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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선자는 2012년 19대 총선에서 민주통합당(현 민주당) 비례대표로 출마하려던 이용수 할머니에게 “위안부 문제 해결은 국회에 가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이라며 만류했다는 의혹에 대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받아들이고 말씀드렸던 것 같다”고 밝혔다. 윤 당선자는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기자회견 후 가진 일문일답에서 “당시 정확하게 기억할 수 없지만 이 할머니가 일본대사관 앞 거리에서 전화를 했다. 할머니가 진짜로 국회의원 하고자 한다는 걸로 받아들이지 않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윤 당선자는 또 “이 할머니에게 내가 배신자가 돼있다. 30년간 활동했는데도 배신자로 느낄 만큼 신뢰를 드리지 못한 것은 지금이라도 사죄 말씀 드리고 싶다”고 했다. ‘조만간 할머니를 찾아갈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할머니가 만나주신다면요”라고 답했다. 윤 당선자는 입장 발표문에선 “피해자들에게 현금 지원을 목적으로 모금한 돈을 전달한 적이 없다”는 이 할머니의 주장에 대해 “이 할머니의 지적과 고견을 깊게 새기는 것과 별개로, 이 할머니의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정의기억연대(정의연)의 기부금 유용 의혹을 처음 제기한 이 할머니는 대구의 한 커피숍에서 윤 당선자의 기자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기자회견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지, 줄줄 써서 하는 게 그게 뭐냐”고 말했다. ‘윤 당선자가 사죄하겠다고 말했다’고 하자 이 할머니는 “내가 무슨 사과를 받느냐. 나는 없어요. 그런 거 없어요”라고 답했다. 이 할머니는 지인들에게 “두 번 다시 말하기 싫다. 추가 입장문도 내지 않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대구=장영훈 jang@donga.com / 전채은 기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92)는 29일 국회에서 열린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당선자의 기자회견에 대해 사전부터 “(윤미향) 이름도 듣기 싫다”며 불쾌감을 표현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혁수 ‘정신대 할머니와 함께하는 시민모임(시민모임)’ 대표는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 할머니께서는 기자회견을 보려고 하지도 않으셨다. 별도의 입장 발표도 없을 것”이라며 “오늘 윤 당선자가 기자회견을 한다는 사실은 알고 계신다”고 말했다. 서 대표는 “오늘 아침에도 이 할머니와 통화를 했는데 기자회견 관련해서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도 않아 하셨다”며 이 같이 말했다. 현재 대구 자택에 머무르고 있는 이 할머니는 기자회견이 열린 오후 2시에 외출해서 다른 일정을 소화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이 할머니를 비롯한 측근들은 모두 기자회견에 대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으며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였다. 대한변호사협회 일제피해자 인권특별위원장으로 활동하며 이 할머니를 오랜 기간 지원해 온 최봉태 변호사는 동아일보의 인터뷰 요청에 대해 “정쟁이 심해 인터뷰를 사양한다”고 밝혔다. 서 대표 역시 “이 할머니의 의견도 나오지 않은 상황이어서 시민모임 차원에서도 별도의 입장을 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할머니의 수양딸 A 씨도 기자회견 전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어머니가 기자회견을 보실지 안 보실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 할머니는 7일과 25일 두 차례에 걸친 기자회견 후 대구에서 생활하며 건강을 회복하고 있다. 2차 기자회견 이후 29일까지 윤 당선자 측과 별다른 접촉은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전채은기자 chan2@donga.com김소영기자 ksy@donga.com}

“아이고…, 여기는 무슨 미로 같네요.” 21일 오전 경기 파주시에 있는 지방도 제367호선. 이곳을 지나가던 50대 운전사는 연거푸 브레이크를 밟으며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운전경력이 30년 가까이 됐지만 땀을 뻘뻘 흘릴 정도. 서둘러 속도를 늦춘 뒤 찬찬히 살펴보면 그때서야 풀숲에 가려졌거나 쓰러져 보이지 않던 ‘갈매기 표지’가 보였다. 급커브를 알리는 꺽쇠 형태의 표지다. 찾기 힘든 갈매기 표지만 문제가 아니었다. 꾸불꾸불한 길목마다 교통사고로 부서진 도로이탈방지시설이 계속해서 눈에 들어왔다. 몇몇 보수 흔적도 보였지만 그대로 방치된 곳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아스팔트 포장이 무너져 도로 한복판에 구멍이 뻥뻥 뚫려 있기도 했다. 직장인 박모 씨(35)는 “인근에 마장호수 등이 있어 주말 가족 단위 나들이 차량이 많다. 오가는 차량 수에 비해 도로 정비가 너무 부실하다”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 ‘늙어가는’ 지방도로…사고율도 높아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은 국내 도로 상태를 보며 놀라는 이들이 많다. 해외 어디를 가도 이만큼 정비가 잘 된 도로를 만나기 힘들 정도다. 하지만 국도에 비해 전국의 지방도로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 힘들다. 상대적으로 낡고 보수도 더뎌 교통사고가 발생할 확률이 높다. 도로의 종류는 크게 5종류로 나뉜다. 고속국도(고속도로)와 일반국도, 지방도, 특별·광역시도, 시·군도다. 국도 두 곳은 국토교통부에서 직접 관리하고, 나머지 지방도로는 시청 도청 등 각 지방자지단체 관할이다. 지자체들은 “재정이 열악하다보니 지방도로는 도로의 유지와 보수가 쉽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형편이 나은 대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지방도로일수록 상황은 나쁘다. 인구는 적은데, 관할 도로 면적은 크기 때문이다. 행정안전부의 이상열 지역균형발전과 주무관은 “도심에서 떨어진 군 단위 지역이 오히려 인구대비 도로 면적이 넓다. 하지만 예산이 부족해 노후화된 도로를 정비하지 못하는 실정”이라 말했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솔직히 도로정비 등 교통안전사업은 눈에 잘 띄지 않다보니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일쑤”라고 귀띔했다. 지방도로의 부실이 만든 결과는 예상보다 심각하다. 도로교통공사에 따르면 전체 도로 11만714㎞ 가운데 지자체가 관리하는 지방도로는 9만1964㎞. 한데 2018년 전체 교통사고 21만7148 건 가운데 지방도로에서 발생한 사고가 19만4728건이다. 거의 90% 가까이 된다. 65세 이상 고령자의 사고율도 높다. 2018년 노인 사고 3만8647건 가운데 약 89%인 3만4506건이 지방도로에서 벌어졌다. 지난해 2월 충남 금산군에서는 지방도로를 걸어가던 70대 여성이 차에 치여 목숨을 잃기도 했다. 충돌·추돌 등이 아닌 차량 단독 사고도 지방도로에서 잦다. 안전시설이 부족해 사망사고로 이어질 확률도 높다. 지난해 2월 경기 평택시 고덕면에선 굽은 지방도로에서 중앙분리대를 들이받은 차량이 가드레일이 관통해 운전자가 목숨을 잃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가드레일 시작과 끝 지점에 차량과 충돌하면 충격을 완화하는 이른바 ‘단부시설’이 있었다면 안타까운 희생이 없었을 수도 있다”고 했다. ● 정부와 지자체 모두 적극적으로 나서야 중앙정부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있다. 여러 해에 걸쳐 지방도로 개선사업을 진행해왔다. 행안부는 2004년부터 해마다 위험한 지방도로 수십 곳을 선정해 유지·보수 작업에 국비를 보조한다. 특히 이 사업은 심하게 굽은 커브길 폭을 넓혀 곡률을 줄이고, 폭이 좁은 양방향 도로를 넓혀 차량이 안전하고 원활하게 지나다닐 수 있도록 정비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위험구간으로 선정됐던 지방도로는 정비 뒤 교통사고 발생이 평균 70% 정도 감소했다. 진영 행안부 장관은 3월 “올해도 지방도로 정비에 예산 366억 원을 투입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정부가 민간기관과 손을 잡고 개선에 나서기도 한다. 국토교통부는 손해보험협회 등과 함께 2017년부터 해마다 교통사고 잦은 지방도로를 파악해 개선안을 제시하는 사업을 하고 있다. 보험회사가 보유한 사고 정보를 활용해 대상을 선별하고 현장조사를 바탕으로 구조적 문제점을 짚어낸다. 국도와 지방도로 구분 없이 30~40곳 정도 선정하는데, 뽑고 보면 이중 대다수가 지방도로다. 손해보험협회 관계자는 “전문가들이 제시한 대안은 국도는 국토관리청으로, 지방도로는 도로관리청으로 전달한다”고 말했다. 대안이 나왔다고 문제가 곧장 해결되는 건 아니다. 강제성이 없다보니 별다른 피드백이 없는 지자체가 많다고 한다. 이윤형 한국교통안전공단 부교수는 “지자체도 교통안전사업의 중요성을 좀더 인식하고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서형석 기자 skytree08@donga.com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김동혁 기자 hack@donga.com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전북 전주에 있는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2세 어린아이가 불법 유턴하던 차량에 치여 목숨을 잃었다. 스쿨존에서 운전자의 안전 의무를 강화한 이른바 ‘민식이법’(도로교통법과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개정안)을 3월 25일 시행한 뒤 처음 벌어진 스쿨존 사망 사고다. 전북 전주덕진경찰서 등에 따르면 21일 낮 12시 15분경 덕진구 반월동에 있는 스쿨존에서 A 군(2)이 B 씨(53)가 몰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치였다. B 씨는 왕복 4차로 도로에서 불법 유턴을 하다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A 군은 출동한 119구조대가 인근 병원으로 옮겼지만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당시 현장에는 A 군의 엄마가 함께 있었으며 B 씨는 사고 당시 술을 마시진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관계자는 “운전자가 사고 당시 과속을 했는지 등 정확한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며 “조사 결과를 토대로 구속영장 신청 및 민식이법 적용 여부를 종합적으로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민식이법 시행 이틀째였던 3월 27일 경기 포천에서 벌어진 교통사고가 ‘민식이법 적용 1호 사건’이었던 것도 21일 공개됐다. 경기북부지방경찰청에 따르면 당일 포천시 추산초등학교 앞 스쿨존에서 한 여성(46)이 과속으로 김모 군(11)을 치어 다치게 한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 조사한 결과 이 여성이 몰았던 차량은 스쿨존에서 시속 39km에 이르렀다. 사고 지점은 편도 1차로 도로로 횡단보도 구간은 아니었다. 김 군은 이 사고로 팔이 부러져 전치 6주 진단을 받았다. 경찰은 제한속도 30km인 스쿨존에서 과속을 한 데다 어린이 보행자에 대한 보호 의무를 다하지 않은 점 등을 들어 운전자를 기소 의견으로 6일 검찰에 넘겼다. 운전자는 경찰 조사에서 과속과 운전 부주의를 모두 인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여성은 “스쿨존이라 조심하지 않은 건 아니지만 실수로 시속 30km를 넘은 것 같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전국에서 경찰이 입건한 민식이법 적용 1호 사건으로 확인됐다. 이후 부산 연제경찰서는 같은 혐의로 입건된 피의자를 이보다 먼저 검찰에 넘겨 검찰 송치 시점을 기준으로는 두 번째다. 전채은 chan2@donga.com / 전주=박영민 기자}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조성한 서울 중구 남산 ‘기억의 터’ 기림비의 위안부 피해자 명단에서 고 심미자 할머니는 물론이고 2005년 별세한 박복순 할머니 이름도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박 할머니도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민간기금을 받은 뒤 정대협과 줄곧 불편한 관계였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기억의 터에 있는 조형물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의 이름이 가나다순으로 새겨져 있다. 정의연은 “2016년 조성 당시 한국 정부에 공식 등록된 피해자에 미등록 피해자를 합해 산정한 인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1993년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공식 등록됐으며, 1992∼2004년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에도 42차례 참석했던 박 할머니는 명단에 포함됐어야 한다. 박 할머니는 생전에 심 할머니가 꾸린 세계평화무궁화회에 소속돼 있었다. 무궁화회는 여러 차례 정대협 활동에 대한 비난을 내놓았다. 박 할머니는 1997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6명과 함께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에서 민간기금을 받은 걸 두고 정대협과 부딪쳤다. 윤정옥 당시 정대협 대표는 “그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일본 국민이 반성하며 모은 위로금을 받으면 왜 안 되냐”고 반발했다. 양순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20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박 할머니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정대협만은 ‘나쁜 놈들’이라며 비판하곤 했다”고 전했다. 양 회장은 “정대협이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을 쥐고 휘두른 측면이 있다”며 “박 할머니는 흔들리지 않았고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은 것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2005년 박 할머니의 장례를 주도했다. 정의연 관계자는 “당시 정대협에서 활동하지 않아 상황을 잘 모른다.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김태성 kts5710@donga.com·전채은 기자}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전신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조성한 서울 중구 남산 ‘기억의 터’ 기림비의 위안부 피해자 명단에서 고 심미자 할머니는 물론 2005년 별세한 고 박복순 할머니 이름도 빠진 것으로 확인됐다. 박 할머니도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으로부터 민간기금을 받은 뒤 정대협과 줄곧 불편한 관계였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기억의 터에 있는 조형물 ‘대지의 눈’에는 위안부 피해 할머니 247명이 가나다순으로 새겨져있다. 정의연은 “2016년 조성 당시 한국정부에 공식 등록된 피해자에 미등록 피해자를 합해 산정한 인원”이라 설명했다. 이 기준대로라면 1993년 정부에 위안부 피해자로 공식 등록됐으며, 1992~2004년 일본 최고재판소 재판에도 42차례 참석했던 박 할머니는 명단에 포함됐어야 한다. 박 할머니는 생전에 심 할머니가 꾸린 세계평화무궁화회에 소속돼 있었다. 무궁화회는 여러 차례 정대협 활동에 대한 비난을 내놓았다. 박 할머니는 1997년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6명과 함께 일본 아시아여성기금에게서 민간기금을 받은 걸 두고 정대협과 부딪혔다. 윤정옥 당시 정대협 대표는 “그 기금을 받으면 공창이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박 할머니는 “일본 국민이 반성하며 모은 위로금을 받으면 왜 안 되냐”고 반발했다. 양순임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장은 20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박 할머니는 내성적인 성격이라 속내를 잘 드러내지 않으셨다. 그런데도 정대협만은 ‘나쁜 놈들’이라며 비판하곤 했다”고 전했다. 양 회장은 “정대협이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을 쥐고 휘두른 측면이 있다”며 “박 할머니는 흔들리지 않았고 아시아여성기금을 받은 것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양 회장은 2005년 박 할머니의 장례를 주도했다. 정의연 관계자는 “당시 정대협에서 활동하지 않아 상황을 잘 모른다. 확인이 어렵다”고 답했다. 김태성기자 kts5710@donga.com전채은기자 chan2@donga.com}

15일 오후 서울 금천구 독산로 시흥초등학교. 여느 초등학교처럼 이 초교 주위로 ‘스쿨존’으로 표시돼있다. 시속 30㎞ 이상 속도를 내면 안 되고, 주정차도 함부로 할 수 없단 뜻이다. 하지만 현실은 너무나 달랐다. 왕복 2차로쯤 되는 너비의 길이 주차된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도로 곳곳 스쿨존 표시가 무색할 정도였다. 이렇다보니 주차 차량 사이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면 대처하기가 쉽질 않았다. 실제로 한 승용차는 서행 중이었지만, 갑자기 아이와 엄마가 모습을 드러내자 ‘끼익’하고 급정거했다. 동행한 이성렬 삼성교통안전연구소 수석연구원은 “3월 ‘민식이법’이 본격 시행됐지만 이렇게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 각 학교 상황에 따라 ‘맞춤 처방’이 필요한 이유”라고 했다.● 스쿨존, 감속이 능사가 아니다 이 연구원의 진단은 현장을 나가보면 확연히 느껴진다. 함께 돌아본 서울 초등학교들은 모두 지리적 조건에 따라 위험요소가 달랐다. 아무래도 새로 생긴 학교들은 안전 환경이 나쁘지 않지만, 민식이법만으로는 사고 발생을 막기 어려워 보이는 곳도 적지 않았다. 2014년부터 5년 동안 국내 스쿨존 보행자 사고 건수는 2014년 452건에서 2018년 377건으로 조금씩 줄어왔다. 특히 길을 건너다 벌어지는 사고는 많이 줄었다. 하지만 시흥초처럼 인도·차도 구분이 없거나 애매모호한 지역은 같은 기간 큰 변화가 없었다. 특히 보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보차 분리’가 되지 않으면, 이동 차량에 대한 경계 없이 갑자기 뛰어드는 어린이들이 특히 위험하다. 이 연구원은 “도로 주변에 보도를 설치하고 가능하면 안전 펜스도 설치하는 게 스쿨존의 정석”이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도로 폭이 좁은 시흥초는 인근 다세대주택의 주차 차량이 많아 별도 보도를 설치할 공간이 협소했다. 시흥초의 한 학교보안관은 “등·하교 시간에는 정문 밖 큰 길로 나와 교통안전지도를 하고 있다”고 전했다. 단순히 스쿨존 문제만도 아니었다. 시흥초 주변 도로는 구불구불하고 경사가 심해 보행자의 안전을 지키기 어려운 구조였다. 직접 200m 정도 걸어서 학교까지 가보니, 주차차량은 물론 지하주차장 입구도 여러 곳을 지나야 했다. 아침 출근길에 오른 차량과 등교하는 학생들 동선이 겹칠 수밖에 없었다. 서울 서대문구 홍연초등학교 인근도 비슷한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홍연초 앞에는 주택가를 가로지는 약 200m의 일방통행로가 있다. 그런데 차량 한 대가 겨우 지나다닐 수 있을 만큼 폭이 좁다. 별도의 보도로 없어서 등교하는 아이들은 도로 가운데를 어떤 보호 장치도 없이 그냥 지나가야 한다. 자녀를 차에 태워 등교시키는 부모들도 이 도로를 많이 이용한다. 한 학부모는 “실은 학교로 연결되는 왕복 2차로 도로가 따로 있긴 하다. 하지만 이쪽 통행로가 훨씬 빨리 도착해 이쪽으로 많이 몰려 위험하다. 가끔 역주행하는 차량도 없지 않다”고 귀띔했다. 직접 차를 타고 학교 인근 돌아보니 위험성은 더 크게 느껴졌다. 길이 좁다보니 시야 확보도 쉽지 않았고,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아 어디서 사람이 등장할지 예측하기 어려웠다. 이 연구원은 이럴 경우 도로 재질에 변화를 주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도로가 좁아 보도 설치 공간이 부족할 경우엔 울퉁불퉁한 재질로 도로를 포장해 운전자가 승차감이 다르게 느낀다”며 “자연스레 스쿨존을 인식하면 경각심을 높일 수 있다”고 했다. 끼게 ● 아이들 통학 환경 복합적으로 고민해야 서울 중랑구에 있는 면일초등학교는 앞 두 학교와는 또 사정이 달랐다. 학교를 둘러싼 스쿨존에 등하굣길 학생들이 이용할 수 있는 보도가 마련돼 있었다. 정문으로 이어지는 도로에는 아무리 폭이 좁아도 횡단보도가 그려져 있었다. 하지만 문제가 없다는 뜻은 아니다. 면일초은 학교 뒤편 도로가 안전에 취약했다. 어린이 보호구역으로 지정된 도로 가장자리에서 노상주차장이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학교와 한쪽 면이 맞닿아 있는 체육문화센터에 딸린 주차장이었다. 현행법은 학교와 유치원, 어린이집 주 출입구와 연결된 도로의 노상주차장만 불법으로 규정한다. 면일초 뒤편 도로의 노상주차장은 엄밀히 말해 합법이다. 하지만 합법 불법과 상관없이 이런 노상주차장은 아이들의 안전을 저해한다. 인근에 있는 한 가게 주인은 “원래 이쪽으로 아이들이 많이 등교하는데, 차들의 이동 동선과 맞물려 위험해 보인다”고 했다. 때문에 최근 정부 정책은 스쿨존 내에는 노상주차장을 만들지 않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서울지방경찰청은 지난달 27일 “스쿨존에 부적합하다고 판단되는 노상주차장 48개소를 상반기애 완전히 폐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박창규 기자 kyu@donga.com}

최근 전동킥보드를 비롯한 개인형 이동수단(PM) 이용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도로교통공단이 이들 교통수단의 안전수칙을 안내한 카드뉴스를 제작했다. 18일 도로교통공단이 공개한 카드뉴스에는 개인형 이동수단을 이용하기 위한 자격과 운행 가능 도로 등 전반적인 이용 수칙이 소개됐다. 개인형 이동수단은 도로교통법상 차로 구분돼 원동기장치자전거 운전면허 혹은 2종보통 자동차면허 이상의 면허가 있는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오토바이 등 이륜차와 마찬가지로 차로로 주행해야 한다. 안전모를 착용하지 않을 경우 범칙금 2만원이 부과된다. 음주운전은 자동차 운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처벌 대상이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그래, 그동안 어떤 곡들을 쳐 왔니?” 이런 게 운명인 걸까. 2010년 3월. 장형준 서울대 피아노과 교수(58)가 첫 질문을 던지자 식당은 갑자기 칠흑처럼 어두워졌다. 갑작스러운 정전에 당황한 장 교수. 그런데 그 앞에 앉은 아이는 아무 일 없다는 듯 자연스레 젓가락질을 이어갔다. 사랑하는 제자인 시각장애인 피아니스트 김상헌 씨(29)와의 첫 만남이었다. “실은 되게 두근거렸어요. 교수 생활 16년 만에 시각장애인 학생을 가르치는 건 처음이었거든요. ‘어떤 난관도 함께 이겨내야지’ 하고 혼자 들떴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뭔가가 머리를 쾅 때렸어요. 그동안 이 아이는 어떤 ‘삶의 터널’을 지나왔는지 몰랐던 거죠. 때로는 어둡고 힘겨웠을 시간들을 겪어왔고, 또 앞으로도 그럴 텐데.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13일 장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서 제자와의 인연을 들려주기 시작하자 김 씨는 배시시 미소를 머금었다. 10년 전 시각장애인 최초로 서울대 피아노과에 입학한 그에게도 장 교수는 선명하고 뚜렷한 존재였다. 이후에도 아직 시각장애인 입학생은 없다. 김 씨는 “교수님은 제 마음을 한눈에 알아보시고 어루만져 주셨다”고 했다. “신입생 때 강의를 듣는 게 너무 힘들었어요.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정작 레슨 시간엔 실력 발휘가 안 되더라고요. 하지만 교수님은 제가 풀죽었단 걸 아시곤 조용히 챙겨주셨습니다. 고전할 때도 모른 척 넘어가주셨고, 학생들에게 부탁해서 어디서도 외롭거나 다치지 않게 배려하셨어요. 교수님 덕분에 학교에서 ‘인싸’로 지낼 수 있었죠.” 하지만 장 교수는 모든 공을 제자에게 돌렸다. “상헌이는 처음부터 완성형이었다”며 손을 내저었다. “처음부터 기교는 거의 마스터한 상태였어요. 악보를 외워서 연주하니 기억력도 어마어마했죠. 오히려 제가 이 친구를 만난 게 ‘행운’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음악적 교감은 언제나 서로를 충만하게 했다. 장 교수는 레슨실에서 김 씨를 마주할 때마다 “항상 뭔가 더 기대하게 만들었다”고 기억했다. 공식적인 사제 인연은 학부 4년, 석사과정 2년으로 끝났지만 두 사람은 구애받지 않았다. 김 씨는 지금도 연주회를 앞두고 벽에 부딪힐 때면 장 교수를 찾아간다. 김 씨는 “졸업생이 자꾸 찾아와 귀찮게 하는데도 항상 반갑게 맞아주신다”고 했다. “예전엔 상헌이를 좀 혹독하게 가르쳤죠. 하루는 수업이 끝난 뒤 완전히 지쳐서 뻗어 있더라고요. 별로 미안하진 않습니다, 하하. 상헌이의 연주가 이젠 많이 성숙해졌어요. 특히 슈만과 바흐 곡들을 칠 땐 평가자가 아닌 감상자 위치에서 설레는 마음으로 듣게 됩니다. 올해 7, 12월로 예정된 앙상블과 독주회 땐 조용히 찾아가 객석에서 그의 음악을 즐길 겁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완치 판정을 받은 뒤 유치원에서 근무해온 20대 교사가 또다시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서울 강남구에 따르면 서울 강남구 대왕초등학교 병설유치원 교사인 A 씨(28·여)는 13일 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날도 유치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A 씨는 오전 10시경 확진 사실을 통보받은 뒤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병원이 정해지는 대로 입원 치료를 받을 예정이다. A 씨는 3월에도 집단 감염이 벌어졌던 구로구 콜센터 관련 확진자인 이모 씨와 만났다가 같은 달 12일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후 강서구에 있는 서울시립서남병원에서 1개월가량 치료받고 지난달 퇴원했다. 퇴원 뒤 2주 동안 자가 격리했던 A 씨는 지난달 27일부터 다시 유치원에 나왔다. 13일까지 황금연휴를 제외하고 10일 정도 출근해 돌봄교실에서 원생들을 돌봤다고 한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A 씨는 그간 아무런 증상이 없었으며, 12일 어머니가 입원한 병원에 들렀다가 병원 측 요청으로 검사를 받은 후 재확진 사실을 알게 됐다. 어머니는 코로나19 환자가 아니다. 11일부터 13일까지 A 씨가 접촉한 이들은 원생 28명을 포함해 45명이다. 무증상 감염자는 역학조사를 확진 이틀 전부터 시행한다. 강남구 관계자는 “모두 검사를 마쳤고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해당 유치원은 교직원이 11명, 원생이 46명이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대왕초교와 병설유치원은 현재 방역을 마쳤으며, 2곳 모두 그간 돌봄교실 말고는 수업이나 행사가 열린 적이 없다”고 밝혔다. 교육청은 해당 초교와 유치원을 당분간 폐쇄하고 돌봄교실도 문을 닫기로 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사고 사실을 최초로 인지한 시각이 지금까지 알려진 것보다 이르다는 세월호참사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특조위는 13일 서울 중구 포스트타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참사 당시 청와대가 밝힌 참사 최초 인지 및 전파 시각이 객관적인 자료와 일치하지 않는 사실을 확인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날 특조위는 세월호 참사 당일인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19분 35초에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가 대통령수석비서관들을 포함한 청와대 근무자 153명에게 보낸 문자메시지를 공개했다. “오전 8시 58분 전남 진도 인근 해상 474명 탑승 여객선(세월호) 침수신고 접수, 해경 확인”이라는 내용이었다. 참사 당시 청와대는 “(4월 16일) 오전 9시 19분에 YTN 속보를 보고 사고 발생을 최초로 인지했고, 5분 뒤인 9시 24분에 이를 청와대 내부에 전파해 초동 조치를 취했다”고 했다. 김기춘 당시 대통령비서실장 등의 지시로 참사 7∼10일 후 위기관리센터가 작성한 세월호 참사 관련 ‘상황일지’에도 이렇게 기록됐다. 위기관리센터가 문자메시지를 발송한 시각이 오전 9시 19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청와대는 최소한 이 시각 이전에 사고 발생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특조위의 설명이다. 특조위는 “관련자들의 진술과 474명이라는 정확한 탑승 인원을 확인하는 데 걸린 시간 등을 고려하면 최초 상황 인지 후 문자메시지를 보내기까지는 10분 정도의 시간이 더 걸렸을 것으로 판단된다”며 “위기관리센터가 오전 9시 10분 전후로 참사 발생을 충분히 인지했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특조위는 참사 인지 경위와 시각 등을 사실과 다르게 적은 자료를 작성하고 이를 국회 등에 제출한 혐의(허위공문서 작성 등)로 김 전 실장과 김규현 당시 국가안보실 1차장 등 4명을 검찰에 수사 요청하기로 했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어머니와 아들의 비극은 횡단보도에서 벌어졌다. 2001년 1월 28일. 대구 서구의 한 횡단보도에 서 있던 윤정임(가명·당시 24세) 씨에게 여느 하루와 다름없는 날이었다. 태어난 지 두 달 된 아들에게 예방접종을 맞힌 뒤 가족의 저녁 찬거리를 무엇으로 할지만 머릿속에 가득했다. 빨간불이 파란불로 바뀌고 왕복 10차선 도로를 중간쯤 건넜을까. 하얀색 승용차가 윤 씨 모자(母子)를 덮쳤다. 쾅 하는 굉음 저 멀리 정신이 아득해졌다. 당시 사고보고서에 따르면 윤 씨와 아들은 차에 부딪혀 15m 이상 날아가 길바닥에 떨어졌다. 아픈 줄도 몰랐다. 누군가 계속해서 뺨을 때렸다. 정신 차리라고, 괜찮으냐고. 한겨울 차가운 아스팔트 위에서 윤 씨는 본능적으로 같은 말만 되풀이했다. “우리 애를 구해주세요. 아이를 살려주세요.” 윤 씨가 다시 눈을 뜬 건 인근 대형 병원이었다. 고통스러웠지만 정신은 말짱했다. 오른쪽 골반 뼈 골절. 전치 12주였다. 더 큰 사고로 이어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진짜 불행은 아들에게 닥쳤다. 눈에 넣어도 안 아플 김정현(가명) 군의 자그마한 몸은 처참할 만큼 심각했다. 두개골 양측이 부서졌고 뇌까지 손상을 입었다. 의사는 “긴급 수술 끝에 목숨은 건졌다”고 했다. 처음엔 살았으니 됐다며 울고 또 울었다. 하지만 악몽은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윤 씨 가족의 고통은 20년째 이어지며 여전히 끝이 보이지 않는다. 단 한 번의 교통사고로 인해.▼ 파란 불이라 건넜을 뿐인데… 엄마는 20년째 지옥에 삽니다 ▼“옥에 갇힌 것보다 더 큰 고통 속에서 20년을 살아가고 있어요.” 피해자 윤정임(가명) 씨는 지금도 새벽이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잠에서 깬다. 사고를 당하던 때의 충격, 아픔, 그리고 그보다 더한 절망감. 그날 아들의 접종을 하루 미뤘더라면, 그 길이 아닌 다른 길을 택했더라면, 3초 더 속으로 센 뒤 길을 건넜더라면…. 당시 가해자 유모 씨(당시 57세·여)는 사고를 낸 뒤 뺑소니를 쳤다. 다른 시민들이 적극 나선 덕에 멀지 않은 곳에서 붙잡혔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 실력이 미숙한데 술까지 마신 채(혈중알코올농도 0.099%) 운전대를 잡은 사실이 드러났다. 유 씨는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도주치상)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유 씨에게 내려진 형량은 고작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이었다. 재판부는 “유 씨가 잘못을 뉘우치고 있고, 윤 씨 가족이 7000만 원을 받고 합의한 점을 참작했다”고 밝혔다. 윤 씨 남편이 당장 수술비가 급해 받은 돈이 유 씨에게는 자유의 기회가 됐다.○ 운전자 과실로 멈춰버린 아이의 인생 사고 이후, 아들 정현의 시간은 그 순간에 멈춰버렸다. 숨넘어갈 듯 간질과 경기를 반복해 윤 씨는 아들을 들쳐 업고 하루에도 몇 번씩 병원 응급실을 들락거렸다. 2010년에는 대뇌 반구 절단술도 받았다. 말 그대로 뇌를 잘라냈다. 간질이 심해져 만성 뇌전증으로 악화된 탓이었다. 윤 씨는 “위험한 대수술이었지만, 낫기 위한 게 아니었다. 생명이라도 유지하려는 마지막 수단이었다”고 했다. 정현은 지금도 간질과 경기를 반복한다. 올해로 스무 살이 된 아들의 정신연령은 여전히 3세다. 피해가 덜한 줄 알았던 윤 씨도 몸이 나빠졌다. 제때 재활치료를 받지 못하고 아들에게만 집중해서였다. 점점 심해진 사고 후유증으로 이제는 오른쪽 다리를 절고 있다. 가계도 급격히 기울었다. 합의금 7000만 원은 금세 사라졌다. 병원비를 감당하느라 자가(自家)에 살던 가족은 전세로 월세로 집을 줄여갔다. 부부싸움도 잦아졌다. 시댁은 갈수록 윤 씨를 죄인 취급하는 눈초리를 보냈다. 더 이상 가정을 유지하기 어려워 2016년 남편과 이혼했다. 버거울 때마다 극단적인 생각이 윤 씨의 머릿속을 파고들었다. 정현을 차에 태우고 가다 보면 ‘핸들 한 번만 꺾으면 모두가 편해지지 않을까’란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윤 씨는 “그때마다 룸미러로 보이던,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마음을 고쳐먹었다”고 했다.○ 보행자 사상자가 한 해 4만7887명 이들 가족의 불행은 결코 남의 얘기가 아니다. 보행자를 배려하지 않는 운전문화가 개선되지 않는 한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지난해까지 교통사고 피해로 지원받은 이들은 36만3616명에 이른다. 공단 관계자는 “적지 않은 수지만, 여전히 더 많은 이들이 지원을 필요로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보행자 교통사고(2018년 기준)는 4만5921건. 사상자는 사망자 1487명을 포함해 4만7887명이다. 이 가운데 신호위반으로 인한 교통사고가 2만7921건이나 된다. 횡단보도에서 사고를 당한 보행자는 1만3416명. 목숨을 잃은 이도 344명이다. 이런 사고는 사고로만 끝나지 않는다. 윤 씨 가족처럼 가족의 평생이 망가진다. 정현을 돌보느라 경제활동도 쉽지 않은 윤 씨. 기초생활수급자로 전락했고, 그나마 공단이 2017년 6월부터 가족에게 매달 장학금 40만 원과 재활보조금 20만 원을 지원해 버티고 있다. 지난해 말 벤츠코리아가 전동휠체어도 보내줬다. 더 큰 문제는 가슴에 맺힌 피멍이다. 정현은 여전히 용변도 혼자 보질 못한다. 뇌 손상으로 성장을 멈춰 몸의 절반도 사용하질 못한다. 윤 씨는 우울증 약을 복용한다. 누군가에겐 ‘한 번의 실수’가 어느 가족에겐 ‘평생의 멍에’가 돼 버렸다. ▼ ‘횡단보도앞 무조건 멈춤’ 법안 3년째 국회에 ▼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꾸준히 줄어 최근 2년째 3000명대를 유지했다. 한데 정부 목표인 ‘2022년까지 교통사고 사망자 2000명대 진입’을 이루려면 정비가 필요한 법안이 많다. 동아일보가 전문가 조언을 받아 다음 21대 국회에서 통과돼야 할 주요 교통안전 관련 법안들을 추렸다. 지난달 27일 대전지방법원에선 지난해 9월 충남 아산의 한 중학교 정문 앞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 횡단보도에서 숨진 김민식 군(당시 9세) 사건에 대한 1심 판결이 있었다. 재판부는 차량의 속도가 시속 22.5∼23.6km 정도로 속도 규정을 어기지 않았던 점을 인정하면서도 가해 운전자에게 금고 2년형이란 이례적으로 중형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횡단보도 보행자 보호를 강화하는 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줄곧 피력해왔다.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적어도 횡단보도가 시작되는 위치에서 시야 확보가 되지 않는 경우엔 차량을 의무적으로 멈추는 규정이 필요하다”고 했다. 20대 국회에선 스쿨존은 물론 모든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에서 의무적으로 차량을 일시 정지하는 법안이 발의됐지만 상임위에 계류돼 있다. 2018년 대전의 한 아파트단지에서 교통사고로 5세 여아가 숨지며 ‘도로외구역 보행자 보호’에 관심이 커졌다. 이 관련 법안 역시 계류돼 있다. 법적으로 ‘도로’로 규정한 곳의 보행자 보호 의무만 규정한 현행법을 바꿔 아파트 단지와 학교 내, 주차장 등 도로외구역까지 확대하자는 게 법안의 골자다. 한 교통전문가는 “사적 영역에 경찰권을 동원하는 것에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아 법 개정 관련 협의체의 논의가 겉돌고 있다”고 했다. 차량 리콜 건수가 늘며 사고기록장치(EDR·Event Data Recorder) 공개 범위 확대가 시급하다는 목소리도 높다. 국토교통부가 운영하는 자동차리콜센터에 따르면 리콜 건수는 2013년 100만 대 수준이었지만 2017년 이후 200만 대를 넘었다. 국회에선 사고 전후 페달 조작이나 엔진 상태 등을 실시간 기록하는 EDR의 공개 범위를 확대하는 법안이 지난해 6월 발의됐지만 상임위를 통과하지 못했다. 차주 및 운전자로 제한된 EDR 공개 범위를 확대해 경찰이 제조사와 판매자에 요구할 수 있게 하자는 내용이다. 지난해 여객 운송에 사용되는 차량에서 시동 전 음주 여부를 측정해 음주가 확인되면 시동이 걸리지 않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를 의무 장착하는 법안도 발의됐지만 아직 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성렬 삼성교통문화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음주운전은 습관적으로 반복된다. 상습 음주운전자 사고 예방을 위해 필수”라 했다. 전기자전거, 킥보드 등 퍼스널모빌리티(PM)는 이용자가 늘면서 사고 건수도 늘고 있다. 하지만 법적으로 PM에 대한 명확한 정의조차 없다.○공동기획 : 행정안전부 국토교통부 경찰청 한국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tbs교통방송교통문화 개선을 위한 독자 여러분의 제보와 의견을 e메일(lifedriving@donga.com)로 받습니다.김동혁 hack@donga.com·박창규·전채은 기자특별취재팀▽팀장 박창규 사회부 기자 kyu@donga.com ▽서형석(산업1부), 유원모(산업2부), 김동혁(경제부),최지선(국제부), 전채은 기자(사회부)}

“2m씩, 최소 좌석 한 칸씩은 떨어져 앉으세요. 일부러 여기서 강의하는 거니까요.” 11일 오후 3시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 사이버관. 마스크를 쓴 교수가 강의실에 걸어 들어오며 학생들에게 거리 두기부터 지시했다. 마스크 너머로 조용히 인사를 나눴던 학생들은 금세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야 했다. 이 강의 정원은 70명 남짓. 그런데 370석이 넘는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학기 들어 처음 학생들을 대면한 교수는 “원래는 공연 같은 걸 하는 장소”라며 멋쩍게 웃었다. 11일 전국에서 대학 9곳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단했던 대면수업을 제한적으로 시작했다. 해당 대학 학생들은 이날 올해 첫 등교를 했다. 그러나 대면수업 강의는 대부분 정원 제한 등을 둔 데다 최근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한 탓인지 캠퍼스에는 여전히 불안이 감돌았다. 실제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대학의 20%에 가까운 38곳이 11일부터 일부 과목을 대면수업으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민대를 비롯한 29개 대학이 코로나19 지역감염이 다시 늘어나자 비(非)대면수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전체 대학 중 이날까지 대면수업을 시작한 학교는 총 23곳(11.9%)이다. 한국외국어대는 30인 이하의 강의일 경우 대면수업으로 전환했다. 인원이 그 이상이라도 △학생 간 거리 확보가 가능하고 △수강생 설문조사에서 찬성이 더 많은 강의만 대면수업을 허용했다. 11일 기준 서울 및 글로벌캠퍼스 전체 4000여 개 강의 가운데 대면수업을 요청한 강의는 6%(254개)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캠퍼스 분위기는 이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2학년생 이모 씨는 “1학기에 듣는 강의 중 2개가 대면수업이 가능했지만 설문조사에서 반대가 많아 무산됐다”며 “아무래도 이태원 집단 감염이 터져 친구들도 학교에 오는 걸 꺼린다”고 전했다. 인근 문구점을 운영하는 A 씨는 “원래 학기 중엔 하루 200여 명이 드나드는데 오늘도 네댓 명밖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동국대는 20인 이하 강의에 대해 필요시 대면수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상황은 엇비슷했다. 2학년 조모 씨(20)는 “클럽에 가는 나이대가 딱 대학생 연령인지라 학생들도 굉장히 불안해한다”며 “대면 참석과 온라인 수강 중 선택할 수가 있어 학교에 나가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과 대면수업을 병행하는 조건으로 대면수업을 시작한 고려대는 오전부터 학생들에게 ‘OK 스티커’를 붙이느라 바빴다. 고려대는 학교 정문에 마련한 발열 검사소에서 출입자 전원의 체온을 체크한 뒤 발열 증상이 없으면 스티커를 부착해 교내로 들어갈 수 있게 허용했다. 학교 측 준비에도 학생들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대면강의를 듣고 귀가하던 김모 씨(25)는 “대면과 온라인이 선택 가능한 90명 정원 강의였는데 3분의 1도 채 안 왔다”며 “솔직히 이런 분위기라면 별로 오고 싶지 않은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전채은 chan2@donga.com·신지환·김수연 기자}

“2m씩, 최소 좌석 한 칸씩은 떨어져 앉으세요. 일부러 여기서 강의하는 거니까요.” 11일 오후 3시 서울 동대문구 한국외국어대 사이버관. 마스크를 쓴 교수가 강의실에 걸어 들어오며 학생들에게 거리 두기부터 지시했다. 마스크 너머로 조용히 인사를 나눴던 학생들은 금세 거리를 두고 떨어져 앉아야 했다. 이 강의 정원은 70명 남짓. 그런데 370석이 넘는 대강당에서 열렸다. 이번 학기 들어 처음 학생들을 대면한 교수는 “원래는 공연 같은 걸 하는 장소”라며 멋쩍게 웃었다. 11일 전국에서 대학 9곳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중단했던 대면수업을 제한적으로 시작했다. 해당 대학 학생들은 이날 올해 첫 등교를 했다. 그러나 대면수업 강의는 대부분 정원 제한 등을 둔 데다, 최근 이태원 클럽에서 집단 감염이 벌어진 탓인지 캠퍼스에는 여전히 불안이 감돌았다. 실제로 한국사립대학총장협의회에 따르면 지난달 전체 대학의 20%에 가까운 38곳이 11일부터 일부 과목을 대면수업으로 전환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국민대를 비롯한 29개 대학이 코로나19 지역감염이 다시 늘어나자 비(非)대면수업을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전체 대학 중 이날까지 대면수업을 시작한 학교는 총 23곳(11.9%)이다. 한국외국어대는 30인 이하의 강의일 경우 대면수업으로 전환했다. 인원이 그 이상이라도 △학생 간 거리 확보가 가능하고 △수강생 설문조사에서 찬성이 더 많은 강의만 대면수업을 허용했다. 11일 기준 서울 및 글로벌캠퍼스 전체 4000여 개 강의 가운데 대면수업을 요청한 강의는 6%(254개)뿐이었다. 이렇다 보니 캠퍼스 분위기는 이전과 별반 다를 게 없었다. 2학년생 이모 씨는 “1학기에 듣는 강의 중 2개가 대면수업이 가능했지만, 설문조사에서 반대가 많아 무산됐다”며 “아무래도 이태원 집단 감염이 터져 친구들도 학교에 오는 걸 꺼린다”고 전했다. 인근 문구점을 운영하는 A 씨는 “원래 학기 중엔 하루 200여 명이 드나드는데, 오늘도 네댓 명밖에 오질 않았다”고 했다. 동국대는 20인 이하 강의에 대해 필요시 대면수업이 가능하도록 했다. 하지만 상황은 엇비슷했다. 2학년 조모 씨(20)는 “클럽에 가는 나이대가 딱 대학생 연령인지라 학생들도 굉장히 불안해한다”며 “대면 참석과 온라인 수강 중 선택할 수가 있어서 학교에 나가지 않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수업과 대면수업을 병행하는 조건으로 대면수업을 시작한 고려대는 오전부터 학생들에게 ‘OK 스티커’를 붙이느라 바빴다. 고려대는 학교 정문에 마련한 발열 검사소에서 출입자 전원의 체온을 체크한 뒤 발열 증상이 없으면 스티커를 부착해 교내로 들어갈 수 있게 허용했다. 학교 측 준비에도 학생들은 마음을 놓지 못했다. 발열검진소 앞에서 만난 박규민 씨(26)는 “학교 차원에서 철저히 출입통제도 하고 방역수칙도 지키고 있지만 아직 코로나19가 잡히지 않아 불안감이 남아있는 건 어쩔 수 없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대면강의를 듣고 귀가하던 김모 씨(25)는 “대면과 온라인이 선택 가능한 90명 정원 강의였는데 3분의 1도 채 안 왔다”며 “솔직히 이런 분위기라면 별로 오고 싶지 않은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고 말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신지환 기자 jhshin93@donga.com}
성폭력 등으로 복역하고 출소한 뒤 전자발찌를 착용해왔던 40대 남성이 한강으로 투신해 숨을 거뒀다. 서울 광진경찰서는 “강간, 상해 등의 전과가 있어 전자감독 대상이던 A 씨(42)가 6일 오후 10시 25분경 한강으로 투신해 사망했다”고 7일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한강에 몸을 던지기 전 담당 보호관찰관에게 “전자발찌를 착용하고 지내니 답답해서 사는 게 싫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A 씨를 감시해온 동부보호관찰소도 동선이 광진교 남단에서 끊긴 것을 확인하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6일 오후 11시경 인근에서 A 씨의 시신을 발견했다. 지난해 말 출소한 A 씨는 그간 보호관찰관에게 여러 차례 “전자발찌 착용이 부담스럽다” “야간 외출 제한을 해제해 달라”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고 한다. A 씨와 같은 전자감독 대상은 범죄 재발을 막기 위해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자정부터 오전 5시까지 외출을 제한한다.이청아 clearlee@donga.com·전채은 기자}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할머니와 손자가 비닐에 싸여 숨진 채 발견된 살인사건의 용의자를 경찰이 추적 3일 만에 붙잡았다. 용의자는 범행 이후에도 수일간 범행 장소에서 숙식을 했던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하고 도주한 A 씨(41)를 살인 및 존속살해 혐의로 30일 오전 4시 25분경 서울의 한 모텔에서 검거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은 비닐에서 A 씨의 지문이 3건 검출되자 그를 용의자로 특정하고 추적해왔다. 경찰 등에 따르면 A 씨는 자신의 어머니(70)와 아들(12)을 약 두 달 전 살해하고 시신을 비닐로 덮어 안방의 장롱에 넣은 뒤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의 시신은 A 씨의 형수가 신고해 지난달 27일 발견됐다.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지난해 12월 출소한 A 씨는 자신의 독립에 필요한 돈 문제로 어머니와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어머니를 맨손으로 목 졸라 살해한 뒤 아들이 혼자 살 수 없을 것 같아 같은 방식으로 살해했다”고 범행을 시인했다. A 씨와 모텔에 함께 있던 40대 여성도 범인 도피 혐의로 긴급 체포돼 경찰 조사를 받고 있다. A 씨는 두 사람의 시신을 장롱에 넣어둔 집에서 이 여성과 수일간 지내다 시신이 부패하며 냄새가 나기 시작하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겼다. 이 여성은 A 씨가 저지른 살인에 대해 전혀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하고 있다. 배달업에 종사하던 A 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된 사실을 알게 된 직후 휴대전화를 끄고 오토바이를 타고 도주했다. 이후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오토바이를 버리고 성동구의 한 모텔로 잠적했다. 경찰은 종종 전원이 켜졌던 A 씨 휴대전화의 위치 추적과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분석 등을 토대로 A 씨를 추적했다. A 씨는 검거 당시 저항하지 않고 순순히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발견된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외상이 없고 질식 가능성이 높다는 1차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이 사건은 지난달 16일 초등학교 4∼6학년이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드러났다. A 씨의 아들이 다니던 학교는 개학 이후 아들이 온라인 출석을 하지 않자 동작구 공무원 등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직원들의 방문에도 인기척이 없어 인근에 거주하는 A 씨의 형수에게 연락을 취했고 이후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고 시신을 찾았다.전채은 chan2@donga.com·한성희 기자}

“현장에서 화재 감시자를 본 적은 한 번도 없어요. 용접을 할 때도 방화벽이나 덮개를 쓴 적이 없었습니다.”(현장 직원 A 씨) 지난달 29일 경기 이천시에서 발생한 물류센터 화재 참사 현장에서 안전수칙을 지키지 않았다는 증언이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한 현장감식 관계자는 “기본 수칙만 지켰더라도 이렇게까지 많은 희생자가 나오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 등에 따르면 물류센터 화재는 크게 3가지 측면에서 규정 위반으로 볼 수 있다. △화재 위험을 감시할 전담 인력이 없었고 △용접 때 덮개나 방화벽 등 안전장비를 갖추지 않았으며 △사고에 대비한 대피로 확보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다.○ “화재 감시자도, 안전관리자도 못 봤다” 사고 원인을 수사 중인 경기남부지방경찰청 특별수사본부 등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일부 직원들은 “공사하는 내내 화재 감시자는 물론이고 안전관리자도 본 적이 없다”며 “이따금 감리 책임자가 왔다 간 것이 전부다”라고 진술했다. 이천 물류센터처럼 화재에 취약한 공사 현장에선 화재 감시자는 필수 배치 인력이다. 화재 감시자는 불이 날 위험을 사전에 점검하고, 화재가 발생했을 때는 현장 인원을 대피시키는 일을 맡는다. 현행법에 따르면 불이 나기 쉬운 작업을 할 때는 시공사 등이 현장에 반드시 화재 감시자를 상주시켜야 한다. 최초 발화지로 알려진 지하 2층에 소화 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았다는 진술도 나왔다. 현장에서 3개월 넘게 일했다는 B 씨(52)는 “사고가 나기 일주일 전쯤 화재가 발생한 지하 2층에서 일한 적이 있다”며 “당시에도 용접 작업을 했었는데 주변에서 소화기를 본 적은 없다”고 했다. 현장감식 관계자는 “건물 각 층마다 소화기가 있긴 했다. 하지만 화염이 급격하게 번져 소화기로 끌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덮개 방화벽 없었고, 환기도 안 했다” 경찰 조사에서 하청업체 직원들은 사고 당시 지하 2층에서 엘리베이터 설치를 하고 있었다. 이때 용접 작업을 하면서 주위로 불꽃이 튀었다. 소방당국 등은 최초 발화지로 추정되는 이 엘리베이터 앞에서 용접에 쓰이는 절단기와 전동공구를 여러 개 발견했다고 한다. 하지만 경찰은 용접 불꽃을 막아줄 철제 방화벽이나 덮개가 없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에서 일한 한 직원은 “공사 기간에 우레탄폼 작업을 하는 주변에서 용접을 여러 번 했다”며 “이때 덮개 등을 설치한 기억은 없다”고 진술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등은 용접 작업장 반경 10m 안에 인화성 물질을 둬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부득이하게 인화성 물질이 있는 공간에서 용접을 할 때는 덮개를 씌우거나 방호벽을 세워야 한다. 당초 폭발의 원인으로 지목됐던 유증기(油蒸氣·oil mist)의 존재도 확인됐다. 소방당국은 인화성 가스가 지하 2층의 1822m² 남짓한 공간에 가득 퍼져 있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같은 층에서 벽면과 천장 곳곳을 우레탄폼으로 메우는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합동감식에 참여했던 한 관계자는 “용접을 하며 튄 불꽃이 인화성 가스나 우레탄폼에 옮겨 붙어 불길이 치솟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불이 나도 대피하기 어려운 구조”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은 공사 전부터 물류센터 현장에서 화재 발생 가능성이 작지 않다고 지적해 왔다. 공단은 지난해 3월 시공사인 ㈜건우가 작성한 ‘유해위험 방지 계획서’를 검토한 뒤 “우레탄폼 작업의 안전 계획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보완 계획서를 받아본 공단은 “용접 작업 때 화재나 폭발 방지 계획을 구체적으로 보완하라”며 조건부 적정 의견을 냈다. 공단은 이후에도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 화재 위험성이 있다는 의견을 냈다. 지난해 5월과 올해 1월, 올해 3월 등 3번이나 방문해 매번 시공사에 불이 날 위험이 있다며 ‘조건부 적정’ 판정을 했다. ‘조건부 적정’ 의견을 받은 업체는 문제를 시정하지 않아도 공사 중지 등 강제 처분을 받지 않는다. 시공사는 행정조치 요청을 포함해 모두 6번의 경고를 받았다. 공사 현장에 대피로가 제대로 확보되지 않았던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물류센터 건물은 비상구가 하나뿐인 데다 복도 폭이 매우 좁았다. 사실상 불이 나도 쉽게 대피하기 어려운 구조였다고 한다.고도예 yea@donga.com·전채은 / 이천=한성희 기자}

서울의 한 다세대주택에서 할머니와 손주가 비닐에 싸여 숨진 채 발견된 살인 사건의 용의자를 경찰이 추적 3일 만에 붙잡았다. 서울 동작경찰서는 “어머니와 아들을 살해하고 도주한 A 씨(41)를 살인 및 존속살해 혐의로 30일 오전 4시 25분경 서울의 한 모텔에서 검거했다”고 이날 밝혔다. 경찰에 따르면 A 씨는 자신의 어머니인 B 씨(70)와 아들 C 군(12)을 약 두 달 전 살해하고 시신을 비닐로 덮어 안방 속 장롱에 넣은 뒤 도주한 혐의를 받고 있다. 두 사람의 시신은 B 씨의 며느리의 신고로 27일 발견됐다. A 씨는 경찰 조사에서 자신의 범행을 시인했다. 경찰은 A 씨의 구체적 범행 동기와 경위 등을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31일 A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A 씨는 경찰 수사가 시작된 사실을 알게 된 직후부터 휴대전화를 끄고 서울의 한 모텔로 잠적했다. 경찰은 A 씨 휴대전화의 위치추적과 인근 폐쇄회로(CC)TV 영상 분석 등을 토대로 A 씨를 추적했다. A 씨는 검거 당시 저항 없이 순순히 경찰에 연행된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부인과 이혼을 하고 아들을 어머니에게 맡긴 A 씨는 교도소에서 복역하다가 지난해 12월 출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출소한 뒤에 특별한 직업이 없어서 어머니 B 씨는 수년 째 혼자 힘으로 C 군을 길러 왔다. 이웃 주민들은 “할머니가 어찌나 지극정성이던지 손주 학원도 아무 곳이나 보내지 않고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있는 대형 학원을 보내곤 했다”며 안타까워했다. B 씨와 C 군의 시신을 부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외상이 없고 질식 가능성이 높다는 1차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이 사건은 16일 초등학교 4~6학년이 온라인 개학을 하면서 드러났다. C 군이 다니던 학교는 개학 이후 C 군이 온라인 출석을 하지 않자 동작구 공무원과 학교전담 경찰관에게 이 사실을 알렸다. 직원들의 방문에도 인기척이 없자 인근에 거주하는 B 씨 며느리에게 연락을 취했고 이후 경찰이 강제로 문을 열고 시신을 찾았다.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29일 경기 이천시 물류센터 화재는 12년 전 역시 이천에서 있었던 냉동 창고 화재와 판박이다. 2008년 1월 7일 이 냉동 창고 화재 역시 지하에서 작업하던 이들이 많이 숨졌다. 현장에 있던 57명 가운데 40명이 목숨을 잃었다. 당시 화재도 우레탄폼 발포 과정에서 발생한 유증기에 용접 작업 도중에 생긴 불꽃이 튀면서 폭발한 것으로 확인됐다. 샌드위치 패널로 불이 옮겨붙으면서 건물 전체가 빠르게 불길에 휩싸인 것도 닮았다. 이로 인해 순식간에 불길이 번져 희생자들이 현장을 탈출하지 못하고 사망했다. 강한 화염으로 시신의 훼손이 심해서 화재가 진압된 뒤 치아 의료기록 대조나 유전자(DNA) 감식을 통해서 신원을 파악해야만 했다. 이번 물류센터 화재에서도 상당수 시신이 옷이 완전히 타거나 크게 훼손됐다. 2008년 냉동 창고 화재도 여러 차례에 걸친 굉음과 함께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목격자들은 “30분 간격으로 폭발이 대여섯 차례 이어졌다”고 입을 모았다. ‘펑’ 하는 폭발음이 수십 차례에 걸쳐 발생했다는 29일 화재의 목격자 증언과 일치하는 대목이다. 당시 냉동 창고 화재 때는 창고 붕괴 위험도 높아 수색 작업을 한 차례 중단했다가 재개하기도 했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군에 복무하면서 암호화폐 거래소 시스템 오류를 악용해 수억 원의 부당이득을 챙긴 전직 육군 장교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서울동부지법 형사1단독 권덕진 부장판사는 “컴퓨터 등 사용 사기 및 컴퓨터 등 장애업무방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예비역 육군 중위 A 씨에게 23일 징역 10월을 선고했다”고 29일 밝혔다. 법원에 따르면 A 씨는 강원 양구군에 있는 부대에서 소대장으로 근무하던 2018년 초 한 암호화폐 거래소에서 암호화폐의 일종인 ‘B토큰’을 28만7500개 구매했다. B토큰 발행사가 5월 홍콩의 가상화폐 거래소 상장을 앞두고 3개월 재판매 금지 조건으로 할인 판매한 것이었다. A 씨는 그러나 5월경 이 암호화폐를 홍콩 거래소 계정으로 전송하면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2배로 불어난다는 정보를 알게 됐다. 일부 실행해보고 사실이라는 걸 확인한 뒤, 이 화폐의 거래소 상장 하루 전에 친누나 명의 등으로 계정을 개설해 B토큰을 사들였다. A 씨는 하룻밤 사이 146회에 걸쳐 모두 4168만 여 개의 B토큰을 구매했다. 이런 시스템 오류를 이용해 부당하게 취한 이익은 시가로 약 2억9000만 원에 이른다. 재판부는 “A 씨가 편취한 금액이 크고 특히 허위 암호화폐 가운데 일부를 현금화해 약 3800만 원을 인출했으며, 암호화폐 발행업체에 피해를 보상하지도 않았다”고 실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