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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는 오히려 회사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확신합니다.” 홍원기 한화호텔앤드리조트(한화H&R) 대표이사(63·사진)는 14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가로수 데이 같은 제도는 회사 쪽에서 보면 오히려 손해가 아닌가” 하는 질문에 손사래를 쳤다. 홍 대표이사는 “우리 회사는 고객들이 만족스러운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업종”이라며 “직원들부터 여가생활을 즐길 수 있어야 고객들에게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직원들에게 저녁 시간을 돌려주기 위해 조기 퇴근 제도를 도입하는 회사가 조금씩 늘고 있긴 하지만 제도 정착이 쉬운 것만은 아니다. 홍 대표이사는 가로수 데이 제도가 빠른 시간 안에 자리를 잡은 이유 중 하나로 ‘최고경영자의 지속적인 의지’를 꼽았다. 홍 대표이사는 “제도 시행 초기 관리자급인 팀장들은 ‘쉴 것 다 쉬고 일은 언제 하느냐’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며 “하지만 지속적으로 일과 여가생활의 균형에 대한 확고한 철학을 보이면서 ‘수요일 5시 칼퇴근’을 끊임없이 강조했다”고 말했다. 제도 시행 초기에 그는 수요일마다 오후 5시가 지나면 사무실을 돌며 남아 있는 직원들이 있는지를 확인했다. 그의 눈에 띄어 혼쭐이 빠지게 꾸중을 들은 직원이 한둘이 아니다. 그는 “다른 날 일을 조금씩 더 하더라도 일주일에 하루만이라도 일찍 퇴근해 여가시간을 가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5시 칼퇴근을 독려했다”고 말했다. 일과 여가생활의 균형과 관련해 홍 대표이사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목표는 가로수 데이를 전 직원을 대상으로 확대하는 것이다. 한화H&R는 서비스 업종의 특성상 사무직보다는 현장에서 일하는 직원이 훨씬 많다. 전체 6500명가량의 직원 중 현장 직원이 약 80%다. 아직 현장 직원들에게까지 가로수 데이와 리프레시 휴가 제도를 실시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것. 홍 대표이사는 “현장 직원들에게도 일과 여가생활의 균형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현장 업무 프로세스를 끊임없이 개선해 나간다면 실현 가능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상수원 상류지역에도 한과 제조공장을 지을 수 있게 된다. 환경부는 10일 “폐수 발생을 포함해 상수원에 미치는 영향이 거의 없는 일부 업종에 한해 상수원 상류지역에 공장 설립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재는 수도법에 따라 상수원 상류지역의 취수장으로부터 7km 이내에는 공장을 세울 수 없다. 수도법상의 공장은 ‘산업집적활성화 및 공장설립에 관한 법률’이 정한 공장 규정을 따르는데 웬만한 제조업 시설은 다 포함된다. 상수원 상류지역 설립 허용이 추진되는 업종은 커피 가공업, 떡·빵류 제조업, 코코아·과자 제조업, 면류 제조업 등 4가지다. 환경부는 5월부터 규제 개선 과제의 하나로 상수원 상류지역 공장 설립 허가를 추진해 왔다. 6월부터 소규모 생계형 공장이 상수원에 미칠 영향에 관한 연구를 시작해 최근까지 사용 원료와 연료, 제조 과정에서의 폐수 발생량 등을 조사했다. 환경부는 26개 업종을 대상으로 한 연구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4개 업종을 우선 허용하기로 했다. 하지만 공장을 짓더라도 면적이 500m²를 넘을 수 없다. 상수원과 제조시설 사이에 확보해야 하는 최소한의 이격거리를 어느 정도로 할지는 전문가 의견을 검토해 결정하기로 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상수원에 미치는 영향에 관계없이 공장 설립이 무조건 금지돼 그동안 민원 제기가 많았다”며 “규제 개선 차원에서 공장 설립을 허용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3일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규제개선장관회의 때 상수원 상류지역에 한과공장을 지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했던 이희숙 씨(57)의 건의도 해결될 것으로 보인다. 이 씨는 상수원 보호구역으로부터 약 20m 떨어진 곳에 공장을 지으려고 했다. 환경부는 4개 업종 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입법예고 등의 절차를 거쳐 11월 말까지 수도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할 계획이다. 한편 환경단체들은 “상수원 보호는 국민의 건강이 걸린 중요한 문제인데 규제 개혁을 앞세워 무리한 결정을 내렸다”며 환경부의 공장 설립 허용을 비판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국정감사 첫날인 7일 여야는 해당 기관에 대한 감사는 뒷전인 채 증인과 참고인 채택을 놓고 설전을 벌여 파행을 빚었다. 세월호 특별법을 놓고 정쟁을 치른 뒤 촉박하게 국감 일정을 잡은 탓에 증인 채택 문제를 사전에 매듭짓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이다.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국감은 오전 10시 반에 시작했다. 그러나 증인 채택을 놓고 야당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이 이어지고 낮 12시 정회가 됐다. 급기야 오후 6시경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들의 ‘정상적 진행 불가’ 선언이 나오면서 밤늦게까지 질의 한 번 하지 못했다. 낮 12시 의원들이 자리를 뜬 국정감사장에는 환경부 공무원과 취재기자 일부만 남아 자리를 지켰지만 정회가 길어지자 환경부 공무원들도 자리를 떴다. 한 환경부 공무원은 “여야가 신경전을 벌이는 증인들은 거의 고용노동부와 관련된 증인들인데 애꿎은 환경부가 피해를 보고 있다”며 “잠도 제대로 못자고 준비한 국감자료들이 아깝다”고 탄식했다. 이에 앞서 의사진행발언에서 새정치연합 은수미 의원은 “환노위가 유례없이 민간 증인을 거의 부르지 못한 채 국감을 하고 있다. 이것이 새누리당의 입장인지 새누리당 간사 권성동 의원의 고집인지 잘 모르겠다”며 “권 의원은 아예 국정감사를 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을 만들었다”고 몰아붙였다. 권 의원이 야당의 기업인 증인 신청을 묵살한 데 대한 항의였다. 권 의원은 “국정감사의 주된 피감기관은 정부 및 공공기관이다. 그와 관련된 민간인은 극히 예외적으로 불러야 한다”며 “국민여론도 기업인에 대한 소환은 자제하자는 것이다. 이건 또 새누리당의 방침이다. 오죽했으면 새정치연합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기업인을 무분별하게 부르는 건 지양해야 된다고 했겠느냐”고 맞받았다. 그러자 정의당 심상정 의원은 “새누리당의 방침이 그렇다면 새누리당만 그렇게 하면 된다”며 “다른 당에까지 강요하면서 의원에게 주어진 권리를 제한하는 것은 의회 민주주의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여야 간사는 오후 6시까지 4차례에 걸쳐 협의를 거쳤지만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다. 양 당은 각각 기자회견을 열고 이날 국정감사 파행의 책임을 상대 당에 돌렸다.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새누리당이 기업인 증인 채택을 막는 건 갑(甲)의 횡포를 방조하는 정당임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새누리당은 “합법적 활동을 한 기업인들에게 모멸감을 주면서 구태 국감을 또 해야 하느냐”고 반박했다. 야당은 환경부와 고용부 감사 관련 민간 증인으로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 등 35명을 요청했다. 이 중 23명이 기업인이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에서 열린 국방위원회 국감도 ‘28사단 윤 일병 폭행 사망 사건’ ‘군 사이버사령부 대선 정치개입 사건’ 등과 관련한 증인 채택 여부를 두고 여야 공방이 격해지면서 1시간가량 공전하다 겨우 진행됐다.이종석 wing@donga.com·정성택 기자}

2014년도 국정감사 첫날인 7일. 국회는 올해도 정쟁과 설전 속에 파행을 반복하는 국감 구태를 탈피하지 못했다. 피감기관은 역대 최대인 672곳이나 되는데도 여야 정치권은 세월호 특별법 협상으로 시간을 허비하면서 ‘부실 국감’ 우려를 자초했다. 12개 상임위원회에서 동시에 시작된 이날 국감에서 여야는 초반 기싸움을 벌이며 곳곳에서 파열음을 냈다. 피감기관에 대한 호통 발언과 지역구 민원 챙기기 등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태도도 여전했다. 환경노동위는 증인 채택을 둘러싼 여야 공방으로 하루 종일 파행을 면치 못했다. 새정치민주연합 등 야당 의원들은 국감 개회가 선언되자마자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해 현대·기아자동차, 삼성그룹 등 기업 총수들의 증인 채택이 불발된 것에 대해 강력 항의했다. 이에 새누리당 간사인 권성동 의원은 “야당이 증인으로 신청한 기업인들 가운데 23명은 노사 분규와 관련됐는데 야당이 민주노총의 2중대처럼 노조를 지나치게 감싸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나마 일부 의원은 30여 분 늦게 왔다. 결국 새정치연합 의원들은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누리당이 과도한 기업 감싸기를 넘어 국회를 무력화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증인 채택을 위한 협상에 전향적인 자세로 나오기 전에는 국정감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환노위 여야 위원들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한 채 헤어져 이날 예정됐던 환경부 국감은 무산됐다. 환경부 국감 일정은 추후 논의하기로 했다. 기획재정위의 한국은행 국감에서는 막말에 가까운 인신공격성 발언이 나왔다. 새정치연합 홍종학 의원은 정해방 금융통화위원에게 기획재정부와 사전에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를 협의한 것이 아니냐는 취지의 질의를 하면서 “한글도 모르느냐” 등의 발언을 해 빈축을 샀다. 국토교통위원회의 한국토지주택공사(LH)에 대한 국감에선 새누리당 송광호 의원이 민원성 발언을 해 논란이 벌어졌다. 철도부품 납품비리에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는 송 의원은 이재영 LH 사장을 향해 “지역구 의원이 사장에게 해당 지역에 아파트를 검토해 보라고 하면 보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사장이 바쁘면 밑에 있는 직원이 보고서라도 제출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호통쳤다.고성호 sungho@donga.com·이종석 기자}

‘설악산 마등령 계곡 밑에서 빈사상태로 발견된 반달(가슴)곰은 급히 달려간 구조대의 노력에도 보람 없이 숨을 거두고 말았다.’ 1983년 5월 23일자 본보 사설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한다. 밀렵꾼이 쏜 총을 4발이나 맞고 달아나다 계곡 아래로 추락해 숨진 반달가슴곰의 죽음을 ‘가슴 아픈 일’이라며 안타까워하는 내용이다. 이후로 국내에서는 20년 가까이 반달가슴곰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과거 한반도 전역에서 서식하던 반달가슴곰이 남한에서는 멸종된 것으로 여겼다. 일제강점기 해수구제(害獸驅除) 정책으로 수천 마리가 포획되고, 광복 후로도 쓸개를 탐낸 밀렵꾼들의 총 앞에 반달가슴곰이 쓰러져 나간 탓이다. 해수구제는 조선총독부가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맹수를 없앤다는 이유로 호랑이 표범 등을 마구 잡아들인 것을 말한다. 31년 전 설악산의 한 계곡 아래서 여섯 살 된 암곰이 얕은 숨을 몰아쉬다 끝내 눈을 감은 이후 한동안 모습을 감췄던 반달가슴곰. ‘야생생물 보호 및 관리에 관한 법률’이 정한 멸종위기종 1급인 이 곰이 지리산에서 복원되고 있다. 2000년과 2002년 지리산에서 야생 반달가슴곰이 한 차례씩 카메라에 잡혔고, 더 늦기 전에 반달가슴곰 되살리기에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면서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종(種)복원기술원은 토종 반달가슴곰과 유전자형이 같은 개체를 러시아 연해주, 중국 동북부 지역, 북한에서 들여와 지리산에 방사하고 있다. 15일이면 반달가슴곰 복원사업이 시작된 지 꼭 10년이 된다. 기술원이 연해주에서 들여와 2004년 10월 15일 지리산에 처음 내보낸 6마리 중 암컷 ‘화엄’이와 수컷 ‘만복’이는 지금까지 잘 지내고 있다. 하지만 복원사업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한 마리는 폐사하고 나머지 세 마리는 야생 적응에 실패해 기술원이 관리하고 있다. 2006년 멸종위기야생생물 복원 종합계획이 마련되면서 역시 멸종위기종 1급인 산양과 여우도 복원이 진행 중이다. 반달가슴곰과 여우는 2020년까지 자체 생존이 가능한 수준인 50마리로 늘리는 것이 목표다. ▼ 여우 같은 곰… 드럼통 속 먹이만 날름 빼먹고 줄행랑 ▼지리산엔 반달가슴곰… 설악산엔 산양“곰을 풀겠다고?” “주민들이 그다지 호의적이지는 않았죠.” 환경부 국립생물자원관의 한상훈 연구관은 “반달가슴곰을 복원하는 것에 대해 지리산 인근 마을 주민들은 썩 내켜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 연구관은 복원사업 초기 국립공원관리공단 반달가슴곰팀장을 맡고 있었다. 지리산에 접해 있는 경남 하동·산청군과 전남 구례군 주민들은 반달가슴곰 복원에 반대하는 반상회를 열기도 했다. 농사짓는 땅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놓는 멧돼지를 상대하는 것만으로도 벅찬데 곰이라니…. 주민들이 듣기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게다가 주민들은 앞발을 손처럼 쓰는 곰과 산속에서 마주치면 멧돼지보다 훨씬 더 위험할 것이라고 여겼다. 주민들은 마뜩잖아 했지만 반달가슴곰 복원은 시작됐다. 그리고 주민들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종복원기술원(기술원)이 반달가슴곰을 방사하는 지역은 해발 1000m 위쪽으로 지리산 국립공원 구역 안이다. 지리산은 700m 등고선을 기준으로 위쪽이 공원구역이다. 하지만 사람이 그어 놓은 이런 기준선을 곰은 알 리가 없었다. 반달가슴곰은 공원구역을 벗어나기도 했다. 산 아래 지역까지 내려가 벌통을 헤집어 놓는 사고를 쳤다. 지리산에는 토종꿀을 생산하는 한봉 농가가 4000곳이 넘는다. 곰은 꿀을 좋아한다. 복원이 시작된 이듬해인 2005년부터 지난해까지 반달가슴곰에 의한 한봉, 양봉 농가 피해는 318건(한봉 270건). 농작물과 기물, 가축 등을 포함한 전체 피해(359건)의 89%나 됐다.초코파이의 유혹 복원사업 초기 지리산에 방사된 곰들은 각자 이름이 있었다. 수컷에게는 주로 지리산 봉우리 이름이, 암컷에게는 계곡 이름이 붙여졌다. 지리산 인근의 사찰 이름이 붙기도 했다. 하지만 곰들은 얼마 못가 이름을 빼앗겼다. 지리산 탐방객들의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닌 대가다. 탐방객들은 새끼 곰들과 마주치면 귀엽다며 이름을 불렀다. 초코파이와 과자를 던져주기도 했다. 복원사업 초기 지리산에는 한두 살 된 어린 곰이 대부분이었다. 방사된 곰에 의한 인명사고 피해를 우려해 태어난 지 1년이 안 된 새끼 곰들만 풀었다. 주민들이 복원사업 자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상황에서 곰이 사람을 해치는 일이라도 벌어지면 복원은 물 건너간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탐방객들이 애완동물 대하듯 하자 야생에 적응해야 할 곰들도 헷갈리기 시작했다. 탐방객 뒤를 졸졸 따라다니면서 먹이가 떨어지기만 기다린 것. 겨울이면 동면굴을 찾는 대신 산속의 농가 지붕 밑에 웅크리고 앉아 있는 곰도 있었다. 기술원은 이런 상황이 야생 곰 복원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했다. 2006년부터는 더이상 곰들에게 이름을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갖고 있던 곰들도 이름 대신 고유 번호로 불렀다. 이때부터 화엄이에게는 RF-05, 만복이에게는 RM-02라는 관리번호가 붙었다. R는 러시아를, F는 암컷, M은 수컷을 뜻한다. 기술원의 이배근 복원기술부장은 탐방객들이 던져 주는 빵과 김밥을 받아먹고 살다 야생성을 잃은 ‘천왕’이를 산 아래로 끌고 내려올 당시를 이렇게 설명했다. “먹을 걸 던져주면 따라 내려왔다. 산 아래로 데리고 올 때까지 김밥 10줄을 던져줬다. 평소에 단 음식을 얼마나 받아먹었는지 이빨의 반 이상이 썩어 있더라. 그때 천왕이는 야생 곰이 아니라 집에서 키우는 개나 마찬가지였다.” 회수 조치된 천왕이는 지금 기술원 내 생태학습장에서 지내고 있다. 동물원 우리에 갇힌 신세와 별반 다를 게 없다.미련 곰탱이? ‘곰 가재 잡듯’ ‘곰 창날 받듯’ ‘곰 설거지하듯’. 표준국어대사전에서 ‘곰’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속담을 찾으면 곰의 행동을 빗댄 것이 대부분이다. ‘곰 가재 잡듯’은 둔한 움직임을, ‘곰 창날 받듯’은 사람됨이 우둔하고 미련해 스스로 자신을 해치는 행위를 빗댄 표현이다. ‘곰 설거지하듯 한다’는 건 아무리 일을 해도 별 보람이 없는 경우를 비유한 말이다. 정말 곰이 미련할까?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들 얘기는 그렇지 않다. 양두하 국립공원관리공단 생태복원부 과장은 “곰의 지능지수(IQ)가 80쯤 된다는 얘기가 있다”며 “반달가슴곰을 보면 실제 그 정도는 되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국내 곰 박사 1호인 양 과장은 2005년부터 6년간 반달가슴곰 복원 현장에서 일했다. 기술원은 위치추적용 발신기를 부착하거나 야생 적응에 실패한 개체를 회수하기 위해 생포 장치를 설치할 때가 있다. 눕혀 놓은 드럼통 안에 반달가슴곰이 좋아하는 포도주나 꿀을 담은 그릇을 넣어두고 유인하는 것이다. 하지만 뒷발은 바깥에 걸친 채 상체만 드럼통 안으로 넣어 유인용 먹이를 날름 빼내가는 곰이 있었다. 몸 전체를 넣으면 갇힌다는 걸 곰이 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기술원은 유인용 먹이를 더 깊숙한 곳에 두기 위해 드럼통 길이를 2배 이상 길게 만들어야 했다. 드럼통 입구의 차단용 문을 미리 망가뜨려 놓고 들어가 안전하게 먹이를 챙기는 곰도 있었다. 반달가슴곰은 누군가가 다가오고 있을 때 달아나야 할지, 자리를 그대로 지키고 있어도 괜찮은지를 알 만큼 눈치도 빠르다고 한다. 꿀통 주위를 어슬렁거리던 곰을 본 집주인이 고함을 아무리 질러도 물러서지 않던 곰이 생포 장비를 갖춘 기술원 직원들이 나타나자 꽁무니를 뺀 적이 있다. 서너 달 가까이 겨울잠을 자야 하는 자신의 동면굴을 노출하지 않기 위해 뒷걸음질로 굴속에 들어갈 만큼 머리 좋은 곰도 있었다. 굴속에 있다 밖으로 나간 것처럼 보이게 하려는 위장술이다. ‘미련 곰탱이’라고 할 때의 그 ‘탱이’와는 관련이 없지만 탱이는 곰이 겨울잠을 자는 곳 중 하나다. 탱이는 나뭇가지나 식물의 잎, 줄기 등을 모아 큰 새둥지 모양으로 만든 것으로 반달가슴곰이 바위굴 다음으로 좋아하는 동면 자리다.“산양이 멸종위기종이었어?” ‘멧돼지보다 많은 걸 왜 복원한다는 거야?’ 산양을 복원한다고 했을 때 설악산 인근 마을 주민들의 반응이 이랬다. 멧돼지보다 많다는 주민들의 얘기는 과장됐지만 산양은 전국적으로 800∼900마리가 있다. 반달가슴곰이나 여우에 비하면 훨씬 많은 수다. 하지만 곰이나 여우에 비해 많다는 것이지 보존 노력 없이 이대로 두면 멸종위기에 놓이는 것은 마찬가지다. 설악산 인근 사찰의 주지 스님이 “절 입구에 산양이 왔다 갔다 하니 와서 데려가라”는 전화를 한 적이 있다. 전화를 받은 기술원 북부복원센터 직원은 “산양은 바위가 많고 높은 산악지대에서 살고 경계심이 많은 동물이라 산 아래로는 웬만해서 내려오지 않는다”며 “혹시 염소를 잘못 본 건 아닌지 한 번 확인해 달라”고 스님에게 부탁했다. “내가 산양하고 염소도 분간 못 하는 줄 아느냐”며 스님은 호통을 쳤다고 한다. 서둘러 달려간 직원이 눈앞에서 확인한 건 염소였다. 이런 스님 같은 분들은 산양이 실제보다 훨씬 더 많다고 느낄 수도 있다. 산양은 멀리서 얼핏 보면 염소와 비슷해 보인다. 어스름할 때는 염소를 보고서 산양을 봤다고 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북부복원센터의 산양 박사 조재운 팀장은 지방의 한 고생대박물관에서 산양을 소개하는 코너에 염소 사진이 걸려 있는 것을 본 적도 있다. 산양 800∼900마리가 있기는 하지만 강원과 경북 북부지역 위쪽으로만 몰려 있다. 비무장지대(DMZ)에 300마리, 설악산에 250마리, 강원 양구·화천에 150마리, 경북 울진·봉화지역에 100마리 정도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많지 않은 개체가 특정 지역에 몰려 살면서 오랜 시간을 보내면 유전적 다양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 곰 같은 여우… ‘요물’ 누명 썼지만 약해빠진 ‘순둥이’ ▼소백산엔 여우주요 먹이인 쥐 사라지자 멸종위기… 사람 마주치면 열에 아홉은 도망가햇볕 잘드는 얕은 구릉지 좋아해… 서식지 주변 무덤많아 ‘구미호’ 오명산양 복원은 반달가슴곰이나 여우처럼 외국에서 개체를 들여오지 않는다. 강원 지역에 몰려 있는 산양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는 형태의 복원이다. 한겨울 설악산에서 폭설에 갇혀 굶주린 산양을 구조하면 이 중 일부를 월악산에 방사하는 식이다. 산양 복원을 맡은 북부복원센터는 2007년부터 3차례에 걸쳐 16마리의 산양을 월악산으로 옮겼다. 이후 개체들의 출산이 이어지면서 지금은 55마리가 월악산에 산다. 이런 식으로 산양 복원 지역을 소백산, 덕유산, 지리산까지 차츰 넓힐 계획이다. 권철환 종복원기술원장은 “산양 복원의 목적은 2030년까지 백두대간을 잇는 생태축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했다.약삭빠른 여우? 약해 빠진 여우! 여우 복원은 기술원이 서울대공원으로부터 기증받은 암수 한 쌍을 2012년 10월 소백산에 방사하면서 시작됐다. 여우 복원 지역이 소백산인 이유는 쥐 때문이다. 기술원은 여우 복원을 시작하기 전 1년간 백두대간을 따라 여우 먹이원 밀도를 조사했다. 그중 쥐가 가장 많은 지역이 소백산이었다. 잡식성인 여우는 식물의 열매, 메뚜기, 개구리 같은 것도 잘 먹지만 주식은 쥐다. 쥐는 국내에서 여우가 멸종위기를 맞은 이유와도 관련이 있다. 제주도와 울릉도를 제외한 국내 전역에 서식하던 토종 붉은여우는 1960, 70년대 쥐잡기 운동이 전국적으로 벌어지면서 개체수가 급감했다. 먹잇감인 쥐가 크게 줄면서 여우도 덩달아 감소한 것이다. 쥐약을 먹고 산에 들에 나뒹구는 쥐를 멋모르고 먹었다가 2차 피해로 눈을 감은 여우도 부지기수다. 2004년 3월 강원 양구에서 여우 사체가 발견되기는 했지만 이후 복원사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국내에서 여우 서식지가 확인된 적은 없다. 소백산에 여우를 복원하겠다고 했을 때 인근 주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소백산과 접해 있는 경북 영주시와 봉화군 주민들은 하필 왜 여우냐는 반응이었다. 여우 복원을 맡고 있는 기술원 중부복원센터의 정철운 센터장은 “교활하고 약삭빠른 이미지에다 사람까지 홀린다는 요물을 왜 복원하느냐”는 질문을 종종 받았다. 하지만 여우는 다 자라도 무게가 5, 6kg밖에 되지 않는 작고 약한 동물이다. 정 센터장은 “여우가 먼저 사람을 공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산속에서 사람과 마주친 여우 열 중 아홉은 뒷걸음질치다가 먼저 달아날 만큼 아주 겁이 많고 소심한 동물”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여우에게 간사한 요물 이미지가 따라붙은 이유를 두 가지로 짐작했다. 우선 여우의 서식지가 주로 무덤 주변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여우는 주로 해가 진 뒤에 돌아다닌다. 어두컴컴한 밤에 무덤가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모습이 사람들 눈에 좋게 비쳤을 리 없다는 얘기다. 여우는 새끼를 낳기 위해 무덤에 굴을 파기도 한다. 여우가 무덤 자체를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여우는 햇볕이 잘 들고 시야가 탁 트인 야트막한 구릉지를 좋아한다. 이런 곳에 무덤이 많다. 정 센터장은 “1970, 80년대 인기가 많았던 TV드라마 ‘전설의 고향’에 나온 꼬리 아홉 개 달린 여우 구미호도 여우가 요망스러운 동물로 비치는 데 꽤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본다”고 했다. 반대했던 주민들, 지금은… 지리산 인근의 하동군 화개면 의신마을에서는 올해 안에 반달가슴곰 생태학습장이 문을 연다. 이 마을은 산림청이 산촌 생태마을로 지정한 곳인데 주민들이 생태마을을 구성하는 핵심 콘텐츠로 반달가슴곰을 택했다. 반달가슴곰을 생태관광 자원으로 활용해 마을 수익으로 연결하겠다는 생각이다. 2013년 12월 생태학습장을 완공했고 지난달 24일에는 기술원과 반달가슴곰 양도양수 협약까지 마쳤다. 기술원의 반달가슴곰 2마리가 곧 이 마을로 온다. 구례농협은 반달가슴곰을 브랜드로 한 쌀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구례군은 또 국내 첫 여성 씨름팀을 창단하면서 팀 이름을 반달곰씨름단으로 지었다. 반달가슴곰은 이제 지리산 ‘깃대종(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생물)’이 됐다. 소백산 인근의 영주시도 여우를 캐릭터로 한 상품 개발을 시작했다. 의신 생태마을 법인 정봉선 사무국장은 “산에 나물 캐러 갔다가 곰을 만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겁이 나고 하니까 처음에는 복원에 반대하는 분이 꽤 있었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기술원이 주민 피해 방지와 보상에 신경을 많이 썼기 때문이다. 기술원은 한봉 농가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꿀통 주변에 전기 펜스를 설치했다. 복원사업 초기 한 해 50∼100건씩이던 꿀통 피해가 최근 3년 사이에는 10건 안팎으로 줄었다. 반달가슴곰에 의한 피해 보상을 위해 10년간 보험료로만 10억 원이 넘는 돈을 썼다. 기술원 관계자들이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멸종위기종 복원을 시작해 지금까지 몇 마리나 늘었느냐’는 것. 반달가슴곰은 10년간 모두 38마리를 들여왔다. 새끼 23마리가 태어났다. 9마리는 자연사했고 17마리는 올무나 농약 사고 등으로 폐사해 지금은 모두 44마리다. 이 중 31마리가 지리산에서 야생 상태로 살고 있다. 나머지는 기술원이 야생적응훈련장이나 증식시설에서 돌보고 있다. 여우는 지난달 15일 중국 동북부지역에서 들여온 여우 9마리를 방사한 것을 포함해 지금까지 3번에 걸쳐 모두 17마리를 풀었다. 이 중 네 마리는 죽었다. 한 마리는 덫에 다리가 잘려 회수됐다. 소백산에는 지금 12마리의 여우가 산다. ‘그러면 돈은 얼마나 썼느냐’는 질문이 빠지지 않고 뒤따른다. 반달가슴곰 복원에 10년간 약 140억 원, 여우는 3년간 10억 원, 산양은 8년간 22억 원의 예산이 쓰였다. 여기까지 설명하면 십중팔구는 “헛돈 썼네…” 하고 결론을 낸다. 답답한 소리다. “사람들이 해를 끼치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돈 들여가면서 복원할 일도 없었겠죠.” 기술원의 정동혁 야생동물의료센터장은 “가만히 뒀으면 다들 잘 살았을 애들인데…”라고 했다. 반달가슴곰은 자연 상태에서 1년 이상 생존율이 원래 40% 정도밖에 안된다. 게다가 지리산 반달가슴곰은 인근 지역 주민이나 탐방객의 피해를 우려해 생후 1년이 안된 새끼 곰들만 골라 어미 없이 방사했기 때문에 생존율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여우는 1년 이상 생존율이 20% 정도다. 이배근 복원기술부장은 돈을 들여서라도 멸종위기종을 복원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헛개나무 열매 종자는 발아율이 떨어지지만 곰의 배설과정을 거쳐 나오면 발아율이 높아진다. 우리가 건강한 숲으로부터 여러 가지 생태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건 ‘숲 속의 농부’ 역할을 하는 이런 동물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지리·소백·설악산=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3개 도(경남 전남 전북)에 걸쳐 있는 지리산은 국립공원 지역으로 설정된 면적만 483km². 국내 21개 국립공원 중 다도해해상국립공원(2226km²)과 한려해상국립공원(535km²) 다음으로 넓다. 육상 국립공원 중에서는 제일 넓다. 종복원기술원(기술원)은 여의도 면적의 160배가 넘는 지리산에서 31마리뿐인 반달가슴곰을 어떻게 추적하고 관찰할까. 반달가슴곰의 이동 경로와 행동권, 겨울잠을 자는 장소, 올무나 덫에 걸린 개체 확인 등을 위해 추적과 관찰이 필요하다.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을 활용하면 간단히 해결될 것 같지만 사정은 그렇지 않다. 반달가슴곰이 주로 서식하는 지리산 해발 900∼1000m 지역은 나무가 우거지고 골짜기도 많아 GPS의 수신율이 평지에 비해 떨어진다. 이 때문에 비싼 GPS기기 값에 걸맞은 성능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곰에게 채우는 GPS기기 한 대 값은 400만 원가량이다. 덩치가 작은 어린 곰에게는 이 GPS기기를 달지 못한다는 문제도 있다. 곰에게 다는 GPS기기는 목걸이 형태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곰의 목에 기기를 채우면 몸집이 자라면서 목이 졸리는 문제가 생긴다. 실제 복원사업 초기에는 이런 문제를 예상하지 못해 시행착오를 겪기도 했다. GPS기기는 웬만큼 다 자란 네다섯 살 이상의 곰에게 채운다. 31마리 중 GPS기기를 달고 있는 곰은 많지 않다. 이런 사정 때문에 GPS보다는 주파수 발신기가 더 많이 활용된다. 기술원은 곰마다 고유 주파수를 부여한 발신기를 곰의 귀에 부착해 위치를 추적한다. 발신기는 생후 9, 10개월이 지나 몸무게가 15kg 정도 되는 어린 곰에게도 달 수 있다. 주파수 발신기를 이용한 추적은 GPS와 달리 사람이 직접 산속을 돌아다녀야 하는 수고가 따르지만 어쩔 수 없다. 기술원은 2인 1조로 짝을 이룬 3∼5개 추적팀이 거의 매일 안테나와 주파수 수신기를 들고 산속으로 들어간다. 2인 1조인 이유는 서로 다른 지점에서 신호를 붙잡은 두 안테나의 끝이 가리키는 직선 방향을 따라가야 교차 지점에서 곰의 위치를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추적팀원들은 험한 산길을 하루에 10km가량 걷는다. 매일 곰을 쫓아다니면서 추적 노하우를 쌓은 기술원 추적팀은 2010년 서울대공원 우리를 탈출했던 말레이곰 ‘꼬마’를 붙잡을 때 실력을 발휘했다. SOS 요청을 받은 추적팀은 “곰을 자극하면 붙잡기가 더 어려워진다”면서 현장에 투입돼 있던 수백 명의 수색대원과 헬기, 수색견을 모두 물러나게 한 뒤 꼬마가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 곳에 포획틀을 설치해 붙잡았다. 기술원은 지난해부터 무인카메라(77곳)와 모근 수집용 헤어트랩(22곳)을 설치해 간접 추적도 병행하고 있다. 야생에서 적응력을 키운 곰들의 서식영역이 점점 넓어지면서 주파수 발신기를 활용한 추적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제12차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총회가 29일부터 10월 17일까지 강원 평창에서 열린다. CBD는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정상회의에서 채택돼 이듬해 발효됐다. 기후변화협약, 사막방지화협약과 함께 세계 3대 환경협약 중 하나인 CBD는 194개국이 당사국으로 가입돼 있다. 이번 총회에는 170여 개국의 대표단과 국제기구, 환경단체, 산업계 관계자 등 역대 최대 규모인 2만여 명이 참가한다. CBD 당사국총회는 2년에 한 번 열리는 행사다. 이번 총회에서 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은 박근혜 대통령이 24일 유엔총회 연설 때 언급한 비무장지대(DMZ) 내 세계평화공원 조성과 관련 있는 세부 프로그램들이다. 박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단절의 상징인 DMZ에 세계생태평화공원을 건설해 남북으로 갈라져 있는 한반도의 자연과 사람을 하나로 연결하는 출발점으로 삼고자 한다”고 말했다. 10월 15, 16일로 예정된 고위급회의에서는 DMZ의 생물다양성 보전을 통해 남북 및 세계평화에 기여할 방안을 찾는 데 각국의 장관급 대표들이 머리를 맞댄다. 고위급회의에서는 수십 년간 영토분쟁을 벌였던 에콰도르와 페루가 콘도르 산맥에 평화공원을 만든 것을 포함해 접경지역의 평화공원 건립 사례들이 소개된다. 10월 8일에는 ‘DMZ 생물다양성 보전 및 동북아시아 지역협력 방안’을 주제로 한 국제심포지엄도 연다. 2010년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 당사국총회에서 채택된 ‘아이치 타깃20’을 중간 점검하고,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으로 ‘평창 로드맵’을 제시하는 것도 이번 총회의 주요 의제다. 아이치 타깃20은 생태계 복원과 멸종위기종 관리 등 2020년까지 CBD 당사국들이 달성해야 할 20가지 목표를 정해 놓은 것이다. 평창 로드맵에는 아이치 타깃20 실현을 위해 필요한 재원 마련과 과학기술협력 방안 등이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총회는 세계 3대 환경협약회의인 만큼 친환경적인 행사로 치러진다. 환경부의 CBD 당사국총회 준비기획단은 이번 행사에 필요한 7개 동 14개 회의장 전부를 재활용이 가능한 대형 텐트로 지었다. 행사장 내에서는 페인트와 폴리염화비닐 사용도 최소화했다. 기획단은 또 종이 낭비를 막기 위해 문서 출력량 관리제를 도입해 회의 참가자가 같은 자료를 2번 이상 출력할 수 없도록 하고, 행사 관련 안내도 종이가 아닌 모바일앱과 대형 스크린을 활용하기로 했다. 총회 기간에는 나고야의정서 발효에 맞춰 이 의정서 당사국들의 회의가 처음으로 열린다. 총회 기간인 10월 12일 발효되는 나고야의정서는 식물, 동물, 미생물 등 다른 나라의 생물 유전자원을 활용해 얻은 이익을 유전자원 제공국과 나누도록 의무화한 것이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환경부 국립공원관리공단 종(種)복원기술원은 15일 암컷 새끼 여우 2마리를 포함해 모두 9마리의 여우를 소백산국립공원에 방사했다고 밝혔다. 새끼 여우 2마리를 뺀 나머지 7마리는 2012, 2013년 중국 동북부지역에서 들여온 세 살 이하의 개체들로, 국내에서 1980년 이후 모습을 감춘 토종 여우와 유전자형이 같다. 국내 전역에 분포했던 토종 여우는 1960년대 쥐잡기 운동으로 먹이가 급감하고, 서식지가 난개발되면서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 여우(멸종위기종 1급) 복원사업을 벌이고 있는 종복원기술원의 여우 방사는 2012년과 2013년에 이어 이번이 3번째다. 종복원기술원은 “이번 방사는 가족 단위의 첫 방사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종복원기술원은 새끼 여우 2마리가 엄마, 아빠 여우와 함께 방사됐기 때문에 야생에서의 생존율이 높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자연에 홀로 방사된 새끼 여우는 생존율이 20%가 채 안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2년에 처음 방사된 한 쌍의 여우 중 암컷은 죽은 채 발견됐고, 수컷은 밀렵꾼이 놓은 덫에 다리가 잘려 종복원기술원이 사육장에서 기르고 있다. 지난해 방사된 6마리 중에서는 이미 3마리가 죽었다. 종복원기술원은 2020년까지 소백산 여우 개체 수를 자체 생존이 가능한 수준인 50마리까지로 늘릴 계획이다. 김종률 환경부 생물다양성과장은 “멸종위기종인 여우 복원사업이 성공적으로 뿌리를 내린다면 백두대간을 포함한 한반도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확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정부가 내년 1월 1일부터 시행하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의 1차 계획기간(2015∼2017년) 배출허용 총량과 23개 업종별 배출 할당량을 확정했다.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는 정부가 기업마다 배출량을 할당한 뒤 이를 초과하는 기업은 과징금을 물거나 할당량에 여유가 있는 기업으로부터 배출권을 사서 쓰도록 하는 제도다. 환경부는 “국무회의에서 1차 계획기간의 배출 총량을 16억8654만9412t으로 정했다”고 11일 밝혔다. 이는 정부가 6월 공청회를 통해 제시했던 배출량(16억4313만8271t)보다 4300만 t가량 늘어난 것이다. 업종별로는 발전·에너지 부문에 가장 많은 7억3585만2571t, 철강 부문에 3억576만4349t, 석유화학 부문에 1억4369만7914t이 할당됐다. 배출량이 당초 계획보다 늘면서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2020년 로드맵’ 달성은 힘들어졌다. 당초 정부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 전망치(7억7600만 t)의 30%를 줄이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었다. 정부는 1차 계획기간 배출 허용량 중 15억9772만7748t은 제도 시행 전에 기업들에 할당하고 나머지 8882만1664t은 예비분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예비분은 배출권 거래 가격이 급등할 경우 배출권 물량을 풀어 시장가격을 안정화하기 위한 것이다. 환경부는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포스코 등 할당 대상으로 지정된 526개 기업을 12일 고시한다. 이번에 지정된 곳들은 2011∼2013년 연평균 온실가스 배출량이 12만5000t 이상인 기업이거나 2만5000t 이상인 사업장으로,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약 66%를 차지한다. 이들 기업이 15일부터 10월 14일까지 한 달간 할당신청서를 제출하면 환경부는 할당 지침을 바탕으로 기업별 할당량을 산정해 11월쯤 통보할 예정이다. 산업계는 배출 허용량이 늘기는 했지만 여전히 재정적 부담은 불가피하다고 호소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정부 확정안에 비해 산업계가 3년간 추가로 필요해 보이는 배출량이 2억2000만 t 정도로 추산된다”며 “에너지 소비량이 많은 철강과 디스플레이, 반도체 업종은 큰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세종=이종석 wing@donga.com·강유현 기자}
“그게 정말 희망의 사다리가 될까요?” 대학교 3학년인 이상석(가명) 씨는 “그런 장학금이 있다는 건 몰랐다. 있다고 해도 신청할 생각은 없다”고 했다. 정부가 중소기업의 구인난을 덜어주고, 대학생들은 등록금 부담 없이 학교를 다닐 수 있게 한다는 일석이조의 취지로 만든 ‘희망사다리 장학금’을 두고 한 얘기다. 희망사다리 장학금은 중소기업에 취업하겠다는 대학 3, 4학년 학생들에게 남은 학기의 등록금을 지원한다. 장학금 혜택을 받은 기간(한 한기를 6개월로 계산)만큼은 중소기업에서 일해야 한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의 실태조사 결과 이 장학금에 대해 알고 있는 대학생은 865명 중 13.1%에 그쳤다. 수도권 대학생(347명) 중 “경우에 따라 희망사다리 장학금을 이용할 생각이 있다”고 한 사람도 19.5%에 그쳤다. 졸업 후에도 계속 구직 상태라면 모를까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를 감안할 때 재학 중에 중소기업 취업을 결심하는 건 내키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임금 격차는 갈수록 커져 2008년 179만 원이던 평균 월급 차이가 지난해에는 244만 원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어려운 처지의 대학생들을 돕기 위해 각종 지원 제도를 마련하고 있지만 정작 당사자인 대학생들의 반응은 싸늘하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의 실태조사에서 공공기관 청년고용 할당제와 글로벌 스펙초월지원 시스템을 안다고 한 대학생은 각각 15.1%와 2.5%에 그쳤다. 글로벌 스펙초월지원 시스템은 정부가 청년들의 해외 취업을 돕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청년창업 지원 제도도 다시 짚어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년창업을 돕기 위한 지원 프로그램은 200개가 넘는다. 중소기업청이 지정하는 창업선도대학도 전국에 15개나 있고 2017년이면 40개까지 늘어난다. 교육부 권고로 창업휴학제를 도입한 대학은 지난해 17곳에서 올해 80곳으로 늘었다. 창업을 준비하는 학생이 원하면 연속 4학기까지 휴학할 수 있는 제도다. 유홍준 성균관대 교수(사회학)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공공 창업교육 기관에서 창업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비율은 1.4%에 불과하다. 또 청년창업가의 절반가량이 교육서비스업으로 진출하는데 이들의 월평균 소득도 60만 원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창업을 준비하는 기간도 12.3주로 석 달이 채 되지 않아 충분한 준비 없이 창업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 문유진 운영위원장(23)은 “청년창업의 내용을 보면 기업가형이라기보다는 ‘취업이 안 되니 창업이라도 해보자’는 식의 생계형인 경우가 많다”며 “우리 사회는 실패의 경험을 높이 평가해 주는 분위기도 아니기 때문에 경험 없는 학생들에게 창업을 권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열심히 살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의 눈에 비친 우리 대학생의 모습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수업이 끝나면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 그렇다고 학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비싼 등록금에 주거비까지 해결하려면 대출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 보니 한국 대학생 4명 중 1명은 빚을 지고 공부를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빚을 져야 하는 이 땅의 청춘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을까. 그 대안을 살펴봤다.}

《 ‘열심히 살지만 행복해 보이지는 않는다.’ 한국에 와 있는 외국인 유학생의 눈에 비친 우리 대학생의 모습이다. 등록금을 벌기 위해 수업이 끝나면 밤늦도록 아르바이트를 할 수밖에 없는 대학생들. 그렇다고 학비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비싼 등록금에 주거비까지 해결하려면 대출 외에는 방법이 없다. 그렇다 보니 한국 대학생 4명 중 1명은 빚을 지고 공부를 한다.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기도 전에 빚을 져야 하는 이 땅의 청춘들. 어떻게 하면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 줄 수 있을까. 그 대안을 살펴봤다. 》 사업자금을 빌린 건 아니다. 보증을 잘못 선 것도 아니다. 돈을 흥청망청 쓴 적도 없다. 공부만 하는 대학생이다. 그런데도 빚이 많다. 최근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가 전국의 21개 대학 재학생 865명을 대상으로 ‘한국 대학생의 삶과 사회인식’을 조사한 결과 “빚이 있다”고 답한 학생이 4명 중 1명꼴인 25.8%였다. 학생들의 평균 빚은 642만 원.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대부분이 최저임금(2014년 기준 시간당 5210원)을 받는 사정을 감안하면 하루 4시간씩 일해 한 푼도 쓰지 않고 1년 가까이 모아야 갚을 수 있는 돈이다. 대학생들이 왜 빚을 지고 살까. 여대생 강현주 씨(22·단국대 3학년)에게는 비가 오는 날이 더 좋다. 눈비가 오는 날에는 배달을 한 번 나갈 때마다 수당으로 500원을 받는다. 맑은 날보다 100원이 더 많다. 강 씨는 경기 용인에 있는 학교 앞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시급에 더해 배달 수당을 따로 받을 수 있어 매장 내 아르바이트보다는 오토바이를 타기로 했다. 오후 6시부터 밤 12시까지, 1주일에 5일을 일하고 90만 원가량을 번다. 시급은 최저임금에 가까운 5300원을 받는다. 이렇게 번 돈으로 월세를 낸다. 나머지는 책값과 휴대전화 요금, 식비 등으로 쓴다. 월세 60만 원인 원룸에서 친구와 함께 사는 강 씨는 방값을 반씩 내고 있다. 입학 후 첫 학기에는 6개월에 70만 원인 4인 1실 기숙사에서 지냈지만 1학년 2학기 때 기숙사 추첨에서 떨어져 월세로 옮겨야 했다. 한 학기 400만 원인 등록금은 부모님이 대주고 있어 다행히 지금까지는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됐다. 강 씨는 전남 순천에서 고교를 졸업했다. 형편이 넉넉지 못한 부모님은 딸이 집에서 대학을 다니기를 원했다. 순천에도 대학은 있다. 집안 사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강 씨는 수도권 대학을 택했다. “취업 때문이죠. 서울이나 수도권 대학이 지방대보다는 아무래도 유리할 걸로 생각했어요. 기업들이 그런 걸 많이 따지니까요.” 이런 생각을 강 씨만 하는 건 아니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지난달 취업준비생 435명에게 “기업이 채용할 때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볼 것 같으냐”고 물었더니 “학벌(출신대학과 학력)”이라는 대답이 21.4%로 가장 많았다. 업무능력(18.5%)이나 경험(16.1%) 인성(15.9%)보다 학벌이 취업에 더 도움이 될 것으로 여기는 것이다. 부산에서 고교를 다닌 김태우 씨(23)도 비슷한 생각으로 수도권인 경기 성남의 가천대에 진학했다. 소프트웨어설계경영학과 졸업반인 김 씨는 “취업은 말할 것도 없고 공모전 참가와 같은 스펙을 쌓기에도 수도권이 유리하다”고 했다. 아무 연고가 없는 곳으로 왔으니 김 씨 역시 주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입학 후 줄곧 학교 기숙사에서 지내던 김 씨는 지난해 7월 월세 45만 원인 원룸으로 옮겼다. 작년 6월에 휴학하면서 기숙사에서 지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휴학을 한 건 돈을 벌기 위해서다. 한 학기 470만 원인 등록금을 감당하기 힘들어 대출을 받으면서 1800만 원의 빚이 생겼다. 휴학 후 1년간 번 돈으로 대출금의 일부를 갚고 올 2학기 등록금을 마련했다. 부모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하는 대학생이라면 사정은 대체로 김 씨와 비슷할 수밖에 없다. 복지국가청년네트워크의 조사에 따르면 대학생의 60%가 1주일에 최소 3일 이상 아르바이트를 한다. 주말도 없이 1주일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도 6.4%나 됐다. 사정이 이러니 학업에도 영향을 받는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대학생의 77%가 “학교 공부에 지장을 받고 있다”고 답했다. 성남에 있는 특성화고교를 졸업한 여대생 정민주(가명·23) 씨도 일찌감치 고1 때부터 ‘어떻게든 서울 소재 대학에 가겠다’고 결심한 경우다. 역시 취업 때문이다. 비슷한 수준의 대학이라도 수도권보다는 서울에 있는 대학이 아무래도 나을 것으로 여겼다. 명지대 3학년인 정 씨는 “성남에도 대학이 있지만 어떻게든 서울에 있는 대학을 다니고 싶었다”며 “학과보다는 대학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정 씨는 입학 후 1년은 성남에서 학교가 있는 서울 서대문구까지 통학했지만 지금은 학교 근처에 월세를 얻어 산다. 왔다 갔다 3시간 넘게 걸리는 통학에 지쳐서다. 월세를 해결하기 위해 주말에는 편의점과 카페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한다.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60만 원가량을 벌어 이 중 47만 원을 집세로 내고 나면 남는 건 13만 원뿐. 등록금과 턱없이 모자란 생활비를 충당하려면 대출 말고는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1500만 원의 빚을 지고 있다. 학비 마련 부담(34.5%), 취업 걱정(28.4%), 생활비 마련 부담(24.3%). ‘대학 생활이 불행하다’고 말한 학생들이 꼽은 불행한 이유 상위 3가지다. 신광영 중앙대 교수(사회학)는 “사회 진출을 앞둔 청년들의 문제가 장기화되면 결국에는 사회 전체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양소리 인턴기자 숙명여대 언론정보학부 졸업}

정부는 2일 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를 내년부터 시행하기로 결정하면서 온실가스 감축량을 완화하는 등 보완대책을 내놨다. 환경규제에 따른 기업들의 부담을 낮추면서도 ‘녹생성장 선도국’으로서 그동안 국제사회에 내놨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유럽을 중심으로 각국이 환경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만큼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계속 늦추기 어렵다는 현실론과 기업들이 친환경 기술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배출권거래제 시행의 배경이 됐다. 하지만 정부의 보완대책에도 불구하고 산업계의 우려는 여전히 높다. 특히 탄소배출량이 많은 철강,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기업들은 최대 수조 원의 비용 부담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하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거래제 연기하면 국제신인도 하락 우려 정부는 그동안 배출권거래제 시행시기 연기를 놓고 고심을 거듭해 왔다. 기업들의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이다. 특히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취임한 뒤 시행시기 연기가 본격적으로 검토됐다. 최 부총리는 취임 직후인 7월 17일 배출권거래제에 대해 “(여건이) 어렵다고 판단되면 관련 입법을 보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배출권거래제를 예정대로 시행하기로 한 것은 제도 도입을 연기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행시기를 연기하려면 ‘온실가스 배출권 할당 및 거래에 관한 법’(배출권거래법)을 개정해야 하지만 현실적으로 국회의 문턱을 넘어서기 힘들 것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국제신인도 하락 우려도 제도 강행의 이유가 됐다. 정부는 배출권거래제 등을 통해 2020년까지 온실가스를 배출량 전망치(BAU) 대비 30% 줄이겠다고 선언해 2012년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을 인천 송도에 유치했다. 이런 상황에서 배출권거래제 시행을 연기하면 국제적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과 함께 1000억 달러의 GCF 사무국 운영기금 마련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그 대신 정부는 업종별로 배정된 온실가스 감축량을 10%씩 완화해 주기로 했다. 그만큼 기업들의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이 늘어나 온실가스 배출권 구입에 들어가는 비용이 낮아진다. 또 그동안 기업들이 요구해온 2015∼2020년 온실가스 BAU 재산정도 2020년 이후 전망치를 계산하면서 재검토하는 방식으로 수용하기로 했다. BAU는 배출량 허용치 산정의 기준으로 BAU가 낮아지면 기업들의 부담도 그만큼 줄어든다. 정부 관계자는 “배출권거래제 도입 시 온실가스 감축 신기술 개발이 촉진될 수 있는 데다 관련 분야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기업 부담 최대 8조5500억 원 기업들은 배출권거래제가 시행되면 산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의 보완대책 역시 기업들의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는 반응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온실가스 감축량을 10% 줄여주겠다고 했지만 올 5월 환경부가 발표한 할당계획에 이미 적용돼 있던 것”이라며 “산업계로선 달라진 게 전혀 없다”고 말했다. 온실가스 t당 배출권 기준가격을 1만 원으로 유지하겠다는 계획도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설령 시장가격이 1만 원 선에서 유지돼도 1차 계획기간 3년간 국내 산업계가 부담해야 할 비용은 조 단위에 이를 것으로 기업들은 보고 있다. 올 6월 전경련 등 6개 경제단체와 철강협회 등 18개 주요 업종별 단체가 발표한 산업계 부담액을 정부가 제시한 배출권 거래 기준가격인 1만 원을 기준으로 환산해 보면 산업계의 배출권 구입비용은 약 3조 원, 과징금은 최대 8조55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기업들로서는 당장 4개월 뒤 시행될 배출권거래제에 대응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석유화학업계 관계자는 “규정대로라면 시행 6개월 전에 할당계획을 고시했어야 하는데 아직도 아무 얘기가 없다”며 “수치가 없으니 비용 시뮬레이션 자체를 못 하고, 경영 계획에 반영도 못 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정부 관계자도 “이달 최대한 빨리 할당위원회를 열고 할당계획을 수립할 방침이지만 이미 법이 정한 규정보다 한참 늦어진 건 사실”이라며 “기업 입장에서 가장 민감한 기업별 할당량은 빨라야 11월에나 나올 것 같다”고 말했다. 정부가 배출권거래제를 예정대로 시행하더라도 한국이 당초 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 달성은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환경부는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7억7610만 t에서 5억4300만 t으로 줄인다는 목표를 세운 바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원안보다 온실가스 감축량을 10% 낮춰준 데다 저탄소차협력금제도 시행 시기도 2020년 말로 미뤘기 때문에 목표 달성은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온실가스 배출권거래제 ::정부가 기업마다 온실가스 배출 허용량을 정해주고 이를 초과한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권을 구입하도록 하는 제도다. 배출권을 구입하지 않고 허용량을 초과해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과징금이 부과된다. 허용량보다 배출량이 적은 기업은 남은 배출권을 팔 수 있다.임우선 imsun@donga.com / 세종=문병기이종석 기자}

2년마다 열리는 국제행사인 생물다양성협약(CBD) 당사국 총회가 29일부터 10월 17일까지 강원 평창에서 개최된다. 이 총회가 국내에서 열리는 건 이번이 처음. 1992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정상회의에서 채택돼 이듬해 발효된 CBD는 기후변화협약, 사막방지화협약과 함께 유엔의 3대 환경협약 중 하나다. 평창에서 열리는 제12차 CBD 총회를 앞두고 윤성규 환경부 장관(사진)을 지난달 28일 정부세종청사 집무실에서 만났다. 윤 장관은 “CBD 하면 일반인이 잘 모르는 것이 사실”이라며 CBD 총회의 홍보대사로 선정되기도 한 반달가슴곰 얘기로 그 의미를 설명했다. “2004년부터 10년간 지리산 반달가슴곰 복원 사업에 140억 원 정도가 쓰였습니다. 지금까지 36마리를 방사했는데 새로 태어나기도 하고 죽기도 해 지금 남아 있는 건 37마리죠. 결과적으로 10년 노력하고 한 마리 늘어난 셈입니다.” 윤 장관은 “반달가슴곰처럼 한 번 멸종위기종이 되면 복원하기가 그만큼 힘들다”면서 “이런 점을 전 세계가 각성하고 생물의 다양성을 어떻게 지켜나갈 것인지를 고민하는 자리가 CBD 총회”라고 말했다. CBD 총회는 지난달 15일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북한 측 대표단의 참여를 희망하면서 관심을 끌었다. 총회 참가 여부에 대한 북측의 공식적인 반응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윤 장관은 “다른 회원국들과 달리 북한은 총회 개최 하루 이틀 전이라도 참여 의사를 밝힌다면 참가는 충분히 가능하다”며 “백두산 화산 공동연구와 산림녹화사업 등 남북이 2007년에 합의해 놓고도 실행에 옮기지 못한 환경협력 6개 분야를 포함해 비무장지대(DMZ)의 평화공원화까지 정치 군사 분야를 벗어나 무릎을 맞대고 논의할 의제는 얼마든지 있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이번 평창 총회의 가장 주목할 만한 의제로 ‘평창 로드맵’을 꼽았다. 평창 로드맵에는 4년 전 일본 아이치 현 나고야 총회에서 채택된 ‘아이치 목표’ 달성을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담길 것으로 보인다. 아이치 목표는 멸종위기종 관리, 생태계 복원, 생물보호지역 확대 등 20개 분야에 걸쳐 2020년까지의 목표를 설정해 놓은 것이다. 윤 장관은 이번 총회가 4년 뒤에 열릴 2018 평창 겨울올림픽의 리허설 성격도 있다는 데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이번 총회에는 각국 대표단과 국제기구, 산업계 환경단체 관계자 등 약 2만 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고용노동부와 한국산업인력공단은 27일 ‘이달의 기능한국인’으로 ㈜한맥기연 양정식 대표(55·사진)를 선정했다. 25년간 산업용 공작기계 제작 분야에 몸담아 온 양 대표는 공작기계의 국산화에 기여한 숙련기술 전문가다. 양 대표는 1996년 공작기계용 스핀들 연마기를 개발했다. 스핀들은 선반이나 드릴링머신 같은 절삭공구의 회전축으로 양 대표가 만든 연마기는 마모된 스핀들을 기계에서 따로 떼어내지 않고도 갈 수 있게 한 것이다. 양 대표가 개발하기 전까지는 스핀들이 마모되면 기계를 분해해 스핀들을 연마한 뒤 다시 조립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1990년대 초반만 해도 공작기계의 대부분을 일본이나 독일에서 들여오던 때여서 기계를 분해, 조립하려면 외국의 기술자들을 따로 불러야 했다. 양 대표는 스핀들 연마기 개발로 1990년 자본금 4500만 원으로 시작한 회사를 연매출 108억 원(2013년 기준)의 탄탄한 회사로 키웠다. 가정형편이 넉넉하지 못해 공고에 입학했던 양 대표는 고교 3학년 때 현대자동차 실습생으로 기계공의 생활을 시작했고 회사 설립 후 초기에는 트럭으로 전국을 돌면서 중소기업의 공작기계를 고쳐주는 일도 했다. 양 대표는 “현대자동차 실습생일 때부터 언젠가는 우리 기술로 공작기계를 만드는 회사를 직접 차리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열심히 달린 덕에 목표를 이룬 것 같다”고 말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한국환경산업기술원(원장 김용주)이 설립 5년 만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면서 국내 환경산업 및 기술의 성장을 주도하고 있다. 환경부 산하 한국환경산업기술원은 2009년 4월 설립 이후 5년 동안 930건의 특허를 등록했고, 관련 환경제품의 사업화를 통해 3조 원의 실적을 올렸다. 특히 우수 환경기술의 해외사업화를 통한 실적은 지난해 1140억 원에 이르러 설립 첫해인 2009년(354억 원)에 비해 3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기술원이 지원한 국내 환경산업의 해외 수출액은 2009년 723억 원에서 2013년에는 12배에 가까운 8663억 원으로 크게 증가했다. 기술원은 “지난해 환경마크를 받은 제품은 1만436개로 2009년에 비해 60% 증가했다”며 “우리나라의 환경마크제도는 도입 21년 만에 인증제품 1만 개를 돌파해 국제환경라벨링네트워크 가입 47개국 중 중국과 독일에 이어 3번째로 인증제품 수 1만 개를 넘어섰다”고 밝혔다. 기술원은 선진국형 환경기술 개발을 위한 대형 연구개발 사업을 추진하고, 기후변화와 폐자원의 에너지화 등 새롭게 대두된 환경문제 해결을 위해 지난 5년간 총 7336억 원의 연구개발비를 투입했다. 2011년부터 차세대 에코이노베이션(EI) 사업을 진행 중인 기술원은 “선진국 수준의 환경기술 개발을 목표로 10년간 총 1조6000억 원을 EI 사업에 투입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기술원은 또 아토피, 천식 등 환경보건문제 해결과 온실가스 감축 및 신재생에너지 확보를 위한 특화 연구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기술원의 환경정보포털 코네틱(www.konetic.or.kr) 이용자는 2800만 명으로 2009년에 비해 3배 가까이 늘었다. 이는 2009년 이후 지속적인 수요조사를 통해 국민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수렴했고, 고품질의 환경산업 기술정보를 개방했기 때문이다. 기술원은 2016년까지 전체 환경정보의 81%를 개방해 환경정보 가치를 극대화하고 창조경제 활성화 등을 지원할 예정이다. 기술원은 앞으로도 환경기술 및 환경산업 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축적된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환경복지·안전·서비스 분야를 더욱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김용주 기술원 원장은 “환경 창조경제센터, 환경피해 구제 등 우리 기관이 수행하는 많은 과제의 목적지는 환경복지 국가”라며 “기술원은 국민이 안전한 환경을 만드는 데 중심기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고 말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앞으로 ‘삼성전자 퇴직연금펀드’ ‘현대자동차 퇴직연금펀드’처럼 자산 10조 원 안팎의 대형 퇴직연금펀드가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6년 7월부터 대기업들이 회사 내에 기금운영위원회를 설치해 직원들을 위한 퇴직연금펀드를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7일 밝힌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에는 노사 및 사외 전문가가 참여하는 기금운영위가 투자내용 등을 결정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하는 방안이 포함됐다. 기금형 제도가 도입되면 근로자가 적립금 운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정부가 구상하는 기금형 퇴직연금제도는 근로자, 경영진,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기금운영위가 회사 외부에 독립적인 수탁기금(퇴직연금기금)을 만든 뒤 적립금을 기금에 위탁하는 방식이다. 필요에 따라 기금운영위는 금융회사에 다시 자금운용을 위탁할 수도 있다. 현재는 기업 경영진이 금융회사와 퇴직연금 운용에 관한 계약을 맺어 자금을 운용하고 있어 근로자의 의견이 반영되기 어렵다. 확정기여형(DC형)의 경우 근로자가 운용상품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정보와 노하우가 부족해 사실상 금융사가 주도하는 경우가 많다. 금융 전문가들은 2012년 일본AIJ자산운용의 기금형 퇴직연금 파산 등 해외 사례를 고려해 부작용을 막기 위한 대비책을 충분히 마련해야 한다고 조언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학력의 벽을 넘어 능력 중심의 사회로.’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숙련기술인을 우대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을 통해 정부 국정과제인 ‘능력 중심의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고 있다. 공단은 올해 글로벌숙련기술진흥원의 기능을 개편해 숙련기술 장려사업과 국제교류 업무를 강화했다. 숙련기술 장려사업은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술 습득을 장려하고 기술의 향상을 촉진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 사업은 또 숙련기술자들의 사회·경제적 위상을 높여 이들이 능력에 걸맞은 대우를 받게 하는 데도 초점이 맞춰져 있다. 공단은 우수한 숙련기술인들을 선정하고 알리는 일을 통해 숙련기술인들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큰 역할을 해왔다. 공단은 대한민국 명장, 숙련기술전수자, 우수숙련기술자, 기능한국인, 숙련기술장려 모범사업체 등을 발굴해 홍보하고 있다. 숙련기술자를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기 위한 대국민 홍보캠페인도 벌이고 있다. 공단은 또 우수숙련기술인을 활용해 예비숙련기술인을 가르치는 노력도 기울이고 있다. 대한민국 명장, 기능한국인, 국제기능올림픽대회 메달리스트 등의 우수숙련기술인들을 강사로 위촉해 미래의 숙련기술인을 꿈꾸는 특성화고교와 마이스터고교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산업현장 맞춤형 전수교육을 실시하고 있다. 이와 함께 예비숙련기술인과 우수숙련기술인 간에 멘토-멘티 관계를 맺어주는 멘토링 프로그램과 직업 선택 과정의 탐색기에 있는 중학생들을 대상으로는 숙련기술 체험캠프도 운영하고 있다. 숙련기술 체험캠프는 현장체험을 통해 중학생들이 진로를 설계하는 데 도움을 주려는 프로그램이다. 공단은 전국기능경기대회 개최 및 국제기능올림픽대회 참가를 통해 숙련기술의 수준을 한 단계 더 높이고 기술 선진국으로서의 국제적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데도 많은 기여를 해 왔다. 지난해 우리나라가 국제기능올림픽대회에서 통산 18번째 종합우승의 위업을 달성한 데는 공단의 꾸준한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 박영범 공단 이사장이 국제기능올림픽대회 한국위원회 회장을 맡고 있다. 공단은 개발도상국의 인적자원 개발과 공적개발 원조사업 등에도 활발하게 참여하고 있다. 박영범 공단 이사장은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이렇게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기술이었다”며 “숙련기술인들이 제대로 인정받고 능력을 펼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해 나갈 것이다”고 강조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
연금보험, 연금저축 등 개인연금을 중도에 해지하지 않고 장기간 보유한 근로자에게는 정부가 재정을 지원해 수수료를 깎아주는 방안이 추진된다. 또 2016년부터 기업 규모에 따라 단계적으로 퇴직연금 가입이 의무화돼 이르면 2020년경부터 퇴직금제도가 퇴직연금으로 통합된다. 25일 정부에 따르면 기획재정부와 고용노동부, 금융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의 ‘사적연금 활성화 대책’을 마련해 28일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가 마련한 퇴직연금제도의 주요 개편방향에는 △단계적인 퇴직연금 가입 의무화 및 사각지대 해소 △자산운용의 자율성 확대 △퇴직연금의 장기가입 및 연금화 유도 △퇴직연금 운영구조 다양화 방안 등이 담겼다. 정부는 우선 퇴직연금 장기 가입과 연금화를 유도하기 위해 연금 운용수수료를 낮춰줄 방침이다. 현재 연금보험, 연금저축 등 개인연금의 운용수수료는 0.8% 안팎이며 개인형퇴직연금(IRP)은 수수료가 0.3∼0.4% 수준이다. 정부는 이번 대책을 통해 연금 가입자가 중도해지하지 않고 연금을 장기간 적립할수록 재정을 지원해 수수료를 더 깎아줄 방침이다. 현재 개인연금 가입자 가운데 10년 이상 연금계약을 유지하는 비율이 52.4%에 불과하고, 가입자 상당수가 일시금으로 적립금을 수령하고 있는 만큼 정부재정을 들여서라도 개인연금 중도해지를 줄여 연금을 통해 노후 소득을 마련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수수료가 인하되면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노후에 받을 연금액도 그만큼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퇴직연금 적립액이 1억 원 쌓였을 때 수수료를 0.1%포인트만 낮춰도 매년 10만 원을 아낄 수 있다. 그만큼 퇴직연금 적립액이 불어나는 구조여서 개인별로 수백만 원의 연금 수령액 증대효과를 볼 수 있다는 것이 정부의 설명이다. 이와 함께 정부는 300명 이상 사업장은 2016년부터 퇴직연금 가입을 의무화해 2020년 이후에는 모든 사업장이 퇴직연금에 가입하도록 하는 방안도 이번 대책에 담을 방침이다. 지금은 모든 사업장을 대상으로 퇴직연금 가입을 권고할 뿐 별도로 가입을 독려하지는 않는다. 올해 3월 말 기준으로 한국의 퇴직연금 가입자는 499만5000명으로 전체 상용근로자의 48.2%에 그치고 있다. 사업장 규모별로 보면 대기업의 91.3%가 퇴직연금에 가입돼 있는 반면 중소기업 가입률은 15.9%에 불과하다.세종=문병기 weappon@donga.com / 이종석 기자}

71세 여성 이모 씨는 스물한 살 때부터 밭일과 논농사를 해왔다. 여름 한낮에도 무릎을 쪼그린 채로 논밭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50년을 지내왔다. 그러다 보니 이른 나이인 30대 후반에 무릎 통증이 찾아왔다. 통증은 시간이 갈수록 심해져 50대를 넘기면서부터는 밤에 잠을 자기 힘들 만큼 아팠다. 이 씨는 무릎 수술을 받고 싶었지만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술 비용 때문이다. 그랬던 이 씨가 지금은 무릎 통증이 거의 사라진 상태로 정상에 가까운 생활을 하고 있다. 지난달 양쪽 모두 무릎 수술을 받았기 때문이다. 이 씨는 대한노인회가 진행 중인 ‘저소득층 노인을 위한 퇴행성 관절염 인공관절 수술 후원 캠페인’의 도움을 받았다. 이 씨는 “수술비를 마련하지 못해 20년 넘게 극심한 무릎 통증을 안고 살아왔던 나에게 대한노인회의 인공관절 수술 캠페인은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줬다”고 말했다. 올해 5월부터 이 같은 후원 캠페인을 시작한 대한노인회는 기초생활수급 대상자를 포함한 저소득층 퇴행성 관절염 말기 환자들에게 도움을 주고 있다. 전국의 대한노인회 245개 지회장 추천을 받은 사람도 후원 혜택의 대상이 된다. 수술을 희망하는 노인 환자는 대한노인회 보건의료사업단에 전화(1661-6595)나 우편(서울 서초구 방배로 43), e메일(ok6595@naver.com)로 신청하면 된다. 신청을 접수한 대한노인회는 환자의 경제적 사정 등을 심사해 후원 여부를 결정한다. 후원 병원의 무릎 관절 검사를 거쳐 인공관절 수술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내려지면 수술에 들어간다. 이 캠페인은 2015년 4월 30일까지 계속된다. 퇴행성 관절염은 무릎을 보호하는 연골이 노화로 닳아 없어지면서 뼈와 뼈가 맞닿아 통증이 생기는 질환이다. 65세 이상 노인의 80% 정도가 이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골은 혈관이 없는 조직이다. 이 때문에 혈액 속 재생인자의 역할이 이뤄지지 않는다. 한 번 닳은 연골은 자체 회복이 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퇴행성 관절염은 연골 손상 정도에 따라 초기, 중기, 말기로 나뉜다. 치료 시기를 놓쳐 연골이 모두 닳아 없어지는 퇴행성 관절염 말기에 이르면 걷기조차 힘들 만큼 심한 통증을 느끼게 된다. 퇴행성 관절염 말기는 약물이나 주사 치료를 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기다. 인공관절을 이식하는 수술을 통해 통증을 줄이고 무릎의 운동성을 높이는 것이 사실상 유일한 치료법이다. 수술 후에는 6개월∼1년의 회복 기간이 필요하다. 완치 후에는 등산도 가능하다. 하지만 인공관절 수술은 관절을 이식하는 큰 수술인 만큼 치료비가 만만치 않은 것이 사실이다. 건강보험 가입자라도 무릎 한 쪽을 수술하는 데만 환자 부담 비용이 250만∼300만 원에 이른다. 수술 후 입원 기간도 2, 3주여서 간병인이 필요할 수도 있어 추가 부담이 있다. 이 같은 치료비 부담 때문에 저소득층 노인들은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극심한 통증을 참고 견뎌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면 환자가 부담해야 하는 돈은 두 배로 늘어난다. 의료계는 퇴행성 관절염을 앓는 노인 중 80% 정도가 수술비 부담 때문에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이종석 기자 wi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