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국민 10명 중 6명은 주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발표한 ‘2016년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주 1회 이상 규칙적으로 운동한 국민의 비율은 59.5%였다. 연령대별로는 10대가 63.1%로 가장 높았고 건강에 관심이 높은 60대(61.4%), 40대(61.1%), 50대(60.8%) 순이었다. 특히 10대 여학생의 참여비율이 2015년(35.2%)보다 19.7%포인트 상승한 54.9%로 나타나 눈길을 끌었다. 10대 참여율이 높은 이유로 학생들의 운동 참여를 높이기 위해 시작한 학교 스포츠클럽 활성화 정책의 효과란 분석이 나온다. 주로 하는 운동 종목은 걷기(35.6%)와 등산(16.7%), 보디빌딩(14.6%) 순이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적으로 불거지던 지난해 10월 열린 대한체육회 회장 선거에서 이기흥 전 대한수영연맹 회장이 당선됐다는 소식을 듣고 안도했다. 김종 당시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농단한 한국 스포츠를 그나마 재정비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얼마 뒤 김 차관은 ‘최순실 국정 농단’의 핵심 인물로 결국 구속 기소됐다. 한양대 스포츠산업학과 교수 출신 김종은 ‘스포츠인’이라기보다는 ‘정치인’에 가까웠다. 재력이 있다고 소문이 난 그는 정부 고위 관계자들과 주로 어울렸다. 공무원들과 골프도 자주 쳤다. 한양대 대학원에 공무원을 많이 받아들였다. 학위 과정을 자신의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활용했다. 인적 네트워크의 힘은 셌다. 2010년 체육인재육성재단이 3년간 15억 원의 기금을 지원하는 글로벌 체육인재 육성 프로그램을 맡을 대학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사실상 서울대로 내정된 것을 한양대로 돌려세웠다. 당시 김종이 관리하던 문체부 고위 관계자와의 끈을 활용했던 것이다. 서울대의 반발로 재심까지 갔지만 문체부는 다시 한양대의 손을 들어줬다. 2013년 10월 문체부 차관이 된 김종은 체육계 비리 척결에 나섰다. ‘4대악 척결’을 내세워 각 스포츠단체를 털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체육 단체장 옷 벗기기는 예사였고 자신이 가는 길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가차 없이 제거했다. 체육계의 반발도 거셌지만 막무가내인 그를 저지할 수는 없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임을 받고 있다는 소문에 일부 체육인은 “소나기는 일단 피해야 한다”며 머리를 수그렸다. 김종은 말을 듣지 않는다고 체육인재육성재단을 하루아침에 없앴다. 스포츠산업을 육성해야 한다며 34년 넘게 엘리트 스포츠의 후원군 역할을 한 한국체육과학연구원을 한국스포츠개발원으로 바꿨다. 문체부에서 그의 말을 듣지 않아 좌천된 공무원이 한둘이 아니다. 최순실 씨를 돕기 위해 만든 K스포츠재단과 관련해 시키는 대로 일을 하지 않는다고 정준희 서기관을 좌천시켰고 늘품체조에 반대한 강대금 과장도 날렸다. 문체부는 요즘 김종의 ‘잔재’를 없애느라 고생하고 있다. 검찰과 특검 조사 결과 김종이 이렇게 날뛴 이유가 정치적인 야심으로 최 씨 일가를 돕기 위해서였다는 게 명확해졌다. 체육인들이 김종에게 실망한 가장 큰 이유다. ‘비정상의 정상화’란 그럴듯한 명목을 앞세워 한국 스포츠를 완전히 유린한 것이다. 이 회장은 김종의 독선에 맞선 인물이다. 김종의 온갖 방해 공작을 뚫고 사상 첫 엘리트와 사회체육을 통합한 대한체육회 회장에 당선됐다. 그는 2000년 대한근대5종 부회장으로 체육계에 몸담은 뒤 줄곧 스포츠 현장에 있었다. 물론 수영연맹 회장 시절 전무이사 등의 비리를 관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고 물러나기도 했다. 엘리트와 사회체육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그에게 적대적인 체육인이 많이 늘기도 했다. 하지만 최소한 스포츠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평가를 받지는 않는다. 조윤선 문체부 장관은 이른바 ‘블랙리스트’를 만들었다는 의혹으로 특검 수사를 받고 있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인용되면 조기 대선을 치러야 한다. 당분간 문체부는 정치 바람에 휘둘릴 수밖에 없다. 김종이 미는 ‘허수아비’가 대한체육회 회장에 당선됐다면 한국 스포츠도 함께 흔들렸을 게 뻔하다. 이 회장 당선으로 최소한 한국 스포츠의 본산은 흔들리지 않게 된 것이다. 한국은 1년여 뒤 지구촌 겨울 축제인 평창 겨울올림픽을 개최한다. 김종으로 인한 ‘비정상’의 정상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양종구 스포츠부 차장 yjongk@donga.com}

#.1최순실 예산 끝까지 거부한 '영혼 있는' 문체부 공무원#.2"시키는 대로 해 아니면 문체부를 나가!!"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이지시를 거부한 정준희 서기관에게 가한 위협#.3문화체육관광부 50대 서기관이 최순실 씨의 사주를 받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의 압력에 맞서 정부 예산 전횡을 막았습니다. #.4주인공은 문체부 정준희 서기관(52). 1985년 9급 공채로 공직에 입문한 그는1990년부터 문체부에서 근무했죠.#.5김 전 차관은 2016년 2월 정 서기관에게 "K-스포츠클럽 운영에 문제가 있으니 이 클럽들을 총괄할 컨트롤타워에 관한 개선안을 만들라"고 지시했습니다.K-스포츠클럽 운영권을 K스포츠재단에 넘겨 연 130억 원 규모의 관련 예산을 주무르려는 거였죠.#.6하지만 정 서기관은 "컨트롤타워가 새로 생기면 사업 전체가 특정 민간단체에 넘어가게 된다"며 거부했습니다. #.7김 전 차관은 노발대발했습니다.수 차례 그를 불러 고함을 치고 모욕을 주고인사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까지 했죠.하지만 정 서기관은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8"당시 받은 충격과 스트레스로 안면마비와 원형탈모가 왔다.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다"정 서기관#.9김 전 차관은 이후 전략을 바꿔클럽 사업자를 수의계약으로 선정하는 꼼수를 쓰려 했죠.하지만 정 서기관은 "사업자는 공모로 선정해야 한다"며 재차 거부했습니다. #.10미운 털이 박힌 정 서기관의 이름은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의 수첩에도 나옵니다. 청와대도 정 서기관을 고깝게 보았음을 짐작하게 하죠.#.11김 전 차관은 최근 정 서기관에게 고마워했다고 합니다. 처벌받을 범죄 혐의가 확 줄었기 때문이죠."내 지시를 따르지 않아 정말 고맙다.우리 계획이 그대로 됐다면 나는 죽을 뻔했다"#.12 흔히 '공무원은 영혼이 없다'고 하지만정준희 서기관처럼 음지에서 고생하면서도소신을 지키는 훌륭한 공무원들이 더 많습니다.앞으로도 정 서기관과 같은 공무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원본 | 김준일 기자 · 장관석 기자 · 양종구기자기획·제작 | 하정민 기자 · 이고은 인턴}
문화체육관광부 50대 서기관이 최순실 씨(61·구속 기소)의 사주를 받은 김종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56·구속 기소)의 압력에 맞서 정부 예산이 새나가는 것을 막은 사실이 9일 확인됐다. 주인공은 문체부 정준희 서기관(52). 김 전 차관은 정 서기관에게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겠다”는 협박까지 했지만 통하지 않자 당초 내렸던 지시를 수정해 재차 정 서기관을 압박했다. 하지만 정 서기관은 끝내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 차관의 해고 압박에 버틴 서기관 검찰과 특검, 문체부 관계자 등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지난해 2월 문체부 체육진흥과 소속 정 서기관에게 “K-스포츠클럽 운영에 문제가 있으니 이 클럽들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내용의 개선안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김 전 차관의 속내는 K-스포츠클럽 운영권을 최순실 씨가 사실상 지배하고 있던 K스포츠재단에 넘겨 연 130억 원 규모의 관련 예산을 주무르려는 것이었다. 김 전 차관은 당시 정 서기관에게 “국민생활체육회(현 대한체육회와 통합)가 아닌 별도의 종합지원센터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강조하라”고 지시했다. 당시 K-스포츠클럽 사업은 문체부의 지원을 받아 국민생활체육회가 기초지방자치단체와 교육기관 등 민간단체를 사업자로 선정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정 서기관은 “컨트롤타워가 새로 생기면 사업 전체가 특정 민간단체에 넘어가게 된다”며 거부했다. 김 전 차관은 정 서기관이 지시를 따르지 않자 수차례 불러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라”고 강요했다. 또 “(지시를 안 따르고 버틸 거면) 문체부를 나가라”고 고함을 치기도 했다고 한다. 정 서기관은 “당시 받은 충격과 스트레스로 안면 마비가 오고, 원형탈모 증상까지 생기는 등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다”고 말했다. ○ 수정 지시도 거부 김 전 차관은 이후 전략을 바꿔 ‘거점형 K-스포츠클럽 사업’을 내세워 K스포츠재단을 끼워 넣을 새로운 계획을 짰다. 김 전 차관은 한 거점당 3년간 24억 원을 지원받도록 계획을 세우고, 클럽 사업자를 수의계약으로 선정할 수 있게 절차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하지만 정 서기관은 “사업자는 공모로 선정해야 한다”며 또다시 버텼다. 이런 과정에서 ‘미운털’이 박힌 정 서기관의 이름은 검찰이 압수한 안종범 전 대통령정책조정수석비서관(58·구속 기소)의 수첩에도 나온다. 김 전 차관뿐 아니라 청와대도 정 서기관을 곱지 않게 보았다는 걸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김 전 차관은 검찰 수사에서 “돌이켜 보면 정 서기관이 (내 지시에) 반대해 준 게 정말 고맙다”면서 “우리 계획이 그대로 됐다면 나는 죽을 뻔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서기관 덕분에 처벌을 받을 범죄 혐의가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정 서기관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소극적으로 (김 전 차관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방어한 것뿐이다”고 말했다. 1985년 9급 공채로 공직에 입문한 정 서기관은 1990년부터 문체부에서 근무했다. 김준일 jikim@donga.com·장관석·양종구 기자}

1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 한 결혼식장. ‘풍운아’ 이회택 전 대한축구협회 부회장과 김호 용인 FC 총감독 등 한때 한국 축구를 사로잡았던 ‘올드 스타’들이 총출동했다. 유동춘 전북 군산제일고 감독(63)의 둘째 딸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서 모인 것이다. 이들은 동춘 씨와 악수를 한 뒤 나란히 서 있는 동관 씨(53·위덕대 감독)와 동우 씨(49·우석대 감독), 동기 씨(46·기업은행 군산지점 부지점장), 동옥 씨(41·군산 구암초교 감독) 등 동생들과도 활짝 웃으며 인사했다. 동생들도 모두 잘나가는 축구선수 출신이라 잘 알고 있었다. 이들 5형제도 조카 결혼 같은 집안의 큰일이 없으면 거의 모이지 못한다. 이번 결혼식이 형제들은 물론이고 대한민국을 빛낸 축구 선배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였던 셈이다. 이영무(고양 자이크로 FC 고문), 박창선, 조영증(한국프로축구연맹 심판위원장) 등 한국을 대표했던 선수들과 함께 태극마크를 달고 녹색 그라운드를 누볐던 동춘 씨는 사실 일반인들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하지만 유 감독을 포함한 형제들은 국내 최초의 ‘5형제 축구선수’로 한때 지명도가 높았다. 1990년 11월 16일자 동아일보엔 ‘군산의 명물 축구 5형제’란 제목으로 이들을 소개하는 기사가 실렸다. 당시까지 4형제가 축구를 했던 김정남 한국OB축구협회 회장 형제(김강남 김성남 김형남)가 이색 축구 가족으로 알려졌지만 5형제가 알려지면서 국내 최대 축구 가족으로 이름을 날린 것이다. 한때 군산에서 ‘축구하는 유씨 댁’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5남 1녀 중 여자인 둘째 빼고 다 축구선수로 활약했다. 또래보다 늦게 시작했지만 역대 최연소 국가대표가 된 동춘 씨의 활약상이 형제들을 자연스럽게 축구로 인도했다. 동춘 씨는 ‘동네축구’를 하다 서울 한양중으로 편입해 정식으로 유니폼을 입었을 정도로 출발은 늦었지만 1970년대 중반부터 10년 가까이 대표선수로 활약하는 등 뛰어난 기량을 과시했다. 한마디로 동춘 씨는 축구 천재였다. 군산남중 시절 당시 지역 축구 영웅 고 채금석 선생의 지도를 받았다. 채 선생은 1930년대 ‘군산 오토바이’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군산 축구의 대부. 이분을 기려 ‘금석배’란 축구대회가 군산에서 열리고 있다. 축구부가 없어 혼자 공을 차고 노는 동춘 씨의 실력을 보고 채 선생이 지도해 준 것이다. 채 선생은 당시 공을 잘 차는 아이들을 모아서 무료로 축구를 지도해 서울로 보냈다. 동춘 씨는 중3 때 서울 한양중에서 테스트를 받았다. 선수 출신이 아니라 다시 3학년으로 1년 더 다녀야 했지만 그는 바로 두각을 나타냈다. 고등학교부터 청소년 대표로 활약했다. 청소년 대표로 활약하던 한양공고 3학년 때인 1972년 서울운동장에서 국가대표팀과의 평가전에서 골을 넣어 1-0으로 이기면서 주목을 받았다. 바로 당시 고려대 1학년으로 만 19세인 차범근 전 수원 삼성 감독과 함께 역대 최연소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동춘 씨도 차 감독과 나이는 같았지만 중학교 시절 1년을 더 다니는 바람에 고3 때 대표팀에 발탁됐다. 유망주 발굴 차원의 발탁이라 국가대표 경기를 뛰지는 못했지만 늦게 축구를 시작한 것을 감안하면 태극마크를 획득한 시간이 차 전 감독보다 빨랐다. 동춘 씨는 결국 이듬해 열린 박스컵(박대통령컵 쟁탈 아시아축구대회) 때 태극마크를 달고 그라운드를 누빌 수 있었다. 한양대 1학년 때인 1975년 말레이시아 메르데카컵에서 우승해 당시 박정희 대통령으로부터 체육훈장을 받았다. 동춘 씨는 국가대표로 국내 구기 스포츠 사상 처음 세계를 제패하기도 했다. 국제축구연맹(FIFA) 주관 대회는 아니지만 1976년 제5회 세계축구대학선수권대회에서 정상에 올랐다. 유니버시아드대회를 주관하는 국제대학스포츠연맹(FISU)이 축구만 따로 떼어 주최하던 대회였다. 동춘 씨는 당시 조광래(대구 FC 단장) 박창선 김희태 김황호 신현호 김성남 한문배 등과 출전했다. 한국은 브라질, 프랑스, 칠레와 3조에 속해 경기를 치렀다. 파라과이와의 결승에서 동춘 씨가 전반에 선제골을 터뜨렸다. 한국은 1-1 상황에서 심판 판정에 항의하는 파라과이가 기권하는 바람에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그해 7월 31일 몬트리올 올림픽에서 레슬링의 양정모가 건국 이후 첫 금메달을 따면서 상대적으로 부각이 덜 됐지만 서울 김포공항에서 시청까지 카퍼레이드를 할 정도로 큰 영광으로 기억됐다. 동춘 씨가 이렇게 잘나가게 된 배경에는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이 있었다. 처음 동춘 씨가 “축구로 서울 가서 성공하겠다”고 했을 때 극구 만류했지만 두각을 나타내자 든든한 후원군이 됐다. 아버지 유성환 씨와 어머니 장길례 씨는 경기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갔다. 아버지는 셋째부터 막내까지 군산제일고에 들어가자 후원 회장을 맡아 10년 넘게 지원했다. 특히 어머니의 열성이 대단했다. 몸에 좋다는 음식은 뭐든 해 먹였다. 어머니와 관련해선 애틋한 사연도 있다. 1987년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을 때 아버지가 창고를 정리하며 마대를 하나 발견했는데 살아 있는 뱀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축구하는 아들들을 위해 뱀까지 잡아 몸보신을 시켰던 것이다. 잘나가는 큰형에 든든한 부모의 지원을 받은 형제들은 모두 축구화를 신게 됐다. 동관 씨는 “대표팀에 있던 형이 너무 공을 잘 차니 구암초교 감독이 축구하라고 졸랐다. 축구도 좋아해 바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형만 한 아우 없다지만 동관 씨도 형 못지않은 활약을 펼쳤다. 군산제일중과 서울 영등포공고, 한양대를 거쳐 프로팀 포항제철(현 포항 스틸러스)에서 선수 생활을 하며 태극마크도 달았다. 포항제철 수석코치, 영등포공고 감독, 신갈고 감독, 대교여자축구단 감독을 거쳐 현재는 위덕대 남자팀 감독을 맡고 있다. 우석대 감독인 동우 씨도 형들과 비슷한 길을 걸었다. 군산제일중고, 한양대를 거쳐 프로팀 전남 드래곤즈에서 활약했다. 국가대표 및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활약하며 체육훈장 기린장을 수상하기도 했다. 잘나가던 형들에 비해 넷째와 막내는 다소 불운한 길을 걸었다. 실력은 출중했지만 운이 없었다. 넷째 동기 씨는 큰형이 국민대 감독이던 시절 직접 지도를 받고 실업팀 기업은행에 둥지를 틀었다. 청소년 및 유니버시아드 대표로 활약했고 대학시절 랭킹 1위로 프로에 갈 실력이었지만 당시 있었던 묘한 스카우트 갈등으로 실업팀에 남아야 했다. 동기 씨는 먼저 기업은행에서 활약하다 고향 전북에 생기는 프로팀 전북 버펄로(현 전북 현대)로 가려 했다. 기업은행에서 우승을 두 번 시키는 등 활약하며 전북행이 사실상 결정됐지만 당시 기업은행 감독이 거부하는 바람에 꿈을 접어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형제가 다 축구선수 하면 뭐하냐. 은행 지점장도 하나 있어야지”라며 꿈을 심어 주었고 기업은행에서 선수 생활을 마치고 축구처럼 일을 열심히 해 부지점장까지 올랐다. 동기 씨는 직업은 은행원이지만 주말엔 ‘감독’으로 변신한다. 경기 남양주에서 아마추어 성인팀을 무료로 지도하고 있다. 숙명여대 감독도 맡았고 여기저기서 축구를 지도해 달라면 시간이 허락하는 한 몸을 던졌다. 일부 아마추어팀을 각종 대회에서 정상으로 올리기도 했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프로 성남 일화(현 성남 FC) 입단을 앞뒀던 막내 동옥 씨는 발목 부상으로 일찍 꿈을 접었다. 수술로 철심을 박고 재기해 성남 대신 실업팀으로 갔는데 팀이 해체되는 바람에 포기하고 지도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동옥 씨는 5형제가 모두 나온 구암초교에서 꿈나무를 기르고 있다. 형제들은 고향에 남아 유망주를 키우는 동옥 씨를 통해 평생 꿔 왔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뜻을 모았다. 형제 모두가 참여하는 ‘군산 5형제 축구교실’을 열기로 결정한 것이다. 지금은 모두 각자의 일을 하고 있지만 은퇴를 하면 한자리에 모여 형제들이 힘을 합쳐 유망주를 키우겠다는 프로젝트다. 2012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유망주들이 날씨에 상관없이 훈련할 수 있도록 모교인 구암초교에 실내 축구장을 만들기로 하고 학교와 협의를 거쳐 거금을 들여 공사도 시작했다. 하지만 인조잔디에서 유해물질이 나온다며 도교육감이 시설을 허가할 수 없다고 하면서 차질이 빚어졌다. 형제들이 십시일반하고 은행 대출까지 받아서 짓는 시설이었는데 한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이다. 형제들은 “국내 인증 마크를 달고 최고의 품질로 인조잔디를 깔겠다”고 했지만 도교육청이 정책에 반한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5형제 축구교실’을 시작한 지 4년이 넘었지만 지지부진한 이유다. 야외 경기장에서 구암초교 선수들과 함께 ‘5형제 축구교실’ 선수들이 훈련은 하고 있지만 당초 생각했던 훈련 계획은 큰 차질을 빚고 있다. 동춘 씨는 “우리의 뜻이 지역 교육정책과 맞지 않아 조금 늦어지고 있어 안타깝다. 하지만 고향에서 유소년을 키우는 일인데 우리의 뜻만 고집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학교, 도교육청 등과 협의해 좋은 결과를 내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동생들은 큰형을 따라 축구를 시작했지만 정작 큰형은 동생들에게 축구를 가르치진 않았다고 한다. 큰형이 동생들에게 한 말은 딱 두 마디. “알아서 느껴라.” “많이 먹어라.” 처음에 동생들은 큰형이 무심한 줄 알았지만 그게 아니었다. 해보니 축구는 자신이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잘 먹어야 힘을 쓸 수 있었다. 아주 단순한 진리였지만 5형제가 한국 축구에서 모두 두각을 나타낸 원동력이었다. “아버지 같은 큰형님 아니었으면 오늘의 우린 없습니다.” 동생들은 모두 한목소리로 외쳤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비운의 역도 스타’가 남긴 금메달과 훈장이 극적으로 빛을 보게 됐다. 지난해 6월 강원 춘천시 후평동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된 김병찬 씨(사망 당시 46세)는 1990년 베이징 아시아경기 역도에서 금메달을 따는 등 대한민국을 빛낸 역도 스타였다. 하지만 1996년 하반신이 마비되는 교통사고를 당한 뒤 장애와 생활고에 시달리며 은둔생활을 하다 역도계에서조차 잊혀졌고 병마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그런데 그나 남긴 빛나는 유품까지 고물상에 넘겨질 뻔한 안타까운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김 씨가 사망한 뒤 그의 유품은 인수할 사람이 나타나지 않아 방치돼 왔다. 그의 어머니가 2013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이복형제도 오래전 왕래가 끊긴 터라 아무도 챙길 수 없었다. 최근 아파트 관리사무소가 입주 대기자를 위해 김 씨의 짐을 정리하면서 그의 유품을 발견했다. 베이징 아시아경기 금메달과 1991년 세계역도선수권대회 동메달, 1991년 및 1992년 아시아역도선수권대회 금메달 등 메달 10여 개와 체육훈장 백마장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관리사무소는 인수자가 없어 고민 끝에 김 씨의 유품을 폐기물 수거업체에 맡겨 처리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김 씨 생전에 그와 가깝게 지내던 한 이웃이 지난달 27일 이런 소식을 듣고 강원도체육회에 대책마련을 호소하면서 유품의 폐기를 막을 수 있었다. 강원도체육회는 이날 물건을 인수했고 현재는 강원도역도연맹에서 보관하고 있다. 그의 스승이었던 김재근 강원도역도연맹 전무이사는 “그가 딴 많은 메달 가운데 이것들만 남아있는 것을 보면 애착이 컸던 것 같다”며 “가급적 춘천에 건립 중인 역도장에 전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김 씨의 사망을 계기로 문화체육관광부는 올해부터 ‘경기력 향상 연구 연금 수급자 생활보조비 제도’를 도입해 생활이 어려운 체육연금 수급자를 돕고 있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춘천=이인모기자 imlee@donga.com}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은 15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남녀 고교 마라톤 유망주 15명에게 2015년 동아마라톤 꿈나무 장학금을 수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뒤를 이을 마라토너를 육성하기 위해 2002년 만들어진 동아마라톤 꿈나무 장학금은 매년 상·하반기에 육상 장거리(5000m, 10km)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남녀 고교 선수 10명씩에게 주어진다. 올해는 남녀 고교 랭킹 1위 조준행(배문고)과 정다은(충남체고) 등 5명이 상·하반기 장학생으로 연속 뽑혀 400만 원씩(반기당 200만 원)을 받았다. 이연택 재단 이사장은 “여러분은 선택받은 귀중한 인재다. 이번 장학금 수상을 큰 꿈을 이루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여러분은 마라톤에 자질이 있다는 게 확인된 선수들이다. 지금부터 꿈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면 자랑스러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고 격려했다. ◇2015년 동아마라톤 꿈나무 ▽남자=조준행(배문고) 소유준 양치호(이상 서울체고) 황득호 이동진(이상 순심고) 이광식 이경호(이상 단양고) 송윤화(만리포고) ▽여자=정다은 박영선(이상 충남체고) 이희주(진건고) 이재영(인천체고) 정혜원(오류고) 김령이(김천한일여고) 정세현(경기체고)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동아마라톤꿈나무재단은 15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남녀 고교 마라톤 유망주 15명에게 2015년 동아마라톤 꿈나무 장학금을 수여했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마라톤 금메달리스트 황영조의 뒤를 이을 마라토너를 육성하기 위해 2002년 만들어진 동아마라톤 꿈나무 장학금은 매년 상·하반기에 육상 장거리(5000m, 10km)에서 뛰어난 성적을 낸 남녀 고교 선수 10명씩에게 주어진다. 올해는 남녀 고교랭킹 1위 조준행(배문고)과 정다은(충남체고) 등 5명이 상·하반기 장학생으로 연속 뽑혀 400만 원씩(반기 당 200만 원)을 받았다. 이연택 재단 이사장은 “여러분은 선택받은 귀중한 인재다. 이번 장학금 수상을 큰 꿈을 이루는 계기로 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동진 대한육상경기연맹 회장은 “여러분은 마라톤에 자질이 있다는 게 확인된 선수들이다. 지금부터 꿈을 가지고 열정을 불태우면 자랑스러운 미래가 펼쳐질 것이다”고 격려했다. ◇2015년 동아마라톤 꿈나무 ▽남자=조준행(배문고) 소유준 양치호(이상 서울체고) 황득호 이동진(이상 순심고) 이광식 이경호(이상 단양고) 송윤화(만리포고) ▽여자=정다은 박영선(이상 충남체고) 이희주(진건고) 이재영(인천체고) 정혜원(오류고) 김령이(김천한일여고) 정세현(경기체고)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조직 내부가 건강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난해 4월 취임해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이창섭 이사장(60)은 최근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처음 공단에 왔을 때 놀랐다. 대한민국 스포츠 재정을 총괄하는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모든 일에 수동적이었다.” 그래서 취임 몇 개월 뒤 이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선언했다. “밖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내기보다는 내부의 문화를 바꾸고 싶다. 그래야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소통 부재’부터 손을 댔다. ‘Trust(공감소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직급별 공감소통 회의부터 하도록 했다. 상급자들에게는 부하 직원들의 얘기를 먼저 듣고 합당한 것은 받아들이라는 ‘공감경청’을 주문했다. 스스로도 임직원들에게 ‘생일 쪽지 메모’를 보내고, 회식 자리에 부지런히 참석했다. 1년여가 지난 뒤에는 개인 역량을 키우는 ‘To do/Not to do(개인혁신)’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정하도록 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스포츠를 공부하도록 장려했다. 스포츠 관련 일을 하면서 스포츠를 모른다면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석·박사 과정을 밟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Togetherness(조직일체감)’ 프로젝트였다. 공단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일명 ‘3T 전략’으로 공단을 바꿔 놓았다. 미국 뉴멕시코주립대에서 스포츠경영 박사학위를 받고 충남대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서로 신뢰하고 개인들이 존중을 받아야 조직이 건전하게 발전한다. 계량화된 수치는 없지만 임직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는 부분에서는 큰 변화가 생겼다”고 자부했다. 이 이사장은 공정한 인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직원들에게서 희망 부서를 3곳씩 받은 뒤 최대한 희망부서에 배치하려고 애썼다. 과거 외부 인사들이 맡았던 각급 본부장 자리도 내부 승진으로 채웠다. 이 이사장의 목표는 약 16개월 남은 임기 동안 ‘3T 전략’의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공단이 공공기관경영실적평가에서 D(2013년), C등급(2014년)을 받았는데 2016년엔 A등급을 받는 게 목표다. 이렇게 A등급을 받았을 때 조직원들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공단은 2016년 엘리트체육과 장애인체육, 생활체육 등에 1조4031억 원의 체육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조직내부가 건강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지난해 4월 취임해 국민체육진흥공단의 변화를 이끌고 있는 이창섭 이사장(60)은 최근 ‘우리는 할 수 있다. 우리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이다’라는 슬로건을 만들었다. 직원들이 자신감을 갖고 신바람 나게 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처음 공단에 왔을 때 놀랐다. 대한민국 스포츠 재정을 총괄하는 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모든 일에 수동적이었다.” 그래서 취임 몇 개월 뒤 이 이사장은 직원들에게 선언했다. “밖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내기보다는 내부의 문화를 바꾸고 싶다. 그래야 외부의 영향에 흔들리지 않고 발전할 수 있다.” 가장 큰 문제점이었던 ‘소통 부재’부터 손을 댔다. ‘Trust(공감소통)’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의사결정을 내리기 전 직급별 공감소통 회의부터 하도록 했다. 상급자들에게는 부하 직원들의 얘기를 먼저 듣고 합당한 것은 받아들이라는 ‘공감 경청’을 주문했다. 스스로도 임직원들에게 ‘생일 쪽지 메모’를 보내고, 회식 자리에 부지런히 참석했다. 1년여가 지난 뒤에는 개인 역량을 키우는 ‘To do/ Not to do(개인혁신)’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해야 할 일과 하지 않아야 할 일을 정하도록 했다. 그는 “임직원들에게 스포츠를 공부하도록 장려했다. 스포츠 관련 일을 하면서 스포츠를 모른다면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석박사과정을 밟도록 적극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은 ‘Togetherness(조직일체감)’ 프로젝트였다. 공단에서 일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이 이사장은 일명 ‘3T 전략’으로 공단을 바꿔놓았다. 미국 뉴멕시코주립대학교에서 스포츠경영 박사학위를 받고 충남대 교수로 재직했던 그는 “서로 신뢰하고 개인들이 존중을 받아야 조직이 건전하게 발전한다. 계량화된 수치는 없지만 임직원들이 서로 소통하고 존중하는 부분에서는 큰 변화가 생겼다”고 자부했다. 이 이사장은 공정한 인사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직원들에게서 희망 부서를 3개씩 받은 뒤 최대한 희망부서에 배치하려 애썼다. 과거 외부 인사들이 맡았던 각급 본부장 자리도 내부 승진으로 채웠다. 이 이사장의 목표는 약 16개월 정도 남은 임기 동안 ‘3T 전략’의 결과물을 얻어내는 것이다. 그는 “그동안 공단이 공공기관경영실적평가에서 D(2013년), C(2014년)를 받았는데 2016년엔 A를 받는 게 목표다. 이렇게 A를 받았을 때 조직원들도 ‘하면 된다’는 자신감을 얻을 것이다”고 말했다. 공단은 2016년 엘리트 체육과 장애인체육, 생활체육 등에 1조4031억 원의 체육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대한민국 최고의 마라톤대회인 2016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7회 동아마라톤대회가 7일 참가자 모집을 시작했다. 내년 마라톤 시즌 개막을 알리는 다채로운 행사가 예고돼 있어 접수 첫날부터 참가자가 2000여 명이나 몰리는 등 열기가 뜨겁다. 이번 대회에는 젊은층에 인기를 끌고 있는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인 아디다스가 동아마라톤대회의 공식 스폰서로 참여해 대회 사상 최초로 완주 기념품을 준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이 인증한 국내 유일의 골드라벨 대회로 7년째 치러지는 명품 대회인 이번 대회에서는 한국 귀화를 추진 중인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케냐)의 최고기록 도전도 기대된다. ▽참가자 모집=새롭게 단장한 대회 홈페이지(www.seoul-marathon.com)를 통해 풀코스 2만 명, 서울챌린지 10K 7000명을 선착순으로 모집한다. 10km를 뛰는 서울챌린지 10K는 달리기 입문자도 도전할 수 있는 부문으로 청년과 여성 참가자가 해마다 늘고 있다. 신설 첫해인 2014년 3000명, 올해는 5000명을 돌파했다. 조기 마감에 대비해 신청을 서두르는 것이 좋다. ▽아디다스 참여=아디다스는 서울국제마라톤 원년인 2000년에 이어 16년 만에 공식 협찬사로 복귀해 2018년 3월까지 동아마라톤대회를 지원한다. 아디다스는 고급 스포츠 브랜드의 이미지로 특히 젊은층에게 인기를 끌고 있어 브랜드 자체만으로도 대회에 활기를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1+1’ 기념품=풀코스 참가자는 기념 셔츠 2개를 받을 수 있는 ‘1+1’ 혜택에 도전해 볼 만하다. 풀코스 참가자에게는 마라톤 전문 상의인 싱글렛을, 10K 참가자에게는 반팔 티셔츠를 준다. 가벼운 착용감과 쾌적감을 주는 클라이마라이트 소재의 기능성 셔츠(에메랄드색)다. 남녀의 신체 특성에 맞게 따로 제작했다. 5시간 이내 풀코스 완주자에게는 완주 인증 기념 티셔츠(검은색)를 준다. 기록 단축과 완주를 독려하는 인센티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완주 티셔츠는 국내 거주자에 한해 대회가 끝난 뒤 기록 확인 등을 거쳐 주소지로 배달된다. ▽다양한 이벤트=모집 기간 중에 홈페이지에서 다양한 경품 행사가 진행된다. 아디다스 고객인 아디클럽 회원을 대상으로는 마라톤 교실도 운영한다. 완주 기록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포토존, 화려한 공연 등도 준비하고 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강원 영월군 김삿갓면 망경대산길 135-3. 해발 1100m 망경대산 서쪽 800m 고지에는 만봉사·만봉불화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150억 원을 투자해 대지 7687m², 지하 1층 지상 2층 박물관에 고 만봉(萬奉) 스님이 그린 탱화 250여 점이 전시돼 있다. 어찌 된 영문일까. 조선 태종 때 한성부윤을 지낸 뒤 영월로 낙향한 충신 추익환이 어린 단종이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빼앗긴 뒤 영월로 유배됐다는 소식을 듣고 올라가 한양을 바라보며(望京) 눈물 흘렸다고 해서 망경대산이라 불리는 이곳에 불화박물관이라니. 인연(因緣)이라는 게 참 묘하다. 불교의 핵심 중 하나가 연기설(緣起說)이다. 만물이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겹겹의 인연의 그물망으로 성립한다는 것이다. 이 불화박물관의 탄생도 인연이 겹겹이 쌓여 이뤄졌다. 약 100억 원을 쾌척해 박물관 설립의 주역을 담당한 이용국 (재)신원불교재단 이사장(79·㈜신원휄트 회장)은 부처님이 곧 어머니였다. 8세 때 어머니를 여읜 그는 어렸을 때 너무 외롭게 자랐다. 아버지가 계셨고 형과 누나가 있었지만 어머니의 부재는 그의 마음을 늘 쓸쓸하게 했다. 시간만 나면 산소를 찾아 엎드려 울다 내려오길 반복했다. 그럴 때 그의 마음을 달래준 곳이 사찰이었다. 충남 홍성 출신인 그는 사월초파일만 되면 집에서 가까운 용봉사를 찾았다. 멀지만 수덕사까지 가기도 했다. 절에 다녀오면 마음이 포근했다. “불혹이라는 40세가 넘어서도 늘 어머니 품이 그리웠다. 그럴 땐 절을 찾았다. 당시 시골엔 불교밖에 없었다. 그래서 친구들하고 어울려 절에 많이 놀러갔다. 부처님 얼굴을 보면 그렇게 마음이 따듯해질 수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부처님에게 의지하게 됐다.” 13세 땐 전북 군산의 동국사로 들어갔다. 출가가 아니라 일본인이 세운 동국사의 주지가 5개 국어를 한다고 해 공부하러 들어갔다. 일제 치하였고 못살던 시절이라 뭔가 희망을 찾기 위해 들어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부처님 앞에서 결혼하는 게 유행이라 늘 손님들이 많이 찾아와 시끄러워서 공부가 잘되지 않았다. 사춘기이기도 했다. 6개월 만에 그만두고 무작정 서울로 올라갔다. 만봉 스님은 이 이사장이 사업으로 어느 정도 기반을 잡은 1981년에야 만났다. 각종 사회봉사활동을 하던 최복숙 만봉불화박물관 관장(72)과의 인연이 만봉과의 만남으로 이어졌다. 당시 서울 서대문구 봉원사 주지였던 만봉은 명부전(冥府殿)을 완성하지 못해 고민하고 있었다. 명부전은 지장보살을 모시고 죽은 이의 넋을 인도하여 극락왕생하도록 기원하는 전각이다. 봉원사에 훌륭한 스님이 계시다는 아들의 말을 듣고 최 관장이 봉원사를 찾았고 만봉의 부탁에 탱화에 빠진 경우다. 최 관장의 회고다. “봉원사에 들어가는데 감나무 밑에 앉아 있던 만봉 스님이 반갑게 맞이하셨다. 영문도 모르고 잡혀 차 한잔 하는데 스님이 ‘며칠 전 꿈에 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 턱이 동그란 보살이 올 것이며 그분이 명부전 짓는 데 힘을 써 줄 것이다’고 했다고 말하셨다. 그러면서 다짜고짜 ‘제 그림을 팔아 돈 좀 만들어 주세요’라고 하셨다. 당황스러워 처음엔 못 하겠다며 자리를 떴다.” 만봉은 1916년 6세에 김예운 스님 문하에 들어가 불화와 인연을 맺어 1926년 금어(金魚·불교에서 불화의 최고 경지에 이른 스님에게 주는 칭호)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국가지정 중요무형문화재 제48호 단청장까지 됐다. 만봉의 붓끝에 실어진 작품들은 지금도 남북한 사찰 곳곳에 산재해 있다. 일제 강점기에 북한 금강산의 표훈사와 유점사, 장안사, 마연사의 단청을 그렸다. 그리고 서울 봉원사와 도봉산 도선사, 안동 봉정사, 공주 마곡사, 순천 선암사 등 주요 사찰과 경복궁 경회루를 비롯해 종로 보신각 숭례문(남대문) 남한산성 등 문화재 단청도 만봉이 그렸다. 최 관장은 “불자들에게 만봉 스님 얘기를 하자 ‘만봉 스님이 어떤 분인데…’ ‘그분 말씀은 부처님 말씀인데…’라며 부탁을 거절하면 안 된다고 했다. 그래서 다시 봉원사를 찾았다”고 말했다. 당시 명부전을 지으려면 약 7000만 원이 필요했다. 만봉은 탱화를 내놓으며 “그림 하나당 350만 원을 받으면 된다”고 했다. 아무도 나서지 않았다. 그래서 평소 불교에 관심이 많고 사업으로도 어느 정도 성공한 이 이사장을 찾았다. 이 이사장이 “그림 하나에 얼마인가요”라고 하자 최 관장은 자기도 모르게 “600만 원입니다”라고 했단다. 머리로 생각하기도 전에 부처님이 시킨 듯 나온 말이란다. 어쨌든 이 이사장은 그림 5개를 사며 3000만 원을 그 자리에서 줬다. 최 관장은 “이 이사장님이 그림을 사 준 뒤부터 그림이 팔리기 시작했다. 당시 총 1억4000여만 원어치를 팔았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부처님을 보면 꼭 어머니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1965년 ㈜신원휄트란 회사를 만들면서도 회사와 공장, 집에 석불을 세웠다. 힘들 때 어머니 얼굴을 보면 힘이 나듯 부처님 얼굴을 보면 힘이 넘쳤다. 탱화도 그에게는 힘을 주는 원천이었다. 1960, 70년대는 보릿고개가 있을 정도로 못살았다. 사업하기도 힘들었다. 그때마다 부처님을 보면서 투지를 불태웠다고 했다. “요즘 젊은 세대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어떤 존재인지 잘 모른다. 우리같이 70세 넘은 사람들에게는 삶에서 가장 중요한 ‘먹고살게 해 준 분’이다. 한창 사업할 때 박 대통령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울컥한 적이 있다. 조그만 사업체 하나 운영하기도 힘든데 못사는 국가를 잘살게 하려고 고속도로를 뚫고 제철회사를 만들기 위해 여기저기 뛰어다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웠다.” 이 이사장은 신문팔이로 고학을 하며 자수성가했다. 형편이 힘들어 일찍 학업을 포기하고 중절모를 만드는 공장에 취직하며 생활전선에 뛰어들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등장에 공장을 그만두고 국내 최초로 펠트(Felt)를 만드는 회사를 창립하게 됐다. 1961년 당시까지만 해도 전 세계 남자들이 중절모를 쓰고 다녔다. 그런데 케네디 대통령이 중절모를 벗고 머리를 바짝 깎은 모습으로 나타나 여심(女心)을 사로잡고 백악관에 입성하자 남자들이 모자를 쓰지 않게 된 것이다. 그래서 공장에서 색다른 섬유를 연구하던 이 이사장은 모자도 만들고 건축할 때도 쓰고 피아노 재료로도 쓸 수 있는 펠트 제작에 나선 것이다. 펠트는 양모나 인조 섬유를 습기와 열을 가해 압축한 천으로 보온성이나 충격을 완화하는 성질이 우수하다. 이 이사장은 “일본에서 기술을 들여와 더 좋게 만들어 되팔았다. 우리가 전자제품을 일본에서 들여와 더 좋게 만들어 돈을 벌었듯 그렇게 해서 회사를 키웠다”고 말했다. 이 이사장은 2005년 제42회 무역의 날 500만 달러 수출의 탑 상패를 받기도 하는 등 대한민국 경제 성장에 힘을 보탰다. 이 이사장은 평소에도 장학금도 내놓고 기부도 많이 했다. 부처님 덕에 성공했다는 생각에 친구들을 만날 때마다 “난 돈 벌면 절과 보육원, 양로원을 만들겠다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이런 가운데 최 관장을 통해 만봉을 만나게 된 것이다. 이 이사장과 만봉의 인연은 만봉이 97세(법랍 81세)로 열반한 2006년 5월 17일까지 이어졌다. 지방의 어려운 불자 돕기나 사찰 짓기 도움 전시회가 열릴 때면 이 이사장이 불화 구입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그림이 팔리지 않으면 최 관장이 이 이사장을 불렀고 이 이사장이 불화에 꽃을 꽂아주면 팔리기 시작했단다. 이 이사장은 “만봉 스님은 주변머리가 없었다. 그림 그리는 방이 없어 판잣집에서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림방을 하나 지어 줬다. 그러자 ‘이제야 제자들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겠다’며 좋아하셨다. 너무 순수한 분이었다”고 회상했다. 이 이사장이 만봉에게 끌린 이유는 불화 때문만은 아니다. 평생 불화만 그리며 중생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만봉의 삶이 존경스러워서다. 만봉은 늘 없는 사람에게 나눠 줬다. 거지가 찾아와도 괄시하는 법이 없었다. 함께 얼굴을 맞대고 밥을 먹었다. 만봉은 통장도 없었다. 돈을 왜 은행에 쌓아 두느냐는 것이다. ‘어렵게 사는 불자가 많고 돈이 없어 절을 짓지 못하는데 왜 돈을 쌓아 두느냐’며 모두 내놓았단다. 전시회가 끝나면 모든 돈을 불자 돕기나 사찰 짓는 데 내놓고 돌아섰다. 명부전 관련 전시회 때 약 7000만 원이 남자 바로 전주지업사, 금은방 등 불화 재료상을 돌아다니며 외상값을 다 갚았단다. 모아둔 돈이 없었던 만봉은 늘 먼저 외상으로 쓰고 나중에 갚았다. 그때 남은 돈은 단 180만 원뿐이었다고. 만봉이 열반하자 남은 탱화를 어떻게 할지를 놓고 고민이 시작됐다. 기증하면 관리가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불교미술을 계승 발전시키고 가급적 많은 불자가 만봉의 불화를 보고 평화를 느끼고 깨닫게 하기 위해서는 불화박물관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이 이사장이 그동안 사 모은 탱화를 내놓으며 100억 원까지 쾌척한 이유다. 불자들의 헌금으로 지으려면 10년이 넘게 걸리니 빨리 짓기 위해 이 이사장이 거금을 투자한 것이다. 자제들은 반대하지 않았을까. 그는 “전혀 반대가 없었다. 어릴 때부터 나와 함께 부처님을 보고 자라 나눔에 익숙했다. ‘아버지가 번 돈은 아버지가 다 쓰고 가라’고 한다”며 웃었다. 박물관은 2008년 착공해 2013년 5월 개관했다. 만봉의 제자들이 박물관의 벽화와 단청을 다 했다. 이 이사장은 “불화박물관을 짓자고 했을 땐 작은 생각이었는데 지금 와서 보니 정말 잘했다고 판단된다. 이 박물관이 앞으로 우리나라의 유산이 돼 불자들에게 깨달음을 주게 될 것을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고 말했다. 요즘 주말에 많을 땐 100여 명이 박물관을 찾는다. 기자는 김준영 전 성균관대 총장(64)과의 인연으로 이 이사장을 만나게 됐다. 김 전 총장은 8년여 전 성균관대 최고경영자 과정을 다니던 이 이사장을 보고 “이렇게 나이 드신 분이 아직 공부를 하시나” 하며 유심히 보게 됐고 각종 기부 활동에 불화박물관을 짓는다는 소식까지 접했다. 김 전 총장은 “사회는 이런 분들이 많아야 발전한다. 더 많은 사람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좋겠다”며 아쉬워했다. 이 이사장의 불화 사랑 스토리가 인연이 돼 더 많은 사람이 좋은 인연을 만들어 가길 기대한다.영월=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60대 남자와 40대 여자가 젊은이들을 제치고 ‘국민체력왕’에 올랐다. 28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에서 열린 ‘체력왕중왕 선발대회(문화체육관광부 국민체육진흥공단 공동 주최)’. 박래철 씨(60·대전)와 이명주 씨(42·경남 창원)가 악력테스트와 제자리멀리뛰기, 10m 왕복달리기, 윗몸일으키기, 앉아 윗몸 앞으로 굽히기, 20m 셔틀런 등 6개 종목에서 겨루는 체력테스트에서 문체부 장관상을 받았다. 체력왕중왕 선발대회는 국민들에게 과학적인 방법으로 체력수준을 측정하여 개인별 맞춤형 운동을 처방하고 체계적인 건강관리까지 무료로 지원하는 ‘국민체력 100’ 사업의 특별 이벤트다. 전국 26개 체력인증센터에서 선발된 남녀 부문별 체력왕 156명을 대상으로 ‘왕중왕’을 뽑았다. 박 씨와 이 씨는 95점 씩 배정된 각 부분에서 모두 만점인 570점을 받아 남녀 청년층과 중년층, 장년층 1위 중 최고의 영예인 문체부 장관상을 받게 됐다. 국민체력 100은 13세 이상 청소년부터 어른신까지 참여할 수 있으며 홈페이지(http://nfa.kspo.or.kr)를 참조하거나 국민체력 100 체력인증센터902-410-1014)로 문의하면 된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지난해 3월 방북을 추진했던 거스 히딩크 전 축구국가대표 감독(사진)이 다음 달 초 북한 방문을 다시 추진한다. 히딩크 감독 측은 그동안 히딩크재단을 통해 한국에 만들어온 시각장애인을 위한 ‘드림필드’ 풋살 구장의 북한 내 건립과 풋살 경기 개최를 위해 방북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풋살은 실내에서 하는 5인제 미니 축구 경기다. 통일부 관계자는 19일 “히딩크 감독이 다음 달 4일 평양을 방문하기 위해 방북 신청을 하겠다는 뜻을 전해 왔다”고 말했다. 히딩크 감독은 축구를 통해 분단된 한반도의 통일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이를 위해 평양에 드림필드 풋살 구장 부지를 마련한 것으로 알려졌다. 히딩크 감독은 외국인이어서 통일부의 방북 허가가 필요 없다. 하지만 한국인 재단 관계자 1명과 동행하고, 풋살 경기장 건립을 위한 물자의 북한 반입을 위해 방북 승인을 신청하기로 했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해부터 경의선 육로를 통해 걸어서 북한에 가겠다고 했지만 최근 중국을 통해 평양을 방문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꿨다고 한다. 풋살 경기장 건립을 위한 물자는 경의선 남북출입사무소를 통해 육로로 옮길 예정이다. 그가 중국을 거쳐 방북하기로 결정한 배경엔 외국인의 육로 방북에 대한 정부의 거부감이 작용했기 때문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정부는 히딩크 감독의 방북이 민간 스포츠 교류 차원에 해당된다고 보고 방북을 허가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히딩크 감독은 지난해 방북을 추진하다 북한이 호응하지 않아 방북하지 못했다. 히딩크 감독은 올해 5월부터 방북을 다시 추진해 왔다. 통일부는 히딩크 감독이 방북 신청 의사를 밝힌 것은 북한 측의 호응이 있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고 있다. 네덜란드 국적의 히딩크 감독은 최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있던 히딩크재단 사무실을 서울로 옮겨 왔다. 히딩크 감독이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까지 이끌어 한국에서 영웅으로 여겨지는 만큼 이번 방북이 남북관계 개선에 미치는 영향도 적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포츠 가운데 특히 축구에 큰 관심을 보여 온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가 그의 방북에도 큰 관심을 나타낼지 주목된다.윤완준 zeitung@donga.com·양종구 기자 }

국내 남자 마스터스 최강자와 아프리카 엘리트 선수의 10km 실력 차는 3분 54초였다. 18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종로와 동대문, 청계천을 뛰는 2015서울달리기대회(서울시 동아일보 공동 주최) 10km 국제오픈부문에서 엘리트 선수와 마스터스가 승부를 겨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 레이스에서 33분 29초로 마스터스 중 가장 빨리 결승선을 통과한 백광영 씨(29·외향산업)는 종합순위에서 케냐의 대니얼 킵춤바 체비(30·28분 39초) 등 엘리트 선수들에 이어 7위에 올랐다. 1위에서 5위까지 케냐 선수들이 휩쓴 가운데 백 씨와 5위 티머시 키멜리(21·29분 35초)의 기록 차이는 3분 54초였다. 백 씨는 “2km까지 따라갔는데 너무 빨라 더 이상 함께 달릴 수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엘리트 선수 출신이 아닌 백 씨는 2009년 달리기를 시작해 마스터스계의 강자가 됐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시간 49분 55초. 지난해 마스터스 10km 남자부 챔피언으로 대학 시절 800m와 1500m 선수로 활약하기 도 했던 브라이언 매닝 씨(26·미국)는 이날 8위를 한 뒤 “초반부터 케냐 선수들이 너무 빨리 뛰쳐나가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식의 레이스뿐 아니라 바뀐 10km 코스에 대해서도 참가자들은 크게 만족해했다. 마스터스 10km 여자부에서 3위를 한 설리나 오도널 씨(32·아일랜드)는 “이렇게 평탄하고 환상적인 코스는 처음이다. 서울의 명물을 즐기다 보니 10km에서 내 생애 최고의 기록을 냈다”며 활짝 웃었다. 뚝섬 한강공원으로 골인하는 하프코스의 여자부에서 2위를 한 페넬로페 발렌스타인 씨(33·영국)도 “달리며 서울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와 지역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마라톤대회뿐이다”고 말했다. 마스터스 10km 여자부에서 우승한 이주영 씨(26)는 아버지 이대연 씨(53), 어머니 유연자 씨(50)와 함께 달려 ‘마라톤 가족’의 힘을 보여줬다. 아버지는 주영 씨의 개인 페이스메이커로 우승을 거들었다. 주영 씨 아버지와 어머니는 풀코스 최고기록이 각각 2시간 47분 30초, 3시간 18분 1초다. 다이어트를 위해 2013년 마라톤에 입문한 주영 씨는 13kg을 감량했다. 2015공주마라톤 풀코스 남자부 챔피언 남평수 씨(36·경기 하남)는 마스터스 10km 남자부에서 정상에 올랐다. 하프코스 남녀부에서는 송재영 씨(26·서울)와 이금복 씨(49·경기 성남)가 우승했다. 한편 이광구 우리은행장 등 임직원 500여 명은 10km와 하프코스에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달렸다. 임직원 30명도 시각장애인들의 레이스 도우미로 활약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 정세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김무균 스포츠토토 본부장, 이진숙 동아오츠카 이사, 양회종 서울시생활체육회 회장, 김재호 동아일보사 사장 등은 출발선에서 1만여 명의 달림이들을 격려했다. 양종구 yjongk@donga.com·김동욱 기자}
국내 남자 마스터스 최강자와 아프리카 엘리트 선수의 10km 실력차는 3분 54초였다. 18일 서울광장을 출발해 종로와 동대문, 청계천을 뛰는 2015서울달리기대회(서울시 동아일보 공동주최) 10km 국제오픈대회에서 엘리트선수와 마스터스가 승부를 겨뤘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이 레이스에서 33분 29초로 마스터스 중 가장 빨리 결승선을 통과한 백광영 씨(29·외향산업)는 종합순위에서 케냐의 대니얼 킵춤바 체비(30·28분 39초) 등 엘리트 선수들에 이어 7위에 올랐다. 1위에서 5위까지 케냐 선수들이 휩쓴 가운데 백 씨와 5위 티모시 키멜리(21·29분 35초)의 기록 차이는 3분54초였다. 백 씨는 “2km까지 따라갔는데 너무 빨라 더 이상 함께 달릴 수 없었다”며 혀를 내둘렀다. 엘리트선수 출신이 아닌 백 씨는 2009년 달리기를 시작해 마스터스계의 강자가 됐다. 풀코스 최고기록은 2시간 49분 55초. 지난해 마스터스 10km 남자부 챔피언으로 대학 시절 800m와 1500m 선수로 활약하기 도 했던 브라이언 매닝 씨(26·미국)는 이날 8위를 한 뒤 “초반부터 케냐 선수들이 너무 빨리 뛰쳐나가 따라갈 수 없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식의 레이스 뿐 아니라 바뀐 10km 코스에 대해서도 참가자들은 크게 만족해했다. 마스터스 10km 여자부에서 3위를 한 설리나 오도넬 씨(32·아일랜드)는 “이렇게 평탄하고 환상적인 코스는 처음이다. 서울의 명물을 즐기다보니 10km에서 내 생애 최고의 기록을 냈다”며 활짝 웃었다. 뚝섬 한강공원으로 골인하는 하프코스의 여자부에서 2위를 한 페넬로페 발렌스타인 씨(33·영국)도 “달리며 서울을 느낄 수 있었다. 도시와 지역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마라톤대회뿐이다”고 말했다. 마스터스 10km 여자부에서 우승한 이주영 씨(26)는 아버지 이대연 씨(53), 어머니 유연자 씨(50)와 함께 달려 ‘마라톤 가족’의 힘을 보여줬다. 아버지는 주영 씨의 개인 페이스메이커로 우승을 거들었다. 주영 씨 아버지와 어머니는 풀코스 최고기록이 각각 2시간 47분 30초, 3시간 18분 1초다. 다이어트를 위해 2013년 마라톤에 입문한 주영 씨는 13kg을 감량했다. 2015공주마라톤 풀코스 남자부 챔피언 남평수 씨(36·경기 하남)는 마스터스 10km 남자부에서 정상에 올랐다. 하프코스 남녀부에서는 송재영 씨(26·서울)와 이금복 씨(49·경기 성남)가 우승했다. 한편 이광구 우리은행장 등 임직원 500여 명은 10km와 하프코스에서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달렸다. 임직원 30명도 시각장애인들의 레이스 도우미로 활약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 정세균 새천년민주당 의원, 김무균 스포츠토토 본부장, 이진숙 동아오츠카 이사, 양회종 서울시생활체육회 회장, 김재호 동아일보사 사장 등은 출발선에서 1만여 명의 달림이들을 격려했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김동욱 기자 creating@donga.com}

18일 열린 2015서울달리기대회 마스터스 10km 여자부에서 41분 10초로 우승한 이주영 씨(26)는 결승선을 통과한 뒤 함께 뛰어준 아버지 이대연 씨(53)와 뜨겁게 포옹했다. 아버지의 적절한 페이스메이킹 덕택에 정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이날 주영 씨는 아버지는 물론 어머니 유연자 씨(50)와 함께 레이스에 참가했다. 온 가족이 마라톤으로 건강을 다지는 ‘마라톤 가족’이었다. 어머니는 46분대로 골인했다. 아버지는 2008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47분 30초를 기록해 ‘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에 가입한 마라톤계의 고수다. 동아마라톤 명예의 전당은 동아일보 주최 대회(서울국제 경주국제 공주마라¤)에서 ‘서브스리(3시간 이내 완주)’를 달성한 사람들에게 주는 명예 기록증이다. 마스터스계에선 최고의 명예로 알려져 있다. 어머니도 2008년 가을 3시간 18분 1초를 기록했다. 주영 씨는 마라톤에 빠진 어머니와 아버지를 지켜보다 2013년 다이어트를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해 가을 3시간 7분 33초를 기록할 정도로 일취월장했다. 올 가을엔 ‘서브스리’까지 노리고 있다. 서울달리기대회 10km는 2주 뒤 열리는 풀코스 대회의 전초전격으로 달린 셈이다. 취업준비생인 주영 씨는 “즐기며 달리다보니 체중이 13kg나 줄었다.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분들은 바로 마라톤을 시작하면 된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결혼할 예비 남편도 마라톤에 빠졌어요”라며 활짝 웃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케냐의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7·사진)가 특별귀화로 태극마크를 달고 내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마라톤에 출전하면 메달을 딸 수 있을까. 11일(현지 시간) 열린 미국 시카고마라톤을 끝으로 올 시즌 마라톤 기록 경쟁은 사실상 마감했다. 주요 국제대회로 다음 달 초 열리는 뉴욕마라톤이 남아 있지만 뉴욕에선 전통적으로 좋은 기록이 나오지 않았다. 올 시즌 기록을 종합해 보면 에루페가 3월 2015 서울국제마라톤 겸 제86회 동아마라톤에서 세운 기록(2시간 6분 11초)은 11위다. 선수로는 시즌 10위다. 엘리우드 킵초게(31·케냐)가 4월 런던마라톤(2시간 4분 42초)과 9월 베를린마라톤(2시간 4분)에서 시즌 1, 2위 기록을 세웠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올림픽 마라톤에서는 기록보다는 순위 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에 에루페의 메달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올림픽 마라톤 최고기록은 2008년 베이징에서 나온 2시간 6분 32초다. 에루페는 11일 동아일보 2015 경주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7분 1초로 우승하는 등 국내 5개를 포함해 출전한 6개 대회에서 모두 정상에 오르며 순위 싸움에서는 탁월한 기량을 보여 줬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마라톤이 섭씨 30도가 넘는 날씨에서 열릴 예정인 가운데 강호들이 아프리카 출신답지 않게 더위에 약하다는 것도 에루페에게는 유리하다. 8월 섭씨 30도가 넘는 무더위에서 열린 중국 베이징 세계육상선수권대회 마라톤에서는 에리트레아의 기르메이 게브레슬라시에(20)가 전통의 강호 케냐 선수들을 제치고 2시간 12분 28초로 우승했다. ‘케냐 군단’의 마크 코리르(30)는 2시간 21분 20초로 22위에 그쳤고, 세계기록(2시간 2분 57초) 보유자 데니스 키프루토 키메토(31)와 역대 랭킹 3위(2시간 3분 23초) 윌슨 킵상 키프로티치(33)는 레이스를 중도에 포기했다. 에루페는 연평균 기온 40도의 케냐 트루카나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더위에 강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대한민국 귀화를 준비하고 있는 윌슨 로야나에 에루페(27·케냐)가 국내 마라톤 대회 5번째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에루페는 11일 경북 경주시에서 열린 동아일보 2015 경주국제마라톤(경북도 경주시 대한육상경기연맹 동아일보 공동주최)에서 2시간 7분 1초로 2시간 8분 11초의 조엘 켐보이 키무레르(27·케냐)를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우승 상금은 5만 달러. 에루페는 이날 최대 초속 3.3m의 바람 탓에 2012년 자신이 세운 대회 최고 기록(2시간 6분 46초)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3년 만에 이 대회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12년 이 대회 2연패를 달성했었던 에루페는 2012년과 올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도 우승해 동아일보 주최 대회에서만 5차례 우승했다. 에루페에게 이날 레이스는 특별귀화를 위한 마지막 시험 무대였다.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에루페가 귀화를 선언하자 일부 육상인은 “국내 마라톤이 고사한다”며 반대했다. 하지만 에루페는 이번 대회까지 출전한 국내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우승 청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에루페는 이날 “바람만 없었다면 2시간 4분대에 뛸 자신이 있었다”며 “내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4분대 기록을 세운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루페는 6월부터 충남 청양군체육회 소속으로 뛰고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추천하고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에서 에루페의 특별귀화를 결정하면 법무부 국적심사위원회가 귀화를 최종 심의한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에 따르면 귀화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귀화한 국가의 팀에서 1년 이상 뛰어야 한다. 특별귀화에서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에루페는 2012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국내 개최 대회 기록 중 최고인 2시간 5분 37초를 기록했다. 특히 에루페는 연중 평균 기온이 섭씨 40도인 케냐의 트루카나 출신이어서 섭씨 30도의 무더운 날씨 속에 열릴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에루페를 지도하고 있는 오창석 백석대 교수(53)는 “에루페는 어릴 때 무더운 곳에서 자라 더위를 잘 타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충분히 입상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 교수의 성을 따고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의미’의 오주한(吳走韓)이란 한국 이름도 지은 에루페는 이날 처음으로 청양군 유니폼을 입고 달렸다. 경주=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
대한민국 귀화를 준비하고 있는 윌슨 노야나에 에루페(27·케냐)가 국내 마라톤 대회 5번 째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에루페는 11일 경북 경주시에 열린 동아일보 2015경주국제마라톤(경상북도 경주시 대한육상경기연맹 동아일보 공동주최)에서 2시간 7분 1초로 2시간 8분 11초의 조엘 켐보이 키무레르(27·케냐)를 따돌리고 정상에 올랐다. 우승상금은 5만 달러. 에루페는 이날 최대 초속 3.3m의 바람 탓에 2012년 자신이 세운 대회 최고기록(2시간 6분 46초)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3년 만에 이 대회 3번째 우승을 차지했다. 2012년 이 대회 2연패를 달성했었던 에루페는 2012년과 올해 서울국제마라톤에서도 우승해 동아일보 주최 대회에서만 5차례 우승했다. 에루페에게 이날 레이스는 특별귀화를 위한 마지막 시험 무대였다. 3월 서울국제마라톤에서 우승한 뒤 에루페가 귀화를 선언하자 일부 육상인들은 “국내 마라톤이 고사 한다”고 반대했다. 하지만 에루페는 이번 대회까지 출전한 국내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며 ‘우승 청부사’의 면모를 과시했다. 에루페는 이날 “바람만 없었다면 2시간 4분대에 뛸 자신이 있었다”며 “내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2시간 4분대 기록을 세운 뒤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에루페는 6월부터 충남 청양군체육회 소속으로 뛰고 있다.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추천하고 대한체육회 법제상벌위원회에서 에루페의 특별귀화를 결정하면 법무부 국적심사위원회가 귀화를 최종 심의한다. 국제육상경기연맹(IAAF) 규정에 따르면 귀화 선수가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귀화한 국가의 팀에서 1년 이상 뛰어야 한다. 특별귀화에서는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있는 경쟁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다. 에루페는 2012년 서울국제마라톤에서 국내 개최 대회 기록 중 최고인 2시간 5분 37초를 기록했다. 특히 에루페는 연중 평균 기온이 섭씨 40도인 케냐의 트루카나 출신이어서 섭씨 30도의 무더운 날씨에 열릴 내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된다. 에루페를 지도하고 있는 오창석 백석대 교수(53)는 “에루페는 어릴 때 무더운 곳에서 자라 더위를 잘 타지 않는다. 올림픽에서 충분히 입상 가능하다”고 말했다. 오 교수의 성을 따고 ‘한국을 위해 달린다는 의미’의 오주한(吳走韓)이란 한국 이름도 지은 에루페는 이날 처음으로 청양군 유니폼을 입고 달렸다.경주=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