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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진 내각 부총리가 지난주 월요일 총살됐습니다. 처형 사유는 김정은에게 불충하였다는 것인데, 회의 때, 특히 김정은이 7차 당대회에서 연설할 때 자리에서 안경을 닦는 등의 행동으로 김정은 눈 밖에 났다고 합니다. 이에 김정은이 김용진을 요해(파악)해 보라고 지시했는데 특별한 것은 없고 러시아에서 유학을 했다는 것이 나왔습니다. 이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총살된 것은 사실입니다. 이 밖에 최휘 노동당 선전선동부 1부부장 등 여러 명이 좌천됐습니다.” 8월 5일 새벽 북한의 고위 소식통으로부터 이런 내용의 제보를 받았다. 7월 25일 김용진의 처형이 진행된 뒤 11일 뒤였다. 이 소식통은 북한 고위 간부의 얼굴만 보고도 직책과 이름을 식별해 낼 수 있을 정도의 상당한 위치에 있는 인물이다. 듣고 보니 김 부총리의 처형 이유는 지난해 4월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꾸벅꾸벅 졸았다고 총살된 것으로 알려진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과 별로 다르지 않다. 현직 부총리가 김정은이 연설할 동안 안경을 닦았다는 이유로 총살됐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파문이 일어날 수 있는 뉴스였다. 하지만 북한 고위 간부의 처형설 보도는 제보만으로는 다루기 어렵다는 점에서 신중하게 접근했다. 처형됐다던 인물들이 불쑥 나타난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제보가 맞는지 교차 확인은 필수였다. 북한 동정을 모니터링하는 정부 관계부처에 김용진과 최휘의 숙청 정보를 제공한 뒤 이것이 맞는지 확인을 요청했다. 대답은 “우리는 정보를 받지 못했다”였다. 김용진은 지난해부터 올해 6월까지 매달 평균 7회 이상 동정이 포착되던 인사였다. 각종 중요 행사가 몰려 있는 8월 말까지 등장하지 않으면 김용진의 신상에 변고가 있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는 뜻이다. 북한에서 행사가 열릴 때마다 관계 부처에 김용진 부총리가 나타났는지를 확인했지만 그는 8월 말까지 나타나지 않았다. 그리고 첫 제보를 받고 26일이 지난 31일 정부는 김용진 부총리가 자세 불량을 지적받은 것이 발단이 돼 처형됐으며 최휘 제1부부장도 혁명화 교육을 받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김용진이 보위부 조사를 받았는데 그 결과 반당반혁명분자 그리고 현대판 종파분자로 낙인찍혀서 7월 중에 총살 집행됐다”고 설명했다. 분명 소식통은 김용진이 러시아 유학생 출신이란 것 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김용진의 경력을 보면 김일성종합대 부총장을 지냈고, 2003년 교육상에 올랐다. 이후 쭉 같은 직책에 있다가 김정은 체제 출범과 동시에 2012년 1월 과학기술 담당 부총리로 승진했다. 뇌물이 오가는 자리와 어느 정도 거리가 먼 교육 관료의 경력은 북한에서 다른 간부와 비교하면 비교적 깨끗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김정은의 눈에 찍히자마자 바로 무시무시한 정치범으로 둔갑했다. 김용진 처형이 보여주는 섬뜩함은 바로 이런 데서 나온다. 김정은이 살생부에 올린 이상 평생을 어떻게 살아왔더라도 도무지 살아날 수가 없다는 뜻이다. 이쯤 되면 북한 간부들은 죄가 있든 없든 김정은 앞에서 무조건 숨을 죽이고 살 수밖에 없다. 죄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찍히느냐 마느냐가 생존의 가장 중요한 잣대이기 때문이다. 그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는 없다. 김정은 체제에서 제일 잘나가던 간부로 꼽히던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나 최휘 제1부부장도 ‘다행스럽게’도 처형은 면했다지만, 하루아침에 농민으로 강등돼 쫓겨나는 판이다. 이런 세상에선 2인자인 황병서가 새파란 김정은 앞에서 무릎을 꿇고 보고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하다. 최근 잇따른 북한 외교관들의 탈북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관심사는 잠깐 해외로 옮겨갔다. 북한 내부에서 어떤 상식 밖의 사건들이 벌어지는지는 그동안 많이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김용진 처형에서 나타났듯이 김정은은 달라진 것이 없다. 작년엔 한국으로 치면 국방장관을 죽이고, 올해는 부총리를 죽이고…. 21세기판 연산군은 여전히 사람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하고 있다. 이쯤 되면 다음 차례는 누가 될지 간부들 모두가 공포에 질려 떨고 있을 터이다. 북한 외교관들이 잇따라 망명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내부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다 듣고 있으면서 도망칠 기회가 있는 그들은 단순히 죽고 싶지 않아 북한을 등지는 셈이다. 김정은은 사석에서 믿고 일을 맡길 충신이 없다는 푸념을 자주 한다고 한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든다고 측근을 죽이는 보스 밑에 있다면…. 아마 김정은부터 제일 먼저 도망쳤을지 모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김용진 내각 과학기술담당 부총리(63·사진)가 김정은이 참석한 행사에서 불량한 자세로 앉아있었다는 이유로 처형됐다고 통일부가 31일 밝혔다. 통일부 관계자는 이날 “김용진은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지적받아 조사받은 뒤 반당·반혁명분자, 현대판 종파로 낙인이 찍혀 7월에 총살당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고위 소식통은 “5월에 열렸던 노동당 7차 대회에서 김정은이 연설하는 동안 안경을 닦다가 지적을 받은 뒤 조사를 받아 왔던 김용진 부총리가 7월 25일 처형당했다”고 밝혔다. 김 부총리가 5, 6월에 잇따라 열린 노동당 대회와 최고인민회의 기간에 김정은 앞에서 태도가 불량하다는 이른바 ‘불경 행위’ 때문에 정치범으로 몰려 처형된 것으로 보인다. 김 부총리는 5월 강석주 전 당 비서 사망 시 국가장의위원회 위원 53명 가운데 서열 30위에 올랐던 인물이다. 31일 현재 북한 대외 선전용 인터넷 매체들에선 김 부총리가 참석한 행사 관련 사진들이 삭제된 것이 확인됐다. 통일부는 또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71)과 최휘 당 선전선동부 1부부장(61)이 혁명화 조치를 받았다고 밝혔다. 혁명화 조치는 지방농장으로 좌천시켜 노역을 하게 하는 북한식 사상교육을 뜻한다. 통일부 관계자는 “김영철 통전부장은 고압적 태도를 보이고 무리하게 통전부의 권한을 확장 추진하는 등 권력을 남용한 것이 원인이 돼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 사이에 한 달여간 지방농장에서 혁명화 처벌을 받았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현재 김영철은 직책에 복귀했고 충성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향후 대남 강경 도발을 보일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최휘 부부장은 선전사업 분야에서 김정은의 지적을 받고 5월 말 이후 혁명화 처벌을 받는 중이라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 한편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 이후 거취가 주목받았던 현학봉 주영 북한대사가 교체되고 후임으로는 미국통인 최일 외무성 국장이 임명돼 영국 정부에 아그레망(외교관 임명 동의)을 구하는 절차를 밟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파리=동정민 특파원}

북한 김용진 내각 부총리(63)가 공개처형을 당했다고 통일부가 밝혔다. 또 김영철 당 중앙위 부위원장 겸 통일전선부장(71)과 최휘 노동당 근로단체 1부부장(61)은 혁명화 조치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31일 정례브리핑에서 “교육부총리 김용진이 처형을 당했고, 당 통전부장 김영철도 혁명화조치를 받았다”며 “당 선전선동부 제1부장 최휘도 현재 혁명화조치 중인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정 대변인은 “여러 가지 북한의 공개처형이 있었다. 고위층이 어떻게 됐다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과 관련해서 정부가 여러 가지 경로를 통해서 확인된 사실에 대해서 말씀드리겠다”며 이같이 밝혔다. 정부 관계자는 “김용진은 6월 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불량한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을 지적받아 조사받은 뒤 반당반혁명분자, 현대판 종파로 낙인이 찍혀서 7월 중에 총살당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은 고압적 태도를 보이고 무리하게 당 통일전선부의 권한을 확장 추진하는 등 권력을 남용하는 것이 원인이 돼서 7월 중순에서 8월 중순 사이에 한 달 여간 지방농장에서 혁명화 처벌 받았다”고 밝혔다. 김영철은 지난해 12월 김양건 전 통일전선부장이 교통사고로 사망한 뒤 그 자리를 이어받았지만 반년 정도 만에 김정은의 눈 밖에 났던 것으로 보인다. 정부 관계자는 “현재 김영철은 직책에 복귀했고 충성을 증명해야 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향후 대남강경 도발을 보일 가능성이 높아 예의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최휘 선전선동부 1부부장(61)의 경우 “선전사업 과정에서 김정은의 지적을 받고 5월말 이후 지방에서 현재 혁명화 중인 걸로 파악하고 있다”고 이 관계자는 덧붙였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최근 한국을 겨냥해 ‘사변(事變)적 행동조치’ 등 대남 협박을 쏟아내는 것은 도발 명분을 쌓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부터 최근까지 스커드와 노동,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잇달아 발사한 데 이어 대남 긴장의 극대화를 노린 예측불허의 군사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특히 SLBM 발사 직후 국제사회의 대북 추가 제재에 맞서고,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등 엘리트층의 탈북 러시로 이완된 체제를 결속하기 위해 추가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군은 보고 있다. 군 관계자는 29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전략적 도발(핵실험 등)과 전술적 도발(국지적 무력충돌)의 효용성을 저울질하고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북한의 도발 시도 자체가 정권 자멸로 이어지도록 응징 태세를 유지하라고 당부한 것도 북한의 기류가 심상치 않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우선 5차 핵실험을 강행한 직후 소형 핵탄두의 실전 배치를 전격 선언할 가능성이 예상된다. 이를 통해 SLBM의 핵 탑재 능력을 입증해 한국 사회 내부의 북핵 공포심을 극대화하고,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무용론을 확산시켜 남남갈등을 고조시키는 전략을 취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합참 관계자는 “북한이 한미 군사연습 기간에 핵실험을 강행해 핵 무장력의 실체를 전 세계에 깊이 각인시킨다는 계산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최전방 지역을 기습 포격하거나 판문점에서 국지 도발에 나설 개연성도 있다. 북한이 최근 판문점 인근 ‘돌아오지 않는 다리’ 북쪽에 지뢰를 매설하고, ‘무자비한 조준사격’을 위협한 점도 이런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판문점의 군사 도발은 피해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과 미국을 겨냥한 강력한 경고 메시지로 활용할 수 있다. 군 관계자는 “북한군이 비무장지대(DMZ) 내 아군 초소를 향해 기관총으로 위협 사격하거나 포격 등 국지전 규모의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북한은 28일 유일한 청년조직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명칭에서 ‘사회주의’란 단어를 빼버렸다. 26∼28일 개최된 청년동맹 제9차 대회에서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명칭을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명명한다”는 내용이 발표됐다. 북한 사회단체 및 조직 중 유일하게 사회주의 명칭을 사용하던 청년조직이 28일 이름을 바꾸면서 김정일 시대에 ‘공산주의’라는 용어를 없앤 데 이어 김정은 체제에선 ‘사회주의’란 용어까지 삭제한 셈이어서 주목된다.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은 김일성 시대의 통치 이념이었지만, 2, 3대 후계자를 거치며 의미가 바뀌었다. 김정은은 28일 대회 연설에서 ‘김일성-김정일주의화’는 김일성 김정일을 영원한 수령으로 모시고 그들의 혁명사상을 지도지침으로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청년동맹은 14∼30세 청년 학생층이 의무 가입하는 단체로 약 500만 명이 소속되어 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주성하 기자}
북한의 유일한 청년조직인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명칭이 28일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바뀌었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제9차 대회 결정서에 의하면 대회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의 명칭을 ‘김일성-김정일주의청년동맹’으로 명명한다는 것을 선포했다”고 29일 보도했다. 북한은 1946년 1월 17일 ‘북조선민주청년동맹(민청)’ 결성으로 최초의 청년 조직을 만든 뒤 1964년 5월 제5차 대회에서 ‘사회주의로동청년동맹(사로청)’으로 다시 이름을 바꾸었고, 1996년 1월 현재의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청년동맹)’으로 명칭을 변경했다. 20년 만에 바뀐 명칭은 ‘사회주의’를 빼고 ‘김일성-김정일주의’를 내세운 것이 특징이다. 북한에서 ‘공산주의’란 용어는 2002년 10월 김정일이 “사회주의도 못 하는 처지에 이상적인 공산주의를 논할 처지에 있지 않다”고 말한 이후 매체에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사회단체 및 조직 중 유일하게 사회주의를 명칭에 박고 있던 청년조직이 28일 이름을 바꾸면서, 김정은 체제에선 ‘사회주의’란 용어까지 삭제 대상에 오른 것인지 주목된다. 사회주의-공산주의 건설은 김일성 시대의 통치 이념이었지만, 2대와 3대 후계자를 거치며 의미가 바뀌었다. 북한은 5월 열린 노동당 7차 당대회에서 공산주의-사회주의 건설 이념 대신 ‘김일성-김정일주의화’를 당 강령으로 채택했다. 29일 청년동맹 9차 대회에 참석한 김정은은 연설을 통해 “김일성-김정일주의화는 위대한 김일성 동지와 김정일 동지를 영원한 수령으로 높이 모시고 수령님들의 혁명사상을 지도지침으로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에서 김일성주의는 주체사상, 김정일주의는 선군이념이란 큰 맥락으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세부적인 내용은 명확치 않고 북한 당국이 시기마다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한편 청년동맹 9차 대회는 23년 만에 26일부터 28일까지 개최됐다. 청년동맹은 만 14세부터 30세까지의 청년 학생층이 의무 가입하는 북한 최대의 청년 근로단체이자 사회단체로 약 500만 명이 활동하고 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발사에 이어 핵무기와 미사일 개발에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24일 SLBM 발사 직후 “국방과학 부문에서 핵무기 병기화 사업에 더욱 박차를 가해 나가는 동시에 그 운반수단 개발에 총력을 집중하라”고 지시했다고 노동신문이 25일 보도했다. 또 “당당한 군사대국으로서 보여줄 수 있는 모든 사변적인 행동조치들을 다계단으로 계속 보여라”라고 지시했다. 북한이 가까운 시일 안에 5차 핵실험을 진행하고 장거리 미사일 실험을 계속 이어갈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동시에 북한은 이미 성공한 SLBM 능력과 잠수함 전력도 계속 증강할 것으로 보인다. 그 시작은 사거리 2000km 이상의 SLBM을 실은 여러 척의 잠수함을 실전 배치해 미국의 대한(對韓)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를 무력화하는 것이다. 북한은 6월 22일 중거리탄도미사일인 무수단 발사 성공 당시 격자형 보조 날개인 ‘그리드 핀(Grid Fin)’을 달아 비행 안정성을 높였던 것처럼 이번 SLBM 발사에도 같은 장치를 장착했다. 군 소식통은 “고각 발사를 할 때 생기는 비행 안정성 문제를 보완하고자 그리드 핀을 장착한 것이며 정상 각도로 발사할 때는 이 장치를 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북한의 핵 탑재 SLBM은 한미 연합 전력에 대한 열세를 만회하는 동시에 향후 대남·대미 핵협상의 우위를 점하는 ‘게임체인저(Game Changer)’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된다. 미국이 핵과 재래식 무기로 북한의 핵 공격을 ‘탐지→교란→방어→파괴’하는 ‘확장억제’는 한미 대북 핵 억제력의 요체이다. 하지만 북한이 SLBM으로 미 본토나 주일미군, 괌 기지의 기습 핵 타격 능력을 갖추면 미국의 확장억제 실행이 어려워질 수 있다. 자국군과 국민에 대한 핵 공격을 감수하면서 동맹국 지원을 결행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큰 까닭이다. 미국이 ‘전략적 딜레마’에 처하는 셈이다. 미국의 대한 확장억제의 동요는 한미동맹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미국의 확장억제의 신뢰성에 의문이 제기되면 한국에서 핵잠(核潛)이나 독자적 핵무장론이 확산되고, 이를 미국이 제지하면서 양국 간 갈등이 초래될 수도 있다. 이 틈을 타 북한은 SLBM 위협을 극대화하면서 미국과 핵군축 협상을 통해 인도와 같은 사실상(de facto)의 핵보유국 지위를 노릴 것으로 예상된다. 또 핵군축 협상과 평화협정 협상을 일괄적으로 제의해 대미·대남 핵 게임을 주도하려고 나설 개연성이 있다. 아울러 북한은 SLBM 확보로 전면전이나 제한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의지를 거듭 천명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기습적 속전속결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을 점령한 후 SLBM으로 괌과 주일미군 기지를 핵 타격해 미 증원 전력을 차단하고 휴전협상을 제의하는 내용의 작전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는 것이어서 이에 대비한 새로운 대응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주성하 기자}
중국 선양(瀋陽)뿐 아니라 단둥(丹東)과 옌지(延吉) 등 북-중 국경 일대에 최근 북한 국가안전보위부와 정찰총국 요원들이 탈북자를 납치하기 위해 대거 파견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최근 중국으로 가려던 한 탈북자는 “위험하니 오지 말라”는 전화를 받고 급히 방문을 취소하기도 했다. 선양의 정통한 소식통은 23일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탈북 사실이 공개적으로 알려지기 닷새 전쯤에 100명이 넘는 북한 검열단이 중국 주재 외교관들과 무역일꾼들의 생활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돼 오는 등 현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은 “중국에 파견된 북한 근로자가 6만5000명에 이르는데, 식당 종업원 탈북 이후 다른 근로자들의 탈북을 막기 위한 정찰총국 감시요원 약 300명이 5월경 선양과 단둥, 다롄(大連) 일대에 파견됐다”고 말했다. 북한이 이처럼 검열단을 대거 파견하는 한편 망명을 결심한 북한 외교관이나 탈북민이 접촉할 만한 인사나 사이트에 대해 해킹을 시도하는 정황도 드러나고 있다. 상당수 탈북 단체장은 22일 탈북자 지원 기관인 ‘남북하나재단’의 채용 공고를 가장한 악성코드가 심어진 이메일을 받았다. 재단 측은 “메일을 보낸 적이 없다”고 밝혔다. 태 공사의 망명 발표 직후 영국 탈북민 운영 신문사인 ‘자유북한(Free NK)’ 웹사이트도 북한으로 추정되는 해커들의 공격을 받았다. 해커들은 유럽 등지에서 탈북민이 많이 접속하는 이 홈페이지에 접속자의 개인정보를 빼내는 악성코드를 지속적으로 심었다. 북한의 집요한 탈북 봉쇄 시도에도 불구하고 자유를 향한 북한 주민들의 목숨을 건 탈출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통일부는 북한 주민 3명이 이달 7일 낡은 목선을 타고 평안북도를 출발해 서해 평택 부근 해상으로 내려와 귀순한 사실을 23일 뒤늦게 발표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해외 식당 종업원 13명 탈북과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망명에 대해 보복을 다짐한 북한이 국가안전보위부와 정찰총국 요원들을 중국에 대거 파견해 북-중 국경 지역 감시를 강화하고 있다. 특히 북한 요원들은 탈북자의 움직임을 감시하기 위해 중국 주요 공항에 상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대북 소식통은 23일 “랴오닝(遼寧) 성 선양(瀋陽) 공항에는 한국에서 여객기가 도착할 때마다 북한 요원들이 나와 출구를 감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들은 중국에서 북한 식당 종업원 13명이 탈북한 이후 중국을 방문하는 탈북자를 납치하기 위해 파견된 북한 특수요원들이며, 주요 탈북 인물 50여 명의 사진과 인적사항을 외우고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말했다. 특히 최근 한중관계가 악화되면서 중국 당국이 한동안 소홀히 여겼던 탈북자 단속을 강화하는 데다 북한 보위부까지 합세해 정보를 공유하는 모습도 드러나고 있다. 북한을 탈출해 중국으로 건너간 탈북자 6명은 이날 오전 지린(吉林) 성 옌지(延吉) 인근에서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된 6명 중에 자신의 가족이 포함됐다는 한 탈북자는 “공안이 어떻게 알았는지 다른 차는 다 안 잡고 탈북자 일행이 탄 차만 꼭 집어 단속했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북한의 “심각한 균열”과 “체제 동요”를 언급한 것은 대북 제재 효과가 나타나면서 김정은 체제가 상당한 타격을 입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이 근본적으로 변화하도록 더 강력하게 밀어붙여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가 담겨 있다. 박 대통령이 처음 북한 정권의 ‘붕괴’를 언급한 것은 올 2월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전후해서다. 박 대통령은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해야 한다”며 대북 정책 기조를 ‘대화’에서 ‘압박’으로 전환했다. 이어 북한의 장거리미사일 발사 조짐이 구체화되던 2월 4일에는 “(북한이) 생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고, 장거리미사일 발사 이후 국회 연설에서는 “북한 정권이 핵 개발로는 체제 붕괴를 재촉할 뿐”이라고 성토했다. 이때까지 박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사회에 대북 제재 동참을 호소하며 대북 압박 정책에 대한 의지를 밝히는 측면이 컸다. 하지만 22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와 국무회의에서의 발언은 북한 체제에 의미심장한 변화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는 데 무게가 실려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등 김정은 체제를 떠받치던 중견 간부들이 이탈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며 “대북 제재 효과로 북한의 외교적 고립이 심화되고 있고 비공식적인 자금의 흐름도 예전 같지 않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박 대통령의 발언이 북한의 ‘레짐 체인지(정권 교체)’를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까지 나온다. 앞서 박 대통령은 15일 광복절 경축사에서 북한 간부·주민에게 “한반도 통일시대를 열어 가는 데 동참해 달라”고 호소하며 북한 정권과 분리 대응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정부 당국자는 “박 대통령이 북한 정권의 교체를 직접 목표로 하는 건 아니지만 변화의 조짐이 나타날 때 고삐를 조여야 한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이날 “북한이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자멸하고 말 것이란 사실을 확실하게 깨닫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또 박 대통령의 발언은 경각심을 갖고 철저히 대비할 것을 주문하는 측면도 있다. 북한은 을지프리덤가디언(UFG) 군사연습이 22일 시작된 것을 계기로 외무성과 총참모부, 조평통 등을 동원해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총참모부 대변인 성명은 “사소한 침략 징후라도 보이는 경우 가차 없이 우리식의 핵 선제 타격을 퍼부어 도발의 아성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겠다”며 핵 공격 가능성을 언급했다. 이어 “조금이라도 분별없는 망동을 보인다면 아직 세상이 알지 못하는 상상 밖의 무차별적인 징벌이 가해질 것”이라며 테러 가능성을 내비쳤다. 정부도 북한의 위협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전날 “중국을 방문했던 탈북민 3명이 최근 북한에 납치됐다”며 각별한 주의를 당부했다. 아울러 박 대통령은 ‘안보 위기’를 여러 차례 언급하면서 내부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행동에 단호히 대처할 것을 당부했다. 이는 우병우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거취 및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감찰 내용 누설 의혹,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논란 등과 연관이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어수선한 정국을 안보 중심으로 풀어 나가겠다는 뜻을 내비쳤다는 것이다. 또 내각과 사정기관 기강 잡기에 나섰다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안보와 경제의 어려움을 반드시 극복해 내겠다는 우리 모두의 단합된 의지가 무엇보다 절실한 때”라며 “위기 상황을 앞에 두고 내부의 분열과 반목이 지속되고 위기를 극복해 내겠다는 국민적 의지마저 약화된다면 퇴보의 길로 접어들게 될지도 모른다”고 호소했다.장택동 will71@donga.com·주성하 기자}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사진)가 탈북한 배경은 본국으로 들어오라는 압박에 따라 신변의 위험을 느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은 22일 “태영호 공사가 망명을 결심한 결정적 요인은 김정은이 ‘25세 이상 외교관 자녀 본국 소환령’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국회 정보위원회에 보고했다. 해외 주재 외교관의 탈북 러시가 이어지자 김정은이 외교관 자녀들을 평양에 볼모로 잡아두려 한 것으로 보인다. 국정원은 또 김명철 북한 노동당 39호실 유럽 자금 총책이 4000억 원 상당의 비자금을 갖고 잠적했다는 동아일보의 보도가 사실이라고 확인했다. 한 참석자는 국정원 비공개 브리핑을 듣고 나와 “김명철이나 태영호 등이 본국 소환 조치를 당하자 신변에 위협을 느껴 망명한 게 맞다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해외의 북한 외교관 자녀들은 1년에 한 번 한 달간 귀국해 사상 학습과 생활총화를 한다. 현재 제3국에 있는 한 북한 외교관의 딸은 “조국(북한)에 가면 그동안 편히 살았다는 이유로 공사판에 내모는데, 그 과정을 겪으면 다시 돌아가기가 죽기보다 싫어진다”고 말했다. 태 공사도 자신을 비롯해 자식들의 귀국일이 닥쳐오자 고민 끝에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보인다. 한편 태 공사 가족이 8월 초 영국에서 한국으로 직행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영국 선데이익스프레스는 21일 이들이 영국 타이푼 공군기 2대의 호위를 받으며 독일을 경유해 한국에 도착했고, 태 공사 아내가 영국 쇼핑몰 ‘마크스&스펜서’에 들르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현지 소식통은 22일 “마크스&스펜서를 광고하기 위해 꾸며 낸 소설”이라며 “태 공사 가족은 영국의 협조로 북한 여권을 갖고 한국행 비행기에 오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노동당 39호실 유럽 자금총책 김명철 씨는 유럽에서 외국인 명의의 차명계좌를 이용해 북한의 비자금을 능숙하게 분산 관리하던 전문가로 알려졌다. 김 씨가 갖고 잠적한 차명계좌 중엔 인도인 명의의 계좌도 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 씨는 인도인 명의의 차명계좌에서 돈을 찾기 위해 예금주의 위임장을 지닌 변호사를 차명계좌가 있는 은행에 보내 다른 은행에 있는 자신의 계좌나 현지처 명의의 계좌에 돈을 입금시켰다. 이후 김 씨가 돈이 입금된 은행 지점에서 매니저를 만나 인출했다. 인도인은 김 씨가 조작한 가상의 인물이다. 김 씨는 유럽의 많은 중소은행들이 예금 유치만 중시한다는 허점을 파고들어 이런 방식을 활용해 다양한 차명계좌를 관리했다고 한다. 북한 인사 명의의 계좌는 서방 정보기관의 감시를 받기 때문에 북한은 자금세탁 블랙요원을 활용해 비자금을 숨겨왔다. 김 씨 정도 레벨의 ‘기술자’는 북한에 몇 명 되지 않아 북한 당국의 의존도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김 씨는 평양엔 본부인을, 해외엔 현지인 부인을 두는 이중생활을 20년 가까이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자식은 북한 부인에게서만 낳는다는 노동당의 원칙 때문에 현지인 부인과는 자녀를 두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 씨는 두 아들을 서방에서 키웠다. 김 씨는 해당 국가 영주권자이지만 두 아들은 올 상반기에 해당 국가 시민권을 차례로 획득했다. 그의 마음이 떠난 배경에는 북한의 과도한 요구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몇 년 전부터 감당하기 어려운 외화 획득 과제를 부과했고, 뜻대로 되지 않자 가족 중 한 명을 터무니없는 구실로 국가안전보위부 감방에 가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자주 쓰는 가족을 인질로 하는 압박전술이었다. 그래도 김 씨가 과제를 달성하지 못하자 구속된 가족을 고문하기 시작했고 결국 가족이 숨지는 ‘사고’가 벌어졌다. 이 경우 해외 요원은 철수시키는 것이 원칙이지만 김 씨를 대체할 인물이 없어 즉각 소환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은 김 씨가 분노해 망명길에 오르게 했다. 김 씨 가족을 숨지게 만든 보위부 요원은 처벌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현재 서방 국가의 보호 아래 주기적으로 은신처를 옮기며 잠적 생활을 하고 있다. 김 씨는 한국에서의 신변 안전 문제, 미국의 독재자 자금 전액 몰수 정책 때문에 망명지를 어디로 선택할지를 두고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유럽의 한 국가에서 6월 잠적한 북한 노동당 39호실 유럽 자금총책 김명철 씨는 북한에 살던 가족이 국가안전보위부의 고문으로 숨지자 이에 반발해 망명을 결심한 것으로 21일 알려졌다. 김 씨가 4000억 원이란 엄청난 금액을 들고 잠적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북한에서 대체할 수 없는 최고의 자금세탁 전문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현지 소식통은 전했다. 김 씨는 북한에 있는 정식 부인 외에 해외에 현지처를 따로 두는 것까지 묵인받을 정도로 지도부의 신임을 받았다. 그런 김 씨가 외화 할당량을 제대로 채우지 못했다는 이유로 보위부가 가족을 고문해 숨지게 하자 분노한 것이다. 한편 북한은 20일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과 관련해 주민들이 접할 수도 없는 대외용 매체인 조선중앙통신에 공개하며 비난하고 나섰다. 한국 정부가 17일 태 공사의 망명 사실을 발표한 지 사흘 만이다. 북한은 태 공사의 이름을 직접 거론하진 않은 채 “도주자는 많은 국가 자금을 횡령하고 국가 비밀을 팔아먹었으며 미성년 강간 범죄까지 감행한 것으로 하여 그에 대한 범죄수사를 위해 지난 6월 이미 소환 지시를 받은 상태”라고 주장했다. 또 “남조선(한국) 괴뢰들이 도주자가 항일 투사의 아들이라느니 하는 등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늘어놓으면서 도주자의 더러운 몸값을 조금이라도 올려보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고 비난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국장 김명철(현지 사용 이름)이 올 6월 서방의 한 국가에서 잠적하면서 유럽 내 북한 공관들이 패닉 상태에 빠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소식통은 19일 “김 총국장이 갖고 잠적한 4000억 원가량 가운데 유럽 내 북한 공관 운영비와 외교관 생활비가 상당수 포함돼 있다”고 전했다. 그는 “이번 사태 때문에 유럽 내 북한 외교관 중 최고 원로라고 할 수 있는 김정일의 이복동생인 김평일 체코대사가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급히 평양에 들어갔지만 아직 돌아오지 않고 있다”며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잠적한 김명철의 직책은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국장으로 돼 있지만 유럽 공관들의 운영자금을 총괄하고 있어 북한 외교관들로부터 ‘상왕(上王)’ 대접을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에게 잘 보여야 한 푼이라도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 대사들도 그가 나타나면 머리를 숙여야 했다고 한다. 소식통은 “김 총국장의 위상은 한국에 망명한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와 비교할 수 없이 훨씬 높다”며 “그런 사람이 망명을 선택했기 때문에 북한 외교관들과 해외 무역일꾼들이 받았을 충격은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본국에서 특수요원까지 대거 급파해 기를 쓰고 김 총국장을 추적하는 이유도 그의 망명이 가져올 충격파가 너무나 크기 때문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정부 당국자는 “(김 총국장의 잠적이) 사실관계는 맞지만 한국 정부와는 관련이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총국장이 갖고 잠적한 4000억 원은 현금이 아닌 계좌에 든 자금으로 알려졌다. 해외에서 노동당 자금을 관리했던 고위급 탈북자는 “그가 돈을 직접 들고 움직였다기보다는 자신이 관리하던 비자금 계좌를 챙겨 해당 국가에 망명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총국장의 망명 시점이 6월인 것도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북한의 최대 비자금 은신처로 알려진 스위스 정부는 6월 2일을 기준으로 자국 내 북한 은행 지점과 계좌를 모두 폐쇄했다. 이때 다급해진 북한이 스위스 은행에 있던 자금을 황급히 옮기는 과정에서 김 총국장이 거액을 챙겨 망명할 기회가 생겼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한편 김 총국장의 아들 가운데 한 명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5월 현지 언론에 자신이 시작한 금융 관련 벤처기업을 홍보하는 인터뷰를 했다. 하지만 이 기사는 김 총국장의 망명 사실이 보도된 직후 해당 언론사 사이트에서 삭제됐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와 부인이 항일 빨치산 가문인 ‘백두산 줄기’ 출신인지에 대해 엇갈린 주장들이 나오고 있다. 복수의 탈북 외교관들은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태 공사에 대해 안다고 말한 한 소식통은 18일 “태 공사가 북한 고위층 자제들과 함께 공부한 까닭에 항일 빨치산 태병렬의 아들이란 설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태 공사의 부인인 오혜선 씨가 항일 빨치산 출신인 오백룡과 6촌 간이란 이야기도 있지만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또 다른 소식통은 “태 공사의 부인이 오백룡 집안인지 아닌지는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덕을 볼 만큼 가까운 관계는 아닌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백두산 줄기 출신의 첫 탈북 사례로는 잠비아 북한대사관에서 서기관으로 일하다 1996년 망명한 현성일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이 꼽힌다. 그의 친할아버지가 김일성과 항일 빨치산으로 활동하다 전사한 현용택이다. 현 위원의 탈북 이후에도 삼촌인 현철해가 강등되지 않고 북한군 원수까지 올랐던 데는 항일 빨치산 출신 가문이라는 든든한 배경이 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태 공사는 10년 내내 영국에서 지낸 것은 아니며 김정일 사망 전후로 홍콩에서 부영사 격으로 몇 년 동안 근무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국제 금융 중심지인 홍콩에는 김정일의 비자금이 적잖게 은닉돼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홍콩은 김정은의 고모인 김경희 등 로열패밀리는 물론이고 최룡해 등 고위 간부들이 비밀리에 치료를 받는 곳이기도 하다. 김정은의 이복형인 김정남도 2000년대 후반 홍콩 옆 마카오에 거주했다. 태 공사는 김씨 일가의 집사 격으로 일을 하면서 최고위층의 신임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면서 김정남에 관한 동향 보고서 작성에도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도 나온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의 유럽 내 노동당 자금 총책이 올해 6월 4000억 원가량의 비자금을 갖고 잠적해 북한당국에 비상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17일 한국 입국 사실이 공개된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도 이 사건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유럽의 한 대북 소식통은 18일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책임자인 김명철(가명) 씨가 유럽의 한 국가에서 두 아들과 함께 6월에 잠적했고 극비리에 현지 당국의 보호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김 씨가 관리하던 자금은 유로와 파운드, 달러 등을 모두 합쳐 4000억 원 정도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며 모두 들고 나온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유럽에서 북한 사상 최대의 당 자금 탈취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개성공단이 가동될 때 북한이 1년 동안 남쪽에서 받은 돈이 9600만 달러(약 1062억 원) 정도였음을 감안할 때 북한 지도부가 크게 휘청거릴 만큼의 자금이 사라진 셈이다. 이 소식통은 “김 씨가 이동해 안전한 망명지로 가는 것을 막기 위해 북한에서 특수 요원들을 대거 파견했고, 유럽 내 전체 외교 역량을 총동원해 혈안이 돼 있다”며 “한국을 포함한 서방 국가들도 김 씨를 망명시키기 위해 극비리에 뛰어들었다”고 밝혔다. 김 씨는 해당 국가에 20년 동안 살면서 북한의 유럽 내 자산 관리를 총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북한의 유럽 내 자금 흐름을 잘 알고 있고, 김정은 일가가 유럽에서 어떤 방식으로 돈을 은닉해 오고 사치품을 조달하는지 등을 소상히 파악하고 있을 것으로 보여 북한 체제에 큰 타격을 줄 것으로 보인다. 북한의 유럽 내 최고위급 외교관 중 한 명인 데다 김정은 가문의 ‘집사’ 역할을 해왔던 태 공사도 김 씨를 체포하라는 등의 지시를 받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태 공사가 이를 감당하기 어려워 본국 소환 뒤 처벌을 피하기 위해 가족과 함께 망명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태 공사의 가족 중 1명은 긴박한 탈출 과정에서 함께 한국으로 들어오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북 소식통은 “영국이 아닌 제3국에 체류하던 자녀는 아직 현지에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주성하 zsh75@donga.com·조숭호 기자}

18일 망명 사실이 새롭게 알려진 노동당 39호실 대성지도국 유럽지국 총책임자인 김명철(가명) 씨는 현지에서 20년 동안 살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는 노동당의 유럽 자금 관리를 책임지고 있지만, 그의 활동 범위가 서유럽에만 국한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김 씨가 지냈던 국가에서 외교관으로 일했던 한 탈북자는 “그 나라는 중동과 아프리카를 오가기에 수월한 위치여서 당 자금을 벌어들이는 인물들이 가족을 현지에 정착시키고 거점으로 삼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김 씨가 중동과 아프리카를 대상으로 한 광범위한 불법 거래에도 깊숙이 관여했을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소식통은 “사건이 벌어진 국가 이름과 김명철의 본명은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말했다. 다만 김 씨는 현지에서 활동하며 ‘김명철’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씨의 탈출 동기는 지난해부터 북한에 거주하던 가족과 친지들이 숙청 대상이 되면서 신변에 불안을 느꼈기 때문이다. 김 씨의 두 아들은 해당 국가에 거주하면서 올해 초 시민권을 취득한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둘째 아들은 1988년생으로 현지에서 다국적 인터넷 금융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씨 부인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북한에 있을 가능성도 있다. 김 씨의 탈출로 유럽 내 모든 북한 공관에는 비상이 걸린 상태다. 한 소식통은 북한에서 특수요원들이 그가 접촉할 만한 선을 먼저 차단하느라 공작을 펴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엔 김 씨가 도움을 요청할 만한 인물들에게 김 씨 명의를 도용해 ‘도와 달라’는 e메일을 무차별 발송하는 방식도 포함돼 있다. 김 씨가 진짜 도움을 요청해도 믿지 않게 만들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김 씨는 현재 제3국 망명을 희망하고 있지만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의 사례처럼 막판에 마음을 돌려 한국행을 택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태 공사가 북한 외무성에서 유럽 외교의 중추적인 역할을 했던 만큼 김 씨 탈북 사건에 대한 책임도 무거웠을 것으로 보인다. 또 올해 5월 방북했던 영국 BBC 기자가 김정은을 ‘뚱뚱하고 예측할 수 없다’고 보도한 혐의로 북한 당국에 억류된 사건 때문에 당시 BBC 기자의 방북 문제를 담당했던 태 공사가 책임 추궁을 당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태 공사는 제3국에 가족을 남겨둔 채 영국을 떠날 만큼 탈북을 결행하는 과정이 긴박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 공사의 남겨진 가족은 제3국에 체류하던 딸인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 지도부가 거액을 갖고 탈북한 김 씨의 추적에 이미 나섰고 추가 탈북과 해외 주재원 동요를 막기 위한 대대적인 검열에 착수했을 가능성이 높다. 소식통은 “북한 당국이 태 공사 망명 이후 외교관 가족 소환령을 내리는 등 단속에 돌입했다”고 밝혔다.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17일 태 공사 탈북 사실을 공개하면서 “국내에 입국을 했고 널리 보도가 돼 사실 확인 차원에서 발표하게 됐다”고 말했다. 하지만 가족의 일부가 제3국에 잔류하고 있는 상태인 만큼 정부의 발표가 성급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력 인사의 탈북이 반복되는 것을 두고 △‘북한 체제에 구멍이 뚫렸다’ △‘붕괴가 임박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지나친 비약으로 보인다. 과오나 금전 문제(충성자금 미확보 등)와 같은 개인 차원에서 탈북을 결심하는 것이지 아직 북한 체제의 구조적인 문제로까지 비화한 것은 아니라는 점에서다. 대북 소식통은 “북한 인구 2300만 명 가운데 탈북한 사람은 3만 명 정도”라며 “과거 동독에서는 불과 5년 동안 15만 명이 탈출한 적도 있지만 냉전이 해체될 때까지 동독은 건재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달 러시아에서 망명한 김철삼 주러 북한대사관 3등 서기관 가족은 최근 한국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조숭호 shcho@donga.com·주성하 기자}
노동당 유럽 담당 자금총책의 탈출과 태영호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가족의 망명은 최근 유엔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와 김정은의 자금 독촉 압박 사이에서 갈등하는 북한 해외 파견 일꾼들의 심리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대북제재로 외화를 벌 길은 갈수록 막히는데도 김정은은 여명거리 건설 등 대규모 공사판을 벌여놓고 자금 상납 압박을 강화하고 처벌도 가혹하게 하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18일 “많은 외화벌이 간부와 외교관이 지난해 노동당 창건 50주년 준비 때 빚까지 잔뜩 져가며 가까스로 상납금을 맞췄는데, 당국은 올해 들어서자마자 숨 돌릴 틈 없이 노동당 7차 대회와 여명거리 건설을 구실로 계속 압박을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더 이상 버틸 능력이 없어 귀국하겠다고 해도 이런 상황에선 지원하는 후임자도 거의 없다고 한다. 이처럼 망명을 놓고 갈등하는 해외 파견 일꾼이 많지만 북한이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기 때문에 선뜻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그럼에도 노동당 자금을 다루던 39호실 국장, 부국장급 인사 3명이 지난해 한국에 오는 등 과감하게 탈출하는 해외 체류 북한 상류층이 늘고 있다. 이들은 과거 탈북자들과는 달리 한국에 오면 북한 가족을 의식해 최대한 조용히 숨어 지내려고 하고 있다. 2000년대 이전엔 기자회견을 통해 어쩔 수 없이 신분이 노출됐지만 이제는 원치 않으면 입국 사실조차 공개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현재 알려진 것보다 더 많은 상류층 출신 탈북자들이 국내에서 숨어 지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돈을 챙겨 탈북한 사람과 그러지 않은 사람의 생활 격차가 크게 벌어지기도 한다. 지난해 입국한 한 간부는 고급 아파트를 현금으로 사고 자녀에게 아파트와 벤츠 자동차까지 사주기도 했다. 하지만 간부 출신이라도 따로 자금을 챙겨 오지 못해 임대아파트에서 사는 이들도 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27호 탐사대원 동무. 나는 당신이 남쪽에 있는지, 북쪽에 있는지, 아니면 방송 원고에만 존재하는지 아무 것도 모릅니다. 다만 평양방송이 격주로 금요일 오전 1시 15분에 내보내는 난수 방송을 통해 당신의 존재를 알았습니다. 저번 방송이 12일에 진행됐으니 다음 지시는 26일 금요일 오전에 또 나오겠네요. 여성 방송원이 “지금부터 27호 탐사대원들을 위한 복습 과제를 알려 드리겠다”며 “509페이지 68번, 742페이지 69번…”과 같은 식으로 다섯 자리 숫자를 읽는 것은 처음엔 남쪽 언론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습니다. 하지만 언론도 곧 식상해질 겁니다. 당신이 어디에 있든 상관은 없습니다만, 지금도 대남 공작원을 양성하는 김정일정치군사대학이 문 닫았다는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후배들은 계속 훈련받고 있겠죠. 27호 동무는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모르겠지만 김현희, 김동식 등 임무를 수행하다가 체포된 당신의 선배들을 통해 북쪽의 공작원 훈련 내용을 전해 듣긴 했습니다. 공작원은 인민군 특수 병종의 4∼5배나 되는 훈련량을 소화해 철인이 된다면서요. 그런데 내가 남쪽에 와서 살아 보니 정말 시대착오적인 쓸데없는 훈련을 하는 것 같습니다. 오늘 글은 그래서 적는 것입니다. 내가 겪은 남쪽의 삶과 혹시 당신이 체험했을 경험을 두루 종합해 꼭 보고해 주길 바랍니다. 우선 육체적 능력은 거의 필요 없습니다. 공작원은 군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근육이 빵빵하고, 손에 굳은살까지 있으면 더 의심받기 쉽습니다. 공작원들이 제일 중시하는 게 산악 돌파 훈련이라면서요. “하룻밤에 40∼80km를 돌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김정일의 ‘교시’에 따라 공작원들은 30kg의 모래 배낭을 메고 40km를 3시간 만에 가는 훈련을 한다면서요. 그 교시는 이미 유훈이 돼 누구도 감히 바꿀 엄두를 못 내고 지금도 그런 훈련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참 끔찍합니다. 그런 육체적 능력이면 차라리 올림픽에 출전하는 것이 더 나을 겁니다. 제가 남쪽에 와 보니 여긴 산에 나무와 잡초가 빽빽하게 우거져 접근할 엄두조차 못 내겠습니다. 아무리 공작원이라도 산 몇 개 넘으면 탈진할 겁니다. 행군을 암만 잘해 봐야 멀리 도망갈 수 없다는 말입니다. 더구나 요즘엔 적외선 카메라가 설치돼 칠흑 같은 밤이라도 다 찾아냅니다. 공작원은 비트(은신처) 파는 훈련도 열심히 한다고 들었는데 그냥 땅을 깊숙이 파고 영원히 거기서 쉬는 게 안 잡히는 유일한 길 같습니다. 달리는 자동차 잡아 타기 훈련은 지금도 하나요. 여기 와 보면 알겠지만, 이젠 시골까지 포장도로가 다 돼 있어서 지구상에서 가장 빠른 사나이인 우사인 볼트도 차를 못 따라갑니다. 차는 또 어찌나 많은지 몰래 잡아 타려면 깊은 시골에서나 가능할 겁니다. 그런데 시골 가서 뭐 할 게 있겠습니까. 독도법(讀圖法)도 필수과목이라 하더군요. 그런데 지금은 아이들도 스마트폰 하나만 있으면 목적지와 자기 위치를 다 아는 시대입니다. 현지화를 한다면서 서울말도 힘들게 배운다고 하던데, 그것도 필요 없습니다. 요새 남쪽은 세계화가 돼서 말투가 이상하다고 신고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제가 일하는 서울 광화문에도 중국인이 어찌나 많은지 차라리 중국인 행세를 하는 게 훨씬 안전합니다. 어쩌면 3만 명이나 되는 탈북자 흉내를 내는 게 더 쉬울지 모르겠네요. 서울말 가르칠 교관이 필요하다고 사람 납치해 가는 일도 할 필요 없습니다. 제일 웃기는 일은 단도 던지기를 배운단 소리였습니다. 중세시대도 아닌데, 참…. 요즘 남쪽은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쫙 깔려 있어서 임무를 완수해도 도망갈 수 없을 겁니다. 총 암만 잘 쏘고 단도 잘 던져 봐야 어차피 범인 검거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이곳에서 빠져나가기 어렵습니다. 그런 거나 할 거면 특수 훈련 자체가 무의미하군요. 제가 볼 때는 공작원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구글어스 돌리면 손금 보듯 볼 수 있는데 굳이 와서 정찰할 필요도 없고, 웬만한 정보는 다 신문에 실리는데 기자도 모를 진짜 비밀에 당신이 무슨 수로 접근합니까. 그러니 인터넷이나 도입해 공작원 보낼 시간에 검색을 열심히 하는 게 훨씬 더 효과적입니다. 암살도 마찬가지입니다. 웬만하면 잡혀서 정체가 드러날 것이고, 그럼 미국이 기다렸다는 듯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할 텐데 그걸 감수할 가치가 있을까요. 그러니 27호 탐사대원 동무. 만약 남쪽에 왔다면, 그래도 견문이 넓어졌을 당신이 솔직히 말하세요. 쓸데없는 훈련은 왜 시키고, 쓸데없는 지시는 왜 내리느냐고요.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 주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의 망명은 7차 노동당 대회 이후 내부 결속에 힘을 쏟아 오던 김정은과 북한 핵심 권력층에도 적잖은 심리적인 충격을 줄 수밖에 없다. 북한은 미국과 영국에는 충성심이 검증된 엘리트 외교관을 파견해 왔다. 태 공사가 일반 외교관들이 꿈꿀 수 없는 가족 동반이라는 특권을 누리며 영국에 10년이나 근무한 것도 북한 당국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외교관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망명 신청 전 태 공사는 북한 체제를 옹호하고 이미지를 개선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태 공사가 근무하던 10년 동안 북한 이용호 외무상과 자성남 유엔 주재 북한대사가 각각 주영국 대사를 지냈다. 영국 내 대북인권단체인 국제탈북민연대의 김주일 사무총장은 17일 “영국 북한대사관은 개인 가옥을 개조해 대사관 겸 관저로 쓰면서 외교관 4명이 가족과 함께 한 집에서 함께 살다 보니 서로 유대도 끈끈하다”고 말했다. 태 공사가 망명을 선택한 동기에 대해 정준희 통일부 대변인은 “김정은 체제에 대한 어떤 염증,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자녀와 장래 문제 등”이라고 전했다. 올해 5월 영국 재무부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와 유럽연합(EU) 대북제재 리스트에 포함된 북한 국영보험사인 조선민족보험총회사(KNIC) 런던지사를 압수수색하면서 태 공사가 심리적 압박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2005년 헬기 추락 사고와 수재 등을 이유로 이 보험회사를 이용해 약 600억 원의 외화를 보험금으로 챙겼다. 이곳이 폐쇄되면 유럽 금융 중심지인 영국에서의 북한의 외화벌이 활동도 큰 타격을 입게 된다는 점에서 그의 고민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유엔의 대북 제재로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의 활동이 급격히 위축된 상황도 그의 탈북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고강도 제재로 북한 대사관의 외부 활동이 극심하게 위축되는 가운데 본국의 잇단 압박 움직임이 부담감이 됐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영국 주재 북한 외교관들은 런던에 정착한 수백 명의 탈북민과 유난히 자주 마주쳤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사무총장은 “북한 외교관들은 코리아푸드라는 한국 마트에 자주 왔는데, 이곳 계산원 대부분은 영국에 거주하는 탈북자들”이라며 “10∼20파운드(약 1만4500∼2만9000원)만 들고 와서 탈북자들 앞에서 라면이나 쌀만 사가기를 부끄러워했고, 나중엔 김일성 배지를 떼고 나타났다”고 말했다. 그는 또 “태 공사와도 자주 마주쳤는데 내가 말을 걸려고 하면 ‘김 선생하고는 말을 하지 않겠다’고 손사래를 치면서 피했다”고 덧붙였다. 탈북 외교관들에 따르면 태 공사는 고등중학교 재학 중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1995년 2월 사망), 허담 전 노동당 비서(1991년 5월 사망) 등 북한 최고위층과 함께 중국에서 유학하며 영어와 중국어를 배웠다. 핵심권력층이 아니면 접근하기 힘든 기회를 잡았던 북한판 ‘금수저’인 셈이다. 또 고령화가 심각한 북한에서 불과 마흔 살에 외무성 서구라파국(외무성 8국) 국장대리 겸 EU 담당 과장을 지냈다. 이 때문에 태 공사의 집안도 상당한 고위층이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가 노동당 군사부장을 지냈던 태병렬(1997년 사망)의 아들로 이른바 북한 최고의 명문가라는 항일빨치산 출신인 ‘백두산줄기’라는 얘기도 나온다. 태 공사는 평양국제관계대학을 졸업한 뒤 덴마크어 1호 통역 후보생(김정일 총비서 전담통역 후보)으로 뽑혀 덴마크에서 유학하기도 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