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성장위원회 2기 위원장(장관급)에 양수길 전 주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사(사진)를 위촉했다. 서울 출신인 양 전 대사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수석연구위원, 교통개발연구원(KOTI) 원장,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원장을 역임했고 김대중 정부에서 주OECD 대사를 지냈다. 또 1기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녹색성장산업분과위원장으로 활동했다.○ 신규 민간위원(20명) 노희진(자본시장연구원 정책제도실장) 조홍식(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서용(고려대 국제학부 교수) 이지순(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신무환(명지대 신소재공학과 교수) 이상엽(KAIST 생명화학공학과 교수) 백만기(김&장 변리사) 신동천(연세대 경제학과 교수) 오재호(부경대 환경대기과학과 교수) 이명규(기후변화에너지연구소장) 이재훈(전 지식경제부 차관) 김희집(액센츄어 대표) 박석순(이화여대 환경공학과 교수) 신현석(부산대 사회환경시스템공학부 교수) 김도년(성균관대 건축공학과 교수) 남궁은(명지대 환경생명공학과 교수) 권영걸(서울대 디자인학부 교수) 하지원(에코맘 코리아 대표) 김희재(올댓스토리 대표) 이은영(소비자시민모임 미래자원실장)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정인철 대통령기획관리비서관이 12일 사직서를 제출한 가운데 당초 기획관리비서관실을 확대 개편해 만들기로 했던 기획조정실(비서관급)을 ‘원상 복구’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조직개편 과정에서 이 자리가 논란이 되자 원상태로 돌리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적극 검토했다”며 “그쪽(원상 복구)으로 가닥을 잡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정 비서관의 사의 표명이 불가피해진 시점에 이 같은 구상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임태희 대통령실장 내정자도 내정 직후 청와대 조직개편안을 보고받은 자리에서 “기획조정실이 필요한 것이냐”는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기획조정실의 원상복구가 유력하게 검토되는 것은 ‘지나치게 힘센 자리’의 흔적을 지우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획조정실은 업무영역에 제한이 없어서 과거 정부의 국정상황실과 같은 막강한 권한을 지닐 가능성이 컸다. 특히 첫 기획조정실장으로는 조직개편의 실무 작업을 맡았던 정 비서관이 옮겨갈 것이란 전망이 유력했다. 선진국민연대 대변인 출신의 정 비서관은 박영준 국무총리실 국무차장의 후임으로 2008년 7월부터 기획관리비서관직을 맡아왔다는 점에서 ‘박영준의 사람’으로 분류돼 왔다. 청와대 일각에서는 “원상 복구를 한다면 애초부터 위인설관(爲人設官)이었다는 비판이 나온다”는 반대 의견이 없지 않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정 비서관을 염두에 두고 만든 게 아니라 꼭 필요한 기능이라는 이유로 만든 만큼 그 자리에 첫 인사 발령을 내기도 전에 없애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복수의 여권 관계자는 “기획조정실장 자리는 비서관급 직위임에도 대통령실장 정책실장에 이어 ‘제3의 실장’으로 불리면서 구설에 오른 것이 맞다”고 여권 내부의 기류를 전했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정인철 대통령기획관리비서관이 12일 사직서를 제출했다. 정 비서관은 그동안 야당으로부터 △한 대기업이 한국콘텐츠산업협회에 낸 억대 후원금 △선진국민연대 출신 인사들의 정기적인 금융회사 경영진 면담 △시중은행 경영진 인선과정 등에 개입한 의혹을 받아왔다. 한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형사1부장)은 총리실에서 수사 의뢰한 공직윤리지원관실 직원 4명 가운데 처음으로 경찰관 이모 씨를 이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 조사했다. 또 공직윤리지원관실에서 근무한 적이 있거나 근무 중인 경찰관 김모 씨와 권모 씨 등 2명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서울중앙지검은 한나라당 조전혁 의원이 “김종익 씨가 국민은행 협력업체인 KB한마음 대표로 재직할 당시 참여정부 실세들을 위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이 있다”며 수사 의뢰한 사건을 조사부(부장 손준호)에 배당하고 수사에 착수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불법 민간인 사찰 상황을 보고받아 왔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이영호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이 11일 오후 사표를 제출했다. 민주당 의원들이 지난달 21일 국회에서 불법 사찰문제를 거론한 지 20일 만이다. 이 비서관은 사직서에서 “저로 인해 물의를 빚어 죄송합니다. 대통령을 모시는 비서관으로서 본의 아니게 대통령께 누를 끼친 데 대해 책임을 지고 물러납니다”라고 썼다고 청와대측은 밝혔다. 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국무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불법 사찰 의혹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별수사팀(팀장 오정돈 형사1부장)은 9일 서울 종로구 창성동 정부중앙청사 별관에 있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을 압수수색했다. 검찰이 총리실을 압수수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검찰은 이날 오전 10시 20분경 공직윤리지원관실에 검사와 수사관 20여 명을 보내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과 점검1팀장 김모 씨, 조사관 원모 씨와 이모 씨 등 수사 의뢰된 4명의 사무실에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 전산자료 및 사찰활동과 관련된 공문서와 보고자료, 일지, 회의기록 등을 광범위하게 확보해 정밀 분석하고 있다. 검찰은 이들 4명의 자택도 압수수색했다. 검찰은 압수물 분석 과정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보고체계가 어떠했는지 확인하고 있으며 KB한마음(현 NS한마음) 전 대표 김종익 씨(56)에 대한 사찰을 지휘하고 보고받은 청와대 ‘비선’의 신원이 구체적으로 확인될 경우 이 인사도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이번 주말에 압수물을 집중 분석한 뒤 다음 주에 이 지원관 등 4명을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조사할 방침이다. 검찰은 그동안 참고인 조사를 통해 이 지원관 등 4명의 불법 사찰 혐의가 상당 부분 확인된 만큼 이들을 구속 수사하는 것으로 내부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9일에도 국민은행 관계자 1명과 서울 동작경찰서 경찰관 1명을 참고인 자격으로 불러 김 씨의 KB한마음 대표직 사퇴 및 수사 과정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의 외압이 있었는지를 조사했다. 한편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실은 최근 정인철 대통령기획관리비서관이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를 만나 각종 민원을 했다는 의혹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대상은 정 비서관 외에 선진국민연대 관련자, 공기업 경영자 등 10명 안팎이라고 청와대 측은 밝혔다. 민정수석실의 한 관계자는 9일 “정 비서관, 유선기 선진국민정책연구원(선진국민연대의 후신) 이사장 등을 우선 조사했다”며 “정 비서관은 ‘공기업 경영자와 정기적으로 회동한 것은 맞지만 업무의 연장일 뿐이며 부당한 압력이나 청탁은 없었다’고 진술했다”고 말했다. 유 이사장 등 다른 관련자도 비슷한 답변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이날 “민간인을 상대로 한 조사인 만큼 본인의 동의서를 받은 뒤 실시했다”며 “방문조사 혹은 전화조사에서 이들이 한 진술이 사실인지를 다각도로 검증하고 있다”고 말했다.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은 8일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사진)을 신임 대통령실장으로 내정했다. 수석비서관 인사는 한나라당 전당대회(14일) 이후에 이뤄질 예정이다.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이 대통령은 임 내정자를 국민소통과 서민친화라는 이번 청와대 조직개편의 취지에 가장 부합하고 중도실용과 친(親)서민정책을 이끌어갈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발탁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7일 오전 임 내정자를 청와대로 불러 내정사실을 통보했고 임 내정자는 “지역구 국회의원 신분을 버리고 대통령실장 직무에 올인(다걸기)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임태희 고용노동부 장관이 청와대의 면모일신이라는 과제를 안고 대통령실장직을 맡았다. 청와대 실무자들은 내정 사실이 발표된 8일 “무리하지 않으면서 합리적인 사람”이라며 일단 그의 리더십에 기대감을 표시했다. 임 내정자에게 맡겨진 제1과제는 청와대의 일하는 방식 개선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정부 안팎에서 “이명박 정부 국책과제의 콘텐츠가 나쁜 게 아니다. 너무 직선적으로 일하는 방식이 달라지면 좋겠다”는 평가가 자주 들려오고 있다. 4대강 살리기 등 사업을 추진하면서 종종 일방통행으로 오해받는 업무추진 방식 탓에 ‘안 맞아도 될 매’를 맞는 일은 없애 달라는 주문이다. 임 내정자는 54세로 정정길 현 대통령실장(68)보다 14세가 젊다. 50대 대통령실장의 등장은 이명박 정부 내부에 ‘세대교체’의 신호탄이 될 수도 있다. 다음 주 후반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수석비서관급 인선이나 7월 말로 예상되는 내각 개편 때도 ‘젊은 청와대와 내각’을 점치는 이가 많다. 이동관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국민이 원하는 변화의 목소리를 반영하는 차원에서 젊은 실장을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임 내정자는 대통령실장 제의를 받기 전후에 “모든 것을 걸고 일하고 반드시 결실을 보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주변에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또 지역구(경기 성남 분당을) 의원직을 포기하는 문제는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는 전언이다. 한 측근은 “그는 지역구가 한나라당에 우호적인 지역이므로 선수(選數)를 늘리는 것 자체가 정치적으로 큰 의미가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청와대 실무 책임자라는 직무에 승부를 걸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는 것이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임 내정자의 듣는 능력과 조용한 실천력에 주목하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임 내정자를 신뢰하게 된 계기 가운데 하나는 그가 제안했던 ‘타운 미팅’이었다. 2007년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금융채무 불이행자(옛 신용불량자), 대학생, 무주택 신혼부부 등을 이명박 후보가 직접 만나 서민의 고민을 듣도록 한 방식이었다. 한 관계자는 “현장을 발로 뛰면서 어려움을 생생하게 들어야 한다는 이 대통령의 뜻에 딱 맞는 소통채널이었다”고 기억했다. 이런 신뢰를 바탕으로 지난해 10월 대북 비밀특사의 역할도 주어졌다. 현직 노동부 장관의 신분이었지만 그는 싱가포르로 날아가 북한 당국자를 만나 남북 정상회담 가능성을 타진했다. 중도보수 성향으로 평가되는 임 내정자는 10년 의정활동 동안 극단적 선택이나 강경한 발언과는 거리를 둬 왔다. 야당과 접촉하는 과정에서도 ‘대화가 되는 상대’라는 평가를 얻어 왔다. 박근혜 당 대표 시절 대변인을 지낸 임 내정자는 한나라당에 호남 출신 의원이 전무했던 17대 국회에서 이른바 ‘서진(西進)정책’을 앞장서 실천했다. 호남에 제2의 지역구 갖기 운동을 벌였고, 목포 홍보대사로 위촉받아 목포대교 건설 등 현안 해결에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그의 부드러운 성품과 공무원 경력을 들어 ‘쓴소리를 잘 못하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일부에서 나온다. 집권 후반기의 시중여론을 이 대통령에게 가감 없이 전달할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다. 이에 대해 그의 측근들은 노무현 대통령 탄핵 직후 한나라당 의원들이 최병렬 대표의 중도하차를 요구하자 당시 최 대표의 비서실장이던 임 내정자가 “물러나는 게 맞다”며 대표에게 고언한 사례 등을 제시한다. 임 내정자는 2007년 대선후보비서실장, 2008년 초 당선자비서실장으로 이미 이 대통령을 두 번이나 보좌했다. 그가 이 대통령과 깊은 인연을 맺은 것은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이 마무리된 뒤부터다. 그는 당내 경선 때는 ‘중립’을 선언했다. 그 때문에 여권 내에는 임 내정자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과정에 기여한 게 별로 없다는 인식도 없지 않다. 한 관계자는 “당선은 우리가 시켰지만 중요한 자리는 남들이 갖는다는 부정적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면서 “임 내정자가 당과의 관계를 풀어갈 때 이런 평가를 정치적으로 잘 넘어서는 것도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동아일보 변영욱기자 ▼ “소통-화합 우선… 박근혜 前대표도 포함” ▼任내정자 간담회“7일 대통령 만나 결심 밝혀 의원직 포기 크게 고민 안해”임태희 대통령실장 내정자는 8일 정부과천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통령실장으로서 할 일은 국민의 마음과 요구를 국정에 반영하는 것이며 그 요구가 바로 화합과 소통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임 내정자는 “우리 사회가 정치적 사회적으로 많은 갈등을 겪고 있다”며 “어떤 해법이 가장 좋은지 소통을 통해 찾을 것이며 (소통과 화합에는)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의 관계도 포함된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는 고용노동부 출범, 유급근로시간면제제도(타임오프제) 정착 등 숙제가 많아 다른 데(대통령실장직)에 관심을 두지 않고 고용노동부 일을 마무리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하지만 국민적 기대를 안고 출범한 현 정부가 지금 어려운 상황에 있고 이를 이겨나가는 데 내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인지 다시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현 정권 출범에 중요하게 참여한 나로서는 정부의 성공을 위해 무한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그래서 어제(7일) 오전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뵙고 대통령실장 자리를 맡겠다고 했다”고 말했다. 임 내정자는 “이 대통령이 이 자리에서 ‘지금 중요한 현안이 많으니 힘들겠지만 당정과 협력, 소통하는 일을 맡아서 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전했다. 그는 국회의원직을 포기하게 된 데 대해 “서산대사가 입적할 때 읊으신 시 중에 생야일편부운기(生也一片浮雲起·생이란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나는 것)란 구절이 있다”며 “의원직이든 지역구든 원래 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크게 고민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실장 자리가 위상은 높지만 향후 정치 행보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어떻게 일하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라며 “고용노동부 장관이 됐을 때 주변에서 ‘임태희는 끝났다’는 말까지 나왔지만 결과는 그렇지 않았다”고 답했다. 그는 ‘이 대통령과 정운찬 국무총리 후임 문제를 의논했느냐’는 질문에 “그냥 답변을 피했다고 써 달라”고 말했다. 반면 청와대 인사에 대해서는 “화합과 소통의 기조가 반영될 것”이라며 “내가 구체적으로 요구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통합수석실 신설도 이런 이심전심(以心傳心)이 반영된 것 같다”고 말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7일 발표된 청와대 조직개편은 곧 물러날 정정길 대통령실장(사진)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평가가 많다. 청와대 측에 따르면 정 실장은 6·2지방선거 당일 저녁 ‘사퇴 선언’을 한 뒤 국정과제의 우선순위 설정과 정부의 일하는 방식 개선에 주력해 왔다. 행정학자 출신으로 2년 가까이 대통령실장으로 재직하면서 축적한 노하우를 청와대 조직개편에 쏟아 붓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 왔다는 것이다. 정 실장은 특히 사회통합수석비서관실 신설에 큰 관심을 쏟은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은 그동안 “국민과 소통하는 틀을 짜놓고 떠나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 평소 직원조회 때도 “국책과제를 추진할 때 ‘내가 의견을 들었다’는 데 그치지 말고, 사전에 설명하고 반대의견을 경청하고 반영 불가능한 것은 왜 그런지를 충분히 설명하는 노력이 진짜 소통”이란 말을 반복해 왔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 실장은 신설된 사회통합수석실이 자신의 소통철학을 구현해 주기를 바라면서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조직개편에 쏟은 애정 때문인지 정 실장은 7일 오전 조직개편안 언론브리핑도 직접 하려고 했다. 대통령실장이 직접 언론브리핑을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이다. 하지만 실제 발표는 이동관 홍보수석비서관이 맡았다. 한 관계자는 “국무총리 교체 여부나 후임 비서실장 인선 등 쏟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 관련 질문에 정 실장이 충분히 답하기 어려울 것 같아 홍보수석만 나서기로 계획을 바꿨다”고 설명했다. 직접 설명이 무산된 데 대해 정 실장도 아쉬워했다는 후문이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7일 발표된 청와대 조직 개편은 소통 강화, 미래 준비, 체감하는 서민정책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집권 여당이 패배한 6·2지방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을 반영해 열심히 듣고, 미래를 준비하는 동시에 친서민 정책을 중단 없이 진행하겠다는 의지라는 것이 청와대의 설명이다. 청와대는 선거패배 직후 이명박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조직개편 작업에 착수한 것으로 전해졌다. 전체적으로는 ‘1대통령실장, 1정책실장, 8수석비서관’ 골격은 그대로 유지됐다. 그러나 수석과 비서관 사이의 직급인 기획관은 1명 늘어나 4명이 됐다. 메시지기획관이 폐지됐지만 미래전략기획관과 정책지원관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한때 폐지설이 나왔던 정책실장 자리는 유지돼 경제 사회 과학정책을 총괄해 조율하게 된다. 신설되는 사회통합수석비서관실은 이번 직제 개편의 대표 상품으로 볼 수 있다. 그동안 정무수석실 밑의 시민사회비서관이 맡았던 창구를 수석급으로 격상시켰다. 곧 임명될 사회통합수석비서관이 파악한 현장의 국민 목소리가 어느 정도 국가 정책에 구체적으로 반영될지 주목된다. 사회통합수석 산하에 국민소통비서관을 신설한 것도 이런 역할을 극대화하기 위한 포석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4대강 살리기 사업 등에서 이명박 정부의 정책에 뿌리 깊은 불신을 표시해 온 일부 종교계와 시민사회단체를 상대로 쌍방향 소통을 시도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존의 시민사회비서관과 민원관리비서관이 사회통합수석실에 포진했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이 이끌어 온 국정기획수석실은 폐지됐다. 8월 말 5년 임기의 반환점을 앞두고 새로운 어젠다(의제) 발굴보다는 기존 사업의 마무리로 국정의 중심을 옮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 대신 주요 기능을 이날 신설된 미래전략기획관(방송정보통신)과 정책지원관(국정과제, 지역발전)에 분산시켰다. 미래전략기획관실에선 과학기술비서관이 선임비서관으로서 과학기술 진흥을 통한 미래 준비의 역할을 맡게 했다. 과학계는 그동안 ‘별도의 수석비서관실 설치’를 요구해 왔다. 친서민 정책의 지속적인 추진을 다짐하는 뜻에서 사회정책수석실의 이름을 사회복지수석실로 바꿨다. 또 서민정책을 전담하는 비서관을 새로 만들어 청와대 내에서 분산해 추진하던 서민정책을 총괄해 조율하게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다른 나라보다 경제위기를 빨리 극복했지만 그 혜택이 서민층에까지 퍼지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라고 말했다. 그동안 이원화돼 있던 메시지기획관실은 홍보수석실로 흡수됐다. 홍보기획비서관은 언론정책, 행사기획, 대통령 이미지관리(PI) 업무를 맡게 된다. 이명박 정부가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사이버공간에서 정책 메시지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온라인 홍보기능이 대폭 강화됐다. 뉴미디어홍보비서관 산하에 △온라인 PI △온라인 여론 △온라인 홍보 △온라인 협력 등 4개 팀을 설치해 대대적인 온라인 홍보전을 예고하고 있다. 청와대는 5월에 온라인 대변인직을 설치한 바 있다. 이날 발표된 새로운 청와대 조직은 기획관리비서관실에서 기본 틀을 잡고 각 수석비서관실의 의견을 반영해 초안을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정정길 대통령실장이 이 과정에서 외부 의견을 충분히 경청해 줄 것을 당부했고 실장 자신도 다양한 경로로 파악한 외부 의견을 반영했다”고 전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이명박 대통령은 6일 “경제위기 상황에서 벗어난 만큼 내년에는 공무원들의 봉급 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실을 감안해 인상안을 마련하고 예산에 반영하도록 하라”고 지시했다고 박선규 청와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 경제가 큰 위기 상황은 벗어난 것 같다. 이는 모든 국민이 고통을 참으며 정부를 믿고 따라준 결과”라면서 “모두에게 고맙게 생각하며 특히 지난 2년 동안 봉급 동결을 감수하며 묵묵히 일해준 공무원들에게 큰 고마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공무원 봉급인상 지시는 2008년 정부 출범 이후 임금이 잇따라 동결되고 업무성과에 대한 압박을 받아온 공직 사회를 달래기 위한 뜻이 담겨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지난해 하반기에 2010년 공무원 임금 예산을 편성하면서 경제위기 극복 가능성을 감안해 물가인상분 수준인 2.0∼2.7% 선에서 공무원 보수를 인상하려 했지만, 재정적자 규모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면서 ‘2년 연속 동결’로 확정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대 이후 공무원 보수가 2년 연속 동결된 것은 1998∼1999년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에 이어 글로벌 외환위기가 발생한 2008∼2009년이 두 번째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MBC ‘PD수첩’이 지난달 29일 방송한 ‘대한민국 정부는 왜 나를 사찰했나’ 프로그램에서 등장한 전 NS 한마음 대표 김종익 씨의 서가에 꽂힌 책이 눈길을 끌고 있다. TV 카메라를 응시한 채 자신이 사찰당한 상황을 설명하는 김 씨 뒤로는 책 수백 권이 빼곡히 채워진 책꽂이가 눈에 들어온다. 김 씨는 자택에서 촬영에 응한 것으로 알려졌다. 화면을 통해 제목을 확인할 수 있는 책은 ‘한국 민중사’ ‘현대 북한의 이해’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 ‘조선노동당 연구’ ‘혁명의 연구’ ‘혁명의 사회이론’ ‘사회주의 개혁과 한반도’ 등 진보적 사회과학 서적이 상당수 포함돼 있었다. 김 씨가 이 책을 모두 읽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그가 어떤 분야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짐작하게 할 수 있는 것들이다. 이런 사실이 인터넷을 통해 전파된 뒤인 6일 한 누리꾼은 “그런 책은 금서도 아니고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사회과학 서적인 것은 맞지만 김 씨가 PD수첩이 묘사한 것처럼 ‘평범한 은행원’만은 아닌 것 같다”는 글을 올렸다. PD수첩은 김 씨가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로부터 민간인 사찰 피해자이며 평범한 은행원 출신 사업가라고 소개했다. 일부 댓글에는 “이 사건의 본질은 민간인이 사찰을 당한 것인 만큼 핵심이 아닌 내용에 너무 의미를 둘 필요가 없다”는 반응도 나왔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청와대가 지난해 11월경 이영호 대통령고용노사비서관을 상대로 “국무총리실로부터 (공직기강 관련) 보고를 받은 게 있느냐”고 물었지만 이 비서관이 부인해 더 문제 삼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청와대 관계자는 6일 “당시 월간 신동아 등이 이 비서관과 총리실 이인규 공직윤리지원관의 관계에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를 썼다”며 “이 비서관에게 이 내용을 확인했지만 그는 ‘나는 보고라인에 있지도 않다’고 부인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청와대는 이미 청와대 사무실 내에서 다른 비서관과 고성을 지르며 충돌했던 사실이 있었던 데다 이 비서관에 대한 부정적 소문이 들려와 경고를 내렸다고 이 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또 “지난해 12월 말 사찰 피해자인 전 NS한마음 대표 김종익 씨(56)가 ‘검찰이 나를 기소유예했지만 억울하다’며 헌법소원을 낸 사실을 법무비서관실을 통해 알았으나 민간인 사찰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다는 것은 확인하지 못했고 올봄 이후 PD수첩의 취재가 시작되면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은 2008년 9월 설립 초기부터 정상적인 보고채널인 민정수석비서관실에 업무보고를 해왔다고 청와대는 설명했다. 한 관계자는 “다른 정부부처 감사관이 그렇듯 월 1, 2회 정기적으로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 지원관은 총리실 조사에서 “김 씨 사건은 1, 2쪽 분량의 보고서를 작성해 (청와대에) 보고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민정수석비서관실에는 공식적 보고자료는 남아있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관계자는 “감찰 보고의 특성상 사후라도 유출될 경우의 파장에 대비해 서류철을 정기적으로 파기해 왔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검찰 수사를 통해 총리실 컴퓨터를 복원하면 이 지원관이 당시 어떤 보고서를 누구에게 작성했는지 확인될 것으로 보고 있다. 검찰은 이 사건의 수사의뢰를 받은 지 이틀 만에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김 씨에게 출석을 통보하는 등 수사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서울중앙지검에 구성된 특별수사팀(부장 오정돈)은 7일 김 씨를 불러 사찰을 받게 된 경위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특히 공직윤리지원관실이 NS한마음의 회계자료와 김 씨의 업무추진비 내용 등을 어떻게 제출받았는지, 김 씨가 자신의 회사와 거래관계에 있던 시중은행으로부터 사퇴 압력을 받았는지 등도 확인할 계획이다. 특별수사팀은 또 이 지원관 등 수사의뢰 대상자 4명도 이르면 이번 주말부터 불러 조사할 예정이다. 고위공직자 직무사정, 감찰, 업무평가 등을 담당하는 공직윤리지원관실의 고유 업무에 해당하는 것인지, 직무권한이 있는 것인지 등을 살펴보는 법리 검토 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한편 이 지원관 등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밝히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총리실 관계자는 6일 “이 지원관 등이 지인들에게 ‘억울하다’고 호소하는 과정에서 기자회견 얘기가 나온 것으로 안다”며 “일단 기자회견을 하지 않는 쪽으로 정리가 된 것 같지만 이들이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기자회견을 강행할 가능성은 있다”고 말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이태훈 기자 jefflee@donga.com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민간인 사찰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게 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이 대수술을 받게 된다. 조원동 국무총리실 사무차장은 5일 브리핑에서 “공직윤리지원관실 전반에 문제가 있는 만큼 ‘별도의 조치’가 분명히 따라야 한다”며 “(조직운영의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밝혔다. 총리실 관계자들은 “지금 상태로는 고위직 감찰 및 업무평가라는 본연의 업무를 정상적으로 처리할 수 없다”며 고강도 대책마련을 당연한 조치로 받아들였다. 총리실은 무엇보다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직속상관인 국무총리실장에게 보고하지 않은 채 청와대의 일부 비서관과 일해 왔다는 문제점에 주목하고 있다. 총리실 관계자는 “총리실에 그런 부서가 있다는 사실만 알았지 그 외에는 전혀 알 수가 없는 체제”라고 말했다. 개혁방안은 조직 해체보다는 단단한 견제장치를 마련하는 데 초점이 맞춰질 것으로 보인다. 1973년 정부에 공직자 복무기강 전담부서가 설립된 이래 사회윤리관실, 제4조사관실 등으로 명칭과 조직체계는 바뀌었지만 복무기강 확립이라는 순기능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이유에서다. 조 사무차장은 “공직윤리지원관실이 제보를 바탕으로 조사에 착수할 때 대상자가 공직자라는 점을 반드시 확인하는 매뉴얼을 만들고 이런 절차가 엄격히 지켜지는지를 검증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1관 1과 7팀’ 구조인 공직윤리지원관실은 총리실 직원 9명 외에도 경찰청 국세청 금융감독원 등 외부기관에서 33명을 파견 받아 운영되고 있다.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파도처럼 몰려오는 적군, 턱없이 부족한 병력과 무기, 개전 40일 만에 낙동강까지 밀려난 국군…. 6·25전쟁 초기의 급박한 상황에서 총을 들고 전쟁터로 나선 사람 가운데 소년 학도병(학도의용군)을 빼놓을 수 없다. 정형섭 씨(78)도 6·25 참전 학도병 2만7700명 중 한 명이었다. 그는 1950년 8월 부산 대동중 3학년 재학 중 등굣길에 교복을 입은 채 자원입대했다. 그는 “당시 절망 속에 집을 떠나 친척집을 전전하던 중 군에 지원했다”고 회고했다. 입학이 늦어진 탓에 그의 나이는 이미 18세였다. 부산 4부두에 학도병 7000여 명이 집결했다. 군복도 지급받지 못했고 일제 구식 장총 한 자루가 주어졌다. 아버지에게 학도병이 된 사실을 알린 것은 입대 1개월이 지난 9월이었다. 그리고 1개월쯤 지나 아버지의 부음과 함께 “아버지가 눈을 감기 전 ‘형섭이 어디 있느냐’고 하셨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다. 정 씨는 “세상과의 유일한 끈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에 그 자리에서 기절했다”고 회고했다. 첫 전투는 포항시내 여자중학교에 집결한 인민군과 싸우는 것이었다. 하루 두 끼를 딱딱한 주먹밥으로 때웠다. 그는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절박함에 ‘억울하다’는 생각조차 못해 봤다”고 말했다. 1951년 2월 학도의용군이 공식 해체되면서 수도사단 1연대에 배속된 그는 그해 설악산 대청봉 돌격탈환작전 때 중공군이 쏜 포탄이 터져 온몸에 파편이 박혔다. 정 씨의 허리 뒤쪽에는 아직도 땅콩 반쪽 크기의 파편이 박혀 있다. 요즘에도 금속 탐지기를 통과할 때는 ‘삑’ 하는 경고음 때문에 난처한 일이 생긴다고 했다. 그는 부산 560군병원에 장기 입원하다 1952년 제대했다. 제대 후 그의 삶은 자신의 표현대로 ‘부산 영도다리 밑 거지’였다. 군용 밥그릇을 얻어 빌어먹었다. 그 후 세월이 흐르고 악착같이 달려든 사업에 성공하면서 전쟁을 기억할 기회는 줄어들었다. 그러다가 1990년대 초 한 지인으로부터 “새로 지은 전쟁기념관에 가 봤더니 당신 이름이 있더라”는 전화를 받았다. 정 씨가 병상에서 절망에 빠졌던 시절 쓴 전투일기와 편지봉투가 전쟁기념관 학도의용군 전시실에 전시돼 있었던 것이다. 그가 200자 원고지 12장에 쓴 체험담은 전투현장의 고통을 절절하게 전해준다. ‘하루 백리에서 백오십리를 걷고, 양 어깨에 총알 300발과 사흘 치 쌀을 메고 걷는 것은 말로 못할 고통이며…며칠씩 잠을 못 자고 걷느라 가로수에 부딪히고 개천에 빠지는 일이 잦았다.’ 정 씨는 요즘 안보강사로 일한다. 6·25전쟁 발발 60주년을 맞은 지난달 말에는 거의 매일 초중고교를 방문해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요즘 그의 즐거움 중 하나는 어린 학생들이 보내온 편지를 꺼내 몇 번이고 읽어보는 것이다. 인터뷰 때도 그의 안주머니에는 편지가 몇 통 들어있었다. 한 초등학교 6학년 어린이들이 보낸 편지에는 ‘살아남아 주셔서 감사해요.…선생님 목숨은 불사조같이 하늘이 지켜준 거니 오래오래 사세요’ ‘할아버지 같은 분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나라가 있었던 것 같아요’라고 씌어 있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 在日학도병 조국애 서린 태극기 ▼ 641명 참전… 결의 다지려 태극기에 이름 등 적어6·25전쟁 참전 학도병 중에는 일본에서 건너온 재일학도의용군도 있었다. 재일학도병 641명은 바다 건너 조국을 위해 기꺼이 참전했고 이 중 135명이 실종 또는 전사했다. 전쟁기념관 2층 6·25전쟁실에는 빛바랜 태극기 한 장이 전시돼 있다. 이 태극기는 6·25전쟁 발발 2개월쯤 뒤 일본 도쿄(東京)에 거주하던 한인 학생들이 참전 결의를 다지던 순간을 함께한 역사적 유물이다. 재일학도의용군회 회장을 지낸 우지식 씨(84)는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태극기는 내가 다니던 일본 호세(法政)대의 선배였던 정태희 씨가 보관해 온 것”이라며 60년 전 상황을 들려줬다. 1950년 9월 6일 재일본대한민국민단 소속 대학생 20명가량이 도쿄 시내 민단 사무실에 모였다. 누군가가 “일본에서 자라면서 나라 없는 설움을 겪은 우리가 반드시 조국을 살려내야 한다”며 참전 의사를 밝혔고 다른 학생들도 뜻을 같이했다. 이들은 어렵게 구한 태극기에 먹을 갈아 글을 써넣었다. 우국애족정신(憂國愛族精神) 공산군타도(共産軍打倒) 조국애(祖國愛) 등과 함께 정태희(鄭泰熙) 우지식(禹祗植) 등 당시 참석자 이름을 써넣었다. 이 태극기는 정 씨가 전쟁 중 줄곧 지니고 다녔다. 우 씨는 “정 선배는 전쟁 후에도 ‘악착같이 살아남아서 자녀들에게 우리가 한국인임을 알려주기 위해서’라며 태극기를 간직해 왔다”고 회고했다. 그는 “지역별로 모였던 학생 가운데는 태극기를 구하기 어려워 일장기에 파란 물감을 덧칠해 태극문양을 만들고 먹을 갈아 4괘를 그려 넣기도 했다”고 말했다. 재일학도병은 의용군(義勇軍)이라는 휘장을 달고 다녔다. 일본에 머물던 민단 소속 부녀회가 제작해 군 위문품과 함께 한국에서 싸우던 재일학도병에게 전달한 것이다. 미군 군복을 입고 싸웠던 이들은 휘장을 군복 상의 혹은 군모에 달고 싸웠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20kg에 가까운 병사의 완전 군장에는 진공 포장된 전투식량이 4, 5kg가량 들어간다. 하지만 급박한 전투 환경에서는 정상적인 식사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전투식량의 무게는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군 내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먹지 않고 몸에 붙이는 패치형 전투식량을 개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종합군수학교 소속 한동민 중령과 조민철 소령은 육군 교육사령부가 최근 발간한 ‘전투 발전’ 최신호 기고문에서 “육군 군수정책서 및 비무기체계 종합발전계획에 기술된 것처럼 2025년까지 기존 전투식량을 대체하기 위해 패치형 전투식량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 장교의 제안은 미국 국방부가 2000년 8월 발표한 경피 투과방식 영양전달시스템(TDNDS) 개발 계획을 이론적 바탕으로 삼고 있다. 미군은 2025년까지 전력화를 목표로 이 분야 연구를 거듭해 왔다. TDNDS는 인체 활동에 필요한 비타민과 영양분을 병사에게 피부를 통해 전달하는 패치다. 금연을 위한 니코틴 패치가 상용화한 것처럼 소형 입자로 쪼갠 필수 영양소를 체내로 공급할 수 있다면 ‘무거울 뿐만 아니라 작전 때 먹을 엄두를 낼 수 없는’ 전투식량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접근법이다. 두 장교는 “포만감을 못 느끼는 문제는 공복감 차단물질을 패치를 통해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먹는 즐거움을 빼앗으면 전투 의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20kg에 가까운 병사의 완전 군장에는 진공 포장된 전투식량이 4, 5kg가량 들어간다. 하지만 급박한 전투 환경에서는 정상적인 식사 자체가 불가능한 만큼 전투식량의 무게는 적잖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군 내부에서는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 먹지 않고 몸에 붙이는 패치(patch)형 전투식량의 개발에 착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종합군수학교 소속 한동민 중령과 조민철 소령은 육군 교육사령부가 최근 발간한 '전투 발전' 최신호 기고문에서 "육군 군수정책서 및 비무기체계 종합발전계획에 기술된 것처럼 2025년까지 기존 전투식량을 대체하기 위해 패치형 전투식량 개발에 나서야 한다"고 제안했다. 두 장교의 제안은 미국 국방부가 2000년 8월 발표한 경피(經皮)투과방식 영양전달시스템(TDNDS) 개발 계획을 이론적 바탕으로 삼고 있다. 미군은 2025년까지 전력화를 목표로 이 분야 연구를 거듭해 왔다. TDNDS는 인체활동에 필요한 비타민과 영양분을 병사에게 피부를 통해 전달하는 패치다. 금연을 위한 니코틴 패치가 상용화한 것처럼 소형입자로 쪼갠 필수 영양소를 체내로 공급할 수 있다면 '무거울 뿐만 아니라 작전 때 먹을 엄두를 낼 수 없는' 전투식량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는 접근법이다. 패치의 원리는 간단하다. 패치에 달린 근적외선 센서가 병사의 신진대사 상태를 확인한 뒤 부족한 영양분을 모세혈관 및 패치의 전기적 자극으로 일시적으로 확장된 피부기공을 통해 공급한다는 것이다. 한 중령과 조 소령은 "패치형 전투식량 1개로 최대 4일까지 작전수행이 가능하도록 개발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하지만 '패치 전투식량'이 의학적 안정성을 인정받아 정식으로 보급되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피부를 통한 물질공급은 현재로서는 약품성분 이외에는 상용화한 사례가 없다. 또 대부분 고분자인 필수 에너지원을 패치로 공급하려면 별도의 분자압축 기술이 필요하다. 세균오염, 유효기간, 알레르기 반응 등 여러 위험요소도 넘어야 할 산이다. 두 장교는 "포만감을 못 느끼는 문제는 공복감 차단물질을 패치를 통해 투입하면 해결할 수 있지만 먹는 즐거움을 빼앗으면 전투의지를 떨어뜨릴 수 있다는 점도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군 관계자들은 "미군의 선행연구 결과가 우리 군의 연구에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며 "특수작전 수행 병사 등 정상적인 급식이 불가능한 작전 상황에 제한적으로 쓰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동아일보가 국내 최초로 개발한 뉴스북(동아뉴스북·DNB)의 제1호 ‘MIU 당신을 사랑합니다’에 대해 군은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MIU(Men In Uniform)는 군인 경찰 소방관 등 제복을 입고 국가와 사회를 위해 희생하는 이들의 통칭이다. 국방부 6·25전쟁 60주년 사업단의 오상택 기획부장(육군 준장)은 1일 “동아일보의 MIU 기획시리즈는 올봄 신문기사로 이미 읽었다”며 “제복의 의미를 다룬 DNB 1호는 천안함 폭침사건 및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전후세대에 안보 자유 평화가 생명 같은 가치라는 것을 일깨워준 최고의 기획이었다”고 평가했다. 오 준장은 기자에게 “태블릿 PC를 처음 접했다”며 화면을 손가락으로 넘겨가며 기사와 사진을 꼼꼼히 살펴봤다. 해군본부 정훈공보실 유영식 공보과장(대령)은 “최근 뉴질랜드가 가장 ‘신뢰받는 인물’을 조사한 결과 아프가니스탄전쟁에 두 번 참전한 육군 하사였다”며 “천안함 사건 이후 안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군에 대한 격려와 장병들의 사기진작이 더욱 절실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장병들이 ‘MIU 당신을 사랑합니다’ 콘텐츠를 통해 자부심과 긍지를 느끼며 군생활을 해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방부 차관실 홍준표 정책현안 조정담당(공군 중령)은 “첫 번째 대상을 고를 때 무엇을 중시하느냐가 묻어난다”며 “첫 주제가 국가를 위해 희생하면서 명예를 먹고사는 사람들인 MIU라는 점이 돋보인다”고 평가했다. 공군 재경단 위인태 하사(25)는 “처음 접한 뉴스북의 내용을 읽어 보면 ‘제복 입은 사람’으로서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한다”며 “군과 일반 독자가 DNB를 통해 제복의 의미를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장성에서 부사관까지 다양한 계급의 군인들은 동아일보가 뉴미디어시대의 선도적 역할을 해 온 점에 대해서도 높게 평가했다. 오상택 준장은 “획기적인 뉴스 제공 방식을 도입한 동아일보를 보면서 ‘평평해진 세상’을 절감한다”며 “무선통신기술 기반의 뉴미디어가 독자들의 정보욕구를 충족시키는 데 좋은 방식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군본부 뉴미디어팀 김한솔 중위는 “‘생활 속의 디지털시대’에서 한국 최초로 뉴스북을 만든 동아일보의 발 빠른 행보가 반갑다”며 “신문과 친하지 않은 젊은 세대에 동아일보가 하나의 신문사가 아닌 디지털 기반 정보 제공의 친구로 다가가게 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민군 합동조사단이 지난달 20일 천안함 폭침사건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북한의 소행임을 입증하는 결정적 증거인 북한 어뢰 잔해(CHT-02D 모델)와 함께 공개한 실물 크기의 어뢰 구조도가 엉뚱한 모델의 구조도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합조단은 29일 국방부 청사에서 한국기자협회 등 3개 언론단체와 가진 천안함 토론회에서 이 같은 사실을 인정했다. 3개 언론단체는 사전 질의서를 통해 “어뢰 구조도가 어뢰 잔해와 모양이 다르다”며 진위를 밝혀줄 것을 요청했다. 합조단 관계자는 이날 “CD에 담긴 파일 형태로 입수한 어뢰 설계도면 가운데 CHT-02D와 함께 담겨 있던 PT-97W 모델을 잘못 인쇄했다”며 실수를 인정했다. 다른 군 관계자는 “인쇄 오류를 몰랐다가 1주일쯤 지난 뒤에야 알게 됐다”며 “5월 말 이후 진행한 분야별 전문가 설명회에서는 정확한 (CHT-02D) 모델의 구조도를 놓고 설명했다”고 말했다. 군은 국민을 상대로 한 조사 결과 발표 당시 결정적 증거인 어뢰의 구조도를 잘못 공개한 사실을 확인하고도 1개월 동안이나 오류를 바로잡지 않았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합조단은 지난달 발표 당시 유리관 속에 든 어뢰 잔해와 함께 하얀 바탕에 검은색으로 인쇄된 어뢰 뒷부분 설계도와 실물(약 7m) 크기로 확대한 어뢰의 내부 구조도를 공개했다. 이 중 어뢰 뒷부분 설계도는 정상적인 CHT-02D 모델의 것이었다. 한편 합조단은 이날 4시간 동안 열린 토론회에서 “어뢰 추진체에 쓰인 파란색 ‘1번’ 글씨의 잉크를 분석한 결과 ‘솔벤트 블루 5’ 성분이 나왔지만 이는 일반적인 유성 펜에 쓰이는 성분”이라고 밝혔다. 윤덕용 합조단 공동단장은 어뢰 폭발 후에도 유성 잉크가 남아 있는 이유와 관련해 “어뢰 추진체의 윤활유도 타지 않았고 프로펠러 부분의 페인트도 그대로 남아 있었다”며 “일각의 주장처럼 고온이 발생했더라면 윤활유가 먼저 타야 했다”고 말했다. 이날 언론단체는 “어뢰 잔해의 덮개가 최초 쌍끌이 어선에서 인양될 당시의 동영상에는 제대로 붙어 있었지만 사후에 없어졌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이에 합조단은 “덮개는 총 4개로 그 가운데 2개는 폭발 때 없어졌다”며 “인양 때는 2개의 덮개가 윗부분에 놓여 있었지만 발표 때는 ‘1번’ 글씨가 잘 보이도록 덮개가 없는 쪽이 위로 오도록 전시한 차이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언론단체는 “오해가 풀렸다”는 반응을 보였다. 합조단은 또 천안함 프로펠러 2개의 찌그러진 상태가 다른 이유에 대해 “우현 프로펠러는 모터가 급격히 멈춰서면서 관성의 힘이 크게 작용해 변형이 컸던 반면 좌현 프로펠러는 서서히 정지해 관성의 영향이 별로 없다는 게 스웨덴 선박 전문가의 결론”이라고 설명했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한국과 미국이 27일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점을 2012년 4월 17일에서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했다. 한미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2월 한미연합사령부에서 한국군으로 전작권을 전환하기로 합의한 뒤 3년 4개월 동안 변화된 한반도 주변 안보상황을 감안한 결정이다. 이번 합의가 이뤄진 배경과 의미를 문답(Q&A)으로 짚어본다.》【1】한미 협상 어떻게 진행됐나美국방부 주저했지만 국무부-백악관 “늦춰야”한국과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연기에 대해 ‘암묵적 공감’을 형성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5월 2차 북핵실험 등이 계기가 됐지만 본격적인 물밑 협상은 올 2월부터 시작됐다. 한미 양국은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진통을 겪었다는 후문이다. 특히 미 국방부에선 예정대로 2012년 4월에 전작권을 넘겨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한 반면 외교와 정무적인 판단을 중시하는 국무부와 백악관의 국가안보회의(NSC)에서는 전환 시기를 늦출 수 있다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27일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전작권 전환 문제를 직접 다뤘던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은 당초 예정대로 2012년 4월에 한국에 넘겨야 한다는 방침을 고수했다”고 전했다. 천안함 사건은 전작권 전환 연기 협상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천안함 폭침 18일 만인 4월 13일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만난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전작권 전환 시기 연기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를 계기로 양국은 사실상 ‘연기’ 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6월 4, 5일 싱가포르 아시아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에서 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게이츠 장관의 회담도 전환 연기에 대한 미 국방부의 반대를 누그러뜨리는 등 협상 진전의 계기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성환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전환 시기를 2015년 말로 하자는 데 양국이 공동인식을 갖게 된 것은 6월 들어서다”며 “하지만 정확한 날짜를 제시하지 않으면 거기에 따른 논란이 있을 수 있어서 우리는 가급적 명확히 하고자 했다. 그런 부분에 대한 조정이 있었다. 발표 전날까지 협의를 계속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해 워싱턴 외교가에서는 “미국은 구체적인 타임테이블을 정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한국 정부는 한반도 안보 상태와 북한 핵문제 상황을 보고 추후에 결정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얘기가 나돈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미국 측은 최장 2020년까지 전작권을 지금처럼 유지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도 했다”며 “하지만 한국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전 정부와 다른 목소리를 낼 경우 어떻게 할 것이냐는 지적이 미 행정부 내부에서 강하게 제기되면서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 1일로 잡게 됐다”고 말했다.토론토=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2】2012년 전환은 왜 무리인가北‘세습 D데이’ 유력… 한국군 준비도 덜돼한미가 전작권 전환 시점을 늦춘 근본적인 이유는 당초 예정된 2012년의 한반도 정세가 어느 때보다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우선 북한의 권력승계 시기에 발생할지 모를 돌발 상황이 거론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건강이 2008년 가을부터 뚜렷이 악화된 가운데 권력의 3대(代) 세습이 김일성 주석의 100회 생일인 2012년 4월 15일 이뤄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는 김 위원장의 3남 김정은이 군부를 장악하지 못한 채 권력을 넘겨받는 상황에서 급변사태가 빚어질 수 있고, 이 과정에서 북한 군부가 모험적 행동을 벌일 개연성이 있다는 점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한국은 물론이고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 주변국이 선거 등을 통해 권력을 교체하는 시기가 2012년에 몰려 있다는 점도 변수다. 주변국이 정치일정 때문에 위기상황에서 신속한 조율과 대응에 실패할 수 있다는 점도 ‘2012년 불가론’에 무게를 실어줬다. 한국군의 준비가 늦어진 이유도 빼놓을 수 없다. 국방부 당국자는 27일 “한미 간 공동평가에서 지난해 말까지 65%가 준비됐다는 평가를 내렸고 예정대로 진행해도 무리는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65%’는 전쟁이 발발할 경우 한국군의 초기대응 능력을 300개 항목으로 정해놓고 이 기준에 충족되는 항목의 단순비율을 뜻한다. 군 관계자는 “나머지 35% 가운데 예산이 많이 들고 축적된 노하우가 필요한 핵심사항이 많다”며 준비 미흡을 시인했다. 이처럼 준비가 늦어진 것은 당초 국방예산 증액분을 너무 높게 잡은 이유도 있다. 2007년 초 한미 양국이 합의한 이후 정부는 국방예산을 ‘7%대 경제성장’을 전제로 매년 9.9% 증액하는 것으로 잡아놓았으나 경제위기의 여파로 올해 국방예산은 3.6% 늘었을 뿐이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3】전환 시점 왜 2015년 12월로 잡았나高고도정찰기 도입-지상작전司창설 마칠때한미 양국이 전작권 전환 시점을 2015년 12월 1일로 확정한 것은 한국군의 군사적인 준비 상황과 주변국의 정치적인 일정 등을 종합적으로 감안한 결과로 볼 수 있다. 군 당국은 전작권 단독 행사에 필요한 정보획득과 전술지휘통제(C4I)체계, 정밀타격능력을 2015년까지 확보하고 지상작전사령부 창설과 용산 미군기지 이전 작업도 2015년이면 완료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군이 전작권을 단독 행사하려면 북한 전역을 독자적으로 정밀하게 감시하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 현재 군은 미군의 KH-11 군사위성과 U-2 고공전략정찰기, RC-135 정찰기, 해상의 이지스함 등을 통해 수집한 대북 정보에 의존하고 있다. 군은 내년에 고고도 정찰기인 글로벌호크를 도입할 예정이었으나 예산 부족 등으로 2015년으로 늦췄다. 또 한국군이 주도하는 새로운 지휘체계를 가동하려면 한국군과 주한미군, 주일미군, 태평양사령부의 C4I체계가 상호 연동해야 한다. 현재 전작권 전환 작업에서 가장 진척 속도가 느린 것은 한국군과 주한미군을 연결하는 C4I체계 구축 작업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울러 북한의 핵 공격에 대비한 방호시설 구축과 장사정포·지하 핵시설 파괴를 위한 정밀타격 전력 확보도 대부분 국방중기계획에 2014년에야 마무리되는 것으로 돼 있다. 육군이 2개의 작전사령부 체제로 전환하는 시기가 2015년인 것도 배경이 됐다. 육군은 2015년까지 1, 3군사령부를 통합한 지상작전사령부를 창설해 현재 대구지역에 있는 제2작전사령부와 함께 2개의 작전사 체제를 완료할 계획이다. 주한미군기지 이전 일정도 서울 용산기지를 2015년까지, 의정부와 동두천의 미 2사단을 2016년 상반기까지 각각 평택기지로 이전하기로 한미 양국이 잠정 합의한 상태다. 이유종 기자 pen@donga.com 【4】‘2015년 12월 전환’은 불변인가靑“재연장 없다” 선 그었지만 北동향이 변수김성환 대통령외교안보수석비서관은 한미 정상이 전작권 전환 시기를 ‘2015년 12월 1일’로 연기하기로 합의한 것과 관련해 “일단 이것이 파이널(최종)”이라고 말했다. 그는 “처음 계획(2007년 전작권 전환 시점 합의)은 ‘도상(圖上)계획’이었다. 이번에 세운 계획은 (2007년 합의에 따라) 실제 전환 준비를 해오면서 당초 목표했던 계획과 차이가 났던 부분을 다 반영한 것이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 봤을 때 다시 연기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미국과 우리 사이에는 그때(2015년)는 그런 (연기할) 일이 없을 것이라는 분명한 인식을 갖고 합의를 본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물론 다음 정부에서 할 일이기 때문에 제가 단언할 수 없지만…”이라는 전제를 달아 여지를 남겼다. 실제 ‘현재’ 시점에선 재연장은 없다고 판단하지만 앞으로 5년 뒤의 ‘미래’를 단정하긴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 사이 한반도에 예기치 못한 안보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가 예정된 시간표대로 군사적 능력을 확보한다 해도 북한이 추가 핵실험을 통해 가공할 핵무기를 다량 보유하는 상황도 있을 수 있고 북한 지도부 교체 등과 같은 결정적 급변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또 전작권의 단독행사에 필요한 우리 군의 군사적 능력 확보가 국방예산 문제 등 여러 이유로 차질을 빚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토론토=정용관 기자 yongari@donga.com ■ 후속조치는10월 한미안보協서 구체화… 을지연습 등 새로운 틀 마련국방부는 2015년 12월 1일로 연기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밑그림을 올해 10월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제42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구체화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후속조치 마련에 착수했다. 국방부 고위당국자는 27일 “다음 달 20일 서울에서 열리는 한미 국방·외교장관 회담인 ‘2+2 회담’을 비롯한 기존의 한미 협의체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이 당국자는 “실무작업은 이미 올해 2월 한미 군 당국 사이에 만들어진 준비팀이 맡아서 한다”고 말했다. 한미 양국은 이번 합의에 따라 매년 여름 실시해 온 한미 연합군사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UFG) 연습의 프로그램과 장기 시나리오를 새롭게 작성할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지난해부터 한국군이 주도하기로 했던 UFG 연습을 올해는 다시 한미연합사가 주관하기로 했다. 국방부는 3년 7개월 늦춰진 새로운 전환 시점에 맞춰 지금까지의 준비과정을 재점검하기로 했다. 군 당국은 그동안 △전구(전쟁구역)작전 지휘체계 △군사협조체계 △새로운 작전계획 수립 △전구작전 수행체계 구축 등 6대 분야 35개 과제를 정하고 준비작업을 해왔다.김승련 기자 srkim@donga.com}
6·25전쟁 60주년을 맞은 25일 정부와 군 당국은 21개국 해외참전국 사망자 추도, 생존 참전용사 위로, 전쟁 당시의 주먹밥 맛보기 등 다양한 행사를 열었다.김태영 국방부 장관과 월터 샤프 주한미군사령관 등 해외 참전국 대표는 25일 서울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주먹밥을 맛봤다. 이 행사에는 전쟁 당시 한국군의 주식이나 마찬가지였던 주먹밥이 나왔고 찐 고구마와 감자, 쑥떡 등 당시 음식도 곁들여졌다. 군 관계자는 “보리 섞은 쌀밥에 간단한 양념을 한 주먹밥을 통해 전쟁 때의 어려움을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샤프 사령관은 주먹밥을 맛본 뒤 “이 주먹밥은 (요즘의 한국 기준으론 볼품없지만) 북한 주민에게는 최고의 성찬이라 생각한다”며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확고한 신념 아래 60년간 경제기적을 이뤘다”고 말했다.이상의 합참의장은 6·25전쟁 참전 21개국 무관단 대표들과 함께 전쟁기념관 중앙로비에 마련된 대형 진고(進鼓)를 21회 쳤다. 전투병을 파병한 16개국, 의료지원단을 보낸 5개국 등 21개국의 발전과 동맹 강화를 의미한다고 국방부는 설명했다.정부는 이날 오전 서울 올림픽공원 내 체조경기장에서 3부 요인과 정당대표, 중앙보훈단체장, 참전유공자, 유엔군 참전용사 등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6·25전쟁 6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오후에는 서울 신라호텔에서 ‘당신은 대한민국의 수호자입니다’라는 주제의 6·25전쟁 참전유공자 위로연을 개최했다.정운찬 국무총리는 위로연에서 “국민의 뜻을 하나로 모아 통합된 힘으로 안보를 다져나가는 데 열과 성을 다하겠다”며 “천안함 사태가 우리 사회 일부에서 갈등과 대립의 불씨가 되고 있어 참으로 안타까운 심정을 금할 수 없다”고 말했다. 800여 참전용사는 행사를 마무리하면서 “대한민국 만세”를 삼창했다.김승련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