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 개혁 발목 잡는 保-革 갈등… ‘두개의 미국’ 위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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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성애-이민개혁 등 잇단 충돌

이민개혁, 의료개혁, 총기규제 등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사진)이 역점을 두고 추진하고 있는 정책이 하원을 장악한 공화당과의 갈등으로 지지부진하다. 그 배경에는 미국 사회에서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보혁(保革) 갈등이 자리하고 있다. 어느 사안이든 보수 진영은 ‘개개인의 선택권을 침해하고 일자리를 줄인다’고 주장한다. 반면 진보 진영은 ‘사회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며 맞서 건전한 정책 대결이 아닌 상대방을 적대시하는 소모적인 이념 논쟁으로 번지기 일쑤다. ‘다양성과 화합의 용광로’를 추구하던 미국이 ‘두 개의 미국’으로 갈라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 ‘두 개의 미국’을 부를 수 있는 현안 수두룩


보수와 진보 진영의 해묵은 논쟁은 동성애와 낙태 허용 여부. 지난달 26일 연방대법원이 동성 커플에 대한 차별을 규정한 ‘연방 결혼보호법(DOMA)’이 위헌이라고 판결하자 진보 세력은 환호했다. 하지만 보수 시민단체들은 동성애자를 상징하는 무지개 깃발을 불태우며 항의하고 곧바로 재심리를 신청했다. 보수 기독교단체인 자유수호연맹(ADF)은 “결혼에 대한 법리 논쟁이 막 시작됐을 뿐”이라며 긴 법정투쟁을 불사할 뜻을 밝혔다.

13일 텍사스 주 의회는 20주 이상 태아의 낙태를 금지하는 법안을 가결했다. 텍사스 외에도 아칸소 등 보수 성향이 강한 중남부 주들은 최근 낙태 규정을 강화한 법률을 속속 입법화하고 있다. 그러자 진보단체들은 연방대법원에 잇따라 낙태 관련 법안의 위헌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혔다.

지난달 27일 민주당이 다수인 상원을 통과한 이민개혁법이 공화당이 장악한 하원을 통과할지는 미지수다. 이 법의 핵심은 약 1100만 명에 이르는 미국 내 불법 이민자에게 시민권을 부여하되 국경 수비를 강화해 추가 불법 이민은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공화당은 법안 실행에 큰돈이 들고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에게 지나치게 쉽게 면죄부를 준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 퇴임 이후 정치 행보를 극도로 자제해 온 공화당 출신 조지 부시 전 대통령까지 10일 약 5년 만에 공식석상에서 “이민개혁법을 수용하라”고 촉구했지만 공화당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2014년 실행을 앞둔 의료보험도 마찬가지다. 보수 진영은 보험료를 적게 낸 개인이 보험료를 많이 낸 개인과 비슷한 혜택을 받는 것은 자본주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또 공화당은 발전소 및 송유관 건설 축소가 불가피한 기후변화 개혁법안 역시 일자리를 줄인다는 이유로 반대한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말 의회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 명령을 통해서라도 기후변화 법안을 입안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물러서지 않고 있다.

○ 보수 5 대 진보 4로 구성된 연방대법원

논란이 심한 법안의 위헌 심사권을 가진 미국 연방대법원의 인원 구성 또한 보수와 진보 성향 판사가 팽팽히 맞서 보혁 갈등을 더 키운다는 분석도 있다.

연방대법원은 공화당 정권이 임명한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앤터닌 스캘리아, 앤서니 케네디, 클래런스 토머스, 새뮤얼 얼리토 대법관 등 보수 성향 5명, 민주당 정권이 임명한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스티븐 브레이어, 소니아 소토마요르, 엘리나 케이건 대법관 등 진보 성향 4명 등 9명의 종신대법관으로 이뤄져 있다.

대표적 사례가 흑인 등 소수인종이 대학에 입학할 때 일종의 특혜를 받는 ‘소수계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이다. 연방대법원은 6월 24일 텍사스대의 소수계 우대정책이 합헌이라는 지역 법원의 판결에 대해 “이를 유지하되 엄격히 적용하라”며 재심리를 요구했다. 소수계 우대정책의 엄격한 적용 판결은 그간 교육권 역차별 문제를 끊임없이 제기해 온 백인 보수 진영의 의견을 상당 부분 반영한 데다 보수 성향 대법관이 한 명 더 많은 연방대법원의 구성상 향후 대법원에서 위헌 판결이 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때 흑인, 히스패닉을 비롯한 소수인종과 진보단체가 강력 반발할 것이 불 보듯 뻔해 보혁 갈등의 시한폭탄으로 거론되고 있다.

소수인종의 투표권 행사를 어렵게 하는 법안을 만들지 못하도록 지방자치단체가 선거법을 개정할 때 반드시 연방 정부 및 법원의 승인을 받도록 한 투표권리법 4조의 위헌 판결도 비슷하다. 연방대법원은 지난달 25일 이 법이 인종차별이 심했던 40년 전 만들어져 현실과 맞지 않는다며 찬성 5, 반대 4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위헌에 찬성한 5명은 보수 성향 판사들이었고 오바마 대통령은 “대법원이 실망스러운 결정을 내렸다”며 강한 유감을 표했다.

하정민 기자 dew@donga.com
#오바마#미국 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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