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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의 정보라 작가(46)에게 메시지가 왔다. 26일(현지 시간) 영국에서 열리는 부커상 시상식에 참석하기 위해 런던으로 떠난다는 안부 인사였다. 그는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설명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한국문학 열심히 홍보하고 오겠습니다.” ‘저주토끼’의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은 불발됐지만 최종 후보에 오른 후 정보라의 작품세계는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평가받았다. 그는 미국 예일대에서 러시아 동유럽 지역학 석사, 인디애나대에서 슬라브 문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러시아 문학을 번역하는 그의 삶이 현실과 환상이 뒤섞인 그의 ‘마술적 사실주의’에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세계에 한국문학의 영향이 적었다고 할 수는 없다. 그는 중고등학생 때 이상문학상 수상 작품을 탐독하며 자랐다. 그에게 가장 많은 영향을 미친 작가는 한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거장인 고 박완서(1931∼2011)다. 정보라는 박완서의 작품을 읽으며 섬세한 감정을 그리는 법을 배웠다.(공교롭게도 올해 ‘저주토끼’와 함께 부커상 1차 후보에 오른 연작소설집 ‘대도시의 사랑법’의 박상영 작가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작가도 박완서다. 박완서의 작품을 읽고 자란 한국 작가들이 연달아 영국에서 인정받은 셈이다.) 공상과학(SF) 장편소설 ‘붉은 칼’ 역시 정보라의 작품세계가 한국문학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점을 증명한다. 이 책은 1654년, 1658년 등 두 차례 일어난 청나라·조선 연합군과 러시아군의 충돌인 나선정벌에 관한 기록을 모티브로 삼았다. 2차 나선정벌 당시 조선군을 이끈 지휘관 신유(申瀏·1619∼1680)는 당시 상황을 일기인 북정록(北征錄)으로 썼다. 신유의 후손들은 사실 관계에 집중한 북정록에 허구적 상상력을 덧붙여 여러 작품을 남겼다. 특히 ‘북정일기’는 당시 빈약했던 조선의 병력규모와 청나라에 굴욕적이던 조선의 상황을 마치 소설처럼 생생하게 재구성했다. 정보라는 이 기록을 찾아 읽다가 처음 러시아군을 만났을 때 조선 군인들의 기분이 어땠을까 상상하며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실제로 소설엔 당시 조선 군인들이 느꼈을 법한 여러 감정이 녹아 있다. 매번 강대국에 휘둘리는 약소국 국민의 고통, 정체조차 모르는 적을 만났을 때의 두려움, 억압받아온 역사를 바꾸고 싶은 욕망…. 소설은 겉으론 외계인의 행성을 정벌하기 위해 지배계층이 벌인 전쟁에 끌려 간 피지배계층의 투쟁기를 담았지만, 안으론 조선시대 백성의 염원을 담은 ‘판타지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는 셈이다. ‘저주토끼’가 유명해지면서 이 책 역시 영국에서 출간될 계획이다. 이번에도 번역은 ‘저주토끼’의 허정범(안톤 허·41) 번역가의 손을 거친다. 조선인의 마음이 담긴 SF 장편소설에 대한 해외 독자들의 평가는 어떨지 궁금하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6·1지방선거를 앞두고 대필 시장이 들썩이고 있다. 출판기념회용 자서전 집필뿐 아니라 유튜브에 올릴 홍보 글을 위해 대필 작가를 찾는 정치인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짜깁기 집필 의뢰, 원고료 떼먹기가 빈번한 대필 세계를 들여다봤다.》자서전 대필 시장, 선거 앞 후끈 “요즘 사람들 자서전은 안 읽어도 유튜브는 보지 않나요. 유튜브 출연용 대본도 써줄 수 있습니까?” 최근 한 대필 작가는 올해 6·1지방선거에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는 A 씨에게 이런 제안을 받았다. 앞서 그는 A 씨가 과거 지방선거에 출마했을 때 자서전을 써준 적이 있다. 이번에는 선거에 앞서 출연하는 유튜브에서 읽을 소개 글을 대신 써달라고 의뢰한 것. 그는 “대본 집필은 과거 자서전 작업의 연장선에 있다. A 씨의 인생 궤적을 잘 알고 있는 만큼 사흘 만에 유튜브 대본을 써주고 100만 원을 받았다”고 말했다.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자서전이나 유튜브·방송 대본을 대필 작가들에게 의뢰하는 후보자들이 적지 않다. 정치인 기업인 연예인 등 대필 작가를 통해 자서전을 쓰던 기존 수요에, 유튜브를 비롯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홍보 글을 의뢰하기 위해 대필 작가를 찾는 이들이 늘면서 대필 작가 수는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한국대필작가협회에 따르면 회원 수는 2017년 154명에서 지난해 524명으로 3배 이상으로 늘었다. 6·1지방선거로 대필 작가를 찾는 발걸음은 더 분주해지고 있다.○ 눈길 끄는 글 찾아라 지방선거에 출마하는 후보자들이 대필 작가들을 찾는 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이력을 간결하게 정리해줄 보좌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비서관을 거느린 유력 정치인이나 홍보팀의 도움을 받는 전문 경영인과 다른 상황에 처한 지방선거 후보자들의 수요가 빚은 현상”이라고 설명했다. 전문직 출신 후보자들도 지방선거를 앞두고 유튜브 대본 대필을 맡길 작가를 찾고 있다. 유튜브에 출마 의사를 밝히지 않고 직업 소개를 앞세운 ‘셀프 홍보’에 나서는 것. 의사 출신이 건강 채널, 변호사 출신이 법률 해설 채널에 출연해 자신을 알리는 식이다. 후보자들이 직접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는 경우도 있지만 호응은 적은 편이다. 한 작가는 “자신의 이력만 나열해 홍보하려는 후보자의 입맛에 맞춰 대본을 쓰면 그 유튜브는 실패한다. 최대한 후보자의 직업을 기반으로 정보를 전달하는 형식으로 가야 성공한다”고 말했다. 출마 경험이 있는 후보자들은 기존 자서전을 써준 작가에게 유튜브 대본 대필을 요청한다. 후보자 이력이나 삶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기에 대본 집필에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다. 금액은 1회당 100만∼200만 원. 정치에 처음 발을 들인 후보자들은 유튜브 대본과 자서전 집필을 동시에 의뢰한다. 이 경우 추가 비용이 발생한다. 다른 대필 작가는 “미디어 환경이 변화하면서 유튜브를 주된 홍보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자서전을 함께 내놓으려는 수요가 많다. 자서전이 있어야 자금을 확보할 수 있는 ‘출판기념회’를 열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속성 짜깁기 집필 의뢰에 한숨만“출판기념회까지 시간이 촉박한데 보름 만에 자서전을 낼 수는 없겠습니까?” 올해 지방선거에 구청장 후보로 출마하는 B 씨는 2월쯤 대필 작가에게 급히 자서전 출간을 부탁했다. 공직선거법상 선거일 90일 전(올해의 경우 3월 3일)부터 출판기념회가 금지되는 데 따른 것. 그 전에 출판기념회를 열어야 선거자금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마음만 먹으면 보름이 아니라 일주일 안에라도 짜깁기해서 책을 만들 수 있지만 자존심이 상했다. 모금에 쓰려고 자기 삶을 담은 자서전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쓰려는 모습을 보고 한숨이 나와 제안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출판계에서는 6·1지방선거를 앞두고 쏟아진 후보자 자서전 상당수가 대필 작가가 쓰거나 윤문을 해준 것들로 보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출판기념회를 의식해 지방선거일 90일 전 책을 내려고 작가를 급히 찾는 후보자들이 많다. 짧은 시간에 책을 만들다 보니 만듦새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종훈 정치평론가는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후보자 자서전의 경우 섣불리 냈다가 내용이 문제가 돼 역풍을 맞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지방선거 후보자 자서전은 그럴 위험이 낮아 완성도도 떨어지기 마련”이라고 했다. 통상 정치인들은 자기 인생을 화려하게 포장해 달라고 작가에게 요구한다. 보통 자신이 쓴 초고를 작가에게 먼저 건넨다. 이런 글은 이력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보다 미사여구로 가득 찬 게 대부분이다. 공무원 출신 후보자는 ‘국민을 위해 살아왔다’는 문구를, 법조인 출신 후보자는 ‘헌법의 가치를 바로 세우고 싶다’는 표현을 반복해서 많이 쓴다. 어린 시절 고생한 이야기나 자식 자랑 위주로 구성한 경우도 있다. 작가들은 정치인의 이런 초고를 완결성 있게 바꾸는 일을 한다. 시간 순서에 따라 이력을 정리하고, 지방선거 특색에 맞게 출마 지역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이 담긴 에피소드를 적당히 추가한다. 선거 공약과 맞닿아 있는 후보자의 철학을 담는 건 기본. 경력 20년차 대필 작가는 “후보자의 ‘뻥튀기’를 없애는 게 대필의 주된 업무다. 간결한 자서전일수록 후보자는 불만족하고, 주변 사람들은 만족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자서전 집필 기간은 의뢰부터 출간까지 보통 3∼6개월가량 걸린다. 금액은 작가 경력과 후보자의 재력에 따라 600만∼2000만 원까지 천차만별이다. 주요 언론사의 신춘문예 당선자 출신이나 경력이 많은 작가일수록 몸값은 올라간다. 다만 지방선거 후보자의 경우 1억 원가량을 주는 대통령 후보나 수천만 원대의 국회의원 후보 자서전에 비해 금액이 낮다. 정해진 가격이 없는 만큼 흥정도 이뤄진다. 선거마다 수요 공급이 변해 가격 변동도 심하다.○ 저자명 감추다 보니 ‘원고료 떼먹기’ 빈번올해 시장 선거에 나서는 C 씨는 지난해 12월 자서전 대필을 의뢰했다. 출마 사실을 숨긴 채 “공무원으로 오래 일한 뒤 은퇴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내 인생에 대해 설명하고 싶다”고만 했다. 작가는 600만 원에 자서전을 써줬다. 얼마 뒤 C 씨는 이 책으로 출판기념회를 열고 6·1지방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작가는 “일부 후보들은 자서전 집필 비용을 낮추기 위해 출마 사실을 일부러 숨긴다”고 했다. 책을 출간했지만 대필 비용을 제때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대필이 알음알음 소개로 이뤄지고 책에 공저자로 명시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낙선 후 대필 비용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소송이 벌어지기도 한다. 최근에는 자서전 전문 출판사들도 여럿 생기고 있다. 여러 작가들이 함께 자서전 집필에 참여하기도 한다. 위드에스마케팅은 작가들이 함께 목차를 기획하고 인터뷰한 뒤 원고를 쓴다. 향후 법적 분쟁을 막기 위해 출판 계약서는 세세히 쓴다. ‘목차 기획, 전화 및 대면 인터뷰를 거쳐 200쪽의 자서전을 만든다’는 문구를 계약서에 명시하는 식이다. 대필 및 인쇄 금액도 표준화되고 있다. 예를 들어 후보자에게 자료를 받아 책을 쓰면 600만 원, 작가가 후보자 인터뷰와 자료 찾기까지 병행하면 900만 원을 받는다. 해외에서는 정치인이 자서전을 출간할 때 대필 작가를 공저자로 명시하는 경우가 많다. 임재균 한국대필작가협회장은 “일부 대필 작가들은 자서전 출간 후 1년이 지나도록 원고료를 받지 못하고 있다. 대필 작가를 공동저자로 명시하고 계약서를 항목별로 구체적으로 작성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최근 70대 재미교포 A 씨는 국내 대필 작가를 통해 자서전을 준비하고 있다. A 씨는 10대 후반 미국으로 떠난 이민 1세대. 음식 노점상, 차량 정비소, 꽃가게를 하며 온갖 고생을 했다. 이제는 50억 원대 자산가가 됐고 후손에게 자수성가한 자신의 인생을 알려주고 싶었다. 그는 “내가 세상을 떠나면 손자, 손녀 누구도 이민 1세대의 고생을 모르지 않겠느냐”며 국내 작가에게 자서전 집필을 맡겼다. A 씨의 거주지는 미국 뉴욕. 강원도에 머물고 있는 대필 작가와 1만1000km나 떨어져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두 나라를 오가는 일은 아직 만만치 않다. 결국 두 사람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영상통화로 인터뷰를 진행했다. 원고는 e메일로 주고받았다. A 씨의 자서전을 쓰고 있는 작가는 “비용은 3개월 집필에 1200만 원이다. 교통비도 들지 않고 집필에 장애 요소가 될 만한 것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대필 업계가 국제화되고 있다. 국내 작가가 해외 교포들의 자서전을 쓰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 의뢰자들은 이른바 성공한 이민 1세대다.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성공한 80대 재미교포 B 씨는 최근 모교에 수억 원을 기부했다. 그는 고생 끝에 100억 원대 자산가가 됐지만 자녀가 없다. 궁핍한 시절 한국에서 억척스럽게 공부한 한을 풀기 위해 그는 거액을 모교에 쾌척했다. 이 대학 출판부는 B 씨의 기부에 감사를 표하기 위해 자서전을 내기로 했다. 출판부가 국내 작가에게 연락해 자서전 집필을 맡겼다. 이 작업을 맡은 작가는 “코로나19로 강연, 행사 등 사회적 교류가 적어지다 보니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하는 교포 자산가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이런 추세는 미국이나 유럽에 비해 국내 대필 비용이 절반에 불과한 것도 한몫했다. 영미권에서는 이른바 ‘고스트 라이터’로 통하는 대필 업무가 양성화돼 있다. 시장 가격도 일정하게 형성돼 있다. 작가들의 수입도 변동이 적은 편이다. 국내 출판 수준이 세계적으로 뛰어나 집필뿐 아니라 출판까지 맡긴 뒤 항공편으로 책을 받아 보는 교포들도 있다. 반대 방향의 대필도 성행하고 있다. 국내 직장인들이 온라인을 통해 해외 작가들에게 영문으로 글을 써 달라고 의뢰하고 있는 것. 영문으로 논문이나 보고서를 작성해야 하는 직장인들이 많아서다. 해외 대필 작가는 케냐, 파키스탄, 말레이시아 등 영어에 익숙한 다양한 국적의 대학 졸업자들이다. 이들은 “어떤 형태의 글이든 대필해 준다”고 홍보한다. 임재균 한국대필작가협회장은 “해외 대필 작가가 원고료를 받은 후 연락이 두절되는 사건이 종종 벌어지는 만큼 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해방됐다는 느낌과 안도감이 아주 큽니다. 만약 수상했다면 언론 행사를 다녀야 했을 텐데 이제야 마음 놓고 런던 여행을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6일(현지시간) 영국 런던의 이벤트홀 원메릴본에서 개최된 2022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시상식. 단편소설집 ‘저주토끼’(Cursed Bunny·아작)의 정보라 작가(46)는 최종 수상자가 발표된 직후 이렇게 말했다. 올해 인터내셔널 부문 수상작엔 지탄잘리 슈리(인도)의 ‘모래의 무덤’(Tomb of Sand)이 선정됐다. ‘저주토끼’는 최종 후보까지 올랐지만 고배를 마셨다. 그는 “지탄잘리 슈리 작가가 수상소감을 말하면서 ‘부커야 부커야 우리 중에 누가 제일 잘났니?’가 아니라고 딱 집어 말씀해 주셔서 굉장히 감사했다”며 “지탄잘리 슈리 작가는 현자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종 후보자들이 다들 국가대표가 된 듯한 압박감을 느낀 것 같다. 당장 원고 마감이 줄줄이 예정돼 있어서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는 데 안도했다”고 했다. 그는 “모든 문학과 예술은 포부를 갖지 않을 때에 가장 많은 성취를 이룬다고 생각한다. 상을 타거나 독자들에게 사랑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믿는 가치와 진실을 전달하기 위해서 글을 쓸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저주토끼’를 번역한 허정범(41·안톤 허) 번역가에 대해 “안톤은 아주아주 뛰어난 번역가이면서 동시에 인맥도 넓고 문학계 사정을 두루 잘 이해한다. 판단력도 뛰어나고 순발력도 좋은 만능 인재”라고 했다. 또 “정말 어마어마하게 인기몰이를 하고 있어 바빠지실 텐데 안톤이 제 작품을 계속 번역해 주겠다고 하셔서, 가능하면 계속 안톤과 협업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허 번역가는 “여기까지 온 것이 믿기지 않고 행복하다”며 “영국에 와서 책방에 가보면 ‘저주토끼’가 다 팔리고 없었다. 내가 책을 잘 골랐구나 싶었고, 이것도 번역가 능력의 일부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27일 판권 계약 에이전시인 그린북 에이전시에 따르면 ‘저주토끼’는 지난해 영국 출간에 이어 미국 중국 스페인 일본 베트남 등 18개국에 출간될 계획이다. 그린북 에이전시 관계자는 “‘저주토끼’는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스 태국 이스라엘 출간도 검토 중”이라며 “정 작가가 쓴 100여 편의 단편과 장편소설 ‘죽은 자의 꿈’이 세계 판권 시장에서 활발히 판매가 검토되고 있다”고 했다. 정 작가는 신춘문예 등 문단 등단 절차를 거치지 않은 장르문학 작가다. 한국에선 비주류로 취급받던 호러, 공상과학(SF) 작품으로 부커상 인터내셔널 최종 후보에 오르는 이변을 일으켰다. 출판계에선 2016년 한국인으로는 처음 부커상 인터내셔널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창비)의 성과엔 못 미쳤지만 한국 장르문학의 외연을 넓혔다는 평가가 나온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1945년 미 육군 항공대의 일본 도쿄 공격 당시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정밀폭격을 한 핸셀 준장과 무차별 폭격한 르메이 소장의 상반된 선택이 전쟁의 결말을 바꿔 놓았습니다.”최근 ‘어떤 선택의 재검토’(김영사)를 출간한 영국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언론인 맬컴 글래드웰(59·사진)은 동아일보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다. 그는 “미군은 르메이의 선택을 존중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 100만 명에 가까운 일본 민간인이 죽었다. 이후 6·25전쟁, 베트남전, 이라크전에서도 민간인 수십만 명이 죽었다”고 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와 뉴요커에 글을 쓴 그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소개한 베스트셀러 ‘아웃라이어’(2009년·김영사)로 유명하다. 신간은 2차 세계대전이 막바지에 달한 1944년 미군이 괌, 사이판 등 서태평양 마리아나제도를 점령하는 장면부터 시작된다. 일본군이 주둔하던 마리아나제도는 곧 일본 본토 공략을 위한 미국의 전초기지가 된다. 초기에 미군을 이끈 핸셀은 민간인 학살을 최소화하고 전쟁을 올바르게 종식시키는 방법이라며 정밀폭격을 지시했다. 하지만 작전은 실패하고 르메이로 지휘관이 교체된다. 그는 네이팜탄을 쓰며 빠른 종전을 이끌었다. 현재 이 무기는 국제협약에 따라 사용이 금지돼 있다. 그는 “핸셀 준장은 전쟁의 도덕성에 대해 깊이 생각한 낭만주의자였던 반면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는 무자비하고 영리한 전술가였다”고 평가했다. 그는 “2차 세계대전의 사례처럼 군대는 최선의 의도를 갖고 시작하지만 좋은 의도는 좀처럼 지속되지 않는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거의 완벽하게 목표물만 정밀 폭격할 수 있다. 민간인을 공격하는 전쟁을 할 필요성이 작아졌다”고 밝혔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세기 초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가난한 작은 마을. 12세 소년 유수프는 갑자기 집을 떠난다. 유수프가 원한 건 아니었다. 호텔을 운영하던 유수프의 아버지는 사업 수완이 없었다. 쌓여가는 빚 대신 아들을 상인에게 팔다시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유수프는 낯선 마을에 살며 상인 아래에서 심부름꾼으로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상인은 유수프를 밀수품 무역에 끌어들이는데…. 벼랑에 내몰린 소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장편소설 ‘낙원’(1994년)의 이야기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장편소설 3권이 국내에 동시에 출간됐다. 지난해 10월 수상 당시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없었으니 국내 독자들은 7개월 만에 구르나의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된 셈이다. 한국엔 동아프리카가 아직 낯선 만큼 작가의 생애와 역사를 이해하며 작품을 읽기를 권한다. 구르나는 1948년 동아프리카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났다. 잔지바르섬은 지배 세력이 자주 바뀐 탓에 아프리카, 아랍, 유럽 문명이 섞여 있다. 특히 20세기 초 동아프리카엔 제국주의와 식민지 쟁탈전이 난무했다.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낙원’의 주인공 유수프가 가난 때문에 낯선 이에게 팔려가고 밀수품 무역까지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역사의 상흔은 ‘그후의 삶’(2020년)에도 짙게 묻어난다. 배경은 독일이 동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하던 1907년 탄자니아의 작은 해안 마을이다. 독일 군대는 반기를 든 원주민들을 진압한다. 마을을 불태우고 들판을 짓밟고 시체를 길가의 교수대에 매단다. 구르나는 이런 혼란 속에서 소년 일리아스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처연하게 그린다. 폭력이 평범한 삶을 어떻게 짓밟는지 응시한다. 1964년 잔지바르섬엔 혁명이 일어났다. 이슬람에 대한 탄압이 특히 거세졌다. 무슬림인 구르나는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다. 학생비자로 영국에 입국했지만 사실상 구르나는 난민이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병원 잡역부로 일하며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대학 교수가 됐다. 하지만 구르나는 언제나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잔지바르섬 출신 남성 오마르가 런던 공항에 도착해 망명 의사를 밝히는 ‘바닷가에서’(2001년)는 구르나의 자서전처럼 느껴진다. 비자 없이 영국에 온 오마르는 우여곡절 끝에 동향 출신인 라티프를 만난다. 라티프는 오마르보다 30년 전에 영국에 난민으로 왔다. 두 사람의 집안은 잔지바르 혁명 때 원수가 된 사이였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싸움이 아닌 화해다. 삶은 갈가리 찢겼지만 그건 역사의 소용돌이가 만든 비극이라는 것, 서로를 미워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구르나는 전한다. “궁극적으로 글쓰기의 관심사는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결국 잔혹성과 사랑과 나약함이 그 주제가 됩니다. 악랄하게 지배하는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명백하게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썼을 때 비로소, 어떤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 중)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20세기 초 동아프리카 탄자니아의 가난한 작은 마을. 12세 소년 유수프는 갑자기 집을 떠난다. 유수프가 원한 건 아니었다. 호텔을 운영하던 유수프의 아버지는 사업수완이 없었다. 쌓여가는 빚 대신 아들을 상인에게 팔다시피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유수프는 낯선 마을에 살며 상인 아래에서 심부름꾼으로 산다. 그러던 어느 날 상인은 유수프를 밀수품 무역에 끌어들이는데…. 벼랑에 내몰린 소년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장편소설 ‘낙원’(1994년)의 이야기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의 장편소설 3권이 국내에 동시에 출간됐다. 지난해 10월 수상 당시 국내에 출간된 작품이 없었으니 국내 독자들은 7개월 만에 구르나의 작품을 읽을 수 있게 된 셈. 한국엔 동아프리카가 아직 낯선 만큼 작가의 생애와 역사를 이해하며 작품을 읽기를 권한다. 구르나는 1948년 동아프리카 잔지바르섬에서 태어났다. 잔지바르섬은 지배 세력이 자주 바뀐 탓에 아프리카, 아랍, 유럽 문명이 섞여있다. 특히 20세기 초 동아프리카엔 제국주의와 식민지 쟁탈전이 난무했다. 주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만 했다. ‘낙원’의 주인공 유수프가 가난 때문에 낯선 이에게 팔려가고 밀수품 무역까지 하게 된 것처럼 말이다. 역사의 상흔은 ‘그후의 삶’(2020년)에도 짙게 묻어난다. 배경은 독일이 동아프리카 일대를 지배하던 1907년 탄자니아의 작은 해안 마을이다. 독일 군대는 반기를 든 원주민들을 진압한다. 마을을 불태우고 들판을 짓밟고 시체를 길가의 교수대에 매단다. 구르나는 이런 혼란 속에서 소년 일리아스가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처연하게 그린다. 폭력이 평범한 삶을 어떻게 짓밟는지 응시한다. 1964년 잔지바르섬엔 혁명이 일어났다. 이슬람에 대한 탄압이 특히 거세졌다. 무슬림인 구르나는 박해를 피해 영국으로 이주한다. 학생비자로 영국에 입국했지만 사실상 구르나는 난민이었다. 낯선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병원 잡역부로 일하며 온갖 고생을 한 끝에 대학 교수가 됐다. 하지만 구르나는 언제나 자신을 이방인이라고 생각했다. 잔지바르섬 출신 남성 오마르가 런던 공항에 도착해 망명 의사를 밝히는 ‘바닷가에서’(2001년)는 구르나의 자서전처럼 느껴진다. 비자 없이 영국에 온 오마르는 우여곡절 끝에 동향 출신인 라티프를 만난다. 라티프는 오마르보다 30년 전에 영국에 난민으로 왔다. 두 사람의 집안은 잔지바르 혁명 때 원수가 된 사이였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에게 남은 건 싸움이 아닌 화해다. 삶은 갈가리 찢겼지만 그건 역사의 소용돌이가 만든 비극이라는 것, 서로를 미워하는 것보다 중요한 건 상대를 이해하는 일이라고 구르나는 전한다. “궁극적으로 글쓰기의 관심사는 인간의 삶이기 때문에, 결국 잔혹성과 사랑과 나약함이 그 주제가 됩니다. 악랄하게 지배하는 눈이 볼 수 없는 것을 보여주고, 명백하게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이 다른 이들의 핍박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자긍심을 가질 수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그렇게 썼을 때 비로소, 어떤 아름다움이 나타납니다.”(노벨문학상 수상 연설문 중)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제 개인적 삶과 소설가로서의 활동은 떼려야 뗄 수 없습니다.” 지난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탄자니아 출신 작가 압둘라자크 구르나(74·사진)는 18일 국내 언론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20일 문학동네 출판사를 통해 번역 출간되는 장편소설 ‘낙원’(1994년) ‘바닷가에서’(2001년) ‘그후의 삶’(2020년) 등 세 권이 자신의 인생 궤적과 맞닿아 있다는 것. 그는 한때 영국 보호령이었던 탄자니아 잔지바르섬에서 1948년 태어났다. 1964년 잔지바르 혁명으로 이슬람에 대한 박해가 거세지자 무슬림인 그와 가족은 영국으로 이주했다. “동아프리카와 유럽 식민주의의 조우에 대해 말하고 싶었어요. 아프리카가 식민지로서 어떤 역사에 휩쓸렸는지 들여다보려고 했죠. 특히 아프리카가 세계 다른 지역과 교류하면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려 했습니다.” 이번에 번역 출간되는 3권 모두 동아프리카를 모티브로 삼고 있다. 이주자의 삶과 정체성을 그린 ‘디아스포라 문학’의 성격도 묻어난다. 그의 대표작 ‘낙원’은 탄자니아에 살던 12세 소년이 가난 때문에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사건을 다룬다. 영국 부커상 예비후보에 오른 ‘바닷가에서’는 잔지바르섬 출신의 두 남성이 영국으로 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최신작 ‘그후의 삶’은 독일이 동아프리카 일대를 식민 지배하던 20세기 초 이곳 해안마을에서 벌어진 혼란상을 그렸다. 그는 “영국으로 떠났다가 오랜만에 잔지바르섬을 방문한 적이 있다. 이때 아버지가 천천히 걸어가는 모습을 봤다. 식민지 시절을 겪은 아버지는 어렸을 때 어떻게 살았을까를 상상하다 ‘낙원’을 쓰게 됐다”고 설명했다. 국내 독자들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일본 식민 지배를 당한 한국의 역사에 대해 잘 알고 있습니다. 한국 독자들이 다른 사회의 식민지 시절 이야기를 읽고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다른 이의 이야기를 읽어도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것이 문학의 힘이니까요.”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가난한 집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상업고교에 진학했지만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중퇴했다. 마땅히 대학에 갈 형편도 되지 않았다. 호주머니에 차비 한 푼 없는 극빈의 삶. 방황하던 19세 청년은 우연히 도서관에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자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만났다. ‘평화가 아니라 승리를 갈망하라’는 문장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생을 진정 사랑한다면 피하기보다 뛰어들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매일 8시간씩 읽고 쓰는 삶을 시작했다. 40여 년이 흐른 지금 청년은 책을 100권 넘게 펴낸 작가가 됐다. 12일 에세이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문학세계사·왼쪽 사진)를 펴낸 장석주 시인(68·오른쪽 사진) 이야기다. 그는 1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고교를 중퇴한 직후에는 대학에 가지 못한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 하지만 니체를 읽은 후 대학생만큼 책을 읽고 그들만큼 일하면 된다는 호기가 생겼다”며 웃었다. 검정고시로 고교 과정을 마친 그는 요즘도 1년에 700∼800권씩 책을 읽는다. “침울하고 자신감이 없던 청년이 니체를 읽고 나약함을 떨쳐냈어요. 출판사 직원을 거쳐 사장으로 일하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죠. 부자는 아니었지만 자식 키우고 책 사 볼 정도는 됐습니다.” 신간에서 그는 니체의 명언을 통해 방황하는 청춘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춤추는 별이 되기 위해서는 그대의 내면에 혼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니체의 문장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에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자기의식으로서의 거울, 내면적 삶이 시작되는 지점으로서의 거울’ 들여다보기를 포기하지 말라고도 한다. 이어 ‘사람은 그의 길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 가장 높이 분기(奮起·분발하여 일어남)한다’는 문구로 다독인다. 그가 지치고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청년들에게 들려주고픈 니체의 격언은 ‘아모르파티’(운명에 대한 사랑을 뜻하는 라틴어). 그는 “아모르파티는 고통, 상실, 행복 등 모든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태도를 말한다”며 “평생 온갖 병에 시달린 니체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절망과 패배주의를 물리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에게 “당신 삶에 니체가 어떤 의미인지”를 물었다. “1980년대 출판사를 차린 뒤 니체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10권짜리 전집을 출간했어요. 이번 책도 니체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냈죠. 내 삶을 바꾼 스승에 대한 보은(報恩)입니다. 저는 지금도 니체를 읽고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가난한 집 5남매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상업고등학교에 다니다 학교 폭력에 적응하지 못해 중퇴했다. 마땅히 대학에 갈 형편도 되지 않았다. 호주머니에 차비 한 푼 없는 비루한 삶. 방황하던 19세 청년은 우연히 도서관에서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1844∼1900)의 철학서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만났다. “평화가 아니라 승리를 갈망하라”는 니체의 문장을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인생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피하기보단 삶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결심했다. 매일 8시간 씩 읽고 쓰는 삶을 시작했다. 40여 년이 지난 지금 청년은 책을 100권 넘게 펴낸 작가가 됐다. 12일 에세이 ‘어느 날 니체가 내 삶을 흔들었다’(문학세계사)를 펴낸 장석주 시인(68) 이야기다.장 시인은 13일 통화에서 “고등학교를 중퇴한 직후엔 대학에 가지 못한 내가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고민이 많았다”며 “하지만 니체를 읽은 후 대학에 간 사람들만큼 책을 읽고 그들만큼 일하면 된다는 호기가 생겼다”고 웃었다. 그는 검정고시를 봤을 뿐 아직 대학 졸업장이 없다. 대신 1년에 700~800권 씩 책을 읽으며 공부한다.“침울하고 자신감이 없던 청년이 니체를 읽고나선 나약함을 떨쳐냈어요. 출판사 직원으로 일하고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죠. 부자로 살진 않았지만 자식을 나아 길렀고 책을 제 돈 주고 살 정도로 살아왔습니다.”신간에서 그는 니체의 명언을 통해 방황하는 청춘에게 위로의 메시지를 건넨다. “춤추는 별이 되기 위해서는 그대의 내면에 혼돈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니체의 문장을 통해 불확실한 미래에 조급해할 필요가 없다고 조언한다. “자기의식으로서의 거울, 내면적 삶이 시작되는 지점으로서의 거울”을 들여다보는 것을 포기하지 말라고 말한다. “사람은 그의 길이 자신을 어디로 데려갈지 모를 때 가장 높이 분기(奮起)한다”고 다독인다.그가 ‘번아웃(burnout·소진)’과 자기혐오에 시달리는 요즘 청년들이 마음에 새기길 바라는 니체의 말은 ‘아모르파티’다. 그는 “아모르파티는 고통, 상실, 행복 등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운명을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태도를 의미한다”며 “평생 다양한 병에 시달린 니체의 삶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절망과 패배주의를 물리칠 수 있다”고 했다.니체를 얼마나 좋아하냐고 물으니 그는 답했다.“1980년대 출판사를 차린 뒤 니체를 널리 알리고 싶은 마음에 10권짜리 니체전집을 출판했어요. 이번 책도 니체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냈죠. 내 삶을 바꾼 스승에 대한 보은입니다. 저는 지금도 니체를 읽고 있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6일 경기 파주시 파주출판도시 지혜의숲. 사계절출판사의 창립 40주년 기념 전시 ‘사계절 40, 책·사람·자연’이 열리는 이곳엔 수십 명의 아이들이 붐비고 있었다. 어떤 아이들은 동화책 ‘마당을 나온 암탉’의 원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다른 아이들은 그림책 ‘누가 내 머리에 똥 쌌어?’를 활용한 체험시설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그런데 한 초등학생 남자아이는 좀 다르게 전시를 즐기고 있었다. 아이는 홀로 벽에 신문기사를 붙여놓은 전시물을 보고 있었다. 소설가 홍명희(1888∼1968)의 장편소설 ‘임꺽정’ 출간과 관련된 파란만장한 사건을 다룬 기사들이었다. 1985년 사계절출판사에서 ‘임꺽정’을 출간하고, 국가에 의해 판매금지 조치를 당하고,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걸고, 북한 개성에서 홍명희의 손자인 북한 작가 홍석중(81)과 ‘임꺽정’ 사용료 계약을 맺은 담판까지…. 그제야 전시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었다. 출판물이 금지되는 일을 겪지 못한 아이들에게 이날 전시는 역사 공부의 장이 될 것이다. 한편으로 전시장을 뛰어노는 아이들을 보곤 꼭 교육적인 목적에 얽매이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이 가득한 공간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은 책과 더 가까워질 수 있으니 말이다. 지난달 26일부터 다음 달 6일까지 열리는 전시엔 하루 수백 명이 찾고 있다. 5월 5일 어린이날엔 2500명이 다녀갔다고 한다. 30, 40대 부모들은 1992년부터 출간된 학습서 ‘반갑다 논리야’를 보고 반가워하고, 아이들은 2020년 그림책 ‘이파라파냐무냐무’의 귀여운 인형 앞에서 논다. 독재에 항거하는 정신으로 세워진 뒤 주로 사회과학 서적을 펴내던 출판사가 어린이책으로 눈을 돌린 성과가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전시장 한편엔 강맑실 사계절 대표가 그린 동네책방 23곳의 그림이 전시돼 있었다. 강 대표가 직접 동네책방을 순례하며 그린 그림들이었다. 소나무 숲과 야생화 정원에 붙어있는 경기 용인시 ‘생각을 담는 집’, 바다로 향하는 돌담길 옆에 서 있는 제주 제주시 ‘책은 선물’, 지은 지 60년이 넘는 건물에 들어선 충남 당진시 ‘오래된 미래’의 그림엔 강 대표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 있다. 이 책은 강 대표의 그림에 동네책방 주인장들이 직접 쓴 에세이를 묶었다. 책방 주인들은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도 책의 힘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입을 모은다. 인천 ‘북극서점’ 주인은 “서점을 사랑한다”고, 제주 ‘책자국’ 주인은 “매달 꾸준히 책 판매가 늘어나고 있다”고 고백한다. “숫자로 환산할 수 없는 신기한 일들이 끝없이 이어진다”는 강 대표의 말처럼 출판계를 버티게 하는 건 이런 애정일지도 모르겠다. 전시장에서 뛰어놀던 아이도, 임꺽정 신문기사를 읽고 있던 아이도 책을 좋아하게 된다면 독자들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한국 걸그룹 에스파가 미국 타임지가 발표한 ‘넥스트 제너레이션 리더스’에 선정됐다. 타임이 매년 유행을 선도하는 이들을 선정해 발표하는 이 명단에 한국 걸그룹이 포함된 건 처음이다. 에스파는 메타버스 걸그룹이라는 독특한 컨셉으로 곡 ‘블랙 맘바’ ‘넥스트 레벨’ ‘새비지’를 유행시켰다. 타임은 에스파의 음악세계에 대해 “실험적이지만 음악산업에서 가상과 실제를 연결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이라고 평했다. 에스파는 타임과의 인터뷰에서 “메타버스 세계관은 새로운 개념이라 처음에는 걱정했다. 하지만 팬들이 이 세계관으로 ‘밈’(meme·인터넷 유행 콘텐츠)‘까지 만들며 좋아하고 있다”며 “팬 여러분이 단순히 우리의 노래를 즐기는 것을 넘어 우리의 세계관이 담긴 영상과 콘텐츠를 즐기고 있다”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소설가 최은영(38)은 대중과 문단을 함께 사로잡은 흔치 않은 젊은 작가다. 중단편소설집 ‘쇼코의 미소’(2016년·문학동네) ‘내게 무해한 사람’(2019년·문학동네), 장편소설 ‘밝은밤’(2021년·문학동네)은 발표 직후 세 권 모두 서점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젊은작가상을 2014, 2017, 2020년 등 세 차례, 2021년 대산문학상 소설부문을 수상하며 문학적 성취를 인정받고 있다. 그가 이번엔 문단의 주요 평가 대상이 아닌 엽편(葉篇) 소설로 돌아왔다. 최근 출간된 짧은 소설집 ‘애쓰지 않아도’(마음산책·사진)다. 6일 전화 인터뷰에서 그는 “신인 때부터 매체를 가리지 않고 원고 청탁이 들어오는 대로 글을 썼다”며 “2016∼2021년 패션잡지와 온라인에 발표한 짧은 글을 모아 책을 냈다”고 말했다. 나뭇잎 넓이 정도에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엽편을 쓰며 느낀 점을 묻자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이렇게 답했다. “엽편은 일종의 스케치예요. 문예지에 발표하지 않으니 예술적 가치에 너무 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쓸 수 있습니다. 가볍게, 하고 싶은 말을 다 할 수 있으니 자유로운 글쓰기가 가능하죠.” ‘200자 원고지 30장 내외의 짧은 길이’라는 엽편의 특성 덕일까. 신작엔 그가 겪었던 기억의 편린이 사진처럼 담겼다. 목적지 없이 정신없이 걸어 다니던 과거는 청춘의 고민과 사랑을 그린 ‘한남동 옥상 수영장’에 녹아 있다. 세상을 떠난 고양이를 애도했던 슬픔은 ‘임보 일기’로 되살아난다. 특히 표제작 ‘애쓰지 않아도’는 또래 친구들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소녀의 마음을 간결하게 포착한 작품이다. 최은영의 대표작이자 한일 소녀의 우정을 그린 중편소설 ‘쇼코의 미소’처럼 10대의 심리를 섬세하게 그렸다. 그는 “고등학교 1학년 때 매점에서 친구들과 떡볶이를 먹는데 한 친구가 인기 있는 반장에게 ‘나도 네 무리야?’라고 물었던 것을 본 짧은 기억에 상상을 더해 썼다”며 “아이들은 왜 무리에서 인정받으려는 절박한 마음을 지녔을까 하는 고민을 담았다”고 했다. 타인에 대한 판단을 끝까지 유보하고, 무해한 시선을 유지하려는 노력은 신작에서도 여전하다. 아동학대(‘호시절’) 동물학대(‘안녕, 꾸꾸’) 등 사회의 폭력에 대해 끊임없이 쓰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답했다. “우리나라는 부자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병들어 있어요. 특히 가난하고 약한 사람을 혐오하는 태도를 보면 그렇습니다. 지금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땐 덜 폭력적인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계속 소설을 쓰겠습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아버지는 이 땅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강원 원주시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에서 11일 고 김지하 시인의 둘째 아들인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울먹이며 추모사를 읊었다. 8일 향년 81세로 타계한 김 시인의 영결식이 이날 열렸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지하 선배는 대한민국에 문화 운동을 심은 1세대”라고 추모했다. 판소리 명창인 임진택 연극 연출가는 고인의 시로 만든 노래 ‘빈 산’을 불렀다. 구슬픈 가락이 울려 퍼지자 참석자들은 연신 눈물을 흘렸다. 영결식에는 고인의 장남 김원보 작가와 김 이사장을 비롯해 옛 친구 20여 명이 참석했다. 고인의 여덟 살 손자도 흐느끼는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이청산 전 한국민족예술단체총연합 이사장은 “서슬 퍼런 독재정권에서도 버텨낼 수 있었던 것은 김지하라는 우리들의 정부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이 땅에 민주주의 초석을 놓은 김 시인이 대한민국 문화운동에 남긴 영향은 마음속 빚으로 남아 있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박경리 작가의 외동딸로 2019년 세상을 떠난 부인 김영주 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묻힌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선영에 안치됐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으로 잘 알려진 시인 김지하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토지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암으로 투병생활을 하던 김 시인이 8일 오후 4시경 강원 원주시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고인과 함께 살던 차남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부부가 임종을 지켰다. 고인의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는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이름처럼 고인은 과거 독재정권에 맹렬하게 저항한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1941년 전남 목포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혁명에 참여했다. 당시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대표로 활동했다.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서울대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4개월간 수감됐다. 한때 수배를 피해 항만 인부나 광부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이어가기도 했다. 고인은 참여시인이자 민중시인이었다. 1969년 시 ‘황톳길’과 ‘비’를 발표하며 등단한 후 1970년 월간지 ‘사상계’에 ‘오적(五賊)’을 발표해 구속됐다. ‘오적’은 300줄 남짓한 풍자시로 독재시대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댔다. 고인을 비롯해 사상계 대표와 편집장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그해 구속됐다. 이어 고인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민주화 이후 2013년 민청학련 사건 재심에서 39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이어 2014년 법원은 고인이 민청학련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15억 원의 국가배상 판결을 내렸다. 1987년 제주 4·3사건을 다룬 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된 이산하 시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적’을 읽고 이것이 진짜 시이고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꽁꽁 얼어붙은 유신시대에 뜨거운 피를 가진 문학청년들에겐 충격적인 영향력을 준 시를 쓴 분이다.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참여 시인”이라고 평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고인은 1970년대 저항운동을 하며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산 분”이라며 “자신이 터득한 사상을 글로 표출했다는 점에서도 큰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1980년대 이후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다.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면서 생명사상을 깨쳤다. 고인은 “처음에는 생태학을 파고들었는데 그것만 가지고서는 세계와 삶의 진화를 이해하기에 인간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심오했다”며 “선(禪)과 불교에 관한 깊은 내면적 지식과 무의식적 지혜를 갈구하게 됐다”고 했다. 1990년대에는 절제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줬다. ‘중심의 괴로움’(1994년), ‘비단길’(2006년), ‘새벽강’(2006년), ‘못난 시들’(2009년), ‘시김새’(2012년) 등 시집을 꾸준히 펴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을 선언했다. 고인은 많은 지인들과 후배들로부터 “데모대 선두에 서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때마다 “이제 정치가 아닌 다른 일을 찾고 있다. 더 이상 데모는 안 한다”고 거절했다. 변절, 배신, 반동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고인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경찰에 맞아 숨진 사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한 일간지에 ‘죽음의 굿판을 당장 걷어치워라’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고인은 “민중을 지도하겠다는 사람들이 목숨을 경박하게 버리는 반민중적 행위를 서슴지 않고 있으며 자기 스스로도 확신하지 못하는 (미래에 대한) 환상으로 민중을 선동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고인은 10년 뒤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이 칼럼에 대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시했다. 진보 진영에 대한 비판적 시각은 계속 견지했다. 고인은 2008년 한 언론사 기고문 ‘좌익에 묻는다’에서 “마르크스 자본론은 아예 읽은 일도 없고 경제의 ‘경’자도 모르는 자들이 정권을 틀어쥐고 앉아 왔다갔다 나라 경제를 몽땅 망쳤다”고 지적했다. 진보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판하기도 했다. 이근배 시인(전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은 “1970년대 시인뿐 아니라 논객조차도 군부세력을 비판하는 글과 시를 못 쓰던 시절, 고인은 시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오적’을 발표한 고인은 유신 시대의 지성이다. 정치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당시 고인만큼 폭발적인 문인은 없었다”고 말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장은 “대시인이자 세계적인 시인이 떠나갔다”고 애도했다. 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 작가와 차남 세희 이사장이 있다. 고인의 부인으로 대하소설 ‘토지’를 쓴 고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 김영주 씨는 2019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빈소는 강원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발인은 11일 오전 9시. 김지하, 박경리 딸과 결혼… 朴 “글 잘쓰는 젊은이에 호감”朴, 金 민청학련 구속때 옥바라지고 김지하 시인은 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작가(1926∼2008)의 사위로, 그가 걸어온 길뿐만 아니라 가족사 역시 한국 근현대사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70년 ‘오적’을 사상계에 발표한 김 시인은 당국의 감시를 받고 있었다. 1972년 10월 유신 선포 후 경찰과 중앙정보부로부터 몸을 피하기 위해 평소 종종 들렀던 서울 정릉 인근의 박경리 선생 집을 찾아 숨겨 달라고 청했다. 선생은 그의 부탁을 그 자리에서 거절했다. 외동딸 김영주(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1946∼2019)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김영주는 “어머니가 혼자 살다 보니 성격이 그렇다. 이해해 달라”며 사과했다. 이후 김 시인이 숨어 있던 강원 원주시 집에 선생과 김영주가 찾아와 그를 돌려보낸 것을 미안해했다. 생전 선생은 김 시인과의 첫 만남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느 날 ‘현대문학’ 김국태 씨(편집장)가 지하와 함께 왔어요. ‘오적’을 읽고 싶었는데 구하질 못해 읽어보지는 못했던 때였죠. (글을 쓰는 내가) 글 잘 쓰는 젊은이에게 호감을 갖는 것은 당연하잖아요?” 처음 만났을 때 마음이 통한 김 시인과 김영주는 1973년 4월 서울 명동대성당 반지하 묘역에서 김수환 추기경의 주례로 결혼식을 올렸다. 김 추기경은 부부간의 예절과 함께 김 시인의 앞길을 예감한 듯 비상한 결심과 각오를 강조했다. 부부는 두 아들 김원보(작가), 김세희(토지문화재단 이사장)를 낳았다. 결혼 이듬해 김 시인이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수감되자 선생은 직접 면회를 가며 그를 챙겼다. 6·25전쟁 때 부역자로 몰린 남편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자 추위가 매서운 겨울 날마다 옷 보따리를 들고 흑석동 집에서 서대문까지 걸어 면회를 다닌 선생이 사위의 옥바라지까지 하게 된 것이다. 선생은 민청학련 사건으로 사형을 선고받은 김 시인을 살리기 위해 정권을 자극하지 않는 방법을 찾아 조용히 백방으로 뛰었다. 김영주는 “남편은 어떤 의미에서는 장모 덕분에 살아남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암 투병을 하다 2019년 눈감은 김영주는 김 시인이 20년간 12번이나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두 아들 양육부터 집안 살림, 간호까지 모든 것을 책임졌다. 역사의 소용돌이에 맞서 홀로 딸을 키운 선생의 삶과 겹쳐지는 부분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이소연 기자 always99@donga.com김태언 기자 beborn@donga.com정성택 기자 neone@donga.com}

시 ‘타는 목마름으로’, ‘오적’으로 잘 알려진 시인 김지하가 8일 별세했다. 향년 81세. 토지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투병생활을 하던 김 시인이 8일 오후 4시경 강원 원주시 자택에서 타계했다”고 밝혔다. 고인과 함께 살던 차남 김세희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부부가 임종을 지켰다. 고인의 본명은 김영일(金英一). 김지하는 지하에서 활동한다는 뜻의 필명이다. 이름처럼 고인은 과거 군사 독재정권에 맹렬하게 저항한 행동하는 지식인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1941년 전남 목포시에서 태어난 고인은 1959년 서울대 미학과에 입학한 이듬해 4·19 혁명에 참여했다. 당시 민족통일전국학생연맹 남쪽 학생 대표로 활동했다. 1964년 한일 국교 정상화에 반대한 ‘서울대 6·3 한일 굴욕회담 반대 학생총연합회’ 소속으로 활동하다 체포돼 4개월간 수감됐다.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이후에는 수배를 피해 항만 인부나 광부로 일하며 도피 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고인은 1970년 월간지 ‘사상계’에 풍자시 ‘오적’(五賊)을 발표해 구속됐다. ‘오적’은 300줄 남짓한 풍자시로 독재시대 부정하게 부를 축적한 재벌, 국회의원, 고급 공무원, 장성, 장차관을 을사오적에 빗댔다. 판소리 가락을 도입하고 난해한 한문을 차용해 풍자했다. 정부는 사상계를 폐간한데 이어 오적을 실은 신민당 기관지 ‘민주전선’을 압수했다. 고인을 비롯해 사상계 대표와 편집장이 반공법 위반 혐의로 그해 구속됐다. 이어 고인은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체포된 후 사형선고를 받았으나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됐다. 민주화 이후 2015년 법원은 고인이 오적 필화, 민청학련 사건으로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다며 15억 원의 국가배상을 판결했다. 그는 참여시인이자 민중시인이었다. 1969년 ‘시인’지에 시 ‘황톳길’과 ‘비’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1970년 12월 첫 시집 ‘황토’를 출간했다. 그의 시는 재기 넘치는 풍자 정신을 보여준다. 옥중에서도 민주주의와 자유에 대한 열망을 아름답게 형상화한 시들을 선보였다. 이에 민주화의 상징이자 민족문학 진영의 대표 문인으로 추앙받았다. 1987년 제주 4·3 사건을 다룬 시 ‘한라산’을 발표해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투옥된 이산하 시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오적’을 읽고 이것이 진짜 시이고 시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꽁꽁 얼어붙은 유신시대에 뜨거운 피를 가진 문학청년들에겐 충격적인 영향력을 준 시를 쓴 분이다. 책상에 앉아서 글만 쓰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준 시인”이라고 평했다. 구모룡 문학평론가는 “학문하는 사람들이 지식과 행동이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고인은 1970년대 저항운동을 하며 언행이 일치하는 삶을 산 분”이라며 “자신이 터득한 사상을 글로 표출했다는 점에서도 큰 인물이었다”고 말했다. 고인은 1971년 가수 김민기와 함께 야학 활동을 시작했다. 2년 후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인 고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 김영주와 결혼했다. 고인은 1980년대 이후 생명사상을 정립하는 데 몰두했다. 고인은 옥중 생활을 하는 동안 수많은 서적을 탐독하면서 생명사상을 깨우쳤다. 선불교, 동학, 생태학 책을 섭렵했다. 그는 생명사상과 관련된 여러 종교들을 포괄적으로 수용했다. 1990년대에는 절제의 분위기가 배어나는 내면의 시 세계를 보여줬다. 1992년 그 동안 써낸 시들을 묶어 ‘결정본 김지하 시 전집’을 출간했다. ‘중심의 괴로움’(1994년), ‘화개’(2002년), ‘유목과 은둔’(2004년), ‘비단길’(2006년), ‘새벽강’(2006년), ‘못난 시들’(2009년), ‘시김새’(2012년) 등의 시집을 꾸준히 펴냈다. 2018년 시집 ‘흰 그늘’과 산문집 ‘우주생명학’을 마지막으로 절필 선언을 했다. 고인은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 씨가 경찰에 맞아 숨지고 이에 항의하는 분신자살이 잇따르자 한 일간지에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우라’라는 칼럼을 기고해 논란이 일었다. 진보 진영에서는 “변절자”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10년 뒤 ‘실천문학’ 여름호 대담에서 칼럼과 관련해 해명하고 사과의 뜻을 표명했다. 2012년 박근혜 정부 당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공개 지지하고 진보 문학평론가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를 비판했다. 이 때문에 고인은 말년에 진보 진영 문인들과 교류가 적었다. 이근배 시인은 “1970년대 시인 뿐 아니라 논객조차도 군부세력을 비판하는 글과 시를 못 쓰던 시절 고인은 시 쓰기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박정희가 권력의 정점에 있을 때 ‘오적’을 발표한 고인은 유신 시대의 지성이다. 고인만큼 정치적으로든 사상적으로든 당시 폭발적인 문인은 없었다”고 말했다. 유자효 한국시인협회 회장은 “그야말로 대시인이자 세계적인 시인이 떠나갔다”고 애도했다. 고인은 명지대학교, 한국예술종합학교, 동국대학교, 원광대학교에서 석좌교수를 지냈다.유족으로는 장남 김원보 작가와 차남 세희 이사장이 있다. 빈소는 원주세브란스기독병원.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우주여행의 시대다. 지난달엔 국제우주정거장(ISS)으로 여행을 떠났던 민간인 4명이 지구로 무사 귀환했고, 우주기업 스페이스X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2050년 화성에 인류를 이주시키겠다고 공언했다. 인류가 우주에 대해 많은 걸 알아낸 것 같지만 물리학자이자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석좌교수인 저자는 여전히 우주엔 미스터리가 많다고 말한다. 정체가 알려지지 않은 ‘암흑물질’이 대표적이다. 암흑물질은 우주물질의 85%를 차지하고 있으나 보이지 않는다. 인간은 전자기파를 통해 우주를 파악하고 있는데 암흑물질은 현재 기술로 검출할 수 있을 정도의 전자기파를 내보내지 않기 때문이다. 빛을 흡수하거나 방출하지 않아서 검출하기 어려운 엑시온이 암흑물질 후보로 연구되고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암흑물질의 비밀이 밝혀지면 그동안 우리가 알던 우주와는 다른 세계가 펼쳐질 것이다. 저자는 2004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저명 과학자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에 매달 칼럼을 기고하며 대중에게 다가가는 과학 칼럼니스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일반인이 알면 좋을 법한 우주 과학에 대한 상식을 최대한 풀어 소개했다. 마냥 쉽지만은 않지만 도전해 볼 만하다. 엄밀한 과학적 사실에 문학적 상상력을 덧붙여 풀어낸 점은 미국 천문학자 칼 세이건(1934∼1996)의 저서 ‘코스모스’를 생각나게 한다. 저자는 우주 앞에 선 우리를 갓난아기로 비유한다. 아기가 눈을 크게 뜬 채 손으로 여러 물체를 만지며 세계를 이해하려 노력하는 모습은 과학자들이 우주의 각종 법칙을 찾는 일과 비슷하다. 선입관 없이 호기심으로 가득 찬 채 실험을 반복하면 아기는 세상의 법칙을 이해하게 된다. 중력 이론을 배우지 않아도 물체는 위에서 아래로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현대 과학자들은 이론을 세우고, 가정하고, 실험하며 증명하는 방식을 취할 뿐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이를 돕고 있다. ‘중력파’를 찾는 방식이 이렇게 진행됐다. 중력파는 질량을 가진 물체가 가속운동을 할 때 생기는 중력의 변화가 시공간을 전파해 가는 시공간의 잔물결이다. 이 개념을 처음 생각해낸 건 1905년 프랑스 물리학자 앙리 푸앵카레(1854∼1912)다. 독일 물리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1879∼1955)은 일반상대성이론을 통해 중력파가 존재한다는 이론적 토대를 다졌다. 입자가 진동하면 주위 진공에서 전자기파가 발생하듯 질량을 가진 물체가 진동하면 주위 진공에서 중력파가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다만 중력파는 오랫동안 직접 탐지되지 않았다. 우주의 먼 곳에서 오는 중력파가 지구에 왔을 때 물질에 미치는 변화는 1조분의 1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5년 미국 소재 중력파 관측소인 ‘고급레이저간섭계중력파관측소(LIGO·라이고)’는 결국 중력파를 검출해 내는 데 성공했다. 중력파를 검출하기 위해 관측기구를 정밀화해 온 노력이 100여 년 만에 성공한 것이다. 중력파는 우주의 팽창 속도·나이를 계산하는 ‘허블 상수’의 정확도를 높이는 연구에 활용될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왜 우주에 매료될까. 저자는 “인간은 우주라고 불리는 전체의 일부이며, 그 일부는 시간과 공간에 의해 제한”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지구라는 공간과 현재라는 시간에 갇혀 있는 우리에게 우주는 전체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풀어놓고 있다. 우주의 비밀을 더 많이 풀수록 우린 진정한 의미의 우주여행에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오전 5시 새소리에 눈을 뜬다. 세수를 하고 2시간 동안 소설을 쓴다. 옷을 챙겨 입고 도보 40분 거리의 논으로 천천히 걸어간다. 거기서 열심히 벼농사를 짓는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폐교 2층의 작업실에서 다시 소설을 쓴다. 해 질 무렵 집으로 걸어 돌아온다. 오후 9시면 잠에 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일상은 늘 같다. 농사에 시간을 많이 뺏길 줄 알았지만 단순한 삶 덕에 소설 집필량은 서울에 있을 때와 같다. 그러나 그때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 최근 에세이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해냄·사진)를 펴낸 소설가 김탁환(54)의 하루는 풍요롭다. 올해 쟁기질이 벌써 시작된 걸까.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3일 만난 그의 얼굴은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지난해 1월 1일 전남 곡성군으로 거처를 옮긴 뒤 1년 4개월 동안 오전에는 글밭에서, 오후에는 텃밭에서 살고 있다”며 “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와 전업 작가로 대전과 서울에서 각각 10여 년을 살았는데 이제는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며 웃었다. “인구가 2만7000여 명에 불과한 곡성에서 생애 가장 만족한 삶을 살고 있어요. 가끔씩 서울에 올라오는 시간을 빼곤 이곳에서 한 해 대부분을 보내며 맑은 물맛과 진한 흙내가 가득한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제철 채소,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으며 건강해지고 있죠.” 신간 제목에 나오는 섬진강은 그의 논에서 불과 10분 거리로 곡성을 감싸 흐르고 있다. 30여 권의 장편소설을 발표한 그가 섬진강에 처음 관심을 가진 건 동명의 드라마로 만들어진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황금가지·2004년)을 쓸 때였다. 백의종군하던 이순신(1545∼1598)이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돼 섬진강변을 따라 북상한 길을 답사하며 그의 마음을 이해하려고 했다. 당시에는 곡성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2018년 그곳에서 곡물 연구업체 미실란을 운영하는 이동현 대표를 만난 뒤 삶의 터전과 방식을 바꿔 보기로 했다. 그는 “대도시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팬데믹이 시작된 뒤 이사 결심을 내렸다”며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데 내가 짓는 농사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모두 작품에 녹아들고 있다”며 웃었다. 그는 또 “지난해 수확한 벼 품종이 630종에 달할 정도로 초보 농사꾼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벼농사 외에도 텃밭과 정원을 가꾸느라 어깨와 허벅지 근육이 뭉치는 게 다반사”라고 했다. 그는 겨울에는 책방을, 봄·가을에는 이야기학교를 운영한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20대 손녀부터 은퇴 후 귀촌한 60대까지 다양한 곡성 주민들이 그의 수업을 들으러 온다. 그에게 언제까지 그곳에 머물 것이냐고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가수는 노래 따라가고, 소설가는 이야기 따라간다고 했나요. 적어도 10년은 떠나지 않을 것 같아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이 미국 중남부 미시시피주에서 살았던 경험을 녹여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추억’의 미시시피 3부작을 썼듯 저도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계속 쓰고 싶거든요. 이곳에서 살아가고 노동하고 글을 쓰는 진정한 ‘마을 소설가’가 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새벽 5시 새소리에 눈을 뜬다. 세수를 하고 2시간 동안 소설을 쓴다. 옷을 챙겨 입고 도보 40분 거리의 일터로 천천히 걸어간다. 열심히 농사를 짓는다. 간단히 점심을 챙겨 먹고 폐교 2층에 있는 작업실에서 소설을 다시 쓴다. 해가 질 무렵 다시 집으로 걸어 돌아온다. 오후 9시면 잠에 든다. 비가 오나 해가 내리쬐나 일상은 매일 같다. 농사일에 시간을 뺏길 줄 알았건만 단순한 삶을 사는 덕에 소설 작업량은 그대로다. 서울에 있을 때보다 더 행복한 것 같다. 최근 에세이 ‘김탁환의 섬진강 일기’(해냄)를 펴낸 소설가 김탁환(54)의 일상은 이처럼 풍요롭다. 올해 쟁기질이 벌써 시작된 것일까. 3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그의 얼굴은 건강하게 그을려 있었다. 그는 “지난해 1월 1일 전남 곡성군으로 거처를 옮긴 뒤 1년 4개월 동안 오전엔 글밭에서, 오후엔 텃밭에서 살고 있다”며 “한국과학기술원(KAIST) 문화기술대학원 교수로 일하며 대전에서, 전업 작가로서 서울에서 각각 10여 년을 살았는데 이젠 삶이 완전히 바뀌었다”고 웃었다. “인구가 2만7000명에 불과한 곡성군에서 생애 가장 만족한 삶을 살고 있어요. 가끔씩 서울에 올라오는 시간을 빼곤 곡성군에서 한 해의 대부분을 보내며 맑은 물맛과 진한 흙내가 가득한 문장을 쓰고 있습니다. 제철 채소, 과일처럼 ‘제철 마음’을 먹으며 건강해지고 있죠.” 30여 권의 장편소설을 낸 그가 처음 섬진강에 관심을 가진 건 동명의 한국방송(KBS) 드라마로 만들어진 대하소설 ‘불멸의 이순신’(2004년·황금가지)을 쓸 때였다. 그는 백의종군하던 충무공 이순신(1545~1598)이 삼도수군통제사로 재임명돼 섬진강변을 따라 북상하며 수군 재건을 모색했던 길을 여행하며 이순신의 마음을 이해하려 했다. 그땐 곡성군을 스치듯 지나갔지만 2018년 곡성군에서 곡물 연구 업체인 미실란(美實蘭)을 운영하는 이동현 대표를 우연히 만난 뒤 삶의 터전과 방식을 바꿔보기로 했다. 그는 “대도시에서의 삶에 회의를 느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시작된 뒤에 이사하자고 결심을 내렸다”며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장편소설을 쓰고 있는데 내가 짓는 농사가,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모두 작품에 녹아들고 있다”고 웃었다. 그는 또 “지난해 수확한 벼 품종이 630종에 달할 정도로 초보 농사꾼으로서도 나쁘지 않은 성과를 거두고 있다”며 “벼 논농사 외에도 텃밭 농사도 짓고, 정원 가꾸기도 하는 탓에 어깨와 허벅지 근육이 뭉치는 게 일상”이라고 했다. 그는 겨울엔 책방을, 봄과 가을엔 이야기학교를 운영한다. 할머니를 모시고 온 20대 손녀부터 은퇴 후 귀촌한 60대까지 다양한 곡성군 주민이 그의 수업을 들으러 온다. 그에게 언제까지 머물 것이냐 물으니 이런 답이 돌아왔다. “가수는 노래 따라가고, 소설가는 이야기 따라간다고 했나요. 적어도 10년은 안 떠나지 않을 것 같아요. 미국 소설가 마크 트웨인(1835~1910)이 미국 중남부 미시시피주에서 살았던 경험을 녹여 ‘톰 소여의 모험’ ‘허클베리 핀의 모험’ ‘미시시피강의 추억’이라는 미시시피 3부작을 썼듯 섬진강을 배경으로 한 작품을 계속 쓰고 싶거든요. 이곳에서 살아가고 노동하고 글을 쓰는 진정한 ‘마을 소설가’가 될 겁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정말 오랜만의 대면 이벤트, 감개무량합니다. 주말에 귀한 시간 내 와주신 분들 모두 감사했습니다.” 작가 김영하(54)는 지난달 3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서 장편소설 ‘작별인사’(복복서가) 출간 기념 사인회를 연 뒤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독자와 찍은 사진과 함께 이런 글을 올렸다. 이날 사인회에는 300여 명이 참석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가 열리면서 작가, 출판사가 독자와 갖는 대면 모임이 늘고 있다. 민음사는 온라인으로 진행하던 책 바자회 ‘패밀리 데이’를 14, 15일 경기 파주시에서 오프라인으로 연다. 예약을 통해 참가할 수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는 서울국제도서전을 다음 달 1∼5일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한다. 감염 우려로 규모를 축소했던 서울국제도서전이 대규모로 열리는 건 3년 만이다. 작가 이수지, 은희경이 강연자로 나서 티켓 예약판매부터 독자들이 몰리고 있다. 출판계는 대면 모임이 마케팅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표정훈 출판평론가는 “온라인에서 독자와 만나는 방식이 흔해졌지만 독자들은 작가와의 오프라인 만남을 선호한다”며 “작가 강연회와 낭독회는 책 판매를 늘리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했다.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