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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대원들이 이라크에서 납치한 야지디족(族) 여성들을 무참하게 성폭행해 임신시켰으며 이 중에는 9세 소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9세 소녀는 최소 10명의 IS 대원으로부터 번갈아가며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캐나다 일간 토론토스타에 따르면 8개월간 IS에 억류됐다가 최근 풀려난 야지디족 여성과 어린이 중 상당수가 성적 학대로 임신을 했으며 이 중 최연소는 9세이다. 현지 구호대원 유시프 다오우드 씨는 토론토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선봉에서 뛰는 전투대원과 자살폭탄 테러를 앞둔 대원들이 어린 소녀들을 포상으로 받아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며 “임신한 9세 소녀는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해 제왕절개 수술을 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드 구호단체는 이번 주 안에 소녀를 데리고 독일로 건너가 적합한 치료 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IS는 지난해 8월 이라크 북부 산자르 일대를 장악하면서 이곳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남성을 대량 학살하고 여성과 어린이 수천 명을 납치했다.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조로아스터교, 주술신앙 등이 복합된 신앙을 믿는 야지디족을 종교적 변절자로 여긴다. IS는 이달 8일 어린이 40명을 포함한 야지디족 포로 216명을 이라크 히메라 지역에서 석방했다. 이번 석방으로 지금까지 500여 명이 풀려났지만 4000명이 넘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여전히 IS의 성노예로 학대받고 있다. 이설 기자 snow@donga.com}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 대원들이 이라크에서 납치한 야지디족(族) 여성들을 무참하게 성폭행해 임신시켰으며 이중에는 9세 소녀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져 충격을 주고 있다. 이 9세 소녀는 최소 10명의 IS 대원들로부터 번갈아가며 성폭행을 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12일 캐나다 일간 토론토스타에 따르면 8개월 간 IS에 억류됐다가 최근 풀려난 야지디족 여성과 어린이 중 상당수가 성적학대로 인해 임신했으며 이 중 최연소는 9살이다. 현지 구호대원 유시프 다오우드 씨는 토론토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선봉에서 뛰는 전투대원과 자살폭탄 테러를 앞둔 대원들이 어린 소녀들을 포상으로 받아 성적 학대를 저질렀다”며 “임신한 9세 소녀는 정신적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소녀는 너무 어린 나이에 임신해 제왕절개 수술을 하더라도 위험 부담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쿠르드 구호단체는 이번 주 안에 소녀를 데리고 독일로 건너가 적합한 치료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IS는 지난해 8월 이라크 북부 산자르 일대를 장악하면서 이곳에 살고 있던 소수민족인 야지디족 남성을 대량 학살하고 여성과 어린이 수천 명을 납치했다. 이슬람 무장단체들은 조로아스터교, 주술신앙 등이 복합된 신앙을 믿는 야지디족을 종교적 변절자로 여긴다. IS는 지난 8일 어린이 40명을 포함한 야지디족 포로 216명을 이라크 히메라 지역에서 석방했다. 이번 석방으로 지금까지 500여 명이 풀려났지만 4000여 명이 넘는 여성과 어린이들이 여전히 IS의 성노예로 학대받고 있다. 성적 피해를 입은 여성들은 살아서 돌아오더라도 순결과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지탄을 받게 된다고 외신들은 전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승무원에게 뜨거운 라면 끼얹기, 공항에서 속옷 말리기, 고대 유적지에 낙서하기…. 후진국 ‘막가파’ 여행객들의 얘기가 아니다. 1억 명을 넘어선 중국인 유커(遊客·관광객)가 세계 각지에 보여준 추태 중 일부분이다. 유커는 세계 관광시장의 VIP로 떠올랐지만 갖가지 추태로 악명도 높아지고 있다. 급기야 중국 당국은 13일 유커의 추태 사례를 열거하면서 “문명인으로써 교양을 갖춰 달라”고 주문했다. 13일 중국신문망(中國新聞網)에 따르면 자이레이밍(翟雷鳴) 남아공 주재 요하네스버그 부총영사는 12일 열린 좌담회에서 “일부 유커들이 해외에서 현지 법규를 위반하고 유적지나 자원을 훼손하는 등 국가적 망신을 초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아프리카 가나에서 사금을 불법 채취한 유커가 현지에서 여론의 몰매를 맞은 적이 있다”며 “이런 행태들이 중국 전체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몰디브 바다 속을 촬영했더니 중국산 생수병, 담뱃갑 등이 나왔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지난해 해외여행을 다녀온 유커는 1억 명, 중국 국내 관광지를 돌아본 유커는 36억 명을 기록했다. 중국 당국은 국내외 유커들의 크고 작은 추태가 끊임없이 해외 언론의 도마에 오르자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 중국 국가여유국(CNTA·國家旅游局)은 지난 7일 비문명적 행위를 범한 ‘어글리 차이니즈’의 리스트를 만들어 이들의 국내외 여행을 제한하기로 했다. 비문명적 행위에는 △방문 국가의 관습 위반 △공공기물이나 문화재 훼손 △대중교통 혼란 초래 △도박이나 매춘 등이 포함됐다. 지난해 9월에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직접 나서 “해외 여행을 떠나는 중국인들에게 여행지에서 필요한 교양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런데도 유커들은 각지에서 따가운 눈총을 계속 받는다. 최근 일본에서는 중국인 관광객 3명이 스마트폰으로 일본 여성의 특정 신체부위를 몰래 촬영하다가 현장에서 체포됐다. 지난해 12월에는 태국발 중국행 여객기에서 중국인 탑승객이 여승무원에게 뜨거운 라면을 끼얹어 여객기가 회항했다. 태국은 신사에서 종을 차고, 화장실에서 속옷을 세탁하는 유커들의 행태가 계속되자 중국어로 된 에티켓 매뉴얼을 따로 발행하기도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이탈리아에서 재판 도중 피고인이 총격을 가해 판사와 변호인 등 3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탈리아 안사 통신은 9일 사기성 파산 혐의로 재판을 받던 클라우디오 지아르디엘로(46)가 판사와 변호사 등 2명에게 총을 쏴 숨지게 했으며 1명은 총격에 놀라 심장마비로 숨졌다고 밝혔다. 증인 2명은 총에 맞아 크게 다쳤다. 범인은 이날 오전 11시경 밀라노법원 3층에서 재판을 받던 중 갑자기 변호사와 다른 증인 2명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후 2층에 있는 담당 판사 페르난도 치암피 판사의 방으로 가 총격을 가했다. 범인은 인파 속에 1시간 넘게 숨어 있다가 오토바이를 타던 중 경찰에 체포됐다. 영국 BBC는 “범인과 판사 변호사가 어떤 관계인지, 범행 동기가 무엇인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그의 과거 변호사는 “그는 피해망상증을 앓고 있었다”고 말했다. 범인이 어떻게 총기를 소지하고 금속탐지기를 통과할 수 있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금속탐지기 중 1대는 고장 난 상태였다고 안사 통신은 전했다. 범인은 콜센터 회사와 법정 분쟁을 벌이고 있었으며 중상을 입은 증인 2명은 범인의 삼촌과 조카인 것으로 알려졌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백인 경관이 등 뒤에서 쏜 8발의 총탄에 맞아 숨진 흑인 월터 스콧 씨(50) 사건이 미국 사회를 뒤흔들고 있다. 총을 쏜 마이클 슬레이저 경관(33)은 즉각 면직 처분을 당해 민간인 신분으로 재판을 받게 됐지만 국민적 분노가 온·오프라인에서 확산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선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는 시위 문구가 다시 등장했고 사건이 발생한 사우스캐롤라이나 노스찰스턴 시에서는 시장 사퇴 등을 요구하는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키스 서미 노스찰스턴 시장은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이런 불행한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노스찰스턴 시 경찰 전원이 보디캠(몸에 부착하는 카메라)을 장착하도록 조치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서미 시장의 기자회견은 “정의 없이, 평화도 없다” “시장부터 물러나라”는 시위대 수백 명의 함성 때문에 여러 차례 중단됐다고 CNN방송은 전했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상원은 다음 주 전체회의를 열고 주 경찰관의 보디캠 장착 의무화 법안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예정이다. 슬레이저 경관은 스콧 씨가 자신의 전기충격기를 가져가려고 해 생명의 위협을 받았다는 내용의 사건보고서를 작성했지만 동영상 제보로 거짓임이 드러났다. CNN은 8일 “슬레이저 경관은 스콧 씨가 총탄을 맞고 쓰러지자 손을 등 뒤로 돌려 수갑을 채운 뒤 총을 발사했던 지점으로 돌아가 검은색 물체를 집어서 스콧 씨 옆에 떨어뜨렸다. 그것이 문제의 전기충격기였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보도했다. 슬레이저 경관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상황을 조작했을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사건에 대해 경찰들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에디 드리거스 노스찰스턴 경찰서장은 “사건 동영상을 보면서 역겨웠다”고 말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NYPD의 총기 사용 지침에도 ‘심지어 중범죄자라도 단지 그의 도주를 막기 위해 경관이 총을 쏘는 것은 안 된다’고 명시돼 있다”고 말했다. 비무장 흑인에게 권총을 난사한 슬레이저 경관의 과거 공권력 남용 정황도 추가로 포착됐다. 노스찰스턴에 거주하는 흑인 마리오 기븐스 씨는 9일 슬레이저 경관으로부터 아무런 이유도 없이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2013년 9월 슬레이저 경관이 갑자기 집으로 찾아와 자신에게 전기충격기를 쏘고 수갑을 채워 경찰차 뒤에 태웠다고 말했다. 곤욕을 치른 뒤 풀려난 기븐스 씨는 슬레이저 경관의 공권력 남용을 조사해 달라고 노스찰스턴 경찰서에 탄원서를 제출했으나 감찰 결과 공권력 남용 혐의가 없다는 결론을 내린 사실을 알게 됐다. 동영상을 제보해 사건의 실체를 밝힌 23세 청년 페이딘 산타나 씨는 미국 사회의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8일 미국 NBC방송과의 인터뷰에서 “출근길에 사건을 목격하곤 바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며 “경관과 스콧 씨가 바닥에 엉켜 몸싸움을 하던 중 스콧 씨가 일어나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경관은 아무런 경고 없이 그냥 총을 쐈다”고 증언했다. 산타나 씨는 신변의 위협 등이 걱정돼 처음엔 이 사실을 알리지 않고 마을을 떠날까 고민한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그는 스콧 씨가 전기충격기를 빼앗으려다 피격됐다는 뉴스를 보고 마음을 바꿨다. 그는 “경찰이 잘못된 행동을 한 것이 분명해서 용기를 내 스콧 씨의 변호사에게 동영상을 전달했다”고 말했다. 희생자 스콧 씨 가족 등은 “그 동영상이 없었다면 이번 사건도 ‘퍼거슨 시의 마이클 브라운 사건’처럼 진실 규명에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며 “산타나 씨야말로 영웅”이라고 말했다. 누리꾼들은 “동영상 제보자가 용기 있는 행동을 했다” “모른 척할 수도 있었을 텐데 시민의식이 돋보인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편 스콧 씨 유가족의 의연한 모습은 많은 화제를 낳고 있다. 특히 스콧 씨 어머니가 “그 무엇도 내 아들의 빈자리를 대신할 순 없다. 하지만 사랑스러운 아들을 총 쏴서 죽인 그 사람에 대해서도 용서의 마음을 가질 것”이라고 말했다고 CNN은 전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 이설 기자}

“얼마 지났다고 또 이런 일이….” “흑인은 다 죄인이냐.” 미국에서 백인 경관이 무장하지 않은 흑인에게 총격을 가해 숨지게 한 사건이 또 일어나면서 인종갈등이 악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숨진 흑인이 위협해 총을 쐈다”는 경관의 진술이 거짓으로 드러나면서 흑인 사회가 분노로 들끓고 있다. CNN은 “이번 사건이 ‘퍼거슨 사태’처럼 흑백 갈등에 불을 지필 가능성이 있다”고 전했다. 지난해 8월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비무장 흑인을 총격 살해한 백인 경관에 대해 대배심이 불기소를 결정해 미국 전역에서 격렬한 항의시위가 발생한 바 있다. 뉴욕타임스(NYT)가 7일 입수한 영상에 따르면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노스찰스턴 시의 마이클 토머스 슬레이저 경관(33)은 4일 교통위반 단속 중에 달아나던 흑인 월터 스콧 씨(55)의 등 쪽으로 8발을 발사했다. 스콧 씨는 잔디밭에 코를 박고 쓰러졌고, 슬레이저 경관은 스콧 씨에게 다가가 수갑을 채웠다. 이 영상은 지나가던 한 행인이 촬영했다. BBC방송은 현지 언론을 인용해 스콧 씨가 미등이 깨진 벤츠 승용차를 몰고 가다가 슬레이저 경관의 단속에 걸렸다고 전했다. 슬레이저 경관은 사건 직후 라디오에서 “검문 과정에서 몸싸움을 벌이던 중 스콧 씨가 내 전기충격기(taser)를 빼앗아 총격을 가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영상에서는 슬레이저 경관이 총을 맞고 쓰러진 스콧 씨 옆에 전기충격기를 가져다 놓는 듯한 모습이 담겼다. 현지 수사당국은 총격 영상을 확보해 확인한 뒤 슬레이저 경관을 체포했다. 미 법무부와 연방수사국(FBI)은 즉각 특별 수사팀을 꾸려 사건 경위 조사에 착수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에릭 홀더 법무장관에게 면밀한 수사를 지시했다. 키스 서메이 노스찰스턴 시장은 기자회견에서 “해당 경관은 잘못된 결정을 했다. 잘못된 결정을 했을 때는 경찰이든 시민이든 책임을 져야 한다. 그는 살인 혐의로 기소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콧 씨는 자녀 양육비를 내지 않거나 청문회 참석에 응하지 않은 혐의로 10차례 체포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어머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그들이 내 아들을 쐈다. 그가 편안히 눈을 감게 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눈물을 흘렸다. 스콧 씨의 변호사는 “그는 네 아이를 둔 가장이었다. 그가 밀린 부양부담금 때문에 체포될까봐 달아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총 3분 길이의 동영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빠르게 번지고 있다. 누리꾼들은 검은 바탕 위에 ‘스콧 씨의 명복을 빈다’는 문구를 올리며 “공권력의 냉혈한 살인이다” “동영상 촬영자가 큰일을 해냈다” 등의 반응을 보이고 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오 신이시여….” 6일 한 달간 이라크군이 격전 끝에 수니파 극단주의 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로부터 탈환한 이라크 티크리트 시. 굴착기로 조심스레 땅을 판 뒤 굵은 솔로 모래를 털어내자 흙투성이의 시신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번줄을 맨 일부 시신은 두 손이 뒤로 묶여 있었다. 발굴작업을 하던 이라크군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에 입을 맞춘 뒤 통곡했다. 그의 눈물에 젖은 땅 아래에는 또 다른 시신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BBC, CNN방송은 6일 한때 IS가 점령한 티크리트 지역에서 이라크군 포로로 보이는 시신 1700구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시신은 모두 부패한 상태로 겉옷과 신발 등만 형체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였다고 CNN은 전했다. 외신들은 “미군기지로 쓰였던 캠프 스파이처 인근 집단 매장지 12곳에서 시신 발굴작업을 벌이고 있다”며 “지난해 6월 IS가 학살했다고 주장한 시신 1700여 구가 이곳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시신 발굴은 엄숙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발굴에 앞서 이라크군과 과학수사팀은 국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거수경례를 했다. 시신 세 구를 발굴한 뒤엔 조총 7발을 발사해 애도를 표했고, 유족으로 보이는 이들은 매장지에 초를 켜고 기도했다. 발굴 첫날 최소 20구가 발견됐다. IS는 지난해 6월 티크리트를 점령하면서 1500여 명에 이르는 이라크 정부군과 민병대를 생포했다. 같은 달 14일에는 트위터 등을 통해 “포로 1700명을 처형했다”며 피 흘리는 포로들 사진, 복면을 쓴 대원이 포로에게 총구를 겨냥하는 사진들을 공개했다. 외신들은 “이번 발굴작업으로 IS의 대량학살이 사실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학살에서 살아남은 이라크군 알리 씨는 6일 CNN과의 인터뷰에서 “당시 IS는 ‘가족과 만나게 해 주겠다’ ‘죽이지 않는다’고 안심시킨 후 땅바닥에 무릎을 꿇게 한 뒤 사람들에게 총알을 퍼부었다”며 “시체더미에서 숨어 죽은 척해 겨우 목숨을 건졌다”고 말했다. 발굴작업에 참여한 이라크 보건부 관계자 칼리드 알압비 씨는 “1700명을 한꺼번에 살해하는 야만인이 있을 수 있느냐”며 “발굴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이 충격과 비통함에 말을 잃었다”고 말했다. 매장 현장은 눈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했다. 시신을 던진 것으로 보이는 강가 시멘트 벽면에는 핏자국이 선명했고, 어린 병사의 시신도 발견됐다. 시신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자 현장은 침묵에 빠졌다. 과학수사팀과 이라크 군인들은 매장지 곳곳에 작은 화초와 풀을 꽂은 뒤 무릎을 꿇고 기도를 올렸다. 시신이 발견된 장소에는 이라크 국기를 덮어뒀다. 10개월간 가족의 생사를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유족들은 비통함에 울부짖었다. 조카를 잃었다는 하마드 씨는 “그간 IS의 학살 주장에 마음을 졸이면서도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이 있었다. 이제 그마저 사라졌다”며 눈물을 흘렸다. 이번 학살은 2013년 8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으로 1400명이 숨진 이래 이라크와 시리아 등지에서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참사로 기록됐다. 발굴된 시신들은 바그다드로 보내 유전자 검사로 신원을 확인할 예정이다. 이라크 정부는 “보복은 정답이 아니다”라며 시아파의 격앙된 민심을 달래고 있다고 BBC가 전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최근 남자 친구의 사고 소식을 듣고 황급히 달려온 샤오 리 씨는 병실 문을 여는 순간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남자 친구 위안 씨 곁을 다른 여성들이 지키고 있었던 것. 하나 둘 모여든 여성은 이내 십여 명으로 불어 병실이 가득 찼다. 여성 17명을 동시에 사귀어 온 중국의 카사노바가 교통사고로 덜미를 잡혔다. 6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의료진이 환자의 휴대전화 연락처로 전화를 돌리면서 여성들이 서로의 정체를 알게 됐다”고 전했다. 중국 누리꾼들은 “천하의 난봉꾼이다” “바람둥이는 교통사고를 당하면 안 된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중국 후난(湖南) 성 창사(長沙) 시에 사는 위안 씨는 주로 온라인을 통해 만난 20대~40대 여성 17명과 짧게는 10달부터 길게는 10년 가까이 만나왔다. 그의 오랜 ‘문어발 연애’는 철저한 준비로 가능했다. 휴대전화 3개를 돌려쓰면서 늘 바쁘다는 분위기를 풍겨 여성들과 종종 연락두절 상태로 지냈다. 상대 여성이 카사노바의 사생활에 깊게 알게 될 즈음에는 곧바로 연락을 끊고 꼬리를 감춘 것이다. 데이트 도중 담배를 핀다거나 편의점에 다녀온다는 핑계를 대고 또 다른 여성을 만나는 ‘쪼개기 데이트’ 신공도 보였다. 현지 언론은 “한 여성은 그와의 사이에서 아이까지 낳았으며, 여성들 중 네 명은 같은 동네에 살고 있었다”고 전했다. 평범한 외모의 위안 씨는 여성들의 심리를 세심히 읽으며 상대방의 마음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휴대전화 연락처에서 ‘목표’라고 분류된 그룹 안에는 200명이 넘는 여성의 전화번호가 저장돼 있었다. 한때 그와 만났다는 30세의 여성은 “만난지 얼마 안 됐을 때 그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다가왔고, 동정심에 마음을 열게 됐다”며 “그는 기본적으로 여성의 심리를 이용할 줄 아는 남자”라고 말했다. 그는 종종 여성들에게 돈을 요구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분개한 여성들은 똘똘 뭉쳤다. 소셜네트워크(SNS) 상에 단체방을 만든 뒤 그의 행각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면서 그를 사기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의식을 되찾은 위안 씨는 사태를 깨닫곤 묵비권을 행사했다고 SCMP는 전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그리스 정부가 5일 국제통화기금(IMF)에 부채 4억5800만 유로(약 5454억 원)를 약속대로 9일까지 갚겠다고 밝혔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IMF 총재는 이날 미국 워싱턴에서 야니스 바루파키스 그리스 재무장관과 비공식 회담을 마친 뒤 성명을 내고 “회담 결과 협력이 살 길이라는 공감대를 나눴다”며 환영의 뜻을 전했다. 라가르드 총재는 또 “6일부터 구제금융 분할금을 지급하기 위한 논의를 신속히 진행하겠다”고 강조했다. 유로존 재무 차관들은 8, 9일 이틀간 벨기에 브뤼셀에서 그리스 정부가 제출한 경제구조개혁안을 심사한 뒤 구제금융 분할금 지급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승인 결정이 나면 그리스 정부는 분할금 72억 유로(약 8조 5704억 원)를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그리스와 국제채권단 간 협상이 진통을 겪으면서 그리스의 부채 상환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그리스 정부가 부채 상환을 약속했지만 디폴트(채무상환 불이행)에 대한 경각심을 해제할 수 없다는 신중론도 나오고 있다. 유로존 차관회의 관계자는 현지 영자 신문 카티메리니와의 인터뷰에서 “그리스 총선이 끝난 지 9주간 합의에 진전이 없다”며 “차관회의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지난달 24일 프랑스 알프스 산악지대에 추락한 저먼윙스의 안드레아스 루비츠 부기장(28)이 자살 충동을 느껴 심리 치료를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독일 뒤셀도르프 검찰청의 크리스토프 쿰바 검사는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 “루비츠가 조종사 자격증을 따기 몇 해 전 자살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을 받은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루비츠가 우울증에 이어 자살 충동 성향까지 보였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미국 CNN은 “조깅과 대중음악을 즐기는 페이스북상 그의 이미지는 허상이었다”며 “타인에게 해를 줄 수 있는 직업군에 대한 정신 감정 규정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루비츠는 2009년 우울증으로 6개월간 비행 훈련을 중단하고 1년 반 동안 심리 상담 치료를 받았지만 조종사 시험은 무난히 통과했다. 쿰바 검사는 “시험 통과 전에 자살 충동 질환에 대한 심리 치료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자살이나 폭력 성향을 보였다는 증거는 없다. 직접적인 범행 동기를 찾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루비츠가 최근까지 시력 문제로 인한 스트레스로 비행 부적합 판정을 받았지만 회사 측에 숨긴 것이 아니냐는 의혹도 불거졌다. CNN은 항공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루비츠가 올해 초부터 3월까지 두 차례에 걸쳐 병원을 방문했다고 전했다. 이어 “루비츠가 안과에서 ‘신체적으로는 정상이며 정신적 원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견을 받고 신경심리학과를 찾았다. 이때 의사가 비행 부적합 판정을 내렸지만 그가 회사 측에 이 사실을 숨긴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루비츠의 스트레스가 심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항공사의 책임론도 확산되고 있다. 루프트한자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루비츠의 정기 건강검진에서 정신과 항목은 빠져 있었다. 유럽 조종사들은 ‘자살 충동을 느낀 적이 있는가’ ‘얼마나 자주 우울감을 느끼는가’ 등에 대한 서면 질의에 무조건 응해야 하지만 그 결과를 회사 측에 알릴 의무는 없다. 독일 보건복지부 장관은 “다른 사람을 해칠 가능성이 있는 직업군의 경우 의학적 소견을 회사 측에 공개할 의무가 있다”며 “관련 조항을 고칠 것”이라고 밝혔다. 루프트한자가 희생자 유가족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이 항공업계 사상 최고가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영국 인디펜던트는 지난달 29일 항공사 측이 무한대 배상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점쳤고, 뉴욕타임스는 희생자 1인당 배상액이 최대 1000만 달러(약 111억 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외신은 “잇따른 조종사 파업에 여객기 추락 사건까지 겹치면서 루프트한자가 최대 위기를 맞고 있다”고 전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미래가 불안하다.” 기자가 싱가포르에서 만난 20, 30대 청년들은 ‘포스트 리콴유(李光耀)’ 시대에 대해 이 같은 전망을 내놓았다. 2030세대는 1주일 동안 이어진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의 추모 행렬에 적극 동참했다. 이들은 리 전 총리에 대한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리 전 총리의 통치를 직접 경험한 ‘리콴유 세대’는 아니지만 그가 존경받는 건국의 아버지라는 점은 교육과 언론을 통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에 대한 불만은 컸다. 싱가포르는 지난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5만6000달러로 아시아 1위, 세계 8위의 선진국이다. 실업률은 낮지만 다국적기업 등 인기 직장은 외국인들이 차지하고 있다는 상실감이 컸다. 출신국을 따지지 않는 ‘능력주의’에 본토인들이 치이고 있다는 피해 의식이 엿보였다. 싱가포르는 이주민 비율이 전체 인구의 28%에 달한다. 싱가포르경영대(SMU) 정치학과 배유일 교수(42)가 최근 정책학 수업을 듣는 학생 7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는 이주민을 바라보는 젊은 세대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싱가포르가 장차 맞닥뜨릴 가장 중요한 정책 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이민자 증가로 인한 일자리 감소 △고령화로 인한 이민자 증가 △이민자 증가로 인한 다문화 정책 △고령화로 인한 연금 및 복지 순으로 답변이 많았다. 배 교수는 “대부분 이민자 문제를 지적했다”며 “다국적기업 금융계 학계 등 좋은 일자리는 화이트칼라 이민자인 ‘엑스팻(expat)’에게, 힘든 3D 업종은 인도와 동남아시아 출신 노동자에게 뺏기고 있다는 불만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2030세대는 이민자를 잠재적 경쟁자로 보고 경계했다. 니디아 베로니카 씨(21·여)는 “학과생 중 절반이 외국인이다. 중국과 인도 출신이 특히 많다. 이들로 인해 싱가포르인이 설 자리가 좁아져서 싫다”고 말했다. 최근 급등한 집값에 대한 무력감도 호소했다. 싱가포르 국민 90%는 평생에 걸쳐 월세 형식으로 집값을 갚아 가는 공공주택에, 나머지 부유층 10%는 콘도에서 생활한다. 상위 1% 이내의 부촌인 센토사, 탕린, 홀란드 등지의 집값은 2500만∼3700만 싱가포르달러(약 200억∼300억 원)를 가뿐히 넘는다. 또 자동차 가격과 유지 비용이 천문학적으로 비싸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이런 불만은 극심한 빈부 격차에 뿌리를 두고 있다. 세계은행이 소득 불평등을 매기는 지니계수에서 싱가포르는 155개국 가운데 123위에 머물렀다. 엘살바도르, 나이지리아와 비슷한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하다. 부모가 경영 컨설턴트와 교사인 난양이공대(NTU) 림추이 씨(23·여)는 “결혼할 때 돈이 없을 것 같아 걱정”이라고 고민을 털어놨다. 공대생이라 취직하면 월급이 3500싱가포르달러(약 280만 원) 정도로 괜찮은 편인데도 웬만한 공공주택에 들어가려면 계약금 4000싱가포르달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교육 불평등으로 인해 더이상 스스로 부와 명예를 성취할 수 없다는 상실감도 심각했다. 회사원 추이왕림 씨(27)는 “교육의 기회는 보장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우열반을 운영하는 탓에 사교육이 기승을 부린다. 여유 있는 부모를 둔 아이들은 사교육을 통해 엘리트 코스를 밟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언론 통제에도 불구하고 최근 인터넷의 발달로 다양한 정치적 의견을 분출하는 분위기도 형성됐다. 싱가포르국립대(NUS) 한인학생회장인 황재윤 씨(재료과학공학과 3학년)는 “온라인상에서는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을 자유롭게 비판하는 등 정치적 의견을 주고받는다. 하지만 막상 선거 때가 되면 별다른 대안이 없어 또 집권당을 뽑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기자가 만난 대부분의 젊은이는 “특권층은 2000억 원짜리 집에서 사는 반면 이주노동자들은 단칸방에서 생활할 정도로 빈부 격차가 심각하다. 권위주의에 대한 반감도 커지는 추세”라며 싱가포르의 미래를 걱정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싱가포르 사람에게 “리콴유 전 총리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은 없느냐”는 질문을 던지면 10명 중 9명은 “없다”고 답한다. 리 전 총리의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해 “경제를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싱가포르는 작은 나라여서 리더십을 흔들면 망한다”며 이해한다는 분위기가 강하다. 싱가포르의 권위주의 통치는 널리 알려져 있다. 곳곳에 사복경찰이 돌아다니고 폐쇄회로(CC)TV가 촘촘히 설치돼 있다. 한 싱가포르인은 “주변에 감시 카메라가 보이지 않아 담배를 피웠는데 누군가 다가와 벌금을 물렸다. 사복경찰이었다”고 말했다. 언론 통제도 엄격하다. 헌법상 언론 집회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지만 하위 법인 국가안보법에서 민감한 주제나 조화를 해치는 토론을 금지하고 있다. 난양이공대(NTU) 언론학과 앙펑화 교수는 “언론은 모두 국가 소유이며 인터넷에 대한 검열법도 존재한다”고 말했다. 30일 리 전 총리를 비판하는 동영상을 유튜브에 올린 애머스 이(17)가 선동방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경찰에 체포됐다. 그는 ‘마침내 리콴유가 죽었다’라는 제목의 8분짜리 동영상에서 “리콴유는 지독한 독재자였지만 자신을 민주적인 인물로 여기도록 사람들을 속여 왔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토론 사이트인 ‘온라인시티즌’의 게시 글에는 “리 전 총리의 유산에 대해 다양한 대화를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반박 글이 속속 올라오고 있다. 교육도 통치에 효과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3년 전 싱가포르에 온 한 교민은 “싱가포르는 초등학생에게 태형 집행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여 주고, 중학교 때부터 리 전 총리의 업적을 부각시킨 싱가포르 근대사를 가르친다. 자연스럽게 국가에 대한 자부심, 복종 의식 등을 심는 것”이라고 말했다. 싱가포르의 권위주의 통치는 이제 변화의 시점을 맞고 있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키쇼어 마부바니 전 유엔 주재 싱가포르대사는 25일 뉴욕타임스(NYT)와 인터뷰에서 “젊은 세대는 그동안의 성장에 감사하지만 새로운 정치적 분위기를 원한다”고 지적했다. 민심의 변화를 반영하듯 2011년 총선에서 집권당인 인민행동당(PAP)은 역대 최저인 60.1%를 얻는 데 그쳤다. 이에 리셴룽 총리는 국민의 의견을 자주 듣는 등 ‘대화의 리더십’을 추구하고 있다. 엔지니어로 일하는 게리 청 씨(48)는 “리 총리 등 ‘리콴유 키즈’들이 싱가포르를 주도할 향후 20년은 걱정이 없다. 문제는 그 후”라며 “다양한 정치적 요구를 어떻게 조화시켜 나갈지가 싱가포르의 미래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NYT는 “싱가포르가 중요한 지점에 서 있다. 경제 모델뿐 아니라 정치 모델에서도 민주화를 이뤄야 할 때”라고 전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하늘마저 울어버렸다.’(싱가포르 최대 일간 스트레이츠타임스)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 장례식이 치러진 29일, 건기(乾期)라서 좀처럼 비가 내리지 않았던 싱가포르에 난데없이 폭우가 쏟아졌다.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 나온 시민들은 눈물과 빗물로 범벅이 된 채 목이 터져라 ‘리콴유’를 외쳤다. 나흘간 리 전 총리의 시신이 안장되어 있던 국회의사당 앞에는 오전 6시부터 시민들이 모여들었다. 오전 7시가 되자 구불구불 긴 줄이 이어질 정도로 인파가 늘어났다. 시민들은 미리 준비한 휴대용 의자, 도시락, 노트북 등을 꺼내 시간을 보내며 차분히 운구를 기다렸다. 오전 6시 45분에 집을 나섰다는 조안 리 씨(35·여)는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일찍 나왔다. ‘파파’가 우리를 위해 한 일에 비하면 비에 젖는 것은 별일 아니다”고 말했다. 오전 11시가 지나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어린아이부터 몸이 불편한 노인까지 시민들은 준비한 비옷과 우산을 꺼내 쓸 뿐 자리를 뜨는 이는 보이지 않았다. “현장이 어찌나 조용했는지 침이 꼴깍 넘어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낮 12시 30분경 리 전 총리의 유해를 실은 군용 포차(砲車)로 만든 운구차가 의사당을 나와 장례식장인 싱가포르국립대로 향했다. 승합차 한 대, 군용트럭 5대, 오토바이 2대, 경찰차 등 승용차 5대인 단출한 행렬이었다. 곡사포 4대가 예포 9발을 쏘자 포차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빗방울은 갈수록 굵어져 폭우로 변했다. 운구 행렬이 지나는 싱가포르 시내 15.4km 구간에는 시민들이 운집해 비를 맞으며 자신들의 ‘국부(國父)’가 가는 마지막 길을 지켜봤다. 꽃을 던지는 시민들도 많았다. 시민들은 국기(國旗), 리 전 총리의 사진, ‘싱가포르를 위한 당신의 헌신에 감사합니다’는 글귀가 적힌 팻말 등을 흔들면서 조금이라도 운구 행렬을 가까이에서 보겠다는 듯 길게 목을 뺐다. 데이비드 호 씨(78)는 “오늘처럼 억수 같은 비가 내렸던 47년 전 독립기념일이 생각난다. 하늘이 우리 정신력을 시험하는 것 같다”며 “리 전 총리의 삶은 이보다 더한 폭풍우도 견디어낸 삶이었다”고 말했다. 외신들은 “도로 곳곳에서 수만 명이 우산을 쓴 채 대형 국기를 들고 양쪽으로 도열한 장면이 장관을 이뤘다”면서 “리 전 총리가 자신이 일군 조국 구석구석을 돌며 생을 마무리하는 것 같다”고 전했다. 운구차가 리 전 총리의 오랜 지역구였던 탄종파가르 지역을 지나가자 시민들은 “파더” “리콴유” “생큐”를 외치며 화답했다. 공군 전투기들이 싱가포르 하늘을 갈랐고 검은 조기를 내건 해군 순찰 선박들도 포차와 발맞춰 운항했다. 운구차가 싱가포르국립대 문화센터에 닿은 시간은 오후 1시 50분경. 마중 나온 흰색 제복 차림의 군인들이 리 전 총리의 시신이 든 관을 조심스럽게 옮겼다. 붉은색 싱가포르 국기로 뒤덮인 관은 투명 유리관에 넣어진 채 문화센터에 마련된 단상 위로 옮겨졌다. 장례식은 국영방송과 추모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되면서 해외 거주 싱가포르인도 추모 물결에 동참하도록 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이날 대형 상가들은 대부분 문을 닫았고 동남아 최대 카지노업체 중 하나인 젠팅싱가포르 역시 오후 2시부터 4시간 동안 영업을 중단했다. 싱가포르 민간항공국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구 행렬 상공에서 소형 무인 항공기의 운항을 금지시켰다. 한편 28일까지 국회의사당을 조문한 싱가포르인은 전체 550만 명의 10% 가까운 50만 명 이상이라고 현지 언론들은 전했다. 또 최소 85만 명의 시민들이 지역별 추모 장소 18곳에서 조문했다고 알려졌다. 4시간 반에 걸친 장례식을 마치고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장례식장에서 13km 떨어진 만다이 화장장으로 옮겨졌다. ‘아시아의 거인’은 가족과 측근들만 지켜보는 가운데 한 줌의 재로 돌아갔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25일 오전 7시 싱가포르 이스타나 대통령궁 앞. 꽃을 든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두 시간 만에 인파는 수천 명으로 불어났지만 다들 소리를 낮춰 정적이 감돌 정도였다. 차도를 달리는 자동차 소리만 이따금 울렸다. 오전 9시 반. 마침내 궁의 정문이 열리고 정문 앞 양쪽으로 도열한 군인들 사이로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시신이 담긴 관이 모습을 드러냈다. 군중은 역사적 순간을 담기 위해 약속이라도 한 듯 스마트폰을 높이 들어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생큐 파더(father)” “생큐 리콴유” “유 아 마이 히어로(You are my hero)”를 외쳤다. 가족 애도 기간인 이틀간 대통령궁 내 총리관저에 안치돼 있던 리 전 총리의 시신은 이날 나흘간 국민 조문을 받기 위해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관은 투명한 유리함에 들어 있어 군중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관은 뚜껑이 없는 검은 지프차 뒤에 연결한 포차(砲車)에 실렸다. 운구 행렬은 청렴한 삶을 살았고 자신이 살던 집조차 허물라는 유언을 남긴 리 전 총리의 생전 모습처럼 소박했다. 경찰 오토바이 4대, 소형 경찰차 1대 뒤로 운구차와 차량 8대가 따랐다. 차량도 모두 소형차였다. 한 관광객은 “위대한 지도자의 운구 행렬치고 간소해도 너무 간소하다. 이런 지도자를 가졌다는 게 보기도 좋고 부럽기도 하다”고 말했다. 일부 시민들은 운구차를 뒤따라 달려가기도 했다. 뛰어가다 멈춰서 울음을 터뜨린 주부 제인 리 씨(53)는 “지금 싱가포르 국민들은 아버지를 잃은 자식 입장이다. 이 정도는 당연히 해야 한다. 의사당에 가서 또 추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의사당까지 가는 2km 인도에 죽 늘어서 있던 수천 명의 시민은 운구 행렬이 지나갈 때 “생큐 리콴유” “생큐 파더”를 외치면서 국기를 흔들었다. 오전 10시 운구차가 의사당에 도착하자 정복을 입은 군인 8명이 관을 유리함에서 꺼내 의사당으로 메고 들어가 중앙 홀에 준비된 작은 단 위에 올려놓았다. 자주색 천을 씌운 단은 가로세로가 각각 1.5m, 2m도 안 될 정도로 작았다. 높이도 성인 무릎 정도밖에 안 됐다. 관 앞에는 흰 꽃으로 테두리가 장식된 고인의 작은 초상화 외엔 아무런 장식도 없었다. 국부가 국민을 맞이하는 장소라고 보기 힘들 정도로 소박한 제단이었다. 의사당 밖은 조문을 하려고 몰려든 사람들로 순식간에 인산인해를 이뤘다. 불과 2시간 만에 의사당은 조문 차례를 기다리는 시민 행렬로 포위됐다. 구불구불 길게 이어진 행렬은 수천 m나 됐다. 땡볕이 내리쬐는 날씨였지만 자리를 뜨는 이는 없었다. 부채를 부치거나 우산을 펼쳐 햇빛을 가리면서 차분히 입장을 기다렸다. TV에서는 “8시간째 줄을 서도 입장하기 힘들다”며 “오늘은 조문을 권하지 않는다”는 안내 자막이 나올 정도였다. 조문을 기다리던 사람들은 팀을 이뤄 차례로 의사당 안으로 들어갔다. 한 번에 20명씩 최대 30분간 머무르는 식으로 진행됐다. 11세 아들과 함께 조문을 하고 나왔다는 50대 남성 다니엘 진 링 씨는 “아침부터 줄을 섰지만 4시간이 지나서야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얼마든지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차례를 기다리던 한 30대 남자는 “회사에 하루 휴가를 내고 이곳에 왔다. 서너 시간 기다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왔는데 이렇게 사람이 많으니 오늘 조문을 할 수 있을지조차 모르겠다”고 했다. 국장(國葬)으로 치러질 리 전 총리 장례는 29일 싱가포르 서북부에 위치한 싱가포르국립대(NUS) 센트럴센터에서 거행된다. 정부 관계자들은 장례식 준비에 한창이었다. 장례식에 참석하겠다고 밝힌 외국 정상들도 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을 비롯해 쁘라윳 짠오차 태국 총리,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 등이 참석 계획을 밝혔고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참석을 검토 중이라고 교도통신 등 일본 언론이 25일 보도했다.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도 참석하겠다고 25일 밝혔다. 장례식이 끝나면 리 전 총리의 시신은 화장될 예정이다. 고인은 생전에 “내가 죽거든 화장해서 아내의 뼛가루와 합쳐 달라”고 말했었다.:: 포차(砲車) 운구 ::프러시아 군대의 전통에서 시작되었다가 1901년 영국 빅토리아 여왕의 “나는 군인의 딸로 죽고 싶다”는 유언에 따라 처음으로 도입되어 국가 지도자 장례식 때 많이 보인다.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와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 테레사 수녀(1997년 사망) 운구도 포차가 했다.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싱가포르 정부가 마련한 리콴유 전 총리의 분향소는 ‘통제 속의 꽉 짜인 질서’가 특징인 이 나라 문화를 반영하는 듯 특이했다. 우선 분향소 자체가 한국에서 흔히 보는 모습이 아니었다. 고인의 시신이 안치된 이스타나 대통령궁 정문 오른쪽에 높이 2.5m, 폭 1m, 두께 30cm의 흰색 페인트로 칠한 6개의 큰 나무 게시판이 줄지어 있고 그 앞에 시민들이 꽃다발을 놓는 식이었다. 영정이나 향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사람들은 이곳을 ‘트리뷰트 플레이스(tribute place·추모 장소)’라고 불렀다. 리 전 총리 타계 이틀째인 24일 오전 10시부터 줄을 길게 늘어선 시민들은 차분하게 현장 안내를 받아 나무 게시판 앞에 선 뒤 묵념을 하거나 꽃을 놓았다. 그러고는 게시판 앞 테이블에 놓인 메모지와 펜으로 조용히 추모 글을 남긴 뒤 투명함에 넣었다. 양미간에 주름이 질 정도로 진지하게 공을 들여 글을 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간혹 흐느끼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화를 한다거나 통곡하는 소리가 나오지 않아 분위기는 정적에 가까울 정도로 조용했다. 안내를 맡은 공무원(군인)들은 분향소가 붐비지 않도록 추모객들을 다섯 명씩 끊어 들여보냈다. 함에 메모지가 가득 차면 일일이 꺼내 내용이 괜찮다고 판단되는 것들을 판 앞뒤(한 면에 54개씩)에 질서정연하게 꽂았다. 한 안내원은 “오늘 아침까지만 메모지가 벌써 2만 장 가까이 나갔다”고 말했다. 게시판에 가로세로로 나란히 꽂힌 메모들은 깨알같은 글씨로 긴 사연을 담은 것도 있었고 짧게 고인에 대한 추모 내용을 적은 것들도 많았다. ‘우리가 집이라 부를 수 있는 아름다운 나라를 이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싱가포르를 위한 당신의 일생에 걸친 헌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리안 핑 씨(58·주부)에게 “싱가포르의 ‘메모 분향’이 특이한 것 같다”고 기자가 말을 건네자 “글로 차분하게 슬픔을 표현하는 것이야말로 질서를 좋아하는 우리 싱가포르인들에게 맞는 추모 방식인 것 같다”고 답했다. 싱가포르는 도시 전체가 거대한 슬픔에 잠겨 있다. 한낮 평균기온이 31도나 될 정도로 덥고 습한데도 추모 열기는 시간이 갈수록 달아오르고 있다. 대표 일간지 스트레이츠타임스는 24일자 지면 전체를 리 전 총리 업적과 살아온 길을 소개하는 기사로 채웠고, 공항 지하철 버스터미널 식당 등에 설치된 TV에서는 추모 특별방송이 끊이지 않고 흘러나왔다. 다민족 사회(중국계 75%, 말레이계 13%, 인도계 12%)답게 TV에서는 중국계를 비롯해 히잡(무슬림 여성들이 쓰는 가리개)을 쓴 말레이계, 터번을 쓴 인도계 주민들의 인터뷰가 번갈아 나왔다. 노동조합 연합체인 전국노동조합(NTUC) 조합원들도 이날 1분간 묵념하는 행사를 하기도 했다. 이곳 사람들의 일상은 변함없는 듯했지만 얼굴에선 ‘큰어른을 잃었다’는 상실감이 확연하게 엿보였다. 인상 깊었던 점은 시내 곳곳에서 만난 젊은이들도 하나같이 똑같은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 가난을 겪지 않아 중장년층과는 감회가 다를 것이고 성장의 대가로 자유를 억압당한 것에 비판적인 의견도 나올 법한데 대부분이 “리콴유가 있었기에 오늘의 싱가포르가 있다”고 말했다. 분향소 앞에서 만난 난양이공대(NTU) 학생 로널드 림 씨는 “한국 기자까지 이렇게 취재를 오고 외신들도 그의 죽음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는 것을 보고 조국과 ‘파운딩 파더(founding father·건국의 아버지)’에 대해 더 강한 자부심을 느끼게 됐다”며 “언론을 통제하고 일당독재나 다름없이 정치적 다원주의를 배척한 점 등은 오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당시엔 너무 가난해서 모든 걸 돌볼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을 옆에서 듣고 있던 조문객 이안 왕 씨(68)는 “싱가포르 청년들도 ‘리콴유 키즈’라 그의 업적을 대략은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지금의 싱가포르를 있게 해준 당신에게 감사드립니다.”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지난달 5일부터 폐렴으로 입원해 머물렀던 싱가포르종합병원 앞에 수북이 쌓인 추모 카드에 적힌 글귀다. 나라의 경제적 번영과 사회적 안정의 기틀을 세워 ‘국부(國父)’로 존경받는 리 전 총리가 향년 92세로 타계하자 국민들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었다”며 눈물을 흘리며 애도했다. 싱가포르종합병원과 가족 장례식이 치러질 총리 공관, 정부가 마련한 분향소 앞에는 시민들이 가져온 꽃이 차곡차곡 쌓였다. 거리 곳곳엔 늦은 밤까지 추모 발길이 이어지고 관공서마다 조기(弔旗)가 내걸려 도시 전체에서 장례식 분위기가 배어 나왔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23일 오전 성명을 내고 “리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 18분(한국 시간 오전 4시 18분) 세상을 떠났다. 평화롭게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리셴룽(李顯龍) 총리가 슬픈 마음으로 전 국민에게 알려드린다”고 발표했다. 리 총리는 리 전 총리의 장남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23∼29일 7일간을 애도 기간으로 정했다. 국장(國葬)으로 치러질 장례식은 29일 오후 2시 싱가포르국립대 문화센터에서 열리며 이후 시신은 화장된다. ▼ “재임때 공관 비운채 소박한 삶… 고인돼서야 오셨네요” ▼‘눈물에 잠긴 싱가포르’23일부터 이틀간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의 가족 장례식이 치러지는 이스타나 대통령궁 내 총리 공관인 ‘스리 타마섹’ 앞에는 이날 오전부터 수백 명의 시민이 몰려들었다. 새벽에 발표된 리 전 총리의 타계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고인의 시신이 운구되는 모습이라도 보겠다며 궁 바깥으로 몰려들었다. 아들인 리셴룽(李顯龍) 총리와 며느리이자 총리 부인인 호칭 여사도 오전에 궁에 도착했다. 호 여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이스타나 궁 정원 잔디 위 안개도 이별을 고하는 것 같다’고 적었다. 리 전 총리의 시신을 실은 운구차가 다가오자 기다리고 있던 시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치거나 “고마워요. 리콴유”를 외쳤다. 운구 행렬이 공관 안으로 들어가자 길에 죽 늘어서 있던 사람들은 정문 앞에 다시 모여 정부가 비치한 방명록과 추모 카드에 애도 메시지를 쓰고 꽃다발을 놓았다. 이날 오후 8시까지 정문 앞에서만 1만1000여 개의 추모 카드가 만들어졌다. 밤이 되자 추모객들은 더욱 늘어났다. 오후부터 공관 앞에 모여든 시민들은 일렬로 줄을 지어 리 전 총리를 조문했다. 대부분 검은 양복과 검은 원피스를 입었고 손에는 꽃다발을 들고 있었다. 리 전 총리를 생생하게 기억하는 일부 노인들은 조문소 앞에서 “아버지(Father)”라 부르며 울기도 했다. 이곳을 찾은 오잉후아 씨(68)는 “리 전 총리는 생전에 이곳 총리 공관에서 살지 않았다. 죽어서야 왔다”며 눈물을 훔쳤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로 선출된 1959년 “내 아이들을 집사와 청소부가 있는 특별한 환경에서 키우지 않겠다”며 공관 사용을 거절했다. 이후에도 1965년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연방에서 독립할 때 안전 문제로 잠깐 머무른 것 외에는 주로 외국 귀빈을 접대할 때만 이용했다. 리셴룽 총리도 현재 공관에 살지 않는다. 그는 이날 오전 8시(현지 시간) 부친의 타계를 공식 발표하는 TV 연설을 통해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에게 자랑스러운 국가 정체 의식을 불어넣었다”며 “우리는 앞으로 그와 같은 인물을 다시 보지 못할 것이다. 그는 싱가포르 자체였다”고 말했다. 그는 영어 중국어 말레이어 등 3개 언어로 연설을 하면서 슬픔이 북받치는 듯 수차례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그러면서 “건국 총리 리콴유 선생, 편안히 쉬십시오”라는 말로 연설을 마무리했다. 이날 공관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토니 탄 싱가포르 대통령과 고촉통 전 싱가포르 총리, 하사날 볼키아 브루나이 국왕, 리카싱 청쿵그룹 회장 등이 다녀갔다. 공관 내부에 안치된 리 전 총리의 관은 하얀 꽃들로 장식됐다. 상주인 리 총리는 검은색 바지와 흰색 티셔츠 차림으로 직접 조문객을 맞았다. 리 전 총리가 마지막으로 머무른 싱가포르종합병원 앞에도 추모객의 발길은 끊이지 않았다. 싱가포르 당국은 25일까지 탄종파가르, 앙모키오 등 시내 중심가 18곳에 분향소를 추가로 설치할 예정이다. 택시 기사인 존 폴림 씨(53)는 “싱가포르의 엄청난 변화와 리 전 총리의 리더십을 직접 겪은 우리 세대나 부모 세대는 너무 상심이 크다”고 말했다. 리 전 총리의 타계와 동시에 싱가포르 정부가 만든 추모 홈페이지(www.rememberingleekuanyew.sg)는 이날 오전 접속자가 크게 몰린 탓인지 한때 작동이 중지되기도 했다. 여기에는 고인이 부인 콰걱추 여사와 젊은 시절 데이트하면서 찍은 사진, 현지 시찰을 하며 찍은 사진 등 생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사진들이 올라 있다. 많은 싱가포르 시민들은 추모 홈페이지와 리 전 총리 트위터, 싱가포르 총리실 페이스북 등을 오가며 추모 메시지를 남겼다. 한 시민은 그의 죽음이 발표된 시간을 가리키는 시계의 사진을 올려두고 “이 시간을 그에게 바친다. 그는 위대한 인간이었다”라고 적기도 했다. 외국인들도 “현대사의 거인이 쓰러졌다”며 깊은 애도를 표시했다. 공관 앞 분향소를 찾은 일본인 교사 모리야마 씨(46)는 “한 국가의 정치를 자신만의 철학으로 그만큼 밀어붙인 이가 없다는 점에서 리 전 총리는 대단한 정치인”이라고 말했다. 그의 사망 소식이 발표된 직후부터 이날 오후 11시까지 리 전 총리를 언급한 전 세계 트윗과 리트윗은 19만 건을 넘어섰다.싱가포르=이설 기자 snow@donga.com}
1인당 국민소득 400달러에 불과했던 가난한 어촌 마을을 5만 달러가 넘는 부강한 나라로 탈바꿈시킨 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영면한 올해는 싱가포르 독립 5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리 전 총리는 박정희(한국) 장제스(대만) 덩샤오핑(중국)과 함께 아시아의 도약을 이끈 아시아 1세대 창업형 지도자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지난해 싱가포르 1인당 GDP는 5만6113달러로 세계 8위, 아시아 1위이며, 세계경제포럼 (WEF) 조사 국가경쟁력은 세계 2위, 국제투명성기구 조사 국가청렴도는 세계 5위이다. 이런 싱가포르를 있게 한 주인공이 리콴유라는 데에 이견은 없다. 1923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자란 리콴유는 어릴 적부터 수재소리를 들으며 1935년 명문 래플스학교에 수석 입학 수석 졸업을 한다. 하지만 곧 2차 대전이 터지고 일본군이 고향을 점령하면서 일본군 선전 정보부에서 번역 일을 하거나 고무풀 장사 등을 하며 생계를 이어야 했다. 그는 훗날 자서전에서 “일본군 치하를 겪으며 권력을 차지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의 속성을 몸으로 익혔다. 정부가 왜 필요한지 깨달은 시기이기도 했다”고 적었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영국 유학을 떠나 런던 정경대·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해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한 그는 영국의 선진 문물과 학문과 인종차별 등을 경험하면서 “내 나라를 좀 더 나은 곳으로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영국에서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950년 고국에 돌아온 그는 노동 전문변호사로 영국 측 사용자들과 아시아계 노동자들 사이 쟁의를 잇따라 타결시키면서 동족의 이익을 대변해야겠다는 열망을 가졌고 마침내 서른한 살 때 정치에 뛰어들어 1954년 창립한 ‘인민행동당’ 사무총장직을 맡았다. 5년 뒤인 1959년 싱가포르가 자치권을 얻어 낸 뒤 실시한 총선에서 인민행동당이 51석 중 43석을 휩쓸며 압승하자 리콴유는 서른여섯 나이에 첫 총리가 된다. 이후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 퇴임할 때까지 장장 26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하면 무려 31년 동안 총리로 재직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일한 총리로 기록됐다. 독립 당시 400달러 수준이었던 싱가포르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그가 총리직에서 퇴직한 1990년에 1만2750달러를 달성했다. 리콴유는 서울시만한 면적에 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도시국가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남의 힘이 필요하다고 판단, 1963년 국민투표를 통해 말레이 연방에 가입하지만 연방의 맹주 말레이시아와 충돌을 빚다 2년 만에 탈퇴한다. 리콴유가 정치노선의 핵심키워드로 ‘실용주의’를 갖게 된 배경이 되는 일이었다. 그는 이후 특정 이념에 경도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 반식민주의-온건사회주의-강경 반공주의를 넘나들면서 싱가포르를 통치했다. 2007년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싱가포르의 이념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우리는 이념에서 자유롭다. 잘 작동한다면 시도해라. 좋다면 계속해라. 작동하지 않는다면 던져버리고 다른 것을 시도해라. 이게 이념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집권 후 재정 안정화, 서민주택 보급, 공직비리조사국 설치, 해외투자 유치 등의 정책을 시행했다. 개발도상국이 소홀히 하기 쉬운 환경보호에도 힘써 싱가포르를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도시 중 하나로 만들었다. 미래를 내다 본 사회간접자본(SOC) 건설에도 박차를 가해 싱가포르 항만공사를 설립해 세계 일류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했고, 창이 국제공항을 건설해 싱가포르를 물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만들었다. 또 세계 유명 금융기관을 적극 유치해 싱가포르를 동남아시아 금융 중심지로 일으켰으며 자원빈국에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고 생각해 공직자 급여를 세계 최고수준으로 끌어 올려 공무원들의 사기를 북돋웠다. 그는 국민들을 배불리 먹이기 위해서는 권위적 통치가 불가피하다는 정치관을 가졌었다. “여론이나 지지율 등락에 관심을 갖는 것은 지도자의 일이 아니다. 국민이 원하는 것은 신문 기사가 아니라 집 의료 직장과 교육”이라면서 ‘언론 자유’를 경시하는 태도도 가감없이 드러내곤 했다. 또 “국민이 사랑하는 지도자가 될지, 두려워하는 지도자가 될지 사이에서 나는 늘 마키아벨리가 옳다고 믿었다”면서 마키아벨리즘 신봉자라는 것도 숨기지 않았다. 자신을 괴롭히는 정적(政敵)들에 대해서도 “말썽꾼들을 정치적으로 파괴하는 게 나의 일”이라면서 “내 가방 안에는 매우 날카로운 손도끼가 있다. 만약 말썽꾼과 겨루게 된다면 나는 손도끼를 사용할 것”이라는 말하기도 했다. 리 전 총리는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태형(笞刑)을 도입하는 등 강력한 법치로 나라를 다스렸다. 담배꽁초 투기, 화장실 물 내리기 등 사소한 부분까지 통제하자 ‘정부가 일일이 간섭하는 유모 국가’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독재라는 비난에 대해서도 아시아가 서구를 따라잡으려면 강한 리더십이 필요하다며 ‘아시아적 가치’를 주장해 당시 아시아에 만연했던 독재를 옹호하는 논리를 폈다는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경제개발과정에서 무력을 동원하거나 착취, 인권 침해 논란을 초래하지 않았고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라며 측근도 봐주는 법이 없었던 청렴한 지도자여서 ‘온건한 독재자’로 불렸다. 1986년 개국공신이자 최측근인 태 치앙완 국가개발부장관이 두 차례에 걸쳐 40만 싱가포르 달러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자 망설임 없이 구속수사를 지시했다. 결국 태 장관은 감옥에서 자살했다. 본인에게는 더 엄격했다. 1995년 부동산 급등으로 자신의 일가에 대한 투기 의혹이 일자 조사를 자청했고, 무혐의 결론이 난 뒤에는 차익을 모두 기부했다.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가 2010년 89세를 일기로 타계했을 때에는 “그녀 없이 나는 다른 사람으로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다만 그녀가 89세의 인생을 꽤 잘 살았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겠다. 하지만 마지막 이별의 이 순간 내 마음은 슬픔과 비탄으로 무겁다”며 절절한 사부곡(思婦曲)을 감추지 않았다.이설 기자 snow@donga.com·최창봉기자 ceric@donga.com}
<리콴유 약력>-1923년 9월 16일 싱가포르 출생-1946년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과 졸업-1954년 인민행동당 창당 참여-1959년 싱가포르 자치정부 초대 총리 취임-1963년 말레이시아연방 발족으로 싱가포르 주정부 총리 맡음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싱가포르 분리·독립, 싱가포르 총리 취임-1979년 선박 적재량 기준 싱가포르가 세계 2위의 항구로 승격-1990년 퇴임(26년간 총리 재임)-2004년 장남 리센룽,총리 취임-유족: 부인과 2남 1녀-주요 저서: ‘싱가포르 이야기(1999)’ ‘일류국가의 길(2001)’이설 기자 snow@donga.com}

23일 타계한 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통한다. 26년간의 총리 재임기간 중 도시국가였던 싱가포르를 작지만 강한 ‘강소국’으로 발전시킨 그에게는 ‘작은 거인’ ‘소프트 독재자’ 등의 여러 별명이 붙어 다녔다. ‘국가가 개인에 우선한다’는 철학으로 개발독재 방식을 추구해 한국의 박정희 전 대통령과도 종종 비교된다. ● 시대를 만든 인물 싱가포르는 국가 브랜드가 뚜렷하다. 싱가포르는 부패가 적고 거리가 깨끗한 나라라는 긍정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반면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에게도 태형을 때려 체벌하는 나라라는 부정적 이미지도 따라다닌다. 이같은 싱가포르 이미지는 리 전 총리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동갑내기 외교계 거물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은 그를 ‘시대를 만든 인물’이라고 극찬했다. 소년 리콴유는 부잣집 도련님이었다. 1923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나 풍족하게 자랐다. 하지만 그의 집안은 영국식 사고와 생활방식을 따랐다. 국제 증기선에 일하며 영국인 선원들의 합리적 사고방식을 경험한 할아버지의 영향이 컸다. 할아버지는 리콴유를 ‘해리’라 부르며 중국어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쳤다. 리콴유는 1935년 명문 래플스학교에 수석 입학했고 졸업할 때도 수석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 평온한 일상은 1942년 태평양 전쟁을 겪으며 무너졌다. 전쟁 통에 집안 형편이 기울면서 생활전선에 내몰린 것. 그는 암시장에서 고무풀을 내다팔았다. 또 일본군 선전부에서 근무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이 시기 그는 현실에 눈 떴다. 특히 할아버지의 죽음은 그를 정치적으로 각성시켰다. 이웃들이 수시로 일본군에 끌려가는 상황에서 그는 용케 살아남았다. 훗날 그는 “일본군 치하에서 권력을 차지하고 사람을 다스리는 정치의 속성을 몸으로 익혔다. 결국 살아남았다는 점에서 나를 ‘여우’라 불러도 좋다”고 회고했다. 종전 뒤 그는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영국 변호사 자격증을 따고 1950년 고국에 돌아온 그는 영국 변호사 존 레이콕의 사무실에 들어갔다. 이후 그는 진보당 후보로 출마한 상사의 선거운동을 도우면서 운명처럼 정치에 첫발을 내딛었다. 1951년엔 더 큰 기회가 찾아왔다. 전국 최대 규모인 집배원·전화교환수 노조가 그에게 일은 맡긴 것. 리콴유는 사건을 매끄럽게 해결해 일약 스타 변호사로 떠올랐다. 이후 그의 정치 행보는 탄탄대로를 달렸다. 노동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얻은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1954년 인민행동당(PAP)를 창당했다. PAP는 1959년 5월 온건·합리 노선으로 다양한 민족의 지지를 받으며 집권당이 됐다. 리콴유는 자동으로 초대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에 취임했다.● ‘살아남아야 한다’ 그는 곧바로 팔을 걷어붙였다. 서울시만한 면적에 자원도 인구도 부족한 도시국가.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 홀로 성장하기엔 역부족이란 생각에 말레이시아 연방 가입을 결단했다. 하지만 양측 관계는 말레이시아의 일방적인 추방으로 끝났다. 말레이시아에겐 사사건건 목소리를 높이는 중국계 총리가 눈엣가시였던 것이다. ‘살아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으로 그는 국가 발전의 밑그림을 그렸다. 이스라엘의 자문을 받아 군대를 창설한 뒤 경제로 눈을 돌렸다. 싱가포르는 경제발전 모델로 이스라엘을 따랐다. 양국은 적대적 국가에 둘러싸여 있고 자원이 없는 소국이란 점에서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리 전 총리는 이스라엘처럼 주변국이 아닌 미국 유럽 등 선진국과 주로 교역했다. 다국적 기업이 7000여 개에 달하는 지금의 대외개방 정책도 여기에 뿌리를 두고 있다. 당시 야권은 당시 유행했던 ‘제국주의 국가가 제3세계를 착취한다’는 종속이론을 들어 그의 경제정책에 반대했다. 리 전 총리는 “이론도 먹고 살 수준이 돼야 논할 수 있다”며 밀어붙였다. 경제가 부흥하면서 지도층의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리 전 총리는 “부패는 망국의 지름길”이라며 엄벌로 다스렸다. 측근도 봐주는 법이 없었다. 1986년 개국공신이자 최측근인 태 치앙완 국가개발부장관이 두 차례에 걸쳐 40만 싱가포르 달러의 뇌물을 받은 것으로 드러나자 그는 망설임 없이 구속수사를 지시했다. 결국 태 장관은 감옥에서 자살했다. 본인에게는 더 엄격했다. 1995년 부동산 급등으로 자신의 일가에 대한 투기 의혹이 일자 조사를 자청했고, 무혐의 결론이 난 뒤에는 차익을 모두 기부했다. 싱가포르의 청렴 풍토는 이런 바탕에서 싹텄다. ● ‘아시아적 가치’ 리 전 총리는 “질서를 넘어선 자유는 용납되지 않는다”며 강력한 법치로 다스렸다. 태형은 이러한 철학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재임시절 담배꽁초 투기, 화장실 물 내리기 등 사소한 부분까지 통제했다. ‘일일이 간섭하는 유모국가’라는 국제사회의 비판에 그는 “정부는 국민을 교육하고 올바른 생활습관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고 반박했다. 원칙주의는 외교계에서도 빛을 발했다. 1988년 자국민을 살해한 인도네시아 군인 2명을 사형시켰고, 1993년 미국 청년 마이클 페이가 싱가포르의 질서를 어지럽히자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압박을 받으면서 끝까지 태형을 집행했다. 그의 사상은 ‘아시아적 가치’로 요약된다. “서양은 사회질서 유지 기능이 정부로 넘어간 반면 아시아는 가족문화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기에 지도자는 국민의 생활을 통제하고 잘못하면 매를 때려도 된다”는 게 골자다. 그는 1994년 미국 정치잡지 ‘포린 어페어스’를 통해 김대중 전 대통령과 이에 대한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3,4월호에서 리콴유가 “아시아에 서구의 민주주의는 맞지 않는다”는 논지를 펼치자, 김 전 대통령은 11·12월호에서 “아시아의 문화도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전통이 있다”고 반박했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두 정치인의 논쟁에 외신들도 큰 관심을 보였다. 그는 또 장기집권으로 ‘개발 독재자’라는 비판에 시달렸다. 1990년 총리에서 물러날 때도 측근에게 권력을 넘긴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평가를 받았고 2004년에 총리직에 오른 현 리센룽 총리는 그의 장남이다. 그의 자녀와 측근들은 대부분 고위 관리로 재직하거나 주요 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젊은층을 중심으로 ‘정치 후진국’에 대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노조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도 비판받는 대목이다. 그는 노조를 변호하면서 정계에 입문했지만 노조가 지나친 욕심으로 국익을 해친다고 판단해 파업을 용납하지 않았다. 한국과 싱가포르는 인연이 깊다. 리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을 모두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1979년 1월 부친 박 대통령이 리 전 총리와 면담할 때 통역을 맡았다. 리 전 총리는 특히 박정희 대통령에 특별한 애정을 보였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 “한국의 성공을 위한 박 대통령의 강한 의지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박 대통령이 없었다면 한국은 산업화를 이루지 못했을 지도 모른다”고 적었다. 퇴임 이후 죽음을 맞기 직전까지 온통 싱가포르에 대한 염려뿐이었던 작은 거인. 그가 일군 싱가포르는 리콴유의 인생 그 자체였다.이설 기자 snow@donga.com}

싱가포르의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리콴유(李光耀·91) 전 총리가 23일 타계했다고 싱가포르 총리실이 밝혔다. 향년 91세. 리 전 총리는 폐렴으로 지난달 5일부터 싱가포르 종합병원에 입원,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왔다. 싱가포르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리 전총리가 오늘 오전 3시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며 “(아들) 리센룽(李顯龍·63) 총리가 매우 슬퍼하고 있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는 1959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초대 총리에 올랐으며 이후 도합 26년 간 총리직을 지내다 1990년 퇴임했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의 국부’로 통한다. 26년간의 총리 재임기간 중 도시국가였던 싱가포르를 작지만 강한 ‘강소국’으로 발전켰다. 취임 첫해 400달러(약 45만 원)에 불과하던 1인당 GDP이 지금은 5만6112달러에 이른다. 리 전 총리는 한국과도 인연이 깊다. 그는 박정희 대통령부터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을 모두 만났다. 1923년 싱가포르로 이주한 중국계 사업가 집안에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영국으로 건너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고국으로 돌아온 뒤 1954년 인민행동당(PAP)를 창당했고 PAP는 1959년 집권당이 됐다. 리 전 총리는 자동으로 초대 싱가포르 자치정부 총리에 취임했다. 이후 싱가포르를 부패 없는 나라로 만들기 위해 평생을 노력했다. 싱가포르는 온통 추모 물결에 휩싸였다. 싱가포르 국민들은 그의 출신 선거구인 탄종 파가르 지역 당국이 마련한 전시장에 그의 건강을 기원하는 기를 달고 서명 메시지 꽃등을 전시하면서 쾌유를 기원해왔다. 리센룽 총리는 자신의 페이스북 홈페이지를 통해 리 전총리의 타계를 전했다. 그의 페이스북 홈페이지는 ‘위대한 인간, 위대한 위업, 그의 타계로 세상은 전보다 가난해졌다’ ‘그는 세계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 중 한명이었다. 그는 조국에 헌신했다’ 등 리 전총리를 애도하는 글들이 쇄도했다. 리 전 총리는 2013년 펴낸 ‘한 사람이 바라본 세계’(One Man‘s View of the World)라는 책에서 “내가 움직이지 못하고 인공튜브로 연명한다면, 의사들은 나를 떠나도록 해야 한다”는 내용의 ’사전 의료 지침‘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주엔 그의 병세가 심각하게 악화됐다는 소식들이 전해지며 그가 사망했다는 오보가 나오기도 했다.이설 기자 snow@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