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이 바나나 작품 먹었을때? 예술은 어차피 재활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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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발적 작품’ 연일 화제 伊 카텔란
“반골 기질로 틀 깨는 것 좋아해
황금변기, 백악관 전시됐다면 영광”

도발적인 작품으로 ‘농담꾼’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위 사진)과 2019년 작품 ‘코미디언’. 리움미술관·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도발적인 작품으로 ‘농담꾼’이라고 불리는 이탈리아 출신 현대미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위 사진)과 2019년 작품 ‘코미디언’. 리움미술관·마우리치오 카텔란 제공
“도발은 전쟁도 일으킬 수 있다. 나는 예술 역시 역사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갖길 바란다.”

미술관 입구에 노숙자 조각을 설치하고, 박제된 비둘기 떼로 로비를 점령시킨 이탈리아 출신 예술가 마우리치오 카텔란(63)에게 최근 서면 인터뷰를 통해 “당신은 도발을 좋아하느냐”고 묻자 돌아온 답이다. 그는 “틀을 깨는 것을 좋아한다. 여기엔 권위에 대한 반골 기질을 가진 내 성향이 작용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서울 용산구 리움미술관에서 지난달 31일 개막한 카텔란의 국내 첫 개인전 ‘WE’ 역시 도발적인 작품으로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전시장 허공에 축 늘어진 말의 사체를 내건 작품 ‘노베첸토’(1997년) 등으로 음침한 미술관 풍경을 만들어 냈다. 7월 16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무료이며 2주 단위로 사전 예약할 수 있는데, 티켓은 공개 직후 모두 나갔다. 한미소 리움미술관 전시홍보담당 선임은 “하루 평균 2000명의 관람객이 방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를 널리 알린 작품 ‘코미디언’(2019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코미디언’은 그가 2019년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내놓은 작품으로 생바나나를 은색 박스테이프로 벽에 붙인 것이다. 당시 전시장을 찾은 관객이 작품 속 바나나를 먹어치우며 미디어의 주목을 받았다. 이에 대해 그는 “작품을 만들기 전 몇 달 동안 플라스틱, 금속 바나나 모형을 갖고 이리저리 만들어 보다가 결론을 내지 못해 그냥 생바나나를 붙였다”며 “그 결정이 결국 누군가가 바나나를 먹어서 이용해도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을 뿐이다. 예술은 어차피 전부 재활용이고, 늙은 경주마들의 계주 같은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그는 예술의 힘이 도발에서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독일의 폴란드 침공, 아프가니스탄 전쟁을 촉발한 9·11테러처럼 예술이 폭발적 힘을 갖길 바란다. 나는 예술이 불편해야 하며, 그렇지 않다면 보기 좋은 디자인 제품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2016년 미국 도널드 트럼프 정부 당시 백악관이 구겐하임 미술관에 빈센트 반 고흐 작품 대여를 요청했을 때, 미술관 측이 역으로 카텔란의 18K 황금 변기 작품 ‘아메리카’를 제안한 바 있다. 실제로 성사되진 않았다. 이에 대해 카텔란은 “미술관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며 “물론 내 작품이 미술관을 떠나 백악관처럼 권위 있는 공간에 전시된다면 영광이었을 것”이라고 답했다.

리움미술관은 붉은 카펫 위에 천으로 덮인 시신의 모습을 대리석으로 조각한 작품 ‘모두’(2007년)가 한국인에게 이태원 핼러윈 참사를 떠올리게 한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한 카텔란의 생각도 물었다. 그는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작품의 전시 결정은 이태원 핼러윈 참사가 있기 전이었다. 내가 생각했던 것은 우크라이나 전쟁이다. 다만 작품이 비극을 기억하고 피해자를 존중하는 상징이 되길 바란다.”


김민 기자 kimmin@donga.com
#카텔란#반골 기질#리움미술관#도발적인 작품#코미디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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