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고 조종사 이름은 섬팅웡-호리퍽” 美지역방송, 조종사 비하 보도 파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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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중서부 지역 유력 언론 시카고 선타임스가 7일 아시아나 214편 항공기 추락사고 직후 3개 면에 걸쳐 이 소식을 보도하면서 1면 기사에 붙인 ‘FRIGHT 214’라는 제목. 항공편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FLIGHT의 철자 L을 R로 변형해 탑승객들의 공포(FRIGHT)가 엄청났음을 알리려는 것이었지만 ‘L’과 ‘R’ 발음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아시아계에 대한 조롱이란 비난이 잇따랐다. 시카고 선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미국 중서부 지역 유력 언론 시카고 선타임스가 7일 아시아나 214편 항공기 추락사고 직후 3개 면에 걸쳐 이 소식을 보도하면서 1면 기사에 붙인 ‘FRIGHT 214’라는 제목. 항공편을 의미하는 영어 단어 FLIGHT의 철자 L을 R로 변형해 탑승객들의 공포(FRIGHT)가 엄청났음을 알리려는 것이었지만 ‘L’과 ‘R’ 발음을 잘 구분하지 못하는 아시아계에 대한 조롱이란 비난이 잇따랐다. 시카고 선타임스 홈페이지 캡처
보수성향 방송으로 유명한 케이블채널 폭스네트워크, 미국 중서부의 유력일간지 시카고선타임스 등 주요 언론이 아시아나기 충돌사고와 관련해 잇따라 인종차별적 보도를 해 파문이 커지고 있다. 특히 사고 원인을 조종사 과실로 몰고 간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 미 연방교통안전위원회(NTSB)가 폭스 쪽에 사고기 조종사들의 이름을 아시아계를 모욕하는 가짜 이름으로 잘못 확인해준 것으로 드러나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분노를 사고 있다.

폭스의 자회사이자 사고가 난 샌프란시스코의 지역방송인 KTVU의 토리 캠벨 앵커는 12일 정오 뉴스에서 “NTSB로부터 사고기 조종사들의 이름을 방금 확인했다”며 “4명의 이름은 섬팅웡(Sum Ting Wong), 위투로(Wi Tu Lo), 호리퍽(Ho Lee Fuk), 뱅딩아우(Bang Ding Ow)”라고 말했다. 각각 ‘뭔가 잘못됐다(something wrong)’, ‘우리가 너무 낮게 날고 있다(we’re too low)’, ‘이런 젠장(holy fxxx)’, ‘쾅, 쿵, 오!(Bang Ding Ow·사고 당시 충돌음과 비명을 가리키는 의성어)’라는 표현을 영어가 능숙하지 않은 아시아인의 억양에 맞춰 표현한 것. 사고기 및 희생자들이 아시아 국적임을 비꼬는 것은 물론이고 사고 자체를 희화화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이 황당한 보도는 뉴스가 끝난 직후 인터넷을 통해 급속도로 퍼졌고, 교민들을 비롯한 상당수 미국인도 명백한 인종차별이자 비극적인 사고에 대한 모욕이라며 분노를 표시했다. 뉴욕한인회는 14일 “NTSB의 정보 과잉 공개와 미국 언론의 인종차별 보도를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며 “편파 보도를 한 언론은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시아계 언론인 연합체인 아시안아메리칸언론인협회(AAJA)도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격렬한 분노를 느낀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 역시 14일 “KTVU의 보도로 사고 항공기 조종사와 아시아나의 명예가 심각하게 훼손당했다”라며 “잘못된 이름을 확인해준 NTSB와 이를 보도한 KTVU를 대상으로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아시아나기 사고에 대한 인종차별적 보도 논란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시카고선타임스는 사고가 발생한 7일 신문의 머리기사 제목을 ‘프라이트214(FRIGHT 214)’로 게재해 아시아계를 조롱했다는 거센 비판을 받았다. ‘플라이트(Flight·항공편)’를 대체한 단어 ‘프라이트(Fright·공포)’가 알파벳 ‘L’과 ‘R’를 잘 구분하지 못하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발음을 비아냥대는 것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보수 편향 보도로 유명한 폭스 역시 인종차별 논란에 자주 휩싸인 바 있다. 폭스의 간판 정치토크쇼 ‘오라일리 팩터’를 진행하는 빌 오라일리는 지난해 12월 가수 싸이의 히트곡 ‘강남스타일’과 관련해 “싸이는 평양이나 서울 같은 곳 출신으로 조그맣고 뚱뚱한 사람이 그저 위아래로 뛰기만 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NTSB와 KTVU는 뒤늦게 성명을 내고 사과했지만 사고 경위와 책임자를 제대로 밝히지 않아 면피용 사과라는 비난이 많다. 특히 KTVU의 보도는 사고가 발생한 7일 이후 5일이나 지난 시점에 나온 것이어서 일각에서는 ‘실수를 가장한 고의’라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NTSB는 조종사 이름을 잘못 확인했다고 시인했지만 인턴직원에게 책임을 떠넘기며 발뺌했다. NTSB 대변인은 “인턴 한 명이 자신의 권한을 벗어나 부정확하고 모욕적인 이름을 사실처럼 알려줬다”고 군색한 변명을 했다. KTVU도 “워싱턴의 NTSB 관계자가 조종사의 이름을 알려줬지만 정확하지 않았다”며 “부정확한 보도를 사과한다”고 말했다.

하정민·장관석 기자 dew@donga.com
#미국 언론#인종차별적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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