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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정은이 새해 첫 공개 활동으로 민생경제 현장을 찾았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5일 김정은이 새로 건설된 평양가방공장을 현지 시찰했다고 보도했다. 통신에 따르면 평양가방공장은 연간 24만2000여 개의 학생가방과 6만여 개의 일반가방을 전문적으로 생산하는 현대적인 가방 생산기지다. 지난해 7월 초 평양 통일거리에서 착공식을 가졌다. 김정은은 “레이저 재단기를 비롯해 북한의 힘과 기술로 만든 현대적인 설비들을 잘 갖춰 놓았다”며 “설비의 국산화 비중을 95% 이상 보장한 것은 대단한 성과”라고 치하했다. 신년사에서 인민들을 잘 돌보지 못했다는 점을 반성하고 고개를 숙였던 김정은이 새해 첫 공개 활동으로 민생경제 행보를 택한 것은 올해 인민생활 향상에 역점을 두겠다는 메시지를 주민들에게 던진 것으로 해석된다. 김정은은 지난해에는 신년사를 발표한 직후 과학기술전당 준공식에 참석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유사시 북한 전쟁지도부를 제거하는 특수임무여단(김정은 참수부대)이 올해 창설된다. 또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에 대한 중국의 보복성 조치 대응 방안도 마련된다. 국방부와 외교부, 통일부는 이날 서울 종로구 세종대로 정부서울청사에서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신년 업무계획을 보고했다. 올해 업무보고는 최근 한반도 주변의 엄중한 정세를 고려해 외교안보 부처부터 시작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유사시 북한 전쟁지도부를 제거하고 기능을 마비시키는 임무를 수행하는 특임여단을 올해 조기 창설하는 계획을 국방기본계획에 반영했다”고 보고했다. 특임여단은 북한의 도발이나 핵공격 징후가 있을 때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등 핵심 지휘부를 선제 타격하는 부대로 당초 2019년 창설 예정이었으나 북한의 도발 위협이 갈수록 고도화됨에 따라 2년 앞당기기로 한 것이다. 한 장관은 한국형미사일방어체계(KAMD)와 킬체인, 대량응징보복(KMPR) 등 북핵 위협에 대응하는 ‘한국형 3축 체계’ 구축을 앞당기는 데 최우선으로 중점을 둘 것이라고 설명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국제 질서의 대변환, 동북아 역학관계 재편,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 등 냉전 종식 후 가장 엄중한 외교안보 환경이 전개되고 있다”며 “어느 때보다 비상한 각오로 능동적 선제적 외교를 전개하겠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의 올바른 변화를 통한 북한 비핵화와 평화 통일 기반 구축’을 정책 목표로 보고했다. 황 권한대행은 “올해는 북핵 문제의 변곡점이 될 수도 있는 중요한 시기”라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제재, 조율된 독자 제재, 글로벌 대북 압박이라는 3개 축을 통해 제재, 압박의 구체적 성과가 더욱 가시화되도록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조숭호 shcho@donga.com·주성하 기자}
2016년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이 1414명(잠정치)이라고 통일부가 3일 밝혔다. 이들을 포함하면 지난해 말 기준으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은 3만208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015년 대비 11% 늘어난 숫자다. 2011년 말 북한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탈북민이 실질적으로 늘어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다. 2009년 2914명까지 늘었던 탈북민은 북한 당국의 국경 통제 및 탈북 처벌 강화 등의 영향으로 2011년 2706명, 2012년 1502명으로 급감했고, 2013년 1514명으로 보합세를 보이다, 2014년 1397명, 2015년 1276명으로 지속적으로 감소해왔다. 지난해 탈북민 가운데 위장 귀순 여부 등을 조사받고 있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최종 수치는 다소 바뀔 수 있지만 1400명은 넘은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탈북민의 증가는 김정은의 공포정치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해외에서 근무하는 엘리트층과 외화벌이 일꾼들의 탈북이 크게 늘었다. 통일부 관계자는 "지난해 북한 해외식당 종업원과 해외 파견 북한 근로자 등 제3국에서 체류하던 탈북민의 한국 입국이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에는 하나원(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을 거치지 않고 한국 사회에 정착하는 엘리트층의 탈북도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7월 망명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 지난해 4월 집단 탈북한 중국 소재 북한식당 종업원 13명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증가 추이가 앞으로도 유지될지는 미지수이다. 북한은 탈북을 막기 위해 지난해 9월 북부지역 수해를 복구한다는 명분 아래 북-중 국경을 따라 철조망을 설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목함 지뢰까지 설치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어 탈북이 점점 어려워지는 실정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의 ‘특별 배려’로 신정에 3일 동안 휴식을 취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새해 신년사에서 이례적으로 능력 부족을 토로하며 머리를 숙여 인사까지 했던 김정은의 민심 얻기 행보로 풀이된다. 대북매체인 데일리NK는 1일 북한 소식통을 인용해 “올해 신정은 3일 휴식하라는 당의 포치가 내려와 3일까지 쉬게 됐다”면서 “3일 휴식은 지난해 ‘200일 전투’ 성과를 격려하는 (김정은) 특별 배려로 선전됐다”고 전했다. 북한은 원래 신정에 이틀 동안만 공휴일이고, 3일부터 신년사 관철 투쟁이란 명목으로 전당·전국·전민이 퇴비를 싣고 농촌을 지원하는 게 관례였지만 올해 이마저도 미뤄지게 됐다는 것. 하지만 명절을 맞아 별도로 술·담배 등의 공급은 없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김정은은 2014년에도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을 통해 신정 휴식을 하루 더 연장해 준 전례가 있다. 김일성, 김정일 시대 이어져 오던 신정 이틀 휴식이 김정은 시대에는 ‘배려’라는 명목으로 오락가락하고 있는 셈이다. 김정은이 주민들에게 휴식을 하루 더 준 것은 지난해 초부터 ‘70일 전투’, ‘200일 전투’ 등으로 주민들을 계속 시달리게 해 불평불만이 고조된 것을 의식한 행보로 보인다. 또 올해 자신에 대한 본격적인 우상화 작업에 앞서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의도도 있을 것으로 분석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한국에 왔을 때 가장 먼저 보고 싶었는데 드디어 만났네요.” 지난해 12월 29일 서울 동아미디어센터 로비에 도착한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55·사진)는 마중 나온 기자와 반가운 포옹을 나눴다. 태 전 공사는 지난해 12월 27일 한국 언론과 가진 간담회에서 “주성하 기자가 한국에서 쓴 기사를 100% 보고 큰 힘을 얻었다. 한국행 결심을 내리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취지로 말했다. 당초 2시간으로 예정됐던 대담은 3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태 전 공사는 “북에 남은 혈육과 동료들을 생각하면 요즘도 새벽 3시까지 잠을 이루지 못하지만 수면제나 알코올에 의지하면 김정은보다 먼저 무너질 것 같아 악착같이 버틴다”며 서울에서 새 삶을 시작하는 벅찬 심경과 개인적 고뇌 등을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대담 내내 북한 최고위급 엘리트의 시각에서 북핵 정세를 분석했고, 북한의 주요 정책이 이뤄지는 과정 등 신선하고 새로운 정보도 쏟아냈다. 그는 “김정은의 핵 야욕을 막는 유일한 길은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여 간부와 주민들이 김정은을 반대해 봉기하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태 전 공사가 본격적인 외부 활동을 펼치기 시작하자 북한 대남 매체들은 그의 실명을 처음으로 거론하며 ‘특급 범죄자’라고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그만큼 그의 활동과 발언들이 북한 체제에 큰 위협이 된다는 의미다. 태 전 공사의 예상대로 김정은은 1일 5년째 계속된 육성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라며 새해 벽두부터 추가 도발 의지를 강하게 내비쳤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의 대내외 정책 결정 시스템이 김정은을 정점으로 부처별로 이뤄지는 비밀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북한의 정책적 결정이 조직지도부나 외무성에서 결정되고, 심지어 매파와 비둘기파의 대립이 존재할 것이라는 한국 등 외부의 시각과는 다른 중요한 증언이었다. 그는 “북한을 바라볼 때 한국이나 다른 나라들처럼 정상적인 시각에서 바라보면 안 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북한이 수령에 대한 신격화에 기초해 움직이고 유지되는 사회라는 점으로 이런 체제를 설명했다. 그는 “수령에 대한 신격화가 뭐냐면 수령은 인간이 아니고 하늘과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라며 “김정은을 하늘처럼 만들려고 하다 보니 모든 부서가 별도로 움직인다”고 말했다. 만약 회의 등을 통한 집단 협의 시스템으로 정책을 결정하면 이른바 ‘하늘’을 신격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태 전 공사는 “결국 모두 정보를 은폐하고 해당 부서에선 자기 해당 부분만 김정은에게 보고한다”며 “이런 보고를 종합해 김정은이 정책화해야 일반 사람들도 김정은을 신격화하게 된다”고 말했다. 가령 대외정책의 경우 외무성만 준비해서 김정은에게 보고한다는 것. 이 과정에는 노동당이 절대 관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당 조직지도부가 힘이 세다고 하지만 오직 주민 관리 통제만 담당한다는 것. 다른 모든 부서도 이렇게 별도로 움직인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태 전 공사는 대미 정책처럼 북한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중요한 정책도 노동당의 지도를 받지 않고 외무성 스스로 결정한다고 밝혔다. 그는 “미국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됐다면 그의 행동을 예측하고, 대응을 짜는 것도 외무성 미국국에서 만들어 김정은에게 보고한다. 1안, 2안 이런 것도 없고 아예 결정해서 보낸다”고 말했다. 가령 ‘트럼프가 김정은과의 정상회담에 대해 말한 것이 있기 때문에 현 단계에선 한동안 핵이나 미사일 실험 같은 것을 하지 않고 차후 동향을 좀 더 지켜보려 한다’고 보고하는 식이라는 것이다. 다만 군부가 예상치 못하게 미사일을 쏴버려 외무성으로선 차질이 빚어지는 일도 생긴다고 한다.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 좀 더 지켜볼지 미사일을 쏠지 같은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김정은도 보좌팀의 도움을 받아 결정할 것이라고 태 전 공사는 덧붙였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는 지난해 12월 29일 3시간 가까이 이어진 대담 인터뷰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아픈 상처가 드러날 때면 가끔 목이 메기도 했지만 그것은 잠시뿐이었다. 사전 질문 협의가 없었지만 어떤 질문에도 막힘 없이 답을 해 엘리트 외교관 출신이라 역시 다르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보통 탈북민들은 한국에 온 초기에는 북한에서의 지위에 상관없이 외래어 때문에 의사소통에 애를 먹기 마련인데, 태 전 공사는 한국에서 쓰는 외래어를 이미 꽤 많이 학습한 듯 대화에 전혀 문제가 없었다. 오랫동안 북한에서 외교관으로 살아 한마디 한마디 조심스레 대답하는 것이 몸에 뱄을 법한데도 그는 스스럼없이 달변으로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 ―서울을 경험하면서 느낀 소감은…. “여태까지 덴마크 스웨덴 영국처럼 선진국 중 발전된 나라에서 외교관 생활을 했고 한국의 발전된 모습도 많이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와본 서울은 생각보다 훨씬 발전돼 있어 놀랐다. 아직 지하철을 못 타봤는데 타보고 싶다.” ―음식은 어떤가. “많이 먹어봤는데, 비빔밥이 맛있었다. 임진강에서 맛본 장어도 정말 맛있었다. 북한에선 장어 4, 5점을 놓고도 상당히 비싸게 파는데, 임진강에서 마음껏 먹어봤다. 아쉬운 것은 평양냉면이더라. 유명하다는 몇 곳에 갔는데 평양 옥류관 같은 구수한 육수 맛이 안 났다. 그걸 보니 평양냉면집이나 한번 열어볼까 싶기도 하다.” ―남북 음식문화의 차이가 느껴졌나. “말이 달라 처음엔 잘 알아듣지 못했다. 하루는 ‘수제비국 먹으러 가자’고 하기에 ‘그게 뭐예요’라고 하니까 밀가루로 만든 거라고 설명하는데 모르겠더라. 가보니 북한에서 ‘뜨덕국’이라 부르는 음식이었다. 백숙탕도 몰랐는데 ‘닭곰’이더라. 놀란 것은 한식당에 가니 반찬을 다 먹으니 또 갖다 줘서 깜짝 놀랐다.” ―낯선 환경에 적응은 잘 되나. “제일 두려운 게 밤이다. 북에 두고 온 친인척, 동료들 생각하면 새벽 3시까지 잠이 안 온다. 수면제라도 좀 먹을까 했지만 수면제에 손대는 날이면 김정은보다 내가 먼저 무너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안 먹었다. 새벽 3시까지 잠이 안 오면 본능적으로 냉장고 문을 열고 술을 찾게 돼서 술도 다 치웠다. 내가 지금의 고통을 알코올에 의지한다면 알코올중독자가 될 것 같아 강한 마음으로 이겨내고 있다.” ―망명 직후 언론에서 ‘금수저’ 출신 외교관으로 보도했는데…. “전혀 아니다. 나는 ‘흙수저’로 자수성가했다. 다만 좋은 운은 좀 타고난 것 같다. 어렸을 때 최고위층 자녀들만 뽑는 평양외국어학원에 입학했다. ‘금수저’만 골라 보내는 유학생에 선발돼 중국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국제관계대학에서 고위외교관을 양성하는 특수 교육과정도 마쳤다.” ―남북 외교관을 비교해 본다면…. “(북한 외교관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돼 되도록이면 그들(한국 외교관)을 피하려 했다. 한국 외교관들은 당당하지 않나. 한국 제품이 온 세상에 깔려 있고 유럽에서도 한국은 선망의 대상이다. 공식적인 자리에 가면 한국 외교관 주변에는 항상 사람이 많은데, 북한은 같은 코리안인데도 말 거는 사람도, 명함 주며 식사하자는 사람도 없다. 같은 민족인데도 짜증이 난다. 또 북한 외교관은 김정일 부자의 배지를 항상 달고 다니는데 사람들이 그걸 보고 장성택을 죽인 게 진짜냐고 대답 못할 질문을 던지니 피하게 된다.” ―북한 내부 관료들과 달리 외교관들에겐 숙청의 공포는 없지 않나. “맞다. 김정일 때부터도 외교관이 숙청된 일은 없다. 김정은도 외무성은 못 흔든다. 김정은이 다른 부서는 다 갔지만 아직 외무성엔 가지 않았다. 김정은이 다른 일반 간부들을 대할 때는 항상 자기가 그들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간부들을 뭘 모르는 무식한, 쉽게 말하면 개돼지처럼 보는데 외교관에겐 그렇게 대우하지는 못한다. 김정은이 아이 때부터 해외서 자라면서 외교관들하고 많이 상대했다. 이 사람들이 말은 안 하고 있지만 인터넷으로 세상을 다 알고 있고, 속으로 자길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안다. 거기다 대고 자기가 지시해 봐야 겉으로 네네 하지만 속으로는 비웃는다는 걸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최선희 외무성 미국국장은 어떤가. 북한 외교관들의 롤모델은 누구인가. “최선희는 최영림 전 총리의 딸인데, 함께 공부한 적이 있다. 엄청 뛰어나다. 김정은이 (북한으로선) 잘한 결정 중 하나는 이용호를 외무상으로 기용한 것이다. 이 외무상은 밑에서부터 순차적으로 쭉 올라왔고, 외국어도 잘하고 필력도 좋다. 북한 외교관의 롤모델 같은 사람이다.” ―기자간담회에서 한국 드라마 얘기를 했는데…. “최근 10년 동안 북한에서 영화 드라마가 안 나온다. 김정은이 아무리 독촉해도 안 된다. 한류가 들어가면서 뼈 빠지게 만들어봐야 주민들이 몰래 보는 한국 영화, 드라마를 이길 수 없으니 작가나 제작진이 아예 포기하는 거지.” ―채널A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서 가장 인상에 남았던 장면은…. “몇 년 전에 난방비 아끼느라 집에서 어린 아기를 업고 솜옷 입고 사는 탈북여성이 방영됐다. 북에서 뜨끈뜨끈한 집에서 불 환하게 켜고 사는 게 소원이었는데 먼저 온 탈북자들이 그렇게 열심히 사는 장면을 보고 ‘어, 그게 아니네. 나도 한국 가서 저렇게 절약하면서 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북한 사람들은 한국 드라마만 보고 한국에선 1층에서 2층 올라가는 계단 있는 집에서 사는 줄 안다.” ―집안일은 잘하나. 경제권은 누구에게 있나. “그건 자신 있다. 북에서 설거지는 안 해도 아침에 일어나 집 청소, 다림질, 쓰레기 버리는 거 다 내가 했다. 경제권도 당연히 아내가 다 갖고 있다. 한국에서 살려면 (아내가 모르는) 비자금이 좀 있어야 한다던데, 이젠 그 비자금을 마련하는 법을 연구해야겠다.” ―통일되면 뭘 하고 싶나. “당연히 평양에 돌아갈 것이다. 건설을 좀 해보고 싶다. 평양은 다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하는데 서울처럼 보란 듯이 건설하고 싶다. 집을 좀 짓고 싶고, 도로 철도 이런 것도 한국 건설사들과 힘을 합쳐 짓고 싶다. 서울부터 단둥까지 고속도로를 쫙 깔면 중국인 관광객들로 꽉 찰 것 같다. 우리 민족이 가만히 앉아서 돈벌 방법이 있을 것 같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 지난해 12월 29일 오랫동안 북한 외교의 최일선에서 활동했던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와의 대담은 북한을 나름대로 잘 안다고 여겼던 기자에게도 매우 신선한 경험이었다. 익숙한 답변이 나오는 듯하다가도 불쑥 새로운 관점들이 튀어나왔다. 가령 태 전 공사가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를 유고슬라비아 사태를 놓고 설명한 것은 이라크나 리비아 사례만 놓고 분석했던 한국의 학계에도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줄 듯했다. 역시 생존을 매일 고민하고 사는 당사자(북한)가 보는 관점은 외부의 짐작과는 크게 달랐다. 그가 설명한 북한 의사 결정 시스템도 북한의 정책을 읽는 데 새로운 시각을 던져줄 것으로 보인다. 》 ―김정은은 10조 달러를 줘도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는데…. “그렇다. 김정은은 핵무장화로 갈 수밖에 없다. 이 세상 모든 독재자들의 심리는 같다고 생각한다. 외부에서 쳐들어오거나 내부에서 반대해 들고일어날 것을 걱정한다. 내부에서 일어나는 것을 막는 것은 전적으로 김정은이 해야 할 영역이다. 하지만 외부에서 들어오는 공격을 막는 것은 쉽지 않다. 미국이 외과수술식 타격을 한다고 하면 막을 수단이 마땅히 없다.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 등 독재 정권들은 내부 반란이 아니라 외부의 군사적 공격으로 허물어졌다. 후세인이 미국에 잡혀 교수형 당하는 것을 보는 김정은의 생각과 일반 사람들의 생각이 같았겠나. 김정은은 후세인을 보며 나도 어느 순간 미국이 저렇게 내 목에 밧줄을 걸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이 당연히 생길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이 과연 북한을 침공할까. “한국에 오니 많은 전문가들이 한미 양국이 북한과 전쟁을 벌이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가령 ‘북한은 자꾸 미국과 한국이 북한을 치려 군사훈련을 한다는데 그건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정당화하려는 논리’라고 한다. 그러나 북한의 시각에서 보면 틀린 말이다. 가령 북한에서 폭동이 일어났다고 가정해보자. 김정은이 군대를 동원해 폭동을 진짜 무자비하게 진압하면 미국과 한국 언론은 어떤 반응일까. ‘동포 몇 만을 밀어 죽이는데 우리가 가만있을 수 있는가’라고 하지 않을까. 여론의 힘은 무섭다. 미국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내전 때 개입하지 않다가 결국 폭격에 나섰다. 김정은은 바로 그런 것이 무서운 것이다. 북한 위기를 진압하는데 여론의 힘에 눌려 미국이나 한국이 혹시 치고 들어오지 않을까라고 걱정하는 것이다. 이럴 때 핵무기가 있으면 절대 못 들어온다는 게 김정은의 생각이다.” ―핵문제는 어떻게 풀었으면 좋겠나. “김정은 체제를 무너뜨리고 통일해야 한다. 21세기에 다시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서도 안 된다.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유일한 방법은 북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몽시켜서 내부 봉기를 일으키는 것뿐이다. 100%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우선 북한 주민의 마음속에서 수령에 대한 신격화라는 기둥을 허물어야 한다. 그러자면 김 씨 일가의 허구성을 대북 전단과 드론 등 각종 수단을 모두 동원해 꾸준히 북한 주민에게 알려야 한다. 둘째는 김정은 주위에 있는 북한 집권층에게 김정은을 버리고 같이 통일을 하는 것이 그들의 미래를 담보해주는 길이라는 걸 뚜렷하게 알려야 한다. 북한 집권층은 정치적 보복에 따른 희생을 두려워한다.”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는 최선이 내부 봉기인가. “암살이나 군사쿠데타는 현재 북한 구조상 거의 불가능하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은 변하고 민심이 변하기 때문에 내부 봉기는 가능하다고 본다. 주민들과 군중을 일으켜 세우는 것은 돈의 위력으로 가능하다.” ―김정은이 개혁 개방할 가능성은 없나. “김정은이 등장했을 때 많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도 김정은이 젊고 해외에서 공부해 세상물정을 아니 달라질 것으로 희망을 가졌다. 하지만 이제야 김정은이 아니라 김여정이나 김정철이 그 자리에 올라갔다 해도 그 길밖에 갈 수 없는 3대 세습의 속성을 알았다. 북한이 발전하려면 시장경제를 해야 하는데, 시장경제의 핵심은 자유다. 자본과 사람의 이동이 자유로워야 하고, 경제인의 결정이 자유로워야 한다. 그런데 북한은 그렇게 하면 주민 통제 시스템이 허물어지고, 외부에서 정보가 들어온다. 김정은이 북한 경제 살리는 방향으로 나갈까 아니면 장기집권으로 나갈까. 그러니 옵션이 없는 것이고 참 안타깝다.” ―김정은의 통치 방식의 핵심은. “정보 차단이다. 북한 사회는 사람들의 사고를 철저히 통제해야 유지되는 사회다. 오직 수령과 당이 말하는 말만 들어가야 그 사람 사고에서 비교 개념도 없어지고 양처럼 된다. 간부들이 볼 수 있는 자료도 등급화돼 있다. 중앙기관 국장급 이상은 ‘자료통신’ ‘참고통신’을 보고. 중앙당은 부장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참고신문’을 본다. 아무리 중앙당 간부라도 외국 정보를 볼 수 없다.” ―영국 핵잠수함 자료를 훔쳐오라는 지시를 이행하지 못해 탈북했다는 얘기도 있는데…. “절반은 맞고 절반은 사실이 아니다. 북한은 해외 공관원들이 나라의 국방력 발전을 위해 해당국 최신 과학기술과 국방기술을 뽑아야 한다고 시킨다. 이걸 ‘융성자료’ 수집이라고 한다. 영국은 핵잠수함과 항공모함을 갖고 있는 몇 안 되는 나라이니 당연히 그게 관심이다. 하지만 얻어내면 표창을 받지만 못 빼왔다고 처벌하진 않는다. 나는 시도하지도 않았다. 영국 MI5(영국 정보청 보안부) 이런 애들이 장난이에요?(웃음)” ―현영철 인민무력부장 처형 같은 소식은 외교 공관에도 알려주나. “전혀 알려주지 않는다.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누구 처형됐냐고 물어보면 내정간섭 하지 말라, 우리가 누굴 죽이든 살리든 너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고 대답한다.” ―북한과 한국 외교의 장단점 뭐라고 생각하나. “비교하기 어렵다. 북한 외교는 여론의 제약을 받지 않는다. 그러니 벼랑끝 전술로 같이 죽자는 심산으로 밀고 나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등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선 국가 정책이 여론에 좌우된다. 외교관 견지에서 보면 한국 외교가 최근 좋아졌다고 본다. 미국과 일본에 편중됐다가 최근 중국, 러시아 사이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듯하다. 대북제재 끌어내고 인권 문제에서 북한을 수세에 몰아넣은 것은 한국 외교가 달성한 아주 큰 성과라고 생각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비행기를 타고 한국에 도착할 때 만세를 부르려고 했는데…. 비행기에서 내리니 기자가 아무도 없더라.” 태영호 전 공사는 지난해 12월 27일 기자간담회에서 만세를 부른 사연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나는 정말 오랜 심리적 고충과 준비를 거쳐 한국에 왔다. 한국 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노예에서 해방된 희열을 만세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마중 나온 관계기관 요원들이 “지금은 만세 부르고 그런 시절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태 전 공사는 “내 심정을 알릴 기회가 사라졌다”고 아쉬웠다며, 그 생각 때문에 공개 기자간담회에서 만세를 불렀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런 모습에 대한 비판을 접하고 놀라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네티즌(누리꾼) 반응을 좀 봤는데, ‘잘 오셨다, 환영한다’는 말보단 ‘누구의 사촉을 받아 왜 이 시점에 기자간담회 하냐, 정부가 만세 부르라고 시켰냐’는 이런 반응들이 눈에 더 많이 들어왔다. 그래서 이것만은 좀 똑바로 밝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이같이 만세를 불렀던 사연을 설명했다. 그는 “아직 한국 실정이나 정서를 몰라서 더 많이 공부해야겠지만, 정말 나의 마음은 만세를 부르고 싶다”고 덧붙였다. 태 전 공사는 해외 공관에서 동아일보와 채널A를 본 소감도 다시 털어놓았다. 그는 “동아일보는 해외에서 인터넷으로 계속 봤는데, 통일정책과 탈북민 정착 관련 글에 신뢰가 있었다”고 말했다. 또 유튜브로 접한 ‘이제 만나러 갑니다’(이만갑)에 관한 에피소드도 전했다. 태 전 공사는 “유튜브에서 ‘북한’이라고 검색해보니 ‘이만갑’의 조회수가 상당히 많더라. 나는 이만갑이 누구 이름인지 한참을 고민했다(웃음). 앞으로 이만갑 출연을 고민해보겠다”고 말했다. 태 전 공사는 “황장엽 선생도 당신처럼 단순하게 생각하고 그러다가 정권의 희생양이 됐다”, “앞으로 당신의 미래가 어떻게 될지 알고, 누구 편에 서서 말하는지 아느냐”고 하는 글도 읽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태 전 공사는 “민족의 생존과 관련된 문제에 좌우를 따지며 정파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 정치엔 관심이 없다고 하지만 정권이 교체될 경우 자신의 활동도 고민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은 1일 신년사에서 “대륙간탄도로케트(미사일) 시험 발사 준비 사업이 마감 단계에 이른 것을 비롯해 국방력 강화를 위한 경이적인 사변들이 다계단으로, 연발적으로 이룩됐다”며 핵·미사일 능력 고도화를 과시했다. 북한이 8일 김정은 생일이나 미국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출범일인 20일 이전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능력을 과시한 뒤 3월 진행될 ‘키리졸브’ 한미 연합 군사연습을 계기로 핵실험을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정은의 육성 신년사는 벌써 5번째다. 그는 이번에도 “미국과 그 추종세력들의 핵 위협과 공갈이 계속되는 한, 그리고 우리의 문전 앞에서 연례적이라는 감투를 쓴 전쟁연습 소동을 걷어치우지 않는 한 핵 무력을 중추로 하는 자위적 국방력과 선제공격 능력을 계속 강화해 나갈 것”이라고 거듭 위협했다. 그러나 김정은은 트럼프 차기 미 행정부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을 피해 눈길을 끌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실장은 “한국에서 새 정부가 출범하면 미국하고만 대화하면서 남한과의 대화는 거부하는 ‘통미배남(通美排南)’ 정책 대신 남한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북-미 관계 개선으로 나아가는 ‘선남후미(先南後美)’ 정책을 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말했다. 그래서인지 김정은은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들어 ‘반통일 사대 매국 세력’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남북 관계 개선’을 여러 차례 강조하고 나섰다. 또 한국의 촛불시위에 대해 “지난해 대중적인 반정부 투쟁이 세차게 일어나 남조선 인민 투쟁사에 뚜렷한 자욱(자국)을 새긴 지난해의 전민항쟁은 파쇼 독재와 반인민적 정책, 사대 매국과 동족 대결을 일삼아 온 보수 당국에 대한 원한과 분노의 폭발”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한편 김정은은 자신의 ‘능력 부족’을 거론하면서 자아비판을 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은 28분간 이어진 신년사 말미에 “언제나 늘 마음뿐이었고 능력이 따라서지 못하는 안타까움과 자책 속에 지난 한 해를 보냈는데 올해에는 더욱 분발하고 전심전력하여 인민을 위해 더 많은 일을 찾아 할 결심을 가다듬게 된다”고 말했다. 또 “한 해를 시작하는 이 자리에 서고 보니 나를 굳게 믿어주고 한마음 한뜻으로 열렬히 지지해주는 세상에서 제일 좋은 우리 인민을 어떻게 하면 신성히, 더 높이 떠받들 수 있겠는가 하는 근심으로 마음이 무거워진다”고도 했다. 지도자가 결점이 없는 절대적 최고 존엄으로 떠받들리는 북한에서 김정은이 직접 자신의 입으로 능력 부족에 대한 안타까움과 자책을 밝힌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김일성, 김정일 시절에는 찾아볼 수 없던 모습이다. 김정은은 또 “나는 전체 인민이 앞날을 낙관하며 ‘세상에 부럼 없어라’의 노래를 부르던 시대가 지나간 역사 속의 순간이 아닌 오늘의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헌신 분투할 것”이라고 했다. 김일성 시대 향수를 다시금 자극하며 ‘애민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려 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집권 5년 차가 됐는데도 경제가 나아지지 않는 것에 대한 주민의 불만을 크게 의식하지 않을 수밖에 없는 시점이 됐다고도 풀이해볼 수 있다. 정리=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김정은 집권 5년 동안 처형된 북한 고위 간부와 일반 주민이 34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당정군 고위 간부 140여 명이 숙청됐고 당 중앙위원회는 54.9%가 충성파 인물들로 교체된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29일 ‘2016년도 정세 평가와 2017년도 전망’ 보고서에서 이같이 밝혔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탈북한 고위급 인사들이 대거 일하고 있어 북한 내부 동향을 그 어느 곳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곳이다. 망명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도 내년 초부터 이곳에서 일할 예정이다. 연구원은 “김정은 정권은 숙청 공포로 인해 외형적으론 안정세를 유지하지만 내구력은 약화되는 추세”라고 분석했다. 또 내년에는 김정은 체제를 지탱해 온 김원홍 국가안전보위상과 최룡해 노동당 부위원장 등 핵심 측근들이 토사구팽돼 ‘제2의 장성택’이 될 가능성도 있다고 예상했다. 김정은이 고위급 인물에 대한 ‘정치 속죄양’식 처형 확대로 권력층에 ‘2인자는 없다’는 경고 메시지를 전파하고 충성 경쟁을 유도할 것이라고 연구원은 보고 있다. 연구원은 “김정은이 경제 회생을 외면하고 29회의 핵·미사일 발사에 3억 달러, 김씨 일족 동상 건립 등 460여 개 우상물 제작에 1억8000만 달러를 쏟아부었다”고 했다. 올해 북한이 4, 5차 핵실험을 통해 최소 증폭 핵분열탄 수준의 핵탄두 개발에 성공했고 이런 핵탄두를 10개 내외 보유하고 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논란이 예상되는 새로운 책을 하나 알게 됐다. ‘김일성평전(상·하편)’. 상편만 700쪽이 넘는다. 저자 유순호는 중국 옌볜에서 나서 자랐고 오래전부터 항일투쟁사에 천착했다. 동북항일연군 군장 조상지의 전기 ‘비운의 장군’(1998년)을 쓴 지 3년 뒤 중국에서 “사회주의 문화시장을 교란한다”는 죄목으로 활동 금지를 당해 미국 뉴욕으로 건너갔다. 이후 조상지의 후임인 허형식 군장의 전기 ‘만주 항일 파르티잔’(2009년)을 출판했고 이번에 김일성평전을 마무리했다. 난 김일성 연구의 한 획을 그은 ‘북한의 지도자 김일성’(서대숙) ‘김일성과 만주항일전쟁’(와다 하루키)은 물론이고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 8권까지를 모두 정독했다. 이 중 유순호의 김일성평전은 과거 모든 김일성 연구서를 뛰어넘는 ‘끝판왕’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저서들이 광복 이전의 기록물 중심인 데 반해 김일성평전은 항일 연고자들의 회고, 중국 공산당의 비밀자료실에 보관된 문헌들과 수백 장의 진귀한 사진 등 과거 김일성 연구자들이 접할 수 없었던 생생한 중국 측 자료들로 채워져 있다. 동북의 항일투쟁사를 논함에 있어서 중국 측 자료의 중요성은 거의 절대적인데 드디어 그 빗장이 풀린 것이다. 저자는 1980년대부터 20년 넘게 관련 자료를 모으고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당시엔 김일성의 상관이던 인물들이 중국에 많이 생존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들이 거의 다 세상을 떠나 더 이상 만나거나 얘기를 들을 수 없다. 김일성평전은 김일성 신화의 거품을 걷어내고 있다. 혁명 모금을 한다며 부자들을 협박하던 10대의 김성주도, 만주에 퍼진 김일성 신화를 이용하려 이름을 개명한 20대의 김성주도 당시 함께했던 이들의 증언으로 밝혀내고 있다. 앞서 만주에서 김일성으로 활동했던 인물들이 누구였는지도 책은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북한이 크게 선전하는 ‘북만원정’도 사형 당할 위기에 처하자 야반도주한 것이며 1938년에 김일성이 일제에 항복하려 했다는 증언도 들어 있다. 저자는 이렇게 말했다. “1920, 30년대 만주는 거대한 항일의 바다였고, 김일성은 작은 실개천이었다. 김일성의 가장 큰 업적은 죽거나 사로잡히지 않고 끝까지 살아남았다는 것이다.” 최후까지 살아남은 김일성은 수많은 항일 선배들의 업적을 가로채 실개천을 바다로 둔갑시켰다. 이런 신화 조작은 지금도 3대 세습의 정당성을 뒷받침하는 데 활용되고 있다. 한 중국인 연고자는 저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김일성이 자기가 하지 않은 일, 남이 한 일도 자기가 한 일이라고 거짓말하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 이것은 도적질과 같은 행위가 아니고 뭐겠는가.” 나는 통일 후 북한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김일성 신화를 벗겨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일은 옛날 반공교육 시대에 만들어진 김일성 가짜설로는 어림도 없다. 김일성과 함께했던 이들의 증언은 빼고, 그냥 ‘카더라’식 위주로 채워진 주장은 북한 역사보관소의 원본 문헌들만 공개돼도 즉시 생명력을 잃을 것이다. 김일성평전은 통일 후엔 북한에서 밀리언셀러가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이 책이 완전무결한 것은 아닐지라도 이보다 더 낫다고 할 수 있는 책은 찾기가 어렵다. 북한은 김일성평전의 출판을 막기 위해 원고를 사겠다는 등 각종 회유를 했고, 사료를 갖고 뉴욕까지 날아와 이것이 사실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저자는 역사는 진실이어야 한다는 신념 아래 원고를 들고 서울로 왔다. 하지만 그가 100여 개의 출판사와 접촉했지만 모두 거절당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에” “보수단체가 고소하면 변호사비로 큰돈을 날릴 것”이란 이유라고 한다. 자비로 우여곡절 끝에 겨우 상편 30부만 찍었지만 이대로라면 이 책은 출판사를 찾지 못해 묻힐 처지다. 이미 1980, 90년대에 김일성의 항일투쟁사를 담은 책들이 출판됐다. 그런데 수십 년이 지난 2016년의 대한민국에 접어든 마당에 김일성 신화를 무너뜨릴 저서가 김일성의 항일활동을 다뤘다는 이유로 외면당하고 있다. 많은 생각이 교차한다. 우리는 진보한 것인가, 퇴보한 것인가. 역사 앞에 정직하게 대할 자세와 준비는 돼 있는 것인가. 북한의 역사 왜곡을 당당히 단죄할 수 있을까. 김일성평전 하나 찍을 아량조차 사라진 곳이 된 것일까. 난 김일성평전은 살아남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때 공산주의자였던 사람이 어떻게 인민을 철저히 배신했는지를 통일 후의 북한 사람들이 다시 배워야 할 것이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 전 주영 북한대사관 공사(사진)는 27일 “김정은은 2017년까지 핵개발을 완성한다는 시간표까지 정해 놓고 위험천만한 핵 질주의 마지막 직선주로에 들어섰다”며 “김정은이 있는 한 북한은 1조, 10조 달러를 준다 해도 절대로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7월 한국으로 망명한 태 전 공사는 이날 정부서울청사 기자간담회에서 “김정은 정권은 곧 핵무기라고 보면 되며 이를 폐기시키는 문제는 인센티브의 질과 양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며 이같이 밝혔다. 태 전 공사는 한국에 입국한 뒤 5개월 만에 처음으로 처음으로 언론에 모습을 보였다. 1997년 4월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노동당 비서가 같은 해 7월 기자회견을 한 이후 약 20년 만의 고위급 탈북민 기자회견이었다. 태 전 공사는 “5월 7차 당 대회 이후 김정은은 한국 대통령 선거, 미국 선거 후 정권 인수 과정인 2016년부터 2017년 말까지를 핵무기 완성의 가장 적기로 판단했다”며 “국내 정치 일정 때문에 미국과 한국이 물리적 군사적 조치를 하지 못할 것이라는 타산(계산)이 깔렸다”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은 새로 집권한 미국, 한국 정부와 핵보유국 지위에서 새로운 대화를 시도할 것”이라며 “미국과 한국 정부가 유지한 선(先)비핵화 도식을 깨고 제재 해제와 한미 군사훈련 중단 등을 내세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태 전 공사는 개성공단에 대해 “북한 주민에게 남한의 실상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며 “하지만 한국 정부가 개성공단을 폐쇄하지 않았으면 다른 나라들이 대북제재를 안 따라왔을 것”이라고 말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27일 기자회견에서 “해외에서 공부한 김정은이 합리적, 이성적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으나, 고모부(장성택 전 노동당 부장)는 물론 측근을 무자비하게 처형하는 행태에 절망했고 민족을 핵 참화에서 구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탈북을 선택했다”고 밝혔다.○ “대북제재, 인권 압박 효과 있다” 태 전 공사는 “북한과 북한 외교 전반을 가장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것은 국제사회의 인권 공세”라며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넘기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만일 김정은이 ICC 재판에 넘겨진다는 소문이 북한 내부에 흘러들어갔다고 생각해 보라”며 “북한의 아이들도 재판에 선다는 것은 범죄자가 끌려간다는 것임을 안다”고 설명했다. 이는 김정은이 범죄자라는 것을 의미하며 김정은 정권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직선적으로 알려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태 전 공사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로 김정은 정권이 상당한 위기에 몰렸다”고 평가했다. 그는 “현재의 대북제재가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는가를 판단할 때 절대로 경제적인 숫자를 가지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태 전 공사는 대북제재가 효과가 있다는 증거로 김정은이 대북제재의 무용론을 보여주기 위해 전 주민과 간부들 앞에서 올해 10월 10일까지 완공하겠다고 호언한 여명거리 건설이 아직 마무리되지 못한 점을 들었다. 그는 “북한은 2017년 말까지 핵개발 목표에 다가서기 위해 대북제재 무용론을 확산시키려고 한다”며 “이를 위해 끊임없는 도발과 핵실험으로 북한에 약(해법)이 없다는 인식을 심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은 각국 외교관들에게 탈북자들이 현지에서 여는 북한 인권 폭로 청문회를 아수라장으로 만들라는 지시를 내렸지만 외교관들이 반발해 결국 지시를 철회했다”고 폭로하기도 했다.○ ‘김정은 체제 명분 잃은 공포선행통치’ 태 전 공사는 김정은 체제는 선대가 유지해 오던 ‘명분’과 ‘정체성’마저 잃어버린, 오직 공포정치와 처형을 통해서만 유지되는 ‘공포선행 통치체제’라고 진단했다. 태 전 공사는 사람이 갖고 있는 공포심을 자극해 절대 먼저 일어나지 못하게 하는 것이 북한의 공포선행통치라고 설명했다. 그는 “과거 김정일 시절만 해도 김일성광장에 행사가 있을 때 양복을 입은 보안요원들이 신분증을 공손히 검사했지만 이제는 군복을 입고 있고 입구 앞에서는 기관총까지 겨누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기관총구 앞을 지나가면 행동을 조심해야겠다고 몸이 움츠러드는데 김정은은 바로 이런 심리를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북한 엘리트층 사이엔 이미 김씨 일가와 운명 공동체라는 인식이 사라졌다는 것이 태 전 공사의 평가다. 그는 “북한은 외부 정보가 유입된다면 스스로 허물어질 수밖에 없다”며 “만약 북한 주민들이 김정은이 김정일의 맏아들이 아니고, 김정일의 여러 여인 가운데 한 명이 낳은 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수령의 신격화는 유지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정은이 생모인 고영희의 이름을 주민에게 공개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차마 자기 어머니가 김정일의 정식 부인이 아니라고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귀순이나 탈북 아닌 항복” 태 전 공사는 기자회견에서 “나는 귀순이나 탈북을 한 게 아니다. 나는 한국 정부에 항복을 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신의 탈북 결정이 남북 외교 대결의 최전선에서 ‘투항’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북한을 거대한 세트장이라고 평가한 그는 “북한 체제에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지만 북에 남겨둔 가족과 일가친척이 연좌제 처벌을 받을까 봐 차마 박차고 오지 못했다. 정작 와 보니 왜 진작 오지 못했을까 후회가 된다”고 말했다. 향후 활동에 대해 “북에 두고 온 가족과 동료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방구석에 앉아서 눈물 흘리고 가슴 쥐어뜯는다고 달라질 것 하나도 없다”며 공개 활동을 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에 앞서 낭독한 성명서에서 “탈북민은 통일되는 순간 가족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노예 해방자라는 명예로운 칭호를 받게 될 것이며 이들이 통일 선봉에 나설 때 김정은 정권의 연좌제는 허물어질 것”이라고 호소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정부는 북한이 내년에 핵탄두 모형을 탑재한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핵 능력 고도화를 지속할 것으로 예상했다. 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을 김일성, 김정일의 반열에 올려놓기 위한 우상화 행사를 열어 정통성을 강조할 것으로 예측했다. 대외적으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대미 관계 개선을 지속적으로 탐색할 것으로 전망했다. 통일부는 26일 발표한 ‘2016년 북한 정세 평가 및 2017년 전망 보고서’에서 이같이 예상하면서 북한이 국내외 상황에 따라 직간접 도발을 선택할 가능성도 높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이 기술적 차원에서 핵 능력을 한 단계 높이기 위해 △무수단·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핵탄두 모형 탑재 미사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전략 도발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북한은 아직까지는 핵탄두 모형을 탑재한 미사일 발사를 시도하지는 않았다. 통일부 당국자는 “북한의 핵실험 또는 핵 투발 수단 발사 시험은 기술적 차원에서 언제든지 가능하다”라며 “대내외 정치 상황을 보면서 시기를 조절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은은 올 3월 북한군 산하 핵무기 연구소를 현지 시찰하면서 핵폭탄 모형이라고 주장하는 커다란 은빛 원형물체와 KN-08 미사일 탑재용으로 추정되는 핵탄두 설계도를 공개한 뒤 핵탄두 소형화 규격화에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북한이 이처럼 핵탄두 모형을 탑재한 미사일 발사 실험을 한다면 핵탄두 실전 배치가 임박했다는 의미이거나, 북한이 그렇게 외부에 비치기를 바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은 물론이고 갓 출범하는 트럼프 행정부에 중대한 정책적 결단을 강요하는 압박 요인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북한은 강화된 핵무기 능력을 과시하면서 한편으론 미국을 향해 대화 가능성을 시사하며 관계 개선을 탐색할 것이라고 통일부는 전망했다. 북한은 또 한국의 정권 교체기를 틈 타 남북 관계 주도권을 쥐기 위한 전방위적 공세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신년사를 통해 현 정부의 대북 정책 전반에 대한 총공세를 펼치는 한편 연초에 ‘전 민족 대회’를 개최한다면서 일부 남측 단체들에 선별적 접촉을 시도해 한국 내부의 갈등을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할 것으로 예측됐다. 내부적으로는 김정은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통일부는 전망했다. 김일성 생일 105돌(4월 15일), 김정일 생일 75돌(2월 16일), 김정숙 생일 100돌(12월 24일) 등 북한이 중요하게 여기는 정(正)주년 명절이 내년에 대거 몰려 있어 이를 계기로 국가 자원을 총동원하는 대대적 우상화 작업을 벌일 것이란 진단이다. 특히 8월 ‘백두산 위인 칭송대회’를 통해 지금까지 김일성, 김정일에게만 붙였던 호칭인 ‘백두산 위인’의 반열에 김정은도 공식으로 올려놓을 것으로 관측된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10대 어린 나이에 인신매매로 중국에 갔던 한 탈북 여성이 ‘제가 팔려간 것도 인권침해 당한 건가요’라고 되물었을 때 정말 가슴이 아팠습니다.” 올해 9월부터 시행된 북한인권법에 따라 설치된 통일부 소속 북한인권기록센터의 A 조사관은 25일 탈북자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를 듣곤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자신이 인신매매를 당한 줄도 모르는 탈북 여성들을 보면서 만약 내가 북에 태어났으면 이들과 다르게 살았을까라는 생각에 나도 모르게 슬퍼진다”고 털어놨다.○ 아픈 기억까지… 북한 인권침해 사례 낱낱이 기록 기록센터는 11월 말 통일부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 입소해 정착교육을 받는 탈북민 전원을 대상으로 북한인권 실태 예비조사를 실시했다. 이를 토대로 내년 1월부터는 본격적인 북한인권 실태 조사에 착수한다. A 조사관이 접한 탈북민의 사연도 이번 예비조사 과정에서 접한 얘기였다. B 조사관은 “탈북 여성들이 처음엔 경계하는 표정이 역력했지만 말문을 튼 뒤엔 점점 편안하게 속내를 터놓는다”며 “조사관이기 이전에 같은 여성으로서 슬픔을 공감해주니 마음을 여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대다수 탈북여성이 자신이 겪은 충격적인 경험을 담담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며 “그들이 하루빨리 과거의 아픈 상처를 치유받고 이 땅에서 밝고 희망찬 삶을 누렸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졌다”고 덧붙였다. 이처럼 아픈 사연을 지닌 탈북민들을 대해야 하는 만큼 이들은 조사관 역할과 탈북민들의 정신적 상처를 치유하는 심리상담사 역할도 동시에 해야 한다. 하지만 아픈 기억을 떠올리며 힘들어하는 탈북 여성을 달래주고 위로하는 일이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다. 한 조사관은 “끔찍한 이야기들을 계속 듣다 보면 조사관 자신도 탈북민의 트라우마(외상후 스트레스장애·PTSD)에 동화될 수밖에 없다”며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라고 고백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록센터는 정기적으로 조사관들이 심리 치료를 받도록 할 예정이다. 기록센터는 국내 입국 탈북민의 약 80%가 여성이라는 점을 고려해 인권 조사관 절대 다수를 여성으로 충원했다. 기록센터에서 만난 조사관 5명은 모두 정부가 임명한 북한 인권 조사의 첫 기록자로 선발된 사실에 크게 고무돼 있었다. 북한이탈주민 관련 업무의 특성상 조사관들의 얼굴과 이름은 비밀이어서 실명을 공개하지 못한다. 이들은 전문가 자문회의를 통해 개발한 140여 문항을 놓고 조사를 진행한다. 조사관 1명이 하루 탈북자 2, 3명을 각각 2시간가량 별도의 방에서 따로 인터뷰를 진행한다. 조사 자체가 북한인권 정책 수립을 위한 실태 파악뿐만 아니라 통일 후 인권 범죄 가담자들에 대한 사법 처리까지 고려한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진술인 경우 녹음을 하며 필요시 본인의 동의를 얻어 진술 영상도 남긴다. 개인별 문답서 작성이 끝나면 본인의 지장을 받아 기록으로서의 공신력도 높인다. 조사관들은 인터뷰가 없는 날엔 조사기법을 교육받고, 작성한 자료를 재정리하는 등 하루 종일 바쁘게 보낸다.○ 북한인권 실태 기록해 인권침해자 압박 이들이 조사한 북한인권 실태 기록은 기록센터에 축적된 뒤 데이터베이스(DB)로 옮겨진다. 기록센터는 DB를 활용해 북한인권 실태를 분석하고, 북한인권 실태 정례보고서 및 사례보고서 발간, 인권 침해 관련 인명기록카드 작성에 나설 예정이다. 축적된 자료는 북한인권법에 따라 출범한 법무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로 3개월마다 한 번씩 이관된다.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탈북자 관련 업무를 10년 이상 해온 C 조사관은 “우리 민족은 유네스코 지정 세계기록유산에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해 13건이나 등재시킨 기록의 민족”이라며 “그런 조상을 가진 우리가 북한 동포가 겪은 인권침해 실상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말했다. 서두현 기록센터장은 “센터가 추구하는 중요한 목적이 북한 주민에게 희망을 주고 존엄성을 찾아주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조사 내용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축적된 자료들을 북한 주민의 인권 증진을 위한 정책수립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는 것과 동시에 북한의 인권침해 실태를 대내외에 적극 알려 인권침해 가담자들을 위축시키는 방안도 찾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D 조사관은 “외부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하는 것이 효과가 있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있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북한이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을 비준한 것처럼 국내외에서 지속적으로 북한의 인권문제를 제기한다면 북한의 행동변화를 유도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북한인권법에 따라 당초 통일부 산하에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북한인권재단이 함께 출범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본격 활동에 나선 기록센터와는 달리 북한인권재단은 북한인권법 제정 100일이 넘도록 문을 열지 못하고 있다. 서 센터장은 “비록 북한인권재단 출범이 지연되고 있지만 기록센터 차원에서는 북한인권법의 취지를 이행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나가겠다”고 밝혔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동해상을 표류하다 한국 해경에 구조된 북한 어부 8명이 19일 북방한계선(NLL) 인근 공해상에서 북한으로 송환됐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오전 9시 50분경 북한 선원 8명과 선박 2척을 해상에서 (북측에) 인계했다”며 “북측은 경비정 2척과 예인선 2척을 NLL에 보내 9시 58분경 예인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정부가 해상에서 구조한 북한 선원을 송환한 것은 지난해 12월 29일 동해에서 구조한 북한 선원 3명을 판문점에서 인도한 이후 약 1년 만이다. 앞서 해경은 11, 12일 이틀간 동해에서 표류하는 북한 선박 3척을 발견하고 선원 8명을 구조했다. 구조된 북한 선박들은 기관 고장 등으로 최대 3개월간 표류했고, 약 10명의 선원들이 굶어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 선박 3척 중 1척은 수리가 불가능해 북한 선원의 동의하에 해상에서 폐기했다. 생존한 북한 선원 8명은 조사 과정에서 모두 북으로 돌아가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북측이 올해 2월 10일 개성공단 전면 가동 중단 결정에 반발해 남북 연락 채널을 모두 단절했기 때문에 정부는 15일 판문점에서 휴대용 확성기로 북한 선원을 송환하겠다고 통보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태영호 전 주(駐)영국 북한대사관 공사(사진)는 “김정은 폭압 공포 통치 아래 노예생활을 하는 북한의 참담한 현실을 인식하면서 체제에 대한 환멸감이 커져 귀순 결심을 굳혔다”고 밝혔다.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은 19일 서울 모처에서 여야 간사와 함께 태 전 공사를 3시간가량 만난 뒤 이같이 전했다. 태 전 공사가 7월 말 한국으로 망명한 지 약 5개월 만의 첫 외부 접촉이다. 국가정보원은 태 전 공사가 23일부터 사회 활동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에 찍히면 일거수일투족 감시 태 전 공사는 “북한에선 직위가 올라갈수록 감시가 심해져서 자택 내 도청이 일상화돼 있다”며 “김정은의 나이가 어려 자신의 자식, 손자 대까지 노예 신세를 면치 못할 수 있다는 절망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리는 간부들도 많다”고 말했다고 이 위원장이 전했다. 태 전 공사는 “현영철 전 인민무력부장이 지난해 5월 총살당한 것도 집에서 했던 이야기가 도청됐기 때문”이라며 북한 공포통치에 동요하는 엘리트들의 실상을 공개했다. 당시 한국에는 현 전 부장이 김정은이 참석한 회의에서 졸았던 것도 하나의 이유로 제시됐지만 또 다른 속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한 고위급 탈북자는 “일단 특정인이 김정은의 눈에 찍히면 은밀하게 조사하라는 지시가 하달되며 이때부터 숙청 구실을 만들기 위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한다”고 설명했다. 태 전 공사는 김정은이 고위급 군 간부나 보위성 간부 등을 특정 아파트에 같이 거주하게 한 뒤 집집마다 도청장치를 설치하는 바람에 간부들은 집에 가서 할 말도 못하고 산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집권 이후 평양에 호화 아파트가 많이 들어서고 입주자들에 대해 “당의 사랑과 배려”를 받았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입주자들의 목을 죄는 올가미인 셈이다. 태 전 공사는 또 “북한 엘리트층은 체제 붕괴 시 자신들의 운명도 끝난다는 생각에 마지못해 충성하는 시늉만 내고 있으며, 주민들도 낮엔 김정은 만세를 외치지만 밤엔 이불을 덮어쓰고 한국 드라마를 보며 동경심을 키워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고 한다. 그는 “북한은 2인자가 없는 시스템이기 때문에 김정은 한 명만 제거하면 무조건 통일이 된다”라고 말하기도 했다고 이 위원장은 밝혔다. ○ 노예의 사슬을 끊는 탈북 “이 순간부터 너희들에게 노예의 사슬을 끊어 주겠다.” 태 전 공사가 귀순 당시 동행한 두 아들에게 했던 말이라고 한다. 그는 “그렇게 말했는데 (한국에) 와 보니 왜 진작 용기를 내서 오지 못했나 하는 아쉬움까지 든다”고 말했다고 이 위원장이 전했다. 이 위원장은 “태 전 공사가 오랜 해외 생활을 통해 한국 영화와 드라마 등을 보며 대한민국의 발전상을 체감했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동경 때문에 오래전 탈북을 결심했다”고 전했다. 북한 당국이 자신의 귀순을 횡령 등 범죄로 규정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태 전 공사는 “(북한의) 모략에 대비해 귀순 전 대사관 내 자금 사용 현황을 정산하고 사진까지 다 촬영해 놓았다”고 치밀한 탈북 준비 과정을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했다. 태 전 공사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개인의 영달이 아닌, 북한 주민들이 억압과 핍박에서 해방되고 민족 소망인 통일을 앞당기는 일에 일생을 바치겠다. 신변 위협을 무릅쓰고라도 대외 공개 활동을 하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그는 “내가 기여하기도 전에 갑자기 통일이 될까 두렵다”는 농담까지 했다고 이 위원장은 전했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석탄을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북한 선박 10여 척이 중국 항구에 입항하지 못한 채 공해 상을 맴돌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북한 근해에서는 평소 포착되던 20여 척의 선박이 일제히 사라졌다고 미국의소리방송(VOA)이 14일 전했다. 북한산 석탄을 수출입하는 항구로 알려진 중국 산둥 성 란샨(嵐山) 항에서 약 20㎞ 떨어진 바다 한 가운데에는 최근 '우리스타'와 '민해', '만정 1', '빅토리 2' 등 북한 선적 혹은 북한 항구만을 오갔던 사실상 북한 선박 4척이 머물고 있다. 선박의 실시간 위치정보를 보여주는 민간 웹사이트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우리스타'와 '빅토리 2' 호는 각각 11일 밤과 12일 새벽부터, '민해'와 '만정 1'호는 13일과 14일부터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다. 이들은 모두 석탄 등 광물을 실을 수 있는 벌크선으로, 지난 몇 년 간 란샨 항처럼 중국 내 많은 양의 석탄이 야적된 항구에 자주 모습을 드러냈다. '마린트래픽' 지도에는 '빅토리 2'호가 한 자리를 수차례 맴도는 형태의 항적이 나타나 있다. 현재 석탄을 적재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선박이 란샨 항을 눈앞에 두고 입항하지 못한 채 길게는 나흘 째 공해 상에 떠있는 것이다, 란샨 항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르자오(日照) 시의 한 항구 앞 약 13㎞ 지점에도 북한 선박 '금송' 호가 14일 새벽부터 머물고 있다. 또 펑라이(蓬萊) 항 앞바다에는 북한 국적의 '남포 9'와 '자모산' 호가 11일 밤부터 멈춰 있는 모습이 관측됐고, 남포항을 출발지로 한 '진롱 1', '태안' 호 등은 또 다른 항구인 시다오 항 앞바다에 각각 12일과 13일부터 포착되고 있다. 이밖에 '장진강', '금송 5', '금산' 호 등도 롄윈강 항과 다이롄 항, 친황다오 항 앞 해상에 이틀에서 사흘째 머물고 있다. 이들 선박은 대부분 같은 자리를 유지하는 바람에 '마린트래픽' 지도상에서는 항적이 한 자리를 수차례 맴도는 복잡하게 꼬인 형태로 나타나 있다. 선박이 항구 입항을 앞두고 하루나 이틀 공해상에 대기하는 경우는 있지만, 이처럼 최소 12척의 북한 선박이 한꺼번에 장시간 머무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마린트래픽'에 따르면 입항을 앞둔 이들 선박들은 란샨 항 앞바다에 있는 선박들과 같은 벌크선으로, 위성지도 확인 결과 목적지가 대부분 검은 물체가 가득 쌓여 있는 중국의 '석탄 취급' 항구들이었다. 이들이 입항하지 못하는 이유는 중국 정부가 최근 유엔 안보리의 새 대북 제재 결의에 따라 11일부터 이달 말까지 북한산 석탄 수입을 일시 중단하는 결정을 내린 것과 무관치 않아 보인다. 북한 선박이 해외 항구 입항을 앞두고 오랜 기간 머물다 본국으로 돌아간 사례는 지난 3월 유엔 안보리가 대북 제재 결의 2270호를 채택한 직후에도 목격된 적이 있다. 당시 안보리는 총 31척의 선박을 제재 명단에 포함시키면서 유엔 회원국 입항을 금지시켰는데, 일부 대상 선박들이 중국과 러시아 바다에 열흘 가까이 떠있다 북한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한편 북한 선박들이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는 건 북한 영해에서도 관측됐다. 안보리 결의 2321호 채택 직전까지 남포 등 북한 항구에는 북한 선박을 포함해 다양한 선박들이 포착됐지만, 현재 북한 항구에는 단 한 척의 선박도 '마린트래픽'의 지도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특히 평소 20여 척의 선박의 신호가 포착됐던 남포 항 역시 깨끗한 상태다. 이는 선박들이 일제히 선박자동식별장치(AIS) 송신기를 껐거나, 석탄 수출길이 막힌 선박들이 운항을 전면 중단하면서 생긴 현상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앞서 2270호 채택 당시에도 제재 선박들은 AIS를 일제히 끈 상태로 운항했다.주성하기자 zsh75@donga.com}

북한이 김정은의 세상이 된 지 17일로 딱 5년이 됐다. 당일 낮 12시 식당에서 음식을 주문하다가 김정일 사망 뉴스를 보고 깜짝 놀라 회사로 뛰어 올라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세월이 참 빠르다. 아버지가 급사한 뒤 TV에 나타난 김정은에겐 자신감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얼굴 표정은 해마다 달라졌다. 지금은 얼굴에 두려움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지나친 자신감이 불러오는 만용과 객기까지 엿보일 정도다. 그런 사례 중 하나가 김정은이 즐기는 전쟁놀이 규모다. 4, 5년 전엔 포사격을 시켜도 한 개 대대나 연대 정도를 끌고 나왔지만, 요새는 최소 몇 개 군단 산하의 수백 문을 멀리 원산의 자기 집 근처까지 끌고 와서 섬을 향해 포탄을 마구 퍼붓는다. 11일에 김정은이 참관한 청와대 습격 훈련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북한이 공개한 사진 속 청와대 모형 3채는 대리석에 청기와까지 얹어 만든 아주 그럴듯한 건물이었다. 크기도 청와대의 절반이라고 한다. 북한의 경제력을 감안할 때 이 정도 건물을 지으려면, 한국으로 치면 빌딩 하나 세우는 셈일 것이다. 그런데 특수전 군인 수십 명이 등장해 마구 총질하고 불을 지르더니 뒤이어 방사포 부대의 무차별 포격으로 순식간에 몽땅 무너뜨렸다. 그걸 보면서 김정은은 크게 웃으며 즐겼다. 적어도 이 놀이에 든 돈을 생각한다면 저렇게 얼굴이 밝을 순 없을 것이다. 그걸 보면서 “5년 뒤엔 서울을 날려 버리는 ‘놀이판’을 벌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지금쯤 김정은은 “5년 해보니 통치 같은 건 별것도 아니다”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며칠 동안 아무 일도 안 하고 별장에 틀어박혀 있어도 찾는 사람도, 궁금해하는 사람도 없다. 가끔 머리도 식힐 겸 시찰을 나가 몇 마디 생각나는 대로 말하면 그럴듯한 ‘교시’로 둔갑돼 인민에게 전달된다. 고위급 간부 중 눈빛이 건방져 보이는 자를 가끔 찍어내 죽이면 할아버지뻘인 수하들은 손으로 입을 막고 무릎을 꿇고 눈도 마주치지 못한다. 뭔 짓을 해도 말릴 사람이 없는 시스템을 세습해준 할아버지, 아버지에게 진심으로 고마울 것이다. 김정일 사망 직후엔 인민의 눈치가 보여 김일성 광장에서 “더는 인민이 허리띠를 조이지 않게 하겠다”라고 연설이라도 했지만 5년을 지나 보낸 지금은 그런 거짓말조차 할 필요조차 못 느끼는 것 같다. 인민의 눈이 두렵다면 아버지 5년째 제삿날을 코앞에 두고 돈 들여 건물을 짓고 포탄으로 날려버린 뒤 좋다고 웃을 순 없는 것이다. 그런 장면을 볼 때마다 참담한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은 외국물을 꽤 먹은 김정은이 집권 후 개혁개방 정책을 펼 것이라고 기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김정은 5년간의 행보는 그와는 정반대였다. 헛된 기대였다. 마치 차디찬 바다에 자식을 수장시킨 부모의 심정을, 부모를 불행히 잃은 대통령이 누구보다 잘 이해할 것이라고 한국인들이 착각했던 것처럼…. 남쪽엔 국민과 담을 쌓고 자기만의 세상에서 살던 대통령을 탄핵할 수 있는 민주주의라는 제도가 존재한다. 하지만 시리아 상황에 비춰 보면 북한과 같은 공포 독재 체제에선 주민 수십만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이 난민으로 떠돌아도 정권이 붕괴될 것으로 자신할 수 없다. 한국은 권력자의 허상에 잠시 속았을지라도 국민의 힘으로 바로잡을 수 있지만, 북한 인민은 김정은 밑에서 거짓된 줄 알면서도 영원히 속은 척하며 사는 수밖에 없다. 그게 바로 체제가 만드는 차이이다. 더구나 김정은은 요새 남쪽 정세를 보면서 “내가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려면 북쪽엔 민주주의의 ‘민’자도 허용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질 것 같다. 한국의 현 상황이 북한에선 공포통치의 고삐를 더 죄는 반면교사가 될 가능성이 큰 것이다. 북한 매체들도 아직 주민에게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됐음을 전하지 않고 있다. 탄핵 전에는 매일같이 “남쪽에서 전 국민이 떨쳐나선 반정부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고 생중계하듯 대대적으로 전했던 것에 비하면 이해하기 어려운 보도 태도다. 인민이 뭉쳐 일어나면 김정은도 내몰 수 있다는 상상 자체를 하지 못하게 하려는 듯하다. 절망적인 북한을 보면 인민의 삶을 전혀 모르는 김정은 옆에 일반인 비선 실세가 좀 있다면 차라리 상황이 좀 나아지지 않았을까 하는 터무니없는 상상마저 해본다. 술에 취해 늙은 군 실세들에게 밤새 반성문을 쓰게 하는 안하무인의 김정은이라면 관저를 드나드는 일반인 비선 실세가 더 망칠 것도 없어 보인다. 농단할 국정도, 파괴할 헌정도 없는 저 북한의 김정은 1인 독재 체제는 순조롭게 5년째를 넘기고 있다. 이런 현실이 언제까지 이어질까. 사랑하는 혈육을 남겨두고 떠나온 고향에 돌아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탈북자들의 가슴에선 매일 피눈물이 흐른다.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