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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오늘은 유럽과 미국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라익스미술관의 전시 ‘베르메르’의 이야기를 준비했습니다.제 주변에도 이 전시만을 보기 위해 네덜란드행 비행기 티켓을 끊을지 고민하는 분이 계실 정도로 애호가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는 전시인데요.개막 전부터 사전 티켓 10만 장의 예약이 마감되더니, 개막 후에는 입장권 45만 장이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6월까지 열리는 전시를 놓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데요.이 전시에 왜 이렇게 많은 관심이 쏠리는지, 또 어떤 작품들이 나왔는지 소개하겠습니다.기획 기간 7년…생애 다시 보기 힘들 전시네덜란드 델프트에서 활동했으며, 살아있는 동안 그림을 팔아 11명의 자녀를 키우며 어렵지 않게 살았지만 말년엔 가난해져 빚을 남기고 떠난 예술가. 베르메르는 15명의 자녀를 낳았지만 이중 4명은 출생 직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이것이 요하네스 베르메르(페르메이르·1632~1675)에 대해 알려진 거의 전부입니다. 편지나 일기 등 그의 삶을 유추할 수 있는 자료도 없고, 남긴 것은 오로지 그림 약 37점 뿐이죠. 보통 우리가 미술관에서 보는 예술가의 작품이라고 하기엔 터무니 없이 적은 숫자입니다.이번 라익스미술관에서 열리는 전시는 그 중 28점을 모았습니다. 베르메르의 작품 대부분을 볼 수 있는 기회인 셈인데요. 준비 기간만 7년이 걸렸다는 이 전시는 팬데믹과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운송료가 치솟아 당분간은 다시 기획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옵니다.또 오래 된 작품들은 한 번 전시를 하고 나면 보존을 위해 얼마간은 수장고에 다시 머물러야 하죠. 이 때문에 베르메르의 작품을 이렇게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거의 마지막일 거라는 생각을 한 관객들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몰려들고 있습니다.그럼 어떤 작품이 전시에 나온 것일까요? 그리고 그 작품 속엔 어떤 이야기들이 있을까요.전시의 첫 출발은 베르메르가 살았던 델프트 풍경으로 시작합니다.강에서 북쪽을 바라본 도시의 모습인데요. 정면에서 왼쪽으로 보이는 시계탑을 자세히 보면 아침 7시 풍경임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이 그림에서 독특한 것은 도심을 저 멀리 밝은 색으로만 그려놓고, 그림자가 드리워진 외곽의 관문을 정면에 배치했다는 것입니다. 화려한 건축을 클로즈업해 그릴 법도 한데, 그저 강물 위에 두둥실 배가 떠다니듯 차분하게 그린 것도 특징이구요.게다가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푸른 하늘을 가득 채운 회색 구름입니다. 이 그림 속 고요함과 차분함. 이것이 베르메르의 팬들을 매료시킨 요소인지도 모르겠습니다.미술관 연구로 드러난 고민의 흔적들이 전시가 준비되는 과정은 작품을 모으는 시간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작품을 과학적으로 또 미술사적으로 분석하고, 연구한 결과를 통해 전시를 기획하는 과정도 매우 중요하죠. 미술관은 베르메르의 새 전기를 출간했고요, 새로운 연구 결과도 발표했습니다.그 중 하나가 베르메르의 유명한 그림 중 하나인 ‘우유를 따르는 여자’에 관한 것입니다.지금의 그림에서는 완전한 흰 벽면의 여백 앞에 여자의 모습만 두드러지게 표현이 되어 있죠. 미술관이 SWIR 기법을 이용해 그림을 촬영한 결과, 여인의 머리 뒤 벽면쪽에 물통 거치대가 그려졌었고, 오른쪽 아래에는 큰 바구니를 그렸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이러한 흔적을 통해 미술관은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준비하고 그림을 그렸던 것으로 알려진 것과 달리 베르메르가 시행착오를 거쳤음을 알게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또 그가 여러 물건들을 배치하고 삭제해가면서 ‘고요함’을 얻는 과정도 파악했다고 덧붙였죠.이 작품에서 중요한 흔적은 바로 여인의 뒤편에 있는 큐피드입니다.큐피드가 발견되기 전 이 그림의 벽면은 비어있었습니다. 그런데 1979년 X-ray 촬영을 통해 큐피드가 있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베르메르가 그렸다가 지운 것으로 당시에는 생각했었죠.그런데 2017년 안료를 분석하면서 큐피드 위에 칠해진 물감은 베르메르가 했던 것이 아니라는 결론이 내려졌습니다. 결국 아주 느린 복원 끝에 2021년 큐피드는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습니다.큐피드의 발 아래 놓여있는 가면까지 보여지면서 이 그림은 굉장히 암시적인 내용을 갖게 되었지요. 여인이 읽고 있는 것은 사랑의 편지이며, 거짓(가면)이 아닌 진실된 사랑을 은유하는 것으로요.그림 오른쪽 커튼도 눈여겨보세요. 윗부분을 잘 보시면 액자에 커튼이 걸려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보는 사람에게 재미를 주기 위한 일종의 장치입니다.진주 속 반짝이는 욕망들한 자리에 모인 그의 작품에서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바로 ‘욕망’입니다.우리가 아주 오래 전 그림을 볼 때는 주로 왕이나 교회가 의뢰한 것을 보다보니 대놓고 화려한 그림에 익숙해져서, 베르메르의 그림을 ‘소박하다’는 착각을 하게 되는데요.그의 그림을 자세히 뜯어보면 옷과 가구, 텍스타일이 꽤나 화려하며 17세기 네덜란드에서 인기였던 ‘진주’가 자주 등장한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이 당시 그림에서 진주는 순수, 아름다움, 사랑을 상징했으며 이에 더해 값비싼 장신구이기 때문에 부를 나타냈다고 합니다. 위 작품에서 보이는 진주 귀걸이는 굉장히 큰 사이즈인데요. 당시 저정도의 사이즈라면 베르메르가 소장할 수 있는 가격대의 것은 아니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때문에 가짜 진주를 사용했거나, 베르메르가 상상으로 그려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합니다.또 위 그림에서 여인이 입고 있는 노란 재킷도 그의 그림에서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베르메르가 사망할 때 남긴 유품 목록에도 이 재킷이 기록되어 있었던 것으로 보아, 베르메르 아내의 옷으로 연구자들은 추정하고 있습니다. 값비싼 옷을 사 그림에 활용했던 것이겠죠.고급스러운 옷, 가짜일지라도 비싸보이는 목걸이와 귀걸이. 이 모든 것들은 베르메르가 그림을 사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 아름다워 보이고 싶은 마음을 자극하기 위한 장치였다는 생각에 이르게 됩니다.그렇다면 우리는 베르메르의 그림을 통해 고요함이 아니라 당시 델프트에 살았던 사람들의 욕망을 읽게 되는 것이죠.라익스미술관이 전시를 직접 찾을 수 없는 관객을 위해 고맙게도 28점 모두를 온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공개(https://www.rijksmuseum.nl/en/johannes-vermeer?ss=)해두었답니다. 나머지 작품도 감상하며, 수백년 전 네덜란드 사람들의 마음을 한 번 만나보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알맹이는 가라!” 서울 종로구 백아트 갤러리에서 팔순을 앞둔 예술가가 22일 퍼포먼스 도중 외쳤다.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삼각 수영복만 입은 채 훌라후프를 돌리는 그는 꽃무늬 버선과 알록달록한 샤워캡을 쓰고 있었다. 부끄러워하는 관객들에게 탁구공을 날리고 등판을 후려치는 퍼포먼스까지…. 모두 작가 성능경(79)의 트레이드마크다. 최근 미술계에서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서울 종로구 백아트에선 성능경 작가의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경의 예술행각’이 4월 30일까지 열린다. 성 작가는 1974년 제3회 ‘ST(공간과 시간)’ 전에서 선보인 퍼포먼스 ‘신문: 1974.6.1. 이후’를 선보인 뒤 전위 미술 1세대로 각인돼 왔다. 당시 전시 기간 동안 작가가 매일 신문을 소리 내 읽고 면도칼로 기사를 오려 냈다. 유신시대 정부의 언론 탄압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1968년부터 작가 생활을 시작했지만, 갤러리 전시는 1991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다. 그런데 올해에만 총 네 차례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현재 백아트에서 진행 중인 그의 개인전에서는 ‘끽연’, ‘수축과 팽창’ 등 1960∼80년대 초반 대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작품과 최근 마무리한 ‘그날그날 영어’ 연작, 지금도 매일 작업 중인 ‘밑 그림’ 연작을 만날 수 있다. ‘그날그날 영어’는 수년간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영어 교육 섹션 지면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겨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밑 그림’은 화장실 휴지로 작업했다. 전시는 무료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실험미술을 하는 청년 작가 그룹 ‘논꼴’의 동인이었던 강국진(1939∼1992)의 기록을 모은 책 ‘아카이브북 시리즈: 강국진 컬렉션’을 발간했다. 강국진은 1968년 정찬승, 정강자 작가와 함께 서울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국내 첫 누드 퍼포먼스로 기록된 ‘투명풍선과 누드’를 선보여 화제를 일으킨 인물이다. 1970∼90년대에는 판화, 회화 작업을 하며 한성대 서양화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이번 책은 2014년 11월 강국진 유족이 미술관에 기증한 기록 9500여 점을 정리한 것이다. 강국진이 개인 카메라로 기록한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 전시 전경이 다수 포함됐다. 이 밖에 컬렉션 목록과 이미지, 평론가와 기증자 인터뷰 등이 수록됐다. 실험미술에 대한 조명은 미술관 전시로도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5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 그룹전을 개최한다. 이 전시는 9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도 열린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단색화의 거장’ 박서보 화백(92·사진)이 최근 폐암 판정을 받은 사실을 공개했다. 박 화백은 23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폐암 3기 판정을 받았다”며 “평생 담배를 물고 살았다가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고서야 끊었다”고 밝혔다. 이어 “당장 죽어도 장수했다는 소리를 들을 텐데 선물처럼 주어진 시간이라 생각한다”며 “작업에 전념하며 더 의미 있게 시간을 보낼 것이고 캔버스에 한 줄이라도 더 긋고 싶다”고 덧붙였다. 박 화백은 “이 소식을 듣고 놀라서 연락하려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갑자기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고 어느 때보다 평온하고 열정으로 가득 차 있다”며 “안부 전화 등 연락을 하지 말아 달라”고 당부했다.박 화백은 한국 추상미술을 개척하고 이끌었다. 2021년 금관문화훈장을 받았고, 루이비통과 협업하기도 했다. 대표작은 반복해서 선을 긋는 ‘묘법(描法·Ecriture)’ 연작이다. 홍익대 서양화과를 졸업하고 홍익대 교수를 지냈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알맹이는 가라!’ 22일 서울 종로구 백아트 갤러리에서 팔순을 앞둔 예술가가 퍼포먼스 도중 외쳤다. 옷을 훌렁 벗어 던지고 삼각 수영복만 입은 채 훌라후프를 돌리는 그는 꽃무늬 버선과 알록달록한 샤워캡을 쓰고 있다. 부끄러워하는 관객들에게 탁구공을 날리고 등판을 후려치는 퍼포먼스까지 성능경(79)의 트레이드마크다. 그가 물러가라고 외치는 알맹이란 양복과 넥타이 속에 숨어 체면 차리기 급급한 권위주의는 아닐까. 최근 미술계에선 1960~70년대 한국 실험미술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성능경 작가는 1974년 전시 기간 동안 매일 신문을 소리 내 읽고 면도날로 기사를 오려내며 유신시대 언론 탄압을 비판한 퍼포먼스 ‘신문: 1974.6.1. 이후’를 제3회 ‘ST(공간과 시간)’ 전에서 선보인 후 전위 미술 1세대로 각인됐다. 1968년부터 작가 생활을 시작했지만, 갤러리 전시는 1991년 이후 이번이 두 번째. 그런데 올해에만 네 차례 개인전이 예정되어 있다. 이날 개막한 백아트 개인전 ‘아무것도 아닌 듯…. 성능 경의 예술행각’에서는 ‘끽연’, ‘수축과 팽창’ 등 1960~80년대 초반 대표 퍼포먼스를 기록한 사진 작품과 최근 마무리한 ‘그날그날 영어’ 연작, 지금도 매일 작업하고 있는 ‘밑 그림’ 연작 등을 만날 수 있다. ‘그날그날 영어’는 수년간 동아일보에 연재됐던 영어 교육 섹션을 스크랩하고, 여기에 작가가 직접 공부한 흔적을 남겨 그림을 그렸다. ‘밑 그림’은 2020년 7월부터 매일 아침 화장실에서 사용한 휴지를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고, 이를 앱 프로그램을 이용해 색깔을 입혔다. 전시는 무료이며 4월 30일까지 열린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최근 강국진(1939~1992)의 기록을 모은 책 ‘아카이브북 시리즈: 강국진 컬렉션’을 발간했다. 실험미술을 추구한 청년 작가 그룹 ‘논꼴’의 동인이었던 그는 1968년 정찬승, 정강자 작가와 함께 서울 음악감상실 쎄시봉에서 국내 첫 누드 퍼포먼스로 기록된 ‘투명풍선과 누드’를 선보여 화제를 일으켰다. 1970~1990년대에는 판화, 회화 작업을 하며 한성대 서양화과 교수로 후학을 양성했다. 이번 책은 2014년 11월 강국진 유족이 미술관에 기증한 기록 9500여 점을 정리한 것이며, 그의 작업에 관련한 기록과 드로잉, 전시인쇄물 및 학교·교직 활동 기록이 있다. 특히 강국진이 개인 카메라로 기록한 1967년 ‘한국청년작가연립전’ 전시 전경 사진이 다수 포함됐다. 이밖에 컬렉션 목록과 이미지, 평론가와 기증자 인터뷰 등이 수록됐다. 책은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디지털정보실·도서실을 비롯한 전국 각 도서관과 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 미술관 전시로도 실험미술 조명은 이어진다. 국립현대미술관은 5월 ‘한국 실험미술 1960~1970’ 그룹전을 개최하며 이 전시가 9월에는 미국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열린다.김민기자 kimmin@donga.com}

프랑스 현대미술가의 전시부터 캐나다 이누이트 예술, 우크라이나 현대 영화까지…. 제14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유럽과 아시아 9개국 대사관과 문화예술 기관이 협업해 전시를 선보인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21일 서울 중구 캐나다대사관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4월 7일 개막해 7월 9일까지 열리는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 전시의 계획을 공개했다. 2018년 3개국의 참여로 시작한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은 올해 네덜란드 스위스 이스라엘 이탈리아 중국 캐나다 폴란드 프랑스 등 역대 가장 많은 9개국이 참여한다. 프랑스 파빌리온에서는 지난해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심사위원 특별언급상을 받은 지네브 세디라의 아시아 첫 개인전 ‘꿈은 제목이 없다’(사진)를 양림미술관에서 선보인다. 작가의 자전적 경험이 어떻게 사회의 보편적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영화적 문법으로 접근한 작품이 공개된다. 캐나다 파빌리온은 국내 처음으로 캐나다 원주민 이누이트 예술을 이강하미술관에서 소개한다. 캐나다 킨게이트족 작가 28명이 작업한 드로잉 및 조각 90여 점이 전시된다. 스위스 파빌리온은 한국과 스위스 사진작가 8명의 작품을 이이남스튜디오 공간에 맞게 구성하고, 포토북 전시도 준비 중이다. 네덜란드 파빌리온은 생태계를 파괴하는 집단을 법정에 세우는 ‘공판 퍼포먼스’를 펼친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우크라이나 현대 영화를 상영할 예정이다. 이스라엘 파빌리온은 영상 오브제 설치 전시를, 중국 파빌리온은 대나무를 소재로 전통과 현대의 조화를 꾀한 전시를 선보인다. 폴란드 파빌리온은 10년후그라운드, 양림쌀롱 등 전시 공간에서 공공프로그램을 기획한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까요? 작품을 상자에 넣어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 이상의 훨씬 복잡한 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그 작품이 바다 건너 먼 외국에서 온 것이라면 말이죠. 얼마 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이 그랬습니다. 이 전시는 프랑스 조르주 루오 재단, 말랭그 갤러리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 소장품이 한자리에 모였답니다. 전시가 끝나고 작품들은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가야 했는데요. 이 모든 과정은 미술관에 소속된 ‘쿠리에’(작품 호송인)가 점검합니다. 이 역할을 위해 한국을 찾은 퐁피두센터의 보존복원가 A 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인터뷰이가 개인 사정으로 익명을 요청해 A 씨로 표기합니다).모든 것은 ‘쿠리에’의 눈앞에서지난달 29일 전시가 끝나고 다음 날 퐁피두센터의 쿠리에를 기다리던 미술관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프랑스 파리에서 전남 광양까지 온 쿠리에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죠. A 씨는 “한국에 올 좋은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했습니다. 미술관에 도착한 A 씨는 가장 먼저 작품들의 변화를 체크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루오 작품은 종이에 유화로 그린 것이 많아 재료 특성상 세밀한 점검이 필요했습니다. 작품마다 포장법도 모두 다릅니다. 작품을 이동 상자인 ‘크레이트’에 어떻게 넣고 보호재는 무엇을 넣을지, 세워서 운반할지 눕혀서 운반할지, 손으로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등 여러 방법이 자세히 정해져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쿠리에가 확인합니다. 그 다음에는 작품을 차에 실어 세관을 거쳐 비행기로 이동하겠죠? 작품이 파리에 도착해도 바로 열 수 없습니다. “갑자기 박스를 열면 기온, 습도의 급변으로 작품이 손상될 수 있어요. 비행기 진동, 온도, 습도에 따라 사용하는 크레이트의 재질부터 여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사전에 합의되어 있습니다.” 작품을 빌려주는 퐁피두센터와 전시를 여는 전남도립미술관이 이런 상세한 부분들을 상의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입니다. 쿠리에는 이 합의된 과정이 잘 진행되는지 봐야 하기에, A 씨가 자리에 없으면 작품 포장이나 운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단계마다 상태를 체크하고, 변화가 있다면 어느 시점에 생긴 것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죠.작품 보존에는 ‘윤리’가 필요하다 전시를 관람하는 경험이 대부분인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미술관들이 왜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A 씨는 이런 과정을 ‘윤리’로 설명했습니다. 관계자가 상황이나 조건에 타협해 작품에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을 객관적 연구와 매뉴얼로 방지한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즉, 시간이나 예산이 부족하다고 임의로 저렴한 크레이트나 보호재를 사용하는 사태를 막는 것이죠. 당장에 큰 손실은 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작은 균열도 큰 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A 씨는 프랑스의 예술가 겸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1889∼1963)의 드로잉 100여 점을 복원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수년에 걸쳐 이뤄진 작업은 과학적 검사, 미술사 연구, 가치 결정까지 복잡한 단계를 거쳤습니다. 특히 콕토가 종이에 붙인 스카치테이프의 흔적을 없애는 것을 두고 긴 숙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 “테이프의 흔적은 작가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테이프의 점착 성분으로 인해 생긴 갈색 얼룩이 시간이 지나면 더 진해지고, 제거하기도 어려워진다는 판단 아래 없애기로 결정했죠. 손상은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나지만, 미술관 작품은 후대의 사람들도 보아야 하는 것이니까요.” 물질의 화학적 반응을 고려해 ‘과학자’처럼 느껴졌지만, 콕토 작품의 의미를 고려하는 부분은 ‘미술사가’로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예측·연구하며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철학적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그는 ‘보존복원가의 윤리’를 강조했습니다. “보존복원의 모든 가치 판단은 직업윤리가 바탕입니다. 특정인이나 대중의 요청에 따른 무분별한 보존복원, 즉 개인의 미적 판단에 의하거나 진정성을 무시한 복원 처리를 해서는 안 되죠. 작품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미술사적 연구 등 윤리적 검증을 하며 작업에 임해야 합니다.” 저는 A 씨의 이야기를 통해 공공 미술관의 역할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공적 자금(세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은 시민들이 봐야 할 좋은 작품을 수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볼 수 있도록 보존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도록 연구하고 알리는 것이 그 역할이겠지요. A 씨는 “루오가 한국에서 누구나 알 만한 작가는 아니지만, 풍부한 미술사를 보여주는 전시였다”며 “향후에도 이런 시도로 한국 미술관들이 앞으로 나아갈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 주었습니다. 독자 여러분도 이번에는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 미술의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 어떠세요? ※뉴스레터 ‘영감 한 스푼’은 매주 금요일 오전 7시 발송됩니다. QR코드를 통해 구독 신청하시면 이메일로 먼저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김민 문화부 기자 kimmin@donga.com}

미국의 한 지역 아트페어에서 생존 작가 중 최고가 판매기록을 가진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조각품이 관객 실수로 산산조각 났다. 19일(현지 시간) 뉴욕타임스(NYT)와 AFP통신에 따르면 마이애미의 ‘아트 윈우드’ 프리뷰 행사에서 한 관람객이 쿤스의 ‘풍선개(Balloon Dog)’ 조각 받침대를 발로 건드려 작품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작품은 겉모습이 풍선처럼 보이는 도자기로, 4만2000달러(약 5500만 원)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40cm, 길이 48cm인 조각품은 투명 아크릴 받침대에 올려져 있었고, VIP 프리뷰 기간인 16일 칵테일 행사 중 한 관객의 실수로 깨졌다. 목격자인 스티븐 갬슨 씨는 NYT에 “작품이 100개 넘는 조각으로 깨졌고 직원들이 빗자루로 파편을 쓸어 담고 있었다”며 “계획된 퍼포먼스인가 싶었는데 조각품을 깬 관객 얼굴이 빨개진 걸 보고 사고임을 알았다”고 했다. 이어 그는 “깨진 작품을 보려고 사람이 더 몰려 깨진 조각을 팔 생각이 있느냐고 갤러리에 문의했다”고 밝혔다. 갤러리 관계자는 “이번 사고로 파란색 풍선개 작품이 799개에서 798개로 줄었다. 희소성이 높아져 수집가들에게는 좋은 소식”이라며 웃었다. 갤러리는 “불행한 일이지만 관객이 손을 대거나 일부러 작품을 건드리진 않았으며, 보험에 들어놨기에 절차에 따라 처리될 것”이라고 밝혔다. 쿤스의 ‘풍선개’는 다양한 색과 크기의 시리즈 수천 점이 제작됐다. 2013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가로세로 각각 3m가 넘는 오렌지색 ‘풍선개’ 작품이 5840만 달러에 팔려 당시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했다. 현재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는 2019년 쿤스의 작품 ‘토끼’의 낙찰가인 9107만 달러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미국의 한 지역 아트페어에서 현대미술가 제프 쿤스의 풍선개 조각품이 관객의 실수로 산산조각이 났다. 19일(현지 시간) AFP통신 등에 따르면 미국 마이애미의 아트페어 ‘아트 윈우드’ 프리뷰 행사에서 한 관람객이 쿤스의 ‘풍선개’(Balloon Dog) 조각이 있는 받침대를 발로 건드려 조각품이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해당 작품은 겉모습은 풍선처럼 보이지만 도자기 작품으로 4만2000달러(약 5500만 원) 가치를 지닌 것으로 추정된다. 높이 40cm, 길이 48cm였던 조각품은 투명 아크릴 받침대에 올려져 있었으며, ‘아트 윈우드’에는 미국과 해외 갤러리 50여 곳이 참가했다. ‘풍선개’가 산산조각 난 것은 VIP 프리뷰 기간인 16일 이었다. 당시 장면을 목격한 스티븐 갬슨 씨는 뉴욕타임스(NYT)에 “작품이 100개 넘는 조각으로 깨졌고 내가 봤을 땐 이미 직원들이 빗자루로 조각을 쓸어 담고 있었다”며 “사전에 계산된 퍼포먼스인가 싶었는데 조각품을 깨뜨린 관객이 얼굴이 빨개진 걸 보고 사고인 걸 알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깨진 작품을 보려고 사람이 더 몰렸다”며 “그걸 보고 깨진 조각을 팔 생각이 있냐고 갤러리에 문의했다”고 밝혔다. 갤러리 관계자는 NYT에 “이번 사고로 파란색 풍선개 조각이 799개에서 798개로 줄어서 수집가들에게는 좋은 소식일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쿤스의 ‘풍선개’를 출품한 벨-에어 파인아트 갤러리 측은 보도자료를 내고 “관객이 조각품을 일부러 깨려고 한 것은 아니며, 칵테일 행사 중 사람이 많아 받침대를 발로 살짝 차 조각품이 넘어졌다”고 전했다. 이전에 보도된 것처럼 손으로 건드린 것은 아니라고 갤러리는 밝혔다. 그러면서 “불행한 일이지만 종종 일어나는 일이기에 보험을 들어뒀고, 보험처리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쿤스의 ‘풍선개’ 조각은 다양한 색과 크기의 시리즈 수천 점이 제작된 바 있다. 2013년 미국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는 가로 세로 3m가 넘는 오렌지색 ‘풍선개’ 조각이 5840만 달러에 팔리면서 생존 작가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이 기록은 2018년 데이비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9030만 달러)에 의해 깨졌고, 2019년 제프 쿤스의 조각 ‘토끼’(9107만 달러)가 현재는 생존 작가 경매 최고가를 기록하고 있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러분 안녕하세요, 김민 기자입니다.미술관에서 전시가 끝나면 작품은 어떤 과정을 거쳐 제자리로 돌아가는 걸까요? 작품을 상자에 넣어 수장고에 보관하는 것 이상의 훨씬 복잡한 과정이 있습니다. 특히 그 작품이 바다 건너 먼 해외에서 온 것이라면 말이죠.얼마 전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인간의 고귀함을 지킨 화가, 조르주 루오’전이 그랬습니다.이 전시는 프랑스 조르주 루오 재단, 말랭그 갤러리와 프랑스의 가장 중요한 현대미술관인 퐁피두센터 소장품이 한 자리에 모였답니다.전시가 끝나고 작품들은 비행기를 타고 프랑스로 가야했는데요. 이 모든 과정은 미술관에 소속된 ‘쿠리에’(작품 호송인)가 점검합니다.이 역할을 위해 한국을 찾은 퐁피두센터의 보존복원가 A씨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인터뷰이가 개인 사정으로 익명을 요청해 A씨로 표기합니다.)모든 것은 ‘쿠리에’의 눈 앞에서지난달 29일 전시가 끝나고 작품 철거 날, 퐁피두센터의 쿠리에(작품호송인)를 기다리던 미술관 관계자들은 깜짝 놀랐습니다.프랑스 파리에서 전남 광양까지 온 쿠리에가 한국인이었기 때문이죠. A씨는 “한국에 올 좋은 기회가 생겨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했습니다.미술관에 도착한 A씨는 가장 먼저 작품들의 변화를 체크했습니다. 이번 전시의 루오 작품은 종이 위 유화로 그린 것이 많아 재료 특성상 세밀한 점검이 필요했습니다.여기에 각 작품마다 포장법도 세세하게 다릅니다.작품을 이동 상자인 ‘크레이트’에 어떻게 넣고 보호재는 무엇을 넣을지, 세워서 운반할지 눕혀서 운반할지, 손으로는 어떻게 들어야 하는지 등 여러 방법이 자세히 정해져 있으며 이 모든 과정을 쿠리에가 확인합니다.그 다음에는 작품을 차에 실어 세관을 거쳐 비행기로 이동하겠죠? 작품이 파리에 도착해도 바로 열 수 없습니다.“갑자기 박스를 열면 기온, 습도의 급변으로 작품이 손상될 수 있어요. 비행기 진동, 온도, 습도에 따라 사용하는 크레이트의 재질부터 여는 방법까지, 모든 것이 사전에 합의되어 있습니다.”작품을 빌려주는 퐁피두센터와 전시를 여는 전남도립미술관이 이런 상세한 부분들을 상의하는 과정을 거쳤다는 의미입니다.쿠리에는 이 합의된 과정이 잘 진행되는지 봐야하기에, A씨가 자리에 없으면 작품 포장이나 운반도 이뤄지지 않습니다. 각 단계마다 상태를 체크하고, 변화가 있다면 어느 시점에 생긴 것인지 파악해야 하기 때문이죠.작품 보존에는 ‘윤리’가 필요하다전시를 관람하는 경험이 대부분인 일반인의 입장에서는 미술관들이 왜 이런 까다로운 과정을 거치는 지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A씨는 이런 과정을 ‘윤리’로 설명했습니다.관계자가 상황이나 조건에 타협해 작품에 피해를 주는 선택을 하는 것을 객관적 연구와 매뉴얼로 방지한다는 이야기로 이해됩니다.즉 시간이나 예산이 부족하다고 임의로 저렴한 크레이트나 보호재를 사용하는 사태를 막는 것이죠. 당장에 큰 손실은 되지 않겠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 작은 균열도 큰 손상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A씨는 프랑스의 예술가 겸 영화감독이었던 장 콕토(1889~1963)의 드로잉 100여 점을 복원한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수년에 걸쳐 이뤄진 작업은 과학적 검사, 미술사 연구, 가치 결정까지 복잡한 단계를 거쳤습니다. 특히 콕토가 종이에 붙인 스카치테이프의 흔적을 없애는 것을 두고 긴 숙고의 과정이 있었습니다.“테이프의 흔적은 작가의 테크닉을 보여주는 역사의 일부입니다. 그러나 테이프의 점착 성분으로 생긴 갈색 얼룩이 시간이 지나면 더 진해지고, 제거하기도 어려워진다는 판단 아래 없애기로 결정했죠. 손상은 아주 오랜 시간 후에 나타나지만, 미술관 작품은 후대의 사람들도 보아야 하는 것이니까요.”물질의 화학적 반응을 고려해 ‘과학자’처럼 느껴졌지만, 콕토 작품의 의미를 고려하는 부분은 ‘미술사가’로 보였습니다. 오랜 시간을 예측·연구하며 가치 판단을 내리는 것은 철학적이기도 했고요. 그러면서 그는 ‘보존복원가의 윤리’를 강조했습니다.“보존복원의 모든 가치 판단은 직업윤리가 바탕입니다. 특정인이나 대중의 요청에 따른 무분별한 보존복원, 즉 개인의 미적 판단에 의하거나 진정성을 무시한 복원 처리를 해서는 안 되죠. 작품의 진정성을 입증하는 과학적, 미술사적 연구 등 윤리적 검증을 하며 작업에 임해야 합니다.저는 A씨의 이야기를 통해 공공 미술관의 역할을 다시 생각했습니다. 공적 자금(세금)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은 시민들이 봐야 할 좋은 작품을 수집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도 볼 수 있도록 보존하며, 더 많은 사람이 작품을 감상하도록 연구하고 알리는 것이 그 역할이겠지요.A씨는 “루오가 한국에서 누구나 알만한 작가는 아니지만, 풍부한 미술사를 보여주는 전시였다”며 “향후에도 이런 시도로 한국 미술관들이 앞으로 나아갈 좋은 영향이 있을 것 같다”고 조언해주었습니다.독자 여러분도 이번 주말은 가까운 미술관을 찾아 미술의 역사를 진지하게 들여다보는 것 어떠세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뉴스레터 구독 신청 김민기자 kimmin@donga.com}

식탁 위 하얀 우유가 엎질러진 모습을 표지로 담은 이 소설은 한 엄마가 자신의 아홉 살짜리 아들 ‘유’를 폭행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곧바로 유를 사랑하는 다정한 엄마 아스미의 일상으로 전환된다. 전업주부이자 한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아내로서 행복을 느끼는 그녀에게 대체 어떤 일이 생긴 걸까 궁금할 무렵, 소설은 또 다른 ‘유’를 독자 앞에 들이민다. 책에는 총 세 명의 ‘유’와 엄마가 등장한다. 세 아이의 엄마는 각각 아스미, 루미코, 가나. 아스미는 남편의 안정적 수입으로 세 엄마 가운데 가장 윤택한 삶을 누린다. 루미코는 프리랜서 작가, 가나는 바람을 피워 집을 나간 남편과 헤어진 싱글 맘이다. 세 가정의 모습이 교차되는 가운데, 엄마들은 시간이 갈수록 한계에 부딪힌다. 아스미는 차분하기만 했던 아들 유가 학급 친구들을 괴롭히고 있었음을 알게 되고, 그때부터 유는 아빠와 할머니에게도 거친 언행을 일삼는다. 그녀의 남편은 아들의 문제를 회피하며 “네가 교육을 잘못했다”고 비난만 한다. 루미코의 남편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다. 남편은 자신의 일이 줄어들며 무기력해지자 가정의 수입을 책임지게 된 루미코를 되레 비꼬기 시작한다. 집안일과 육아를 분담해달라는 아내의 제안에 억지로 응하더니 급기야 아이들에게 폭력을 행사한다. 가나의 아들 유는 가장 착한 아이로 그려지지만, 같은 반 친구의 계략으로 도둑이라는 누명을 쓴다. 이 세 명의 유 중 엄마의 손에 죽임을 당한 아이는 누구일까. 긴장하며 소설을 읽게 되는 건 세 엄마가 처한 상황이 자칫하면 극단적으로 치달을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식탁 위 컵에 담긴 흰 우유가 엎질러지듯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아이, 양육의 책임을 떠넘기는 남편 등의 요소가 결합되면 엄마는 무너지고 행복했던 집은 하루아침에 지옥이 된다. 섬세한 감정 묘사를 통해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이 겪는 한계 상황을 현실적으로 드러낸 점이 인상적이다. 제3회 가나자와서적 대상 수상작.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컴퓨터 화면의 기본 단위인 ‘픽셀’을 이용해 작업해 온 홍승혜 작가가 사각형 픽셀을 벗어나 한층 자유로운 작업을 선보인다. 국제갤러리 개인전 ‘복선을 넘어서II’를 통해서다. 홍 작가는 9일 기자간담회에서 “최근 들어 작업하는 프로그램을 포토샵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바꿨다”며 “20년 만에 네모(픽셀) 감옥으로부터의 탈출”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국제갤러리 서울점의 1관과 3관에서 벽화 조각 사운드 조명 등의 작품을 선보인다. 1관에서는 작가가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을 활용해 새로운 조형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을 담은 평면 작업들이 설치됐다. 평면 이미지를 입체로 만든 자화상 조각 ‘홍당무’, 기계에 대한 애정을 표현한 ‘모던 타임스’도 볼 수 있다. 3관에선 작가가 만든 음악이 배경에 깔린다. 픽셀로 만든 사람 모양의 조형물들이 춤을 추는 듯한 ‘무도회장’ 콘셉트로 공간을 구성했다. 조명이 바닥을 비추고 알록달록한 꽃 조형물이 곳곳에 장식돼 있다. 이 공간은 햇빛이 들지 않으면 완전히 다른 분위기를 자아내, 이를 보여주기 위해 갤러리는 매주 수요일 오후 8시까지 문을 연다. 3월 19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광복 이후 초창기 대학에서 조각 교육을 받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만들었을까.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은 1950∼19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우성 김종영(1915∼1982)으로부터 지도 받은 작가 4명의 작품을 모아 ‘분화(分化)’전을 개최한다. 김종영은 서울대 미대가 창설된 1948년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1세대 교수다. 1953년 영국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조각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해 주목받기도 했다. 이번 전시에선 그의 제자 송영수(1930∼1970),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최의순(89)의 조각 19점, 드로잉 38점을 선보인다. 스승은 어떤 철학을 갖고 제자들을 가르쳤을까.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유고집에서 김종영 선생은 예술 교육은 말로 지도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말없이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혔다”며 “작품으로 먼저 보여주고 제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 잠깐 이끌어주는 정도만 해야지 자세하게 설명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작가들의 서울대 재학 시기는 6·25전쟁 기간과 겹친다. 교수진과 직원들은 피란 중 부산에 임시 교사를 만들어 수업하다 1953년 9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김종영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며 실기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작업했다. 박 실장에 따르면 당시 대학을 다니는 학생 수가 적었기에 제자들은 일대일 교육을 받는 수준이었다. ‘분화’전이 열리는 미술관 신관 3층에서 볼 수 있는 송영수의 작품은 철을 재료로 작업해 선선과 공간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두 인물이 손과 발을 맞잡고 묘기를 선보이는 듯한 ‘곡예’(1966년)와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토템’(1970년) 등이 전시됐다. 지하 1층 전시장에서는 최만린, 최종태, 최의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대학 입학 전 조각가 박승구(1919∼1995)에게 지도를 받기도 했던 최만린의 작품 중에선 서예의 필치에서 영감을 얻은 후기작들이 출품됐다. 문학도를 꿈꾸었던 최종태의 작품은 서사가 있는 회화와 여인상이 주를 이룬다. 최의순은 건조 시간이 짧아 빠르게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석고를 재료로 한 작품을 선보인다. 최종태, 최의순 작가는 지금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역사를 돌아보는 ‘Record: 김종영미술관 20년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김종영 작고 20주기인 2002년 12월 15일 개관했다. 이때 만든 본관 ‘불각재’는 생전 김종영이 작업실에 붙였던 이름을 그대로 따왔다. 김종영이 강조했던 ‘깎지 않고(不刻)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신관 사미루(四美樓)는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이라는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담은 집이라는 의미로 김종영의 경남 창원 생가 사랑채 건물에 걸려 있던 현판에 새겨진 글자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종영의 작품, 그리고 과거 전시 사진을 볼 수 있다. 두 전시는 3월 26일까지 열린다.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푸른 대지를 칼로 자른 듯, 땅 아래로 파고 들어간 미국 워싱턴의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는 미국인이 좋아하는 공공 기념비 중 하나다. 크고 높게 지어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조용히 어우러져 ‘부끄러운 상처’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82년 23세 예일대 학생일 때 디자인 공모에서 우승해 이 기념비를 만들고, 지금은 미국에서 존경받는 건축가인 마야 린(64)이 지난달 31일 한국을 찾았다. 중국계 미국인인 린은 서울 용산구 페이스갤러리에서 작은 개인전 ‘자연은 경계가 없다’를 열고 있다. 전시장에는 한반도에서 남북을 가로질러 흐르는 임진강과 한강을 표현한 ‘핀 강―임진과 한’(2022년) 등 조각·설치 작품 5점이 걸려 있다. 이날 갤러리에서 만난 린은 “(국경과 관계없이) 흐르는 물과 산맥이 흥미로웠다”고 했다. 예술과 건축을 병행하는 그는 “건축은 한 편의 소설을 쓰는 것과 같고 예술은 시를 쓰는 일 같다”며 “그리고 기념비는 상징성과 건축적 기능을 동시에 고려해야 하기에 이 둘을 합친 것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대표작인 베트남 참전용사 기념비에 대해 “전쟁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은 살을 베이는 듯한 고통”이라며 “언젠가는 이 상처가 낫겠지만 흉터는 남는다”고 했다. 그는 “그래서 땅을 칼로 벤 듯 잘라낸 뒤 드러난 단면에 반짝이는 화강암 비석을 세우고 그 위에 참전용사들의 이름을 새긴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전에서 전사하거나 실종된 미국인 5만5000명의 이름이 새겨진 이 기념비에는 지금도 매년 수백만 명의 발길이 이어진다. 2016년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으로부터 대통령 자유 훈장을 받은 그는 2025년 완공될 시카고 오바마 대통령 센터의 공공 조각 제작도 맡고 있다. 올해 다보스포럼에서는 사회 발전에 기여한 예술인에게 시상하는 ‘크리스털 어워드’를 수상했다. 3월 11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일제강점기가 끝나고 처음으로 대학에서 조각 교육을 받은 작가들은 어떤 작품을 했을까? 서울 종로구 김종영미술관은 1950~54년 서울대 조소과에 입학해 우성 김종영(1915~1982)의 교육을 받은 작가 4명의 작품을 모은 ‘분화(分化)’전을 개최한다. 김종영은 1948년 서울대 미대가 창설될 때부터 1980년까지 서울대 조소과 교수를 지낸 1세대 교수다. 1953년 영국에서 열린 ‘무명 정치수를 위한 모뉴멘트’ 국제조작콩쿠르에서 한국인 최초로 입선해 주목을 받았다. 전시장에서는 그의 제자 송영수(1930~1970), 최만린(1935~2020), 최종태(91), 최의순(89)의 조각 19점, 드로잉 38점이 전시됐다. 박춘호 김종영미술관 학예실장은 “김종영은 유고집에서 예술 교육이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스승이 말없이 본을 보여줘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며 “작품으로 먼저 보여주고 제자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고 느껴질 때 잠깐 이끌어주는 정도로만 해야지 친절하고 자세하게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전시장 속 작가들이 학교를 다닐 무렵은 6·25 전쟁이 일어났던 시기다. 교사와 직원들도 피난을 가 부산에서 임시 교사를 만들었다가, 1953년 9월 다시 서울로 왔다. 김종영은 학교 관사에서 생활하며 실기실에서 제자들과 함께 작품을 했다. 당시 대학을 다니는 학생이 거의 없었기에 1:1 교육을 받는 수준이었다고 그는 전했다.‘분화’전이 열리는 미술관 신관 3층에서 볼 수 있는 송영수의 작품은 철을 재료로 해 선적인 요소와 공간감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두 인물이 손과 발을 맞잡고 묘기를 선보이는 듯한 ‘곡예’(1966)와 스테인리스스틸 조각 ‘토템’(1970)등이 전시됐다. 지하 1층 전시장에는 최만린, 최종태, 최의순의 작품을 볼 수 있다. 대학 입학 전에도 박승구(1919~1995)에게 조각을 배운 최만린은 서예의 필치에서 영감을 얻은 후기 작품들이 출품됐다. 문학도를 꿈꾸었던 최종태는 서사가 있는 회화와 여인상 작품이 주를 이룬다. 최의순은 건조 시간이 짧아 빠르게 작업을 완성해야 하는 석고를 재료로 한 작품을 볼 수 있다. 박춘호 학예실장은 “최종태와 최의순 작가는 구순이 넘은 나이에도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종영미술관 본관에서는 개관 20주년을 맞아 미술관의 역사를 돌아보는 ‘Record: 김종영미술관 20년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김종영미술관은 김종영 작고 20주기인 2002년 12월 15일 개관했다. 이 때 만들어진 본관 ‘불각재’는 생전 김종영이 작업실에 붙였던 이름을 그대로 땄다. 김종영이 강조했던 ‘깎지 않고(不刻) 최소한의 가공을 통해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이라는 의미를 담았다. 신관 사미루(四美樓)는 ‘좋은 날, 아름다운 경치, 기쁜 마음, 즐거운 일’ 등 네 가지 아름다움을 담은 집이라는 의미로 김종영의 경남 창원 생가 사랑채 건물에 걸려있던 현판의 내용이다. 이처럼 공간에 담겨진 뜻과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김종영의 작품, 그리고 과거 전시 사진을 볼 수 있다. 두 전시는 3월 26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양화가 윤형재(70)의 개인전 ‘백색 미래’가 서울 강남구 부띠크모나코 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다. 이번 전시는 ‘예술가의 십자가’, ‘미래의 기호’, ‘마음의 꽃’, ‘빛의 드로잉’ 등 신작 20여 점으로 구성됐다. 홍익대와 뉴욕 프랫인스티튜트 대학원을 졸업한 윤 작가는 작업할 때 흰색을 수차례 덧칠한다. 그렇게 표현한 순백색 바탕에 간결한 형태의 십자가, 꽃 등을 담았다. 전시장 입구에 있는 ‘예술가의 십자가’에 대해 윤 작가는 “종교적인 의미는 아니지만, 나이가 들수록 절대자의 인간에 대한 보이지 않는 사랑을 생각하게 된다”며 “죽음을 앞두고 스스로를 반성하는 뜻에서 순수한 정신적인 의미를 십자가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마음의 꽃’은 깨진 화분을 표현했다. 그는 “양극화와 사회적 갈등이 심해져도 누군가는 꿈을 키우며 살아가기에 갈등을 깨진 화분으로, 꿈은 꽃으로 표현했다. 각자 의견이 달라도 함께 미래를 꿈꿀 수 있는 세상에 대한 기대를 담았다”고 말했다. ‘미래의 기호’는 미래의 언어를 음악적 기호로 표현한 것이다. 전시 제목 ‘백색 미래’에 대해 그는 “미래는 백지이고 사람들이 각자 생각하는 바를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의미로 지었다”고 했다. 그는 2001년 점자를 결합해 시각장애인도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을 선보였다. 외환위기 이후 모두가 힘든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미술 작품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을 떠올리고 작업한 것. 당시 아버지로부터 처음으로 “아들을 화가 시키길 잘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가족이 나의 예술에 공감해 준 것에 감동했다. 그때부터 함께하는 사회를 만드는 방안을 고민했다”고 말했다. 전시가 열리는 부띠크모나코 뮤지엄은 올해 재개관했다. 부띠크모나코 뮤지엄 이사장인 이병주 플래닝코리아 대표는 “기술적 측면이 주로 부각됐던 건축 분야를 미술과 결합해 새로운 형태의 콘텐츠를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24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여러분 안녕하세요지난주 뉴스레터에서 막 개막한 리움미술관 마우리치오 카텔란 개인전 소식을 전해드렸었는데요.사실 1월부터 리움미술관 연간 전시 계획에 카텔란이 있는 것을 보고 미술관에 전화를 걸었답니다.“카텔란 인터뷰는 안하나요…?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데이비드 다투나가 바나나 먹었을 때 기분이 어땠는지 묻고 싶어요… 카텔란이 그거 답 하나만 해줘도 재밌는 얘기가 될 거 같아요…”그런데 카텔란은 평소에도 언론 인터뷰를 잘 하지 않고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고 하더군요. 그리고 얼마 뒤 서면 인터뷰를 진행한다는 연락을 미술관에서 받았고, 전시 개막 다음날 바로 질문을 보냈습니다.카텔란이 거의 일주일만에 답을 보내와 오늘은 뉴스레터로 서면 인터뷰 내용 전문을 공개합니다.🔥답변을 받은 제 느낌은.“이 사람 정말 새침하고 냉소적이네…!” (혹은 그런 캐릭터를 보여주려고 하네)였습니다. 그래서 원래 레터를 구어체로 작성했는데 오늘은 서면의 느낌을 살려 문어체로 정리해보겠습니다.카텔란은 무슨 생각을 하고 이 전시를 열었을지, 한 번 감상해보세요!솔직히 말해봐요, 바나나 먹혔을 때 기뻤죠?제 첫 질문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서 관객이 바나나를 먹었을 때 기뻤죠?’였습니다.‘기분이 어땠나요?’가 아니라 ‘기뻤죠?’라고 물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그 때의 해프닝이 작가의 이름을 확실하게 각인시킨 성공한 마케팅이라고 저는 생각했기 때문이거든요. 카텔란은 뭐라고 답했을까요?―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비치에서 당신의 작품 ‘코미디언’의 바나나를 데이비드 다투나가 먹었을 때 기뻤나?“그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그렇게 흥미롭지가 않았고, 어쩌다 그런 모양이 나왔다. 처음에는 플라스틱 모형 바나나를, 그 다음엔 금속 모형을 몇 달 동안 갖고 구상해보았는데, 전시해도 되겠다 싶을 만큼 매력적인 버전이 없었다. 그 때 테스트한 작품을 집에 아직도 갖고 있다.그러다 가장 단순한 아이디어, ‘그냥 바나나를 그대로 설치하면 되잖아?’라는 생각으로 결정하게 된 것이다.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진 것일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다 재활용이고, 일종의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역시나.. ‘그 작품 그렇게 대단한 것 아냐’라는 아주 새침한 답변으로 제겐 느껴졌습니다. 그러면서 미술사에 새로운 거 없잖아? 어차피 다 재활용인데 뭘 그렇게 호들갑이니? 라며 반문하는 모습입니다.다음 질문. 또 다른 ‘카텔란 스캔들’의 서막. 2016년 작품이자 18K 황금으로 만든 변기 ‘아메리카’에 관한 해프닝도 물었습니다. 당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백악관이 구겐하임미술관에 반 고흐 작품을 빌려달라고 요청하자, 이 미술관 큐레이터는 반 고흐 대신 ‘아메리카’를 트럼프에게 제안합니다. 트럼프에 대한 반감을 내비친 아주 도발적인 제안이었고 이것 역시 굉장한 화제가 되었습니다.저는 물었습니다.― 당신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2016)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잘 어울릴 것이라고 생각하나?“그 결정에 나는 관여하지 않았다. 트럼프 정부 백악관이 반 고흐 작품을 요구했을 때, 구겐하임의 큐레이터 낸시 스펙터가 ‘아메리카’를 대신 빌려주겠다고 제안한 것이다. 낸시는 아주 날카로운 정신을 가진 훌륭한 큐레이터다. 또 그녀는 큐레이터로서 구겐하임 소장품 무엇이든 나와 상의 없이 외부에 대여해 줄 권리가 있다.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됐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다.”저는 ‘아메리카’와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잘 어울릴 것 같냐고 물었는데, 카텔란은 즉답은 피했습니다. 당시 결정에 자신은 전혀 관여한 바가 없다면서요… 그럼에도 백악관에 전시됐다면 영광이었겠다는 답으로 대신했네요.왜 그렇게 선 넘는 걸 좋아해요?그 다음 질문은 리움미술관 전시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의 작품은 미학적으로 열심히 감상하기보다 그냥 슬쩍 보고 ‘이렇게 선을 넘네’라는 단상의 연속이죠.― 당신은 사람들을 도발하는 것을 좋아하나? 미술계 사람들도? 그렇다면 왜 그런가?“나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하고, 여기엔 권위에 대한 반골 기질을 지닌 내 성향이 작용한다고 본다. 나는 모든 형태의 정해진 권력에 대한 반감이 있으며, 할 수 있는 한 그것에 언제나 저항하려고 한다.도발은 전쟁도 시작할 수 있다. 세계2차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이 그랬고, 아프간 전쟁을 촉발한 9·11 테러가 그랬다. 나는 예술이 이렇게 역사를 바꿀만한 파워를 가지길 바란다.과거에 예술은 그런 힘이 있었다. 카라바조의 작품은 신성에 대해 보는 관점을 바꾸었다. 나는 예술 작품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그저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예술은 언제나 권위와 맞서는 과정에 있으며, 아픈 곳을 긁어주는 손톱이다.“이 답변에서 흥미로웠던 대목은 도발과 전쟁에 관한 비유였습니다. 선을 넘는 도발이 폭력적 갈등으로 이어지는 사태까지 감수하더라도 예술이 이런 힘을 갖기를 바란다고 그는 말합니다. 제가 ‘이렇게까지 해야돼?’라고 느꼈던 대목과 연결되는 관점이지요. 호불호는 보는 사람의 몫입니다.― 당신은 작품의 창조자일뿐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등장한다. 왜 스스로를 작품의 플레이어로 결정했나?“어떤 일을 처음 할 때 가장 편한 방식을 택하는 경우가 자주 있지 않나. 나도 처음엔 내 얼굴을 넣는 것이 편해서 그렇게 시작을 했다. 자화성은 굉장히 직설적인 것이지만, 동시에 내면의 몰랐던 부분을 드러내는 무의식적인 고백이 되기도 한다.그래서 자화상은 내 스스로를 드러내고 자랑하려는 것이기보다는, 자신의 내면을 집요하게 들여다보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미술의 역사에 모든 작가들도 자화상을 그리며 이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화상은 미술사의 전통적인 주제(topos)다. 소설 ‘데이비드 카퍼필드’도 찰스 디킨스의 반자전적 작품으로 볼 수 있지 않나.“시니컬한 갑옷 속 숨은 고백…‘나는 죽음이 두렵다’― 당신의 전시는 미술관을 잘 만들어진 소극(farce)이 펼쳐지는 극장, 혹은 어둡고 우울한 놀이공원으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든다. 리움 미술관의 공간을 어떻게 접근했나?“그 작품들은 어디에 전시되든 공간을 그렇게 만들 것이다. 장 누벨이 만든 미술관 공간은 무척 아름답다. 분명 도전적인 장소였지만, 공간 일부가 내게는 지하철역을 연상케 했다. 또 전시관은 상점의 쇼윈도처럼 만들어보자는 생각이었다. 공간에 맞춰 작품을 약간 수정했고, 건축가가 만든 공간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이끌어내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전시 제목은 ‘WE’이다. 이 제목은 냉소적 의미인가 아니면 긍정적 의미인가?“제목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THEY)’로 할까 많이 고민했다. 그러면 완전한 냉소적 의미가 표현됐을 것이다. 인생은 마지막 페이지의 결론은 정해져 있되 그 앞장은 알아서 써내려가야 하는 한 권의 책 아닌가?“저는 이 답변이 재밌었습니다. 전시장에 가면 정말 어둡고 음산한 분위기가 가득한데, 전시 제목이 ‘WE’여서 조금 헷갈렸거든요. 이 어두운 냉소가 우리의 자화상이라는 걸까(냉소적 의미), 아니면 이런 어두움도 스스로의 일부로 인정하고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우리’를 말하는 걸까(긍정적 의미) 궁금했습니다.카텔란은 전시 제목을 우리가 아니라 ‘그들’로 하고도 싶었다며, 냉소의 끝판왕을 보여주고자 했다고 답을 해주었네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풀어서 말하면 이거죠.“우리 어차피 다 죽을 건데, 그 전에 어떻게든 알아서 살아야 되잖아?”이제 마지막 질문과 답변입니다.― 리움 미술관은 당신의 작품 ‘모두’(2007)와 ‘우리’(2010)가 한국인들에게 이태원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 “의도적으로 그랬던 것은 아니다. 내가 그 작품들을 전시하기로 한 것은 서울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기 전이었다. 오히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다만 나는 나의 작품 ‘모두’가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들을 존중하는 상징이 되기를 바란다.내 작품 ‘우리’에 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관이라고 생각해 놀랐다. 관에 두 명을 함께 넣는 경우를 본 적이 없다.그러면서 나의 작품 상당수가 죽음을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놀랐다. 아마 일상에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기 위해 이렇게 작품에서 죽음의 악령을 쫓아내는 퇴마 의식을 치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죽음과 냉소의 기운을 리움미술관에 퍼뜨린 카텔란. 그 자신도 어쩌면 죽음이 두려워 계속 작품 속에서 죽음의 악령을 물리치고 있는 것 같다고 고백하고 있네요.전시장 속에서 카텔란의 새침하고 무심한 냉소를 마주한 다음, 그 차가운 껍질 안에 숨겨진 겁먹은 인간을 한 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영감 한 스푼’은 예술에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창의성의 사례를 중심으로 미술계 전반의 소식을 소개하는 뉴스레터입니다. 매주 금요일 아침 7시 발행됩니다. ▶뉴스레터 구독 신청 https://www.donga.com/news/Newsletter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영화감독이자 작가인 저자는 농인 부모 이상국 씨와 길경희 씨 사이에서 태어난 ‘코다(CODA·농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청인·비청각장애인)’다. 저자가 일본 라디오 방송에 출연했을 때 진행자는 “수어를 사용하는 농인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 같다. 정말 대단하다”고 했다. 저자는 이렇게 답한다.“농인 부모님의 세상은 견고해요. 그러나 그 사회가 항상 밝고 아름답기만 할 거라고 생각하는 건 위험해요. 농인이 농인을 대상으로 범죄와 사기 행위를 벌이기도 하고, 계모임을 하다 도망치는 일도 벌어지죠. 누군가를 대상화해 무조건 아름다울 거라고 믿는 건 또 하나의 선입견 아닐까요?” 저자는 자신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 영화 ‘반짝이는 박수 소리’(2015년)로 풀어내 주목을 받았다. 이번 책에서 그는 ‘장애인의 고통에 공감한다’는 것이 섣부른 착각일 때가 많다고 말한다. 장애를 지닌 이를 불쌍하게 보거나 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이를 대단하다고 여기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처럼 양극단으로 대상화된 이미지 속에서 장애인들의 다양한 삶의 스펙트럼은 쪼그라들고 만다. 저자는 장애인의 삶의 풍부한 면면을 자신의 언어로 써내려 나간다. 특히 삶의 여러 순간에서 마주한 경험과 단상을 논픽션 책이나 다큐멘터리 속 이야기와 엮어 풀어냈다. 어릴 적 반지하방에서 호떡 장사를 나간 부모님을 기다리며 다큐멘터리를 보고, 자신이 발 딛고 있는 세계 너머를 상상하곤 했던 경험이 그 출발점이다. 일본의 농인 사진가 사이토 하루미치의 책 ‘서로 다른 기념일’에서 청인 아이를 낳고 울음소리를 듣기 위해 몸을 최대한 아이와 맞대고 잤다는 대목을 읽으며, 저자는 농인 부모는 소리를 못 듣는 게 아니라 온몸으로 듣는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농인을 위한 미국의 종합대학인 겔러뎃대를 다룬 넷플릭스 시리즈 ‘데프 U’가 농인의 연애, 인간관계, 가십 등 일상을 가감 없이 그려낸 것을 보고, 자신의 다큐멘터리가 농인 문화의 아름다운 부분만을 부각했음을 깨닫는다. 미래의 삶, 페미니즘과 결혼 제도, 창작에 대한 고민도 담았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벽면에 달린 기계 팔이 붓을 들고 빨강, 파랑, 초록, 검정 물감을 묻힌 뒤 흰 벽에 칠한다. 물감의 일부는 흘러내려 아래로 떨어지고, 하단 나무판들에 이 물감이 묻으며 또 다른 그림이 생긴다. 인체를 탐구한 독일 현대 미술가 레베카 호른(79)이 1993년 대전에서 선보인 설치 작품 ‘한국의 풍경 그리기’다. 당시 유럽과 미국에서 주로 활동했던 호른은 1993년 대전 엑스포와 함께 열린 미술전 ‘미래저편에’에 참여하며 한국에 관한 작품을 만들게 됐다. 전시는 프랑스 퐁피두센터 초대 관장 폰투스 훌텐(1924∼2006)이 한국 큐레이터 임세택과 공동 기획했다. 호른의 ‘한국의 풍경 그리기’가 30년 만에 원형으로 복원된다. 대전시립미술관은 “9월 예정된 ‘미래 저편에: 대전 1993/2023’ 전시에서 호른의 복원된 작품을 공개할 것”이라고 9일 밝혔다. 호른은 자신의 몸에 커다란 뿔이나 긴 손가락, 연필이 달린 가면 등을 부착해 신체를 탐구하는 작업으로 1986년 카셀도쿠멘타상, 1988년 카네기상을 수상하며 세계적 작가가 됐다. 이후 작가의 몸에 부착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움직이는 ‘기계 신체’ 작품을 선보였다. 대전시립미술관이 소장한 작품도 이 연작 중 하나다. 작품은 현재 붓과 팔레트, 이것을 움직이는 기계 신체만 남아있고 하단의 나무판과 이를 설치하기 위한 지지대가 유실된 상태다. 김주원 대전시립미술관 학예실장은 “1993년 미술전 ‘미래저편에’가 엑스포 본행사에 비해 관심을 받지 못하며 제대로 된 연구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전시 모습과 드로잉 자료를 최근 확보해 원형을 파악했다”고 말했다. 당시 발간된 사전·사후 도록을 비교하면 호른은 처음 구상 단계에서는 작품 하단에 하이힐을 배치했지만 현장에서 나무판으로 바꿨다. 그가 남긴 드로잉에서 이를 확인했다. 김 실장은 “훌텐이 전시 기획을 위해 수개월간 한국에 머물렀다. 이때 경북 경주 안압지를 본 뒤 전시장 형태를 이와 비슷하게 만들고 주제도 과학·기술보다 한국적 측면을 강조하자고 제안했다”며 “호른 역시 하이힐이 한국 풍경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해 형태를 바꾼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복원 작품을 선보이는 ‘미래 저편에: 대전 1993/2023’ 전시는 대전 엑스포 개최 30주년을 맞아 1993년 열렸던 ‘미래저편에’ 전시를 복원 재현한 것이다. 당시 선보인 다니엘 뷔렌, 장 팅겔리, 니키 드 생팔 등 세계 유명 작가들을 비롯해 운보 김기창, 백남준, 이우환 등의 작품도 선보일 예정이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도발은 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 나는 예술 역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란다.” 미술관 입구에 노숙자 조각을 설치하고, 박제된 비둘기 떼로 로비를 점령시킨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게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당신은 도발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엔 권위에 대한 반골 기질을 가진 내 성향이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WE’ 역시 도발적인 작품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전시장 허공에 축 늘어진 말의 사체를 내건 작품 ‘노베첸토’(1997년) 등으로 음침한 미술관 풍경을 만들어 냈다. 7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무료이며 2주 단위로 사전 예약할 수 있는데, 티켓은 공개 직후 모두 나갔다. 한미소 리움미술관 전시홍보담당 선임은 “하루 평균 2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를 널리 알린 작품 ‘코미디언’(2019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코미디언’은 그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내놓은 작품으로 생바나나를 은색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인 것이다. 당시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작품 속 바나나를 먹어치우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플라스틱, 금속 바나나 모형을 갖고 이리저리 만들어 보다가 결론을 내지 못해 그냥 생바나나를 붙였다”며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재활용이고,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예술의 힘이 도발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촉발한 9·11테러처럼 예술이 폭발적 힘을 갖길 바란다. 나는 예술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백악관이 구겐하임 미술관에 빈센트 반 고흐 작품 대여를 요청했을 때, 미술관 측이 역으로 카텔란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를 제안한 바 있다. 실제로 성사되진 않았다. 이에 대해 카텔란은 “미술관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된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리움미술관은 붉은 카펫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의 모습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모두’(2007년)가 한국인에게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카텔란의 생각도 물었다. 그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작품의 전시 결정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기 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다만 작품이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상징이 되길 바란다.”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서울 종로구 소격동에 있던 아라리오갤러리 서울이 인근 원서동 옛 공간사옥 옆 부지로 옮겨 1년 만인 1일 다시 문을 열었다. 갤러리 공간 디자인은 카페 ‘블루보틀’의 건축 디자이너로 유명한 일본 건축가 나가사카 조가 맡았다. 기존 건물의 구조와 재료, 외벽 벽돌을 유지하되 내부는 밝고 하얀 갤러리 공간으로 바꿨다. 외관의 검은색과 내부의 흰색이 극명한 대비를 이루도록 했다. 아라리오갤러리는 재개관 첫 그룹전으로 권오상, 이동욱, 김인배, 안지산, 노상호가 참여하는 ‘낭만적 아이러니’를 개최한다. 지하 1층부터 5층까지 층별로 작가가 한 명씩 맡아 각자 개인전을 꾸린 듯 전시를 구성했다. 지하 1층 갤러리에는 안지산 작가가 눈폭풍 속 사냥을 주제로 그린 회화 작품을 볼 수 있다. 1층에서는 김인배, 2층 수장고를 지나 3층은 이동욱, 4층은 노상호 작가의 작품이 관람객을 맞는다. 권오상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5층 공간은 통창이 둘러져 원서공원과 창덕궁이 한눈에 보인다. 영국 조각가 헨리 무어 작품의 형태를 본뜬 작품들에선 만화 ‘원피스’ 문신이 새겨진 일본 야쿠자의 몸, 모델 지지 하디드의 얼굴, 밴드 ‘잔나비’의 보컬 최정훈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5층은 이번 전시에만 공개하고, 향후 VIP 라운지로 사용할 예정이다. 3월 18일까지. 무료.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