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성은

방성은 기자

동아일보 정책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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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정책사회부 방성은 기자입니다.

bbang@donga.com

취재분야

2025-11-05~2025-12-05
보건53%
사회일반30%
인사일반7%
건강7%
유통3%
  • 낙태죄 입법공백 6년째… ‘임신중지 약물’ 도입 논란

    정부가 ‘임신중지 약물(낙태약)’ 합법화를 국정과제로 검토하면서 의료계와 여성계 등에서 찬반 대립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가 2019년 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법적 효력을 상실했지만, 정작 낙태 등에 대한 법령이 6년째 마련되지 않아 이를 둘러싼 제도적 사각지대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1일 “임신중지 약물 합법화를 아직 국정과제에 포함하지는 않았지만 현재 검토하고 있다”며 “임신중지 약물과 관련해 입법 공백을 해소하기 위해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 부처와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국회에 출석해 “(낙태죄의) 헌법불합치 결정 이후 형법과 모자보건법이 개정되지 않아 안전에도 문제가 있는 상황”이라며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사안이다. (임신중지 약물의) 안전한 사용 방안을 식약처와 협의해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낙태죄는 사실상 사라졌지만, 임신중지 약물 거래 및 유통은 여전히 국내에서 불법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신중지 방법을 수술로 한정하고 성폭력, 유전 질환 등 제한적 사유에서만 낙태를 허용하고 있다. 약물 사용에 대한 규정은 없다. 이 때문에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성들은 불법 경로로 구한 약물에 의존하고 있다. 식약처 자료에 따르면 임신중절 의약품 온라인 불법 판매는 2023년 491건에서 지난해 741건으로 1년 새 50% 이상 늘었다. 임신중지 약물 합법화를 두고 의견은 여전히 분분하다. 의료계는 약물 안전성이 보장되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김재연 대한산부인과의사회장은 “약물을 복용하면 불완전 유산이 될 가능성이 높고 자궁 외 임신의 경우 복강 내 출혈로 이어지는 등 오히려 여성의 생명권을 해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윤리적으로도 동의할 수 없다고 밝혔다. 김성근 대한의사협회 대변인은 “가톨릭대병원 등은 (종교적 신념으로) 임신중절에 대해 교육조차 하지 않는다”며 “생명을 논하는 일을 쉽게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여성계는 임신중지 약물은 해외에서 안전성이 입증됐다고 주장했다. 윤김지영 국립창원대 철학과 교수는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해당 약물(임신중지)을 필수 의약품으로 지정하고 있고, 100개에 달하는 국가가 합법적으로 처방하고 있다”며 “허용 중인 다수 국가의 처방 기준과 부작용 등을 면밀하게 살펴 논의하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제도적 장치 보완이 더 필요하다고 밝혔다. 복지부 관계자는 “약물 사용 한계를 정하는 등 형법을 손봐야 사회적 혼란을 막을 수 있다”고 했고 식약처 관계자도 “임신중지 허용 요건 등이 법률로 정해져야 의약품 허가도 내릴 수 있다”고 말했다.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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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개월 기다려 수술… 다시는 이런 고통 없길”

    “진료 예약이 조금 더 수월해질 거란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놓이네요.”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신경과 진료실 앞. 치매와 당뇨병을 앓는 남편을 부축하며 나온 오모 씨(79)는 “젊은 의사들이 이제라도 돌아와서 참 다행”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지난해 2월 정부의 의대 증원에 반발해 사직한 전공의(인턴, 레지던트)들이 1년 7개월 만에 이날 수련병원으로 복귀했다. 서울대병원 사직 레지던트 복귀율은 약 72%. 병원 곳곳엔 흰 가운을 입은 전공의가 눈에 띄었다. 환자들은 국민을 볼모로 한 의정 갈등이 반복돼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호흡기내과 진료를 기다리던 김모 씨(68)는 “지난해 종합병원에서 못 고치는 폐렴이라고 해서 대학병원에 왔더니, 올해 초 수술까지 5개월을 기다렸다. 정부도, 의사도 다시는 환자에게 이런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수도권 대형병원과 달리 지방 필수과는 전공의 복귀가 미미하거나 아예 돌아오지 않은 곳도 있어 의료공백이 지속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지방 국립대병원 수련 담당 교수는 “소아청소년과, 심장혈관흉부외과 등은 명맥이 끊길 위기”라고 말했다.박성민 기자 min@donga.com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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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동수당 내년 8세까지 받는다…月 최대 13만원

    아동수당 지원 대상이 현재 7세에서 내년 8세까지 확대된다. 비수도권이나 인구감소지역 아동은 추가로 최대 월 3만 원을 지원받는다.29일 보건복지부의 2026년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복지부 전체 예산은 137조6480억 원으로 올해 대비 9.7% 증가했다. 복지부는 아동수당 지원 연령을 현행 8세 미만에서 9세 미만으로 확대하고, 비수도권이나 인구감소지역 아동은 월 5000원에서 3만 원까지 추가 지원할 계획이다. 현재 아동수당은 아동 1인 당 월 10만 원 씩 지급되고 있다.아동수당 대상이 확대되면서 아동수당 예산은 올해 1조9588억 원에서 내년 2조4822억 원으로 5000억 원 가량 늘어났다. 지원 대상 아동은 현재 214만8000명에서 내년에는 264만5000명으로 증가한다. 앞서 대통령 직속 국정기획위원회는 아동수당 지급 대상을 기존 8세 미만에서 2030년까지 13세 미만으로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내년 3월 전국 시행 예정인 의료·요양·돌봄 통합지원에는 777억 원이 배정됐다. 통합돌봄은 장애, 노쇠 등으로 일상 생활을 유지하기 어려운 노인들이 살던 곳에서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도록 지자체가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사업이다. 복지부는 서울 강남구 등 재정 여력이 충분한 곳을 제외한 183개 기초지차체 위주로 예산을 배정할 예정이다.초고령화 사회 진입으로 노인 인구가 증가하면서 내년도 기초연금 예산은 23조3726억 원으로 올해보다 1조5461억 원 늘었다. 노인 인구 증가로 대상자가 43만 명 늘어나고, 기준연금액이 올해 34만2510원에서 내년 34만9360원으로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조유라 기자 jyr0101@donga.com세종=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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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년 아동학대 2만여명 피해, 30명은 사망…가해자 84%가 부모

    지난해 2만여 명의 아이들이 학대 피해를 입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 아동 30명은 사망했다.29일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2024 아동학대 통계 현황’에 따르면 지난해 5만242건의 아동학대 신고가 접수됐고, 그 중 2만4492건이 전담 공무원 등의 조사를 거쳐 아동학대로 판단됐다. 아동학대 신고 건수는 2023년 4만8522건에서 지난해 5만242건으로 증가했다. 아동학대 전담 공무원 등의 조사를 거쳐 실제 아동학대로 판단된 사례는 2023년 2만5739건에서 지난해 2만4492건으로 소폭 줄었다. 지난해 학대로 사망한 아동은 30명이었다. 사망자 중 21명(70%)은 6세 이하 영유아였고, 7~9세가 4명, 10대 청소년이 5명이었다. 24명은 치명적 신체학대, 신생아 살해 등 아동에 대한 직접적 가해로 사망했고, 6명은 제때 병원에 데려가지 않는 등 치명적 방임으로 사망했다.아동 대부분은 주 양육자에게 학대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모가 학대 행위자인 경우가 2만603건(84.1%)으로 전체 학대 사례 중 가장 많았고, 대리양육자(7%)와 친인척(2.7%)에게 학대당한 경우도 있었다. 가장 많이 가해진 학대는 정서적 학대(1만1466건)였고, 신체적 학대(4625건), 방임(1800건), 성적 학대(619건)가 그 뒤를 이었다. 학대 유형이 중복돼 나타난 경우는 5982건으로 집계됐다. 재학대 사례는 3896건으로 전체 아동학대 사례 중 15.9%에 해당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중 1년 이내 재학대가 이뤄진 사례는 1737건이었다. 재학대 사례는 3년 연속 16%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학대 피해 아동을 가정으로부터 분리 보호한 사례는 2292건으로 전체 아동학대 사례 중 9.4%였다. 그중 1575건은 담당 공무원이 피해 의심 아동을 분리해 보호조치 전까지 보호하는 ‘즉각 분리’가 시행된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90.1%)의 피해 아동은 원가정 보호조치됐다.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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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정신질환 안락사 가능, 부부 동반 선택하기도… “삶에 대한 의지 꺾어” 비난도 [품위 있는 죽음]

    “저는 죽고 싶은 게 아니라 단지 삶이 너무 힘들어 감당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16세부터 성적 학대를 당한 아이리스 하위징아 씨는 10년 이상 극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렸다. 오랜 기간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치료받았지만 호전되지 않았고, 여러 차례 극단적 선택을 시도했다. 결국 정신질환을 이유로 안락사를 선택했고 지난해 9월 2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네덜란드에서는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 동반 안락사 등이 법적으로 허용됐지만, 자기 결정권과 자살 방조 사이에서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 위원회(RTE)에 따르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는 2010년 2건에서 2023년 138건, 지난해 219건으로 증가했다. 최근에는 가파른 증가세를 보이며 정서적 불안정을 이유로 젊은이들이 너무 쉽게 선택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해 정신질환에 따른 안락사를 선택한 219명 중 29명(13%)은 20대였고 16∼18세 청소년도 있었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힘든 일을 헤쳐 나가는 게 인생의 중요한 경험인데 안락사가 삶에 대한 젊은이들의 의지를 꺾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2월에는 드리스 판아흐트 네덜란드 전 총리가 자택에서 한 살 연상 부인과 동반 안락사를 선택해 93세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 판아흐트 전 총리는 2019년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계속 건강이 좋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동반 안락사는 네덜란드에서도 흔치 않은 사례지만 최근 들어 증가하는 추세다. 네덜란드에서 처음 동반 안락사 사례가 보고된 2020년 26명(13쌍)이 동반자와 함께 생을 마감했으며 2023년 94명(47쌍), 지난해에는 108명(54쌍)이 동반 안락사를 택했다. 배우자에게 동반 안락사를 강요한 사례도 발견돼 큰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20년 네덜란드 자유민주당이 발의한 일명 ‘완성된 삶 법안’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심각한 질환이 없더라도 75세 이상은 삶이 어느 정도 완성됐기 때문에 안락사를 선택할 수 있도록 허용하자는 내용이다. 안락사에 대해 세계에서 가장 급진적이라는 평가를 받는 네덜란드에서조차 이 법안은 하원에 계류 중이다. 의사인 마르욜라인 세브레흐츠 씨는 “자기 결정권은 의학적 상태로 한계를 지을 수 없다”며 “의학적 근거가 없는 사람도 자기 삶이 완성됐다고 느낄 때 이를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반면 “노인을 죽음으로 내모는 법안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많다. 이 법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현재도 안락사를 장려하는 분위기가 있는데, 이 법안이 통과되면 많은 노인은 죽음에 대한 사회적 내면적 압박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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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존엄한 삶의 마지막”… 논란 속 생명에 대한 자기 결정권 ‘안락사’ [품위 있는 죽음]

    “아버지께서 오래전부터 마지막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그러지 않았다면 다른 치매 환자처럼 몇 년간 더 고통을 받았을지도 모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안락사 지원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NVVE) 사무실에서 만난 마리아 흐레이프마 씨(65)는 2023년 4월 치매를 앓던 90세 아버지를 안락사로 떠나보냈다. 아버지는 10여 년 전 ‘안락사 사전 의향서’를 작성하며 “중증 치매 진단을 받거나, 건강 문제로 혼자서 생활할 수 없게 되면 살고 싶지 않다”고 적었다. 이후 매년 주치의와 상의하며 서류를 갱신했다. 아버지는 2018년부터 치매를 앓았고 2022년 건강이 크게 악화했다. 흐레이프마 씨는 “치매가 악화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고 아버지 자신을 잃고 있다고 느껴졌다. 아버지에게는 매우 참기 어려운 고통이었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2023년 1월 주치의에게 안락사 의사를 전했다. 주치의 등 안락사 평가 의료진은 아버지가 매우 심각하게 고통스럽다는 점을 인정했고 안락사를 허가했다.● 네덜란드 안락사 20여 년 새 5배 증가네덜란드는 2002년 세계 최초로 안락사를 허용했다. 참을 수 없는 고통을 가진 신체적 정신적 환자는 의료진 확인 등 상당한 절차를 거쳐 안락사를 허가받을 수 있다. 보통 약물을 주입하거나 먹는 방법이 사용된다. 안락사 논의는 1973년 법원 판례를 계기로 본격화됐다. 의사인 딸이 난치성 질환인 루게릭병을 앓는 어머니에게 치사량의 모르핀을 투입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 법원은 딸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후 안락사와 관련해서 의료 가이드라인과 판례가 쌓였고 2002년 안락사를 합법화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활동가 롭 에던스 씨는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의 요청으로 안락사 제도가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RTE)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안락사는 2002년 1882건에서 지난해 9958건으로 22년 만에 약 5.3배 증가했다. 전체 사망자 중 안락사가 차지하는 비율도 같은 기간 1.32%에서 5.8%로 약 4.4배 늘었다. 지난해 안락사 9958명 중 8970명(90.1%)은 60세 이상이었다. 현재 네덜란드에서는 ‘참을 수 없는 고통’과 ‘회복 불가능’을 전제로 신체적 질병 말기 환자뿐만 아니라 치매 환자, 정신질환자 등에게도 안락사를 허용한다. RTE에 따르면 지난해 안락사 약 86%(8593건)는 신체질환 관련이었다. 이어 치매(427건), 고령 질환 누적(397건), 정신질환(219건), 기타 질환(232건) 등의 순이었다. 네덜란드가 치매 환자나 정신질환자까지 안락사 대상을 넓히면서도 사회적 합의를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철저한 절차 덕분이다. 환자는 반드시 주치의와 여러 차례 면담을 거쳐 고통의 심각성과 대안 부재를 입증해야 한다. 주치의는 단독으로 안락사를 허가할 수 없으며 반드시 안락사 자문 의사 네트워크(SCEN) 등 독립된 의사들의 2차 의견을 받아야 한다. 특히 치매, 정신질환 등은 이런 절차를 거쳐 안락사 허가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한다. 안락사 시행 후에는 변호사 의사 윤리학자 등이 참여하는 네덜란드 지역 안락사 검토위원회가 안락사 절차의 적법성을 심사해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의사에게 책임을 묻는다. 실제 지난해에도 6건이 부적절하다는 판정을 받아 검찰 조사가 진행됐다. 비영리 단체인 네덜란드안락사협회는 전국에 7개 지부를 두고 안락사에 대한 상담을 제공한다. 지난해 3만3500건의 문의를 받았고 8000건에 대해 심층 상담을 진행했다. 네덜란드안락사협회 법률고문 변호사 이베트 스카우트 씨는 “협회는 안락사 준비 및 시행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제공해 환자들의 ‘죽을 권리’ 보장에 앞서고 있다”며 “문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안락사에 대한 이해와 제도가 사회에 어느 정도 안착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안락사 논란은 현재도 진행 중한국과 일본, 중국 등 아시아권에서 안락사나 조력 존엄사를 허용하는 국가는 없다. 법적 논쟁을 떠나 유교, 불교 등의 정서가 깔려 있는 아시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유럽에서는 네덜란드 외에 벨기에, 룩셈부르크, 스페인 등 일부 국가가 허용하고 있다.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은 조력 존엄사가 가능하다. 20년 넘게 유지된 제도이지만, 네덜란드 내에서도 안락사에 대한 논란은 현재 진행형이다. 안락사를 지지하는 이들은 인간의 자기 결정권, 존엄한 죽음에 대한 권리, 환자의 극심한 고통 경감 등을 이유로 허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140명의 안락사에 관여한 의사 베르트 케이저르 씨는 “현대 의학은 환자를 불행한 상태에서도 살려낼 수 있을 만큼 발달했다. 하지만 ‘좋은 죽음’을 망칠 수도 있다. 중환자실에서 죽는 것은 최악의 방식이다”라고 말했다. 반면 종교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생명은 스스로 끊을 수 없는 신성한 것”이라며 반대하는 목소리도 강하다. 테오 보어 흐로닝언 프로테스탄트신학대 교수는 “안락사가 죽음의 당연한 방식(normal way to die)이 돼 버렸다”라며 “죽음을 일종의 ‘프로젝트’로 생각하는 흐름에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암스테르담·위트레흐트=특별취재팀▽ 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 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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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남성 난임 작년 첫 10만명 넘어… “검사 늘고 스트레스 등 영향”

    올해 결혼 3년째를 맞은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임신에 어려움을 겪자 최근 병원을 찾았다. 박 씨 부부는 아직 젊기 때문에 자연 임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자 형성 이상’으로 난임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내가 난임의 원인일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내도 여러 검사를 받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정신적 충격도 클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남성 난임 환자가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었다. 최근 남성 난임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검사가 늘었고 만혼, 스트레스 등 현대인의 생활 방식 변화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작년 남성 난임 환자 10만 명 넘어27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남성 난임 진단자는 지난해 10만8343명으로 2018년(7만8370명)보다 38.3% 늘었다. 같은 기간 난임 시술을 받은 남성 환자는 5만6117명에서 7만4654명으로 33% 늘었다. 난임 관련 진료비도 지난해 198억 원으로 2018년(104억 원)과 비교할 때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 난임을 일으키는 질환을 앓는 남성도 늘었다. 호르몬 이상으로 정자 형성과 성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뇌하수체 기능 저하’로 진료받은 남성은 2018년 1만4469명에서 지난해 2만9356명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정자의 질을 떨어뜨리는 ‘음낭정맥류’ 환자도 같은 기간 1만2549명에서 1만7087명으로 늘었다. 다만 대체로 남성 난임은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식습관 불량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남철 부산대 비뇨기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남성 호르몬 수치를 낮춰 생식 기능을 저하하고 술과 담배는 정자 수와 운동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 연령이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태진 일산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30대 중반이면 전립선 비대증 등 남성 질환과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생식 능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반면 출산율은 지난해 7월 반등한 뒤 12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가임기 부부가 늘어난 것도 난임 진단 증가의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어려움 말하지 않는 남성 난임 환자 남성 난임 환자들은 심리적인 고통을 받지만 터놓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난임 상담 중 남성 비율은 12.3%에 그쳤다. 여성과 달리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 등도 활발하지 않다. 전명욱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장은 “난임 판정을 받으면 남성성의 상실로 받아들이고 우울감과 자존감 저하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정부 지원에서도 여성 난임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 남성 난임과 관련된 치료와 수술은 체외수정, 인공수정 등 여성의 보조 생식술로 이어지지 않으면 정부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무정자증 환자는 고환에서 직접 정자를 채취하는 수술을 받는데, 이때 정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정자를 찾기 위해 사용되는 수술 현미경 사용료, 특수재료비, 조직 처리 및 검사비 등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최대 300만 원에 달해 여러 차례 수술할 경우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진다. 3차례 수술을 받은 30대 남성 김모 씨는 “두 번은 정자를 얻었지만 시험관 시술에 실패했고, 세 번째 수술에서는 정자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미 많은 돈을 쓴 상태에서 지원도 없어 경제적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어 남성이 난임을 논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남성 요인 난임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은미 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도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며 “난임 남성에 대한 지원도 충분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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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단독]고개 숙인 남자들…‘남성 난임’ 6년새 38% 늘었다

    올해 결혼 3년째를 맞은 30대 직장인 박모 씨는 임신에 어려움을 겪자 최근 병원을 찾았다. 박 씨 부부는 아직 젊기 때문에 자연임신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자 형성 이상’으로 난임 판정을 받았다. 박 씨는 “내가 난임의 원인일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며 “아내도 여러 검사를 받느라 많이 힘들었을 것이고 정신적 충격도 클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고 말했다.지난해 남성 난임 환자가 처음으로 10만 명을 넘었다. 최근 남성 난임에 대한 관심이 늘면서 검사가 늘었고 만혼, 스트레스 등 현대인의 생활 방식 변화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작년 남성 난임 환자 10만 명 넘어27일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남성 난임 진단자는 지난해 10만8343명으로 2018년(7만8370명)보다 약 38.3% 늘었다. 같은 기간 난임 시술을 받은 남성 환자는 5만6117명에서 7만4654명으로 33% 늘었다. 난임 관련 진료비도 지난해 198억 원으로 2018년(104억 원)과 비교할 때 2배 가까이로 증가했다.난임을 일으키는 질환을 앓는 남성도 늘었다. 호르몬 이상으로 정자 형성과 성숙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뇌하수체 기능 저하’로 진료받은 남성은 2018년 1만4469명에서 지난해 2만9356명으로 2배 이상으로 늘었다. 정자의 질을 떨어뜨리는 ‘음낭정맥류’ 환자도 같은 기간 1만2549명에서 1만7087명으로 늘었다.다만 대체로 남성 난임은 이유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전문가들은 스트레스와 수면 부족, 식습관 불량 등이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박남철 부산대 비뇨기의학과 교수는 “스트레스는 남성 호르몬 수치를 낮춰 생식 기능을 저하하고 술과 담배는 정자 수와 운동성을 떨어뜨린다”고 말했다. 결혼과 출산 연령이 높아진 것도 원인으로 지목됐다. 김태진 일산차병원 비뇨의학과 교수는 “30대 중반이면 전립선 비대증 등 남성 질환과 고혈압, 당뇨 등 만성질환이 생기기 시작하면서 생식능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반면 출산율은 지난해 7월 반등한 뒤 12개월째 증가세를 이어가고 있다. 신경아 한림대 사회학과 교수는 “아이를 갖기를 원하는 가임기 부부가 늘어난 것도 난임 진단 증가의 요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어려움 말하지 않는 남성 난임 환자남성 난임 환자들은 심리적인 고통을 받지만 터놓고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국립중앙의료원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전체 난임 상담 중 남성 비율은 12.3%에 그쳤다. 여성과 달리 온라인 커뮤니티, 모임 등도 활발하지 않다. 전명욱 중앙난임·임산부심리상담센터장은 “난임 판정을 받으면 남성성의 상실로 받아들이고 우울감과 자존감 저하를 경험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정부 지원에서도 여성 난임에 비해 충분하지 않다. 남성 난임과 관련된 치료와 수술은 체외수정, 인공수정 등 여성의 보조생식술로 이어지지 않으면 정부 난임부부시술비 지원사업 대상에서 제외된다. 무정자증 환자는 고환에서 직접 정자를 채취하는 수술을 받는데, 이때 정자가 발견되지 않으면 비용 지원을 받을 수 없다. 정자를 찾기 위해 사용되는 수술 현미경 사용료, 특수재료비, 조직처리 및 검사비 등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최대 300만 원에 달해 여러 차례 수술할 경우 경제적 부담은 더 커진다. 3차례 수술을 받은 30대 남성 김모 씨는 “두 번은 정자를 얻었지만 시험관 시술에 실패했고, 세 번째 수술에서는 정자가 나오지 않았다”며 “이미 많은 돈을 쓴 상태에서 지원도 없어 경제적 부담이 컸다”고 말했다.임명호 단국대 심리치료학과 교수는 “가부장적인 문화가 우리 사회에 남아 있어 남성이 난임을 논하는 것을 꺼리는 분위기”라며 “남성 요인 난임에 대한 교육과 홍보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은미 성균관대 사회복지연구소 연구원도 “경제적 부담으로 인한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환자가 많다”며 “난임 남성에 대한 지원도 충분히 해야 한다”고 말했다.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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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돌봄 이용부모 25% “야간에 급히 아이 맡길 곳 없어”

    지역아동센터 등 돌봄시설을 이용하는 부모 4명 중 1명은 야간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아이를 맡길 곳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24일 보건복지부의 ‘초등 방과 후 마을돌봄시설 오후 8시 이후 연장돌봄 이용 수요에 대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25.1%는 야간에 발생하는 긴급상황에 대해 별다른 대안이 없다고 답했다. 64.4%는 이런 상황에 대비해 아동을 맡길 수 있는 공적 서비스 체계가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야간 돌봄서비스는 41.7%가 센터에서 오후 10시까지 연장 돌봄을 제공하는 방식을 가장 선호했다. 이어 집으로 찾아가는 재가방문 28%, 친척·이웃 돌봄 강화 24.1%, 밤 12시까지 센터 연장 운영 14.8% 등의 순이었다. 복지부는 부모들이 오후 8시 이후 항상 초등생 자녀를 맡기는 것은 선호하지 않지만, 야간 긴급상황에 대비해 언제든 맡길 수 있는 공적 돌봄서비스를 선호하는 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정부는 최근 부산에서 부모 부재 중 발생한 화재로 아동 4명이 잇달아 숨진 사건을 계기로 범정부 종합대책을 준비 중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야간 긴급상황이나 밤늦게 생업에 종사하는 경우 아이들을 돌보는 데 걱정하지 않도록 관계 부처와 협력해 야간 공적 돌봄체계 강화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설문조사는 지난달 21∼31일 전국 지역아동센터, 다함께돌봄센터를 이용하는 부모 2만5182명을 대상으로 진행했다.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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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90대 노인이 직접 빨래… “일상 유지해야 치매 진행 늦춰” [품위 있는 죽음]

    지난달 22일 오전 일본 사이타마현 사이타마시 치매(인지증) 돌봄 시설 ‘사랑의 집 그룹홈’. 아침 식사를 마친 노인들이 20분 넘게 TV 화면의 건강 체조를 따라 하며 땀을 흘리고 있었다. 오리토 씨(84)는 “집에선 혼자였는데, 여기선 가족 같은 친구들과 노래 부르고 춤출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입소자 9명이 함께 쓰는 거실엔 종이로 접은 꽃과 인형 등이 가득했다. 정기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근처 어린이집 아이들이 만든 작품이다. 그룹홈 관리자인 나가쓰카 씨는 “어린이들과 핼러윈 파티도 하고, 지역 요양시설 입소자들이 모이는 ‘오렌지 카페’라는 행사를 열어 교류도 한다”며 “인지증 노인이 고립되지 않고 이웃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의 65세 이상 치매 노인은 올 7월 기준 약 471만 명. 고령화가 일찍 진행된 일본은 2000년부터 치매 노인 공동 주택인 ‘그룹홈’을 도입했다. 치매 노인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려면 병원에 고립시켜선 안 되고, 최대한 늦게까지 몸을 움직이고 이웃들과 만나는 교류를 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치매 노인은 무섭거나 불쌍한 존재가 아니고, 주위에서 조금만 도와주면 얼마든지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입소자 자녀도 ‘노인’, 노노케어 부담 덜어 2022년 기준 일본 전역의 그룹홈은 1만4079곳, 거주 치매 노인은 약 21만 명에 이른다. 치매 노인이 97만 명에 이르는 한국에선 이런 소규모 전문 요양시설을 찾기 힘들다. 자녀 또는 배우자의 돌봄을 받거나, 치매에 특화되지 않은 대규모 요양시설에 머무는 경우가 대다수다.지난달 21일 도쿄도 이타바시구의 ‘사랑의 집 그룹홈’. 입소자 2명이 주방에서 9명분의 점심 식사 준비를 돕고 있었다. 그룹홈 책임자 무라타 씨는 “인지증 환자는 집안일 등 쉽게 하던 일을 못 하게 되면 자존감을 잃고 상태가 더 나빠진다. 서툴더라도 식사 준비, 빨래 정리 등 최대한 집에서처럼 생활하도록 돕는다”고 말했다. 이 시설엔 3개 유닛에 9명씩, 총 27명의 치매 노인이 거주 중이다. 전체 요양보호사는 25명으로, 항상 9명 이상이 근무한다. 인지력이 떨어지고, 환자마다 특성이 다른 치매는 익숙한 직원들과 소규모로 생활하는 것이 좋다. 대규모 요양시설은 환경 적응과 개별 관리가 어려워 치매를 악화시킬 수 있다. 호텔처럼 깔끔한 1층 오노 씨(91)의 방에 들어서자, 창가의 오래된 불단(佛壇)이 눈에 띄었다. 오노 씨는 “소원을 빌고 싶어서 조상을 모시던 불단을 집에서 가져왔다. 이곳 생활이 너무 행복해서 요즘엔 소원을 빌 필요가 없다”며 해맑게 웃었다. 그는 “산책하며 동네 사람들을 만나거나, 어린이집 아이들이 놀러 왔을 때 가장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시공간 지각 능력과 기억력 감퇴, 불안에 시달리는 치매 환자에겐 배회 증상이 흔히 나타난다. 그룹홈에선 입소자들의 배회를 억제하기보단 요양보호사와 함께 매일 산책하러 나가 건강까지 챙기도록 한다. 집에서 쓰던 이불과 식기 등 익숙한 물건을 갖다 놓는 것도 불안감을 낮추기 위해서다. 입소자들은 상당수가 자녀도 노인이다. 그룹홈은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老老)케어’의 부담도 덜어준다. 무라타 씨는 “고령화로 인해 치매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의 부담도 커졌다. 소규모 그룹홈은 개인 건강 상태나 증상에 따라 맞춤형 돌봄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그룹홈은 같은 지역 거주자만 입소할 수 있다. 이타바시구 그룹홈의 월 부담 이용료는 밥값 등을 포함해 18만 엔(약 171만 원)가량이다. 한국 장기요양보험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이 월 30만 엔을 지원해 일본 중산층 가정이 이용할 수준으로 비용을 낮췄다.● 치매 카페 만들고, 가족 지원도 그룹홈은 치매 환자가 생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보내도록 돕는다. 야마모토 노리오 메디컬케어 대표는 “그룹홈이 처음 생겼을 땐 입소자 배회 등을 우려한 지역 주민들의 반대도 있었지만, 지금은 ‘지역에 꼭 필요한 시설’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인지증 환자의 행동을 억제하기보단 더 개방적인 환경에서 돌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고령화에 대비해 1990년대부터 치매 정책을 본격 추진했다. 2004년엔 ‘어리석다’는 의미가 담긴 치매를 ‘인지증’으로 바꿨다. 정책 총괄도 후생노동성보다 상위 부처인 내각부에서 맡고 있다. 인지증 카페를 운영해 지역 교류를 활성화하고, 인지증 환자 가족을 통합 지원하는 사업도 추진 중이다. 후생노동성 치매 정책 담당자는 “인지증 환자가 익숙한 지역에서 안심하고 생활하도록 인지증 재택의료 지원 의사 양성, 인지증 초기 집중 지원팀 지원 등을 추진 중”이라고 설명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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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병원에선 불필요한 연명치료 권하기도” 임종 앞둔 환자 돕는 재택의료 [품위 있는 죽음]

    “오늘 기분은 어떠세요? 산소포화도, 혈압은 다 괜찮네요.” 지난달 24일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시 외곽 단독 주택. 방문진료 기관인 홈온클리닉 히라노 구니요시 원장이 치매와 간경변을 앓고 있는 재일교포 김태희 씨(96)의 배를 연신 주물렀다. 2주 전보다 복수(복강 내 물 고임)가 더 많아졌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4년 전 3개월 시한부 진단을 받았던 김 씨와 가족은 집에서 마지막 시간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딸 마채희 씨는 “병원에서도 포기한 상태라 입원은 무의미했다. 무엇보다 집에 가고 싶다는 어머니의 뜻을 존중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고비를 넘긴 김 씨는 현재는 주 3회 주간돌봄센터도 다닌다. 매주 간호사와 요양보호사가 한 번씩 방문해 건강 상태를 확인한다. 23년 전 방문진료를 시작한 히라노 원장은 현재 약 600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이 중 절반은 집에서, 나머지는 요양시설에서 말년을 보낸다. 80, 90대 고령 환자들이 많다 보니 임종을 맞는 환자도 한 주에 5명가량 발생한다. 환자가 위독하다는 연락이 오면 한밤중에도 달려간다. 히라노 원장은 “병원에선 불필요한 연명치료를 권하는 경우가 많다. 집에서 평안한 임종을 맞도록 돕는다”고 했다. 그는 “환자와 가족에게 단순히 ‘연명치료를 중단하겠느냐’ 묻는 게 아니라, 생의 마지막을 누구와 어디서 어떻게 보내고 싶은지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86년 방문진료 수가를 처음 도입한 뒤, 1990년대부터 재택의료가 본격 시작됐다. 의료와 돌봄의 중심을 병원에서 지역사회와 집으로 옮긴 것이다. 전체 병의원의 약 10%에 해당하는 1만4000여 곳이 재택의료기관이다. 일본의 재택의료 활성화는 고령화에 대비하는 측면도 있다. 쓰루오카 고키 일본사회산업대 교수는 “2000년대 초반 초고령사회가 되면 병상 부족, 고독사 문제가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왔다. 집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커졌다”고 설명했다. 이는 불필요한 ‘사회적 입원’을 최소화해 의료비 지출을 낮추는 효과도 있었다. 재택의료를 이용하는 환자 만족도는 높다. 입원비에 비하면 비용 부담도 작다. 올해 기준 임종기 환자가 월 2회 방문진료를 받으면 요양등급과 소득 수준 등에 따라 7260∼2만1780엔(약 6만8400∼20만5000원)을 낸다. 히라하라 사토시 일본재택의료학회장은 “방문진료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1, 2년 동안 별도 프로그램을 이수한다. 암 환자 돌봄, 노년 의학, 치매 돌봄, 소아 재택의료 등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 후생노동성 관계자는 “2040년 85세 이상 인구 급증으로 재택의료 수요는 더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고령자가 익숙한 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의료·간병 서비스를 더 강화해 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사이타마·도쿄=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 (이상 정책사회부) 기자}

    • 2025-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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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모 4명 중 1명 “야간 긴급 상황에 아이 맡길 곳 없어”

    최근 부모 부재중 발생한 화재로 인한 아동 사망 사건이 잇따른 가운데, 초등 방과 후 마을 돌봄 시설을 이용 중인 부모 4명 중 1명은 야간 긴급상황 발생 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곳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보건복지부는 지난달 21일부터 31일까지 전국 지역아동센터와 다함께돌봄센터를 이용 중인 부모 2만5000여명을 대상으로 야간 돌봄 수요를 조사했다. 24일 복지부 발표에 따르면 부모 25.1%는 오후 8시 이후 야간에 긴급하게 돌봄 공백이 발생했을 때 별도 대안이 없다고 답했다.야간 시간 돌봄 공백이 발생하면 대부분(62.6%)은 친척이나 이웃에게 부탁한다고 답했고, 3.1%는 아이돌봄서비스, 5.8%는 지자체 자체 거점 긴급돌봄 시설, 24시간 운영시설 등을 활용한다고 응답했다.부모 3명 중 2명은 오후 8시 이후에도 아이를 맡길 곳이 있어야 한다고 답했다. 돌봄 공백이 발생하는 시간대는 오후 4~7시가 30.1%로 가장 많았고, 오후 8~10시 5.9%, 오후 10~12시 1.5%, 오전 12~7시 0.8% 순이었다. 오후 8시 이후로는 돌봄 수요가 크게 줄었다. 다만 응답자 64.4%는 “야간 긴급 상황 발생에 대비해 아동을 맡길 수 있는 공적 서비스 체계가 필요하다”고 답했다.선호하는 야간 연장 돌봄 방식은 오후 10시까지 돌봄센터 2시간 연장 운영이 41.7%로 가장 많았다. 방문 돌봄(28%), 친척과 이웃 등 지역사회 협력 돌봄(24.1%), 긴급돌봄 거점시설 운영(18.3%) 등이 뒤를 이었다.정부는 6, 7월 부산에서 아동 4명이 잇달아 화재로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국무조정실 주관 ‘부산 아파트 화재 아동사망 사고 대응 범정부 종합대책’을 준비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복지부는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전국 마을돌봄시설 연장돌봄 시범사업’을 확대할 방침이다. 해당 시범사업은 마을돌봄센터를 오후 10시까지 연장 운영하는 것으로, 현재 5500여개 중 218곳에서 시행 중이다.김상희 인구아동정책관은 “야간 긴급상황 또는 늦게까지 생업에 종사하는 분들이 아이들 돌봄에 매번 걱정하시지 않도록 관계 부처와 협력하여 야간 공적돌봄체계 강화방안을 마련하겠다”라고 밝혔다.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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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치의가 3개월마다 면담… 운동-수면 습관도 챙겨 [품위 있는 죽음]

    “팔을 움직일 때 몸이 흔들리지 않도록 허벅지에 힘을 주세요. 함께 외쳐요.” 싱가포르 동부 시메이 지역 주택개발청(HDB) 아파트 단지. 필로티 1층 빈 공간에 화려한 운동복을 입은 할머니 등 주민 45명이 줌바 교실에 참여하기 위해 모였다. 근력과 유연성, 균형감 강화 등 3가지로 나뉜 수업은 1시간 동안 진행됐다. 강사 크리스틴 촉 씨(60)는 “수강생 중 노인이 많아 허벅지 근력을 강화하는 동작을 많이 배치했다”며 “허벅지 근육이 약하면 활동량이 줄고 배변에도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정부는 2023년 5월부터 개인별 건강 계획을 수립하고 건강한 운동과 식습관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 ‘더 건강한 싱가포르(Healthier SG)’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40세 이상 국민과 영주권자가 프로그램에 등록하면 주치의가 배정된다. 가입자는 주치의와 3개월마다 면담하고 운동, 수면 등 생활습관을 관리받는다. 싱가포르는 질병을 예방해서 건강하게 오래 살고 궁극적으로 의료비를 줄이려고 한다. 김성훈 싱가포르경영대(SMU) 경제학과 교수는 “싱가포르인 건강 수명은 남성 73.9세, 여성 76세”라며 “(이미 건강 수명이 길어) 의료비 지출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생활 습관을 개선해 질병을 예방하는 것밖에 없다”고 말했다. 한국인의 건강 수명은 2021년 기준 72.5세다. 정부 건강증진위원회(HPB)가 운영하는 ‘헬시 365(Healthy 365)’ 애플리케이션은 건강한 생활습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헬시 365’ 앱에 가입하면 일단 20싱가포르달러(약 2만1600원) ‘포인트’가 주어진다. 이후 K팝 댄스, 요가, 킥복싱 등 정부가 지정한 프로그램에 참여하거나 식습관과 수면습관을 개선하면 포인트를 받는다. 포인트는 바우처로 교환해 마트 등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다. 현금성 보상에 힘입어 ‘더 건강한 싱가포르’에는 이달 17일 기준 130만 명이 넘게 가입했다. 40세 이상 싱가포르 인구가 220만 명인 점을 감안하면 40세 이상 2명 중 1명이 참여하는 셈이다. 유방암을 앓고 있는 차우 쿡 란 씨(86)는 도보 10분 거리 자택에서 걸어와 줌바 교실에 참여했다. 차오 씨는 “줌바 교실에 참여하기 전에는 다리가 아팠는데, 춤을 추면서 오히려 다리가 좋아졌다”며 “사람들과 함께 운동하면서 혼자 있을 때보다 건강이 좋아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더 건강한 싱가포르’는 노인 일자리도 창출한다. 촉 씨도 이 프로그램을 통해 줌바 강사로 일하면서 ‘제2의 인생’을 살게 됐다. 그는 평일에는 병원에서 의료 데이터 관리자로 근무하고 주말에는 줌바 강사로 활동한다. 5년 전 줌바를 배운 뒤 무릎 통증이 사라져 아예 강사 자격증까지 취득했다. 촉 씨는 “줌바 수업 1시간을 할 때마다 75싱가포르달러(약 8만 원)를 정부로부터 받고 있다”며 “운동을 통해 이웃이 건강해질 수 있도록 돕는 게 기쁘다”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싱가포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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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매시설 아닌 집에서 여생 보내게… 아파트에 병원 연계 센터 [품위 있는 죽음]

    “자밀라, 왼팔을 주세요. 요즘은 어떤 TV 프로그램을 주로 시청하나요.” 싱가포르 동부 베독 지역 주택개발청(HDB) 공공아파트. 간호사 셰릴 샤즈와니 빈테 자카리아 씨가 치매를 앓고 있는 자밀라 씨(80) 자택을 방문해 혈압을 재며 이같이 물었다. 자밀라 씨는 3년 전 치매 진단을 받았지만 병원이나 시설에 들어가지 않고 자택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다. 그 대신 아파트 단지에 설치된 ‘활동적 노년 센터(Active Ageing Centre·AAC)’ 소속 간호사 등이 찾아와 의료와 돌봄 서비스를 제공한다. 지난해 기준 214개 AAC가 싱가포르 전역에서 운영 중이다. 한국의 노인복지관이 주로 여가활동 중심으로 운영되는 반면에 싱가포르 AAC는 병원과 연계해 의료, 식사, 청소 등 다양한 서비스를 지원한다.● 의료-식사-청소 모두 제공하는 동네 돌봄 센터 싱가포르는 2009년 통합돌봄청(AIC)을 설립하면서 노후에도 입원하지 않고 자택에서 거주할 수 있도록 AAC와 지역사회 중심의 ‘원스톱’ 돌봄 체계를 구축했다. 자밀라 씨처럼 혼자 사는 치매 환자도 자택에서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을 마련한 것이다. 한국은 내년 3월 의료·요양 등 지역 돌봄의 통합지원에 관한 법률(돌봄통합지원법)이 전국적으로 시행된다. 두 국가 모두 2030년 국민 4명 중 1명이 65세 이상 노인일 것으로 전망돼 고령화 속도는 비슷하지만 싱가포르가 17년가량 일찍 대비하고 있는 셈이다. 싱가포르 정부는 AAC 확대 및 지원을 위해 2024∼2028년 9억4000만 싱가포르달러(약 1조227억 원)를 투입할 계획이다. 돌봄이 필요한 노인은 직접 신청하거나 병원을 통해 의뢰하면 AAC에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평가해 서비스를 제공한다. 이 과정에서 AIC는 지역사회에 마련된 여러 돌봄 서비스와 연계하고 중복 지원을 방지하는 등 조정자 역할을 맡는다. 자밀라 씨는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타이화콴자선재단 산하 베독 AAC가 방문간호, 도시락 배달, 병원 진료 동행, 교통 지원, 방문 요양 서비스 등을 제공한다. 이와 별도로 AAC와 연계된 후원 단체는 각종 식품을 지원한다. AAC가 노인들의 건강과 일상생활을 모두 관리해 치매를 앓으며 혼자 사는 노인도 자택 생활이 가능하다. 자밀라 씨는 과거 화장실이 아닌 곳에 배뇨할 정도로 건강상태가 좋지 않았지만 AAC의 도움을 받으며 현재는 해당 문제가 해결됐고 보행기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증세가 호전됐다. 베독 AAC는 창이종합병원 간호팀과 함께 지역 보건지소를 운영한다. 창이종합병원 의사가 매주 방문해 노인 건강 상담과 진료를 한다. 복용하는 의약품을 가져오면 겹치는 성분이 있는지 따져 조정하고 다른 병원으로 연계해야 하는 경우 진료의뢰서를 써준다. 최근 퇴원한 노인을 위해 낮 시간 동안 한시적으로 돌보는 일시 보호소도 운영한다. 보호자가 출근한 시간대에 머물며 간호사들의 돌봄을 받을 수 있다. 식사, 빨래, 목욕 서비스도 제공한다. 베독 AAC를 운영하는 타이화콴자선재단 소속 의사 탕문렁 씨는 “병원에 입원하면 환자가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도 인건비가 발생하지만, 자택에 머물면 환자가 필요한 것만 AAC가 지원하면 된다”며 “지역사회가 건강 관리를 책임지면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웃과 연결해 사회적 비용 줄이고 고독 방지AAC는 오전 6시부터 오후 10시까지 보드게임, 치매환자를 위한 식습관 교육, 디지털 문해력 교육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택시 기사로 일하다 은퇴한 초 추잉 씨(80)는 매주 3, 4일 AAC 등을 찾아 거동이 어려운 노인의 휠체어를 밀어준다. 이른바 ‘마이크로 일자리’를 갖고 있는 것이다. 병원 진료가 있으면 동행한다. 초 씨는 “아직 나 자신은 잘 돌보고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어서 기쁘다”고 말했다. 싱가포르가 AAC를 중심으로 돌봄 체계를 구축하는 이유는 궁극적으로 지역사회 자원을 연결하기 위해서다. AAC를 통해 이웃이 만나고 교류하면 고독 문제도 해결할 수 있고 사적 도움도 활성화되기 때문이다. 시티 아이샤 빈테 모하맛 유누스 베독 AAC 센터장은 “노인들은 대부분 한 동네에 오래 살기 때문에 이웃들과 가깝게 연결되길 원한다”며 “AAC를 통해 연결된 노인들이 서로를 돕는 체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노후에 병원이 아닌 자택에서 지내는 것은 개인의 행복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폴린 스트라우겐 싱가포르경영대(SMU) 성공적 노화를 위한 연구소장(사회학과 교수)은 “노후에도 병원에 누워 있지 않고 살던 곳에서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다면 사람들은 노화를 겁내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싱가포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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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민 10명중 7명 “영주권 있는 외국인은 아동·생계급여 줘야”

    국민 10명 중 7명은 영주권을 가진 국내 외국인 가정에 아동 수당과 생계 수당을 지급하는 데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0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따르면 보건복지포럼 7월호에 실린 ‘이주민 사회권과 복지정책에 대한 내국인 태도’ 보고서에서 국민의 79.7%가 국내 거주하는 영주권자 외국인의 자녀에게 아동수당 지급에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72.5%는 영주권자에게 생계급여를 지급하는 것에 찬성했다. 두 복지급여를 결혼이주민 가정에 지급하는 것에 대해서도 각각 국민의 74.2%, 60.9%가 동의한 것으로 나타났다.현행법상 외국인은 아동수당 지급 대상이 아니다. 아동수당은 만 8세 미만 한국 국적의 모든 아동에게 국가가 1인당 10만 원 씩 지급하는 제도다. 난민 인정자, 특별 기여자 등 일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외국인이라면 급여 대상에서 제외된다.생계급여도 마찬가지다. 국내 거주 외국인은 원칙적으로 생계급여 수급 권한이 없다.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중 대한민국 국민과 결혼해, 본인 또는 배우자가 임신 중이거나 대한민국 국적의 미성년 자녀를 양육하는 등 일부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받을 수 있다.김기태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보장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한국에 정주할 가능성이 큰 외국인들에게 복지급여를 지급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은 것으로 추정된다”고 분석했다.한편 이주민의 인권 보장 수준에 대한 내국인의 인식은 4점 만점에 2점대로 ‘별로 존중되지 않는 편(2점)’과 ‘약간 존중되는 편(3점)’ 사이인 것으로 나타났다. 유형별로는 건강권이 2.86점으로 상대적으로 가장 높았고, 주거권 2.7점, 노동권 2.59점, 복지수급권 2.58점 순이었다. 이주민의 복지급여 수혜조건에 대한 질문에는 ‘최소 1년 근무·세금 납부 시 인정이 가능하다’는 응답이 49.2%로 가장 많았다. ‘국적 취득 후 가능하다’는 응답은 32.6% 였다. 김 연구위원은 “사회통합을 위해 이주민의 접촉 확대, 내국인 취약계층에 대한 정책적 배려, 차별적 복지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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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희귀병 고통속 단식 존엄사 선택한 모친… 손 놓아주는 것, 그것도 사랑의 한 부분” [품위 있는 죽음]

    희귀병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 곡기를 끊고 삶을 마무리한 어머니. 그 선택을 곁에서 지켜본 의사 딸은 어머니의 마지막 길을 기록해 책 ‘단식 존엄사’를 펴냈다. 대만 중산대 의대 재활의학과 비류잉 교수 이야기다.스스로 물과 음식 섭취를 중단해 사망에 이르는 단식 존엄사는 ‘VSED(Voluntarily Stopping Eating and Drinking)’라는 용어로도 불린다. 국내에서는 낯설지만 미국과 네덜란드에서는 일부 시행되고 있다.비 교수의 어머니는 64세 때 소뇌에 이상이 생겨 사지가 점점 마비되는 희귀병인 소뇌실조증을 진단받았다. 이후 병세가 악화되며 고통이 심해지자 단식 존엄사를 결심하고 2020년 83세의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대만 타이베이에서 만난 비 교수는 “어머니의 마지막 가는 길을 통해 어떤 종류의 사랑은 손을 내려놓는 것이라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어머니는 어떻게 단식을 결심했나.“평소 어머니는 억지로 치료해 고통을 연장하지 말자는 말씀을 자주 했다. 2019년 병세가 빠르게 악화되면서부터는 더 이상 삶의 의미가 없고 어떻게 해야 잘 떠날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그즈음에 어머니가 일본 의사가 단식 존엄사에 대해 쓴 책을 읽고 단식으로 삶을 마무리하겠다고 선언했다. 어머니가 20년 동안 병으로 고통받는 걸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 때문에 그 결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물과 음식을 끊어 죽음에 이르는 것이 실제로 가능한가.“물론 본인의 강한 의지와 가족의 지지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일반인에게 굶어 죽는 아사는 고통스럽지만 임종을 앞둔 이에게는 다르다는 점이다. 단식 존엄사를 선택하는 고령의 중증 질환자는 일반인처럼 허기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어머니가 21일 동안 단식했다. 그 시간은 어떻게 보냈나.“처음 10일 동안에는 음식 섭취량을 천천히 줄이면서 죽과 삶은 채소, 연근물을 드셨다. 11일째부터는 고형 음식을, 13일째부터는 연근물을 끊었다. 갈증이 나면 면봉에 물을 묻혀 입술을 축이는 정도였다. 21일째 어머니는 편안한 얼굴로 돌아가셨다.”―단식 존엄사는 대만에서 논란의 대상이다.“대만 호스피스 학회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지지하지 않는다. 자살로 보는 시각도 있다. 하지만 미국과 네덜란드 등에서는 단식 존엄사를 하기 위한 표준 가이드라인도 마련돼 있다. 죽음의 방식은 환자가 최종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식 존엄사에 대한 더 많은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존엄한 죽음을 맞이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죽음은 누구나 겪는 마지막 길이다. 품위 있게 삶을 마무리하고 싶다면 반드시 미리 준비해야 한다. 가족과 일상적으로 죽음에 대한 서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은지 논의해야 한다. 그러면 죽음에 대한 공포를 최대한 내려놓을 수 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타이베이·신베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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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만, 병동 곳곳 ‘연명의료 내가 결정’ 문구…치매환자도 선택권 [품위 있는 죽음]

    ‘연명의료에 대한 결정은 내가 스스로 합니다.’대만 신베이시 단수이구 매카이 메모리얼 병원. 호스피스 병동 곳곳에는 이렇게 적힌 안내판이 걸려 있었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겠다는 뜻을 미리 밝히는 사전돌봄계획(Advance Care Planning·ACP) 등록을 안내하는 문구다. 팡춘카이 호스피스 센터장은 “대만은 국민이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 왔다”고 설명했다.대만은 아시아 최초로 2000년 연명의료결정법을 제정했다. 환자가 무의미한 연명치료를 받지 않을 권리를 한국보다 폭넓게 보장한다. 죽음을 앞둔 환자를 돌보며 고통을 적절히 완화시키는 호스피스도 잘 정착돼 있다. 2021년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발표한 ‘임종 및 돌봄 전문가 평가’에서 대만은 81개 평가 대상국 중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내 생명은 내가 결정한다” 인식 자리 잡아“대만은 20여 년 전부터 ‘내 생명은 내가 결정한다’는 공감대 속에서 무의미한 연명치료 중단을 사회적으로 논의해 왔습니다.”대만 위생복리부(보건복지부) 류위핑 의료부 국장은 대만의 연명의료 관련 법과 제도를 소개하며 이렇게 말했다. 류 국장은 “반대하는 의견도 물론 있었지만 죽음의 방식을 선택하는 건 인권 문제라는 인식이 더 컸다”고 덧붙였다.대만에서 논의가 본격화된 계기는 이른바 ‘왕샤오민’ 사건이다. 1963년 고교생이었던 왕샤오민이 교통사고로 식물인간이 되자 그의 어머니가 1982년부터 정부 등에 딸의 안락사를 허용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를 계기로 사회적 논의가 시작됐고 2000년 ‘안녕완화의료조례’, 2019년 환자 자주 권리법이 시행되면서 현재 제도가 완성됐다.대만에서는 병원에서 의료진과 상담한 뒤 ACP를 등록하면 향후 △말기 환자 △비가역적인 혼수 상태 △영구적인 식물 상태 △극중증 치매 △그 밖에 고통을 참기 어렵거나 질병이 회복될 수 없고 현재 의료 수준으로는 적절한 해결 방법이 없는 상황이 왔을 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반면 한국은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작성해도 ‘사망 직전’일 때만 연명의료 중단이 가능하다. 대만이 한국보다 연명의료 중단 범위를 훨씬 넓게 인정한다.등록 절차도 차이가 있다. 한국에서는 보건소나 민간 기관에서 담당 직원과 간단한 상담을 받은 뒤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등록하지만, 대만에서는 의료진과 1시간가량 상담한 뒤 ACP를 등록한다. 국립 대만대병원 호스피스 병동의 청사오이 가정의학과 교수는 “ACP는 전국 280개 병원에서 상담을 통해 등록할 수 있다. ACP에 등록하면 해당 정보가 건강보험 카드에 등록되고 이후 모든 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를 확인할 수 있다”고 말했다.이른바 ‘웰다잉(Well-Dying)’ 관련 민간 움직임도 활발하다. 비영리단체(NPO) 대만 호스피스 재단에서는 무료 전화 상담을 한다. 재단의 창샤팡 이사장은 “ACP 등록을 하는 과정에서 걱정되고 고민되는 점에 대해 누구든 전문 간호사와 상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대상 질환에도 제한 없어대만이 품위 있는 죽음을 위해 노력하는 또 다른 방법은 호스피스 활성화다. 대부분 암 환자만 호스피스를 받는 한국과 달리 대만은 호스피스 대상 질환에 제한이 없다. 매카이 메모리얼 병원의 호스피스 병동도 절반가량이 암 환자였고, 나머지 절반은 암이 아닌 다른 질환 환자들이었다.병동에서 만난 쑨보펀 씨(68)도 입원한 96세 노모와 평온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쑨 씨는 “3년 전 투병 중이던 아버지의 상태가 급작스레 악화돼 모르핀을 맞다가 돌아가시는 걸 보면서 어머니만큼은 편안하게 보내드려야겠다고 다짐했다”며 “이곳의 편안하고 따뜻한 분위기에서 어머니가 떠날 수 있다는 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병상에 누운 노모는 담당 의사가 지나가자 손짓을 하며 천천히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팡 센터장은 “사람은 숨이 멎어 관이 닫힐 때 비로소 그 인생이 정의된다는 말이 있다”며 “호스피스는 인생의 가장 끝에서 마지막 길을 함께 돕는 일”이라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타이베이·신베이=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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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민경 “임금-안전 등 성별 격차 우선 해소”

    원민경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사진)가 18일 여성가족부의 성평등가족부로의 확대·개편 과정에서 ‘성별 격차’를 우선 해결하겠다고 밝혔다.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해서는 “필요성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원 후보자는 이날 오전 서울 서대문구 한국청소년활동진흥원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에 처음 출근하며 “(여가부의) 존폐 논란과 장기간 장관 부재로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됐을까 우려된다”며 “사회 곳곳에서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분들의 권익 신장을 위해 일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사회의 성평등 수준은 개선됐지만 성별 임금 격차, 젠더 폭력에서 느끼는 안전 격차, 돌봄과 가사 노동에서의 격차, 성평등에 대한 청년 세대의 인식 격차 등 격차가 여전히 심각하다”며 “격차 해소를 우선순위에 두고 정책을 진행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성별, 지역, 종교, 성적 지향 등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고 불합리한 차별의 피해자를 구제하도록 한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대한 입장도 밝혔다. 원 후보자는 “사회적 약자의 인권을 보호할 구체적인 수단이 마련될 수 있다는 점에서 필요성과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어 “다만 법 제정에 대한 이해가 달라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어 토론의 장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방성은 기자 bbang@donga.com}

    •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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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환자들 돌봄은 기본… 남겨진 가족들 마음건강도 챙겨 [품위 있는 죽음]

    “내가 평생을 찾아 헤맨다 해도 당신 같은 사람은 다시는 찾을 수 없을 거예요.” 지난달 14일 영국 런던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정원. 높이 3m가 넘는 거대한 나무 앞에서 로이 벤슨 씨(81)가 손에 종이를 쥐고 자신이 쓴 시를 한 자씩 읊었다. 벤슨 씨는 호스피스에서 아내와 사별한 뒤 느낀 감정을 담아 시를 썼다. 행사에 참여한 30여 명의 유가족은 때로는 눈물을 글썽이고 때로는 웃으며 벤슨 씨가 낭독하는 시를 들었다. 유가족들은 세상을 떠난 가족이 머물던 호스피스를 찾아 고인을 기리면서 함께 추억했다. 호스피스는 유가족을 공동체의 일부로 보고 사후에도 유가족에 대한 정서적 지원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나무에 리본을 매는 행사도 열렸다. 정원에 놓인 나무에는 300개가 넘는 리본이 흩날렸다. 리본에는 ‘나는 너를 정말 사랑해’ ‘우리는 잘 지내고 있어’ 등의 문구가 적혔다. 이날 행사에는 20년 전 호스피스에 머무른 가족을 떠나보낸 이도 참석했다. 호스피스 곳곳에는 쪽지와 함께 작은 인형도 놓여 있었다. 쪽지에는 ‘내가 당신을 미소짓게 만든다면 집에 들고 가 달라. 당신이 슬프다면 나를 꼭 잡고 있어 달라. 그러면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적혀 있었다. 3년 전 이곳에서 아내와 사별한 애덤 분 씨(61)는 “아들은 이곳에서 정신건강 상담을 꾸준히 받고 있다”며 “가족을 잃은 사람들끼리 슬픔을 나누면서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일종의 공동체에 가입한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매년 1000명이 넘는 유가족이 고인을 애도하기 위해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방문한다. 호스피스는 유가족들이 찾아오는 기념행사 외에도 정기적인 애도 모임을 통해 유가족 간 교류 기회를 제공한다. 심리 상담 프로그램 또한 제공된다. 피오나 워킹쇼 유가족 지원 책임자는 “유가족 돌봄은 우리 모두의 일”이라며 “유가족들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돕고, 또 슬픔에 대비할 수 있게 하는 모든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현대 호스피스 운동을 제안한 영국 간호사 시실리 손더스는 ‘총체적 고통’이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환자와 가족들의 고통을 단일한 고통으로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신체적, 심리적, 사회적, 영적인 차원에서 고통을 다뤄야 한다는 의미다. 영적 고통은 종교와 무관하게 자아와 관련한 실존적인 고민에서 비롯된 고통에 가깝다. 호스피스 소속 목사인 앤드루 굿헤드 씨는 “총체적인 고통의 관점에서 최대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이러한 고통을 해소할 수 있는 ‘총체적인 돌봄’을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호스피스에서도 유가족에 대한 정서적 지원은 매우 중요하다. 프린세스 앨리스 호스피스의 지역사회 돌봄 담당자 레이철 바삭 씨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슬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마련하는 게 애도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며 “슬퍼하는 이들과 꾸준히 소통하면서 정서적, 재정적 지원을 연결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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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집에 있는 듯” 호스피스 원조 英, ‘임종-돌봄 평가’ 1위 [품위 있는 죽음]

    지난달 14일 영국 이셔시 프린세스 엘리스 호스피스. 이곳에 입원 중인 레이철 리베카 씨(60)는 대장암 말기 환자다. 그는 삶의 마지막을 보낼 곳으로 병원, 요양원 등을 살피다 호스피스를 택했다. 호스피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완화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완화의료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와 시설을 가리킨다. 리베카 씨는 “가족에게도 질병과 아픔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못했는데, 이곳에서 임종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게 됐다”며 “집과 가까워서 남편과 자녀들이 자주 방문한다. 마치 집에 있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현대 호스피스 운동은 1967년 영국 간호사 시슬리 손더스가 처음 제안해 시작됐다. 호스피스의 원조국 격인 영국에서는 입원형과 방문형 등으로 연간 30만 명 이상이 호스피스를 이용할 정도로 보편화돼 있다. 2021년 미국 듀크대 연구팀이 발표한 ‘임종 및 돌봄 전문가 평가’에서 영국은 81개 평가 대상국 중 1위를 차지했다. 한국 정부는 지난해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2024∼2028년)을 의결해 호스피스 전문기관을 2023년 188곳에서 2028년 360곳으로 늘리기로 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미래 사회 대비를 위한 웰다잉 논의의 경향 및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응답자의 81.1%는 말기·임종기 환자의 통증 완화 등을 위한 호스피스·완화의료를 이용할 의향이 있다고 답했다. 하지만 국내에서 호스피스를 이용하기는 쉽지 않다.호스피스 센터서 통증치료-요가… 마지막 순간까지 ‘일상’ 누려〈2〉 ‘임종-돌봄’ 평가 1위 英 호스피스가정방문 호스피스 등 30만명 이용… 기부금 등으로 전액 무료로 운영유언장 작성-장례 절차도 도와… “심리적 안정감 찾는데 큰 도움”지난달 14일 영국 런던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암 환자 팜 에릿 씨(91)는 정원이 보이는 1층 식당에서 다른 외래 환자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 에릿 씨는 “매주 한두 차례 찾아와 진료를 받고 통증 관리를 한다. 여기 오면 마음이 편안해져 내가 죽는다는 게 별로 걱정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립샘암을 앓고 있는 마이클 자비스 씨(92)도 “병원 밥이 아닌 일반식을 먹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호스피스는 중세 유럽 여행자에게 숙박을 제공하던 작은 교회를 의미했다. 현대적인 의미에서는 죽음에 가까워진 환자에게 생명의 연장과 완치보다는 현재 ‘삶의 질’에 무게를 두고 죽음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한다. 현대 호스피스 운동을 제안한 영국 간호사 시실리 손더스(1918∼2005)는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에서 환자들이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도왔다.● 생애 마지막 고통 줄이는 의료 서비스 호스피스는 입원과 재택, 외래진료 등의 형태로 서비스가 제공된다.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환자에게는 통증 관리, 약물 투여 등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최대한 줄일 수 있는 의료 서비스가 제공된다. 자궁경부암 환자 퍼트리샤 화이트 씨(91)는 “새벽에 통증이 심할 때도 버튼을 누르면 24시간 상주하는 간호사들이 바로 달려온다”고 말했다. 화이트 씨의 딸 리즐리 씨(60)는 “애초 의료진은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하라고 했지만, 집에서 어머니를 돌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행히 입원했는데 만족도가 높다”고 말했다. 호스피스는 장례 지원, 유언장 작성 등 환자 가족의 장례 관련 절차도 돕는다.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찾아 환자 가족에게 연계하기도 한다. 사회복지사인 베스 퀘시가 씨는 “환자 임종 직전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는 시간을 갖기도 한다”며 “아버지가 죽기 직전 딸의 결혼식에서 틀어줄 영상을 녹화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호스피스 운영에는 자원봉사자가 다수 참여한다. 말기 전립샘암 환자 딜리프 바르마 씨(66)는 런던 자택에 거주하며 최근 4년간 세인트 크리스토퍼 호스피스를 찾아 자원봉사를 하고 있다. 바르마 씨는 “환자들이 임종까지 나 자신으로 살 수 있게 하는 ‘존엄한 죽음’을 제공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다양한 죽음에 대해 미리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물리적인 치료나 재활뿐만 아니라 다양한 복지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서리주 이셔시 프린세스 앨리스 호스피스에는 ‘웰빙 센터’가 있다. 이곳에서는 환자와 환자 가족이 아로마 세러피, 요가, 보드게임 등을 즐기며 심리적 안정을 취한다. 환자들이 물리치료를 받거나 근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체육관도 설치됐다. 소피아 모나스티리오티 웰빙 매니저는 “누구에게나 (아프기 전) 일상을 살게 하는 건 심리적 안정감을 찾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존엄한 죽음에 대해 토론하는 문화 필요”영국 호스피스 협의체 호스피스UK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약 220개의 독립 호스피스가 운영되고 있다. 호스피스 의료진이 가정에 방문해 진료하는 가정 방문형 호스피스 사례도 많아 호스피스 이용자는 약 30만 명에 달한다. 이용자들은 전액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한다. 운영에 필요한 자금은 기부금, 자선 활동 등을 통해 마련한다. 전문가들은 어떤 죽음이 ‘존엄한 죽음’인지에 대해 미리 활발하게 토론하는 문화를 통해 죽음에 다양한 선택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영국에서는 2009년부터 죽음과 임종에 대한 대화를 장려하는 캠페인인 ‘다잉 매터스 캠페인’을 개최됐다. 찰리 킹 호스피스UK 대외협력이사는 “많은 사람들은 죽음과 상실에 대해 말하기 꺼리지만 두려움을 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퀴즈, 광고 등을 만들어 존엄한 죽음과 관련해 대화할 수 있는 캠페인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본 기획물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런던·이셔=특별취재팀▽팀장 박성민 기자 min@donga.com▽조유라 전채은 김소영 박경민 방성은(이상 정책사회부)}

    • 2025-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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