃어버린 5년에 대한 보상이 있나. “전에는 2년 후 정규직 전환이었는데 이번에는 인턴 6개월 후 전환(8급)하기로 했다. 안타깝긴 한데 아무리 찾아봐도 법적으로 보상을 해줄 방법이 없더라.” (당시에는 실력이 좋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나 처져서 떨어지는 사람도 있지 않겠나?) “그럴 수 있는데…, 어떻게 과거를 돌릴 수도 없고…. 안타까울 뿐이다. 당시 피해자 중에는 자살한 사람도 있다. 얼마나 억울하겠나. 채용 청탁은 진짜 해서는 안 된다. 남의 인생을 훔치는 일 아닌가.” ―최고경영자(CEO)로서 앞으로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가. “강원랜드가 카지노 이미지가 너무 강한데, 앞으로는 복합 리조트 단지로서 국민의 진정한 쉼터가 되도록 만들고 싶다. 구체적으로 지난해 340만 명이던 비(非)카지노 부문 이용객을 2025년까지 530만 명까지 늘릴 계획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민의 신뢰와 사랑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지난해 5등급이던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도 임기가 끝나는 2020년까지 2등급으로 올릴 계획이다. 조직 혁신도 진행했는데 12명이던 임원을 5명으로 줄였다. 대부분 외부에서 온 사람들인데 불필요한 의사 결정 단계가 많았다. 올해가 설립 20주년인 만큼 조만간 신규 BI(Brand identity)와 함께 중장기 경영 전략도 발표할 예정이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고작) 이걸 위해 그렇게 대대적인 선전을 한 거야? (늘 자랑하던) ‘거래의 기술’은 어디 갔지? 이게 다인가?’ 지난해 영국 BBC의 ‘화제의 방송사고’로 스타가 됐던 로버트 켈리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가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직후인 12일 트위터에 올린 글이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보여준 태도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각종 국제협약을 탈퇴하며, ‘파투’(화투에서 판이 무효가 되는 것)도 불사하던 것과는 사뭇 달라 의아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일각의 부정적인 평가대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치밀한 포석(布石)에 ‘말린(?)’ 것일까. 아니면 비즈니스 게임의 고수로서 최후의 순익을 즐기려는 것일까. ○ 사업가 출신의 거래 본능 트럼프 대통령의 잘 알려진 저서 ‘거래의 기술(The Art of the Deal)’에는 사업가로서의 거래 성향을 엿볼 수 있는 부분이 많다. 그중 하나가 불확실한 리스크를 피하려 한다는 점과 ‘을’이 되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점이다. 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1970년대 중반 미국 뉴저지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땅값이 천정부지로 뛰었다고 한다. 5000달러면 살 수 있던 가정집이 30만 달러로 오르더니 나중에는 100만 달러까지 간 것. 하지만 트럼프는 이런 투기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합법화 전에 사면 큰 차익을 벌 수 있지만 만약 안 될 경우 물거품이 되기 때문. 카지노는 수익성이 엄청난 사업이기 때문에 돈을 더 주더라도 합법화가 된 후 입지가 좋은 곳을 골라 하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그는 1977년 애틀랜틱시티에서 도박이 합법화한 후 3년이 더 지난 1980년 카지노 사업을 시작했다. 트럼프보다 먼저 사업에 뛰어든 업체들이 공사 지연, 공사비 부족,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거부 등의 어려움을 충분히 본 뒤였다. 호텔 공사도 서두르지 않았다. 통상 다른 업자들은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기 위해 호텔 공사와 카지노관리위원회의 허가 절차를 동시에 진행했다고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확실하게 카지노 영업 허가를 받은 뒤 공사를 시작하기로 하고, 만약 인허가가 지나치게 늦어지면 땅을 팔고 사업을 접겠다는 방침으로 협상에 임했다. 일단 호텔 공사를 시작하면 물러날 곳이 없기 때문에 카지노위원회가 이런저런 요구를 할 경우 거절할 수 없어 계속 끌려다닐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면 ‘코가 꿰이는’ 것을 본능적으로 피한 셈이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돌출적이고, 불확실적이며, 괴팍한 성격의 소유자라는 일반인들의 인식과는 다른 면모가 있음을 보여준다. 이종수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언제 어떻게 상황이 달라질지 모르는 게 국제 정세인데 북-미 정상회담에서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까지 명기할 경우 당장은 찬사를 받겠지만 조금이라도 차질이 생길 경우 미국에도 부담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정상회담에서 모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과정이 명시될 경우 미국 입장에서는 속된 말로 ‘한 번에 다 털어먹는’ 장사가 될 수도 있다는 것. 이후에는 차질이 생길 때마다 비판만 들어야 하는 반면에 구체적인 비핵화 방법과 시간표를 명기하지 않으면 향후 성과가 나올 때마다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공이 된다는 계산을 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어차피 비핵화는 시간이 걸리는 문제인데 11월 선거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한 방’에 털어먹기보다는 성과가 계속해서 나오는 것이 더 이득이라는 것이다.○ 명분보다는 이익 대표적인 게임 이론 중 하나인 ‘치킨게임’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한 자동차 게임으로, 서로 마주 보고 달려오다 먼저 핸들을 꺾는 쪽이 지는 경기다. 취임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1000억 달러 추가 관세 부과를 지시하고 8, 9일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보이콧하는 등 다른 나라가 뭐라 하든 아랑곳하지 않고 미국의 이익을 최우선에 놓는 치킨게임 전술을 자주 써왔다. 물론 그 기저엔 명분이나 고상한 가치가 아닌 ‘머니’가 깔려 있다. 세계 최강국 미국의 최고지도자가 된 후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사업적 마인드를 그대로 드러냈다. 북-미 정상회담 후 한미 연합훈련 중단 문제를 언급하면서도 “(한미 연합 군사훈련에) 많은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한국도 돈을 내고 있지만 100%는 아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다시 한번 얘기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반 정치인들이 비록 속마음엔 돈이 있다고 하더라도 에둘러 말하거나 다른 비유적 수사로 표현하는 것에 비하면 너무나 적나라한 화법이다. 그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 문제도 외교안보의 관점이 아닌 사업과 미국의 이익 관점에서 보고 있다는 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이종수 교수는 “핵이 당면한 문제인 우리에게는 비핵화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철저한 해체 프로세스가 우선이지만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비핵화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자신들의 이익이 더 큰 고려 사항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꿰뚫은 김 위원장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미국 본토를 위협할 수 있는 미사일 엔진 시험장 파괴라는 선물을 안겼고, 트럼프 대통령이 이를 자신의 실적으로 자랑하고 나선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당장 CVID를 명기하기보다는 북한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을 폐쇄하는 식으로 눈에 보이는 약속을 하나하나 이행하면 이를 비핵화 절차를 진행하는 것으로 포장해 성과를 낸 것처럼 알리려 할 것이라는 얘기다.○ 게임은 계속된다 트럼프의 방식이 궁극적으로 미국의 이익에 부합할지는 미지수다. 곽노성 동국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트럼프는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이다. ‘허가’를 받아내고 ‘돈’을 버는 게 부동산 개발의 목적이다. 하지만 사적 재화를 다루는 비즈니스와 공적 재화를 다루는 정치는 다르다. 정치 영역은 경제적 이익 외에 고려해야 할 가치가 많다”며 “지나치게 승부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종국적으로 게임의 승리자가 될지를 놓고도 관측이 엇갈린다. 이한영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치외교 분야의 경우 극단적으로 막장까지 갔을 때 겪을 파국이 전쟁”이라며 “파국의 상황이 (경제 분야보다) 훨씬 심각하기 때문에 양측이 협상에 더 조심스럽게 임하게 되고, 그래서 더 좋은 협상을 이끌어낼 가능성도 높아진다.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는 사업을 할 때보다 덜 저돌적일 수밖에 없었을 테고, 또 이번 회담은 순차게임이라 아직은 결론 내리기가 이르다”고 말했다. 안세영 성균관대 국제협상전공 특임교수는 “트럼프가 마치 양보처럼 보이는 통 큰 협상전략을 쓴 것으로 본다”며 “북한이 예전처럼 잔재주를 부리면 반격 전략으로 거칠게 나올 것”이라고 했다. 실제 김정은 일가가 과거처럼 미국을 상대로 장난치지 못할 것이란 관측도 있다. 이른바 참수작전 등으로 자신을 제거할 수 있는 미국에 대해 갖는 불안감이 상상 이상이라는 것. 그러나 종신 집권자이자 국가 오너인 김 위원장으로선 임기가 정해져 있는 트럼프 대통령에 비해 자기 나름대로의 장기적인 스케줄을 갖고 협상에 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불리하지 않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이진구 sys1201@donga.com·이설 기자}

《 북한은 신뢰할 수 없고, 뒤통수만 치며, 돈을 더 얻기 위해 떼를 쓰는 집단이라고 여기는 시각이 있다. 그들은 역대 정부의 남북 정상회담은 ‘좌파정권이 자신들의 필요성 때문에 돈을 주고 산 행위’이며, ‘북한은 대화가 아니라, 항복시켜야 하는 상대’라고 여긴다. 수십 년간 북한이 보인 행동을 생각하면 이런 시각을 잘못이라고 탓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만약 그렇다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믿지 못할 집단과의 대화란 무의미하니 군비 증강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까. 이명박(MB) 정부에서 남북 정상회담을 추진했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현 한경대 총장)은 “보수도 이제 북한에 대해 반공 프레임으로만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설사 제자리 뛰기가 되고, 쳇바퀴를 돌더라도 (북한과의) 대화는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 ―남북 정상회담이 보통 ‘우리가 필요해서 요청하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MB 정부 때는 북한이 먼저 요청했다. “2009년 8월 20일 김기남 노동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등 북한 조문사절이 김대중 전 대통령 빈소를 방문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비공개로 밤늦게 나한테 연락이 왔는데 이 대통령에게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으니 청와대 방문을 연결시켜달라고 했다. 다음 날 바로 대통령 주재 조찬회의가 열렸는데 구두메시지가 뭔지와 면담을 허용할지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다.”(그는 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이었다.) ―구두메시지란 게 뭔가. “그들만의 독특한 형식인데… 아무도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나중에 청와대 방문 때 보니 ‘이것은 김정일 국방위원장께서 직접 전하는 말씀입니다’ 이러면서 적어온 것을 읽는 형식이었다. 남북 정상 간의 대화가 필요하다는 내용이었다.” ―대통령이 조문단을 굳이 만나지 않을 이유가 있었나.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누구는 북한의 생색내기에 이용당하니 안 된다고 하고, 또 누구는 미국과 사전 협의 없이 만나면 안 된다고 하고….” (미국 허락을 받고 만나야 한다는 뜻인가?) “그렇다. 그러다가 조문단에 하루만 더 기다려 달라고 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 설득을 내가 하게 됐다. 조문단이 하루 더 머무르려면 반드시 김 위원장의 허락을 얻어야 하니까, 머물면 의지가 있는 것이 확실하다고 생각한 거다.” ―쉬운 설득은 아니었을 것 같은데…. “그래서 김양건 통전부장과 본격적인 회담을 하기 전에 ‘김 위원장이 혹시 나를 아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안다’고 하더라.” (어떻게 아나? 간첩인가?) “하하하. 북한과 사업을 하는 조선족 사업가가 있는데 과거에 ‘김 위원장에게 선물을 전달할 수 있느냐’고 했더니 ‘할 수 있다’고 하더라. 그래서 그편에 한국영화 CD 10개를 보냈는데 그 얘기를 했다. ‘우리 장군님께 영화 보내주지 않았냐’고…. 그래서 신뢰가 있다고 생각하고 본론을 얘기했다. 그랬더니 ‘알겠다’며 통신 담당 여군 장교를 부르더라. 하얀 장교복을 입은….” (꽤 늦은 시간이었을 텐데….) “안 그래도 너무 늦어서 괜찮겠냐고 했더니 ‘우리 장군님은 새벽까지 안 주무신다’고 하더라.” (영화광이니까….) “하하하, 답이 바로 올 거라고 했다. 진짜 새벽 1시가 넘은 것 같은데… 답이 왔다. 허락이 떨어졌다고…. 그때부터 진짜 더 마셨다.” ―당시 정상회담이 성사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된 데는 정부 내 강경파가 온건파를 이겼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북한은 대화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힘들게 해서 무릎을 꿇게 해야 한다는 것이지…. 이 라인에서 끊임없이 대통령에게 백악관 분위기가 북한에 대해 강경하다며 정상회담에 부정적인 의견을 냈다.” ―강경파는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이 진정성이 없다고 본 건가. “그렇다. 그런데 조문단이 돌아가고 2, 3주 정도 지나 북측에서 ‘왜 청와대는 장군님의 대화 제의를 무시하느냐’는 말이 간접적으로 들려왔다. 그동안 정부 차원의 아무 행동이 없었던 거다. 그래서 대통령께 알렸더니 그제야 대화에 응할 준비가 돼 있다는 답을 주기로 했다. 그 답을 가지고 상하이에서 다시 김양건 통전부장을 만났다. 싱가포르 회동 전이다.” 당시 임태희-김양건 라인은 2009년 9월 상하이, 10월 싱가포르 회동을 통해 △정상회담 개최 △국군포로 및 납북자 고향 방문 △한반도 비핵화 △이산가족 상봉 및 고향 방문 △인도적 지원 △국군유해 발굴 등 6개 항목에서 의견 접근을 봤다. ―그동안의 북한을 보면 강경파 시각이 완전히 틀린 것 같지는 않은데…. “강경파는 입장도 간단명료하고 말하기도 쉽다. 하지만 그러면 도대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겠다는 건가. 무릎 꿇을 때까지 기다리거나, 전쟁밖에 없지 않나. 그럴 수는 없지 않나. 우리 현실, 특히 보수 정부에서 대화파는 아주 힘들다. 북한과 적극적으로 대화를 하자고 하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또는 북한을 잘 모르는 사람으로 몰린다. 그 와중에 북한이 도발을 하면 정말 곤란해지고…. 일이 어떻게 되는지와는 별개로 강경한 사람이 마치 원칙과 소신이 있는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도 있고….” ―왜 북한이 먼저 제안하고, 추진도 더 적극적이었을까. “이명박 정부 초기였기 때문에 힘이 있을 때 김 위원장이 뭔가 틀을 잡아 놓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다. 당시 김 위원장 수행 의사들이 8명에서 13명으로 늘었다는 말도 있었다. 병이 위중하다는 뜻이지…. 정상회담 장소로 평양을 제안해서 ‘이번에는 김 위원장이 (서울에) 올 차례 아니냐’고 했더니 ‘건강이 그렇게 좋지 않다’고 했다. 그런 요인이 겹친 것 같다.” ―남북 정상회담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게 ‘돈을 주고 정상회담을 산다’는 시각이다. “그래서 북측과 프라이카우프(Freikauf) 방식으로 정상회담 조건을 이행하기로 협의했다. 북한이 요구하는 것을 미리 다 주는 게 아니라, 정상 간에 합의한 내용이 실행될 때마다 단계적으로 지원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산가족이 상봉하면 얼마, 고향 방문을 하면 얼마를 지원하는 식이다.”(프라이카우프는 ‘자유를 산다’는 의미의 독일어. 서독이 동독의 정치범을 서독으로 데려오기 위해 현금과 현물을 동독에 제공한 방식을 말한다. 1963∼1989년 3만3755명을 데려오고 대신 34억6400만 마르크에 해당하는 현물을 지불했다.) ―정상회담 전에 돈을 주면 사는 것이고, 후에 주면 아닌가. “강경파는 그렇게 생각한다. 이렇게 주나 저렇게 주나 마찬가지라고. 그래서 내가 그랬다. 우리가 정상회담에서 요구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북한도 원하는 것이 있다. 우리 요구를 북한이 실행하면, 우리도 북한이 원하는 것을 주는 게 당연하지 않나. 프라이카우프 방식까지 돈 주고 사는 것으로 간주하면 북한보고 아무 조건 없이 우리가 원하는 걸 다 하라고 하는 것인데 그건 불가능하다고.” (그랬더니 뭐라 하던가?) “국정원 말은 북한 경제가 절박할 정도로 안 좋으니 3개월만 압박하면 무릎 꿇고 나온다는 거다. 되긴… 6개월이 지나도, 그 이후도 아무 것도 안 됐는데…. 강경파는 북한을 ‘믿을 수 없고, 뒤통수만 치고, 뗑깡이나 부리는 집단’으로 치부하는데 그런 시각으로는 남북관계가 발전할 수 없다.” ―솔직히 그런 면이 있지 않나. “강경파는 북한이 늘 우리에게 더 얻어내기 위해 떼를 쓴다고 생각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그런 잘못된 버릇을 들였다는 것이지. 하지만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앞서 말한 대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있는 것처럼 북한도 원하는 것이 있다. 그걸 주고받는 건 뒷거래나 이면 합의가 아니다. 그런데 북한이 약속을 지키는 것 같으면 우리를 이용한다고 보고, 깨면 ‘그것 봐라’ 한다. 철저하게 상대를 불신하면서 어떻게 남북관계가 진전되겠나. 당시에도 북한은 정상회담 대가를 요구한 적이 없다. 북한이 약속을 이행한 뒤에 우리가 지원해주는 것조차 ‘북한의 외화벌이’나 ‘우리가 삥 뜯기는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걸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들 때문에 남북관계가 잘 안된다.” ―성사되지 않았더라도 정상회담 추진 과정은 엄청난 가치가 있는 경험이다. 혹시 박근혜 정부에 그런 노하우를 알려줬나.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당 공동선대위원장들과 함께 저녁을 했다. 그 자리에서 남북 정상회담 추진과정을 담은 서류를 직접 줬다. A4지 3장인데 비핵화 방안 등 김양건 통전부장과 논의된 얘기였다. 비핵화 문제는 북한이 당시 상황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불가역적 비핵화 조치를 취한 뒤 6자회담에 복귀하는 걸로 의견접근을 봤다. 그리고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안이니 혹시 보충 설명이 필요하면 연락을 달라고 했는데 답이 없었다. 문재인 정부에는 루트가 없어 못 했다.” ―당시 상황에서 한 단계 더 진전된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가 뭔가. “가장 불가역적인 비핵화 조치는 플루토늄을 추출하지 못하게 핵 연료봉 저장소를 시멘트로 봉해서 묻어버리는 거다. 그래서 김 통전부장에게 ‘냉각탑 파괴 같은 쇼 말고 핵 연료봉을 폐기하는 건 어떠냐’고 했더니 ‘그건 다시 논의해봅시다’라고 하더라.” ―자유한국당은 남북 정상회담은 물론, 북-미 정상회담도 “트럼프 대통령이 외교도 장사로 여긴다”며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다. “아직도 반공보수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해서…. 공화당 출신의 닉슨 대통령이 미중 수교를 이뤘듯이 오해받을 우려가 없기 때문에 보수는 공산권과의 문제를 풀 때 강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솔직히 (왜 정상회담이 필요한지에 대한) 역사 인식도 부족하고…, 언제까지 옛날처럼 ‘때려잡자 김일성, 무찌르자 공산당’ 노래만 부를 것인가. 그런 시각이면 나도 친북좌파인가?”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광우병이요? 맛있기만 하네요. 싸고….” 17일 저녁 서울 종로 C 미국산 수입육 직판장. 미국산 쇠고기를 파는 이곳은 이 근방에서는 싸고 질 좋은 고깃집으로 소문이 난 곳이다. 이날도 가게 안은 손님들이 굽는 고기 연기로 자욱했다. 이 음식점이 인기인 것은 최상급 미국산 쇠고기를 시내 한우 음식점의 3분의 1 가격으로 팔기 때문. 인근 한우 음식점들이 생갈비 1인분(120∼150g)을 3만8000∼4만2000원 정도에 파는 것에 비하면 이곳은 진꽃살 1인분(180g)은 1만9000원, 갈비본살 1인분(180g)은 1만6000원에 팔고 있다. 등심은 1인분에 1만4000원이다. 친구들과 회식을 하러온 김태윤 씨(49)는 “지금 광우병 걱정 때문에 미국산 쇠고기 안 먹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했다.○ 10년 전 이맘때… 꼭 10년 전인 2008년 4∼7월 한국은 광우병 괴담으로 온 나라가 미증유의 파동을 겪었다. 당시 시민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대한상공회의소와 대한의사협회가 미국산 쇠고기 시식회를 갖기도 했다. 당시 행사를 주관했던 한 관계자의 후일담. “식당 섭외가 골치였다. 시식회를 한 게 알려지면 식당 문을 닫아야 할 수 있으니 그 비용까지 담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결국 일반 식당을 못 구하고 한 2주일 만에 수입육 직영점에서 가까스로 행사를 열 수 있었다. 격세지감이다.” 광우병 사태의 시작은 2003년 12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미국 워싱턴주에서 소해면상뇌증(광우병) 의심 사례가 발견되자 우리 정부가 수입을 중단한 것. 노무현 정부 때인 2006년 ‘30개월 미만 소의 뼈를 제거한 살코기’만 허용키로 하고 수입을 재개했으나 검역 과정에서 뼛조각이 발견되면서 전량 반송되는 일이 수차례 반복됐고 한미 간 무역 마찰이 빚어졌다. 미국의 압박은 거셌다. 2006년 12월 3일(현지 시간) 미국 몬태나주 빅스카이시의 한 레스토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놓고 5차 협상을 벌이기 위해 온 양국 대표단을 초청해 식사를 대접하는 자리에서 맥스 보커스 당시 미국 상원의원은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은 뒤 미리 연습한 한국말로 “맛있습니다”를 다섯 차례나 외쳤다. 그는 이어 “미국산 쇠고기는 뼈가 있든 없든 안전하다. 한미 FTA가 원만하게 타결되려면 한국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장벽을 제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에서 대표적인 ‘비프벨트(쇠고기 생산지)’로 통하는 몬태나주 출신의 보커스 의원이 한국 정부와 취재단 앞에서 일종의 ‘시위’를 벌인 것이었다. 2007년 10월, 노무현 정부의 임기가 5개월 정도 남은 시점에서 우리 측은 ‘모든 종류의 광우병 특정위험물질과 내장, 꼬리 등의 부산물은 받을 수 없고, 30개월 미만이라는 연령제한 규정도 유지하겠다’고 요구했으나 미국 측이 받아들이지 않아 협상이 종료됐다. 이듬해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채 두 달이 지나지 않은 2008년 4월 18일, 새 정부는 한미 쇠고기 수입 협상 타결을 전격 발표했다. 1단계로 30개월 미만의 뼈를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허용하고, 2단계로 미국이 동물사료 금지 조치를 강화하면 30개월 이상 쇠고기도 수입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이 조치가 막 출범한 새 정권을 뿌리째 뒤흔들 것이라고는 이 대통령 자신도 몰랐다. 4월 29일 MBC PD수첩은 인간 광우병에 걸린 여성의 죽음 등을 포함한 ‘미국산 쇠고기, 과연 광우병에서 안전한가?’를 방영해 국민 불안감을 최대로 고조시켰다. 5월 1일 배우 김민선 씨(후에 김규리로 개명)는 인터넷에 “광우병이 득실거리는 소를 뼈째로 수입하다니 차라리 청산가리를 입 안에 털어 넣는 편이 낫겠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이런 불안은 시위로 이어졌고, 5월 2일 서울 청계광장에서 첫 번째 대규모 촛불집회가 열렸다. 경찰은 당초 300여 명의 소규모 집회가 될 것으로 예상했으나 실제로는 경찰 추산 1만여 명이 모일 정도로 파장은 심상치 않았다.○ MB, 두 차례 대국민 담화 5월 22일 오전 청와대 춘추관. 이 대통령이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읽어 내려갔다. “쇠고기 수입으로 어려움을 겪을 축산농가 지원 대책 마련에 열중하던 정부로서는 소위 ‘광우병 괴담’이 확산되는 데 대해 솔직히 당혹스러웠습니다.” 하지만 표정은 굳어 있었다. 8분여간 준비한 원고를 읽기만 한 채 질문도 받지 않고 퇴장했다. 약 한 달 뒤인 그해 6월 19일 당시 이 대통령은 다시 특별기자회견을 위해 춘추관에 섰다. 이번엔 ‘뼈저린 반성’이라는 표현이 들어갔다. “시위대의 함성과 함께 제가 오래전부터 즐겨 부르던 ‘아침이슬’ 노랫소리도 들려왔다.” 임태희 국립 한경대 총장(당시 한나라당 정책위의장)은 “당시는 새 정부가 출범한 직후라 청와대도 제대로 안정되지 않았고, 당도 막 18대 총선(2008년 4월 9일)을 치른 뒤라 사실상 지도부 공백 상태여서 제대로 된 대응을 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이 대통령이 첫 번째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한 5월 22일에서야 홍준표 원내대표, 임 정책위의장을 선출했다. 당시 청와대에서 근무한 A 씨도 “쇠고기 협상이 체결된 4월 18일은 새 정부가 출범한 지 두 달도 채 되지 않은 시점”이라며 “의욕은 높았지만, 국정 경험은 거의 없었고, 민심을 전달할 여당도 선거 때문에 지도부 공백 상태라 제대로 된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첫 촛불시위 이후 1700여 개 시민단체가 모인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결성되고, ‘72시간 연속 촛불집회’ ‘100만 촛불대행진’에 ‘뇌송송 구멍탁’ 같은 괴담이 난무했지만 정부는 우왕좌왕했다. 광우병의 위험 수준에 대한 과학적 근거와 국제 기준에 대한 정상적 토론은 실종됐다. 여기에 6월 10일 등장한 일명 ‘명박산성’이 붙은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6·10민주화 항쟁 21주년을 맞아 100만 촛불 대행진이 계획되자 경찰이 이날 새벽 서울 세종대로 충무공 동상 앞과 안국로 등 청와대로 갈 수 있는 길목을 컨테이너 박스 60여 개로 차단한 것. 당시 청와대 관계자는 “시위대가 청와대까지 진격하려던 상황이었고, 당시 경찰 정보로는 시위대가 경찰과 물리적 대치 중에 일부러 인명피해를 일으켜 사태를 더 확산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첩보도 있었다”며 “비난을 받기는 하겠지만 시위대와 경찰을 접촉시키지 않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한 당시 어청수 경찰청장이 시위대의 청와대 진출도 막을 겸 컨테이너로 장벽을 치도록 지시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명박산성’은 이후 불통의 상징으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청와대 내에선 ‘재협상’이냐 ‘추가협상’이냐를 놓고 갑론을박했다. 당시 여권 고위관계자의 전언. “협상을 다시 하는 것은 이미 결정됐고, 이것을 재협상으로 부르느냐, 추가협상으로 부르느냐는 문제 때문에 6월 1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김중수 경제수석과 박재완 정무수석은 추가협상을, 이종찬 민정수석과 곽승준 국정기획수석은 어차피 내용적으로 사실상 재협상이니 빨리 인정하고 사태를 진화하자는 의견을 냈다. 결국 MB가 추가협상에 힘을 실어주면서 그렇게 발표됐다. 그리고 광우병 사태는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두 번째 대국민 담화는 이처럼 상황 수습의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는 와중에 나왔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8년 6월 26일 추가협상을 포함한 협상 내용이 관보에 고시되면서 수입이 재개됐다.○ 10년 후 “언제 그런 일이?” 한국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물량은 2016년(15만6000t)보다 13.5% 늘어난 17만7000t으로 외국산 수입 쇠고기 가운데 가장 많았다. 호주산은 전년 대비 4% 줄어든 17만3000t, 뉴질랜드산은 전년 대비 16.5% 감소한 1만9000t이었다. 미국산 쇠고기는 2001년 쇠고기 수입 자유화 조치 이후 줄곧 1위를 달렸지만 2003년 광우병 의심 사례 발생으로 수입이 전면 금지됐고, 2006년 ‘30개월 미만, 뼈를 제거한 고기’라는 조건으로 수입이 재개됐지만, 뼛조각이 발견돼 전량 반송되는 일이 반복된 데다 광우병 파동의 후폭풍으로 1위 자리를 되찾지 못했다. 그 자리는 2004년 이후 호주산이 지켜왔는데 14년 만에 1위가 바뀐 것이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정인교 인하대 대외부총장은 “국내 소비자들이 막연히 갖고 있던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안전성 우려가 사실상 사라진 셈”이라고 설명했다. 광우병 파동 이후 최근 10년 새 전 세계적으로 미국산 쇠고기로 인한 피해 사례가 없어 안전한 쇠고기라는 인식이 확산됐다는 것. 그는 “당시 광우병 문제를 내세워 국가적인 혼란을 부추겼던 사람들이 현재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는 것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할 문제”라고 덧붙였다.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도 미국산 쇠고기의 부활에 한몫했다는 분석이다. 한미 FTA에 따른 관세 인하 효과 덕분이다.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 관세율은 2015년 29.3%에서 올해 21.3%로 매년 낮아지고 있다. 호주나 뉴질랜드산의 관세율도 낮아지고 있지만 미국산에는 못 미친다. 호주의 관세율은 지난해 29.3%, 뉴질랜드는 32.0%였다. 올해는 각각 26.6%, 29.3%다. 이에 따라 지난해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총 12억2000만 달러(약 1조3000억 원)로 일본(18억9000만 달러)에 이어 세계 2위였다. 지난해 미국 쇠고기 수출총액(72억6900만 달러) 중 한국이 17%를 차지했다.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액은 2015년 이전까지 3∼5위권에 머물렀다. 하지만 2016년 멕시코를 제치고 2위로 올라선 이후 지난해 수입량이 늘어나면서 2년 연속 2위에 랭크됐다. 당시 시위를 강력히 주도했거나, 미국산 쇠고기의 위험성을 지적했던 이들은 여전히 유사한 입장이다. 광우병국민대책회의 공동상황실장으로 활약했던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2008년 촛불집회로 상대적으로 안전한 쇠고기를 수입하기 때문에 비교적 안전한 것”이라며 “하지만 아직도 100% 안전하다고 보지 않는다. 전 세계적으로 광우병이 발병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지난해 7월 미국에서 비정형 소해면상뇌증(BSE·비정형 광우병)이 발견된 직후 열린 ‘미국 다섯 번째 광우병 발생 사태에 대한 전문가 기자설명회’에서 “(2008년) 당시 촛불의 요구는 ‘무조건 수입금지’가 아니었는데 정부가 이를 매도했다. 30개월 미만을 수입하라는 요구에 ‘미국 사람도 먹는 소를 왜 위험하다고 하느냐’며 잘못된 수사적 대응을 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외교부 출신으로 2006년 농림부로 옮겨 한미 쇠고기 협상 타결을 이끌어낸 민동석 당시 농림수산식품부 농업통상정책관(협상 수석대표)은 지난 10년의 소회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저 조용히 잊혀진 사람으로 지내고 싶다”며 인터뷰를 고사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 외교통상부 2차관을 끝으로 공직에서 은퇴한 뒤 2012~2016년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사무총장을 역임했다.이진구 sys1201@donga.com·송진흡 기자}

《 줄을 타며 행복했지∼ 춤을 추면 신이 났지. 흰 분칠에 빨간 코로∼ 사랑 얘기 들려줬지…. 빼앗긴 들녘에 봄조차 오지 않던 1925년. 그들이 있어 그나마 울고 웃으며 시름을 달랠 수 있었다. “저것이 과연 사람이냐! 귀신이냐! 저 묘기에 박수 한 점 치지 않는 동포는 인정도, 사정도, 피도, 눈물도, 애국심도 없는 것인가!” 박수갈채를 유도하는 사회자의 목소리는 여전히 카랑카랑한데, 그렇게 흘러간 시간이 93년. 컴퓨터 그래픽이면 ‘쥬라기 공원’에서 ‘반지의 제왕’까지 모든 것을 볼 수 있는 시대에, 왜 사람들은 공 굴리고, 줄을 타는 완전 아날로그 공연을 아직도 찾는 것일까. 》 ―실례입니다만, 솔직히 아직까지 있는지 몰랐습니다. “하하하, 문 닫는다, 폐업한다 뭐 그런 뉴스가 종종 났으니까요. 위기도 많았지만 국민들 성원 덕분에 잘 견디고 7년 전부터는 대부도에 자리 잡고 잘하고 있습니다.”(동춘서커스는 1925년 동춘 박동수가 창단한 한국 최초의 서커스단. 올해로 93년 됐으며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이다.) ―많이들 보러 옵니까. “평일은 두 번. 주말은 네 번이 고정이고, 40인 이상 단체는 원하는 시간에 맞춰 공연을 해줍니다. 공연장이 400석인데 주말에는 회당 70∼80%는 찹니다. 경남 김해, 경북 안동 포항 등 전국에서 버스 대절해 보러 오지요.”(대부도 관광하는 김에 보러 오는 건가요?) “아니요. 서커스가 메인이지요. 5월 5∼7일 연휴 때는 완전 매진돼서 아주 애먹었습니다.”(처음엔 과장이 좀 심한 것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인터뷰 도중 실제로 단체 관객이 밀려드는데 400석이 꽉 차 간이의자를 놓고 볼 정도였다.) ―관객이 이렇게 많은데 왜 한때 폐업까지 가게 됐나요. “세계 금융위기가 오고,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A가 발생하면서 약 5개월간 관객이 다 끊겼죠. 더 견딜 수가 없어서 해체 선언을 했는데 그게 알려지면서 ‘동춘을 살리자’는 운동이 일더라고요. 그때가 유인촌 씨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일 땐데 ‘동춘 안 살리면 유인촌을 무인촌으로 만들어버리겠다’는 항의까지 나왔지요. 그래서 용기를 내서 여기저기서 돈을 융통해 김포시민회관에서 마지막 공연을 열었습니다. 그게 그해 12월 24일인데….”(많이 왔습니까?) “아, 눈이 무릎까지 쌓이도록 내리는데… 진짜 망했다 싶었지요. 그런데 공연 한 시간 전부터 새까만 줄이 끝도 없이 이어졌어요. 1200석이 회마다 매진되는데…, 한 달 만에 빚 갚고 살아났지요. 동춘서커스단은 국민 극단이라고 생각해요. 어려울 때마다 국민이 도와줬으니까요. 2003년에도 태풍 매미 때문에 공연장이고 장비고 다 날아가서 망할 뻔했죠. 간신히 경남 진주로 가 엉기성기 천막치고 공연하는데 또 관객이 줄을 잇더라고요. 내가 생각해도 이상해서 손님들에게 물어보니 ‘동춘은 없어지면 안 된다. 우리가 사는 표가 다 기부금이고 후원금이라고 생각해라’라고 하더라고요. 울컥했지요.” ―동춘과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습니까. “요새 말로 하면 연예인이 되고 싶었죠. 사회나 연기 쪽으로…, 노래도 좀 불렀고…. 1963년 입단했는데, 그때는 아∼ 동춘, 정말 대단했습니다. 이봉조 선생이 나발(색소폰)을 불었으니까요. 이주일 남철 남성남 등등…. 그때는 서커스단 15개가 우리나라 대중문화를 이끌었습니다. 코미디언 서영춘 선생도 동춘에서 조명으로 시작했지요.” ―단원이었다가 단장까지 올라간 건가요. “지금이야 기획사가 대주지만 그때는 배우가 되려면 자기 돈이 많이 들었어요. 말 타는 연습 춤추는 연습, 전부 자기 돈으로 해야 했으니까…. 그래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잠시 그만뒀죠. 부산에서 극장 선전부장도 하고 장사를 해 돈을 좀 벌었는데, 1985년인가? 동춘이 어렵다면서 주변에서 인수하라고 권했어요. 동춘이 지방에 가면 사람들이 한 번은 구경 와요. 향수도 있고, 볼거리도 있고…. 내가 보기엔 될 것 같았거든요. 인수하려면 1억 원 정도 필요했는데… 서울 잠실 30평 아파트가 3500만 원 정도 할 때였지요. 반은 주고, 반은 공연하면서 갚는 걸로 하고 인수했지요.” ―대부도에는 언제부터 자리 잡았습니까.(현재 동춘서커스단은 경기 안산시 단원구 대부북동의 임대부지에서 공연하고 있다.) “2011년 3월인데 안산시 공무원들이 찾아왔어요. 지원해 줄 테니 대부도에서 공연을 할 수 있겠느냐고요. 일종의 지역경제 활성화 차원인데…. 그래서 현장답사를 했는데 ‘딱’이다 싶더라고요. 인근에 해수욕장도 있고, 유원지도 있고 식당도 있고…. 그 자체로는 관광객 유입 동력이 없지만 우리 힘으로 관광객을 당기면 시너지 효과가 있겠다 싶은 거지요. 5개월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처음부터 꽉 차더라고요. 300명만 보러 와 봐요. 밥 먹고 회 먹고 몇백만 원은 훌쩍 쓰지요. 밥만 먹나요? 잠도 자는데….” ―단원이 50명 정도라는데 모집은 어떻게 합니까. “한국인은 10명 정도고 나머지는 중국인입니다. 중국에는 시립서커스단이 많은데 시와 계약 맺고 데려오죠. 안타까운 게 외국은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도, 중국 베이징에서도 관광 산업에 서커스를 가장 많이 활용하거든요. 그런데 우리는 2008년 서커스 활성화가 우리나라 관광산업 10대 과제에 들어가 있었는데 정부 바뀌니까 또 흐지부지되더라고요. 너무 안타까워서 뛰어내릴 각오로 담당 공무원을 찾아가 항의했더니 ‘세가 없어서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연극협회도 국악협회도 나름의 세가 있는데 우리는 곡예협회라 해봤자 100명도 안 되니까….” ―실례입니다만 서커스를 하면 수입이 좀 됩니까. “줄 타는 일류 한국인 단원을 쓰려면 한 달에 1000만 원에서 1500만 원 정도 줘야 해요. 얘들은 한 번 외부 공연 나가면 1회에 300만 원 받지요.”(그렇게 많이 받나요?) “요새는 지역 축제가 많으니까요. 한국인 단원으로 다 쓰면 운영이 힘드니까 그래서 중국인을 쓰는 거고…. 중국인 단원은 200만∼300만 원이면 되지요. 그래도 중국에서는 큰돈이에요.” ―볼쇼이나 태양의 서커스와 비교하면 동춘은 어느 정도 수준입니까.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가 한국에 왔을 때 1회 공연에 1억2000만 원 받았어요. 우리한테 그 10분의 1만 써주면, 국내 연출가 PD 써서 그보다 훨씬 잘 만들 수 있어요. 돈이 문제지…. 조명이나 3D(3차원)는 우리가 훨씬 앞서고요.” ―서커스 하면 동물 쇼인데… 안 보입니다. “하나도 안 해요. 동물보호법에 걸리기도 하고….”(걸리다니요?) “동물학대니까요. 동물 서커스는 배고픔과 매로 가르칠 수밖에 없어요. 하지 말라는 걸 굳이 할 필요도 없고, 또 이제는 동물 서커스가 별로 효과가 없어요. 동물원이 많아져서…. 태양의 서커스도 개편하면서 동물 쇼를 다 없앴는데 그래도 지금 연 매출이 1조2000억 원 이상 나오죠.”(그 많은 동물은 다 어디 갔습니까?) “원숭이처럼 작은 건 기증하거나 주고, 코끼리 호랑이같이 큰 건 죽어서 박제해 내가 가지고 있지요.” ―그래도 운영이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할인 혜택이 엄청 큽니다.(어른은 2만5000원이지만 예약하면 1만 원 정도 깎아준다. 경로, 장애인, 가족동반도 마찬가지다) “보통 가족 단위로 많이 보러 옵니다. 3대가 함께 오기도 하는데 다 받으면 표 값만 20만 원 가까이 되니까 너무 부담이 되지요. 그리고 우리가 사회적기업이라 뭔가 사회공헌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사회적기업이라고요?) “2009년 어려워서 문 닫을 뻔하다가 살아났다고 했잖아요? 마침 그때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이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을 만들었는데 예비 사회적기업에 선정돼 단원 10명의 월급을 첫해는 100%, 두 번째 해는 80%, 세 번째 해는 60%, 네 번째 해는 40%를 받았어요. 참 고맙지요. 지금은 지원을 안 받지만 그게 어딥니까. 그래서 빚도 갚을 겸 우리가 문화 나눔으로 한 해에 10곳 정도 소외계층이나 지역을 찾아 무료 공연을 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남북 정상회담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양교예단을 남쪽에 보낼 수 있다’고 말했다”고 밝혔습니다. 최근 화해 무드를 타고 평양교예단과 합동공연을 추진할 생각은 없습니까. “내가 과거에 평양교예단 단장들을 중국에서 자주 만났어요. 중국에는 서커스대회가 해마다 열리는데 거기서 보는 거죠. 그 사람들이 10개월 전에만 얘기해주면 올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북한의 대외경제협력을 담당하는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고위층도 만났지요. 문제는 이게 돈이 많이 들어요. 일종의 리베이트가…. 나는 그런 돈이 없어서 당시에 그걸 현대아산에 넘겼지요. 평양교예단도 동춘을 잘 알아요. 요즘 남북 분위기가 좋은데 합동공연 하면 좋지요. 해보고 싶기도 하고….” ―가장 힘든 게 무엇입니까. “솔직히 지금은 힘든 건 없고 내가 그만두기 전에 서커스 아카데미하고 상설극장을 하나 만들어야 하는데 그걸 못해 안타깝죠. 어느 엔터테인먼트 회사에서 동춘을 흡수하려고 하는데, 동춘의 브랜드 가치가 100억 원이래요. 그만한 상품성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힘이 없어서…. 누가 좀 받쳐줬으면 싶지요.”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