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선희

박선희 기자

동아일보 문화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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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박선희 기자입니다.

teller@donga.com

취재분야

2026-01-08~2026-02-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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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환 “녹차사업 성공해 국민기업 됩시다”

    1979년 어느 날, 서울 용산의 본사 사옥에서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 주재의 긴급회의가 열린다. 신규 사업에 관한 논의였다. “차 사업을 하고 싶소. 녹차 사업이오. 당장 돈이 벌리는 사업이 아니란 건 누구보다 잘 알아요. 당분간 돈과는 상관없겠지만 성공한다면 태평양은 모든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 이미지를 얻을 것이오.” 그는 해외 출장을 다닐 때마다 줄곧 그 나라의 식물원을 찾으며 식물과 인간, 문화가 만날 수 있는 장소를 직접 일구고 싶다는 꿈을 품었다. 녹차 사업은 그에게 돈 버는 사업이 아니었다. 오래 꿈꿔 온 문화 사업이었다. 녹차는 우리의 문화와 전통 그 자체였다. 그는 1961년부터 국내에서 식물을 재배할 여러 방안을 모색하던 중 그 분야에 남다른 열정을 갖고 있던 제주 농업학교 교사 허인옥 씨를 만났다. 허 씨와 함께 특용작물 재배 연구부터 차에 대한 의견을 나누면서 차 사업에 대한 소망은 점점 구체화됐다. 농화학을 전공한 서항원 이사를 회사 책임자로 정하고, 후에 일본 유학을 마치고 제주대 교수로 재직하게 된 허 씨와 연락을 취해 녹차 사업은 첫 삽을 뜨게 된다. 1979년 한라산 남서쪽 중턱에 위치한 도순다원의 시작이었다. 개간 작업을 시작하면서 장원은 1970년 초 화장품 원료 재배를 위해 전라도 화순 농장을 함께 일궜던 김원경 씨에게 실무를 맡겼다. 예상했던 것이지만 개간은 쉽지 않았다. 흙 대신 돌덩이만 가득했던 황무지에서 식수도 구하기 힘들어 물탱크를 설치하기 위해 손으로 부수며 땅을 파고, 퇴비를 구하기 위해 한여름에 오물 넘치는 양계장을 드나들었다. 1983년에 시작된 서광다원의 개간은 훨씬 힘들었다. 제주도에서 단 한 번도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황무지인 곶자왈에 터를 닦아야 했다. 제주를 잘 아는 전문가 박문기 씨를 찾아 도움을 청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밤이면 촛불을 켜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었다. 퇴비로 쓸 돼지 똥을 구하기 위해 아예 사육까지 해 가면서 공을 들였다. 그해 드디어 첫 찻잎을 수확하는 성과를 올린다. 태평양은 그해 이곳에서 딴 찻잎으로 ‘한라진수’, ‘삼다진수’, ‘설록 티백’ 등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한다. 2000년대 하와이에 휴양차 머물며 파인애플 박물관을 둘러본 그는 국내에도 녹차박물관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들인 서경배 대표는 병중인 아버지의 간곡한 의지를 알아차린다. 녹차 사업은 창업주의 오랜 신념과 뚝심에서 시작되고 지속된 문화 사업이었다. 2001년 9월 남제주군 안덕면의 ‘오설록 티뮤지엄’은 그렇게 문을 열었다. 2003년 1월 9일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는 화장품 사업을 끝까지 지키고, 어려운 이웃을 살펴 달라는 뜻을 남기고 그리운 어머니를 만나기 위한 먼 길을 떠났다. 그가 살아온 삶은 마치 그릇처럼 시대와 사회와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나라 잃은 조선의 아들로 태어나 혼란스러운 해방정국 속에서도 개성상인의 삼도훈(三道訓)을 따르며 오늘의 아모레퍼시픽을 키워 낸 그는 늘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깊이 고민했다. ‘인류를 아름답게, 사회를 아름답게’라는 기업 슬로건에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고 싶었던 그의 오랜 꿈과 집념이 그대로 담겨 있다.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이란 다짐 역시 그런 바람의 또 다른 표현이었을 것이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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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세계, 800억대 차명주식 이명희 회장 명의 전환

    신세계그룹은 임직원 명의로 되어 있던 800억 원대 규모의 차명주식을 이명희 회장의 실명 주식으로 전환했다. 금융감독원은 공시 위반 사실을 확인하고 제재 수위 검토에 나섰다. 신세계그룹은 6일 증시 마감 이후 그동안 논란이 돼 왔던 전현직 임직원 명의의 계열사 주식 37만9733주를 이 회장 명의로 전환한다는 정정공시를 했다. 실명으로 전환된 주식은 신세계푸드 2만9938주, 신세계 9만1296주, 이마트 25만8499주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따지면 총 828억 원에 해당한다. 이번 실명 전환으로 인해 이 회장의 지분은 신세계에서 0.92%, 이마트에서 0.93%, 신세계푸드에서 0.77% 늘어나게 됐다. 신세계그룹의 차명주식은 5월 국세청의 이마트 세무조사 과정에서 포착됐다. 국세청은 이후 신세계그룹 전 계열사를 대상으로 조사를 확대해 4일 마무리했다. 신세계 측은 “20∼30년 전에는 관행적으로 경영권 방어 차원에서 주식을 명의신탁한 사례가 많았다”며 “이번에 남아있던 주식을 전부 실명 전환했기 때문에 차명주식은 한 주도 남아 있지 않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감원 관계자는 “신세계그룹이 차명주식 보유 사실을 인정하고 정정공시를 했기 때문에 공시위반에 대한 별도의 조사는 필요하지 않다”며 “공시를 위반한 기간과 지분, 투자자에게 끼친 영향 등을 판단해 제재 수위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공시 의무를 위반한 법인은 주의, 경고 또는 수사기관 통보 및 과징금 부과 등의 제재를 받을 수 있다. 이번에 드러난 신세계그룹의 차명주식은 전체 주식 중 1% 미만으로 주의, 경고 등의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크다. 박선희 teller@donga.com·신민기 기자}

    • 2015-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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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 대륙시장 열린다” 선견지명… 수교후 현지공장 세워 본격 진출

    ‘우보천리’라는 말이 있다. 소걸음으로 천리 길을 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천리 먼 길을 가려면 소걸음처럼 긴 호흡으로 걸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지의 나라 중국 시장을 개척하던 시절, 서성환 당시 태평양 회장이 그랬다. 1976년 덩샤오핑의 등장으로 중국 내 이념 대결이 사라지고 실용의 시대가 열렸다. 세계 기업들이 앞다퉈 달려갔다. 중국은 생산공장으로도 소비시장으로도 매력적인 곳이었다. 그 역시 1980년대 후반이 되며 중국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임원들에게 개방에 대비해 두라고 여러 번 당부했다. 국교가 정상화되기 이전이었던 1990년대 초반부터 홍콩과 대만에 직원을 파견했다. 사전에 중국 진출을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얼마 있지 않아 예상대로 중국과의 수교가 이뤄졌다. 하지만 사업 진출은 쉽지 않았다. 화장품은 다른 품목보다 규제 장벽도, 관세도 높았다. 방법은 현지에 생산 공장을 설립해 시장에 진출하는 것뿐이었다. 조사 팀을 파견해 검토한 결과, 상하이 진출이란 답이 나왔다. 상하이는 경제와 선진 문화의 중심이었으므로 세계 각지의 화장품 회사들도 일제히 상하이에 합작법인을 세우거나 생산 공장을 건립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생각이 달랐다. “상하이 말고 봉천(펑톈)으로 진출하는 게 좋을 것 같다.” 봉천은 선양의 옛 지명이다. 그가 징용됐을 당시 신의주를 거쳐 선양을 통과하는 강행군을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선양을 지목한 이유가 단지 과거 기억 때문은 아니었다. 이미 베이징이나 상하이 같은 대도시는 시세이도나 크리스티앙디오르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시장을 선점한 뒤였다. 반면 중국 동북 3성의 중심이 되는 선양은 상대적으로 경쟁사들의 관심 밖에 있어 안정적 진입이 가능하리라 생각했다. 중국 심장부에서 사업을 하기 전에 시장을 이해하는 마케팅 학습장으로 이렇게 적당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적중했다. 처음부터 상하이로 들어간 기업들이 어려움을 겪은 반면 태평양은 상대적으로 중국에 대해 훨씬 깊이 알아가기 시작했다. 선양에 진출한 태평양은 동북 지역 최대 미용학교인 보암실업총공사와 1994년 2월 선양 경제기술개발구 안에 ‘태평양 보암화장품유한공사’를 설립하고 제품을 출시한다. 초기에는 판매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모레 화장품 한 세트의 값이 중국에서는 쌀 한 가마니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하지만 그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마케팅을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태평양은 선양 중싱백화점을 비롯해 10여 곳의 백화점에 입점하는 데 성공한다. 2년의 시간이 흐른 뒤에야 서서히 확장의 물꼬가 트이기 시작했다. 선양에서의 사업이 안정화되자 태평양은 거점을 하나둘씩 확대해 1995년에는 다롄에, 1996년에는 창춘과 하얼빈에 진출했다. 국내에서 숨 가쁘게 달려왔던 태평양은 중국에서는 서서히 느린 걸음으로 움직였다. 굳이 지름길을 찾지 않고 서두르지도 않았다. 1990년대가 다 갈 때까지 장원과 태평양은 중국 대륙의 중심이 아닌 한 모퉁이에서 언젠가 타오르게 될 꿈의 불씨를 차근차근 피워 나갔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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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비세 쉿!” 속으로 웃는 명품보석

    정부가 명품 가방과 시계 등에 깎아줬던 개별소비세를 원상 복구했지만 샤넬, 에르메스, 카르티에, 반클리프 아펠 등 해외 명품 보석 업체들은 여전히 소비자에게 가야 할 혜택을 가로채며 ‘어부지리’ 효과를 누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개별소비세 원상 복구 항목에서 귀금속과 모피는 제외됐기 때문이다. 5일 업계에 따르면 고가(高價)의 명품 보석을 판매하는 샤넬, 에르메스, 카르티에, 반클리프 아펠, 쇼파드, 피아제 등 다수 업체들은 개별소비세가 인하됐음에도 제품 가격을 내리지 않고 있다. 카르티에, 반클리프 아펠 등 상당수 명품 브랜드를 보유한 리치몬트코리아 측은 “본사 가격 정책에 대해 공개할 수 없고 가격 인하 계획 역시 없다”고 밝혔다. 주로 혼수 예물이 많은 이 브랜드들은 반지나 목걸이가 한 점에 수백만 원이다. 결혼반지로 인기인 카르티에 러브링 원다이아는 240만 원, 여성들이 선호하는 반클리프 아펠의 알함브라 목걸이는 320만 원으로 8월 말 개별소비세 인하 전과 같은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다. 한 백화점의 명품관 담당 바이어는 “쉽게 떠올릴 수 있는 대부분의 명품 보석 가격이 그대로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에르메스, 샤넬 등의 명품업체들은 이번 개별소비세 원상 복구로 가방이나 시계에서 받는 세금 혜택은 사라졌지만 함께 판매하고 있는 반지, 팔찌, 브로치 등 보석 상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세금 혜택을 받고 있다. 개소세 정책이 품목별로 적용되기 때문이다. 이 업체들 역시 세금 혜택을 반영해 가격을 인하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답을 피했다. 정부가 3일 개별소비세 인하 효과가 없는 가방 시계 가구 등의 품목에 대한 세제 혜택을 취소하면서도 보석을 남겨둔 이유는 이 분야에서 가격 인하효과가 일부 있었다는 판단과 함께 금값 및 물가 인상에 따라 과세기준 금액을 높여달라는 국내 귀금속 업계의 요구를 반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비세 부과대상이 되는 고가 제품을 판매하는 주요 업체들이 정책 의도대로 움직이지 않아 해외 업체들의 배만 불리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한 명품업계 관계자는 “명품 보석 제품은 금 시세 같은 원자재 값보다 디자인, 세공기술 등에 중점을 두고 고가 마케팅을 하는 시장”이라며 “가격이 오르면 올랐지 내려갈 일은 없다”고 말했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엉뚱한 업체들만 혜택을 챙겨가는 상황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개소세 부과범위를 축소해줬던 품목 중 일부는 원상 복구하고 일부는 남겨둔 희한한 형태의 이번 정책은 사치품 소비로 경기를 살리겠다는 정부의 근시안적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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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자의 눈/박선희]‘소비자 무시’ 명품업체의 비뚤어진 콧대

    한국인의 각별한 사랑을 받고 있는 이른바 ‘명품’ 업체들은 사실 기자 입장에서는 불통기업이다. 개별소비세가 축소된 상황에서 가격을 오히려 올려 받는 업체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취재하기 위해 해당 기업에 확인을 요청했을 때도 납득하기 어려운 반응과 맞닥뜨려야 했다. “판매가는 회사 기밀(?)”이라거나 “인상이 아니라 조정”이란 궤변도 있었고 불과 얼마 전 이뤄진 가격 인상을 “일일이 기억 못 한다”고 잡아떼기도 했다.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한 업체는 수십 통 전화하고 문자메시지를 남겨도 끝내 답변을 거부했다. 샤넬, 크리스티앙디오르 등 최근 가격을 기습적으로 올린 일부 업체들이 집중적으로 언급됐지만 사실 다른 명품 업체들이라고 해서 비난을 피해 갈 수 있는 건 아니다. 개별소비세 인하로 얻은 혜택을 소비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자신들이 ‘꿀꺽’한 것 자체가 시장과 소비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조차 없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해외 명품 업체들은 유독 한국에서는 고가(高價) 정책에 집착한다. 연례행사처럼 한 해에 2, 3차례씩 기습적으로 가격을 올리면서도 인상 관련 내역은 공개하지 않는다. 똑같은 모델의 가방 가격이 연초보다 50만 원 넘게 올라 있어도 단골 핑계인 환율이나 원가 상승을 이유로 내세운다. 물론 환율과 원가가 떨어졌다고 값을 내리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막무가내 영업’은 한국에서는 고가의 배짱영업을 해도 제품이 팔린다는 걸 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한 유통 전문가는 “자신들의 제품을 아껴주는 소비자와 그 시장을 대놓고 무시하는 기만적 행태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부는 이런 업체들에 두 달간 ‘알짜배기’ 세금 혜택을 준 셈이다. 뒤늦게라도 정부가 해외 명품 업체들의 행태를 알아차리고 세금을 되돌리기로 한 것은 다행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한국에서 소위 ‘명품’이라 불리는 업체로서 보여줘야 할 최소한의 역할에 대한 고민 역시 뒤따라줬으면 한다. 이들을 고객을 존중할 줄 아는 기업으로 만드는 것은 이제 소비자들의 몫으로 남았다. 박선희·소비자경제부 teller@donga.com}

    • 201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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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금융-의약 사업 다각화로 위기 직면 “화장품 외길” 초심 되찾아 내부혁신

    1970년대 말부터 국내외 여러 기업들이 사업 다각화에 나서기 시작했다. 국내 화장품 시장의 70%를 점하고 있던 태평양 역시 신사업에 뛰어들지 않고는 성장이 어렵겠다는 판단을 하게 된다. 1980년대 분위기에 따라 태평양도 금융, 서비스 등 3차산업에 비중을 두고 다각화를 추진했다. 홍일상호신용금고, 동방증권 등을 인수했고, 충무기획을 인수해서 광고업계에도 진출했다. 의약사업부를 독립시켜 태평양제약으로 분사를 하고 아본화학을 인수했으며, 청보 핀토스 야구단까지 가족으로 맞아들인다. 그 결과 1990년 초에 태평양은 25개의 계열사를 보유한 거대기업이 됐다. 외형으로 보면 놀라운 성장이었다. 문제는 이 회사들이 대부분 저조한 실적으로 태평양을 위기로 몰아넣었다는 점이다. 외부에서는 외국 화장품 기업들과 손잡은 후발주자들의 맹렬한 도전이, 내부적으로는 거대조직의 관료주의 병폐들이 나타나 태평양을 흔들기 시작했다. 1991년 5월 13일 저녁 수원공장에서 파업 중이던 노조 조합원들이 본사를 점거했다는 보고가 서성환 태평양 회장에게 전해졌다. 충격이었다. 당시 국내 산업계에 만연했던 노사분규의 아픔을 태평양도 피해 갈 수 없었다. 많은 회사들이 파업 기간 동안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적용했지만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점거농성의 주동자로 구속된 조합원들의 선처를 바라는 서한을 경찰서에 보내는 등 직원 구명에도 최선을 다했다. 노조도 닫았던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했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경영 상황이 악화되면서 부실 계열사들의 채무보증을 섰던 태평양까지 자금 압박에 시달리게 된 것. 눈물이 쏟아졌다. ‘태평양은 왜 세상에 존재하며, 세상이 태평양에 원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 하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던 그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하기로 했다. “앞으로도 나는 화장품을 할 것이다. 아니,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할 것이다.” 사업 구조조정을 결심한 그는 신속하게 작업을 실행했다. 첫 단추는 태평양증권 매각이었다. 매각 직전 3년 연속 흑자를 낸 건실한 기업부터 욕심을 버리고 SK에 넘겼다. 구조조정 와중에도 미래를 생각해 기술 개발에 대한 투자는 멈추지 않았다. 회사의 존폐 위기 상황에서 태평양중앙연구소가 준공됐다. 준공식 분위기는 숙연하면서도 장엄하기까지 했다. 지칠 줄 모르던 그에게도 1991년 닥친 또 다른 시련은 견디기 힘들었다. 폐암이라는 병마와 싸워야 했다. 그는 68세의 나이로 폐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은 지 불과 45일 만에 다시 회사에 출근했다. 사업 구조조정도 원활하게 마무리돼 갔고 내부 혁신도 아들인 서경배 대표의 주도하에 잘 진행되고 있었다. 그해가 저물어 갈 즈음, 그는 녹차를 앞에 두고 서 대표와 마주 앉았다. 한참 동안 말이 없던 그가 입을 뗐다. “이제 회사의 의사 결정은 네가 했으면 싶다.” 위기와 절망의 시대를 뒤로하고 태평양이 다시금 50년 전의 출발선 앞에 서게 된 순간이었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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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방문판매로 ‘아모레’ 시대 개막… 여성일자리 창출하며 고속성장

    1960년대 화장품업계의 전근대적인 유통 구조는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에게도 큰 고민이었다. 해결책을 찾던 그는 지정판매소 제도를 도입한 ‘태평양화장품판매주식회사’를 설립했다. 화장품 제조회사가 만든 최초의 판매회사였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했다. 약국이나 양품점, 일반 소매상 등을 지정판매소로 선정했지만 겸업일 뿐이라 제품 관리에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는 결국 지정판매소 제도를 포기하고 판매회사도 청산했다. 유통 구조 문제를 극복할 새로운 방안을 다시 모색하던 그는 방문판매 제도를 떠올렸다. 방문판매의 핵심은 제품, 조직, 인력이었다. 태평양은 이 중 제품력에 한해서는 자신이 있었다. 방문판매 전용 제품군을 개발한 태평양은 상금을 내걸고 전 사원을 대상으로 브랜드를 공모했다. 100여 편의 응모작 중에 하나가 채택됐다. 아모레(Amore·이탈리아어로 ‘사랑’)였다. 아모레는 1959년 이탈리아 영화 ‘형사’에 삽입된 주제가의 첫 구절이었다. 그는 인간을 영원히 젊게 만드는 사랑이야말로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화장품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국내 화장품의 대명사처럼 입에 오르내리게 된 아모레는 그렇게 탄생했다. 다음으로는 판매망 구축이 중요했다. 그는 전국을 행정구역에 따라 바둑판처럼 구역을 나누고 특약점을 설치했다. 한 지역의 판매망이 자리를 잡고 확대되어 가면 또다시 그 구역을 세분해 거미줄 같은 조직을 만들었다. 영업소는 빠른 속도로 늘었다. 1980년에는 특약점과 영업소가 총 664곳, 활동하던 판매원은 1만6571명에 이르렀다. 방문판매의 성과를 좌우하는 것은 우수한 판매원이었다. 1960년대는 전쟁의 여진이 가라앉지 않은 시기였다. 전쟁으로 남편을 잃은 여성만 37만 명에 달했다.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여성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은 회사에도, 그들에게도 좋은 일이었다. 지역 여론에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고학력 여성들도 선발해 교육했다. 덕분에 화장품 판매원에 대한 이미지는 다른 직종의 방문판매원과는 크게 달랐다. ‘아모레 아줌마’라고 불리는 이들에게 지역 주민들은 기분 좋게 대문을 열어줬다. 서성환 창업자는 ‘아모레 3대 원칙’을 설정하고 이를 엄격하게 지키도록 했다. ‘방문 판매 원칙’ ‘정찰 판매 원칙’ ‘구역 준수 원칙’이 그것이었다. 방문판매를 시작한 후 3년 동안 그는 집에서 잠을 잔 적이 거의 없었다. 언제나 현장에 함께 있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1969년 그의 수첩 한 장에는 이런 메모가 담겨 있다. ‘우리가 살기 위하여 소비자를 보호하자. 정확한 것은 정직한 것이다. 고객은 언제나 정직하다. 무관심이 죄다. 관심을 갖고 자기 업무에 종사하라.’ 방문판매 제도는 태평양의 고속 성장을 이끈 주역이었고 오늘의 아모레퍼시픽을 만든 산파였다. 태평양의 방문판매는 사람을 아끼고 구성원을 존중해 주는 기업 문화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서성환 창업자가 세상을 떠나고 유족은 기금을 조성해 저소득 한부모 여성 가장의 창업을 지원하는 ‘희망가게’ 사업을 시작했다. 50년 전 방문판매라는 제도를 통해 전쟁의 아픔으로 생계를 짊어지게 된 여성들에게 손을 내밀었던 창업자의 정신을 새롭게 계승해 나가기 위해서였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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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짱 명품 ‘괘씸죄’… 소비세 인하 원위치

    소비자가 구입할 때 20%의 개별소비세(소비세)를 면제해 주는 고가 가방, 시계 등의 가격 기준선을 정부가 ‘500만 원 이하’에서 ‘200만 원 이하’로 내리기로 했다. 소비를 활성화하겠다며 이 기준을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올린 지 두 달여 만이다. 이른바 ‘명품’에 붙는 소비세를 깎아줬지만 명품업체들이 가격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올렸다는 동아일보 등의 지적에 따라 과세 기준을 원상 복구한 것이다. 임재현 기획재정부 재산소비세정책관은 3일 “줄어든 세금 부담만큼 최종 혜택이 소비자에게 돌아가길 원했지만 의도된 정책 효과가 나타나지 않은 점을 감안해 소비세 과세 기준을 원래대로 돌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정부는 소비세 과세 대상인 7개 품목 중 가방, 시계, 사진기, 융단, 가구 등 5개 품목의 과세 기준 가격을 8월 27일 이전 수준으로 환원하기로 했다. 다만 가격 인하 효과가 나타난 ‘보석·귀금속’, ‘모피’ 등 2개 품목은 이번 조치에서 제외됐다. 이 7개 품목은 공장 출고 가격이나 수입신고 가격을 기준으로 기준 가격을 초과하는 금액에 20%의 소비세가 붙는다. 앞서 정부는 8월 27일 ‘소비 활성화 대책’을 발표하면서 소비세 면제 기준을 고가 가구는 개당 ‘500만 원 이하’에서 ‘1000만 원 이하’로, 가구를 제외한 6개 품목은 개당 200만 원 이하에서 500만 원 이하로 상향 조정했다. 세금 부담을 줄여줌으로써 제품 가격을 낮춰 소비를 늘리기 위한 조치였다. 이에 따라 실제 수입신고 가격이 300만 원인 명품 가방의 경우 과거에는 기준선인 200만 원을 초과하는 금액(100만 원)에 대해 업체가 20%의 소비세(20만 원)를 내야 했지만 500만 원으로 기준선이 올라가면서 세금을 면제받았다. 여기에 소비세의 30%인 교육세와 그 교육세, 소비세를 합한 금액의 10%인 부가가치세까지 내지 않게 됐다. 하지만 명품업체들은 정부의 기대와 달리 가격을 인상하는 ‘배짱영업’을 했다. 크리스티앙디오르는 지난달 말 대표 제품인 ‘레이디 디오르’의 가격을 480만 원에서 510만 원으로 올렸다. 프라다의 ‘사피아노 BN1801’은 올 초만 해도 230만 원이었으나 3월 242만 원(5.2%)으로 올랐고 현재는 279만 원(15%)에 판매되고 있다. 명품업체들은 그동안 국내에서 특별한 이유가 없어도 한 해 두세 차례에 걸쳐 5∼10%씩 가격을 올려 왔다. 올해 소비세를 줄여준 이후에도 이런 관행을 지속한 것이다. 정부 역시 정밀하게 정책효과를 예측하지 못한 채 설익은 방안을 내놓았다는 비판을 면치 못하게 됐다. 고가 정책을 펴는 명품업체들의 영업전략을 고려하지 않고 세금을 인하해 소비 진작이라는 목표는 달성하지 못한 채 명품업체들의 배만 불려준 꼴이 됐기 때문이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교수(세무학)는 “한국 고객은 가격이 올라도 여전히 명품을 찾는 사람이 많다”며 “그런 상황에서 세금을 깎아 준다고 업체들이 가격을 낮출 것이라 기대한 것은 순진한 발상이었다”고 비판했다.세종=손영일 scud2007@donga.com / 박선희 기자}

    • 2015-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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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식물 재배로 경제-문화 키우자” 세계 첫 한방화장품 개발 성공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는 ‘연구실은 뿌리 깊은 나무와 같다’는 소신을 갖고 있었다. 코티분 같은 스타 화장품을 만들어 내고 나서도 끊임없이 연구원들을 만나 독려하고 함께 머리를 맞댔다. 1964년 어느 날 그는 연구원들에게 인삼 화장품을 만들어 보자는 생각을 털어놓았다. 그는 개성이 고향이었다. 개성은 인삼의 고장이었고, 고려 인삼의 효능이 이미 외국인에게까지 알려져 있었다. 그런 그가 화장품 재료로 인삼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특히 그는 남프랑스 그라스를 여행하며 얻게 된 ‘식물 재배로 경제와 문화를 키울 수 있다’는 생각을 늘 마음에 담아 왔다. 인삼의 약효에 대한 얼마간의 지식 이외에는 아무것도 알려진 것이 없던 때였다. 연구진은 백지 상태에서 인삼의 미용 효과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다. 인삼의 추출물이란 추출물은 모두 뽑아 효능을 연구했다. 그 결과 2년 뒤 1966년 세계 최초 한방화장품 ‘ABC인삼크림’을 제품화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만족할 만한 결과는 아니었다. 인삼 특유의 냄새나 피부에 발랐을 때의 자극을 제거해 내지 못했다. 인내를 요하는 긴 연구가 다시 시작됐다. 9년째 되던 1972년, 마침내 인삼의 잎과 꽃잎에서 인삼 유효 성분인 ‘사포닌’을 함유한 추출물을 뽑아 낸다. 하지만 이 역시 그대로 화장품 원료에 사용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냄새와 자극이라는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듬해인 1973년 연구실은 마침내 세계 최초로 인삼 사포닌을 원료로 한 화장품 ‘진생삼미’를 탄생시켰다. 이 제품은 일본과 영국, 캐나다 등으로 수출되기 시작했고, 1975년에는 고려청자를 응용한 디자인으로 용기를 바꿔 ‘삼미’라는 이름으로 세계 시장에서 선보이게 됐다. 특히 서양인들의 관심이 컸다. 해외에서의 반응을 보며 그는 식물과 자연의 가능성에 대한 자신의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했다. 인삼 화장품 개발 능력은 다양한 한방 식물로 확장됐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1987년 피부에 아름다운 눈꽃을 피운다는 뜻을 담은 ‘설화’가 개발됐다. ‘설화’는 율무, 당귀, 치자, 감초 등의 여러 한방 약초에서 효능 물질을 추출하여 만든, 제대로 된 한방 화장품이었다. 그로부터 10년 후, 한방 화장품의 진수라 불리는 ‘설화수’를 탄생시켰다. 인삼 화장품 연구를 시작한 지 33년이 흐른 뒤였다. 33년이라는 긴 시간 속에는 끈기로 자리를 지키며 매진했던 연구원들의 열정뿐 아니라 그들을 향해 깊은 신뢰와 무한한 후원을 아낌없이 제공했던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의 기다림이 함께 쌓여 있었다. 1954년 후암동 사무실 한쪽에서 출발했던 연구실은 1978년 기흥의 태평양기술연구소로, 그로부터 15년 뒤에는 중앙연구소라 이름 붙여진 연구동으로 발전했다. 기술연구소는 1995년 기술연구원으로 또다시 확대 개편돼 오늘에 이른다. 기술연구원은 기술에 대한 창업자의 믿음이 피워낸 꽃으로 아모레퍼시픽을 움직이는 조용한 심장부로서의 역할을 다하고 있다.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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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명품업체 배만 불려준 소비세 인하

    한동안 잠잠하던 명품업체들의 가격 인상이 최근 다시 잇따르고 있다. 개별소비세 부과 범위가 축소된 상황에서 값을 내리기는커녕 오히려 올리는 ‘거꾸로 행보’를 보이고 있는 것. 2일 업계에 따르면 크리스티앙디오르는 지난달 말 가방 등 일부 인기 제품 가격을 10%가량 ‘조용히’ 인상했다. 올해 상반기에만 두 차례에 걸쳐 5∼8%가량 가격을 알음알음 올렸던 프라다는 하반기 들어서 대표 제품인 사피아노 라인을 중심으로 10% 가까이 또 값을 올렸다. 이번 인상으로 크리스티앙디오르의 대표 제품인 ‘레이디 디오르’는 기존 480만 원에서 510만 원(6.2%)으로 올랐다. 프라다의 ‘사피아노 BN1801’은 올 초만 해도 230만 원이었으나 3월 242만 원(5.2%)으로 올랐고 현재는 279만 원(15%)에 판매되고 있다. 샤넬도 1일부터 ‘2.55빈티지’ ‘그랜드쇼핑’ 등 인기 제품들의 가격을 7%가량 올렸다. 8월 말 정부는 소비 활성화를 위해 시계 가방 모피 보석 등의 개별소비세 부과 범위를 기존의 200만 원에서 500만 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300만 원짜리 가방의 경우 이전에는 200만 원을 초과하는 100만 원에 대해 20%의 세금(20만 원)이 붙었으나 현재는 없다. 내야 할 세금이 줄었으니 판매가도 당연히 내려가야 하지만 이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 실제로 동아일보가 2일 입수한 한 백화점의 명품관 가격변동 자료에 따르면 개소세 축소 이후 20개의 명품업체 중 가격을 내린 곳은 시계 브랜드 단 한 곳으로 5% 인하된 것으로 나왔다. 13곳은 가격인하 사항이 없다고 응답했으며 6곳은 판매가 공개조차 거부했다. 이은희 인하대 교수(소비자아동학과)는 “개별소비세 축소에도 가격을 내리지 않아 기형적인데 가격 인상까지 한다는 건 소비자뿐 아니라 시장 자체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개소세 축소를 일괄적으로 할 게 아니라 세부적으로 분류하는 등 정책적 보완이 필요해 보인다”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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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960년 화장품 선진국 프랑스 방문… 세계적 수준의 제품 개발 의지 품어

    제22153호 대한민국 여권. 희끗하게 빛바랜 오래된 여권 속에 서른여섯, 침착함이 돋보이는 청년의 사진이 들어 있다.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주가 프랑스를 비롯해 유럽 3개국 여행을 떠난 1960년 7월은 6·25전쟁이 끝난 지 7년째 되던 해였다. 그동안 연구소에 투자를 늘리며 노력했지만 국산 화장품의 전체적 품질 수준을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무거웠다. 그는 외국 선진 기술을 습득해 국산 화장품 수준을 높이는 것이 선도 사업자로서의 사명이라고 느꼈다. 유럽 방문 기간 중 초청을 받아 방문한 기술 제휴사 코티는 그에게 신세계였다. 센 강변의 100년 가까운 세월이 깃든 역사적 공간에 현대적 생산시설을 갖추고 있었다. 모든 생산 공정을 자동화한 최신 시설과 즐비한 수십 개의 원료 저장탱크를 보며 부러운 마음에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는 ‘우리는 언제쯤 이런 근대화된 공장과 설비를 갖출 수 있을까’ 하는 부러움과 ‘이들과의 경쟁이 과연 가당키는 할 것인가’라는 열등감 사이에서 커다란 숙제를 받아들고 공장 견학을 마친다. 파리 방문 중에 파리 시의회 부의장의 초대로 프랑스 명예시민증을 받고 의사당을 안내받는 특별한 경험을 하기도 했다. 파리에서 일정을 끝내고 프랑스 남부 도시 그라스를 방문한다. 거리마다 질 좋은 향료를 만들기 위한 소규모 증류공장, 비누공장, 향료가게가 모인 세계적인 향수의 고장이다. 그는 라벤더를 비롯한 각양각색의 꽃이 끝없이 펼쳐진 농장을 돌아보며 식물 재배가 경제와 문화, 환경에까지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배운다. 꽃잎과 건초를 압축해 원액을 얻는 과정과 향수 제조에 쓰이는 갖가지 기구를 보며 오래전 어머니가 동백기름을 짜던 모습도 떠올렸다. 향수 사업만으로 자족을 이루며 사는 그라스 사람들의 여유 있는 표정을 보면서 그는 전쟁으로 폐허가 된 조국의 산천과 가난에 지친 사람들의 무표정한 얼굴을 떠올렸다. 이국땅에 오고 보니 내 나라와 내 이웃의 삶이 보였다. 사업가로서 해야 할 일이 뭔지 알 것 같았다. 그는 언젠가 프랑스에서 반드시 사업을 펼쳐보리라 결심한다. 유럽 방문은 국내 화장품 업계의 발전을 위해 그가 담당할 수 있는 역할을 찾는 중요한 계기가 됐다. 오랜 시간이 흘러 2006년 7월 27일 주한 프랑스 대사관에서 프랑스 최고의 훈장 레지옹 도뇌르를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대표에게 수여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향수 ‘롤리타렘피카’의 세계적 성공과 두 번째 향수인 ‘엘’의 론칭을 통해 한국과 프랑스 두 나라의 경제 협력과 우호 증진에 기여한 공로였다. 감회 깊은 얼굴로 훈장을 받아든 서 대표의 손에는 3년 전 고인이 된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부친 서성환 회장이 1960년, 첫 프랑스 방문길에 지녔던 여권이 들려 있었다. 세계로 진출해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화장품을 만들고자 했던 야심 찬 젊은 사업가의 꿈이 40여 년이 넘는 험하고 먼 길을 돌아 그렇게 이뤄진 것이었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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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모레퍼시픽, “품질 제일” 업계 최초로 연구실 건립

    휴전 1년 후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는 서울로 돌아와 용산구 후암동에 둥지를 틀었다. 외국 군대에 내준 용산 땅을 보며 그는 이 땅에 사업의 주춧돌을 놓겠다고 다짐했다. 후암동 사업이 번창하면서 살림하는 아내의 일상도 고돼졌다. 여공들과 똑같이 제품을 만들고 매끼 식사까지 도맡았다. 제품 만드는 곳에서 살림을 하다 보니 밥에서는 언제나 화장품 냄새가 났다. 모두 ‘향기 나는 밥’을 먹는다며 웃었다. 능동적이고 강했던 어머니, 부지런하고 현명한 아내, 성실하고 순박한 여공들. 그는 가장 가까이 있는 여성들을 통해 여성의 강인함과 부드러움을 배웠고 여성에 대한 존중과 사랑을 내면화했다. 사업이 커지면서 제조 능력의 한계를 느낀 그는 지인의 소개로 일본 동경공업고에서 응용화학을 전공한 구용섭 씨를 만났다. 1954년 구 씨의 입사를 계기로 국내 화장품업계 최초로 연구실을 만들었다. 후암동 공장 화장실을 개조해서 만든 초라한 연구실이었지만 당시로서는 선구적인 사건이었다. 연구실을 만든 후, ABC 브랜드를 정비하며 사업은 날개를 단다. ‘ABC 100번 크림’은 ABC포마드에 버금가는 대히트를 기록했다. 부산에서 후암동으로 복귀한 지 2년여 만에 용산구 한강로2가로 회사와 공장을 옮겼다. 외형의 성장에 맞춰 내실도 다졌다. 가마솥 대신 스테인리스 용기를 사용하고 냉동기를 도입했으며, 크림 배합 기계도 새로 설치했다. 그는 독일로 구 씨를 유학 보내 그가 수집해 보내는 선진 정보와 냉철한 제안에 따라 최신설비를 수입했다. 그중 하나가 ‘세계에서 가장 가늘고 부드러우면서도 고운 가루를 제조할 수 있는 제분기’라고 불리는 에어스푼(Air Spun)이다. 이 기계설비 수입은 독일에서 기술자들이 함께 들어오며 당시 큰 화제가 됐다. 서른여섯 해 봄날, 그는 어머니를 떠나보낸다. 어머니는 그에게 일생의 롤모델이자 스승이었다. 어머니를 가슴에 묻은 그는 슬픔을 딛고 ‘ABC분백분’을 시장에 내놓는다. ABC분백분은 출시되자마자 히트 상품이 된다. 이 제품을 세계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프랑스 화장품 회사 코티와 기술 제휴를 맺는다. 덕분에 ‘코티분’의 시대가 열렸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만족하지 않았다. 세계 일류 화장품 회사를 만들고 싶었다. 현대적 시설을 갖춘 대규모 공장을 짓기 위해 영등포 신대방동의 땅을 두 차례에 걸쳐 매입하고 1962년 5월 3일 기공식을 갖는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야 하는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꿈을 위해 밀어붙였다. 공장이 건설되는 동안 자금난이 심해져 임금이 체불되기도 했고 부도설에도 시달렸다. 평소의 신용 덕분에 직원들과 거래처가 도와줬고 위기를 넘겼다. 1962년 11월 20일, 마침내 영등포 공장이 준공됐다. 당시 보기 드문 자동화 시설을 완비한 대규모 공장이었다. 그는 먼바다를 항해할 수 있는 모함을 얻은 것처럼 기뻤다. 이 현대식 공장과 연구소는 훗날 ‘태평양의 제품 개발사는 우리나라 근대 향장사(香粧史)’라는 평가를 받을 만큼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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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Q매거진]바르는 순간 촉촉하게 녹아 피부에 착!… “고맙다, 보습밤”

    《건조한 피부를 가진 여성들에게 환절기는 골치 아픈 시기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서 피부가 푸석푸석해지고 윤기를 잃기 쉽다. 메이크업으로 반전을 노려봤자 기초 관리가 돼 있지 않으면 사상누각일 뿐. 아무리 바빠도, 피부 관리의 기본으로 돌아가 꼼꼼한 보습으로 내실을 다져야 하는 때다. 그래서 골랐다. 환절기 필수 아이템 보습밤! 쏟아지는 일과 가을바람에 치이며 갈수록 메말라가는 여기자들의 피부를 윤기 나게 재탄생시켜줄 네 가지 제품을 골라 써봤다. 2주에 걸쳐 테스트하는 틈틈이 각자의 피부와 취향에 어떤 제품이 가장 잘 맞는지 수다도 떨고 품평회도 가져봤다. 이 보습제품들이 여기자들의 피부 뿐 아니라 기사에 치인 팍팍한 삶에도 촉촉한 수분감을 선사한 듯한 느낌이다. 선호하는 제품은 제각각이지만 결론은 하나. 이젠 회사의 바싹 마른 공기도, 거친 바람도 마냥 두렵지만은 않다.》이 제품을 써봤어요 보습으로 유명한 인기 브랜드에서 다양한 가격대 제품을 추천받아 써봤다. 샤넬 ‘하이드라 뷰티 뉴트리션크림’은 진하면서도 부드럽고 녹는 듯 사라지는 질감이 특징인 건성피부용 보호크림. 키엘의 신제품 ‘울트라 수분밤’은 에델바이스 꽃 추출물로 깊고 진한 보습감을 극대화했다.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 가장 먼저 선보인 제품. 닥터자르트의 ‘세라마이딘 오일밤’은 밤이자 오일, 오일이자 밤인 신개념 보습제품. 밤 형태이지만 덜어내면 스르륵 녹아 오일처럼 발린다. 마지막으로 라로슈포제 ‘시카플라스트 밤B5’는 손상 피부 개선효과를 내는 보습제. 민감성피부부터 유아까지 두루 쓸 수 있는 제품이다. 여기자의 평소 피부와 관리법 ▽김선미 차장=평소 피부는 건조한 편. 특히 손은 섬섬옥수는커녕 거친 정도가 심해 처음 만나는 사람과 악수하기 창피할 정도다. 평소 세안 후 로션이나 크림 한 종류를 얼굴에 바르는데, 가을 겨울에는 그 양을 듬뿍 바른다. 날씨가 쌀쌀해지면서 일반 로션을 바르니 얼굴이 금세 마르는 느낌이었다. 뭔가 좀 더 점도가 높은 제품이 필요했다. ▽박선희 기자=조금만 방심하면 금방 트고 갈라지고 일어나고 난리도 아닌 극건성 피부. 여름에도 유분감 많은 수분크림 제품을 선호하는 내게 찬바람 부는 가을 겨울은 두려운 계절이다. 청량감 있고 가벼운 수분크림보단 질척거리고, 무게감 있고 기름진 제품을 좋아한다. 겨울에는 유분기 많고 광이 나는 제형의 크림을 오일에 한 번 더 섞어서 쓴다. ▽최고야 기자=화장품 하나만 잘못 발라도 곧바로 발갛게 변하는 민감한 피부. 피부에 꼭 맞는 화장품을 만나기 위해 갖가지 시행착오를 겪으며 10년 넘는 세월 동안 피곤하게 살아오고 있다. 겨울엔 평소 사용하는 수분크림을 바르고 그 위에 되직한 질감의 수분크림을 이마와 볼에 한 번 더 덧바르면서 관리해왔다. ▽손가인 기자=기능이나 가격 상관없이 아무 화장품이나 사용해도 별 탈 없는 ‘막피부’. 그런데 언제부턴가 환절기만 되면 건조함이 느껴졌다. 크림만으로는 안 되겠다 싶어 수분 보습으로 유명한 브랜드의 보습 팩을 바르고 씻어내지 않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팩 특유의 끈적함 등이 불편해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여기자의 별별 평가 ▽김선미 차장=이번 제품을 써보고 샤넬이 좋아졌다. 10만 원대의 부담스런 가격이 아쉬울 뿐. 샤넬의 시그너처 꽃인 동백꽃 씨앗에서 추출한 동백기름이 들어간 이 제품은 피부에 지나치게 부담스럽지도 않고 지나치게 가볍지도 않은, 내 마음에 쏙 드는 촉감과 질감이었다. 수분과 영양을 한꺼번에 담고 있는 느낌. 스스로 피부가 맑아진다는 느낌을 받게 됐다. 닥터자르트는 네일숍에서 각질관리를 받을 때 봤던 제품과 유사했다. 내용물을 덜어내면 반고체 형태가 살짝 녹으면서 부드럽게 발린다. 갑자기 건조해진 입술, 가을 겨울 극건조 상태로 변하는 발뒤꿈치에 바르면 만병통치약이 따로 없을 듯. 최근 입술이 갈라진 친구에게 선물하겠다. 드러그스토어 화장품인 라로슈포제는 늘 가격 대비 성능이 만족스럽다. 밤 타입의 재생크림인데, 얼굴에 일반 크림으로 사용하기에 적절한 질감이다. 아이들의 겨울 보습용 크림으로 콕 찍었다. 평소 키엘 수분크림을 자주 사용하던 나는 이번 제품도 똑같은 정도의 양을 발랐다가 얼굴이 허옇게 됐다. 촉촉하게 피부에 스며들기보다는 연고 같은 느낌이랄까. 보습력이 다른 제품들보다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았다. ▽박선희=라로슈포제 제품은 이번에 처음 써봤는데 겨울철 피부를 위한 또 하나의 대안을 찾은 기분이 들었다. 충분히 밀도감 있지만 쓰기 불편할 만큼 뻑뻑하진 않다. 제형에 무게감이 있다 보니 바로 흡수되진 않지만 몇 번 두드리면 금방 스며들고 막이 형성된 듯 수분감이 유지된다. 무향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기본에 충실한 성실한 제품이다. 닥터자르트 오일밤도 대단하다. 지금껏 오일만 써왔는데 양을 조절하는 것이나 섞어 바르는 것이나 여러 면에서 불편함이 있었다. 이걸 밤으로 해결하니 이렇게 간편한 것을! 연고 같이 굳어있는 제형의 밤을 덜어내 문지르면 체온으로 녹으면서 자연스럽게 오일 효과를 낸다. 기초관리할 때든 메이크업 중에든 필요한 부분에 덜어 쓱쓱 바르면 되니 최고다. 샤넬은 고급스러운 은은한 향이 압권이다. 제형이나 감촉도 얼린 생크림을 만지는 것처럼 무척 기분 좋다. 부드럽게 발리고 잘 스며들어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날 얼굴에 토닥인 뒤 잠들면 좋을 것 같은 제품이다. 키엘은 보습 관련 기초제품으로 워낙 유명한 브랜드라 기대가 컸지만 슬프게도 고약한 향 때문에 한두 번 쓴 뒤엔 거의 손이 가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최고야=닥터자르트는 겨울철 칼바람도 비켜 갈 듯, 보습력이 테스트 제품 중 가장 뛰어났다. 손에 덜어 녹이면 빠르게 오일 제형으로 변한다. 닥터자르트의 대표 제품인 세라마이딘 크림의 오일 버전이라 생각하면 쉽다. 하지만 한겨울보다 건조하지 않은 계절에 쓰기엔 과한 느낌이 있다. 이틀 연속 사용하자 오일 성분이 모공을 막았는지 트러블이 올라왔다. 키엘은 ‘키엘 마니아’로서 기대가 컸다. ‘울트라’라는 이름값을 하듯 굉장히 보습력이 짱짱했다. 묵직한 유분감이 얼굴 전체를 감싸는 느낌이 강했고, 밤새 뒤척여도 베개에 많이 묻어나지 않을 것 같은 쫀쫀함이 특징. 하지만 특유의 고릿한 냄새가 밤 제품에 농축돼 있어 뚜껑 여는 순간 놀랐다. 좀 더 기분 좋은 향으로 대체하면 어떨까. 샤넬은 제형이 비교적 묽어 바르는 데 부담스럽지 않았다. 밤이라기보다 크림에 가깝게 느껴졌다. 피부에 착 감겨 흡수되는 느낌이 좋았고, 얼굴에 얇은 막이 생겨 코팅되는 듯한 윤기가 났다. 꽃과 과일을 섞은 듯한 상큼한 향이 기분을 좋게 해줬다. 라로슈포제는 가장 무난한 타입. 아토피 피부에 사용해도 될 정도로 순한 사용감이 장점이다. 오일 성분이 많기 때문에 소량만 사용할 것을 권한다. ▽손가인=닥터자르트는 바르는 느낌부터 좋았다. 고체 오일로 된 밤이 특이했다. 손가락으로 밤을 살살 녹이면 상큼한 향이 올라오면서 피부에 바르기 좋은 액체로 바뀌는데 과하지 않게 부드럽다. 자기 전에 바르고 다음 날 아침 일어나면 피부가 매끈한 걸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이 위엔 매트한 화장을 해야만 외출이 가능할 듯하다. 라로슈포제 제품은 지난해 드러그스토어에 출시되기 전까지 피부과와 약국에서만 판매되던 제품이다. 그래서인지 과한 장식 없는, 기본에 충실한 외형에 왠지 믿음이 갔다. 정말 보습을 도와주는 ‘묘약’ 같은 제품. 하지만 타 제품에 비해 유지력은 떨어지는 듯했고 향도 약 같아서 호불호가 갈릴 것 같다. 샤넬 제품을 바를 때는 마치 첫눈을 떠서 바르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사각사각하고 하얀 제품이 얼굴에 금세 스며들어 보송한 기분이 좋다. 무엇보다 좋은 것은 바로 향. 유지력은 다른 제품에 비해서 조금 덜하지만 거의 완벽한 보습 제품이다. 비싼 게 흠이다. 키엘 제품의 유지력은 단연 최고다. 한 번 바르는 것만으로도 몇 시간은 거뜬하게 촉촉함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극건성 피부가 아니면 흡수가 잘 되지 않는다고 느낄 수 있다. 조금 끈적이고 하얗게 남아 꼼꼼히 펴 발라 줘야 한다. 독특한 계피향이 나는데 시간이 지나면 괜찮지만 처음엔 생소할 수 있다. 아주 건조한 한겨울에 적합할 것 같은 제품.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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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계 진출 꿈꾸며 ‘태평양’ 상호… 6·25전쟁때 ‘ABC포마드’ 빅히트

    가업은 전과 다름없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다. 중국에서 보았던 넓은 시장의 잔상이 청년 서성환의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는 베이징에서의 자신의 경험담을 들려주며 가족의 동의를 얻어 상호를 ‘태평양상회’로 바꾼다. 생명의 근원이자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 그는 상호를 바꾸면서 다시금 힘을 얻는다. 이 시기에 그는 또 다른 중요한 결정을 내린다. 이념 갈등으로 시국과 경제적 불안감이 커지면서 판로가 막히자 오랜 터전을 뒤로하고 개성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이다.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아들에게서 젊음의 열정과 분별력을 발견했다. 어머니의 동의에 힘을 얻은 그는 1947년 서울로의 이전을 단행한다. 서울로 온 일가는 남창동에 ‘태평양화학공업사’라는 간판을 내건다. 1948년 1월 서울 중구 회현동 109번지에 사업장을 열었다. 새 사업장을 열 때부터 가장 염두에 둔 것은 바로 품질이었다. 당장의 이익보다 중요한 것이 소비자들의 신뢰였고 그 첫걸음이 품질이라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 서울에 기반이 없어 원료 확보 등에 어려움을 겪지만 그는 혼신의 힘을 쏟아 ‘메로디 크림’을 세상에 내놓는다. 그는 이 첫 작품에 김재현백화점과 베이징에서 접했던 고급 제품들처럼 산뜻한 날개를 달아주고 싶었다. 인쇄소와 일본 브로커를 찾아다니며 완벽한 옷을 입혔다. 만들어 놓기만 하면 팔리던 당시의 업계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고집스러우리만치 남다른 품질을 지향한 사례다. 그 덕에 메로디 크림은 1950년대 초까지 생산된 인기 장수상품이 됐다. 메로디 크림과 ‘메로디 포마드’의 선풍적인 인기 덕에 차곡차곡 사업의 성과가 쌓여나갈 즈음인 1950년 6월 25일, 포성이 울렸다. 전쟁이었다. 남의 전쟁에 끌려 나갔던 악몽이 잊혀지기도 전에 동족 간에 총을 들이대는 비극의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청년 서성환도 부산행 피란 열차에 몸을 실었다. 부산에서 가족은 거래처의 배려로 안전한 임시 거처를 마련했다. 창업 이래 지켜온 신용 덕분이었다. 피란지에서도 제품에 대한 그의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특히 남성용 포마드는 만들기 무섭게 팔려 나갔다. 미군의 영향으로 긴 머리를 포마드로 정돈해 좌우로 갈라붙이는 헤어스타일이 유행하던 시대였다. 하지만 그에겐 아쉬움이 있었다. ‘어머니의 동백기름이 포마드로 바뀌었을 뿐 본질은 바뀐 게 없다. 포마드는 내가 개척할 길이다.’ 이런 생각으로 그는 국내 최초로 번들거리지 않으면서 자연스러운 윤기를 내는 순식물성 포마드를 선보인다. 현대적 감각이 돋보이는 디자인을 채택한 이 제품이 바로 유명한 ‘ABC포마드’다. 새 브랜드를 채택한 과감한 결정에 보답이라도 하듯 ABC포마드는 출시된 지 반년 만에 사업 거점을 확장 이전해 확대생산에 들어가야 할 정도로 날개 돋친 듯 팔린다. 전쟁의 와중에 거둔 누구도 믿기 힘든 결과였다.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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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광복과 함께 中서 사업 시작

    장원 서성환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의 나이가 열여덟 되던 해인 1941년 개성 최초의 3층 양옥 건물 ‘김재현 백화점’이 문을 연다. 선망의 대상인 고급 제품이 가득하던 그곳에서 도매상들을 통해 ‘창성당 제품’도 판매되기 시작했다. 꿈같은 일이었다. 백화점 판매가 된다는 건 품질로 승부할 수 있다는 반증이었기 때문이다. 납품만 하지 말고 직접 백화점 판매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어머니의 권유에 동분서주하던 청년 서성환은 마침내 김재현 백화점 화장품부에 매장을 개설하게 된다. 어머니께서 늘 강조하시던 품질의 승리를 확인한 최초의 성과였다. 새로운 일에 대한 보람은 말할 수 없는 행복과 기쁨을 줬다. 하지만 날벼락 같은 일이 생겼다. ‘아카가미(赤紙)’. 1944년부터 광복 전까지 붉은색 종이에 적힌 징병 통지서를 사람들은 그렇게 불렀다. 식민지 백성의 생활이 피폐해지고 병력 수급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자 일제의 지원병제가 징병제로 바뀐 것이다. 날벼락 같은 징병통지서를 들고 떠나는 청년들의 행렬에서 그도 예외는 아니었다. 1945년 1월, 막 백화점 진출로 사업을 키워 보려던 꿈은 전쟁과 죽음의 공포 앞에서 꺾이고 만다. 그는 고향을 떠나 북만주의 황량한 평원에서 겨울 동안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소속 부대를 따라 베이징으로 간 그가 포로수용소에서 밤낮없이 죽어나가는 시신을 수습하며 전쟁의 고통을 뼈저리게 절감하던 무렵 일본의 항복 소식이 들려온다. 1945년 9월 5일 베이징에서 현지 제대를 한다. 이 날짜는 훗날 아모레퍼시픽의 창립 기념일이 된다. 청년 시절의 그가 귀향과 자유를 얼마나 애타게 고대해 왔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그는 동료들과 함께 고향으로 갈 형편이 될 때까지 베이징에서 임시로 지낸다. 그동안 ‘장사를 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고향으로 갈 때까지 시간과 비용을 만들어 버텨 보자는 마음에서였다. 제대할 때 받은 쌀로 마련한 염색약으로 군복을 염색했고 이를 비싼 값에 팔아 장사 밑천을 마련했다. 장사를 시작하며 쯔진청(紫禁城) 남쪽에 있는 ‘다자란’이란 큰 시장을 알게 된다. 각양각색의 진귀한 물건들과 중국인들의 극성스러운 상혼에 그는 정신을 빼앗긴다. 궁핍한 삶 가운데 만난 새 세상은 훗날 시장을 창조하는 기업가로서의 그에게 영감의 밑천이 된다. 1946년 2월 21일. 암흑의 밤바다를 헤치며 흔들리는 수송선의 온갖 역겨운 냄새와 고통의 신음소리를 견디며 한시라도 빨리 고향에 가고 싶어 밤을 지새운 끝에 청년 서성환은 마침내 인천항에 도착한다. 정초 매서운 날씨에 고드름이 처마 밑에서 툭 떨어진다. 그 소리에 고개를 돌려 문 쪽을 보던 어머니가 놀란다. “살아 돌아왔구나. 돌아왔어!” 거북 등딱지처럼 튼 살이 만져지기는 하지만 분명 살아 돌아온, 그립던 자식의 손이었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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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술은 훔쳐도 자세는 훔칠 수 없어”

    《 아모레퍼시픽의 창업자 고 장원 서성환(粧源 徐成煥) 회장(1924∼2003)은 국내 화장품 산업의 선구자다. 불모지였던 국내 화장품 산업에서 아모레퍼시픽을 의(義), 신(信), 실(實)로 꼽히는 개성상인의 삼도훈(三道訓)으로 이끌어 글로벌 기업의 초석을 놓았다. 올해로 창업 70주년을 맞는 아모레퍼시픽의 오늘날이 있기까지 서성환 회장이 겪었던 고난과 좌절, 희망의 여정을 총 10회에 걸쳐 되짚어 본다. 》 ‘냄새나는 걸인을 저렇게까지 꼭 집에 들여야 하나?’ 윤독정 여사는 식구들의 불만도 못 들은 체하고 동냥 온 걸인에게 따로 차린 밥상을 선뜻 내어주곤 했다. 베풀기를 좋아하는 타고난 마음 씀씀이 때문이었다. 장원 서성환 회장은 그런 어머니 윤 여사와 평범한 농부였던 아버지 사이에서 1924년 3남 3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가 일곱 살 되던 해 가족은 황해도 평산군에서 개성으로 이주했다. 생활력이 강했던 윤 여사는 번창한 상업 도시 개성에서 등잔기름, 머릿기름 등을 도매상에서 받아와 이문을 남기고 팔았다. 일이 손에 익자 남의 물건을 받는 것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그녀는 당시 여성의 윤기 흐르는 까만 머리카락을 가꾸는 데 필수품이었던 동백 머릿기름을 직접 만들어 팔기로 했다.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좋은 원료의 확보였는데, 윤 여사는 그동안 쌓은 신뢰를 바탕으로 전국의 보부상으로부터 좋은 동백나무 열매를 공급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 숙련한 실력과 신용도가 더해지며 윤 여사의 동백기름은 점점 입소문을 타고 전국으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창성상점’이라는 간판을 건 장원의 집에서 머릿기름을 팔던 그녀는 제품에 ‘창성당 제품’이라고 표기했다. 당시 최고급 화장품이라는 뜻으로 ‘당급 화장품’이라는 말이 유행했는데, 창성상점에서 만든 제품이 당급 화장품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16세 때 중경보통학교를 졸업한 장원은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않고 가업을 돕기로 했다. 그의 첫 번째 임무는 원료와 자재 구매였다. 물자가 부족하고 귀하던 시절이라 원료 확보가 사업의 기초 능력인 셈이었는데, 어머니는 귀한 원료를 구하러 남대문시장의 거래처를 찾아가는 일을 아들 장원에게 맡겼다. 시장에 가는 날이면 장원은 도시락 세 개를 자전거에 단단히 묶고 채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나서곤 했다. 가는 길에 날이 밝으면 도시락 하나를 먹고, 일을 마친 뒤 또 하나를 먹고, 돌아오는 길에 남은 하나를 먹었다. 이렇게 세끼를 식은 도시락으로 때우며 자전거로 오가는 길은 단순한 장삿길이 아니라 소년 장원에게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통로였고 흙과 바람, 자연을 만나고 사람을 사귀며 세상을 배우는 학교였다. 한 해 남짓 남대문시장을 오가면서 여유가 생긴 아들에게 어머니는 제조법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인정과 따뜻한 성품으로 또 하나의 밥상을 준비하던 어머니의 부엌에서 그는 삶 전체를 함께한 화장품의 단초가 될 동백기름 제조법을 배웠다. 이때 그가 배운 것은 단순한 제조법이 아니라 제조에 임하는 자세였다. “기술은 훔쳐도 자세는 훔칠 수 없다”란 어머니의 말은 그의 철학이 됐다. 제조에 자신이 붙은 장원은 판매에도 뛰어들었다. 예성강 줄기를 따라 형성된 상로를 수없이 오갔던 장원은 그 길을 훗날 ‘상인의 길’이라고 회상한다. 정리=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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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D가 희망이다]중앙연구소 강화해 성장동력 확보 나서

    롯데그룹은 올해 내수 경기 침체 등 어려운 경영 여건 속에서도 사상 최대 규모인 7조 500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롯데그룹의 지난해 투자액 5조7000억 원보다 30% 이상 늘어난 수치다. 신동빈 회장은 연초 정책본부 주요 임원회의에서 “경영 환경이 좋지 않아도 미래를 위한 투자를 아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또한 “트렌드 변화에 대한 철저한 준비로 성장 모멘텀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투자와 함께 롯데는 식품·건설·유통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개발에도 힘을 쏟고 있다. 청소년·유아 감소, 고령 인구 증가 등 인구 구조 변화와 인터넷·모바일 쇼핑 매출 급증 등 고객 쇼핑 패턴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중앙연구소의 역량을 강화하고, 옴니채널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특히 롯데는 롯데중앙연구소를 통해 식품 관련 신제품 개발 및 기술 확보에 노력해 왔다. 최근에는 인구 고령화와 건강에 대한 관심 증대 등으로 식품 트렌드가 급변하고 기능성 식품을 포함한 바이오 분야의 수요가 증대됨에 따라 연구개발(R&D) 투자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는 올해 5월 총 2200억 원을 투자해 서울시 영등포구 양평동에 위치한 기존 중앙연구소를 강서구 마곡산업단지 내에 터를 마련해 통합식품연구소로 확장 이전키로 하고 착공식을 했다. 2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쳐 2017년 6월 문을 열 새로운 연구소는 기존 연구소보다 다양한 연구 활동을 통합하여 진행할 예정으로, 규모도 지하 3층, 지상 8층 건물에 연면적 8만3102m²으로 현재보다 5배 이상 큰 규모로 조성된다. 연구 인력도 600여 명 규모로 확대한다. 이로써 롯데그룹 내 모든 식품 계열사의 연구 활동 및 안전 관리는 최신 기술력과 연구 장비를 갖춘 첨단 연구 시스템으로 통합 운영된다. 롯데케미칼연구소 인력도 합류해 식품 포장소재 연구 등 다양한 공동 연구도 진행하며, 국가연구기관, 산학연 등 외부 기관과의 협업을 위한 연구 공간도 별도로 마련해 식품연구의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롯데는 롯데월드타워 건설로 세계 초일류 기술을 도입하는 등 기술 투자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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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 전역연기장병 26일 2차 채용

    롯데그룹은 8월 휴전선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사건 당시 전역을 연기한 장병에 대한 2차 특별채용을 26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제과 사옥에서 진행한다고 25일 밝혔다. 총 7개 계열사가 참여해 전역 연기 장병 중 취업 의사를 밝힌 14명 전원을 특별 채용한다. 롯데그룹은 9월 전역 연기 장병을 대상으로 1차 특별채용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특채된 전역 연기 장병 10명은 1일부터 5개 계열사에서 근무 중이다. 보훈대상자 특별 채용도 진행한다. 채용 인원은 약 40명이다. 지원서는 27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9일간 롯데그룹 채용 홈페이지(job.lotte.co.kr)를 통해 온라인으로 제출할 수 있다. 이번 채용에는 롯데제과와 롯데마트 등 14개 계열사가 참여한다. 롯데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기여한 인재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을 위해 특별채용을 진행한다”며 “앞으로도 국가에 기여한 인재를 다수 고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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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상을 관통하는 인문학 전파 “더 나은 삶 위한 가치 함께 찾자”

    신세계그룹은 4월 9일 고려대에서 정용진 부회장의 공개 강연을 시작으로 ‘지식향연’ 인문학 프로젝트를 본격화한다고 밝혔다. 이에 신세계그룹은 ‘지식향연’을 인문학 중흥사업으로 브랜드화해 매년 20억 원씩 지원하고 육성할 방침이다. 지난해 ‘2014 지식향연’이 대학생을 위한 인문학 청년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았다면, 올해 행사는 일반인도 공유할 수 있는 인문학의 대중적 확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신세계그룹이 인문학 전파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문, 예술, 패션을 통해 고객의 행복한 라이프스타일을 디자인한다’는 기업 철학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정 부회장은 평소 “우리의 미래는 시장점유율인 마켓셰어(Market Share)보다 사람들의 일상을 함께하는 라이프셰어(Life Share)를 높이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해왔다. 세계적 문화유산 가치가 있는 콘텐츠 발굴 신세계그룹은 지식향연을 통해 사람중심의 경영철학을 구현하고 전 국민이 행복한 대한민국을 만든다는 공감대 확산에 중점을 두고 있다. 이를 위해 신세계그룹은 국내에서 발간되지 않았거나 주목받지 못한 양질의 세계적인 인문학 서적을 발굴하고 번역할 예정이다. 또한 신세계그룹은 전 국민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콘텐츠 공유를 위하여 ‘지식향연 아카이브’를 운영한다. 전국 10개 대학에서 열리는 2015 지식향연 대학 강연을 시작으로 강연 영상, 칼럼, 방송 테마기행, 에세이, UCC 등 차별화된 인문학 콘텐츠들을 제작할 계획이다. 지식향연 홈페이지에 접속한 이용자들은 이렇게 제작된 양질의 콘텐츠들을 ‘지식향연 아카이브’에서 제공받을 수 있다. 일반 이용자들도 자신이 보유한 인문학 콘텐츠를 홈페이지에 올릴 수 있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공간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2015 지식향연에 나서는 강연자들은 한형조(철학) 한명기 교수(사학), 김용택 시인, 고도원 작가, 데니스 홍 로봇공학자, 이욱정 KBS PD, 박웅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등 각 분야의 명사들로 지식향연 홈페이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참가를 원하는 대학생들은 ‘지식향연’ 공식 홈페이지(www.ssghero.com), 페이스북(www.facebook.com/hellossghero)을 통해 다음 달 6일까지 신청하면 되고, 참가비는 없다.인문학 청년 영웅 채용 특전 제공 신세계는 지식향연 인문학 콘서트에 참가한 대학생 가운데 더 깊이 인문학을 공부하려는 이들에게는 ‘인문학 청년 영웅’에 도전할 기회를 줄 예정이다. ‘인문학 청년 영웅’은 온라인 홈페이지를 통해 진행되는 미션 통과 후 3박 4일간의 인문학 캠프 과정을 거쳐 최종 20명이 선발될 예정이다. 신세계그룹은 최종 선발된 ‘청년 영웅’에게 송동훈 문명탐험가의 설명을 들으며 프랑스 대혁명시대와 그 당시 나폴레옹의 발자취를 따라 프랑스, 벨기에, 영국을 방문하는 그랜드 투어의 기회를 제공한다. 그리고 이들의 지속적인 인문학적 소양 함양을 위하여 인문학 도서와 가을 학기 장학금을 지원한다. 나아가 ‘청년 영웅’에게는 채용 시 서류전형 및 1차 면접을 면제해 주는 특전이 부여된다. 작년에는 청년영웅단 20명 중에서 7명이 신세계그룹에 지원했고 3명이 최종 합격했다.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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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롯데그룹, 전역 연기 장병 대상 2차 특별채용 실시

    롯데그룹은 8월 휴전선 비무장지대 목함지뢰 사건 당시 전역을 연기한 장병에 대한 2차 특별채용을 26일 서울 영등포구 롯데제과 사옥에서 진행한다고 25일 밝혔다. 총 7개 계열사가 참여해 전역 연기 장병 중 취업의사를 밝힌 14명 전원을 특별 채용한다. 롯데그룹은 9월 전역 연기 장병을 대상으로 1차 특별채용을 진행한 바 있다. 당시 특채된 전역 연기 장병 10명은 1일부터 5개 계열사에서 근무 중이다. 보훈대상자 특별 채용도 진행한다. 채용 인원은 약 40명이다. 지원서는 27일부터 다음달 4일까지 9일간 롯데그룹 채용홈페이지(job.lotte.co.kr)를 통해 온라인으로 제출할 수 있다. 이번 채용에는 롯데제과와 롯데마트 등 14개 계열사가 참여한다. 롯데 관계자는 “국가를 위해 기여한 인재와 국가를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을 위해 특별채용을 진행한다”며 “앞으로도 국가에 기여한 인재들을 다수 고용할 예정”이라고 말했다.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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