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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경주 신라 고분에서 43년 만에 금동(金銅) 신발이 새로 출토됐다. 문화재청은 경주 황남동 120-2호분에서 금동 신발과 허리띠 장식용 은판(銀板), 각종 말갖춤(마구·馬具) 장식 등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고 27일 밝혔다. 신라 금동 신발은 실생활에서 쓰던 것이 아니라 장사를 치르기 위해 의례용으로 만든 것이다. 경주 신라 고분에서 이 같은 신발이 출토된 것은 1977년 경주 인왕동 고분군에서 나온 이후 처음이다. 한 쌍인 금동 신발은 매장된 시신의 발치에서 발견됐다. 표면에는 ‘T’자 모양의 무늬가 뚫려 있고, 둥근 금동 달개(영락·瓔珞)가 달려 있다. 신발은 27일 현재 완전히 파낸 것은 아니어서 계속 발굴 중이다. 경주 황남대총 남분에서도 비슷한 모양의 금동 신발이 출토된 적이 있다. 조사기관인 신라문화유산연구원 김권일 선임연구원은 “금동 신발이 나왔다는 건 무덤에 묻힌 사람이 왕족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 시신의 다리 부분에선 허리띠 장식에 쓰인 은판이 드러났고, 머리 부분에서는 여러 점의 금동 달개가 확인됐다. 이 달개는 머리에 쓰는 관(冠)이나 관 꾸미개(관식·冠飾)일 가능성이 있다고 문화재청은 밝혔다. 부장품으로는 금동 말안장(안교·鞍橋)과 금동 말띠꾸미개(운주·雲珠) 등이 출토됐다. 황남동 120호분은 경주 대릉원 일원에 있다. 일제강점기 때 고분 번호가 부여됐지만 민가가 들어서면서 훼손돼 고분의 존재를 명확히 확인할 수 없는 상태였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길이 하나 막혔다고 끝은 아니다.” 간송미술관 측이 재정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27일 케이옥션 경매에 내놓은 보물 불상 2점이 유찰되면서 간송 측의 향후 행보에 문화재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유찰 소식을 접한 뒤 본보와의 통화에서 “기왕 하기로 한 이상 (경매에서)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경매 결과와 관계없이 간송미술관은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기조를 살려 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간송가(家)가 내놓은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의 경매 시작가는 각각 15억 원으로 경매사가 호가를 불렀음에도 응찰에 나선 이가 없었다.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전형필 선생의 후손으로서 문화재를 매각한다는 부담을 감수하고 매각에 나선 간송 측으로서는 상처가 작지 않은 게 사실이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 역시 전날 본보에 밝힌 대로 이날 경매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러나 27일 “국립중앙박물관이 민간 후원회와 함께 구입하는 쪽으로 케이옥션과 상의하고 있다”고 밝힌 배 관장의 인터뷰가 한 언론에 나가면서 경매 유찰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원래도 ‘간송 컬렉션은 국공립기관이 소장해야 한다’는 여론이 있었던 차에 관장의 발언이 사립미술관이나 개인 수집가의 응찰을 더욱 주저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한 문화재계 인사는 “의도야 어쨌건 국립중앙박물관의 처신이 적절하지 않았다”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국립중앙박물관은 구입을 위한 물밑 협상을 거의 벌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일단 ‘시간을 벌었다’는 분위기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경매를 이틀가량 앞두고 케이옥션에 ‘경매 중지’가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그대로 진행하는 게 자연스럽다’는 취지의 답을 들었다”고 했다. 이날 불상의 경매 시작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문화재 관계자는 “당대 문화재 가운데 유일한 작품이었으면 경매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했지만 다른 전문가는 “경매 시작가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고 했다. 이번 경매한 주관한 케이옥션 역시 매각을 성사시키지는 못했다는 측면에서 타격이 없지 않다는 평가가 나온다. 간송 측이 앞으로는 ‘조용히’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추정도 나온다. 최근 고미술 시장에서 거액의 거래가 침체됐기에 간송 측이 경매 방식을 택했지만 ‘리트머스시험지’ 성격의 이번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것이라는 얘기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간송 컬렉션’에 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는 “아무리 사유물이라 해도 간송 컬렉션 가운데 중요 문화재의 구입은 국공립기관이 예산 탓을 하며 너무 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간송미술관이 사립이지만 공공성의 역사를 가진 이상 간송 측도 어려움을 솔직히 털어놓고 사회도 지원하는 것에 대해 공개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길이 하나 막혔다고 끝은 아니다.” 간송미술관 측이 재정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27일 케이옥션 경매에 내놓은 보물 불상 2점이 유찰되면서 간송 측의 향후 행보에 문화재계의 관심이 모이고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관계자는 이날 유찰 소식을 접한 뒤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기왕 (경매에 내놓는) 방향으로 가기로 한 이상 좋은 결과가 나왔으면 했다”고 아쉬움을 표했다. 그리고 “경매 결과와 관계없이 간송미술관은 새로운 길을 걷겠다는 기조대로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간송가(家)가 내놓은 금동여래입상과 금동보살입상의 경매 시작가는 각각 15억 원으로 경매사가 호가를 불렀음에도 응찰에 나선 이가 없었다. ‘민족문화유산의 수호자’ 전형필 선생의 후손으로서 문화재를 매각한다는 부담을 감수하고 매각에 나선 간송 측으로서는 상처가 작지 않은 게 사실이다. 이번 유찰은 ‘간송 콜렉션은 국공립기관이 소장해야 한다’는 여론에 사립미술관이나 개인 수집가들이 응찰을 주저했던 탓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간송 측으로서는 경매를 통해 깔끔하게 작품을 매각하고자 했을 텐데, 국립중앙박물관이 협의를 통해 구매하고 싶다는 의향을 경매에 임박해 공개적으로 밝혔기에 사립미술관이나 개인들로서는 응찰 부담이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간송 측이 경매 출품 전 박물관과 협의했으면 좋았겠지만 그러지 않았다”며 “경매를 이틀 가량 앞두고 케이옥션에 ‘경매 중지’가 가능한지 문의했지만 ‘그냥 진행하겠다’는 취지의 말을 들었다”고 했다. 박물관으로서도 구입 의향이나 방식을 정하기에 시간이 부족했을 것이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간송 측과 적극 협의하려는 노력이 부족했다는 지적도 있다. 경매 시작가(15억 원)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한 문화재 전문가는 “당대 문화재 가운데 유일한 작품이었으면 경매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했지만 다른 관계자는 “경매 시작가 이상의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고 했다. 케이옥션 역시 이번 경매에 국민의 이목이 집중되는 상황이 됐음에도 매각을 성사시키지는 못했다는 측면에서 이미지에 타격이 없지 않다는 평가다. 경매 사실이 공개됐음에도 매각에는 성공하지 못한 간송 측이 이제는 ‘조용히’ 매각에 나설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이광표 서원대 교수는 “최근 고미술 시장에서 거액의 거래가 침체된 상황에서 간송 측이 경매 방식을 택했을 것으로 본다”면서 “‘리트머스 시험지’ 성격의 이번 경매 시도가 무위로 돌아간 이상 다른 방법을 찾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간송 콜렉션’에 관해 근본적인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최응천 동국대 교수(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는 “이번 불상 매각 시도를 통해 앞으로의 해법을 만들어야 한다”며 “아무리 사유물이라 해도 간송 컬렉션 가운데 중요 문화재의 구입은 국공립기관이 예산 탓을 하며 너무 잴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참 만남, 참 문화유산(Feel the REAL KOREAN HERITAGE).’ 문화재청이 문화유산에 대한 관심과 방문을 촉진하기 위해 26일 문화유산 방문 캠페인을 시작했다. 문화재청은 이날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선포식을 열고 “문화유산과 사람 간 거리를 좁히고, 문화유산을 국민을 위한 공간으로 만드는 것을 목표로 캠페인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캠페인은 국내 유네스코 세계유산과 인류무형유산을 2, 3일 자유 여정으로 즐길 수 있는 문화유산 방문 코스 7선(選)을 제안했다. ‘한국 문화유산의 길’로 명명한 방문 코스는 △경주와 안동을 중심으로 한 ‘천년 정신의 길’ △공주와 부여, 익산을 둘러보는 ‘백제 고도의 길’ △우리 옛소리를 주제로 전북과 전남 지역을 둘러보는 ‘소릿길’ △제주도 문화유산을 둘러보는 ‘설화와 자연의 길’ △서울과 인천, 경기의 궁과 산성을 둘러보는 ‘왕가의 길’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서원과 산사를 각각 묶은 서원의 길, 수행의 길 등이다. 문화재청은 교통편과 주변 명소 및 숙박 등 관광정보를 담은 ‘문화유산 방문 지도·가이드북’을 제작해 전국 관광안내소 및 온라인에서 제공한다. 세계유산축전을 비롯한 여러 특별 행사도 벌인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을 알리는 축제 ‘세계유산축전’은 ‘한국의 서원’ 등을 주제로 경북과 제주 등에서 올 7∼9월 펼쳐진다. 7월에는 수원 화성을 무대로 케이팝 공연과 한복 패션쇼 등이 펼쳐지는 축제 ‘코리아 온 스테이지(KOREA on Stage)’가 열릴 예정이다. 5대 궁(경복 창덕 창경 덕수 경희)을 주제로 한 ‘궁중문화축전’은 10월 10∼18일 열린다. 기존 문화유산 전시와 공연도 캠페인에 연계해 운영한다. 전북 전주 국립무형유산원의 무형문화재 전시·공연, 충남 공주를 비롯해 전국 36개 문화유산에서 한밤에 즐길 수 있는 ‘문화재 야행’, 전국 주요 박물관 특별 전시, 문화재 발굴·수리 현장 공개, 조선왕릉문화제 등이 준비돼 있다. 문화재청은 문화유산을 즐기는 새로운 방식이 생기고, 한류 확산으로 문화의 사회경제적 가치가 새롭게 부각되는 시대 흐름에 따라 방문 캠페인을 진행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우리 유산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휴식과 관광, 치유의 공간으로서 문화유산의 매력을 알리게 될 것”이라며 “문화유산은 대다수가 실외에 있어 ‘생활 속 거리 두기’를 하며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고 말했다. 이번 캠페인은 지난해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확대국가관광전략회의에서 관광혁신을 이끌 사업으로 선정됐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이날 선포식에서 “우리나라는 전국이 ‘지붕 없는 박물관’과 다름없을 정도로 문화유산 강국”이라며 “캠페인이 내수경기 회복의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간송미술관이 27일 케이옥션 경매에 출품하는 금동여래입상(보물 284호)과 금동보살입상(보물 285호)의 새 주인이 누가 될지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은 공식적으론 응찰 여부를 아직 결정 안 했다고 하지만 사실상 어려운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는 26일 통화에서 “(예상 가격) 범위가 만만치가 않아 박물관이 경매에서 (낙찰 경쟁에) 따라갈 예산상 능력이 안 된다”며 “지금 상황에서 우리가 경매에 참여할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두 불상은 경매 시작가가 각각 15억 원(변동 가능)이 될 것으로 알려졌지만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 구입 비용은 연간 약 40억 원 수준에 불과하다. 문화재청이 필요 시 구매 예산 지원이 가능한지 검토할 수 있다는 의견을 내놓기도 했지만 그래도 낙찰을 받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것. 더구나 성격상 중복되는 유물이 이미 박물관에 없지 않고, 향후 간송가(家)에서 소장 문화재 가운데 국보인 불상과 불감 역시 매물로 내놓을 가능성이 있어 박물관 측의 고민은 더욱 깊다. 이 관계자는 “국립박물관의 임무를 다하고 싶지만 능력이 모자라 너무나 안타깝다”며 “힘을 다해 유물을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 중이지만 파는 쪽(간송미술관)에서도 유물이 공공적 성격을 띤 기관에 안착할 수 있도록 전향적으로 검토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간송 컬렉션’이 일부라도 흩어지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지정문화재가 시장에 나올 때마다 국가가 구입해야 하는 건 아니라는 시각도 있다. 한 문화재계 관계자는 “물론 국가기관에 들어가는 게 전시나 보존 면에서 가장 좋기는 하겠지만, 사유물의 거래에 나라가 일일이 뛰어들 수는 없는 일이고, 간송 컬렉션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불상의 낙찰가도 주목된다. 지금까지 경매에서 최고가를 기록한 보물은 청량산괘불탱으로 2015년 서울옥션 경매에서 35억2000만 원에 개인에게 낙찰됐다. 2012년에는 서화첩인 ‘퇴우이선생진적첩’이 34억 원에 낙찰됐다. 이번 경매에 나오는 두 불상은 모두 청동에 도금해 제작됐다. 금동여래입상은 높이 37.6cm의 7세기 중반 불상이다. 눈은 감고 입을 오므리면서 꾸밈없는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해 보는 이에게 감동을 준다는 평가를 받는다. 옷 주름은 가지런하면서도 오른쪽 어깨의 옷이 흘러내릴 듯 자연스럽게 표현됐다. 금동보살입상은 6세기 말∼7세기 초 불상으로 경남 거창에서 출토됐다고 전해진다. 머리에는 보관(寶冠)을 쓰고 있으며 얼굴은 긴 편이다. 얼굴은 가늘게 찢어진 눈과 앞으로 내민 입술, 툭 튀어나온 광대뼈가 어울려 토속적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두 불상은 1963년 보물로 지정됐다. 금동보살입상의 출토지가 신라의 영역인 경남 거창인데 백제 양식이 섞인 점을 두고 진위를 검토하는 게 먼저라는 의견이 나오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간송미술관 관계자는 최근 본보와의 통화에서 “학계에는 다양한 의견이 있을 수 있다”고 말을 아꼈다. 불교미술사 전문가인 최응천 동국대 교수(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는 “필요하다면 조사할 수 있겠지만 간송의 소장품들은 당대 쟁쟁한 분들의 검증을 거친 것이고, 출토지가 명확한 게 아닌 이상 백제 양식이 보인다 해도 어색하지 않다”고 말했다. 최 교수는 “지금만큼 시대별, 나라별 불상 양식이 파악되기 전인 1960년대에는 이 정도의 위작을 만들 수준이 아니었다”고 덧붙였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37년 소련이 연해주 한인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시킬 당시 한인들을 ‘잠재적 위험분자’로 보고 신분증명서와 소지한 무기를 열차 탑승 전 회수한 것으로 드러났다. 홍웅호 동국대 대외교류연구원 연구교수는 23일 경기문화재단과 인천문화재단, 한국역사연구회가 연 심포지엄 ‘역사 속의 디아스포라와 경계인’에서 이같이 밝혔다. 홍 교수는 발표문 ‘1937년 연해주 한인 강제이주 결정과 그 진행’에서 러시아문서보관소 자료를 통해 이주 과정을 살폈다. 당시 불과 4개월 동안 한인 17만 명 이상이 카자흐스탄과 우즈베키스탄 등으로 강제 이주됐다. 발표문에 따르면 당시 소련 극동변강위원회는 “공산당원과 콤소몰(공산주의 청년 정치조직) 맹원들을 등록명부에서 삭제하고, 탈퇴서를 교부한다”고 지시했다. 홍 교수는 “이는 그동안 유지되던 신분이 무효라는 뜻”이라며 “한인 사회에 일본 정보원이 침투했다는 걸 전제로 한인을 배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 결과 한인들은 이동의 자유를 박탈당했고, 1953년 스탈린이 사망하고 1956년 신분증이 다시 발급된 뒤에야 이동의 자유를 얻었다. 강제이주 결정에 한인은 물론 러시아인도 저항했다. 김평하라는 인물은 무기 회수에 거부했고, 리진화라는 인물은 “소비에트 정권이 한인들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추방하고 있다”고 말했다가 구속됐다. 한 러시아인 관료는 회의 중 당원증을 책상에 던지면서 “(이주 결정은) 헌법을 완전히 위반하는 것이다. 나중에는 나머지 모든 사람을 추방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체포됐다. 엄청난 혼란의 와중에도 한인들은 이주를 앞두고 조상의 유골을 챙기기도 했다. 당시 조사보고서는 1937년 9월 한인들이 묘지 7곳을 파헤치고 망자 일부의 유해를 꺼내갔다며 한인들이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할 경우 망자의 뼈까지도 가져가는 관습이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겨레신문은 지난해 10월 ‘윤석열 검찰총장이 건설업자 윤중천의 별장에서 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보도한 데 대해 “부정확한 보도였다”며 22일자 1, 2면에 걸쳐 사과문을 냈다. 한겨레신문은 사과문에서 “당시 (법무부 과거사위원회 조사보고서에) 윤 총장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의 스폰서였던 건설업자 윤중천의 별장에 들러 접대를 받았다는 윤 씨의 진술이 나왔으나 추가 조사 없이 마무리됐다고 보도했다”며 “하지만 ‘수차례’ ‘접대’ 등 보고서에 없는 단어를 기사에 사용하고, 1면 머리기사 등에 비중 있게 보도함으로써 윤 총장이 별장에서 여러 차례 접대를 받았는지에 관심이 집중되는 결과를 낳았다”고 밝혔다. 이어 “보도된 지 여러 달이 지났지만 윤 총장의 별장 접대 의혹에 대해 증거나 증언에 토대를 둔 후속 보도를 하지 못했다”면서 “정확하지 않은 보도를 한 점에 대해 독자와 윤 총장께 사과드린다”고 밝혔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799년 12월 중순 어느 날 심한 후두염에 걸린 조지 워싱턴 전 미국 대통령은 수은 화합물을 투여하고 몸의 피를 빼내는 등의 치료를 받았지만 이틀 뒤 숨졌다. 정확한 사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급성 후두개염으로 사망했다고 보는 경우가 많다. 감염과 싸우는 인류의 운명을 바꾼 것은 20세기에 발명된 항생제다. 이 책은 최초의 항생제인 설파제(술파닐아미드)가 만들어진 과정을 다뤘다. 최초의 항생제는 곰팡이에서 얻은 페니실린 아니었나? 실험실의 합성 화학물질도 항생제에 포함한다는 정의를 따르면 설파제가 처음이다. 책의 ‘주인공’은 훗날 노벨상을 받은 독일 의사이자 생화학자 게르하르트 도마크(1895∼1964). 꼼꼼하고 집요한 그는 독일 제약회사 바이엘에서 동료들과 함께 설파제를 발명했다. 영국에서 대규모 시험으로 효능을 인정받고,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에서 작용 기전을 밝히는 등의 이야기가 촘촘하게 담겼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일제강점기 막대한 사재를 털어 문화재를 수집하고 해외 유출을 막은 간송 전형필(1906∼1962)의 후손이 재정 압박으로 소장한 불교 문화재를 매각하기로 했다. 간송미술문화재단은 21일 “2013년 재단 설립 이후 대중적인 전시와 문화 사업들을 병행하며 많은 비용이 발생해 재정 압박이 커졌다”며 “불교 관련 유물을 매각하고 서화와 도자, 전적이라는 중심축에 집중하려 한다”고 밝혔다. 재단은 “소장품을 매각할 수밖에 없게 돼 송구스럽다”고 덧붙였다. 간송가(家)는 소장품 가운데 보물 284호 금동여래입상과 보물 285호 금동보살입상을 27일 케이옥션을 통해 경매에 부친다. 두 불상의 경매 시작가는 각각 15억 원. 또 다른 소장품인 금동계미명삼존불입상(국보 제72호)과 금동삼존불감(국보 제73호)이 향후 매물로 나올 가능성도 없지 않다. 재정 압박은 간송의 차남인 전성우 전 재단이사장이 2018년 작고한 뒤 더 커졌다. 재단은 “전성우 전 이사장이 소천하신 뒤 추가로 적지 않은 비용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전 전 이사장의 유족은 국보와 보물 등 지정문화재를 상속받았다. 간송미술관이 관리하는 지정문화재는 국보(12건), 보물(32건), 서울시유형문화재(4건)를 비롯해 모두 48건. 지정문화재의 상속은 법에 따라 비과세된다. 문화재청에 따르면 이번 경매에 나오는 두 불상 역시 유족 소유다. 나머지 비지정문화재는 거의 간송미술문화재단에 기부됐다. 전 전 이사장의 아들인 전인건 간송미술관장(49)은 지난해 말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재단이 문화재를 기부받은 데 대한 지방세를 내야 한다. 세율이 비교적 높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굉장히 큰 부담이었다. 그간 정리를 못 하고 있었는데 부친 별세를 계기로 재단에 기부했다”고 말했다. 간송미술관은 최근까지 나라의 지원을 받지 않고 자체 재원으로 운영해 왔다. 그러나 향후 간송미술관의 현대식 수장고(가칭 ‘훈민정음 수장고’) 신축에 들어가는 사업비 44억여 원 전액이 국비와 지방비로 충당될 예정이고, 간송미술관으로 쓰이는 보화각 건물의 원형 복원도 지원된다. 전 관장은 21일 전화 통화에서 “(유물 매각 동기에 관한) 여러 억측이 나왔는데, (매각을 결정하기까지) 고민을 많이 했다”고 했다. 문화재는 해외 반출이 제한되지만 내국인에게는 문화재의 소재지가 확실하다면 지정문화재도 매매가 가능하다. 케이옥션은 2014∼2018년 지정문화재 경매가 28건 이뤄졌다고 밝혔다. 문화재계에서는 ‘간송 컬렉션’이 흩어지는 것을 염려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만약 국공립박물관이 아니라 개인의 수장고에 들어가면 국민이 향유할 기회가 없어질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풍속화라면 단원 김홍도(1745∼?)나 혜원 신윤복(1758∼?)의 걸작을 떠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적어도 주제의 다양성과 작품의 양으로 보면 19세기 말∼20세기 초 인천 부산 원산 등 개항장을 중심으로 활동한 기산 김준근(?∼?)이 그들을 뛰어넘는다. 김준근은 베 짜는 아낙네부터 탈춤패 모습까지 생업과 의식주, 의례, 세시풍속, 놀이를 가리지 않고 그야말로 민속의 전 분야를 그렸다. 단오에 씨름하고 그네 타며, 매사냥을 하고, 쟁기로 밭을 갈고, 손수 두부를 만들고, 가마 타고 시집장가가고, 상여를 메던 120여 년 전 한국인의 모습이 생생하다. 심지어 관아에서 시신을 부검하는 모습도, 지금은 사라진 판수(判數·점을 치거나 독경하던 시각장애인)의 모습도 그의 그림에 담겨 있다. 기산이 그린 풍속화의 구매자는 한국을 방문한 서양인들이었다. 여행가, 외교관, 상사 주재원, 선교사가 ‘고요한 아침의 나라’ 조선의 풍속을 종이에 담아 고국으로 가져갔다. 오늘날 여행지 사진이 담긴 엽서를 사오는 것과 비슷한 행위였을 터다. 정형호 문화재청 무형문화재위원은 “개항기 외국인이 남긴 조선 방문기와 사진이 그들의 시각에서 단편적으로 기록하고 촬영한 것임에 비해, 기산의 그림은 19세기 후반 다양한 계층의 삶을 총체적으로 옮겨놓았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김준근의 그림 약 1500점 가운데 국내에 있는 것은 약 300점뿐이고 거의 해외(유럽 878점, 북미 138점 등)에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서울 종로구)은 독일 MARKK(옛 함부르크민족학박물관)에서 대여한 기산 풍속화 71점 등을 선보이는 특별전 ‘기산 풍속화에서 민속을 찾다’를 20일부터 10월 5일까지 개최한다. 이 그림들은 1894년 함부르크에서 전시된 이후 12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해외의 기산 풍속화가 이처럼 대규모로 국내에 온 건 처음이라고 박물관은 밝혔다. 지난해 박물관이 국내에서 경매로 수집한 28점도 볼 수 있다.▼ 구한말 조선의 팝아티스트… ‘천로역정’ 삽화도 그려 ▼‘저잣거리의 화가’ 기산 김준근 1890년대 이미 서양에서 작품이 정식으로 전시된 한국인 화가라 할 수 있는 김준근은 생몰연도를 비롯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 주로 활동한 시기는 1880, 90년대다. 등장인물을 조선인의 모습으로 표현한 ‘천로역정’ 번역본(1895년 간행)의 삽화를 그리기도 했다. 독일 출신 외교관 묄렌도르프(1848∼1901), 미국 해군 제독이자 외교관인 슈펠트(1822∼1895)의 딸, 프랑스 민속학자 샤를 루이 바라(1842∼1893), 제물포에 세창양행을 설립했던 독일인 마이어(1841∼1926) 등이 그의 작품을 다수 구입한 이들이다. 이들의 구입 관련 기록에서 김준근의 활동지가 개항장이라는 것이 확인된다. 국립민속박물관에 따르면 마이어는 1894년 독일 함부르크민속공예박물관에서 자신이 소장한 기산 풍속화를 전시하기도 했다. 김준근은 ‘저잣거리의 화가’였다. 예술작품이 아니라 상품으로서 그림을 그렸을 가능성이 크다. 100개가 넘는 소재를 반복해 그렸고, ‘공장’과 비슷한 화실을 차려 그림을 대량 생산하고 자신의 인장을 찍어 팔았을지도 모른다. 이경효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는 “김준근은 한류의 원조이자 앤디 워홀 같은 팝 아티스트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그림은 민속학, 민족학 연구 차원에서 활용됐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최초의 한국인 신부(神父)인 김대건 신부(1821∼1846)의 유해 일부를 20세기 초 독일로 담아갈 때 사용된 주머니(사진)가 확인됐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사장 최응천)은 “김 신부의 흉골(胸骨)이 안치된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의 선교박물관에 김 신부의 성해(聖骸)주머니와 유해증명서가 있다는 걸 확인했다”고 18일 밝혔다. 유해증명서는 상트 오틸리엔 선교베네딕도회 소속으로 한국에 파견돼 원산 감목(監牧)구장을 지낸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1877∼1950)가 1920년 작성한 것으로 김 신부와 프랑스인 선교사 3명의 유해임을 증명하는 문서다. 재단은 이 선교박물관이 소장한 한국문화재를 2016, 17년 전수 조사해 1021건(1825점)을 확인하고 최근 도록으로 발간했다. 2021년 탄생 200주년을 맞는 김대건 신부는 순교 이후 경기 안성시 현 미리내 성지에 유해가 안장됐는데 일부 뼛조각은 성유물(聖遺物)로 세계에 흩어져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1950년 9월 말 6·25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세계 24개국에서 238명의 종군 특파원이 한국 전선에서 취재에 열을 올렸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동원됐던 기자들의 절반에 해당하는 수였다.”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15일 제주 서귀포시 KAL호텔에서 열린 ‘6·25와 한국 언론’ 세미나에서 ‘6·25전쟁과 언론’ 주제 발표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정 교수는 “일시에 이렇게 많은 기자가 특정한 지역에 동원된 것은 당시까지 2차 대전뿐이었다”며 “비공식적 집계에 의하면 6·25전쟁을 취재했던 해외 기자는 약 600명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이날 세미나는 관훈클럽(총무 박정훈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장)이 한국언론진흥재단 후원으로 개최했다. 발표에 따르면 전쟁을 취재하던 기자 18명이 희생됐고 그중 미국 기자는 10명이었다. 8명은 총탄에 숨졌고 2명은 비행기 추락 사고로 사망했다. 언론사들은 부산을 비롯해 피란지를 옮겨 다니며 신문을 발간했지만 시설과 인적 손실이 막심했다. 동아일보 역시 장인갑 편집국장과 백운선 사진부장, 이길용 체육전문기자 등 약 16명이 북으로 끌려갔다. 1950년 10월 4일 서울에서 속간호를 내면서 “행방을 알 수 없는 사원들의 가족은 본사로 연락해주길 바란다”는 사고를 게재했을 정도였다. 정 교수는 “전쟁 중 납북된 언론인은 KBS 28명을 비롯해 모두 285명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북한은 남침 전부터 1950년 6월 내내 문인들을 동원해 ‘평화적 조국통일 실현’을 강조하는 글을 노동당 기관지인 ‘노동신문’과 내각 기관지인 ‘민주조선’에 게재하면서 대남 선전을 강화했다. 사전 준비를 바탕으로 서울을 점령한 지 불과 나흘 뒤인 7월 2일부터 ‘해방일보’와 ‘조선인민보’를 발행해 통치 수단으로 활용했다고 정 교수는 밝혔다. 윤상길 신한대 미디어언론학과 교수는 ‘냉전의 언론, 언론의 냉전’에서 오보의 남발을 지적했다. 윤 교수는 “군이 제공한 전황 정보에는 사실과 다른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오보도 매우 많았다”고 말했다.서귀포=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시민운동가이자 전 법제처장(이석연), 아리랑을 연구한 화가(김정), 언론사 연구의 권위자(정진석) 등 이력으로 보면 별 관계가 없는 3명이 각자의 글을 모아 함께 낸 책이다. 우연한 계기로 오래 친분을 다져 온 3명의 공통점은 저술가라는 것. 정진석 한국외국어대 명예교수는 책에서 ‘영국 기자 더글러스 스토리의 고종 밀서 사건’이나 ‘130년 전 서양 언론에 비친 우리의 모습’과 같은 주제로 자신의 연구를 돌이켰다. 각별한 열정을 기울인 저서 ‘대한매일신보와 배설’을 쓰면서 1980년대 영국 공공기록보관소를 뒤지는 부분에서는 그가 흘린 땀의 무게가 그대로 느껴진다. 독서가로 알려진 이석연 변호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소나기가 내리는 것도 모르고 책에 몰입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자신의 삶과 독서, 여행, 헌법을 풀어냈다. 김정 화백은 독일에서 서양화를 공부하고 아리랑을 그림으로 담아내기까지의 여정을 소개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강남달이밝아서 님의놀든곳/구름속에그의얼골 가리워젓네/물망초핀언덕에 외로히서서/물에ᄯㅡㄴ이한밤을 홀노새울가” 무성영화 ‘낙화유수’(1927년)의 동명 주제가다. 우리나라 최초의 창작 대중가요로 알려져 있다. 무성영화 변사(辯士)였던 김서정(1898∼1936)이 곡과 노랫말을 지었는데 큰 인기를 모아 1929년 음반이 정식 발매됐다. 당시에는 노랫말을 ‘가요시’ ‘노래시’라고도 불렀을 만큼 시가 곧 노랫말이고 노랫말이 곧 시가 될 수 있었다. ‘물에 ᄯㅡㄴ(뜬)’, ‘ᄭㅐ울 ᄯㅐᄭㅏ지(깨울 때까지)’처럼 오늘날 사용되지 않는 표기 방식이 쓰인 것도 알 수 있다. 국립한글박물관(서울 용산구)은 기획특별전 ‘노랫말―선율에 삶을 싣다’를 15일부터 10월 18일까지 개최한다. 대중가요 노랫말을 본격적으로 다룬 전시다. ‘낙화유수’부터 방탄소년단(BTS)의 ‘IDOL’까지 대중가요 190여 곡의 노랫말과 함께 각종 음반과 가사지(歌詞紙), 가사책, 축음기 등 222점을 선보인다. “미아리 눈물고개 님이넘던 이별고개/화약연기 앞을가려 눈못뜨고 헤메일때…” 반야월 작사 ‘단장의 미아리 고개’(1957년 추정)다. 한글박물관에 따르면 1950년대에는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위로한 이 같은 노래와 ‘미8군 쇼’ 등을 통해 들어온 ‘늴리리 맘보’(1957년) 같은 노랫말이 사랑받았다. ‘슈샤인 보이’(1954년)의 “헬로 슈-샤인 구두를 닦으세요”라는 경쾌한 노랫말 뒤에는 직업 전선에 뛰어든 전쟁고아들의 아픔이 숨어 있다. 1960, 70년대에는 도시의 화려한 성장과 이상을 표현한 ‘임과 함께’(1972년)나 급격한 산업화 과정에서 오는 소외감이나 향수(鄕愁)를 표현한 ‘고향역’(1972년) 등이 유행했다. 이처럼 노랫말의 변화와 시기별 특징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한자 대신 한글로 된 광화문 현판을 달면 어떨까. 문화예술분야 인사들이 구성한 ‘광화문 현판을 훈민정음체로’ 시민모임은 14일 서울 종로구 동네서점 ‘역사책방’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門化光(문화광)’이라고 쓰인 지금의 한자 현판 대신 세종대왕이 경복궁에서 창제한 훈민정음 해례본 한글 서체로 현판을 만들어 새로 달자”고 제안했다. 현재 광화문 현판 글씨는 1865년 경복궁 중건(重建) 당시 훈련대장 임태영이 쓴 글씨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6·25전쟁 때 광화문 문루가 소실됐기에 20세기 초의 사진에 나타난 자형(字形)을 기초로 2010년 복원한 것이다. 그러나 시민모임은 “이 글씨는 작고 오래된 사진을 근거로 확대하고 다듬은 것이어서 원형의 가치가 없고 서예의 기운생동(氣韻生動) 또한 없다”고 주장했다. 시민모임은 이날 실제의 2분의 1크기로 시험 제작한 모의 한글 광화문 현판을 공개했다. 글씨는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한글 자모를 집자해 디자인했다. 한재준 시민모임 공동대표(서울여대 교수)는 “너무나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해례본의 글자꼴이자 한글의 첫 모습으로 된 현판”이라고 말했다. 강병인 공동대표(멋글씨 작가)는 “한글과 한자 현판으로 의견이 분열된다면 두 가지를 절충해서 광화문 앞쪽(광장 쪽)에는 훈민정음체 한글 현판을 내걸고 뒤쪽(경복궁 안쪽)에는 한자 현판을 다는 것도 방안”이라고 말했다. 지금의 현판은 경복궁을 1865년 중건 당시 모습대로 복원한다는 방침 아래 만들어졌다. 2010년 한자 현판을 달 때에도 한글단체는 반대했다. 이후 현판 바탕색과 글씨의 색이 잘못된 것이 밝혀지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 새로운 한자 현판이 올해 내걸릴 것으로 보인다. 시민모임은 “훈민정음체로 현판을 바꾸면 광화문이 역동적이고 민주적인 시민의 광장을 상징한다는 의미가 뚜렷해질 것”이라고 말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27.’ 유리판이 갈라진 낡은 시계의 날짜판은 40년 전인 1980년 5월 27일에 멈춰 있다. 전도사로 활동하다가 5·18 광주 민주화운동에 참여해 전남도청 지하의 무기고를 관리했던 시계의 주인은 그날 도청에서 계엄군의 총에 최후를 맞았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은 5·18 민주화운동 40주년 기념 특별전 ‘오월 그날이 다시 오면’을 13일부터 10월 31일까지 서울 종로구 박물관 기획전시실 등에서 개최한다. 5월 광주의 중심에서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이를 목도한 시민들의 기록과 그들을 탄압한 정부와 군의 기록 등 관련 자료 160여 점을 보여준다. “각 병원마다 시체들이 즐비하게 쌓이고 있습니다. 천주님! 도와주소서. 우리 광주시민들을 보호해 주소서.”(천주교 광주대교구에서 근무하던 주이택의 일기) “연 이틀째 사람이 개새끼처럼 떼죽음을 당하고 있다. … 온 시내바닥이 죽음의 거리로 변하고 있다. … 이게 과연 민주주의냐. 이게 진정한 자유의 나라냐.”(당시 전남대 4학년이던 이춘례의 일기) 학생과 주부, 전도사 등 광주 시민들이 당시의 상황을 적은 일기 16점은 서울에서는 처음 공개되는 자료다. 당시 동아일보 김영택, 최건 기자를 비롯한 기자들의 취재수첩도 전시에 나온다. 김 기자의 수첩에는 5월 21일 오후 1시경 도청 옥상의 스피커에서 애국가가 울려 퍼지면서 계엄군들이 시민을 향해 일제 사격을 시작했다는 내용이 그대로 적혀 있다. 운동 당시의 분위기를 생생하게 전해주는 물건들도 많다. 시민군에게 주먹밥을 만들어줄 때 사용된, 다 찌그러진 양은 함지박은 진정 고귀한 것이 무엇인지 새삼 생각하게 만든다. 이 밖에도 계엄군 군복과 진압봉, 총탄이 뚫고 간 철제 캐비닛과 의사 가운, 계엄포고문, 국방부 상황일지, 기무사 앨범도 볼 수 있다. 정부기록물인 ‘수습상황보고’ ‘피해신고접수상황’ 등 세계기록유산 10여 점의 원본도 처음 전시된다. 전시장에 설치된 ‘도시 모형 매핑 영상’은 광주 시가지 모형에 운동의 전개와 계엄군의 탄압을 영상으로 투영해 관람객의 이해를 돕는다. 박물관 외부 ‘역사회랑’에서는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았던 당시 사진 등을 선보이며, ‘역사마당’에서는 최평곤 작가의 설치작품 ‘민주화(民主花)’가 전시된다. 주진오 대한민국역사박물관장은 “서울에서 대규모 5·18 전시가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며 “5·18은 광주의 역사만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역사라는 것을 온 국민이 공감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5·18기념재단과 5·18민주화운동기록관, 전남대 5·18연구소, 국가기록원이 공동 주최한다. 무료.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탱(幀)’인가, ‘도(圖)’인가. 국보, 보물인 불화(佛畵)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를 두고 문화재청이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 한국의 불화는 벽화보다는 내거는 탱화가 주류였고, ‘괘불탱’처럼 탱이나 탱화로 불려 왔다. 현재 국보, 보물의 명칭에는 ‘칠장사오불회괘불탱’(국보)이나 ‘안심사영산회괘불탱’(〃)처럼 ‘탱’이 절대 다수다. 그러나 ‘문경 김룡사 영산회괘불도’(보물)처럼 ‘도’도 일부 섞여 있다. 문화재청은 불교회화 분야 국보, 보물 지정 명칭 부여 지침을 최근 마련하면서 ‘탱’이라는 단어가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보고, 명칭을 ‘도(圖)’로 변경해 통일하는 것을 추진했다. 그러나 대한불교조계종이 “성보문화재로서 불화의 조성 당시 용어를 존중하길 바란다”며 반대의견을 낸 것. 조계종은 “불교 회화는 종교적 예경의 대상이며 조성 당시 화기(畵記)에도 탱, 탱화를 사용한 만큼 이 용어가 지닌 종교적 가치와 문화재적 가치가 인정돼야 한다”는 입장을 문화재청에 보냈다. 이에 따라 명칭 변경은 보류됐다. 문화재청은 문화재위원들과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의견 수렴 회의를 이달 중 열어 다시 논의할 예정이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성대한 공훈을 이루고 본국으로 돌아가지만 아름다운 문장 중화에 남아 있네(盛勳歸舊國 佳句在中華·성훈귀구국 가구재중화)’ 당시 전집 ‘전당시(全唐詩)’에 실린 당나라 때 인물 온정균의 시 ‘발해 왕자를 본국으로 보내며(送渤海王子歸本國·송발해왕자귀본국)’의 한 구절이다. 당대 문인이 발해를 읊은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이 시는 당이 발해를 다른 나라로 인식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동북아역사재단은 고조선, 고구려, 발해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인식됐는지를 전근대와 근현대로 나눠 살핀 ‘한국고대사 계승 인식’ 1·2권(사진)을 최근 발간했다. 우성민 재단 연구위원은 당시와 문집을 검토한 글에서 “당대(唐代) 중국 문인들은 고구려와 발해, 신라를 모두 해동이나 삼한으로 지칭했다”고 설명했다. 반면 고려는 태조 왕건부터 발해와의 혼인관계를 강조하고 발해를 멸망시킨 거란을 무도한 민족으로 적대하면서 발해에 동족의식을 보였다. 이처럼 고조선과 고구려, 발해의 역사는 고려와 조선을 거쳐 오늘날까지 한국사였지만 중원의 역대 왕조는 자신의 역사로 간주한 적이 없다고 ‘한국고대사 계승 인식’은 밝히고 있다. 편찬책임자인 임상선 재단 책임연구위원은 “중원의 역대 중국 왕조는 이른바 장성(長城)을 경계로 남쪽을 화(華), 바깥을 이(夷)로 구분했는데 이는 정치 경제 문화 민족적 측면에서도 공존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차이였다”며 “중국 학계가 발해를 중국사의 일부라고 주장한 것은 일본이 만주를 점령한 20세기 전반에 이르러서였다”고 밝혔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여기가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여기서 자진(自盡)하겠어요. 인간 세상에서 저런 광경을 본 이상 더는 세상에 있고 싶지가 않네요.” 가까스로 수용소를 탈출한 임신 9개월의 아내가 땅에 주저앉아 한 말이다. 이 같은 극단적 좌절의 배경은 1937년 ‘난징(南京) 대학살’이다. 일본군이 중국 난징을 침략한 뒤 반년간은 ‘살인, 노략질, 강간, 방화, 기근 한파, 폐허’뿐. 중국 해군의 관리인 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와 아들을 비참하게 잃고 자신도 집단 살육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일본군 장교의 하인으로 위장한 채 몰래 아군을 위한 첩보원으로 일하면서 ‘바위와 금속만으로 된, 시간이 없는 세상’을 버텨 나간다. ‘학살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는 수정주의 역사관이 일본에서 확산되는 요즘, 중일전쟁 종전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1955년 일본인 소설가의 작품이어서 더욱 눈길이 간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확산으로 문을 닫았던 전국의 주요 박물관과 전시시설이 속속 재개관하고 있다.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은 6일 서화관 불교회화실에서 괘불전(掛佛展) ‘꽃비 내리다―영천 은해사 괘불’을 개막했다. 올 2월 25일부터 임시 휴관한 박물관이 재개관 이후 처음으로 선보이는 전시다. 팔공산 자락에 있는 경북 영천 은해사 소장 괘불과 ‘염불왕생첩경도(念佛往生捷徑圖)’를 선보인다. 괘불은 1750년 그린 것으로 높이 11m, 폭 5m가 넘는다. 서화관에서는 이항복(1556∼1618) 종가의 기증품 전시도 함께 한다. 현존 유일 호성공신(扈聖功臣) 교서인 ‘이항복 호성공신 교서’와 ‘이항복 호성공신상 후모본(後模本)’ 등을 볼 수 있다. 호성공신은 임진왜란 때 선조를 의주까지 모시고 가는 데 공이 있는 사람에게 준 칭호로 이항복은 일등공신에 책봉됐다. 국립춘천박물관도 3월 열 예정이다가 연기한 기획특별전 ‘새로 발굴된 강원의 보물’을 이날 개막했다. 영월 흥녕선원(興寧禪院) 터에서 출토된 반가사유상과 삼척 흥전리 절터 비석 조각 등 30점이 관객을 만난다. 국립대구박물관을 비롯해 경북 경주, 경남 김해, 전북 전주 등의 국립박물관도 운영을 재개했다. 문화재청 역시 이날부터 국립고궁박물관 국립무형유산원을 비롯한 실내 관람기관 및 시설 22개소를 재개관했다. 궁능유적본부 세종대왕유적관리소는 6월 28일까지 경기 여주시 세종대왕역사문화관에서 ‘조선시대 해시계와 앙부일구(仰釜日晷)’ 전시를 연다. 전남 목포에 있는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목포근대역사관에서 독립운동의 발자취를 조명하는 ‘영웅, 그날의 기억을 걷다’를 개막했다. 호림박물관은 12일 서울 강남구 신사분관에서 새 소장품을 대거 선보이는 2020년 민화특별전 ‘書架(서가)의 풍경―冊巨里(책거리)·文字圖(문자도)’를 개최할 예정이다. 재개관에도 ‘생활 속 거리 두기’는 지속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온라인 예약제를 통해 시간당 300명으로 입장 관람객 수를 제한했다. 입구에서 마스크 착용과 발열 검사를 받아야 입장할 수 있다. 다수가 참가하는 교육 프로그램과 문화행사 등은 재개되지 않았다. 사전 예약 방법 등은 각 박물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