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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의 유명 성형외과에서 수술 도중 의료진이 생일 케이크를 들고 파티하는 사진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유포되면서 보건당국이 사실관계 파악에 나섰다. 28일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논란 중인 J성형외과 간호조무사 인스타그램 현재 상황’이라는 제목으로 몇 장의 사진이 게재됐다. 사진 속에는 환자가 수술대에 있는 상태에서 간호조무사가 수술 중이던 의사에게 초에 불을 켠 생일 케이크를 전달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의사도 이를 제지하지 않고 수술대의 환자를 한 번 바라보더니 마스크를 벗고 촛불을 불어 껐다. 사진에는 간호조무사들끼리 수술 중에 가위바위보를 하거나 가슴 보형물로 장난을 치는 모습도 담겨 있다. 1회용 수술용 장갑을 말리는 듯한 장면도 있어 재활용 의혹까지 나오고 있다. 논란이 일자 해당 인스타그램 계정은 삭제됐다. 의료법에는 의료인이 품위를 심하게 손상시키는 행위를 할 때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사 면허를 정지시킬 수 있다고 규정돼 있다. 복지부 관계자는 “비도덕적 진료 행위를 한 경우 최대 면허 정지 1개월의 행정처분을 할 수 있다”며 “직접 또는 관할 보건소를 통해 사실관계를 조사해 처분할 것”이라고 밝혔다. J성형외과 측은 “환자의 수술이 모두 끝난 후 벌어진 일”이라고 해명했다.박성진 psjin@donga.com·이샘물 기자}

“독일로 가서 나라를 이렇게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다니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이젠 (뭔가를) 싫어하거나 속상한 마음이 생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물리칠 거예요.” 2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파독협회, 파독산업전사세계총연합회, 대한민국감사위원회가 마련한 ‘파독 51주년 기념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감사 송년회’에서 청소년감사봉사단 초등생 대표인 심민영 양(8), 한영욱 군(7)이 함께 단상에 올라 이런 편지 내용을 또박또박 읽었다. 이 행사는 1963년 파독 근로자가 처음 파견된 지 51주년을 맞이해 열렸다. 행사장에는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들과 초중고교생 및 대학생들을 비롯해 총 200여 명이 참석했다. 청춘을 바쳐 독일에서 일했던 파독 근로자들은 어느새 세월이 흘러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이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 있었다. 심 양과 한 군이 “저희들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라를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용기 있게 헌신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자 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동근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대표(24)는 단상에 올라 “동서고금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세대를 묻는다면 저는 단연코 우리나라의 건국세대라고 답할 것”이라며 “선배님들께서 보여주신 근면 성실 희생정신 등 빛나는 결과물들은 후손들이 영원히 가슴에 새기고 감사해야 할 만고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해 대한민국을 더 강하고 자유롭고 정의롭게 만들겠다”고 말한 뒤 큰절을 하자 청중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파독 근로자들에게 부치는 박근혜 대통령의 감사 편지를 낭독했다. 학생들과 파독 근로자들 간의 대화 시간에서 서울과학고 1학년 박상준 군(16)이 “오늘 편지를 받은 소감을 말씀해 달라”고 하자 김현진 한독간호협회 수석부회장(66·여)은 “독일에 가서 열심히 살기를 잘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 든다”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미안한 마음, 미운 마음은 오래가지만 감사한 마음은 굉장히 짧게 간다고 하더라. 저나 여러분이나 다 같이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독일로 가서 나라를 이렇게 발전시키는 데 도움을 주신 분들이 있다니 정말 감동을 받았어요. 이젠 (뭔가를) 싫어하거나 속상한 마음이 생겨도 감사하는 마음으로 물리칠 거예요.” 2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 파독협회, 파독산업전사세계총연합회, 대한민국감사위원회가 마련한 ‘파독 51주년 기념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 감사 송년회’에서 청소년감사봉사단 초등생 대표인 심민영 양(8), 한영욱 군(7)이 함께 단상에 올라 이런 편지 내용을 또박또박 읽었다. 행사는 1963년 파독 근로자가 처음 파견된 지 51주년을 맞이해 열렸다. 행사장에는 파독 광부·간호사·간호조무사들과 초중고 대학생들을 비롯해 총 200여 명이 참석했다. 청춘을 바쳐 독일에서 일했던 파독 근로자들은 어느새 세월이 흘러 머리가 하얗게 세고 얼굴에 주름이 생긴 할아버지 할머니가 돼 있었다. 심 양과 한 군이 “저희들도 나중에 어른이 되면 나라를 사랑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용기있게 헌신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말하자 이들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김동근 대한민국청년대학생연합 대표(24)는 단상에 올라 “동서고금 역사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세대를 묻는다면 저는 단연코 우리나라의 건국세대라고 답할 것”이라며 “선배님들께서 보여주신 근면 성실 희생정신 등 빛나는 결과물들은 후손들이 영원히 가슴에 새기고 감사해야 할 만고의 귀감”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겸손한 마음으로 정진해 대한민국을 더 강하고 자유롭고 정의롭게 만들겠다”고 말한 뒤 큰절을 하자 청중들 사이에서 박수가 쏟아졌다. 이날 행사에서는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이 파독 근로자들에게 부치는 박근혜 대통령의 감사 편지를 낭독했다. 학생들과 파독 근로자들 간의 대화 시간에서 서울과학고 1학년 박상준 군(16)이 “오늘 편지를 받은 소감을 말씀해달라”고 하자 김현진 한독간호협회 수석부회장(66·여)은 “독일에 가서 열심히 살기를 잘했구나 하는 뿌듯한 마음이다”라고 말했다. 김 부회장은 “미안한 마음, 미운 마음은 오래 가지만 감사한 마음은 굉장히 짧게 간다고 하더라. 저나 여러분이나 전부 다 같이 감사하는 마음을 오래오래 간직했으면 좋겠다”며 활짝 웃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헌법재판소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관련해 통진당 측과 진보단체들이 ‘헌재 결정 불복운동’에 나섰다. ‘통합진보당 강제해산에 따른 비상원탁회의’는 22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원탁회의를 열고 저항운동의 방식을 논의했다. 원탁회의는 김상근 전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오종렬 한국진보연대 총회의장, 이수호 전 민노총 위원장, 인재근 새정치민주연합 비상대책위원 등 11명이 제안했으며, 사회 각계인사를 포함해 총 341명이 참여했다. 이날 회의에는 원탁회의 참여자 중 70여 명이 참석했다. 회의 장소에는 ‘진보당 해산 판결은 민주주의 사형 선고’라는 종이 피켓이 놓였고, ‘민주주의 지켜내자’라는 플래카드도 걸렸다. 참가자 일동은 ‘파괴된 민주주의, 국민의 힘으로 살려냅시다’라는 선언문을 발표하며 “헌법과 민주주의를 수호해야 할 헌재가 도리어 헌법에 보장된 복수정당제와 정치적 다원주의에 기반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데 앞장섰다”고 주장했다. 이어 “헌재가 헌법과 양심에 따른 판단을 하는 것이 아니라 후삼국 시대에 유행했다는 관심법(觀心法) 또는 신종 독심술에 의거해 헌법적 결정을 내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비난했다. 헌재가 자의적으로 추론해서 결정을 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통진당 해산 결정은 필연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이런 이유로 통진당의 정치적인 견해에 찬성하는지와 관계없이 우리가 통진당에 대한 정당해산 심판 청구를 반대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키는 과제는 통진당 당원에게만 맡길 문제가 아니라 바로 주권자인 우리 국민들 전체의 몫”이라고 덧붙였다. 통진당 측 법률대리인 이재화 변호사는 회의에서 “결정문에는 수많은 오류가 있지만 대표적인 10가지 오류에 대해 말씀드리겠다”며 헌재 결정문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그는 또 “(이번 결정은) 이미 결론을 내려놓고 사실을 짜깁기해서 억지 논리로 통진당을 위헌이라고 한, 기획된 판결”이라며 “의도된 오판은 우리가, 역사가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회의에는 통진당 지도부도 참가했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는 착잡한 표정으로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해서, 진보정치의 결실을 지켜내지 못해서 정말 죄송하다. 가장 무거운 책임이 저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이어 “용서를 구하는 사죄의 절을 드리고 싶다. 받아 달라”고 하면서 무릎을 꿇고 큰절을 했다. 참가자들은 박수를 쏟아냈다. 이 전 대표는 “민주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법률가로서도 헌재의 결정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다. 민주주의 암흑의 시대를 막아내기 위한 마지막 책임을 다하겠다”며 헌재 결정에 불복 의사를 밝혔다. 참가자들은 투쟁 방법으로 △시군구 단위까지 강력한 투쟁조직을 건설하자 △수구가 아닌 보수와는 연대하자 △외신기자회견과 국제캠페인을 열자 △헌재 결정의 문제점과 관련된 영문보고서를 국제기관에 보내자 △전국적인 동시다발 규탄집회에 적극 참여하자고 제안했다. 한편 이날 통진당 측은 헌재의 의원직 박탈 결정도 거듭 비난했다. 김미희 김재연 오병윤 이상규 전 의원은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의 의원직 상실 결정은 어떠한 법적 근거도 없고 결정 권한 없는 월권이기에 부당하다. 1인 시위에 돌입하고, 법적 대응을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회견문은 이석기 전 의원의 이름까지 포함한 5명의 통진당 전 의원 명의로 배포했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매일 아침 서울 성북구 용문중·고등학교 앞에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할아버지가 눈에 들어왔다.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교통지도를 하는 분이었다. 할아버지는 아이들이 길을 건널 때면 횡단보도로 곧장 들어가 차를 막아줬다. 학생들이 다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용문고 2학년에 재학 중인 이현호 군(18)이 가지고 있는 임채승 씨(79)에 대한 기억이다. 임 씨는 용문중학교 교감으로 16년 전쯤 정년퇴임했다. 퇴직하기 몇 개월 전에 늦깎이로 교감이 된 뒤 얼마 안 돼 학교를 떠났지만 학생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각별했다. 퇴직 후에도 학교에 나와 상담교사 역할을 했고, 방학 때면 청소년회관을 찾아가 가정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한자를 가르쳐 줬다. 용문중·고교를 운영하는 재단에 조용히 매년 100만 원씩 장학금도 기부했다. 학교 앞에서 교통지도를 시작한 것은 5, 6년 전쯤부터였다. 임 씨의 아들(46)은 “어머니가 ‘연세가 많으셔서 힘드니까 교통지도를 그만하시라’고 아버지께 몇 차례 말씀드린 적이 있었다. 아버지는 ‘이번 겨울까지만 하겠다’고 답하시곤 했다”고 말했다. 학생들과의 만남을 갈라놓은 건 예기치 못한 사고였다. 10월 16일 오전 8시경 임 씨가 여느 때처럼 교통지도를 하던 날이었다. 자영업자 A 씨(53)가 차를 몰고 횡단보도로 돌진했다. 임 씨는 학생들을 건너게 하기 위해 차를 막아섰고 결국 차에 치였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놀란 마음으로 달려왔지만 정작 운전자 A 씨는 쓰러진 노인을 멀뚱멀뚱 바라보기만 했다. 잠시 후 구급차가 와 임 씨를 병원으로 데리고 가자 A 씨는 차를 버리고 부리나케 도망치기 시작했다. 서울 성북경찰서 경찰관들이 출동해 A 씨의 차를 경찰서에 끌고 왔고 추적 끝에 용의자를 특정했다. A 씨는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된 상태였다. 사고 당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운전자가 비틀거리면서 술 냄새를 풍겼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사고 당일 A 씨의 집에 찾아갔다. 하지만 A 씨는 집에 없는 척하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몇 시간 뒤엔 만취 상태로 경찰서에 자진 출석했다. 그러고는 “경찰이 왔을 땐 무서워서 집에 없는 척했다. 사고 당시엔 음주 상태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임 씨의 가족뿐 아니라 용문중 교사 20여 명도 비보를 접하고 경찰에 탄원서를 제출했다. 피해자가 평소에 얼마나 학생들을 사랑하며 봉사했는지와 가해자에게 엄중한 처벌을 내려 달라는 내용이었다. 임 씨는 고려대 안암병원에 입원해 뇌수술을 받았지만 중태에 빠져 여전히 의식이 혼미한 상태다. 뺑소니 사고 때문에 정년퇴임도 갈라놓지 못했던 전직 교감의 학생 사랑은 그렇게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성북경찰서는 A 씨를 뺑소니 혐의로 18일 구속했다고 22일 밝혔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이 또 다른 논란거리를 낳고 있다. 진보단체들의 집회 허용 여부 때문이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제5조 1항 1호는 헌재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를 주최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5조 2항에서는 위 조항에 해당되는 집회 시위를 선전하거나 선동하는 것도 금지하고 있다. 제22조에서는 해당 집회 시위를 주최한 사람뿐 아니라, 이 같은 사실을 알면서 해당 집회나 시위에 참가한 사람도 처벌한다고 규정했다. 이를 근거로 법무부는 헌재의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난 19일 “해산 선고 이후 통진당이 주최하는 집회는 모두 불법 집회”라며 “통진당의 이념을 실현하기 위한 집회도 집시법에 의거해 금지된다”고 선을 그었다. 집회 주체가 통진당이 아닌 다른 정당이나 시민단체라도 통진당의 이념을 옹호하는 집회는 불법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와 시위가 무엇인지 기준이 애매해 당장 관련 집회와 시위를 단속해야 할 경찰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정하지 못한 채 고심하고 있다. 해당 조항은 집시법 제정 당시인 1962년부터 있었다. 1960년 헌법에 정당해산제도가 도입된 데 따른 조항이다. 하지만 집시법이 제정된 1962년 이후 해산된 정당은 통진당이 처음이라 집시법 제5조 1항 1호를 실제 적용한 사례가 없다. 당장 통진당 측이 헌재 결정 직후 거리로 나왔다. 통진당 지도부는 20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집회에 참가해 헌재 결정을 비난했다. 이날 집회는 한국진보연대가 ‘민주수호국민대회’라는 이름으로 주최해 800명(경찰 추산)이 모였다. 주최자명은 물론이고 깃발, 피켓에서도 통진당이라는 글자는 없었지만 집회 내용은 통진당 해산을 규탄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이정희 전 통진당 대표도 여기에 참석했다. 이 전 대표는 “통진당은 독재정권에 의해 해산됐다. 하지만 통진당이 노동자 농민 서민들과 함께 씨 뿌려 키워온 진보정치는 의연히 살아 있다”고 말했다. 또 “진보정치는 누가 하라고 해서 한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낸 것”이라며 “저들이 당을 해산시켰다고 해서 진보정치를 포기할 수는 없다”고 외쳤다. 이날 참가자들은 통진당 해산을 민주주의의 사망이라고 주장하면서 ‘근조 민주주의’라는 영정 모양의 피켓을 들고 청계광장에서 종로2가, 을지로2가를 지나 서울광장까지 2.2km를 행진했다. 행렬에 앞장선 6명은 상복을 입은 채 상여를 멨다. 유선희 전 통진당 최고위원은 트럭에 올라 행진 내내 마이크를 잡고 “정당해산 독재만행 규탄한다” “유신독재 부활하고 민주주의 살려내자” 등을 외쳤다. 시민들의 호응은 거의 없었다. 집회에는 오병윤 김재연 전 의원도 참가했다. 집회를 관리한 서울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라기보다는 ‘해산 결정에 대한 규탄성’ 집회로 보였다. 앞으론 집회 내용에 따라 신중하게 판단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법 적용) 전례가 없기 때문에 집회 참석자와 발언 내용을 종합해 결정해야 한다. 자문 교수, 검찰 등과 협의해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진보연대는 21일부터 다음 달 18일까지 청계광장에서 24시간 집회를 하겠다고 신고했지만 경찰은 ‘주말만 허용한다’는 단서를 달고 조건부 승인한 상태다.이샘물 evey@donga.com·박재명 기자}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 해산을 결정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19일 오전 10시 36분, 헌재 인근인 서울 종로구 운니동 래미안갤러리 앞은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한국진보연대 주관으로 통진당원 등 600명(경찰 추산)이 모여 ‘민주수호 진보당 강제해산 반대집회’를 하던 곳이었다. 집회 참가자들은 이날 2.5t 트럭에 설치된 120인치 스크린 방송으로 소식을 접했다. 이들은 통진당 해산 결정이 나자 입을 굳게 다물었다. 일부 당원은 고개를 숙인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홍성규 통진당 대변인은 이날 오전 9시 기자회견을 열고 “헌재가 기각이라는 판결로 민주주의를 지켜낼 것으로 믿고 염원한다”고 말했지만 결과는 달랐다.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이 난 뒤 우현욱 서울진보연대 중앙위원이 참가자들 앞에서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죽었다. 민주주의에 대한 사망선고이자 정치적인 계략이다”라고 비판했다. 당원들은 “독재만행을 규탄한다”는 구호를 외쳤다. 같은 시간 통진당 집회 장소와 횡단보도를 사이에 두고 100m가량 떨어진 곳에서는 보수단테 700명(경찰 추산)이 모여 환호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들은 해산 결정 직후 만세 삼창을 하고 애국가를 불렀고 인공기와 통진당 깃발을 찢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미래를 여는 청년포럼 등은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국민에게 온 크리스마스 선물입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해산을 환영했다. 북한민주화청년학생포럼도 인근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통진당 해산으로만 끝날 게 아니라 당원 명단을 공개해 곳곳에 암약하고 있는 종북주의자들을 뿌리 뽑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헌재 주변에는 경찰 1000여 명이 배치됐다. 현행법상 헌재에서 100m 이내의 지역에선 옥외집회나 시위를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보수단체와 한국진보연대의 집회는 100m를 벗어난 지점에서 열렸다. 양측 간 충돌도 우려됐지만 일부 개인 간 실랑이 외에 충돌은 없었다. 통진당원 약 300명(경찰 추산)은 이날 오후 3시부터 서울 동작구 대방동 통진당사 앞에서 ‘민주수호 진보당 강제해산 반대집회’를 진행했다. 집회에선 “박근혜 정권은 부당하게 재위한 권력으로 통진당 이름을 선관위에서 지웠다. 우리 가슴속에 아로새겨진 통합진보당 다섯 글자는 결코 지우지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집회 후 오후 7시부터는 시민단체 ‘민중의 힘’이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연 집회 ‘박근혜 2년, 못살겠다! 다 모여라! 국민촛불’에 합류해 통진당 해산을 비판했다. 이 행사에는 800여 명(경찰 추산)이 모인 가운데 “박근혜 2년 못 살겠다. 민주주의 살려내자”고 외쳤다. 한편 홍정식 활빈단 대표는 이날 오병윤 전 통진당 원내대표와 전체 당원을 대검찰청에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고 밝혔다. 통진당원은 약 10만 명으로 추산된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헌법재판소가 통합진보당에 정당해산 결정을 내린 것에 대해 새누리당은 “사필귀정(事必歸正)이며 헌법의 승리이자 자유민주주의의 승리”라고 평가했다. 박대출 대변인은 19일 브리핑에서 “헌재 결정은 대한민국 부정세력에 대한 준엄한 심판이다. 정의의 승리를 안겨다준 헌재의 결정에 경의를 표한다”며 “대한민국이 종북(從北) 세력의 놀이터로, 국회가 종북 세력의 해방구로 전락하는 것은 오늘로 종지부를 찍었다”고 밝혔다. 이어 박 대변인은 “야당은 선거연대를 통해 위헌세력이 국회에 진출하는 판을 깔아주었다”며 “통진당과 선거연대를 꾀했던 정당과 추진 핵심 세력들은 통렬히 반성할 것을 촉구한다”고 했다. 19대 총선 당시 새정치민주연합이 통진당과 연대해 종북세력 원내 진출의 숙주 역할을 했다는 비난이다. 김무성 대표는 기자들과 만나 “헌재의 판결을 존중하고 수용해 새로운 정치 질서를 형성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김 대표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폭력으로 (국가 전복을) 도모하려는 것은 이제 없어져야 한다”며 “법원의 판결이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말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는 정부서울청사에서 헌재의 결정을 존중하는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했다. 정 총리는 “헌재 결정으로 통합진보당이 폭력을 행사해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전복하고 최종적으로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실현하려 한다는 것이 명백히 확인됐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훼손하거나 도전하는 어떠한 시도나 행위도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면 통진당의 부정 경선 파동과 폭력사태에 반발한 인물들이 탈당해 만든 정의당은 “국민의 기본 권리를 박탈했다”고 비판했다. 통진당의 강령, 노선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정당해산은 국민의 선택에 맡겼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김종민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정당은 자율적인 정치적 결사체로 오직 주권자인 국민이 심판해야 한다”며 “6월 민주항쟁으로 탄생한 헌재 역사 중 가장 치욕적인 역사로 기록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통진당의 전신인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한 노회찬 전 의원도 트위터에서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리턴’ 파문에 빗대 “통진당에 ‘너 내려’ 명령하니 각하 시원하십니까”라며 “헌법재판이 아니라 정치재판”이라고 성토했다. 노 전 의원은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헌재 결정이 나오기까지 종북 논란 등 여러 문제가 드러난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진보 세력도 환골탈태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시민단체들은 엇갈린 반응을 보였다. 국제 인권운동 단체인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는 기자회견에서 “정당 해산은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는 또 다른 신호”라며 “한국 정부가 국가안보를 가장해 야당 정치인들을 탄압하고 표현의 자유를 위축시키고 있다”고 했다. 반면 보수 성향의 시민단체인 한국자유총연맹은 “헌재의 선고를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값진 승리로 규정한다”고 했다. 고성호 sungho@donga.com·배혜림·이샘물 기자}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사건의 결정이 내려지는 19일엔 정당 해산에 대한 찬반 집회뿐 아니라 노동자단체의 대규모 집회도 열린다. 공교롭게도 헌법재판소의 결정 날짜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승리 2주년과 맞물리면서 ‘대선 2주년 촛불 시국회의’ 등 굵직한 집회로 도심 곳곳이 혼잡해질 것으로 보인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후 5시 반부터 1시간 동안 서울 중구 서울파이낸스센터 빌딩 앞에서 2000명이 모인 가운데 ‘비정규직 종합대책 폐기 전국노동자대회’를 연다. 오후 7∼9시에는 서울광장에서 ‘세상을 바꾸는 민중의 힘’ 등 진보단체들이 주관해 ‘대선 2주년 촛불집회’ 및 ‘총체적 파탄 규탄대회’가 열릴 예정이다. 이 집회에는 최대 2000명이 참가할 것으로 보인다. 서울 종로구 헌재 앞에서는 이날 오전부터 보수단체의 기자회견이 이어진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자유청년연합, 엄마부대 등 보수단체들은 오전 9시 반부터 11시까지 총 250명이 모여 통진당 해산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연이어 진행할 예정이다. 기자회견은 집회와 달리 사전 신고 없이도 할 수 있어 당일에는 더 많은 기자회견이 열릴 것으로 예상된다. 통진당과 한국진보연대는 이날 1000명이 헌재 인근인 래미안갤러리 앞에서 ‘민주수호 진보당 강제해산 반대 집회’를 연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통합진보당 위헌정당 해산 심판 청구사건의 결론이 내려지는 19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는 보수단체와 진보단체 간 물리적 충돌이 예상되는 등 벌써부터 전운이 감돌고 있다. 헌재 대심판정에서 황교안 법무부 장관과 이정희 통진당 대표가 마지막 변론을 펼친 지난달 25일에도 보수단체들과 진보단체들이 헌재 앞에서 릴레이 기자회견을 열면서 통진당 해산 여부를 놓고 치열하게 찬반 주장을 펼쳤다. 19일 헌재 앞에서 공식적인 집회 시위는 열리지 않는다. 현행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은 헌재에서 100m 이내의 장소에서는 옥외집회나 시위를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기자회견은 가능하다. 한국진보연대는 헌재에서 약간 떨어진 종로구 운니동 삼환빌딩 앞에서 이달 15일부터 내년 1월 11일까지 ‘진보정당 해산 반대 민주주의 수호 결의대회’라는 집회를 열겠다고 신고해둔 상태다. 보수단체들은 헌재 앞에서 기자회견이나 문화제를 열어 입장을 표명하기로 했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이날 오전 9시 반부터 150∼200명이 ‘통진당 해산을 위한 문화행사’를 열 계획이다. 통진당이 해산되지 않으면 한겨레청년단 소속 회원 10여 명이 헌재에 난입해 해산에 반대한 재판관들을 규탄하고, 해산될 경우 폭죽 200개를 터뜨린다는 구상을 하고 있다. 자유청년연합은 오전 10시에 기자회견을 열어 통진당 해산 결정을 촉구하기로 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작가님의 번역된 작품을 보면 사회의 어두운 면을 많이 다루는데, 마지막 부분에선 인간 본성에 아직 희망이 있다는 내용이 엿보입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건가요?” 13일 오후 5시 서울 중구 엠플라자 해치홀. 찰스 몽고메리 동국대 영어영문학부 교수(55)가 소설가 박민규 씨(46)에게 물었다. 피부색과 국적이 제각기 다른 100여 명의 관객은 눈을 반짝였다. 박 씨는 “잘 읽으셨다”고 답했다. 한 미국인 남성은 “한국어가 언젠가는 사라질 거라고 생각한다. 이를 막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느냐”고 물었다. 박 씨는 “한국어가 소멸한다는 말에 동의한다. 인류도 어차피 멸망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관중들은 웃음을 터뜨렸다. 모임의 이름은 ‘서울북&컬처클럽’. 스코틀랜드 출신인 배리 웰시 숙명여대 국제언어교육원 객원교수(35)가 만든 다국적 독서클럽이다. 매달 1회씩 작가를 초청해 작품에 대해 질의응답과 토론을 벌인다. 통역원도 있다. 이날은 박 씨와 소설가 손보미(33·여), 오한기(29), 최민우 씨(39)가 초청됐다. 영문이 병기된 소설집 ‘K픽션’을 출간한 작가들이다. 웰시 교수는 2010년 한국에 입국해 이듬해 8월 이 모임을 만들었다. 여가시간을 통해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자는 생각에 학창시절 경험을 살려 독서클럽을 만들었다. 일단 페이스북 페이지를 개설해 시간과 장소를 홍보했다. 첫 모임엔 6명이 참석했다. 모임의 인기가 높아진 건 작가들이 모임에 오면서부터였다. 웰시 교수는 영문으로 번역된 한국 소설들을 읽고 직접 출판사와 작가에게 e메일을 보내 연사를 초청했다. 김영하 신경숙 황석영 등 한국인 작가뿐 아니라 외국인 작가도 왔다.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있다는 소식에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의 직업도 교수, 직장인, 학생 등 다양했다. ‘이게 바로 내가 할 일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웰시 교수는 문학뿐 아니라 영화도 함께 나누고 싶다는 생각에 올해 3월 ‘배리 웰시의 서울 필름 소사이어티’라는 모임도 만들었다. 직접 한국영화 DVD를 사서 매달 무료로 상영해주는 모임이다. 매달 50∼100명이 참석하고 있다. 그는 “어디에 살든 사회에 공헌해야 하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문화를 통해 소통하는 장을 제공하게 돼 기쁘다”고 말했다. ‘세계이주자의 날’(12월 18일)을 맞아 국제이주기구(IOM)가 정한 올해의 캠페인 주제는 ‘이주자는 사회에 기여합니다’. 웰시 교수처럼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이주민들을 알리자는 취지다. IOM한국대표부는 18일부터 25일까지 서울광장에서 국내 첫 캠페인을 연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여기 혹시 수상한 사람 안 왔나요?” 8일 오후 1시 40분경. 서울 종암경찰서 월곡지구대 경찰들이 성북구의 한 금은방에 찾아와 물었다. 금은방 사장 송모 씨(46·여)는 갑자기 한 남성의 얼굴이 떠올랐다. 30분 전쯤 고객 6명과 대화를 나눌 때 자꾸 주변을 기웃거리던 남성이었다. 미심쩍다는 생각에 경찰에게 “왔었다”고 말한 뒤 당시의 모습이 담긴 금은방 내 폐쇄회로(CC)TV를 확인했다. 검정 점퍼에 줄무늬 티셔츠 차림으로 인근 금은방에서 목걸이를 훔친 A 군(17)의 사진과 같은 모습이었다. 송 씨는 평소 남자 직원들이 많은 인근 중국음식점에 “여자 혼자 영업하니 신경 좀 써달라. 혹시 문제가 생겨 내가 소리를 치면 나와 달라”고 말해왔다. 경찰이 순찰하러 나간 뒤 송 씨는 인근 골목에서 절도범과 인상착의가 같은 사람이 서 있는 걸 봤다. 송 씨는 음식점에 곧장 뛰어들어 가 외쳤다. “남자들 다 나와! 물건 훔친 범인 저기 있으니까 검거해야 돼요!” 곧장 남자 직원이 뛰쳐나와 A 군을 잡았다. 송 씨는 경찰에 “도둑 잡았으니 빨리 차를 보내달라”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A 군과 함께 400만 원 상당의 금품을 훔친 공범 2명을 추가로 검거해 구속하고 A 군을 불구속 입건했다. 종암경찰서는 송 씨에게 15일 감사장을 전달했다고 밝혔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머리가 하얘지셨네요. 건강히 잘 계셨어요?” 5일 오후 4시경 서울 도봉경찰서 도봉1파출소. 군복무 중인 성모 씨(19)가 어머니와 함께 박종규 경위(55)를 찾아와 씨익 웃으며 말했다. 손에는 귤 한 박스를 들고 있었다. 앳된 소년이었던 성 씨는 어느새 늠름한 청년으로 자라 있었다. 박 경위는 가슴이 먹먹해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이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성 씨가 초등학교 3학년 때인 2004년이었다. 박 경위는 노원경찰서 하계2파출소에서 근무하다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남편과 헤어지고 혼자 아들을 키운다는 시각장애 1급 여성, 바로 성 씨의 어머니였다. “아들이 도벽(盜癖)이 있는데, 제가 수차례 나무라도 반성의 기미도 없고 가출을 해요. 제 힘으로는 도저히 안 돼서 경찰의 도움을 청합니다.” 박 경위는 휴일에 모자가 사는 임대아파트를 방문했다. 아이는 동네 놀이터에서 혼자 배회하고 있었다. 이름을 불렀더니 “아저씨 누구냐”며 거부감을 보였다. 평소엔 동네 형들과 어울리며 물건을 훔치기 일쑤였고, 절도에 대한 죄책감도 없었다. 가출도 자주 했다. 곰곰이 생각한 끝에 어머니에게 “아이의 일상생활에 대한 관리권을 위임해 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어머니는 흔쾌히 승낙했다. 이때부터 특별한 인연이 시작됐다. 박 경위는 아이에게 매일 하루 일과를 일지에 작성하게 했다. 오후 4, 5시면 아이를 만나 일지를 확인하고 생활을 점검했다. “물건을 훔치는 건 죄야. 진로에도 방해가 될 수 있어”라고 조언도 했다. 어린이날에는 인근 아웃렛에 데려갔다. 점심을 사주고, 봄 옷 한 벌과 책도 사줬다. 아이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아저씨가 왜 나한테 선물을 사주냐”고 물었다. 박 경위는 “오늘은 너의 날이잖아”라고 대답했다. 7개월쯤 지났을까. 아이의 도벽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진심이 통하자 아이는 마음을 열었다. 그리고 약속했다. 나중에 훌륭한 사람이 돼서 첫 월급을 타면 아저씨에게 자장면을 한 그릇 사주고, 더 잘되면 탕수육을 사주겠다고…. 박 경위가 아이 얼굴을 본 건 중학생 때가 마지막이었다. 어머니가 생활고 때문에 아이를 할머니집에 보냈기 때문이다. 성 씨는 아저씨와의 약속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성인이 됐다. 군에 입대해 ‘그때 그 경찰 아저씨’를 생각하며 월급을 모았다. 마침내 첫 휴가 때 어머니와 함께 파출소를 찾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박 경위는 근무 중이라 자장면을 먹진 못했지만, 30분간 대화를 나눴다. 성 씨는 청소년 상담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 박 경위는 웃으며 말했다. “너 상담사 잘할 거야. 왜인 줄 알아? 꼴통 짓을 해봤으니 애들 속마음을 잘 알 거 아냐.”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17개월 된 딸이 항암 투병 중이지만, 아이가 완쾌해 살아갈 세상은 더 정의로웠으면….’ 아름다운재단이 손해배상 가압류 때문에 고통 받는 사람들을 위해 올해 2∼5월 진행한 ‘노란봉투 캠페인’에는 한 아버지가 기부금과 함께 이런 내용의 편지를 보내왔다. ‘교도소에 수감돼 현금을 보낼 수 없어 죄송하다’며 우표 4만7000원어치를 보낸 재소자도 있었다. 캐나다 중국 등 해외 교포도 기부에 참여했다. 캠페인은 시작한 지 16일 만에 1차 목표인 4억7000만 원을 달성했다. 캠페인이 종료될 때까지 총 4만7547명이 14억7000만 원을 기부했다. 재단의 올해 1∼10월 누적 기부액은 86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4억 원)보다 34.4% 증가했다. 같은 기간 신규 기부자는 4만7000명으로 지난해(4000명)에 비해 12배 가까이 많았다. 올 들어 경기 침체 때문에 기업의 기부가 줄어들었지만, 십시일반 나눔을 실천하는 개인 기부는 꾸준히 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굿네이버스도 누적 기부액이 대폭 늘었다. 올 들어 11월까지 누적 기부액은 957억2900만 원으로 지난해(848억6000만 원)보다 13% 늘었다. 월드비전의 경우 기부 액수는 정산하지 않았지만 후원 건수가 대폭 늘었다. 기업 후원은 조금 줄어들었다. 월드비전은 기업들의 신규 후원 문의가 지난해보다 10∼20% 줄었다고 밝혔다. 푸르메재단은 지난 한 달간 전년도 같은 기간에 비해 기업 기부는 절반으로 줄어든 반면, 전체 기부자 수는 28% 늘었다고 밝혔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너무 신나면 일어나서 소리 지르셔도 돼요. 오늘은 마음껏 표현하세요. 아셨죠?” 10월 28일 경기 평택시 팽성읍. 기지촌 할머니들을 돕는 단체인 ‘햇살사회복지회’ 건물에서 뮤지컬 배우 박영필 씨(32)가 활짝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기지촌 할머니 약 30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네!”라고 외쳤다. 한 할머니가 “다리가 아파서 못 일어난다”고 하자 박 씨는 “그냥 앉아서 즐기셔도 된다”고 했다. 주위에선 박수가 쏟아졌다. 박 씨와 함께 뮤지컬 배우 신혜지 씨(28·여), 고은선 씨(31·여)가 마이크를 잡았다. 김아현 씨(30·여)는 피아노를, 박희준 씨(28)는 기타를 쳤다. 이들은 모두 소외계층을 위해 문화공연을 해주는 비영리단체 ‘이노비(EnoB)’ 소속 자원봉사자다. 이노비는 ‘변화를 이끄는 아름다운 다리’라는 뜻인 ‘이노베이션 브리지’의 줄임말. “…네가 만약 서러울 때면/내가 눈물이 되리/어두운 밤 험한 길 걸을 때/내가 내가 내가 너의 등불이 되리/허전하고 쓸쓸할 때 내가/너의 벗 되리라….” ‘여러분’이라는 노래가 흘러나오자 할머니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거 가수 윤복희 씨 노래지?” “맞다, 맞아.” 노래가 끝나자 청중 사이에서 “앙코르”가 쏟아져 나왔다. 이날 봉사자들이 준비한 노래는 총 10곡. 이노비 봉사자인 김기연 음악감독(36·여)이 기지촌 할머니들을 위해 특별한 노래들을 골랐다고 했다. 공연이 끝난 뒤 봉사자들은 밥과 반찬을 날랐다. “저희 작년에도 왔었는데 기억나세요?” “그럼, 거의 다 생각나.” “우와∼.” “근데 길에서 보면 못 알아봐. 하하.” 함께 식사를 하던 강태욱 이노비 대표(43)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는 이 단체를 2006년 미국 뉴욕에서 설립했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위로하자’는 취지로 사람들을 모았고 지금까지 400여 명의 예술가가 동참했다. 불과 8년 전에는 대학 동아리 수준의 작은 단체였지만 이제는 서울과 뉴욕에 사무실을 두고 연간 70회가량의 공연을 펼칠 정도로 성장했다. 아버지의 특별한 행복 강 대표가 처음부터 비영리단체를 운영하려 했던 건 아니다. 어린 시절에는 의사가 되고 싶었다. 부친인 강세윤 가톨릭대 의대 명예교수(74)의 영향이 컸다. 강 대표는 고교를 졸업한 뒤 1993년 미국 뉴욕대 화학과에 입학했다. 집안 어른들이 “선진국에서 공부해야 더 멀리 볼 수 있다”며 유학을 권한 덕분이었다. 미국에선 의대 준비생들이 학부 때 화학이나 생물학 등 기초과학을 우선적으로 공부한다. 강 대표 역시 그런 생각으로 대학을 다녔고 졸업한 뒤에는 연구원으로 2년간 일하며 각종 실험에 참가했다. 국제학술지에 공동저자로 몇 차례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일을 하면 할수록 ‘이 길은 내 길이 아닌 것 같다’는 물음표가 따라다녔다.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앞선 1980년대 초 강 대표가 미시간대 의대 교환교수였던 아버지와 함께 미국에서 생활하던 때였다. 아버지는 장애인 전용 주차 표지와 공간을 볼 때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며 이렇게 말했다. “돈이 없어서 못한다고 하지만 남을 돕는 건 돈이 아니고 마음 문제다. 봐라, 장애인 주차장을 만드는 데 특별한 돈이 드는 게 아니지만 이를 통해 사회는 크게 변할 수 있단다.” 강 대표의 아버지는 2년 반의 미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뒤 매주 수요일이면 장애인복지관에 가서 무료 진료봉사를 했다. 시간이 빠듯해 저녁식사는 승용차에서 햄버거나 치킨으로 해결했다. 훨씬 더 편하게 살 수 있었지만 그러지 않았다. 강 대표는 “평생 공익을 위해 끊임없이 봉사하고, 그러면서 행복해하셨던 아버지의 모습에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다”고 말했다. 소외된 이들에게 음악 선물 강 대표도 아버지처럼 장애인을 위해 봉사하고 싶었다. 뉴욕대 재학 시절, 방학을 이용해 봉사활동을 시작했다. 20대 지적장애인 두 명에게 사회 적응 훈련을 시키는 역할이었다. 이들과 버스를 타고 영화관으로 향했다. 장애인들은 덧셈 뺄셈을 하지 못해 영화관에서 스스로 표도 사지 못할 정도였다. 힘들게 영화관에 들어서긴 했지만 이들은 끊임없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고 결국 15분 만에 영화관을 나와야 했다. “모든 사람이 문화생활을 즐길 권리가 있지만 현실적으로는 신체적 경제적 사회적인 어려움 때문에 그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하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들이 편하게 느끼는 장소에서 친구들과 함께 음악을 즐길 수 있도록 음악회를 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즈음 미국 국립보건원에서 일하는 의사들의 사연을 들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어린이 환자들을 위해 콘서트를 열 예정인데 반주자가 필요하다는 거였다. 대부분이 크리스마스 때 집에서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만 환자들은 외롭게 병동을 지켜야 했다. 이들을 위해 의사들이 직접 기획한 콘서트였다. 강 대표는 반주자를 소개해주고 공연 현장을 찾았다. 평소 지친 표정으로 병상을 지키던 아이들이 음악을 들으며 마음껏 뛰놀고 있었다. 얼굴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그때 강 대표는 확신했다. ‘그동안 내가 간절히 찾던,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 바로 이것이었구나’라고…. 강 대표는 결국 의대 진학의 꿈을 접었다. 여러 사람에게 도움을 주는 삶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2005년 컬럼비아대 국제행정대학원에 등록해 비정부기구(NGO) 운영을 배우기 시작했다. 동시에 1년에 2, 3번씩 음악을 전공한 친구들을 모아 소외계층을 위한 콘서트를 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다리를 놓다 강 대표는 지속적으로 많은 사람에게 봉사하려면 단체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이들을 모아 체계적으로 일을 하고 싶었다. 2006년 10월 29일, ‘이노비’라는 단체를 만들어 뉴욕 주에 비영리단체 등록을 했다. 이노비의 사명은 ‘우리의 재능은 가장 절실한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들과 공유돼야 한다’라고 정했다. 단체를 설립한 뒤 첫 공연은 2006년 11월 뉴욕의 공연장인 ‘오픈센터’에서 열렸다. 지적장애 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대상이었다. 당초 관객 60여 명을 예상하고 기획했지만 240여 명이 몰렸다. 8명의 예술가들이 재능 기부로 다양한 음악을 선사했다. 이때 갑자기 장애 어린이들과 가족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러고 연주자들 사이에서 자유롭게 뛰어놀며 음악을 즐기기 시작했다. 문화적으로 소외된 이들도 마음껏 표현하며 예술을 즐기고 싶었던 것이다. 장애인시설, 요양원 등에 있는 사람들은 신체적인 이유로 오랜 시간 집중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한곳에 모았을 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은 보통 40분. 음악은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고, 관객들을 하나로 만들 수 있는 도구로 제격이었다. 강 대표는 비영리단체에서 현장 경험을 쌓고 싶었다. 대학원 졸업 후 뉴욕 퀸스YWCA에서 사무행정 일을 시작했다. 얼마 후에는 부사무총장으로 단체 운영을 총괄하게 됐다. 그러나 ‘직업이 있는 사람들이, 남는 시간에 공연을 해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결국 이노비에 ‘올인’하기 위해 2011년 사표를 냈다. 그동안 모은 돈을 털어 뉴욕 맨해튼에 10m²짜리 사무실을 얻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엔 봉사자가 많지 않아 아내와 단둘이 공연 사진과 동영상을 찍기도 했다. 그렇게 꾸준히 콘서트를 열다 보니 뉴욕과 뉴저지 지역에 입소문이 났다. 봉사자와 후원자도 하나둘씩 늘었고, 사무실 직원도 생겼다. 그리고 2012년 서울에 사무실을 열었다. 작은 공연도 누군가에겐 큰 의미 이노비의 공연은 힘든 사람들에게 특별한 순간을 제공했다. 올해 2월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병동 로비에서 환자들을 위해 공연할 때였다. 한 할머니가 빨간색 외출 모자와 재킷을 입은 채 병실 침대에 실려 나왔다. “예쁜 옷 입으셨네요”라고 하자 할머니는 “음악회인데 당연히 잘 입고 나와야지요”라며 환하게 웃었다. 할머니는 두 아들의 손을 잡은 채 공연을 관람했다. 작은 공연이라도 누군가에겐 큰 선물이었다. 6월 뉴욕 갈보리병원에서 호스피스 환자들을 위해 연 공연에서는 한 여성 환자가 공연 내내 눈물을 흘렸다. 그는 말했다. “하루 전날 호스피스병동으로 옮겼어요. 절망뿐이었는데 공연을 통해 기쁨과 희망을 얻었어요.” 음악은 때론 사람들의 아픔을 멎게 했다. 봉사자들이 10월 미국 컬럼비아대 어린이병원을 찾아 디즈니 주제곡 등을 들려주며 공연할 때였다. 병원은 중증환자들을 위해 입원실 TV로 공연을 생중계했다. 환자의 부모가 말했다. “아이가 수술 후 아프다고 계속 칭얼대며 힘들어했어요. 놀랍게도 공연을 보는 동안은 아프다고 단 한마디도 안 하더군요.” 이노비의 공연은 매번 무료로 진행된다. 일부 실비는 후원금으로 충당된다. 네이버 해피빈으로 소액 후원금이 모이고, 정인욱 복지재단, 의당기념사업회 등도 도움을 주고 있다. 이노비는 매년 두 번씩 뉴욕에서 후원의밤 행사를 열어 콘서트 티켓 판매와 후원금 모금을 통해 기금을 마련한다. 뉴욕에 있는 파슨스스쿨, 프랫 인스티튜트 등 미술학교 학생들이 재능 기부로 만든 미술품을 판매해 이노비에 전액 기부를 한 적도 있다. 컬럼비아대 학부생들로 구성된 8인조 밴드는 공연을 열고 수익금 전액을 이노비에 기부하기도 했다. 강 대표의 부모와 아내도 든든한 후원군이다. 사촌 형도 설립 초기에 “귀한 일을 시작했다”며 100만 원을 보내줬다. 이노비를 시작한 첫해에는 후원금의 95%가 강 대표 친인척들의 몫이었지만, 현재는 후원금의 80% 정도가 외부 후원자들로 채워지고 있다. 이노비의 꿈은 조직을 확장하는 것도, 후원금 자체를 많이 모으는 것도 아니다. 그저 소외계층과 재능 기부자들 사이에 더 많은 다리를 놓아주는 게 목표다. 강 대표는 자신이 꿈꾸는 세상을 이렇게 소개했다. “우리 사회 안에 있는 담을 허물고, 서로 다가가 함께 행복을 나누는 것, 그게 이노비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입니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제자들에게 폭언과 부당행위를 일삼은 숙명여대 작곡과 A교수와 B 교수가 파면됐다. 숙명여대는 학생들에 대한 폭언과 졸업작품집 강매 등 비위행위로 회부된 두 교수에 대해 9일 열린 교원징계위원회에서 파면을 의결했다고 12일 밝혔다. 징계위의 조사 결과 A 교수와 B 교수가 학생들에게 폭언을 일삼고 수업을 부실하게 하는 한편, 오선지와 졸업작품집을 강제 판매하고 실험실습비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숙대 작곡과 학생들은 두 교수의 부당행위에 시달리다 올해 3월 총장에게 투서를 접수했다. 하지만 감사 요청이 6월 접수된 뒤 교수들에 대한 징계는 이사회에서 9월 논의됐고, 징계위원회는 10월 13일에야 조사를 시작해 늑장 대응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 학교 측이 꾸린 징계위원회는 숙명학원 이사 2명과 숙명여대 교원 3명 등 내부인사 5명으로만 구성돼 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우려도 제기돼 왔다. 이 와중에 A 교수는 온라인에 자신의 부당행위를 폭로한 제자와 누리꾼들을 경찰에 고소하고, 일부 제자에게는 민사소송도 제기한 상태다. 숙명여대 측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전반적인 시스템 개혁을 단행하고, 대학사회에 건전한 기풍을 확립하는 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경찰이 ‘종북 콘서트’ 논란을 빚고 있는 황선 전 민주노동당 부대변인(40·여)의 자택과 6·15공동선언실천남측위원회 사무실을 11일 압수수색했다. 황 씨는 재미교포 신은미 씨(53·여)와 지난달부터 전국을 순회하며 방북 경험을 바탕으로 한 통일토크콘서트를 열었다. 경찰은 활빈단 등 보수단체가 이들이 북한을 미화했다며 고발한 사건을 수사하고 있다. 토크콘서트 홍보물에는 ‘6·15남측위 서울본부’가 주최로 돼 있다. 경찰 관계자는 “(6·15남측위가) 주최자로 돼 있어 압수수색을 한 것”이라며 “얼마 전 기자회견에서 콘서트를 올여름부터 기획했다고 밝혔기에 그 시점부터의 관련 문건을 확인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신 씨에게 이날 오후 2시까지 피고발인 자격으로 나와 조사를 받으라고 통보했지만 신 씨는 불응했다. 법무부는 경찰의 요청에 따라 이날 신 씨에게 20일까지 열흘간 출국정지 조치를 내렸다. 수사당국은 범죄 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내국인에 대해서는 출국금지를, 외국인에 대해서는 출국정지를 법무부에 요청할 수 있다. 신 씨는 미국시민권자다. 당초 황 전 부대변인과 신 씨는 이날 부산에서 토크콘서트를 진행하려고 했지만 전날 전북 익산시에서 토크콘서트 행사 중 벌어진 ‘사제폭발물 테러’ 사건 때문에 취소했다. 그 대신 황 전 대변인은 서울 중구 향린교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황 전 부대변인은 “테러의 주범은 그간 숱하게 진행해온 통일콘서트를 갑자기 종북으로 몰아 내란이라도 일어난 듯 호들갑을 떨며 종북 마녀사냥을 자행한 언론과 그에 부화뇌동해 법도 원칙도 무시하고 움직여 온 공안기관”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이순실 씨 등 탈북자 5명은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황 전 부대변인과 신 씨에게 “가족과 함께 북한에 가라”며 규탄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강영도 경민대 교수는 이들이 토크콘서트에서 탈북자들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비판했다. 강 교수는 19개 탈북 단체를 대표해 이날 두 사람을 의정부지검에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고 밝혔다.이샘물 evey@donga.com·강홍구 기자}

어둠이 짙게 깔리면 집에선 종종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낯선 이들이 “사람이 죽었다”며 도움을 요청했다. 공동묘지 산지기였던 아버지는 말없이 지게를 지고 사라졌다. 집에 돌아와서는 말했다. “너무 가난해서 관도 살 수 없어 가마니로 둘둘 말아 뒷산에 묻었다.” 1960년대는 굶고 병들고 버림받는 사람이 많던 시절이었다. 아버지는 대가 없이 시신을 묻어주고 밥이 소복이 담긴 그릇처럼 생긴 봉분을 만들어 토닥였다. 저세상에서나마 배불리 먹고살라는 기원이었다. 이천영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 이사장(55·새날학교 교장)이 기억하는 어린 시절 풍경이다.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했다. 초등학교만 졸업하고 열두 살 때부터 공장을 전전했다. 월급이 밀려서 사장에게 항의하다가 매를 맞기도 했다. 껌팔이, 식당 배달, 이발 일을 하면서 길거리를 전전했다. 못 배운 설움이 밀려올 때면 공부를 하고 싶어졌다. 결국 남이 버린 책들을 주워서 공부를 시작했다. 중고교는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에 입학해 영어교사가 됐다. 한동안 가슴에만 묻어둔 아픈 과거를 다시 떠올린 건 1998년이었다. 가족과 함께 어느 가게에 들어갔다가 오른손목이 잘린 우즈베키스탄 출신 이주노동자를 만났을 때였다. “요즘도 공장에서 월급을 잘 안 주느냐” “밥은 제대로 주느냐”고 묻기 시작했다. 월급이 밀리고 몸도 아파 고통스러워하는 이주민들을 보면서 옛날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때부터 이주노동자들과 함께 병원에 가고, 각종 도움을 줬다. 소문을 듣고 점점 많은 외국인이 그를 찾아왔다. 동료 교사들의 도움으로 창고 건물을 임대해 ‘외국인근로자문화센터’를 열었다. 이주노동자들이 사랑방처럼 이용하는 공간이었다. 후원 계좌를 만들어 주변의 도움도 구했다. 2004년엔 한 우즈베키스탄 출신 남성이 찾아왔다. 애 때문에 취직이 어려우니 여섯 살 남자아이를 며칠만 맡아 달라고 했다.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후 애 아빠의 연락은 끊겼다. 아이를 오래 데리고 있을 형편은 아니었다. 결국 아이를 보육원에 맡기고 매주 찾아갔다. 죄책감이 들었다. 나중에 아이는 아빠와 함께 본국으로 돌아갔지만, 다시는 이런 일이 없길 바랐다. 이런 아이들을 위해 대안학교를 만들자고 결심했다. 2007년 ‘새날학교’라는 대안학교를 만들었다. 당시만 해도 교실은 외국인센터 내에 한 칸, 학생은 2명뿐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늘기 시작했고, 추후 인근 폐교를 임차해 학교도 좀 더 넓은 곳으로 옮겼다. ‘한 사람의 희생으로 여러 사람이 행복할 수 있다면 이 길을 가야만 하겠구나.’ 학교를 명예퇴직하고 이주민들을 돕는 일에만 전념하기 시작했다. 새날학교는 2011년에 정규학교로 인가를 받았고, 현재 우즈베키스탄 베트남 영국 등 12개국 출신 아이 79명이 다니는 곳으로 어엿하게 성장했다. 학교는 교육청 지원금과 후원금으로 운영되며 학비는 무료다. 2010년엔 이주민들에 대한 소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매체인 ‘나눔방송’도 만들어 대표를 맡고 있다. 이 이사장은 10일 국가인권위원회가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연 세계인권선언의날 기념식에서 ‘2014년 대한민국 인권상’을 받았다. 그를 포함해 총 15명이 인권위 위원장 표창을 받았다. 인요한 연세대 의대 교수는 근정훈장을, 서인환 한국장애인재단 사무총장은 국민포장을 받았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길거리에서 판매되는 수많은 짝퉁 물건들은 어디서 만들어져 공급될까.’ 서울 중부경찰서 경찰들은 9월부터 동대문 관광특구에서 짝퉁 단속을 하면서 이런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마침 ‘강모 씨(65)가 짝퉁 물건을 대량으로 유통시키고 있다’는 첩보가 입수됐다. 경찰 20명은 수사를 거듭한 끝에 1일 오전 5시에 모여 작전회의를 했다. 강 씨를 포함한 업자들의 주거지, 창고와 공장 등 총 9곳에 대한 압수수색영장이 발부된 날이었다. 강 씨는 경기 안성시에서 1322.3m²(약 400평) 크기의 피혁공장을 운영하는 김모 씨(56)에게 의뢰해 루이뷔통, 구찌 등의 짝퉁 원단을 만들어왔다. 두 사람은 범행을 숨기기 위해 인적이 드문 길거리에서 만나 원단을 주고받았다. 강 씨는 원단을 짝퉁 가방과 지갑 등을 만드는 제조자 2명에게 팔았다. 제조자들은 적발될 것에 대비해 주택가 반지하에서 몰래 물건을 만들기도 했다. 강 씨 본인도 짝퉁을 제작하며 경기 의정부시에 마련한 231.4m²(약 70평) 크기의 창고에 보관했다. 이들은 서로 ‘○사장’이라고만 부르며 이름도 모를 정도로 은밀하게 영업을 해왔다. 짝퉁 원단 제조는 안성 공장 내부에서도 철저한 비밀이었다. 원단을 만드는 기구인 폭 25cm, 길이 2m 크기의 ‘금형 롤러’는 사용이 끝나면 종이로 말아서 숨기는 식이었다. 짝퉁 원단 한 롤(길이 27.4m 정도)로는 가방 45개와 지갑 600개 정도를 만들 수 있다. 경찰은 이날 짝퉁 원단 328롤과 짝퉁 제품 250여 점, 부자재 8400여 점, 롤러 4개 등 총 10t 분량을 압수했다. 압수되거나 판매된 원단과 제품들을 정품 가격으로 환산하면 총 6300억 원에 이른다. 경찰은 강 씨와 김 씨를 구속하고 이들을 비롯해 총 6명을 검거했다고 9일 밝혔다.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견과류 서비스 방식이 규정에 맞지 않는다며 항공기를 되돌려 승무원을 내리게 해 구설에 오른 조현아 대한항공 부사장(40·사진)이 9일 대한항공의 모든 보직에서 사퇴했다.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출장에서 귀국한 직후 이같이 결정됐다. 하지만 부사장 직위와 계열사 대표이사직은 그대로 유지하는 ‘반쪽 사퇴’여서 비난 여론이 가라앉을지 주목된다. 조 회장은 파리 출장을 마치고 9일 오후 3시 40분경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조 회장은 곧바로 인천공항에서 임원회의를 열어 큰딸인 조 부사장의 보직 사퇴를 결정했다. 대한항공에 따르면 조 부사장은 임원회의에서 “본의 아니게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고객 및 국민 여러분에게 죄송스러우며 저로 인해 상처를 입으신 분이 있다면 너그러운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조 부사장은 지난해 12월부터 대한항공 기내서비스 및 호텔사업부문 총괄 부사장으로 기내식기판사업본부 본부장, 호텔사업본부 본부장, 객실승무본부 본부장을 겸임해 왔다. 본부장 직책에서 모두 물러난 것이다. 다만 부사장 직위와 대한항공 등기이사, 칼(KAL)호텔네트워크, 왕산레저개발, 한진관광 등 계열사의 대표이사직은 유지한다. 이에 인터넷에서는 “무늬만 사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임원회의에 앞서 조 회장은 공항에서 기자들과 만나 “(조 부사장이) 업무 수행 중이었지만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쳐드린 데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며 “모든 과정을 조사한 뒤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조 부사장의 보직 사퇴 배경은 비난 여론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그는 8일 밤만 해도 회사 명의의 보도 자료를 통해 “승무원(사무장)이 규정과 절차를 무시했고, 매뉴얼 사용법조차 모른 채 변명과 거짓으로 둘러댔으며, 이에 대한 지적은 당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자 9일 대한항공 조종사 노조는 ‘대한항공은 제대로 사과하고 책임져라’라는 제목의 성명에서 “책임은 조 부사장이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국토교통부도 인천공항의 대한항공 사무실을 찾아 조사를 지속했다. 인터넷에는 조 부사장에 대한 비난 여론이 이어진다. ‘조 부사장이 술에 취해 있었다’, ‘회사에서 직원들에게 대응논리를 담은 메일을 보냈다’는 등의 추가 의혹도 나온다. 또 조 부사장이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리게 한 사무장이 회사로부터 비행정지 처분을 받았다는 미확인 보도도 나왔다. 이에 대해 대한항공은 모두 부인했다. 대한항공은 특히 사무장의 비행정지 처분설에 대해 “절대 아니다. 지위는 변함없으며 해당 사무장이 4주 병가를 냈을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종일 조종사 노조 홈페이지가 접속이 되지 않으면서 디도스 공격설도 나오고 있다. 한편 “10일 서울서부지검에 조현아 부사장을 고발할 것”이라고 한 참여연대는 “사퇴와 관계없이 그대로 고발하겠다”고 밝혔다.김성규 sunggyu@donga.com·이샘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