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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0년 중국 남부에서 페스트가 발생했다. 이 페스트는 윈난성에서 홍콩으로, 인도 뭄바이로 퍼져나갔으며, 1907년경까지 모든 대륙으로 확산했다. 이전의 유행이 주로 유라시아와 북아프리카에 국한됐던 것과는 달랐다. 그 배경에는 긴밀하게 연결된 세계 경제, 항해기술의 발전과 상품 수송시간의 단축 등이 있었다. 이후 오늘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유행으로 생긴 일들과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각국 정부는 페스트 발병지에서 출항한 선박을 항구에서 격리했고, 사람들의 입국을 막았다. 포르투갈 정부는 아예 해상무역을 중단시켰다. 1897년 베네치아 국제위생회의에서는 어느 선에서 상품 수입을 금지하고 출항을 규제할지를 둘러싼 국제적 합의가 이뤄지기도 했다. 의학사를 연구하는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가 풍부한 사례를 통해 전염병과 세계 무역, 방역의 관계를 조명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걸그룹 트와이스의 신곡 ‘모어 앤드 모어(MORE & MORE)’ 뮤직비디오 장면에 등장하는 세트가 해외 설치미술가의 작품과 매우 흡사해 원작자가 표절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트와이스는 1일 미니 9집 ‘모어 앤드 모어’를 발표했고 동명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에는 호수 위에 설치된 알록달록한 아치 모양 구조물 앞에서 멤버들이 군무를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구조물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인 데이비스 매카티의 작품 ‘펄스 포털’(Pulse Portal)과 매우 닮았다. 이 작가는 2018년경부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국 볼티모어와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등 도시에서 열린 전시회와 축제 현장에 이 작품을 설치한 사진을 올렸다. 작가는 최근 SNS에 “트와이스가 내 조형물을 표절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이는 예술에 대한 노골적인 저작권 침해”라고 글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트와이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3일 공식 입장을 통해 “‘모어 앤드 모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세트가 기존 특정 작품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오늘 오전에 알았다”고 밝혔다. 이어 “뮤직비디오 제작사에 원작자와 대화를 통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검증 시스템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봉오동전투 100주년을 맞아 관련 전시가 잇달아 열린다. 이북5도위원회(위원장 이명우)는 봉오동전투 승전 10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 사진기획전 ‘대한독립! 그날을 위한 봉오동전투’를 4∼16일 서울 종로구 이북5도청에서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당시 전장(戰場)의 오늘날 사진과 작전상황도 등을 통해 전투의 의미와 홍범도 장군의 생애를 조명한다. 전투의 시발점인 두만강 변 강양동 초소 원경, 전투가 벌어진 삼둔자 봉오동 전경 등이 전시된다. 봉오동전투에서 패배한 일본군이 북간도 한인 3700여 명을 학살한 간도참변 역시 관련 사진을 통해 고발한다. 간도참변을 저지른 나남19사단과 예하 보병 제75연대의 병영 및 훈련 모습, 독립군 학살 장면 사진 등이 공개될 예정이다. 전시에서는 항일운동 기지였던 북간도 명동촌의 건설과 민족교육 장면 사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1920년 ‘대한민력’ 복제본 등도 볼 수 있다. 전시 자료는 명동촌을 개척한 규암 김약연 선생(1868∼1942)의 증손자 김재홍 함북도지사가 수집했다. 독립기념관도 ‘홍범도 일지 필사본’을 비롯해 독립군이 남긴 수기와 회고를 선보이는 특별전시를 4일부터 10월 25일까지 충남 천안시 독립기념관 특별기획전시실에서 연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물품의 가격 액수는 결코 소액이 아닙니다. 가령 소액이라 하더라도 해당 물품은 아군의 정신이고 또한 우리 민족의 심혈입니다.” 독립운동 단체 대한국민회 회장 대리 서상용(1873∼1961)이 1920년 중국군이 압수한 독립군의 군수품을 돌려받기 위해 작성한 문서 중 일부다. 압수품은 재봉기계와 총기용 기름, 군복, 약품 등이었다. 서상용은 이 글에서 “절대 타국 군인이나 민족에 위탁할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4일로 봉오동 전투가 시작된 지 100주년을 맞는다. 독립군이 대승을 거둔 건 1920년 6월 7일이지만 전투의 시작은 사흘 전인 6월 4일 홍범도(1868∼1943) 최진동(1882∼1945) 부대의 함북 종성군 일본군 헌병 초소 습격이다. 봉오동·청산리 전투의 전개에 관해서는 연구가 적지 않지만 막상 승리의 바탕이 된 독립군의 무기와 보급 연구는 아직 부족한 편이다. 박환 수원대 교수는 최근 발간한 ‘독립군과 무기’(선인)에서 독립군 무장 현황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봤다. 책에 따르면 만주의 독립운동 단체들은 무장투쟁 노선으로 전환한 뒤 1920년 말까지 무장에 심혈을 기울였다.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북로독군부만 해도 당시 소총 900여 정과 폭탄 100여 개, 권총 약 200정, 기관총 2문 등을 갖추고 있었다. 탄환도 총 1정에 150발씩 있었다. 이 같은 무장은 간도 동포들의 피와 땀에서 비롯됐다. 1920년 7월 서상용의 보고를 보면 당시 장총 한 정은 탄환 100발 등을 포함해 35원이었다. 이는 그 시절 간도 노동자 한 명의 한 해 노임(30∼45원)과 맞먹는다. 한인들은 금비녀부터 요강까지 독립군을 위해 군자금으로 내놨다. 청산리 전투 당시 사용한 무기가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철수하던 체코군단으로부터 구입한 것이라는 건 널리 알려져 있다. 책에 따르면 당시 체코의 골동품 시장에는 무기대금으로 받은 한국인의 금반지, 비단 보자기 등이 흘러나왔고, 놋요강도 끼어 있었다고 한다. 북간도의 철혈광복단은 용정에서 일경을 습격해 15만 원을 빼앗아 군자금으로 쓰기도 했다. 한인들은 전투요원은 아니더라도 무기 운반대원으로 나섰다. 독립군의 무기는 중국과 러시아 국경지대 한인들이 육로와 해로로 반입했다. 어깨에 직접 메고 나르거나, 밀송선 수레 말 우마차를 동원했다. 대한군정서에 관한 일본 측 보고는 1920년 무기 운반대원이 “노령 방면에서 약 1500명의 운반대를 모집함으로써 불일간 병기와 함께 도착하게 됐다”고 적었다. 북로군정서 분대장이었던 이우석 역시 200여 명의 운반대원이 장총과 탄환 ‘200짐’을 운반했다고 생전 구술했다. 전투요원의 생활도 열악한 것은 마찬가지였다. 대한국민회의 군사 훈련에 대한 일본 측 보고는 “식사는 가장 조악한 조밥에 부식물로는 한인이 먹는 야생초, 파를 넣은 된장국뿐”이라고 했다. 어렵게 확보한 독립군의 무기는 러시아를 중심으로 독일 벨기에 미국 프랑스 영국 제품이었고, 일본군과의 전투에서 노획한 것도 있었다. 박 교수는 “독립군은 동포들의 자발적 희생으로 만든 상당한 수준의 무장을 갖고 있어 승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북 경주시 남산 약수곡 석조여래좌상절터에서 통일신라시대 석불좌상에서 떨어져 나온 것으로 보이는 불상의 머리(불두·佛頭)가 발굴됐다. 문화재청은 “경주시가 일제강점기 석조여래좌상의 원위치를 확인하는 과정에서 좌상의 머리로 추정되는 불두를 발견했다”고 3일 밝혔다. 조사 당시 석조여래좌상은 원래 자리에서 옮겨져 있었고, 그 옆에 불상 대좌(불상을 놓는 대)의 중대석과 상대석이 불안정한 상태로 노출돼 있었다고 한다. 하대석도 원래 위치에서 움직여 큰 바위 아래에 놓여 있었다. 이 바위 옆(서쪽)에서 머리는 땅속을 향하고 얼굴은 서쪽을 바라보는 상태로 발견됐으며 얼굴 오른쪽과 귀 일부에서 금박이 관찰됐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머리가 유실됐던 석조여래좌상은 통일신라 후기 작품으로, 경주 석굴암 본존불상처럼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왼 손바닥은 펴서 위로 향하게 단전에 올리고 오른손은 펴서 무릎 아래 땅을 가리키는 모습의 인상)을 하고 있다. 통일신라 석불좌상의 대좌는 상당수가 팔각형인 데 비해 이 불상의 대좌는 네모다. 경주 이거사지 출토품으로 알려진 청와대 대통령 관저 뒤편 녹지원의 경주 방형대좌 석조여래좌상(보물)과 형식이 같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걸그룹 트와이스의 신곡 ‘모어 앤드 모어’(MORE & MORE) 뮤직비디오 장면에 등장하는 세트가 해외 설치 미술가의 작품과 매우 흡사해 원작자가 표절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트와이스는 1일 미니 9집 ‘모어 앤드 모어’를 발표했고, 동명 타이틀곡의 뮤직비디오에는 호수 위에 설치된 알록달록한 아치 모양 구조물 앞에서 멤버들이 군무를 추면서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구조물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설치미술가인 데이비스 맥카티(Davis McCarty)의 작품 ‘펄스 포털’(Pulse Portal)과 매우 닮아 있다. 이 작가는 2018년경부터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국 볼티모어와 라스베이거스, 시애틀 등 도시에서 열린 전시회와 축제 현장에 이 작품을 설치한 사진을 올렸다. 작가는 최근 SNS에 “트와이스가 내 조형물을 표절해 뮤직비디오를 만들었다. 이는 예술에 대한 노골적인 저작권 침해”라고 글을 올린 것으로 전해졌다. 트와이스 소속사 JYP엔터테인먼트는 3일 공식 입장을 통해 “‘모어 앤드 모어’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세트가 기존 특정 작품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오늘 오전 알았다”고 밝혔다. 이어 “뮤직비디오 제작사에 원작자와 대화를 통해 문제가 원만히 해결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청했다”며 “앞으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검증 시스템을 보완할 예정”이라고 밝혔다.조종엽기자 jjj@donga.com}

문화재청은 정면 9칸으로, 국내 사찰 누각으로는 가장 큰 전북 고창 선운사 만세루(萬歲樓)를 보물로 지정했다고 1일 밝혔다. 1620년 지은 만세루는 화재로 소실돼 1752년 다시 지었다. 정면 9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존하는 사찰 누각은 대체로 정면 3칸이고, 5칸이나 7칸 규모도 있지만 9칸 규모는 흔치 않다. 처음에는 중층이었지만 재건하며 단층으로 지었다고 한다. 특히 가운데 칸 높은 기둥에 있는 마룻보(대들보 위에 설치되는 마지막 보)는 한쪽 끝이 두 갈래로 갈라진 나무를 그대로 사용해 활기 넘치는 인상을 준다. 문화재청은 “만세루는 조선 후기 불교 사원의 누각 건물이 시대 흐름과 기능에 맞춰 구조를 적절하게 변용한 사례이며, 자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만들어낸 독창적인 건축물”이라고 설명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이제 ‘86세대’가 민주화의 ‘성직’을 내려놓게 하자.” 진보 성향의 계간지 ‘문화/과학’이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사태 등을 계기로 ‘86세대’를 비판적으로 다룬 특집을 올 여름호(102호)에 냈다. 김현준 서교인문사회연구실 연구원은 특집에 기고한 ‘86세대 지식인의 계급투쟁: 대리 정치와 표상의 독점’에서 최근 ‘조국 수호’에 나선 이 세대 일부 지식인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김 연구원은 “‘조국 사태’로 드러난 건 민주 진영을 공격하기 위한 반민주 진영의 음모 따위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구조적 불평등이었다”며 “그럼에도 일부 86세대 지식인은 불평등과 공정성의 문제가 촉발한 조국 비판을 ‘반민주’로 매도했다”고 지적했다. ‘86세대’의 엘리트들은 사실상 지배계급 내 편입을 시도하는 ‘상승 지향’ 세대라는 것이 김 연구원의 견해다. 그는 글에서 “이 세대가 스스로를 ‘민주화의 상징’ ‘도덕의 대변자’로 여기면서 민중을 대리한다는 자기 기만에 빠진 것은 아닌가”라고 물었다. 강정석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사무국장은 ‘계급 유지 전략으로서의 교육의 문제: 불평등의 구조화와 86세대’에서 “조 전 장관과 가족을 둘러싼 입시 비리 의혹은 한국 교육이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해 버린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며 “소위 ‘86세대’는 자신들이 얻은 경제적 사회적 자원을 자녀 세대에 안정적으로 세습하는 방법으로 공정치 않은 교육제도를 활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성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86세대를 동질적 집단으로 규정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보고 권력과 부, 정보를 배타적으로 소유한 ‘파워 엘리트 86세대’에 비판의 초점을 맞췄다. 김 교수는 기고문 ‘파워 엘리트 86세대의 시민 되기와 촛불민심의 유예’에서 “파워 엘리트 86세대는 IMF 외환위기로 인한 정리해고를 비켜갔고 노동유연화 정책의 집행자로 참여했을 뿐 아니라 부동산으로 부를 축적하는 등 시류에 부합해 한국 사회의 상층으로 진입했다”며 “그럼에도 삶의 궤적을 ‘민주주의’로 정당화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또 “청년 세대의 좌절은 촛불 민심을 근거로 헤게모니를 잡은 86세대가 스스로 청산 대상이 됐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비판했다. 이 밖에도 이번 특집에서는 ‘86세대의 문화 권력과 그 양가성에 대하여’(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대학 고용구조의 양극화와 86세대’(박치현 성균관대 강사), ‘86세대와 여성’(박혜경 인하대 사회복지학과 초빙교수)의 글이 실렸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6세기 북미의 화산 폭발이 고구려에 기근을 일으키고 국제정세를 바꿨을까? 기후가 우리 역사에 미친 영향을 조명하는 학술대회가 열렸다. 한국역사연구회와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은 학술회의 ‘인류세와 생태환경사: 한국 기후사의 모색’을 5월 30일 서울 중구 대우재단빌딩에서 개최했다. 한국사에서 환경의 영향에 관한 연구는 고대로 올라갈수록 자료 부족 등으로 인해 별 진척이 없었다. 학술회의 발표문 “한국사에서 ‘536년 화산’의 이해와 적용”(서민수 건국대 사학과 박사 수료)은 6세기 이상기후가 만든 재앙을 다룬 영국의 저자 데이비드 키스 등 해외 연구를 소개한 뒤 한국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추적했다. 발표문에 따르면 536년경 유럽과 중동 일대에서 햇빛이 약해졌다는 기록이 있고, 북반구 각지의 나무 나이테는 이 시기 기온 하강을 보여준다. 계절풍의 약화로 건조한 날씨가 지속됐다. 중국에는 이 시기 여름철에 눈과 서리가 내렸다는 기록이 있고, 541년 신라에는 3월(음력)에 눈이 한 척(尺)이나 왔다. 중국 북조와 고구려에서 서리와 가뭄, 기근, 혹한, 병충해가 일었다. 한랭 건조한 기후는 550년경까지 이어졌고, 농업생산량은 감소했다. 삼국사기 고구려본기에는 536년 기근으로 인한 진휼(賑恤·곤궁한 백성을 구제함)과 왕의 순무(巡撫·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백성을 위로함)가 기록돼 있다. 536, 549, 550년에는 사람이 사람을 잡아먹는 참상이 벌어졌다고 한다. 이상기후는 535, 536년경 북반구에서 화산이 대규모로 분화했기 때문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범인’은 북미나 아이슬란드, 일본 등지의 화산 가운데 하나일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발표문은 “‘536년 화산 분화’는 중국과 한반도 일대에 갑작스러운 기후의 한랭건조화를 초래했고 만성적 기근이 광범위한 인구 이동을 유발했을 뿐 아니라 북방 유목민의 이합집산을 가속화했다”며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 재편을 촉발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이날 학술회의에서 김미성 KAIST 인문사회과학연구소 연구원은 조선 현종, 숙종 시기 이상기후로 발생한 대규모 유민(流民)이 서울에 몰려 조선 후기 상업 발전에 영향을 줬을 가능성도 있다고 밝혔다. 이 밖에도 ‘1939년 조선 대가뭄의 양상과 그 여파’(고태우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동해 명태 회유로의 이동과 남북한 냉전’(조수룡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이 발표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경북 경주 신라 고분에서 43년 만에 금동(金銅) 신발이 새로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銀板), 각종 말갖춤(마구·馬具)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신라 금동 신발은 실생활에서 쓰던 것이 아니라 장사를 치르기 위해 의례용으로 만든 것이다. 경주 신라 고분에서 이 같은 신발이 출토된 것은 1977년 경주 인왕동 고분군에서 나온 이후 처음이다. 한 쌍인 금동 신발은 매장된 시신의 발치에서 발견됐다. 표면에는 ‘T’자 모양의 무늬가 뚫려 있고, 둥근 금동 달개(영락·瓔珞)가 달려 있다. 신발은 27일 현재 완전히 파낸 것은 아니어서 계속 발굴 중이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금동 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다. 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금동 신발이 나왔다는 건 무덤에 묻힌 사람이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시신의 다리 부분에선 허리띠 장식에 쓰인 은판이 드러났고, 머리 부분에서는 여러 점의 금동 달개가 확인됐다. 이 달개는 머리에 쓰는 관(冠)이나 관 꾸미개(관식·冠飾)일 가능성이 있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부장품으로는 금동 말안장(안교·鞍橋)과 금동 말띠꾸미개(운주·雲珠) 등이 출토됐다. 황남동 120호분은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고분 번호가 부여됐지만 민가가 들어서면서 훼손돼 고분의 존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길이 하나 막혔다고 끝은 아니다.” 간송미술관 측이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27일 케이옥션 경매에 내놓은 보물 불상 2점이 유찰되면서 간송 측의 향후 행보에 문화재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유찰 소식을 접한 뒤 본보와의 통화에서 “기왕 하기로 한 이상 (경매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경매 결과와 관계없이 간송미술관은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기조를 살려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간송가(家)가 내놓은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의 경매 시작가는 각각 15억 원으로 경매사가 호가를 불렀음에도 응찰에 나선 이가 없었다.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전형필 선생의 후손으로서 문화재를 매각한다는 부담을 감수하고 매각에 나선 간송 측으로서는 상처가 작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 역시 전날 본보에 밝힌 대로 이날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27일 “국립중앙박물관이 민간 후원회와 함께 구입하는 쪽으로 케이옥션과 상의하고 있다”고 밝힌 배 관장의 인터뷰가 한 언론에 나가면서 경매 유찰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원래도 ‘간송 컬렉션은 국공립기관이 소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던 차에 관장의 발언이 사립미술관이나 개인 수집가의 응찰을 더욱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의도야 어쨌건 국립중앙박물관의 처신이 적절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은 구입을 위한 물밑 협상을 거의 벌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단 ‘시간을 벌었다’는 분위기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경매를 이틀가량 앞두고 케이옥션에 ‘경매 중지’가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그대로 진행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날 불상의 경매 시작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문화재 관계자는 “당대 문화재 가운데 유일한 작품이었으면 경매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했지만 다른 전문가는 “경매 시작가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고 했다. 이번 경매한 주관한 케이옥션 역시 매각을 성사시키지는 못했다는 측면에서 타격이 없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간송 측이 앞으로는 ‘조용히’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최근 고미술 시장에서 거액의 거래가 침체됐기에 간송 측이 경매 방식을 택했지만 ‘리트머스시험지’ 성격의 이번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간송 컬렉션’에 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는 “아무리 사유물이라 해도 간송 컬렉션 가운데 중요 문화재의 구입은 국공립기관이 예산 탓을 하며 너무 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간송미술관이 사립이지만 공공성의 역사를 가진 이상 간송 측도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사회도 지원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길이 하나 막혔다고 끝은 아니다.” 간송미술관 측이 재정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27일 케이옥션 경매에 내놓은 보물 불상 2점이 유찰되면서 간송 측의 향후 행보에 문화재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유찰 소식을 접한 뒤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기왕 (경매에 내놓는) 방향으로 가기로 한 이상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경매 결과와 관계없이 간송미술관은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기조대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간송가(家)가 내놓은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의 경매 시작가는 각각 15억 원으로 경매사가 호가를 불렀음에도 응찰에 나선 이가 없었다.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전형필 선생의 후손으로서 문화재를 매각한다는 부담을 감수하고 매각에 나선 간송 측으로서는 상처가 작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번 유찰은 ‘간송 콜렉션은 국공립기관이 소장해야 한다’는 여론에 사립미술관이나 개인 수집가들이 응찰을 주저했던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간송 측으로서는 경매를 통해 깔끔하게 작품을 매각하고자 했을 텐데, 국립중앙박물관이 협의를 통해 구매하고 싶다는 의향을 경매에 임박해 공개적으로 밝혔기에 사립미술관이나 개인들로서는 응찰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간송 측이 경매 출품 전 박물관과 협의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경매를 이틀 가량 앞두고 케이옥션에 ‘경매 중지’가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그냥 진행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박물관으로서도 구입 의향이나 방식을 정하기에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간송 측과 적극 협의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경매 시작가(15억 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당대 문화재 가운데 유일한 작품이었으면 경매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했지만 다른 관계자는 “경매 시작가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고 했다. 케이옥션 역시 이번 경매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 됐음에도 매각을 성사시키지는 못했다는 측면에서 이미지에 타격이 없지 않다는 평가다. 경매 사실이 공개됐음에도 매각에는 성공하지 못한 간송 측이 이제는 ‘조용히’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최근 고미술 시장에서 거액의 거래가 침체된 상황에서 간송 측이 경매 방식을 택했을 것으로 본다”면서 “‘리트머스 시험지’ 성격의 이번 경매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간송 콜렉션’에 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는 “이번 불상 매각 시도를 통해 앞으로의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아무리 사유물이라 해도 간송 컬렉션 가운데 중요 문화재의 구입은 국공립기관이 예산 탓을 하며 너무 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참 만남, 참 문화유산(Feel the REAL KOREAN HERITAGE).’ 문화재청이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방문을 촉진하기 위해 26일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을 시작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선포식을 열고 “문화유산과 사람 간 거리를 좁히고, 문화유산을 국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캠페인은 국내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을 2, 3일 자유 여정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유산 방문 코스 7선(選)을 제안했다. ‘한국 문화유산의 길’로 명명한 방문 코스는 △경주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천년 정신의 길’ △공주와 부여, 익산을 둘러보는 ‘백제 고도의 길’ △우리 옛소리를 주제로 전북과 전남 지역을 둘러보는 ‘소릿길’ △제주도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설화와 자연의 길’ △서울과 인천, 경기의 궁과 산성을 둘러보는 ‘왕가의 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과 산사를 각각 묶은 서원의 길, 수행의 길 등이다. 문화재청은 교통편과 주변 명소 및 숙박 등 관광정보를 담은 ‘문화유산 방문 지도·가이드북’을 제작해 전국 관광안내소 및 온라인에서 제공한다. 세계유산축전을 비롯한 여러 특별 행사도 벌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알리는 축제 ‘세계유산축전’은 ‘한국의 서원’ 등을 주제로 경북과 제주 등에서 올 7∼9월 펼쳐진다. 7월에는 수원 화성을 무대로 케이팝 공연과 한복 패션쇼 등이 펼쳐지는 축제 ‘코리아 온 스테이지(KOREA on Stage)’가 열릴 예정이다. 5대 궁(경복 창덕 창경 덕수 경희)을 주제로 한 ‘궁중문화축전’은 10월 10∼18일 열린다. 기존 문화유산 전시와 공연도 캠페인에 연계해 운영한다.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전시·공연, 충남 공주를 비롯해 전국 36개 문화유산에서 한밤에 즐길 수 있는 ‘문화재 야행’, 전국 주요 박물관 특별 전시, 문화재 발굴·수리 현장 공개, 조선왕릉문화제 등이 준비돼 있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 생기고, 한류 확산으로 문화의 사회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는 시대 흐름에 따라 방문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우리 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휴식과 관광, 치유의 공간으로서 문화유산의 매력을 알리게 될 것”이라며 “문화유산은 대다수가 실외에 있어 ‘생활 속 거리 두기’를 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관광혁신을 이끌 사업으로 선정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선포식에서 “우리나라는 전국이 ‘지붕 없는 박물관’과 다름없을 정도로 문화유산 강국”이라며 “캠페인이 내수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간송미술관이 27일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하는 금동여래입상(보물 284호)과 금동보살입상(보물 285호)의 새 주인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공식적으론 응찰 여부를 아직 결정 안 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26일 통화에서 “(예상 가격) 범위가 만만치가 않아 박물관이 경매에서 (낙찰 경쟁에) 따라갈 예산상 능력이 안 된다”며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경매에 참여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두 불상은 경매 시작가가 각각 15억 원(변동 가능)이 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구입 비용은 연간 약 4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문화재청이 필요 시 구매 예산 지원이 가능한지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래도 낙찰을 받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 더구나 성격상 중복되는 유물이 이미 박물관에 없지 않고, 향후 간송가(家)에서 소장 문화재 가운데 국보인 불상과 불감 역시 매물로 내놓을 가능성이 있어 박물관 측의 고민은 더욱 깊다. 이 관계자는 “국립박물관의 임무를 다하고 싶지만 능력이 모자라 너무나 안타깝다”며 “힘을 다해 유물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지만 파는 쪽(간송미술관)에서도 유물이 공공적 성격을 띤 기관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전향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간송 컬렉션’이 일부라도 흩어지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정문화재가 시장에 나올 때마다 국가가 구입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물론 국가기관에 들어가는 게 전시나 보존 면에서 가장 좋기는 하겠지만, 사유물의 거래에 나라가 일일이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고, 간송 컬렉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불상의 낙찰가도 주목된다. 지금까지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보물은 청량산괘불탱으로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2000만 원에 개인에게 낙찰됐다. 2012년에는 서화첩인 ‘퇴우이선생진적첩’이 34억 원에 낙찰됐다. 이번 경매에 나오는 두 불상은 모두 청동에 도금해 제작됐다. 금동여래입상은 높이 37.6cm의 7세기 중반 불상이다. 눈은 감고 입을 오므리면서 꾸밈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옷 주름은 가지런하면서도 오른쪽 어깨의 옷이 흘러내릴 듯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금동보살입상은 6세기 말∼7세기 초 불상으로 경남 거창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진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긴 편이다. 얼굴은 가늘게 찢어진 눈과 앞으로 내민 입술,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어울려 토속적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두 불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금동보살입상의 출토지가 신라의 영역인 경남 거창인데 백제 양식이 섞인 점을 두고 진위를 검토하는 게 먼저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학계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불교미술사 전문가인 최응천 동국대 교수(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는 “필요하다면 조사할 수 있겠지만 간송의 소장품들은 당대 쟁쟁한 분들의 검증을 거친 것이고, 출토지가 명확한 게 아닌 이상 백제 양식이 보인다 해도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금만큼 시대별, 나라별 불상 양식이 파악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이 정도의 위작을 만들 수준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37년 소련이 연해주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킬 당시 한인들을 ‘잠재적 위험분자’로 보고 신분증명서와 소지한 무기를 열차 탑승 전 회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웅호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는 23일 경기문화재단과 인천문화재단, 한국역사연구회가 연 심포지엄 ‘역사 속의 디아스포라와 경계인’에서 이같이 밝혔다. 홍 교수는 발표문 ‘1937년 연해주 한인 강제이주 결정과 그 진행’에서 러시아문서보관소 자료를 통해 이주 과정을 살폈다. 당시 불과 4개월 동안 한인 17만 명 이상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됐다. 발표문에 따르면 당시 소련 극동변강위원회는 “공산당원과 콤소몰(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 맹원들을 등록명부에서 삭제하고, 탈퇴서를 교부한다”고 지시했다. 홍 교수는 “이는 그동안 유지되던 신분이 무효라는 뜻”이라며 “한인 사회에 일본 정보원이 침투했다는 걸 전제로 한인을 배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한인들은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1956년 신분증이 다시 발급된 뒤에야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강제이주 결정에 한인은 물론 러시아인도 저항했다. 김평하라는 인물은 무기 회수에 거부했고, 리진화라는 인물은 “소비에트 정권이 한인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추방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구속됐다. 한 러시아인 관료는 회의 중 당원증을 책상에 던지면서 “(이주 결정은) 헌법을 완전히 위반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나머지 모든 사람을 추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체포됐다. 엄청난 혼란의 와중에도 한인들은 이주를 앞두고 조상의 유골을 챙기기도 했다. 당시 조사보고서는 1937년 9월 한인들이 묘지 7곳을 파헤치고 망자 일부의 유해를 꺼내갔다며 한인들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할 경우 망자의 뼈까지도 가져가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겨레신문은 지난해 10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의 별장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한 데 대해 “부정확한 보도였다”며 22일자 1, 2면에 걸쳐 사과문을 냈다. 한겨레신문은 사과문에서 “당시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조사보고서에) 윤 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윤중천의 별장에 들러 접대를 받았다는 윤 씨의 진술이 나왔으나 추가 조사 없이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며 “하지만 ‘수차례’ ‘접대’ 등 보고서에 없는 단어를 기사에 사용하고, 1면 머리기사 등에 비중 있게 보도함으로써 윤 총장이 별장에서 여러 차례 접대를 받았는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이어 “보도된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윤 총장의 별장 접대 의혹에 대해 증거나 증언에 토대를 둔 후속 보도를 하지 못했다”면서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한 점에 대해 독자와 윤 총장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799년 12월 중순 어느 날 심한 후두염에 걸린 조지 워싱턴 전 미국 대통령은 수은 화합물을 투여하고 몸의 피를 빼내는 등의 치료를 받았지만 이틀 뒤 숨졌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급성 후두개염으로 사망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감염과 싸우는 인류의 운명을 바꾼 것은 20세기에 발명된 항생제다. 이 책은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술파닐아미드)가 만들어진 과정을 다뤘다. 최초의 항생제는 곰팡이에서 얻은 페니실린 아니었나? 실험실의 합성 화학물질도 항생제에 포함한다는 정의를 따르면 설파제가 처음이다. 책의 ‘주인공’은 훗날 노벨상을 받은 독일 의사이자 생화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1895∼1964). 꼼꼼하고 집요한 그는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에서 동료들과 함께 설파제를 발명했다. 영국에서 대규모 시험으로 효능을 인정받고,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작용 기전을 밝히는 등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담겼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강점기 막대한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수집하고 해외 유출을 막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후손이 재정 압박으로 소장한 불교 문화재를 매각하기로 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1일 “2013년 재단 설립 이후 대중적인 전시와 문화 사업들을 병행하며 많은 비용이 발생해 재정 압박이 커졌다”며 “불교 관련 유물을 매각하고 서화와 도자, 전적이라는 중심축에 집중하려 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소장품을 매각할 수밖에 없게 돼 송구스럽다”고 덧붙였다. 간송가(家)는 소장품 가운데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을 27일 케이옥션을 통해 경매에 부친다. 두 불상의 경매 시작가는 각각 15억 원. 또 다른 소장품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과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이 향후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재정 압박은 간송의 차남인 전성우 전 재단이사장이 2018년 작고한 뒤 더 커졌다. 재단은 “전성우 전 이사장이 소천하신 뒤 추가로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전 전 이사장의 유족은 국보와 보물 등 지정문화재를 상속받았다. 간송미술관이 관리하는 지정문화재는 국보(12건), 보물(32건), 서울시유형문화재(4건)를 비롯해 모두 48건. 지정문화재의 상속은 법에 따라 비과세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 경매에 나오는 두 불상 역시 유족 소유다. 나머지 비지정문화재는 거의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기부됐다. 전 전 이사장의 아들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49)은 지난해 말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단이 문화재를 기부받은 데 대한 지방세를 내야 한다. 세율이 비교적 높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 그간 정리를 못 하고 있었는데 부친 별세를 계기로 재단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은 최근까지 나라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 재원으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향후 간송미술관의 현대식 수장고(가칭 ‘훈민정음 수장고’) 신축에 들어가는 사업비 44억여 원 전액이 국비와 지방비로 충당될 예정이고, 간송미술관으로 쓰이는 보화각 건물의 원형 복원도 지원된다. 전 관장은 21일 전화 통화에서 “(유물 매각 동기에 관한) 여러 억측이 나왔는데, (매각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문화재는 해외 반출이 제한되지만 내국인에게는 문화재의 소재지가 확실하다면 지정문화재도 매매가 가능하다. 케이옥션은 2014∼2018년 지정문화재 경매가 28건 이뤄졌다고 밝혔다. 문화재계에서는 ‘간송 컬렉션’이 흩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만약 국공립박물관이 아니라 개인의 수장고에 들어가면 국민이 향유할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풍속화라면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의 걸작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주제의 다양성과 작품의 양으로 보면 19세기 말∼20세기 초 인천 부산 원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기산 김준근(?∼?)이 그들을 뛰어넘는다. 김준근은 베 짜는 아낙네부터 탈춤패 모습까지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를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민속의 전 분야를 그렸다. 단오에 씨름하고 그네 타며, 매사냥을 하고, 쟁기로 밭을 갈고, 손수 두부를 만들고, 가마 타고 시집장가가고, 상여를 메던 120여 년 전 한국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심지어 관아에서 시신을 부검하는 모습도, 지금은 사라진 판수(判數·점을 치거나 독경하던 시각장애인)의 모습도 그의 그림에 담겨 있다. 기산이 그린 풍속화의 구매자는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이었다. 여행가, 외교관, 상사 주재원, 선교사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풍속을 종이에 담아 고국으로 가져갔다. 오늘날 여행지 사진이 담긴 엽서를 사오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을 터다. 정형호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은 “개항기 외국인이 남긴 조선 방문기와 사진이 그들의 시각에서 단편적으로 기록하고 촬영한 것임에 비해, 기산의 그림은 19세기 후반 다양한 계층의 삶을 총체적으로 옮겨놓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근의 그림 약 1500점 가운데 국내에 있는 것은 약 300점뿐이고 거의 해외(유럽 878점, 북미 138점 등)에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구)은 독일 MARKK(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서 대여한 기산 풍속화 71점 등을 선보이는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를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개최한다. 이 그림들은 1894년 함부르크에서 전시된 이후 12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외의 기산 풍속화가 이처럼 대규모로 국내에 온 건 처음이라고 박물관은 밝혔다. 지난해 박물관이 국내에서 경매로 수집한 28점도 볼 수 있다.▼ 구한말 조선의 팝아티스트… ‘천로역정’ 삽화도 그려 ▼‘저잣거리의 화가’ 기산 김준근 1890년대 이미 서양에서 작품이 정식으로 전시된 한국인 화가라 할 수 있는 김준근은 생몰연도를 비롯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주로 활동한 시기는 1880, 90년대다. 등장인물을 조선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천로역정’ 번역본(1895년 간행)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독일 출신 외교관 묄렌도르프(1848∼1901), 미국 해군 제독이자 외교관인 슈펠트(1822∼1895)의 딸,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루이 바라(1842∼1893), 제물포에 세창양행을 설립했던 독일인 마이어(1841∼1926) 등이 그의 작품을 다수 구입한 이들이다. 이들의 구입 관련 기록에서 김준근의 활동지가 개항장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마이어는 1894년 독일 함부르크민속공예박물관에서 자신이 소장한 기산 풍속화를 전시하기도 했다. 김준근은 ‘저잣거리의 화가’였다. 예술작품이 아니라 상품으로서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100개가 넘는 소재를 반복해 그렸고, ‘공장’과 비슷한 화실을 차려 그림을 대량 생산하고 자신의 인장을 찍어 팔았을지도 모른다. 이경효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김준근은 한류의 원조이자 앤디 워홀 같은 팝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민속학, 민족학 연구 차원에서 활용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초의 한국인 신부(神父)인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유해 일부를 20세기 초 독일로 담아갈 때 사용된 주머니(사진)가 확인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은 “김 신부의 흉골(胸骨)이 안치된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선교박물관에 김 신부의 성해(聖骸)주머니와 유해증명서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유해증명서는 상트 오틸리엔 선교베네딕도회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돼 원산 감목(監牧)구장을 지낸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1877∼1950)가 1920년 작성한 것으로 김 신부와 프랑스인 선교사 3명의 유해임을 증명하는 문서다. 재단은 이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를 2016, 17년 전수 조사해 1021건(1825점)을 확인하고 최근 도록으로 발간했다. 2021년 탄생 200주년을 맞는 김대건 신부는 순교 이후 경기 안성시 현 미리내 성지에 유해가 안장됐는데 일부 뼛조각은 성유물(聖遺物)로 세계에 흩어져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