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조금만 이상해 보여도 온갖 괴담이 난무하는 원자력발전소 공포. 최근에는 경주 월성원전 부지에서 배출기준을 무려 18배(71만3000베크렐/L)나 초과한 삼중수소가 검출됐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또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여당 대표까지 문제를 제기한 삼중수소 검출 논란은 얼마나 사실에 부합한 걸까. 최성민 KAIST 원자력 및 양자공학과 교수는 “최소한의 과학적 사실조차 무시한 어처구니없는 억지 주장”이라고 말했다.―원자력발전소에서 나오는 삼중수소라고 하니까 뭔가 엄청나게 무시무시한 물질 같은 생각이 드는데.“사실 야단법석을 떨만한 물질이 아닌데… 삼중수소는 자연계에도 있고 인공적으로도 만들어진다. 옷은 물론이고 피부도 통과하지 못할 정도로 약한 방사선을 낸다. 방사성 물질 중에서도 가장 순한 놈이다. 야광시계의 숫자나 시침, 분침이 빛을 내는 원리가 삼중수소 때문이다.” (야광시계에도 삼중수소가 있다고?) “기체 상태인 삼중수소를 형광물질로 둘러싸면, 삼중수소가 붕괴하면서 나오는 베타선이 형광물질에 흡수돼 빛을 내는 원리를 이용한 것이다. 시계 한 개에 보통 삼중수소 2억~3억 베크렐(Bq)이 있다. 영화관이나 건물 복도에 붙어 있는 ‘비상구(EXIT)’ 표시도 같은 원리로 빛이 나는데 1개 당 삼중수소 9000억 Bq이 있다. 오늘 커피 마셨나?” (지금도 마시고 있지 않나.) “그 안에 자연 방사능 칼륨40이 들어있는데, 이걸 삼중수소 방사능으로 환산하면 방사능 농도가 삼중수소 1만3000Bq/L에 해당한다.”※Bq은 1초에 방사선 1개를 방출한다는 방사능 단위다. ―내가 지금 삼중수소 1만3000Bq인 것을 마시고 있다고? “콩은 칼륨이 풍부한 음식물이고 칼륨의 0.012%는 자연방사성 물질인 칼륨40이다. 커피콩도 콩이라 칼륨40이 들어있는데, 섭취했을 때 칼륨40은 삼중수소보다 방사선 피폭효과가 340배나 높다. 칼륨40 1Bq은 삼중수소 340Bq과 같은 피폭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커피가루에는 칼륨40이 1kg당 900Bq 정도 들어 있는데, 이것을 삼중수소 방사능으로 환산하면 30만 Bq/kg이다. 커피가루 20g으로 만든 진한 에스프레소 원 샷에는 삼중수소 4900Bq에 해당하는 방사능이 들어 있다. 물을 얼마나 타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커피전문점 톨 사이즈(355ml)를 가득 채우면 커피의 방사능 농도는 대략 삼중수소 1만3000Bq/L에 해당한다. 국제보건기구(WHO)의 삼중수소 음용수 기준치인 1만 Bq/L보다 30%나 높은 수치다.”―지금껏 커피를 숱하게 마셨는데 괜찮나? “커피 속의 칼륨40 방사능을 아주 순한 삼중수소 방사능으로 환산해서 숫자가 커 보일뿐이다. 건강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 자연방사능 수준이다. 지금까지 커피 마셔서 방사능 피폭으로 건강 상했다는 소리 들어본 적 없지 않은가? 그리고 방사능 기준치라는 게 실제 위험성이 나타나는 방사능보다 100분의 1~1000분의 1로 낮게 잡은 값이다. 또 커피를 안 마신다고 칼륨40이 몸에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모든 음식물에 조금씩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측정한 월성원전 주변지역 지하수의 삼중수소 농도는 8~9Bq/L다. 커피 한잔 속의 방사능 농도보다 1300배 이상 낮은 수치이다. 과연 위험한 수준의 방사능일까? 그렇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커피도 절대 마시면 안 될 것 같다.”―원전 내 지하배수관로에서 검출된 것을 배출기준과 단순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했는데. “71만3000Bq/L의 삼중수소가 일시적으로 검출된 곳은 원전 내 터빈건물 지하 배수관로에 고인 물이다. 이것을 배출기준과 비교하는 잘못을 저질렀다. 원전에서 외부로 물을 배출할 때는 희석해서 내보내고 기준은 리터(L)당 4만 Bq이다. 그리고 실제로 나가는 물 속의 삼중수소 농도는 10~20Bq/L 수준이다. 위험성을 경고하려면 외부로 배출되는 물에서 삼중수소가 얼마나 많이 나왔는지를 갖고 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이런 식이면 왜 원자로 핵연료봉 내의 방사능 수치로 발표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배수관에서는 왜 검출된 건가.) “배수관로의 공기 중에 있는 삼중수소가 축적돼 그런 것으로 보인다. 고인 물인데다 물의 양이 적다보니 농도가 높아진 것이다.”―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은 문제가 없다고 하지만 최근 탈원전 정책에 대한 정부나 한수원 행태를 보면 믿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방사능은 뻥을 칠 수가 없는 게… 원자력안전기술원이 별도로 또 측정을 한다. 민간 환경감시기구에서도 쉽게 측정할 수 있고. 매년 원자력안전기술원이 원전 주변 지역에 대한 환경방사능 조사를 하고, 그 보고서를 홈페이지에 올린다.” (현 정부 들어 다 한통속이 됐는데….) “정말 한 통속이 됐으면 거꾸로 위험하다고 하겠지…. 측정 자체가 거짓일 수는 없다.” (이해가 안가는 게 아무리 원전의 위험성을 공격하고 싶어도 외부 배출량을 갖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환경단체가 언론에 제보해 불거진 걸로 아는데 환경단체가 그 정도도 모르나?) “참 이해가 안가죠? 그런데 그런 일이 한 두 건이 아니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하수에서 방사성 물질이 검출됐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이다”고 했는데…. “누가 써줬는지 모르겠지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무책임하게 근거도 없는 말을 한 거다. 삼중수소는 자연에 없는 위험한 물질이라고 한 의원도 있으니까. 무식이 빚은 참사지.” (그렇게 무식한 의원이 누구인가?) “민주당 양이원영 의원이다. 탈원전 운동가 출신인데 그런 사람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이니…. 과학자들로서는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말들을 너무 쉽게 한다.”―아무리 과학적 설명을 해줘도 너무 어려운 분야라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렵다. 솔직히 방사능, 방사선, 방사성을 구별도 못한다. “우리 책임이 큰데… 참고로 설명을 하면 불안정한 핵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방사선이다. 방사선을 내는 성질을 방사성이라고 하고. 방사능은 방사선을 내는 능력을 말하는데 방사능이 높다고 하면 방출하는 방사선이 많다는 거다.” ―논란이 커지자 원자력안전위원회(원안위)는 진상조사단을 꾸려 조사에 나서겠다고 했다. 그런데 자신들은 행정·기술 지원만하고 조사는 민간 전문가들에게 맡기겠다고 했는데, 원안위가 그런 거 조사하라고 만든 기구 아닌가? “그러니까…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런 문제가 있을 때 책임지고 확인 검증하는 책임이 있는 곳이 원안위다. 그런데 검증을 다른 곳에 맡기다니… 그러면 원안위가 있을 필요가 뭐가 있나. 예전에도 그런 일이 종종 있었다. 어떻게 검증하고 조사해도 환경단체들이 못 믿겠다고 하도 하니까 그런 방식이 도입된 건데… 스스로 권위와 신뢰를 버린 거지. 더군다나 전문가 추천도 국내 최대 원자력 관련 단체인 원자력학회에는 요청하지 않았다.” (이유가?) “정확한 건 잘 모르겠다. 아마도 이해당사자라고 본 게 아닌가 싶다. 탈핵단체들의 비과학적인 억지 주장에 좌지우지되는 현실이 참 안타깝다.”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17세 때 도산 안창호의 설교를 듣고 뜻을 세웠다. 시인 윤동주와는 어릴 적 친구. 대학에서는 김수환 추기경과 동문수학했고, 교편(중앙고)을 잡는 동안에는 정진석 추기경을 길러냈다. 그리고 평생의 벗인 고 안병욱 교수 곁에 자신이 갈 곳을 마련해 뒀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지만 이 정도 삶이라면 살아볼 만하지 않을까. 올해 우리 나이로 102세가 된 김형석 연세대 명예교수는 “저는 살 만한데… 나라가 걱정”이라고 말했다.》 ―1920년생이신데 아주 정정하십니다. “그런가요? 건강은 괜찮은데 백 살이 넘으니 별일이 생기기는 하네요.” (별일요?) “지난해 제주도 가려고 김포공항에 갔는데 저만 발권이 안 됐어요. 컴퓨터에 제 나이가 한 살로 떴다더군요. 대한항공만 930번 이상을 탔는데… 컴퓨터가 나이는 100을 빼고 읽나 봐요. 백 살이 넘은 사람이 비행기를 타는 경우가 별로 없어서인지 항공사도 처음 겪었나 봅니다. 하하하. 5년 후에는 초등학교에 갈지도 몰라요.” (명예 교장선생님 같은 걸 하시나요?) “아니요. 3년 전인가? 제 주변에 106세 된 할머니가 계셨는데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가 왔대요. 별일이다 싶어 놔뒀더니 안 보내면 벌금 문다는 통지서가 또 왔답니다. 주민센터에 갔더니 여섯 살인데 손녀를 왜 학교에 안 보내느냐고 해 ‘그게 나’라고 했더니 놀라더래요. 몇 년 후에 저한테도 초등학교 입학하라는 통지서가 오겠지요? 다시 초등학교를 다니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네요.” ―우문(愚問)입니다만 늙는다는 건 어떤 건가요. “글쎄요… 안 늙어봐서…. 저희 때는 60세가 되면 회갑 기념 논문집을 내고, 잔치하고, 소일하다 몇 년 후에 정년퇴직하는 게 보통이었지요. 저도 예순에 같은 행사를 했는데 그 며칠 전만 해도 ‘안녕하십니까’ ‘일찍 나오셨습니다’ 하고 인사하던 후배 교수들이 이제는 ‘건강은 괜찮으신지요’ ‘요새 뭘로 소일하십니까’로 말을 바꾸는 거예요. 나는 늙었다는 생각도 없고, 늙지도 않은 것 같은데… 안 늙을 수도 있는데 주변에서 자꾸 늙은이로 취급하니까 늙어지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그때 들었지요. 그래서 65세 정년퇴직하는 날 후배들 앞에서 ‘졸업 후에는 사회에 나가 일하는 게 사회적 책무이니 앞으로 열심히 일하겠다’고 했어요. 좀 오기를 부린 거죠. 그래서인지 제 책 중에 비중 있는 건 70대에 나왔어요. 학교에 있을 때가 아니고….” ―60세가 되니 비로소 철이 든 것 같다고도 하셨습니다만…. “정년퇴임 후 외국에서 강연도 많이 하고 책도 많이 썼는데 그러다 보니 75세가 됐더라고요. ‘이제는 좀 늙었나?’ 하고 봤는데 여전히 한창 좋은 나이인 것 같았어요. 여든세 살 땐가? 50년 지기인 안병욱 김태길 교수와 인생의 황금기가 언제인가를 얘기한 적이 있는데… 셋 다 60쯤 되니까 그제야 철이 든 것 같다고 했어요. 철들었다는 게 뭐냐면… 스스로를 믿을 수 있는, 비로소 내 인생을 시작할 수 있는 나이를 말하지요. 사람이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아요. 노력만 하면 90세까지는 성장할 수 있겠더라고요. 김태길 교수도 우리 나이로 90세까지 살았는데 세상을 떠나기 7, 8개월 전까지 정상적으로 일했거든요. 사과나무를 키우면 열매를 맺을 때가 제일 중요하잖아요? 사회에 열매를 주는 때가 60∼90세라고 봐요.” ―힘든 시기는 없으셨습니까. “구십 고개가 힘들었어요. 저와 비슷한 또래들이 대부분 그때를 전후해 세상을 떠났거든요. 살아 있는 친구들도 거동을 잘 못하고… 서영훈 전 대한적십자사 총재(1920∼2017)는 정신은 좋았는데 몸을 움직이지 못했지요. 강영훈 전 국무총리(1922∼2016)는 몸은 건강했는데 치매로 힘들어했고…. 저도 구십 고개가 되니 확실히 신체적인 면은 내려가더군요. 그런데 희한한 게… 정신은 아니더라고요. 문장력은 50, 60대 때가 좋았지만 역사적인 통찰력과 시야는 지금이 더 넓은 것 같아요.” ―매일 수영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보통 오전 6시∼6시 반 사이에 일어나는데,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못 하지만 그 전에는 일주일에 5일 수영을 했어요. 50세 때까지 술, 담배는 안 했는데 지금은 와인이나 맥주만 아주 조금 마시지요. 지금도 몸에 해로운 건 전혀 안 해요. 안병욱 선생이 젊고 건강하게 살려면 공부 여행 연애를 많이 하는 게 좋다고 했는데 맞습니다. 감정이 젊어야 건강한데 연애만큼 감정이 젊어지는 게 또 어디 있습니까. 흐흐흐. 30, 40대보다 70대에 연애할 때가 더 젊어지거든요.” ―실례지만 연애도 많이 하셨습니까? “안 선생이 80대 초반 때였는데… 집 근처 카페 아가씨랑 친하게 지냈어요. 그 아가씨가 안 선생 책도 많이 읽고 친절하게 대했는데 하루는 조용히 개인적으로 할 말이 있다고 했대요. 잔뜩 기대하고 2주 만에 봤는데… 아, 글쎄 결혼식 주례를 부탁하더라는 거예요. 그러겠다고는 했는데 커피 맛이 뚝 떨어지더래요.” (주례 부탁을 했다면 20대였을 것 같은데… 괴테입니까?) “나이가 많아도 남녀 간의 감정에는 차이가 없는 거 같아요.” (선생님은 어떠신가요.)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고… 즐겁게 살고 있어요.” (너무너무 부럽습니다.) “하하하.” ―98세 때 세금만 3000만 원을 내셨다고요. “그땐 상금 때문에 좀 많았죠. 강연료도 있고… 재작년에는 교회 설교까지 포함해 160회 정도 했으니까요. 항상 그렇게 많지는 않은데 그래도 책 인세 등이 있어서 좀 많이 내기는 해요. 작년에는 1500만 원 정도였던 것 같은데…. 이번 달 건강보험료가 100만 원이니까… 누군가 잘 쓰겠지요?” (네? 무슨 뜻이신지….) “잘 안 믿어서 말하기 뭐한데… 전 병원을 거의 안 가요. 어쩌다 가면 의사가 언제 건강검진 받았느냐고 묻는데 받아본 적이 없어요. 안 믿기지요?” (네…. 상금은 개인적으로 안 쓰신다고 하던데요.) “내가 번 돈은 쓰지요. 하지만 상금은 내가 번 게 아니라 사회가 맡긴 돈이기 때문에 나를 위해 쓰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제자들에게 맡겨서 문화사업이나 사회사업 같은 데 쓰고 있지요.” (외람되지만 너무 훌륭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교수 때 월급이 오르거나 보너스가 나왔다고 좋아했던 걸 생각하면 지금도 부끄럽지요. 등록금을 못 내는 학생들이 수두룩했는데 스승이라는 사람이 자기 월급 올랐다고 좋아했으니…. 요즘도 일기를 쓰면서 매일매일 실수를 반성하고 있습니다.” ―주변에 장수하신 분들이 많습니까.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일곱 분이 100세를 넘겼죠. 그런데 공통점이 있어요. 재산이나 명예 같은 데 욕심이 없고, 화를 내거나 남 욕하지 않아요. 감정이 아름다운 분들이라고 할까.” ―선생님 칼럼을 보면 현 정부에 화가 많이 나셨던데요. “하하하. 많이 나지요. 내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불만이 많은데, 사람이 미운 건 아니고 하는 일이 틀려서….” (어떤 점에서 그렇습니까.)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 때까지는 권력과 힘이 지배했고, 김영삼 대통령부터 법이 지배하는 사회가 됐습니다. 선진국이 되려면 법치사회에서 도덕과 윤리로 유지되는 사회로 넘어가야 하는데 현 정부는 권력으로 몰아대고 이끌어가니까… 다시 권력사회로 떨어지고 있어요. 청와대 사람들 얘기 들으면 도덕과 윤리가 없잖아요. 또 북한 인권 문제는 우리가 더 원해야 하는데 그런 건 언급하지 않고 오직 북한 정권하고만 손잡으려고 하니… 나 같은 사람은 나라 걱정이 많지요. 해방 후 김일성하고 같이 밥을 먹은 적이 있는데 가장 먼저 할 일이 뭐냐고 물으니 친일파 숙청, 토지 국유화, 지주 자본가 추방이라 하데요. 지금 여기서도 극렬 좌파는 비슷한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가랑잎을 타고 대동강을 건넜다는 그분인가요? “네. 초등학교 선배에 고향도 같고, 집안끼리도 잘 아는 사이죠. 우리 진외가 할머니가 석 달 동안 젖을 먹여 김일성을 키웠어요. 김일성 어머니와 같은 마을 출신인데 비슷한 시기에 두 분 다 친정에서 출산했거든요. 그 할머니 아들들이 공산당 때문에 죽었지요.” ―지난해 ‘국민이 정부를 더 걱정한다’는 칼럼을 쓰신 것도 그런 까닭입니까. “사회가 유지되려면 진실 정의 휴머니즘이 있어야 해요. 이 가치가 무너지면 그 사회는 없어집니다. 그런데 현 정부 들어 이런 가치가 다 사라지고 있어요. 지금 대통령 말을 우리가 못 믿지 않습니까? 지금 여당 대표는 물론이고 그 전 대표는 더 심했고. 정부가 국민을 걱정해줘야 하는데, 거꾸로 국민이 나라와 정부를 걱정하게 만드니…. 새해에는 문 대통령이 좀 정직해졌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내 사람이 아니면 함께 일할 수 없다는 아주 편협한 사고방식도 좀 고쳤으면 하고요.” 그는 종종 모르는 사람에게 “대학 등록금을 내주셔서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는다. 영문을 몰라 하는 김 교수에게 그들은 “어떤 분이 대신 내주시면서 ‘내가 학생 때 김형석 선생님에게 등록금을 받았는데 졸업 후 갚으러 갔더니 내게 갚지 말고 어려운 학생들에게 주라’고 하셨다”고 했다고 한다. 스승의 가르침을 따른 제자들의 선행이 그도 모르게 30여 년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 것이다. 이런 분의 고언(苦言)은 진심이라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무려 14조2000억원. 이 중 30% 정도만 소비로 이어졌다면 나머지 돈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기한 내에 안 쓰면 사라지는 돈인데….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빚을 갚거나 미래의 소비를 위해 저축을 한 사람들도 꽤 있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재난지원금은 기한 내에 안 쓰면 없어지는 돈인데 30%정도만 소비로 이어졌다면 나머지 돈은 다 어디로 간 건가. “채무 상환이나 저축 등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현금으로 지급한 취약 계층도 있지만 거의 대부분은 카드 포인트로 줬는데 포인트를 어떻게 저축하나?) “저축이란 말에 오해 소지가 있는데… 경제학적으로 소비가 아닌 모든 행위는 결국 저축이다. 빚을 갚는 것도, 주식을 사는 것도 마찬가지다. 왜 그게 가능하냐면…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더라도 원래 기본적으로 쓸 수밖에 없는 돈이 있지 않나. 그걸 재난지원금으로 쓰고 자기 돈은 남겨 둔거지. 재난지원금으로 쓰고 아낀 돈을 전혀 소비하지 않는다면 소비 효과가 0이 된다. 원래 쓰려던 금액에 더해 재난지원금까지 다 쓰면 소비효과가 100이겠지만 지금은 쓸 곳도 제한적이고 또 활동도 적으니까 그렇게까지 쓰는 건 원래 어렵다고 본다.” ―중산층 이상은 그렇다 쳐도 취약계층은 생활비도 모자랄 텐데 지원금을 남겨뒀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가는데. “그런 질문도 많이 받았는데… 제가 설명을 잘 했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런데 정말 어려운 집은 오늘만 어려운 게 아니라 내일, 일주일 후도 어렵지 않나. 아무리 저소득층이라고 해도 정말 소득이 긴급재난지원금 밖에 없는 것은 아니기도 하고…. 오늘 돈 들어왔다고 오늘 다 써버릴 수는 없는 거다. 다음 달에 쓰기 위해 오늘 안 쓰는 것도 저축이다. 그리고 잘 설명이 안 된 부분이 있는데… 어떤 조사도 그렇지만 과소 추정됐을 부분도 다소 있다.” (과소 추정이라니?) “소상공인들은 본인도 지원금을 받지만 재난지원금으로 물건을 산 손님의 돈으로 소득이 발생한다. 이 돈으로 다시 추가 소비를 할 수 있다. 이렇게 재난지원금으로 인한 추가소득이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분석기간을 재난지원금 지급 시작 후 15주간(8월 2주까지)으로 한정했기 때문에 그 뒤에 일어나는 소비효과는 다 반영되지 못한 면이 있다.”―아이러니한 게 재난지원금 지급 후 가장 크게 매출이 는 업종이 의류·잡화, 가구 등 다소 급하지 않은 품목들이었다. “의류·잡화는 지급 전 ¤17.8%에서 지급 후에는 11.2%, 가구는 -3.5%에서 19.9%로 가장 많이 매출이 늘었다.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전후의 매출액 변화 중 긴급재난지원금 지급으로 인한 부분만 볼 때 코로나19로 인한 타격이 큰 음식업은 3%, 목욕탕 사우나 등 대면서비스업은 3.6%, 마트 식료품점 등 필수재가 8% 늘어난 것과 비교하면 의류·잡화 등 비교적 소비가 긴급하지 않은 내구재업종이 평균 10.8%로 가장 많이 늘었다. 그래서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보편적인 전 국민 재난지원금보다는 선별 지급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편적인 전 국민 재난지원금으로는 피해가 큰 업종에 충분한 소비 진작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특히 대면 업종은 간접 지원을 하면 감염 우려 때문에 사람들이 가는 걸 꺼려하니까 직접 지원이 필요하다.”―재난지원금으로 한우를 먹었다고 논란이 있었는데. “사실 일반의 인식과 차이가 있는 게… 재난지원금의 소비 진작효과를 말할 때 지원금 자체를 어디에 썼는지는 생각보다 중요하지 않다. 재난지원금으로 절약된, 원래 내가 쓰려던 돈의 소비가 어디로 이어졌는지가 중요하다.” (잘 이해가 안 가는데….) “음… 내가 늘 동네 슈퍼마켓에서 40만원을 쓰는데 이번 달에는 정부에서 준 재난지원금 40만원으로 썼다면 원래 내가 쓰던 40만원은 남은 거다. 그걸 어디에 썼는지가 진짜 소비 진작 효과다. 그 돈으로 가구를 샀다면 소비 효과가 가구에서 나온 거고, 밥을 사먹으면 음식점에서 나온 거고. 단순히 재난지원금으로 한우를 먹었다고 뭐라고 할 일이 아니다. 돈에 꼬리표가 있는 건 아니니까.” (재난지원금 자체를 어디서 썼는지 보다 추가 소비가 어디서 이뤄졌는지가 중요하다면 처음부터 사용처를 제한하지 않는 게 소비 진작에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거기까지는 연구가 아직 안 돼서…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할 것 같다.)―주소지 광역지자체 안에서만 사용하도록 했는데 굳이 장소를 제한할 필요가 있었을까? ”굉장히 중요한 질문인데… 내 경우에는 5인 가족이라 100만원을 받았다. 사용기간이 석 달이니 한달에 33만원 정도인데 그 정도 소비는 살고 있는 세종시의 사용가능 업종에서 원래 하고 있다. 그러면 원래 내 월급으로 하던 소비를 긴급재난지원금 포인트로 대체하고 월급은 남게 된다. 이 때 대체되며 아낀 월급은 지역 제한이 없는 현금이기 때문에 사실상 지역 제한이 제약이 되지 않은 거지. 재난지원금 정도의 소비를 해당 지역에서 하는 사람의 경우에는 지역 제한이 별 의미가 없다. 물론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고 지원금 액수와 사용제한 기간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100만원? 혹시 기부 할 생각은 안 했나.) ”그게… 건사해야할 식구들이 있어서….“―재난지원금이 언 발에 오줌 누기라는 지적이 있는데 아예 처음부터 통 크게 왕창 줬으면 어땠을까. ”흥미로운 질문인데 쉽지 않다. 일단 코로나19가 얼마나 지속될지도 모르니까. 그에 따라 몇 번을 줘야할지 알 수도 없고….“ ―소비 진작이 초기 한 달 동안 반짝 효과 그쳤다는 지적도 있었는데. ”그 부분은 효과가 초기 한 달 안에 집중되든 석 달에 걸쳐 분산되든 큰 차이는 없다고 본다.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초기에 효과가 빨리 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그동안 계속 어려웠기 때문에 급하게 지출해야할 돈이 많이 필요할 수 있으니까. 체감적으로도 일단 소득이 좀 회복되면 느낌이 달라지는 부분도 있고….“※늘어난 매출 4조 원 중 지난해 5월 셋째, 넷째 주에 32조2100억원이 집중됐고 6월 둘째 주부터 카드 매출액은 감소세로 돌아섰다.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정부·여당이 3월 4차 재난지원금 지급을 위한 논의를 공식화했다. 지난해 5월 지급된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모두 14조2000억원. 2차와 3차 재난지원금은 선별 지급됐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과연 얼마만큼의 효과가 있는 걸까. 1차 재난지원금의 소비 진작 효과를 처음으로 분석한 김미루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1차 재난지원금의 소비 진작효과는 30% 수준으로 나타났다”며 “코로나19 상황이 지속되는 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지급보다 선별 지급이 낫다”고 말했다.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분석은 어떻게 한 건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지 않았을 경우 예상되는 전년 동기(작년 5~8월 둘째 주)대비 신용·체크카드 매출액 추이를 추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교분석했다. 재난지원금을 쓸 수 있는 업종에서 약 4조원 정도의 매출이 늘었는데 중앙과 지방자치단체에서 지급한 1차 재난지원금 11조1000억~15조3000억의 26.2~36.1% 정도가 소비로 이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1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이 14조2000억원 아닌가?) “같은 기간에 중앙 정부 외에도 지자체에서도 지급한 곳이 있기 때문에 총 규모는 다를 수밖에 없다. 총 지원금에서 매출 파악이 어려운 상품권과 선불카드는 제외하고 기초생활수급자 등 취약계층에 지급된 현금은 일정 부분(69.1%)만 반영했기 때문에 총 지급금과는 차이가 난다. 그래서 중앙정부 재난지원금만을 고려하면 36% 가량, 지자체까지 포함하면 26%정도가 소비 진작효과를 낸 것으로 나타났다. 30% 정도 효과가 있었다고 보면 된다.”―14조2000억원이나 풀었는데 30%(약 4조원) 정도 소비 진작 효과가 났다는 게 효과가 좋았다는 건가 나빴다는 건가. “그게… 30% 효과가 높은 건지, 낮은 건지는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이 아닌, 다른 소비 진작 정책의 결과와 비교해야만 알 수 있다. 다른 소비 진작 정책은 70%효과가 났는데 전 국민긴급재난지원금은 30%라면 효과가 나쁜 거고, 반대로 다른 정책은 10%인데 재난지원금은 30%라면 좋은 거고. 지금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건 30%의 효과는 나온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 절대 수치만 놓고 판단하기 어려운 게… 수치 자체는 높은 다른 정책에 비해 만약 상대적으로 저소득층에게 효과가 더 크다면 이 정책에 대한 판단은 또 다를 수 있다.” (뭔가 굉장히 허무한 느낌인데….) “추후 다른 정책의 효과에 대해서도 심도 있게 연구를 진행 하겠다.”―당시 보도는 대부분 ‘재난지원금 30% 정도만 소비로 이어져’, ‘소비 효과 미미’ 이렇게 났는데… 정정을 요청하지도 않지 않았나. “판단은 보는 쪽이 하는 거니까… 그런데 기자 분들이 전반적인 보고서의 내용에 대해 의미를 잘 이해하고 쓴 것 같던데… 기사에 별 무리는 없었다고 생각한다.” (4차 전 국민 재난지원금 이야기가 나오는데 국책연구기관의 분석 결과가 참고나 기준이 돼야하지 않나.) “참고가 될 부분은 분명히 있다고 생각한다. 매출 감소 피해가 큰 여행업, 음식점 등 대면서비스업에서는 긴급재난지원금 효과가 미미했다.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소비 진작을 위해 재난지원금을 전 가구에 보편적으로 지급하는 건 피해를 많이 입은 소상공인들에게는 효과가 낮다는 뜻이다. 또 코로나19가 지속되는 상황에서의 소비 진작 정책은 방역정책과 상충될 수 있기 때문에 선별지급이 낫다.”―연구는 어떻게 하게 된 건가. 국가 정책이니 당연히 해야 하는 걸 맡은 건가. “예비타당성조사처럼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연구도 있지만 1차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의 효과분석은 내가 해보고 싶어서 연구를 하겠다고 제안했다.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이런 정책을 시행한 게 처음이라 어떤 효과가 나타날지 너무 궁금해서….” (아무래도 정부 입장에서는 분석결과가 좋게 나오길 바랐을 것 같은데 부담은 없었나. 재난지원금 지급 기간인 작년 2분기(4~6월) 가계 평균소비성향이 전년 같은 기간보다 떨어졌다는 통계도 있었는데.) “정부에서 어떻게 볼지는 걱정하지 않았고… 내가 부담스러웠던 건 연구가 얼마나 정확하게 이뤄졌는지 여부였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정확한 사실을 정부와 국민에게 알리는 게 우리 책무니까.” ―워낙 중요한 사안이라 방향이 컸는데 관련 기관에서 별도의 설명이나 보고를 요청하지는 않았나.“관련 기관이란 게 어디를 말하는 건가?” (청와대나 국회, 기획재정부 같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의 효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전 국민의 관심사 아닌가.) “기재부 브리핑룸에서 공식적으로 언론 브리핑은 했지만 사후에 별도의 설명을 요청한 곳은 없었고….”<계속>이진구기자 sys1201@donga.com}

《지난해 12월 중순, 코로나19 확진자가 하루 1000명이 넘게 쏟아지면서 전국이 극심한 병상 부족에 빠졌다. 대기 중 사망자가 속출했지만 전체 병상의 90%를 차지하는 민간병원들의 참여는 없었던 상황. 속수무책이던 상황은 민간병원으로는 처음으로 경기 평택 박애병원이 코로나 전담거점병원으로 전환을 결정하면서 숨통이 트였다. 김병근 박애병원장(55)은 “삼성서울병원이 2015년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로 인한 손실을 보상받는 데 5년이나 걸렸다”며 “민간병원들이 흔쾌히 나설 수 있도록 정부가 제반 우려를 불식시켜 줘야 한다”고 말했다.》 ―제2의 삼성서울병원이 될 수 있다는 걱정은 안 했습니까. “제가 결정하기 직전에 정부가 도와주겠다고 약속은 했어요. 그런데 그때만 해도 삼성서울병원의 손실보상 문제가 해결이 안 됐을 때였지요. 삼성이 법원에서 승소했는데도 정부에서 손실보상금을 안 주고 다시 정산하자고 옥신각신하고 있었으니까요. 지난해 초 코로나 치료에 헌신한 대구동산병원도 어려움을 겪었고요. 의료인들은 이 두 사건을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 정부가 아쉬울 때 약속은 잘하는데 끝난 뒤에도 잘 지킬지 두려움이 당연히 있지요. 걱정은 됐지만 제가 크리스천이라 사회적인 문제가 있을 때 신앙과 양심상 가만히 있는 걸 견디기 힘들어하는 면도 있고, 손해를 보더라도 정부를 믿어보자고 생각해서 결정했습니다. 제가 사기를 좀 당해 봐서 이상한 말이지만 잘 견디기도 하고….” (좀 당해봤다는 게….) “20억 원, 90억 원, 200억 원… 뭐 병원 운영 과정에서 당한 거죠.” (어떻게 견디셨습니까. 전 100만 원 떼인 것도 죽겠던데.) “하하하, 마음을 비워야죠. 잠 못 자고 괴로워해봐야 저만 손해지 사기 친 사람이 괴로워하겠습니까.” ※2017년 보건복지부는 메르스로 병동폐쇄 등을 한 삼성서울병원에 손실보상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병원 측은 소송에 나섰고 지난해 12월 29일에야 607억 원의 손실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다. ―손실보상에 불합리한 점이 있습니까. “가장 걱정되는 게 회복기 손실보상이에요.” (회복기란 게….) “코로나 전담병원이 끝나고 일반병원으로 돌아간 뒤 경영이 예전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걸리는 기간이지요. 해제됐다고 바로 다음 날부터 환자들이 전처럼 오기는 힘드니까요. 코로나 치료병원이었다는 인식도 일정 기간 꺼리게 할 수 있고요.” (경영 회복 기간을 예측하기는 힘들 것 같은데요.) “원래 두 달 해주던 걸 지금은 6개월로 늘렸는데 문제는 6개월 안에도 회복이 안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정세균 국무총리가 방문했을 때 6개월 안에 회복이 안 되면 석 달씩 끊어서 최대 1년까지 해달라고 요청했는데… 검토 중이라는데 어려울 것 같다고 합니다.” ―기간은 그렇다 쳐도 보상액은 충분합니까. “정부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을 통해 파악할 수 있는 것만 보상해주는 게 문제지요. 병원 수입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건강보험, 의료급여처럼 심평원을 통해 확인되는 것도 있지만 자동차보험, 산업재해보험, 공상, 비급여 등 그렇지 않은 것도 많아요. 이 부분은 뺀 것 같습니다. 코로나 발생 전인 2019년 수입을 기준으로 보상해주는데 우리 병원은 그때랑 비교해서 회복기 6개월간 3분의 2 정도만 보상받더라고요. 저야 최악의 경우도 받아들일 생각이지만 다른 병원도 그러라고 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나마 저는 대놓고 물어봐서 이 정도나 알고 있지 같은 처지의 다른 병원들은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정부 쪽 사람이 너무 자주 바뀌는 것도 문제예요.” ―얼마나 많이 바뀌었습니까. “중앙사고수습본부(중수본)에 우리 병원 담당 주무관이 한 달 새 세 번째입니다. 열심히 협의해 담당자가 ‘그러면 이렇게 하겠습니다’고 했는데 며칠 후 ‘후임자에게 인수인계하겠습니다’고 하더군요. 후임자는 듣고 나서 ‘그게 무슨 말이냐, 규정이 이런데’라고 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는 거죠. 사무관도 계속 바뀌고…. 2주 정도마다 바뀌는 것 같더라고요. 작년에 대구생활치료센터에 있었는데 그곳도 사무관과 주무관이 2주 단위로 바뀌었습니다. 근무 규정이 그런 것 같더군요.” (이런 얘기 다 해주셔도 됩니까? 저는 너무너무 좋습니다만….) “민감한 부분이고, 누군가에게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지만 또 시원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꼭 알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 말하는 거죠.” ―지금은 어떻습니까. 정부 지원 외에 다른 수입은 없는데요. “적자는 안 날 거라 생각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아요. 코로나 환자를 치료하고 비용을 청구해 받으려면 짧으면 두세 달, 길면 서너 달 이상 걸립니다. 아직 비용 청구 관련 시스템도 다 정비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작년 12월에 선지급금으로 10억 원 정도를 받아서 직원 급여에 썼는데 1월분은 29일에 준대요. 그런데 얼마가 나오는지는 아무도 정확히 몰라요.” (매달 29일에 주는 방식이 아닙니까?) “정해지지 않았어요. 이번 달 29일도 직원들 월급 줘야 한다, 언제 나오느냐, 급하다고 수시로 묻고 보채니까 알려 준 거죠. 처음에는 1월분 손실보상금이 2월 말이나 3월에 나온다고 했어요. 2월은 언제 얼마가 나올지 몰라요.” ―다른 어려움은 없습니까. “어쩔 수 없이 그만둔 직원이 있는데…. 어린이집에서 부모가 코로나 치료병원에 다녀 감염 우려가 있으니 아이를 보내지 말라고 했답니다. 일반적인 자발적 사직과는 다른 경우인데 형식은 스스로 그만둔 거라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다고 하네요. 고용노동부에서 논의는 해보겠다고 했는데 아직 답이 없어요.” ―의료진 외의 인력도 많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요양병원에서 발생한 집단감염 때문에 오신 분들이 있는데 이분들은 연세도 아주 높고 와상 상태에 기저질환도 많은 고위험군 중환자들이에요. 그래서 치료 외에도 식사, 대소변 받아내기 등 간병 인력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일이 워낙 힘들고, 감염 우려도 있다 보니 간병 인력 구하기가 힘듭니다. 다행히 다니는 지구촌 교회에서 30여 분이 도와주고 계셔서 큰 도움이 됐지요.” ―아내가 암 수술을 받았다는데 남들 코로나 치료가 문제가 아니라 옆에서 간병해야 할 때 아닙니까. “작년 10월 중순인가? 중수본에서 11월 1일부터 생활치료센터를 맡아달라고 하더군요. 아내 수술이 10월 말인데….” (들어가면 일정 기간 못 나오는데 거절하셨습니까?) “수술 끝나고 4일 더 간병하고 아들에게 맡기고 들어갔지요. 아내가 당신이 가지 않으면 누가 가느냐고 하더군요. 저보다 더 대범한 여인이라…. 하하하. 코로나 전담거점병원은 생활치료센터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중증환자들이 있기 때문에 집에는 오지 말라든지, 아니면 자신이 딴 데 가 있겠다고 할 만도 한데 그러지 않더라고요.” ―2015년 정부가 메르스 종식 후 근본적인 대비책을 마련하겠다고 했지만 여전히 방역대책은 부실한 것 같습니다. “논어에 ‘곤경을 겪고도 배우지 않는 사람이 가장 아래’라는 말이 있지요.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 백신은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에게 권한을 일임하겠다고 했지만 솔직히 일선 현장에서 얼마나 독자적으로 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정 청장 정도면 전문 지식도 있고, 관료 경험도 풍부하니 이런 상황에서는 현장을 진두지휘할 수 있는 실질적인 총책임자가 되게 해줘야 하는데…. 이런 말은 5년 전 메르스 때도 나왔어요. 정부가 또 닥칠 대규모 감염병에 대한 국가적인 계획을 세워야 하는데 코로나 상황만 넘기면 또 잊어버리지 않을지….”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가 필요합니까. “질병청에 대규모 감염병을 어떻게 대비하고 방역대책을 세울지 국가적인 대계를 만들게 해야지요. 기초부터 최고 수준까지 대응 단계와 감염병 전담병원의 지정과 해제 절차, 인력과 장비의 운용, 컨트롤타워의 지휘권은 물론이고 지역과 공항 항만의 봉쇄 여부, 행정과 예산 인사까지 모든 것을 망라한…. 코로나 때 사용한 엄청난 장비와 시설을 어떻게 처리할지도 포함해야 하고요. 그런데 제대로 만들 수 있을지, 만들어도 운용이 제대로 될지 걱정입니다.” (이유가….) “한 달 전만 해도 전담거점병원 전환 과정에서 제가 통화하는 사람이 담당 사무관, 과장, 국장 등 병상확충반 내에 몇 명 안 됐어요. 그 안에서 대부분 잘 해결할 수 있었죠. 그런데 지금은… 손실보상팀, 건강보험수가팀, 심평원 실무자, 검증위원회, 보건소 등 굉장히 복잡해졌습니다. 그런데 정작 돈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나오니까 심평원이 자체 심사 기준을 또 적용하고, 실사 나오고, 관련 서식도 만들고… 그런 절차를 밟느라 시간이 또 지연돼요. 우리 같은 병원 하나도 이렇게 복잡해졌는데 국가 전체의 방역 대계를 세운다? 과연 일사불란하게 운용할 수 있을지…. 정권과 무관하게 바뀌지 않고 대비할 수 있는 전문가를 키우고, 시스템을 만드는 게 정말 필요합니다.”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지난해 12월 문재인 대통령의 경기 화성 공공임대아파트 방문을 놓고 ‘쇼통’ 논란이 일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빈집 두 채에 4200여만 원을 들여 인테리어 공사를 했기 때문. 지난해 6월 국군 유해 송환 공중급유기 행사, 9월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 12월 탄소중립선언 연설 등 문 대통령이 참석한 행사는 늘 비슷한 홍역을 치르고 있다. 이강래 전 대통령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47)은 “진짜 주인공들을 제치고 대통령을 주인공으로 만들다 보니 생기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그는 국회 보좌관을 거쳐 이명박(MB) 정부에서 주요 20개국(G20) 서울 정상회의, 핵 안보정상회의 등 국내외 주요 행사를 기획·총괄했다.》 ―대통령이 행사의 진짜 주인공들을 제치고 있다고 했는데…. “6·25전쟁 참전 용사 유해 송환 행사의 주인공은 누가 돼야 할까?” (그야 참전 용사 유해, 유가족 등 아닌가.) “당연하다. 그런데 ‘국민과의 대화’(2019년 11월), 정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 공공임대아파트 방문 등 거의 모든 행사에서 부각된 주인공은 문 대통령이었다. 최고의 의전은 VIP를 띄우는 게 아니라 행사의 진짜 주인공들과 그 모습을 지켜보는 국민을 감동시키는 거다. 대통령을 위한 행사가 되면 대통령 본인은 좋겠지만 진짜 주인공은 소외되고, 참석자는 힘들고, 뉴스를 보는 국민은 불편해진다. 그래서 ‘쇼통’이라고 하는 거다.” ―대통령 행사에 LH처럼 주최 측이 과잉 의전을 하는 경우가 많은가. “2009년 10월 인천대교 개통식 때였는데 환담장과 행사장 사이에 사전 답사 때는 없었던 새 길이 생겼다. 대통령이 조금 돌아가게 된다고 화단 중간을 끊고 길을 만든 거다. 어떤 기관은 대통령이 온다고 건물 내부에 새 페인트칠을 해서 냄새 빼느라 밤새도록 대형 선풍기를 돌린 곳도 있었다. 대통령이 군부대를 방문하는 건 장병들을 격려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되레 며칠 동안 막사 페인트칠 하고, 풀 뽑느라 고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말라고 당부하지만 잘 바뀌지 않는다.” ―논란이 일자 LH는 “임대주택을 입주민이 거주 중인 아파트처럼 가정하고 꾸며서 공개하기로 계획된 행사”라고 밝혔다. “왜 그렇게 하면 안 되냐면… 실제 주민 중 인테리어에 2000만 원이나 쓸 수 있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실제와 다른 모습을 보여준 것 아닌가. 그리고… 공공임대주택은 서민 주거 문제 해소를 위해 가는 게 맞다. 그래서 현장에서 사는 데 불편은 없는지, 어떤 개선이 필요한지 등을 직접 주민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부동산 정책 실패로 집값이 천정부지로 뛰니까 공공임대아파트로 수요를 분산시키기 위해 기획·홍보 차원으로 간 것 아닌가. 그러니 실제 주민들 집을 방문해 어떻게 사는지를 살펴보는 건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또 썰렁한 빈집을 보여주면 유인 효과가 떨어지니까 집당 2000만 원씩 들여 멋지게 인테리어를 한 거고…. 보통 집 전체를 공사하려면 기간이 오래 걸리는데 짧은 시간 내에 하려다 보니 아마 비용도 더 비싸게 줬을 거다. 당연히 공사 소음으로 주민들은 엄청 피해를 입었을 테고.” ※해당 동 주민들은 언론에 “드릴 소리 때문에 새벽 3, 4시부터 거의 못 잤다”고 말했다. 해당 임대주택은 보증금 약 6000만 원에 월세가 19만∼23만 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이 대화를 나눈 상대가 주민들이 아니고 당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과 변창흠 차기 국토부 장관 후보자여서 이상하기는 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는 거지. 그리고 대통령이 장관들과 테이블에 앉아 대화를 나눴는데… 주민들을 만났다면 바닥에 앉아 이야기하는 게 정상이다. 사진을 보니 대통령과 일행들이 집 안에 아예 신발을 신고 들어갔더라.” (요새 임대주택은 서양식인 줄 알았다.) “신발을 안 벗었으니 바닥에 앉을 수도 없던 거지. 우리나라에 그런 아파트가 어디 있나. 사실 그런 디테일들은 진짜 전문가라면 담당 의전관의 행사 시나리오에 다 적혀 있다. ‘대통령이 현관에서 신발을 벗고’ 이렇게….” (실무진이 그런 디테일을 전혀 몰랐을까.) “몰랐다면 정말 무능한 거고…. 내 생각에는 실무진 회의에서 실제 주민 집을 방문해야 한다, 신발을 신고 집에 들어가는 경우는 없다 등 문제점이 분명히 지적됐을 것 같다. 하지만 문제를 지적해도 위에서 그냥 시키는 대로 하라고 찍어 누르면 별수 없다.” (누가 찍어 눌렀을까?) “짐작이 가는 사람이 하나 있지 않나. 의전비서관.”4200여만 원을 들여 모델하우스처럼 개조한 빈집. 그 집을 “진짜 아늑하다”며 칭찬한 대통령. 빈집을 개조하고 대통령을 안내한 LH 사장은 얼마 후 국토교통부 장관이 됐다. 문 대통령은 공공임대아파트 주민들이 전부 자신이 방문한 집처럼 꾸미고 살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실제 주민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왜 궁금해하지 않았을까. ―연계된 야외 행사 예산도 4억1000만 원이나 책정됐다고 한다. 대통령이 한번 나가면 그렇게 돈이 많이 드나. “행사마다 다르기는 하지만… 대통령이 참석하면 주최 측이 최상급 행사 기획사를 쓰기 때문에 기본이 억 단위다. 2011년 9월 농협 창립 50주년 기념식이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렸는데 사전 답사 때 보니 관중석 상단을 초대형 현수막으로 도배를 했다. 장당 1000만 원이 넘는 것이었다. 경기장 내 스피커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별도의 스피커는 설치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데도 크레인이 대형 스피커를 설치하고 있었다.” (하지 말라고 했는데 왜?) “대통령 목소리가 구석구석 잘 전달돼야 한다고…. 중단은 시켰지만 결국 행사 후 ‘농협 50주년 행사 33억 원 돈 잔치’라는 기사가 났다. 68억 원을 책정했는데 외부 비판을 의식해 그나마 줄인 거라고….” (LH는 사회적 거리 두기 때문에 야외 행사가 축소돼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했다.) “나중에 확인해 보면 알겠지만… 행사를 안 치렀어도 돈은 거의 다 지출됐을 거다. 중간에 취소했다고 준비한 업자들에게 안 줄 수가 없지 않나. 사전 준비에 들어가는 돈도 있는데…. 사실 쇼 중의 쇼는 정은경 초대 질병관리청장 임명장 수여식이다.” ―청와대는 대통령이 1시간을 달려가 직접 줬다며 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인 모습을 부각시켰다. “대통령이 참석하는 장소는 사전에 경호실에서 속된 말로 완전히 ‘깐다’. 건물 전체를 전부 검측하고 행사 전날 저녁부터는 완전히 봉쇄하는 게 보통이다. 원격조종 폭발물, 드론 등의 공격에 대비해 전파 방해를 하기 때문에 휴대전화도 안 터지고, 화장실도 마음대로 못 간다. 수여식을 한 곳이 긴급상황센터 아닌가. 시시각각으로 올라오는 보고를 받고 지시하고 조율하는 최전방 컨트롤 타워다. 그런 곳을 탈권위주의적인 대통령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이 엄중한 시국에 일시 정지시켜 놓은 거다. 뒤에선 직원들이 뭐하고 있던가.” (병풍처럼 둘러서 사진 찍고 박수치고 있던데….) “대통령 없이 자기들끼리 그런 행사를 했다면 아마 언론에서 난리가 났을 거다. 나중에 거리 두기를 위반했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그보다 더 중대한 잘못을 저지른 거다. 정 청장을 위해 준 것 같지만 사실은 그를 빌려 문 대통령을 띄운 것이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의 대통령 의전 기획은 늘 이런 식이다. 그러니 쇼통이라고 하는 거고. 대형 사고가 터지면 국민들은 대통령이 현장에 안 가고 뭐하냐고 비난하지만 사실은 가면 안 된다. 모든 인력이 대통령 경호에 몰두해 정작 구조 활동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정신없이 일하는 사람들을 방해해도 안 되고….” ※질병관리청에는 수여식을 할 수 있는 큰 회의실도 있지만 센터처럼 ‘그림’이 되지는 않는다고 한다. ―대통령 행사를 의전비서관실이 주관하는 이유가 뭔가. “대통령 참석 행사가 결정되면 담당 의전관이 정해지고 그의 주관 아래 경호, 홍보, 대통령비서실, 행사 기획사 등 관계자들이 모여 실무 회의를 한다. 그리고 그 최종 결과를 의전비서관이 대통령에게 보고한다. 업무적으로도 의전이 중심을 잡아야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경호는 대통령이 공개된 장소에 나가거나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걸 꺼린다. 홍보는 반대다. 중간에서 상황에 맞게 어느 쪽에 더 비중을 둘지 조절을 해야 하는데 이걸 담당 의전관이 할 수밖에 없다. 연설 시간에 햇빛이 대통령 얼굴을 비추어서 찡그린 표정이 나오지는 않는지, 혹시나 멀리 러브호텔 간판이 보이지는 않는지, 외부 참석자가 있다면 대중교통편은 불편함이 없는지 등 총감독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특히 경호는 우리 상식과 다른 일이 많이 벌어진다. 온도 검측 담당 경호원과 싸운 걸 생각하면….” ―대통령 체감온도까지 살피나. “MB가 겨울에는 늘 내복과 조끼를 입었기 때문에 사람이 많은 행사장에서는 남들보다 조금 더 더워했다. 그런데 그걸 난방이 과해서라고 여겼기 때문에 경호실에서 늘 온도를 측정하고 일정하게 유지했다. 2010년 3월 대전에서 업무보고를 받는데 어디서 찬 바람이 쏴하고 들어오더라. 열린 창문도 없는데 이상해서 보니 방문 하나가 열려 있는데 경호원이 그 안에 있는 대형 에어컨을 틀고 있었다. 사람이 많아 온도가 올라가는데 경호상 창문은 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더우면 에너지 낭비라고 대통령한테 혼날 것 같고, 창문은 열 수 없으니 적정 온도 유지를 위해 3월에 에어컨을 튼 거다.” 이진구 기자 sys1201@donga.com}

올 2월 대구에서 코로나19가 대유행했을 때 전국의 수많은 의료진은 “가자, 대구로!”를 외쳤다. 급증하는 환자를 감당할 수 없던 대구시의사회가 SOS를 치자 이에 화답한 것이다. 늙었지만 쓰일 데가 있다면 써달라는 노(老)의사, “죽으러 가냐”며 말리는 딸을 뿌리친 어머니 의사도 있었다. 5급 지체장애인이면서 기초생활 급여로 생활하는 강순동 씨(46)는 7년간 모은 암보험을 깬 118만7360원을 대구에서 고생하는 의료진과 환자들에게 기부했다. 강 씨의 선행 기사를 본 한 시민은 강 씨를 위해 같은 금액을 기부했고, 또 다른 시민은 직접 만든 밑반찬을 강 씨에게 보냈다. 사랑과 온정 바이러스는 코로나보다 강했다. ▷민간병원 최초로 코로나19 거점 전담병원으로 전환한 경기 평택 박애병원에 전국에서 의료진의 자원봉사 지원이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박애병원은 확진자가 폭증하면서 병상 대란이 목전에 닥치자 자발적으로 전체 병상을 소개(疏開)하고 전담병원으로 전환했다. 대규모 공사를 거쳐 24일부터 진료를 개시했는데 잠시 귀국한 기간에 달려온 의사, 고위험군에 속하면서도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겠다며 자원한 노의사 등 사연도 가지가지다. ▷전담병원 전환을 결정한 김병근 박애병원장은 올 초 대구경북 지역의 1차 대유행 때 가장 빨리 자원봉사를 다녀온 인물이다. 병원 손실이 예상되는 등 전환에 따른 내부 반대도 만만치 않았지만 상황이 너무 심각해 이것저것 따져볼 겨를이 없었다고 한다. 진료를 개시한 24일 전국에서 추가 확보된 병상이 176개인데 이 중 박애병원이 140개(중환자 20개, 준중환자 80개, 중등증환자 40개)에 이른다. ▷1960년대 이탈리아 이민자들이 정착한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로세토 지역 주민들은 기름진 음식과 과도한 술, 담배, 열악한 노동 환경 등 심장병에 매우 취약했는데도 발병률은 전국 평균의 절반도 안 됐다. 이별이나 파산 등 중대한 위기에 처했을 때 이웃이 나서 도와주는 공동체 문화가 건강에 영향을 미쳤다는 걸 추적 조사를 통해 밝혀냈는데 이를 ‘로세토 효과’라고 한다. 공동체가 나를 지켜줄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이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연구가 진행되던 시기 로세토의 범죄율은 0%에 가까웠고, 대학 진학률도 비슷한 경제 수준의 다른 지역보다 월등히 높았는데 공동체의 건강성이 여러 방향으로 확대된 결과라는 해석이다. 코로나19는 재앙이지만, 극복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건강성을 곳곳에서 확인하는 계기도 됐다. 최근 확진자가 늘고는 있지만 전체 인구 대비로 보면 우리는 양호한 편이다. 그 배경에 로세토 못지않은 ‘코리아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닐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세계보건기구(WHO)는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크게 S형 L형 V형 G형 GH형 GR형 등 6종으로 구분하고 있다. 국내에는 S형이 처음 등장했는데 올 초 대구경북 신천지발 바이러스는 V형, 5월 재확산을 주도한 서울 이태원 클럽발 바이러스는 GH형이다. 유형을 바꿀 정도는 아니지만 자기복제와 감염 과정에서 오류를 일으켜 유전자 배열이 다른 코로나바이러스가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런 것까지 포함하면 형태가 조금씩 다른 코로나19는 수백 개에 이른다고 한다. ▷영국 정부가 최근 런던을 포함한 잉글랜드 남동부 지역의 코로나19 대응 수위를 4단계로 올렸다. 당초 크리스마스 시즌을 앞두고 완화하려고 했지만 기존 코로나19보다 감염력이 최대 70%나 높은 ‘변종’ 코로나19(VUI-202012/01)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영국은 원래 3단계까지만 있었지만 4단계를 신설했다. 체육관과 미용실 등 ‘비필수’ 업종은 영업을 중단하고, 야외에서도 1명만 만날 수 있게 하는 등 지역 봉쇄 수준이다. 영국 정부는 약 2주간 추이를 본 뒤 지속 여부를 검토할 예정이라고 한다. ▷다른 형태의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등장할 때마다 흔히 ‘변종’이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하면 지금까지 나타난 다양한 형태의 코로나19는 변종(變種)이 아닌 변이(變異)다. 변종은 코로나19와 메르스(MERS·중동호흡기증후군)처럼 완전히 다른 종으로 바뀌는 것인데 사람과 호랑이의 차이만큼 크다. 지금까지 등장한 여러 코로나19는 수만 개로 이뤄진 자체 유전물질(RNA) 중 한두 개가 달라진 정도라 변종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바이러스의 종 자체가 달라지면 기존 바이러스를 기준으로 개발된 백신은 무용지물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새로운 형태의 코로나19가 나타날 때마다 공포에 휩싸인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나타난 여러 코로나19는 감염력은 점차 높아졌지만 접종 중이거나 개발 중인 백신을 무력하게 만든 것은 아직까지 없다고 한다. VUI의 경우도 아직 조사 중이지만 변종보다는 변이에 가까운 것으로 알려졌다. ▷무증상 감염, 재감염, 후유증 등 코로나19는 우리가 그동안 알던 바이러스 상식을 무참히 깨왔다. 코로나는 더 완벽하게 우리 몸에 침투하기 위해 변이하고 있고, 그러다 보니 조금만 모양이 달라져도 더 엄청난 괴물로 변신한 것 같은 두려움이 드는 건 당연하다. 턱없는 자신감은 당연히 금물이지만, 그렇다고 괴물 가면을 쓴 상대를 괴물로 증폭시킬 필요도 없을 것이다. 백신 접종은 시작됐지만 아직도 가야 할 길은 멀다. 어떤 경우에도 과학적 의학적 지식에 근거해서 차분하게 대응해야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14년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반지하에서 세를 살던 세 모녀가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어머니와 큰딸은 병으로 일을 할 수 없었고, 작은딸은 간간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신용불량 상태였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카드 빚으로 충당했기 때문이다. 모녀가 남긴 편지 봉투에는 “주인아주머니께… 마지막 집세와 공과금입니다. 정말 죄송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는데 안에는 70만 원이 들어 있었다. 마지막 선택을 하면서도 집주인에게 폐를 끼치는 걸 미안해한 ‘선함’에 가슴 저미는 듯한 아픔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다. ▷이 일을 계기로 우리 사회가 복지 사각지대 해소에 많이 나섰지만 여전히 많은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자발적으로 복지 사각을 선택하는 안타까운 경우도 많다. 자식에게 해준 것도 없는데 장례까지 떠넘기는 게 미안해 나 홀로 죽음을 선택하거나, 자식의 가난을 증명해야 복지 혜택을 받는다는 걸 알고 스스로 기초생활수급자 신청을 포기한 노인들도 있다. 한 노부부는 “재산 한 푼 물려준 것도 없고, 벌이도 적은 애에게 재산·소득 증명서를 떼 달라고 하면 얼마나 속이 상하겠느냐”고 신청 포기 이유를 말하기도 했다. 둘 중 하나만 남으면 오히려 자식들에게 짐이 될 거라며 어버이날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한 60대 부부도 있다. ▷최근 서울 서초구 방배동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60대 여성이 숨진 지 약 반년 만에 발견됐다. 발달장애가 있는 30대 아들은 숨진 어머니 곁을 지키다 전기·가스 등이 끊기자 집을 나왔다고 한다. 노숙을 하던 아들은 몇 달 만에 자신을 돌봐준 사회복지사에게 어머니의 죽음을 알렸다. 숨진 여성은 얇은 이불을 머리까지 덮고 있었는데 아들은 “파리가 들어가는 걸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고 한다. ▷숨진 여성은 무려 100개월 치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했고, 전기·가스 요금도 올봄부터 밀렸다고 한다. 건강보험공단은 이런 내용을 사회보장정보시스템에 올렸지만 해당 구청은 알지 못했다. 보건복지부가 입력된 정보를 토대로 지자체에 취약가구를 통보하는데, 기초생활수급자 혜택을 받으면 제외하기 때문이다. 복지 시스템이 되레 사각을 만든 셈이다. ▷양극화는 심해지고 1인 가구, 고령화도 느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취약계층의 어려움이 더 커졌다. 제도적 보완도 필요하지만 혹시나 어느 집 가스, 수도를 끊을 때 누군가 한 번만이라도 ‘그런데 밥은 어떻게 먹고 살고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면 어땠을까. 끊더라도 직접 만나 알려줬다면 거창한 이름을 가진 시스템도 필요 없었을 텐데…. 안 그래도 힘든 시기에 답답하고 안타까워 든 생각이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민·주·화. 목이 터져라 외쳤던 그 이름을 30여 년이 지나 다시 외칠 줄 누가 알았을까. 다른 의견을 말하면 처벌하고(5·18민주화운동 역사왜곡 처벌법), 북한 인권을 위해 전단을 날리면 잡아가는(대북전단금지법) 세상. 자신들은 우상화(민주유공자 예우법)하고, 미운 놈은 출마도 막으려는(윤석열 출마금지법) 정권. 민경우 전 조국통일범민족연합(범민련) 남측본부 사무처장(55)은 9일 “민주화 운동 출신 정권에서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다”고 말했다.》 ―현 정권은 민주화 운동 인사들이 주류인데 왜 비민주적인 모습이 많은 건가. “우리가 보통 아는 민주주의는 상대를 인정하는 거다. 그래야 대화든, 토론이든 할 수 있으니까. 그런데 학생 운동 시절 우리에게는 그런 개념이 없었고 배우지도 못했다. 상대는 그냥 적이고 타도의 대상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민주주의를 부르주아 민주주의와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로 구별하는 이분법적 사고가 들어왔는데 쉽게 말해 부르주아 민주주의는 거짓 민주주의고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더 완성된 형태의 진짜 민주주의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조직을 만들고, 권력을 접수하고, 저항하는 자는 분쇄하라는 방법론까지 들어왔다. 프롤레타리아 민주주의가 정말 위험한 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주장과 행동을 민주라는 이름으로 합리화하기 때문이다.” ―지금 정권이 어떤 점에서 닮았다는 건가. “상대(윤석열 검찰총장)를 잡더라도 민주적 절차는 지켜야 하는데 지금 보는 대로 그런 게 없지 않나. 문재인 대통령은 형식적 민주주의와 내용적 민주주의를 구분한다. 1980, 90년대 운동권에서 썼던 표현이다. 민주주의를 두 단계로 구분하면, 내용적 민주주의로 가기 위한 어떤 행동도 진짜 민주주의를 실현하는 과정으로 정당화된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은 과거 운동권적 행태에 기반을 둔 권력욕으로 사회를 벼랑으로 몰아가고 있다.”※ 윤 총장 찍어내기의 경우 수사권 없는 법무부가 수색을 지휘했고, 감찰조사가 끝나기도 전에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결과를 발표하고 징계를 청구했다. 감찰 시 의무규정이던 법무부 감찰위원회 자문은 임의규정으로 바꿨다. 이런 부당함에 대한 비판은 검찰개혁을 반대하는 세력의 저항으로 몰고 있다. ―룰이 도움이 안 되면 바꾸거나 없애고, 없으면 만들고 있기는 하다. “보통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운동권 출신들에게는 넘어선 안 되는 선 같은 심리적 저지선이 없다. 선을 마구 넘나들며 운동했던 습관이 있어서…. 예를 들어 문과대 학생회장은 문과대 학생들의 총의로 뽑혀야 하지 않나.” (당연한 거 아닌가.) “그렇지 않았다. 지도부를 장악하기 위해 선거에 아주 깊숙이 개입했다. 누구를 밀고, 누구를 컷오프 시킬지 등등. 선거를 관리 감독하는 측조차 투표율이 낮아 우리 편이 질 것 같으면 전화를 해서 투표를 시켰다. 유권자 명부를 갖고 있으니 연락처는 물론이고 누가 투표를 했는지, 안 했는지 아니까. 이런 일이 과거 한국대학생총연합회(한총련) 선거에서 무진장 벌어졌다. 우리 편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룰도 우습게 여기는 사고방식과 행태들이 그때 집단적으로 만들어진 거다. 그런데 20대 학생 때도 아니고 이제 나이가 들어 국회의원 정도 되고 사회 지도층이 되면 자기의 과거 모습을 바꿔야 하는데 달라지지 않고 똑같다.” (금태섭 전 의원을 징계하고 재심 청구조차 안 받아줘 탈당하게 만들었는데.) “그런 거다. 소속 지자체장이 물의를 빚어 생긴 재·보궐선거에는 후보를 안 내겠다고 당헌에 명기하고도 언제 그랬냐는 듯한 태도.”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정권이 이렇게 과격하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현 정권에서 굉장히 두드러진 모습인데… 학생운동도 제대로 안 한 사람들이 굉장히 과격해졌다. 생전 돌 한 번 안 던져본 친구들이 마치 민족과 정의의 수호자인 것처럼 막 나선다. 데모는 무섭다. 맞는 건 물론이고 잡히면 구속도 되니까. 그러다 보니 제대로 운동을 한 사람들은 데모를 할 때 이리저리 따져보고 신중하게 한다. 앞에서는 돌을 던져도 뒤로는 협상을 한다.” (시위 중에 협상을 한다고?) “학교 측과 경찰의 진입 수위도 논의하고, 단식 농성도 경찰과 적당한 선을 조율한다. 그런데 데모를 뒤나 안전한 곳에서 한 친구들은 쓸데없이 과격하고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오늘 투쟁 수위가 정해져 있는데 그런 과격한 주장이 갑자기 세지면 수습이 안 되는 거지. 그래서 운동권 내부에 어떤 불문율이 있냐면… 쓸데없이 과격한 투쟁을 주장하는 애들은 눈여겨봤다가 배제한다. 그런 친구들은 아주 순수할 정도로 바보거나 아니면 프락치다.” (오히려 투쟁을 망치는?) “지금 정권은 과격한 행동을 통제·조율하는 기능이 마비됐다. 배제돼야 할 바보들이 집단화돼서 정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집단 전체가 과격해졌다. 더군다나 대통령은 ‘댓글은 양념’이라며 부추겼고…. 제대로 운동을 안 한 친구들이 앞에 나서면 돈도 많이 깨진다.” (돈은 왜?) “시위가 과격해지면 많이 다치니까. 병원비와 변호사비가 많이 든다. 이래저래 도움이 안 된다.” ※ 문 대통령은 2017년 3월 대선후보 경선에서 승리한 후 경쟁 후보에 대한 ‘문파’들의 비방 댓글과 문자폭탄을 “경쟁을 더 흥미롭게 만드는 양념”이라고 했다.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 만세를 외쳤던 젊음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그 뜨거운 맹세는 어디에 갔나. 민주투사들 손에 파괴되는 민주주의. 지금 입에 문 고깃덩어리 때문이라면… 너무 추하지 않은가. ―현 정권 실세라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우상호 민주당 의원 등은 학생운동을 세게 한 편인가. “평가하기 나름이겠지만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그들이 총학생회장을 한 1987∼89년은 이미 군사정권의 기가 꺾인 때였다. 92년 전국연합 할 때 그 친구들을 봤는데 당시는 김일성이 분단 50주년이 되는 1995년을 통일 원년으로 삼자고 해 운동권 모두가 총궐기를 앞두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지금 민주당 핵심을 차지하는 운동권 출신들은 적당한 지위까지만 하고 다들 이 그룹에서 빠져나갔다.” ※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은 민족민주운동의 구심체 역할을 했던 1990년대 한국 최대의 재야운동단체다. ―주사파 논란까지 있는데 빠져나갔다고? “1980, 90년대 학생운동은 거의 다 민족해방(NL)이라고 보면 되고, NL은 혁명이 목표였다. 당시 학생 운동 상층부는 김일성을 수령으로 하고 북한에 흡수 통일되길 바란 사람들이라고 보면 된다. 나도 그랬고.” (군사독재 정권의 조작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다. 내가 주사파였으니까. 그런데 좀 온도 차이는 있다. 옛날 통일혁명당,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처럼 실제로 그런 사상을 신념화한 집단도 있지만 우리 정도는 대학생들의 겉멋으로 보면 된다.” (구별이 되나?) “쉽게 말해 법정 최후진술 때 ‘나는 공산당이 좋아요’를 했는지 안 했는지를 보면 된다. 그 말에 따라 형량이 크게 차이가 나니까. 비전향 장기수들이 그런 사람들이지. 우리 정도는 그렇게 말 못 한다. 그리고 지금 일본과의 마찰도 NL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일본과의 마찰에 NL의 사상적 배경이 있다는 건가. “혹시 김일성의 ‘갓 끈 전술’을 들어본 적이 있나? 갓은 한쪽 끈만 끊어져도 떨어져 날아간다. NL은 일본을 미국과 한국을 엮는 고리로 보는데 일본을 끊으면 미국도 끊을 수 있다는 전술이다. 내가 2000년 통일운동을 할 때 실제로 그런 논리를 염두에 많이 뒀다. 일본 공격이 반일이 목표가 아니라 반미를 위한 우회 전략인 셈이다. 우리 국민의 반일 정서가 뿌리 깊다 보니 이용하기도 좋고. NL은 이런 걸 이용하는 데 아주 능하다. 그런데 지금 양국 간에 마찰을 빚는 사안 한두 건을 해결한다고 풀릴까?” (윤미향과 정의기억연대의 회계 부정 문제가 터졌을 때 집권세력에서 ‘친일 세력의 최후 공세’라고 했는데 연관이 있나.) “위안부 문제는 여성들의 인권 문제와 민족의 수난, 두 가지 측면이 있다. 그런데 NL은 철저하게 후자다. 그들이 피해 할머니들의 돌봄이 아니라 반일 감정을 증폭시키는 사회운동에 비중을 두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래서 그 운동의 상징인 윤미향을 공격하는 것은 뒤에 뭔가 의도가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지금 좀 흐지부지된 것 같은데 검찰이 윤미향 사태를 더 파고들면 난리가 날 거다. 자금 흐름이 아주 불투명하니까….”민경우는…학생운동이 하고 싶어 서울대 의대를 자퇴하고 1984년 국사학과에 입학. 1987년 서울대 인문대 학생회장과 10년간 이적단체인 범민련 사무처장을 지냈다. 민족해방(NL)의 핵심 이론가로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총 4년여간 복역했고, 이후 민주노동당에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저지 운동을 했다. 2012년부터는 운동을 접고 생업에 종사하고 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미국 최초의 여성 국무장관인 매들린 올브라이트는 실력과 품격을 겸비한 여장부였지만 브로치 하나로 국가 정책의 의중을 담는 섬세함도 가졌다. 2000년 당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그녀의 브로치를 통해 당신네 의중을 파악한다”고 했는데, 그날 그녀는 ‘악은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말라’는 뜻으로 세 마리 원숭이 브로치를 달았다. 러시아의 체첸 사태 부인을 꼬집었다고 한다. ▷한 나라의 장관들이 국민의 자랑은 고사하고 창피함의 대상이 된다면 말이 될까. 2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이 회의 내내 인사말도 못 하고 발언권을 박탈당하는 초유의 수모를 겪었다. 성추행 피해자를 돌봐야 할 여가부 수장이 내년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놓고 “국민이 성인지 감수성을 집단학습할 수 있는 기회”라고 해 상임위가 파행됐는데, 여야가 장관이 말하지 않는 조건으로 개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이날 회의는 법안에 대한 의원들의 질의도, 장관의 설명도 없이 진행됐다. ▷같은 날 홍남기 경제부총리의 ‘서울 중저가 지역으로 매수 심리 진정세가 주춤한 양상’이란 말도 비웃음을 샀다. 시장이 진정되고 있다는 뜻인지, 다시 끓어오른다는 건지 언뜻 이해하기 힘든 화법이기 때문이다. 집값은 잡고 싶은데 통계는 반대이다 보니 오죽하면 그런 말이 튀어나왔겠냐는 동정론까지 나왔다. 명색이 법무부 수장인데 법도 절차도 아랑곳없는 추미애 장관, 언제는 공급이 충분하다더니 이제는 “아파트가 빵이라면 밤새도록 찍어내고 싶다”는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한국공인중개사협회가 지난달 ‘부동산 산업의 날’ 장관 표창을 안 받겠다고 했을까. ▷인터넷에는 이정옥 장관 외에도 국회 출석 때마다 국민의 화를 돋우는 다른 장관들도 묵언 조치해 달라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장관의 국회 발언은 그 자체가 정책에 준할 정도로 중요하다. 주무 장관의 말은 기관과 정책의 신뢰성을 더하거나 훼손하는 데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관들의 입을 막아 달라는 국민들의 요구가 빗발친다면 없는 게 더 낫다는 뜻일 것이다. ▷‘장관 발언 금지’는 사실 망신 주기에 가깝고, 국회의 품격도 떨어뜨리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태는 대통령 눈치만 보며 현실을 견강부회(牽强附會)하고, 군색한 변명만 늘어놓은 장관들 스스로가 초래한 면이 크다. 입을 열 때마다 ‘오늘은 또 무슨 사고를 칠까’ 걱정이 되고, 듣고 나면 딴 나라에 알려질까 창피하니 왜 부끄러움은 늘 국민의 몫인가.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올 6월 1일 국민의힘 김종인 지도부가 국립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공식 업무에 들어갔다. 그는 취임 일성으로 “보수만 말하는 정당은 살아남을 수 없다” “쇄신에 불만이 있어도 시비 걸지 말라”고 기염을 토했다. 그로부터 6개월. 국민의힘 안팎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말은 “왜 그렇게밖에 못 하느냐”다. 박진호 김포갑 당협위원장(31·전 여의도연구원 부원장)은 “총선 패배 후 당을 안정시키는 데 더 주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당 원내대표실 부실장이기도 한 그는 지난해 11월 직을 걸고 인적 쇄신을 요구한 6인의 원외 당협위원장 중 한 명이다.》 ―다시 묻고 싶은데… 국민의힘이 제대로 못 하고 있다는 말이 많다. “만나는 사람마다 그런 말을 하는데… 총선 패배 이후 흔들리는 당을 안정시키는 데 주력하다 보니 그런 것 같다. 그래도 김종인 위원장이 광주 국립5·18민주묘지 추모탑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하고, 경제3법을 지지하는 등 기존의 당 입장과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까… 지금 당무감사가 진행 중인데 나도 지금까지 받아본 것 중 가장 힘들게 치렀다. 결과가 나오면 아마 그동안 준비한 쇄신 작업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신호탄이 되지 않을까 한다.”※ 김 위원장은 8월 19일 광주를 방문해 전두환 신군부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 참여, 5·18민주화운동에 대한 당내 일부 인사들의 망언에 대해 “부끄럽고 또 부끄럽고, 죄송하고 또 죄송하다”고 사죄했다. 그러나 개인 차원이지 당 차원으로는 이어지지 않았다는 지적이 많다. ―김 위원장이 민주당에 있을 때는 이해찬 정청래 의원을 공천 탈락시키는 칼을 들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때와 차이가 있는 건 사실이다. 과거에 수시로 발생하던 망언이나 실수가 줄기는 했지만 당 차원의 과감한 내부 개혁이 있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 같다. 아쉬운 게, 야당의 힘은 결국 국민의 지지에서 나온다. 국민이 신뢰하지 않는 야당이 아무리 정부여당을 공격한들 힘이 붙을 리가 없지 않나. 청와대와 여당이 우리를 무시하는 것도 우리 뒤에 국민이 없다는 걸 그들이 알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의 실정을 신랄하게 공격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지금까지 못 한 사과와 반성을 하고, 그에 상응하는 책임도 지면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사과와 자성에 부정적인 시각이 여전히 당내에 있지 않나. “자성, 혁신 단어만 나오면 단골로 등장하는 말이 있다. 아군 등에 칼 꽂는다, 적 앞에서 우리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 왜 이제 와서 생뚱맞게 그러느냐 등등. 늘 나오는 말인데 거의 100% 먹힌다. 쇄신을 요구하는 사람들도 분열로 선거에 졌다는 말을 듣기 싫어서 조금 외치다 만다. 올 총선만 해도 조국 사태 등 정부여당의 실정으로 야당 바람이 불 줄 알았다. 나도 그런 말을 하고 다녔으니까. 그런데 결과는…. 정부여당에 대한 국민의 분노는 분명히 있지만 그 민심이 우리를 지지하는 데까지는 오지 않고 있다. 이유는 분명한 거고.” ―비대위가 혁신 차원에서 정강정책에 4선 연임 금지를 넣겠다고 초안을 발표했는데 당내 반발로 철회했다. “그랬다. 언론에서 잘해 보라고 사설까지 써주며 호평을 했는데…. 사실 3선이든 4선이든 지금 의원들은 모두 초선으로 간주해주는 안이었다. 그래서 다음 총선이 아니라 12년 후인 2032년부터 적용되는 거다. 그마저도 정강정책을 의결하는 상임전국위원회에 올라가지도 못했다. 반발이 심해서. 전부 그 이상 하고 싶은 거지.” (김 위원장은 왜 밀어붙이지 않은 건가.) “그런 게 좀 아쉽다. 국민 앞에서 초안 발표까지 했다면 좀 독단을 부려도 될 텐데…. 이런 표현은 좀 그렇지만 지금 당 안에서 ‘위기감’을 보기 어렵다. 비대위가 아니라 평상시 최고위원회 같은….” (평상시 최고위원회?) “당 대표부터 각 위원이 쭉 돌아가면서 한마디씩 하던 거. 나름 고민하고 하는 말이겠지만 한가한 내용이 많다. 명색이 비대위고, 더욱이 9명 중에 3명이 30대 청년인데 당에 쓴소리는 별로 없다. 정치적 커리어 쌓기로 여기는 게 아닌지….”※ 지난 한 달간 비대위 모두발언에서 이들 30대 위원들이 한 말은 피트니스계 불법 약물, 보유세, 조두순, 스토킹방지법, 이건희 리더십 등 일반적인 사안들이다. 발언 내용에 제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비대위’ 상태라는 걸 생각하면 좀 한가하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다른 위원들도 마찬가지다. 한 비대위원은 박원순 전 서울시장에 대한 섹스 스캔들 발언으로 두 달 활동 정지 처분을 받았다.―혁신이 어렵다면 현실 대응이라도 잘해야 하는데 여당의 가덕도 신공항 추진을 꼼꼼히 따지기는커녕 앞장서서 특별법을 냈다. “개별 의원들의 입장이 다를 수는 있겠지만, 우리가 집권할 때 김해신공항으로 결정한 거다. 그걸 뒤집는다면 정책의 일관성은 어떻게 하나. 김해신공항 검증위원회의 검증 과정도 온통 의혹투성이다. 그러면 진상조사위를 만들고 상임위를 열어 검증 과정을 짚고, 국정조사를 요구해야 하지 않나. 더 심하면 검찰 수사도 의뢰하고.” (그런 말이 안 나오나?) “안 나온다. 오히려 알다시피 당내 부산 의원들 전원이 예비타당성조사(예타)도 면제해주는 특별법을 여당보다도 먼저 발의했다. 여당 술수에 말린 건데, 이렇게 계속 말리면 내년 보궐선거 끝나고 5번째 비대위가 서지 않는다고 장담할 수 있을까.”※ 지난해 정부가 24조 원 규모의 국책사업에 예타를 면제하자 자유한국당은 ‘총선을 겨냥한 매표행위’ ‘역사는 문재인 대통령을 국가 재정을 파탄시킨 주범으로 기억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주호영 원내대표가 특별법을 발의한 의원들을 강하게 질책했다고는 하지만 법안을 철회시키지도 않고 있다. “애매하게 저쪽 술수에 말린 것 같다. 그런데 정말 가덕도 신공항이 만들어지면 그 열매를 우리가 먹을까? 민주당이 가져가지. 그리고 지금 잘못하고 있는 게… 선거 이슈가 성추행이 아니라 공항 건설로 바뀔 우려도 크다. 개인적으로 나는 그동안의 모든 우리의 잘못을 속죄하는 의미에서 서울 부산 보궐선거에 후보를 안 내는 건 어떨까 싶다.” (미쳤다고 펄쩍 뛸 것 같은데.) “그럴 거다. 그런데 넓게 생각했으면 좋겠다. 20대 총선 막장 공천, 탄핵, 이후에 벌어진 숱한 망언, 전직 대통령들의 구속 등등 지난 4년간 우리도 많은 잘못을 저질렀지만 공식적으로 사과 한번 제대로 한 적이 없다. 여전히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워낙 오랫동안 안 하다 보니 이제는 사과하자고 하면 ‘왜 이제 와 뜬금없이?’ ‘문재인은 더 잘못하고 있다’ ‘여당에 공격의 빌미를 준다’고 한다. 우리가 덮으면 뭐 하나? 국민이 기억하는데. 사과도 말로만 하면 무슨 의미가 있나. 국민이 볼 때 정말 참회했다는 각인이 들 정도로 어려운 행동을 해야지. 그동안의 모든 잘못을 반성하고 책임지는 차원에서 과감하게 후보를 내지 않는다면 우리의 진정성을 국민들이 믿어주지 않을까.” ―그 정도 생각을 받아들일 정도라면 이렇게 되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렇긴 한데…. 서울 부산 지면 대선도 없다고 하는데, 보궐선거만 이기면 대선까지 바로 이길 것처럼 여기는 건 아닌 것 같다. 국민들이 보기에 국민의힘이 크게 변했다, 드디어 정신 차렸구나 하는 행동을 해야지. 저쪽은 당헌까지 바꿔 가며 아득바득 시장 자리를 탐하는 정당. 우리는 그동안 저지른 많은 잘못을 반성하는 차원에서 선거 포기라는 쓴 약을 마다하지 않는 정당. 그렇게 크게 반성하고 변해서 2022년 지방선거에서 당당하게 이기는 게 낫지 않을까. 불과 1년 차이인데…. 그리고 솔직히, 달라진 것 없이 반사이익으로 정권을 잡아도 걱정이다.” ―도로 새누리당이 될까 봐 그런가. “지금 우리 당도 그렇고 보수 지지층에서 문재인 정권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하고 있다. 그런데 스스로 잘해 점수 따서가 아니라 오직 반사이익으로만 집권을 하면, 진상 규명이라는 이름으로 지금 정권의 비리를 파헤칠 거고, 잘못한 건 전부 전임 정부 탓으로 돌릴 거다. 그걸 정당화하기 위해 상대를 더 매도할 거고. 지금 정부가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의 뒤를 잇는 상황이 나오지 말란 법도 없을 거고…. 그러고 나면 저쪽도 다시 이를 물겠지. 그리고 또 반사이익으로 정권이 바뀌면 10년, 15년 앞으로 내내 복수전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리가 변해서, 차악이 아니라 최선이라 선택받는다면 극렬 지지층에 끌려다니지도 않을 테고, 굳이 상대를 매도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당했다고 문 대통령도 감방에 넣어야 하나? 그다음은? 현 정권의 폭정이 도를 넘고 있는데 그다음에 들어선 집권세력이 하나도 안 변한 도로 새누리당이라면 너무하지 않나.”동네 공항 놔준다니 감시는 고사하고 앞장서 예타 면제 특별법을 발의해준 제1야당 의원들. 얼마나 오래하고 싶기에 국민에게 천명한 4선 연임 금지 혁신안도 무산시키나. 혁신은 고사하고 이해관계에는 여당 못지않은 사람들. 쓰레기차 피하려다 똥차 만났는데, 쓰레기차에 다시 치이면 억울해서 어찌 살까. 국민의 짐을 덜어주진 못할망정 근심만 끼치니… 국민의 짐이 너무 무겁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다음 달 13일 출소하는 조두순(68)은 얼마나 달라졌을까. 법무부는 조두순이 150시간의 집중심리치료를 받는 중이라고 했지만 치료 전후가 어떻게 변했는지는 밝히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이 프로그램이 올 5월부터 시작한 6개월 단기인 데다 구체적인 내용도 공개하지 않아 급조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연세대 정신건강의학과 신의진 교수는 “성인 아동성범죄자에 대한 치료는 나조차도 포기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하다고 할 정도로 어렵다”고 말했다.》 ―치료가 어려운 이유가 뭔가. “2006년 경기 안양교도소에서 두 번 이상 아동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을 정밀 조사한 적이 있다. 청소년 대상 프로그램이 효과가 있어 이를 성인으로 확대해 보려는 취지였다. 그런데 기절하는 줄 알았다. 시작부터 벽에 부딪혔으니까.” (어떤 벽에….) “인지행동치료를 하려면 가장 먼저 환자가 질문을 이해하고 자기 상태를 최대한 정확하게 설명해줘야 한다. 그게 치료의 출발점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이 모양 맞추기 같은 비언어성(동작성) 아이큐는 거의 정상인데 언어성 아이큐는 70점이 안 됐다. 질문을 잘 이해하지도, 설명도 못하는 거다.” ―자기 상태를 설명하지 못하면 치료 방향과 방법을 어떻게 잡나. “그러니까, 성범죄자들은 굉장히 다양한 특성을 갖고 있다. 소아성애자도 있고, 다른 범죄를 저지르면서 성범죄를 저지르는 사람도 있다. 범행에 이르는 과정도 성에 대한 통념이 잘못돼서인지, 충동억제가 안 돼서인지 다 다르다. 더욱이 성 변태처럼 요상한 요인들이 있는 경우에는 치료가 더 어렵다. 이런 걸 아주 정밀하게 체크해야 제대로 된 치료 방향과 방법이 나오는데 말이 안 되니…. 치료를 해도 얼마나 나아진 건지 전후 비교도 안 되고. 그래서 우리끼리 언어치료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를 했다.”※신 교수팀이 조사한 아동성범죄자들의 평균 학력은 초등학교 졸업이다. 조두순은 초졸이다.―그런 사실을 2006년에야 알았다는 게 이해가 안 간다. “그런 연구를 한 게 우리가 처음이었으니까. 지금도 국내에 성범죄자 치료에 대한 연구가 많지 않다. 당시에는 더더욱. 2000년 성범죄 사건 때문에 국회에 갔는데 모 국회의원이 ‘신성한 국회에서 감히 성폭력이란 단어를 입에 올리느냐’고 소리 칠 정도로 인식도 낮았다. 정신건강의학과 의사 중에서도 이 분야를 연구하려는 사람은 별로 없다. 개업할 수 있는 분야도 아니고…. 그래서 정부나 공공기관에서 관련 연구도 지원하고 이어가야 하는데 우리는 그런 생각이 없다.” ―당신이 한 연구는 이후 어떻게 됐나. “한국형사정책연구원 의뢰로 한 건데… 사장됐다. 그 연구는 이후에 없어진 것 같다. 14년 동안 계속 이어졌다면 지금쯤은 괜찮은 대책이 나올 수 있었을 거다. 관련 연구도 적은데 그나마도 활용을 안 하니…. 깜깜이 정책이 그래서 나오는 거 아닌가. 캐나다가 이런 분야의 연구가 잘돼 있는데….” (캐나다에 성범죄가 많나?) “그건 아니고 성범죄를 굉장히 심각하게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사나 심리학자들이 이 분야 연구를 많이 하도록 펀드가 발달돼 있다. 이런 게 진짜 공공의료다. 이런 현실에서 조두순에 대한 특별집중치료 프로그램이 있다고? 솔직히 나는 믿지 않는다. 조두순이 어떤 상태인지 기초조사조차 제대로 안 돼 있을 가능성이 높다.” ―출소가 한 달도 안 남았는데 설마…. “법무부가 공개를 안 하니 누가 하는지 알 수 없지만 치료를 하려면 심리학자가 많이 필요한데 대부분 여자들이다.” (여자가 하면 안 되나.) “가해자가 남자니까. 성적 변화를 일으켜야 하는데 여성은 한계가 있다. 그리고 성범죄자들이 여자 치료사에게는 다 털어놓고 말하지 못하는 면도 있다. 우리도 남자 치료사를 구하기가 정말 어려워 애를 많이 먹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치료가 효과가 있으려면 본인 의지가 강해야 한다. 조두순이 그럴까?” ―법무부는 이 목차 외에는 밝힐 수 없다고 한다. “중요한 건 치료의 질이다. 여기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는 항목이 있는데… 우리는 성폭행으로 인한 유산 장면을 보여줄 때 의사들이 아이를 가위로 자르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그러면 청소년 성범죄자들은 울면서 괴로워한다. 자신들의 행위가 피해자들에게 얼마나 고통을 주는지 몰랐던 거지. 그냥 성범죄 피해자가 나온 영화 하나 보여주고 ‘죄송합니다’ 말 한마디 듣고 넘어가면 되는 게 아니다. 그런 건 치료가 아니다. 그냥 성교육이지.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게 고리를 끊는 것인데… 이 고리를 찾았는지도 의문이다.” (고리가 뭔가.) “어떻게 해서 성범죄까지 이르게 됐는지 그 지점을 찾는 것이다. 범죄자마다 다른데 외로울 때마다 술을 마시다가 성범죄에 이르렀다면 술이 고리다. 술 대신 다른 방법을 찾거나 아니면 마시는 시간을 조절해서 성범죄로 진행하지 않도록 하는 거다. 성범죄자를 치료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주무 부처인 법무부는 근본적인 노력은 아무것도 안 했다.” ―추미애 장관은 방지책을 세우겠다는데…. “폐쇄회로(CC)TV만 늘리는 게 무슨 대책인가. 사건이 벌어진 게 12년 전이다. 조두순처럼 인지능력이 무지막지하게 떨어져 분석 자체가 안 되는 성범죄자는 어떻게 할 것인지 이미 대책이 나와 있어야 했다. 연구가 부족하다면 예산을 투입해 했어야 하고, 인력이 없다면 키웠어야 했다. 법무부가 성범죄 대응 주무부처 아닌가. 만약 제대로 검사했다면 조두순은 심리치료가 안 먹히기 때문에 성충동억제 약물을 써야 하는 걸로 나올지도 모른다. 할 일은 아무것도 안 하고 윤석열(검찰총장)만 조지고 있으니….” ―법무부가 조두순 출소 이후를 대비해 조언을 구한 적이 있나. 당신만큼 피해자 상황을 잘 아는 사람도 없는데…. “없다.” (응?) “나뿐만 아니라 피해자 아버지에게도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안산시장도 희한한 게… 문재인 대통령에게 조두순 격리법 만들어 달라고 국민청원을 넣을 정도면 피해자 가족에게 괜찮은지, 필요한 게 뭔지 물어보는 게 상식 아닌가.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 피해자 가족이 속상해하는 게 그런 거다. 대책이랍시고 만든 것에 피해자 의견은 빠져 있다고.” (조두순 대책을 세운다면서 피해자에게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고?) “우리 행정이 그렇다. 10여년 전 배변 주머니 때문에 아이가 재수술 받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수술이 비보험이라 굉장히 비싸 피해자 가족이 감당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당시 범죄피해자보호기금에서 지원하게 해달라고 여성가족부에 부탁했는데 안 된다고 하더라. 보통 의료비로 300만 원을 지원하는데 특별한 경우에 이사회가 승인하면 더 지원할 수 있다. 그런데도 담당 국장이 한사코 안 된다는 거다. 말도 못하게 싸웠다. 하다하다 안 돼서 정부와 실랑이하는 사이에 애가 죽을 것 같아서 국민모금으로 수술비를 마련했다. 그런데 10여 년이 지났는데 이사 비용을 또 국민모금으로 했으니….” ―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에 피해자 주거 지원이 명기돼 있지 않나. 왜 그걸 활용하지 않고…. “피해자 가족이 불안에 떤다고 그렇게 보도가 되고, 숱한 사람들이 청와대 국민청원을 했다. 그래서 이번에는 뭔가 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석 달이 채 안 남았는데 정부가 아무것도 안 하는 거다. 행정 절차를 밟으면 과거 수술비 때처럼 속만 터지다가 되지도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런 문제로 또 정부와 싸우는 걸 아이가 알면 어떤 심정이겠나. 그래서 나중에 절차를 밟더라도 일단 먼저 이사부터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9월 말부터 한국폭력학대예방협회를 통해 국민모금을 시작했다. 계속 전셋값이 오르는 것도 걱정이 되고…. 다행히 국민들이 도와줘서 며칠 전 모 경찰서 근처 보안이 잘된 아파트를 가계약할 수 있었다. 근데 한 달 전보다 1억5000만 원이나 올랐더라.” (부동산 정책 탓인가.) “그런 것 같다.”※범죄피해자보호기금법은 상담, 의료 제공, 취업 관련 지원, 주거지원 및 보호시설의 설치·운영 등에 기금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수술 직후 아이는 배변 주머니를 찬 채 눕지도 못하고 앉아서 장시간 조사를 받았다. 그런 아이를 부르고 카메라 조작법도 몰라 네 번이나 고통스러운 상황을 반복 진술하게 한 검찰. 오죽하면 법원이 국가가 13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했을까. 한사코 수술비 지원은 안 된다고 한 여성가족부. 12년간 관심도 없다가 이제와 CCTV와 보호관찰 강화로 넘어가려는 법무부. 그사이 피해자 가족은 국민의 온정으로 수술비와 이사 비용을 마련했다. 나라가 안 도와줘 국민이 나서다니…. 관군(官軍)은 어디가고, 의병(義兵)만 나부끼나.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국가에 헌신한 분들에게 뭘 해준들 아까울까마는 그걸 스스로 달라 하면 어색하지 않을까. 최근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이 발의한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셀프·중복 수혜라는 비난을 받았다. 이미 2000년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에 관한 법’ 제정으로 명예회복과 보상을 받았는데, 추가로 취업 교육 대출 등의 혜택도 주자는 게 골자이기 때문이다. 발의자 중에는 어처구니없게도 사기, 횡령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윤미향 의원도 끼어 있다. 장기표 전 전태일재단 이사장(75)은 “민주화운동의 변방에 있던 사람들이 콤플렉스 때문에 자꾸 자신들을 포장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현 집권세력이 가장 내세우는게 민주화운동인데 콤플렉스라니요. “제대로 투쟁한 사람들은 민주화운동에 대한 콤플렉스가 없지요. 하지만 변방인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스로는 굉장한 민주화운동가로 보이고 싶은 게 사람 마음 아닌가요. 그래서 상대는 과도하게 독재세력으로 몰고, 자신은 투사로 포장하는 거지요. 사실 징역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문 받고 두들겨 맞는 게 힘들지. 포대 자루에 씌워져 맞아본 적 있습니까?” (그냥 맞는 것과 다릅니까?) “보고 때리면 고문자들도 사람이라 엉덩이나 가슴 같은 데를 때리게 됩니다. 그런데 포대 안에 집어넣으면 어디가 어딘지 모르잖아요. 이빨을 부러뜨렸는지, 눈이 터졌는지… 더 잔혹해지는 거죠.” ―“오래전부터 민주화운동을 한 사람들에 대한 국민의 평판이 좋지 않다”고 하셨습니다만…. “예전에는 사회적으로 민주화운동 인사들을 대접하는 분위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없지 않습니까. 소위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사람들이 권력을 잡고 나니 부정부패에 연루되는 등 자신들이 비판했던 사람들과 똑같은 모습을 보였고, 또 보상도 많이 받았기 때문이지요. 돈만 보상이 아닙니다. 민주화운동 경력 때문에 국회의원 장관 심지어 대통령까지 되지 않았습니까. 국민 입장에서는 ‘예전에 고생한 거 인정하지만 이제는 다 보상받은 거 아니냐, 빚진 게 없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좋게 말하면 상쇄된 거고 나쁘게 말하면 민주화운동 경력을 팔아먹은 거죠.” ※그는 올 4월 21대 총선에서 재산이 4억1964만9000원이라고 신고했다. 25평 아파트에 살고, 이 집을 담보로 주택연금(역모기지)에 가입해 월 95만 원을 받고 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도 보상을 거절하면서 “민주화운동을 한 덕에 국회의원 3번에 도지사까지 했는데 뭘 더 보상을 타먹느냐”고 했더군요. “그 사람 말이 맞습니다. 김 전 지사도 민주화운동 보상 신청을 안 했지요. 나도 마찬가지입니다. 민주화운동 한 덕분에 얼마나 많은 득을 봤습니까.” (선생님은 별로 드신 게 없는 것 같은데요.) “아니에요. 내가 그 경력이 아니라면 이 사무실(신문명정책연구원)을 어떻게 유지하겠습니까. 말난 김에… 독재정권 시절 민주화를 바라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독재에 저항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 같은 사람도 그때 대학생이 아니고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책임졌다면 아무리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잘못해도 데모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우리는 대학이라는 해방공간 안에 있었고, 또 함께할 친구들도 있었으니까 할 수 있었던 거죠. 우리는 정치의식이 높았고, 안 한 사람들은 낮아서가 아닙니다. 그리고 민주화운동만이 국가 발전에 기여한 게 아니지요. 모든 분야에서, 모든 국민이 함께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그 보상을 스스로 요구하면 안 되는 것 아닙니까.” ―운동권 출신들이 제 식구만 챙기면 안 된다고 지적하셨습니다만…. “김대중 정부 시절 서울대 교수 출신인 교육부 장관이 80년대 해직교수 60여 명을 5·18민주화운동 희생자로 선정해 80억 원을 나눠줬습니다. 이 사람들 중 광주와 관련된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더군다나 이미 대부분 김영삼 정부 때 복직돼 해직 기간에 못 받은 월급도 전부 돌려받았지요. 그러고 나서도 민주화운동 출신이라고 국회의원, 장관, 대학 총장, 공공기관 이사장 등을 한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정말 나쁜 사람들 아닙니까?” (2001년에 그 문제를 직접 지적했는데 큰 반향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민주화운동에 대한 부채의식이 있어서… 문제가 있어도 말을 잘 못 합니다.” ―민주화운동 보상을 신청하지 않은 이유 중 하나로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석을 달리해 무죄 판결을 받고 싶지 않았다”고 하셨는데요. “지금 재심 법정을 열어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사살은 무죄라고 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 건 역사가 평가하는 겁니다. 그리고 군사독재에 부역한 판검사들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들이 민주화 후에는 민주화세력에 붙더군요. 민주화운동을 유죄라고 했던 사람들이 세상이 바뀌니 이제는 민주화운동을 굉장히 위하는 것처럼 무죄 판결을 내렸습니다. 내가 이런 사람들에게 재판을 받고 싶겠습니까. 재심을 통해 무죄를 밝혀야 할 사건들이 있습니다. 억지로 간첩으로 몰렸다거나 하지도 않은 짓을 했다는 것 등이죠. 나는 당당하게 민주화운동을 했고 불의한 집단에 의해 유죄를 받았으니 그게 내 명예인데, 그걸 무죄라고 하면 내 명예는 어디로 간 겁니까.”※그는 김영삼 김대중 정부는 물론이고 이명박 정부 때도 지역구 공천과 장관직 제의를 받았으나 모두 거절했다. 2004년 17대 총선에서는 당시 한나라당 김문수 공천심사위원장이 비례대표 최상위 순번을 제안했으나 거절했다. ―선생님은 민주화를 위해 한평생을 바쳤는데 지금 이 나라는 왜 이렇게 된 겁니까. “그 생각을 하면 자괴감이… 어쩌다 이렇게 완전히 거꾸로 된 세상이 됐는지…. 문재인 정권이 군사독재정권에서 파생된 정권이라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이 사람들이 민주화운동을 팔아서 이렇게 만들어 놓으니까… 내가 절대로 가만 둘 수가 없습니다.” (이 정부 하는 걸 보면 그러다 다시 감방에 가실지도 모릅니다.) “그러면 영광이지요.” ―오랜 세월 힘들었던 가족들을 생각해서라도 보상을 받을 수 있는 것 아닙니까. “아내가 고등학교 교사를 했는데… 나 면회 다니느라 그만둔 뒤에는 집집마다 다니며 아이들 가르치는 가정교사를 하며 살림을 꾸렸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미안하지요. 집사람이 ‘당신은 돈을 안 벌어오는 게 문제가 아니라 돈 벌 생각 자체가 없는 게 문제’라고 하더군요. 하하하.” (실례입니다만 보상 금액이 어느 정도나….) “정확히 환산해본 적은 없지만 나보다 훨씬 적게 복역한 사람이 10억 원 정도 받았으니까 그 정도는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사실 제가 고엽제 피해 보상도 신청을 안 해서… 이래저래 가족들에게 많이 미안하지요.” ―월남전 고엽제 피해를 말하시는 건가요. “67년 입대한 그해 여름 월남전에 차출됐지요. 입대 전에 월남전 파병 반대 데모를 했으니 좀 의아할 겁니다. 주변에서 가지 말라고 엄청나게 말렸죠. 개죽음이라고.” (안 갈 수도 있었습니까?) “그 시절에는 한 3만 원 정도 쓰면 안 갈 수 있었어요. 그렇게 빠지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파병 반대 데모까지 하신 분이 왜….) “제가 좀 별난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반대했지만 일단 국가정책으로 결정됐으니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요. 죽기야 하겠냐는 생각도 있었고. 여섯, 일곱 살 때 6·25전쟁을 겪었는데 그때 주변에서 군대 안 가려고 숨고, ‘빽’ 쓰는 걸 하도 봐서… 난 크면 저러지 않겠다고 결심한 것도 영향을 준 것 같아요.” (고엽제 피해 보상 신청은 왜 안 하신 겁니까.) “처음에는 고엽제인지 모르고 옻이 오른 줄 알았지요. 나중에 알았는데… 유전이 된다고 하더군요. 그때 중학생인 아이가 저처럼 가려움증이 있었는데 고엽제 때문이라고 알면 너무 힘들 것 같았습니다. 지난 총선 때 딸이 지원 유세를 했는데… 듣다보니 아비로서 해준 게 없는데 많이 미안하더군요.” 그의 둘째딸 보원 씨는 당시 유세에서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제 아버지 장기표는 오랜 시간 감옥 도망 고문을 당하고서도 10억 원대의 민주화운동 보상금을 신청조차 하지 않으신 분입니다. 그런 보상금은 우리 같은 일반 국민들의 세금을 낭비하고, 민주화운동의 진정성을 해친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제 아버지 장기표는 서울대 법대 시절, 남들은 기피하는 병역을 스스로 다 했습니다. 운동권 시절부터 사회주의의 문제점을 지적했고, 주사파를 질타했습니다. 쉽게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기회를 변화의 기미가 안 보이는 정당이라는 이유로 마다했고, 고액 연봉이 보장되는 공공기관 이사장 자리도 고사하셨습니다. 이렇게 무분별하게 만들어지는 공공기관이 꼭 필요할 곳에 쓰여야 할 세금을 축낸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보고 있나 민주당.장기표는…자타가 공인하는 민주화운동의 대부. 1972년 서울대생 내란음모 사건을 시작으로 5번 수감돼 10년 가까이 복역했고,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등에 연루돼 12년의 수배생활을 보냈다. ‘영원한 재야’로도 불린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유가족이 정부에 진상조사를 요청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나서야 할 우리 정부는 미온적이고, 답답한 유가족은 외신기자회견을 열어 세계 여러 나라의 관심을 호소하고 직접 유엔 서울인권사무소에 조사를 요청했다. 피살 한 달이 다 되도록 우리 정부 어떤 곳도 유가족들에게 관련 상황을 설명해 준 적이 없다고 한다. 그사이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특별보고관은 유가족에 대한 조사를 마치고 이 사건을 국제인권법 위반이라고 명시한 보고서를 23일 유엔 총회에 제출하기로 했다. 피살 공무원의 형 이래진 씨(54·사업)는 “내 나라가 아니라 외국에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말했다,》 ―정부로부터 한 번도 상황 설명을 들은 적이 없다는 게 사실인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군이나 해경에서 진행 상황이나 관련 내용을 알려준 적이 없다. 뉴스를 통해 듣는 게 전부다. 정말 이래도 되는 건지…. 23일 뉴스에서 동생의 피살 소식을 듣고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통일부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지휘통제실 등에 전화를 했다. 다들 알아보고 연락을 주겠다고 하더라. 근데 아직까지 안 오고 있다.” (꼭 브리핑이 아니더라도 유족들과 연락할 일이 많을 텐데 라인이 없다는 건가.) “없다. 내가 유가족 대표인데…. 반면에 유엔 서울인권사무소는 일주일 새 두 번이나 관련 내용을 조사했다.” ―어떤 내용을 묻던가. “유가족이 보는 사망 경위, 해경에서 어떻게 조사하고 있는지, 실종 수색 과정, 정부가 유가족들에게 어떻게 상황 설명을 하고 있는지 등을 물었다. 유엔은 우리보다 훨씬 심각하게 이 사안을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이 자료를 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9월 26일 미국의소리(VOA)에 보낸 이메일에서 이 사건의 투명한 조사를 촉구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 샴다시니 대변인도 남북이 협조해 즉각적이고 공정하며 효과적인 수사에 착수하고 결과를 공개하라고 했다. 킨타나 보고관도 한국 정부가 관련 정보를 공개하고 불법적인 살해를 초래한 북한에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했고….” (어디서 받은 자료인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에게… 유엔 협조를 부탁하려고 국민의힘 하태경 의원과 함께 찾아갔더니 줬다. 따로 유엔에서 보고를 받는 것 같았다.” ―동생이 원양어선 선장이었다고 하던데…. “동생과 나는 전남 완도수산고 어업과(현 어선운항관리과)를 나왔다. 동생은 졸업 후 뉴질랜드 근해에서 호키(hoki)라는 남태평양 명태와 오징어를 잡는 원양어선을 탔는데 1등 항해사로 있다가 마지막에는 선장을 하고 그만뒀다. 한번 나가면 보통 2년 정도 있으니까 힘들지…. 나도 배를 탔는데 선장 제의를 받았지만 배 타기 싫어서 그만두고 지금은 사업을 하고 있으니까. 우리 학교 출신들은 해양경찰이나 해상직 공무원에 경력특채로 많이 뽑힌다. 동생이 늦깎이로 40세에 공무원이 될 수 있었던 것도 그런 이유다.” ―선장까지 한 사람이 30여 km를 헤엄쳐 가려 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간다. “망망대해에서 빠져본 적 있나?” (있을 리가 있나.) “바다에 빠져 오래 있으면 해풍 때문에 가장 먼저 입술이 마르고, 바닷물을 먹게 돼 갈증이 극심해진다. 낮에는 수면에 반사된 햇빛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어 거리 판단을 할 수가 없다. 손발이 부르트고 몸에서는 기름기가 다 빠져나가고, 오한과 두통도 온다. 그런데 아무 장비도 없이, 하다 못해 물도 준비하지 않고 달랑 구명조끼 하나에 뭔지 모를 부유물만 붙잡고 뛰어들었다고? 월북을 작정했다면 최소한 오리발이나 물안경, 비상식량, 물 같은 걸 준비하는 게 상식이지 않나. 실종 지점보다 북한에 훨씬 가까운 곳이 수두룩한데 선장까지 한 사람이 조류가 반대인 것도 상관하지 않고 뛰어들었다는 건 말도 안 된다. 바다에서 30여 km가 어느 정도 거리인지 감이 오나?” (어느 정도인가.) “아시아의 물개라는 조오련이 대한해협 48km 건너는데 음식도 먹고 쉬기도 하면서 13시간이 걸렸다. 먹지도 쉬지도 않고 ‘쌩’으로 헤엄쳐서 갈 수 있는 거리가 아니다.”※1980년 8월 11일 0시 5분 부산 다대포를 출발한 조오련(당시 30세)이 대마도 소자키 등대에 도착하는 데 13시간16분10초가 걸렸다. 그는 체온 저하를 막기 위해 배가 나올 정도로 사전에 지방을 키우고, 횡단 중 1∼2시간마다 영양죽을 먹었다. 비타민 소화제 커피도 수시로 먹었다고 한다.국민이 피살됐는데 억울함을 서구 열강에 호소해야 하는 나라. 헤이그 밀사를 보낸 고종은 힘이 없어 그랬다 쳐도, 지금 이 나라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무엇인가. 아빠 잃은 아들에게 “나도 마음이 아프다”는 대통령. 근거도 제시하지 않고 월북자로 몰면서 할 말은 아니지 않나. ―그래도 해경은 인위적 노력 없이 발견 위치까지 표류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하는데…. “동생이 바다를 잘 알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건데…. 앞서 말한 대로 바다를 잘 아는 사람이 장비도 없이 바다에 뛰어든다는 게 앞뒤가 안 맞지 않나. 진짜 월북하고 싶었다면 중국 단둥이나 강폭이 뛰어서도 건널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두만강 부근이면 쉬운데…. 강화도 주변에도 더 가까운 곳이 널렸고…. 죽을 각오를 하지 않아도 쉬운 방법이 수두룩한데 왜 굳이 30여 km를 헤엄치는 방법을 택하나. 그것도 자기를 증명할 공무원증도, 주민등록증도 다 두고…. 군과 해경은 구명조끼 착용을 보니 미리부터 준비한 거라고 하는데 배 타는 사람이 구명조끼 입은 게 특별한 일인가.” (한강 오리배도 구명조끼 안 입으면 못 탄다.) “기승전은 없고 결론만 있다. 23일 뉴스로 동생의 피살 소식을 들었는데 그때 해경에서 두 번 전화가 왔다. 동생이 평소에 북한을 동경했냐고, 북한에 대해 얘기한 게 있냐고 묻더라.” (그게 방금 동생을 잃은 형에게 할 말인가?) “어이가 없어서 무슨 미친 소리를 하느냐고 했다. 기가 막힌 게… 내가 21일 오후 동생의 실종 소식을 듣고 다음 날부터 수색에 참여했다. 군 발표대로라면 동생은 22일 오후 3시반경 북한 어선에 발견됐고 같은 날 밤 9시 40분경 사살됐다. 동생이 북한에 억류돼 있는 걸 알면서 내가 수색하도록 방치한 거다. 말이 되나? 저쪽에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 엉뚱한 곳을 수색하도록 내버려두다니.”―동생의 아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답장이 왔나. “좀 전(13일 오전)에 등기우편으로 왔다. 그런데 작성 날짜가 10월 8일이다.” (당신이 청와대 행정관에게 전달한 게 8일 오후 아닌가?) “오후 3시쯤이었는데… 그래서 시간상 정말 대통령이 편지를 읽어 보기는 했는지, 작성된 답신은 봤는지도 잘 모르겠다.” (왜 그렇게 생각하나.) “조카 편지와 함께 동생의 장인이 보낸 편지도 함께 전달했는데 답신에 장인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으니까. 만약 봤다면… 서두에 아버님, 아드님께라고 쓰는 게 보통 아닐까. 그래서 받은 그날 담당공무원이 바로 작성하고 공휴일과 주말은 우체국이 업무를 안 보니까 월요일인 12일 등기로 보낸 게 아닌가 싶다. 의전을 바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이 와서 위로의 말을 해주면 좋지 않았을까. 집배원에게 등기로 전달시키는 건 아닌 것 같다.”※인터뷰는 13일 이 씨 사무실에서 진행됐고, 대통령 답신은 14일 공개됐다. 문 대통령의 답신은 ‘아드님께’로만 돼 있고 장인은 언급되지 않았다. ―악성 문자나 댓글 비난이 심하다고 하던데…. “대통령 답신을 내 사무실 주소로 받은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제수씨와 아이들이 사는 곳이 노출되면 안 돼서 내가 받아 보내줬다. 악성 메시지는 정말 엄청나게 온다.” (대깨문 문빠 이런 쪽인가. 뭐라고 하나.) “그런 것 같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만나는 걸 보니 벌써 정치적으로 이용한다, 월북이 자랑이냐, 돈 때문에 동생을 판다, 민폐 가족이다 뭐 그런 거…. 동생은 1남1녀를 뒀는데 정부가 월북 낙인을 찍는 바람에 고등학생인 조카(아들)는 학교도 제대로 못 가고 있다. 친구들이 다 알 테니까…. 날이면 날마다 뉴스가 나오는데 모를 수가 없지 않나. 초등학교 1학년인 딸은 담임선생님 정도만 알고 있다. 친구들은 아직 어려서 잘 모르고…. 아이는 아빠가 해외 간 줄 안다.” ―부모님이 상심이 크실 것 같다. “아버지는 20여 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니께는 아직 알리지 않고 있다. 치매 증상이 있으셔서….” (뉴스가 그렇게 많이 났는데 아직 모르시나?) “드라마 정도 외에는 뉴스를 못 보게 하고 있다. 휴대전화도 안 갖고 계시기 때문에 아직은 모르신다. 언제까지 감출 수는 없겠지만 아직은 알리지 않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이번 추석 때는 가족들이 안 모였나.) “우리가 5남 2녀인데 내가 장남이자 첫째고 동생은 넷째다. 전에는 모였는데 올해는 코로나도 있고, 이번 일도 있어서 모이지 말자고 했다. 30여 년 전인 1986년에도 사촌 누나가 완도에서 우리 군 경계병 실수로 총에 맞아 죽었는데 그때도 가족들의 트라우마가 엄청났다. 그런데 이번에는… 비교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2018년 11월 공군 20전투비행단에서 최현진 일병(당시 22세·고려대 영문과 휴학)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대 내 괴롭힘 의혹이 일었지만 군 검찰은 석 달이 지나도록 기소하지 않았고, 견디다 못한 최 일병의 어머니 송수현 씨(52)가 고소장을 낸 뒤에야 간부 2명을 협박과 직권남용으로 기소했다. 질질 끈 기소와 달리 재판은 전광석화처럼 진행됐다. 기소 두 달여 만에 열린 지난해 7월 1심에서 군 법원은 한 명에겐 벌금 200만 원, 다른 한 명에겐 무죄를 선고했다. 올 4월 항소심에서는 협박 혐의는 빠진 채 1심이 유지됐다. 비슷한 시기, 검찰은 8개월이나 수사를 미루던 한 권력자 아들의 황제휴가 의혹에 대해 한 달 만에 수사를 종결하고 무혐의 처분했다. 있는 자와 없는 자의 차이는 어찌 이리 큰 건가.》 …여러분도 추미애가 될 수 있답니다. 군부대에 강하게 항의하고 부모가 난리치면 현재 있는 군부대에서 옮겨주기도 하고 어느 정도 내 자식을 지켜줄 수 있다는 것을 아들을 떠나보낸 후에 알게 됐습니다….(9월 6일 송 씨가 인터넷에 올린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 미안해’ 일부)―지난달 초 인터넷에 올린 글이 많은 공감을 받았습니다. “지금 사는 집(경기 이천시) 근처에 버스터미널이 있어 군인들이 많이 지나다녀요. 그 애들을 볼 때마다 아들 생각이 나서 힘들면서도, 한편으로 저 아이들 중에도 내 아이처럼 힘든 일을 겪는 사람이 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제 억울함에 대한 하소연도 있지만 아들이 복무 중인 모든 어머니가 저 같은 일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올렸어요. 글을 올린 사이트에 40, 50대 어머니 회원이 많거든요. 혹시라도 아들이 힘들다고 하면 저처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 말고 꼭 자세히 물으라고. 저는 저 자신을 용서할 수 없어 죽지 못해 살고 있으니까요. 너무 순진했어요.” ―순진했다는 게 무슨 뜻인지요. “부모가 나서지 않아도 별일 없을 줄 알았어요. 그게 당연한 거 아닌가요? 그런데 아들이 죽고 나서야… 부모가 부대에 강력하게 항의하고 난리치면 근무지를 옮겨주기도 하고, 관심 있게 살펴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런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다는 것도….” (어떻게 알게 됐습니까.) “장례식장에 온 분들이 얘기 해줬어요. 자기도 군 복무 중인 아들이 힘들다고 하기에 ‘힘들더라도 참아야지’ 했더니 아들이 주먹으로 방바닥을 내리치며 하소연을 했대요. 그래서 그 뒤에 부대에 쫓아가 난리를 쳐서 부대를 옮겨줬다고…. 나도 그랬다면 내 아들이 안….” ―많이 힘들다고 하던가요. “한번은 갑자기 휴가가 잘리게 됐다고 부대에 전화 한 통 해 달라고 부탁하더라고요. 엄마니까 해줄 수 있지 않느냐고…. 그런데 무심하게 이제 일병이니 네가 알아서 하라고 했어요. 부모가 그런 것까지 나서는 건 아니지 않나요. 그런데 애가 ‘내가 하면 씨도 안 먹힌다’고 하더군요. 그때 얼마나 힘들어서 그런 말을 한 건지 알아차렸어야 했는데…. 그때는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어요.” ―추 장관 아들 의혹이 한창이던 지난여름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했습니다. “추 장관 때문에 우리 아들이 그렇게 된 건 아니지요. 하지만 권력기관이 어떻게 그렇게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을 다르게 대하는지 견딜 수 없었어요. 해당 부대는 물론이고 공군본부, 국방부까지 너무 무성의했으니까요. 초기에 변호사가 군 쪽에서 기소는 생각도 안 하고 견책 정도로 끝내려는 것 같다고 하더군요. 이대로 묻히면 너무 억울할 거 같아서 청와대 국민청원에 글을 올리고, 별도로 고소를 했지요. 안 했다면… 군 검찰이 기소도 하지 않았을 거라 생각해요. 정말 문제가 없다면 우리가 고소했어도 기소하면 안 되는 거잖아요. 하지만 결과는 벌금 200만 원이 고작이었어요. 그래서 혹시나 어떤 정의감 있는 국회의원이 관심을 가져주지 않을까 해서 6월부터 1인 시위를 했지요.”※군은 수사 결과에서 “소속 간부들의 지속적인 질책과 언어폭력, 잦은 야근 강요 등의 심적 부담을 견디지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하지만 기소에는 소극적이었는데 유족 변호를 맡은 군 법무관 출신 김정민 변호사에 따르면 명백한 증거가 나오지 않는 한 군 검찰이 적극적으로 기소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흐지부지 묻히는 경우가 많은데 유족이 고소하면 처리 결과를 답해 줘야 하기 때문에 안 하는 것보다는 기소 확률이 높다고 한다. ―정의감 있는 의원이 있었습니까. “아니요. 그런데 어느 날(7월 27일) 오후 7시쯤인가…, 차 한 대가 나가는데 창문이 열리더니 누가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추미애입니다’라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가 ‘엄마가 추미애가 아니라 미안해’란 글귀를 새긴 반팔을 입고 있었거든요. 제가 인터넷에 주문해서 만들었는데… 추 장관을 개인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건 아니었어요. 단지 제가 추 장관처럼 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아들에게 그런 일은 없었을 거란 생각에 한 건데… 정작 추 장관을 보니까 순간 겁도 나면서 한편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더군요.” (당시 추 장관 아들 문제로 국회가 시끄러웠는데 어머니가 입은 옷을 보고도 알은체했다는 건가요.) “별다른 말은 안 했는데…. 그날 집에 와서 저녁 뉴스를 보다가 소름이 끼쳤어요. 그날 추 장관이 국회에서 ‘소설 쓰시네’라고 했더라고요. 의원들 앞에서 그 말을 하고 나가다가 저를 보고 웃으며 인사를 한 거죠. 지금도 왜 굳이 창문을 열고 말을 건넸는지 모르겠어요.”※추 장관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출석했다. ―죄송한데, 그 정도의 일을 겪으면 모든 인맥을 다 동원하는 게 인지상정 아닙니까. “아는 높은 사람이 없어서…. 저는 전화로 보험 상담 일을 했어요. 남편은 자영업자고…. 변호사도 처음에는 제 동생 친구의 딸이 아는 사람을 통해 구했으니까요. 그런데 정당하게 받아야 할 기록조차 ‘빽’이 없는 사람은 못 받는 건가요?”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군 검사에게 수사 기록을 보내 달라고 했더니 부대 방침상 안 된다고 하더군요. 받을 수 있는 자료라는 걸 알고 요구한 건데…. 한 달을 싸워서 간신히 받기는 했지요. 결국 줄 거면서 왜 그렇게 힘들게 만들었는지…. 그걸로 싸우다 공황장애까지 왔어요. 약을 먹지 않으면 견디기가 어려운데 요즘은 추 장관 때문에 더 먹고 있어요. 볼수록 내 아들과 비교되고 억울해서….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 전까지는 장례를 치를 수 없을 것 같아요.” (2년 가까이 되지 않았습니까.) “장례식은 치렀지만 아직 시신은 국군수도병원에 있어요. 화장을 못 하고 있죠. 원통함을 풀어줘야 아들이 편안하게 눈을 감을 것 같아서….”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에는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습니까. “왜요, 알아봤지요. 거기가 대통령 직속 기구인데…. 그런데 우리 아들에게는 소용이 없었어요. 1948년부터 2018년 8월까지 발생한 군 의문사가 대상이라고 하더라고요. 제 아들 일은 그 후에 벌어졌으니까요.” (군에서 알려준 건가요.) “군에서는 그런 기구가 있다는 걸 알려주지도 않아요. 장례식장에 온 군사상유가족협의회 분들이 알려줘서 우연히 알게 됐지요.”※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018년 9월부터 3년 기한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총 1610건이 접수됐는데 그동안 7만여 명이 군에서 숨진 것에 비하면 지나치게 적은 수다. 대부분의 유족이 위원회 존재를 모르기 때문인데, 유족에게 문자나 우편으로 알려주자는 건의가 올라와도 관련법이 없다는 이유로 묵살된다고 한다. 법 개정이 되지 않아 지난달 13일까지 신청한 사안에 대해서만 조사를 한다. ―사건 당시에는 지금 이름이 아니던데요. “원래 제 이름은 송덕순이에요. 아들이 그렇게 된 후에 동생이 점을 보러 갔는데 제 이름이 안 좋다고 했대요. 쓸데없는 망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혹시 내 이름 때문에 아들이 그렇게 된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 그런 생각을 가지고 봐서 그런지 군사상유가족협의회 분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많이 했는데 그분들 중에 이상하게 ‘순’자를 가진 분이 많은 것도 마음에 걸렸고…. 이름을 바꾸기로 결심하고 작명소에 가해자 이름과 생년월일을 가지고 갔지요.” (가해자 이름은 왜….) “아직 법정 싸움이 진행 중이었으니까요. 그곳에서 가해자를 이기는 데 ‘수현’이란 이름이 좋다고 하더라고요.” (정말 그렇게 생각하신 건 아니겠지요.) “…저라고 왜 모르겠어요. 미신을 믿는다고 손가락질할 사람도 있겠지요. 이름 바꾼다고 정말 달라지겠어요. 그런데… 그거라도 붙잡고 매달리지 않으면… 아무 힘도, ‘빽’도 없는 제가 할 수 있는 건 뭐가 있을까요. 저는 추미애가 아니잖아요.” “엄마가 당 대표라 미안해.” 9월 17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추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송 씨의 글이 화제가 된 지 며칠 안 돼서다. 추 장관은 자식 잃은 엄마가 그 말을 듣고 어떤 심정이었을지 생각해 봤을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이탈리아 피렌체에서는 요즘 수백 년 동안 사용하지 않던 ‘와인창문(Buchette del Vino)’이 다시 인기를 끌고 있다. 벽에 낸 작은 구멍을 통해 술을 파는 것인데, 유럽에서 페스트가 창궐했을 때 접촉을 최소화하면서도 장사를 하기 위해 고안됐다. 세월이 흐르며 대부분 구멍을 막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재조명되고 있다. 피렌체 구시가지에만 150여 개가 있고, 품목도 술에서 젤라토, 커피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이탈리아는 강력한 봉쇄로 5월 이후 하루 평균 확진자가 200여 명으로 감소했지만 여름 휴가철을 맞아 조치를 완화한 뒤 8월부터는 하루 평균 400여 명으로 다시 늘었다. 세레나데가 흐를 것 같은 낭만적인 창문 너머에는 확진자 폭증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자영업자들의 눈물이 숨어 있다. ▷추석 연휴에 고향 대신 여행을 가는 ‘추캉스’(추석+바캉스) 인파가 폭증할 것으로 보인다. 강원도 호텔 예약률은 94%가 넘고, 제주에는 30만 명이 몰릴 것이라고 한다. 자연휴양림과 캠핑장 예약은 하늘의 별 따기다. 추캉스는 본래 대형 호텔업계가 마케팅으로 붙인 이름이다. 짧은 연휴에 해외에서 고생하지 말고 호텔에서 각종 패키지를 이용하며 편안하게 지내라는 ‘호캉스’(호텔+바캉스)를 추석 연휴에는 추캉스라고 불렀다. 하지만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귀성 취소 및 해외여행 차단과 맞물려 추석 연휴에 국내 여행을 떠난다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연휴 특수가 당장은 경기에 도움이 되겠지만 길게 볼 필요도 있다. 코로나19가 재확산되면 이후 소비가 더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 올해 5월 황금연휴 때도 강원 속초 강릉 등의 숙소 예약률이 97%가 넘었는데, 4월까지 진정세를 보이던 코로나19가 재확산되는 계기가 됐다. 7월 초 코로나 봉쇄령이 해제된 영국 남서부의 관광 명소인 데번에서는 저승사자 옷을 입은 주민들이 ‘휴가객을 환영한다’는 팻말을 들고 시위를 벌이는 등 유명 관광지 주민들의 걱정은 크다. ▷지자체들은 준전시 수준의 비상 상황에 들어갔다. 제주도는 체온이 37.5도가 넘으면 무조건 진단검사를 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격리시키기로 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증상이 있는데도 오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공언했다. 강원도는 2주간을 특별방역기간으로 정하고 주요 관광지에 방역요원을 배치해 점검하기로 했다. 관광지 주민 중에는 방역에 동참하기 위해 고향에도 안 갔는데 정작 자신의 감염 위험은 더 커졌다며 한숨 쉬는 이들도 있다. 관광지 이전에 사람 사는 곳이고, 나는 놀다 가면 그만이지만 바이러스는 남는다는 점을 잊지 말았으면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나라’(일명 조국흑서)가 고공행진을 거듭하고 있다. 교보문고 9월 둘째 주 집계로 1위. ‘검찰개혁과 촛불시민’(일명 조국백서)은 37위다. 공동 저자인 서민 교수(53)는 “책을 통해 국민들이 현 정권의 치부를 더 많이 알게 된다면 우리가 바라던 정의로운 세상을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책이 굉장히 많이 팔렸다던데요. “7만 부 정도 나갔는데… 저도 이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어요. 하하하.” (출간 후에 달라진 점이 있습니까.) “옛날 학교 선배들에게 전화가 많이 오더라고요. 이 정권 좀 어떻게 해달라고. 저한테까지 그런 기대를 하는 걸 보고 좀 놀랐지요. 제가 무슨 힘이 있다고….” ―서문에서 ‘정권을 비판하려면 이전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할 때’라는 문장이 눈에 띄었습니다. “제가 썼는데… 이명박 박근혜 정부 때는 잡혀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은 있었지만 우리 편이 응원해줘서 할 만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 우리 편이 다 적이니까요. 오죽하면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기자가 기사를 못 쓸 정도라고 했겠어요. 친문 사이트인 ‘클리앙’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예요.” (겪어봤습니까?) “두 달 전에 가입했는데… 그 안에도 가끔 멀쩡한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60일 중징계를 먹었습니다.” (사유가?) “제 글이 싫은 한 회원이 ‘서민, 이 자식아 나가’라고 해서 ‘너나 나가’라고 했더니 반말했다고 경고…. ‘너 한 달에 8만 원 받고 이런 글 쓰니?’라고 해서 ‘나 건물주에 교수인데 왜 돈을 받니?’ 하니까 위화감 조성이라고 경고…. 그렇게 누적된 거죠. 한 달 버티려 했는데 실패했습니다.” (두 달 전에 가입했다면서요.) “클리앙은 50일이 지나야 글 쓸 자격을 줘요. 첫 글 쓴 지 3일 만에 징계 받은 거죠.” ―방송사들이 일대일 토론을 추진했는데 조국백서 측에서 다 거부했다고 하던데요. “좀 놀란 게… 우리 쪽에서 제일 요리하기 좋은 게 저예요. 아는 것도 적고 말도 잘 못하니까. 그런 저조차도 거부하더라고요. 심지어 KBS라디오 쪽에서 더불어민주당 최민희 전 의원이 거부했다는 얘기를 듣고 더 어이가 없었지요.” (왜요?) “그분은 방송가에서 불패의 토론자예요. 남의 말 안 듣고, 자르는 데 일가견이 있어서 절대로 안 지거든요.” ―필진 선정에는 기준이 있었습니까. “특별한 건 없고, 현 정권을 지지했다가 비판으로 돌아선 게 조건이죠. 그 덕분에 부부 사이도 좋아지고, 제 성향이 보수라는 것도 알게 됐네요. 하하하.” (현 정부를 비판하지만 보수는 아니지 않습니까?) “저 사람들과 같은 진보라는 게 너무 부끄러워서 이번 기회에 공부를 했는데… 공부할수록 진보로 사는 게 참 어려운 일이더라고요. 그동안 우리나라 보수가 너무 후져서 제가 진보처럼 보인 것뿐이죠. 아내는 보수 성향이라 전에는 트러블도 좀 있었는데 지금은 같이 까고 있습니다. 대통령 덕분이죠.” ―극성 친문의 공격이 심합니까. “제가 좀 특이해서… ‘문빠’ ‘대깨문’ 공격을 받으면 아주 짜릿해요. 너무 좋아. 힘든 건 별로 없고… 일일이 댓글에 답을 다는 게 좀 부담인 정도? 칭찬이든 욕이든 저 같은 사람에게 관심을 보여준 것에 답을 해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서….” (댓글이 수백 개 아닙니까?) “6000개가 달린 적도 있는데… 거의 다 달아줬습니다. 그런 공격은 별로 안 아픈데… 진짜 안타까운 건 진보 지식인들의 침묵이에요. 존경하는 어떤 분은 ‘문빠들의 공격이 무서워서 말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왜 상처받지 않습니까.) “저를 공격하는 내용이 딱 두 가지인데… 못생겼다는 거와 기생충 연구하더니 기생충이 됐다는 거죠. 논리와 팩트는 없고 얼굴만 까는데… 얼굴은 제가 더 스스로 까고 있고, 저는 기생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그것도 상처가 안 되는 거죠.”―스스로 못생겼다고 할 필요가 있습니까. “어릴 때부터 남들이 하도 그래서 스스로 규정지은 건데… 그걸 이용해 동정심도 좀 받고 싶고… 저는 지금은 용 됐어요. 방송 잘리고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피부 관리도 받거든요.” ―방송에서 잘렸습니까? 이명박 박근혜 정부 시절인가요. “현 정부에서인데…. MBC ‘전참시’(전지적 참견 시점)에 고정 출연진이 된 적이 있어요. 정규 편성 전 파일럿 프로그램에 나갔는데 반응이 좋았거든요. 그런데 2017년 12월 블로그에 쓴 ‘문빠는 미쳤다’는 글 때문에….” (그 글 때문인지는 어떻게 압니까.) “그 글이 많이 보도됐는데 한 열흘쯤 지났나? 제작진이 좀 보자고 하더군요. PD 작가 등 10여 명이 저를 앉혀 놓고 ‘글의 의도가 뭐냐’고 추궁하는데… 2006년에 쓴 ‘차라리 박근혜가 어떨까’라는 칼럼도 보여주면서 ‘너 박사모 아니냐’고도 하고…. 반어법이라고 해명을 하면서도 저 자신이 너무 비굴하고 한심하더라고요.” ―왜 그런 구차한 설명을 한 겁니까. “사실 미련이 있어서….” (미련요?) “전에 다른 프로그램에서 덜 유명한 분들하고 할 때는 서너 시간을 찍어도 나가는 게 별로 없었어요. 근데 이영자 전현무 이런 분들하고 함께하니까 와∼ 두 시간 반 찍고 2회로 나가는 데 감동이더라고요. 별로 말 안 해도 묻어갈 수도 있고… 제가 묻어가는 게 특기거든요. 여기서 좀 더했으면 좋겠다 싶었지요. 그래서 비굴해도 참았는데… 집에 와 생각하니 너무 화가 나더라고요. 해명에 만족하는 눈치도 아니었고요. 그래서 이런 분위기에서는 방송하지 않겠다고 문자를 보냈지요.”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그는 개업의 대신 기생충학 전공을 선택했다. 김어준의 딴지일보에 글을 쓰면서 정치 비판을 시작했다고 한다. ―이명박 박근혜 전 대통령 비판도 신랄했던 걸로 기억합니다만…. “박근혜 정부 때 MBC ‘컬투의 베란다쇼’라는 예능 프로에 출연했는데 PD가 ‘당신과 같이 가고 싶은데 자꾸 정권 비판하면 우리가 참 어렵다’고 하더라고요. 제발 안 쓰면 안 되겠냐고. 아내도 ‘잡혀갈 수 있으니 살살 좀 쓰라’고 하고…. 당시 격주로 신문 칼럼을 썼는데 소재가 너무 많아서 이런 식이면 매주 쓰겠다고 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지금은 매일 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책에도 있지만 현 정권 비판이 결국 보수 정당을 도와주는 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런 논리가 굉장히 많아요. 진보를 표방하는 언론도 마찬가지고요. 그래서 한 진보매체에 쓰던 칼럼도 올해 그만뒀지만….”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쓸 때마다 트집을 잡아서… 조국 사태 이후 계속 그랬어요. 툭하면 재미도 없고 내용도 후지다고…. 그래서 다시 쓴 적도 많아요. 이번에는 빼고 가자며 안 실린 적도 있고…. 더 이상 못 쓰겠다 싶어서 몇 번이나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그러지 말라면서도 글은 계속 트집을 잡더라고요. ‘현 정부 한 번 깠으면 국민의힘도 한 번 까 달라’고 주문하고……” ―집권세력이 억지를 부리고, 그걸 친여 언론이 확산시키다 보니 이제는 ‘혹시 내가 잘못 안 건가’ 하는 착각까지 듭니다. “그걸 노리는 건데… 괴벨스가 한국에 태어났다면 김어준 TBS 뉴스공장 진행자 가방 ‘모찌’(어떤 사람의 가방을 메고 따라다니며 시중을 드는 사람)나 했을 겁니다.” (서로 안면이 있습니까.) “전에 딴지일보에 글을 좀 썼지요. 그 인연으로 제가 2010년 쓴 ‘대통령과 기생충’이란 소설에 ‘파브르(곤충기) 이후 최고의 엽기 생물 소설이라고 추천 글도 써줬고요.” (그때부터 선동에는 일가견이 있었네요.) “생각해보니 그러네. 파브르 이후 최고의 생물 소설이라니…. 하하하. 그런데 김어준은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전혀 대응하지 않고 고소도 하지 않는데 그건 평가해줄 만해요.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은 뻑 하면 고소한다고 SNS에 올리잖아요.” ―조국을 말라리아에 비유했는데 괜찮습니까. “한 인터뷰에서 갑자기 조국을 기생충에 비유하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묻더라고요. 기생충 중에 말라리아가 가장 비열하거든요. 간에 숨어 있다가 세력이 커지면 우르르 나와 우리 몸을 공격하기 때문이죠. 순발력 있게 대처했다고 혼자 뿌듯해했는데… 문득 조국이 고소왕인 게 떠올랐어요. 은근히 걱정이 돼 아는 변호사에게 물었더니 의견이라 명예훼손은 아니지만 모욕죄는 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인데 징역은 아닐 테고… 그분 덕에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으니까 그 정도는 내도 될 것 같아요.” …어진 이를 멀리한 탓에 전임 정권이 무너졌거늘, 전하 주변에도 소인만 그득한 것은 어찌 된 까닭이옵니까. 아무리 옳은 것도 백성이 힘들어하면 되돌아보는 게 군왕이건만 전하는 되레 무리 지어 싸우게 하니 어찌 만백성의 어버이라 하겠사옵니까. 전하, 도둑은 늘 있었지만 도둑이 의금부 개혁을 말한 적은 없었사옵니다. 나라의 법은 사사로운 것이 아님에도 전하 주변에만 치우치니, 정녕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나라를 만드시려 하시옵니까….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옆집에 악마가 산다’ … 호러 영화 제목 같지만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상당수가 겪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해 발생한 강간, 강제추행 범죄만 무려 2만3000여 건. 성범죄로 현재 신상공개 중인 사람은 전국에 3671명이나 된다. 한 동(洞)에 신상공개 대상자만 14명이 사는 곳도 있다. ▷2008년 8세 여아를 성폭행해 12년을 복역한 조두순이 12월 만기 출소한다. 그는 복역 중 면담에서 출소 후 원래 살던 경기 안산으로 갈 계획이라고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해당 지역 주민들의 불안이 커지고 있다. 더욱이 조두순의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이제는 성인이 된 피해자가 살고 있다. 시는 방범카메라를 확충하고, 경찰도 수시 점검에 나선다고 하지만 두 사람이 길에서 마주칠 가능성까지 대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성범죄자들의 재범을 막고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신상공개제도를 시행하고 있지만 여전히 허점이 많다. 가장 중요한 거주지는 건물번호까지만 공개되기 때문에 옆집에 성폭행 전력자가 살아도 모르기 쉽다. 인권보호도 필요하지만 ‘너만 알고 조심해’ 식의 공개가 무슨 소용인가. 같은 읍면동에 사는, 미성년자가 있는 가정에는 호수 등 세부정보를 우편으로 알려주는데 시간이 지나 피해자가 성인이 되면 받을 수 없다. 조두순 피해자가 딱 이 경우다. ▷신상공개와 전자발찌 착용 기간도 형량 등에 따라 한정된다. 조두순의 경우 신상공개는 5년, 전자발찌는 7년이다. 그는 법무부 관계자들에게 “죄를 뉘우치고 있다”고 했다지만 믿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다. 필자가 전자발찌 착용의 효용성을 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난 성범죄 전력자들 가운데는 전자발찌를 액세서리처럼 여기는 이도 있었다. ▷재범 방지를 위해 미국 플로리다는 아동성범죄자 집 앞에 ‘성범죄자(sexual predator)’라는 팻말을 붙인다. 오클라호마에는 신상공개자들의 머그샷(경찰이 범인 식별을 위해 찍는 얼굴 사진)만 게재하는 신문이 있는데 성범죄자는 별도 코너에 싣는다. 첫 발행 때 6000부를 찍었는데 순식간에 팔려 지금은 6만 부를 찍는다. 성범죄는 아니지만 발행인의 아들도 두 번이나 게재됐다고 한다. ▷성도착증 범죄자들의 출소를 영구히 막을 수는 없는 상황에서 피해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호수용제도가 그중 하나인데 성도착증 범죄자들을 치료 목적으로 퇴근 후부터 다음 날 출근 때까지 야간에는 내보내지 않고 특정 시설에서 살게 하자는 것이다. 이제 100일도 안 남았다. 피해자들은 물론이고 시민들이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도록 뭐라도 해야 한다.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가 들어선 뒤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국민의힘’은 여전히 강성극우와 확실하게 선을 긋지 못하고 있다. 극렬 ‘엽기토끼’들 때문에 안 돌아오는 집토끼가 훨씬 더 많다는 걸 알면서도 입으로만 들리지도 않게 “우리는 다르다”고 할 뿐. 그런데 최근 서울 부산 인천 경기에서 개혁보수 깃발을 들었던 바른정당 출신 복당파들이 시도당위원장에 선출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밑바닥 당원부터 이대로는 더 이상 안 된다는 경각심이 든 걸까.》 ―상대가 강성으로 분류되는 민경욱 전 의원이었는데 더블스코어 차이로 이겼다. “표 차이가 커서 솔직히 나도 좀 놀랐다. 민 전 의원이 청와대와 당 대변인도 해 전국적인 인지도가 월등히 높은 데다 작년까지 시당위원장을 연임했기 때문에 주변에서 어려울 거라는 예상이 많았다. 내가 3선 의원을 했지만 민 전 의원에 비하면 사람들이 잘 모르니까…. 싸움도 잘하고. 당원들 사이에서 문재인 정권과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반감이 아주 높기 때문에 민 전 의원이 더 유리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일반 국민 투표였나?) “아니, 선거인단은 100% 당원이고 그중에서도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들이다. 당 소속 지방의원과 당직자 등 당연직 대의원과 인천 지역 13개 당협위원회에서 추천한 사람들로 구성됐다. 책임당원들은 일반 당원들보다도 훨씬 더 당에 대한 애정과 충성도가 높다. 과거와의 차이라면 코로나19 때문에 모바일 경선으로 한 것뿐이다.” ※이 위원장은 413표(58.1%), 민 전 의원은 209표(29.4%)를 얻었다. 선거인단 1000명 중 711명이 투표했다. ―선거인단 성향이 강성우파, TK정서에 가까울 것 같은데…. “흔히 그렇게들 보고, 나도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경선 결과를 보면 적어도 수도권에서는 ‘국민의힘 책임당원=극렬 골수우파’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부 극렬한 강성극우 인사들이 과잉 대표돼 마치 당원 모두가 그런 것 같은 착각을 하지 않았나 싶다. 국민은 물론이고 우리 스스로도….” ―당신은 바른정당에 참여했다 복당했는데… 어려울 때 당을 버린 배신자라는 시각이 있지 않나. “그런 정서가 있는데… 배신자 프레임도 일부의 생각이 과잉 대표된 면이 있는 것 같다. 나 말고도 최근 부산은 하태경 의원, 경기는 최춘식 의원, 서울은 정양석 전 의원이 시도당위원장이 됐는데 모두 바른정당 출신이다. 경선 과정에서 배신자 공격보다는 오히려 ‘당이 이제는 정말 변해야 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들었다. 지난 총선 경선 때도 배신자 프레임으로 공격받았는데 내가 후보가 됐다. 수도권 당원들 사이에서는 바른정당 참여가 큰 흠이 아니고, 보수 변화의 노력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수도권보다 더 보수적인 곳이 강원도인데 이번 총선에서 강릉에서 당선된 권성동 의원은 바른정당 출신인데다 탄핵 때 법사위원장이었기 때문에 국회 측 탄핵소추위원단장까지 맡았다. 공천도 못 받아 무소속으로 출마했는데 당원들이 찍지 않았으면 당선될 수 있었을까.” ―인천시당이 8·15 광화문 집회에 참가하지 않은 이유는 뭔가. “그들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으니까. 참석자 중에는 순수한 애국심으로 나온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 뜻을 모르지는 않지만 코로나19와 수해로 온 나라가 난리가 났는데 정치집회를 여는 것은 부적절했다. 일부 강성 목소리가 결코 당 전체의 생각이 아니다. 되레 수도권 지역은 피해를 보고 있다.” (피해라니?) “대다수 국민은 8·15집회가 적절하지 못하다고 생각한다. 그 민심을 읽고 광화문 집회 주최 측과 우리를 동일한 세력으로 몰고 가려는 시도가 있으니까.” ―당 차원의 참여는 없었지만 지도부는 개인의 참여도 막지 않았다. “그런 면이 아쉽기는 하다. 국민이 우리 당을 외면하게 만드는 행위나 사람과는 선을 그어야 하는데…. 용기 있게 그 일을 못했다. 소수의 강성 극우도 눈치 보면서 검경을 장악한 정권과 어떻게 싸우나. 코로나19가 창궐하고 수해도 겹쳐 나라가 발칵 뒤집혔는데 광화문에 나가 정치적 의사를 표출하는 게 과연 국민의 마음에 들까? 우리 당 참석자들도… 일부러 국민과 당을 괴리시키려고 간 것은 아니라도 실제 그런 결과를 낳은 건 사실 아닌가. 개천절 집회에는 반대 입장을 분명하게 해야 한다.”※인천에서는 민경욱 전 의원(연수을)과 유정복 전 인천시장(남동갑)이 참가했다. 김문수 전 경기지사, 차명진 전 의원도 참석했으나 이들은 현재 탈당 상태다.―아스팔트 강성우파와의 결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곧 열리는 당무감사가 극우척결의 시작이 될 거라는 전망도 나오는데…. “아스팔트 우파, 태극기 부대라고 불리는 사람들 중에도 다양한 스펙트럼이 있다. 잘못된 정부 정책에 대한 저항의 수단으로 참여한 분들도 많다. 하지만 그들 중에 우리 당을 국민으로부터 멀게 만드는 사람들과 행동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단호하게 선제적으로 선을 긋지 못했다면 사후에라도 당의 입장을 분명히 보여야 한다.” (결별해야 한다고 할 때마다 ‘우리끼리 분열하면 안 된다’ ‘뺄셈의 정치로는 이길 수 없다’며 덮고 가다보니 지금에 이른 것 아닌가.) “지난해 조국 법무부 장관 사퇴를 요구하며 19일간 단식을 하면서 느낀 게 있다. 내가 굶다가 죽어도 저 사람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거라는…. 우리가 아무리 소리쳐도 그것으로는 폭주를 멈출 수 없다는 걸. 이유는, 우리 당이 변하지 않아 국민이 지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집권세력의 폭주를 막는 가장 좋은 방법이 당 혁신이라는 건가. “탄핵 이후 우리가 제대로 변했다면 국민의 신뢰를 되찾아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상태에서 올해 총선을 앞두고 조국 사태를 맞았다면, 민주당이 그토록 억지스러운 강변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 자신들이 살기 위해서라도 조 전 법무부 장관을 임명 전에 자진사퇴시켰을 것이다. 선거에서 불리하니까 노무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 게 열린우리당 출신들이다. 진심으로 정권의 폭주에 가슴을 치고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뼈를 깎는 혁신으로 당 지지율을 올리면 된다. 그러면 민주당이 앞장서서 정권의 폭주를 막을 것이다.” (비대위가 제대로 하고 있다고 보나.) “김 위원장이 광주 5·18민주묘지에서 무릎 사죄도 하고 당을 변화시키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아직까지는 뼈를 깎았다고 할 정도는 아닌 것 같다. 당내에 그런 아픔과 진통을 겪은 사람이 없지 않나. 만약 우리가 변하지 못해 내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을 진다면, 선거를 이기고 지는 문제를 넘어 성범죄에 면죄부를 주는 꼴이 된다. 절대로 그런 일이 벌어지게 해서는 안 된다.”※노 전 대통령은 2007년 2월 열린우리당을 탈당하며 “야당은 대통령 공격이 선거 전략상 유리하고, 여당도 대통령 방어보다 차별화해 거리를 두는 것이 유리한 구조”라고 말했다. ―그동안에도 쓴소리나 자성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강성극우들의 공격으로 다 묻혔다. “입바른 소리를 하면 벌 떼처럼 달려드는데… 소신 발언을 하는 쪽은 다 개인이기 때문에 견딜 수가 없다. 앞서 말했지만 적을 앞에 두고 내부 총질한다고 하고, 싫으면 나가라고 하고… 그래서 당 안팎의 뜻있는 사람들과 함께 ‘온건합리중도 보수 지킴이’ 역할을 하려고 한다.” (온건보수 지킴이?) “당에 올바른 목소리를 낸 사람들이 극렬강성들의 비난과 공격을 혼자 감당하지 않게 해주려고 한다. 지지성명도 내고, 부당한 공격에는 연대해서 같이 싸우는… 외롭지 않게. 여야를 떠나 온건하고 합리적인 사람들은 집단을 이뤄서 대응하고 싸우는 걸 잘 못한다. 안 하려고도 하고…. 그러다보니 좌우 극단에 있는 사람들 수가 더 적은데도 이기지를 못한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데 목소리를 안 내다보니 극단적인 사람들이 마치 양 진영의 대표인 것처럼 과잉 대표된 거지. 온건중도합리적인 사람이 훨씬 더 많고 세다는 걸 강성들에게 보여줄 작정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에 기권했다고 민주당 의원들이 금태섭 전 의원을 물어뜯을 때 우리는 그들의 행태를 비난했다. 그런데 우리 안에서 소수의 올바른 목소리가 나올 때는 지켜준 적이 있었나. 올바른 당내 변화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고, 계파 이익을 위해 저항하는 세력들은 견제하는… 그 싸움을 혼자 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으려고 한다. 아스팔트 우파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더 많다는 걸 알게 되면 이 당의 주류가 온건합리적인 보수로 바뀌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이학재(56)… 박근혜 전 대통령이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과 대선 후보일 때 비서실장을 맡았던 자타가 공인하는 친박. 박 대통령 당선일 다음 날 임명직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뒤 친박과 거리를 뒀다. 탄핵 이후에는 바른정당·바른미래당에 참여했다 복당했다. 이진구 논설위원 sys120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