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민

하정민 기자

동아일보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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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하정민 기자입니다.

dew@donga.com

취재분야

2026-02-18~2026-03-20
칼럼73%
사회일반7%
문학/출판7%
미국/북미7%
국제일반3%
국제교류3%
  • 이집트 군부 “화해는 없다”… 무슬림형제단 해체령

    이집트 정부가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자들의 행위를 ‘테러’로 규정하고 무르시 지지 세력인 무슬림형제단 해체에 나섰다. 무슬림형제단은 이에 강력 반발하며 일주일간 전국적인 시위를 벌이겠다고 선언해 유혈 충돌이 확대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피의 금요일’로 불린 16일 시위대 진압 과정에서 173명이 사망했다고 17일 밝혔다. 이집트 군경이 수도 카이로 나스르시티 라바 광장과 기자의 나흐다 광장에 집결한 무르시 지지자에 대한 본격적인 해산작전에 돌입한 14일부터 나흘간 계속된 유혈 사태의 공식 사망자 수도 800명을 넘어섰다. AFP통신은 이집트 전역에서 무르시 찬반 세력의 대규모 집회가 열린 6월 26일 이후 사망자가 최소 1042명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이집트 군경은 17일 카이로 람세스 광장 인근의 파테 모스크를 기습해 이곳에 피신한 시위대를 해산하고 385명을 체포했다. 무르시 지지 시위대 700여 명은 16일 람세스 광장에서 군부 반대 집회를 하다 군경의 진압을 피해 모스크로 피신했다. 이들은 정문 입구를 책상과 의자 등으로 막고 군경과 대치하다 체포됐다. 이집트 정부는 16일 시위 진압 과정에서 무슬림형제단원 약 1000명을 체포했다고 밝혔다. 수단 파키스탄 시리아 등 외국인도 다수 포함됐고 테러조직 알카에다의 수장인 아이만 알자와히리의 형제인 무함마드 알자와히리도 기자의 검문소에서 붙잡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집트 정부는 유혈 진압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으며 더욱 강경하게 대응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과도정부를 이끄는 하짐 알베블라위 총리는 내각에 무슬림형제단을 해체할 법적 가능성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뒤 “국가를 상대로 무기를 사용하는 이들과의 화해는 없다”고 강조했다. 저명한 이슬람학자인 핫산 알반나가 1928년 이슬람 율법 ‘샤리아’로 운영하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창립한 무슬림형제단은 병원과 학교 건설 등 빈곤층에 대한 지원으로 아랍권에서 폭넓은 지지를 얻어 왔다. 무슬림형제단은 1954년 가말 압델 나세르 전 대통령 암살 시도의 배후로 주목받은 이후 줄곧 이집트 정부와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으나 2011년 ‘아랍의 봄’으로 호스니 무바라크 전 대통령이 퇴출되자 자유정의당을 창당하며 정치무대 전면에 나섰다. 하지만 지나친 이슬람 원리주의를 고집하면서 민심으로부터 멀어졌고 1년 만에 탄압의 대상이 됐다. 이집트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기도 베스터벨레 독일 외교장관은 17일 카타르 외교장관과 회담한 뒤 “이집트 사태가 내전으로 비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AFP통신은 유럽연합(EU) 외교장관들이 이번 주 회의를 열어 원조 중단을 포함한 이집트 제재 방안을 논의한다고 보도했다. 터키 이스라엘 알제리에선 이집트 정부의 강경한 진압을 규탄하는 시위가 대대적으로 열렸다. 다만 무르시 축출 이후 군부를 지원하는 듯한 태도를 취해 온 미국은 원조 중단 같은 최후의 카드를 꺼내는 데 여전히 주저하고 있다. 정국 혼란이 장기화하면서 문화재 약탈도 횡행하고 있다. 이집트 정부는 카이로 남쪽의 고대 유적지 다슈르, 피라미드가 있는 사카라, 이집트 남부의 아스완과 룩소르에서 경비 소홀을 틈탄 도굴이 발생했다고 밝혔다. 특히 도굴꾼들이 굴착기에 자동화 무기까지 갖추고 집단 약탈을 감행해 검거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CNN방송은 군부의 시위대 강경 진압이 시작된 14일 사임한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부통령이 18일 오스트리아행 비행기에 탑승했다고 보도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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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중산층 자녀 1명당 양육비 2억7000만원

    미국 중산층이 자녀 1명을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 키우기 위해 최소 24만1080달러(약 2억6892만 원)의 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농무부가 14일 발간한 ‘연례 자녀 양육비용 보고서’에 따르면 연소득 6만640∼10만5000달러인 중산층 가정에서 2012년 태어난 자녀 1명을 18세까지 키우는 데 드는 비용이 평균 24만1080달러로 추산됐다. 이는 1년 전에 비해 2.6% 늘어난 수치로 같은 기간 물가상승률인 1.8%를 웃돌았다. 물가 상승률을 감안하면 실제 비용은 30만1970달러에 이른다. 자녀 양육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주거비로 평균 7만1820달러(29.8%)였다. 이 밖에 탁아 및 교육비, 식료품비가 각각 18%와 17%로 뒤를 이었다. 이는 미국 농무부가 처음 자녀 양육비용 보고서를 발표한 1960년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1960년 자녀 양육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항목은 주거비(31%)였고 식료품비(24%), 교통비(16%)가 뒤를 이었다. 미 농무부는 1960년부터 매년 자녀 양육비용 보고서를 발표하고 있으며 이 수치는 자녀 양육을 둘러싼 법정 소송이나 미국 정부가 어린이 지원 비용을 산정할 때 기준으로 쓰인다. 한편 연소득 6만640달러 이하 저소득층에서는 자녀 1명의 양육비가 17만3490달러였고 연소득 10만5000달러 이상의 고소득층에서는 평균 29만9780달러의 양육비를 쓰는 것으로 나타나 소득계층별 격차도 큰 것으로 드러났다. 케빈 컨캐넌 농무부 차관은 “가구 소득이 늘더라도 양육비용 또한 그에 맞게 늘어나는 데다 자녀 양육에 따른 스트레스와 도전은 날로 커지고 있다”고 평가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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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외신 다이제스트]화성행 편도티켓 구매 희망자 10만명 돌파

    네덜란드 우주벤처 기업 ‘마스 원’은 지구에 귀환하지 않고 화성에서 정착하기 원하는 ‘화성행 편도 티켓’ 구매 희망자가 10만 명을 넘어섰다고 11일 밝혔다. ‘마스 원’은 화성 정착 선발대는 2022년 9월 출발해 2023년 4월 화성에 도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선발대는 18세 이상 남녀 2명씩 4명으로 구성되며 2년마다 희망자를 더 파견한다.}

    • 201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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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도 첫 국산 항모 진수… 아시아 해양패권 다툼 가열

    인도가 12일 자체 기술로 설계하고 제작한 첫 항공모함 비크란트의 진수식을 가졌다고 신화통신 등 외신이 이날 전했다. 인도가 자체 제작한 항공모함을 진수함에 따라 중국 일본 등과 아시아 해양패권 다툼을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이번 진수식은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중국이 지난해 첫 항모 랴오닝을 배치하며 인도양 진출을 본격화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배수량 4만 t 규모의 비크란트는 길이 262m, 폭 60m로 헬기와 전투기 30대를 탑재할 수 있다. 인도 정부는 2003년 자체 설계 및 제작 계획을 승인해 지금까지 총 50억 달러를 들여 처음으로 항공모함을 건조했다. 대형 항공모함을 자체 제작할 수 있는 국가는 미국 러시아 영국 프랑스에 이어 인도가 세계에서 5번째가 됐다. 이날 인도 남부 코치에서 진수식을 한 비크란트는 앞으로 운항 장비와 무기, 통신 시스템 등을 추가로 장착하고 2016년 시험운항을 거쳐 2018년에 정식 취역할 예정이다. 이날 비크란트는 인도 국방장관의 부인에 의해 진수됐다. 힌두어 ‘비크란트’는 ‘용감한’이라는 의미다. A K 안토니 인도 국방장관은 이날 진수식에서 “이번 항공모함 진수는 먼 여행의 중요한 첫걸음”이라고 자체 제작 항공모함의 의의를 설명했다. 현재 인도는 1987년 영국에서 도입한 60년 된 항공모함 비라트를 보유하고 있다. 또 올해 말에는 러시아로부터 항공모함 ‘비크라마디티야’를 인수해 운항할 예정이다. 비크라마디티야는 러시아가 1970년대 만든 전투기 탑재 순양함 ‘고르슈코프제독’함을 현대화하는 것이다. 현재 운항 중인 항공모함은 미국이 10척으로 가장 많고, 인도는 이탈리아와 함께 2척이 됐으며 중국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이 1척이다. 중국은 지난해 첫 항모 랴오닝을 실전 배치한 데 이어 자체기술로 항모를 제작하고 있다. 일본도 8월 6일 ‘준’ 항공모함 이즈모를 진수했다. 앞서 9일 인도 정부는 자체 기술로 만든 첫 원자력 잠수함 ‘아리한트’의 시험 운항을 마치고 취역을 위한 막바지 준비를 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리한트는 인도 당국이 핵탄두 장착 미사일과 어뢰로 무장한 잠수함 5척을 건조하겠다는 계획의 일환으로 2009년에 그 모습이 공개된 바 있다. 인도는 이웃 국가인 중국 파키스탄과 국경 분쟁을 겪고 있는 가운데 국방비 지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컨설팅업체 KPMG에 따르면 인도는 2010∼2016년 국방력 향상을 위해 1120억 달러를 투입할 예정이다.허진석·하정민 기자 jameshuh@donga.com}

    • 201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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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매장서 모욕당한 재산 3조원 ‘토크쇼 여왕’

    ‘토크쇼의 여왕’이자 세계적 여성 부호인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사진)가 최근 스위스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을 털어놔 파문이 일고 있다. 윈프리는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3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재산도 27억 달러(약 3조118억 원)에 이르는 명사다. 지난달 미국의 전설적 여가수 티나 터너의 결혼식 참석차 스위스 취리히를 방문했던 윈프리는 한 명품 매장의 여종업원에게 모욕당한 사실을 털어놨다고 BBC 등 주요 외신이 10일 보도했다. 당시 윈프리는 프랑스어로 ‘세 개의 사과(Trois Pommes)’를 뜻하는 이름의 명품 편집숍에서 이탈리아 출신 여종업원에게 미국 유명 디자이너 톰 포드의 3만5000달러(약 3900만 원)짜리 가방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애니스턴이 즐겨 착용해 ‘제니퍼 백’으로도 불리는 이 가방은 500만∼1000만 원대인 일반적인 톰포드 가방보다 훨씬 비싸다. 하지만 윈프리를 알아보지 못한 종업원은 “여기는 당신에게 너무 비싼 가게”라며 제품을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윈프리는 “나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조용히 가게를 나왔다”며 “나의 경험이야말로 스위스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개탄했다. 사태가 확산되자 스위스 관광청과 가게 주인은 윈프리에게 사과했다. 스위스 관광청의 다니엘라 바에르 대변인은 “스위스를 찾는 방문객은 모두 정중하게 대우받아야 하며 매우 미안하다”고 말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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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총상 피해 美 기퍼즈 前의원 남편, NASA ‘쌍둥이 우주 실험’ 참가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일란성 쌍둥이인 우주인 형제를 대상으로 우주에서의 생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한다고 주요 외신이 10일 보도했다. NASA의 베테랑 우주인인 마크·스콧 켈리(49) 형제는 장기 우주비행이 유전자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는 실험에 피험자로 참여한다. NASA 연구진은 스콧이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체류하는 동안 마크를 지구에 머무르게 하면서 정기적으로 두 사람의 혈액, 타액 등을 채취해 각각의 신체가 어떻게 변하는지를 비교할 계획이다. 이번 실험이 더 관심을 끄는 이유는 마크가 2011년 애리조나 주 총기난사 사건 당시 머리에 총을 맞고도 기적적으로 살아난 개브리엘 기퍼즈 전 연방 하원의원의 남편이기 때문이다. 우주왕복선 엔데버 호의 선장이었던 그는 아내를 간호하기 위해 NASA에서 은퇴했으며 이번 실험에만 참가한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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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긴 당신에게 비싼 가게" 오프라 윈프리와 명품매장의 악연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와 명품의 질기고 질긴 악연'토크쇼의 여왕'이자 세계적 여성 갑부인 미국 유명 방송인 오프라 윈프리가 최근 스위스에서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종차별을 당한 경험을 털어놔 파문이 일고 있다. 윈프리는 미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선정한 '2013년 세계의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 순위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재산도 27억 달러(약 3조118억 원)에 이르는 세계적 명사다.지난달 미국의 전설적 여가수이자 가장 친한 친구인 티나 터너의 결혼식 참석차 스위스 취리히를 방문했던 윈프리는 한 명품 매장의 여종업원에게 모욕당한 사실을 털어놨다고 BBC 등 주요 외신이 10일 보도했다.당시 윈프리는 프랑스어로 '세 개의 사과(Trois Pommes)'를 뜻하는 '트와 폼므'라는 이 매장에서 이탈리아 출신 여종업원에게 미국 유명 디자이너 톰 포드의 3만5000달러(약 3900만 원)짜리 가방을 보여 달라고 요구했다. 할리우드 스타 제니퍼 애니스턴이 즐겨 착용해 '제니퍼 백'으로도 불리는 이 가방은 500만~1000만 원대인 일반적인 톰 포드 가방보다 훨씬 비싸다.하지만 윈프리를 알아보지 못한 종업원은 "여기는 당신에게 너무 비싼 가게"라며 제품을 보여주기를 거부했다. 세계적 명사이자 부호인 윈프리를 알아보지 못한 점원이 단순히 그가 흑인이라는 인종편견에 사로잡혀 돈이 없을 것으로 생각하고 문전박대한 셈이다. 윈프리는 "나는 아무런 항의도 하지 않고 조용히 가게를 나왔다"며 "나의 경험이야말로 스위스에서 여전히 인종차별이 횡행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개탄했다.이번 사건은 스위스의 망명신청자 관리 강화조치와 맞물려 더 큰 파문을 낳고 있다. 아프리카계 난민의 유입 증가에 골머리를 앓던 스위스 정부는 올해 6월 사회범죄를 예방한다는 명목 아래 과거 군대막사를 개조한 수용시설에 망명 신청자를 격리하기로 했다. 이 곳에 있는 사람들은 수영장, 도서관, 놀이터, 교회 등 공공시설 대부분을 이용할 수 없어 '현대판 노예수용소'라는 비판마저 나오고 있다.사태가 확산되자 스위스 관광청과 가게 주인은 윈프리에게 사과했다. 스위스 관광청의 다니엘라 바에르 대변인은 "스위스를 찾는 방문객은 모두 정중하게 대우받아야 하며 정말로 미안하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은 "이탈리아인 종업원이 영어를 할 줄 알지만 모국어가 아닌 만큼 매우 능숙하지는 않다"며 "그래서 이런 오해가 빚어졌다"고 군색하게 변명했다.이번 사건이 더욱 화제를 모으는 이유는 윈프리와 명품 매장의 악연이 처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윈프리는 8년 전인 2005년에도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 매장에서 냉대를 당한 적이 있다. 2005년 6월 14일 업무 차 프랑스 수도 파리를 찾았던 윈프리와 그의 친구들은 파리의 한 에르메스 매장에 들어가려다 제지당했다. 당시 윈프리는 맨 얼굴에 머리 손질도 하지 않은 수수한 차림이었다. 에르메스 매장의 영업 마감시간은 오후 6시 30분이지만 에르메스는 물론이고 샤넬, 루이뷔통 등 명품 브랜드들은 세계적 유명인사들에게 마감 시간 이후에도 관례적으로 쇼핑을 허락하곤 한다. 실제 그 시간에도 해당 매장에서는 일부 고객이 쇼핑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매장 직원은 수수한 차림새를 한 흑인 중년여성을 막아섰다. 윈프리 측이 항의했으나 매장의 지배인까지 합세해 윈프리를 돌려보냈다.이 사실이 알려지면서 미 언론들은 인종차별이 이런 상황을 야기했다고 에르메스를 질타했다. 뉴욕포스트는 "해당 매장이 최근 흑인 여성과 불미스러운 일을 겪었던 적이 있어 흑인인 윈프리의 입장을 막은 것"이라며 인종차별을 문제 삼았다.파문이 커지자 에르메스는 사건 발생 8일 뒤인 같은 달 22일 공식 사과문을 발표했다. 에르메스의 사장이 직접 윈프리에게 전화를 걸어 당시 상황을 해명했으며 매장을 다시 찾아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윈프리는 "내가 브리트니 스피어스, 셀린 디온, 바브라 스트라이샌드처럼 백인 유명 인사였다면 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을 것임은 물론이고 해당 매장이 새벽에라도 기꺼이 문을 열었을 것"이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당시 윈프리와 동행했던 그의 친구 게일 킹도 "이는 윈프리의 인생에서 가장 치욕스러웠던 순간"이라며 "다시 그곳을 찾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윈프리는 이번 스위스 사태와 마찬가지로 티나 터너의 생일선물로 줄 시계를 구입하기 위해 에르메스 매장을 찾았다. 사태가 발생하기 전 윈프리는 1개당 6000달러가 넘는 고가의 핸드백을 수십 개 주문했으나 사건 이후 모든 주문을 취소했다.이번 사건을 두고 일각에서는 명품 매장의 인종 차별도 문제지만 유명 연예인의 특권 의식 또한 마찬가지로 고까운 문제라고 평가했다. 이런 지적이 상당 부분 일리가 있지만 3조 원이 넘는 재산을 지닌 세계적인 유명 인사라 해도 피부색의 편견 앞에서는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씁쓸함을 남긴다.하정민기자 dew@donga.com}

    • 2013-0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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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푸틴 vs 反푸틴… 모스크바 시장선거 양강구도

    다음 달 8일 치러지는 러시아 모스크바 시장 선거에서 ‘푸틴 대 반(反)푸틴’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6일 반푸틴 진영의 알렉세이 나발니 국민자유당 후보의 출마가 돌발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며 이같이 보도했다. 이번 선거에서는 당초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지지를 받고 있는 세르게이 소뱌닌 현 시장의 일방적 승리가 예상된다는 전망이 우세했다. 지금도 소뱌닌 시장의 승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막판에 선거에 뛰어든 나발니 후보가 설사 낙선하더라도 상당한 득표를 할 경우 황제와 같은 권력을 휘두르고 있는 푸틴 대통령에게 일격을 가할 수 있다고 이 신문은 분석했다. 중산층, 고학력 젊은이들로부터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은 나발니 후보는 변호사에서 반푸틴 정치인으로 변신했다. 그는 2009년 지방 정부에서 무보수 고문으로 활동하면서 국영 목재소의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지난달 18일 징역 5년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하지만 수감 하루 만에 법원이 그를 이례적으로 석방하자 선거일을 한 달여 앞두고 출사표를 냈다. 러시아 정부가 선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당선 가능성이 낮은 그를 일부러 석방했다는 관측도 나온다. 모스크바 현지 언론은 나발니 후보의 지지 세력이 증가하고 있다고 전했다. 최근 러시아 기업인 37명은 공개적으로 나발니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한때 석유기업 유코스의 사장이자 러시아 굴지의 재벌로 군림했던 미하일 호도르콥스키 씨는 야당 후보를 지원했다 푸틴 대통령의 눈 밖에 나 탈세 혐의로 투옥됐고 결국 재기불능 상태에 빠졌다. 이를 감안할 때 일부 기업인의 반푸틴 정치인 지지 선언은 매우 이례적이라고 신문은 분석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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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뉴질랜드 분유서 신경마비 물질… 국내 유통 여부는 아직 확인안돼

    중국 정부가 4일 뉴질랜드산 분유의 수입을 전면 중단했다. 하루 전 뉴질랜드의 세계적 낙농업체인 폰테라의 조제분유에서 신경마비를 일으키는 독소물질 보툴리눔이 검출된 데 따른 조치다. 폰테라는 3일 “지난해 5월 생산한 유청 단백질 농축물 약 40t이 신경마비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박테리아에 오염됐다”며 “문제의 농축물은 분유, 단백질 음료, 스포츠 음료 등에 쓰였으며 완제품은 중국 호주 말레이시아 태국 베트남 사우디아라비아 등 6개국에 수출됐다”고 밝혔다. 한국은 수출 대상 국가에는 포함되지 않았으며 국내 유통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는 4일 “인터넷 등을 통해 뉴질랜드산 분유 구입을 자제해 달라”고 당부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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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아칸소州 ‘무장교사 교내 배치’ 논란

    미국 아칸소 주의 한 학교에서 무장한 교사를 교내에 배치하기로 해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지난해 12월 코네티컷 주 뉴타운 샌디훅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정치권이 총기 규제 해법을 두고 논란을 벌이는 동안 다른 한편에서 교사들의 총기 훈련 및 보유를 택함으로써 정반대 해법이 혼재하는 모습이다. 인구 약 9200명의 소도시 클라크스빌의 클라크스빌 고등학교는 지난달 30일 교내 총기사건에 대비하기 위해 교사와 교직원 20여 명을 대상으로 사설 총기 교육기관으로부터 총기 사용 교육을 받기로 했다. 또 총기 사용 교육을 받은 교직원은 새 학기가 시작되는 이달부터 교내에서 9mm 구경 권총을 소지하도록 했다. 체인 도건 교감은 “총기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도착하기 전까지 무장 교사가 학생들을 지키며 시간을 끌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칸소 주는 자격증이 있는 무장 경비원을 교내에 둘 수 있도록 법으로 허용하고 있다. 아칸소 외에도 오하이오 콜로라도 뉴저지 펜실베이니아 코네티컷 워싱턴 주의 법 등도 교내 무장 경비원 배치를 허용하고 있다. 샌디훅 사건 이후 무장 교사의 교내 배치를 주장해 온 미국총기협회(NRA)는 즉각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NRA는 “학생들을 중대한 위협에서 구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반대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전미교육협회(NEA)와 미국교사연맹(AFT) 등은 “학교에 총이 있을 자리는 없다”며 강력하게 반대하고 있다. 교사가 총기를 소지하면 이를 학생이 손에 넣을 수 있어 더 큰 사고가 발생할 것이라는 우려도 나타냈다. 총기 사고의 해결책은 학교에 더 많은 총을 배치하는 게 아니라 없애는 것이라는 주장인 셈이다. 클라크스빌 고교의 일부 학부모는 이번 방침에 반발해 자녀를 전학시킨 것으로 알려졌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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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美 TV시리즈 “힐러리가 그렇게 섹시해?”

    미국 NBC방송이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을 다루는 TV 시리즈 ‘힐러리’의 주인공으로 유명 배우 다이앤 레인(48)을 낙점했다. 문제는 레인의 이미지가 너무 섹시해 클린턴 전 장관과 잘 어울리지 않으며, 그의 대권 가도에 도움을 줄지도 미지수라고 정치전문매체 데일리비스트가 29일 보도했다. 6세 때 아역 배우로 데뷔한 레인은 1980년대 브룩 실즈, 피비 케이츠 등과 세계적인 청춘스타로 이름을 날렸다. 그는 성인이 된 뒤 ‘빅 타운’ ‘나이트 게임’ ‘워크 온 더 문’ ‘언페이스풀’ 등의 영화에서 과감한 노출 연기를 선보이며 고혹적이고 섹시한 여인상을 드러냈다. 반면 클린턴 전 장관은 대통령 부인이 되기 전 다소 촌스러운 머리 모양과 화장법으로 화제가 된 바 있다. 데일리비스트는 레인의 주요 연관 검색어가 ‘섹시’임을 감안할 때, 클린턴 전 장관의 실제 삶이나 복잡다단한 정치 역정을 떠올리는 사람보다는 레인의 섹시한 이미지에 사로잡히는 시청자가 더 많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NBC가 레인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한 것이 클린턴 전 장관에게 큰 도움을 주지 못할 가능성이 많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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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캄보디아 총선 9일전 佛서 돌아와 野돌풍 이끈 ‘정국의 핵’

    28일 캄보디아 총선에서 예상을 깨고 2008년 총선보다 두 배 가까운 의석을 확보한 야당 캄보디아구국당(CNRP)의 삼 랭시 대표(64·사진)가 정국의 핵으로 급부상하고 있다. 캄보디아 선거관리위원회는 29일 최종 집계 결과 전체 123석 중 집권 캄보디아인민당(CPP)이 68석, CNRP가 55석을 확보했다고 29일 밝혔다. CPP는 과반 의석은 확보했지만 5년 전 90석에서 무려 22석이 줄었다. 28년간 장기 집권하며 철권통치를 휘두른 훈 센 총리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대한 국민의 반감이 삼 랭시에 대한 지지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많다. 예상 밖으로 선전한 삼 랭시 대표는 여세를 몰아 29일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총선 결과에 불복할 뜻을 내비치며 대결정국 구도를 만들었다. 그는 “훈 센 총리가 승리를 도둑질했다”며 유엔의 감독하에 조사를 벌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 랭시는 1949년 수도 프놈펜의 최상류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1950년대 교육부 장관을 지냈던 그의 아버지 삼 사리가 1965년 의문의 실종을 당하자 프랑스로 망명했다. 프랑스 명문 경영대학원인 인시아드를 졸업하고 투자은행가로 활동하던 그는 시아누크 전 국왕의 아들인 노로돔 라나리드 왕자 측과 손잡고 1989년 정계에 입문했다. 1993년 총선에서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1997년 쿠데타로 권력을 재장악한 훈 센 총리와 충돌하며 줄곧 정적 관계로 지냈다. 그는 캄보디아 정부가 2009년 베트남과의 갈등을 촉발했다는 이유로 자신을 기소하자 다시 망명을 택했고 6월 노로돔 시하모니 국왕이 사면하기 전까지 프랑스에서 생활했다. 총선을 불과 9일 앞두고 이달 19일 귀국한 삼 랭시를 맞이하기 위해 프놈펜 공항에 5만 명 이상의 군중이 운집해 총선에서의 약진이 예고된 바 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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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전 60주년 기념식, 美 오바마 대통령 연설문 전문

    Remarks by the President at 60th Anniversary of the Korean War ArmisticeNational Korean War Veterans Memorial Washington, D.C. 10:44 A.M. EDTTHE PRESIDENT: Thank you so much. (Applause.) Thank you. Please be seated. Good morning. Annyong haseyo. Secretaries Hagel, Jewell and Shinseki; Admiral Winnefeld; General Jung; all our friends from the Republic of Korea, including the legendary General Paik Sun Yup; distinguished guests; and most of all, veterans of the Korean War and your families. (Applause.) To our veterans -- many in your 80s, a few in your old uniforms -- which still fit -- (laughter) -- let me just say you look outstanding. And I would ask that all United States, Republic of Korea, and other veterans who fought -- I would ask those who can stand to please stand so that we can properly honor you here today. (Applause.) July 27th, 1953 -- 60 years ago today. In the village of Panmunjom, in a barren room, the generals picked up their pens and signed their names to the agreement spread before them. That night, as the armistice took hold, the guns of war thundered no more. Along the jagged front, men emerged from their muddy trenches. A Marine raised his bugle and played taps. And a soldier spoke for millions when he said, "Thank God it is over."In the days that followed, both sides pulled back, leaving a demilitarized zone between them. Soldiers emptied their sandbags and tore down their bunkers. Our POWs emerged from the camps. Our troops boarded ships and steamed back across the ocean. And describing the moment he passed under the Golden Gate Bridge, one of those soldiers wrote, "We suddenly knew we had survived the war, and we were home."Yet ask these veterans here today and many will tell you, compared to other wars, theirs was a different kind of homecoming. Unlike the Second World War, Korea did not galvanize our country. These veterans did not return to parades. Unlike Vietnam, Korea did not tear at our country. These veterans did not return to protests. Among many Americans, tired of war, there was, it seemed, a desire to forget, to move on. As one of these veterans recalls, "We just came home and took off our uniforms and went to work. That was about it." You, our veterans of Korea, deserved better. And down the decades, our nation has worked to right that wrong, including here, with this eternal memorial, where the measure of your sacrifice is enshrined for all time. Because here in America, no war should ever be forgotten, and no veteran should ever be overlooked. And after the armistice, a reporter wrote, "When men talk in some distant time with faint remembrance of the Korean War, the shining deeds will live." The shining deeds will live. On this 60th anniversary, perhaps the highest tribute we can offer our veterans of Korea is to do what should have been done the day you come home. In our hurried lives, let us pause. Let us listen. Let these veterans carry us back to the days of their youth, and let us be awed by their shining deeds.Listen closely and hear the story of a generation -- veterans of World War II recalled to duty. Husbands kissing their wives goodbye yet again. Young men -- some just boys, 18, 19, 20 years old -- leaving behind everyone they loved "to defend a country they never knew and a people they never met." Let's never forget all the daughters who left home, especially our heroic nurses who saved so many. Our women in Korea also served with honor. They also gave their lives. (Applause.)Listen, and hear how these Americans faced down their fears and did their duty. Clutching their rifles; hearing the bugles in the distance; knowing that waves of enemy fighters would soon be upon them. In ships offshore, climbing down the ropes into the landing craft, knowing some of them would not leave that beach. On the tarmacs and flight decks, taking off in their Corsairs and Sabres, knowing that they might not return to this earth.Listen, and hear of their gallantry -- often outnumbered and outgunned -- in some of the most brutal combat in modern history. How they held the line at the Pusan Perimeter. How they landed at Inchon and turned the tide of the war. How, surrounded and freezing, they battled their way out of Chosin Reservoir. And how they fought -- foxhole by foxhole, mountain after mountain, day and night -- at the Punchbowl and Heartbreak Ridge, Old Baldy and Pork Chop Hill.Listen, and hear how perhaps the only thing worse than the enemy was the weather. The searing heat, the choking dust of summer. The deep snow and bitter cold of winter -- so cold their weapons could jam; so cold their food would turn to ice. And surely no one endured more than our POWs in those hellish camps, where the torment was unimaginable. Our POWs from Korea are some of the strongest men our nation has ever produced, and today we honor them all -- those who never came home and those who are here today. (Applause.)Listen to these veterans and you'll also hear of the resilience of the human spirit. There was compassion -- starving prisoners who shared their food. There was love -- men who charged machine guns, and reached for grenades, so their brothers might live. There was the dark humor of war -- as when someone misunderstood the code name for mortar rounds -- "Tootsie Rolls" -- and then shipped our troops thousands of Tootsie Rolls -- candies.And there was hope -- as told in a letter home written by a soldier in the 7th Cavalry. Marching through the snow and ice, something caught his eye -- a young lieutenant up ahead, and from the muzzle of his rifle hung a pair of tiny baby booties, "swinging silently in the wind…like tiny bells." They were sent by the lieutenant's wife, pregnant with their first child, and she promised to send ribbons -- blue if a boy, pink if a girl. But as the war ground on, those soldiers were scattered. Until one day, on a Korean road, he spotted the lieutenant again. "Swinging gaily in the first rays of the morning sun," the soldier wrote, were those booties, "and fluttering below them was the brightest, bluest piece of ribbon I have ever seen."Six decades on, these moments may seem like faint remembrances of a distant time. But for you -- our Korea veterans and your families -- I know it must feel sometimes just like just yesterday. And on days such as this, you're back there once more. For Korea was the fire that helped to forge you. As we listen to the story of your service, I say let us also learn, because your lives hold lessons for us today. Korea taught us the perils when we fail to prepare. After the Second World War, a rapid drawdown left our troops underequipped, so that in the early days of Korea, their rockets literally bounced off enemy tanks. Today, as we end a decade of war and reorient our forces for the future, as we make hard choices at home, our allies and adversaries must know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will maintain the strongest military the world has ever known, bar none, always. That is what we do. (Applause.)Korea taught us that, as a people, we are stronger when we stand as one. On President Truman's orders, our troops served together in integrated units. And the heroism of African Americans in Korea -- and Latinos and Asian Americans and Native Americans -- advanced the idea: If these Americans could live and work together over there, surely we could do the same thing here at home. (Applause.) Change came slowly. And we continue our long journey toward a more perfect union. But for the great strides we have made toward the ideals of equality and opportunity, we must give thanks to our Korean War veterans who helped point the way.Korea reminds us that when we send our troops into battle, they deserve the support and gratitude of the American people -- especially when they come home. Today, let us remember that -- right now -- our sons and daughters continue to risk their lives, give their lives, in Afghanistan. And as this war ends and we welcome them home, we will make it our mission to give them the respect and the care and the opportunities that they have earned. (Applause.) And Korea reminds us that our obligations to our fallen and their families endure long after the battle ends. To this day, 7,910 Americans are still missing from the Korean War. And we will not stop working until we give these families a full accounting of their loved ones. (Applause.) Like Sergeant First Class William Robinson -- 26 years old -- missing for 63 years. This week, in Indiantown Gap, Pennsylvania, the Robinsons will welcome their uncle home and finally lay him to rest -- with full military honors. (Applause.) Freedom is not free. And in Korea, no one paid a heavier price than those who gave all -- 36,574 American patriots, and, among our allies, more than one million of our South Korean friends -- soldiers and civilians. That July day, when the fighting finally ended, not far from where it began, some suggested this sacrifice had been for naught, and they summed it up with a phrase -- "die for a tie." It took many decades for this memorial to gain its rightful place on this great Mall where we tell our American story. It has, perhaps, taken even longer to see clearly, and understand fully, the true legacy of your service. But here, today, we can say with confidence that war was no tie. Korea was a victory. When 50 million South Koreans live in freedom -- a vibrant democracy, one of the world's most dynamic economies, in stark contrast to the repression and poverty of the North -- that's a victory; that's your legacy. (Applause.)When our soldiers stand firm along the DMZ; when our South Korean friends can go about their lives, knowing that the commitment of the United States to the security of the Republic of Korea will never waver -- that is a victory, and that is your legacy.When our allies across the Asia Pacific know -- as we have proven in Korea for 60 straight years -- that the United States will remain a force for peace and security and prosperity --that's a victory; that's your legacy.And for generations to come, when history recalls how free nations banded together in a long Cold War, and how we won that war, let it be said that Korea was the first battle -- where freedom held its ground and free peoples refused to yield, that, too, is your victory, your legacy.Most of all, your legacy burns brightest right here, in a grateful nation that reveres you; in the loving families that cherish you -- like that young soldier with those baby booties swinging from his rifle. Ever since the war, the story of that soldier has been passed among our Korean War vets. Some of you may have heard it before. And many may have wondered what became of that soldier. Today, six decades later, we now know -- because we found him. His was Richard Shank, from St. Louis, Missouri. For his valor in Korea he earned the Silver Star. Yes, Dick survived the war. He returned home. He held his baby boy in his arms. He was able to be a father to his son. But this story doesn't end there -- because like so many of you, Dick continued to serve in uniform. His son grew into a man, got married, had children of his own. Those children are now adults themselves, scattered across the country. And like so many American families, they still speak with pride of their grandfather's service in Korea. Today, Dick Shank lives in Gainesville, Florida, and I believe he's watching us this morning. He's 84 years old, recovering from a recent fall while roller skating. (Laughter.) "Life is short," he says, "and I just keep on living it." And one of the ways he keeps living it is by meeting up every year with his buddies from Korea, and recalling the time they shared together in that fight which ended 60 years ago today.Veterans of the Korean War -- in the spring of your youth you learned how short and precious life can be. And because of you, millions of people can keep on living it, in freedom and in peace. Your lives are an inspiration. Your service will never be forgotten. You have the thanks of a grateful nation. And your shining deeds will live -- now and forever. May God bless those who gave all in Korea. May God bless you and your families. May God bless the alliances that helped secure our prosperity and our security. And may God continue to bless these United States of America. Thank you very much. (Applause.)}

    •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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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리비아 벵가지 교도소 폭동… 죄수 1000여명 집단 탈옥

    리비아 2대 도시인 벵가지 인근의 한 교도소에서 1000명 이상의 죄수가 집단 탈옥하고 곳곳에서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는 등 정국 불안이 깊어지고 있다. AP AFP 등 외신은 27일 벵가지 알쿠이피야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 재소자 1000여 명이 집단으로 탈출했다고 보도했다. 교도소 관계자는 “교도소 내부의 소요 사태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외부의 공격이 동시에 발생해 집단 탈옥이 가능했다”며 “특수부대를 투입한 후 질서를 되찾았으며 죄수들에 대한 사격은 없었다”고 말했다. 탈옥한 죄수 중에는 무아마르 카다피 전 대통령 집권 당시 정권에 협력한 혐의로 갇힌 이들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리비아 정부는 이번 탈옥 사태가 같은 날 수도 트리폴리와 벵가지에서 일어난 대규모 반정부 시위와 연관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있다. 이날 시민 수천 명은 리비아의 인권운동가이자 변호사인 압둘살람 알무스마리의 피격 사망 사건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였다. 알무스마리는 2011년 카다피 정권 축출 이후 급격히 세를 확장한 무슬림형제단 등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을 공개적으로 비판해온 인물이다. 그는 탈옥 사태 전날인 26일 벵가지에서 집으로 돌아가다 괴한이 쏜 총탄에 맞아 숨졌다. 시위대는 알무스마리를 공격한 배후 세력이 무슬림형제단이라고 주장하며 트리폴리와 벵가지에 있는 무슬림형제단의 정의건설당(PJC) 사무실을 집중 공격했다. 리비아 최대 정당인 국민연합 사무실도 시위대의 공격을 받았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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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기공장 3D 프린터’… 권총 이어 소총 제작

    올 5월 미국 민간 무기개발 단체 디펜스 디스트리뷰트가 3차원(3D) 프린터를 이용해 권총을 만든 데 이어 한 캐나다 남성이 3D 소총(사진) 제작에도 성공해 개인의 총기 제작 및 휴대에 대한 우려가 날로 커지고 있다. 미국 NBC방송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사는 매트라는 남성이 3D 프린터로 22구경 소총을 만들어 발사에 성공한 영상을 동영상 공개사이트인 유튜브에 올렸다고 26일 보도했다. 자신의 성(姓)을 공개하지 않은 매트는 NBC와의 e메일 인터뷰에서 “3D 소총을 만드는 데 사흘이 걸렸다”며 “소총 이름은 2차 세계대전 때 사용된 캐나다 탱크 이름을 본떠 그리즐리(grizzly)라고 지었다”고 말했다. 3D 프린터는 3차원 형태의 물체와 똑같은 크기로 복사해 찍어낼 수 있다. 일반 프린터가 문서를 다량으로 인쇄하는 원리와 같다. 컴퓨터 설계도를 바탕으로 잉크젯 프린터에서 재료 물질을 뽑아낸 뒤 자외선이나 레이저로 재료를 붙이거나 굳히는 방식으로 물건을 만든다. 처음에는 간단한 플라스틱 제품 정도만 생산했으나 최근에는 인공 뼈나 항공기 부품까지 적용 범위가 날로 넓어지고 있다. 각종 총기 사고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 미국에서는 3D 프린터를 통한 개인의 총기 제작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총기 설계도를 자유롭게 내려받을 수 있어 설계도에 대한 규제가 실효를 거두긴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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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oney&Life/이런 상품도 있었네!]자녀까지 보장해주고 상속도 되네 ‘VVIP 스마트변액 통합보험’

    한화생명은 은퇴 후 상속세 절세에 관심이 많은 고객을 위한 종신보험 ‘VVIP 스마트변액 통합보험’을 선보이고 있다. 이 보험은 가장(家長)이 사망했을 때, 사망보험금을 배우자나 자녀를 위한 연금 또는 종신보험으로 상속할 수 있는 상품이다. 이 상품은 설계사 모집수당 등이 없기 때문에 보험금으로 모은 적립재원을 최대한 활용한다. 은퇴 후 생활자금이나 자녀 결혼자금 등 목돈이 필요하면 연금보험이나 적립보험으로도 전환 가능하다. 대부분의 보장성보험이 적립보험 전환 시 100% 전환만 가능하지만 이 상품은 부분 전환도 할 수 있어 필요한 만큼만 목돈으로 찾을 수 있다. 예를 들어 50% 전환을 선택하면 기존 종신보험의 보장금액은 반으로 줄어들고 나머지 적립금은 새로운 적립보험으로 바뀐다. 즉 추가 보험료 없이 보험 2개에 가입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고액 보장성보험이므로 보험료 할인 혜택도 크다. 자동이체하면 보험료의 1%, 단체가입 때는 1.5% 할인 혜택을 제공하고, 보험 가입금액에 따라 최대 6%를 추가로 깎아 준다. 또 통합보험이기 때문에 한 건의 보험계약으로 배우자와 자녀까지 보장이 가능한 것도 장점이다. 장기간병 보장, 실손의료비 보장, 어린이 보장 등 다양한 특약으로 부족한 보장을 채울 수 있다. 계약 후에도 중도 보장 부가가 가능하다. 임동필 한화생명 마케팅실장은 “VIP고객은 상속과 절세에 관심이 많아, 상속재원 마련은 물론 비과세 혜택까지 받을 수 있는 종신보험에 대한 선호도가 높다”며 “다양한 부가기능으로 경제활동기에는 보장을, 은퇴 이후에는 노후자금이나 상속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고 강조했다. 최저가입기준은 보험가입금액 3억 원 이상이며, 가입연령은 만 15세부터 최대 70세까지다. 30세 남성이 주계약(기본형) 가입금액 3억 원, 납입기간 20년으로 가입할 경우, 월 보험료는 39만9000원이다.}

    • 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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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상 뒤집은 성추문 얼마됐다고… 정치판 돌아온 뻔뻔男들

    성추문으로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각국의 유명 인사들이 파문이 가시기도 전에 속속 복귀를 시도해 논란이 거세다. 2011년 5월 미국 뉴욕에서 자신이 머물던 호텔의 여종업원을 성폭행한 혐의로 체포돼 재판을 받아 국제통화기금(IMF) 총재직을 내놔야 했던 도미니크 스트로스칸(64)은 17일 러시아 최대 석유기업 로스네프티의 은행 계열사인 ‘러시아 지역개발은행(RDB)’의 감독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됐다. 스트로스칸은 당시 미국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공소가 취소됐지만 프랑스 사회당의 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던 그에게는 큰 정치적 타격이었다. 하지만 그는 지난달 말 칸 영화제에 모습을 드러내는 등 행보를 넓히고 있다. 미국 뉴욕에서는 두 명의 성추문 관련 정치인이 11월에 있을 시장 및 감사관 선거에 도전하고 있다. 7선의 앤서니 위너 전 연방 하원의원(민주)은 2011년 6월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가운데 부분이 불룩 솟은 사각팬티를 입은 자신의 외설적인 사진을 한 여대생에게 보낸 사실이 알려져 의원직을 사퇴했다. 하지만 위너는 5월 돌연 뉴욕시장 출마를 선언했다. 사람들은 그의 정계 복귀를 비웃었지만 젊은 시절 방송인을 꿈꿀 정도로 뛰어난 언변을 지닌 위너는 차근차근 표밭을 다지며 지지율을 1위로 끌어올렸다. 뉴욕은 전통적인 민주당의 텃밭 지역이어서 9월 당내 경선에서 이기면 시장 당선이 확실시된다. 이달 8일에는 엘리엇 스피처 전 뉴욕 주지사(민주)가 시장, 부시장에 이어 뉴욕시 서열 3위인 감사관에 도전하겠다고 밝혔다. 1999년부터 2007년까지 시 검찰총장을 지내며 대형 금융회사의 비리를 여럿 적발해 ‘월가의 저승사자’로 불렸던 스피처는 청렴하고 강직한 이미지, 하버드대와 프린스턴대 졸업이라는 화려한 학력을 앞세워 민주당 대권 후보로 거론됐다. 하지만 뉴욕의 최고급 성매매 업소에서 시간당 1000달러(약 115만 원)를 지불하고 고급 콜걸을 부른 사실이 폭로되자 주지사 자리에서 물러났다. 2012년 11월 자신의 전기를 쓴 유부녀 작가와의 불륜이 밝혀져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직에서 사퇴했던 ‘이라크전 영웅’ 데이비드 퍼트레이어스도 불과 반년 만인 5월 유명 사모펀드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의 임원이 됐고 몇몇 대학에 출강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전문가들은 성추문으로 물러난 정치인들의 잇따른 복귀 움직임에 대해 유권자들이 정치인에게 기대하는 윤리의식과 도덕성의 기준이 애초부터 낮은 것도 한 요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USA투데이의 마이클 월프 칼럼니스트는 “성추문 정치인의 빠른 복귀를 비판하지 않고 화제 기사로만 취급하는 언론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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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악관 ‘전설의 女기자’ 토머스, 天上 취재 떠나다

    반세기 동안 미국 백악관 기자회견장의 맨 앞자리를 지켜왔던 ‘미국 언론계의 전설’ 헬렌 토머스 기자가 20일 워싱턴 자택에서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93세. 1920년 켄터키 주 윈체스터에서 레바논계 이민 2세로 태어난 토머스는 1942년 워싱턴 데일리뉴스의 복사 담당 직원으로 언론사에 들어온 뒤 기자가 됐다. 1950년대 UPI통신사에 들어가 가정사를 다루다 정부 부처를 출입했고 1960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백악관 입성과 함께 들어가 여성으로는 첫 백악관 출입기자가 됐다. 그는 2010년 6월 백악관을 떠날 때까지 50여 년간 10명의 대통령을 취재하며 날카로운 질문과 깊이 있는 분석 기사로 이름을 날렸다. 리처드 닉슨 대통령에게 “베트남전을 끝낼 계획이 있느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에게 “미국이 그라나다를 침공할 권리가 있느냐”,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는 “이라크전쟁을 언제 끝낼 거냐” 등 ‘돌직구’ 질문을 날렸고 부시 대통령을 ‘최악의 대통령’으로 불렀다가 3년간 첫 질문권 및 맨 앞좌석을 박탈당하기도 했다. 그는 백악관 기자단의 첫 여성 간사, 미국 중견 언론인들의 모임인 그리다이언 클럽의 최초 여성 회장, 리처드 닉슨 전 대통령의 중국 방문에 동행한 유일한 여성 기자 등 각종 ‘최초’ 기록도 보유했다. 그의 고정석이었던 기자회견장 맨 앞줄 가운데 자리에는 그의 이름이 큼지막하게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아랍계 이민자의 후손인 그는 말년에 평생 반감을 가져왔던 이스라엘에 대한 과격한 발언 때문에 곤욕도 치렀다. 그는 2010년 5월 한 유대인 랍비에게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을 떠나 미국 독일 헝가리 등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 사회를 좌지우지하는 유대인들의 격분과 반발로 같은 해 6월 7일 소속 회사 허스트코퍼레이션과 출입처인 백악관을 떠나 버지니아 주의 지방지 폴스처치뉴스에 근무하기도 했다. 6권의 저서를 낸 토머스는 “사랑받고 싶은 존재가 되려면 기자가 되지 말라” “기자에게 무례한 질문이란 없다” “대통령이 언제나 깨어 있도록 하는 게 언론이다” 등 명언을 남겼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일 “여성 언론인의 벽을 허문 토머스의 죽음을 애도한다“고 추모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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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바마 개혁 발목 잡는 保-革 갈등… ‘두개의 미국’ 위기

    이민개혁, 의료개혁, 총기규제 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과의 갈등으로 지지부진하다. 그 배경에는 미국 사회에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보혁(保革)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 사안이든 보수 진영은 ‘개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일자리를 줄인다’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 진영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맞서 건전한 정책 대결이 아닌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번지기 일쑤다. ‘다양성과 화합의 용광로’를 추구하던 미국이 ‘두 개의 미국’으로 갈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두 개의 미국’을 부를 수 있는 현안 수두룩 보수와 진보 진영의 해묵은 논쟁은 동성애와 낙태 허용 여부. 지난달 26일 연방대법원이 동성 커플에 대한 차별을 규정한 ‘연방 결혼보호법(DOMA)’이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진보 세력은 환호했다. 하지만 보수 시민단체들은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불태우며 항의하고 곧바로 재심리를 신청했다. 보수 기독교단체인 자유수호연맹(ADF)은 “결혼에 대한 법리 논쟁이 막 시작됐을 뿐”이라며 긴 법정투쟁을 불사할 뜻을 밝혔다. 13일 텍사스 주 의회는 20주 이상 태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텍사스 외에도 아칸소 등 보수 성향이 강한 중남부 주들은 최근 낙태 규정을 강화한 법률을 속속 입법화하고 있다. 그러자 진보단체들은 연방대법원에 잇따라 낙태 관련 법안의 위헌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지난달 27일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을 통과한 이민개혁법이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을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이 법의 핵심은 약 11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되 국경 수비를 강화해 추가 불법 이민은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법안 실행에 큰돈이 들고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쉽게 면죄부를 준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퇴임 이후 정치 행보를 극도로 자제해 온 공화당 출신 조지 부시 전 대통령까지 10일 약 5년 만에 공식석상에서 “이민개혁법을 수용하라”고 촉구했지만 공화당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014년 실행을 앞둔 의료보험도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은 보험료를 적게 낸 개인이 보험료를 많이 낸 개인과 비슷한 혜택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공화당은 발전소 및 송유관 건설 축소가 불가피한 기후변화 개혁법안 역시 일자리를 줄인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의회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 명령을 통해서라도 기후변화 법안을 입안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보수 5 대 진보 4로 구성된 연방대법원 논란이 심한 법안의 위헌 심사권을 가진 미국 연방대법원의 인원 구성 또한 보수와 진보 성향 판사가 팽팽히 맞서 보혁 갈등을 더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연방대법원은 공화당 정권이 임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앤터닌 스캘리아, 앤서니 케네디,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등 보수 성향 5명,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레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등 진보 성향 4명 등 9명의 종신대법관으로 이뤄져 있다. 대표적 사례가 흑인 등 소수인종이 대학에 입학할 때 일종의 특혜를 받는 ‘소수계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다. 연방대법원은 6월 24일 텍사스대의 소수계 우대정책이 합헌이라는 지역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이를 유지하되 엄격히 적용하라”며 재심리를 요구했다. 소수계 우대정책의 엄격한 적용 판결은 그간 교육권 역차별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온 백인 보수 진영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한 데다 보수 성향 대법관이 한 명 더 많은 연방대법원의 구성상 향후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흑인, 히스패닉을 비롯한 소수인종과 진보단체가 강력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해 보혁 갈등의 시한폭탄으로 거론되고 있다. 소수인종의 투표권 행사를 어렵게 하는 법안을 만들지 못하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선거법을 개정할 때 반드시 연방 정부 및 법원의 승인을 받도록 한 투표권리법 4조의 위헌 판결도 비슷하다.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5일 이 법이 인종차별이 심했던 40년 전 만들어져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찬성 5, 반대 4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에 찬성한 5명은 보수 성향 판사들이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원이 실망스러운 결정을 내렸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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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 명화들을 불태웠다고?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쿤스트할 미술관에서 도난당한 파블로 피카소, 클로드 모네, 앙리 마티스, 폴 고갱 등 세계적 거장들의 명화 7점이 루마니아에서 불태워졌을 가능성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AP AFP 통신 등 외신은 당시 사건의 용의자인 라두 도가루의 어머니인 올가 도가루가 루마니아 검찰에 “올해 1월 아들이 체포된 직후 두려워서 작품들을 한 시골의 폐가와 묘지 등에 묻었으나 2월에 이를 다시 파내 태워버렸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루마니아 국립역사박물관은 현재 올가의 집안 난로에서 발견된 재가 도난 명화의 잔해인지 분석하고 있으며 최종 발표에 몇 달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다. 라두 등 루마니아인 3명이 벌인 절도 사건은 21세기에 발생한 미술품 도난 사건 중 가장 큰 규모로 꼽힌다. 명화 7점의 가격을 합하면 최소 1억 유로(약 1470억 원)에 달하는 데다 한 점 한 점이 매우 유명하기 때문이다. 도난당한 7점은 피카소의 1971년 작 ‘광대의 초상’, 모네의 1901년 연작 ‘워털루 다리, 런던’과 ‘채링 크로스 다리, 런던’, 마티스의 1919년 작 ‘희고 노란 옷을 입은 책 읽는 소녀’, 고갱의 1898년 작 ‘열린 창문 앞의 소녀’, 메이예르 더 한의 1890년 작 ‘자화상’, 루치안 프로이트의 2000년 작 ‘눈을 감은 여인’이다. 이 중 마티스의 그림은 2005년 12월∼2006년 3월 서울시립미술관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과도 만났다. 앞서 이 명화들은 지난해 10월 16일 오전 3시쯤 쿤스트할 미술관에서 한순간에 사라졌다. 경보음이 울린 지 5분 만에 경찰이 도착했지만 이미 늦었다. 비상구를 통해 침입한 도둑들은 불과 2분 만에 그림을 떼어 유유히 사라졌다. 1월 말 루마니아 경찰이 용의자로 라두 일당을 체포했지만 그림의 행방은 알 수 없었다. 명화의 소유주는 네덜란드의 트리톤 재단이다. 2011년 사망한 네덜란드 대부호 빌럼 코르디아가 1992년 설립한 트리톤 재단은 세계적인 예술품을 여럿 보유하고 있으며 창립 20주년을 맞아 쿤스트할 미술관의 특별 전시회에 작품을 빌려줬다 도난당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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