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구

이진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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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부터 ‘이진구 기자의 대화’를 연재하고 있습니다. 딱딱하고 가식적인 형식보다 친구와 카페에서 수다 떠는 듯한 편안한 인터뷰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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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분야

2026-02-25~2026-0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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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 대표 친구에게 벌써 줄 대려 난리… 막장공천 악몽 떠올라”[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보수 악몽의 시작은 거기서부터였다. 20대 총선 ‘막장공천’. 2016년 새누리당의 공천 과정은 입 가진 사람이면 욕하지 않는 이가 없는 막장 드라마였다. 지금 지나간 일을 다시 끄집어내는 것은 여야를 막론하고 당시의 상황이 재연될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의 오만은 과거 새누리당을 넘어섰고, 자유한국당은 여전히 정신 차리지 못하고 있다. 총선까지는 불과 석 달 남짓. 이 인터뷰는 불과 4년 전 총선 과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복기해 반면교사로 삼기 위함이다.》 ―당시 당 대표실에 있긴 했지만 공천 내막은 웬만한 사람이 아니면 알기 어렵지 않나. “전부 알 수는 없고… 그때 김무성 대표 보좌관이면서 부실장을 겸했는데, 정무·공보 담당인 데다 총선 업무를 맡았다. 또 내가 신한국당 당직자 공채 출신이고, 2012년 박근혜 전 대통령 대선캠프 공보팀장도 지내 당시 청와대·공천관리위원회와 대표 간의 가교 역할도 했다. 그러다 보니….” ―지역구 공천 과정은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비례대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청와대가 6명을 찍어 내려보냈다고 했는데…. “청와대에서 반드시 당선돼야 할 사람이라며 강효상 최연혜 유민봉 김현아 신보라 현 한국당 의원을 찍어 내려보냈다. 한 명 더 있었는데 너무 ‘깜’이 안 돼 누군지 기억이 잘 안 난다. 청와대 총대를 멨던 이한구 공관위원장조차 ‘어떻게 이런 사람을 시키느냐’며 순번을 뒤로 멀리 뺄 정도였으니까. 신보라 의원은 발표 전날까지는 당선권 밖이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보니 앞쪽으로 바뀌었다.” (어떻게 안 건가?) “발표 전날 최종 명단을 봤으니까. 이 공관위원장이 직접 애기도 했고….” (김현아 의원은 한국당 탈당파와 뜻을 함께한 사람인데 청와대가 챙겼다니 좀 의외다.) “김 의원은 본인이 공천을 받기 위해 끈을 대거나 뛰어다닌 쪽은 아닌 걸로 안다. 박 전 대통령이 전문 분야에서 똑똑한 여성을 좋아하는데 그런 차원이었던 걸로 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친박계 공천을 위한 여론조사 승인 등 불법 공천 개입으로 2년형이 확정됐다. 그것뿐이었을까. “그건 알 수 없지만, 박 전 대통령이 사람을 쓰는 데 정말 꼼꼼히 살피고, 아무나 안 쓰는 건 사실이다. 대통령 당선자 때 청와대에 지원한 행정관들 이력서까지 직접 봤다. 화환 보내는 곳도 직접 결재하고.” (이유가 있나?) “화환과 자신을 동일시한 것 같다. 2006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1년 앞두고 경선 캠프가 만들어졌는데 나는 후보 일정 담당이었다. 매일 올리는 일정보고서에 화환 보낼 곳도 있는데, 하나하나 친필로 ○, ×가 표시돼 내려왔다. 당시 첫 회의에서 유승민 의원이 ‘메시지팀은 어떻게 꾸릴까요’ 했더니 ‘정호성 보좌관과 상의하세요’라고 해 깜짝 놀랐다. 조직은 안봉근, 정책은 이재만과 상의하고 보고하라고…. 경악을 했다. 그 정도인데 국회의원 공천을 아래에만 맡겼을지….” ―사실상 문고리 3인방이 상급자가 된 건데, 그럼 회의는 어떻게 한 건가. “안 했다.” (응?) “안 했다고. 제발 회의 좀 하자는 말이 나올 정도로…. 그리고 박 전 대통령은 보고서 만드는 걸 싫어했다. 결국 유출된다고.” (당시에는 최순실이 없었나.) “최순실은 몰랐고, 사실 우리는 최순실 남편인 정윤회가 비선 실세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 이상했던 게 내가 일정 담당이다 보니 박 전 대통령 쪽에서 예를 들면 며칟날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에는 아무 일정도 잡지 말라고 지시가 왔다. 무조건 안 된다고. 경선 때인데…. 어딜 가나 보니 강남에 있는 빌딩에서 누구를 만나고 있다고 하더라.” ―이한구 공관위원장을 청와대가 낙점했다는데, 원래 당 대표가 데려오는 것 아닌가. “왜 안 했겠나. 김종인 윤여준 전 의원 등 여러 명을 최고위원회에 올렸는데 전부 거부당했다. 당시 최고위는 합의제라 친박 최고위원들이 모두 반대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현기환 당시 정무수석이 김 대표를 찾아와 ‘할매가 이한구 시키라고 한다’고 툭 던지고 가버렸다. 다음 날 최고위에 전했더니 ‘말도 안 된다’며 다 들고일어나더라.” (말 잘 듣던 친박 최고위원들이 왜?) “청와대에 대한 반대라기보다 이 공관위원장에 대한 반감이 더 컸던 것 같다. 아무도 사전에 언질을 못 받은 것도 있고. 그런데 청와대에서 작업을 했는지 며칠 후 태도가 전부 변했다. 당시 청와대는 늘 그런 식이었다.”―어찌 됐든 최종 임명권자는 당 대표인데 거부할 수도 있지 않았나. “김 대표는 국민경선제가 숙원이었다. 안심번호를 통한 여론조사 등을 하려면 시간이 걸리는데, 이 공관위원장을 안 받고 공관위 구성이 늦어지면 점점 더 시간이 없어지는 거다. 데드라인까지 와서 어쩔 수 없이 국민경선제를 받는 조건으로 타협했다. 그 대신 전횡을 막자는 취지에서 원래 공천심사위인데 이름을 관리만 하라는 뜻으로 공천관리위로 바꿨다.” (정말 관리만 할 거라 믿었단 말인가.) “그래서 견제를 위해 공관위원은 전부 대표 몫으로 달라고 했는데 최고위에서 거부당했다. 옥신각신하다 청와대 반, 대표 반으로 하되 상대방이 반대하는 사람은 빼기로 했다. 그런데 우리가 올린 사람들은 한 명 빼고 전부 반대하더라. 방송에서 박 전 대통령을 욕했다며…. 기가 막혔지만 물리적인 시간이 부족해 한 명만 빼고 전부 청와대에서 하라고 양보했다. 그게 또 하나의 패착이었다. 뭐가 씌었는지….” ―왜 그렇게 무기력했던 건가. “김 대표는 공천권도 있고, 상당 기간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였다. 그래서 나도 그렇고 주변에서 강하게 나가야 한다는 말을 많이 했다. 그런데 ‘당 대표가 대통령과 싸우면 망한다. 내 주장에 대해 청와대에서 반감을 가지면 접는 게 맞다’고 하더라.” (그렇게 접다가 더 망한 것 아닌가.) “그렇게 됐다. 정치는 대화와 타협, 조정이라면서…. 가장 가까이에 있던 나조차 ‘이 사람을 믿고 큰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가 들었으니까.” (정말 아무것도 안 했나.) “최후의 수단으로 공관위를 돕는 당직자들을 모두 철수시킬 계획을 세웠다. 사인만 주면 자료고 뭐고 전부 들고 나오게…. 그런데 결국 대표가 ‘그러면 총선을 어떻게 치르느냐’며 못 하게 하더라.” (정권에 약점 잡힌 게 있어서란 말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보통이겠지. 나도 그런 생각이 들어서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찾을 수는 없었다. 뒷다리를 잡힌 게 있었다면 옥새파동 같은 최소한의 저항도 못 했을 거다.” ※조사기관별 차이는 있지만 김 대표는 2015년 12월까지 약 8개월간 대선 후보 지지도 1위였다. ―막판에 부당 공천에 저항해 ‘옥새파동’까지 일으켰는데 단 하루 만에 접었다. “‘절대로 대표 직인을 찍어줄 수 없다’고 기자회견까지 하고 부산에 내려갔는데…. 친박인 원유철 원내대표가 달래려고 내려왔다. 안 올라간다고 하니 대표 유고 상태로 보고 자기들끼리 권한 대행 세워서 결정하겠다고 하더라. 원 원내대표가 돌아간 뒤 측근들과 회의를 했는데, 그들 마음대로 하는 걸 막을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올라갔다.” (그 정도 각오도 안 했단 말인가?) “하… 이런 표현은 안 좋지만, 정말 쪽팔렸다. 소심의 대마왕이었다. 그래도 마지막 5곳 중 3곳은 무공천으로 남겼으니까….” ※김 대표는 유승민(대구 동을), 이재오 의원(서울 은평을) 지역구와 진박 중의 진박 유영하 변호사가 출마한 서울 송파을 지역구는 직인을 찍지 않아 무공천으로 남겼다.―이번 총선에서 당시 모습이 어른거린다고 했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박 전 대통령 시절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 지금 황교안 대표를 둘러싸고 총선과 관련된 중요한 실무를 장악했다. 김병준 전 비상대책위원장 때 구성됐던 당무감사위원회는 1년여 만에 황 대표 체제에서 1명만 빼고 다 바뀌었다. 총선기획단도 친황 일색이다. 선거에서 가장 중요한 여론조사를 하는 여의도연구원장에는 자기 사람을 앉혔다. 이 세 곳이 총선 준비를 하는 곳이다. 더군다나 황 대표를 둘러싼 친박들의 탄핵 찬성파, 탈당파에 대한 적개심은 민주당과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것보다 더 크다.” ―황 대표가 친박을 제어하기 힘들 거란 말인가. “한국당 혁신을 막는 게 친박인데 그들이 주도권을 과연 놓을까. 공천에서 쳐내면 가만히 있을까. 황 대표에게 그걸 제어할 힘이 있을지…. 그래서 20대 총선 때 모습이 사람을 달리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리고 황 대표는 실수하고 있는 게 너무 많다.” (어떤?) “공천관리위원장 후보군으로 황 대표가 ‘내 친구 K도 있다’고 한 적이 있다. 황 대표와 고교 동창인데 여의도에서는 황 대표의 생각과 판단에 가장 영향력이 큰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사람을 대표가 언급까지 하니까 전국의 당협위원장들이 출판기념회, 당원보고회 등에 모셔서 눈도장 찍으려고 난리도 아니다. 현역 의원, 원외 가릴 것 없이 섭외 1순위다. 대표의 말 한마디가 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에 어떻게 파장을 미치는지 모르고 있다.” ―너무 비판적인 것 아닌가. “주변에서도 그만하라고 하기는 한다. 그런데 지난 총선 과정에서 우리가 실패하지 않았나. 다시 그 과정이 보이는 것 같으니까…. 이유는 있었지만 넘어가고 막지 못한 순간들이 모여 결국 막장공천이 됐다. 그 실패를 되풀이하지 말자는 뜻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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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춘문예 [횡설수설/이진구]

    문학에 삶의 전부를 걸어도 좋다는 ‘문청(文靑)’들에게 신춘문예는 앓지 않고는 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없는 ‘지독한 열병’이다. 새해 벽두 신문 지면에 오른 이에게는 기쁨이지만, 대부분은 다시 길고 긴 자신만의 싸움으로 돌아가야 한다. 오죽하면 ‘문단고시’라고 했을까. 201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 중편소설 부문 당선자인 전민석 씨는 그 당시를 ‘방문 밖 식구들 한숨소리에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도, 손은 어느새 자판 위로’라고 표현했다. ▷일간신문사가 매년 1월 1일자에 당선작을 발표하는 문인 등용문인 신춘문예는 세계적으로 유사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에게만 있는 시스템이다. 현재도 약 20곳에 남아 있다. 1914년 조선총독부 기관지격인 매일신문이 ‘신년문예’를 모집한 적이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1925년 동아일보가 시작한 신춘문예를 출발로 본다. 문예란(단편소설 시), 부인란(가정소설), 소년란(동화극 가극 동요)으로 나뉘었고 분량 제한은 없었다. 각 부문 1등 상금은 50원이었는데, 당시 경성의 쌀 한 말이 3∼4원, 한 달 하숙비가 15원 정도였다고 한다. ▷신춘문예를 통해 싹이 튼 씨앗들은 한국 현대문학의 거대한 숲을 이뤘고 숱한 거목으로 솟았다. 퇴고를 거듭하다 마감을 넘긴 응모자를 인정상 받아줬다가 공교롭게 그가 당선이 되는 일도 있었다. 이메일 접수 초기 한 응모자는 “신춘문예 담당자입니다”란 전화에 감격에 차 울먹였는데, 사실은 원고가 첨부되지 않았으니 다시 보내달라는 전화여서 서로 머쓱해졌다고 한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님은 “법률 의학 기술은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지만 시와 미, 낭만, 사랑은 삶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런 감정을 표현하고, 보여주고 싶은 것은 변할 수 없는 인간의 본성이다. 디지털과 영상이 대세가 된 요즘도 시 쓰기의 어려움과 고민을 토로하며 밤을 지새우는 문학청년들은 끊임없이 배출된다. 신춘문예에 매년 수천 명의 응모자가 몰리는 것은 그런 까닭이다. ▷과거 신춘문예 심사위원 중에는 결선에 오른 제자의 작품을 가차 없이 탈락시킨 스승도 있었다. 재주만 승해 일찍 데뷔하면 오래가지 못할 것을 우려해서라니 글과 인간됨을 동일시한 그 엄격함에 고개가 숙여진다. 신춘문예의 좁은 문을 통과한 작가들이 롱런하는 것도 우연은 아니다. 인터넷으로 누구나 글을 올리고 평가받는 세상이다. 데뷔 방식이 다양해진 점은 긍정적이지만, 미숙한 글이 넘쳐 상처를 주는 것도 사실이다. 혹독하게 단련시키고, 익지 않은 글이 돌아다니는 것을 용납지 않는 과정 하나쯤은 있어도 좋을 것 같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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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0년 빨간 날[횡설수설/이진구]

    2010년대 초반 인터넷에서 ‘부처님오신날’의 절묘한 위치가 화제가 됐다. 음력이어서 매년 바뀌는 부처님오신날이 2012년부터 4년 연속 기가 막히게 쉬는 날 앞뒤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2012년은 월요일, 2013년은 금요일이었고, 2014년은 화요일로 전날인 어린이날과 함께 나흘 연휴를 만들었다. 반면 크리스마스는 주말과 잘 이어지지 않았다. 속상한 누리꾼들은 ‘예수님 보고 계신가요?’라는 댓글로 ‘투정’을 부렸다. ▷새해 달력에서 가장 먼저 보는 게 ‘빨간 날’이다. 금, 월요일에 떡하니 있으면 추수를 앞둔 농부처럼 흐뭇하고, 토, 일요일에 있으면 왠지 자살골을 먹은 것 같다. 올해 휴일은 법정공휴일을 포함해 115일로 2015년 114일 이후 가장 적다. 주말과 겹쳐서다. 지난해는 117일, 2018년은 119일이었다. 올해 3·1절은 일요일, 현충일 광복절 개천절은 토요일이다. ▷휴일이 날아가는 속상함을 달래 주려고 대체휴일제가 도입됐지만 올해는 별 혜택을 못 본다. 설과 추석 연휴, 어린이날이 공휴일과 겹칠 때만 대체휴일이 발생하기 때문에 올해 대체휴일로 벌충할 수 있는 날은 설 연휴 마지막 날 하루뿐이다. 게다가 대체휴일은 상당수 근로자에겐 무급휴일이다. 올해부터는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 유급대체휴일이 적용되지만, 30∼300인 미만은 내년, 5∼30인 미만은 2022년부터나 적용된다. ▷그나마 위안을 삼는다면 5월 1일 ‘근로자의 날’이 금요일이라는 점이다.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는 직장인들은 전날인 부처님오신날부터 주말을 포함해 추석 연휴(5일)에 버금가는 나흘 연휴가 생긴다. ▷1년 치 달력을 보며 빨간 날을 미리 보는 것도 즐겁지만, 매일매일을 선물로 여기며 달력을 넘기는 즐거움도 크다. 스마트폰 등 디지털에 밀려 달력은 줄고 있지만 한 장씩 뜯는 두툼한 일력(日曆) 달력이 요즘 인기라고 한다. 복고(Retro)를 새롭게 즐기는 뉴트로(New-Tro) 바람 때문인데, 365장에 개성 넘치는 문구나 사진 등을 넣어 다양하게 만들기도 한다. 치매 초기인 부모님이 더 수월하게 날짜를 기억할 수 있게 주문하기도 한다고 한다. 하루의 시작과 마침을 새겨 보는 데는 한 달 한 번이 아니라 매일 넘기는 일력이 제격인 듯하다. ▷긴 연휴가 기쁨인 사람도 있지만, 일용직이나 자영업자에게는 즐겁지만은 않을 것이다. 소방관, 경찰관, 군인, 응급실 의사·간호사 등 날짜 색깔과 관계없이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도 많다. 하루가 쌓여 한 해가 되듯, 고마운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는 것을 생각하는 한 해가 됐으면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20-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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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신각종은 일제에 끌려가고, 총 맞으며 지킨 우리 혼”[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매년 섣달 그믐날 자정이면 서울 보신각(普信閣)에서는 ‘제야(除夜)의 종’ 행사가 열린다. 1953년부터 열렸으니 올해로 66년째다. 그 오랜 세월 뒤에는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종지기’를 천직으로 여기고 자리를 지켜온 사람들이 있었다. 5대 종지기인 신철민 보신각 관리소장(45·서울시 역사문화재과 주무관)은 “2대 종지기였던 스승님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보신각을 지키다 일본 경찰에 잡혀가기도 했다”고 전했다. 》 ―보신각 관리소장이면 공무원인데 대를 이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스승님의 증조부가 구한말 보신각을 관리했는데 그 뒤를 조부, 부친이 이어왔다. 스승님의 조부는 일제강점기 총독부가 보신각 옆에 공중화장실을 짓자 곡괭이로 때려 부숴 잡혀가고, 스승의 모친은 6·25전쟁 때 보신각을 지키다 다리에 총을 맞았다고 한다. 나라가 없던 시절부터 집안에서 가업처럼 이어오다 스승님이 1988년 보신각을 관리하는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으로 채용되면서 정식 공무원이 됐다. 스승님은 4대, 나는 5대다.” ―당신은 같은 집안이 아니지 않나. “보신각종은 원래 3·1절, 광복절, 제야의 종 이렇게 세 번만 쳤다. 그러다 2006년 시민에게도 개방하자는 취지에서 처음으로 상설 타종 행사를 열었는데 당시 내가 타종 행사 대행업체의 연출팀장이었다. 출연자들에게 종 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배웠는데 그게 인연이 됐다.” (스승에게 아들이 없었나.) “있었는데 사업을 하느라 이을 상황이 아니었다. 나중에 안 거지만 스승님이 병환도 깊은 상태였다. 그래서 나를 눈여겨봤던 것 같다. 그때는 일 때문에 타종법을 배운 거였는데 가혹할 정도로 엄했다. 문화재 재연 행사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내가 왜 이걸 배우고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 뒤를 잇는다는 건 생각도 안 했다. 그러던 중 스승님이 입원했는데 거의 매일 병원을 다니며 간병하던 어느 날 내 손을 꼭 잡으시더니 ‘신 팀장이 내 뒤를 꼭 이어줬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전에도 두어 번 말씀하신 적은 있었지만 완곡하게 고사했는데 그날은… 거절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뭐든지 할 테니 빨리 나으시라고 했는데 그 다음 날 돌아가셨다.”※신 소장의 스승은 고 조진호 씨로 2006년 12월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당시 80세. ―유언이 된 셈인가. “그때 스승님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는 듯 홀가분하고 평안한 모습이셨다. 아프신 중에도 뒤를 이을 사람을 남기지 않고 가는 게 내내 마음이 쓰이셨는지…. 그래서 그렇게 엄하게 가르치신 것 같기도 하고….” (스승이 임명권은 없었을 텐데.) “물론 없었다. 그래서 이듬해인 2007년 초 채용 공고가 났을 때 시험 보고 들어왔다. 서류 전형과 면접을 봤는데, 당시에 26명인가 지원했던 것 같다. 스승님이 돌아가셔서 대신 그 아드님이 추천서를 써주긴 했지만….” (떨어지면 어쩔 뻔했나.) “그러게…. 나도 무슨 생각으로 지원했는지…. 뭔가에 씐 것도 같았고…. 하하하.” ―면접에서는 뭘 묻던가. “보신각을 어떻게 꾸려 나갈 건지에 대해…. 나름대로 스승님 밑에서 배우며 느낀 걸 토대로 5개년씩 20년 계획을 준비했다. 제대로 된 관리를 위한 관리동과 경비 시스템 설치, 보신각 활성화 프로그램 같은 거다.” (그 전까지는 경비시스템이 없었나.) “감시 카메라 한 대 없이 사람이 순찰하는 게 전부였다. 그래서 스승님은 사모님이랑 보신각 옆 작은 사무실에서 거의 집에도 안 가고 지켰다. 지금 있는 이 관리동은 2012년에 지은 것이다.” (경비업체를 쓰는 게 더 낫지 않나?) “공교롭게도 내가 들어온 바로 그 이듬해 숭례문이 불탔다. 숭례문은 당시 사설 경비업체의 무인 경보 시스템을 사용했는데 그러다 보니 초기 화재 진압이 늦어져 불이 더 커졌다. 이후에는 숭례문도 옆에 관리동을 짓고 사람이 상주하며 지키고 있다.”※2008년 2월 10일 저녁 국보 1호 숭례문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범인 채종기(81)는 징역 10년형을 받고 지난해 2월 만기 출소했다. ―보신각이 시내에 있다 보니 관리가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자러 들어오는 노숙인들도 있고, 취객도 많은데… 크고 작은 볼일을 보러 들어오기도 한다.” (주변에 널린 게 화장실인데 왜 보신각에서….) “하하하. 종각역 화장실 공사할 때는 노숙인들 화장실이 여기였다. 경내에 나무가 우거진 곳이 있는데 그 아래서….” (혼자서 다 지킬 수는 없지 않나.) “카메라가 7대 있는데 관리동에서 모니터를 통해 감시한다. 보신각 담과 보신각에는 적외선 센서가 사방으로 쳐 있어 침입하면 경보가 울린다. 한 시간 간격으로 순찰도 돌고. 스승님은 혼자 했지만 지금은 반장님이라고 부르는 문화재 경비 인력이 도와주고 있다.” (늘 보신각에 상주하나.) “과에서 해야 할 일도 있어서 본청과 보신각을 수시로 다닌다. 그래서 오전 6시쯤 본청에 들렀다가 보신각에 온다. 전에는 오전 8시쯤 출근했는데 이동이 많아지면서 보신각을 비우는 시간이 느는 게 마음에 걸리더라. 그래서 출근 시간을 당겼다.” (우리 사장님이 이걸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하하하.” ―주변에 집회시위가 많은데 위험한 적은 없었나. “2008년 여름에 광우병 사태 때 군중이 보신각 경내로 넘어 들어왔다. 종을 치며 주장을 알리겠다고…. 종이 있는 2층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을 함께 있는 반장님과 필사적으로 막았는데, 몸싸움이 나고 얼굴을 맞고 난리도 아니었다. 의경들도 옷 벗겨지고 헬멧 뺏기고 그랬으니까. 끝끝내 막기는 했는데 만약에 뚫려서 당목(종 망치)이라도 잡아당겨 떨어졌으면 큰일 날 뻔했다. 200kg이나 되니….” ―제야의 종 행사는 어떻게 준비하나. “8월 말부터 계획을 수립하는데 대행업체 공모, 업체 선정 위원회 구성, 타종 인사 선정 및 섭외, 유관기관 협의 등을 거치려면 넉 달 정도 걸린다. 10, 11월에 타종 후보 선정과 섭외를 하는데 홈페이지에서 시민 추천도 받고, 유관기관에도 부탁한다. 나도 틈틈이 찾아보고…. 한 100명 정도가 추려지면 과에서 회의를 해 압축하고 섭외를 한다. 올해 가장 많이 추천된 인사가 ‘펭수’였는데 섭외가 만만치 않았다. 내가 직접 EBS를 찾아가 부탁했는데 내년 3월까지 스케줄이 꽉 차 있었다. 류현진 선수도 물망에 있었는데 두 번이나 에이전트 사무실을 찾아갔지만 일정이 맞지 않아 결국 안 됐다. 작년에는 이국종 아주대병원 권역외상센터장께 요청을 드렸는데 자신이 행사에 참석하려면 다른 후배를 근무시켜야 해서 곤란하다고 고사했다. 그래서 백도 좀 썼다. 도와달라고…. 하하하.”※제야의 종 타종 인원은 통상 16명이지만 상황에 따라 다소 늘기도 한다. 서울시장, 시의회 의장, 시교육감, 서울경찰청장, 종로구청장은 고정이다. 류현진 선수는 인터뷰(25일) 뒤인 29일 참석할 수 있다고 연락이 왔다. 이 때문에 올해는 17명으로 한 명이 늘었다. ―타종 방법이 따로 있나? 당목 무게 때문에 움직이기도 쉽지 않을 것 같은데…. “행사를 치르고 나면 일주일간은 어깨를 잘 못쓸 정도다. 4명씩 4개 조가 9·8·8·8회(총 33회)를 치는데 당목이 무거워 내가 뒤에서 조정을 해야 한다. 5번 흔들고 6번째 치기 때문에 모두 198번을 치는데, 힘주지 말라고 당부를 해도 막상 치는 순간에 대개 힘을 준다. 그 힘까지 통제해야 하기 때문에 몇 배로 힘이 든다. 박찬호 선수가 쳤을 때는 자칫하면 34번이 될 뻔했다.” (박찬호 선수가 왜?) “다른 분과 달리 의욕이 넘쳐서 온힘을 다해 쳤다. 힘이 센 데다 약간 흥분했던 것 같기도 했고. 워낙 세게 치다 보니 반동으로 한 번 더 맞을 뻔했던 거지… 하하하.”※박찬호 선수는 2013년 8·15 행사에 참여했다. ―종을 치며 대개 소원을 빌 텐데 효과가 좀 있나. “스토리를 만드느라 국내에서 세 번째로 소원을 잘 들어주는 종이라고 해설은 하지만…. 올해 수능 100일 합격 기원 타종을 하고 간 수험생은 서울대와 KAIST에 붙었다고 연락이 오더라. 수험생들에게는 소원을 적은 종이를 모아서 수능 날까지 보신각에 보관한다. 매일 소원지가 종소리를 듣게. 타종 후 한 달 후쯤 임신이 됐다고 알려온 난임 부부도 있고, 교사 임용고시에 붙은 사람도 있긴 하다. 일반인들은 서울시 홈페이지를 통해 신청하면 월요일을 제외한 매일 정오에 칠 수 있는데 인기가 많아 내년 1월은 이미 거의 다 찼을 정도다.” (매일 종을 치는 당신은 정작 무슨 소원을 비나.) “음… 우리나라 잘되게 해달라고?” (지금 정치판을 보면 그건 안 이뤄질 것 같은데….) “하하하, 가족의 안녕도 빌고, 특히 스승님의 손자가 내 뒤를 이어 6대 종지기가 되게 해달라고 빈다.”※제야의 종 행사는 자정이 좀 지나면 끝나지만 그는 뒷정리가 끝나는 오전 8, 9시쯤에야 퇴근한다고 한다. 나라를 잃고, 전쟁의 참화를 겪던 시절에도 보신각종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스승처럼 뒤에서 묵묵히 자기 일을 다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드러져 보이지는 않지만, 없으면 안 되는 사람들…. 타종의 맨 앞줄에 서야 할 사람들이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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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아온 왕진 의사[횡설수설/이진구]

    “수유리 어딘가에 버스를 내려 외풍이 싸늘한 추운 방에서 쇠약해진 환자를 보았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으나… 의사를 보는 것만도 그에게는 위안이 됐을 것이다.”(유석희 중앙대 의대 명예교수의 회상) ▷의료 시스템이 부족하던 1970년대까지만 해도 두툼한 가방을 들고 골목을 오가던 왕진 의사는 흔한 풍경이었다. 모든 게 열악할 때라 청진기, 체온계, 응급약과 주사기가 전부였지만 의사가 환자에게 가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왕진 거부로 환자에게 피해를 준 의사에 대해 ‘의도(醫道)를 망각했다’는 기사까지 나던 시절이었다. 왕진 요청을 거부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취해서 왕진을 못 간 의사 남편 대신 아내가 가서 주사를 놓다가 경찰에 걸린 일도 있었다. ▷보건복지부가 어제부터 ‘왕진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그동안 왕진은 수가에 진료시간과 교통비 등이 포함되지 않은 데다, 의료 서비스가 확충되면서 점차 줄어 일부에서만 제공했는데 고령화시대가 되면서 다시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중증 거동 불편 환자들이 사설 구급차(특수)를 이용해 병원에 가려면 편도 7만5000원에 10km가 넘으면 추가 요금이 붙는다. 치료비는 고사하고 교통비조차 버거운 수준이다. 반면 왕진은 1형의 경우 의사 교통비와 진료비 등을 모두 포함해 11만5000원인데 여기서 자기부담금은 30%인 3만4500원이다. ▷왕진은 환자 편의는 물론이고 환자와 의사 간의 인간적 소통이 이뤄진다는 장점도 있다. 경기 포천시에서 호스피스 전문병원을 운영하는 정극규 원장은 일주일에 이틀은 중증 환자들을 위해 가정 방문 진료를 한다. 종합병원 외과 의사였다가 캐나다 유학을 다녀온 뒤 말기 암 등 중증 환자 곁에서 호스피스 치료를 해주는 의사로 재출발했다. 환자가 움직이면 이동, 대기, 진료 등 6시간 이상 걸릴 일이 그가 방문하면 30분 정도로 충분하다고 한다. ▷먼저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일본은 왕진이 한 해 1000만 건에 이른다. 주간, 야간, 심야, 휴일별로 왕진 수가가 세분되고 방문 진료 전문병원까지 있다. 우리는 동네 의원만 시범사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는데, 의료계 반발로 348곳에 불과하다. 국내 의원이 3만 곳에 달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너무 적다. 대한의사협회는 낮은 수가를 이유로 반대하면서 회원들에게 불참 공문까지 보냈다. 의료 행위도 손해 보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인술(仁術)인데 환자보다 수익을 먼저 따지는 현실은 마음이 불편하다. 스스로 병원에 가기 힘든 사람은 누가 찾아와 손만 잡아줘도 큰 힘을 얻는다. 그 손이 의사라면 더 말할 것도 없지 않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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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율주행버스 시대[횡설수설/이진구]

    독일 베를린 서남부에 있는 스마트 도시 실험장 ‘오이레프(EUREF) 캠퍼스’에는 특별한 대중교통수단이 있다. 미국 로컬모터스가 개발한 ‘올리(Olli)’라는 이름의 자율주행차인데 150여 개의 기업과 연구소에 상주하는 3500여 명의 발이 되고 있다. 12명까지 탈 수 있는데, 운전자는 없고 스마트폰 앱으로 출발지와 도착지를 입력하면 데리러 오고 내려준다. 버스와 택시의 결합형쯤 되는 셈이다. ▷자율주행버스는 이미 세계 곳곳에서 시범운영 중이다. 우리도 경기 판교제로시티에서 ‘제로셔틀버스’가 운행 중인데 5.8km 노선을 시속 25km로 왕복하고 있다. 5인승으로 운전대가 없고, 운전기사 자리에는 안전요원이 탑승한다. 시범운영이라기보다 아직은 연구개발용인데, 일반인도 타볼 수 있지만 미리 신청해야 하고 출발지와 도착지에서만 승하차가 가능하다. 안전 때문에 만 18세 미만은 탈 수 없고, 호위 차량이 뒤를 따라가며 만약의 상황에 대비하고 있다. ▷자율주행차는 승용차보다 버스가 더 먼저 상용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다. 버스는 정해진 길을 달리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교통 상황 변화가 승용차보다 적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운행하려면 차 자체는 물론이고 도로에도 카메라, 레이더, 각종 통신장비, 제어시스템 등 수많은 첨단 장비들이 설치돼야 하는데 이 점에서도 행로가 고정된 버스가 유리하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대구 수성구 알파시티 내 2.5km 구간에서 국내 최초로 자율주행 버스의 상용화 서비스가 시작된다. 산업통상자원부는 내년 1∼3월 중 현재 알파시티 내에서 시범운영 중인 한 업체에 면허를 발급할 예정이다. 하지만 서비스 구간을 넓히는 데는 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자율주행 교통 인프라를 설치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차가 미래차의 대세가 될 것이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이 한둘이 아니다. 안전과 대중교통수단으로서의 효율성도 담보돼야 하지만 다른 제도, 문화와의 충돌도 숱하게 벌어질 수밖에 없다. 혁신, 공유경제로 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변화로 피해를 보는 쪽에서는 가만히 있기도 어렵다. 자율주행버스 시대가 목전에 닥치면 지금 종사자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공동체라면 기술의 진보는 추구하되, 그로 인한 부작용도 최소화하려는 노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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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겁나는 도로[횡설수설/이진구]

    미국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 있는 미시시피강 다리는 블랙아이스(Black Ice·검은 얼음) 사고로 악명이 특히 높았다. 주 정부는 염화마그네슘에 옥수수 부산물을 혼합하는 등 온갖 방법을 동원했지만 사고는 그치지 않았다. 그러다 2007년 교량 붕괴 사고 후 새로 건설한 다리에는 320여 개의 센서가 온도, 교량의 움직임을 측정하는 시스템을 도입하고 스프레이로 결빙 방지 물질을 분사하고 있다. 핀란드나 일본 홋카이도는 도로 밑에 열선을 설치하는 로드히팅(Road Heating) 시스템을 쓴다. 문제는 비용. 울산 남구는 2013년 거마로(672.5m) 봉월로(197m)에 8억 원을 들여 열선을 설치했는데, 겨울철 석 달 전기료만 3000만 원이 든다고 한다. ▷블랙아이스는 비나 눈이 먼지 등 오염 물질과 결합해 도로에 형성된 얼음막을 말한다. 얼음막 자체는 투명하지만, 아스팔트 도로 때문에 검게 보여 이런 이름이 붙었다. 육안으로는 일반 도로와 구별이 안 돼 겨울철 교통사고의 주범으로 지목된다. 14일 새벽 경북 상주∼영천 고속도로에서 다중 추돌사고로 30여 명의 사상자가 난 데 이어 어제 아침에도 경기 고양시 제2자유로에서 7대가 추돌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국내 최다 추돌 사고인 2015년 인천 영종대교 105중 추돌 사고도 짙은 안개와 함께 블랙아이스가 원인이었다. ▷겨울철 ‘도로 위의 지뢰’는 블랙아이스만이 아니다. 21일 오후에는 고양시 일산의 4차선 도로가 갑자기 꺼지며 길이 20m, 폭 15m, 깊이 1m의 대형 싱크홀이 발생했다. 차가 지나가는 순간이었다면 대형 인명 피해가 발생할 뻔했다. 싱크홀 발생은 2014년 69건에서 2018년 338건으로 5년 사이 390% 늘었는데 지하시설물 유지 관리 부실이 주된 원인이다. ▷예측하기 힘든 각종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나 인터넷에는 ‘이불 밖은 위험해’란 말이 회자된다. 원래 집에만 틀어박혀 지내는 ‘히키코모리(引き籠り·은둔형 외톨이)’나 ‘귀차니즘’을 표현하는 말이었는데, 이제는 집 밖이 너무 위험해 나가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로 더 자주 쓰인다. ▷2015년 2월 영종대교 105중 추돌사고 후 국책연구기관 공동으로 블랙아이스 대책 마련 연구에 착수했다. 하지만 몇 달 후 정부 연구비 지원 사업에서 탈락했다. 심사 시기가 여름철이어서 그새 관심이 떨어지면서 중요도에서 밀렸다고 한다. 사실 싱크홀도, 블랙아이스도 갑자기 등장한 문제가 아니다. 사고가 끊이지 않는 데는 대책 마련에 소홀한 정부와 사고 때만 관심을 기울이는 우리 정서 탓도 있을 것이다. 안전은 인프라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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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병기가 테러 위협이라도 받았나? 가명으로 진술하게…”[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그는 정말 시장 자리를 도둑맞은 걸까. 지난해 3월 경찰이 울산시청을 압수수색하면서 불거진 경찰의 선거 개입 의혹은 올 3월 이 수사가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으면서 의심을 더했다. 그리고 당시 울산지방경찰청에 김기현 전 울산시장(60)에 대한 첩보를 내려보낸 진원지가 청와대인 것이 최근 확인됐다. 만약 당시 경찰이 청와대 하명을 받아 야당 소속 현직 시장 측근을 수사한 게 사실이라면…. 세간의 관심을 보여주듯 인터뷰 내내 그의 휴대전화는 쉴 새 없이 울렸다. 》 ―본의 아니게 엄청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한나라당 대변인 할 때 기사가 많이 나긴 했는데, 그때는 내가 뉴스의 주인공은 아니었으니까…. 덕분에 백수인데도 엄청 바쁘게 보내고 있다. 지난주에는 거의 매일 울산∼서울을 출퇴근했다. 당 차원의 진상조사도 그렇고 내가 주축이 돼 대응할 수밖에 없으니까.” ―당신에 관한 첩보를 청와대에 제공한 사람이 송병기 현 울산시 경제부시장으로 확인되면서 이 사안이 지금 정국의 핵폭탄이 됐다. 시장 취임 1년 후 당시 교통건설국장이던 송 부시장을 산하 연구원으로 보낸 이유가 뭔가. “그 자리가 개방형 계약직 자리인데 2015년 7월경에 계약기간이 끝나서 더 연장하지 않은 것뿐이다.” (일을 잘하면 연장할 수도 있지 않나.) “그는 전임 시장 때부터 거의 7, 8년을 그 자리에 있었다. 통상 2년도 오래하는 건데…. 새 피도 필요했다. 시장은 바뀌었는데 아래가 똑같으면 달라질 게 없지 않나. 그래서 시 산하에 있는 울산발전연구원 공공투자센터장으로 보냈다. 지방자치단체가 늘 예산 따고, 쓰고 나눠주기 바쁘지 장기 미래 비전은 잘 고민하지 않는다. 송 부시장이 시에 오래 있으면서 각종 현안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보고 보냈다.” ―원하는 성과가 좀 나왔나. “나오긴…. 그래도 인력을 사장시키지 말고 활용해보자고 보낸 건데… 단 한 건도 성과가 나온 게 없었다. 1년 넘게 있는 동안 아무것도…. 황당했다. 시 기획조정실을 통해 내라고 했는데 아무것도 안 올라왔다.” (왜 일을 안 한 건가?) “모르지…. 그 뒤의 행적을 보면 뭘 하고 다녔을지 짐작이 가는 거 아닌가. 지난해 당선된 송철호 울산시장이 규정까지 바꿔가며 경제부시장에 임명할 정도니.” (규정을 바꿨다니?) “원래 울산시 경제부시장은 개방형 직위라 공개모집이다. 그걸 송 시장이 별정직으로 바꿨다. 별정직은 공모 없이 시장이 임명하면 된다.” (내부에서 별말이 없었나.) “없긴…. 시 의회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무슨 위인설관이냐며 난리를 쳤는데…. 그래서 무마하기 위해 여기저기 엄청 뛰어다닌 걸로 안다.”※울산시의 마지막 경제부시장(개방형 직위) 공개모집은 2017년 12월에 있었다. 당시 지원 경력 기준은 1급 상당 공무원은 관련 분야 근무 경력 4년 이상, 2급 상당은 6년 이상이었고, 이듬해 2월 기획재정부 고위공무원 출신인 김형수 씨가 임명됐다. 송 부시장이 재임한 교통건설국장은 3급으로 개방형 공모였으면 자격 미달이다. ―송 부시장은 청와대에 알려준 첩보가 당시 언론을 통해 울산 시민 대부분이 아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검색해도 기사가 잘 안 나온다. “거짓말이니까…. 첩보 내용 중에서 보도된 기사는 단 한 건도 없다. 울산 시민이 다 알 정도라면 울산경찰청이 모를 수가 없고, 청와대에서 첩보를 내려보낼 필요도 없다. 송 부시장 말이 사실이라면 울산경찰청은 알면서도 수사하지 않았는데, 청와대에서 첩보가 오니 그제야 나섰다는 말밖에는 안 된다.”※송 부시장이 청와대에 첩보 내용을 알린 것은 2017년 10월경이다. ―작년 당신이 한국당 울산시장 후보 공천을 받던 날, 경찰이 시장 비서실 등을 압수수색했는데 사전에 몰랐나. “전혀 몰랐다. 그날 행사 때문에 밖에 있었는데 비서실에서 연락이 왔다. 경찰이 압수수색하러 왔다고…. 부랴부랴 들어갔는데 언론에도 미리 알렸는지 이미 사무실 안에 카메라며 사진기자들이 우글댔다. 그 자리에 있어봐야 할 것도 없고, 좋을 것도 없어 다른 사무실에서 진행 상황을 들었다.” (비서실은 무슨 혐의로 압수수색을 받은 건가.) “비서실장이 골프 접대 등을 받고 업체의 납품 편의를 봐 준 게 직권남용과 뇌물수수라는 건데…. 이게 정말 황당하게 전개됐다. 비서실장은 경찰에서 골프는 쳤지만 자기 돈을 냈고, 납품 편의를 봐준 적도 없다고 진술했는데 무시하고 그냥 구속영장을 검찰에 신청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지 않고 신청했다는 건가.) “그랬다. 지역 신문에 구속영장을 신청했다는 기사가 나서 알았는데, 황당해서 비서실장이 그 후에 영수증을 찾아서 제시했다. 그랬더니 경찰이 뭐라고 했는지 아나?” (뭐라고 하던가.) “직접 들은 건 아니고 언론에 난 건데 늦게 낸 게 수사방해라고 했다.”※김 전 시장의 비서실장은 자신이 결제한 울산컨트리클럽 결제명세를 검찰에 제출했다. ―선거가 목전이었는데 대응은 어떻게 했나. 가장 중요한 문제였을 텐데…. “대응은 무슨…. 경찰발로 계속 뉴스가 홍수처럼 쏟아지는데 솔직히 하도 많아서 무슨 뉴스가 어디에 났는지 파악도 할 수 없었다. 뉴스는 물론이고 ‘도망간 김기현 시장의 동생을 찾는다’는 허위 비방 현수막까지 걸렸다. 압수수색에 대해서는 황운하 당시 울산경찰청장과 수사담당자들을 직권남용으로 고발했지만 그저 단신으로 한 줄 나고 그만이었다. 건마다 변호사를 선임해 다 고발할 수도 없고…. 변호사를 쓴들 업무도 하고, 선거 준비도 해야 하는 데 언제 그 변호사들을 다 만나겠나. 계속 해명 기자회견만 하면 되레 상대를 도와주는 꼴이고….” ―지난해 울산시장 선거에 대한 무효소송을 내겠다고 했는데, 현행법상 안 되지 않나. “그래서 먼저 공직선거법의 위헌 여부를 확인해달라는 헌법소원을 4일 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일로부터 14일 이내 선거 소청을 해야만 선거무효소송을 할 수 있다’고 하고 있는데 소청 기간이 너무 짧고, 내 경우처럼 시간이 한참 지난 뒤에 부정행위가 드러나면 소송 자체가 불가능하다. 낙선하고 무슨 정신이 있다고 14일 안에 변호사 선임하고, 증거 수집하고 소청을 하나. 캠프 정리하기도 정신이 없는데…. 왜 14일 이내인지 근거도 없다. 그래서 먼저 소청 기간을 14일로 규정한 것이 위헌이라는 판정을 받고, 그 다음에 선거무효소송을 내려고 한다.” (공천 받던 날 압수수색을 받았는데 그때는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나.) “이상했지만 증거가 없었으니까. 짐작만으로 내봐야 받아주지도 않았을 테고….” ―설사 위헌 판정을 받고 선거무효소송에서 이겨도 그 사이에 시장 임기는 다 끝날 것 같은데 무슨 실익이 있나. “선거무효소송은 단심이라 오래 걸리지는 않겠지만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을 거치는 사이에 시장 임기가 끝날 수는 있다. 하지만 내 목적은 선거를 다시 하자는 게 아니다. 대한민국 헌정 질서에 한 번도 없던 선례를 남기고 싶어서다.” (한 번도 없던 선례?) “2002년 대선에서 이회창 후보의 아들 병역비리 의혹을 제기한 김대업을 기억하나? 선거 직전 검찰이 허위라고 밝혔지만 이미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그 때문에 이 후보는 57만여 표라는 근소한 차이로 떨어졌다. 김대업은 2년 가까이 실형을 살았지만 이미 정해진 결과를 바꿀 수는 없었다. 더불어민주당 설훈 의원도 당시 이 후보가 20만 달러를 받았다고 주장했지만 허위사실로 판명됐다. 이런 행태를 그냥 놔두면 앞으로도 계속 누군가 총대를 메고 일을 저지르고, 감옥 가도 사면해주는 일이 벌어질 것이다. 그걸 막고 싶어서다.”※설 의원은 2005년 징역 1년 6개월과 집행유예 3년, 피선거권 10년 제한 형을 선고받았지만 2007년 노무현 대통령이 사면 복권시켰다. ―일각에서는 검찰이 당신을 편들고 있다고도 한다. “검찰이 내 편이라면 작년에 경찰이 신청한 시청 압수수색 영장을 왜 받아줬겠나. 기각하지. 그때는 영장 신청을 받아주고 지금은 내 편을 든다?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오히려 경찰이 내 수사의 참고인으로 송 부시장을 불러 조사하면서 진술서를 가명으로 받았는데…. 이런 거야말로 확실하게 편들어주는 거다. 송 부시장이 참고인 진술을 하면서 테러의 위협이라도 느꼈단 말인가? 그래서 FBI나 CIA의 증인보호 프로그램 수준의 신변보호 요청을 경찰에 했단 말인가? 가명으로 진술서를 받아주다니…. 자기 스스로 울산시민 대부분이 아는 내용이라 하지 않았나.”※‘가명조서·신원관리카드 작성 및 관리에 관한 지침’에 따르면 범죄신고자법에 따라 살인 강간 등 신고자에 대한 보복 위험이 큰 범죄의 경우 가명으로 조서를 쓸 수 있다. 또 필요에 따라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 검사나 경찰의 판단에 따라 쓸 수 있는데, 이 경우에도 지침에 따라 실명 미기재 사유보고서 원본을 검찰청에 제출하는 등 절차가 까다롭다. 송 부시장은 진술서를 가명과 실명 모두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에 가명 작성의 사유가 있다고 보기도 어렵다. ―내년 총선에 출마한다고 하던데…. “한다. 꼭 한다. 그래서 내 손으로 진실을 밝히려고 한다. 특검(특별검사)을 추진하든, 국정조사를 하든…. 앞서 말한 대로 선거무효소송을 하려면 선거가 끝난 뒤 14일 이내에 해야 하는 공직선거법도 고치고….” (마음은 알겠는데 국정조사든 특검이든 제대로 하려면 한국당이 승리해야 하는데 지금 지지율로 되겠나.) “그러게…. 그 얘기하면 할 말이 없다. 갑자기 화가 나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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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에스트라[횡설수설/이진구]

    20세기 중반까지도 오케스트라 지휘는 남성들의 전유물이라는 통념이 있었다. 소수의 여성 지휘자들은 편견과 성차별에 시달렸고, 이 때문에 여성으로만 구성된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는 경우가 많았다. 영국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자세가 선정적이라는 이유로 첼로 파트에 상당 기간 남성만 고집하던 시절이다. 1967년 뉴욕타임스(NYT) 음악 평론가인 헤럴드 숀버그는 “여성 지휘자의 음악은 언제 시작되는지 금방 알 수 있다. 속치마가 보일 때”라고 비꼬았는데 지금 같으면 난리가 날 일이다. ▷거장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생전에 “지휘란 음표 뒤에 숨은 우주를 찾는 여정”이라고 했다. 예컨대 베토벤이 ‘합창’ 교향곡에서 말하고 싶어 한 것이 무엇인지 하나하나의 음표, 악상 기호, 빠르기, 박자 등 수많은 도구를 통해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지휘자는 악보는 물론 작곡가의 전기, 편지, 일기와 당시 시대 상황까지 끊임없이 공부한다. ▷지휘자는 프로야구 감독, 해군 제독과 함께 미국 남성들이 선망하는 3대 직업이라고 한다. 손짓 하나로 좌우하는 절대 권한도 매력적이지만, 각 분야 최고라고 자부하는 여러 사람의 마음을 모아 목표를 이뤄내는 성취감이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것이다. 아바도는 연습 중 “들으세요”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는데, 연주자들이 다른 파트 소리를 들으면서 지휘자가 만들려는 소리의 모양과 의미를 알기를 바랐다고 한다. ▷여성 지휘자 김은선(39)이 96년 역사의 미 샌프란시스코 오페라(SFO) 첫 여성 음악감독이 됐다. SFO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다음으로 큰 세계적인 오페라단이다.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36세에 파리 바스티유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이 됐으니 그에 버금가는 셈이다. 세상이 바뀌고 성시연 장한나 여자경 등 뛰어난 여성 지휘자들이 두각을 나타내고는 있지만 아직도 남성 중심인 지휘 분야에서 흔치 않은 성과다. NYT는 “그녀는 역사를 만들고 있다”고 보도했다. ▷남성에게만 붙이던 마에스트로(Maestro·거장)란 호칭이 여성 지휘자에게 붙기까지는 수많은 여성 지휘자의 노력과 눈물이 있었다. 여성 밑에서 노래할 수 없다는 가수의 항의로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처음으로 여성에게 지휘를 맡긴 게 불과 14년 전인 2005년 11월 빈 무지크페라인잘 연주회에서다. 여성 지휘자는 합창단, 교향악단, 오페라 순으로 적다. 그나마 객원지휘는 많지만 음악감독이나 상임지휘자는 소수다. 김은선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걸었을지 짐작이 간다. 브라바(brava)!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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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얼룩진 나토 70년 파티[횡설수설/이진구]

    올 4월 미국 워싱턴의 국회의사당에서 옌스 스톨텐베르그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사무총장이 연설을 했다. 나토 사무총장이 미 상하 양원 합동 의회에서 연설한 것은 70년 나토 역사상 처음이다. 하지만 대선 때부터 나토를 쓸모없는 낡은 동맹으로 폄하했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참석하지 않았다. 그 대신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방위비를 올리지 않는 나토 회원국들을 콕 집어 비난했다. ▷나토는 1949년 4월, 미국 주도로 영국 프랑스 등 서방 12개국(현재 29개국)이 모여 창설했다. 회원국의 안보 및 북대서양 지역의 민주주의 증대를 목적으로 했는데, 옛 소련의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토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원 포 올, 올 포 원(one-for-all, all-for-one)’으로 불리는 조약 5조다. 회원국이 공격을 받으면 모든 회원국이 군사적으로 지원하게 했는데 나토 역사에서 딱 한 번 2001년 9·11테러 때 발동됐다. ▷나토 창립 70주년을 축하하기 위해 영국 런던에서 열린 회원국 정상회의가 트럼프 대통령과 회원국 정상들 간의 기 싸움으로 얼룩진 채 4일 끝났다. 방위비 인상을 요구하는 트럼프는 심지어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방위비 지출을 지키고 있는 영국 루마니아 등 9개국만 따로 초청해 식사를 했는데, 이를 ‘나토 2% 지출자들(NATO 2 percenters)’의 오찬이라 불렀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는 설전을 벌였고, 다른 정상들로부터는 조롱을 받자 그는 예정된 기자회견도 취소하고 귀국길에 올랐다. ▷트럼프의 행동은 무례했지만 회원국의 전력 약화가 심각한 것도 사실이다. 영국 독일 프랑스 등 나토 주요 7개국의 주력 전차를 모두 합쳐도 900대 정도다. 네덜란드는 군비 축소로 기갑부대를 모두 폐지해 현재 18대가 고작이다. 미국 국방비는 나토 전체의 70%나 된다. 일부에서는 이런 나토의 영어 약자 T(Treaty·조약)를 Toothless(이 없는)로 바꿔 ‘북대서양 이빨 빠진 기구’라고 비꼬기도 한다. ▷나토는 이번에 처음으로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 중국의 군사 굴기를 우려하는 내용을 담았다. 중국은 지난 5년간 80척의 군함과 잠수함을 진수했는데 이는 영국 해군 전체와 맞먹는 규모다. 유럽에 발을 넓히는 화웨이 등을 겨냥해 통신상 안보를 강화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최근 한 모임에서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면 나토에서 탈퇴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계속 남에게 안보를 의존했다가는 정말 ‘이빨 빠진 기구’가 될지도 모른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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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름 내내 송충이 잡아주며 뛰어도… 한국당 명함 주니 외면해”[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지난달 17일 불출마 선언을 한 자유한국당 김세연 의원은 이후 인터뷰에서 “30, 40대 원외 당협위원장 6명이 쇄신을 요구하며 직을 사퇴한 것이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공천을 받아야 그나마 당선 가능성이 있는 원외조차 기득권을 내려놓는 모습에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김 의원이 언급한 6인의 위원장은 지난달 12일 기자회견을 통해 당 해체 수준의 혁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당에서는 되레 주동자 색출이라는 소동이 벌어졌다. 기자회견의 산파 역할을 한 강명구 위원장(42·영등포갑)은 “공천도 중요하지만 당이 변하지 않으면 그 공천줄이 썩은 동아줄일 뿐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의원들도 대부분 침묵하는데 원외들이 나섰다. “그전부터도 문제의식은 있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낙마 이후 당이 보인 행태를 목격하면서였다.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관련 법안 저지 과정에서 수사 대상이 된 의원들에게 공천 가산점을 주겠다고 하고, 조 전 장관 낙마에 공을 세운 인사청문 의원들에게 표창장과 상품권을 주며 자축연을 여는 걸 보며 ‘이대로 가면 다 죽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조금 뒤 ‘공관병 갑질 논란’이 일었던 박찬주 전 육군 대장 영입으로 물의를 빚었다. 조국 사태로 그나마 조금 얻던 반사이익마저 차 버리는데 그 과정에서 인적 쇄신 얘기는 쑥 들어가고 난데없이 총선기획단을 출범시키더니 그나마 민심과 거리가 먼 구성으로 욕을 먹었다. 그러면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당 지도부가 과연 혁신과 인적 쇄신에 대한 의지가 있는지….”※쇄신 요구 6인은 강 위원장과 김재식(구로갑), 김성용(송파병), 조대원(고양정), 박진호(김포갑), 김대현 위원장(원주을) 등이다. ―미안하지만 비아냥거림은 아닌데… 한국당의 그런 행태가 처음도 아니지 않나. “나도 그렇지만 함께 나선 위원장들 대부분이 수도권이라 더 충격이 컸던 것 같다. 망치로 머리를 맞은 느낌이랄까. 아직도 저렇게 민심과 현실을 모르는지 이해가 안 갔다.” (지역에서 피부로 느끼는 한국당에 대한 정서는 어떤가.) “얼마 전 새마을부녀회 어머니들과 함께 김장을 했다. 정치와는 관계없는 분들이다. 보통 대부분 잠깐 돕다 사진만 찍고 가는데 나는 신인이라 끝까지 있었다. 어머니들이 기특하게 봤는지 ‘다른 사람하고 다르다’ ‘끝까지 있는 사람 처음 봤다’며 칭찬하더라. 재미있는 얘기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해서 분위기 참 좋았는데 한 분이 문득 생각났다는 듯 ‘근디∼ 워디서 왔남?’ 하고 물었다.” (행사에 참여했는데 누군지 모르나.) “나를 초청한 사람 몇몇은 알지만 대부분은 모른다. ‘저 한국당 당협위원장이에요’라고 했더니 웃던 얼굴들이 갑자기 굳어지면서 ‘한국당이었어?’ 하고 더 이상 말이 없었다.” ―다른 정당 지지자들이라 그런 건 아닌가. “현장을 다니면 알 수 있다. 다른 정당 지지자라 그런 건지, 아니면 민심이 그런 건지. 내 친구들조차 ‘명구야, 너 왜 아직도 거기 있느냐’고 한다. 그래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고 지난여름 송충이 엄청 잡고 다녔다.” (송충이를 왜?) “지역 활동으로 민원 해결 서비스를 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여름, 동네 가로수에 벌레가 많으니 잡아 달라는 민원이 들어왔다. 처음에는 구청 담당 부서를 연결해 주는 정도였는데 효과가 있었는지 점점 더 많이 들어왔다. 담당 부서도 노력했지만 나도 엄청 잡았다. 부탁했던 주민이 고맙다며 인사를 하는데….” (또 한국당이라 하니 표정이 안 좋아지더라고 말하려는 건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전화하는 곳이 어디인지 잘 모른다. 그저 민원을 해결해주는 곳으로 알지. 고마워하다가도 한국당이란 걸 알고 표정이 변하는 걸 볼 때… 정말 미친다. 조국 사태 때는 1인 피켓 시위를 했는데 내 또래로 보이는 사람이 내 귀에 ‘조국도 나쁘지만 너희 당이 더 나빠’ 하고 가더라. 눈을 흘기면서…. 20대 총선 막장 공천, 최순실 사태, 탄핵 등 국가에 대죄를 지어 놓고 책임은 고사하고 사과 한 번 제대로 안 하고, 툭하면 막말 파동이 벌어지는 모습이 아직도 용서가 안 되는 거다. 조국 사태는 어찌 됐든 국가로서는 불행한 일이다. 표창장, 상품권 주고 축하할 일이 아니지 않나. 이게 지금 한국당에 대한 정확한 민심이고, 그래서 비호감 1위인 거다.” ―동참한 위원장들은 어떻게 모인 건가. “지난해 공개 오디션 방식으로 선발된 위원장들이 10여 명 있는데 대부분 정치가 처음이라 뭘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랐다. 그래서 서로 의지하고 정보도 공유하는 모임이 생겼는데 여기서 당 얘기를 하던 게 출발점이 됐다. 안 그래도 답답한데 표창장 수여 등 민심과 괴리된 악재가 터지면서 너무 절박하니까 ‘뭐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데 뜻이 모아진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 행동하려니까 우리 안에서도 또 이런저런 말들이 나와 쉽지 않았다.” (어떤 말들이 나왔나.) “늘 듣던 말…. 시기가 안 맞다, 내부 총질이 될 수 있다, 지금은 문재인 정권과 싸워야 할 때다, 이런 것들이다. 그런 우려도 물론 있지만 이런 상황, 저런 이유 다 빼면 아무것도 못 한다. 모두가 그런 이유로 아무것도 못했기 때문에 지금 이 지경이 된 건데…. 사람이니 아무래도 겁도 좀 났을 테고….” (겁?) “원외 위원장이 무슨 힘이 있나. 지도부를 속된 말로 심하게 ‘까다’ 잘릴 수도 있고…. 찬성하지 않은 사람들은 설득이 안 됐고…. 시간이 지나면서 움직임이 조금씩 알려지니까 경거망동하지 말라는 신호도 왔다. 그래서 결국 우리 6명만 남았다. 그중 조 위원장은 공개 오디션에서 뽑히지는 않았지만 뜻에 공감해 동참했다. 우여곡절 끝에 기자회견을 했는데 욕을 많이 먹었다.” ―욕을 먹다니…. “당 해체라는 말 때문이었는데… 성명서를 쓸 때 우리 안에서도 우려가 있었지만 창조적 파괴를 위해 필요하다는 말을 붙였기에 오해가 없을 줄 알았다. 그리고 우리가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면 누가 우리와 통합하려 하겠나. 당 해체 수준의 결기를 가져야만 그런 기득권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데 ‘말이 너무 센 거 아니냐’ ‘부모를 없애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너희들이 당에 무슨 헌신을 했기에 해체를 주장하느냐. 건방지게’ 그런 말들이 나왔다. 그리고 뒷배와 주동자가 누군지 색출하라고 했다더라.” (혁신을 요구했다고 주동자를 색출하려 했다는 건가.) “그 말이 돌자 기자들이 누가 색출 지시를 했는지 취재하기 시작했다. 이후 파장이 우려됐는지 흐지부지 끝나기는 했다. 근데 중요한 건 원외 위원장들이 직을 걸면서까지 당 해체 수준의 혁신을 요구했는데, 명색이 지도부라면 이놈들이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한번 들어 보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지만 지도부 중 누구에게도 그런 연락이 온 적이 없다. 난쟁이들의 목소리가 그렇게 사라지려는 시점에 김세연 의원이 불출마 선언으로 불을 다시 지펴준 거다.” ―당신들 기자회견 한 번으로 움직일 한국당은 아니지 않나. “하는 데까지는 할 생각이다. 그런데 주동자 색출 이런 일들이 벌어지니까 우리 안에서도 확 위축되는 분위기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각오는 했지만…. 그래서 2탄을 준비했는데 안타깝게 못 했다.” (2탄?) “혁신과 보수 통합을 주제로 한 토론회를 열려고 했다. 솔직히 지금은 막장 공천 파동, 국정농단, 탄핵에 이르기까지 당과 보수를 이렇게 만든 주체들이 혁신을 얘기하는 이상한 상황이다. 혁신의 주체를 바꿔야 하고, 그런 차원에서 지난달 24일 국회에서 젊은 보수 연사들을 초청해 난상토론회를 열려고 했다. 3탄으로 바른미래당 청년당협위원장들과 함께 토론회를 열고 뜻을 모아 성명서를 발표하려는 구상도 있었다. 그런데 황교안 대표가 단식을 시작하면서 일이 좀 꼬였다.” (대표의 단식과 혁신이 무슨 관계인가.) “현수막도 제작하고, 토론회장도 다 예약했는데… 단식하는 당 대표에게 리더십 문제, 창조적 파괴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예의가 아니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래서 취소됐다.” ―황 대표의 단식으로 쇄신 요구 분위기가 좀 식은 것 같은데…. “단식에 너무 눈이 쏠려 표면적으로 쇄신 분위기가 쑥 들어간 건 맞는데… 반면에 죽을 각오로 단식을 벌인 덕에 황 대표에게 지금 힘이 생긴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패스트트랙 정국이 끝난 뒤 이 힘을 모두 인적 쇄신에 쏟아붓는다면 살 길이 열린다고 생각한다. 패스트트랙을 저지해야 하는 당의 입장에서 지금 인적 쇄신을 하면 힘이 모아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니까. 현 정국 상황이 끝난 뒤에 하지 않을까?” (지금까지 모습을 보면… 기대가 너무 큰 것 아닌가.) “초·재선 의원들도 거취를 대표에게 일임하고 쇄신을 요구하는 연판장을 돌리고 있다고 들었다. 우리 같은 원외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쇄신 하지 않으면… 황 대표 자신도 죽고, 당도 죽고, 정부·여당의 폭주를 막지 못해 나라도 죽는다.” ―한국당에는 김세연 의원의 불출마 선언에 대해 삐딱하게 보는 사람이 많다. “하…. 이 말은 정말 하고 싶은데… 3선 의원이 그렇게 불출마 선언을 하면, 좀 왜 그런지 돌아봐야 하는 것 아닌가. 아무리 민심과 현실을 모른다 해도…. 그런데 돌아보기는커녕 김 의원이 당에 좀비, 민폐라는 용어를 썼다고 그걸 걸고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달을 보라니까 왜 손가락만 보는지…. 너무너무 안타깝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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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인마 안인득과 사형[횡설수설/이진구]

    1997년 12월 30일, 흉악범 23명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국내에서 집행된 마지막 사형이다.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는 5명이 집행됐는데, 끝까지 혐의를 부인해 난동이 예상됐던 한 사형수가 “그동안 감사했습니다”라며 마지막 말을 남기자 오히려 교도관이 눈물을 쏟았다고 한다. 당시 입회했던 검사는 “그날은 유난히도 추웠다. 맨정신으로 버티기 힘든 나를 위해 동료들이 오후 내내 술을 들이켰다”고 술회했다. ▷우리나라는 1997년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아 ‘실질적 사형 폐지국’으로 분류된다. 미집행 사형수는 현재 60명. 1994년 100억 원대 재산 상속을 위해 부모를 살해한 박한상(당시 23세)도 그중 한 명이다. 당시 황산성 변호사가 변호를 맡았으나, 죄를 뉘우치기는커녕 눈물 한 방울 안 보이는 모습에 충격을 받아 3개월 만에 변호를 포기했다. ▷올 4월 자신이 살던 아파트에 불을 지르고 흉기로 대피하던 주민 5명을 살해(17명 중경상)한 안인득(42)이 27일 1심 재판에서 사형 선고를 받았다. 재판부는 안인득이 조현병으로 인한 피해망상과 판단력 저하 등이 있다는 점은 인정했지만, 범행 과정과 전후 행동을 종합하면 의사결정능력 미약 상태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피해자 중 한 명인 금모 씨는 딸과 어머니가 숨지고, 아내는 딸을 구하러 달려들었다가 중상을 입는 등 일가가 풍비박산 났다. ▷흉악범은 느는데 우리나라에서는 2016년 2월 임모 병장 판결 이후 사형 확정 선고는 없다. 임 병장은 2014년 강원 고성군 22사단 전방소초(GOP)에서 총을 난사해 5명을 살해했다. 딸의 친구를 살해한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1심에서 사형이 선고됐지만, 항소심에서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뒤 지난해 11월 대법원에서 확정됐다. 제대로 학교도 못 다니고, 정신장애를 가진 피고인을 이성적인 사람으로 취급해 사형을 선고하는 것은 가혹하다는 이유에서다. 피해자의 아버지가 벌떡 일어나 이의를 신청했지만 법정 경위들에게 제지당했다. ▷안인득의 변호인이 최종변론에 앞서 “이런 살인마를 변호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다. 저도 인간이다”고 토로했다. 그는 안인득이 “누굴 위해 변호하느냐”고 소리치자 “저도 (변호)하기 싫다”고 맞받아쳤다. 너무도 끔찍한 범죄 앞에서 변호인조차 오죽하면 그런 말을 했을까. 사형제에는 찬반 논란이 있고 각기 나름의 충분한 이유도 있다. 안인득은 억울하다며 항소할 예정이라고 한다. 생명은 한없이 소중하지만, 인면수심 살인마의 생명도 지켜줘야 하는지…. 참 복잡한 문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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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 길 먼 홍콩 선거[횡설수설/이진구]

    우리 선거에서 40%대 투표율은 ‘역대 최저’ ‘정치 무관심’이라는 소리를 듣지만, 홍콩에서 40%대는 매우 높은 수치다. 역대 홍콩 선거를 통틀어 최고는 58.3%를 기록한 2016년 입법회 의원(우리의 국회의원) 선거였고, 구의원 선거 중에서는 2015년이 47%로 가장 높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낮은 투표율은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통틀어 2008년 18대 총선의 46.1%였다. ▷홍콩 유권자들의 낮은 투표율은 정치 무관심 때문이 아니라 불합리한 선거제도 때문이다. 선거 연령은 18세 이상이지만 자동으로 투표권이 주어지는 게 아니라 인두세를 내야 유권자 자격을 갖는다. 또 복잡한 등록 신청서도 작성해야 한다. 그나마 구의원은 직접 뽑지만 입법회 의원은 70석 중 절반만, 행정장관은 1200명의 선거인단이 간접선거로 선출한다. 투표에 열의를 갖기 힘든 선거구조다. 행정장관 완전직선제를 요구한 2014년 9월 우산혁명은 이런 배경에서 나왔다. ▷24일 치러진 홍콩 구의원 선거 투표율이 역대 선거를 통틀어 가장 높은 71.2%를 기록했다. 18개 지역구 452석 중 388석을 범민주 진영이 석권했고, 친중 진영은 60석에 그쳤다. 친중파 327석, 범민주파 124석이던 구의회가 완전히 역전된 것이다. 홍콩 시민들은 올 3월 범죄인 인도법(송환법) 반대 시위를 시작으로 자유와 민주주의를 누르려는 행정당국과 그 뒤의 중국에 저항해왔다. 그 과정에서 경찰이 시민에게 실탄을 발사하고 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목도했다. ▷투표율이 치솟은 건 분노한 18∼35세 젊은층이 폭발적으로 참여했기 때문이다. 등록유권자 수는 413만 명으로 2015년보다 44만 명이 늘었고, 투표자도 294만 명으로 가장 많이 투표했던 2016년보다 74만 명이나 늘었다. 상당수의 젊은이들은 유학 중임에도 투표를 위해 귀국했다. ▷구의회는 1200명의 홍콩 행정장관 선거인단 중 117명을 뽑는다. 이 때문에 2022년 행정장관 선거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중국과 홍콩 행정당국은 별로 개의치 않는 분위기다. 기업계, 전문직, 노동 및 종교계, 정치인 등 직능별 4개 분야, 각 300명으로 구성된 선거인단 대다수가 친중 성향 단체에 배정돼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부분의 선거인단은 홍콩 시민 전체가 아닌 약 24만 명의 제한된 유권자들이 뽑는다. 캐리 람, 둥젠화, 도널드 창, 렁춘잉 등 역대 행정장관들이 모두 친중파인 것도 이런 불합리한 선거제도가 가져온 결과다. 희망의 싹은 틔웠는데, 갈 길이 아직 너무 멀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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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예타면제, 조국 딸 전액 장학금… 지켜야 할 선이 있지 않나”[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모른 척해도 될 일이었다. 1월 정부의 대규모 개발 사업 예비타당성조사(예타) 면제를 그가 죄송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딸의 장학금 수혜 논란도 그나 환경대학원이 잘못한 건 없다. 하지만 그는 정부가 부정한 방식으로 국민을 설득해야 하는 자신을 부끄러워했고, 잘못한 것도 없이 상처받은 학생들에게 미안해했다. 1월과 8월, 그렇게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두 개의 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홍종호 서울대 환경대학원장(56)은 “상처받은 학생들이 동요하는데 그냥 있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 ―올 1월 정부가 23개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에 대한 예타를 면제하자 맡고 있던 4대강 조사·평가위원장을 사임하겠다는 글을 올렸다. “사리에도 안 맞고 위원들 얼굴을 볼 수 없어서…. 위원회에 수질과 생태 전문가들이 가장 많이 있었다. 아마도 환경부 복안은 수년간 수질이 악화되고 생태계도 많이 훼손됐으니 원상태로 복구하는 게 바람직하다.… 이렇게 결정하려 한 것 같다.” (원래 그렇게 갈 거 아니었나.) “나는 이런 논리로는 백발백중 실패할 거라 생각했다. 우리나라의 환경에 대한 평균 인식이 그 정도 논리로 이미 만들어진 걸 부수는 데 동의할 정도는 아직 아니다. 그리고 난 경제학자인데 그렇게 결정할 거면 있을 이유도 없다. 그래서 그러지 말고 보 해체에 따른 비용과 편익을 분석해 장기적으로 해체가 오히려 이득이라는 점을 제시해야 국민을 설득할 수 있다고 했다. 그렇게 설득해 예타 조사 방식을 반영시켰는데 정작 정부는 SOC 사업에서 예타 조사를 면제하니 무슨 낯으로 위원들을 보나. 옳은 결정도 아니고.” ※그는 2012년 부산고등법원에 원고 측 증인으로 출석해 이명박(MB) 정부의 4대강 사업은 경제성이 없으며 예타 조사를 안 한 것은 불법이라고 했다. 그는 지난해 문재인 정부에서 4대강 조사·평가위원회 민간위원장에 선임됐다. ―설득했다는 건 반대가 많았다는 건가. “청와대 담당자도, 환경부도 ‘듣고 보니 그렇네’ 하더라. 그런데 위원회에 모인 전문가, 활동가들은 비용 편익 분석에 익숙한 분들이 아니었다. 특히 생태 분야 분들은 ‘생명을 어떻게 돈으로 환산하느냐’는 인식이 강하다. 하지만 그건 학자, 시민운동가로서의 생각이고 국민을 설득하고 정당성을 인정받으려면 경제적 편익 방식으로 접근하는 게 불가피하다고 봤다.” (쉽게 동의하지는 않았을 텐데.) “시간이 좀 걸렸다. 이 방식을 적용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모른다는 점도 우려했던 것 같다. 그래서 결과를 예단할 수는 없지만 여러분이 확신하는 것처럼 수질과 생태계가 파괴됐다면 그 결과가 전부 경제적 가치에 반영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유지하는 게 더 나았으면 어쩔 뻔했나.) “뭘 어떻게 하나. 지금으로선 해체가 무리이니 좀 더 지켜보며 자료를 축적하자고 했을 거다. 숫자를 조작할 수는 없으니까.” ―보 해체 의견을 발표한 게 2월인데 아직도 해체는 하지 않고 있다. “그 점이 가장 아쉬운데… 정책이란 가치와 전략이 결합돼야 완성되는 건데, 이 정부는 마음만 앞서고 어떻게 문제를 풀어나갈지에 대한 전략적 접근이 많이 미흡했다. 2월에 보 2개 해체, 1개 부분 해체, 2개 상시 개방을 발표했는데 당시에는 6월에 국가물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최종 결정을 하고 바로 집행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물관리위원회를 빨리 안 만들더라.” (이유가 뭔가.) “잘 모른다. 전반적으로는 해당 지역도, 전국적으로도 해체 여론이 높았다. 대통령 공약이고, 연구 결과도 그렇게 나왔으니 추진할 줄 알았는데 지역에서 좀 반대하고, 선거 얘기 나오더니 갑자기 쑥 들어갔다. 민주당이 안 움직이는 것 같더라. 환경부도 적극적이지 않고…. 그때 이 사람들이 전략만 부족한 게 아니라 정책에 대한 가치관도 확고하지 않다고 느꼈다.”※국가물관리위원회는 당초 계획보다 두 달 늦은 8월에 구성됐다. 하지만 보 해체와 관련해서는 현재까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정부에 사의를 표명해도 되는데 페이스북에 올린 이유가 있나. “갑자기 화가 나서….” (갑자기?) “그날(1월 29일) 오후 4시인가? 회의가 있었는데 갑자기 예타를 면제할 거라는 뉴스가 나왔다. 그걸 보고 바로 썼다. 굉장히 빨리 썼다.” (사전에 몰랐나.) “전혀 몰랐다. 그 사람들이 나한테 말해줄 의무도 없고. 하지만 우리가 우여곡절 끝에 예타 조사 방식으로 평가하기로 했고, 그걸 (청와대도) 알 텐데 이 방식을 부정하니 우리 위원들은 뭐가 되나. 그렇다고 위원들 개개인에게 일일이 연락해서 알리기도 그렇고… 내가 정부 위원회의 장을 맡고 있는데 죄송하기도 하고… 사실 글을 올릴 때는 그렇게 큰 반향이 있을 거라 생각 못 했다.”―배신감을 느낀 건가. “뒤통수를 맞은 느낌? 좀 심하게 말하면 괘씸하더라. 기분도 많이 상했고… 그래서 (위원장을) 하고 싶지 않았다. 자신들이 야당일 때는 MB 정부가 예타를 면제해 혈세를 낭비한다고 하다가 이제는 반대가 되니까. 소위 영남권 KTX라는 사업도 들어갔는데 171km에 역이 5개다. 완전히 가다 서다 아닌가. 지역 정치인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지역 발전에 얼마나 도움이 될는지…. 4대강 보 해체와 관련된 정부의 태도, 예타 면제 등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이 정부의 가치관에 대한 의심, 회의를 넘어 나중에는 분노까지 일었다.” (며칠 후 철회했는데.) “발표가 코앞인데 위원장이 그만두면 어떻게 하느냐는 위원들의 만류가 많았다. 환경부에서도 계속 가자고 하고….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일단 하던 일은 잘 마무리하는 게 낫다 싶어 결국 복귀했다.” ―진영 논리 때문인지 시민단체의 반발이 좀 덜하다는 느낌도 있다. “4대강 사업과 예타를 면제한 SOC 사업에 조금의 차이는 있다고 본다. 하천이나 강을 건드리는 사업은 외국에서도 매우 조심한다. 하지만 어쨌든 하나는 강을 파고, 하나는 땅을 파는 거니까, 세금도 들어가고…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다고 본다.” ―경제적 타당성만 고려하면 낙후 지역은 개발 기회 자체가 없지 않나. “지금 예타 조사도 경제적 편익만 갖고 판단하지 않는다. 정책적 평가라고 해서 지역의 낙후도, 지역균형발전 기여도 등을 고려한다. 비용편익비율은 낮지만 꼭 필요한 사업이라면 충분히 검토한 뒤 할 수 있다. 문제는 그런 사업이 아닌데 들고나온 것이다. 영남권 KTX는 이미 박근혜 정부 때도 얘기가 나온 거다. 당시 새누리당 입장에서는 그쪽이 표밭이라 사업을 하면 좋은데도 워낙 경제성이 없어 도저히 할 수 없었다. 그런 걸 이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이라고 들고나오니….” ―조 전 장관 딸의 장학금과 관련해 올린 글도 반향이 무척 컸다. 환경대학원이 잘못한 것도 아닌데 왜 그런 건가. “이 문제는 많이 조심스럽다. 내가 환경대학원 교수와 원장이 아니었다면 아마 안 올렸을 거다.” (그런데 왜….) “내가 직책에 대해 과도한 책임의식을 느끼는 사람은 아니지만… 학생들이 많이 불편해하겠다고 예상했는데 틀리지 않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말이 도는데… 가장 무서웠던 말은 ‘동료 교수 딸이니까 봐준 거 아니냐’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아, 이거 심각하다. 그냥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해 글을 썼다. 학생들이 동요하고 불만도 쌓일 수 있고… 가장 걱정되는 것은 상처받는 학생들이 있을 것 같아서였다. 그게 제일 두려웠다.”―어떤 상처를 말하는 건가. “상대적인 박탈감 같은 거…. 환경대학원 석사과정이 200여 명 된다. 한 학기 등록금이 400만 원 정도인데 이런저런 장학금이 있지만 400만 원 전체를 통째로 다 받는 경우는 아주 드물다. 외부 장학금도 있어 정확히 아는 건 아니지만 100만 원 정도면 많이 받는 편에 속한다. 학생들이 넉넉지 않기 때문에 기숙사에서 동장 같은 일을 하면서 근로장학금을 받기도 하고, 연구 일을 도우면서 인건비 명목으로 받아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하기도 한다. 오늘도 4명이 외부 장학금을 신청해 추천서를 써주고 있었다. 그런 학생들이 보기에는 이건 너무 쉽고 편했다. 게다가 수업도 거의 안 듣고….”※조 전 장관의 딸은 한 학기에 401만 원씩 두 학기 802만 원을 받았고 수업은 1학기 1과목(3학점)만 들었다. ―환경대학원에 다니다가 다른 곳에 가는 경우가 많나. “법학전문대학원에 가는 경우는 봤는데… 그 학생은 졸업하고 갔다. 환경전문 변호사가 되고 싶다는 거였다. 안 그래도 주변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물어봤는데 중간에 다 마치지 않고 의학전문대학원에 가는 건 처음 봤다고 하더라. 환경대학원은 의전원 진학과 관계없는 전공이다. 뭐, 올 수도 있는데 그러면 최소한 수업이라도 좀 듣든지…. 아니면 장학금이라도 안 받거나. 불법은 아니겠지만 보는 사람들 눈살이 찌푸려지니까…. 꼭 그렇게까지 해야 했는지 모르겠다. 사람이 어떤 선택을 하는 과정에서 위법 여부를 떠나 용인되는 어떤 선이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그 선을 넘었다.” ―마침 지금 내년도 입학생을 전형 중이다. “지난달 시작해 면접까지 치렀는데 이달 말 최종 합격자를 발표한다.” (면접에서 혹시 특별히 당부하거나 물은 건 없나.) “하하하, 특별히 지난해와 비교해 달라진 건 없다. 반 농담으로 동료 교수들과 학생들에게 인지도가 높아져 올해 경쟁률이 올라가지 않겠느냐고 했는데…. 별 차이는 없더라. 다행히 조 전 장관 딸이 다녔던 전공에 우수한 학생들이 많이 지원했다. 조 전 장관 관련은 지금 수사 중이고 학교 문제이기도 해 더 말하기가 좀 그렇다. 이해해줬으면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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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울고 있는 민식이법[횡설수설/이진구]

    9월 중순,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횡단보도를 건너던 아홉 살 난 김민식 군이 차에 치여 숨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맞은편에는 김 군의 부모가 운영하는 치킨 집이 있었는데 가게에 있던 김 군의 어머니와 두 살 어린 동생은 사고 현장을 다 보았다고 한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시속 30km인 스쿨존 제한 속도를 지키지 않았다. ▷49재도 끝나기 전인 지난달 1일 김 군의 아버지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 자식을 지키지 못한 못난 아비가 아들이 가는 길에 마지막이라도 역할을 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내용이다. 그는 다시는 민식이처럼 억울한 피해자가 없게 스쿨존 안에 의무적으로 신호등과 과속단속카메라를 설치하고, 사고 시 가중 처벌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군이 사고를 당한 횡단보도에는 신호등도 과속단속카메라도 없었다. ▷안타까운 소식이 알려지면서 지난달 11일 ‘민식이법’으로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개정안이 발의됐다. 김 군의 부모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법 통과를 호소했고, 친인척까지 나서 서명운동을 펼쳤다. 김 군의 어머니는 40여 명의 국회의원에게 손편지를 보냈다.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민식이법’은 해당 상임위인 행정안전위에서 논의 한 번 안 되고 잠자고 있는 상태다. 국민 청원도 11만2789명으로 기준인 20만 명을 못 채워 답변도 받지 못한 채 지난달 31일 종료됐다. 전국 스쿨존 1만6000여 곳에서 최근 5년간 31명이 죽고, 2500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스쿨존 중 과속단속카메라가 있는 곳은 4.9%인 820곳에 불과하다. 내년 스쿨존 관련 예산 230억 원이 편성됐지만 모두 새 구역 지정이나 확장일 뿐, 단속카메라나 신호등 설치비는 전무하다고 한다. ▷지난달 21일 국회 앞에서는 민식 군의 부모를 비롯해 6명의 부모들이 마이크를 잡고 법 통과를 호소했다. 모두 ‘하준이법’ ‘혜인이법’ 등 숨진 자녀의 이름을 딴 ‘어린이 생명안전법안’들이 수년째 국회에 계류된 부모들이다. 부모들은 닷새간 의원실 300곳을 돌며 부탁했는데 의원들은 “쟁점법안도 아닌데 왜 계류돼 있지?”라며 오히려 진행 과정을 되물었다고 한다. 국가가 책임을 통감하고 앞장서도 모자랄 판에 거꾸로 피해자 가족들이 부탁하고 호소하는 상황은 정상이 아닐 것이다. 국가만 탓할 일도 아니다. 어린 생명이 희생돼도 반짝 관심뿐인 우리 모두가 부끄러운 일이다. 정기국회는 다음 달 10일 종료된다. 이대로 가면 민식이법은 사실상 폐기될 운명이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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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작된 프로듀스 시리즈[횡설수설/이진구]

    “청각을 잃고 처음에는 아주 작은 소리라도 잡으려고 노력했어요. 손바닥뼈가 상할 때까지 박수를 쳤지만… 들리지 않았죠. 그렇게 포기해 가던 어느 날, 저는 계단에서 굴러 떨어졌고, 움직일 수가 없었어요. 그때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평생 누워 있거나, 혹은 일어선다. 그리고 달려간다.” ▷2017년 6월 미국의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인 ‘아메리카 갓 탤런트(America‘s Got Talent)에서 맨디 하비(29)라는 청각장애 여성이 무대에 올랐다. 그녀는 가수가 꿈이었지만 선천성 질환으로 18세에 청력을 잃었고, 다니던 음대도 그만둬야 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튜너기 바늘을 보며 음정을 맞추고, 바닥의 진동을 통해 반주의 박자와 리듬을 느끼며 노래하는 방법을 연습했다고 한다. 신발을 벗은 맨디는 자작곡 ‘트라이(Try)’를 불렀다. ▷리얼리티 오디션 프로그램은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을 출연시켜 가공되지 않은 감동을 전달하는 것이 핵심이다. 변두리 휴대전화 가게 영업사원, 자폐증을 앓는 시각장애인, 84세 할아버지가 보여주는 깜짝 놀랄 실력을 보며 사람들은 환호를 보냈다. 그리고 그들이 무대에 오르기 위해 얼마나 많은 힘듦을 이겨냈을까를 생각하며 눈물을 훔쳤다. 이런 꾸미지 않은 감동이 폭발적인 인기를 끌면서 국내에서도 슈퍼스타 K, 프로듀스 시리즈 등 유사 프로그램들이 제작됐다. 초창기에는 노숙인으로 지내면서도 성악가의 꿈을 키운 최성봉 씨 등도 발굴됐으나, 돈과 시청률에 매몰된 관련 업체들로 인해 점차 연예인 지망생들이 재주를 뽐내는 장으로 변질돼 갔다. ▷프로듀스 시리즈를 제작한 CJ ENM의 음악전문채널 엠넷(Mnet)의 PD 2명이 최근 구속됐다. 특정 후보가 합격하게 투표 결과를 조작하고, 연습생을 출연시킨 기획사로부터는 유흥업소에서 수천만 원 상당의 향응을 받았다고 한다. 구속된 PD들은 최종 라운드에 오른 20명의 연습생이 경쟁도 하기 전에 자신들에 의해 이미 순위가 정해진 소위 ‘PD픽(pick·선택)’이었다고 시인했다. 20명을 추리는 과정에서 경연곡을 미리 알려준 정황도 나오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경쟁이 있고, 승자보다는 패자가 더 많을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경쟁이 공정하다면 떨어졌더라도 힘을 내 다시 도전하면 된다. 하지만 그 믿음이 물정 모르는 순진한 생각이고, 이미 짜인 각본이 존재한다면 누가 살아갈 힘을 낼 수 있을까. 한 연예 관련 회사의 나쁜 사람들이 저지른 일이라고 치부하기엔 청소년들에게 가한 상처가 너무나 크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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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춘재가 자백한 이유? 여자 좋아하다 휘말려서…”[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악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인간은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을까. 14명을 살해하고 30여 명을 강간·강간미수했다고 자백한 이춘재가, 안 나와도 그만인 자리에 나와 결국 자백을 한 것은 또 무슨 까닭이었을까. 국내 1세대 프로파일러(범죄심리분석가)인 이수정 교수(55)는 “조사팀이 면밀히 연구한 뒤 여성 프로파일러를 투입한 게 주효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춘재 조사에는 그의 제자인 프로파일러들이 상당수 참여했다.》 ―이춘재가 유전자(DNA) 증거 제시, 프로파일러와의 신뢰 형성 등 때문에 자백했다고 하는데 그것만으로는 이해하기가 좀 어렵다. “휘말려서 그런 거다.” (휘말려서?) “이춘재는 공소시효가 다 끝났기 때문에 자백을 할 이유가 없다. 사실 프로파일러들과의 면담도 안 나오면 그만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자백받는 게 쉽지 않을 거라 봤다.” (그런데 왜 나온 건가.) “초반에는 DNA 검사란 게 얼마나 확실한 증거인지를 설명하는 데 시간을 좀 보냈다. 그런 얘기를 주로 여성 프로파일러가 많이 했는데, 여성과 얘기하는 자리가 생겼다는 게 이춘재가 계속 면담에 나온 이유라고 본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 건가. “이춘재는 성도착증으로 연쇄 성폭행 살인을 저지른 사람이다. 그렇게 성적인 관심이 많은 사람이 20여 년간 교도소에 있었다. 그러다 수사관을 떠나 여성과 말을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니 그것만큼 흥분되는 일이 없었을 거다. 그렇게 자리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말린 거다. 결과적으로…. 그런 부분을 수사팀이 굉장히 열심히 분석하고 준비해서 공략한 게 성공한 것 같다.” ※조사에는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았던 공은경 경위(40·여) 등 남녀 베테랑 프로파일러 9명이 투입됐고 이 중 절반 이상이 여성이었다. 이춘재는 자백 직전 여성 프로파일러에게 “손 좀 잡아 봐도 되느냐”고 물었고, 프로파일러는 “조사가 마무리되면 악수나 하자”고 응대했다. ―이춘재 같은 희대의 살인마가 어떻게 수십 년간 1급 모범수로 지낼 수 있는 건가. “교도소 안에는 여자가 없으니까…. 물론 체격이 작기 때문에 감방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맞았을 테니 조심도 했을 테고…. 범죄자마다 특성이 있는데 이춘재는 성적인 욕망과 연관된 것이 아니면 온순한 사람이다. 성폭행이 목적이었고, 성폭행을 하다 보니 살인까지 간 경우다. 범죄자들도 일반적인 사고는 보통 사람들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단지 자기가 흥미를 갖는 부분에서 아주 다른 양식으로 반응할 뿐…. 교도소 안에서도 음란물을 갖고 있던 걸 봐도 알 수 있다.” (교도소에 어떻게 음란물이 들어갈 수 있는지 의아하긴 하다.) “하하하. 교정본부에서 더 이상 그 얘기는 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더라.” ※최근 출소한 한 수감자에 따르면 편지 왕래가 자유로운 허점을 이용해 마약을 녹인 물에 적셔 말린 종이에 편지를 써 들어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춘재는 범행 시 같은 방식을 거듭 사용했는데 그러면 잡힐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걸 모를 수 없는 것 아닌가. “성도착적인 면도 있고, 시그니처(범행 인증)이기도 한데…. 모르지는 않았을 거다. 검거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을 알았겠지만 꼭 해야 욕망이 풀리기 때문에 안 할 수가 없는 거다. 같은 스타킹도 이춘재는 피해자 손목을 묶을 때 주로 썼는데, 연쇄살인범 강호순은 목을 조르는 데 썼다.” (왜 굳이 스타킹을?) “표현이 적절치는 않지만 스타킹은 느슨하기 때문에 살인에 효과적인 도구가 아니다. 그래서 구치소에서 강호순에게 물었다. 스타킹을 사용한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몰라요’라고 할 게 뻔해 그 대신 ‘목을 묶은 뒤에 뭘 했냐’고 물었다.” (뭐라고 하던가.) “담배를 피우며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봤다고 하더라. 죽이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죽어가는 과정을 보는 게 더 큰 이유였던 거다. 그래서 금방 죽지 않는 스타킹을 선택한 거고….” ―화성 8차 사건의 범인으로 20년간 복역한 윤모 씨(52)가 다음 주 중 재심 청구를 할 예정이다. 가혹행위도 있던 걸로 보이지만 살인을 허위 자백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닐 것 같은데…. “미국에서도 1980년대 DNA 검사가 일반화되면서 많은 살인 사건의 범인들이 진범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일반인보다 장애인, 미성년자 등에게서 허위 자백이 많이 발생한다. 수사관이 몰아붙이는데 끝까지 저항을 못 하는 거다. 일명 ‘수원 노숙 소녀 살인사건’도 가출 청소년들이 수사기관의 강압에 못 이겨 허위 자백을 한 경우다.” (한 명도 아니고 어떻게 여러 명이 전부 허위 자백을 할 수가 있나.) “16세 이하 아이들은 의사결정 능력이 성인 같지 않다. 자백하면 집에 보내주겠다는 말에 한 아이가 너무 힘드니까 허위 자백을 했고, 나머지 아이들에게는 그 허위 진술서를 보여주며 이렇게 답하라고 했다. 그래서 다 비슷하게 된 거다.” ※2007년 5월 경기 수원고에서 10대 소녀가 죽은 채 발견됐다. 검경은 가출 청소년 5명과 지적장애인 2명을 범인으로 몰았으나 모두 허위 자백으로 드러나 무죄 판결을 받았다. ―장애인도 비슷한 이유인가. “수원 사건 당시 경찰은 지적장애인과 조현병 환자 두 명도 범인으로 몰았다. 공범이라고…. 사리분별력이 떨어지는 데다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에 변호사 도움을 제대로 받을 수 없는 계층에서 허위 자백이 많이 생긴다. 윤 씨도 소아마비 장애를 가지지 않았나.” (국선변호인은 뭐하고 있었기에….) “국선변호인? 윤 씨의 첫 국선변호인은 재판에 나오지도 않았다. 그 다음 국선변호인은 사건 기록도 안 보고 장애인이니 관대하게 처분해 달라고만 하고…. 사비로 변호사를 쓸 수 있었다면 허위 자백을 당할 리도 없다.” ―허위 자백이 아니라면 당시 수사관들이 지금 들고일어났어야 하는데 조용하다. “들고일어나면 자기가 그랬다는 걸 다 드러내는 건데 누가 하겠나. 다 어디에 숨어있겠지. 공소시효도 다 끝났으니까 국가를 대상으로 손해배상이나 청구해라 그렇게 생각하면서….” ―사형제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지만, 연쇄살인 등 흉악범죄가 발생할 때마다 사형 집행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아… 그 질문은 너무 어렵다. 아직도 고민하고 있고…. 내가 천주교 신자고,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단체의 이사를 맡고 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는 사형제에 반대한다.” (그런데 왜 고민인가.) “면담 중에 강호순이 나에게 물어본 게 있다. 그게 잊혀지지 않는다.” (뭘 물었기에….) “우리나라에서 사형을 집행하느냐고…. 그 순간 ‘아, 이 사람들이 남은 그렇게 죽여 놓고도 자기 목숨은 신경을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형제가 폐지되면 이제는 아무 두려움이 없어지는 건데…. 끔찍한 죄를 저지른 사람들에게 그런 공포심마저 덜어줘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들은 얼마나 억울하고 안타깝게 죽어갔는데…. 사형제 폐지가 과연 정당한 건지 잘 모르겠다.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 것과 사형제를 폐지하는 건 다른 것 같다.” ―수많은 범죄자와 흉악범들을 봤는데…. 당신은 사람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생각하나. 교육이나 교화로 사람이 바뀔 수 있다고 믿나. “심리학자 중에는 아마 사람이 본질적으로 선하다고 믿는 사람은 없을 거다. 나도 그중 한 명이고…. 인간의 본능을 인정하는 쪽인데, 인간의 본능 자체는 착한 쪽은 아니고 욕망 충족적이다. 성범죄자는 가장 욕망 충족적인 부류인 거고….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특히 범죄자들은 더더욱. 그 대신 관리는 될 수 있다. 그래서 전자발찌 등도 불가피하지만 도입할 수밖에 없었던 거고, 스토킹방지법이나 인권 침해 논란이 있지만 범죄를 저지른 정신질환자들에 대해서는 강제 치료도 필요하다고 보는 거다. 국가가 공공의 안전을 유지해 주지 않으면 누가 하나.” ―이춘재 같은 흉악범을 막기 위해서라도 스토킹방지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최근 귀가하는 여성을 쫓아가 집에 침입하려고 했던 일명 ‘신림동 강간미수 사건’의 남성이 1심에서 강간미수는 인정되지 않고 주거침입만 실형을 선고받았다. 강간의 착수가 없었기 때문에 강간미수인지 강도미수인지 어떻게 아느냐는 거다. 온 국민이 폐쇄회로(CC)TV를 봤는데…. 그래서 스토킹방지법을 만들어 예비 단계에서의 행위도 처벌하자는 거다. 이춘재도 귀가하는 여성 뒤를 쫓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스토킹방지법이 있다면 일이 벌어지기 전에 잡아서 처벌할 수 있다. 법안은 제출돼 있지만 이번 국회는 사실상 다 끝났고 내년 총선 뒤에 다시 추진할 계획이다.” ―당장 내년 말에 조두순이 출소한다. 이미 얼굴이 공개됐는데 동네 주민들이 불안해서 살 수 있을까. “외국에는 중간처우시설이라는 게 있는데, 출근할 때는 전자발찌 등을 차고 나가고 퇴근 후에는 반드시 들어와서 아침까지 못 나가게 하는 일종의 강화된 기숙사 정도로 보면 된다. 안에서는 술도, 음란물도 금지시키고…. 어디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어떻게 살겠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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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액셀 더 밟는 황색 신호[횡설수설/이진구]

    시민의식을 가늠하는 척도로 빠지지 않는 것이 교통 기초질서다. 황색 신호에 대한 인식이 대표적인데 녹색에서 황색으로 바뀔 때 운전자들이 계속 가는지, 멈추는지를 보면 그 사회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영국 운전자들은 황색은 정지 신호인 적색과 동일하게 여긴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황색을 ‘곧 적색으로 바뀌면 못 지나가니 빨리 지나가라’는 것으로 여기는 운전자들이 많다. 황색 신호로 바뀌면 급가속을 해 쏜살같이 사거리를 통과하는 운전자가 빈번하다. 좀 막힐 기미가 보이면 ‘나 하나라도 지나가야 한다’며 꼬리물기를 해 교통 체증을 유발하기도 한다. ▷녹색에서 황색으로 신호가 바뀌는데 차가 사거리 직전에 있을 때를 ‘딜레마 존’이라고 부르는 운전자들이 있다. 빠르게 지나갈지, 멈출지 순간적으로 고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런 고민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황색 신호는 녹색의 연장이 아니라 적색의 시작을 의미한다. 단지 갑자기 신호가 바뀌면 사고 위험이 있기 때문에 준비 시간을 준 것뿐이다. 따라서 교차로 입구의 정지선 진입 전이면 반드시 즉각 멈추고, 이미 조금이라도 정지선을 지난 상태라면 신속히 밖으로 나가야 한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은 ‘황색 신호 시 교차로나 횡단보도의 정지선 직전에 정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사 중이어서 정지선이 없는 경우에도 황색 신호가 켜지면 멈춰야 한다. ▷황색 신호에 교차로에 진입하는 것은 법 위반 여부를 떠나 사고를 자초하는 행위다. 특히 좌회전의 경우 교차로를 미처 빠져나가기 전에 적색 신호로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다른 방향에서 직진 대기하던 차량이나 오토바이가 녹색으로 바뀌자마자 급출발할 경우 충돌하는 사고가 비일비재하다. 신호 위반 사고는 12대 중과실에 포함돼 경우에 따라 보험 적용도 못 받고 피해자와 합의해도 형사 처벌을 받는 중범죄다. ▷25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의 한 사거리에서 학생들을 태운 통학버스가 다른 차와 부딪혀 고3 수험생 1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다쳤다. 신호등이 황색에서 적색으로 바뀔 때 버스가 멈추지 않고 무리하게 직진한 것이 사고의 원인이라고 한다. 앞서 5월 중순 인천 송도국제도시에서도 청소년들이 탑승한 축구클럽 승합차가 황색 신호에 교차로에 진입했다가 사고를 내 초등학생 2명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너무도 당연하고 간단한 신호 규정을 무시한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이 채 피어나기도 전에 스러졌다. 사실 신호등이 있든 없든 사거리 진입 시에는 속도를 줄이는 것이 원칙이다. 기본 중의 기본을 지키지 않은 대가가 너무 크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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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생각이 다르다고… 가게에 침 뱉고, 불매운동은 아니지 않습니까”[이진구 논설위원의 對話]

    《2019년 대한민국은 자기 생각을 말하는 데 ‘많은 용기’가 필요한 사회가 됐다. 다른 진영은 말할 것도 없고 같은 편끼리도 지적을 하면 문자·댓글 공격을 폭탄처럼 쏟아붓는다. 양식 있다던 진보 지식인들도 무서워서인지, 동의해서인지 별말이 없다. 조국 사태로 격화된 이런 상황은 재벌 회장도, 고위 공직자도 아닌 떡볶이 장수에게까지 튀었다. 김상현 국대떡볶이 대표(39)는 15일 “페이스북에 해시태그 하나 올린 게 이렇게까지 번질 줄은 몰랐다”고 말했다. 》 ―조국 사태의 상징적인 사건 중 하나가 됐는데 어떻게 시작된 건가. “원래 페이스북에 평소 일상이나 신앙, 정치 등과 관련된 이런저런 글을 많이 썼는데 밑에 ‘#코링크는 누구 거’라는 해시태그를 붙였다. 최순실 사태 때 ‘#그런데 최순실은’이란 해시태그 운동이 있었던 것과 비슷하다. 그러다 지난달 말 해시태그를 ‘#코링크는 조국 거’로 바꿨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 핵심 인물인데 가족들만 조사받는 게 맞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문재인 대통령 지지자로 보이는 사람이 공유하면서 일이 커졌다. 내 글을 공유해 가면서 ‘국대떡볶이 대표라는 사람이 코링크가 조국 거라고 합니다. 불매운동 갑시다’라고 한 거다.” (문 대통령 지지자라는 건 어떻게 알았나.) “내 글을 공유했기 때문에 그 사람 페이스북에 가서 게시물을 볼 수 있었다. ‘이니 건드리면 눈알이 터져’ 이런 게시물도 있고….” (본문도 아니고 단지 해시태그 때문에 시작됐다는 말인가.) “그렇게 시작됐다. 단지 해시태그를 보고….” ※‘이니’는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대통령을 부르는 애칭이다. ―이런 논쟁을 겪어본 적이 없었을 것 같은데…. “당연히…. 처음에는 스트레스를 받아서 위장약을 먹을 정도였고, 빨리 불을 끄고 싶었다. 가맹점주들에게 피해를 주면 안 되니까. 그런데 좀 생각해보니까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더라. 누구나 개인 의견을 표현할 수 있는데 그걸 이유로 불매운동을 당해야 한다는 게 이해가 안 갔다.” (피해가 어느 정도인가.) “처음 하루 이틀 정도는 매출이 떨어졌는데 그 다음부터는 구매운동이 일어 지금은 가맹점별로 매출이 평균 50∼100% 정도 늘었다. 가맹점주들이 처음에는 굉장히 힘들어했다. 본사는 물론이고 각 가게로 전화를 해 쌍욕을 하고, 가게에 가래침을 뱉고 가는 사람도 있었으니까. 찾아와서 업주를 무섭게 노려보고 가기도 하고…. 겁에 질려 ‘대표 때문에 나 망하게 생겼다. 어떻게 하느냐’고 하소연하는 점주들도 있었다.” ―이런 경우에 타협을 하는 게 보통 아닌가. “주변에서 사과하고 끝내라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데 말했지만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모르겠더라. 자신들과 생각이 다르다고 무조건 무릎을 꿇으라는 식인데…. 내 생각을 밝힌 것이 불매운동을 당해야 할 일인가. 그리고 대체 누구에게 사과하라는 건가. 친문 지지자들? 그 사람들은 내 약점이 가맹점에 피해가 가는 거란 점을 알기 때문에 불매운동을 무기로 쓴 건데…. 우리 가맹점주들이 오히려 부당하게 재산권을 위협받은 피해자 아닌가. 보호를 받아도 모자랄 판에…. 그래서 여기서 물러나면 안 되겠다고 생각하고 더 강하게 나갔다. 평소에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문재인은 공산주의자’라는 글을 올리고, 불매운동 하자는 사람들 페이스북에 들어가 게시물 캡처해서 내 페이스북에 올렸다. 언론에도 알리고….” (국대떡볶이가 호남에 가맹점이 두 개뿐이라 현 정부에 비판적이라는 비난도 있더라.) “하하하. 정말 그렇게 말하는 게 잘못된 건데…. 내가 고향이 대구고 보수라 호남에 가게를 안 연다고 한다. 사업하는 데 그런 걸 따지는 사람이 있을까. 우리도 그렇고 모든 사업은 인구 수와 시장 크기에 비례할 수밖에 없는데….” ※국대떡볶이 가맹점 64곳(자체 홈페이지 기준) 중 호남은 2곳, 부산 대구 경남·북은 8곳이다. ―페이스북에 쓴 글 때문에 시민단체에서 고발까지 당했다. “그렇게 알고는 있는데… 나도 언론을 통해 경찰에 접수됐다고 간접적으로 들었을 뿐 아직 고발장을 직접 받지는 못했다. 그래서 정확한 내용은 아직 잘 모른다. 단지 고발장을 받으면 대응하려고 변호사는 선임했다. 시민단체에 고발당한 것과는 별개로 나도 악플을 단 사람을 허위사실 유포로 고소했다.” (어떤 내용인가.) “내가 자유한국당 공천을 받았다고 하더라.” ※시민단체인 ‘적폐청산 국민참여연대’ ‘가짜뉴스 국민고발인단’ ‘자유한국당척결 국민고발인단’ 등은 지난달 27일 김 대표가 문 대통령과 조 전 장관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명예훼손을 통해 노이즈 마케팅을 한다는 등의 이유로 경찰에 고발했다. ―일각에서는 노이즈 마케팅 아니냐고도 한다. “하…. 정말 앞뒤 안 가리고 하는 무조건적인 비난인데…. 세상에 대통령 걸고넘어지는 노이즈 마케팅을 하는 회사를 본 적이 있나. 회사는 세무조사 등 권력에 의해 공격받기가 아주 쉽다. 그런데 대통령을 향한 노이즈 마케팅이라니…. 원래 매장도 좀 새롭게 구성하고 사람도 영입하는 리뉴얼을 막 실행할 참이었는데 이 일 때문에 오히려 늦어지고 있다. 처음 시작할 때보다 매출 규모는 줄었지만 이 사안이 터질 당시에 회사는 흑자였다. 설사 망하고 있다고 한들 대통령을 걸고넘어지면 더 빨리 망하지 살아나겠나.” ※공정거래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국대떡볶이 가맹점 수는 2015년 99개에서 2017년 74개로, 같은 기간 매출은 80억 원에서 51억 원으로 떨어졌다.―가맹점 중 하나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소속 노조의 압력으로 퇴출될 위기라고 했던데 사실인가. “서울 종로구 서울대 치과병원 지하 1층 구내식당을 위탁운영하는 업체가 있다. 이 업체가 우리와 기본 2년에 이후 1년씩 연장하는 조건으로 가맹점 계약을 맺고 떡볶이를 팔았다. 지난달 16일 문을 열었는데 다른 지역처럼 단독 매장을 차린 건 아니고 주방시설을 이용해 식당 메뉴에 추가해 판 것이다. 병실 배달 서비스도 하고…. 초반에는 하루 50만 원 정도로 매출이 아주 좋았다. 홍보만 좀 더 하면 하루 100만 원까지도 나올 수 있을 것으로 봤다. 그 크기에서 100만 원이면 대박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 열고 보름 정도 지났는데… 그때가 내가 문 대통령 비판한 걸로 한창 이슈가 될 때였다. 갑자기 업체에서 면담 요청이 왔다. 병원 측에서 국대떡볶이 상호를 안 보이게 하고, 병실 배달도 하지 말라고 한다고…. 병원 노조가 그렇게 항의한다는 거였다. 이후 매출이 하루 10만 원 정도로 떨어져 계약을 해지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하루 10만 원이면 한 사람 인건비도 안 나오는 수준이니까…. 해지하면 패널티나 비용은 어떻게 되는지 그런 문의를 한 거다.” ※서울대 치과병원 지부는 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 소속이다. ―인터뷰를 준비하기 위해 가봤는데 아직은 영업을 하고 있던데…. “업체 이야기를 듣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 이런 내용을 언론에 제보했다. 그 후 병원과 노조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자 자신들은 그런 적이 없다며 한발 빼더라. 이 때문에 가맹점은 폐점도 못 하고, 전처럼 제대로도 못 하고 애매하게 영업을 하고 있다. 중간에 낀 가맹점이 사실 제일 불쌍하다. 노조가 겁이 나 폐점도 못 하고 울며 겨자 먹기로 운영하고 있으니까….” (노조가 폐점을 압박했다면서 업체는 겁이 나 운영을 하고 있다는 게 무슨 말인가.) “처음과 달리 사안이 커져 지금 실제로 폐점을 하면 병원과 노조에 다시 엄청난 비난 여론이 쏟아질 가능성이 크다. 병원 구내식당을 위탁 운영하는 업체 입장에서는 그런 점도 신경을 안 쓸 수 없을 거다. 사실 피해자인데…. 중간에서 곤란한지 ‘우리가 언제 해지한다고 했느냐’라고도 하더라.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가맹점이 피해자이기 때문에 진짜 해지한다고 하면 위약금 같은 건 안 받으려 했다.” ―과거 일부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얼굴을 누드화에 합성하고, 잘린 머리를 쇠막대기에 매달아 시위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한 적이 있다. 그런데 문 대통령 비판은 표현의 자유를 넘는 것이라며 당신을 비난한다. “나는 이 점은 분명히 구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대통령 얼굴을 누드화에 합성하고, 머리를 죽창에 매다는 것은 표현의 자유가 아니라 패륜이고 인격모독이라는 점이다. 어떤 경우에도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나 또한 문 대통령을 그렇게 대해서는 안 되고…. 하지만 누군가의 사상이나 생각은 비판할 수 있다고 본다.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나.”△김상현 대표=대구대 체육학과 재학 중 입대. 제대 후 복학하지 않고 몇몇 사업을 했으나 실패한 뒤 고향 떡볶이집 할머니에게 떡볶이 만드는 법을 배워 2008년 12월 이화여대 앞에 포장마차를 차렸다. 이듬해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국대떡볶이 1호점을 냈는데 1년 반 만에 매장이 60여 개로 늘 정도로 성공했다. ‘국대’(국가대표의 줄임말)는 투박하고 한국적이면서 좋은 의미를 가진 이름을 찾던 중 친구와의 대화에서 우연찮게 떠올랐다고 한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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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리밍 전쟁[횡설수설/이진구]

    “겨울이 왔다.” 지난해 11월 미국 NBC는 ‘스트리밍 전쟁(The Streaming Wars)’이란 기획기사를 보도했다. 스트리밍 서비스를 앞세운 넷플릭스 디즈니 아마존 워너미디어 등 엔터테인먼트 기업들의 경쟁관계를 다뤘는데, 각 기업을 미국 드라마 ‘왕좌의 게임’에서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스타크, 라니스터 등의 가문으로 비유했다. 지난해 8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며 할리우드 싹쓸이에 나선 넷플릭스는 왕국을 삼키려는 ‘백귀(White Walkers)’로 묘사됐다. ▷스트리밍은 인터넷에서 영화나 음악 등을 다운로드 없이 실시간으로 즐기는 기술이다. 전송되는 데이터가 물이 흐르는 것처럼 처리된다고 해서 이런 이름이 붙여졌다.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이 서비스를 통해 영화나 음악을 즐기는 사람이 늘고 있는데, 넷플릭스가 대표적이다. 세계 최대의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회사인 넷플릭스의 유료 가입자는 1억5000만 명에 달한다. ▷디즈니와 애플이 넷플릭스에 도전장을 던지면서 온라인 스트리밍 시장이 춘추전국시대를 맞고 있다. 다음 달 애플이 ‘애플TV+’를 출시하면서 가격을 월 4.99달러 수준으로 책정하자 디즈니도 당초 월 6.99달러였던 ‘디즈니+’의 요금을 월 4.72달러로 대폭 할인한 것. 가장 낮은 넷플릭스 베이직 요금(월 8.99달러)의 절반 정도다. 내년에는 워너미디어의 ‘HBO맥스’와 NBC유니버설의 ‘피콕’도 스트리밍 시장에 뛰어든다. ▷스트리밍 전쟁은 ‘죽기 아니면 살기’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오랜 기간 각 기업들이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고, 인수합병을 통해 작품과 지식재산권을 확보해 왔는데 이제는 가입자 확보를 위한 출혈 경쟁으로 넘어간 것이다. 좋은 콘텐츠만 갖고 있다면 경쟁자 모두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전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벌어지는 저가 출혈공세를 보면 시장 지배자가 되지 못하면 죽는다고 보는 쪽이 더 많은 것 같다. ▷미국의 장난감 회사 ‘토이저러스’는 ‘가장 저렴한 곳’이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해 가장 인기 있는 장난감을 공급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팔기도 했다. 그 덕분에 한때 세계 최대의 완구 유통업체로 등극했지만, 이후 아마존 월마트 등 자금력이 더 큰 경쟁자가 나오면서 내리막을 걸었고 2017년 파산 신청을 했다. 전문가들은 스트리밍 시장의 출혈 경쟁이 거의 원가에 근접하는 수준까지 내려갈 것으로 보고 있다. 즐겁게 보고 있는 저 영화 뒤에서 불꽃 튀는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 2019-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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